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플레이'에 해당하는 글 36건

  1. 2012/03/19 로키 [마우스가드/후기] 질주의 기억
  2. 2011/12/08 로키 아이젠가르드 전기 2화
  3. 2010/08/08 로키 [일일 플레이 후기] 역사를 지키는 자와 바꾸는 자! <타임키퍼즈> (4)
  4. 2009/01/25 로키 쇼크 단편: 피는 물보다... (2)
  5. 2008/12/16 로키 사악한 시대 플레이 (5)
  6. 2008/08/11 로키 플레이 내 합의의 범위에 대한 생각 (9)
  7. 2008/04/14 로키 도쿄의 달 최종화 - 어제와 오늘, 그리고... (8)
  8. 2008/04/07 로키 도쿄의 달 4화 - 희생 (2)
  9. 2008/03/29 로키 도쿄의 달 3화 - 기로 (岐路) (4)
  10. 2008/03/22 로키 도쿄의 달 2화 - 봄날의 벚꽃 (2)
  11. 2008/03/15 로키 도쿄의 달 1화 - 움직이는 시간 (7)
  12. 2008/03/08 로키 도쿄의 달: 기획, 제작과 시범 방영 (7)
  13. 2007/11/27 로키 꼬마 미우 구하기 2부 (완결) (2)
  14. 2007/11/21 로키 꼬마 미우 구하기 1부 (4)
  15. 2007/07/30 로키 공화국의 그림자 18화 - 단투인 (1부) (3)
  16. 2007/06/25 로키 포도원의 워게임 (?) (16)
  17. 2007/06/08 로키 주인공과 조연 (7)
  18. 2007/05/24 로키 참가자가 빠진 세션 (3)
  19. 2007/04/16 로키 비동시성 플레이의 가능성과 도전 (9)
  20. 2007/04/10 로키 참가자의 선택에 대하여 (6)
  21. 2007/04/03 로키 신호 중심 진행의 간단한 예
  22. 2007/03/23 로키 설정 중심의 캠페인 제작 (4)
  23. 2006/10/31 로키 언더월드 16화 감상 (4)
  24. 2006/10/10 로키 언더월드 11화 - 감상을 빙자한 잡상 (4)
  25. 2006/07/23 로키 규칙 없는 (No-Rule) 플레이에서 배울 수 있는 점 (2)
  26. 2006/04/23 로키 그래도 잘하는 게 있다면...(1) (3)
  27. 2006/04/15 로키 내겐 뭔가 문제가 있다 (3)
  28. 2006/02/15 로키 첫 7번째 바다 마스터링
  29. 2005/12/16 로키 안방극장 대모험 플레이테스트 - 오티엘 밴드 이야기 플레이 보고서
  30. 2005/11/10 로키 힘의 종류 (3)
마우스가드 1화 후기입니다. 플레이 게시판은 네이버 TRPG Club D&D 기타 소모임 '인디 RPG 클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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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암, 켄지, 색슨
야산의 풀숲은 벽이 되어 앞을 가로막는다. 새로 나는 파릇파릇한 풀에 섞인 죽은 풀을 헤치며 지나갈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털이 곤두서면서 고개가 저절로 돌아가 주변을 살핀다. 아까 시꺼먼 놈한테 찔린 어깨가 매번 욱신거린다.

빌어먹을.

쉴새없이 실룩거리는 코와 움찔거리는 귀는 공기중에 떠도는 정보를 걸러낸다. 아까 시꺼먼 놈들? 아니, 풀잎에 스치는 바람이다. 살괭이? 바람이 냄새를 불어올 뿐, 아직은 멀리 있다.

풀이 쓰러져 있다. 많은 인원이 지나간 길이다. 깊이 패인 쥐 발자국은 중갑주를 입은 상대다. 시꺼먼 놈들... 엘가르는 이를 드러내며 달려간다.

깔쭉깔쭉한 풀줄기에 붙은 흰 망토조각이 작은 꽃처럼 흔들린다. 켄터 대장이 일부러 남긴 흔적인가?  얼마 뒤, 무거운 것을 끌고간 듯 흙이 쓸린 곳. 피투성이가 되어 늘어져 있던 비올레타를 기억하고 엘가르는 목구멍에 차오르는 분노를 삼킨다.

빌어먹을 비올레타가 다시 나타났기 때문일까, 다시 이렇게 막막하게 달려가던 기억이 번져온다. 숨도 안 쉬는 것 같은 여자를 어깨 위에 들쳐메고 돌투성이 맨땅을 질주하던 지난 가을, 비올레타의 피에 젖은 어깨는 차가웠다.

비올레타 조장을 이곳에서 데려가, 엘가르! 족제비들이 진군하는 길목을 막아서던 정찰대원의 목소리는 잊히지도 않는다. 지원군을 불러와라!

부드러운 밤색 털이 붉게 엉긴 비올레타를 들쳐업으며 엘가르는 그 명령을 어길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정찰대원님 죽을 거에요. 조원들이랑 다 죽을 거라고요. 그 소리조차 하지 못했다. 그 벽력같던 명령이 머릿속에 울리고 또 울리는 소리에 맞추어,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조장을 메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달렸다.

엘가르... 어깨에 걸쳐멘 비올레타가 몸을 뒤척이며 목쉰 소리로 불렀을 때에는 안도감에 주저앉을 뻔했다. 내려놓고... 빨리 가... 지원군을...

피로가 온몸에 한꺼번에 부딪치면서 발이 끌렸다. 타는 듯한 폐가, 망토를 찢어 싸맨 뒷다리의 상처가, 저려오는 어깨가 각자의 고통을 호소했다.

명령이다. 없는 힘을 쥐어짠 비올레타의 목소리가 귓가에 또렷하게 울렸다.

엘가르는 자꾸 접히려는 무릎을 이를 악물고 버텼다. 바위투성이 정경에 몸을 숨길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부상당한 생쥐 한 마리는 한입거리도 안 되는 포식자를 막거나, 눈을 가릴 수단이라고는.

조장님은... 비척거리며 그는 한 발 앞에 다른 발을 끌어다 옮겼다. 비올레타 조장께서는 지금 부상이 심하고 정신이 온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그는 가슴을 한껏 부풀려 아픈 폐에 공기를 집어넣었다.

지금 말씀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엘가르...! 다시 혼수상태로 빠져드는 목소리에는 가냘픈 절망이 얽혀들었다.

마우스가드의 외곽 초소에 도착하기까지 얼마나 걸렸는지는 당시에도 몰랐고, 이후에도 계산하지 않았다. 비올레타를 놓치고 땅에 구른 엘가르는 놀라서 달려온 가드들에게 단어를 토해냈다. 도토리 언덕에 족제비 습격... 정찰조... 지원군... 요망...

며칠 후, 검은 악몽의 구덩이에서 헤어나오면서 동료들의 용감한 죽음 소식이 들려왔다. 엘가르는 멍하니 이것 역시 꿈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랬더라면 비올레타 조장의 거대하고 차가운 분노 역시 꿈일 수 있었을 것이다.

비올레타는 명령대로 자신을 두고 지원군부터 불러왔으면 부하들을 살릴 수 있었다고 했다. 그랬으면 조장님도 죽었을 거라고 엘가르는 말하지 못했다. 그녀는 엘가르에게 죽음이 무서워 득달같이 도망친 비겁자라고 했고, 그는 반론할 말이 없었다.

동료를 버리는 자는 마우스가드의 자격이 없다는 비올레타의 말에 엘가르는 어깨를 움츠리고 아무 말도 듣지 않았다. 그녀의 고통이 울부짖으며 자신을 휩쓸어 지나가게 내버려두었다.

기억의 안개를 뚫고 한 줄기 바람에 생쥐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그들이다. 켄터 대장, 신참, 시꺼먼 놈들, 호위대, 비올레타. 엘가르는 땅을 박차는 다리에 힘을 가한다.

주어진 임무만을 생각한다면 과학자들을 스푸르스턱에 데려다주는 것이 옳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약초냄새 나는 아저씨들 앞발 잡고 마을에까지 바래다주는 게 명령이라면, 그런 명령은 부엉이한테나 채여가라지.

그웬돌린 사령관의 명령은 분명 쥐들의 '안보에 필수적인' 과학자들을 보호하라는 것이었다. 스푸르스턱 주변 길을 엘가르보다 잘 아는 과학자들이 적도 없는 안전한 길로 무사히 못 돌아간다면 그건 안보에 필수적인 게 아니라 식량이나 축내는 밥충이니까 신경쓸 필요가 없다.

과학자들이 무사히 찾아갈 만큼 똑똑하면 쫓아갈 필요가 없고, 그러지도 못할 정도로 멍청하다면 더더욱 쫓아갈 필요가 없다. 따라서 임무는 완수했고 이제는 동료들을 구하면 되는 거다. 아, 역시 마우스가드는 명령을 잘 따르는 게 최고다.

적과 동료들이 점점 가까와오자 엘가르는 신중한 걸음으로 돌과 식물에 몸을 붙이며 이동한다. 이제 금방이다. 엘가르에게 신세를 지면 비올레타 그 성질 더러운 여자 표정이 볼만하겠지? 두려움과 기대감에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경비대원 엘가르는 풀잎 사이로 내리는 어둠 속을 움직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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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 Matriarch - (총)사령관, Patrol leader - 정찰조장, Patrol guard - 정찰대원, Guardmouse - 경비대원
2012/03/19 12:10 2012/03/19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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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지드 마크스톤

나만 싱글이네

지난 목요일에는 지하 드워프 도시 배경으로 한 폴라리스, 아이젠가르드 전기 2화를 진행했습니다. 이번 화에는 대장장이 싱지드가 데몬스폰과 싸울 궁극의 무기 라그나블레이드를 찾다가 공격해온 데몬스폰과 싸우느라 전사들이 죽어가는 동안 도망을 쳤죠. 비겁한 행위를 했으므로 성장을 굴린 결과 열정 이하의 결과가 나와 성장했고, 이로 인해 불화가 2점 증가하여 6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도시 내의 부패를 드러내는 사건을 정했는데, 이는 국왕 시해 사건으로 정했죠.

이 사건과 관련된 각자 장면에서 벨레판은 에르타와 함께 있다가 국왕 시해의 누명을 쓰고 (1화 장면보다 이전 시점입니다만), 시베르트는 이에 관여하였다는 누명으로 재판을 받아 친위대 최하위 병사로 강등됩니다. 이 일로 그는 제르문트에게 반대하는 귀족 비밀결사의 구심점이 되지만, 그의 연인 록산느가 제르문트에게 협박당해 첩자가 됩니다. 세칸은 광란중에 친위대원을 죽인 보복으로 국왕의 돌무덤에 갖히는데, 이때 국왕의 무덤 앞에서 울고 있던 왕비 이사르나에게 부탁해 구출됩니다. 그녀의 도움으로 문을 연 세칸은 스트롬가드에서 죽은 연인 미크투와 빼어닮은 모습에 놀랍니다. 이로써 새로운 러브라인이! (...)

이번 화에는 저번의 요청대로 규칙을 설명하고 시작한 점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들 판정규칙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더 극적인 내용이 된 것 같네요. 참가자 입장에서는 에르타가 벨레판이 발각되는 것을 막으려고 누명을 쓴 경위도 흥미진진했습니다. (그러게 왜 집에 가랄 때 안 가 이 여자야!ㅠㅠ) 대체로 1인당 한 장면씩 하면 무난한 것 같군요. 왕이 죽고 도시의 문제가 드러난 지금, 앞으로의 진행이 기대됩니다.
2011/12/08 20:53 2011/12/08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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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TRPG 카페 제7회 일일플레이가 8월 7일에 있었습니다. 성황리에 치러진 행사였고, 아주 재밌었지요. 저는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으로 한 테이블을 맡았는데, 이때 플레이한 가상의 TV 드라마는 <타임키퍼즈>라는 시간여행/느와르 첩보물이었습니다.

안방극장 대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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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극장 대모험은 간략한 인물 능력치와 판정을 통해 인물의 관계와 내적 갈등, 그리고 협력적인 이야기 만들기를 강조한 규칙입니다. 그 창의적인 디자인 때문에 2004년 인디 RPG 상의 '올해의 인디게임'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2004년 '올해의 인디게임'이었던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에 이어 2위였으니, 포도원의 개들과 같은 해에 심사받은 불운(?)만 아니었다면 수상했을 작품이지요.

안방극장 대모험을 플레이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마치 텔레비전을 보면서 와 멋있다, 으 쟤 뭐야 수다떨면서 앞으로 어떻게 될까 가슴 두근거리는 재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재미를 느끼려면 무엇보다 참여자 전원이 가슴이 뛰고 흥분될 만한 배경과 인물이 필요합니다. 즉, 배경과 인물을 설정하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모두의 흥미도를 확실하게 확보해야 전체 시즌을 무리 없이 끌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안방극장 대모험은 도저히 제가 시나리오나 인물을 만들어갈 수가 없는 규칙이었습니다. PD (진행자)가 일방적으로 만든 설정으로는 플레이의 재미를 살리는 데 필수적인 감정적 몰입을 도저히 이끌어갈 수 없었거든요. 그리고 사실 저 자신이 시나리오 쓰는 걸 무지 싫어하기도 합니다. 즉흥성이 강한 저는 참가자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파악해서 서로 즐거운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것을 좋아하며, 참가자의 취향이나 욕구를 모른 상태로는 머릿속이 백지장이 되어버리거든요. 그런 면에서 안방극장은 저에게 잘 맞는 규칙이기도 합니다. (2008년 초에도 도쿄의 달이라는 메이지 유신 시대물 시즌을 즐겁게 완결한 적이 있었죠.)

그래서 저는 이번 일일 플레이를 준비하며 기획에 아예 플레이 시간을 할애하기로 했습니다. 즉, 어떤 시리즈를 만들 것인가 일체 정하지 않은 채 참가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결정하고 인물을 만들어 플레이하기로 한 것이었죠. 시간은 좀 들어도 그렇게 해야만 안방극장 대모험의 맛을 제대로 살릴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테스트 플레이를 한 결과는 꽤 재미있고 유쾌하기는 했지만, 몇 가지 개선점은 있었습니다. 우선 기획 단계를 완전히 자유롭게 진행하다 보니 다소 무질서했고, 그 혼란 속에서 모두의 선호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인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더욱 심각하게도 인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인물의 내면이나 관계에 대한 논의가 충분하지 못했고, 그 결과 인물의 깊이가 부족해서 극단적인 전개와 과장에 의존하는, 소위 '막장' 플레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정신없이 웃으며 하긴 했지만 극적 완성도는 아무래도 부족했죠.

테스트 플레이의 경험과 피드백을 바탕으로 저는 기획 절차를 체계적으로 하고자 간단한 설문지를 만들었습니다. (첨부 파일 참조) 그리고 인물에 대한 논의를 기획의 한 단계로 추가했습니다. 또한, 원래 플레이 계획은 1화짜리 파일럿을 하자는 것이었지만, 실제 돌려본 결과 그렇게 하면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파일럿은 생략하고 5 세션을 몰아서 1 시즌을 완성하기로 했습니다. 여러모로 테스트 플레이는 플레이상의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너무나도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때 함께 재밌게 플레이해주시고 좋은 조언 주신 테스트 플레이어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일플날 아침, 이제 준비는 되었습니다. 앗, 그런데 가장 중요한, 판정에 사용할 트럼프 카드가 없었습니다! 테플 때는 승한에게 빌렸었는데, 승한이 하는 새비지 월드에도 카드가 필요하다는 것을 깜박 잊은 것이지요. 왠만한 편의점에는 있겠거니 생각하고 일단 집을 나섰습니다. 이번 플레이는 어떤 모습이 될까 기대 반, 긴장 반으로 가슴을 두근거리며...

'타임키퍼즈'가 탄생하기까지

먼저 도착해 있던 저는 참가자 중 처음 도착하신 까까비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알고보니 방송 전공이시라는 말씀에 급 쫄아들었죠. 이후 빅베어님과 페르소나님, 그리고 맛난파이님이 도착하셨습니다. 한 분 오실 때마다 설문지를 한 장씩 드렸는데, 그렇게 개별적으로 할 수 있는 활동이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전체 다 모이기 전에는 규칙 설명이나 기획을 하기가 어려운데, 그렇다고 잡담만 하면서 주의가 흩어지는 것보다는 플레이와 관련이 있는 활동을 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각자 작성할 수 있는 설문지가 제몫을 한 것 같습니다.

설문지를 모아 내용을 정리해본 결과 장르 선호도는 판타지, 역사물, 군사물 순이었고, 인물끼리의 복잡한 관계와 이야기의 치밀한 구성에 대한 욕구가 높았습니다. 인물 유형은 개성과 엉뚱한 매력, 동시에 냉철한 전문성에 대한 욕구도 있었고요. 그 결과에 토대를 두고 어떤 시리즈를 할까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습니다. 완전히 자유롭게 논의하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논의의 틀이 생기니 기획 과정에 한결 틀이 잡힌 것 같았습니다. 까까비님이 (전공자답게!) 의견을 잘 정리해주시고, 파이님이 취향을 구체적으로 어필하시고, 빅베어님과 페르소나님이 세세한 의견을 내주셔서 차차 시리즈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빅베어님의 제안은 거의 그대로 최종안이 되기도 했지요.

그렇게 해서 나온 설정은 역사를 그대로 지키려는 집단과 역사의 비극을 지워버리려는 적대 집단 간의 갈등,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네 명의 인물 이야기였습니다. 꼭 마법이 아니라도 환상과 도피의 요소가 있고, 그러면서도 시대물이나 위기 극복에 대한 욕구도 충족할 수 있는 시간여행물/첩보물이 괜찮다는 총의를 형성해갔지요. 자유롭게 다양한 의견을 내본 결과 나온 설정과 인물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타임 키퍼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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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그대로 유지하고 지켜가려는, 말하자면 역사 수호대입니다.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의 역사도 원래 그대로 지켜가려는 이 집단은 장차 다가올 대재앙, 적사병 (The Red Death)으로 인류의 90%가 몰살당하는 역사마저 유지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재앙을 막으려는 타임 브레이커즈와 정면으로 대립하게 되고, 그 싸움이 1기의 근간을 이룹니다.

비밀 집단인 타임 키퍼즈는 대외적으로는 적절하게도 (?) 스위스의 유서깊은 시계회사 네프 주식회사입니다. 설립자인 네프의 후손이 네프사의 회장인 동시에 타임 키퍼즈의 최고지도자입니다. 그 밑에는 간부와 요원, 그리고 각종 보조직이 있습니다. 요원은 흔히 키퍼라고 합니다.

타임 브레이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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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사병 발발을 막으려는 집단으로, 타임 키퍼즈의 미래이기도 합니다. 적사병에 인류의 대부분이 목숨을 잃고 문명이 파괴된 이후 원래의 타임키퍼에서 갈라져나왔거나, 조직 자체의 목적이 변해 타임 브레이커가 되었습니다. 이들 요원은 흔히 브레이커라고 합니다.

준 (암호명 Pers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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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키퍼의 젊은 엘리트 요원으로, 키퍼 코드명은 '페르소나'입니다. 그리고 우연히도 (??) 페르소나님이 맡으신 인물이기도 합니다. 어려서부터 타임키퍼에서 요원으로 길러진 그는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꿈에도 모른 채 명령을 따릅니다.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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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을 숨기고 과거로 온 타임 브레이커 요원입니다. 다가오는 적사병 발발과 아주 깊은 연관이 있는 준을 납치해오라는 임무를 받았지만, 준과 개인적으로 친해지면서 그 명령을 수행하지 않은 채 프리랜스 작가로서 만족스럽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까까비님이 맡으신 인물이었습니다.

Mr. M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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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키퍼의 주요 간부 중 하나로, 준의 직속 상사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준의 아버지라는 것도, 준의 어머니가 누구인지도 숨긴 채 오직 회장인 제임스 네프의 명령만을 맹종하며 살아왔습니다. 빅베어님의 PC입니다.

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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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박사로서, 여러 해 전에 적사병 바이러스를 개발한 장본인입니다. 준의 생모이기도 하지요. 타임키퍼가 적사병을 악용하지 않을까 두려워진 그녀는 적사병 치료약을 개발하다가 타임키퍼의 추적을 받게 되었고, 미스터 마와의 결혼생활도 파국을 맞았습니다. 결국 아들마저 잃어버리고 그녀는 키퍼 요원을 피해 시간과 공간을 도망다니며 치료약 개발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맛난파이님이 담당하셨습니다.

<타임키퍼즈> 제1기

1화

1952년, 정은경 박사는 타임키퍼의 눈을 피해 6·25 사변 중에 미군 병원에서 일하면서 적사병 치료약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때 정체불명의 남자가 미군으로 변장한 채 그녀에게 총을 겨누는데... 정 박사는 탈출에 실패하지만, 때맞춰 도착한 타임키퍼 준이 남자를 제압합니다. 정 박사를 데려오라는 명령을 받았던 준은 이 암살자가 더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도망치는 정 박사를 무시하고 습격자를 생포해 21세기로 귀환합니다.

심문 결과 습격자는 타임 브레이커 요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타임 브레이커에서도 정은경 박사를 노린다는 것을 알고 미스터 마는 이 사실을 네프 회장에게 보고합니다. 한편, 격무에 시달리던 와중에도 준은 유리에게서 온 문자를 보고 따스한 웃음을 짓습니다. 네프 회장에게 보고하고 돌아온 미스터 마는 숨겨둔 사진 속에 활짝 웃고 있는 자신과 은경, 그리고 어린 아들을 보며 회한에 잠깁니다.

타임 브레이커에서는 이번에는 준을 노립니다. 준은 제때 시간이동을 하지만, 시간이동 손목시계에 총탄이 스쳐 시계가 오작동을 하자 마치 악몽과 같은 시대로 이동합니다. 파괴당한 도시의 잔해 속에서 괴생명체에게 위협당한 그는 총을 든 여인에게 구조를 받고, 그에게 다른 손목시계를 준 여인은 아무것도 묻지 말고 바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타임키퍼와는 다른 문양의 손목시계에 의지해 자기 시대로 돌아온 준은 알 수 없는 불안을 느낍니다.

2화

정 박사는 치료약을 완성하고자 이전에 한 번 성공했었던 항체를 되찾을 계획을 세웁니다. 20년 전, 타임키퍼에 쫓기던 그녀는 항체를 어린 아들에게 주입해 숨긴 후 아들을 상하이에서 인천으로 가는 배에 태우고, 키퍼들의 주의를 끌며 다른 시대로 탈출했었습니다. 박사는 아들을 떠나보낸 그 순간으로 이동해 배에 탄 아들에게 접근하려고 하지만, 그녀의 계획을 눈치챈 미스터 마 역시 선상에 나타납니다. 얌전히 있으라며 잠시 사라졌던 엄마가 갑자기 달라진 모습으로 나타나자 혼란에 빠진 준은 미스터 마에게 매달리고, 은경을 기절시킨 미스터 마는 준을 데리고 사라집니다. 준은 이렇게 해서 타임 키퍼 요원으로 자라나게 된 것이죠.

한편, 현재에서는 유리가 계속해서 준을 데려오라는 명령을 방치하자 브레이커 요원이 찾아와 유리를 강제로 미래로 송환하려고 합니다. 유리의 문자를 받고 집으로 찾아온 현재의 준은 그 모습을 보고 브레이커를 제압하지요. 준이 경찰을 부르러 간 사이 유리는 브레이커 요원의 시계를 작동시켜 미래로 돌려보낸 후, 범인이 도망쳤다고 둘러댑니다. 한편, 그녀의 컴퓨터 모니터에는 거의 완성한 소설이 보입니다. 레드 바이러스와 적사병, 문명의 멸망을 그린 묵시록이...

3화

출판사 사장은 유리의 소설에 크게 흡족해하고 출판을 결정합니다. 그러나 소설의 내용은 타임키퍼의 정보망을 통해 타임키퍼에 알려지고, 작가가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안 지도부는 미스터 마를 통해 준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필명으로 쓴 소설의 작가를 찾아내 죽이라는 것이지요.

조사 결과 소설의 작가가 유리라는 것을 깨달은 준은 갈등하다가 유리에게 같이 여행을 가자고 합니다. 유리는 혼쾌히 그러마고 하지요. 바다를 내려다보는 절벽 위의 펜션에 도착한 그들. 그날 밤, 준은 유리에게 총을 겨누며 그녀의 정체가 무엇인지 추궁합니다. 유리는 명령이 아니라 너 자신의 판단으로 방아쇠를 당기라고 하고, 준은 끝내 쏘지 못합니다. 유리는 자신의 정체를 털어놓고, 레드 바이러스와 적사병, 그녀가 떠나온 지옥 같은 미래를 그에게 알려줍니다. 준은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가 갈등합니다.

한편 은경은 중세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 치유사로 숨어지내다가 타임 브레이커 요원의 방문을 받습니다. 그의 설득 끝에 타임 브레이커즈와 행동을 함께하기로 결정한 박사는 미래의 그들이 보유한 적사병 지식을 이용해 결국 적사병 항체를 완성합니다.

4화

준이 명령을 어긴 것을 안 네프 회장은 미스터 마에게 준을 죽일 것을 명령합니다. 아침에 펜션에서 나온 준과 유리는 기다리던 미스터 마와 대면합니다. 유리는 그를 필사적으로 설득하고, 미스터 마는 결국 아들을 쏘지 못합니다. 네프가 보낸 또 다른 요원이 명령을 대신 수행하려고 하자 미스터 마는 요원에게 총을 겨누고, 준과 유리에게 도망치라고 합니다. 차를 몰고 정신없이 도망치던 준과 유리는 멀리서 울리는 두 발의 총성을 듣습니다.

타임 브레이커즈를 통해 정 박사의 존재를 알게 된 유리는 준을 데리고 은경을 만나러 갑니다. 그곳에서 준은 미스터 마와 은경이 자신의 부모라는 것과, 자신의 몸에 레드 바이러스 항체가 있다는 것을 듣게 되지요. 그는 고뇌에 빠지지만 그것도 잠시, 항체와 치료약이 한곳에 있는 기회를 포착한 네프 회장은 타임키퍼즈를 보내 준과 유리, 정 박사가 있는 건물을 포위합니다.

5화

타임키퍼 요원들에 대항해 준과 유리는 치열한 전투를 벌이지만, 적의 수가 너무 많아 중과부적입니다. 준이 적 사이로 잠시 퇴로를 확보하자 은경은 치료약을 유리에게 쥐어주고, 두 사람의 퇴로를 가로막은 채 레드 바이러스를 자신에게 주입합니다. 순식간에 그녀는 마치 구울(ghoul, 시체먹는 괴물)과 같은 괴생명체로 변해 타임키퍼 요원을 학살합니다.

몇십 년 후, 같은 장소. 건물은 무너지고, 도시는 파괴당해 불타고 있습니다. 그 속에 한 여인이 총을 들고 도시의 폐허를 순찰하고 있습니다. 문득 소리를 들은 그녀는 먼 옛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달려가고, 그 자리에 나타난 준을 지켜줍니다. 그녀는 변이한 은경이 과거의 준을 해칠 수 없도록 막지요. 타임 브레이커 문양이 있는 자신의 시계를 준에게 던져준 중년의 유리는 준에게 아무것도 묻지 말고 떠나라고 합니다. 그 옛날, 미스터 마와 은경의 희생에 힘입어 탈출했던 젊은 자신과 준이 이 미래를 막아주기를 바라며...

감상과 평가

전반적으로 짜임새 있고 감동적인 이야기였다고 생각합니다. 기획부터 탄탄해서 끝까지 진정성 있는 전개가 된 것 같아 개인적으로 꽤 만족스러웠습니다. 장면 신청과 판정, 승자와 서술권자의 분리 등 의외성과 협동성을 함께 살리는 장치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주 역동적이었어요. 어디선가 본 듯한 것도 물론 많았지만, 그렇다고 꼭 감동이라든지 개연성이 떨어지지도 않더라고요. 협력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주 즐거웠고, 결과물도 괜찮았습니다.

아쉬웠던 점이라면 우선 저의 준비성이 있겠지요. 트럼프 카드는 끝내 못 구해서 아이팟 앱으로 대신했는데, 큰 문제는 없었고 공간활용 면에서는 오히려 장점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역시 카드 크기나 가독성은 한계가 있었고, 가뜩이나 행사 준비로 정신이 없는 두하군에게 부담을 준 것이 미안했습니다. 앞으로는 준비를 철저히 해서 민폐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꾸벅)

Card Table 스크린샷

Card Table 앱을 잘 썼습니다


또 하나 개선할 점이라면 판정의 성공과 실패의 결과 설정 부분이었습니다. 판정이 실패해서 이야기가 재미없을 만한 결과는 판정 결과에 걸어서는 안 되는데, 그 점을 제가 잘 설명하거나 지도하지 못해서 가끔 판점 부분이 삐걱였습니다. 예를 들어 준을 데려가는 선상 장면에서는 은경과 미스터 마가 둘다 PD에게 져서 '은경도 준의 피를 못 뽑아가고, 미스터 마도 준을 못 데려간다'는 결과가 나와 결국 준이 미스터 마를 자발적으로 따라간다는 식으로 빠져나갔지요.

선상 장면은 그나마 나았습니다만, 더 심각하게도 5화에는 '전원이 타임키퍼에 잡힌다'는 판정 결과가 나와서 이야기 진행을 위해 사실상 판정 결과를 무시해야 했습니다. 저럴 때는 탈출하느냐 못 하느냐를 판정 결과에 거는 대신, 성공하든 실패하든 탈출은 하되 희생 없이 탈출할 수 있는가라든지 치료약을 가지고 탈출하느냐라든지 하는 것을 판정에 걸어야 했죠. 이런 점을 당시에 바로잡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소리가 울려서 의사소통 자체에 좀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 했고요.

참가자분들은 RPG를 1~2 세션 해보셨거나 페르소나님처럼 아예 처음인 초보들이셨는데, 이건 뭐 초보 숙련자 나누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수준급으로 잘해주셨습니다. 발랄한 대화와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테이블 분위기를 밝게 해주셨던 까까비님 (유리), 스토리를 안정감 있게 끌어가시면서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RP를 하신 빅베어님 (회상 장면 하나 없이 끝난 눈물의 마씨 아저씨ㅠㅠ), 주인공으로서 극의 호흡을 이어가는 동시에 가히 악마적인 반전을 엮어넣으신 페르소나님 (준), 그리고 평소 조용하시면서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드라마틱한 전개를 주도하신 맛난파이님 (은경) 모두 함께하기 즐거웠던 실력파 참가자들이셨습니다.

하나 재미있는 현상이라면 진행자와 참가자, 혹은 참가자 사이의 서술권 구분이 그닥 뚜렷하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기존 RPG 관념에 익숙하지 않으신 참가자분들이라서 그런 면도 어느 정도 있겠지만, 숙련자분들과 함께한 테스트플레이 때도 나타난 현상인 것을 보면 안방극장 대모험이 그런 점을 유도하는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다 보니 참가자분들이 조연에 대한 서술도 하시고, 다른 참가자의 주인공에 대한 서술도 하시는 게 재밌더라고요. 사실 생각해보면 그런 서술권 구분을 꼭 엄격하게 유지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테스트 플레이나 이전 도쿄의 달 때도 담당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을 때 참가자가 조연을 맡는다든지 해서 원활하게 돌린 것을 생각해보면 기존 RPG의 서술권 구분이 꼭 필요한가 하는 재고도 해볼 만한 것 같습니다.

이상 제7회 일일 플레이 안방극장 대모험 미니캠페인, <타임키퍼즈>를 소개하고 분석해 보았습니다. 좋은 플레이 해주신 참가자분들과 수고해주신 스탭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이렇듯 즐거운 추억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2010/08/08 15:09 2010/08/08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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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sdee 2010/08/08 21: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리스 짤방이 너무 눈을 끕니다... 어흑; (주인공 이름도 준..이야;ㅁ;)

    스토리가 정말 멋지네요. 마지막의 타임 패러독스로 복선을 잇는 구조라든지... 소설로 써도 괜찮을 법. 언제 인디 RPG 클럽에서도 [안방극장 대모험]을 해봐야겠군요. (아마도 다음 시즌 예정작)

    • 로키 2010/08/09 17:53  댓글주소  수정/삭제

      플레이하면서 '아이리스다!'라고 참가자분들이 얘기하셨는데, '준'도 거기서 나온 모양이네. 그래서 짤방도 거기서 가져온..ㅋㅋ 타임 패러독스는 완전히 페르소나님 작품이었는데 잘 이어져서 마음에 들었지. 처음부터 생각하신 건지 나중에 보니 들어맞은 건지는 모르겠는데, 전자라면 ㄷㄷ(..)

      안방극장 대모험은 요약/번역 해놓은 게 이 블로그에 있으니 필요하면 가져다 쓰길. 내 전번은 알 테니..

  2. Asdee 2010/09/14 0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디 RPG 클럽]에 좀 퍼가도 될까요? 이번에 [안방극장 대모험]을 하려던 터라.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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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에는 승한군관 쇼크: (Shock: Social Science Fiction) 단편 플레이를 했습니다. 저번에 쇼크를 소개한 글에 오류가 좀 있어서 정정하자면, '쇼크'란 사회 변혁이라기보다는 우리 세계와 플레이 속의 세계 사이의 분명한 차이입니다. 그게 사회 변혁으로서 나타날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죠. 이 점을 정정하고 하니 공상과학적 요소를 한결 더 살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 세계에는 없는 특징에서 파생하는 극적 요소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었으니까요.

설정

쇼크는 '외계인이 있는 사회'로 했습니다. 쇼크의 담당자는 저. 승한군은 첫 접촉 같은 상황을 생각했지만 저는 외계인과 어울려 사는 세상이 더 재밌을 것 같아서 냉큼 쇼크 담당을 자청하고 외계인 관련 세부사항을 설정했지요. 플레이 배경은 바다 행성 아쿠아로, 바다생물인 원주민 델토이드를 인간들이 식민지배하는 곳입니다. 그에 따르는 문제들이 플레이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다룰 사안은 '식민지'와 '가족'이었고, '식민지' 사안 담당자는 승한군이 맡았습니다. 저와 승한군은 둘다 '가족' 사안에 속하는 인물을 만들었습니다. 승한군의 인물은 아쿠아 점령 작전의 영웅인 타오룽으로, 델토이드와 결혼한 딸과 화해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제 인물은 델토이드 엔지니어인 '솜씨좋은 손'으로 (델토이드 이름은 인간이 발음할 수 없으므로 인간 언어로 번역한 공식 이름을 사용한다는 설정), 인간 여자와의 결혼을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두 개의 능력 대립축은 포용과 편견, 감정과 이성으로 했습니다. 타오룽 장군은 편견과 이성이 높았고, 솜씨좋은 손은 감정과 이성이 높았습니다. 참가자가 둘밖에 없었으므로 승한군의 적수는 저, 제 적수는 승한군으로 했습니다. (나중에 얘기하겠지만 둘만 하려니 관객 주사위가 없는 게 좀 뼈아팠죠..;;) 자기 담당에 맞추어, 그러면서도 자유롭게 제안을 던지면서 쇼크와 사안에 세부 설정으로 뼈대를 붙이니 쉽게 하나의 세계를 설정할 수 있었습니다.

요약

딸 샤오링의 결혼 문제로 딸과 사이가 소원해진 타오룽 장군은 어느날 델토이드 엔지니어인 솜씨좋은 손의 접근을 받습니다. 샤오링과 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결혼을 한 솜씨좋은 손은 장군에게 두 사람을 인정하고 딸과 화해하라고 설득하지만, 장군은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타오룽은 변호사인 친구에게 딸을 도로 데려올 방법을 묻고, 친구는 딸의 정신능력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서 금치산 신청을 하고 아버지인 타오룽이 후견인이 되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타오룽은 이에 따라 소송을 걸지요. 샤오링은 찾아와서 소송을 취하하라고 역정을 내지만 역시 타오룽은 무시합니다.

이후 정신과 의사인 샤오링의 사촌오빠가 솜씨좋은 손과 샤오링의 집에 찾아와서 두 사람이 헤어지지 않으면 법정에서 샤오링이 정신이상이라고 증언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샤오링은 격분해서 오빠와 난투를 벌입니다. (무서운 언니다..ㅠㅠ) 솜씨좋은 손은 두 사람을 떼어놓지만, 사촌오빠의 법정 증언에 샤오링의 폭력적인 행동까지 더해서 샤오링은 아버지의 피후견인이 되는 대신 정신병원에 갇히게 됩니다.

타오룽은 정신병원에 가서 다시 딸과 말다툼을 벌인 후에 딸을 집으로 데려오는 데 성공하지만, 샤오링은 얼마 후에 집에서 탈출합니다. 그리고 솜씨좋은 손에게 찾아와 함께 떠나자고 하지만 그는 이곳에 남아서 아버지에게도, 모두에게도 인정받자고 하고, 그녀는 실망한 채 혼자 행성을 떠납니다.

솜씨좋은 손과 타오룽은 함께 샤오링을 찾아나서서 먼 행성에서 마침내 그녀를 찾고, 아버지는 무릎까지 꿇고 딸에게 용서를 구하지만 샤오링은 그와 연을 끊어버립니다. 하지만 솜씨좋은 손의 설득에는 마음이 움직여서 두 사람은 함께 아쿠아로 돌아오지요. 두 사람은 이종족 커플로서 유명인사가 되고, 둘의 유전자를 합성한 아이도 낳아서 잘 삽니다.

감상

예, 이렇게 해서 솜씨좋은 손의 이야기 목표는 성공해서 해피엔딩, 타오룽은 실패로 쓸쓸한 말년을 맞았습니다. 간단한 설정에서 시작해 꽤 극적인 이야기가 나온 점이 재밌었습니다. 단순하면서도 극명한 긴장 상황을 설정해서 자연스럽게 갈등이 나오는 점이 이전에도 느낀 쇼크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처음에 생각했던 다각적이고 심각한 전개보다는 막무가내의 감정싸움 중심이 된 것 같지만, 그건 어찌보면 가족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필연적인 결과일지도 모르죠.

판정은 원래 규칙대로는 어떤 때는 높은 게 성공, 어떤 때는 낮은 게 성공이어서 굉장히 혼란스러웠는데, 승한군이 고안한 대안 규칙을 사용하니까 적어도 둘이서 하는 TRPG로는 무리가 없었습니다. 일률적으로 낮은 게 성공이고 방해하는 1d4는 더하기만 하니까 일관성이 있어서 훨씬 좋더라고요. 그러면서 확률은 동일하고요. 앞으로 쇼크 할 때는 이 대안 규칙을 사용하면 좋겠습니다.

이야기 진행을 판정 결과에 거는 갈등 판정 방식은 판정과 이야기가 맞물리는 점도 재밌습니다. 주인공 참가자와 적수 참가자의 극적 욕구가 서로 긴장관계를 이루고, 규칙과 판정이 이야기 진행을 일정 부분 규율하면서 그만큼 이야기 자체가 예측 불허가 되고 역동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승한군이 사촌 오빠의 성공적인 증언을 걸고 한 굴림이 능력치와 같게 나와 상승 규칙이 발동한 결과 샤오링이 금치산자 판정을 넘어 정신병동에 갖히게 된 것이 좋은 예입니다.

둘만 해서 아쉬운 부분이었다면 역시 관객 주사위가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타오룽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관객이 주사위로 결과를 낮추어 주었다면 타오룽이 성공할 수도 있었는데, 적수인 저의 방해 주사위가 결과를 높이는 상태에서는 거의 실패할 수밖에 없었죠. 주인공 참가자와 적수 참가자뿐 아니라 관객의 극적 욕구도 함께 맞물리면 좀 더 역동적인 결과가 될 수도 있지 않았나 합니다. 다음에는 셋 이상이서 해보면 더 재밌을지도요.
2009/01/25 21:25 2009/01/25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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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sdee 2009/01/28 0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샤오링... 온갖 시련도 마침내 이겨냈네요. 대단; (판정의 힘인가요;;)

    한편, Shock:SSF로 좀더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뤄보는 것도 어떨까 싶긴 해요. 급격한 남북통일이 일어나 북한 사람과 남한 사람 사이의 사회적 격차 문제가 크게 불거진다든지, 아예 제2차 한국전쟁이 일어난다든지...(중국과 미국 사이의 대리전?) 좀더 스케일을 작게 가자면, 대규모 탈북난민 발생이라든지 다문화 가정의 급격한 증가라든지...

    • 로키 2009/01/29 1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현실물도 얼마든지 가능하겠네. 무엇을 다루든 현재 세상에 없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한 사안을 다루면 SF의 본래 의미인 사유 실험의 묘미는 충분히 살릴 수 있을 것 같아. 근미래나 대체역사를 다룬다면 현실 세계의 지식까지 활용할 수 있으니 더 밀도가 있는 얘기가 될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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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에는 참가자 한 명이 사정상 불참해서 어스돈의 혼 정기 플레이 대신 광열군을 끌어들여 사악한 시대에.. (In a Wicked Age...) 즉석 플레이를 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승한군 글에 나와있고, 몇 가지 덧붙일 감상이라면...

우선 무작위로 뽑는 이야기 요소들 (신탁)이 상상력을 자극하는 효과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폭군을 돕는 사악한 악마'라든지 '무모한 젊은이를 지키는 수호령' '전쟁용 황소떼 몰이꾼' 같은 요소들이 순전히 무작위로 모여서 플레이하는 사람들의 상상력 속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는 과정이 쉽고 재밌었던 점이 기억에 남습니다. 기본 배경은 고대 중동풍 판타지이지만, 신탁에 따라 배경이 달라지므로 신탁만 바꾸면 다양한 장르로 플레이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고요.

또 하나, 이야기 요소들에서 뽑은 인물들의 목표를 번갈아 설정하면서 목표에 갈등을 짜넣는 과정이 플레이의 극적 긴장감을 이끄는 원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맡은 황제를 돕는 악령이 황제를 실각시키고 용사를 새 황제로 세우려는 계획은 악령과 황제 사이에 갈등을 설정했고, 남에게 희생이 없게 자신이 모든 희생을 지려는 전사의 목표는 전사를 무조건 지키려는 수호령과 갈등을 유도했습니다. 이렇게 인물의 지향성과 촘촘한 갈등의 망을 설정한 채 시작하기에 즉석에서 극적 배경과 인물을 설정하면서도 플레이가 방향성을 잃지 않고 끝까지 군더더기 없는 긴장감을 유지했다고 봅니다.

이렇듯 상상력을 무작위로 자극하는 신탁과 갈등을 유도하는 목표 설정, 거기다 간단한 인물 제작 규칙 때문에 사악한 시대는 즉석 플레이를 하기에 좋은 규칙입니다. 그러면서도 즉석 플레이를 연속적으로 연계해서 과거나 미래 이야기를 다루는 등 중장기 플레이도 할 수 있고, 신탁과 목표는 다른 규칙과 연계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단순한 규칙이면서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사악한 시대는 최근 RPG 구매 중 가장 괜찮은 축으로 치고 싶군요.
2008/12/16 12:19 2008/12/16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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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ishsong 2008/12/16 1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 황제님의 업적을 더 찬양하지 않는거야! (철썩철썩)

  2. Wishsong 2008/12/16 14: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황제님 찬양 건은 일단 둘째 치고(...)

    3자 이상 대결시 햇깔렸던 점을 다시 찾아보다가 룰을 잘못 적용했던 점을 발견했어.

    1. 아이샤 vs 카산 vs 쿠로쉬 대결 때(2차전).

    2라운드 때. 처음 우선권 굴림 :

    아이샤 : 5+5, 5 (우위 주사위 포함) - 우선권 획득
    쿠로쉬 : 6,6
    카산 : 9,3

    여기에서 카산이 먼저 행동했음. 원래대로라면 아이샤가 먼저하는 게 맞지?

    그리고 책을 다시 보니까, 누구한테 우위주사위를 얻든 이 우위 주사위는 무조건 사용할 수 있는 것 같아.

    ("아이샤는 카산에 대해 우위 주사위, 카산은 쿠로쉬에 대해 우위 주사위" 라는 방법이 아니라, "아이사와 카산 둘 다 우위 주사위를 가짐" 이렇게.)



    2. 마지막 대결 (4파전)

    1라운드 맨 처음 굴림 :

    아이샤 : 7, 1
    아일키다르 : 7, 4
    황제 : 8, 6 - 우선권 획득
    카산 : 6, 5

    여기에서 황제가 카산을 공격. 카산은 4, 1을 굴려 아웃.

    그때 "아이샤도 반응할께"라고 했는데, 이 점이 에러.

    가. 아이샤가 아니라 아일키다르 차례임.
    나. 아이샤는 황제의 공격대상에 포함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반응할 필요가 없음.

    그다음에 아일키다르가 "아일키다르는 근위병들 사이에 혼란을 퍼뜨려서 그들이 카산에게 오히려 죽어나가도록 유도합니다!" 라고 하고 6,3을 굴렸는데.. 룰 대로라면 굴릴 필요없이 황제를 대상으로 '공격'한다고 선언해야 함. (그다음에 황제는 여기에 반응하기 위해 주사위를 다시 굴려야 함. 그렇게 해서 7, 4보다 높게 나오면 황제가 우위를 차지함.)

    이렇게 되는 거였어. 다음 번에는 좀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 로키 2008/12/16 17:48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하, 몇 군데 실수했었군. 아일키다르 부분은 사실 헷갈렸던 게, 행동 유형상 (Maneuver) 간접적으로 행동해야 할 것 같은데 그걸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어서 그냥 경비병을 통해 공격했다고 했던 것.

  3. Wishsong 2009/01/06 1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번 시범 플레이 때 궁금증 때문에 Forge를 뒤져보았더니... 이런 Q&A가 있었음.

    http://www.indie-rpgs.com/forum/index.php?topic=25765.0


    질문 :
    In a chapter yesterday at ConQuest story games lounge, I GMed this situation:
    An NPC priestess declared that she and Balthior, a PC pass through a marriage arch and say the vows during a fertility ritual (as representatives of god and goddess but also for real committment.) We rolled this out and the priestess won. The player elected injury or exhaustion and I chose injury (getting slapped).

    The question I have is: does the wedding still happen or did the player take injury _rather_ than stepping through the arch?

    답변 :

    Exactly.

    By the same token though, the marriage didn't NOT happen. By the rules, you can have the priestess say "now walk with me through the marriage arch, or do you want another one? Next time I won't treat you so gently."

    Beating people into submission is a viable tactic, if you mean it and if you can keep winning rolls.

    -Vinc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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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길드타운 플레이를 한 후 플레이 내 전개에 대한 합의는 어느 정도까지 하는 것이 좋은가 하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깡패들과 전투에서 져서 회장님을 만나러 가자는 식으로 의논을 한 후 약간 빡빡한 전투가 있었는데, 전투의 결과까지 정해놓고 하는 건 참가자의 선택을 의미없게 해서 좋지 않은 것 같다는 아사히라군의 이의가 있었죠.

그에 대한 논의 끝에 제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참가자가 주인공(PC)을 통해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범위는 합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위는 RP를 통해 하는 게 괜찮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전에 글을 썼던 서술권 문제와도 일맥상통합니다. 명시적 합의는 서술권이 미치지 않는 범위에 대해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이며, 전통적 RPG 규칙에서 참가자의 서술권 범위는 주인공의 행동에 그치니까요.

예를 들어 불량배들이 골목에서 몰려나와 주인공 일행을 둘러싼다는 것은 겁스에서 참가자가 자기 직접 서술권 범위 내에서 정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주인공이 아닌 조연 (NPC)의 행동이나 위치 등은 진행자의 서술권 내에 있으니까요. 따라서, 불량배가 습격하는 장면 같은 것은 제안, 논의 등 명시적 합의 과정이 없이 참가자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으므로 합의로 정하기에 적합합니다. 참가자의 로망을 살릴 만한 상황을 만들기에도 진행자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 좋고요.

반면, 불량배들과 전투를 시작한 후 그 전투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는 참가자가 규칙에 따라 주인공을 움직여 결정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주인공의 행동, 전술적 선택 등에 따라 전투 결과는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따라서, 참가자가 주인공을 통해 영향을 줄 수 있는 서술권 범위 내에서는 합의의 중요성이 덜하고, 플레이 스타일에 따라서는 오히려 재미를 해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결과를 정하지 않고 RP와 규칙에 따라 진행하는 편이 긴장감과 의외성도 더 있을 테고요.

초기 상황까지만 같이 생각하고 그 이후는 RP로 하는 것은 여러 취향의 RPG인이 함께 어울리는 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이전에 역할극에 대한 글에서 다루었듯 전개를 정해놓고 그에 맞춰서 RP하는 것을 선호하는 취향도 있고, 아사히라군처럼 진행자가 무엇을 내놓을지 모르고 시작해서 서로 맞부딪치며 나오는 우연과 의외성을 좋아하는 취향도 있지요. 전자쪽 취향일 수록 합의가 중요해지고, 후자에 가까울 수록 합의 없이 RP로 말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합의를 하면서도 그 범위를 제한하는 것은 서술권 분배 없는 규칙에서 극적 욕구를 조화하면서도 참가자의 선택과 상황의 의외성을 살리는 하나의 타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008/08/11 05:26 2008/08/11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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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ishsong 2008/08/11 16: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도 합의는 초기 설정까지만 생각하고 그 다음은 주사위운과 RP와 분위기에 맞춰 가야 한다고 믿고 있어. 미리 만들어진 결과에 맞춰 나가는 건 분명히 안정적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RPG에 있어서 '규칙'이라는 것이 의미가 없어져버린다고 생각돼. 룰의 존재의의 중 하나가 "불확실한 상황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제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거기에서 불확실성이라는 걸 제거하면 룰에 의거한 행동을 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지 않는가... 하는 게 내 주장.

    • 로키 2008/08/13 2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 차라리 결과를 합의한 후 규칙을 배제하고 역할극처럼 한다면 몰라도, 결과를 합의했는데도 규칙을 사용하는 건 좀 눈가리고 아웅인 듯. 결과는 잠정적이고 그렇게 안 돼도 상관없다고 합의하고 규칙을 이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길드타운 플레이 때 우리가 그랬듯 그 결과에서 벗어나는 데는 부담이 있을 것 같아.

  2. Asdee 2008/08/12 16: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통적인 마스터/플레이어 구도에서는, "참가자가 주인공을 통해 영향을 줄 수 있는 서술권 범위"가 늘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는게 문제인 것 같아요.

    마스터는 얼마든지 "도저히 이기지 못할 승부"나 "쉽게 이길 승부"를 꾸밀 수 있으니까요. 사실 전투의 결과는.. 플레이어가 어떻게 전술을 쓰느냐 보다, 얼마만큼의 적이 나오느냐에 좌우되는게 아닐까란 생각도 듭니다. 극점수 같은 규칙이 없다면, 플레이어의 전술로 승패를 가름하는 건 쉽지 않은 듯도... 아마 승부가 아슬아슬한 상황에서만 의미가 있겠죠.

    이렇게 보면, 아예 "전투를 하느냐 마느냐"라는 선택이 차라리 의미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근데 그 선택 역시도 상황에 많이 좌우되고요. 도저히 저항불가능한 상황을 내놓아버릴 수도 있으니...

    여하튼, 참가자의 의미있는 선택이 보장되어야 한다는게 대전제일 듯 싶네요. 마스터의 독단을 막기 위한 '합의'라고 해도, 그 '합의' 때문에 플레이 내에서 선택이 무의미해지면 곤란하니까요.

    • 로키 2008/08/13 2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원칙적으로 참가자가 영향을 줄 수 있는 서술권 범위인데 진행자의 무리한 진행으로 영향을 미칠 수 없다면 (대체로 진행자가 이리저리 길을 막는 게 보이는 정도) 그것은 참가자 선택의 의미라는, 말씀하신 대전제를 침해한 것이겠지요. 그건 더 이상 규칙이나 플레이 내 합의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진행자가 그런 유혹에 빠지지 않게 진행자 규율 내지는 서술 분산형 규칙을 좋아하기는 합니다만) 플레이에 대한 기대와 욕구의 조화 문제로 넘어가지 않을까 합니다.

      결국 합의를 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합의가 반드시 진짜 합의는 아니라는 점 같아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몰라서, 혹은 반대하기 미안해서 남들 의견에 그냥 따라가는 일도 많고요. 그걸 좀 더 끌어내는 방식으로 서술권 규율 규칙을 선호하기는 합니다만, 근본적으로는 역시 욕구와 기대 문제겠지요. 그게 RPG의 진짜 어려움인 것 같기도 하고요.

  3. 불타는도넛 2008/08/12 23: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차피 결과가 지는것으로로 합의되어 있었다면 전투행위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경우에는 '싸웠고 졌습니다. 안타깝네요, 데헷.' 하는 식으로 서술하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게 더 좋지 않을까요?(실제로 저 그대로의 서술을 권장하는건 아닙니다.)

  4. Asdee 2008/08/13 15: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각해보면,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도 어떤 식으로 싸움이 진행되어 어떻게 패배에 이르는가...를 그려내기 위해 진행해볼 수도 있을 거 같네요. 그 과정에서 취하는 행동과 그로 말미암은 결과가 반영된다면 더욱 의미있겠죠.

  5. 카나사 2008/08/21 2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흥미로운 주제가 나와서 갑자기 튀어나와 보았습니다; 현재 저희 팀도 합의형 플레이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저희 팀에서는 내용을 진행하는 씬과 전투씬이 상당히 나뉘어져 있다는 느낌입니다. 각 씬별로 주역이 되는 캐릭터가 있고 그 캐릭터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씬이 진행되고 그 과정에 전투는 거의 개입되지 않아요. 내용적으로 전투가 들어간다고 해도 플레이어의 서술연출로 지나가는 경우도 꽤 있고요. 대신 다른 씬들이 도는 것 처럼 전투를 위한 씬이 할당되어 있다는 느낌이지요. 따라서 합의는 위의 장면형 씬들에만 적용되고 전투에는 거의 적용되지 않더군요. 이건 저희 팀의 스타일이라기 보다도 일본쪽의 룰들이 씬별로 내용을 진행할 것을 보조해 주고 있는 탓이 크다고 생각합니다만. 도쿄노바 같은 경우는 씬 플레이어가 지정되면 그 플레이어가 어떤 씬을 연출할것인지를 정하기도 하고요...합의는 룰외의 영역에서 진행된다고 생각했기 떄문에 의외로 룰의 영향을 심하게 받아서 놀란 부분이기도 합니다.(쓰다 보니 본제와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된 듯 싶군요; 죄송;)

    • 로키 2008/08/22 13: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반갑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규칙의 영향은 상당히 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특히 연출이나 서술 같은 부분에 닿아 있는 규칙이라면 더욱 그럴 것 같고요. 합의하고 규칙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지는 더 생각해 보고 싶은 흥미로운 문제네요.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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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달 시즌 최종화입니다. 제목을 안 정한 게 뒤늦게 생각나서 저와 승한님이 날치기 통과시켰습니다. (땅땅땅)

요약

다치바나는 신식 문물을 가르쳐도 전통 정신 교육도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하세가와의 말에 마음이 움직여 소학교 사업을 돕기로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계략을 짜주었던 마츠오를 경계하라고 알려줍니다. 실제로 마츠오는 우메하를 이용하고 다치바나 가문에 대해 헛소문을 퍼뜨려가며 집요한 방해공작을 펼칩니다.

마침내 다치바나는 마츠오가 지역 유지들 앞에서 그 간의 비리와 계략을 시인하도록 교묘하게 유인하고, 죽은 상관의 마지막 말을 마침내 기억해 내면서 신선조의 동료와 상관이 죽었는데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도 정리합니다. 예전의 이상을 되찾은 그의 모습을 보며 카나코는 누구보다 기뻐합니다. 그리고 모두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을 비추며 끝~

플레이 내용 보기


감상

예, 이렇게 끝났습니다. 안방극장 대모험 한 기를 다 마쳐본 것은 처음인데, 정말 깔끔하게 잘 끝나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재미가 쏠쏠했고,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 규칙이 그 과정을 잘 받쳐주면서 이야기를 만드는 논의의 틀이 되어서 더욱 원활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참가자 전원이 진행자 경험도 있고 서로 감각이 잘 맞아서 더 결과물이 만족스럽기도 했고요. 수고해주신 광열님, 뱀프님, 승한님께 모두 감사를.

이렇게 해서 끝마치고 나니 상당히 잔잔하고 일상적인 얘기가 되었군요. 겉모습으로 따지면 작은 마을에 소학교 하나 세우느라 투닥투닥하고 두 청년이 도시의 게이샤와 소문이 무성했던 것뿐이니까요. 그 소소한 이야기에 진정 의미를 부여한 건 네 주인공의 내적 갈등과 인간관계였겠죠. 진행 과정에서 점점 부각된 '이상과 현실의 갈등'이라는 큰 주제의식 속에서 고민하고, 그 고민을 해소해 가는 인물들의 모습이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상당히 인물 중심의 내밀한 드라마라는 느낌이었어요.

이야기 자체도 구조가 확실하고 개연성이 있어서 그런 인간적 드라마를 더욱 잘 받쳐주었고, 그 자체로도 재밌었던 것도 이번 시리즈의 장점이었습니다. 이 점에서도 역시 규칙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배역 비중 (screen presence)의 흐름과 가장 비중이 높은 인물의 고민이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 좋은 지침을 제공했으니까요.

예를 들어 카나코가 주역인 4화를 할 때는 카나코의 고민이 게이샤가 되려는 생각과 다치바나에 대한 마음 사이의 갈등이니까 그 두 가지를 계속 대치시키는 장면을 하면서 극적 통일성과 짜임새를 유도할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다음 화인 5회는 다치바나가 주역이니까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유도할 만한 복선을 깔면서 전체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것을 계속 염두에 두어서 한 화에서 다음 화로 극적 맥락을 이어갈 수 있었고요.

이러한 논의와 논의의 지침을 제공하는 규칙의 진짜 장점이라면 '집단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겠죠. 이 모든 이야기를 누구 한 사람이 생각해내야 했다면 우선 나머지는 그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따라가야 하니까 전혀 재미가 없었을 테고 (영화나 연극이 아닌 만큼), 만드는 사람도 어려워서 뻗어버렸을 공산이 큽니다. 그래서 어느 한 사람에게 부담이 가지 않고 다같이 이야기를 만들어간 논의, 그리고 이를 지원한 규칙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봅니다.

그 속에서 주인공 중 가장 화려한 인물이자 제일 떡밥성인 다치바나가 마지막 화에 제몫을 톡톡히 했더군요. 첫 장면의 악몽, 최종 보스 마츠오 다이키를 물리친 기지와 마지막에 요코에게 쥐여 사는 미래를 그대로 엿볼 수 있는 모습까지 입체적인 모습이 즐거웠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뱀프님 인물이지만, 모두 그의 이야기에 일조했기에 인물 전원에 애정과 관심이 가는 것도 공동 서사의 힘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초기의 술에 쩔은 패견에서 마지막에 어엿한 모습의 다치바나까지 변해온 과정에 저를 포함한 모두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거겠지요.

마지막 몇몇 장면에서 눈길이 간 것 하나는 하세가와가 6년 후에까지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점. 이건 우메하와 하세가와가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팬 게시판에 떡밥 던지기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 (...) 방송국이나 팬카페 게시판에 시청자들이 둘이 아직 뭔가 있다, 아니다 헤어졌다 하는 논쟁이 올라올 것 같다며 우리끼리 웃었었죠. 적당히 여운이 남는 결말 같아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두 사람이 각각 벚꽃 개화를 기대하는 대목에서는 두 사람이 한창 가까워지던 2화, 봄날의 벚꽃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그 외에 진정한 흑막은 마츠오 다이키가 아니라 다치바나 류지라는 얘기도 했었죠. 따지고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이 아저씨 뜻대로 안 된 게 없으니... 싱글싱글 웃으면서도 늘 꿍꿍이속이 있는 류지씨를 맡을 때마다 굉장히 즐거웠던 기억이 납니다. 결코 얕볼 수는 없지만 동시에 미워할 수 없는 인물. 챙길 거 다 챙기는 건 같은데 마츠오는 늘 찬밥, 다치바나 류지는 더운밥(?)인 것도 신기했고... 저런 분을 쏙 빼닮은 요코에게 장가든 시게하루에게 묵념을.

그러고 보니까 제목대로 도쿄를 비추는 달 언급이 가끔 나오긴 했습니다만, 생각해 보니 그거 관련해서 우메하가 카나코에게 할 만한 대사를 생각했었는데 깜박 잊었었군요. 어차피 딱히 들어갈 데가 없기도 했고요.

나를 가르쳐주신 우메코 선생님께서 이전에 내게 그러시더구나, 게이샤는 달과 같다고. 많은 것을 보고 듣되 말하지 않고, 환하고 아름다우나 닿을 수 없는... 그 빛은 누구나 기분에 따라, 소원에 따라 원하는 감정으로 칠할 수 있지. 아, 달이 슬프게 빛나는구나. 아, 달도 기뻐해주는구나 하고.

너도 그리 될 자신이 있느냐, 카나코? 보는 사람에게 그의 설움과 소원을 모두, 그 많은 사연과 마음을 되비추어 주는 빛이 될 수 있겠느냐?

사실 달을 보든 텔레비전을 보든 RPG를 하든 뭘 하든 사람은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엿보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 자기 삶의 파편들을. 그러면서 동시에 새로운 것을 듣고 생각하고, 자신의 모습과 겹친 남의 모습, 익숙한 것과 겹친 낯선 것에 대면하게 되죠. 그렇게 하면서 자아의 모습은 조금씩 변하고 확장해 가고, 자신과 세계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감동'이라는 작용 아닐까요.

그래서 저를 되비추어준 거울이 된 상상의 편린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이야기 속의 작은 세계에, 그리고 그 과정을 모두 함께한 분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덕분에 기억의 보관함에는 '도쿄의 달'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추가할 수 있었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어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또 새로운 의미,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요.
2008/04/14 07:05 2008/04/14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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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도쿄의 달 - 일상물 캠페인을 위해 필요한 것은?

    Tracked from The Adamantine Watchtower of... 2008/04/15 14:34  삭제

    최근 로키님, 뱀프님, 광열님과 한달간 메이지 유신 직후의 일본을 배경으로 한 &lt;도쿄의 달&gt; 캠페인을 완료했습니다.캠페인 명 - 도쿄의 달캠페인 시스템 - 안방극장 대모험캠페인 기간 -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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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hovamp 2008/04/14 1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디어 감상이 올라왔군요. 저는 절대로 압박 같은거 가하지 않았습니... (먼 산)

    그러고보니 제목 정하는 자리에도 못 있었군요. 뭐 기억을 돌이켜보면, 지난 1~4화 사이에도 제가 제목에 일조한 적이 한번도 없으니 (역시 이름짓는데 약한 것입니다)

    아무튼 재미있었습니다. 하나의 이야기를 완결시킬 수 있었다는 보람도 있었구요. 감사드립니다. +_+

  2. 비밀방문자 2008/04/14 13: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로키  2008/04/14 23:05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쎄요, 제가 대조해서 얘기한 건 '칙칙폭폭 일방통행식 진행'이니까 (그래서 각본이 다 짜인 영화나 연극 얘기를 한 거고), 그게 RPG에서 재미없다는 건 나름 실험결과가 있죠. (주로 본인 생체실험..)

      그에 반해 논의로 이야기 방향을 결정하는 게 꼭 재미있다고 하는 건 아녜요. 재미있을 소지가 있고, 이 경우에 재밌었다는 실험결과(?) 하나를 제시했을 뿐. 어차피 변수가 너무 많아서 실험 자체가 엄밀한 의미에서는 불가능하지만..

    • 소년H  2008/04/15 0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뭐 (...)가 붙은 말은 반 혹은 그 이상 농담성이라 생각해주세요..라기엔 좀 하드했나요? 그럼 사과드려야 하고.

      사실 어제 이야기에서 떠오른 책임감 문제가 생각나서 덧글 쪽 중심은 그거였죠. 앞이나 뒤는 사족. (사족이 좀 깁니다만 (...))

  3. Wishsong 2008/04/14 19: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달간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후에도 다시 같이 플레이를 할 수 있기를!

    그리고 로키님 시험 잘 보세요 :)

  4. Asdee 2008/04/15 2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정말 재미있게 플레이했어요^^ 모두에게 감사해요. 헤헤

    뭐랄까.. 가장 공동진행 스타일의 RPG를 플레이한 기회였던 것 같아요. 모두가 서로 캐릭터에 대해 관심갖고 한껏 참견하고요. 후후. [안방극장 대모험] 시스템 특성 덕분인지, 일행 개념을 벗어나서도 무척 재미있던 것 같습니다.(마지막엔 뭔가 4인 전대가 합체해서 대마왕 마츠오 다이키를 격파하는 듯한 느낌도 있었지만? ^^;)

    우메하가 카나코에게 남기려 했던 대사, 참 마음에 와닿네요. 달과 같이 비추는 존재라... (그렇다면 정부인 요코는 태양?;) 뭐랄까, 달은 태양과 다른 오히려 더 은은하고 그윽한 매력이 있으니.

    금요일 심야 팀.. 모두들 너무 유쾌하고 서로 잘 맞아서 즐거웠어요. 제가 시간을 잘 못 맞춰서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 남네요. 흐; 언제 기회되면 또 다같이 플레이하죠. (귀국 후 오프 모임은 이미 확정이고요. ^^)

  5. 구네 2009/08/17 2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방극장 대모험 룰로 완료하셨다는 게 이 '도쿄의 달' 이었군요!
    룰을 훑어보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여기까지 읽었습니다(..)

    리플레이를 보려고 위키고 뭐고 돌아다니다
    포기하고 읽기 시작하니 음성채팅으로 하셨군요!
    읽어만 봐도 플레이가 꽤나 재밌었다는 느낌이 드네요

    확실히 안방극장대모험이란 룰은
    각 인물의 능력, 관계, 갈등으로
    소소하지만 가깝기 때문에 또 큰.
    그런 이야기들을 표현하는데 아주 적합한 것 같아요

    로키님이 자주 언급하시는 것처럼
    여럿 모여서 드라마를 보며 웃고 떠들고 이야기하는 딱 그런 느낌.

    • 로키 2009/08/19 09:07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 정말 재밌는 플레이였죠. 내면과 인물 지향적인 안방극장 룰이 일상물의 뉘앙스를 표현하는 데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에요.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요약

다치바나는 카나코를 위해 마츠오 다이키에게 비겁한 계책을 짜주고, 처음에는 그에게 지켜달라고 했던 카나코는 점점 수렁에 빠지는 다치바나의 모습이 견디기가 어려워집니다. 게다가 다치바나가 사촌 요코와 결혼하지 않으면 후계자로 삼지 않겠다는 다치바나의 숙부 말을 듣고, 그의 아내가 되는 것은 포기하고 게이샤의 길을 가기로 합니다. 처음에는 화를 내던 다치바나는 카나코의 꾸짖음과 이제는 나도 너를 지키겠다는 카나코의 결의에 정신을 차리고, 둘은 서로 깊은 마음을 확인하며 포옹합니다.

플레이 내용 보기


예고편


운명의 행방은 과연 어디로?

다치바나: (하세가와에게) 그는 당신과 우메하씨에 대해 추문을 퍼뜨릴 생각입니다.

(마츠오의 손을 뿌리치는 우메하)

하세가와: (굳은 얼굴로)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십니까?

다치바나: (쓴웃음) 그건 내가 세운 계획이니까요.

카나코: (다치바나를 돌아보고 미소지으며 생각) 돌아와줘서 고마워, 시게하루.

(하세가와, 다치바나 악수하면서 화면 정지)

도쿄의 달, 그 대망의 최종화를 기대해 주십시오!

감상

승한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이번 화가 지금까지 중 제일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잔잔하게 시작했던 시리즈가 점점 감정도, 사건도 폭이 넓어지고 규모가 커졌고, 드디어 다음 화에 크게 터지며 결론이 나겠죠.

특히 인상깊었던 건 카나코가 달라지는 모습. 이번 화 초에는 사랑에 빠진 젊은 아가씨의 고집, 다치바나가 자신을 지켜주기 바라는 의존성으로 시작해 4화 내내 사랑하는 사람이 점점 수렁에 빠지는 것을 지켜보고 스스로 현실을 보고 판단하며, 끝내는 자신이 다치바나를 지키겠다는 결단을 내리는 성숙의 과정이 참 잘 드러난 것 같아요. 그게 옳은 결정인지는 각자 판단할 문제이지만, 적어도 카나코의 상황과 내면에 비추어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는 것 같아요.

아무도 전담하는 참가자가 없는 인물인 마츠오의 굉장한 존재감도 이야깃거리였습니다. 결국 모든 주인공이 그의 손아귀에서 놀고 있는 시리즈 보스라고 우리끼리 웃었죠. 이 시리즈의 사실상 주제로 떠오르고 있는 이상과 현실의 갈등에서 현실 축을 잘 표현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고요. 악역이면서도 왠지 멋진 우리의 대마왕 마츠오..(...)

그러면서 가상 캐스팅 얘기도 나왔는데, 마츠오 역을 맡은 배우는 어쩌면 연극 배우부터 시작해 텔레비전에서는 조연과 악역을 주로 맡은 원로 배우이고, 워낙 연기력도 정평이 나 있어서 본래의 각본보다 훨씬 비중도 크고 인기도 은근히 끌고 있을 거라는 얘기도 했죠. (40대 이상의 인기몰이!) 세트장에서도 아마 다들 대선배로 대우할 거라고..

카나코와 다치바나 배우는 스타로 떠오른 신인으로서 연기 경험이 쌓이면서 1기 후반에서 주역을 맡은 것 같다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특히 다치바나 역은 초기에는 시범 방송에서 그럴 듯한 모습을 보여주더니 본편에는 술에 쩔은 패배자로 나오고, 예고편에 나온 컷도 최종 편집에서 잘리는 등 떡밥만 던지다 보니 애가 탄 젊은 여성 팬들의 지지가 쌓이면서 비중이 커지고 있는 꽃미남 배우일 거라든지. (이래서 기획사 백이..)

그 외에 우메하는 왕년에 글래머 스타로 유명했고 지금도 원숙한 아름다움과 탄탄한 연기로 인기를 끄는 30대 중후반의 여배우, 하세가와는 나이보다 젊게 분장한, 연기력이 안정적인 중견 배우가 맡았을 거라는 얘기도 했었죠. 그런 식으로 얘기하다 보니 정말로 TV 보며 친구들과 수다떠는 기분이어서 즐거웠습니다. 그게 안방극장 대모험을 하는 즐거움이기도 하고요.

TV를 모티프로 하고 있는 만큼 카메라 기법을 연출에 활용하라는 것은 책에서도 하고 있는 조언이기도 하고, 실제로 그렇게 하면 많이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이번에 장터에서 하세가와와 다치바나의 토론이 있었을 때 단상 위에 선 하세가와하고 밑에 선 다치바나를 비추면서 지난 화에서 하세가와가 절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위에서 그걸 지켜보던 다치바나의 모습과 대비시키며, 이제 이상과 현실과 관련해 두 사람의 입장이 바뀐 것을 시사했죠.

묘사를 촬영처럼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영상 매체와 친한 만큼 친숙하고, 함축적인 의미를 많이 표현할 수 있어서 연출 기법의 하나로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 외에 공간 활용, 색채와 그림자, 조명 등 시각 언어를 활용할 방법은 많죠. 우메하의 가게 같은 공간은 폐쇄적이고 좀 어둡다든지, 몇 발짝만 가도 계속 사람과 부대껴서 서로 조심조심 피해가야 한다든지, 구석에 깔린 그림자, 드리운 휘장, 좁은 공간에서 답답할 정도로 화려하고 감각적인 색채, 사람 모습은 보이지 않고 웃음소리만 아련히 들린다든지 하는 식으로 그 분위기를 표현하면 공간 자체도 독자적인 개성과 의미를 품게 되겠죠.

비슷한 맥락에서 밤의 요정에서 나와 (이제는 돌아갈 일은 없다고 하며) 한낮의 시장 광장으로 나선 하세가와의 모습도 공간적 대비를 통해 인물의 변화를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하세가와는 이번 화 비중은 낮았지만 다음 화를 대비해 좋은 등장 장면과 많은 복선을 깔아놓은 언급이 많았고요. 등장 횟수가 적은 만큼 이번 화에는 승한님이 PD로 많이 수고해 주셔서 순환 PD의 효용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다치바나와 하세가와의 이번 토론이나 예고편에서 나온 두 사람의 악수는 다른 분들도 지적하셨듯 역사적으로도 의미심장한데, 두 사람의 협력이 상징하는 전통적 가치와 서양 문명의 이기의 결합은 20세기 일본의 팽창지향적 군국주의의 기반이 되기도 했으니까요. 승한님도 그런 부분을 하세가와를 통해 표현해보고 싶다고 하셨고, 서구 문물의 유입에 저항감을 보이던 다치바나 같은 전통주의자도 부국강병의 목표에서 동질감을 찾아내면서 조선 식민지화와 태평양 전쟁의 뿌리는 이미 조금씩 내리고 있던 거겠죠. 그런 역사적 흐름에 일조한 많은 사람의 한 표상인 하세가와나 다치바나 같은 인물이 지극히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것도 흥미로운 일입니다. 그것이 '단죄'가 아닌 '이해'를 하는 허구적 상상력의 힘이기도 할 테고요.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 규칙이 그런 허구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에 일조하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물 비중의 흐름과 내적 갈등이 플레이를 위한 논의에 초점을 제공한다든지요. 이번 화에는 어느 주인공의 비중이 제일 높은지 생각해서 그 인물을 부각시키고, 가장 비중이 높은 인물의 갈등을 강조하면서 다음 화에는 또 누가 비중이 높아지는지 봐서 다음 화를 향한 복선을 준비하는 게 참 유기적이더라고요. 규칙이 플레이 외적 논의에 길잡이가 된다는 면에서 규칙이 이야기를 돕는 게 이 규칙의 강점인 것 같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그런 논의가 없으면 한없이 썰렁한 규칙이기도 한 만큼 전원이 지금 플레이에, 지금 만들어가는 이야기에 발상과 열정이 넘치지 않으면 재미없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획 단계에서부터 전원의 의견을 반영하고 모두 마음에 드는 설정과 인물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그런 과정에서 교섭을 잘 하는 게 중요할 것 같고요.

예고편의 활용도 재미있습니다. 예고편 때 생각했던 맥락과는 사뭇 다르게, 하지만 더 재미있는 의미로 나타나고는 하니 말이죠. 예를 들어 예고편에 나왔던 카나코의 다치바나 따귀(!)는 다치바나가 자신은 가정을 이룰 만한 인간이 아니라는 말에 대한 반응으로 생각했었는데, 정작 플레이를 하다 보니 그렇게 이어지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패악을 부리는(..) 다치바나를 정신차리게 한 것이 처음 생각한 맥락보다 더 의미가 깊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 화 플레이에 느슨한 길잡이가 되면서도 의외성의 요소를 충분히 살린다는 점이 예고편의 의의인 듯하네요.

참 재미있었고요, 다음 주에 시즌 마지막화 촬영도 기대하겠습니다~
2008/04/07 05:23 2008/04/07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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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ishsong 2008/04/11 15: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꿈보다 해몽이 더 멋있는 전형적인 사례(...)

    • 로키 2008/04/12 1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해몽을 제가 하면 더 그래요(??)

      ..라기보다는 감상은 플레이 후 논의에서 한 얘기를 정리한 부분도 많지만요.

[로그인][오픈아이디란?]

도쿄의 달 3화입니다.

요약


우메하의 영향 하에 현실과 타협하기 시작한 하세가와는 마츠오의 약점을 캐내서 소학교 사업의 주도권을 잡습니다. 한편, 카나코는 말썽꾸러기 남동생을 구하려고 마츠오에게 몸을 맡기기로 하지만, 다치바나는 마츠오를 돕기를 자청하며 그 대가로 카나코를 요구합니다. 절을 떠나기 거부하는 주지를 폭력을 동원해 쫓아내려고 한 하세가와는 다치바나의 꾸짖음으로 이상을 되찾지만, 다치바나는 정작 자신은 마츠오 다이키의 개가 되려는 것을 자조합니다.

플레이 내용



예고편


시대의 격류 속에서 그녀, 카나코의 결정은?

하세가와: (학교의 후원자들과 열띤 의논)

우메하: 결정을 내려야 할 때다. 게이샤의 길은 여자의 길과 달라!

다치바나: 미안하지만 나는 한 가정을 꾸릴 수 있을 만한 인간이 아니야.

카나코: (다치바나의 뺨을 찰싹!)

(카나코의 결의에 찬 표정에 클로즈업, 정지)

도쿄의 달 3화에 많은 성원 바랍니다!

감상

1. 그들의 이야기

이번은 초기에는 약간 집중도가 떨어지고 분위기가 침체한 기분도 들었지만, 중반을 넘어가면서 훨씬 초점이 잡히더군요. 다양한 감정과 권모술수가 이리저리 엮이면서 이야기가 깊이를 더해가는 게 참 흥미진진했습니다. 하세가와와 다치바나의 대립과 대조 구도, 광열님이 오셔서 본편 들어 처음으로 카나코에게 제대로 조명이 가면서 드러나는 그녀의 이야기 등.

우메하는 하세가와의 내적 갈등에 좋은 촉매가 되면서 마지막에 의미심장한 대화를 나누었고, 최종 보스로 급부상하고 있는 마츠오의 음흉한 모습도 재밌었어요. (왜 맨날 제가 치한 역을..;ㅁ;) 다치바나 류지는 오늘 처음 등장했는데, 잡아서 해보니 선량해 보이면서도 꽤나 노련하고 교활한 아저씨더군요. 이제 사촌동생 요코1와 결혼 얘기도 나왔으니 앞으로 카나코와 다치바나 얘기가 어떻게 될지 흥미진진합니다. 류지 아저씨 결코 녹록치 않을 것 같은데 말이죠.

이번 화 주인공이었던 하세가와는 결국 현실과 이상의 갈등에서 우메하와는 반대의 선택을 한 것 같네요. (역시 갈등 판정으로 정했지만..) 그 대조 때문에, 또 저하고 승한님이 호흡이 워낙 잘 맞기도 해서 마지막 대화는 더욱 여운이 남았습니다. 일견 가벼운 대화 뒤에 교차하는 수많은 감정이 말이죠. 남은 2화 동안 하세가와가 한 결정의 대가, 소학교 사업의 행방과 우메하와의 관계가 카나코와 다치바나의 이야기에 좋은 배경막이 될 것 같습니다.

우메하와 하세가와가 그랬듯 시즌 초중반에 비중이 높은 인물을 하면 남은 시즌 동안 그 여파를 음미할 여유가 생겨서 좋죠. 반면 시즌 끝에 비중이 높으면 그간 나온 걸 다 종합해서 시즌을 끝내는 화려한 맛이 있을 것 같고요. 그런 의미에서 더 전통적인 히어로와 히로인인 다치바나와 카나코에게 기대가 큽니다. +_+ 잔잔하고 일상적인 인물인 우메하와 하세가와에 비해 규모와 기복이 큰 마무리가 될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는 우메하와 하세가와의 '비전통적인' 소박함도 아주 좋았지만요.)

2. 여기 PD가 누구야!

플레이 끝나고 승한님과 한 얘기인데, 고정 진행자가 없는 점이 플레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이번 플레이의 흥미 요소입니다. RPG의 전통적인 단위는 고정 진행자 하나와 여러 참가자이고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도 원래는 그렇게 되어 있는데, 도쿄의 달은 고정 PD (진행자) 없이 전원이 주인공을 만들고 PD는 그때그때 하고 싶은 사람, 혹은 현재 주인공이 안 나오거나 비중이 적은 참가자가 맡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고정 진행자가 없는 효과는 제가 보기에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주인공 일행 개념이 없다는 점. 전통적으로 참가자는 주인공밖에 참가 수단이 없으므로, 되도록 전원이 참가하려면 일행을 이루는 것이 가장 편리합니다. 반면 진행자를 그때그때 바꾼다든지 하는 식으로 참여 수단을 늘리면 주인공이 안 등장해도 모두 어떤 식으로든 참여할 수 있으므로 일행에서 벗어날 수 있고, 그만큼 다룰 수 있는 이야기의 범위도 일행 모험물보다 한결 넓어진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앞에서 링크한 일행을 다룬 글에서도 밝혔듯 일행 단위의 모험이 재미없다는 건 당연히 아닙니다. 그 속에서도 얼마든지 다양한 얘기를 할 수 있으니까요. 다만, 전원이 참가할 수 있게 물리적인 일행이 되고, 그 물리적 일행을 유지할 수 있게 주인공끼리 갈등보다는 단합을 중시하는 정신적 일행 또한 되어야 합니다. 반면 도쿄의 달은 주인공 넷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일도 좀처럼 없고, 조연과의 갈등 이상으로 주연끼리의 갈등이 많습니다. 즉, 이들은 주인공이되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일행 개념은 아닙니다.

두 번째 효과는 이야기의 초점이 외적 갈등에서 내적 갈등으로 넘어간다는 점. 주인공 외의 세계를 제어하는 진행자와 주인공만 제어하는 참가자라는 전통적인 구도에서는 주인공 일행 대 세계라는 구도가 되기 쉽습니다. 외부 세계는 주인공을 제어하는 참가자의 제어권이 아주 적은 영역이므로 외부 세계 (권력 구도, 인간관계 등)를 이용하기보다는 외부 세계에서 닥쳐오는 시련을 극복하는 문제해결 중심으로 진행하기가 편하지요. (가장 고전적으로는 던젼) 실제로 대개의 규칙이 그런 외부의 시련에 대항하는 모험에 가장 적합하게 되어 있고요. 물론 외부의 시련에 대결하는 플레이가 재미없다는 얘기는 전혀 아닙니다.

반면 위의 가장 전통적인 구도를 벗어나서 서술권을 분배하면 외부세계는 진행자 외의 참가자도 제어할수 있는 영역이 되고, 따라서 세계와 주인공 일행의 대립 구도는 훨씬 약해집니다. 결과적으로 외부 세계에서 닥치는 문제를 해결하고 시련을 극복하는 모험물 구조에서 벗어나 내적 갈등과 인간관계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 것도 고정 진행자가 없는 구조의 한 효과라고 봅니다. 물론 고민이나 비중 등 인물 중심의 극적 구조화에 초점을 맞춘 안방극장 대모험 규칙도 내적 갈등에 대한 초점을 유발하고요.

다만, 고정 진행자가 없어서라기보다는 주인공끼리 판정이 많아서 예산 관리에는 여전히 애를 먹고 있습니다. 예산이 하도 안 나가서 면모 발동할 때마다 예산 소모하도록 했더니 순식간에 예산이 간당간당. 뱀프님의 제안대로 주인공 간 갈등일 때만 면모 발동에 예산이 들도록 하는 방법을 새로 택했는데, 이건 또 어떤 식으로 작동할지 지켜봐야겠지만 지금까지는 적당해 보입니다.

3. 가위질의 즐거움

이번 화는 오다시티 (Audacity)에 좀 익숙해지면서 음성 파일 편집에 재미를 붙였습니다. 녹음을 하면 제 목소리가 제일 튀니까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줄여서 얘기하는 등 (그래도 튄다..;;) 녹음을 의식하기 시작했고요. 아마 플레이하신 분들은 녹음 파일 들어보시면 기억과 다른 부분이 좀 있을 겁니다. 잡담이 길어지는 부분을 자르고, 뒤에 있던 부분을 앞으로 가져오는 등 가공을 꽤 했거든요.

녹음은 글로 기록이 남지 않는 음성 플레이의 기록을 남긴다는 의미는 있지만 앞으로도 플레이 기록 공개는 음성 파일 자체보다는 글 쪽이 주가 될 듯 합니다. 용량 문제도 있고, 시간 문제도 있고 하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RPG 플레이는 궁극적으로 직접 하는 데 의미가 있지 내보이려고 만드는 건 아니니까 연출한 작품 같은 감상의 즐거움은 없기도 하고요.

그렇다 해도 마음에 드는 부분을 발췌해서 올리는 건 앞으로도 하고 싶습니다. 음성 매체에는 문자로 전달할 수 없는 생동감이 있으니까요. 도쿄의 달 플레이에는 장면 설정이나 판정의 좋은 예시가 되는 것도 있어서 어떤 대목이 대표성과 예시로서의 가치가 있는가 생각해서 고르고 있기도 하고요. 다른 규칙도 기회가 되는 대로 판정의 예시를 음성 파일로 올리고 싶군요.

4. 그래서...

생각해보니까 다치바나의 예고편 대목은 번번히 낚시가 되고 있는데 (최종 편집하면서 자꾸 장면이 짤리는 신인의 서러움? (...))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게 해보죠. 적어도 카나코에게 뺨맞는 다치바나만큼은 꼭 보고 싶군요. 즐거운 플레이 함께해주신 세 분께 감사감사. 모두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주석
  1. 언더월드 3기 쪽에도 제 제안으로 요코라는 인물이 있었죠. 제가 이전에 알던 일본 여자애 이름인데, 여기까지 얼결에 이름 등장..[..] [돌아가기]
2008/03/29 23:21 2008/03/29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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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hovamp 2008/03/29 2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 제 목소리만 작아요! 엉엉엉.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요약

하세가와에 대한 마음과 마츠오가 제공하는 현실적 안정 사이에 갈등하던 우메하는 마츠오의 부탁대로  소학교 사업을 마츠오가 좌지우지하는 동안 하세가와의 주의를 적당히 돌리지만, 끝내 의심을 떨칠 수 없었던 하세가와에게 마츠오와 자신의 속임수를 결국 고백합니다.

그러면서도 절대적인 힘의 차이 앞에 두 사람은 마츠오와 공개적으로 담판을 짓지는 못하지만 우메하는 겉모습은 유지하면서 술수와 속임수로 마츠오에게 대항할 뜻을 밝히고, 그녀를 통해 하세가와는 자신의 이상을 위해 처음으로 현실과 타협하기 시작합니다.

플레이 내용


예고편

그들의 삶에 덮쳐오는 탁류!

하세가와: (연회에 참석한 인사들에게) 이렇게 와주셔서 모두 감사드립니다.

다치바나: (반쯤 냉소, 반쯤 안도하는 표정) 그 멍청이도 머리를 쓸 줄은 아는 건가.

우메하: (하세가와를 보며 속을 내비치지 않는 미묘한 미소)

카나코: (화장한 자기 얼굴을 거울로 보며 작게) 시게하루...

(연회상에 다소곳이 앉은 카나코의 손을 마츠오가 잡으면서 화면 정지)

도쿄의 달 3화에 많은 성원 바랍니다!

감상


의외의 전개였지만 그래서 더 재밌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연회 장면에서 우메하가 마츠오에게 대항할 용기를 내는지는 판정에 맡겼고, 그래서 뱀프님도 정말로 판정에 걸고 싶은지 확인하셨었죠. 제가 스스로 정한다면 우메하가 순수하게 나가는 쪽을 택했겠지만, 어느 쪽이든 재밌겠다는 생각이어서 그냥 판정으로 했습니다. 둘 중 한쪽 결과가 재미없다면 판정에 걸지 않는 게 물론 더 좋은 선택이었을 테지만요.

판정 결과 우메하는 정공법으로 나가는 대신 하세가와까지 흙탕물로 끌고들어가기로 했고, 하세가와도 변하기 시작하는 등 여러모로 재미있는 전개가 되었습니다. 뱀프님 말씀마따나 이제는 "웰컴 투 시궁창!" 하세가와가 변해가는 게 가건물 장면에서도 드러난 그의 이상 때문이라는 점도 재미있고요. 이걸 성장이라고 해야 할까요, 변질이라고 해야 할까요. 둘 사이에 차이가 있기는 한 건지.

어떻게 보면 우메하는 자신이 좋아하는 하세가와에게도, 후원자인 마츠오에게도 솔직하지 못한 게 안습이지만, 그런 불완전하고 인간적인 면모가 또 공감이 가네요. 실제로도 그 자리에서 마츠오에게 곧이곧대로 대항했더라면 지금까지의 안정은 유지하기 어려웠을 테고, 그런 현실과 진심의 갈등 사이에서 자신의 선택을 한 거겠죠.

그래서 저는 우메하가 하세가와의 젖은 웃옷을 팔에 걸치고, 화장은 지워지고 옷은 흐트러진 채 손님들 앞에 나타난 마지막 연회 장면, 게이샤의 완벽한 꾸밈새라는 방벽 없이 많은 사람 앞에서 순간 취약했던 모습이 인상깊었어요. 그 꾸밈없는 모습의 무방비함을 견디지 못하고 익숙한 곳으로 도망쳤다고 탓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건 크건 작건 누구든 매일 하는 선택이기도 하니까요.

1기 후반의 주역이 될 다치바나와 카나코에 대해서도 좀 복선을 넣어둘 수 있었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카나코는 광열님이 안 계셔서 계속 존재감이 미미한 점은 좀 아쉽지만, 반면 광열님, 승한님, 뱀프님의 3인 3색 카나코를 볼 수 있었다는 점도 만만찮은 즐거움.

비교하자면 광열님의 카나코는 굉장히 열정적이고 다정다감한 아가씨, 승한님의 카나코는 약간 푼수끼 있으면서 솔직하고, 뱀프님의 카나코는 절제되고 조용한 외면 아래 폭발적인 감정을 품은 점이  재밌죠. 광열님 카나코는 예술가 기질이 기본적으로 예능인인 게이샤에 어울리고, 승한님의 카나코는 순진한 어린 아가씨답고, 뱀프님의 카나코는 보수적인 시골 처녀다워서 제각기 다른 의미로 어울립니다.

그리고 물론 하세가와와 다치바나의 가건물 장면이 아주 멋졌습니다! 다치바나의 예리한 통찰, 하세가와의 순수한 혈기, 그리고 동종혐오라고밖에 할 수 없는 상호 반감. 어떻게 보면 구제불능의 이상가라는 점에서 둘은 서로 닮았으니까요. 한쪽은 가망이 없어진 이상을 포기하느니 자신의 존재를 부정했고, 또 한쪽은 자신의 순수를 포기해가면서 이상을 이루려 하고.

어쩔 수 없는 사상적, 심정적 앙숙이면서도 상황이 달랐으면 최고의 친구가 될 수 있었을, 그리고 적으로서도 남이 못하는 따끔한 질책과 충고를 할 수 있는 두 사람이 (아.. 자꾸 채찍질이라고 하고 싶다) 극적 긴장을 끌어가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여성으로서, 그리고 사회적 약자로서 더 현실적이고 조심스러운 우메하와 카나코가 둘을 이끌고 조절해주면서 극에 뉘앙스와 깊이를 더하는 것도요.

멋진 플레이를 선사해주신 승한님과 뱀프님 두 분께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2008/03/22 20:09 2008/03/2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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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hovamp 2008/03/23 1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제 목소리가 작게 녹음되는군요. ;_;
    이는 필시 담요맨의 음모가 개입된 것입니다. (...)

    • 로키 2008/03/24 0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알고 보니까 녹음은 전부 마이크를 통해서 되더라고요. 제가 기침하거나 하느라 마이크 뽑은 동안은 아예 녹음이 안 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마이크를 한껏 줄이니 전원 목소리가 다 줄었..(..) 그러니 마이크에 직접 대고 얘기하는 제 목소리가 제일 클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뱀프님 목소리가 승한님 목소리보다 작은 건 그걸로는 설명이 안 되지만..(역시 담요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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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유신 직후의 일본을 배경으로 한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 시리즈 도쿄의 달 1화 '움직이는 시간'입니다.

도쿄의 달 1화

연회상에서 우메하는 그녀의 단나이자 하세가와의 후원자인 마츠오 다이키가 하세가와 마츠오 합체변신판 하스오 하세가와의 이상을 지원해주고 있다기보다는 마츠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려는 것을 알고 갈등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도, 또 카나코 앞에서도 내색은 하지 않습니다.

한편, 하세가와는 갖은 고생 끝에(..) 마침내 갖힌 방에서 탈출해 집에서 도망칩니다. 마츠오의 심부름으로 며칠 출입이 없었던 하세가와를 찾으러 온 우메하는 하세가와의 부모에게서 사정을 듣고, 가게로 돌아갔다가 문앞에서 웅크려 졸고 있는 가출 강아지 하세가와를 발견하지요. 하세가와는 당분간 집에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지만, 우메하는 카나코에게 하세가와의 가족에게 연락하라고 지시합니다.

하세가와를 씻기고 옷 갈아입힌 후, 마츠오가 찾아와 마츠오는 우메하가 술시중을 드는 동안 이야기를 나눕니다. 자꾸 하세가와가 생각하는 것보다 소학교 계획을 늘리려는 마츠오를 보고 우메하는 슬쩍 나으리는 정말 관대하시다며 최소한 건물을 짓는 비용은 마츠오가 대는 방향으로 분위기를 몰아가는 한편, 하세가와는 마츠오의 계획은 자신의 이상과 다르다는 것을 조금은 깨닫습니다.

우메하가 붓글씨를 쓰며 하세가와와 전통과 신문물의 갈등에 대한 우회적인 대화를 나누던 중 하세가와의 집에서 보낸 사람들이 들이닥치고, 왜 자기가 있는 곳을 알렸냐며 화를 내는 하세가와에게 우메하는 대업을 이루려는 사람이 가족을 피할 생각이냐며 일침을 놓습니다. 그 말에 하세가와는 우메하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다시 감금당합니..(...))

지역 유지들을 부른 연회에서 마츠오는 하세가와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고위층 자제들을 위한 사립 학교를 세울 뜻을 밝히고, 삼촌 대신 참석한 다치바나는 개혁파의 논리적 허점을 비판하지만 우메하가 주의를 돌리는 바람에 기세가 꺾인 채 나와버립니다.


그런 다치바나를 카나코는 쫓아나오지만, 그는 자신은 살아돌아오면 안 되었다고, 아니 이미 네가 아는 시게하루는 죽어버렸다고 자책합니다. 카나코는 그래도 약속을 지켜주어서 고맙다고 간신히 말합니다.  각자 귀가한 다치바나와 카나코는 몇 년 전, 다치바나가 신센구미가 되려고 떠날 때 카나코가 검에 술을 달아주며 꼭 살아돌아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일을 괴롭게 떠올립니다.

2화 예고편

마침내 세워진 학교 설립 계획!

하세가와: (친구이며 절의 주지인 쿠로다 겐코에게) 부탁이네! 이 절에서 떠나주게.

(눈을 감는 쿠로다 겐코)

다치바나: (건립 계획서를 보고 피식 웃더니 병째로 술을 마신다)

우메하: 하세가와상! (하세가와를 끌어당기며 입을 맞춘다)

도쿄의 달 2화를 기대해 주세요!

감상

오늘도 정말 재밌게 했습니다. 스카이프로 플레이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녹음을 하기도 했는데, 용량이 크고 (2시간 30분이 MP3로 약 67MB) 분량도 있어서 10분 가량만 잘라서 올렸습니다. 사용한 녹음과 편집 프로그램은 Audacity입니다. 마이크 음량을 좀 줄였는데도 제 목소리만 너무 튀어서 다음에는 더 줄여야겠더군요. 대체로 음량은 저 > 승한님 > 석한님 순서? (..)

비중은 우메하와 카나코 2, 다치바나와 하세가와 1이긴 했는데 카나코의 참가자분인 광열님께서 안 계시기도 했고 다음 화에 나올 우메하의 중심 갈등에 하세가와가 중요한 역할을 해서 결과적으로는 우메하와 하세가와가 비중 2처럼 나왔죠. 그래도 그나마 카나코와 다치바나를 끝에서 좀 살려서 어느 정도는 비중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1기 끝에 큰 역할을 할 두 사람이니 지금부터 복선을 넣어놓는 게 좋겠죠.

카나코는 이번 화를 비중 1로 바꾸고 다른 화 중 하나를 비중 2로 넣는 것도 한 방법이지 않을까 해요. 광열님이 다음 주에 오실 수 있다면 다음 화에 카나코가 비중 2인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인간성과 일신의 안락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메하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하세가와 못지않게 카나코하고도 관련이 깊으니까요. 시범 방영 때 카나코를 이용하려고 했던 모습도 있고, 하세가와보다 카나코를 오래 알았고 카나코는 일종의 피보호자 위치이기도 하니까요.

비중 3인 주인공이 없기도 했고 사람 수도 전보다 하나 줄어서 비교적 짧게 끝난 1화였지만 내용도 충실했고 2회 준비도 깔끔하게 한 것 같습니다. 우메하의 갈등이 다음 화에 어떤 식으로 결판이 날지, 그리고 남은 1기 동안 우메하와 다른 주인공들이 그 결과에 어떤 식으로 대응하며 변해갈지 기대되는군요. 모두 다음 금요일에 뵙겠습니다~
2008/03/15 07:33 2008/03/15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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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sdee 2008/03/15 16: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헤헤;

    뭔가 귀족가 자제를 위한 쪽으로 변질된 면은 있지만, 하세가와의 신식학교 염원은 이뤄지는 거려나요.. :) 암튼 우메하와 하세가와의 클라이맥스를 기대해보죠. +_+)

    @ 왠지...
    우메하는 맨날 술만 따르고,
    다치바나는 맨날 술만 퍼마시고,
    하세가와는 맨날 집에 갇히는 듯한 느낌이... (퍽!)

  2. Asdee 2008/03/15 16: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녹음된 버젼, 자동 반복재생 되네요.(무한루프~)

  3. 로키 2008/03/15 1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불행히도 그 말씀이 맞는 듯합.. 안습의 일행.. 아니 일행은 아니지. 주연 일동이었습니다. 쥬크박스 무한루프는 텍스트큐브 게시판에도 문의했는데 끄는 설정이 없다고 하더라고요..;_; 어제 초저녁에 틀어놓고 깜박 잠이 들었는데 2시간 후에 일어나 보니 여전히 무한 재생 중..(..)

  4. 이방인 2008/03/16 0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디어 아이돌 로키(...?...)님의 목소리를 들어봤습니(...)
    라기보다 역시 말로 하는건 OR보다는 TR에 가까운 느낌이군요.
    역시 부끄러워서 이런식으로 하는 목소리 플레이에서는 몰입하기도, 연기하기도
    매우 힘들듯 합니다.
    특히 이런식으로 남자 목소리에 여자 캐릭터를 플레이 하는걸 상상해보면 온몸의
    털이 쭈뼛 하고 곤두서는군요(...)
    취향이 확실하게 갈리는거 같아요. OR이 좋으냐, TR이 좋으냐 하는건 말이죠.

    • 로키 2008/03/16 0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예, '자 그러면'으로 시작해 녹음 첫머리에 나오는 PD 목소리가 접니다. (진지) 뭐 사실 TRPG에서 얘기하는 건 '연기'라기보다는 '서술' 개념이어야겠죠. 실제로 남자분이 카나코 한 것도 있는데 그것도 올려볼까요? (..)

      OR하고 TR은 뭐 일장일단이 있는데, 속도 면에서는 말로 하는 게 확연히 좋죠. 집중도도 높고.. 반면 자세하고 실감나는 묘사와 행동 쪽은 OR이 나은 것 같아요. TR로 할 때는 요약해서 '말하는 식'으로 하게 되고, OR로 할 때는 하나하나 자세히 '글쓰는 식'으로 하게 된다는 점도 재밌고요. 그런 면에서 전에 말씀하신 대로 서로 다른 놀이라고 봐도 좋을 듯.

    • Wishsong 2008/03/16 0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로키님 거짓부렁쟁이! 거짓부렁쟁이!(...)

    • 로키 2008/03/16 05:17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니 왜염! 하긴 뭐, ORPG와 TRPG는 서로 전혀 다른 놀이까지는 아니려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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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이번 금-토요일 심야-새벽 스카이프 플레이에는 뭘 할까 이것저것 얘기하다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으로 시리즈물을 해보자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배경으로는 처음에 승한님이 늘 노래를 부르시는 트랜스휴먼 스페이스 (Transhuman Space)를 제안하셨는데, 뱀프님은 썩 마음에 차지 않으셨죠. 그래서 전에 쓴 놀이와 교섭 글을 활용해서 승한님은 왜 THS를 바라는지, 뱀프님은 왜 별로 원하지 않는지 얘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그 결과, 재밌게도 승한님은 THS 배경에서 가장 매력을 느끼신 게 인류의 격변기에 일어나는 변화와 안정 사이의 갈등이라고 하셨습니다. 뱀프님은 그런 주제는 좋지만 THS 같은 하드 SF는 익숙하지 않아서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하셨고요. 저도 하드 SF는 별로 익숙하지 않아서 대신 공통 관심사인 '격변기의 인간'을 다룰 수 있는 소재를 같이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얘기 나온 것은 나치당 집권기의 독일, 노예 해방기의 미국 남부, 고려 조선 왕조 교체기 등이었는데, 이런저런 제안을 주고받다가 결국 일본의 메이지 유신으로 결론을 냈습니다. 고증에 치이지 않게 판타지나 대체역사는 어떻겠느냐는 얘기도 했는데, 역시 현실 배경이 다들 더 끌렸죠. (어차피 놀이로 하면 모두 다소간에 대체역사긴 하고..(...)) 제가 메이지 유신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제일 주저했는데, 생각해 보니 제 이유는 지식이 없다는 것뿐이었으므로 저보다 좀 더 아는 게 많은 다른 두 분에게 도움을 많이 받아가며 하기로 했습니다.

인물 제작

막 메이지 유신을 배경으로 하기로 정했을 때쯤 광열님이 들어오셔서 플레이에 끌어넣고 시리즈 주인공을 제작했습니다. 이때 동환님의 규칙 요약에 많은 도움을 받았죠. PD (진행자)를 따로 정하지 않고 일행 개념 없이 전원이 주인공을 만들고, 자기 주인공이 지금 안 나오는 분은 임시 PD나 조연을 맡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하다 보니 자기 주인공이 안 나와도 다들 진행 중인 장면 가지고 만담 웃고 떠들며 제안하기에 바빴고요.

그렇게 얘기해서 나온 네 인물은 고향에 신식 소학교를 지으려고 하는 하세가와 준이치로 (승한님), 도쿄에서 요정을 운영하는 발 넓은 게이샤 우메하 (로키), 신센구미 출신으로서 비겁하게 살아남았다고 자책하는 다치바나 시게하루 (뱀프님), 그리고 다치바나의 옛 약혼녀이자 우메하에게 교육받으며 게이샤의 길을 걸을까 고민 중인 아가씨 유리 카나코입니다. 그리고 인물 사이의 관계와 주제 의식의 연관성을 생각해 배역 비중의 흐름을 정했고요.

제작을 하는 데 시간이 꽤 들었지만 시간이 좀 있어서 전원 비중 2짜리 첫 시범 방영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시범 방영

고향에 소학교를 지으려고 동분서주하던 하세가와는 우메하를 통해 우메하의 단나이며 정계의 명사인 마츠오 다이키를 소개받습니다. 마츠오는 지금 절이 있는 터를 소학교 터로 제안하고, 하세가와는 당황하면서도 일단 일이 진척을 보이는 데 안심합니다. 하세가와와 우메하는 서로 이끌리는 것을 느끼지만 내색하지는 않고, 마츠오는 카나코에게 노골적으로 관심을 보입니다.

자기 단나가 카나코에게 관심을 보이는 관심을 눈치챈 우메하는 마츠오의 호의를 더 얻을 생각으로 카나코에게 마츠오의 밤시중을 들 것을 요구합니다. 카나코는 우메하의 단나와 그럴 수는 없다고 거절하고, 낮에 하세가와를 보던 우메하의 시선까지 들먹이자 우메하는 성질을 못 이기고(..) 카나코의 뺨을 때려 얼굴에 상처를 낸 관계로 밤시중 건은 무위. 머리를 식히라며 우메하는 카나코를 광에 가둬버립니다.

하세가와의 아버지는 아들이 하고 다니는 일에 대해 분개하며 소학교를 세우겠다는 짓은 당장 그만두라고 윽박지릅니다. 하세가와는 근대화를 옹호하며 계속하게 해달라고 애원하지만, 아버지는 쓸데없는 짓 은 그만 하라며 하세가와를 방에 가둬버립니다. (광열님 말씀마따나 다들 갖히고 있어요! (...))

한편, 다치바나는 우메하의 요정에서 술을 마시다가 술값이 모자라다며 신센구미에 있을 때 찼던 낡은 칼을 빼앗깁니다. 처음으로 무력감이 아닌 의욕을 보이며 칼을 돌려받으려고 덤볐다가 흠씬 얻어맞고 칼을 뺏긴 그는 거리에 처량하게 혼자 앉아 자기는 죽는 게 나았다고 죽은 옛 조장에게 읊조립니다.

새벽에 광에서 풀려나온 카나코는 칼을 되찾으러 몰래 들어온 다치바나와 마주칩니다. 전에도 몇 번 스쳐갔지만 서로 모습이 달라져서 설마 했었던 두 사람은 눈물로 화장이 다 지워진 카나코, 오랜만에 술병을 내려놓을 만큼 의욕이 생긴 다치바나를 달빛 속에서 서로 알아봅니다.

네가 죽은 줄 알았다며 오열하는 카나코에게 다치바나는 나 같은 놈 때문에 울지 말라며, 돌이킬 수 없이 변해버린 두 사람과 세월을 느끼고 돌아섭니다. 거리에 서서 혼자 우는 카나코를 보고 사태를 짐작한 우메하는 카나코에게 진정한 마음을 주는 건 아무 쓸모도 없다고 충고합니다.

제 1화: 움직이는 시간 예고편

도쿄에 불어닥치는 변화의 바람!

(창문으로 탈출하려다가 굴러떨어지는 하세가와)

우메하: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며) 물론입니다, 나으리.

(몰래 나오려던 하세가와, 문지방을 넘자마자 개가 마구 짖어대는 바람에 방안으로 도주.)

카나코: (다치바나의 검에 술을 달아주며) 꼭 살아돌아와야 해. 약속이야!

다치바나: (술이 달린 검을 바라보며 회한에 잠긴 모습)

(방에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하세가와)

우메하: (하세가와 집 대문 앞) 하세가와상 계신지요?

도쿄의 달, 그 대망의 1화에 많은 성원 바랍니다!

감상

뭐 일단, 재밌었습니다. 무척이나 즐거웠어요. 메이지 유신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잘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결국 중요한 건 당대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상황과 인물이더군요. 인물들이 다들 생생하고 참가자끼리 호흡이 잘 맞아서 아주 재밌게 할 수 있었습니다.

안방극장 대모험 원래 규칙의 역할 분담은 고정 PD가 있고 나머지는 참가자인 아주 고전적인(?) 방식인데, 제가 배경 시대를 잘 몰라서 PD를 잘 할 자신이 없기도 했고 또 이 규칙에 굳이 고정 진행자가 필요할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때그때 하고 싶은 사람이 하는 방식으로 했는데, 나름 괜찮았던 것 같아요. 어차피 일행을 이루기는 어색한 인물들이고, 자기 인물이 안 나올 때 PD를 볼 수도 있으니까요.

사실 특정 장면에 PD나 참가자로서의 역할이 없다고 해도, 어차피 이런저런 제안을 던지며 '이런 인격파탄자!' '카나코가 불쌍해~' '우메하라면 쇠몽둥이로 다 때려눕히고 하세가와 구출을..' 등등 떠드는 것 자체가 진짜 재밌었습니다. 한 마디로 TV 보면서 웃고 떠드는 기분이었어요. 게다가 자신이 원하는 TV 프로, 스스로 만들고 움직이는 인물이라는 재미까지 더해서 말이죠. 채팅이 아닌 음성 플레이여서 더 집중도가 높은 점도 있었겠고요.

어쨌든 안방극장 대모험은 이런저런 기회에 해보았지만 한 번도 1기를 마쳐본 적은 없어서, 이번에야말로 하나의 시즌을 마쳐보고 싶네요. 즐거운 플레이에 함께해주신 광열님, 뱀프님, 승한님께 감사드리고, 다음 주에도 다같이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08/03/08 09:17 2008/03/08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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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ishsong 2008/03/08 09: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고편에 있는 저 괄호는 무엇입니까!!!!!!!!!!!!(버럭)

    • 로키 2008/03/08 0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훗훗 나머지 두 분은 저를 지원하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므로 3:1로 가결! (땅땅땅)

  2. 소년H 2008/03/08 1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열티! 로열티! ...아니 이게 아니고 (...)
    안방극장...이야 PD가 없이 공동 제작해도 그렇게 어렵지 않은 룰이긴 한데, 딱 하나 문제는 예산 관리일 듯.. 그리고 출연진이 시대 배경을 잘 알면 원래 제작자는 무지한 법입니다 (?)

    • 로키 2008/03/10 0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희 제작사가 돈이 없어서..(흑흑) 예산은 그냥 원래대로 편성하고 그때그때 PD보는 사람이 깎으면 되더라고요. 문제는 전 PC가 있어도 왠지 악역이지만..(..)

  3. Asdee 2008/03/08 23: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정말 재미있게 플레이했어요^^ 다치바나 씬 등에서 특히(헤헷).

    근데 금요일 밤은 12시 넘어 들어오는 편이고 아예 못 들어올 수도 있으니, 다음주부터는 일단 저 없더라도 시작하고 계세요; 가능한한 참석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마이크도 갖추는 쪽으로.. 핫핫.)

    • 로키 2008/03/10 04:23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시 다치바나 패는 게 재밌으셨군요..(??) 말씀대로 늦으실 때면 다치바나는 저희끼리 먼저 때리고 있죠. 아, 그리고 이제 일광 절약 시간제라서 해보자 클럽 참가도 한결 쉬워질 것 같습니다. 시작 시간이 6시가 아니라 7시가 되었거든요.

  4. Asdee 2008/03/11 0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주 토요일에 부산 출장이라, 금요일 플레이는 아예 못 올듯 싶네요. 카나코는 공동 PC로 두고 진행하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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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한님과 지난주에 한 꼬마 미우 구하기 단편을 완결했습니다. (2 세션이 걸렸으면 단편은 아니려나요?) 1편은 여기에 있습니다.

요약

비행기 밀항까지는 성공하지만 곧 발각당한 미우는 티엔이 시키는 대로 망명 신청을 합니다. EU에 도착해서 티엔이 있는 이식물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러 가는 이송 과정에서 미우는 납치당해 빼돌려지고, 베트남 정보부 소속의 부이치운에게 사건의 진상을 듣게 됩니다. 미우는 뇌하수체에서 귀중한 약물이 될 성분을 분비하는 실험체이며, 티엔은 태평양 전쟁 후 미수거 상태에서 도난당했다가 프로그램을 조작당해 미우를 빼돌리는 데 이용당했다는 진상을...

티엔은 조국의 명령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이 프로그램 조작이었다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하고, 미우는 자신을 속인 티엔을 원망합니다. 티엔은 미우가 듣지 못하게 부이치운과 얘기한 결과 5년 후 미우가 다 자라고 약물이 완성되면 미우는 뇌하수체를 제거당하고, 과한 비용 문제로 새 뇌하수체 이식 없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크게 동요합니다.

부이치운은 미우를 데리고 이동하면 발각당하기 쉬우니까 티엔에게 미우를 접선 장소로 데려가라는 명령을 내리고, 미우를 찾고 있을 EU 경찰을 피해 접선 장소로 바로 이동하는 프로그램을 티엔에게 입력합니다. 티엔은 새 프로그램에 의지력으로 잠시 저항하면서 미우에게 조금 있다가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믿지 말라며, 접선 장소가 아니라 EU 경찰에게 가라고 당부합니다. 그리고 꼭두각시 인터페이스를 스스로 망가뜨리지요. 이윽고 프로그램에 장악당한 티엔은 미우에게 경찰을 피해 접선 장소로 가라고 명령합니다. 미우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몰라서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EU 경찰에게 발각됩니다.

망명 신청을 법원에서 심사한 결과 미우는 EU법에 따라 처분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닌 2등 시민의 권리를 인정받고, 베트남 정부는 5년 후 미우에게 새 뇌하수체 이식 수술을 해줘야 한다는 판결이 나옵니다. 이 사건이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져서 기부금만으로도 수술비는 충당하고도 남게 되지만요.

마지막 장면에서 미우는 이후 5년 동안 자신의 권리를 보호해줄 법원 지정 후견인과 대면합니다. 처음 보는 사람을 보고 의아해하던 미우는 이윽고 바이오쉘에 다운로드된 티엔을 알아보지요. 기쁜 재회는 곧 티엔의 무릎에 웅크려 행복하게 자는 낮잠으로 이어집니다. (...)

감상

지난 화에 진행자 없이 하다 보니 어느 쪽도 외부 세계에 대한 권한이 없어서 진행이 느려진 현상 때문에 이번 화에는 번갈아가면서 진행자 역할을 맡고, 이의를 제기하거나 추가할 것이 있을 때, 혹은 진행자도 잘 모르겠을 때 페이트 챠트를 사용하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덕분에는 이번에는 훨씬 속도감이 있었습니다. 반드시 전통적인 의미의 진행자가 필요하다기보다는 서술권에 공백이 생기면 곤란하다는 걸 느꼈달까요. 그런 의미에서 미딕은 진행자 없이 할 수는 있지만 진행자가 없어서 생기는 서술권의 공백을 충분히 채운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이번 화에서 제일 멋졌던 진행은 승한님이 하신 부이치운의 폭로 장면이었습니다. 부이치운을 티엔의 옛 동료로 설정하고 티엔의 과거를 만들어서 티엔의 극적 중심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었고, 미우의 죽음에 대한 갈등을 설정해서 티엔에게 '조국에 대한 복종'이라는 AI다운 (그리고 인간다운) 가치와 '저항할 수 없는 생명 보호'라는 인간다운, 그러나 AI답지 않은 가치 사이에 충돌을 유도한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가장 재미있었던 RP는 티엔의 인격 (AI격?) 분열 부분. 프로그램에 저항하는 AI라는 줄거리는 흔하긴 하지만 시사점이 많은 갈등이고, 한편으로는 AI의 프로그램은 인간이 받는 명령에 대한 좋은 상징이기도 해서 흥미롭죠. 자신이 조금 있다가 무슨 말을 하든 믿지 말라고 호소하다가 프로그램에 저항할 수 없게 되자 싹 말이 달라지는 게 참 재밌었습니다.

제일 조마조마했던 대목은 티엔이 프로그램에 저항하는 판정을 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실패하면 미우가 죽을지도 모르니까요. 지난번에도 얘기했던 것이지만, 가상현실을 표현하는 규칙은 극적 욕구를 다루지 않아서 실패가 성공보다 재미없어지는 판정 스트레스가 종종 생기더군요. 이번 화에도 그런 충돌을 꽤 심하게 느꼈습니다. 가상현실 표현 규칙이 극적 욕구를 받쳐준다기보다는 극적 욕구에 저항한다는 인상이었달까요.

최종적으로는 저야 원하는 해피엔딩이 나와서 좋았지만, THS의 비정함을 보여주는 미우의 죽음을  은근히 바라셨던 피도 눈물도 없는 (?!) 승한님은 어떠셨을지 모르겠네요. 극적 흐름이나 요소를 다루는 규칙이 없으면 참여자 사이에 생기는 극적 욕구의 충돌을 해결하는 것은 순전히 참여자 사이 의사결정 구조에 맡겨야 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리고 인간관계의 연장선인지라 서로 적당히 양보하거나 포기하기도 하지요. 이번에 승한님이 그러셨듯... 그런 의미에서 모두의 극적 욕구를 끌어내고 최종 전개에 반영한다는 점이 극을 직접 다루는 규칙의 중요한 효용이 아닌가 합니다.

가상현실 표현과 극적 요소 조작이라는 두 목표 사이에 생기는 긴장 관계가 또 드러난 부분이라면 승한님과 제가 판정을 보는 관점의 차이였습니다. 저는 판정을 갈등 판정 개념으로 보고 하나의 극적 결과가 판정으로 정해졌으면 그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판정을 하는 건 판정의 의미를 희석한다고 보았지만, 승한님은 행동 판정 개념으로 보시고 판정은 극적 결과 (미우가 죽느냐 사느냐)가 아닌 단일 행동의 결과 (미우가 티엔의 새 명령에 넘어가느냐 안 넘어가느냐)를 정하는 것으로 보시는 것 같습니다. 물론 미딕도 행동 판정 규칙이니까 규칙상 옳은 쪽은 승한님의 관념이었지요.

전반적으로 재미있게 한 플레이였고 개인적으로는 신뢰와 인간성 등의 문제를 다룬 전개도 좋았습니다. 미우도 무척 귀여웠고, 티엔 RP도 재밌었고요. 다만, 판정이 때로 재미를 지원한다기보다는 방해한다는 느낌이 드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지난 화에서도 얘기했듯 의외성을 만들어낸다거나 무작위 키워드로 발상을 자극하는 규칙은 도움됐지만요. 예를 들어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납치당한 것도 d10을 굴려서 나온 장면 중단의 결과였죠. 무작위성 없이는 생각하기 어려웠을 전개가 나온 점은 무척 유용했다고 봅니다.

잡상

아마 전쟁 중 프로그램 손상이랑 도난 후 조작, 부이치운이 한 패치와 그에 대한 저항, 그리고 스스로 꼭두각시 인터페이스를 망가뜨린 여파 등등으로 티엔의 프로그램은 골병이 꽤 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우와 대면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프로그래밍에 구멍이 많이 났다는 언급도 그런 의미에서 한 것입니다.

손상된 프로그래밍을 재구성해서 복구해 주겠다는 제안도 있었겠지만, EU에서는 SAI도 인권이 있으니까 티엔 본인이 거부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이제 자기 프로그램에 대한 외부 개입은 되도록 줄이고 학습 루틴으로 스스로 배워가겠다는, 말하자면 인간성에 한 발짝 다가가겠다는 티엔의 결심이랄까요. 미우를 만나고, 미우의 생명을 구하려고 명령과 프로그래밍까지 거부한 사건은 그만큼 그를 많이 변하게 한 것 같습니다.

베트남에 대한 티엔의 애국심이나 나노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이 변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내지는 그쪽 프로그래밍까지 손상되지는 않았을 것 같지만), 적어도 유럽 체류는 자아 개념부터 정치적 신념까지 모든 것을 곰씹어볼 기회는 되겠죠. EU의 좌파 정치활동에 가담한다든가 지능 향상 동물과 AI의 권리 신장 활동을 하는 티엔을 생각하는 것도 나름 재밌군요. 이것이야말로 THS! 라는 느낌이기도 하고..^^
2007/11/27 00:33 2007/11/27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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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dowan 2007/11/30 2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즐겁게 읽었습니다. 해피엔딩 해피엔딩!!
    역시 실패가 재미없어지는 문제를 다른 식으로 해결하면 더 즐거운 플레이가 될거 같습니다.

    • 로키 2007/12/01 01:52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역시 해피엔딩은 좋은 것 (?)

      실패를 즐겁게 하는 문제는 사실 갈등 판정의 개념을 도입하기만 해도 많이 해결되는 문제 같고, 그건 판정 시스템과 상관 없이 적용할 수 있겠죠. 다만 가상현실 판정이라면 가상현실을 손상하는 면이 있을지도요. 예를 들어 도약 기능은 절벽을 뛰어서 건널 성공 확률을 얘기하지 절벽을 건너뛰는 데 실패하면 어떻게 될지 정하는 의미는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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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휴먼 스페이스 (Transhuman Space) 배경으로 미딕 (Mythic) 규칙을 사용한 플레이를 해보았습니다. 주인공은 다음 두 명입니다.

새끼고양이

냐~

하나는 지능 향상 아기고양이 미우, 또 하나는 현재 미우의 뇌에 이식된 인공 지능 이식물입니다. 정말 하드 SF나 동화가 아니면 어려울 것 같은 엉뚱하면서도 개인적으로 재미있는 설정이었습니다.

이야기는 베트남의 한 실험실에 있던 지능 향상 고양이 미우 (처음 시작했을 때는 '키티')가 낯선 차에서 깨면서 시작합니다. 머리는 아프고 눈앞에는 느닷없이 인터페이스 디스플레이가 보이는 키티가 어리둥절해하는 동안, 차량에 폭탄이 설치된 것이 발견되면서 모두가 대피해서 나옵니다. 그때 갑자기 머릿속에서 낯선 목소리가 도망가라고 소리치고, 키티가 머뭇거리자 강제로 몸을 조종해서 공항으로 도망시키지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티엔 바 딘. 태평양 전쟁 참전용사로, 고도의 지능과 자아 개념을 갖춘 인공 지능인 그는 키티에게 멋대로 미우라는 새 이름을 지어준 뒤 환태평양 사회주의 연합의 이념과 미우 자신의 생명을 위해 유럽 연합으로 도망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미우는 마음씨 좋아 보이는 유럽 관광객 가족을 발견해 데려가 달라고 설득하는 데 성공하지만 세관에서 압수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미우는 도망쳐서 비행기 하나로 몰래 숨어들지만 미우를 쫓는 사람들은 비행기 이륙을 멈추고, 다시 뛰쳐나와서 출발 직전인 유럽 연합행 비행기를 발견해 화물칸이 닫히기 직전에 뛰어듭니다. 마침내 무사히 유럽 연합으로 향하게 된 미우는 티엔이 틀어주는 군가를 들으며(?) 잠이 듭니다.

재밌게 한 플레이였지만 시간은 꽤 걸렸습니다. 특히 진행자 없이 돌리다 보니 하나하나 질문하고 판정하느라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죠. 그런 면에서 진행자를 포함한 서술권의 확실한 역할 분배는 시간 절약의 이점이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일단 누군가 권한을 가지고 서술한 것에 수정이나 추가하는 것과, 어떤 상황이 나왔는데 어느 쪽에도 서술권이 없어서 서로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은 에너지 소모나 처리 시간 면에서 크게 다르니까요.

그래서 돌아가면서 한 장면씩 진행을 하고 상대방이 이의를 제기하거나 추가할 것이 있을 때만 미딕의 상황 판정 규칙을 사용하는 것도 제안했습니다만, 그렇게 하면 이의나 추가의 빈도에 따라서는 사실상 전통적 진행자 구조와 다를 게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하나 느낀 점은 요즘 생각하는 것인데, 전에 판정 스트레스 글에서 썼듯 가상현실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둔 규칙과 극적 현실을 중점적으로 표현하는 규칙의 차이입니다. 전자는 어떤 결과를 바라면서 판정을 하되 그 가상현실의 물리 혹은 논리 법칙에 대비해서 성공 여부를 판정하고, 후자는 물리나 논리 법칙과 상관없이 판정 성패는 극적 결과를 정하고 물리적, 논리적으로는 참여자가 모두 공감만 하면 괜찮은 방식이 보통인 것 같습니다.

미딕은 판정의 극적 의미와 상관없이 그 판정의 논리적 확률에 비교해서 판정한다는 점에서 가상현실 표현이 기반인 규칙입니다. 그러한 논리 확률과 바라는 극적 결과 사이에 괴리가 있다는 점에서 판정 스트레스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 점은 어떻게 보면 모든 가상현실 판정과 다르지 않죠. 또 미딕에서는 그 확률을 참가자가 스스로 정한다는 면에서 바라는 극적 결과가 일어나게 확률을 높이는 압력과 자신이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확률에 맞추는 압력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우가 화물칸에 뛰어드는 판정은 확률상 굉장히 어려웠지만 저와 승한님 둘 다 성공을 바라는 판정이었는데 거의 실패할 뻔했었죠. '미우가 무사히 탈출한다'하고 '미우가 실패해서 잡혀 죽는다'하고 극적 만족감 면에서 동등할 리가 없는데도 가상현실을 엄격하게 따라가자면 바라지 않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이 가상현실 판정의 근본적인 모순이 아닌가 합니다.

반면 장점이라면 실패하면 해악이 따른다는 긴박감, 그리고 참가자가 예상하고 바라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의외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두 가지는 다른 방법으로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요즘 나오는 규칙이 흔히 그렇듯 미딕도 완전히 가상현실에만 의존하지는 않습니다. 판정 확률을 높일 수 있는 극점수가 그 대표적인 예죠. 실제로 미우가 화물칸에 뛰어드는 판정도 극점수를 소모해서 간신히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극점수와 같은 규칙은 이처럼 가상현실과 극적 욕구의 괴리를 어느 정도 좁히는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판정 외에 미딕의 다른 일면은 재미있게도 전혀 가상현실이 아닌 극적 현실 제조만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무작위 사건이 발생할 때면 주사위를 굴려서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 적수에 대한 신뢰'라든지 '새로 등장할 인물: 법적 방해자' 등 새로운 상황을 무작위로 제조합니다. 이건 확률을 조작하는 규칙 없고, 앞뒤를 봐서 논리가 맞지 않으면 다시 굴려도 된다는 점에서 판정이라기보다는 생각을 자극하는 창의적 제약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상이 미딕을 사용한 첫 플레이에 대한 제 감상입니다. 2부에서는 미우의 이야기를 완결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재밌는 플레이 함께 해주신 승한님께 감사드립니다~
2007/11/21 01:07 2007/11/21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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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ishsong 2007/11/21 08: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면과 이야기 자체가 참가자들의 서술로 모든 것이 만들어지고 참가자에 의해 움직이는 만큼, 참가자들의 '이야기 구현 욕구'가 최대한으로 충족되는 느낌이었어요(성공/실패는 둘째로 치고). 또한 단순한 '이야기 만들기'로 그치지 않도록 참가자들이 생각해 내는 이야기들의 실현 가능성을 판정하는 페이트 차트와, '참가자들이 예측하거나 제어할 수 없는 외부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실시하는 랜덤 이벤트 등이 무척 인상 깊었죠.

    아쉬웠던 점은 일단 로키님이 지적하신 시간 걸리는 문제, 그리고 미우가 티엔에게 너무 쉽게(?) 설득되었던 것 같아요. 조금 더 강하게 으르고 어르는 게 괜찮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건 제가 아무 생각없이 'yes'를 한 게 가장 큰 원인이겠죠;

    그리고 한가지 에러 플레이를 발견했습니다. 판정시 십의 자리 숫자-일의 자리 숫자가 일치하게 되면(11, 22, 33....) 무작위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걸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무작위 사건은 미딕의 서술에 흥미를 더해주는 만큼, 다음번에는 잊지 않고 챙겨야겠습니다.

    • 로키 2007/11/22 0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확실히 참가자에게서 직접 서술이 나오니까 진행자에게서 먼저 나오는 것보다 참가자의 의견이 직접 반영되는 면은 있네요. 참가자만 있을 때 서술권의 공백이 생겨서 시간이 걸리는 문제와 확률 결정의 역설적 동기부여 부분은 좀 아쉽긴 하지만, 말씀대로 이야기를 만드는 데 많은 효용이 있는 도구인 것 같아요.

      미우의 반응은 상황상 적절했던 것 같은데요, 개인적으로는. 일단 지능이 어린아이 수준인 새끼고양이가 불확정한 상황에 내던져진 상태에서 의지가 확고한 성인이 너의 목숨이 위험하다면서 지시를 내렸으니 자연스러운 반응 아닐까요? 게다가 꼭두각시 기능까지 감안하면 이건 거의 스톡홀름 증후군..(..)

      아, 저도 그 규칙을 잊고 있었네요. 다음번에는 적용해보죠.

  2. 백휘광영 2009/12/14 17: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딘가에서 링크를 보고 흘러들어와서 잘 보았습니다.
    상당히 흥미로운 시스템이군요

    여담이지만 일반적으로 국제선에 탑승할 동물들에 대하여는 "검역증명서"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셨다면 조금 혼돈이 덜 하셨을것 같네요^^

    잘 보았습니다.

    • 로키 2009/12/23 08:56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하 그렇겠네요~ THS 세계에서는 지능향상 동물은 어느 정도 인권을 인정받기는 하지만 그래도 검역증명서는 필요할 수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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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페인 제목을 '포도원의 제다이'에서 '스타워즈: 공화국의 그림자'로 바꾼 수상한 제다이 캠페인이 4주간의 외도 외전을 마치고 본편으로 돌아왔습니다.

요약

아우터 림으로 출발한 일행은 만달로리안 접경지대에서 만달로리안의 대대적인 침략이 있어서 여러 행성에 난민이 대거 발생했다는 보고를 듣고 난민이 많이 유입된 행성 중심으로 여정을 재편성합니다. 만달로리안 침입 지역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혹시 만달로리안이 움직이는 이유도 파악할 수 있다면 일거양득이겠지요.

너무 오랜만에 원래 인물과 캠페인을 잡아서 이번 화는 다들 적응에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특히 도입 부분은 천천히 시작했죠. 이때 시사적인 대목이 두어 군데 있었는데, 첫 번째는 쟈네이딘의 장난스러운 웃음에 로어틸리아가 보인 반응, 두 번째는 포스가 두 개냐고 물은 아를란의 질문과 이에 대한 자락스의 대답입니다. 둘 다 생각 없이 조연을 연기했을 뿐이었는데 참가자 반응이 전혀 새로운 의미를 파생시킨 경우죠. 이 맛에 RPG합니..(..)

단투인에 도착한 제다이들은 심각한 난민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넬반에 있는 신토넥스 지사에서 난민들을 받아주겠다는 제안이 들어왔다는 정보도 듣게 됩니다. 자락스는 정세가 불안정한 넬반에 난민들을 보내는 것을 당장 반대하지만, 센과 로어틸리아는 넬반으로 난민을 이주시키는 틈을 타면 넬반 잠입이 쉬워질 수도 있다고 지적합니다. 의논 끝에 제다이들은 일단 넬반에는 밀수꾼의 도움을 받아 잠입하고 넬반에서 난민을 받아준다는 제안은 거절하도록 단투인 회합에 권유하기로 합니다.

넬반에서 난민들을 받아주는 데 대한 제다이들의, 특히 자락스와 센의 의견 대립이 흥미로웠습니다. 나중에 캐스 하운드 전투에서도 나오겠지만, 자락스의 관심사는 항상 공동체와 그 수호에 있다는 점을 재확인하는 기회이기도 했죠. 성취 플레이부터가 시스에게서 한 마을을 지키는 것이었고, 그러다가 죽을 뻔했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넬반의 상황은 참가자들이 정치 게임을 통해 직접 만들어간 것이라 참가자 지식이 너무(..) 풍부해서 주인공 지식과 참가자 지식 분리에 애를 좀 먹었습니다. 폭넓은 상황 형성권과 개별 인물에 대한 몰입은 그런 면에서 긴장 관계인 점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회합장에서 방을 안내받는 장면에서는 위에서 얘기한 로어틸리아의 반응에 착안해서 쟈네이딘의 동생 얘기를 급조한 결과가 꽤 만족스러웠습니다. 이런 식으로 주인공 과거를 활용하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죠. 마스터 티로칸 언급도 그랬고...


쟈네이딘의 제안으로 난민 캠프로 출발한 일행은 캠프를 캐스 하운드가 습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가 하운드 떼와 전투를 벌입니다. 그러면서 센은 다시 카론에서 겪었던 무아지경 상태에 빠지고, 하운드를 모두 죽이고서는 뜻밖에도 하운드떼와 맞서 싸우던 정착민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로어틸리아가 우두머리를 베자 나머지 하운드떼는 도망가지만, 이제 두 제다이는 동료인 센과 대치하게 되는데...

이 장면에서도 정착민들을 지휘하는 자락스의 모습에서 그의 관심이 공동체에 있다는 점이 잘 드러나죠. 반면 우두머리를 혼자 공략하는 로어틸리아는 혼자 행동에 뛰어드는 나름 정통파(..) 제다이의 모습, 그리고 외계 식생에 대한 지식이 드러났고요. 센은 수많은 캐스 하운드에 혼자 맞서서 인도자의 힘을 빌려서 이겨내긴 했지...만, 문제는 인도자가 그 시점에서 물러나지 않고 자기 뜻대로 하고 있다는 점.

캐스 하운드 전투 부분은 판정을 하지는 않았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이전 토론에서 얘기했던 '참가의 의미를 최대한 살리는 플레이'의 모습이 잘 드러난 것 같습니다. 따로 외적인 합의는 없었지만 참가자의 선택, 즉 참가를 의미있게 만드는 데 중점을 둔 진행이었다는 점에서요.1; return false">합의에 따른 플레이에서도 모든 것을 시시콜콜하게 합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은 각자의 영역이 인정되니까, 합의에 따른 플레이에도 참가의 의의가 사는 플레이가 얼마든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참가의 의의를 살리는 플레이에서 결코 합의를 배제하지 않듯이요. 참가의 의의를 살리는 플레이라는 표현은 저 부분을 RPG의 3 기능론에 기반을 두고 강조한 것일 뿐이지요.) 세 분이 모두 합리적, 혹은 극적인 면에서 좋은 선택을 해서 (정착민 대열을 정비한다, 우두머리를 바로 공략한다, 인도자의 힘을 빌린다) 각자의 성격과 특징을 드러내면서도 서로 유기적으로 협조하는 재미있는 전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보니 전에 승한님이 포도원의 제다이 플레이 기록을 보시고 미리 구성을 짠 '전통적인' RPG 세션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씀하셨던 생각이 나는군요. 저는 미리 짜둔 구성은 전혀 없었고, 준비라면 참가자들에게 제시할 상황과 조연뿐이었거든요.2 그 점은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난민 문제가 심각하다'거나 '캐스 하운드떼가 난민 캠프를 습격한다'는 상황만 생각했을 뿐 그 귀결이 어떻게 될지는 전혀 정하지 않았습니다. 참가자가 그 상황에 반응하면 저는 다시 반응하고, 거기 또 참가자가 반응하다가 그 연쇄반응이 끊어지면 다시 새로운 상황을 제시하면 되니까요.

이것이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 규칙책에서 조언하는 방식이기도 하고, 참가자의 선택을 극대화하는 한 방법이기도 하죠. 승한님과 승민님의 진행도 제 이해가 옳다면 같은 원리인 듯합니다. 어쨌든 이렇게 구성을 전혀 정하지 않은 진행의 결과물이 구성을 미리 정한 진행과 비슷하게 나타난다는 점은 매우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플레이가 끝날 때쯤에는 인도자의 의지 내지는 인도자의 본질에 대해 의견 충돌이 있어서 토론이 길어졌습니다. 이건 이성과 신비주의 사이에 고민하는 인물인 센의 인물 해석에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고, 넬반을 비롯한 나머지 캠페인에도 상당히 중요한지라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었죠. 이에 대한 제 의견을 정리하자면...


1. 인도자는 인간의 이성이나 도덕과는 별 상관없는 이질적 지성, 혹은 우주적 원리이다
-> 즉 위험하고 예측 불가능한 존재이며, 센의 뜻만 행하고 물러나는 애완견(..)이 아님
2. 인도자는 따라서 센이라는 인물을 이루는 축 중 이성과 대립축을 이룬다
3. 센이 이성과 신비주의 사이의 모순을 해소하는 열쇠는 늑대 부족의 전통에 있다
-> 인도자라는 존재를 믿으면서도 유한자의 여과를 거쳐서 이성적 사회로 기능을 해온 늑대 부족의 전통과 분리된 채 인도자만 곁에 있었던 점이 성장기에 센의 혼란을 불러왔다

플레이 후 토론과 아카스트님과 개별적으로 나눈 대화를 종합해서 제 나름대로 정립한 아카스트님의 의견이라면... (제 의견하고 다른 부분만 정리했습니다)

1. 인도자의 의지와 목적은 우주적 규모이기는 하지만, 인간이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성격이다
2. 따라서 인도자는 이성의 대립축이 아니다
3. 늑대 부족을 비롯한 넬바니안 부족들은 이성으로 움직이는 사회가 아닌, 인도자의 뜻과 오랜 전통과 경험이 원동력이 되는, 예를 들면 꿀벌 군집에 더 가깝다

둘 다 센의 내적 모순이 조화할 수 있는 성격이라는 점에서는 의견이 같지만, 제가 그 대립을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그 조화의 지점을 늑대 부족으로 잡았다면 아카스트님은 그 대립을 실질적인 것이 아닌 표면적인 것으로 보고, 인도자와 늑대 부족을 별개의 축으로 보지 않으시는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게 좀 애매한 문제인 게, 좀처럼 합의가 되지 않으면서도 기능적 분립으로 쉽게 해결할 수도 없다는 점이죠. 센이라는 인물의 개별 설정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 캠페인 자체가 워낙 주인공 중심으로 짠 것이다 보니 동시에 중요한 캠페인 설정이기도 해서요. 다음 주에 할 갈등 판정에서 센은 아카스트님이 조종하시되, 나머지 참여자들이 거부권을 활발하게 행사하는 방향으로 이 의견 차이를 해소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 안 된다면 어느 한 쪽의 뜻을 따르거나, 어느 쪽도 승복할 수 없다면 합의에 따라 캠페인을 종결하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감정적 대립으로 흐르거나 마음이 내키지 않는데 억지로 합의하는 것보다는 캠페인을 하지 않는 것이 나으니까요.

결과적으로 이번 플레이는 역동적 긴장의 세 단계가 모두 나타났다는 점에서도 흥미롭습니다. 넬반 잠입 수단에 대한 논의가 수단에 대한 긴장이었다면 인도자의 본질에 대한 의견 차이는 극적 긴장, 그리고 인도자에 대한 의견 차이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의 문제는 대립과 상생 사이의 긴장으로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이 긴장이 어떤 식으로 해소되거나 해소되지 않을지는 플레이를 통해 드러나겠지요. 다음 주가 기대됩니다. ^^


주석
  1. 물론 성일님이 말씀하시는 [돌아가기]
  2. 이번 화 잡담 부분을 보면 들통나지만 사실은 조연 준비조차 잘 안 했습... [돌아가기]
2007/07/30 12:51 2007/07/30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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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카스트 2007/07/30 13: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러 가기 전에 잠깐 덧붙입니다.

    아까 대화 후에 저도 나름대로 다시 한번 설정에 관련하여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물론 버릇대로 무언가를 알려면 그것의 반대되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법칙대로 그러려고 생각해 보았죠. 그런데 재미있는 결과가 나오더군요. 보통 사람들에게 이성의 반대말이 뭐냐라는 질문을 던지면 개인적인 경험으로 볼 때 답은 셋 중에 하나가 나옵니다. 본능, 감성, 혹은 불합리. 여기에서 본능은 인도자를 설명하기엔 부족하고, 불합리는 신비주의와 동하는 면이 있으나 항상 그렇진 않으니 넘어갔었죠.

    그리고 감성이 남습니다. 코티에르의 외전에 나왔었던 말대로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 이죠. 인도자를 감성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은 아직 가질 않습니다만, 좀 생각해보고 이쪽이 아귀가 맞게 된다면 오히려 처음 합의했던 사항으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넬반 부족에 대해서도 이성론에 반박되는 요소로 경험론과 감각론을 채워 넣으면 오히려 이쪽이 더 말이 되는 듯 하군요. 확신은 서지 않습니다만, 일단 좀 더 생각을 해 봐야겠습니다.

    제가 인도자가 이성의 대립축이 아니라고 말했던 것은 신비주의로서 해석한 결과였습니다. 다만...인도자를 반대로 이성에 대립되는 - 감성의 - 축에 끼워 맞추었을 경우 어째 원점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군요. 로키님의 의견과도 부합하는 면이 있고...


    어쨌거나 자고 일어나 마저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리플 정리 수고하셨습? (안 날리셨군요? 라고 덧붙이며 도주)

  2. 소년H 2007/07/30 14: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두 가지 부분을 쓰자면..

    1. 사실 플레이어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마스터 혼자 준비해오건, 아니면 레디 메이드 시나리오로 플레이를 하건, 혹은 전원 의논해서 다 정하는 플레이건 간에
    좋은 플레이 (즉 재미있는 플레이(..))라면 공통 요소가 존재(특히 극적 재미가 높아지기 위해서 저런 점이)한다는 건 당연하겠죠. 물론 캠페인 종류에 따라 그 양상은 달라지겠지만..

    2. 이성의 반댓말이 감성이란 거야 용어 정의에선 맞지만, 실제상에선 '또 다른 이성'이라 해야겠죠. 현재 로키님 설정을 보면 그런 느낌이고.. (즉 인간의 이성과 다른 종족의 이성이란..)

    (다만 이렇게 되면 문득 드는 느낌은 넬반=크툴후 섬기는 종족같은 (...))

  3. 로키 2007/07/30 16: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h'nglui mglw'nafh Cthulhu R'lyeh wgah'nagl fhtagn! (퍽퍽)

    인도자의 본질을 감정으로 이해하는 것도 한 실마리일 수는 있지만, 역시 유한한 이성의 대등한 (그리고 어쩌면 우월한?) 대립항으로 인도자를 제시하려는 제 의견하고는 차이가 보이는 것 같네요. 인도자라는 존재가, 그리고 제가 생각했던 바로는 센이라는 인물 자체에서 드러나는 주제 중 하나가 이성의 한계이고, 그걸 형상화하는 방법이 이성을 초월한 존재인 인도자라고 저는 해석했으니까요. 넬반의 악몽과 같은 상황이나 코티에르가 그의 정의를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 도구적 이성을 강하게 비판하는 의미도 있다는 건 대화 중에도 얘기했고요.

    이런 이성 비판적인 면은 소년H님 말씀대로 확실히 크툴루적인 데가 있을지도요..(...) 다만, '그분'과 달리 우리의 래시.. 아니 인도자는 인간에 대해 절대적 악의로 뭉친 존재는 아니죠. 유한자가 상상하거나 논증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초월한 무언가가 있다는 증거일 뿐.

    그렇다고 제가 해석하는 인도자가 오직 상상하기 어려운 거대한 존재인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우스개로 애완견이라고 불렀듯 (아니, 진담이었던가요?) 의지가 되는 친구나 조력자이기도 하고, 느긋하고 능글맞은 성격도 분명 인도자의 진면목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신인 로키의 예를 들면 로키는 우습고 음탕한 재간꾼이자 재담꾼이지만, 라그나로크의 주역 중 하나로서 세계를 파괴하는 두려운 힘과 위엄도 분명 그의 또 다른 일면이죠.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그의 본질은 변화와 파괴라는 우주적 원리이고요. (사실 캠페인 인물 중 로키와 가장 본질이 통하는 인물은 **틸리아 양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어쨌든 제가 생각하는 인도자란 그렇습니다. 인간의 도덕과 이성을 초월한 원리의 형상화, 유한자가 제어할 수 없는 크나큰 위험, 자신이 이성적이라고 뻐기는 유한자에게 무한을 보여주며 겸손을 가르치는 존재, 그 무한에 마음을 연 사람에게는 영원한 동반자. 바람이 나를 시원하게 해준다고 나를 위해 부는 것은 아니고 광풍이 불어 내 집과 밭을 망친다고 내게 악의를 품은 것은 아니듯이 우주는 어느 한 사람을 중심으로 도는 것은 아니지만, 동시에 나는 우주의 일부이며 이해할 수도, 제어할 수도 없는 그 무한과 인격적 관계를 느낄 수도 있죠. 그리고 그 접점에서는 때로 놀라운 기적이, 때로는 두려운 사건이, 때로는 있을 수 없는 비극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그건 모두 인간적 관점일 뿐이죠. 무한의 관점에서는 모두 당연한 흐름의 일부일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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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 함대시스 함대 시트

어제 포도원의 제다이 세션은 소년H님이 못 오셔서 전에 구상했던 외전 플레이를 했습니다. 단순한 외전이 아니라 플레이 형태 자체가 달랐지만요. 각 참가자가 함대 하나의 역할을 맡아서 함대를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 규칙으로 제작한 후, 갈등 판정으로 대규모 전투를 처리하는 형식이었습니다. 도전이 예를 들어 '제다이 돌격대를 내보낸다'라면 응대는 '아군 함선을 조우 경로로 보낸다' 하는 식이었죠.

물론 이것만으로는 밋밋하니까, 그 도전과 응대의 인간적·극적 결과를 표현하려고 '줌인' 기법을 함께 사용했습니다. 위의 예에서 사령관이 제다이를 출격시키는 결정을 내렸으면 거기서 장면 전환을 해서 출격을 기다리는 제다이들의 모습을 연기한다든가. 이러한 줌인 장면에서는 각자 인물을 즉석에서 만들거나 골라잡아서 자유롭게 RP했습니다. 줌인 장면의 향방은 도전과 응대 결과를 참조해서 같이 결정했고요.

전투는 엑자르 쿤의 전쟁 중 센타레스 주변에서 벌어진 센타레스 전투였습니다. 캠페인 설정에 있는 과거의 사건이어서 이미 있는 설정과 어긋나는 것을 피해야 하는 것이 어려움이라면 어려움이었죠. 일단 센타레스 전투는 공화국이 승리했다는 설정이었는데, 주사위를 굴려서 규칙대로 판정하다 보면 시스측이 이길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해결책은 간단했습니다. 갈등 판정 개념을 살려서 '승리'가 무엇인지 규정하면 끝. 의논 끝에 공화국이 센타레스 성역을 차지하는 것은 어느 쪽이 이기든 마찬가지이되, 판정의 결과에는 다른 것을 걸기로 했습니다. 시스가 판정에 이긴다면 소모전으로 공화국군에게 큰 피해를 주고, 공화국군이 판정에 이긴다면 적은 피해만으로 센타레스를 통과해서 기다리는 다른 함대와 합류한다고 말이죠. 즉, 센타레스를 공화국이 차지한다는 결과는 아예 판정에 걸지도 않았습니다. 이로써 억지로 규칙을 비틀어서 '바람직한' 결과를 낼 필요 없이 마음껏 판정할 조건은 갖춰졌죠.

혼자 구상할 때는 나름 재밌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플레이 방식이었는데, 실제 해보니 그 효과는 정말...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규모감과 박진감에 셋 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꼬박 10시간을 앉아, 결국 우주전 하나를 시작부터 끝까지 해버리는 만행을 저질러버렸어요. ;ㅁ; 끝나고 나서 다들 괴성을 지르며(?) 쓰러져서는 감동에 겨워 어쩔 줄을 몰랐죠. 사실 이게 RPG인지 뭔지도 모르겠고 하여튼 뭔가 '엄청나게' 놀았다는 기분이었습니다.

보통 플레이 기록 정리할 때 잡담은 빼는데, 센타레스 전투는 아무 준비 없이 플레이의 모든 것이 저 '잡담'에서 나왔기 때문에 도저히 뺄 수가 없더라고요. 플레이 외 대화는 잿빛 배경으로 처리했고 안 보이게 끄는 컨트롤도 달아놓았습니다. 버튼 자체도 보이고 안 보이게 조절할 수 있고요. (ActiveX니 어쩌니 하는 익스플로러의 사기를 믿지 마십... 약간의 DHTML밖에 없는데. 위험하고 불편한 ActiveX는 MS 지들이 하지 내가 하나..ㅡㅡ++)

워낙 기니까 크게 3부로 나누어서 대체로 주요 대목별로 구분했습니다. 앞으로 각 부별로 천천히 요약을 올리도록 하지요.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서주 (序奏)

1부: 개전의 포화
(1) 폰을 움직이다
(2) 젊은 파일럿에게 축배를
(3) '어쩔 수 없는 것'의 의미

2부: Kings and Queens
(1) 킹을 노리다
(2) 포스가 함께하기를
(3) 퀸을 움직이려면
(4) 목표 수정
(5) 체크메이트를 향하여
(6) 죽은 영웅, 산 청소부
(7) 폭풍이 다가오다
(8) 넷 러닝
(9) 사냥을 시작하다
(10) 사냥감 사냥꾼

3부: 난류 (亂流)
(1) 반격
(2) 반전
(3) 신뢰
(4) My Pace
(5) 결투
(6) 누구의 체크메이트?
(7) 나이트를 위한 만가

에필로그

뭐 이게 왜 이렇게 재밌었는지 분석하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일단 셋이서 상당히 손발이 척척 맞았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서로 떠오르는 발상을 활발하게 교환하면서 연출도 구성도 정교하게 만들 수 있었고, 그러면서 나오는 상승 작용도 상당했습니다. 사실 많은 인디 RPG가 그렇듯 포도원의 개들 규칙책도 이런 식으로 플레이할 것을 권장하는데, 보통은 제가 의견을 구해도 별로 의견이 나오지 않는 느낌이었거든요. 근데 이번은 진짜 백지상태로 들어가는 걸 알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플레이 내용이 상상력을 자극했는지, 굉장히 좋은 발상들이 끝도 없이 나와서 플레이를 풍부하게 만들었죠.

본 캠페인의 사건이나 인물과 이런저런 연관이 들어간 것도 굉장히 다층적인 극적, 감정적 의미를 더했습니다. 몇 년 후면 카론에서 죽을 다쓰 프리아트가 살아서 펄펄 날뛰는(...) 모습이라든지 (1부 (1) '폰을 움직이다' 이하 다수), 캠페인 최초로 등장한 다쓰 세데스의 무시무시한 존재감 (3부 (5) '결투' 등), 센타레스 전투가 설정에 나온 이유였던 칼레나 할라크의 죽음 (3부 (7) '나이트를 위한 만가'), 전장에서 아주 짧게 스쳐간 베오나드 코티에르와 자락스 토레이 사이에 싹틀 반목에 대한 암시 (2부 (10) '사냥감 사냥꾼'), 소년 시절에도 이미 극도의 기술적 재능과 신비한 인도자의 존재라는 두 세계를 오가는 센의 모습 (3부 (4) 'My Pace') 등.

캠페인 주요 인물들 외에도 이번 플레이에서 처음 등장한 인물들도 인상깊었습니다. 젊은 공화국 파일럿들의 즐거운 모습과 가슴 아픈 죽음 (1부 (2) '젊은 파일럿에게 축배를'), 점령지에서 징발당해 소모품 취급받으며 죽어가는 시스 군인들 (1부 (3) '"어쩔 수 없는 것"의 의미'), 니모 선장 주제곡이 너무 잘 어울렸던 공화국 측 사령관 르베리에 제독 (2부 (1) '킹을 노리다', 3부 (3) '신뢰' 등), 시스 군 휘하 별동대원들의 왁자지껄한 동료애... (2부 (6) '죽은 영웅, 산 청소부') 줌인 장면 동안 셋이서 어림잡아 스무 명 안팎의 인물을 잡으면서 우주전이라는 거대한 상황을 상당히 폭넓게 조명한 점이 규모감 표현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문제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인간을 만들려고 있는 규칙을 즉석에서 집단에 적용하다 보니 특히 인간관계 부분이 애매했는데, 이것을 '외부 상황' 정도로 얼버무린 결과 시스 군대를 '복잡한 공동체' 배경으로 만든 의미가 좀 희석된 느낌도 들더군요. 복잡한 공동체 배경에 압도적으로 많은 인간관계 주사위는 군대에 얽힌 복잡한 인간관계와 알력들이 나올 때 사용해야지, 주변 지형물이나 숨겨둔 별동대까지 들어간 것은 지금 생각하면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반면 두 지휘관 사이의 알력이나 시스에 대한 공포 등은 잘 어울렸고요. 생각해 보니 자기폭풍 같은 주변 상황 이용은 즉석 장비 규칙으로 처리하면 되는 거였는데 하고 뒤늦게 후회중..(...) 그렇게 하면 자꾸 주변 환경을 끌어들이는 도전과 응대를 유도하기 때문에 서술도 더욱 입체적이고 창의적이었을 테고요.

그 외에 처음 시작한 1부는 아무래도 모두 생소한지라 다소 무리가 보이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특히 1부 (2) '젊은 파일럿..'에서는 젊고 유쾌한 파일럿들의 희생을 유도하느라 논리적으로는 제가 약간 억지를 썼죠. 그냥 정석적으로 적 파일럿과 도그파이트하다 사망..도 괜찮았을 텐데 말이죠. 그 외에 자꾸만 인물이 바뀌다 보니 나중에는 누가 얘기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던 점은 좀 혼란스러웠습니다. 그 부분은 말머리를 붙이거나 누가 얘기한다고 서술해서 간단하게 해결했지만요.

기록을 읽으면서야 알았는데, 자꾸만 아카스트님의 의견을 묵살하는 식으로 간 점이 개인적으로 가장 큰 실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본의는 아니었는데, 플레이 시간이 길어져서 그랬나 못 보거나 의도를 잘못 이해하고 그냥 제 생각대로 밀어붙인 데가 꽤 되더라고요. 좋은 의견이 많았는데... 그 점은 정말 죄송합니다. (흑흑)

문제도 있었지만 어쨌든 대단히 즐거운 플레이였습니다. 이방인님은 서로 죽도록 미워하는 두 시스 로드를 플레이하며 정신 건강에 대한 우려를 유발하시는 등(...) 아마 우리 중 제일 다양한 인물을 넘나드는 카멜레온적 괴력을 과시했고, 전투의 구성을 더욱 조이면서도 설정에 어긋나지 않도록 이끈 1등 공신이시기도 했습니다. 아카스트님이 맡으신 르베리에의 대담한 전술은 결국 전투의 중심 갈등을 끌어냈고, 서버가 나갈 때까지 나온 음악 방송은 영화적인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습니다. 스타워즈 서주 들으면서 상황 설명하는데 좋아서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로크락 역을 맡아 어린 나이에도 능청스러운 센하고 농담 따먹는 재미도 쏠쏠했고요.

무엇보다 아카스트님의 르베리에와 이방인님의 다쓰 프리아트, 두 사령관의 180도 다른 철학과 목적이 전투 전체의 극적 맥락을 끌어가면서 플레이의 주제의식을 형성하는 과정이 흥미진진했습니다. 야비한 적 앞에서 임무에 대한 책임감과 부하에 대한 애정 사이에 고뇌하는 르베리에의 인간적인 모습, 전쟁을 체스 게임처럼 생각하며 아무 거리낌 없이 적과 아군 모두를 파괴하는 다쓰 프리아트의 냉혹함... 그것은 어떻게 보면 공화국의 이상과 시스의 철학 사이에 필연적으로 생기는 갈등이기도 하고 (뭐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는 단서는 늘 붙습니다만), 그런 면에서 본 캠페인의 주제와도 닿아 있지요.

어쨌든 여러모로 제가 참가자 복 하나는 진짜 많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드는 플레이였습니다. (사실 제가 이 플레이의 진행자였는지도 애매한 문제... 일단 이걸 RPG라고 할 수 있는지부터가 의문이니까요.) 좋은 플레이 함께해주신 두 분께 감사드리며, 길면서도 박진감 넘쳤던 이 장대한 플레이에 대한 감상을 일단 접습니다. 정말 캠페인 하나쯤 마친 느낌이라니까요.
2007/06/25 22:20 2007/06/25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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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방인 2007/06/26 0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니 이 긴걸 하루만에 정리해 올리시다니 로키님도 꽤나 능력자시군요(.......)
    다 해놓고 보니, 왠지 스타워즈의 전투라기보다는 다나카 요시키의 은하영웅전설에서의 전투가 생각나는 구성이로군요.
    사실상 거의 즉석플레이에 가까웠던 이날 플레이를 능숙하게 연기해나가고 머리속에 전투 상황을 그리고, 또한 그때그떄 써먹을 사악무비한 함정들(...)을 디자인하는데 있어서 상당부분 '은하영웅전설' 에서 영감을 받은것은 부인할수 없을거 같습니다.
    하지만 이 거대한 워게임을 그냥 플레이 한것이 아니라, 일정 부분 켐페인 내의 역사에 끼워 맞추기도 하고, 또 '스타워즈' 라는 설정의 틀이나 이 켐페인의 실제 역사로 녹아들수 있도록 모두가 이리저리 머리를 짜내던 과정 또한 무척이나 즐거웠다는것 역시도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죠(...)
    잡담을 가리고서 읽어보니 이건 진짜 한편의 작품이로군요...
    인생에서 가장 짧았던 10시간이랄까요(........)
    시트를 만들고 상황을 이리저리 디자인 하는것 부터, 세세한 전투 진행 상황의 조율, 그리고 중간 중간에 이어진 잡담들, 그리고 시시각각 바뀌는 전투 상황에서 각자가 랜덤으로 순발력있게 그때그때 만들어가던 줌인시의 RP등등.
    정말 10시간 플레이 하는 내내(솔직히 저도 이게 플레이라고 불릴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모든 과정' 이 정신없이 즐거웠더랬죠. 단 한번도 지루하다거나 '너무 길어지는군' 따위의 생각은 하지 못했으니까요.
    무엇보다도 이날 최고의 희생자는 역시 '밤시간' 을 통째로 날려버리신 북미 거주자 아카스트님이었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이 많은 리플레이를 각자 소제목까지 달아서 깔끔하게 정리하신 로키님도 고생이 많으셨을테고... 어이구... 이거야 팔자 좋았던건 저 뿐이로군요(......)
    오늘 유난히 손발이 잘 맞고 여기저기서 멋있는 장면들을 연출할수 있었던 것은 어찌 생각하면 서로가 'PC'라는 틀에서 벗어나 전체적인 장면 구성, 장면의 극적 연출같은것에 중점을 두고 플레이를 전개...라기보다 구성해 나갔기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요... 그래서 리플레이를 보고 새삼 느낀겁니다만 오히려 왠만큼 연출과 극적 긴장감이 뛰어났던 본편보다도 오히려 장면구성과 신과 신들의 퀄리티가 더 높다고 생각되어지는군요.
    어쨌거나 무척이나 새롭고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이야... 저도 꽤나 복이 많은 플레이어라고 생각이 드네요(...) 10시간 연속플레이를 단 한순간도 지루하다고 느끼지 않고 같이 끌고 갈만한 팀에 속하는건 아무나 누릴수 있는 행운은 아니니까 말이죠(...)

    • 로키 2007/06/26 1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음 뭐 포스가 저와 함께하니까요. (?!)

      하면서 저도 은영전 생각 꽤 나더라고요. (중학교 때 참 광분하면서 봤는데.. 생각해 보니 이방인님도 그 세대셨군요? (..)) '말도 안되는 기술적 해결' 같은 건 스타트렉의 영향도 받았고요. 그러면서도 그 전체를 스타워즈에서 느끼는 매력의 원동력인 진지한 도덕적 고민에 녹일 수 있었다는 점이 센타레스 전투를 스타워즈답게 했던듯 해요. 무엇보다 스타워즈의 색채를 통해서 그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우리다움'이 살아난 플레이였다고 생각하지만요.

      뭐 저야 HTML을 다 수동으로 다는 건 아니고, 왠만큼 한 번 읽어보고 정리만 하면 나머지는 거의 텍스트 에디터 기능으로 되니까요. 불행히도 소제목은 수동으로 해야 했지만... 그리고 저 플레이 후에는 머리에 온통 그 생각만 가득해서 사실 리플레이를 읽고 정리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습..(..) 역시 밤 꼬박 새신 아카스트님 고생이 제일 컸죠.

      한 사람이 주도한 것보다 여럿이서 한 게 결과가 좋은 건 당연하죠. 진행자가 연출과 묘사에 감각이 있다 해도 혼자 끌어가야 한다는 건 부담도 크고, 여럿이 활발하게 얘기하면서 나오는 엄청난 연쇄반응은 참여자 수만큼이 아니라 그 제곱 이상의 효율과 품질이 나오니까요. 진행하면서 이렇게 마음에 부담이 없었던 것도, 또 이렇게 결과물이 마음에 들었던 것도 오랜만입니다. (이게 제 '진행'이었는지는 역시나 애매..) 어떻게 하면 이 힘을 본 캠페인에도 끌어올 수 있을지 고민이군요.

      생각해 보면 포도원의 개들 같은 듣도보도 못한 규칙부터가 그렇고, 또 그 규칙을 무려 워게임에 사용하느니 줌인 줌아웃이니 하는 실험적인 시도에 응해주는 팀원도 흔하지 않죠. 설명만 좀 듣고서는 그걸 완전히 이해하고 활용하는 경우는 더욱.. 그런 열린 마음이 참 고맙달까요, 힘이 돼요.

  2. 삭풍 2007/06/27 12: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걸 듣보잡이라고 하죠[음?]

  3. Wishsong 2007/06/27 2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규모 전투씬을 무척 재미있게 처리하셨군요.

    옛날부터 해 보고 싶은 로망인데 정작 해 본 적은 없습니다. 부럽습니다 ㅠ_ㅠ

    • 로키 2007/06/28 1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직접 해보시면 어떨까요? ^^ 어제 둘이서 얘기했듯 대규모전을 배경으로 주인공들의 활약을 표현할 것인가 아니면 대규모전 자체를 표현할 것인가에 따라서 모습은 크게 달라지겠지만요. 후자는 사실 그다지 RPG적인 목표는 아니어서 규칙 활용이라든지 역할 분담 등에서 전통 RPG와 많은 차이가 난 것 같아요. 전자 쪽이라면 배경이 대규모전일 뿐 일반 RPG와 큰 차이는 없겠죠. 센타레스 성역 전투가 '거시'와 '미시'를 오가면서 규모감을 표현했다면 보통 RPG 형태로는 아무래도 거시보다는 미시적 관점이 우선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4. 삭풍 2007/06/28 00: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요즘 DC를 다니다 보니[...]
    룰이 잡것이란 뜻은 아닙니다.

  5. 아카스트 2007/06/28 0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빨라요! 이번주에 못 올리신다면서! (라고 외치고 로키님에 의해 도마위로 끌려갑...)

    네, 밤을 꼬박 샌 아카스트입니다. 다음날 학년말 시험이 있었지만 수학이라 뭐 피식 웃어주며 여유있게 아침 일곱시에 곧장 잠을 청했죠. 코멘트가 늦었는데 어제야 시험이 끝나서 말입니다. 물론 두 시간짜리 시험에 에세이를 여섯 장(+@)쯤 쓰라고 하는 반쯤 개념이 가출을 한 듯한 영어시험 빼고는 그럭저럭 보았으니까 별 상관없긴 합니다만은 (웁니...).

    플레이에 대한 감상이라면...깁니다, 아주 길군요. 특별히 플레이하면서 몰랐던 바는 아닌데 정작 정리하고 보니 분량이 꽤 되는군요. 그나저나 이걸 정말 하루만에 정리해서 올리시다니 전혀 예상한 바가 아니었어요. 워게임이라고는 해도 포도원의 제다이 룰의 특성상 실제로 워게임처럼 플레이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라 묘한 느낌의 플레이였지만 재미있게 플레이했었죠. 플레이의 주요 갈등이 된 르베리에의 전술은 그냥 제가 머리를 굴리다 보니 떠오른 거고...사실 이 카드를 꺼내든 후에 얼마 남지 않았겠구나 싶었는데 여기에 줌인 장면들이 하나둘씩 들어가기 시작하니 상상 이상으로 길어져버렸군요.

    캐릭터간 도덕적 갈등이라면 그 캐릭터들의 설정 단계에서 이야기를 마치고 플레이했기 때문에 매끄럽게 이야기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번 플레이를 하면서 이 점에 가장 신경을 썼던 캐릭터가 있다면 역시 르베리에 제독이겠죠. 급조한 제독 주제에 나름대로 진지하고 임무와 희생 사이를 오가며 고민하는 니모 선장(!)이라는 멋지고도 분명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별 무리없이 이런 면을 표현할 수 있지 않았나 싶군요. 그런 면에서 여기저기에 고민이 넘쳐나는 센은 역시 좀 무리가 아니었나 하는 면도 싶고 말이죠.

    뭐 이제와서 사족이겠지만 덧붙입니다만 센이 플레이 내내 중얼거린 대사인 "인도자의 길은 한없이 곧은 길, 돌아올 수 없는 길은 갈 수도 없는 길..." 이라는 것은 사실 르베리에와 칼레나 할레크를 염두해 둔 대사입니다. 인도자가 함께하는 센이니 살짝 나사가 빠져도 괜찮...(을 리가!)

    음악에 관해서는 뭐, 이런저런 분위기가 교차되는 포도원의 제다이 본편에 비해 이번 워게임은 음악의 테마를 잡기가 쉬웠습니다. 그래서 캡틴 니모라던지 캐리비안의 해적이라던지 크림슨 타이드의 음악이 잘 맞아 떨어진 거겠죠. 르베리에의 경우는 애초에 캡틴 니모에서부터 이미지를 잡았기 때문에 맞아 떨어진 게 아닐까 해요. 물론 스타워즈 OST는 계속 틀 생각입니다(!). 대신 스타워즈 OST는 생각보다 구하기 어렵군요.

    본편보다 장면구성이 다양하고 더 극적이었던 건 아마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니어서일...(도마로 끌려갔다 돌아옴), 농담이고, 아마 말그대로 안정적인 신이 많아서가 아닐까 해요. 감정이입하기도 쉽고, 전형적인 신들도 있고, 무엇보다 플레이를 하신 분들끼리의 소통이 잦았으니...다함께 만들어나가는 드라마, 같은 느낌이었어요.

    • 로키 2007/06/28 1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빨라서 죄송합니다 흑흑(?) <- 끌려간다

      저런.. 시험기간에 많이 고생하셨군요. 두 시간 동안 여섯 장이라니, 아무래도 제네바 협약 위반이 아닌가 합니..(퍽)

      사실 이게 규모도 그렇고 양도 그렇고, 적어도 3회 정도는 되는 내용인데 하루에 해치운 우리가 지나친 괴력을 과시한 겁니.. 저도 정신없이 빠져들어서 피자 시켜서 컴 앞에서 먹어가며 했더랬죠. 혹시 또 할 일 있으면 아쉬워도 나눠서 하기로 굳게 다짐을! (과연?)

      확실히 인물 설정 단계에서부터 얘기를 하고 시작하니 저렇게 극적으로 잘 맞물려 돌아가는 인물들이 나오더군요. 캠페인 주인공들도 저런 과정을 거쳤으면 본 캠페인도 좀 더 극적 긴장감이 있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네요. 확실히 어느 한 가지 이미지가 뚜렷이 부각되는 인물이 다루기 편한 점도 있고요. 다쓰 프리아트 = 계산적인 냉혹함, 르베리에 제독 = 부하를 아끼는 지휘관의 인간적 고뇌 하는 식으로요. 본 캠페인에서는 자락스가 가장 저런 중심 갈등이 뚜렷하고, 센이 가장 약하죠. 지금의 흥미로운 다면성을 유지하면서도 좀 더 중심 갈등이 뚜렷한 인물이 되는 방법을 논의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센의 대사는 그냥 넬반 동요이니 했는데, 너무 고차원적이어서 몰랐습..(..) 말씀하셨으면 그 대사를 말하는 대목에서 컷신이나 오버랩을 삽입해서 파이프를 신경질적으로 씹어대는 르베리에, 다쓰 세데스와 사투를 벌이는 칼레나의 모습도 잠깐 넣을 수 있었을 텐데요. 그런 신비한 나사풀림(?!)은 센의 중요한 설정이기도 하니까 본 캠페인 중에도 종종 넣고 싶네요.

      역시 대규모 전투는 연애와 함께 음악을 넣기 가장 쉬운 상황에 들어가지 않나 싶어요. (..) 대체로 비슷한 웅장한 분위기가 유지되니까 음악 차례가 돌아오면 이미 분위기는 급변, 같은 상황도 없고 말이죠. 우리의 DJ로서 늘 수고하십니..

      푸핫.. 짜고치는 고스톱 좋죠. 그러면서도 판정이 이야기의 틀이자 향방을 제공했으니 더 짜임새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고요. 본편에서도 저런 연출력이나 에너지가 나오면 참 좋겠는데..

      판정 하니까 생각나는데, 피해를 쌓아두기만 하고 굴리진 않았더군요. 10시간 플레이하고 그럴 정신도 아니었고요. 그거 굴려서 각 함대가 전투 후 어떤 꼴(?)이었는지 서술해보는 것도 나름 괜찮은 마무리인 것 같습니다. 함대의 변화와 성장 같은 부분도 규칙과 연계해서 생각하면 재밌을 것 같고요.

    • 아카스트 2007/06/28 1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시험이 끝났으니 이제 방학이고 일주일 정도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글을 쓴다던지 밀린 책을 읽는다던지 할 생각입니다. 르베리에 제독에 대한 설정이나 밀린 센의 외전 같은 것도 적당히 빈둥거리면서 써 봐야겠죠.

      중심 갈등은...뭐 계속 생각해 봐야겠어요. 밥, 먹는다! 어린애, 좋다! 라고 하는 자 형사에 비해 센은 갈등이 여기저기 나뉘어진 감이 강하니까요 (자락스 형사에 의해 도마위에서 잘게 채썰립...). 애초에 캐릭터 자체가 될대로 되라 하는 40대의 초연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고 말이죠.

      센이 나사가 풀리는 것은 해설이 되지 않아야 나사가 풀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습 (여봐라, 저 자를 매우 쳐라! (...)). 외전에 집어넣을 생각은 있는데 본편에서 나사가 풀리는 건 역시 조금 더 생각해보고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를 결정한 후에 해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은.

      음악은...그렇다면 역시 그런 의미에서 이제 자 형사와 아를란의 사랑을 위해 러브신용 음악을 틀어 드리면 되겠군요. 성심껏 준비하도록 하죠.

      피해라, 뭐가 나올지 궁금하네요. 공화국군 측에서 성장이 나온다면 역시 '삐까번쩍한 새 전함 1d4'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피해라면 역시 임무실패에 인력낭비에 사기저하에...아니면 이득은 있었으나 부하를 희생시키게 되어 더욱 그들에 대한 애정이 깊어진 르베리에 제독을 위해 '제독님의 애정 10d3' 같은 것도 괜찮을지도 모르겠군요. 죄송합니다, 졸린가 보군요. 슬슬 들어가 자야겠어요 (뒤척).

    • 로키 2007/06/28 2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확실히 센을 끌어들인달까, 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는 센이 감정적 반응을 보이는 일이 적은 것도 있죠. 뭐 그렇다고 해도 로크락이나 코티에르에 대한 거라든가, 신호는 분명 있으니까 많이 어렵진 않지만요. 중심 갈등은 처음부터 얘기됐던 이성과 신비주의 사이..도 있겠고, 또 요즘 부각된 걸로는 결정의 대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우유부단해진다는 면도 있겠군요. 역시 생각해볼 만한 문제.

      뭐 본편에서 나사풀림의 활용이라면 역시 복선 전달이려나요? 센의 설정 자체가 남들이 알 수 없는 것을 아는 인물이니까요. (사실은 센 본인도 잘 모른다는 전설이..) 예지력이라면 모든 제다이에게 강하든 약하든 나타나지만, 센의 경우는 그게 좀 더 꼬인(..)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겠죠.

      러브신용 음악은 센-코티에르-로크락의 영원한 삼각관계용으로 부탁드리겠습.. 코티에르-센 파트는 The Phantom of the Opera, 센-로크락은 All I Ask of You 정도일까요. (..)

      예, 성장이나 피해는 그런 쪽이 괜찮아 보이네요. 다음번 플레이 시작하기 전에 간단하게 얘기하도록 하죠.

  6. 소년H 2007/06/28 16: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헥헥 다 봤습니다.
    (라고 해봐야 어차피 리플로는 플레이 재미를 못 느끼고..)

    아무튼, 제가 없는 사이 잘 놀았군요. 다행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안심'하고 다시 빠지는 계획을..(응?))

    어쩐지 '더' 잘 논 거 같아서...역시 제가 없어서 일까요?
    (아니, 정말로 잡담이 줄어서 집중도가 높아졌다거나 (...))

    그런데 역시 이 이유는 억울해서(...) 분석해보자면 역시 1차적 요인은 '워게임이다'라는 것도 있을테고..(단순히 보드 게임 워게임만 해봐도 그 재미는.., RPG야말로 최고의 오락이다라는 RPG지상주의자가 아니라면야 뭐) 룰 자체만 봐도 전쟁물로서 하자면 '말들을 일일히 조작하는' 것 뿐 아니라, '전쟁의 흐름'을 플레이한다면 괜찮은 편일 테고..

    사실 이 플레이가 본래 의미에서 포도원의 제다이..가 아니라 포도원의 개들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그게 워게임이란 의미는 아니고, 인지적 의미에서 플레이어의 권력이랄까요?
    갑자기 뭔 이야기가 되었냐면 순전히 자리 비운게 학업때문이라서인데 (...), 포도원에서 PC들은 보안관이고 결국 '해서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걸 제외하면 뭐든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잖아요. 플레이에 있어서도 배경 마을은 매 회 바뀔 수 있고 사건도 '악'이 생기는 그것 뿐인 셈이고..물론 대충 읽어서 불확실한 면도 있습니다만.
    그에 비하면 우리의 제다이는 어린 양들이 많아서(..) 좀 치이는 편이죠. 특히 로키님이 '흑흑 이러면 안 되는데' 하시는 부분들은 대개 마스터나 높은 직위가 많은 코루썬트 부분이고.. NPC로 갑자기 뜨게 된 아를란은 PC의 밑이었기 때문이고 뭐 이런 식..이려나요?

    그에 비해 이 플레이에선, 로키님 말씀대로 백지 상태 시작인 데다가 그럼에도 배경 지식은 이미 있고, 거기다 플레이어들이랄까 PC의 위치가 스스로 많은 걸 결정할 수 있으니까요..

    그 외에 사실 보통은 이런 플레이 중간에 끊고 다음에 또 하자고 하는데 다음 주에는 정규 플을 위해서 끝까지 갔다거나..
    (그리고 많은 이들이 포도원의 제다이 워 2부를 찍길 원하면 저는 다시 빠져야 한다거나 (?))

    • 로키 2007/06/28 21: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 보시다니 인간승리십..(음?) 이거 어째 결석 최대 용의자셔서 외전에서는 늘 빠지시는 느낌이..(..) 그런 의미에서 외전은 결석을 기다릴 게 아니라 가끔은 '오늘은 본편 하기 싫어염' 하면서 파업하고 진행해야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말씀대로 포도원의 제다이는 포도원의 개들 규칙의 그 '갈 데까지 가는 맛'을 잘 못 살리는 점은 좀 아쉬워요. 배경이 그런 면도 있고, 제가 좀 온건한 상황들을 주었던 면도 있고.. 특히 오기 전부터 우려했던 대로 코루선트처럼 주변이 온통 상관인 분위기는 최악이더군요..(..) 물론 '부패한 상관들을 척살해라'라면 괜찮겠지만, 그건 나중에..(?) 포도원의 워게임에서는 원래 규칙에서처럼 막나갈 수 있는 면이 훨씬 강하죠, 확실히.

      뭐 2부 찍어도 끼셔도 됩니..(음?) 사실 이 플레이가 좋은 게, 전투 자체는 2파전이라 해도 널린 게 캐릭터다 보니 참가자, 관전객 등 꽤 많은 사람이 낄 수 있겠더라고요. 논의에도 자유롭게 참가할 수 있을 테고요. 사실 셋이서 저 많은 인물을 소화하기는 좀 무리였다는 생각도 들고요. 뭐 덕분에 전 참으로 오랜만에 참가 비슷한 기분도 느껴보고, 로크락이나 칼레나 데리고 GMPC질도 했지만요. (퍽)

  7. 아사히라 2007/06/29 2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스 마스터 펠로스는 어떻습...(끌려간다)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참가자가 제어하는 인물은 PC (Player Character), 진행자가 제어하는 인물은 NPC (Non-Player Character)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용법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주인공'과 '조연'이라는 용어를 선호합니다. 영어로는 PC는 Protagonist Character, NPC는 Non-Protagonist Character라고 치환해서 생각하고요. 뭐 의미는 좀 중첩됩니다만...

어쨌든 용어를 한글화하는 의미도 있지만, 제가 PC와 NPC를 주인공과 조연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제로 PC는 주인공, NPC는 조연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적 의미가 큽니다. 진행자야 배경 세계 자체를 운용하고 인물도 많이 있지만, 참가자는 보통 하나씩의 인물밖에 없고 그들이 플레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길은 그 인물을 통하는 방법뿐입니다. 따라서 참가자 인물이 플레이의 초점이 아니라면 참가자가 참여할 수 있는 여지는 심각하게 줄어듭니다. 심하면 참가의 의미가 없을 정도로요.

그래서 진행자의 실책 중에서도 가장 악명높은 것이 바로 'GMPC'인 것 같습니다. GMPC란 진행자 인물인데 주인공인 경우를 가리키는 것으로, 진행자는 이 인물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어떻게든 이 인물을 돋보이게 하려고 참가자 인물을 들러리로 전락시키죠. 종종 플레이를 정해진 길로 이끌려는 용도도 있으며, 이때는 또 다른 악명높은 진행자 실책인 '일방통행식 진행'까지 겹칩니다. 오직 진행자의 자기만족만을 위하기 때문에 이런 인물을 사용하는 것은 RPG의 사회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며, 실책일 뿐 아니라 굉장한 실례라는 것은 길게 얘기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물론 GMPC는 극단적인 예일 뿐, 참가자 인물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진정한 주인공으로 유지하려면 'GMPC를 만들지 않는다' 같은 당연한 지침 외에도 주의할 것이 많습니다. 어쨌든 진행자 인물은 꼭 필요하고, 개중에는 주인공보다 능력이 뛰어나거나 권력이 강한 인물도 있는 것은 당연하니까요. 또 조연의 도움이 필요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일행에 따라붙기도 합니다. 진행자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인물도 있을 수 있고요. 이러한 요소에 저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대응합니다.

1. 주인공보다 뛰어난 조연

능력이나 권력, 정보력 등이 주인공보다 뛰어난 조연은 일단 주인공 일행하고는 좀 거리를 두려고 합니다. 이런 인물은 자기 일로 바쁘니 주인공 일행 일에 시시콜콜 참견할 시간이 있을 리 없죠. 따라서 주인공 일행과 만나는 것은 그쪽에서 불렀을 때, 혹은 주인공 일행이 찾아갔을 때뿐이고, 이렇게 하면 일단 등장 빈도 면에서 그들이 주도권을 잡을 가능성은 줄어듭니다.

심리적 거리를 두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눈에 띄게 뛰어난 조연은 주인공의 적, 혹은 완전히 믿을 수는 없는 협력자 정도가 적합한 것 같습니다. 완전히 믿을 수 있다면 주인공이 그들에게 의지하거나 아니면 모든 문제 해결을 위해 진행자가 그들을 동원할 유혹이 커지니까요.

적이라면 이길 방법이 없는 적이어서는 안 되고, 그 과정이 어렵더라도 방법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니면 최소한 무시해도 상관없는 적이어야겠죠. 신뢰가 안 가는 협력자는 제가 특히 좋아하는 유형인데, 어디까지 믿고 어디까지 이용할 수 있을지 판단의 근거가 있되 그 판단이 쉽지 않다면 그 자체가 상당한 게임적 재미일 수 있죠. 우리 편이긴 우리 편이되 감정적으로 사이가 나빠서 완전히 믿을 수 없는 변형도 극적 재미를 더해줍니다.

이렇듯 자신보다 뛰어난 존재이되, 의존하는 대신 주시하면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조연은 극적, 게임적 긴장감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주인공은 뛰어난 조연의 그림자에 묻히는 대신 그 조연들과 극적으로 대등한 위치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는 위치가 되지요.

때로는 주인공보다 뛰어나고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조연도 있습니다. 후원자가 그 대표적인 예이겠지요. 이럴 경우는 그가 주인공에게 줄 수 있는 도움에 뭔가 제한을 걸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위에서 얘기했듯 바쁜 사람이라든가 (못 만나게 막는 비서를 막무가내로 돌파해서 들어가자 그 어른이 오히려 반가워하면서 비서를 질책하더라... 같은 고전적인 진행도 한 번쯤 해볼 만 하죠), 도움에 뭔가 대가가 따른다든가, 후원자도 사람인 만큼 속수무책인 영역이 있다든가, 오히려 이 일에서는 후원자가 주인공의 도움이 필요해서 의뢰를 했다든가, 등등.

즉 믿을 수 있는 뛰어난 조연은 의존도가 너무 커지지 않도록 그 능력과 영향력에 제한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뭐 사람인 이상, 심지어는 신이라 해도 뭔가 제한이 있는 건 너무 당연하니까 (신의 속성이나 영역, 그리고 무엇보다 바쁜 일정!) 전혀 어려운 일은 아니지요.

2. 조연의 도움이 필요할 때

주인공에게 조연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확고한 원칙이 있습니다. 아쉬운 놈이 우물 판다. 아쉬운 사람이 주인공이라면 조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주인공이어야 합니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괜히 나타나서 '너네 내가 필요하지? 음하하하 여기 왔도다!' 할 필요가 없습니다. 조연의 조력을 조연 자신이 주도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건 차치하고라도, 주인공에게 그만큼 주도권을 빼앗는 행위입니다. 주인공이 주도해서 조연을 불러들인다면 조연은 참가자가 판단해서 활용하는 게임적 자원일 뿐이지만, 조연이 스스로 나선다면 문제 해결의 능동성이 조연에게 넘어가니까요.

자기 판단 하에 주인공이 조연에게 도움을 청하려면 물론 주인공이 필요할 때 주인공이 조연에게 연락할 방법이 있어야 하고, 이것은 플레이 내에서 참가자에게 어느 정도 판단과 운신의 여지가 있어야 한다는 일반 원칙으로 돌아갑니다. 또 연락 가능 여부가 진행자 멋대로 달라지지 않고, 이런 때는 연락이 되고 이런 때는 안 되겠다고 참가자가 판단하거나 최소한 이해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건 또 RPG의 게임성과도 연관이 깊겠죠.

어떻게 보면 위에서 얘기한 뛰어난 조연도 같은 맥락입니다. 바쁘다거나, 완전히 믿을 수 없다거나 하는 이유로 조연의 능력에 대한 활용에 뭔가 제한이 붙으면 참가자는 이러한 장애를 극복하고자 의사 결정을 해야 하고, 그만큼 주도권은 참가자와 주인공에게 넘어갑니다. 참가자의 판단, 주인공의 행동이 필요 없이 도움이 무조건적이라면 주도권은 반대로 진행자와 조연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물론 부르지도 않았는데 조연이 멋대로 따라와서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소설이나 만화에서 흔히 보는 일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럴 때도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일반 원칙은 변하지 않습니다. 목마른 쪽이 주인공보다는 조연일 뿐이죠. 즉, 부르지도 않았는데 와서 도움을 준다면 그건 조연 자신의 목적이나 주인공에게 받을 수 있는 대가를 위한 것이지 순수하게 주인공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행동은 아닐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도움을 주겠다는 조연으로는 주인공 일행을 따라가서 모험을 해보려는 열혈 소년이라든지, 주인공 중 하나에게 접근해 보려고 수작을 거는 아저씨라든지, 정보를 캐내려는 첩자, 보물을 가로채려는 도둑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조연의 목적은 참가자가 의사 판단을 해서 이용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또 다른 자원, 혹은 장애가 되고, 그만큼 플레이의 내용은 풍부해집니다. ('좋아, 넌 오늘부터 짐꾼이다!' '저 귀찮은 인간을 어떻게 떼어놓지?' '그때 마주친 게 정말 우연이었을까?' '도와주겠다는 말을 믿어도 될까?') 그러려면 그러한 의도나 목적을 알려주거나 알아낼 여지를 줘야 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인공은 이유도 없이 불쑥불쑥 나타나서 좋건 싫건 도와주는 조연에게 치여서 플레이의 주도권을 잃을 테니까요.

마지막으로, 조연이 도움을 준다 하더라도 그건 도움일 뿐 조연이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조연이 처음부터 끝까지 해결해도 좋은 문제라면 주인공이 다른 활약을 하는 동안 무대 뒤에서 처리하고 ("의뢰하신 총은 다 만들었으니까 와서 찾아가세요."), 플레이상 직접 드러나는 활약은 주인공이 하면서 조연이 보조하는 정도여야 하죠.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든가, 혹은 주인공이 개입을 해야 한다든가 하는 게 좋습니다.

주인공이 조연의 도움을 받은 최근 예로는 포도원의 제다이 플레이 중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었습니다. 주인공 제다이 일행이 도시에서 잠적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들은 젊은 시스 하나를 어찌어찌 주워서 데리고 있었는데, 도시의 뒷골목에 익숙한 이 청년에게 주인공 하나가 주도적으로 얘기해서 숨을 곳을 마련하게 했죠.

자락스 토레이: "아를란. 이 주위에 이만한 인원이 조용하게 숨을곳 없나?"
로키: "이..이 주위에? 없진 않지만 좀 동네가.."
로키: 아를란은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는군요.
자락스 토레이: "이 주위에서 활동했으면 당연히 숨을곳 정도야 여기저기 스승 모르게 마련해뒀을 거 아냐. 내놔봐. 지금 난리가 났다고."
로키: "알았어.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그는 주소를 하나 말합니다.

캔티나 지하실인 은신처를 이용하려면 캔티나 주인과 교섭해야 했고, 이 사람은 아를란이 아는 사람이었죠. 하지만, 아를란의 주도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마음에 내키지 않았습니다. 아를란의 역할은 캔티나를 찾아내고 주인과 연결하는 정도로 끝내고 싶어서 교섭 장면은 다음과 같이 진행했습니다.

로키: 아를란은 이곳에 있는 은닉처에서 지내고 싶다는 눈치를 주지만
로키: 신문을 봤는지 로디안은 꺼리는 낌새군요.
로키: 아를란은 설득하다가 슬슬 참을성이 떨어져 가고..
로키: 자칫하다 싸움이라도 벌이면 큰 소동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센 테즈나: @아를란의 어깨를 잡고 진정시킨 다음 입을 엽니다.
센 테즈나: "충분히 사례는 하겠습니다. 반대로 그쪽이 비밀을 지켜 주신다면 그게 더 좋은 일일 거라 봅니다만."
센 테즈나: "이미 이곳으로 저희가 들어오는 걸 본 사람이 있을 테니 그게 알려지면 이쪽의 행적을 알기 위해 누군가 추적을 해올지 모르는 일이죠."
로키: "그건 협박이오?" 로디안은 툭 튀어나온 검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묻는군요.
센 테즈나: "아니요, 조언입니다."

주목도도 낮추고 시간도 절약할 겸 조연끼리의 대화는 요약하고, 아를란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해서 센의 개입이 필요하게 했습니다. 물론 개입하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랬더라면 실제로 싸움이 나서 문제는 더 커졌겠죠. 센의 개입 시점부터는 다시 직접 화법으로 전환해서 주목도를 높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조연의 도움은 주인공이 스스로 활용하는 자원이 되고, 조연의 활약이 있어도 주도권은 주인공에게 두는 것이 제 방침이라면 방침입니다.

3. 일행에 따라붙는 조연

가장 위험한 경우 중 하나로, 위에서도 얘기한 아를란과 관련해 고민과 토론이 들어간 부분이기도 합니다. 진행자도 사람인지라 때로는 자기가 관심 있는 인물을 돋보이게 하고 싶고, 그건 자칫하면 참가자와 이해 충돌 상황이 되기 쉬우니까요. 이 인물이 플레이의 중심인 일행에 상주하면 이해 충돌은 한결 심해집니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가 위에 말한 GMPC겠죠.

하지만, 이럴 때도 주도권은 참가자와 주인공에게 있어야 한다는 일반 원칙만 기억한다면 의외로 해결은 간단한 것 같습니다. 우선 일행에 합류 여부를 진행자가 아닌 참가자가 결정하게만 두어도 문제는 대부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참가자끼리 의견이 갈릴 때일 테니, 참가자가 몇 명이나 찬성해야 하는지, 미온적인 사람은 어느 정도 찬성해야 할지 등 의사결정 과정상의 문제도 있지만요.

일단 일행에 합류하면 역시 조연에게 도움을 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조연의 활약은 원칙적으로 주인공 주도로, 활약 정도는 무대 위에서 주인공을 보조하거나 무대 뒤에서 귀찮은 일을 처리하는 정도, 조연 자신이 능동적으로 활약할 때는 조연 자신의 이유로... 같은 사항을 기억하면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일행과 행동을 같이하는 특수 상황 때문에 조연이 행동하는 이유가 일행의 목적과 부합하는 경우도 많아질 것이고, 그런 식으로 쌓이는 신뢰와 감정적 유대는 플레이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할 수 있죠.

결국, 중요한 건 주인공을 더욱 주인공답게 하는 조연인가, 아니면 주인공에게서 주도권을 빼앗는 조연인가 하는 문제일 뿐, 일행 상주 조연도 전자라면 잘 운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행자로서는 진행자의 재미뿐 아니라 참가자의 재미까지 일부 누린다는 점에서 색다른 즐거움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또 일행 상주 조연은 분위기를 띄우는 용도라든가 자잘하게 써먹을 데도 있고요.

로키: 숙소로 돌아와 문을 열자..
로키: 순간적으로 쿵쾅거리는 음악과 함께 마치 물흐르듯 움직이는 색색의 트윌렉 댄서들의 홀로 이미지가 방안에 가득하군요.
로키: 세 사람이 돌아온 것을 보고 아를란은 황급히 동영상을 끕니..

4. 진행자의 마음에 드는 조연

다른 항목과 겹치는 때도 많지만 개념적으로는 별개로 진행자 자신이 어떤 조연에게 굉장히 흥미가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플레이에 자꾸만 끌어넣고 싶고, 이 인물의 갈등이나 고뇌를 보여주고 싶고 말이죠. 이러한 사항을 참가자가 대응 가능하고 플레이 맥락에 어울리는 형태로 잘 엮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참가자들이 별 관심도 없고 플레이 내용을 깎아먹는데도 자꾸 이 인물에게 주목하고 싶어진다면 문제가 큽니다. 관심도 없는 사람에게 대화 맥락과 상관없이 자기 옛날 캠페인이나 인물 얘기를 늘어놓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행동이지요.

참가자 개입이나 플레이의 요구와는 상관없이 그 인물 자체에 가는 관심이라는 면에서 이런 식의 흥미는 진행자로서 게임 요소에 갖는 흥미라기보다는 소설가가 소설 속의 인물에게 갖는 흥미에 더 가깝습니다. 따라서 제 개인적인 해결책은 비교적 간단합니다. 그냥 소설 씁니다. (...) 얼마 전에 썼던 포도원의 제다이 캠페인 배경 소설들이 그 예입니다.

이렇게 하면 진행자의 순전히 개인적 흥미에 귀중한 플레이 시간을 소모하지도 않고, 공개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미리 공개해서 플레이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주인공이 알 수 없는 내용일 때는 참가자와 주인공 지식 분리가 필요할 것입니다만, 그건 제 경험상으로는 대체로들 잘 하니까요.

진행은 세계 만들기, 문학 등 다른 창의적인 활동과도 관계가 깊으니, 플레이 진행을 벗어나 창의성을 다른 방향으로 배출하는 것도 문제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세션 진행을 하는 시간에는 진행자로서 행동해야겠죠. 진행자의 역할이란 자신의 개인적 창의성을 일방적으로 발산하는 것이 아닌, 그 창의성을 기반으로 참가자들이 함께할 수 있는 사회적인 놀이의 판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가자가 참여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방법은 주인공을 통하는 것이므로 그 주인공의 주도성을 보존하는 것이 참가자의 참여를 확보하는 것이며, 이것은 참가자의 당연한 요구인 동시에 진행자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2007/06/08 13:25 2007/06/08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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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ishsong 2007/06/09 0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GMPC에 대해서는 플레이어 시절 심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 시스템 어느 공식 캠페인에 대해 아주 깊게 알고 있고, 룰에 대해서도 매우 능통한 사람 밑에서 플레이를 했는데,

    ......NPC들의 심부름, NPC들의 음모의 장기말 역할만 하다가 끝나더군요. 뭐랄까.....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룰을 과시하고 싶어 견딜 수 없어 보인다... 라는 느낌이 들더군요.



    한 때는 사정이 있어서 1주일을 쉬었는데, 다음 주에 들어가서 전투를 하다가 옆의 플레이어가 농담처럼 말하더군요. "승한님 캐릭터는 NPC로 돌아와 주세요!"

    .... 알고 보니, 제가 빠진 주에 제 캐릭터를 마스터가 담당했는데, "자기 로망"이 담긴 옵션과 규칙을 동원해 전투에서 맹활약을 해서 주인공이나 다름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 후로 아무리 그 사람이 많은 시스템과 룰을 꽤뚫고, 박학다식한 사람이었을지라도 다시는 같이 RPG를 할 생각이 안 들더군요. 심한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 로키 2007/06/09 08: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니 그 괴담의 주인공이셨단 말입..? (퍽) 참가자가 돌아오자 오히려 진행자가 돌렸던 그 인물을 돌려달라던 건 어디선가 들은 얘기 같거든요. 업그레이드까지 됐었다는 얘기는 못 들었으니까 다른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요.

      하여튼 정말 심하군요. 일방통행식 진행과 함께 GMPC가 최악의 진행자 실책이라는 심증은 굳어만 갑니..(..) 둘 다 참가자의 주도권을 빼앗는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이죠, 생각해 보면. 사회적인 놀이인 RPG에서 자기 로망과 지식의 일방적 과시 같은 사회성 없는 행동을 많이 본다는 건 묘한 일입니다.

  2. 아카스트 2007/06/09 1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도원의 제다이에 등장하는 최강의 GMPC는 역시 아를란이겠죠?

    자, 일단 아를란이 언급하거나 말한 사건들은 기본적으로 전부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입니다. 예를 들자면: 1. "프리아트 그녀석, 언제가 되건 없애버리고 말겠어!" <- 그리고 우리의 전위예술가는 장렬히 산화 (...).

    2. "쓰레기는 쓰레기대로 쓸 데가 있다는 게 우리 스승의 지론이었지." 아를란은 코웃음을 칩니다. <- 그리고 단순히 우주최강 바보 시스였던 아를란은 15회가 된 지금 아직 멀쩡히 살아있으며 제다이가 되길 기다리는 중이기도 하죠. 혹자는 그것이 우주최강 형사인 자락스의 마음을 빼앗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긴 합니다만.

    Q.E.D.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드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역시 그 중에 하나는 다양한 인물설정입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설정들이 깊은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주인공들과 깊은 연관성을 지녀야 하고, 그러자면 아무래도 자주 부딪히고 자주 이야기하게 되는 그런 관계가 이상적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라이벌 캐릭터의 매력에 따라 플레이어의 관심도가 변화합...아, 그 매력은 아닙니다 자 형사님 <- ).

    개인적으로도 시도해 보고 싶은 것이 이런 다양한 NPC들과의 관계성인데, 포도원의 제다이는 제다이라는 특별한 설정 덕에 이런 인물관계를 만들기 간단하고, 대부분의 이야기구조도 사실 스승이라던지 라이벌이라던지 혹은 협력자 (GMPC가 아닌 일반적인 범주에서의 협력자, 즉 주인공과 깊은 관계일수도 있으며 혹은 잠시 어떤 목적을 위해 협력했을 수도 있습니다) 를 만들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시 주인공 일행을 따라다니면서 활동하는 NPC의 경우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죠. 제 마스터링 스타일도 소설 형식에 가까운 듯 한데 - 그건 아무래도 소설을 쓰다 무언가 부족함을 느껴서 RPG를 시작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만 - 그런 캐릭터를 집어넣을 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야 GMPC라는 말을 듣지 않을지에 대해서는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 고민이군요.

    아를란 같이 대놓고 무능력할 수는 있습니...아니 아를란은 GMPC였죠 (응?).

    • 로키 2007/06/09 2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시 아를란이..(두둥) 사실 캠페인 최대의 마수는 바로 저 녀석이었던 거죠. 게다가 무능을 가장하는 고단수 수법까지! (...)

      글쎄요, 다양한 인물 설정의 주인공 연관성과 조연의 등장 빈도가 비례한다는 데에는 일단 반론을 제기하고 싶군요. 포도원의 제다이를 예로 들자면 피나틸리아, 마스터 모트, 베오나드 코티에르, 마스터 아카마르, 로크락, 다룬 등 주요 조연들은 모두 등장 빈도가 상당히 낮지만 주인공 연관성은 매우 높습니다. 늘 발 밑에 걸리적거리는(..) 아를란이 등장 빈도만큼 주인공들과 얽힌 경우입니다만, 그 외의 인물들은 실제 등장은 코루선트 와서 최근 몇 화에서 좀 많이 나온 거지 첫 12화 동안은 등장조차 하지 않았으니까요. (피나틸리아는 12화 동안 한 번 등장했죠.)

      그렇기 때문에 제 경험으로 얘기하자면 조연과 깊은 감정적 유대관계를 맺기 위해 조연과 반드시 자주 얼굴을 맞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첫째, 참가자 자신이 그 인물에게 흥미를 갖는 것, 둘째, 그 조연이 갖는 '의미'가 그가 등장하지 않을 때도 계속해서 이어질 것 아닐까요.

      첫 번째 조건은 설정에 나오는 인물을 조연으로 적극 활용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주인공 자체야 상상 속의 존재일 뿐이지만 그 주인공의 설정은 참가자가 어떤 데에 흥미가 가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이기 때문에, 설정에 나오는 인물은 일단 등장만 시켜도 참가자 흥미를 유발할 조건은 됩니다. 물론 여기에 진행자의 창의성도 가미하고, 계속해서 참가자 관심을 자극하면서 극적 긴장감을 유지해야 제대로 살릴 수 있지만요.

      두 번째 조건은 화면에 조연이 득시글거리지 않으면서도 말씀하신대로 인물 설정을 폭넓고 깊게 활용하려면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직접 등장하지 않아도 그 인물을 통해 표현하려는 주제 의식이나 감정적 유대 등 극적 의미는 다양한 방법으로 띄워둘 수 있으니까요. 피나틸리아 본인이 안 나와도 계속해서 언급이 나오는 점이라든가, 본편에 단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는 안습의 로크락이 캠페인의 중요 요소로 떠오른 점이라든지요. (어째 자꾸 자기 자랑처럼 되는데, 제가 이런 걸 특별히 잘했다기보다는 잘 아는 장기 캠페인이 이것밖에 없기 때문에..)

      또한, 진행자가 따로 얘기를 띄우지 않아도 첫 번째 조건, 즉 참가자의 관심이 충족되었다면 참가자 자신이 그 조연의 의미를 스스로 유지하기 때문에 편합니다.

      계속 얼굴을 맞대면서 유대를 쌓아가고, 그것이 더 깊은 극적 설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조연이 아니라 오히려 주인공 일행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연은 글에서 말했듯 주목도가 너무 높아지면 곤란한 점도 많고, 많이 등장시키려면 현실적으로 진행자에게 부담이 크니까요. 따라서 주인공의 모든 극적 맥락을 조연을 통해서 표현하려는 것보다는 주인공 일행간의 설정과 관계를 엮는 것이 더 경제적이지 않을까 해요. 그렇게 하면 조연을 굳이 일행에 넣고 GMPC가 아닐까 고민할 필요 없이 주인공끼리도 충분히 극적인 게 나올 테니까요.

      전에도 얘기 나온 것이고 포도원의 제다이에서도 느끼는 거지만, 이상하게도 주인공끼리 깊은 감정적, 극적 유대를 넣는 데에는 저항 같은 게 따르더군요. 전에 참가자로서 그런 걸 시도했다가 컨셉 자체가 퇴짜맞은 적도 있었고, 진행자로서는 캠페인마다 주인공끼리 대립이라든지 갈등이라든지 인간관계를 넣으려 해도 참가자들이 잘 협력하지 않아요..;ㅁ; 결국에는 조연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엮는 정도로 만족하곤 하죠.

      어째서 주인공의 중요한 극적 갈등은 다른 주인공이 아닌 조연에게 향하는 속성이 있는지 전 잘 모르겠더군요. 주인공들끼리 좀더 긴밀하게 얽히면 일행 결집력도 높아지고 진행자 부담도 한결 줄어들 텐데 말이죠. 어쩌면 참가자끼리 경쟁이나 갈등이 생기는 데 대한 우려일지도 모르고, 캠페인 내 극적 갈등의 고삐는 진행자가 쥐어야 한다는 전통적인 권력 구도의 표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아카스트 2007/06/09 2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를란은 역시 로키님의 마수였던 게지요.

      확실히 그런 면도 있군요, 지금 포도원의 제다이를 보면 말이죠. 다만 제가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요즈음 준비중인 시나리오를 감안하고 말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포도원의 제다이와 달리 주인공들이 백지 상태에서 출발하는 일반적인 판타지 모험물일 경우에 주인공들의 '신호' 를 기반으로 한 인물설정을 이용하는 방법은 물론 좋은 방법이지만, 장르의 특성상 라이벌처럼 식사시간이 되면 튀어나온다거나 ("제길 밥 먹을 시간이군, 또 그녀석이 나올 때가 되었는데..." (?!)) 일행에게 아주 중요한 목표가 되는 자가 아닌 한 다양한 인간관계를 엮기에는 힘들다는 판단 하였습니다.

      일반적인 판타지 모험을 기반으로 하더라도 물론 그런 인물설정을 이용할 수는 있습니다...만 역시 제가 걸리는 건 지금 만드는 중인 시나리오 때문이겠죠. 어쨌건 댓글은 잘 읽었습니다.


      주인공들간의 유대감이라면 제가 마스터링했던 시나리오에서 기억나는 건 역시 가족 플레이군요. 플레이어들이 형제자매로 설정되어 즐기는 플레이 말이죠. 그것 외로는 같은 고향 친구건 아니면 수없이 많은 고생을 함께한 동료건 왠지 유대감이 조연들만하지 않다는 느낌입니다. 왜인지는 저도 분명하지 않네요, 역시 서로에게는 신호가 느껴지지 않는 걸까나요.

      확실히 플레이 내에서도 센이 자락스에 대한 대답을 회피한 일이 있죠, 그때는 역시 남의 일이니까, 가 이유였긴 한데 설마 그것은 자 형사와의 사랑싸움을 경계한 나머지...(물론 농담).

  3. Asdee 2007/06/09 14: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은근히 GMPC 같은 짓을 많이 했죠. 그래서 많이 찔립니다. (ㅠ_ㅠ); 주로 PC들과 대립하는 NPC들한테 온갖 애정어린 설정을 쏟아붓는... NPC들 중심의 시나리오를 플레이한 적도 몇번 있었구요.

    언제... "참회록"이라도 한 번 써야겠군요. ;;

    • 로키 2007/06/09 2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뭐 진행자야 참회록을 쓰자면 끝도 없는 사람들이죠..(..) 창의력을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을 드러낸다는 뜻이고, 그러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족함과 쪽팔림을 어찌 다 말로 형언하겠어요. (흑)

      전에 쓰신 블로그 글을 봐도 Asdee님도 저와 아카스트님과 비슷하게 소설가 본능이 강한 진행자 유형이신 것 같고, 실제로 글 쓰는데 관심이 많은 사람이 진행을 많이 하더라고요. 글쓰기 능력은 분명 진행에 큰 도움이 되지만 때로는 독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진행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좋은 진행이란 무엇인지 확립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 같습니다. 소설과 같은 일방적인 창의성 발산과 구분하기 위해서 말이죠. 그리고 그 핵심에는 역시 RPG 최대의 매력이자 최악의 어려움, 즉 '사회적인 놀이'라는 속성이 있는 것 같아요.

[로그인][오픈아이디란?]

RPG는 여럿이서 하는 놀이이기 때문에 참가자가 한 사람이라도 빠지는 것은 큰 차질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유로 예고 후, 혹은 예고 없이 참가자가 결석하는 일이 생기게 마련이지요. 이럴 때 크게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대응책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빠진 이유를 갖다 붙이고 속행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방법입니다. 제가 각 세션을 될 수 있으면 하나의 단위 (예를 들어 캠페인 시간상 하루)로 진행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게 잘 안 되면 최소한 세션을 맺을 때 하나의 장면을 완전히 끝낸다거나요. 이렇게 하면 다음 세션에 참가자가 하나 빠져도 그 주인공이 없는 이유를 급조한 후 세션에 나온 참가자들과 계속 진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포도원의 제다이 8화, 그리고 9화부터 12화였는데, 3인 참가자 중에서 8화에는 이방인님, 9화에는 소년H님이 빠진 연속타를 먹었었죠. (흑흑.. 아카스트님을 붙잡고 웁니(?)) 그래서 8화에서는 '일행이 흩어져서 정보를 찾고 있다'라는 식으로 둘러대고 아카스트님과 소년H님 쪽을 진행했습니다. 그다음 9화 첫머리에서 이방인님의 주인공이 별 성과 없이 숙소로 돌아오는 연결부를 짧게 했죠.

9화에서는 소년H님의 주인공인 로어틸리아가 없으니까 '정보를 알아보고 돌아오는 길에 바람쐬러(..) 나갔다'라고 한 후 아카스트님과 이방인님과 함께 진행했습니다. 8화 말에 이미 9화의 시간적 배경이 되는 밤은 폭풍이 있을 것 같다고 묘사한 후였으니까, 바람 쐬겠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고 사실은 뭔가 일이 있다는 암시를 연결하기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참가자 결석이 몇 회에 걸쳐 계속되면 주인공이 빠진 이유도 좀 더 길어질 수 있습니다. 소년H님이 나중에야 알게 된 사정으로 9, 10, 11, 12화를 빠지면서 로어틸리아가 일행에서 일탈한 시간도 24시간이 넘었고, 그래서 귀환 후 상의해서 '바람 쐬러' 나간 로어틸리아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지 (바람 쐬러 나갔다가 바람났다...?) 정했습니다. 여기서 나온 로어틸리아 24라는 글은 저와 소년H님만 볼 수 있게 권한 설정을 해서 위키의 장점 또한 십분 활용할 수 있었죠.

이 방법의 또 다른 장점은 참가자의 결석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활용해 캠페인의 내용에 깊이를 더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로어틸리아의 일탈은 졸지에 어미 닭 없는 병아리 나이트 없는 파다완 일행이 된 자락스와 센이 공의회로 귀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코루선트의 상황으로 내용이 이어질 이유를 제공했습니다. 또한, 소년H님의 귀환 후 재회 장면을 연출하는 재미도 있었죠.

로키: 넓은 문이 양옆으로 열리고, 시야가 순간 환해지는군요.
로키: 눈이 적응되자 둥근 방안에 둘러앉은 열두 제다이 마스터의 모습이 보이고
로키: 그 가운데에 있는 것은 로어틸리아,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작은 아이가 있습니다.
자락스 토레이: "......!...." -나이트 로어틸리아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가는 이내 다시 표정을 되돌립니다.
로어틸리아: @미묘한 미소를 띄고 인사합니다.
센 테즈나: @로어틸리아를 잠깐 놀란 듯 바라보다 다가가 서서 목례를 합니다.
자락스 토레이: '....무사했구나......' -보일듯 말듯 살짝 미소

이렇듯 어느 정도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참가자가 빠진 것은 캠페인의 위기에서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절한 제약이 창의성을 자극한다는 원칙은 참가자의 부재도 예외가 아니니까요.

2. 외전을 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참가자가 한 명이라도 빠지면 본 캠페인 진행이 힘들 수도 있습니다. 지난번 세션에 악당이 '훗훗훗 드디어들 나타나셨나' 하면서 등장하는 걸로 끝났다든지 해서, 갑자기 땅이 갈라져서 주인공 하나를 삼켰다는 식이 아니면 부재를 설명하기 어려울 때도 있죠.

이럴 때 제가 선호하는 방법은 캠페인 본편을 벗어나 외전을 하는 것입니다. 옛날 알데마르 캠페인 때 주인공 셋 중 하나가 빠져서 나머지 둘의 과거에 있었던 일을 진행한 것이 그 예입니다. 아예 두 명이 없었을 때는 남은 한 명의 과거 설정을 RP로 재현한 일도 있습니다.

외전 역시 캠페인에 깊이를 더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이야기, 인물 간의 관계 등을 통해 본편 캠페인과는 다른 각도에서 인물과 사건을 조명한다는 점이 재미있죠.

외전의 또 다른 효용은 참가자의 결석보다 한결 난감한 경우, 즉 진행자가 빠졌을 때 대응책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경우 참가자 중 하나가 부진행자 역할을 맡아서 진행자가 나올 수 없을 때 외전을 진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언더월드 3기의 경우 진행자 제노시아님이 사정이 있을 때 제가 외전인 브루하 폭주전대를 진행한 경우가 그 예입니다. 그 외에도 참가자가 빠져서 본편 진행이 어려울 때 본편의 진행자인 제노시아님이 제가 진행하는 외전에서 참가자가 되기도 했었죠.

브루하 폭주전대의 경우 비슷한 시간대일 뿐 전혀 다른 캠페인에 가깝기는 했지만, 그 배경이 된 가상의 도시 뉴 세인트 헬렌이 나중에 본편에 합류한 유르겐의 배경에 나오는 등 연계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 본편의 주인공 하나와 조연 하나가 데이트하는 내용을 연애물 규칙인 얼음깨기 (Breaking the Ice)로 오체스님과 함께 진행하기도 했고요. 이렇듯 똑같이 외전이라고 해도 본편과 연계 정도, 규칙 등에서 여러 가지 변형이 있기 때문에 더욱 다채로운 캠페인이 될 수 있습니다.

3. 주인공을 다른 참여자가 제어한다

세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대응으로는 다른 참여자, 보통은 진행자가 해당 주인공을 제어하는 방법입니다. 저는 별로 선호하지는 않지만, 주인공의 부재를 설명할 필요 없이 본편을 진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본편을 속행하거나 외전을 하는 방법에서도 부분적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로어틸리아의 예에서 로어틸리아가 바람 쐰다며 나갔다고 진행자인 제가 서술한 대목이라든지, 로어틸리아가 다른 일행에게 보낸 홀로크론 메시지를 제가 간접 인용으로 전한 부분 등이 그 예입니다.

주인공을 타인이 제어하는 방법에는 소극적인 방법도 있고, 적극적인 방법도 있습니다. 소극적인 방법은 주인공이 그 자리에 있다는 정도만 알리고, 필요한 최소한의 행동만을 하는 것입니다. 반면 가장 적극적으로는 진행자 혹은 다른 참가자가 그 주인공의 모든 연기를 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겠죠. 전투 정도가 아니면 드문 경우겠지만요.

4. 세션을 쉰다

개인적으로는 참가자 한 명이 예고 없이 빠져서 세션을 쉰 적은 없으며, 이는 가장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위에 말했듯 참가자가 빠지면 차질이 생기지만, 플레이를 자꾸 쉬면 캠페인의 맥이 끊어지는데다, 성실하게 참여한 다른 참가자들에게 불공평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결석한 사람이 있는 김에 팀원들끼리 다른 활동을 하는 것도 가끔은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놀이를 한다든가, 캠페인의 제반 사항을 재점검하는 시간을 갖는다든가. 진행자나 참가자가 빠져서 본편을 진행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해 전혀 다른 캠페인을 준비해서 진행하는 것도 가능하겠죠. 이런 방법은 위에서 얘기한 외전의 변형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캠페인의 세션은 쉬지만 플레이는 하니까요.

어쨌든 다른 준비를 한 게 아니면 참가자가 빠져서 세션을 쉬는 것은 원칙이라기보다는 예외인 것이 바람직한 듯합니다. 참가자가 빠지는 것 자체가 예외인 게 바람직하듯 말이죠.


이상과 같이 참가자 (혹은 진행자)가 빠졌을 때 생각할 수 있는 대응책들을 나열해 보았습니다. 제가 생각하지 못한 방법도 있을 것이고, 각 팀과 캠페인 사정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죠. 약속은 소중하지만 때로 깨지기도 합니다. (저도 최근에 그런 경우가 있었죠..ㅠㅠ) 이에 대한 대응에 따라 캠페인에 대한 의욕, 나아가서는 캠페인의 존속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참가자 부재에 대한 대응은 진행자에게, 그리고 팀에게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부재가 잦다면 참가자가 계속해서 참가할 수 있는지, 시간대가 적당한지 하는 의논이 필요하겠지요. RPG에 만병통치약이 있다면 그건 팀원 간의 활발한 의사소통뿐이니까요.
2007/05/24 10:24 2007/05/24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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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삭풍 2007/05/26 2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더월드는 이제 아무런 감흥도 없는..

  2. 아카스트 2007/05/27 0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하하 (웃으며 이번 플레이 빠질 궁리를 합니...?).

  3. 로키 2007/05/27 15: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삭풍// 안습입.. 제노님도 바쁘시고, 이제 거의 파장 분위기인가요.

    아카스트// 그래도 어떻게든 소화는 하겠죠. 다만 센이 좀 고생할 뿐? (으흐흐)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최근 레이디의 그늘 캠페인이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진행자와 참가자들의 시험기간이 서로 달라서 근 한달간 플레이를 쉬게 된데다가, 진행자 사정으로 방학중 플레이가 불투명해졌기 때문입니다. 한달 쉬는 것도 캠페인 존속이 불확실한데 ORPG에서 네 달을 쉰다는 것은 대개의 경우 캠페인을 그만둔다는 얘기나 다름없으니까요.

이 시점에서 제가 제시한 방향은 플레이의 체제를 아예 바꾸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채팅으로 하는 동시성 플레이가 아닌, 글로 쓰는 비동시성 플레이로 말이죠. 얼마전에 인상깊게 읽었던 안인중님의 PBS(Play by System)와 TRPG (외부 링크, 다이스&챗 로그인 필요) 시리즈, 蘭님과 나누었던 PBEM 얘기, 그리고 게시판 플레이용 규칙인 수정주의 역사 (Revisionist History) 번역과 같은 맥락에서 나온 생각이었습니다.

거기서부터 얘기가 시작돼서 결국 방학이 끝날 때까지는 캠페인을 수정주의 역사 규칙으로 전환해 위키상에서 플레이하기로 했습니다. 규칙 뿐만 아니라 캠페인의 시간축 자체가 달라져서, 본 캠페인의 사건을 미래 (제 생각에는 약 100년 후)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형식의 외전 플레이가 되었습니다. 설정 결과 세 주인공이 서로를 배신하고 후대까지 악명이 자자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게 되었죠. (...) 그리고 이 미래가 바로 외전의 시간대인 것입니다.

이렇게 채팅으로 하는 동시성 플레이에서 위키로 하는 비동시성 플레이로 전환한 것은 여러가지 흥미로운 가능성과 기회를 제공한다고 봅니다.

우선 가장 직접적인 것은 캠페인 자체의 존속. 안인중님의 말씀마따나, RPG를 하기 위해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지만 사실 정말로 어려운 것은 일주일에 3~4시간을 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동시에' 3~4시간을 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채팅 플레이가 어려운 사정이 있어도 비동시성 플레이 체제로 전환하면 형태는 달라도 캠페인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꾸준하게 유지될 때의 얘기지만요.

여기에 부수되는 것이 시간 부담이 줄어든다는 점입니다. 한번에 뭉텅이 시간을 내야 하는 동시성 플레이와는 달리 비동시성 플레이는 틈이 날 때 짬짬이 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입니다. 또하나, 이건 비동시성 플레이 전반이라기보다는 수정주의 역사의 특징이지만 TRPG 규칙을 사용하는 비동시성 플레이와는 달리 진행자가 계속해서 글을 올려야 한다는 압박도 없습니다. (사실은 진행자도 없긴 합니..퍽)

조금 다른 얘기를 하자면 포도원의 개들을 잠시 게시판 플레이로 했을 때 느낀 점인데, 동시성 플레이에 특화된 규칙을 비동시성 플레이에 그대로 사용하려고 하면 동시성 플레이의 열등한 대체물밖에 될 수가 없더군요. 제아무리 급하게 글을 올려도 채팅 기준으로는 속터지도록 느리니... 반면 수정주의 역사의 경우 일주일에 글이 3~4개만 올라와도 플레이가 충분한 속도로 진행되므로 글로 하는 플레이에 보다 적합하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비동시성 플레이에는 비동시성 플레이에 특화된 체계와 규칙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각설하고, 비동시성 플레이가 제공하는 또다른 가능성이라면 캠페인의 사건을 신선한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역시 수정주의 역사 자체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생각해 보면 동시성 플레이와 비동시성 플레이의 성격과도 연관이 깊은 것입니다. 채팅이나 대면상황은 닥쳐오는 사건을 그때그때 '겪는' 데에 적합하다면, 시간 간격을 두고 생각해 가며 글을 쓰는 것은 어떤 사건의 의미와 진상을 '음미하는' 데에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수정주의 역사라는 규칙 고유의 특성상, 캠페인의 사건을 미래에서 바라본다는 점은 더더욱 캠페인에 새로운 자극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미래의 이야기를 외전으로 먼저 진행했기 때문에 나중에 본 캠페인으로 돌아왔을 때는 일정한 방향성, 혹은 제약이 생겨 있을 테니까요. 어려움도 있겠지만 확실히 생각해볼 거리는 풍부해질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사태(?) 이전부터 다소 침체되어 있었던 캠페인 분위기를 쇄신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이점들을 기대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기대치일 뿐이고, 예상되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그중 첫번째는 꾸준한 흥미유지가 가능할까 하는 점입니다. 동시성 플레이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비동시성 플레이는 많은 경우 정기적으로 모여야 하는 제약이 없기 때문에 흥미를 잃으면 슬그머니 그만두기도 쉽기 때문입니다. 일단은 소재가 세 참가자분이 만든 인물인만큼 어느정도 흥미의 요소는 갖춰졌지만, 흐지부지되지 않고 계속해서 플레이를 이끌어 가는데는 모두의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두번째는 캠페인의 미래가 어느정도 결정된다는 어려움입니다. 이는 위에서 말했듯 새로운 자극이자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제약이 될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채팅 플레이로 돌아왔을 때 정해진 미래에 맞추기 위해 진행자가 치밀한 구성을 짜고 그 속에서 참가자들이 선택을 제약받을 위험도 있죠. 100년 후의 미래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꼭 당대의 진상에 부합하라는 법은 없는만큼 옴쭉달싹도 못할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캠페인의 큰 줄기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의식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정도의 제약은 오히려 창의성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문제라기보다는 흥미로운 도전으로 생각하고 있지만요.

세번째는 선택한 매체 고유의 특징이지만, 위키라는 매체의 생소함이 있습니다. 전에 정보관리에 대한 단상 위키 편에서 다루었듯 위키는 아직 생소하고 사용편의가 떨어지는 매체에 속합니다. 그래서 게시판 플레이가 낫지 않을까 생각도 했지만, 버젼 비교, RSS 내보내기, 백링크 기능, 풍부한 구문 지원 등 위키의 지나치게(..) 뛰어난 기능성 때문에 결국 위키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사용성 부분은 자세한 설명서를 작성해서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앞으로의 플레이에 어떻게 하면 위키라는 매체의 단점을 극복하고 장점을 활용할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이상과 같이 플레이 체제를 동시성 플레이인 ORPG 채팅에서 비동시성 플레이인 위키 플레이로 전환한데 대한 제 생각을 적어 보았습니다. 전반적으로 비동시성 플레이는 동시성 플레이의 대체물을 넘어 전혀 새로운 가능성들을 제공한다고 생각됩니다만, 실제로 어떻게 나타날지는 플레이 경험만이 증명해 주겠죠. 방학이 끝난 다음에 이러한 기대와 문제의식이 얼마나 드러났는지 비교해 보아도 재미있을듯 합니다.
2007/04/16 01:44 2007/04/16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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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카스트 2007/04/16 06: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 달씩이나, 확실히 포도원의 제다이 플레이도 안심할 때는 아니군요.

    RPG를 하기 힘든 것은 여러 사람이 동시에 3~4시간 (그리고 가끔 그 이상)을 내야 한다는 점도 있지만 역시 일주일에 3~4시간을 낸다는 자체도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취미생활의 일종이 아닐까 하는데 저런 시간을 항상 낸다는 것도 쉬운 일인 것만은 아니죠.

    비동시성 플레이-동시성 플레이의 일면만 각각 보아온 저로서는 동시성 플레이가 비동시성 플레이로 전향되었을 때의 변화가 어떻게 될지도 궁금하군요. 물론 플레이어의 경험에 따라 꽤나 다른 플레이가 되겠지만요.

    • 로키 2007/04/16 08: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뭐 포도원의 제다이는 지금처럼 유지할 생각입니다. 캠페인 두개를 하기가 힘든 거지 방학중에 하나를 하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으니까요.

      글쎄요, 일주일에 뭉텅이로 3~4시간을 내는 것은 쉽지 않을지 몰라도 일주일에 짬짬이 3~4시간마저도 낼 수 없다면 그 취미는 별로 우선순위가 높지 않은 활동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비동시성 플레이의 매력은 자투리 시간의 활용이라고 보이니까요.

      저도 어떤 변화가 나타날지 궁금하군요. 방학이 끝나고 나서는 어떤 글을 올리게 될지 말이죠. '아무도 글 안올려서 흐지부지 되다니 너무해..ㅠㅠ'만은 아니길..(..)

    • 아카스트 2007/04/16 09:10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주일에 짬짬히 3~4시간 내기 힘든 건 제가 할 수 없는 이과생이기 때문입(...). 게다가 요즈음 과제가 폭주하는 바람에 우선순위가 가장 높은 RPG와 글쓰기에 시간을 할당하기도 곤란해서입니다. 학생의 한계일까나요.

      뭐 플레이는 잘 되시길 빌겠습니다.

    • 로키 2007/04/16 1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런.. 이과생은 힘든 거군요. 법대생도 힘들다고 말해도 과제는 잘 없고 한학기에 한번 있는 시험이 중심이 되는지라.. 그래도 취미생활 중 RPG가 순위가 높은 건 바람직한 현상입..(음?)

  2. orches 2007/04/16 06: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을 읽고 제가 순간 생각했던 비정기성 플레이의 문제점은.. 블로그나 위키나 (rrs를 사용하지 않고 어쩌다가 가끔 들어간다고 가정할 때) 업데이트(..)가 되었는지 확인할 길이 거의 없다는데 있달까요.. 그리고 세 사람이 만든 떡밥은 의의로 범위가 컸습니.. [시길의 한 당파를 말아먹은 세 pc들!] 이니까요.

    ps. 가볍게 스타트를 끊자! (물론 연구자금이나 권위도와는 좀 상관없을지도 모릅니.. 제목에 낚이시면 아니되십니..) 라는 마음으로 위키 페이지를 작성하면서 뻘뻘대었습니.. [웃음]

    • 로키 2007/04/16 09:00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 확실히 그런 점도 있겠군요. 제로보드를 생각하다가 결국 도쿠위키를 택한데는 그런 이유도 작용했죠. 그래서 비동시성 플레이에서는 필요한 기능이 갖춰진 매체를 고르는 것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 글 올리셨군요. (와아 기뻐라~) 제가 보기에는 연구자금이나 권위도 올릴 조건은 충분한데.. 자세한 얘기는 그 글에 댓글을 달아서 하도록 하죠.

    • orches 2007/04/16 2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참 파닥파닥거리는 미끼를 물고 놓지 않았던 orches입니다! 실시간은 아니지만, 위키에 달린 덧굴을 읽고 기뻤어요 ^^ 더불어서.. 위키랑 룰을 사용못하고 버벅대는 것도 모자라서 걱정을 끼치고 있는 것같아서 무척 죄송스럽습니다 ㅠㅠ

    • 로키 2007/04/17 0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죄송이라뇨~ 오히려 저한테만 익숙하지 다른 분들에게는 생소한 규칙과 위키를 강요하고 있는 것 같아서 제가 죄송하죠..(..)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질문해 주세요. ^^

    • orches 2007/04/17 06:41  댓글주소  수정/삭제

      최대한 고쳤다고 생각했는데, 버벅대는 부분이 생겼군요. (땀 뻘뻘..) 오른 연구자금 1으로 에르단에 대한 권위도를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연구원의 경우는 라피에가 맞아요. 근데.. 둘이 너무 이름이 비슷해서 저도 모르게 (시험기간이라 정신이 없기도 하고요..) 라피나라고 적었습니다. 고생하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넙죽] 이제 위키에 가신다면 수정한 것을 보실 수 있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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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마스터님의 이 글을 보고 떠오른 생각들입니다. (주거니 받거니.. 왠지 게시판 토론 삘이?) 특히 다음 부분이 인상에 남더군요.

다만 이런 방식을 쓸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는 게, 예상하실 수 있듯이 캠페인의 주도권이 대부분 마스터에게 넘어갑니다. 마스터 머릿속에서 이미 캠페인 엔딩까지 결정이 다 돼 있고 PC는 거의 마스터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식이 돼 버리기 쉽더라구요. 앞서 말했듯이 마스터가 먼저 마련한 배경은 오히려 높은 수준의 자유도를 보장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행동을 해도 마스터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게 돼 있다'는 걸 아는 (또는 그렇게 생각하는) 플레이어들은 곧잘 수동적인 대응만을 하게 됩니다.

RPG의 게임성에 대한 글에서 다루었듯, RPG의 재미는 의사결정과 그에 따라 달라지는 결과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참가자가 그렇게 느끼는 것이지만, 사실과 일치하는 인상을 주는 것이 제일 쉽다는 면에서 두가지는 겹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CB마스터님의 글에서 알 수 있듯 선택의 여지, 혹은 그 인상을 확보하는 것이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특히 인물 설정이나 지금까지의 사건에 비추어 선택이 뻔하고 어떻게 해도 진행자의 손안에서 놀 뿐이라고 생각되면 참가자는 자신의 선택에서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될 위험이 있습니다.

저도 그런 경험이 있었는데, 2005년 말에 진행했던 라이테이아 전기에 나온 케사르라는 주인공이 그 예였죠. 케사르는 설정상 연쇄살인(..) 전적이 있는 청년으로, 찾던 친부모를 마침내 만나지만 친부모가 갓난아이였던 자신을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키워준 요정족의 숲을 구하려면 자신을 버렸던 아버지의 후계자가 되어야 하는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극적인 상황이긴 했지만 사실 선택의 여지라는 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궁지를 넘어 주인공을 거의 함정으로 몰아넣은 셈이었으니까요. 좀더 운신의 폭이라든지 권력기반이 있었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었겠지만 7회짜리 단기 캠페인의 시간제한도 있었고, 케사르에게는 아버지에게 대항할 기반도 부족했죠. 결국 그는 아버지 앞에 무릎꿇고 손에 입을 맞추며 후계자가 되겠다고 맹세함으로써 숲의 아들로서의 자신을 버립니다.

참가자분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지금 생각해도 멋진 장면이 나오기는 했지만, 사실 저 상황에서 참가자분이 '에잇 선택의 여지 따위 없잖아! 알았수다. 후계자 합죠 뭐.' 라고 반응했어도 진행자로서는 크게 할말은 없었던 상황이기도 합니..(..) 그만큼 저런 선택의 여지가 없는, 혹은 극히 적은 상황설정은 최대한 아끼거나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어떻게 보면 인물 설정이라는 또다른 '선택'의 결과라고 볼 수도 있고, 그래서 참가자의 이해와 협력이 있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플레이 내에서의 선택이 제한되는 것은 틀림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이와 같이 참가자의 선택의 여지가 줄어드는 원인은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원인에 대해서는 링크한 CB마스터님의 글과 얼마전에 천승민님이 다셨던 댓글이 실마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즉 진행자가 뭔가 '준비'했고, 어떤 결과를 '예상'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참가자의 선택권을 줄이는 게 아닌가 하는, 어떻게 보면 기운빠지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라이테이아 전기 때 제 경험이 그랬습니다. 특정한 결과를 예상하고 상황을 만들다 보니 참가자들을 자꾸 그쪽으로 몰고 가는 느낌이 강하게 들더군요. (요정숲을 구하기 위해 희생해야겠지? 아직 이유가 부족해? 자, 여기 또다른 이유가 있다! ..) 그러다 보니 참가자들도 눈치채고 진행자의 눈치를 보면서 자신의 선택을 스스로 줄여가는 게 아니었을지... 아마 그렇기 때문에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 과거의 그늘 (The Shadow of Yesterday) 등 많은  인디 RPG들이 어떤 사건의 진행이나 귀결을 절대로 정하지 말라고 진행자에게 조언하고 있는 것이겠죠.

이러한 선택의 제한, 내지는 부정을 극복하는 법 역시 천승민님의 댓글 중 두번째에서 그 실마리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젠 아주 대놓고 남의 댓글을 우려먹고 있습..) 즉 모든 사건을 준비하는 대신 초기 상황설정 외의 부분은 개방형으로 해놓고 참가자의 선택에 따라 귀결을 실제로 '만들어' 가는 것이 참가자의 선택을 최대한 확보하는 한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제 경험으로 예를 들면, 최근 진행하고 있는 포도원의 제다이 캠페인에서 첫 마을이었던 셀렌의 진행이 정말 아무 결과도 생각하지 않고 초기 세팅만 해둔 경우입니다.1 포도원의 개들 같은 경우 저런 진행표를 통해 결과를 정하지 않은 개방형 진행을 지원합니다만, 사실은 어떤 규칙이나 캠페인에든 적용 가능한 것이기도 하죠.

이 진행표에서 정해진 것은 제다이들이 오기까지 마을에서 무엇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제다이들이 오지 않는다면 상황이 어떻게 귀결될지. 그리고 몇몇 조연과 이들이 제다이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정도밖에 없습니다. 이 상황에 제다이들이 들어와서 일으키는 변화에 저는 조연들의 입장이 되어 그들 각자가 바라고 생각하는 바에 따라 반응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캠페인 내의 모든 사건은 제가 정했기 때문이 아니라 참가자들이 선택했기 때문에 그 결과로 나타나게 되고, 그 차이는 상당히 크다는 것이 제 경험입니다.

이 방식의 한가지 치명적인 약점이라면 자칫 참가자를 막막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뭔가 엄청난 상황은 있는데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알 수가 없으면 그건 선택의 폭이 너무 커서 결국 선택의 폭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 버리죠. 따라서 참가자에게 이 상황을 이렇게 이끌기 위해서는 이러이러한 일을 해야 한다는 과제가 보이도록 실마리를 잡아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단 참가자가 할 수 있는 일만 보여주면 그때부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나갈지는 참가자가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참가자가 적극적일수록 실마리는 조금만 주고 참가자가 창의적으로 방향을 창출할 수 있고, 참가자가 소극적일수록 실마리를 뚜렷하게, 많이 줄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장소, 인물, 초기 상황 설정만 하면 된다는 면에서 진행자의 부담감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시나리오식 진행보다 준비가 더 들어갈 수도 있다는 점도 유의사항입니다. 일단 시나리오가 짜지면 그로 인해 참가자가 접할 수 있는 장소와 인물이 어느정도 정해지는데 반해 참가자가 (이론적으로는) 어디든 가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면 준비해야 할 장소와 인물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니까요.

여기에 유의미한 제한을 가하고 진행자 머리가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서 상황이 중요해진다고 봅니다. 지금 상황이 살인사건의 해결이라면 실마리가 그쪽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 갑자기 스트립바를 가진 않을 테니까요. (..가려나요?) 따라서 상황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적절히 던져서 이미 준비된 장소와 인물로 이끄는 진행의 일반 기법이 중요해지고, 이것은 위의 '참가자 막막하게 만들지 않기'와도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아, 피해자하고 마지막으로 얘기한 사람이요? 그건 옆집 루시였죠, 아마.' 하는 증언이 있으면 이미 설정이 된 인물인 옆집 루시를 찾아갈 테니까요.

그렇다면 결국 진행자 손안에서 노는 것이 아니냐는 반문도 가능하겠지만, 저는 좀 다르다고 봅니다. 진행자는 특정한 상황을 주고 그 상황 속에서 운신할 수 있는 수단을 쥐어줄 뿐,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서 어떤 결과를 낼지는 참가자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과는 정해진 것이 없이 참가자의 행동과 그에 대한 반응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참가자 선택은 사건의 귀결에 하나하나 충실하게 반영됩니다. 누구에게 어떤 투로 얘기했는지부터 누구를 범인으로 지목했는지까지. 그것이 바로 참가자가 선택의 여지를 갖는다는 말의 의미 아닐까요.

물론 이것은 저같은 경우 이렇게 하니까 참가자 선택 여지가 커지더라... 하는 경험담일 뿐이지 모든 경우에 이렇다거나 모든 캠페인이 이래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완성도 높은 줄거리라든지 특색있는 세트와 같은 요소를 즐기는 데는 부적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참가자의 선택에 의해 유동적으로 만들어지는 이야기는 미리 정해진 줄거리의 철저한 완전성은 부족할 테고, 완벽하게 준비된 세트는 참가자들이 있는지도 모른채 안 가거나 부숴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결국 진행 방법을 결정할 때는 RPG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재미들을 서로 저울질할 수밖에 없고, 저같은 경우 그중 참가자 선택의 극대화를 택했을 뿐입니다. 현재까지는 참가자들이 만족을 표시하고 있으므로 유지할 생각이며, 이것은 어떤 진행 방법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놀이인 RPG에서 '재미'보다 우선할 수 있는 가치는 어디에도 없고, 모두가 재미있다면 그것이 곧 좋은 방법이니까요.


주석
  1. 다크포스 진행표는 포도원의 개들 원래 규칙에 나온 것을 찰스 페레즈씨가 스타워즈용으로 고친 것입니다. 페레즈씨의 글은 이곳에. [돌아가기]
2007/04/10 03:54 2007/04/10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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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마스터 vs PC, 정(靜) vs 동(動), 플롯 vs 커뮤니케이션, 대립과 상생.

    Tracked from The Adamantine Watchtower of... 2007/04/13 02:08  삭제

    최근 로키님이나 CBM님, 천승민님의 글을 읽으면서&nbsp;문득 든 생각은, '역시&nbsp;마스터와 플레이어는 서로 대립해야 하는 관계가 아닐까' 하는 것이었습니다.물론 "최종보스를 죽였으니 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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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BM 2007/04/10 05: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트랙백 주거니 받거니 완전 좋아합니다! 우와아아아아앙 (?!)

    저도 가능하면 과정과 결말을 자세히 정해놓지 않고 플레이에 임하고 싶지만... 전 아무래도 '참가자를 막막하게 하지 않기'가 너무 안되더라구요... 예전 예전에 한번 그것 때문에 무쟈게 좌절한 포스팅이 있을 듯. 그래서 결국 '준비를 다 해놓고 참가자가 되도록 준비한 내용을 눈치 못채게 한다'는 방향을 잡게 되었던 것입니다. 순발력 없는 저로서는 그 편이 참가자나 저 자신을 더 즐겁게 할 수 있는 방향이었던 것 같습니다.

    근데 마스터마다 정말 스타일이 다르다는 사실은 퍽 재밌는데요. 플레이어가 마스터를 취사선택할 수 있다면 이런 스타일에 따라서도 호불호가 갈리려나요.

    • 로키 2007/04/11 04: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블로그의 로망인 겁... 음하하하.

      전에 세션 준비에 대한 글에서 얘기 주고받았듯, 저하고는 완전 고민이 반대시네요. 저는 앉아서 미리 뭔가 만드는 걸 너무 못하기 때문에 이쪽으로 가는 게 편한 것 같아요. 혼자서 생각하려고 하면 잘 떠오르지도 않고, 막상 참가자들하고 맞닥뜨리면(?) 거의 다 말이 안돼서 내버려야 하더라고요. 진행 기법을 선택할 때는 확실히 기질이나 재능 면에서 자신에게 맞는 것을 고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참가자도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맞는 진행자가 따로 있을 테고요.

      실제로 참가자의 선택에 의해 결과가 달라지는 것보다 중요한 문제는 참가자가 그렇게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아닌 척'하는 기법은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참가자의 능동성과 미리 준비된 시나리오의 완성도를 둘다 확보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양쪽 접근의 장점을 다 취하는 것이겠죠. 저는 계속 실패한 부분이기도 하기 때문에 어떻게 얘기할 수가 없기도 합니다. 하여튼 흥미로운 주제겠네요.

  2. Wishsong 2007/04/10 21: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가자들의 선택에 중점을 두는 플레이를 하기 위해서는 참가자들이 '자신이 누구(배경 세계 안에서)인지', '그리고 자신이 서 있는 세계가 어디인지'를 명확하게 인지하거나, 배경 세계 자체가 그러한 것을 강하게 인지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돌아갈 수 있을 만큼 유연한(혹은 헐거운) 배경 세계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시겠지만, 제가 전에 스토리엔진으로 트랜스휴먼 스페이스를 진행하려고 한 적이 있었죠. 결국에는 실패에 가깝게 끝났습니다. (참가자 중 2명은 중간에 사라지고, 다른 두 명도 '힘들었다' 라고 고백을 털어놓았으니;) 실패 원인을 나름대로 분석해보니, 무엇보다도 트랜스휴먼 스페이스라는 세계 자체가 단시간 플레이로 하기에는 너무 어려웠다.... 라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어떠한 사람들이고, 어떠한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라는 것을 완전하게 습득하지 못한 PC들은 '좀 더 신중해지면서' 자신의 선택보다는 마스터의 진행에 의존하게 된다는 거죠.

    예를 들어, 로키님이 진행하시는 포도원의 제다이 같은 경우, '제다이'라는 코드는 스타워즈를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먹혀 들고, 참가자들이 '제다이다운' 행동과 선택을 할 확률은 커질 것입니다. 반면, 창작으로 만드신 라이테이아 전기에서 진행자가 의도한 분위기(예를 들어, 인간의 확장 앞에 사라지는 숲의 종족들의 슬픔 같은)를 단시간 안에 완벽하게 받아들이고 그에 맞춰 적극적인 피드백을 보여주는 참가자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로키님이 7회짜리 라이테이아 캠페인에서 취하신 선택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요? 만일 좀 더 장기적으로 나아갔다면, 분명히 로키님이 의도하신대로 참가자들이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로키 2007/04/11 03:12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 확실히 그런 면이 있네요. 자신의 인물에게 주어진 사회적 기대치의 습득, 배경세계에 대한 지식, 그리고 이러한 정보를 흡수하기 위한 시간이라는 문제가 서로 연관되는군요. 제다이 캠페인 같은 경우는 거의 순식간, 라이테이아의 경우는 어느 정도의 플레이 시간 하는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그렇다 해도 세계에 대한 지식도 (적어도 플레이 중에는) 진행자에게서 상당 부분 나온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라이테이아 당시에도 역시 제가 결론을 정해놓은 점이 참가자의 선택 제한에 더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만약에 제가 결론을 생각해둔 게 없었고 참가자가 아버지에게 대항할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면 저는 세력기반을 쌓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했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캠페인의 내용은 전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무력 투쟁이라든지, 정치 암투라든지.

      물론 그랬으면 7화 내에 끝내기 어려워졌을지도 모른다는 점은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라이테이아는 계속 시간 제한에 대한 압박에 시달렸던 플레이였고, 그래서 더 참가자들이 선택을 제한하고 제한받았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어떻게 보면 키워드는 '정보' 이상으로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시간과 같은 캠페인의 제약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써 암묵적·명시적으로 참가자의 선택이 제한당한 것일지도요. 이것도 참 흥미로운 문제네요. 캠페인의 다른 제약 (시간, 다른 참가자의 참여도 등)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개별 참가자의 선택은 제한받을 수도 있다는 얘기로 보이니까요.

      그리고 어떻게 보면 그게 옳습니다. 중요한 건 '재미'이고 선택은 그중 한 요소일 뿐이라면, 재미를 위한 요소들을 저울질할 때 선택은 다른 요소들을 위해 일부 희생당할 수 있을 테니까요. 더군다나 설정중의 선택을 최대한 존중하는 방향으로 플레이중의 선택을 제한하는 것이라면 말이죠.

      선택은 재미의 요소 중에도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제한할 것은 아니지만, 제한이 필요한 경우도 얼마든지 있는 것 같습니다. (가능하면 일행을 유지시키는 선택을 해야 한다거나) 재미의 요소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도 생각해볼만한 주제인듯 하네요.

  3. Asdee 2007/04/10 2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로키님과 CB마스터님, 천승민 님의 글타래를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저 역시 플레이어들의 참여를 열어놓기를 바라는데, 그리 쉽지가 않네요. 무엇보다도 시나리오를 짤 때, 제 흥에 겨워서 NPC와 월드 중심으로 이미 "꽉 짜여진" 이야기를 만들어버리는 버릇 탓인 듯...

    잘 모르겠지만, PC 중심의 열린 진행은 아무래도 중장기 캠페인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단기 캠페인에서도 상황 제시와 진행 방향이 뚜렷하다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요. 그렇더라도, 플레이어가 충분히 '열린 결말'을 추구할 수 있을만큼의 플레이 기간이 보장되어야 될 것 같습니다.

    단기 캠페인에서도 플레이어들의 자유의지와 참여를 극대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 로키 2007/04/11 04:13  댓글주소  수정/삭제

      Asdee님 말씀대로 상황 제시가 뚜렷하고 곁가지가 너무 많지 않은 진행이라면 단기 뿐만 아니라 단편에서도 상당히 개방형 진행이 가능하다는 것이 제 경험입니다. 다만 그 개방성은 '그 상황 내에서'라는 제한이 붙긴 하지만, 이것은 참가자의 의지를 제한하는 구속이라기보다는 플레이를 재미있게 하는 유의미한 제한이라고 봅니다.

      특히 플레이 기간이 제한된 경우는 상황의 제한이 오히려 참가자의 선택권을 확장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라이테이아와 비슷한 시기에 했던 영혼의 우물은 단편이었는데도 7회짜리 라이테이아 전기보다 오히려 더 자유도가 높았다고 생각하는데, 이 두가지의 차이는 영혼의 우물은 매우 제한적인 상황만을 다루었던 반면 (숲에서 사라진 형을 구해라!), 라이테이아 전기는 상당히 여러 방향으로 빠질 수 있는 대규모의 개인적·정치적 갈등이 소재였거든요. 영혼의 우물과는 달리 뭐라고 한마디로 요약할 수도 없지만 굳이 말하면 '자신의 정체성과 과거를 해결하는 동시에 두 문명간의 갈등을 해소해라!'에 가까웠으니 얼마나 규모가 큰 얘기였는지는 상상에 맡깁니..(..)

      결국 라이테이아 캠페인에서 참가자의 선택이 제한당한 면이 많았던 것은 역설적으로 주어진 상황이 너무 개방적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장기 캠페인에서나 다룰 수 있을만큼 커다란 소재를 가지고 7회 내에 결말을 봐야 했으니 참가자들이 이런저런 곁가지로 빠지게 두었다가는 제때 끝내기 힘들었겠죠.

      상황 제한만큼 중요한 것이 주어진 상황에 맞게 주인공을 제작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렇게 하면 주인공의 설정과 능력치가 모두 그 상황에 어울리게 되어서 더욱 효과적으로 활약하게 되고, 그만큼 운신의 폭이 넓어지니까요. 주인공들의 설정을 신호로 상황에 추가해도 쓸데없는 곁가지가 생기지 않으니 주인공 중심성도 확보되고요. 만약 지금 라이테이아 전기를 다시 한다면 아마 '여러분은 영토분쟁 문제 해결을 위해 제국 특사에서 데어웬에 보낸 외교사절입니다.' 하는 식으로 인물 설정 단계부터 상황을 정해줄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제 생각에는 캠페인의 길이 (단편, 단기, 중기, 장기 등)에 어울리는 규모의 상황 설정, 그리고 그 상황에 어울리는 주인공 제작 정도가 단기 캠페인에도 적용할 수 있는 주인공 중심 개방형 진행의 조건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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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 중심의 캠페인 제작이라는 글에 나온 신호 중심의 진행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려고 합니다. 전에 재밌게 봤던 CB마스터님의 세션 준비 글과도 관련이 있어 보여서 엮인글로 올립니다.

구체적으로 신호라는 뉘앙스를 캠페인으로 응결시키는 방법은 많은 직관적 비약과 주관성이 들어가는 과정인지라 설명하기가 좀 어렵지만, 비교적 간단한 1:1 단편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다 뻔한 얘기입니다만, 로빈 로스씨가 말했듯 뻔하거나 습관적인 것도 그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배울 수 있는 것이 있게 마련이니까요.

사용할 예는 구네님과 재작년쯤에 진행한 즉석 단편, '영혼의 우물'입니다. 구네님의 주인공 칼은 사냥꾼인 아버지와 형과 숲에서 살다가 모험을 떠난 모험가로, 명성을 쫓아 여행하다가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참석을 못해서 형과 사이가 틀어졌죠. 여기서 도출되는 구체적인 신호는 일단 형, 어쩌면 숲. 좀더 추상적인 신호는 모험, 모험 경험에서 형성된 능력과 성격, 형과의 갈등, 가족에 대한 의무 등.

여기에다가 진행자인 저의 목표를 첨가하자면 고전 동화의 환상적인 분위기, 이미 밤새 RPG를 한 대미(..?)를 장식하는 시점이었으므로 무겁지 않은 가볍고 재미있는 분위기, 그러면서도 얄팍하지 않은 내용 정도였죠. 이렇게 참가자가 원하는 것과 진행자가 원하는 것들이 정해졌고, 욕구들 사이에 특별한 충돌이 없었으므로 시작할 기반이 갖추어졌습니다.

인물 제작을 마치고 바로 모험을 시작하면서 모험의 초점은 일단 주인공의 형과 숲으로 정했습니다. 그렇다면 주인공의 형이 숲에서 실종된 정도는 어떨까 하고 생각했죠. 가족에 대한 의무는 주인공의 신호에도 속하기 때문에 사라진 형의 실마리를 쫓아 주인공이 여행해온 것으로 했습니다. 주점에서 주인장과의 대화를 통해 형이 이곳의 저주받은 숲에서 실종된 것이 확실하며, 아직 형이 칼에게 앙금이 남아있다는 점을 확인시켜서 주요 신호를 강조하며 시작했죠.

숲에서 형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된 주인공은 숲에서 돌아온 유일한 사람인 푸줏간집 딸을 만나러 가지요.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렸으니 소용없을 거라는 얘기 또한 듣지만요.

푸줏간집 딸 아이렌을 만나는 장면은 또다른 신호를 등장시킬 기회가 되었습니다. 모험이라는 소재와 갈등되면서 가족에 대한 의무와 연관되고, 동시에 인간의 모든 이야기에 무난하게 연관시킬 수 있는 소재... 바로 결혼! 그래서 푸줏간집 주인 아저씨는 미쳐버린 딸의 혼처를 심히 걱정하고 있으며, 거의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딸이 낯선 남자와 함께 숲으로 가는 것을 허락하는 대신 주인공에게 딸을 책임지겠다고 약속시키는 반강제적 약혼을 시켰습니다.

아이렌과 숲에 들어온 주인공은 말하는 토끼를 붙잡아 취조(..?)한 끝에 (이 과정에서 사냥꾼으로서의 능력과 모험자의 기지를 활용하면서 제가 원하는 동화적이이면서 무겁지 않은 분위기 연출) 아이렌의 안내와 토끼의 도움으로 사람들을 실종시키는 장본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숲의 주인이라는 수호정령으로, 사람들이 숲을 파괴하는데 분노해서 숲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영혼을 영혼의 우물에 가둬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실종자들은 자기 영혼이 갇힌 영혼의 우물을 떠날 수가 없었고, 숲을 헤매다 구출되었던 아이렌은 말 그대로 혼이 나간채 계속 영혼의 우물로 돌아오려고 애쓴 것이죠.

이런 식으로 숲을 떠난 주인공과 숲에 남았던 형, 그리고 형제간의 갈등이라는 신호를 건드려둔 후 절정 부분에서는 구네님의 멋진 문제해결을 지켜보면 그만이었습니다. 스스로 숲을 지키고 숲과 더불어 살아가겠다고 약속한 주인공의 진심은 숲의 주인의 분노를 잠재우고, 영혼의 우물에 갇혀있던 영혼들이 풀려나면서 주인공의 형을 비롯한 실종자들, 그리고 아이렌은 모두 제정신을 되찾습니다. 칼의 결정은 가족에 대한 의무와 그에 부수되면서 모험과 대비되는 '정착'이라는 문제, 그리고 숲이라는 신호를 살리는 것이기도 했죠.

그리고 실종자들의 귀환 (당면한 문제 해결), 주인공과 형의 화해 (형이라는 신호 해소), 그리고 주인공과 푸줏간집 아가씨와의 썸씽(..?)으로 (로맨스라는 보편적인 소재, 숲에 정착하기로 한 주인공의 결정과 연결, 가족에 대한 의무와 모험 사이의 갈등 해소) 영혼의 우물 단편은 끝을 맺습니다.

여러모로 이 단편은 실종 문제라는 과제의 해결 뿐만 아니라 주인공 자신도 약속의 책임을 지고 형과 화해하는 등 내적으로 성장을 이룬 꽤 깔끔한 단편으로 기억합니다. 설명한 바대로 주인공 설정을 통해 드러난 신호를 적절히 활용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됐고요.  당연히 참가자의 좋은 의사결정이 아니었으면 나오지도 못할 내용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구네님도 저도 저걸 다 의식적으로 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말한대로 직관적 비약이 많이 들어가는 과정이니까요. 하지만 참가자와 별개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그걸 참가자에게 보여주는 방식보다는 주인공 설정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더 부드럽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신호의 해석과 구현 과정에서 참가자와 진행자의 취향과 관심사가 둘다 들어가니 서로 즐거울 수 있는 거죠.

주인공이 여럿인 플레이라면 신호를 엮어가는 방식을 사용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비슷한 시기에 진행했던 라이테이아 전기에서는 세 주인공을 초창기에 엮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주인공 중 하나인 니콜라이는 뉘우친 도둑으로서 양녀를 위해 큰 돈을 벌려고 하고 있었고, 또 하나인 아리에는 여사제였다가 포로로 잡혀서 노예가 되었고, 세번째인 케사르는 친부모를 찾으려고 하고 있었죠. 그래서 이 세 사람을 만나게 하기 위해서 아리에가 팔려가는 밤에 니콜라이가 그녀를 구하기 위해 고용되었고, 케사르는 아리에와 함께 여행하면 친부모를 찾을 것이라는 예언을 들은 상태에서 우연히 그 장소를 지나게 했습니다.

물론 신호 중심의 진행에 대한 글에서 밝혔듯 이러한 방식은 어떤 식으로든 참가자의 능동성을 요구합니다. 영혼의 우물에서 칼이 '음... 별로 형을 찾고 싶지 않아. 술이나 마시면서 뭔가 다른 일이 생기길 기다리자.'라고 한다든지 라이테이아 전기에서 니콜라이가 '위험해 보이니까 돈은 포기해야지'라고 한다면 진행자는 난감해집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신호를 주는 것이겠지만, 다른 신호에도 반응하지 않는다면 난감함은 더욱 깊어집니다. 신호 중심 진행에서 진행자가 준비한 이야기는 주인공의 목적과 욕구를 통해 표출된 참가자의 흥미에서 나오는 것이고, 참가자가 이 흥미를 잘못 표시했거나 흥미가 없으면서 진행자에게 거짓말을 했다면 더이상 진행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신호 중심 진행에서 이야기는 참가자 혹은 주인공과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기 위해서는 진행자가 상황을 주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스스로 행동하며 사건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뭐 언제든 막힐 수는 있고, 그럴 때면 주인공이 반응할 수밖에 없게 진행자가 위기상황을 던져주는 것도 늘어지는 진행을 활성화시키는 고전적인 방법입니다. 참가자가 반응하다 보면 진행자가 또 그 반응에 반응할 빌미가 생기고, 그런 식으로 플레이가 이어지니까요.

참가자가 진행자가 주는 모든 신호를 거부하면서 위기상황에 빠뜨리면 불평한다면 그건  결국 플레이하기가 싫다는 얘기니까 맞아야 됩 플레이의 기본적인 사회계약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참여자간 대화로 풀어가야 할 문제이지 더이상 진행 방식과 같은 플레이 내적 문제는 아닌 것이죠.

신호 중심 진행의 예만 들려고 했는데 결국 원래 글의 2부에 가깝게 됐군요. 어쨌든 제가 진행하는 방식, 내지는 지향하는 이상은 이런 것입니다. 당연히 이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방법도 많이 있겠고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방법이 따로 있을 것입니다. 저와 방식이 다른 CB마스터님의 글을 보고 느낀 바가 있었듯 다른 분들도 생각해볼 거리를 발견할 수 있다면 더 바랄 바가 없죠.
2007/04/03 23:55 2007/04/03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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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배경 중심의 캠페인

    Tracked from :: Castle Magic Mirror :: 2007/04/07 03:01  삭제

    로키님의 감사한 트랙백을 받고 생각난 점을 휘갈겨 봅니다.&nbsp;관계가 있을지도, 없을지도.인물의 설정을 중심으로 한 로키님의 캠페인은 정말 캐릭터에 대단히 밀착된 느낌이&nbsp;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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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내용은 기본적으로는 반쿠에이씨의 Flag Framing 기법과 Conflict Web을 접목시킨 것입니다. (블로그가 사라져서 archive.org 저장본 링크 겁니다. 위에서 7번째, 8번째 글입니다.)

1. 개괄


캠페인 제작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주인공 설정에서부터 쌓아올리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실은 주인공 설정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참가자의 관심방향을 보여주는 신호로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요.

참가자의 관심방향에 대한 신호는 크게 두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첫번째는 대상 그 자체, 두번째는 일정한 주제의식 혹은 감정선. 첫번째 부류의 예로는 주인공과 관련이 있는 조연이나 장소가 대표적일 것입니다. 주인공의 고향 플레인이라든지, 지금은 적이 되어버린 쌍둥이 언니라든지. 이러한 신호는 캠페인에 넣기가 비교적 간단하지만, 언제나 등장할 수는 없다는 점이 한계입니다. 캠페인 세계의 개연성이나 각 인물의 활동에 따라서는 지금 당장 등장시키기 힘들 때가 많으니까요.

여기에서 두번째 부류의 신호가 중요해집니다. 주제의식과 감정선은 보다 추상적이기 때문에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캠페인 내에서 계속 끌고갈 수 있으며, 적당히 엮고 대립시키면 주인공들의 협력과 갈등관계를 보다 공고히 묶는 수단이 되니까요. 예를 들어 어린아이를 좋아하는 주인공이 있다고 하면 정확히 어떤 어린아이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문제이고, 어린아이를 위해주고 도와주는 상황을 계속 던져주면 되기 때문에 구체적인 대상을 등장시키는 것보다 한결 유연한 진행이 가능합니다. 여기에다가 다른 주인공의 제멋대로인 성격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를 계속 넣는다든지, 또다른 주인공의 호기심이 동할 소지를 넣는다든지 해서 주인공들의 신호를 서로 엮어볼 수 있겠죠.

주인공끼리 신호를 엮는 방법을 사용하면 구체적인 대상 신호, 즉 첫번째 부류의 신호를 사용할 때도 그 신호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주인공들 역시 개입시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주인공의 출생의 비밀이 다른 주인공의 정체성 갈등과 연관된다든지 말이죠.

2. 신호 파악

참가자가 보내는 신호를 파악하는 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일단 인물 제작 과정에서 어떤 얘기들이 나오는지, 어떤 설정에 참가자가 흥미를 보내는지 귀기울이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가족 얘기를 많이 한다면 그 주인공의 이야기에는 가족을 개입시키면 참가자의 흥미를 끌 공산이 큽니다. 주인공의 설정은 참가자와 게임 세계 사이의 일종의 인터페이스이며, 참가자에게 무엇이 흥미로운지 하는 하나의 필터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인물 제작 과정에서부터 진행자가, 그리고 가급적이면 팀 전원이 적극적으로 토론하고 발상을 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신호 중심 캠페인에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많은 RPG 규칙에서는 캐릭터 시트 자체도 신호를 표시해 주고 있습니다.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에서 성취 플레이는 참가자의 주요 관심사를 보여주고 있으며, 능력치와 인간관계 역시 이를 보조하는 신호로 기능하지요. 과거의 그늘 (The Shadow of Yesterday)은 특히 열쇠가 신호 표시의 용도가 강하고, 캠페인 중 신호를 발동할 때마다 경험치가 쌓인다는 점에서 전술적 판단과 신호 활용을 강하게 엮고 있습니다. 페이트 (FATE) 혹은 세기의 혼 (Spirit of the Century)은 면모에 그대로 신호가 드러나며, 참가자가 극점수라는 자원을 소모해서 능동적으로 신호를 발동할 수 있다는 점이 주목할만 합니다. 겁스 (GURPS)의 장단점 역시 신호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수가 비교적 많아서 그중 어느 것이 중요한지 가려내려면 참가자에게 더욱 열심히 귀기울여야 하겠지만요.

물론 인물과 별개로 참가자 자신을 관찰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이야기를 흥미로워하는지, 어떤 로망을 가지고 있는지. 주인공의 설정은 참가자의 관심거리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이지만, 참가자가 원하는 것은 주인공 설정에 전부 포괄되지는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아, 이 사람은 적당히 코믹한 소년물 성향이구나. 이 사람은 극적이고 깊이있는 이야기를 좋아하는구나. 등등.

주의할 것은, 참가자의 관심사에 중점을 둔다고 해서 진행자가 참가자 입안의 혀처럼 굴면서 진행자 자신의 관심사나 로망을 희생한다는 얘기는 전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차피 진행자는 거시적인 시각에서 캠페인을 만들어가는 입장이기 때문에 캠페인에 진행자의 관심사가 반영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참가자의 신호에 신경쓴다는 것은 여기에 더해 참가자도 정말 흥미를 가지고 참여하도록 캠페인을 만들어간다는 얘기일 뿐이죠. 신호는 참가자에게서 나오되 이 신호를 캠페인상에 해석하고 구현하는 것은 진행자의 역할이니까요. 인물 제작 단계에서부터 진행자의 적극적인 개입과 참여가 중요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3. 캠페인 준비와 진행

이렇게 신호를 추출해 내면 ('가족' '고향 플레인' '쌍둥이 언니' '어린아이를 좋아한다' 등등) 그 신호에서는 다시 캠페인에 활용할 수 있는 인물과 장소, 이미지, 주제의식 등이 나옵니다. 그리고 신호에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인물과 장소 외에도 주제의식이나 감정선에서도 또다시 인물과 배경을 추출할 수 있지요. 조연들에게는 각각 주인공에게 바라는 바, 목표와 자원, 한계를 부여합니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 주인공의 신호와 관계되는지 재확인합니다. 장소 역시 비슷하죠. 신호 관련성, 특색, 모험에 활용할 수 있는 요소, 이 장소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조연 등을 준비하면 됩니다.

이런 식으로 인물들이 준비되면 진행자는 주인공 한명 혹은 그 이상의 신호가 개입된 상황을 던져주고, 참가자들은 자기 관심사가 직접 개입돼 있으니 그 신호를 쫓아 반응할 것입니다. 조연들은 그들 각각의 목표와 주인공에게 바라는 바에 따라 주인공들의 행동에 다시 반응합니다. 이 조연들은 주인공의 신호에서 추출한 것이니 이들의 행동은 다시 신호를 발동하게 될테고 (그러지 않는다면 진행자는 다시 신호가 발동될만한 상황을 던지면 되죠), 또 주인공들이 행동하면 조연들은 반응... 하는 식으로 캠페인이 이어집니다.

이렇게 되면 더이상 진행자는 시나리오나 이야기를 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참가자들과 마찬가지로 인물의 역할을 맡아 상황에 즉흥적으로 반응하면 되니까요. 다만 그 인물이 한명의 주인공이 아닌 여러명의 조연일 뿐.

4. 한계

이와 같이 신호 활용은 캠페인 제작과 운용의 강력한 도구이지만 한계도 있습니다. 바로 참가자들이 신호를 쫓으며 적극적으로 뭔가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진행자로서의 저는 능동적인 참가자에게 기대는 면이 있으며, 참가자가 수동적이면 속수무책이 된채 쩔쩔매게 됩니다. 인물 제작 단계라든지 캠페인에 대한 토론 단계에서 분명히 이게 신호다! 라고 확신하고 진행하는데 정작 참가자는 신호를 쫓아오지도, 활용하지도 않으면 난감해지지요.

예를 들어 지금 진행하는 레이디의 그늘 캠페인에서는 주인공들을 엮을만한 꺼리가 나름 풍부하게 마련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해보니 그렇지 못해서 당황중입니다. 주인공 중 한명은 자기 고향 플레인을 찾으려고 하고 있고 이 동기를 열쇠로도 택했기 때문에 경험 많은 플레인워커인 다른 주인공과 쉽게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고향 플레인에 대한 것은 일언반구 나오지조차 않아서 당황.

엮을 거리가 부족한가 염려되어서 약간 논리적으로 무리를 해가면서 두 주인공에게 공통으로 임무를 주기도 했습니다. 이 임무는 주인공 중 하나에게는 자기 고향 플레인을 찾는데, 다른 하나에게는 좋아하는 여자에게 접근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암시도 주었습니다...만, 역시 입질이 없더군요. 결국 주인공들끼리 별다른 접점이 없이 서로 겉도는 동안 진행자는 고민이 늘어가는 상황입니다. 세번째 주인공을 추가하면서 새로운 경험에 대한 호기심이 넘친다는 설정이니 어디든 쉽게 엮어넣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보기 드물 정도로 호기심 없는 인물인 것으로 밝혀져서 또다시 좌절..(...)

이와 같이 캠페인에 대한 신호 중심 접근은 신호에 대한 진행자와 참가자의 기대치가 어긋났을 경우 캠페인이 심각하게 표류할 수 있다는 한계를 가집니다. 물론 참가자를 막막하게 만드는 것은 진행자의 실책이고, 참가자가 막막해하고 있으면 강력하게 이끌어가는 것이 진행자의 책임일 것입니다. 문제는 참가자가 적극적으로 신호를 쫓아가고 거기에 다시 반응하는 방식에 익숙한 저로서는 참가자들과 나란히 막막해진다는 것이죠. ㅠ_ㅠ 참가자가 적극적이지 않으면 진행자로서 잘 기능을 못한달까요. 그래서 요즘은 신호 중심 접근이 실패했을 때 보완할만한 방법을 모색중이기도 합니다. 어떤 진행 수단도 완전한 것은 없으니까요.
2007/03/23 19:02 2007/03/23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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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숙조신 2007/03/24 1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Deep in the Game 블로그 주인이 없애버려서 너무 슬퍼요 ㅠㅠ

  2. beholder 2007/03/25 22: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떡밥에 반응없는 플레이어들을 보자면 뭐랄까요, 끓는 주전자에 손잡이가 안 달려있는 거 같달까나...^^ 어디부터 손을 대야할지 난감하더군요.

    흠... 영 반응이 없을 경우 - 어떤 것에 대해 욕망한다거나 추구한다거나 하는 것보다 다소 원초적일지 모르나 PC가 스스로를 보호할 필요가 있는 시나리오를 디자인해보는 것도 한 방법일 것 같습니다. 등따시고 배부르면 게을러(...) 지는게 인지상정이니 말이죠. +ㅃ+

    • 로키 2007/03/25 2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 확실히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레이디의 그늘 4화에서는 위기상황을 집어넣기도 했죠. 참가자들이 막막해하고 있으면 대응할 수 있는 상황을 던져주는 게 최선의 방법이기도 하고요. 사실 그 캠페인에서도 참가자들이 모든 떡밥에 입질을 안한 건 아니고 능동적으로 플레이를 만들어가고 있는 면도 많은데, 진행자 입장에서는 좀더 욕심이 날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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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월드 16화 플레이 감상입니다.

지연의 병문안과 유미나에 대한 문의를 위해 민설, 희연, 리이는 민랑을 태우고 병원으로 향합니다. 도착한 그들은 민랑에게는 먼저 지연의 병실로 올라가라고 한 후 경비 할아버지에게 그때 리이에게 받은 신분증에 대해 묻습니다.

여기서 민랑을 먼저 올려보내자는 리이의 판단이 화근이 됩니다. 사실 뭐, 민랑이 자세히 알아서 좋을 일은 아니기 때문에 그랬지만요. 역시 피보호자는 CP값을 해야..(퍽)

할아버지에 따르면 신분증은 그 다음날 자리를 비운 사이 없어졌으며, 그 신분증에 나오는 여자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또 병원 증축 얘기가 나오자 질색을 하며 아침 일찍부터 원장실을 찾는 사람들에 얘기를 하죠. 군번표를 건네받자 할아버지는 리이의 예지에서처럼 눈물을 흘립니다.

6·25에 참전한 할아버지가 있는 사람이 2005년에 그 자신 할아버지라는 건 사실 조금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김정남씨 본인도 대충 6·25 때 참전이 가능했을만한 나이인 것 같은데 말입니.. 게다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면 물론 슬프긴 하지만 50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저렇게 슬퍼할 사유인지도... (아니면 내가 비정한 건가!)

속보! (..) 사실 김정훈씨는 김정남씨의 형님으로 밝혀지다! (퍽)  제노님이 그때 실수로 할아버지라고 치셨던 모양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전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병실에 올라가자 뜻밖에 아무도 없고, 때마침 시준이 들어와 지연이가 아침부터 안 보여서 랑이의 부탁으로 찾으러 내려갔다 왔다고 합니다. 민랑이 안 나타나자 민설은 안절부절 못하고... 리이는 병실 안에, 특히 지연의 침대 중심으로 강한 영기를 느끼는데, 희연과 민설이 수색해본 결과 전에 붙였던 부적은 모두 찢어져 있었죠. 리이는 지연이 빙의되어 민랑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에 질립니다.

여기서 시준의 말과 17화에서의 지연의 말이 모순되는 기분이... 그 점에 대해서는 17화에서 다루기로 하죠.

세 사람은 지연과 민랑을 찾기 위해 뛰쳐나가고, 리이는 전처럼 3층과 5층 사이에서 실마리가 있을까 해서 계단으로 내려가자고 합니다. 하지만 영기는 느껴지지 않고, 옥상도 이번에는 조용합니다. 내려오는 길에 6층에서 지연을 본 일행은 쫓아내려가지만 지연은 그들의 부름에 대꾸도 없이 5층으로 빠지지요. 급히 쫓아가도 지연은 보이지 않고, 대신 희연은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것을 눈치챕니다. 멈춰선 곳은 지하 2층.

꼭 필요할 때는 없는 영들이었습..(퍽) 이때의 지연의 행동은 빙의가 아닌 이상 설명하기 어렵죠. 조금 있다 나올 시준과 마찬가지로 원령들의 속임수일 수도 있지만요.

민설과 리이가 엘리베이터로 내려가는 동안 희연은 5층 카운터에 들러서 민랑을 찾는 원내 방송을 부탁하고 계단으로 내려가던 도중, 비상구 문이 쾅 닫히고 층계참의 모든 불이 꺼지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때마침 핸드폰 전원까지 떨어지고... 전파방해라면 몰라도 전원이 떨어진다는 건 자체 전원이 있는 핸드폰인만큼 영현상으로 좀 설명하기 어려울듯 합니다. 갑자기 밧데리 방전이 되는 영현상도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어쨌든 가장 그럴듯한 해석은 희연이 핸드폰 충전을 잊었다는 건데, 보통 그런 행동은  화장실 가고 목욕하는 것과 비슷하게 굳이 선언하지 않아도 처리되지 않나요? 이런 설정은 자칫하면 참가자들이 핸드폰 충전 같은, 캠페인과 별 상관없는 세세한 데 신경을 쓰는 등 소심해질 위험이 있다고 봅니다.

실제 전원이 떨어진 것은 아닌 것도 같은 게, 나중에 17화에서 희연의 핸드폰은 기사회생해서 악령들에게 문자를 받는 기염을 토하거든요! (...) 하지만 희연이 본 액정표시가 설사 눈속임이었다 하더라도 리이가 전화했을 때는 '사용자 전화기가 꺼져있어..' 멘트가 나왔었고 말이죠. 결국 영들이 방전시켰다는 얘기가 가장 설득력 있는 것 같군요. 영에게 받는 문자는 전원이 안 켜져도 가능할지 모르고 말이죠. 여러모로 전파방해가 나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어쨌든 저는 머리에 쥐가 나기 시작해서..(...)

지하 2층에서는 길이 양갈래로 갈라져 있어서 민설과 리이는 각각 오른쪽과 왼쪽으로 흩어지지요. 리이는 중년 의사와 유사장이라고 불리는 덩치큰 사내와 마주치고, 민설은 약품저장고 안에 서 부러진 주사바늘을 어깨에 꽂은 시체를 발견합니다.

의사와 유사장은 이곳은 일반인 출입 금지라고 나가라고 하고, 리이는 처음에는 사람을 찾기 전에는 못 간다고 완강히 저항하다가 완력으로 쫓겨날 지경이 되자 사실 사람을 찾는다는 건 눈속임이고 자신은 병원재단과 정림기업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식으로 필사적으로 둘러댑니다. 유사장이라는 사람은 자신이 데리고 나가겠다며 의사를 먼저 올려보내고 리이에게 더 자세한 얘기를 들으려고 하지요. 경비업체 사장인 그는 이 병원과 이사장 주변에 워낙에 지저분한 일이 많아서 곧 손을 떼려고 한다고 그녀에게 토로합니다. 그때 의사와 유사장이 나왔던 문 저편에서 '깡! 깡!'하는 타격음과 함께 금속 문이 패이기 시작하고, 강한 원념을 느낀 리이가 저게 뭐냐고 추궁하지만 유사장은 일단 올라가면 얘기해주겠다고 달래서 함께 엘리베이터를 향해 달립니다.

이번 세션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리이가 떠드는 부분이 너무 많다는 점이었죠. 특히 이 장면에서 그게 드러납니다. 게다가 유사장의 반응도 석연치 않아서, 정림기업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허세가 통했다면 병원장이 싫어 죽겠다는 얘기는 보통은 하지 않을 것 같고, 그 허세가 거짓말로 드러났다면 어째서 그런 서툰 아가씨에게 굳이 어려움을 토로하는 걸까요. 깡패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유사장인지라 거리의 법칙을 시도하기는 했는데,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아직도 애매합니다.

한편 민설은 국장에게 전화해 시체의 존재를 알리고, 국장은 성모병원 경비업체가 조폭 계열이라면서 계속 조사할 것을 지시합니다. 민설은 민랑을 찾아 약품저장고에서 뛰쳐나오던 중 유사장과 리이와 마주칩니다. 뛰어오는 두 사람 뒤로는 차례대로 조명등이 꺼지고, 세사람은 아슬아슬하게 엘리베이터에 타고 올라갑니다.

앗! 민랑을 찾아야 해! 앗! 귀신이 쫓아온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쫓기느라 바쁜 일행이었습...

희연이 층계참에서 너무 무서워서 흐느끼던 중 시준이 나타나고, 울며 매달리는 희연을 그는 따스하게 껴안아 줍니다. 시준이 목발을 안 짚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채 희연은 몽롱하게 의식이 멀어지지요.

이게 진짜 시준이었다면 꽤나 쾌재를 부를만한 상황이었지만, 불행히도 시준은 아무것도 몰랐죠..(...) 울며불며 매달리는 것은 그런 무서운 상황에 처한 평범한 아가씨에게 꽤 어울리는, 좋은 연기였다고 봅니다.

1층으로 올라온 민설은 민랑이 여전히 안 보인다는 소식에 망연자실하고, 리이는 유사장에게 사정 얘기를 듣습니다. 그는 병원과 같은 재단인 제약회사에서 인간의 생체조직을 원료로 한 약을 만든다는 소문을 전해주면서, 부하직원 하나가 약품창고가 있는 지하 2층에서 경비를 서고 있었는데 안 보인다고 합니다. (담당 경비가 없었으니 민설과 리이가 들어갈 수 있었던 거겠죠. 더불어 민설이 발견한 시체의 신원은 대충 확인된듯 하군요.) 그리고 자신이 지하 2층에서 본 보관중인 장기들은 기증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보기엔 지나치게 많다는 의혹을 표명합니다.

보통 장기기증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하는 것이고, 의학적 연구를 위해 건강한 장기를 기증하기에는 장기이식에 대한 수요가 너무나 많죠. 따라서 병원 지하에 쌓아놓은 저건 불법일 가능성이 상당히... 게다가 이식용 장기는 쉽게 못쓰게 되기 때문에 동의서에 서명한 사람보다 필연적으로 이식받는 사람이 적으므로 은폐하기도 쉽겠죠.

리이와 민설은 희연이 전화연락이 되지 않자 또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가 걱정하며 층계로 올라가려 합니다. 계단으로 들어선 순간 등뒤로 비상구 문이 꽝! 닫히며 조명이 꺼지는데...

전반적으로 스릴있고 재밌는 플레이였습니다. 공포영화 느낌이 나기도 했고요. 가끔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들이야 뭐, 주변이 산만할 때 진행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저도 알기 때문에..^^
2006/10/31 10:44 2006/10/31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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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Xenosia 2006/10/31 1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쩐지..확인해보니까 그 할아버지 부분은 할아버지의 손녀딸이
    "할아버지.." 하고 부르는 장면이었는데 밑에 묘사가 빠져버렸군요. [어이]

  2. 삭풍 2006/10/31 1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정신없이움직인 플레이였습...
    보통 공포영화에서 영이 문자메세지를 보내는장면도 많이 나오는걸 보면 역시 영이 방전시킨다음 문자도 ...
    보통 전자기기를 조작하는 능력은 일반적인듯합니다.
    코드안꽂힌채 켜져있는 컴퓨터라던가

  3. orches 2006/10/31 2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전 개인적으로 유미나 씨가 무서웠고, 일명 짝퉁시준(원령의 장난인지, 일행의 삽질을 보다못해 천국에 계신 양아버님께서 잠시 와주셨던 건지는 일단 제쳐주고) 인상깊었습니다. 더불어서 짝퉁시준의 모습이 평소 시준의 모습이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4. 로키 2006/11/02 0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Xenosia// 헛.. 그런 거였군요. 역시 태극기 휘날립니..(..)

    삭풍// 그렇네요. 역시 요즘 세상에는 귀신도 전자기기 조작 정도는..(퍽)

    orches// 역시 미나씨의 포스가 상당했습.. 시준은 당연히 원령의 속임수였던 것 같은데요. 그렇게 정신 잃고 나서 잡혀갔으니... 어쩌면 그때의 짝퉁 시준은 희연이 바라는 모습이 아니었을까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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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언더월드 11화 요약으로 사용하려고 했지만 너무 길어서 요약의 가치는 없다고 판단한 초본입니다. 대신 플레이 감상용으로 활용해 보겠습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간신히 병원 옥상의 원령들을 진정시킨 일행. 옥상에서 내려오다가 리이는 다른 사람과 부딪혀서 계단에 데굴데굴. 리이와 부딪힌 사람은 뜻밖에도 엘리사가 문병왔다가 못 찾은 미카엘 고교 학생 서지연이었지요.

지금 생각해 보니 지연이는 옥상에 뭔가 있는 걸 느끼고 올라오는 중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진실은 저 너머에.

그렇게 해서 다시 506호로 내려온 일행. 중간에 주사맞기 싫다고 도망치는 미라 아저씨 전태일 요원의 촌극이 벌어지고, 그 바람에 열린 문으로 보이는 것은 민설의 두 동생 민랑과 민상. 민랑은 친구인 지연을 문병온 것이었지요. 민랑은 지연에게 공책 필기한 것을 주고, 비를 쫄딱 맞은 민설의 꼴을 보더니 오빠가 아프면 자신과 민상은 누가 먹여살리냐며 구박합니다.

전태일 요원은 소싯적의 로키와 똑같은 짓을 하는군요..(..) 간염 예방주사 맞기 싫다고 울며불며 도망치는 꼬맹이를 꼬맹이 아빠와 주사기 든 간호사가 쫓아가는 장면은 너무나... 웃겼을 것 같습..(퍽)

민랑은 아이같지 않은 완전 꼬마 숙녀군요. 공부 잘하고, 예쁘고, 남 배려 잘하고... 무심한 보호자 밑에서 강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

꼬박꼬박 졸던 리이는 갑자기 뭔가를 느끼고 눈을 뜹니다. 그리고 지연 바로 옆에 영이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되지요. 지연 역시 느끼는지 두려운 표정. 리이는 영에게 왜 지연에게 붙어 있느냐고 묻지만 영은 자기 마음이라며 달려들고, 리이는 지연을 감쌉니다. 다행히도 늘 하고 다니는 고딕펑크메탈풍 더블크로스(..) 덕인지 영은 일단 도망갑니다. 민랑은 지연의 어머니가 무당이기 때문에 지연이도 가끔 영적 현상을 목격하고, 그 때문에 친구가 별로 없다고 설명합니다.

민랑의 완벽성에 항목 하나 추가: 따돌림당하는 학생도 감싸준다! 뭐랄까.. 싫어할 수도 없지만 또 너무 빈틈없어 보여서 다가설 수가 없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더 살아 숨쉬는 인물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진행용 소도구라는 느낌이 듭니다.그리고  그게 나쁜 건 아니죠. 진행용 도구로서의 주변 인물도 분명히 필요하니까요. 어차피 주변 인물은 근본적으로 도구일 뿐이기도 하고...

아무리 가라고 해도 붙어다니는 영 때문에 무서웠다며 리이에게 매달리는 지연. 왜 엄마가 저런 잡귀를 안 쫓아줬느냐는 리이의 물음에 지연은 엄마가 큰 굿을 한 이후 벌써 몇달 동안 누워계신다고 답합니다. 게다가 도와주러 온 다른 무속인들도 모두 어머니를 보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고...

엘리사의 환청들은 지연에게 붙은 건 저급 기생충일 뿐이라고 하고, 너네랑 마찬가지 아니냐고 반문하는 엘리사에게 절대 아니라고 펄쩍 뜁니다. (실체가 없는 것도 뛸 수 있나?) 결국 이런저런 안을 모색하다가 리이는 지연에게 고딕펑크메탈풍 더블크로스를 걸어주고 침대에 부적을 붙여둡니다. 혼자가 아니라며 지연을 안심시키는 리이에게 저차원적 딴지를 거는 기생충들!

정신적 구충제가 있다면 엘리사에게 먹이고 싶다고 생각하는 리이였습..

이때 주사맞고 살아돌아온(..) 전 요원은 민설에게 기다리던 물건이 왔다고 알립니다.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는 길에 3층과 5층 사이에서 차갑고 음습한 영기를 느낀 리이는 아직 병원의 귀신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으며 가웃데 손가락을 들어 영들을 협박하고..(..) 헤어져서 버스타고 집에 가는 희연만 빼고 민랑의 길안내로 용인시 외곽의 산골에 있는 지연네 집으로 향합니다. 민기사 노릇하며 정작 정보수집은 못하고 있는 비운의 요원, 그 이름은 민설.

개봉박두! 민설의 고유장비가 곧 등장합니다!

이번 회에 리이양이 넘어진 횟수를 세어볼까요.


1. 계단에서 내려오면서 부상자 (지연) 깔아뭉갬
2. 지연의 목발에 걸려 제풀에 넘어짐
3. 주차장으로 뛰어나가다가 엘리사가 넘어질까 걱정하는 순간 혼자 넘어짐

민설의 말마따나 몸이 강철 아니면 살기 어려운 아가씨인 겁니...

민설이 민기사 되느라 자기 일 못하는 건 어떻게 보면 재밌지만 어떻게 보면 일행 개념의 한계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물론 리이가 조사대상인 점도 있지만, 어쨌든 그에게 일단 주어진 임무는 정림기업의 뒤를 캐는 것이니까요. 일행 개념의 허와 실에 대해서는 차후 다른 글에서 다루어 보겠습니다.

병원 순환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희연은 멀미체크에서 대성공을 하는 바람에 오랜만에 상쾌한 기분으로 저녁 장사 준비를 돕습니다. 왠지 남은 밥을 먹으러 오는 고양이들이 없다고 생각하며 2층으로 올라가자 눈에 보인 것은 쓰러진 화분과... 안형사와의 놀이공원 데이트 때 나타났던 걸묘 선생! 이곳 터줏대감 고양이들을 17:1로 싸워 이겼다고 자랑하는 걸묘를 희연은 안고 가서 목욕부터 시킵니다. ("냐옹- 물은 싫다냥-")

희연이 일행과 분리된 것은 이번 화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이기도 했습니다. 모든 주인공이 각자의 생활과 목표가 있는 캠페인에서 일행을 유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한 예이기도 했지요. 희연은 수줍음을 타는데다 엄마가 집에서 가게일로 혼자 바쁜데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학생네 쳐들어가기는 좀 무리였겠죠. (리이가 끌고갈 걸 그랬나...)

물론 내적 일관성 (희연은 일행을 따라갈 이유가 없다)과 진행상의 편의 (일행은 가능하면 유지해야 한다)는 좀 다르긴 합니다. 내적 일관성과 진행상의 편의 사이에 괴리가 생긴다는 것 자체도 하나의 문제입니다만.

조용한 일상 속의 희연은 참으로 편안해 보이는군요. 저 편안함을 어떻게 깨부시고(..) 저런 희연을 모험 속으로 끌어내느냐 하는 게 관건이겠죠. 그 과정에서는 진행자의 역할도 크지만 참가자의 적극성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여러모로 말하는 고양이는 좋은 시작인 겁니.. 희연의 놀라는 연기가 재밌었어요. ^^

데이트 외전에 나타났던 걸묘 선생이 본 캠페인에 재활용된 게 매우 재밌군요. 외전과 본편 사이에 앞으로 어떤 연관이 나타날까 기대됩니다. 아직 동물 대화를 못하는 희연하고 천연덕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 걸묘옹의 정체는 오래 묵어서 요괴화된 고양이가 아닐까 팀원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연 어머니가 누워있는 방으로 들어간 일행. 파리한 안색의 어머니는 간신히 일어나 앉아 엘리사를 비롯한 일행을 맞습니다. 한편 엘리사와 리이는 기생충들의 지적으로 지연 어머니가 무당이라고 믿기 어려울만큼 영력의 수위가 낮아져 있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지연 어머니는 리이와 지연이를 비롯해 병원에 있는 귀신 문제를 얘기하다가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민설에게 리이는 병원에선 아무것도 못해준다며 자신의 생기를 지연 어머니에게 전해서 자연치유가 가능한 수준까지 소생시킵니다. 여전히 영력은 극도로 저하된 상태이지만요. 편히 잠든 지연 어머니를 두고 일행은 조심스레 나옵니다.

"난 천재야! Genius! 열라짱멋져! Who yo mama? Who da maaaan?"을 외치는 리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건 착각인 겁니...아무렴, 환청이야.. (절레절레)

그 굿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았으면 좋겠다고 답답해하는 리이에게 엘리사는 자신의 사이코메트리 능력은 알리지 않고 그때 썼던 물품이나 장소를 알아보자고 합니다. 민랑에 따르면 지연 어머니는 중앙도로에서 일어난 지연의 사고가 동티 (귀신 때문에 나는 탈) 같다며 굿을 했는데 그때 쓰러졌다고 합니다. 무구 같은 것은 집 옆의 사당에 모셔져 있을 거라고...

사당에 들어간 세 사람. 리이는 사당 안에 영기가 맴돌지만 위험한 것은 없음을 감지하고, 역시 영기가 서린 부채를 집어듭니다. 지연 어머님처럼 손상된 신기... 엘리사는 리이에게 부채를 자세히 볼 수 있겠냐고 하고, 부채를 잡은 순간 과거의 영상을 보게 됩니다. 부채춤을 추다가 쓰러지는 지연 어머님과 붉은 달, 그리고 쓰러진 형체 뒤로 다가온 흐릿한 영상, 강렬한 푸른 빛.

오, 저 불길한 붉은 달 또 나오는군요. 엘리사의 능력이 이 장면에서 십분 발휘된 것도 기쁩니다. 일행간에 서로 정보교환이 안되고 있는 건 아쉽지만, 정보 교환이 안되고 있는 제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협력하고 있는 건 멋집니다.

리이는 기생충들하고 옥신각신하다 부채를 제자리에 갖다 놓고, 누구하고 얘기하냐는 민설한테 엘리사를 가리키며 기생충과 얘기한다고 했다가 민설한테 혼납니..(..) 사고 난 지점으로 가보자는 엘리사의 제안에 민설은 혼자 차로 가서 국정원 DB에 접속한 후 중앙도로에서 사고 잦은 지점을 찾아냅니다. 더불어 전태일 요원이 조사한 정림기업 정보 역시 전달받고 자괴감에 빠집..

역시 전요원, 안 짤리고 국정원에 붙어있을 수 있는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아름다운 청년!) 이 일로 민설은 '전요원이 날 비웃고 있다' -5짜리 피해망상에 빠졌다는 제노님의 전언이..(퍽) 민설이 리이를 야단치는 대목에서 크게 웃었습니다. ^^

세 사람은 민랑이 차려주는 저녁밥을 먹고, 지연 어머니는 아주 편히 주무시고 계신다며 오늘 여기서 자고 등교하겠다는 민랑을 말리려다 민설은 전에도 종종 이런 식으로 와 있었는데 민설이 무심해서 몰랐다는 민랑의 말에 반대가 쑥 들어가고..  궁색하게 변명하는 민설에게 오빠 바쁜 거 이해한다며 민랑은 웃어줍니다. 석양빛 속에 민설, 엘리사, 리이는 사고 지점으로 향합니다.

민랑의 완벽성에 또 한, 아니 두 항목 추가합니다..ㅋㅋ (자기 시간 내가며 친구 도와주기, 오빠에 대한 이해심) 더불어 여동생한테 지고 사는 민설도 참 안됐다는 생각이..(..) 리이가 말썽꾸러기 여동생 노릇 할테니 힘내십! (아니 그건 좌절이잖..)

다음 화에서는 고속도로 귀신과의 대격돌! 희연도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  밤에 사고 잦은 커브길로 차를 몰고가는 민설의 SM5가 무사하도록 우리모두 빌어봅시다.
2006/10/10 10:29 2006/10/10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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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삭풍 2006/10/10 17: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민랑은 사실 완벽하지 만도 않습니다.아마 민설이 없을때는 의외의 면목을 보여줄지도[...]
    P.S왜 이글루링크는 이글루 블로그밖에 안될까요.너무 폐쇄적으로 보여요.

    • 로키 2006/10/11 00:49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 기대되는군요. 민설을 쫓아내야 하는 겁니..? (퍽)

      이글루스 블로그 외에는 메모장으로 HTML 링크를 넣으셔야 할 거예요. 이글루스를 버린 많은 이유 중 하나입..

  2. orches 2006/10/11 12: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민되는 점을 집어주셨군요. 언더월드 3기의 경우는 일행이라고 하기엔 pc들간의 사이가 (굉장히) 모호하고, pc인 희연의 입장으로 보면 자신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에 끼어들어도 되는 건지도 그렇고, 플레이어의 입장으로 보면, pc 입장을 고려하다가.. 혼자 따로 떨어지는 것도 그렇습니다. 이 둘이 적절하게 배합되면 정말 좋겠어요.

    ps - 성장이라는 것은 꼭 육체가 아니라 정신적인 면도 해당되겠지요? 조만간 진행되면서 생기는 사건의 영향이든, 플레이어 스스로든, 지금의 성격이 버려지게 되겠지요. 그렇게 된다면 행동이라든지, 여러모로 바뀌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실은 벌써부터 그 징조를 (퍽)

    • 로키 2006/10/12 06:52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 내적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일행 또한 유지하는 것은 때로 어려운 일이죠.

      물론 성장이란 모든 면에서의 성장이 다 포함될 것입니다. 겁스 같은 경우 D&D와는 달리 단점을 없앤다든지 하는 식으로 '강해지는 것' 뿐만 아니라 '변화하는 것'을 규칙 자체적으로 지원한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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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초보자님과 규칙 없이 진행하는 1:1 플레이를 조금 진행했습니다. 그때 대오각성...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깨달은 점이라면 무규칙 플레이에서 배울 중요한 점이 한가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바로 참가자 선택의 합리성에 대한 존중입니다. 무규칙 플레이에서 결과 판정을 위해 의존할 수 있는 것은 참가자의 선택, 혹은 주인공의 선택뿐이니까요.

어제 진행한 플레이에서 증권회사 직원 유은호는 한밤중에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주차했다가 이상한 소리를 듣고 주차장의 으슥한 구석으로 가봅니다. 여기서는 조폭들이 살인을 저지르고 있었는데, 그들이 은호의 존재를 눈치채는지 판단해야 했습니다. 규칙이 있는 플레이였다면 보통 기척 죽이기와 지각 대결 판정을 했겠지만, 무규칙 플레이에서는 그럴 자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눈에 띌만한 행동'을 하면 눈에 띄도록, '눈에 띄지 않을만한 행동'을 하면 조폭들의 눈에 안 띄도록 하기로 했습니다. 선택의 합리성에 결과를 맡기기로 한 것이지요. 은호는 시종일관 눈에 안 띄게 어두운 통로 쪽에 있었으므로 결국 조폭들의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핸드폰으로 112를 부를 때도 마찬가지로 핸드폰이 매너 모드로 돼 있는지, 사람 죽이느라 바쁜(...) 조폭들이 과연 조용히 한쪽 구석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릴 것인지 등을 고려했습니다.

다음, 조용히 집 쪽으로 가는데 조폭들이 하필이면(!) 은호가 있는 통로를 통해 현장을 떠날 때는 조폭들의 걸음이 꽤 빠르니까 달리지 않으면 따라잡힐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만약 달린다면 그 소리가 지하주차장이라는 폐쇄된 공간에 울려서 은호의 존재를 들키게 할 생각이었지요. 하지만 지하주차장에 완전히 갈림길 없는 통로라는 것도 있기 힘들다는 점을 고려해 좌우로 빠지는 통로도 있다고 묘사했습니다. 따라서 은호는 좌측 통로로 빠져서 조폭들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규칙을 사용하는 플레이라도 위와 같은 진행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일반 플레이에서 기능을 굴리고 대결판정을 하는 와중에서 제가 종종 잊었던 한가지 요소를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바로 '상식'입니다.

분명히 은호가 기척을 죽이는 실력, 조폭들의 지각 능력에 따라 위 장면의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위의 장면에서 기척 죽이기와 지각 판정을 하면 재미가 있었을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어쩌면 위 상황에서 대결 판정을 하는 것은 참가자의 판단을 짓뭉개는 결과가 되지 않았을까요? 즉 진행자가 제시한 상황을 피하지 않으면서도 지나친 위험을 무릅쓰지 않겠다는 참가자의 합리적인 판단 (바로 아파트로 올라가지 않으면서도 보이지 않게 어두운 통로에 서있겠다는 판단)에 오히려 벌을 주는 결과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대결 판정의 결과가 참가자의 승리였다 하더라도, 발각의 위험을 무릅쓰게 하는 것만으로도 말이죠. 저런 상황에서 판정을 한다면 앞으로 참가자는 모든 위험이나 흥미의 소지를 피해버릴지도 모릅니다. 진행자가 과연 그걸 탓할 수 있을까요?

어느 정도 범위 내에서 참가자와 주인공에게 완전한 안전과 성공의 지대를 주는 것은 진행자와 참가자 사회계약의 중요한 일부인 것 같습니다. 학대당하는 참가자 현상 (내지는 캠페인을 떠나는 참가자 현상)을 피하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이 글은 무규칙 플레이가 규칙 있는 플레이보다 우월하다든가, 앞으로는 규칙을 포기하겠다는 요지는 아닙니다. 규칙과 주사위 굴림이 상식에, 그에 의거한 참가자의 합리적인 선택에, 그리고 진행자가 그 합리적인 선택에도 불구하고 참가자를 물먹이는 일은 없을 거라는 사회계약에 우선할 수는 없다는 주장일 뿐입니다. 규칙이 재미에 우선할 수는 없으니까요. 다른 분들은 몰라도 진행자로서의 저는 그런 주객전도에 빠지기 쉬웠다는 반성입니다.
2006/07/23 10:41 2006/07/23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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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rgotten 2006/07/29 0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룰이 하는 자리를 대신 하는 것은 '합리성'이군요.

    • 로키 2006/07/29 2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규칙이 있으면 합리성은 더이상 필요 없다면 좋겠지만 규칙은 책에서 나오고 합리성은 사람에게 나오는 게 문제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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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지난번에 제 진행의 문제점을 자가진단해 보았습니다만, 사람이 어떻게 단점만 있겠습니까. (그렇죠? 그렇다고 해주십시...) 어제 정숙조신님과 1:1로 트롤베이브(Trollbabe)를 진행하면서 제가 진행자로서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느정도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진행 작업은 다른 분한테 넘겨받은 거라는 상당히 뻘쭘한 상황이었죠. 그래서 앞뒤연관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주변인물들 이름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부족한 면이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놀이기록을 읽어서 지금까지의 내용을 파악하면 로키가 아니죠~(퍼벅) 어디까지나 즉흥, 또 즉흥인 겁니다!

아, 이 글은 제가 잘하는 것에 대한 얘기였죠? 넘어갑시다.(...)

내용

주인공은 '셀리나'라는 트롤베이브 마법사입니다. 셀리나는 스승이자 연인인 아무개씨가 병에 걸리자 그를 치유할 방법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지요. 트롤과 인간의 피를 모두 가지고 있는 트롤베이브인 셀리나는 늘 자신의 트롤 혈통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어느 갈림길(?)에서 기묘한 노파를 만납니다. 노파는 셀리나에게 말하죠. 치유약을 찾으면 스승 말고 자신에게 가져오라고. 그러면 트롤 혈통에 대한 얘기를 해주겠다고요.

또다시 얼마간을 가다가 셀리나는 무너진(?) 다리에서 팀이라는 트롤과 마주칩니다. 팀은 자신을 도와주지 않으면 치유약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을 알려줄 수 없다고 하죠. 셀리나는 팀을 도와 주지만, 팀은 치유약이 있는 데로 그녀를 데려다 주는 대신 트롤 마을로 데려갑니다. 그곳에서 트롤 장로는 셀리나에게 그 장소는 트롤의 성소라 트롤이 아니면 갈 수 없다며, 아침이 오기 전에 인간을 죽여 그 피로 목욕해야만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부터 제가 맡았습니다)

(1회)

셀리나는 망연자실해서(아마도?) 마을을 나와 돌아다니다가 트롤 마을에서 연기가 오르는 것을 보고 돌아갑니다. 그리고 인간 병사들이 트롤 마을을 공격하는 현장을 보게 되죠. 셀리나는 휘황법석한(!) 마법을 이용하여 인간 병사들을 물러나게 만들고, 셀리나에게 병사들을 죽일 것을 종용했던 트롤 장로는 화를 냅니다. 그리고 그 순간 해는 떠오르고...

(2회)

트롤 장로는 셀리나더러 인간이 우리 마을에 설 자리는 없다며 돌아가라고 일갈하고, 병사들의 공격 중에 어린 자식을 잃은 어머니가 오열하는 동안 전사들은 보복 공격을 위해 집결합니다. 셀리나는 폭력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며 그만두라고 당부하지만, 장로는 그럼 인간들이 뭘 하든 누워서 당하라는 소리냐고 대꾸하고...셀리나는 외교로 해결할 수 있다며, 자신이 돕겠다고 합니다.

약 일주일에 걸친 교섭이 지나가고, 교섭기간에 걸쳐 조약의 조항들은 모양이 잡혀갔지만 마지막으로 서명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그 지역 영주의 신하들은 트롤들과는 단기전으로 끝낼 수 있다며 평화조약에 서명하지 말라는 압력을 넣고...이때 셀리나는, 정말 트롤들이 그렇게 쉬운 상대일 거냐고 생각하면서 신호를 보내고, 밖의 숲에서 대기하고 있던 트롤 샤먼들이 일제히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벼락이 치고 비가 내리게 합니다. 이 광경을 본 영주는 드디어 신하들의 압박에 이길 카드를 쥔 셈이 되어서 조약에 서명하고, 셀리나의 도움에 사의를 표합니다. 더불어 다소 추근대지만 셀리나는 흥! (...)

분석

사실 저 위의 내용보다는 잡담 채널에서 진행자와 참가자가 열심히 쑥덕공모한 내용이 훨씬 많습니다. 이게 반드시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더군요. 일단 진행이 너무 느린데다가 단순히 진행자의 자신감 부족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 싶어서... 좋은 점이라면 참가자가 원하는 것이 확실히 반영된다는 사실이죠.

우선 물려받은 진행인만큼 전 줄거리를 계속해야 한다는 점이 좀 부담으로 다가왔는데, 전 진행자이신 이반님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겠지만 제게는 셀리나가 자기 트롤 혈통을 찾기 위해 사람을 죽인다는 건 좀 비현실적인 갈등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그점을 정숙님과 상의하자 참가자분도 동의하셨습니다. 따라서 갈등의 초점을 살짝 바꿔서 인간과 트롤 사이의 폭력사태를 막는 쪽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판정의 호흡은 제가 3번 성공하면 전체 성공으로 제안했고, 정숙님은 한단계 낮추어 2번 성공이 전체성공인 걸로 정하셨죠.

(잠시 규칙설명: 트롤베이브의 호흡조절이란 한 갈등에 승리하는데 한번의 굴림성공으로 성공할 것이냐, 두번으로 성공할 것이냐, 세번으로 성공할 것이냐 결정할 수 있습니다. 정확히는 갈등을 시작하는 쪽이 제안하고, 받아들이는 쪽이 한단계 높이거나 낮춰서 최종적으로 정할 수 있죠. 즉 두번 성공으로 제안하면 사실상 상대에게 정하라는 뜻입니다. 또한 성공은 진행자가 서술하고, 실패는 참가자가 서술합니다. 주사위는 참가자만이 굴립니다.)

이 시점에서 규칙 이해에 대해 서로 차이가 있는 것이 발견되었는데, 정숙님은 '서술권'이란 주인공의 행동을 포함한 모든 결과를 서술하는 걸로 이해하고 계셨고 저는 주인공 행동은 참가자가 맡되 그 나머지 (주변상황, 주변인물 행동 등)만이 서술권에 포함된다고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트롤베이브는 대체로 참가자가 성공하는 쪽으로 확률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그 결과 저는 거의 소설 쓰고 참가자는 구경하는 결과가 되는 느낌이더라고요. 원래 진행자 말이 많은 걸 안 좋아하는데다가 (저는 가만히 내버려둬도 말이 많아서..<-) 주인공을 진행자가 연기하는 건 더더욱 싫어하기 때문에 규칙 재해석을 제안했습니다. 즉 저의 해석에 맞추는 것이었죠. (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

또 하나 참가자의 의견을 듣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느낀 게, 저는 원래 이 외교 교섭을 앞으로 몇 세션씩 걸리는 긴 얘기로 잡을 생각이었거든요. 자기 기사들이 트롤 잡는다고 병력 소모하는 게 탐탁치 않으면서도 권력기반이 약해서 별말 못하고 있었던 군터 공, 트롤들을 최대한 빨리 잡아서 자기 영지의 경계를 확장하려고 생각하는 롤란드 경을 비롯한 기사들, 그리고 그 권력구조의 한가운데로 뛰어든, 트롤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고 둘 다이기도 한 젊은 여성 사절... (희미님, 울지 마십..)

저걸 제 맘대로 진행했더라면 참가자에게는 최악으로 지루한 시간이 될뻔 했습니다. 이미 의사소통의 채널(..말 그대로 IRC 채널)이 열려있지 않았더라면요.

다행히도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가고 싶다고 정숙님이 말씀해 주셨고, 그래서 교섭의 마지막 장면만 하고 한번 굴려서 성공하는 갈등으로 처리할까 의견을 묻자 동의하시더군요. 그래서 협동적으로 장면을 구성해서 마지막 장면 내보내고 2회를 만족스럽게 마쳤습니다.

그래서, 잘하는 것은?

I.

결론적으로 제가 잘하는 것은...진행 떠넘기기! (퍼억) 아니, 참가자 의견 묻기가 아닐까 합니다. 참가자가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끌어내고 그걸 반영하는 것이요. 그건 한편으로는 느리고 점진적인 과정이긴 하지만, 결과물은 더 만족스럽지 않나 생각됩니다. 물론 그건 놀이를 하는 목적에 달려있겠지만요. 모두가 협동해서 극적이고 재밌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면 더할나위 없이 좋지만, 속도감 있는 전개라든지 놀라움으로 가득한 이야기를 원한다면 심히 맘에 안드는 결과이겠지요.

II.

또하나...참가자에게 귀기울이는 것과 직결되는 문제지만, 참가자 괴롭히기도 제가 잘 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잘 들어보면 참가자를 괴롭힐 실마리는 참가자의 입에서 전부 나오거든요. 이번 경우도 정숙님을 결정적으로 갈등시킨 부분은 정숙님이 주신 정보에서 알 수 있었죠. 뭔가 대책이 없이는 트롤들이 인간에게 받는 대접을 그냥 넘길리가 없다고 하고, 또한 인간과 비폭력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이들에게 낯선 경험이다...라고 유도하자 정숙님은 그럼 셀리나가 도우면 된다고 하셨죠.

"그럼 스승이자 연인은? 치유약 가지고 빨리 돌아가야 하지 않나요? 아니면 한 사람 때문에 수많은 트롤과 인간이 서로 죽이게 놔둘 건가요?"

전 이런 순간들이 너무 좋습니다! >_< (인간아...)

참가자는 (허깨비일 뿐인 주인공은 필요없습니다. 중요한 건 참가자) 거의 항상 두가지 이상의 극적 욕구를 가지고 있고, 그 욕구들을 대치시킬 방법을 찾아내는 실마리는 바로 참가자가 하는 말과 행동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야말로 역할놀이가 가진 재미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애당초 자세히 설정된 부분은 아니었으니 둘이서 협의해서 치유약을 가지고 돌아갈 시간제한을 대충 설정했습니다. 일단 연인이 오늘내일 하고 있으면 셀리나가 팔자좋게 여행 나오진 않았을테니 당장 숨이 넘어갈 정도로 위급한 상황은 아니고, 그렇다고 몇달이고 지체할 수는 없는, 한마디로 어중간한 상황이란 거죠..(...) 따라서 셀리나는 결국 트롤들을 돕느라 여행을 일주일 지체했고, 그건 연인보다 트롤들을 돕는 걸 우선한 거겠죠?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또다른 갈등의 축은 셀리나가 트롤로 인정받느냐였고, 그건 트롤의 성소에 있는 치유약에 셀리나가 접근할 수 있느냐의 문제기도 했기 때문에 사실 두가지는 오히려 한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었죠. 그리고 셀리나가 외교사절로써 그 지역의 인간과 트롤 사이에 평화가 찾아왔는데, 트롤들이 과연 셀리나를 나몰라라 할까요?

전 이런 순간들도 너무 좋아한답니다~ ^-^♪ 선택과 갈등 끝에 모든 고민은 결국 녹아 없어지고, 그 속에 남는 건 오직 자아에 대한 긍정 뿐인 그런 순간을. 셀리나는 결국 자기 신념을 조금도 꺾지 않으면서도 트롤들에게 인정받고, 동시에 자기 은사를 도울 길을 연 것이죠. 그렇게 의도한 건 결코 아니었는데 (늘 떠들고 다니듯 전 준비 안합니..),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더라고요. 이게 바로 협동 서술로서의 역할놀이가 가진 크나큰 가능성이 아닌가 합니다.

III.

마지막으로 제가 잘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라면 묘사입니다. '번복할 수 없는 결론처럼 차갑고 분명한 새벽의 빛'이라든지 '회담장 문에 놓고 와야 했던 검을 찾아 무의식적으로 허리에 손을 뻗는 롤란드 경' 같은 묘사는 꽤 마음에 들어하고 있죠. 뭐, 장식같은 것이지만 때로는 장식도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

2006/04/23 13:55 2006/04/23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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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美妙 2006/04/23 14: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이스 떠넘기기 (.....)

  2. 초보자 2006/04/23 17: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하고는 명백하게 지향점이 다르군요. 저도 묘사에는 자신이 있는 편입니다만.. 전 장식 지향이 아니라 미세한 정보 표현을 위한 행동이라서.

  3. 로키 2006/04/25 0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 그렇군요. 저는 순전 이미지 중심이라...

[로그인][오픈아이디란?]

방금 즉플을 한회 마치고 왔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확인하고 싶었던 사실을 확인했지요. 제 진행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직 100% 진단됐다고 하기는 힘듭니다만...


제멋대로 붙인 시리즈명은 '방랑자의 노래'이며, 진행자 로키, 참가자는 미묘님과 초보자님, 사용 규칙은 안방극장 대모험입니다.

설정


그러나 별들 사이의 어둠을 떠도는 방랑자의 노래는
우주의 길고 차가운 침묵의 가슴에만 들리나니...

- 발굴작업 K11-b의 선체에 새겨진 이종족 언어를 카워드 연구원이 해석한 내용.
시구(詩句)로 보이는 이 글은 훗날 K11-b가 '스타페어러'(별들 사이의 방랑자)라고 명명되는 계기가 되었다.


일단 과정을 말하자면, 미묘님과 초보자님과 함께 그야말로 즉석에서 컨셉을 잡고 그에 기반해서 1회를 시작했지요. 장르는 대충 스페이스 오페라로 잡고 거기서부터 캐메 시작. 스페이스 오페라의 전형대로 한 척의 우주함선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로 하기로 했죠. 우주연방 제 2 내각 감사실과 우주군은 합동으로 이계 종족의 고대 함선, 나중에 스타페어러라고 불릴 배를 먼 소행성대에서 발굴했는데, 문제는 이 배의 작동 원리도 알 수 없고 작동하지도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연방의 어떤 현존 기술로도 닿을 수 없는 성능을 발휘할 기체였지만 말이죠.

다행히도 영재교육, 외계문명 연구 등 다양하고 수상한(...) 연구를 담당하는 연구시설 카워드 연구소에서 보내온 프로젝트 준책임자 이르힌 R. 카워드를 필두로 작동을 상당부분 해독해 내지만, 정작 엔진만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때 테라에서 한 외계인 함선의 불시착의 현장에 있었고, 이후 이상한 능력을 발휘하게 된 로쉬 콜린이라는 컴퓨터공학과 학생이 우주군 소령 진샤린의 손에 강제로 끌려(...) 현장에 도착하고, 그가 컨트롤에 자리를 잡자마자 엔진은 기적처럼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배를 움직이는데 필요불가결한 존재가 된 이르힌 R. 카워드, '명목상으로' 제 2 내각 감사실 휘하 감찰관, 그리고 로쉬 콜린, '명목상으로' 갑작스런 우주군 상병... 이 두 젊은이를 태운채 스타페어러 호는 외우주 탐사 임무를 맡고 출항합니다.

등장인물

주인공

이르힌 R. 카워드 - 열심히 인간인척 하고 있지만 사실은 인간과 유사한 외계종족입니다. 종족의 공식명칭은 출신 행성의 코드인 DEF-1031, 비공식적 통칭은 '퍼페티어.' DEF-1031 종족은 항성간 항해 기술이 없던 종족으로, 우주연방과 접촉하면서 기존의 사회질서가 뒤집히고 뿔뿔히 흩어지게 되었지요. 이른바 '신경계 해킹'이라고 불리는 정신능력 때문에 경원시됩니다. 컴퓨터, 인간, 동물 등 주변에 신경계가 있으면 해킹해 들어가서 정보를 얻어내고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이지요.

이르힌 같은 경우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카워드 연구시설에서 자라났습니다. 카워드라는 성은 연구소에서 입양한 아이라는 뜻으로, 연구소에서는 이런 식으로 연구에 도움이 될만한 아이들에 대한 후견권을 얻어 양육합니다. 어려서부터 연구대상이면서 동시에 학생이었던 이르힌은 DEF-1031 종족에 대한 차별 때문에 우주연방에서 정상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출신 종족을 감추고 살아갑니다. 스타페어러에서 그의 정체와 능력을 알고 있는 것은 함장과 일부 고위 장교 정도로, 신경 해킹 능력을 인간에게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락이 걸려 있습니다. 하지만 컴퓨터나 동물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종종 스타페어러의 컴퓨터 시스템에 깊이 들어가곤 하며, 방에서 키우는 곤충들의 신경계 역시 해킹합니다.

고민 - 자신의 종족을 감추고 인간으로 살아가야 한다

능력
- 소수종족 □□□
- 시설 출신의 엘리트 □□□

인맥
- 제 2 내각 감사실장 로버트 D. 멘슈테트 □□□

개인 세트 - 스타페어러의 개인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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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쉬 콜린 - 테라의 평범한 학생일 뿐이었지만, 어느날 이종족의 우주선이 불시착하는데 휘말리면서 인생이 180도 바뀌어 버리고 맙니다. 추락 현장에서 죽어가던 외계인...오늘날까지도 이름조차 알 수 없는 그 존재는 자기 자신의 욕심을 위해 로쉬에게 죽기 직전 자신의 기억을 덮어씌웠죠. 그때부터 로쉬에게는 원치 않았던 지식과 기억이 생겼고, 물건을 정신만으로 움직인다거나 순간 이동을 한다거나 하는 말도 안되는 정신 능력까지 생겨 버렸습니다.

그런 그를 구조했던 우주군 소령 진샤린은 군용 병원에서 치료 겸 연구를 받는 그를 관찰하면서 스타페어러의 발굴과 관련해 심상찮은 연관을 알아채고 협박 반, 설득 반으로 싫다는 로쉬를 끌고 발굴 작업이 진행되는 먼 소행성대까지 끌고 갑니다. 정 안되면 염동력으로라도 배를 움직이라는 억지와 함께... 하지만 왠걸, 그녀의 도박은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져서 로쉬가 큰소리로 불평하며 콘트롤에 자리를 잡자마자 엔진은 기다렸다는듯 작동을 시작하지요. 결국 일파만파로 샤린은 스타페어러의 함장이 되고 로쉬는 원하지 않는 직책 불명의 상병이 되었습니다. (굳이 직책이 있다면 시동키?)

고민 - 원하지 않았던 능력으로 자기 삶에 대한 제어를 상실

능력
- 외계인의 능력 □□□
- 컴퓨터 구루 □□□

인맥
- 스타페어러 함장 진샤린 □□□

개인 세트 - 스타페어러의 컨트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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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인물

진샤린 - 30대 중반의 나이, 소령이라는 계급으로 연방이 희망을 걸고 있는 이종족 기술의 집결체 뉴로매트릭스 프로토타입 스타페어러의 함장입니다. 제일 잘한 일은 로쉬 콜린을 발견해낸 거라는 비아냥도 따르는 인물입니다만... 로쉬에 대해서는 마치 누나처럼 챙기고 잔소리하려는 마음과 인생을 완전히 어긋나게 한데 대한 미안함이 늘 함께합니다. 하지만 연방을 위한 일이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아니면 자신의 출세를 위해?) 이르힌에 대해서는 한편 스타페어러에 대한 권한을 분할하고 있는 감사실 사람이고 또 퍼페티어이기 때문에 경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같은 스타페어러 식구이니까 신뢰하기도 합니다. 전반적으로 다소 감정적이고 과격한 성격으로, 사실 별로 군인답다거나 함장답지는 못한 사람.

로버트 D. 멘슈테트 - 제 2 내각 감사실장으로, 중후한 인상의 50대 신사. 연방 우주군과 함께 스타페어러에 대한 권한을 담당하고 있는 또 한 축. 뉴로매트릭스 프로젝트에 있어서는 이르힌의 직속 상관이기도 합니다. 연방 정치의 주요 인물 중 한명이고, 특히 프로젝트 책임자를 맡고 있는 스타페어러의 일에는 언제나 관심이 지대합니다. 도저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힘든 인물. (..이라지만 PD도 모릅니..)

존 카프 - 스타페어러 수석 엔지니어. 요즘 들어 보조 파일럿 크란 러델과 영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자야 카트만두 - 스타페어러 보조의료원. 카프와 러델 사이에 생긴 알력의 원인.

크란 러델 - 감마 근무교대 보조 파일럿. 자야를 두고 수석 엔지니어 카프와 신경전중.

알리시아 셀번 - 로쉬 콜린에게 관심이 지대한 과학장교. 콜린 상병은 꽤나 잘생겼다고 생각하며, 그가 스타페어러의 엔진을 움직일 수 있는 건 퍼페티어 혼혈이기 때문이라는 친구 재니스의 이론을 철석같이 믿고 있습니다. (...)

재니스 라이 티엔 - 알리시아의 친구이며 센서 오퍼레이터. 로쉬에 대한 근거없는 소문을 퍼뜨리는 장본인 중 하나.

진행

외우주를 항해하고 있는 스타페어러호. 알파 교대근무 시작시간에 로쉬와 이르힌은 각각 함교로 출근해 딴짓에 빠집니다..(...) 로쉬는 그나마 일상과의 연결고리라고 할 수 있는 작은 프로그램들을 돌리며 위안을 삼고, 이르힌은 인간을 대상으로 한 해킹에 제어가 걸려있기 때문에 스타페어러의 시스템에 들어가 정보를 모음으로써 감찰관의 직무를 다하려고 애씁니다. 사생활 개념이 없는 퍼페티어 특유의 감각으로 수석 엔지니어와 보조의료원, 보조 파일럿의 삼각관계라든가 알리시아 셀번 소위의 콜린 상병에 대한 수다 등 온갖 시시콜콜한 정보를 진지하게 수집하며 평온한 아침이 흘러가던 중, 갑자기 제 2 내각 감사실에서 연락이 들어옵니다.

화면에 등장한 로버트 D. 멘슈테트 실장은 다짜고짜 스타페어러의 항로에 있고 최근 통신이 두절된 소렌 8호 우주정거장에 구조임무를 나갈 것을 요구하고, 진 함장이 항의하자 콜린 상병과 카워드 감찰관과 함께 함장실에서 만나줄 것을 요청합니다. 게다가 소렌 8호에는 장거리 센서에 대한 간섭현상이 일어나고 있어서 사태는 더욱 심상찮은...

함교에서 함장실로 전송된 통신신호는 멘슈테트 실장의 홀로그램을 함장실에 비추고, 네 사람은 곧 치고받고 싸웁니 토의에 들어갑니다. 실장의 요구사항은 장기 센서가 작동하지 않으니 이르힌과 로쉬를 셔틀에 태워서 소렌 8호로 보내고, 단거리 센서와 육안 관찰의 결과로 스타페어러를 원격조종해 구조를 완료하라는 상당히 무리한 것입니다. (로쉬 앞이니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이르힌이 스타페어러의 시스템과 데이터링크를 만들어서 로쉬를 원격접속시키라는, 즉 이르힌의 신변상 비밀까지 노출시킬 수 있는 계획이죠.)

어느정도 두 사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는 했지만 스타페어러의 정교한 기능들은 여전히 이르힌과 로쉬 두 사람이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데, 센서도 통신도 닿지 않는 위험지역에 스타페어러의 중추와 다름없는 두 사람을 보내라는 얘기... 게다가 아직 우주군 사령부의 명령도 없이 스타페어러를 감사실의 지휘 하에 넣으려는 듯한 움직임에 함장과 이르힌은 둘다 강하게 반박합니다. 우주군 사령부의 명령이 필요하다면 잠시 기다리라며, 그동안 통신을 끊는 짓은 하지 말라며 사라지는 실장의 홀로그램.

남겨진 세 사람은 도저히 답이 나지 않는 대책토의에 들어가고, 이 시점에서 PD 후회하기 시작합니다..(...) 싸우느라 엄청나게 늘어져버려서 전혀 깔끔하지 못한 장면진행, 게다가 무리한 나머지 불쌍하게 삐걱거리는 구성. 전에도 이런 문제를 겪었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어쨌든 당황한 PD와 황당한 참가자들이 좌충우돌하는 사이 멘슈테트의 말대로 우주군으로부터 구조 명령이 떨어지고, 진샤린 함장은 스타페어러를 위험에 노출시키느니 차라리 연방의 눈에 띄지 않게 잠항모드로 들어가고 통신에 필터를 넣습니다. 이 시점에서 세션은 자기파괴..(...) 시간이 늦어서 미묘님은 일어나셔야 했고, 로키는 두 분에게 죄송해서 눈치볼뿐.

문제점

우선적인 문제라면 두 사람을 스타페어러 밖으로 내보내는데 지나치게 집착했던 점 같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의 전형에 집착한 나머지 말이지요. 사실 두 주인공 컨셉을 자세히 보면 '배의 작동이 두 사람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배 밖에서보다는 배 안에서 사건이 벌어지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거였는데 말이죠. 처음부터 '어떻게 하면 배 밖으로 내보낼까'에만 골몰하다가 뻔한 해결책을 놓쳐 버린 겁니다.

두번째 문제라면 너무 비정상적인 상황을 내보내려고만 했다는 점입니다. 이것도 제 진행에서 종종 드러나는 문제인데, 비교적 평온하고 정상적인 상황부터 시작하려고 하질 않고 처음부터 있는대로 다 뒤집으려는 경향이죠. 이 경우만 해도 거의 연방 정부의 전복까지 암시하는듯한 극도로 커다란 내용으로...(...)

또 하나, 이상과 같은 내용을 생각할 시간도 없이 플레이에 들어가는데만 급급했다는 점입니다. 설정의 양을 봐도 그렇고 규칙의 성격으로 봐도 그렇고 쉽게 한회에 끝날 내용은 아니었는데 말이죠.


해결책

해결책이라면 두가지가 가능할 텐데, 한가지는 지금까지의 내용을 없었던 걸로 하고 구조 파견대의 임무를 스타페어러에서 두 주인공이 지원하는 방향, 또 한가지는 지금까지의 내용을 어떻게든 밀고 나가면서 두 주인공이 위험과 함장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스타페어러에서 나갈만한 동기를 부여하는 것. 개인적으로는 첫번째 방향이 무리가 적고 마음에 들지만 내용의 연속성을 생각하면 두번째 방향이 낫겠죠.


이 시점에서 진행자로서 제가 배울 점이라면...

1. 장르의 전형보다는 주인공들의 특징을 먼저 살피자.

2. 규모 키우기에 집착좀 하지 말자! (...) 언제까지나 감당도 못하는 얘기만 늘어놓을 거냐.


설정도 마음에 들고, 잠재력도 있는 이야기인데 시간이 되면 이어서 할 수 있으면 좋겠군요, 방랑자의 노래. 더불어 진행자로서 제 약점이 무엇인지도 깨달을 수 있었고 말이죠. 다음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ㅁ; (시꺼!)

2006/04/15 05:32 2006/04/15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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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그래도 잘하는 게 있다면...(1)

    Tracked from RPG 삼라만상 2006/04/23 13:56  삭제

    뭐, 지난번에 제 진행의 문제점을 자가진단해 보았습니다만, 사람이 어떻게 단점만 있겠습니까. (그렇죠? 그렇다고 해주십시...) 어제 정숙조신님과 1:1로 트롤베이브(Trollbabe)를 진행하면서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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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美妙 2006/04/15 1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어서 할 수 있길 기대합니다.;ㅅ;ㅅ;ㅅ;ㅅ;

  2. 로키 2006/04/15 2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요..;ㅁ;

  3. 로키 2006/04/15 2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 이 아스트랄랄라(...) 진행은 버리고 통신이 들어오는 시점으로 초기화하고 싶은...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처음으로 7번째 바다 마스터링을 해봤습니다. 희생양은 초보자님. 초보자님이 다른 캠페인에서 플레이하시는 캐릭터를 납치했습니다.

처음이라지만 아주 생 처음은 아닌 게, 원래 7번째 바다 그룹에서 모의전투로 어느정도 전투룰을 익혔었고 또 대규모 전투룰을 플레이테스트하기도 했거든요. 하지만 서사적 구조를 가지고 정상적인(?) 플레이 룰을 돌려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몇가지 하우스룰이라면 다음과 같은 것이...

1. 캐릭터 제작

- 포인트는 원래 룰의 100 히어로 포인트(HP)가 아닌 140HP로 했습니다. 특성치 상한은 4, 낵 상한은 없이요.

로키: 캐릭터 100HP죠? 40HP 더 분배해서 주세요.
초보자님: 105HP인데요?
로키: 혼자니까 능력치가 더 필요해요. 40HP 추가로 분배해서 주세요.
초보자님: 네...(...)

뭐 기술보다 특성치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룰인지라 특성치에 불사르니 간단하게 끝. 그리고 공격(펜싱) 5라니 왠 검술 매니아..(...)

2. 극주사위는 물처럼 흐르고(?)

플레이어가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려는 노력이 보이면 무조건 극주사위. 그리고 남기든 쓰든 경험치나 캐릭터 성장과는 무관하게 했습니다. 극주사위 0으로 시작한 플레이어가 한개 쓰고도 세션 끝에는 2개를 쥐고 있었죠. 저것도 제가 생각하기엔 약간 짰지만, 뭐.

GM이 극주사위를 가질지 말지는 고민입니다. 공식 NPC들이 140HP짜리 PC보다 강한 걸 깨닫고 경악을... 악당의 간계를 발동하려면 극주사위가 필요하긴 한데, 과연 제가 돌리면 진정한 의미의 악당이 있을지는 의문이군요. 아악..NPC 캐메 귀찮..(퍽)

아르메이아 오초아 이 라사르 델 까스띨리오로 말하자면 외로워도~ 슬퍼도~ 를 외치는 캔디소년이랄까요. (아닙..) 탕녀로 유명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아버지의 미움이란 미움은 다 받고, 결국 외동아들인데도 아버지가 일부러 사촌을 친자로 들여서 상속권을 그쪽으로 넘겨버렸죠. 분명 아버지는 친부 맞지만, 이게 남들 보기엔 어떻겠어요. 탕녀로 유명한 어머니 -> 그 어머니를 꼭 닮은 아들 -> 아버지에 의한 상속권 박탈.

한마디로 까스띠예 귀족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안주감인 겁니다, 아르메이아는. 별볼일 없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저렇게까지 유명하다니, 눈물이 앞을 가릴 일..(...) 까스띠예 궁정에 있을 때 명성 페널티를 제안했고 (룰적 근거 전무), 플레이어도 순순히 받아들이시더군요. 명성 다이스 페널티 쪽을 생각 중입니다. 흐흐..+_+

가진 건 쥐뿔도 없고 아는 건 머리 한가득인 아르메이아. 사악GM 로키와 함께 한 그의 첫 모험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그냥 즉석에서 "할까요?" "하죠!" 수준이었던지라 준비 별로 안하는 제 기준으로도 정말 준비는 전무했던...



아르메이아는 추기경(여기서 우리는 GM의 준비부족과 까스띠예 소스북의 부재를 알 수 있다)의 저택에... 공식적으로는 초대손님, 사실은 통역사. 몽테뉴와 보다체 손님들이 있었거든요. (아르메이아는 모국어인 까스띠예어 외에 몽테뉴, 보다체, 아발론, 테아어를 하는 인재!) 따라서 얘기하는 손님들에게 공통되는 언어가 없을 경우 달려가 통역해주는 게 아르메이아의 일이었죠. 명색이 귀족이라도 가진 게 없으면 사람이 이렇게 됩..

어쨌든 아르메이아는 보다체의 치오사 추기경, 까스띠예의 돈 알다나, 그리고 한동안 대화를 진행한 후에야 GM이 이름을 지어준 비운의 몽테뉴 귀족 오렐리앙 비세 세 사람의 대화를 열심히 통역해주고 있었습니다. 치오사 추기경은 실종된 몽테뉴 추기경 자리를 없애고 까스띠예와 보다체에 추기경을 추가해서 몽테뉴 추기경의 실종 때문에 못 뽑고 있는 교황을 뽑아야 교회의 지도력 부재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었죠. 몽테뉴 귀족은 레옹 황제(몽테뉴 왕)께서는 누구의 신앙의 자유에도 간섭하지 않으며, 사라진 다르쥬노 추기경을 찾기 위한 모든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고 뻔뻔스러울 정도로 성의없이 말합니다. (1. 몽테뉴 귀족사회가 교회에 등돌린지 한참 된. 2. 추기경 실종 후 몽테뉴 황제가 추기경 반지 끼고 나타남.)

죽도록 통역하고 있던 아르메이아의 귀에 무도회장 한켠의 소란이 들려오고, 이 시점에서 대화의 흐름을 놓치고 저쪽에 신경을 쓸 것인가 아니면 무시하고 이쪽에 집중할 것인가 선택할 수 있었지만, 통역해주는 상대가 다 무시무시한 VIP인데다 다른 통역사도 파티장에 있다는 얘기를 빼먹는 바람에 의미있는 선택지를 주는데는 실패. 저때 소란 쪽에 신경을 썼다면 전혀 다른 모험이 될뻔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쪽이 더 재밌었던 것 같습니다. (...자기합리화)

자기 얘기가 영 먹히지 않자 답답하던 노인네...아니 치오사 추기경, 불쑥 아르메이아에게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습니다. 조리있게 대답하는 아르메이아를 잠시 바라보던 추기경은 음료잔을 집는척 하며 아르메이아에게 무도회가 파한 다음에 잠시 보자고 작게 얘기하죠. 여기서 급작스러운 요청에 아무 반응 안하는데 에티켓 판정. 아르메이아는 쉽게 성공했고, 아무 내색 없이 무사히 파티 끝까지 목이 닳고 입이 마르도록 통역질을 합니다.

결국 손님들의 흐름에 밀려 떠나는 손님 마차타는 순간까지 통역하는 아르메이아. 더욱 짜증나는 건 까스띠예어가 안되는 주제에 까스띠예 귀부인 꼬신다고 설치는 몽테뉴 귀족청년 말 옮겨주기..(...) 참다 못한 아르메이아는 꼬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부인의 눈치를 살피고, 겉보기에는 웃으며 끄덕이며 받아주고 있지만 사람보는 눈 판정이 성공하자 사실은 지루하고 짜증내고 있는 게 보이지요. 아르메이아는 몽테뉴어로 청년에게 여자 꼬시려면 언어 정도는 배우라며, 침대까지 통역 동행할 거냐고 쏘아주지요. 그리고 흔들림없는 에티켓 굴림으로 청년을 물러나게 만듭니다. 감동먹은 GM 극주사위 먹이고... 아마 명성도 조금 올려야 할 것 같군요, 이 시점에서. 까스띠예 귀부인은 웃으면서 가버리고...

여기서 끈기판정. TN 5 실패했으면 목소리가 갈라지고 쉬어서 나오게 하려고 했으나, 아쉽게도(?) 성공. 어쨌거나 목이 마르고 다리는 붓고 초죽음이 된 아르메이아는 부엌으로 직접 내려가 물한잔 달라고 하고, 한 젊은 하녀가 물잔을 건네며 지체있으신 도련님이 이런 데로 직접 내려오시면 사람들이 뭐라고 한다며 얼굴을 붉히지요. 하지만 곧 동료 하녀들에게 잡아뜯어집(?)니다. 저 사람 아무 실속 없다고 속삭이는 소리가 아르메이아의 지친 귀에까지 들리고... 아아, 하녀에게까지 실속없다고 외면받는 이 신세. 외로워도 슬퍼도~를 외쳐야 할 상황인 겁니다! ;ㅁ; 여기서 지치고 피곤한 아르메이아의 연기 때문에 다시 극주사위.

치오사 추기경과의 밀회를 위해 파티장으로 돌아가본 아르메이아. 무도회장을 치우는 하인에게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영 짜증내는 태도로 봐서 성실하게 전해줄 것 같지 않은 불길한 예감. 무도회장의 찬란한 빛과 목소리, 웃음 소리 뒤에 공허하고 어둡기만 한 그 공간에서 아르메이아는 혼자 기다립니다.

바로 그때 정원에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정원으로 통하는 큰 몽테뉴식 창(창틀이 바닥까지 닿아있는 문 비슷한 창)으로 나온 아르메이아는 산책로의 풀섶 저편에 사제복을 언뜻 봅니다. 그리고 두 사내가 좀전 파티에서의 소란에 대해 얘기나누는 것을 알아채지요. 그리고 재치판정. 그런데 아르메이아 뒤쪽으로도 발소리가 들립니다! 아직 두 사내는 알아채지 못하고 있지만, 조금만 더 다가오면 알아채고 얘기를 멈추겠지요. 어차피 오는 사람을 안 들리게 막을 수 없는 이상 아르메이아는 몰래 접근해 얼굴이라도 확인하기로 결정하고 은신 체크를 성공해 두 사내의 얼굴을 확인합니다. 비록 아는 사람은 아니었지만요. 그리고 또다른 사람이 다가오는 소리와 아르메이아를 부르는 소리 때문에 얘기 나누던 사제들은 그대로 산책로를 따라 가버리고, 돌아본 아르메이아가 본 것은 역시 라 치오사 추기경.

교회의 판도를 바꿔버릴 계획을 꾸미는 사람 치고는 너무나 순수하고 따스한 노인네인 추기경은 함께 산책하자고 아르메이아에게 말하고, 둘은 정원길을 걸으며 얘기를 나눕니다. 아르메이아의 불우한 상황을 무도회장에서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다 파악해 버린 노인네 눈치. 내색하지 않는 판정에 GM은 재치가 아니라 끈기로 에티켓을 굴리라는 사악함을 과시했고, 결국 뽀록나 버려서 당황한 아르메이아. 그가 불편해하자 추기경은 화제를 바꾸어서, 몽테뉴 추기경직을 없애고 교황을 선출하려는 자신의 계획을 얘기하지요. 그리고 도와주겠냐고 묻습니다. 아르메이아가 그러겠다고 하는 동안 플레이어분은 이 거대한 규모의 얘기를 대체 어쩌라는 거냐고 잡담채널에서 울부짖고..(...) 역시 황당하게 큰 규모의 이야기를 키우는 GM 버릇이 나온 겝니다. 나와버린 게지요..;;

줄이고 또 줄여서 아르메이아의 임무는 몽테뉴의 실종된 다르쥬노 추기경, 그리고 대주교들의 생사확인으로 좁혀집니다. 결국에는 몽테뉴 궁정, 그리고 가끔은 다른 나라 궁정 돌며 재밌게 놀라는 얘기지만요. 치오사 추기경은 아침에 몽테뉴에 있는 자기 조력자에게 줄 소개장을 전해주겠다고 하고, 세션 끝. 장면을 잘 진행한 포상으로 다시 극주사위.

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재밌었습니다. ;ㅁ; 7번째 바다는 제가 하는 것 치고는 꽤 복잡한 룰이어서 실수도 있었지만, 요소요소 룰 적용하는데 쏠쏠한 재미가 있더군요. 또 초보자님도 캐릭터성을 잘 표현하고 극적 감각도 있는 분이라 제가 만드는 극적 요소들에 잘 반응해 주셨고요. 아르메이아 같은 경우 설정을 처음 접했을 때는 지나치게 건조한 캐릭터가 아닌가 걱정했었는데, 막상 플레이가 시작되고 많은 주변상황에 반응해야 하자 캐릭터가 살아나더군요.

개인적으로 제일 아쉬웠던 부분은 시작 장면. 통역 장면의 성격상, 그리고 시작 갈등을 설정해야 하는 필요상 NPC들끼리 얘기하는 걸로 시작하는 게 곤욕이었습니다. 또 위에서 말했듯 숨막히는 VIP 상대중, 게다가 엄청나게 중요한 얘기중, 게다가 다른 통역사들의 존재는 빼놓아서 결과적으로 전혀 선택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선택지도 문제였습니다. 아아..활극이 될 수 있었는데...;ㅁ; 이쪽 얘기도 재밌긴 했지만 같은 결과라도 플레이어의 의미있는 선택의 결과였다면 저도, 플레이어도 더 보람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 장면에서 다른 통역사의 존재만 강조했더라도 의미있는 선택의 여지가 훨씬 생겼을지도요. 인물이나 대화를 덜 중요하게 만들면 이번에는 이쪽 옵션을 부당하게 뺏는 결과가 됐겠죠. 어려운 문제이지만, 앞으로는 의미있는 선택의 기회를 잘 포착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삐걱거리는 면도 있었지만 대체로 재밌었습니다. 앞으로의 캠페인도 기대되는군요. 소스북 안읽어본 까스띠예에서 슬쩍 주인공을 빼돌려 소스북 읽은 몽테뉴, 그리고 아마도 보다체 쪽으로 옮기는 저의 센스란..(이봐) 몽테뉴에서는 궁정음모 규칙도 적용할 생각인데, 궁정음모의 화폐는 다른 무엇보다 '부탁'입니다. (돈? 돈이야 당연히 다 있는 걸로 전제 깔고요. 아르메이아는 없어서 문제지만, 추기경의 조력자께서 알아서 해주심.) 남의 부탁을 많이 들어줄수록 소개부터 돈 꾸는 것부터 정보까지, 다른 사람의 호의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자기 부탁을 해결할 수가 있거든요. 결국 부탁 들어주느라 온갖 모험 다 하라는 훌륭한 시스템..(...) 대리결투에서 귀부인 강아지 실종사건 해결까지, 온갖 뻘짓 다할 아르메이아의 대모험을 기대해 주시길~ 후기 올릴 기운이 다시 날 일이 있을까는 모르겠지만요.


첫 7번째 바다 마스터링은 나름대로 성공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하고 싶은 7번째 바다의 색채가 나와서 기쁘군요..^^
2006/02/15 16:53 2006/02/15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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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안방극장 대모험(Primetime Adventures)' 룰을 사용한 플레이테스트 겸 즉플을 해보았습니다. 광풍님의 잡담방에 있다가 갑자기 '즉플하고 싶다'는 생각에 준비도 없이 시작한, 그야말로 즉석 플레이였다죠..ㅋㅋ 희생양(?)들은 같은 잡담방에 있던 죄밖에 없었던 구네님, 러드네이님, 희미님 세분이었습니다.

안방극장 대모험은 가상의 TV 드라마를 만드는 룰로, GM(이 룰에선 PD라고 함)과 플레이어들이 상의해서 프로를 기획하고 만든 다음, 그 내용을 롤플레이하는 룰입니다. 룰을 간단히 설명하고 기획에 들어갔습니다.

드라마는 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내용, 즉 고등학생으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연예계와 학교에서 겪는 내용을 소재로 한 드라마로 낙찰을 봤습니다. (실은 폭군 PD의 독단이었던 소리는 절대 못하겠...) 그다음 캐메에 들어갔죠. 원래 아이돌 댄스그룹으로 컨셉을 잡았었는데 러드네이님이 악기 다루는 캐릭터를 하고 싶다고 하셔서, 재밌게도 그룹 컨셉에서부터 시작해 내용 자체에도 꽤 영향이 컸습니다.

구네님과 희미님에게 배스와 드럼을 맡은 캐릭터는 어떻겠냐고 물어봤지만, 두분 다 노래와 댄스를 하는 가수 캐릭터를 원하시더라고요. 이쯤에서 자칫하면 시작하기도 전에 플레이 끝나겠다는 위기감! (어이, 오버야) 진땀나는 PD, 방안을 짜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떠오른 것이 바로 전설의 그룹 아바(ABBA). 아름답고 노래 잘하는 아그네사와 프리다, 그리고 연주 파트를 맡은 베니와 비요른의 환상 4인조. 그래, 바로 이거야!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구네님과 희미님 캐릭터들은 노래와 댄스를 맡고 러드네이님 캐릭터는 밴드 쪽, 그리고 NPC 밴드 멤버들을 추가해서 순수 아이돌 그룹이 아닌 어느정도 음악성을 갖춘 젊은 밴드로 거듭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거기다 러드네이님이 그 NPC 밴드멤버 중 키보드 맡은 녀석에 대한 설정을 해서 더욱 재밌어졌습니다. 내키지 않는 자신의 캐릭터를 연예계로 끌어들인 절친한 친구이자, 밴드의 노래 작곡을 맡은 캐릭터라고 말이죠.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이 캐릭터가 플레이 내용의 중요한 부분이 됩니다. 이와 같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선회하는 플레이야말로 즉플의 매력이 아닐까요? ㅋㅋ

밴드 이름은 플레이어들의 최강의 작명센스로(...) 오티엘 밴드가 탄생했습니다..ㅡㅡ/ 최종 라인업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김윤정(플레이어: 구네)

-오티엘의 보컬을 맡은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 노래를 너무나 좋아해서 같은 밴드 멤버인 유리의 표현대로라면 하루종일 노래만 부르고 있으라면 행복할 아이. 아빠가 연예활동을 탐탁치 않아 하는 점이 괴롭습니다. 성적이 꽤 좋은 편으로, 활동하느라 바쁠 때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습니다.

-고민: 아빠와의 갈등

-능력: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 모범생

-인맥: 학교 선배 주인혁 (언더그라운드 밴드 쪽에서 어느정도 인정을 받고 있는 기대주, 윤정이 몰래 가슴 두근거리는 상대)


2. 이세진(플레이어: 러드네이)

-기타를 맡고 있는, 역시 고등학교 2학년생. 고아이며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저 같은 학교 친구인 미희, 윤정, 인성과 음악을 하던 중 기획사의 눈에 띄었고,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인성의 강력한 권유로 함께 연예계에 뛰어들게 됩니다. 지금도 연예계가 과연 자신에게 맞는지 회의하고 있습니다.

-고민: 연예인의 삶이 자신에게 맞는 건지 고민중

-능력: 기타리스트

-인맥: 세진을 키워주신 할머니, 친구이자 밴드 동료인 황인성


3. 장미희(플레이어: 희미)

-윤정과 함께 오티엘의 보컬, 인성과 함께 작곡을 맡은 발랄한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 집이 빚 때문에 어려운 관계로 연예활동을 통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립니다. 수입은 전액 부모님 통장으로 직행하고 본인은 쪼들리는 착한 딸이자, 이기적인 가족들한테 치이는 불쌍한 소녀이지요.

-고민: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능력: 귀여운 여가수

-인맥: 반항적인 남동생 원경, 미희를 이해해 주고 연예활동도 응원해 주는 담임선생님 유하진

시범 방송이므로 모든 PC들의 화면 존재감은 2, 그리고 짧은 플레이므로 PC들의 개인 세트는 모두 똑같은 학교 옥상으로 맞췄습니다.

4. NPC 멤버들

-명호일: 신디사이저와 필요할 때면 턴테이블을 다룹니다. 원래대로라면 고3일 나이이지만 학교는 자퇴했습니다. 음침한 성격과 태도에 그저 음악밖에 모릅니다. 정상적인 정신세계의 소유자라고 보긴 힘들지만 음악적 재능만은 천부적인듯. 세진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멤버. (하긴 누가 좋아하겠어요..ㅡㅡ;;)

-박유리: 오티엘의 베이시스트이자 스타일 좋은 이쁜 언니. 대학 2학년에 재학중인 관계로 젊은 밴드 오티엘의 최연장자..(...) 다소 건조한 성격이지만 의외로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특히 윤정을 친동생처럼 아낍니다. 줄담배를 피우는 골초. 착한 학교 선배와 시간날 때마다 데이트를 즐기며 목하 열애중.

-정우진: 드럼을 맡은 대학 1학년입니다. 성격 좋은 호남형으로, 밴드의 고등학생 멤버들에게는 형이나 오빠 같은 존재. 실은 일반 대학생을 훨씬 웃도는 주머니 사정으로 밥을 잘 사준다는 점 때문에 인심을 얻은 걸지도...;;

-황인성: 키보드를 치고 미희와 함께 작곡을 맡은 고등학교 2학년생. 미희, 세진, 윤정과 같은 고등학교에 다닙니다. 세진의 절친한 친구이자 머뭇거리는 세진을 연예계로 끌어들인 장본인. 음악적 열정이 대단한 녀석으로, 부모님은 지방에 계신데 혼자 서울 올라와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오티엘 밴드의 녹음 스튜디오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끊임없이 곡을 쏟아내고, 학교에서는 음악실에서 살다시피 합니다. 예술가적 기질만큼이나 자존심 세고 예민한 성격을 어느정도 누그려뜨려 주는 존재가 세진입니다.

...정말 PC와 NPC를 통틀어 캐릭들의 나이를 보면 한국 음악계에 신동의 시대가 도래했나 싶은..(웃음)


처음 플레이가 시작된 도입 장면에서 카메라는 불꺼진 방을 비춥니다. 텔레비전에서는 오티엘 밴드의 히트곡 '너에게'가 생방송으로 나오는 사이 컴퓨터 앞에는 사람이 혼자 앉아 게시판 글을 올립니다. 카메라가 다가가면서 그 사람이 쓰고 있는 글이 보입니다. '오티엘 밴드, 일본 밴드 표절.' 여기서 플레이어들의 경악 큐.

다음 장면. '너에게'를 만족스럽게 공연한 오티엘 밴드 멤버들은 분장실 문 저편에서도 들려오는 팬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잠시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시청자들은 알고 있다..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잠시라는 것을! +_+) 서로 웃고 장난치며 따스한 마음을 나누는 멤버들. 그때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분장실에 매니져 선생님이 벌컥 들어오고, 하얗게 얼굴이 질린 채로 좀전 게시판 글과 답글들을 출력한 종이를 테이블 위에 던집니다. 신생 인기 밴드에 자칫 치명적이 될 수도 있는 악성 루머에 멤버들은 할말을 잃고... 특히 작곡을 맡은 인성이는 더더욱 견디지 못하고 먼저 나갑니다.

매니져 선생님과 멤버들은 사이버 수사대에 수사를 의뢰하고 일이 커질 경우 기자회견을 하기로 한 뒤, 세진과 미희, 우진은 인성이가 걱정돼서 가보기로 하고, 윤정은 머리가 아파서 집에 가겠다고 합니다. 유리는 다 잘 될 거라며 윤정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데이트하러 떠납니다. 장면신청을 받자 세진과 미희의 플레이어분들은 인성이와 만나는 장면, 윤정의 플레이어분은 집에 가는 길에 학교선배 인혁과 마주치는 장면이었습니다.

PD로서 자칫 난처할 수도 있는 PC들의 분리 상황이지만 룰의 성격 덕분에 이번에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안방극장 대모험 자체가 (구네님이 예리하게 지적하셨듯이) 여럿이서 협력해서 멋진 이야기를 만드는 것인만큼, 자기 PC가 등장하지 않는다 해도 플레이어들은 활발히 참여할 수 있거든요. 다른 사람 캐릭터가 나오는 장면에서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하는, 다른 룰에서는 참견인 것이 안방극장에서는 꼭 필요한 참여입니다. 이런 참여는 룰적으로도 확보되어 있어서, 자기 캐릭터가 안 나와도 플레이어들은 팬레터 등을 통해 이야기의 결정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먼저 미희와 세진 일행이 인성에게 찾아가는 장면부터 시작. 작업실에 가 보니 인성은 혼자서 격하게 드럼을 치면서 누가 왔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세진이가 큰 소리로 부르자 간신히 정신을 차린 인성은 태연한척 하려 하지만 마음이 딴데 가있는 흔적이 역력하고... 위로하려고 애쓰는 세진과 미희에게 인성은 대뜸 자신이 밴드를 나가는 게 어떻겠냐고 합니다.

이 시점에서 장면전환! (음하하) 집으로 가던 윤정은 집근처 음반가게에서 헤드폰을 끼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인혁 선배를 발견합니다. 뒤로 살금살금 접근해 헤드폰을 확 뺏어서 자기가 쓰는 윤정. 놀랍게도 헤드폰에서 들려오는 건 윤정 자신의 목소리, 오티엘 밴드의 곡이었습니다. 윤정의 재능을 칭찬하는 인혁의 말에 윤정은 상기되고... 윤정은 인혁에게 밥사달라고 조르고, 인혁은 음악하는 친구들하고 약속이 있어서 곤란하다고 말합니다.

윤정이 그러냐고 하면서 포기하려는 순간, PD와 플레이어들의 빗발치는 강요로(...) 결국 갈등판정을 하게 됩니다. 저는 예산을 2 배정해서 3d10, 윤정 쪽은 화면 존재감만 굴려서 2d10인데도 플레이어 쪽이 이겼습니다! 이때부터 플레이어 편드는 다이스의 배은망덕이 시작됩니다..(...)

돌아서려던 윤정은 순간 비틀거리고, 이런 상투적인 수법을 쓰느냐는 플레이어들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인혁은 정말 몸 안좋은 거 아니냐며 걱정합니다. 밥 사주면 나아지겠냐는 인혁의 말에 윤정은 좋아서 그렇다고 하고, 인혁은 전화걸어서 친구들과의 약속을 취소합니다. 여기서 윤정 플레이어분의 멋진 연기에 나머지 두 플레이어분들이 팬레터를 보냅니다.

다시 장면전환하면서 밝아졌던 분위기가 싸악 가라앉습니다. 세진은 주먹을 쥐면서 인성에게 다시 말해보라고 하고, 인성은 동료들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합니다. 세진은 자신을 억지로 끌어넣고서는 지금 와선 무슨 소리냐고 합니다. 인성은 폭발하면서, 그런 오해를 받은 것 자체를 참을 수 없다며 다른 밴드 멤버들에게 피해 주기도 싫다고 합니다. 피해망상증이라며 네 맘대로 하라는 세진. 분위기는 진정되는데, 이때 PD 당황했습니다. 이건 제가 좀 잘못한 부분이지만, 당시에는 한 장면당 판정을 한번은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ㅋㅋ 1회 플레이로 끝날 거라고 생각한 관계로 차분하게 진행하지 못하고 가능한한 룰을 많이 활용하려는 조급함도 컸습니다. 뭐 플레이어분의 멋진 대응으로 결과적으론 더 좋았지만요.

PD 버벅거리는 거 보고 러드네이님 불쌍했는지, 다음 순간 세진이 주먹을 날립니다. 얼얼한 표정으로 나가떨어진 인성. 다시 다이스 타임~! 다이스는 여전히 플레이어 편..ㅡㅡ++ 인성은 세진을 무섭게 노려보더니 갑자기 바닥에 길게 드러누워 웃음을 터뜨립니다. 황당해하는 미희에게 세진은 원래 이랬으니까 신경쓰지 말라고 합니다. 저녁 근사하게 쏘겠다는 우진의 선언에 모두 웃으며 밖으로 나섭니다. 역시 세진의 멋진 RP에 팬레터 두통이 들어옵니다. 이러한 플레이어간의 RP 포상, 나름대로 문제도 있을 수 있는 시스템이지만 대체로 긍정적인 점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다음 장면. 윤정은 인혁과 함께 국밥집에서 국밥을..(...) (구네님의 명잡담, '소녀에게 국밥이 뭐야.'가 이때 작열했다죠.) 음악 얘기를 하면서 두 사람은 시간가는 줄 모르죠. 가만히 놔두면 끝없이 땅만 파고드는 로키가 이 행복한 장면을 그냥 둘 리가! 이때 한켠의 텔레비전에서 연예 뉴스가 나오더니만 오티엘 밴드의 표절 의혹 얘기가 나와버렸다죠. 게시판 글 하나에서 일파만파! 윤정은 서둘러 달려가서 텔레비전을 꺼버리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놀란 인혁을 도저히 마주할 수 없어서 그대로 도망칩니다. 인혁은 부르며 쫓아오지만 남자녀석이 뭐가 그렇게 느려터졌는지 뒤처져 버립니다. (사실은 마스터가 또 다이스의 농간에 놀아난..ㅠㅠ)

이때부터 분위기 완급조절이 제대로 안된 채 끊임없이 안좋은 분위기로만 흘러간 점이 좀 별로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체로 재밌는 플레이였긴 하지만요. 다음 장면은 밥먹고 들어온 미희와 가족들의 장면. 희미님이 얘기해준 가족 분위기에 따라 구성을 해보았는데, 정말 너무 사람 안 같게 됐더군요, 미희네 가족들이..(...) 빚 때문에 살벌하다지만 어떻게 이럴 수가! (지가 해놓고 흥분함) 아버지는 자신이 돈 못 번다는 자격지심에 늦게 들어온 딸에게 소리부터 지르고, 자기도 그냥 평범하게 학교 다니고 싶다며 울먹이는 미희를 엄마는 따뜻하게 위로하는 듯하면서 결국에는 미희가 벌어오는 돈줄이 끊길까봐 조바심을 내죠. 제가 NPC 연기하면서도 심각하게 싫었던..ㅋㅋ 이렇게 PC 중에는 미희만 나오는 와중에도 다른 플레이어들이 활발하게 참여하고 이야기한 점이 좋았습니다. 정말 TV 보면서 노는 기분이었달까요..^^

설상가상으로 미희의 반항기 남동생인 원경이 늦게 들어와서는 엄마한테 돈 달라고 조르고, 엄마가 돈 없다고 하니까 이번에는 미희에게 손을 벌립니다. 더이상 집구석 분위기를(...) 참을 수가 없어서 확 소리지르고 방으로 들어가는 미희. 그런 미희 뒤로 원경은 방에까지 들이닥쳐 돈 잘 버니까 좀 내놓으라고 큰소리칩니다. 연예활동 수입 전액이 부모님 통장으로 들어가는 미희는 돈이 없다고 타이르지만, 원경은 누나도 사람인데 설마 자기 몫을 안 챙기겠냐며 비아냥거리고... 연예인 누나를 은근히 질투하는 비뚤어진 모습도 드러나지요. 결국 참을 수 없게 된 미희는 아예 실력행사로 원경을 방 밖으로 밀어내고, 심통이 난 원경은 애꿎은 미희 방문을 걷어차고 자기 방으로 향합니다. 미희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숨죽여 울고...(토닥토닥)

다음날 점심시간. 세 사람의 공통 개인 세트인 학교 옥상에서 미희, 세진, 윤정은 학생들의 수근거리는 소리와 이상하게 보는 눈초리를 피해 잠시 평화로운 시간을 가집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오티엘 밴드의 라이벌(실은 짝퉁..;;) 밴드 팬인 학교에서 좀 노는 여자애들이 시비를 걸어와서는 표절 시비 가지고 별말을 다하지요. 세진이 상대가 여자라서 참는 사이 뜻밖에도 윤정이 대폭발해서 칠공주 리더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악을 씁니다. (멋쪄~! 퍽퍽) 상대가 세게 나오자 오히려 자기들이 당황한 칠공주, 3학년 짱을 불러내고, 세진은 3학년 짱과 맞짱 뜨려다가 무지막지한 주먹 한방에 옥상 바닥을 뒹굴죠. (다이스는 드디어 내편! 크하하) 이때 미희의 플레이어 희미님이 미희의 인맥인 유하진 선생님 옆에 체크표시를 하고, 덕분에 유하진 선생님의 시기적절한 등장으로 옥상에 뒤엉켜있는 학생들은 모두 굳어버립니다. 화면 어두워지고 오티엘 첫회 시범방송이 끝을 맺습니다.

재밌는 플레이였지만 별다른 준비가 없었고, 반성할 것도 많았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갈등판정에 대한 부분과 분위기의 완급 조절에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번 회 같은 경우 판정을 강요하다시피 한 점이 많은데 앞으로는 판정 여부는 플레이어가 주도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산은 장면 첫머리에 배정하는 게 아니라 플레이어가 판정을 선언할 때만 배정하고요. (내지는 판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선언한다든지요.)

행동판정과 갈등판정의 차이를 설명하지 않고 시작한 것도 실수였던 것 같습니다. 판정이 기본적으로 캐릭터가 원하는 것과 그것을 가로막는 장애라는 두가지 요소가 갖춰지면 벌어지는 것이라는 점은 같습니다. 하지만 행동판정이 그 욕망을 이루기 위한 캐릭터의 특정 행동을 성공시키는 것이라면 갈등판정은 그 욕망의 실현가능성 자체를 판정하는 것입니다. 대체로 겹치는 경우가 많지만 다른 경우도 가능합니다. '라이벌 NPC를 앞질러서 달려요' 하는 것이 행동 판정의 선언이라면 '라이벌 NPC에게 이겨서 애인을 가로채요' 하는 것이 갈등 판정의 선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행동판정과 갈등판정을 구분할 가장 큰 이유라면 갈등판정에서는 무엇이 달려있느냐를 자유롭게 정할 수 있고, 따라서 극적 흐름에 적합하지 않은 우연적인 결과를 피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안방극장 대모험 룰북에 딱 맞는 예가 실려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의 주인공들은 소형 원자폭탄을 차에 싣고 달리는 테러리스트를 잡아야 합니다. 주인공들이 원하는 것과 그 원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라는 두가지 요소가 갖춰졌으니 판정이 일어납니다. 이 판정에 걸린 것은 무엇일까요? 실패하면 테러리스트들은 뜻을 이루고, 도시는 버섯구름과 함께 사라진다? 물론 극의 성격에 그게 맞다면 좋습니다. 하지만 영웅적이거나 코믹한 분위기의 스파이물이라면 절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해결 방법은 간단합니다. 원자폭탄이 터지느냐 마느냐는 아예 판정에 걸지를 않으면 됩니다. 즉 판정에 실패하든 성공하든 원자폭탄이 터지는 일이 없다고 정하면 그만입니다. 0.0001초 전에 타이머를 해제한다거나, 잡힐 것 같으니까 테러리스트들이 차밖으로 던지고 내뺀다거나 하면 되니까요.

그렇다면 아무 중요한 결과도 없는 판정을 뭐하러 할까요? 중요한 것이 걸려있지 않다면 판정을 안하면 되지만, 원자폭탄이 안 터지더라도 판정을 할만한 가치있는 욕망은 얼마든지 걸려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원자폭탄은 끝내 안 터진다 하더라도 테러리스트들을 이번에 못 잡는다면 다음에 또 주인공들을 괴롭히러 나타날 것입니다. 혹은 남편에게는 이런 일을 한다는 사실을 비밀로 하고 있었는데, 마침 기자인 남편이 추격전을 열렬히 취재하고 있다면? 혹은 보도에서 지켜보고 있는 꼬맹이가 휘말리지 않게 보호해야 한다면? 그럴 경우 판정에 의해 이루고 말고가 좌우되는 욕망은 '이번에는 꼭 경찰에 넘기고야 말겠어!'라든지 '으악! 남편한테 내 얼굴이 보이면 안되는데!'라든지 '저 꼬마 큰일나겠어!' 등등이 될 수 있겠죠.

즉, 갈등판정의 가장 중심적인 문제는 '이 판정에 무엇이 걸려있는가'이고, 이것은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판정 전에 정해야 합니다. 또 그 욕망, 혹은 목적은 캐릭터와 플레이어가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즉 '캐릭터에게 중요한 것'이어야 합니다. 위에서 어린아이의 목숨을 지키겠다는 일념은 그 자체로도 꽤나 극적이지만, 만약 캐릭터가 예전에 사랑하는 아이를 잃어서 결혼생활이 불행하게 끝난 과거가 있어서 정말 필사적이 돼버린다면 더더욱 심금을 울리겠지요. 다음번에는 이런 것들을 플레이어들에게 설명하고 들어가야겠습니다.

갈등판정 외에 또다른 아쉬운 점이라면 위에서 말했듯이 분위기의 완급조절이었습니다. 제가 워낙에 어두운 분위기로 쉽게 나가다 보니 이번에도 안좋은 분위기의 장면이 계속 이어진 것 같은... 어두운 분위기의 장면이 그 자체로 나쁜 건 아니지만 계속 이어지면 긴장감이 없어지는 느낌이더군요. 처음에 세진·인성의 장면과 윤정·인혁의 장면 사이에 전환했듯이 서로 대조되는 분위기 사이의 적절한 장면전환으로 더욱 탄탄한 진행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그럼 푸념 좀 했으니 긍정적인 면으로 넘어가 볼까요? ㅋㅋ 우선 굉장히 재미있는 플레이였습니다. 저도 즐거웠고, 플레이어분들도 즐겁다고 해주셨죠.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크게 '플레이어의 실력'과 '현대물의 가능성' 두가지로 꼽아보고 싶습니다.

우선 플레이어의 실력. 이거 요즘 들어 제가 많은 생각을 하는 부분입니다. 얼마전에는 '플레이어의 실력이란'이라는 글에서 즉플하기가 무섭다고 하소연(?)을 하기도 했죠. 재밌게도 별 생각없이 마음을 비우고 시작한 그야말로 즉플에서 이렇게도 손발이 잘 맞다니 신기했습니다. 듣도보도 못한 이상한 인디 룰을 놀랄만큼 빠르게 습득하신 점이라든지 생기있는 RP, 부드러운 분위기... 한마디로 운이 기막히게 좋았달까요! ㅋㅋ 또 생각해 보니 제가 플레이어 실력의 또다른 측면을 간과한 게, 바로 플레이어 친화도 문제가 아니었나 싶어요. 잡담방 같은 경우 이미 좋은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었(...)고, 그 때문에 즉플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지도요.

또하나 생각한 점은 현대물의 가능성에 대한 것입니다. 검과 마법물 판타지와 어정쩡한 SF물, 휙휙 날라다니는 활극물은 마스터링해봤지만 순수 현대물은 처음 해봤거든요. 위의 캐릭터 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지극히 진솔하면서도 입체적인 고민과 캐릭터들이 나올 수 있었던 건 역시 플레이어 실력에 더해 현대물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야말로 RPG인이 가장 잘 아는 시대와 공간이고, 그만큼 더 진실한 캐릭터와 표현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전 어디까지나 환상 소설의 크나큰 신봉론자이지만 특히 즉플에는 현대물이 적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2005/12/16 22:46 2005/12/16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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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yudhishthirasdice.blogspot.com/2005/09/actual-play-with-my-mother-in-law-part.html

어떤 사람이 아내와 장모를 플레이어로 해서 RPG를 한 이야기입니다. 시스템은 히어로퀘스트, 배경은 펜드래건의 아일랜드 소스북이었습니다. 아내는 전부터 RPG를 했지만 장모는 RPG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 반응이 특히 재밌었다고 합니다.

PC들은 서기 6세기경 아일랜드 한 부족에서 각각 바드(아내)와 여사제(장모)로, 바드는 여성이지만 전사로서도 훈련받은 반면 여사제 쪽은 전투능력은 전혀 없었습니다. 대신에 사제라는 직책이 있었고, 또 공동체의 구심점이었죠. (처음부터 장모가 그렇게 고집했다고 합니다.) 바드 쪽은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 사이에서 갈등했던 반면 여사제 쪽은 철저히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이었습니다. 실제로 처음 플레이가 시작한 장면에서는 버터를 만들고 있었죠.

잠시 설명하자면, 히어로퀘스트는 캐릭터 특성치를 플레이어가 스스로 정의하는 시스템입니다. 예를 들어 '힘 14'가 아니라 '드루이드 14' '공동체의 구심점 12' 하는 식으로요. 저한테 없는 게임이라 자세한 건 모르지만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이때 적대 부족에서 전사들이 쳐들어와 부족의 가축을 훔쳐가려고 합니다. 그건 곧 다들 굶어죽는다는 뜻이기 때문에 전사들은 그쪽으로 달려갔습니다. 여사제는 여자와 아이들이 있는 안전한 곳으로 가려다가 양아들이 휘말려들었다는 말을 듣고 가축 우리로 달려가지요. 황소에게 아들이 받히기 일보직전에 여사제는 그 황소의 진로를 바꿔서 아들의 목숨을 구하는 동시에 그 소가 나머지 소떼를 이끌어서 적 전사들에게서 도망가게 합니다. 적 부족의 전사들이 쫓아가려 하자, 이번에는 바드가 그 앞을 막고 전사들에게 너희를 소재로 해서 모욕적인 노래를 만들겠다고 협박합니다. 바드는 신성하기 때문에 죽이면 신들의 분노를 살 수 있고, 모욕적인 노래가 퍼지면 명예를 잃기 때문에 전사들은 물러납니다.

이때 미처 도망가지 못한 적 전사 하나를 부족의 전사인 드라살이 죽이려고 합니다. 이때 여사제는 '드루이드', '공동체의 구심점' 등의 특성치를 사용해서 논쟁에서 이기고 ("드라살, 입닥치고 집에나 가거라.") 적 전사의 목숨을 구해줍니다. RPG의 상징과 같은 힘세고 건장한 전사가 조그마한 할머니의 한마디에 찍소리 못하고 도망가는 게 되게 재밌더라...고 GM은 전하고 있죠.

여러모로 인상적인 플레이 기록이지만, 특히 제게는 '힘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하더군요. 전통적으로 RPG에서는 전투력이 곧 힘이지만, 이 블로그에 나온 플레이의 경우 두 PC가 문제를 해결한 것은 전투가 아니라 지혜를 통해서였죠. 전사와 늙은 여사제? 현실적으로도 그렇고 두 캐릭터의 스탯을 생각해도 그렇고 둘이서 치고받고 싸운다면 이미 승부는 정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전사와 여사제는 더 큰 공동체 속에서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부족의 전사가 동네 할머니, 게다가 드루이드 사제에게 손을 댄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아니 뭐, 가능하지만 그 동네에 살긴 힘들겠죠. 그래서 떠돌이 모험가가 생기는 걸지도..^^) 마찬가지로 여자 바드에게 가로막힌 적 전사들도 그냥 죽이고 지나가자! 하고 작정했으면 충분히 가능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종교가 있고 공동체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신들의 분노를 사는 것, 그리고 명예가 깎이는 것을 저어한 것이지요.

물론 D&D 같은 전통적인 전투중심 시스템에서도 얼마든지 위와 같은 결과가 나올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시스템으로 구현되지 못하고 롤플레잉으로 처리한다는 점이겠죠. 전투나 마법이 아닌 사회적인 부분에서는 다분히 역할극의 성격이 생기는 것입니다. 물론 매력 판정으로도 가능하겠지만 입체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겁스에서는 영향력 기능으로 판정했을지도 모르지만, 역시 캐릭터들의 사회성과 그들을 둘러싼 공동체를 단순한 기능판정으로 생동감 있게 표현하기는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폭력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다분히 사회질서가 붕괴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역사적으로 힘은 누구 주먹이 세느냐보다는 종교와 법률, 관습, 공동체의 의견 등에서 나왔죠. 물론 신나는 전투가 나쁜 건 아닙니다. 무엇보다 재밌으니까요! ^^ 하지만 '사회 속의 인간'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지원하는 플레이, 그리고 시스템을 통해 좀더 깊이있는 롤플레잉을 경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추신: 이제 히어로퀘스트를 지르고 싶어서 어쩌죠? ;ㅁ;
2005/11/10 22:53 2005/11/10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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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불타는도넛 2008/08/01 17: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디 RPG의 PDF파일을 구매할수 있는 전문 숍이 있나요? 저는 못 찾겠더군요.--;

  2. 불타는도넛 2008/08/06 23: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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