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판정과 갈등판정

http://www.septemberquestion.org/lumpley/hardcore.html#4
http://www.septemberquestion.org/lumpley/hardcore.html#7

판정이란 캐릭터의 목표와 그 목표를 가로막는 장애가 있을 때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그 목표, 혹은 판정에 걸려있는 것(stakes)에 따라 행동판정과 갈등판정이 나눠집니다. 행동판정에 걸려 있는 것은 특정한 행동의 성공, 갈등판정에 걸려있는 것은 어떤 극적 결과입니다.

행동판정과 갈등판정의 예를 들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김 장군은 점점 소모전의 양상을 띄고 있는 전쟁을 그만두도록 국왕에게 간언합니다.

-판정에 걸려있는 것(행동판정의 경우): 설득 판정에 성공하느냐의 여부
-판정에 걸려있는 것(갈등판정의 경우): 왕이 종전을 결심하는지의 여부

엎어치나 메치나 그게 그거라고 할 수도 있고, 실제로도 두가지는 겹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개념적 구분을 할 이유가 있는 게, 실제 판정의 결과가 달려있거든요. 순수 행동판정의 경우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김 장군: “폐하, 적국과 평화조약을 맺으셔야 하옵니다.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있고 승전은 기약할 수가 없나이다!”
(주사위 또르르. 설득판정 성공.)
국왕: “김 장군의 백번 맞소. 얻을 것이 없고 잃을 것만 많은 전쟁이오.
김 장군: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국왕: “하지만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총지휘관인 김 장군의 무능 때문이오! 김 장군을 당장 해임하고 박 장군에게 지휘를 맡겨야겠소. 이봐라, 이자를 끌어내라!”
김 장군: (OTL)

플레이어는 PC가 어떤 선택을 할지(침묵할 것인가, 국왕에게 간언할 것인가, 아예 적국에 붙어서 쿠데타를 일으킬 것인가 등등), 또 그에 따라 어떤 기능을 굴릴지 선택할 수 있겠지만 갈등판정의 요소가 조금도 들어가 있지 않은 순수한 행동판정의 경우 결과는 GM의 마음입니다. 플레이어가 원하는 극적 결과를 못박지 않았으니까요.

갈등판정이라는 개념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시스템과 상관없이 대개의 경우 이미 갈등판정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도 쉽게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적어도 암묵적으로라도요. 그렇기 때문에 위의 예처럼 플레이어가 성공했는데도 전혀 원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면 GM이 욕을 먹는 것입니다. 즉, 룰은 행동판정을 지원하고 있더라도 실제 플레이의 과정에서는 플레이어가 의도하는 극적 결과가 있고, GM은 그 방향에 대충이라도 맞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약속의 이행, 즉 암묵적인 갈등판정이 이뤄지고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보통 말없이 이뤄지고 있는 갈등판정을 명시적으로 플레이 전면에 끌어내면 플레이어의 적극성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이 판정에 무엇이 걸려있는지 처음엔 GM이 말해주더라도 차차 플레이어가 말하도록 유도하는 거죠. 예를 들어 전투를 할 때도 단순히 ‘때립니다’가 아니라 ‘동료의 목에 칼을 대고 있는 적 NPC의 손을 맞춰서 칼을 떨어뜨리게 합니다’ 하는 식으로요. 그리고 성공하면 원하는 극적 결과를 성취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때 GM이 ‘적 NPC는 손을 맞고도 칼을 떨어뜨리지 않고 동료의 목을 찌릅니다!’라고 하면 반칙. 갈등판정의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죠. 플레이어가 선언한 의도 그대로의 결과가 나와야 합니다.

그렇다면 실패의 경우는? 실패는 또다른 갈등, 그리고 또다른 가능성의 시작이죠. ‘적 NPC는 동료의 목을 푹! 찌르고서는 도망칩니다. 동료는 빈사상태로 땅에 쓰러집니다.’라는 결과라면 플레이어는 원하는 극적 결과를 다시 설정하면 됩니다. 어떻게든 응급처치를 한다. 동료의 생명은 포기하고 적 NPC를 쫓는다. 동료 옆에 주저앉아 통곡한다. (…이 경우는 판정은 필요없겠군요.) 들쳐업고 의사를 찾아서 달린다, 등등.

즉 (의도 선언) -> (판정) -> (성공) -> (의도 성취)

혹은 (의도 선언) -> (판정) -> (실패) -> (새로운 의도 선언)

식의 갈등판정의 진행이 플레이어의 적극성을 유도하고 보다 재밌는 플레이를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One thought on “행동판정과 갈등판정

  1. Pingback: should-man의 사유공간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