나홀로 플레이테스트 – 펜드래건

BRP 기반의 아더왕 전설 배경 RPG인 펜드래건 (Pendragon) RPG의 기본 판정을 혼자 인물을 만들어 테스트해 보았습니다. 펜드래건은 BRP 계열 규칙 중에서는 퍼센트 주사위가 아닌 d20 주사위를 사용하는 점이 특이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또 특이사항이라면 캠페인의 호흡이 훨씬 길다는 점, 개인 못지않게 가문에 중점을 둔 점, 그리고 아더왕 전설에서 종종 나타나는 강력한 성격과 열정을 규칙으로 표현했다는 점입니다. 이런 식으로 장르에 맞춘 규칙은 BRP 계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특징이지도 하지요.

여러가지로 흥미롭고 평도 좋은 규칙인지라 인물을 두어 명 무작위 방식으로 만들어서 테스트해 보았습니다. 전투같이 복잡한 데까지는 못 들어갔고, 기능 판정을 조금 하고 주로 성격과 열정 판정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인물 1: 유안. 전사 아버지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나서 카멜리아드의 레오데그란스 (기네비어 왕비의 아버지)를 섬기고 있습니다. 펜드래건에서는 16 이상의 성격은 유별난 것이고 20이 정상적인 최대치인데, 순전 무작위로 제작한 결과 유명한 성격이 다섯 개나 되는 엄청난 젊은이가 되었습니다. 순결 18, 너그러움 16, 신중함 16, 절제 18, 용기 16이라는 뭔가 장래가 걱정되는(..) 조합이랄까요. 열정 역시 무작위로 굴렸는데 영주에 대한 충성심 18, 명예 18 등 결코 범상치 않더군요.

인물 2: 에니드. 펜드래건에서 주인공은 원칙적으로 기사이지만 여성 인물을 만드는 특칙도 있어서 활용해 보았습니다. 에니드는 교회에 충성을 맹세한 기사의 맏딸로 태어났습니다. 성격 중에는 순결 16, 정의감 16, 겸손 19가 눈에 띄는군요. 언제나 정숙하게 내리뜬 눈매가 매력 포인트인 그녀..(..)

판정 1: 성격 판정

시녀 에니드와 종자 유안은 부상당한 레오데그란스를 비롯한 많은 사람과 함께  사악한 기사에게 포로로 잡혔습니다. 기사는 위험한 숲 속 깊은 곳에 있는 샘에서 물을 한 병 퍼오면 잡힌 사람들을 모두 풀어주겠다고 합니다. 다만, 이 샘은 마법이 걸려서 오직 여자만 물을 길을 수 있다고 하죠.

아직 종자일 따름이나 영주에 대한 충성심만은 뒤지지 않는 유안은 이 임무에 나설 것을 자청합니다. 그는 모인 여성 중 누구 한 명이 자신과 함께 가서 물을 퍼올 것을 간청하지만, 위험한 임무에 선뜻 따라나설 여성은 좀처럼 없었지요. 진행자는 에니드의 참가자에게 용기 판정을 시킵니다. 에니드의 용기는 15, 주사위 결과는 4이므로 용기 판정은 성공. 에니드는 유안을 따라 숲으로 가겠다고 자원하고, 용기에 성장판정 표시를 받습니다.

판정 2: 성격 판정 2

숲속에서 비가 오는 밤, 천막은 하나밖에 받지 못했기 때문에 에니드와 유안은 천막을 함께 쓰게 됩니다. 함께 위험한 숲을 여행하면서 점점 가까워진 두 사람. 진행자는 유안에게 호색 판정을 시킵니다. 유안의 호색은 2, 주사위 결과는 13이므로 호색 판정은 실패합니다.

호색이 실패했으니 이번에는 반대쪽 성격인 순결을 판정합니다. 순결은 18, 주사위 결과 역시 18. 능력치와 같은 주사위 결과는 대성공이므로 유안은 그 성격적 특성을 극단적으로 표출하게 됩니다.

보통 성공이었다면 두 사람이 누운 자리 사이에 칼을 뽑아 내려놓는 것으로 충분했겠지만, 유안은 에니드의 만류를 뿌리치고 천막 문앞에서 잠을 청합니다. 덕분에 감기가 단단히 걸려서 진행자는 유안이 2 HP를 잃는다고 선언하고, ‘치료 필요’ 상자에 표시를 합니다. 하지만, 고생한 보람이 있어서 차후에 순결 성장 판정이 가능하다는 표시 또한 받습니다.

판정 3: 기능 판정

아침이 되자 에니드는 벌벌 떠는 유안을 치료합니다. 에니드의 치료 기능은 10, 주사위 결과는 불행히도 20. 20은 대실패이므로 유안은 대번에 1d3 HP를 잃고, 상태가 더욱 악화하면서 며칠 후 1d6 HP를 추가로 잃습니다.

판정 4: 열정 판정

유안은 심하게 기침을 하면서도 샘을 지키는 괴물과 혼자 싸웁니다. 그는 포로로 잡힌 레오데그란스를 생각하며 반드시 임무를 완수하고야 말겠다는 결의를 다집니다. 레오데그란스에 대한 충성심은 18, 주사위 결과는 16이므로 열정 굴림은 성공합니다. 그 결과 본래 16인 그의 검 실력은 +10 가산점을 받아 전투가 지속하는 동안 26이 됩니다. 또한 영주에 대한 충성심에 성장 판정 표시를 받습니다.

…이런 식으로 혼자 펜드래건 규칙을 활용해보았습니다. 해본 감상은 뭐, 나름 재밌어 보이긴 하지만 역시 썩 마음에 들지는 않더군요. 언제 성격과 열정 판정을 한다든지, 언제 성장 표시를 받는지 등, 딱히 객관적 기준 없이 진행자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주는 점이 거부감이 듭니다. 또 성격과 열정 판정은 요즘에는 별로 특이한 규칙도 아니고, 페이트 (FATE)의 면모 발동이 더 합리적인 방법 같군요. 무엇보다 규칙이 너무 복잡해요..(흑흑)

아더왕 전설을 충실하게 재현한다는 점에서는 훌륭하지만, 여러 가지로 제 취향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펜드래건은 맬로리나 드 트롸이 등 중세 원전에 나오는 기사 모험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제가 좋아하는 아더왕 전설은 아발론의 안개나 여왕의 목가와 같은 현대적 재해석 쪽이라서요. 정치적 성격이 짙고 여성도 주도적인 역할을 맡는 아더왕 캠페인에 펜드래건은 부적합해 보입니다.

4 thoughts on “나홀로 플레이테스트 – 펜드래건

  1. Wishsong

    원래 룰이라는 건 이전 것에서 나온 문제점들을 개선하면서 나오는 것이니, 과거의 것은 대부분 불편하죠;; 설정과는 다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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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키

      예, 역시 옛날 규칙이란..(..) 펜드래건 RPG는 아더왕 전설 참고 자료로서는 뛰어나고 가져오고 싶은 부분도 많지만 (시나리오 하나 진행하고 1년이 흐르는 식의 빠른 시간 흐름이라든지), 규칙 자체는 불편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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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소년H

    역사가 흐르는 느낌이라던가…

    대를 이어 진행한다거나..그런 느낌이 들던데요. (정작 시스템 자체는 못 봤지만 (…))

    규칙이야 뭐..랄까, ‘옛날 사람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걸까?’란 생각이 들죠. 진짜 10년 전에만 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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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키

      예.. 시나리오 하나 하면 1년 보내고, 노화 규칙 있고, 아들네미 생기고 만드는 규칙 있고 하니 꽤나 시간의 흐름이 유구하죠. 그런 부분은 다른 규모가 큰 캠페인에서도 참고할 게 많아보여요.

      뭐 요즘에야 불편해 보이지만 나올 당시에는 성격과 열정은 꽤 혁신적인 규칙이었다고 알고 있어요. 그리고 요즘 기준으로 봐도 장르 적합성이라든가, 내면 표현이라든가 하는 면에서 발상은 좋죠. 다만 구현 방법이 썩 좋진 않아서 실제 쓰기는 그렇겠더라고요. 역시 경험이 쌓이면서 RPG는 발전해가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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