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over님이 쓰신 안방극장 대모험 체험기.

이번 1월 31일에 실시한 인디RPG번들 체험 이벤트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아 안방극장 대모험을 플레이해 주신 dirover님의 리뷰입니다.

그냥 댓글로 남겨두기에는 아까워서 허락을 받고 여기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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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에 쓸만한 곳이 없어서 여기에 후기를 씁니다.

저는 사전플레이 이벤트에서 위시송 님이 마스터링하시는 안방극장 대모험을 했습니다. 플레이어는 저 포함 세 분이었고, 처음에 소재나 장르, 등장인물, 방송시간대, 심의기준, 주연의 시즌 내 비중 등과 함께 플레이어가 맡을 주연 배우를 정합니다. 이러한 부분은 굉장히 TV드라마를 만드는 극작가와 PD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 다음 파일럿 플레이를 합니다. 이 플레이는 단순히 1화를 플레이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작성한 설정들과 캐릭터 및 이야기가 부합하는지, 그리고 참가자들이 원하는 것(장르적 재미나 연출 등)은 어떤 것인지를 맞추기 위한 플레이입니다.

플레이 자체는 이렇게 진행됩니다. 1에서 4막까지 한 막에 각 플레이어가 장면을 하나씩 연출하는 식으로 돌아갑니다. 각 장면은 플레이어가 주연배우가 되어 캐릭터의 목적 달성을 위한 플롯 장면을 할 것인지, 캐릭터의 갈등에 초점을 두는 캐릭터 장면을 할 것인지를 선택하고 장면을 연출합니다. 이 룰의 마스터는 PD로서, PD는 이러한 장면의 배경 및 등장인물들을 연출하고 롤플레잉합니다. 플레이어들은 여기서 의견을 낼 수는 있으나 최종적인 결정은 PD가 합니다. 이 또한 드라마를 제작하는 룰다운 면이 있습니다.

각 장면을 진행하면서 PD는 최대한 갈등이나 대립 상황을 유도하고 판정을 하게끔 합니다. 판정은 트럼프와 유사한 카드를 PD와 장면 플레이어가 갖고 서로 숫자나 색을 비교하여 합니다. 이 때 PD는 예산을 써서 카드를 더 받을 수 있고(판정을 어렵게 하여 더 극적으로), 플레이어는 캐릭터의 능력이나 연줄, 팬레터 등을 사용하여 카드를 더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때 다른 플레이어도 팬레터 등을 지원해줄 수 있습니다. 카드가 많은 쪽이 판정에 이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파일럿 플레이는 일정의 합의만을 전제로 진행되기 때문에 서로의 기대가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이번 플레이에서는 인물 간 갈등에 초점을 두느냐, 사건의 해결에 초점을 두느냐 하는 부분, 장르적인 면 전부 기대가 달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밌는 플레이를 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기대를 막 중간 중간에 조율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것을 원하는지, 이러한 소재는 괜찮은지 등. 결국엔 플레이를 해나가다보면 많은 점을 합의하고 일치시킬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파일럿 플레이는 그야말로 시즌제 드라마의 파일럿 에피소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 피아스코의 배경세트를 직접 만든 것과 같이 앞으로의 중장편 시즌의 밑거름이 됩니다. 참가자들은 이 파일럿 세션을 1화로 정할 수도 있고,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더욱 조율하여 다시 1화를 플레이하기로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쪽이든 이후 중장편 플레이는 더욱 재밌어질 것입니다.

최신의 서사 위주 룰들은 안방극장 대모험처럼 파일럿 플레이 같이 세션 하나를 통해 합의를 보진 않고, 게임 외적으로 해결한 후 플레이에 돌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룰들은 그런 장치를 아예 깔고 들어가서 단편에서도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피아스코가 있습니다.

그러나 파일럿 세션은 플레이이기 때문에 이것에 들인 시간만큼 더욱 많은 점들을 깊이 있게 합의하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미 충분히 조율된 참가자들끼리 중장편의 재미를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반면, 단순히 단편으로서는 파일럿 플레이 자체가 본격적인 플레이를 들어가기 위한 사전 합의 단계이다보니 만족스럽게 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는 룰에서 의도하는 바이고 불만족스럽게 되어도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 자체를 단편 플레이로 삼는다 하면 극적인 재미와 완결성을 동시에 챙기기 어려울 수가 있습니다. 실제로 저는 다른 참가자와 기대가 다르다보니 계속 작가적 시점으로 이야기를 고민해야해서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물론 이는 파일럿 플레이 이후에는 해결이 됩니다만, 이 룰을 통해 파일럿을 단편으로서 재밌게 즐기기 위해서는 PD의 지침이나 조율이 상당히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결론적으로, 미국식 시즌제 드라마를 거의 완벽하게 구현하는 정말 멋진 룰입니다. 중장편 플레이에 최적화되어 있고, 참가자들의 기대가 일치하면 멋진 드라마 한 편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에 대한 재미도 충분히 보장하는 룰입니다. 시즌을 설정하고 진행하는 방법이나 예산, 팬레터 등의 요소들은 참가자들이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극작가이자 배우임라는 느낌을 확실히 줍니다.

다른 분들도 즐겨보셨으면 좋겠네요. 실물과 카드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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