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활극적 RPG들

워게임에서 갈라져 나와서 그런지, 향유자들의 취향인지, 둘 다인지는 몰라도 전투는 흔히 RPG에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물론 개개 팀의 취향과 의지에 따라 많이 달라지는 문제이지만, 일단 대개의 RPG는 규칙 자체적으로 전투에 치중되어 있습니다. 바바 히데카즈가 지적했듯 많은 RPG에서 전투는 다른 규칙보다 더 자세하고 긴박감이 강조된 규칙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탈활극적 RPG를 모색하는데 있어서 첫 단계는 규칙의 지향성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투에 치중된 규칙은 100%는 아니어도 대체로 전투에 치중된 플레이를 유도하니까요. 그러한 모색의 출발점으로 전투중심 편향성이 전혀 없는 (몇 안되는) 규칙을 간략하게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포도원의 개들

예전의 소개글에서 다루었듯 포도원의 개들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성공하기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가 중심인 규칙입니다. 끝까지 가면 이기기는 확실히 이깁니다. 아버지에게 주먹질을 하고 친구의 얼굴에 총을 들이댈만큼 마음을 독하게 먹는다면. 그만큼 그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판단한다면.

기본적으로 폭력성을 깔고 있는 성격의 규칙이지만 사회 판정과 인간관계에 능력을 최대한 많이 집어넣고 사회 판정에 주로 사용하는 지성과 마음 특성치를  많이 올리면 위에서 예를 든 것과 같은 폭력사태까지 가지 않아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공산이 큽니다. 자의든 타의든 일단 폭력사태가 벌어지면 무능하겠지만요.
포도원의 개들도 이 글에 나오는 다른 규칙과 마찬가지로 전투와 사회판정을 완전히 똑같이 다룹니다. 총을 들고 있는 사람을 설득해서 총을 내려놓게 하든 손을 쏴서 떨어뜨리게 하든 똑같이 효과적이니까요. 다만 피해만은 다르게 다루기 때문에 피해를 입는 김에는 사회판정에서 입는 것이 훨씬 성장이 빠릅니다. 성장이란 피해 굴림에서 1이 하나라도 나왔을 때 이뤄지는데, 총싸움에 의한 피해는 d10, 사회적 피해는 d4로 굴리기 때문에 사회적 피해에서 1이 나올 확률이 비약적으로 높거든요.

폭력성을 전제로 하면서 정신과 인간관계에 상처를 입는 것이 신체적 부상보다 더 유리한 포도원의 개들은 역시 궁극의 폭력 RPG인 걸까요. 그럼에도 전투능력이 없어도 된다는 점은 역설입니다.

과거의 그늘

역시 전투와 비전투 판정을 완전히 동일하게 다룹니다. 심지어는 무기와 방어구까지. 칼싸움 판정에 도움이 되는 검이 있을 수 있듯 협박 판정에 도움이 되는 무서운 가면도 가능합니다.

과거의 그늘은 포도원의 개들과 달리 신체적 피해와 정신적·사회적 피해를 모두 동일하게, 같은 체계로 다룹니다. D&D에 빗대자면 총에 맞아서 20HP에서 16HP로 깎였다가, 회복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실연을 당해서 16HP에서 9HP로 다시 깎이는 식입니다. 그래서 신체적 피해를 치유하는 치료 기능과 나란히 정신적 피해를 치유하는 상담 기능도 있습니다.

실제로 2005년 겨울에 7회짜리 단기 캠페인이었던 라이테이아 캠페인을 돌렸을 때 사회 판정이나 신체 판정은 꽤 많았지만 전투 판정은 거의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제일 끝에 벌어졌던 아주 극적인 전투는 기억에 남지만요. 규칙의 편향성이 없으면 플레이의 전투 편향성 역시 없어질 수 있다는 실례로 생각됩니다.

안방극장 대모험

모든 판정을 동일한 규칙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과거의 그늘과 비슷합니다. 능력치랄 것이 거의 없고 뽑는 카드의 수는 화면 존재감과 팬레터에 달려있다는 점에서 화면 존재감이 높은 화일수록 주인공은 매우 광범위한 능력을 보입니다. 이것은 그 주인공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화일수록 그 주인공의 다양한 모습들이 드러난다는 점과도 일맥상통하겠죠.

유일하게 전투와 비전투에 차등을 둘만한 것이라면 능력과 인간관계의 설정 부분입니다. ‘태권도 유단자’ 능력과 ‘도서관 사서’ 능력이 도움이 되는 상황이 다른 정도의 문제랄까요. 어차피 능력과 인간관계는 매우 넓은 범위 내에서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마저도 중요한 구분은 아니지만요.

얼음깨기

얼음깨기는 연애와 연애 심리가 중점이기 때문에 전투든 사회든 판정이랄 것이 없습니다. 오직 두 주인공의 마음의 변화만을 다루고 있지요. 따라서 위에서 얘기한 전투 편향성과 비슷한 원리로 얼음깨기 플레이에는 ‘연애 편향성’이 생기게 됩니다. 규칙의 초점에 따라 플레이의 실제 내용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규칙이 하는 일이란 결국 세부 규칙을 통해 플레이의 초점을 설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명문화된 규칙이든 암묵적인 합의든 초점이 전혀 잡히지 않으면 화장실 가고 목욕하는 것도 아버지의 원수에게 복수하거나 왕위를 계승하는 것과 동일한 중요성을 가질테니까요. 규칙이 달라지면 플레이의 초점이 달라지고 관점이 달라지기 때문에 규칙이란 탈활극적 RPG를, 또 어떤 RPG든 논하는 첫 걸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 thoughts on “탈활극적 RPG들

  1. 천승민

    탈활극적 규칙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은 “굴려서 때우기”에 대한 대비여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룰이 없었을 때는 차라리 플레이의 초점이 없는게 문제지만, 주관성의 개입의 여지가 있었는데,(너무 주관성이 많았는데;;;)

    또 너무 타이트하게 짜지면 자연스럽게 “긴말 할 것 없이 굴릴께요”가 되니까 서사성을 중시하는 방식에서는 대략 난처해지더라구요.

    저는 현재로서는 전체 가이드 + 각각 필요한 부분의 복수의 규칙(예를 들여 연애 진행 가이드 + 고백 성공 규칙, 100일 이벤트 성공 판정 규칙 … /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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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키

      상황에 따라 규칙이 다르면 너무 복잡해지는 건 아닐까요? 겁스가 상당부분 그런 성향이기도 하고요. 중요한 건 상황마다 규칙이 있는 것보다는 규칙책의 초점이 어디 있느냐가 아닌가 싶어요.

      확실히 서술이나 연기 없이 주사위 굴림의 연속이 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주사위만 굴리면 너무 지루해지니까요. 이럴 경우는 연기 보상이 하나의 방법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닥치고 굴리겠3’ 식이면 같은 맥락으로 벌점을 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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