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의 그림자] 코루선트의 밤

1. 제다이

온몸이 아팠다. 눈을 찔러오는 밝은 조명이,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화려한 옷–왕녀의 옷–의 감촉이. 몸을 으슬으슬 떨리게 하는 식은땀의 차가움이, 호흡 자체가 고통으로 다가오는 그녀만의 우주 속에서 니아는 발을 번갈아 옮기는 데만 집중했다.

“이쪽입니다.”

등에 정중히 얹은 손의 접촉을 통해 정신을 얽어맨 속박은 뇌리를 순간순간 불길처럼 훑고 지나갔다. 포스 수면에서 강제로 깨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얼마간인지도 알 수 없는 시간 동안 깨어날 수 없는 악몽을 꾸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일이 잘 되면 라이나와 만날 수 있다는 말의 진의만은 놓치지 않았다.

눈앞에 열리는 문으로 등줄기에 닿은 손이 부드럽게 인도하는 대로 들어서자 주변이 갑자기 어두워졌고, 미처 눈이 적응하지 못한 니아는 비틀거렸다. 여전히 정중한 손이 팔을 붙잡아 몸을 받쳐올렸지만, 팔에 잠시 파고드는 손가락은 말없는 위협을 전하고 있었다. 그것도 자신을 향한 위협이 아닌…

눈앞에는 벽이 아닌 검은 허공과 간간히 불빛이 보였다. 순간 떨어질까 두려워 뒷걸음질쳤지만, 등에 닿은 손의 은근한 압박이 허락하지 않았고, 허리 정도 높이의 안전벽이 곧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흐려진 감각에 스쳐가는 주변의 목소리…

여기가 어디인지는 몰라도 라이나를 찾아 여기서 멀리 벗어나야 하는데, 정신은 마치 새장에 대고 파닥거리는 새처럼 무력했다. 그리고 알로스는? 이해할 수 없는 비탄. 숨이 가빠지면서 점점 진정하기가 어려웠고, 가슴이 타들어갔다.

“괜찮아요…”

짐짓 상냥한 목소리와 함께 손이 부드럽게 그녀를 앞으로 밀어냈고, 작게 바들바들 떨면서 눈먼 사람처럼 한 발짝, 두 발짝 앞으로 나서자 기계 패널이 손에 닿았다. 목소리는 마치 최면을 걸듯 이어졌다.

“아직 돌아온지 얼마 안 돼서 당황하셨겠지만, 이 표결에 꼭 참여하고 싶어하셨잖아요? 계엄령 지지 성명은 이미 왕녀님 사무실에서 기자단에 배포했으니, 이것만 하고 돌아가서 쉬시면 돼요.”

쉴 수 있다, 이걸 하면. 이질적이고 어두운 압력이 부드럽게 신경과 힘줄을 건드리자 자기 팔이 움직이며 기계장치의 레버에 손을 대는 모습을 니아는 꿈꾸듯 지켜보았다. ‘가결’ 레버를 당기면서 눈물이 한 줄기 얼굴 위로 흘렀다.

“잘 하셨어요.”

니아는 안도감에 기운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부드러운 목소리는 이제 휴식과 안전을 약속하고 있었다. 라이나도 분명 괜찮을 것이다. 그 정도면 되었다. 그 정도면…

등에 닿은 손은 다시 살짝 움직여 그녀를 출구 쪽으로 인도했다. 걷기 어려울 정도로 지친 니아는 그 접촉과 정신을 붙들어주는 의지에 자신을 맡기고 다시 발을 번갈아 옮기며 걸어갔다. 기다리고 있는 휴식을 향해.

2. 시스

소파에 누워 막 잠들었던 제다이는 문 밖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움찔거리며 뒤척였다. 제다이의 어깨에 손을 대서 진정시키며 피나는 고개를 들었다.

“저… 제다이 선생님.”

겁에 질린 경비의 목소리가 인터콤을 타고 들려왔다.

“방문객은 받지 않는다고 했는데도 오르가나 의원님께서..”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실 문이 열리더니 다룬 오르가나 자신이 들이닥쳤다. 검은 눈이 방을 한 번 훑더니 소파에 거의 파묻히듯 한 조그마한 여자에게 시선이 멈췄다. 그는 순식간에 분노와 경악으로 창백해졌다.

“지금 도대체 무슨…!”

니아 산레스가 깨어나려고 애쓰는 듯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치자 오르가나는 말을 끊었다. 무표정하게 제다이를 보던 그는 문으로 돌아가 문간에 서서 손짓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지 금새 방에 들어선 조용한 인상의 사내는 제다이를 한 번 보더니 아무 말없이 의자를 끌어다 앉고 소형 진단 컴퓨터를 꺼냈다.

오르가나는 복도 쪽을 향해 한 번 고갯짓을 하고, 그녀가 따르는지 쳐다보지도 않은 채 등을 돌려 나갔다. 의사와 의식을 잃은 제다이에게 한 번 환하게 웃어준 피나틸리아는 일어서서 그 뒤를 따랐다.

3. 의원

“대체 무슨 짓을 꾸미는 거냐.”

언성을 낮추기가 어려웠다. 손이 분노로 떨리는 것을 감추려고 다룬은 아프도록 주먹을 쥐었다. 시스는 대답 없이 아까 떠나온 사무실… 쟈네이딘의 사무실 쪽을 잠시 돌아보았다.

“저 의사, 꽤나 믿는 모양이네? 이제 당신 파멸을 손에 쥔 사람이 하나 늘었는데, 나중에 내가 없애줘?”

“닥쳐.”

격한 심장 박동에 머리가 울렸다. 마지막으로 잠을 잔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이 여자가 표정 하나 안 변하고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어쩌면 내심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어떻게…”

물으면서도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시스에게 행동 반경을 너무 많이 주었다. 의회의 제다이 경비 인력이 줄어든 것은 그의 짓이기도 했으니까 했으니까. 그가 요구했던 증거를 그녀가 알사피에서 가져온 이후 몇 시간, 그 의미에 너무나 정신이 쏠려서 시스가 의사당 내에서 활개치며 포로 중 하나를 어떻게 이용하고 있을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왜 그래? 좋아할 줄 알았는데.”

저 웃는 얼굴을 후려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손을 잃는 것이 빠를까, 목이 날아가는 것이 먼저일까. 지금 시점에서 어느 쪽이든 상관이나 있을까.

“공주님의 기적적인 귀환과 계엄 지지 성명 덕분에 댁네 고향 행성의 바보들도 잠잠해졌잖아? 다른 행성들도 이걸로 많이 입을 다물 테고 말야.”

소리를 지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다룬은 방탄 유리를 주먹으로 쳤다. 손을 타고 전해져 오는 통증에 머리가 조금은 맑아졌다.

함정이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쟌느의 대역을 내세워 생환을 연출하고, 계엄을 지지하게 해서 이득을 본 것은 명백하게 다룬 자신이었다. 그가 모르는 일이었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남이 보기에는 약한 변명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 설명하려면 시스와 손잡은 일까지 밝혀야 했다.

불을 끈 사무실 창밖으로는 코루선트의 야경이 그의 발밑에 펼쳐졌다. 열에 들뜬 이마를 서늘한 유리에 댄 채 그는 중얼거렸다.

“…결국 운명 공동체가 되자는 건가.”

“그거 낭만적이네~”

맑은 웃음소리에 몸서리가 쳐졌다. 어두운 방안에 얽힌 기억의 무게가 그를 짓눌렀다. 저기 보이지? 쟤가 피나틸리아야. 아니아니, 옆에 똑같이 생긴 애 말고, 예쁜 애.

‘형, 여자 취향 정말 최악인 건 알지?’

시간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대답이 돌아올 리 없었다. 공의회의 노인들이 형을 사지로 내몰았으니까. 그리고 이제 또 다른 배신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시스의 말이 아니라 의심할 여지가 없는 증거로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공화국의 등뒤에서 칼을 겨누는 것이 너희가 믿는 포스의 뜻인가.’

“뭐, 좋다. 네 말마따나 이미 내 파멸을 손에 쥔 너희들이니… 그렇다면 서로 좋은 일을 제안하지.”

그는 천천히 창에서 몸을 떼며 코루선트를, 도시의 검은 윤곽 위에 교차하는 불빛과 깊은 그늘을 내다보았다.

“마지막으로 확인한 센 테즈나의 소재지는 단투인이다. 그를 이곳으로 데려와라.”

“또 아우터 림 심부름? 내가 개잡이로 보이나봐?”

짐짓 삐죽거리며 시스가 팔짱을 끼는 모습이 유리에 흐릿하게 비쳤다.

“아니면 아우터 림의 네 동료 중 하나에게 부탁할 텐가? 그림자 프로젝트의 열쇠를 맡길 정도로 신뢰하는 모양이지?”

그는 웃으며 시스를 마주보았다. 공화국 정규군도 물론 보내겠지만, 제다이가 센 테즈나를 쫓아간다고 하면 그들로는 부족했다. 그리고 이 여자는 코루선트에 두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4시간만에 쟈네이딘의 대역을 이용해 그의 위치를 더없이 위험하게 만들었다면, 그 이상 시간을 주면 무슨 일을 꾸밀지 알 수 없었다. 여자는 생긋 웃음지었다.

“공짜는 아냐, 물론~”

“원하는 대가가 있나?”

방안의 짙은 그늘을 사이에 두고 그는 반짝이는 눈빛에 마주했다. 거래의 언어에는 익숙했다.

“넬반.”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지만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었다. 시스와 거래하는 의미를 미리 생각했더라면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으니까.

“미안하지만…”

그는 억지로 얼굴 근육을 움직여 빙긋 웃었다.

“넬반을 원했더라면 내게 상의도 없이 코루선트에서 날뛰지는 말았어야지.”

넬반의 엄청난 일리리움 이윤을 시스가 다시 쥐고 휘두르게 할 수는 없었다. 최소한 훗날의 거래 칩으로라도 남겨두어야 했다.

“그럼 더 할 얘기 없네?”

피나틸리아가 돌아서는 동안 다룬은 자신을 다잡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 생존이 걸린 시간에는 양심이라는 사치를 자신에게 허용할 수 없었다.

“엘-라스.”

어둠 속으로 무겁게 떨어져가는 그 이름에 시스 로드는 천천히 돌아보았다. 다쓰 타르카누스의 최근 패배로 권력에 진공이 생긴 곳. 그 상황을 안정시키고 있는 유일한 존재는…

“제다이가 있었지, 아마.”

“그러나 지금은 공화국의 위기 상황이지.”

“그래서 공화국의 수호자들을 중앙에 불러들이는 거?”

잠시 그를 쳐다보다 시스가 웃음을 터뜨리자 다룬은 속이 뒤집혔다. 냉정한 목소리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 것처럼 멀기만 했다.

“살았든 죽었든 센 테즈나를 내 앞에 데려와라. 제다이 철수는 그 다음이다.”

여전히 나지막하게 깔깔거리며 시스는 문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면서 복도의 빛이 방안의 어둠을 길게 잘랐다가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배치한 경호원들이 나가는 시스의 위치 확인을 해주기를 기다리며 다룬은 책상에 걸터앉아 디캔터를 집어들었다.

‘신이니 지옥이니 하는 것이 진정 있다면…’

위스키과 함께 각성제를 넘기는 동안 시스 로드가 첫 지점을 지났다는 신호가 어둠 속에 붉게 깜박였다.

‘그 가장 깊은 층은 나에게 예비되어 있겠지.’

시스가 건물을 나가고 있다는 보고가 하나하나 들어왔다. 아마 경호원을 배치한 위치를 일부러 보란 듯이 지나가고 있으리라고는 짐작하며 다룬은 창밖의 코루선트를 내다보았다.

그 순간 인터콤이 삑삑거렸다.

“의원님… 찾았다고 합니다.”

창밖의 검은 하늘로 날아오르는 불빛을 다룬은 잠시 눈으로 따르다가 대답했다.

“지금 가겠네.”

‘그래… 지옥에 떨어질 땐 떨어진다 해도…’

손에 든 술잔을 내려다보다가 그는 잔을 무표정하게 창에 내던져 깨뜨렸다.

‘내게도 같이 끌고가고 싶은 놈은 있단 말이다.’

그가 돌아서서 나가는 동안 창문에 흘러내리는 위스키 속에는 검은 어둠과 먼 별들의 빛이 뒤섞인 코루선트의 밤이 투명하게 흘렀다.

지옥의 가장 깊은 층이란 단테의 신곡에서 따온 얘기로, 최하층인 9층은 배신자가 벌을 받는 곳으로 나옵니다.

2 thoughts on “[공화국의 그림자] 코루선트의 밤

  1. orches

    로키님은 시스로드!!!! 몇 번이나 내 가슴에 못 박으면 시원하시겠냐능. 가여운 내 아가들 진짜 어쩌면 좋냐고 걱정 가득되면서도 글 속에 던지시는 떡밥에 발리는 건 어쩔 수 없나봐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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