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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질 수 없는 모든 것의 이름 (공화국의 그림자)

오체스님과 한 1:1 외전 2편 감상을 소설로 대체했습니다. 외설적인 요소가 좀 있습니다. (제가 쓰는 게 다 그렇죠 뭐..먼산) 노골적인 묘사 같은 건 없고, 그냥 그런 상황이 좀 나옵니다. 아마 오체스님이 정리하신 플레이 기록을 먼저 보셔야 이해가 될 듯. 다룬이 미셸에게 인사하고 나오는 시점부터 시작하며, 본편 캠페인에 대한 언급과 복선이 상당히 많습니다.

[#M_가질 수 없는 모든 것의 이름|가질 수 없는 모든 것의 이름|
‘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거냐…’

누구에게 던지는 질문인지도 모른 채 다룬 오르가나는 수행원들이 따라잡으려고 애먹을 정도로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걸어내려갔다. 누구에게 이렇게도 화가 나는지 알 수조차 없었다. 몸도 완전하지 않은 제다이를 자신의 호위로 붙인 공의회에, 아니면 위험을 뻔히 알면서 저런 무리를 한 제다이에게…

그는 흠칫 제자리에 멈춰섰다. 하마터면 그를 들이받을 뻔한 수행원들이 당황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룬은 이를 악물면서 억지로 감정을 추스렸다.

죽을 수도 있었다… 알지도 못하는 타인을 위해 목숨까지 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때 그처럼.

뭔가를 던지고 걷어차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그는 걸음을 옮겼다. 알데란으로 오는 항로에 그 제다이가 루바트에 대해 소녀처럼 수다를 떨어댄 후라서 그런지 무뎌졌다고 생각한 옛 상처 하나하나가 고통스러웠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그는 애써 현실적인 문제만을 생각했다. 미셸 시노아라는 나이트를 과소평가한 것이었을까. 그의 초청을 바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확실히 의외였다. 테레아 별장의 하인들은 그에게 바로 보고할 테니, 병원보다는 부모님 댁에 있는 쪽이 나이트 시노아에 대해 정보를 얻고 그녀를 보낸 마스터들의 의중을 떠보기에 편리하다고 생각했는데… 마냥 순진한 신참이라고만 생각했던 그 제다이가 설마 그의 의도를 꿰뚫어본 것일까.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 정도 생각이 있다면 오르가나 가에서 받은 개인적 초청의 정치적 가치도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결정을 못 내린 채 우물쭈물 시간을 끄는 미숙한 태도가 연기였다면 그녀는 제다이가 아니라 배우가 되었어야 옳았다.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을 구하려고 목숨까지 건 상대에게조차 계산이 앞서다니, 대체 어떻게 된 사람이란 말인가. 고마운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공의회가 관련된 일이라면 도저히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더군다나 그를 생각하면… 가족의 찢어지도록 아플 마음보다도 타인의 목숨이 우선이었던 또 하나의 제다이.

“의원님, 괜찮으십니까?”

다룬은 건너편에 앉은 어린 파다완의 걱정스런 시선을 마주보았다. 겉보기에는 태연해도 이런 꼬마에게는 감정이 전해졌던 것인가. 지긋지긋한 제다이들 같으니라고.

“마음 써줘서 고맙네, 파다완. 난 괜찮으니 신경쓰지 말도록.”

고맙다는 말에 표정이 환해지면서도 걱정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은 순수한 얼굴에서 다룬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줄타기를 계속하는 하루하루, 나날이 위선만 느는 기분이었다. 가끔은 그 가면이 미끄러지는 때도 있었지만.

수도에서 지낼 때 거주하는 고급 아파트로 차가 진입하는 동안 다룬은 그 여자 제다이에게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다고 자신을 나무랐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그것이 진심이었다… 다룬 오르가나라는 위선과 모순덩어리가 말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진실, 그리고 어쩌면 자기 목숨마저 던져가며 생명을 구해준 은인에게 할 수 있었던 일종의 보답.

‘나중에라도 당신은… 그날 내게 준 생명이라는 선물을 다시 거둬가고 싶어질 것인가. 미래를 내다본다면서도 당신을 내게 보낸 공의회의 노인들은?’

차에서 내려 삼엄한 호위를 받으며 다룬은 방으로 가는 리프트에 몸을 실었다. 추운 밤이었다… 남청색 하늘에 뜬 두 달의 빛이 시리도록 맑았다. 이곳에 오는 내내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던 이름이 순간 지극히 자연스럽게 떠오르면서 가슴을 헤집었다.

‘쟌느…’

그녀도 그를 미워하게 될까. 아니면 이미 미워하고 있을까. 허물없이 뭐든지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를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상상 이상으로…

‘나는 나의 길을… 그리고 너는 너의 길을.’

리프트에서 내려 호화로운 대기실에서 경호원들이 자리를 잡는 동안 다룬은 지친 몸을 이끌고 침실로 들어섰다.

‘어느 쪽이든 공화국을 위해… 그런 우리의 길이 하나일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은 내 욕심이었을까.’

잡을 수만 있다면 잡고 싶었었다. 서로에게 느끼는 편안함과 신뢰의 깊이는 스쳐가는 욕망 이상이라고 믿었었고, 그래서 함께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혼자만의 착각이었던 것일까.

“의원님…”

발그레해지며 침대에서 반쯤 일어서는 여자를 다룬은 표정없이 바라보았다. 그가 알지 못하는, 그리고 운이 좋다면 앞으로도 알지 못하고 다시 만나지조차 않을 낯선 사람. 결국 떠나갈 진심보다는 이 낯설음이 한결 자비로웠다. 처음부터 자기 것이 아니었다면 잃을 수도 없었으니까.

몸을 숙여 여자에게 깊이 입맞추면서, 무의미하기에 견딜 수 있는 낯선 육체의 열기에 몸을 맡기며 그는 가슴에 사무치는 공허를 잊으려 애썼다. 의원이며 귀족인 그를 끌어안는 탐욕에 찬 품을, 돈이나 특권이나 뭔가를 바라는 얄팍한 웃음을 그 순간만은 사랑했다. 적어도 그가 줄 수 있는, 느낄 수 있는 만큼의 사랑으로. 형제와는 달리, 친구와는 달리 마음을 요구하지 않았으니까. 어째서 그들이 떠나갔는지, 어째서 그는 가질 수 없는 것들을 원하는지 자신에게 끊임없이 묻지 않아도…

‘쟈네이딘…’

밤은 적막했다. 깊고 규칙적인 숨소리와 잠든 여자의 체온, 어느새 한 병을 비운 와인의 기분좋은 온기를 배경삼아 다룬은 보고서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후 작게 한숨을 쉬며 데이터패드를 든 손에 턱을 괴었다.

‘확실히… 이건 뭔가 있어.’

나이트 로크락, 그리고 ‘그림자’ 프로젝트. 그 프로젝트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는 의회조차 건드릴 수 없는 문제였고, 관련자의 행보 추적은 하나같이 죽음이나 실종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부딪혔다. 파다완 제자가 외지를 순회하는 동안 나이트 로크락이 코루선트에 남은 이유는 그의 기술적 지식이 제다이 회합장 유지에 필요해서라는 것이 공식적인 설명이었지만, 시기상으로 보면 실제 이유는 극비 프로젝트 때문이었다고 보는 것이 이치에 맞았다.

또 하나 걸리는 점. 전쟁 후 제다이 인력이 늘 부족하기는 했지만, 어째서 굳이 스승과 제자를 떼어놓은 것일까? 정치적 격변을 겪는 알데란에도 나이트 시노아가 파다완 제자를 데려왔듯 실전 학습은 제다이 훈련의 중요한 일부이기도 했다. 그만큼 파다완 센의 능력과 성장이 절실했다는 것일까.

아니면 혹시… 문득 스치는 생각에 다룬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옆에서 여자–셀레나? 루디?–가 깰 듯 뒤척였고, 다룬은 무심한 손을 뻗어 어깨를 어루만져주면서 또 하나의 가능성을 생각했다. 어쩌면 그 파다완이 프로젝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도록? 지금까지 프로젝트에 연루된 인물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생각하면 가능한 일이었다. 나이트 로크락이 처음부터 그 위험을 알았다면 공의회 역시… 다룬은 이를 악물었다.

‘무슨 짓을 꾸미는 것이냐…’

셀레나-혹은-루디가 깨어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나와 가운을 걸치면서 다룬의 머릿속은 당장 해야 할 일로 분주해졌다. 열쇠는 아우터 림에 있었다. 그쪽 정보망을 최대한 보강하고 활성화해야 했다. 그리고 로크락의 주변 사람들, 특히 파다완 센과-

그는 문득 멈칫했다가 소리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자조나 실소가 아닌, 오랜만에 정말로 유쾌한 웃음을.

‘그리고 그대는 이미 몸소 아우터 림으로 향하는 중이란 말이지. 바로 그 파다완 센을 데리고.’

그는 창가에 다가서서 잠든 도시를 내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어려서 아버지 명령으로 꼬마 공주와 시간을 보낼 때면 (늘 루바트는 무슨 핑계를 대서든 도망치고 결국 다룬 혼자서 놀아줘야 했지만) 그는 쟈네이딘과 체스를 두곤 했다. 코흘리개 꼬맹이랑 노는 것보다는 어떻게 하면 친구들과 놀러나갈까 하는 궁리에 정신이 팔렸던 그는 가끔 나이답지 않게 교활한 수를 두는 어린 공주에게 허를 찔리곤 했었다. 그의 퀸을 빼앗고 눈을 반짝이며 박수를 치던 소녀를 떠올리자 얼굴에는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그 여러 해 동안… 너의 애정과 신뢰가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끝내 말하지 못했다…’

그는 가볍게 입맞춘 손끝을 창에 가져다 댄 채 까마득히 먼 별들을 바라보다가 아쉽게 돌아섰다. 해결 없는 모순에 아파하기에는 시간이 짧았다. 공화국의 급박한 상황은, 그리고 그 적들은 기다려주지 않을 테니.

다룬은 책상으로 걸어가서 인터콤을 누르고 보좌관이 깨기를 기다렸다.

“의원님?”

졸린 기색을 억지로 감춘 엘덴의 목소리에 다룬은 웃음을 참았다. 성실한 친구 같으니라고.

“한 시간 후에 혼자 내 사무실로 오게.”

“…알겠습니다.”

바로 잠기운이 가시는 목소리에 다룬은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후스라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것이다. 기록 장비나 서류는 일체 필요없는 회의라는 것을. 오늘 아침 마침내 시작하는 일은 돌이킬 수도, 멈출 수도 없다는 사실을. 나갈 준비를 시작하려다가 다룬은 문득 몰려오는 피로를 느끼며 한 손으로 눈을 감쌌다.

‘형…’

형이 이곳에 있었더라면 뭐라고 했을까. 이런 짓은 당장 그만두라고 화를 냈을까. 바보같이 굴지 말라며 한 대 치기라도 했을까.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지위, 재산, 영지 모두 바꿀 수 있을 텐데. 한 번만 더 만날 수 있다면.

보고 싶었다… 삶의 순간순간, 잊을 듯하면 또 일어나 가슴에 사무칠 그리움. 아무리 만나고 싶어도 다시는 같이 웃고 떠들 수도, 얼굴을 보거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었다.

그는 손을 내리며 고개를 들었다. 원하는 것은 너무나 많지만 붙잡을 수가 없었고, 결국 하나하나 떠나간 후 남은 것은 양보할 수 없는 한 가지. 갈망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약하고 감상적인 자신을 잘라내고 다시 잘라내며 그는 걸음을 옮겼다. 창밖에는 차가운 잿빛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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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데란으로 가는 길 – 스타워즈: 공화국의 그림자 외전

orches님과 한 1:1 외전, ‘알데란으로 가는 길’ 정리를 오체스님이 잘 해주셨습니다. 미셸은 포도원의 제다이 외전의 주인공 중 하나로, 이번에는 쟈네이딘이 아우터 림으로 떠난 후 알데란 입법철을 맞아 귀환하는 다룬 오르가나 의원의 호위를 맡았습니다. 문제는 정치적으로 너무 경험이 없는 젊은 나이트라는 점과 그 자신도 몸이 썩 좋지 않다는 점이죠. 이 시점까지 다룬의 감상은 ‘내가 공의회 마스터들을 화나게 했나?’ 일지도요..(…)

어쨌든 형 얘기를 주고받을 때면 다룬도 즐거워 보이지만, 어디까지가 계산이고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게 그가 위험한 점이기도 하죠. 지나칠 정도로 진심으로만 상대를 대하는 미셸로서는 좀 당해내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도 들고, 어쩌면 오히려 그걸 노리고 마스터들도 이번 임무를 맡긴 걸지도 모릅니다.

2화는 아직 안 올라왔군요. 위기의 순간 미셸의 대응을 기대해 보죠. 오지만 돌아다닌 제다이의 진가는 연회상이 아닌 비상시에 나온다! 이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