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 없는 RPG, Mythic Roleplaying

전에 물고기님과 얘기하다가 처음 알게 된 Mythic Roleplaying은 진행자 없이도 진행할 수 있는 특이한 규칙입니다. 또한 진행자가 있더라도 아무 준비 없이 시작 장면만 설정하고 진행할 수도 있으며, 혼자 모험하는데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규칙 자체가 판정 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의 세부사항까지 생성하니까요. 예를 들어 ‘뭔가 소리가 들리나요?’ 라든지 ‘오크가 있나요?’ 같은 사항입니다.

미씩의 이러한 모험 생성 규칙의 중심에는 운명 챠트 (Fate Chart)가 있습니다. 의외로 간단한 발상인데, 먼저 ‘예’ 아니면 ‘아니오’로 답할 수 있는 질문을 정합니다. 다음, 그 답이 ‘예’일 확률과 (능동 등급) ‘아니오’일 확률 을 (저항 등급) 정해서 표에서 찾습니다. 다음, 두 가지가 만나는 칸에 나오는 확률에 비교해서 1d100을 굴립니다. 결과가 그 확률 이하로 나오면 대답은 ‘예’이고, 그 확률보다 높게 나오면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예를 들면 두 명의 전사가 싸우는데 한 명이 칼로 내리치는 동안 상대는 방패로 막으려고 합니다. 전사는 적을 칠 수 있을까요? 칼을 쓰는 전사의 칼 실력은 높으며, 방패로 막는 전사의 방패 실력은 평균 이상입니다. 능동 등급 ‘높음’과 저항 등급 ‘평균 이상’이 만나는 확률은 55%입니다. 따라서, 1d100을 굴려서 55 이하가 나오면 칼을 쓰는 전사는 방패를 쓰는 전사를 칼로 명중시킵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모험자들이 걸어가고 있는데 혹시 비가 오는지 궁금합니다. 보통은 진행자가 대답하면 그만이지만, 진행자가 없다 하더라도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곳은 건조한 지방이므로 비가 올 확률 (능동 등급)은 낮다고 참가자들이 정합니다. 주변 환경에 대한 내용을 정할 때의 저항 등급은 평균입니다. 낮음과 평균이 만나는 25%이므로 1d100에서 25 이하가 나오면 비가 오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기본 규칙의 기반 위에 대성공, 대실패, 혼돈 점수, 우연한 사건, 행운 점수 등 추가 규칙이 작용하면서 미씩은 모험 생성 규칙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따라서 진행자가 필요없는 규칙, 내지는 GM 에뮬레이터를 표방하고 있는 것이지요.

미씩은 또한 다른 규칙과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판정은 원래 규칙으로 하고, 주변 환경의 사항이라든지 사건 생성 등은 미씩 규칙으로 하는 방식도 책에서는 권하고 있지요.

전반적으로 미씩은 진행자가 없거나 진행자가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로 보입니다. 한편으로는 참가자들의 논리에 의존하는만큼 악용의 여지도 많은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겠죠. 참가자들이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원활하게 협력할 수 있다면 미씩은 GM 에뮬레이터로서 그 기능을 십분 발휘할 것이라고 봅니다.

2007/11/9: 다이스&챗 쪽에서 김도완님의 소개로 세션에 예전에 올라온 미씩 (혹은 미딕) 예시를 발견했습니다! 이 규칙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보실 수 있습니다.

6 thoughts on “마스터 없는 RPG, Mythic Roleplaying

  1. nefos

    길을 가다 만난 상대의 실력이 나보다 등급이 높을지 낮을지도 페이트 차트로 구하는건가요? 그리고 이 지역이 건조한 지역인지를 정하는건 플레이어들?
    여러 사항을 참가자들끼리 합의를 통해 결정한다면 TR이면 몰라도 OR에선 굉장히 불편할거 같다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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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Xenosia

    로키님께서 언급하신 원활한 협력하에서의 진행이 아니라도
    진행자에게 이모저모 활용가능한 부분이 많다는 점과
    진행자없이도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은것 같습니다.
    참가자들의 합의도출 과정에서 지연이 생기는 문제점은
    플레이어들의 숙련도로 어느정도 무마시킬 수 있어보이고,
    초보유저들이라서 그게 곤란한 경우는 진행자가 없이
    초보들만 진행하는쪽은 당연히 문제가 발생하는게 정상적이니..
    진행자가 없이 진행하면 위의 문제점들이 발생한다고는 하지만,
    기존의 거의 모든 룰들이 진행자 없이는 아무것도 안된다는 걸 볼 때
    저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눈여겨 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데이터를 얻는 과정이 조금 다르지만
    서버의 AI 퍼지로직과 유사한 점이 많다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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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삭풍

    마스터 없이 진행할수있다는점에서 좀 흥미가 가는데 별로 플레이하고싶지는 않은룰이군요.플레이어들의 기본적인 숙련도가 갖춰줘야할텐데.OR에서 그런걸 기대하기는 참 힘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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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로키

    nefos// 예, 그렇게 합니다. 보통은 질문의 연속으로 하겠죠. ‘나보다 세 보여요?’ ‘그럼 엄청난 녀석?’ 등등.

    이곳이 건조한 지역인지 하는 것은 지금까지 플레이중 있었던 일이 기반이 됩니다. 지금까지 비온 적이 없었다거나, 얼마 전에 지나온 마을은 가뭄이었다거나… 그런 것들이 판단의 기반이죠. 뭐 그런 게 없으면 적당히 정하거나 평균으로 할 것입니다.

    특히 OR에서 많이 느릴 것 같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판단은 그렇게까지 길게 끄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저 배경 세계에 대해서 조금 수근수근거리는데 가깝달까… 합의가 안되면 참가자 제안의 평균치로 가고 결정을 지연하지 말라고 규칙책은 조언하고 있습니다.

    아군// ^^;;

    Xenosia// 미씩 같은 경우, 한번쯤 해보면 계속 사용하지는 않아도 다들 뭔가 느끼는 바가 있을 것 같은 규칙이랄까요. 발상부터가 참신하고, 참가자 합의와 판단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면에서요. 퍼지 로직이라… 어떻게 보면 인간의 사고야말로 극도의 퍼지 로직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삭풍// 여러가지 규칙을 읽어보면 사용은 안해도 다양한 생각들이 떠오르게 되니까요. 기발한 규칙이긴 하지만 사용하기는 역시 녹록치 않은 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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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아사히라

    저런 간단한 의견엔 별 할말이 없으셨던 거군요
    다음부턴 길게 써야지 […….]

    시간이 없었어서 아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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