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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스가드/후기] 질주의 기억

마우스가드 1화 후기입니다. 플레이 게시판은 네이버 TRPG Club D&D 기타 소모임 ‘인디 RPG 클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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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암, 켄지, 색슨야산의 풀숲은 벽이 되어 앞을 가로막는다. 새로 나는 파릇파릇한 풀에 섞인 죽은 풀을 헤치며 지나갈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털이 곤두서면서 고개가 저절로 돌아가 주변을 살핀다. 아까 시꺼먼 놈한테 찔린 어깨가 매번 욱신거린다.
빌어먹을.
쉴새없이 실룩거리는 코와 움찔거리는 귀는 공기중에 떠도는 정보를 걸러낸다. 아까 시꺼먼 놈들? 아니, 풀잎에 스치는 바람이다. 살괭이? 바람이 냄새를 불어올 뿐, 아직은 멀리 있다.
풀이 쓰러져 있다. 많은 인원이 지나간 길이다. 깊이 패인 쥐 발자국은 중갑주를 입은 상대다. 시꺼먼 놈들… 엘가르는 이를 드러내며 달려간다.
깔쭉깔쭉한 풀줄기에 붙은 흰 망토조각이 작은 꽃처럼 흔들린다. 켄터 대장이 일부러 남긴 흔적인가?  얼마 뒤, 무거운 것을 끌고간 듯 흙이 쓸린 곳. 피투성이가 되어 늘어져 있던 비올레타를 기억하고 엘가르는 목구멍에 차오르는 분노를 삼킨다.
빌어먹을 비올레타가 다시 나타났기 때문일까, 다시 이렇게 막막하게 달려가던 기억이 번져온다. 숨도 안 쉬는 것 같은 여자를 어깨 위에 들쳐메고 돌투성이 맨땅을 질주하던 지난 가을, 비올레타의 피에 젖은 어깨는 차가웠다.
비올레타 조장을 이곳에서 데려가, 엘가르! 족제비들이 진군하는 길목을 막아서던 정찰대원의 목소리는 잊히지도 않는다. 지원군을 불러와라!
부드러운 밤색 털이 붉게 엉긴 비올레타를 들쳐업으며 엘가르는 그 명령을 어길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정찰대원님 죽을 거에요. 조원들이랑 다 죽을 거라고요. 그 소리조차 하지 못했다. 그 벽력같던 명령이 머릿속에 울리고 또 울리는 소리에 맞추어,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조장을 메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달렸다.
엘가르… 어깨에 걸쳐멘 비올레타가 몸을 뒤척이며 목쉰 소리로 불렀을 때에는 안도감에 주저앉을 뻔했다. 내려놓고… 빨리 가… 지원군을…
피로가 온몸에 한꺼번에 부딪치면서 발이 끌렸다. 타는 듯한 폐가, 망토를 찢어 싸맨 뒷다리의 상처가, 저려오는 어깨가 각자의 고통을 호소했다.
명령이다. 없는 힘을 쥐어짠 비올레타의 목소리가 귓가에 또렷하게 울렸다.
엘가르는 자꾸 접히려는 무릎을 이를 악물고 버텼다. 바위투성이 정경에 몸을 숨길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부상당한 생쥐 한 마리는 한입거리도 안 되는 포식자를 막거나, 눈을 가릴 수단이라고는.
조장님은… 비척거리며 그는 한 발 앞에 다른 발을 끌어다 옮겼다. 비올레타 조장께서는 지금 부상이 심하고 정신이 온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그는 가슴을 한껏 부풀려 아픈 폐에 공기를 집어넣었다.
지금 말씀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엘가르…! 다시 혼수상태로 빠져드는 목소리에는 가냘픈 절망이 얽혀들었다.
마우스가드의 외곽 초소에 도착하기까지 얼마나 걸렸는지는 당시에도 몰랐고, 이후에도 계산하지 않았다. 비올레타를 놓치고 땅에 구른 엘가르는 놀라서 달려온 가드들에게 단어를 토해냈다. 도토리 언덕에 족제비 습격… 정찰조… 지원군… 요망…
며칠 후, 검은 악몽의 구덩이에서 헤어나오면서 동료들의 용감한 죽음 소식이 들려왔다. 엘가르는 멍하니 이것 역시 꿈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랬더라면 비올레타 조장의 거대하고 차가운 분노 역시 꿈일 수 있었을 것이다.
비올레타는 명령대로 자신을 두고 지원군부터 불러왔으면 부하들을 살릴 수 있었다고 했다. 그랬으면 조장님도 죽었을 거라고 엘가르는 말하지 못했다. 그녀는 엘가르에게 죽음이 무서워 득달같이 도망친 비겁자라고 했고, 그는 반론할 말이 없었다.
동료를 버리는 자는 마우스가드의 자격이 없다는 비올레타의 말에 엘가르는 어깨를 움츠리고 아무 말도 듣지 않았다. 그녀의 고통이 울부짖으며 자신을 휩쓸어 지나가게 내버려두었다.
기억의 안개를 뚫고 한 줄기 바람에 생쥐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그들이다. 켄터 대장, 신참, 시꺼먼 놈들, 호위대, 비올레타. 엘가르는 땅을 박차는 다리에 힘을 가한다.
주어진 임무만을 생각한다면 과학자들을 스푸르스턱에 데려다주는 것이 옳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약초냄새 나는 아저씨들 앞발 잡고 마을에까지 바래다주는 게 명령이라면, 그런 명령은 부엉이한테나 채여가라지.
그웬돌린 사령관의 명령은 분명 쥐들의 ‘안보에 필수적인’ 과학자들을 보호하라는 것이었다. 스푸르스턱 주변 길을 엘가르보다 잘 아는 과학자들이 적도 없는 안전한 길로 무사히 못 돌아간다면 그건 안보에 필수적인 게 아니라 식량이나 축내는 밥충이니까 신경쓸 필요가 없다.
과학자들이 무사히 찾아갈 만큼 똑똑하면 쫓아갈 필요가 없고, 그러지도 못할 정도로 멍청하다면 더더욱 쫓아갈 필요가 없다. 따라서 임무는 완수했고 이제는 동료들을 구하면 되는 거다. 아, 역시 마우스가드는 명령을 잘 따르는 게 최고다.
적과 동료들이 점점 가까와오자 엘가르는 신중한 걸음으로 돌과 식물에 몸을 붙이며 이동한다. 이제 금방이다. 엘가르에게 신세를 지면 비올레타 그 성질 더러운 여자 표정이 볼만하겠지? 두려움과 기대감에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경비대원 엘가르는 풀잎 사이로 내리는 어둠 속을 움직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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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 Matriarch – (총)사령관, Patrol leader – 정찰조장, Patrol guard – 정찰대원, Guardmouse – 경비대원

아이젠가르드 전기 2화

싱지드 마크스톤

나만 싱글이네

지난 목요일에는 지하 드워프 도시 배경으로 한 폴라리스, 아이젠가르드 전기 2화를 진행했습니다. 이번 화에는 대장장이 싱지드가 데몬스폰과 싸울 궁극의 무기 라그나블레이드를 찾다가 공격해온 데몬스폰과 싸우느라 전사들이 죽어가는 동안 도망을 쳤죠. 비겁한 행위를 했으므로 성장을 굴린 결과 열정 이하의 결과가 나와 성장했고, 이로 인해 불화가 2점 증가하여 6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도시 내의 부패를 드러내는 사건을 정했는데, 이는 국왕 시해 사건으로 정했죠.
이 사건과 관련된 각자 장면에서 벨레판은 에르타와 함께 있다가 국왕 시해의 누명을 쓰고 (1화 장면보다 이전 시점입니다만), 시베르트는 이에 관여하였다는 누명으로 재판을 받아 친위대 최하위 병사로 강등됩니다. 이 일로 그는 제르문트에게 반대하는 귀족 비밀결사의 구심점이 되지만, 그의 연인 록산느가 제르문트에게 협박당해 첩자가 됩니다. 세칸은 광란중에 친위대원을 죽인 보복으로 국왕의 돌무덤에 갖히는데, 이때 국왕의 무덤 앞에서 울고 있던 왕비 이사르나에게 부탁해 구출됩니다. 그녀의 도움으로 문을 연 세칸은 스트롬가드에서 죽은 연인 미크투와 빼어닮은 모습에 놀랍니다. 이로써 새로운 러브라인이! (…)
이번 화에는 저번의 요청대로 규칙을 설명하고 시작한 점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들 판정규칙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더 극적인 내용이 된 것 같네요. 참가자 입장에서는 에르타가 벨레판이 발각되는 것을 막으려고 누명을 쓴 경위도 흥미진진했습니다. (그러게 왜 집에 가랄 때 안 가 이 여자야!ㅠㅠ) 대체로 1인당 한 장면씩 하면 무난한 것 같군요. 왕이 죽고 도시의 문제가 드러난 지금, 앞으로의 진행이 기대됩니다.

[일일 플레이 후기] 역사를 지키는 자와 바꾸는 자! <타임키퍼즈>

네이버 TRPG 카페 제7회 일일플레이가 8월
7일에 있었습니다. 성황리에 치러진 행사였고, 아주 재밌었지요. 저는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으로 한 테이블을 맡았는데, 이때 플레이한 가상의 TV 드라마는 <타임키퍼즈>라는 시간여행/느와르 첩보물이었습니다.

안방극장 대모험

사용자 삽입 이미지안방극장 대모험은 간략한 인물 능력치와 판정을 통해 인물의 관계와 내적 갈등, 그리고
협력적인 이야기 만들기를 강조한 규칙입니다. 그 창의적인 디자인 때문에 2004년 인디 RPG 상의 ‘올해의 인디게임’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2004년 ‘올해의 인디게임’이었던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에 이어 2위였으니, 포도원의 개들과 같은 해에 심사받은 불운(?)만 아니었다면 수상했을 작품이지요.

안방극장 대모험을 플레이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마치 텔레비전을 보면서 와 멋있다, 으 쟤
뭐야 수다떨면서 앞으로 어떻게 될까 가슴 두근거리는 재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재미를 느끼려면 무엇보다 참여자 전원이 가슴이 뛰고
흥분될 만한 배경과 인물이 필요합니다. 즉, 배경과 인물을 설정하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모두의 흥미도를 확실하게 확보해야 전체
시즌을 무리 없이 끌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안방극장 대모험은 도저히 제가 시나리오나 인물을
만들어갈 수가 없는 규칙이었습니다. PD (진행자)가 일방적으로 만든 설정으로는 플레이의 재미를 살리는 데 필수적인 감정적 몰입을
도저히 이끌어갈 수 없었거든요. 그리고 사실 저 자신이 시나리오 쓰는 걸 무지 싫어하기도 합니다. 즉흥성이 강한 저는 참가자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파악해서 서로 즐거운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것을 좋아하며, 참가자의 취향이나 욕구를 모른 상태로는 머릿속이
백지장이 되어버리거든요. 그런 면에서 안방극장은 저에게 잘 맞는 규칙이기도 합니다. (2008년 초에도 도쿄의 달이라는 메이지 유신 시대물 시즌을 즐겁게 완결한 적이 있었죠.)

그래서 저는 이번 일일 플레이를 준비하며 기획에 아예 플레이 시간을 할애하기로 했습니다. 즉, 어떤 시리즈를 만들 것인가 일체
정하지 않은 채 참가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결정하고 인물을 만들어 플레이하기로 한 것이었죠. 시간은 좀 들어도 그렇게 해야만
안방극장 대모험의 맛을 제대로 살릴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테스트 플레이를 한 결과는 꽤 재미있고 유쾌하기는
했지만, 몇 가지 개선점은 있었습니다. 우선 기획 단계를 완전히 자유롭게 진행하다 보니 다소 무질서했고, 그 혼란 속에서 모두의
선호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인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더욱 심각하게도 인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인물의 내면이나 관계에 대한
논의가 충분하지 못했고, 그 결과 인물의 깊이가 부족해서 극단적인 전개와 과장에 의존하는, 소위 ‘막장’ 플레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정신없이 웃으며 하긴 했지만 극적 완성도는 아무래도 부족했죠.

테스트 플레이의 경험과 피드백을 바탕으로
저는 기획 절차를 체계적으로 하고자 간단한 설문지를 만들었습니다. (첨부 파일 참조) 그리고 인물에 대한 논의를 기획의 한 단계로
추가했습니다. 또한, 원래 플레이 계획은 1화짜리 파일럿을 하자는 것이었지만, 실제 돌려본 결과 그렇게 하면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파일럿은 생략하고 5 세션을 몰아서 1 시즌을 완성하기로 했습니다. 여러모로 테스트 플레이는 플레이상의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너무나도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때 함께 재밌게 플레이해주시고 좋은 조언 주신 테스트 플레이어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일플날 아침, 이제 준비는 되었습니다. 앗, 그런데 가장 중요한, 판정에 사용할 트럼프 카드가 없었습니다! 테플 때는 승한에게
빌렸었는데, 승한이 하는 새비지 월드에도 카드가 필요하다는 것을 깜박 잊은 것이지요. 왠만한 편의점에는 있겠거니 생각하고 일단
집을 나섰습니다. 이번 플레이는 어떤 모습이 될까 기대 반, 긴장 반으로 가슴을 두근거리며…

‘타임키퍼즈’가 탄생하기까지

먼저 도착해 있던 저는 참가자 중 처음 도착하신 까까비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알고보니 방송 전공이시라는 말씀에 급 쫄아들었죠.
이후 빅베어님과 페르소나님, 그리고 맛난파이님이 도착하셨습니다. 한 분 오실 때마다 설문지를 한 장씩 드렸는데, 그렇게
개별적으로 할 수 있는 활동이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전체 다 모이기 전에는 규칙 설명이나 기획을 하기가 어려운데, 그렇다고
잡담만 하면서 주의가 흩어지는 것보다는 플레이와 관련이 있는 활동을 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각자 작성할 수
있는 설문지가 제몫을 한 것 같습니다.

설문지를 모아 내용을 정리해본 결과 장르 선호도는 판타지, 역사물, 군사물
순이었고, 인물끼리의 복잡한 관계와 이야기의 치밀한 구성에 대한 욕구가 높았습니다. 인물 유형은 개성과 엉뚱한 매력, 동시에
냉철한 전문성에 대한 욕구도 있었고요. 그 결과에 토대를 두고 어떤 시리즈를 할까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습니다. 완전히 자유롭게
논의하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논의의 틀이 생기니 기획 과정에 한결 틀이 잡힌 것 같았습니다. 까까비님이 (전공자답게!) 의견을 잘
정리해주시고, 파이님이 취향을 구체적으로 어필하시고, 빅베어님과 페르소나님이 세세한 의견을 내주셔서 차차 시리즈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빅베어님의 제안은 거의 그대로 최종안이 되기도 했지요.

그렇게 해서 나온 설정은 역사를 그대로
지키려는 집단과 역사의 비극을 지워버리려는 적대 집단 간의 갈등,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네 명의 인물 이야기였습니다. 꼭 마법이
아니라도 환상과 도피의 요소가 있고, 그러면서도 시대물이나 위기 극복에 대한 욕구도 충족할 수 있는 시간여행물/첩보물이 괜찮다는
총의를 형성해갔지요. 자유롭게 다양한 의견을 내본 결과 나온 설정과 인물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타임 키퍼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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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그대로 유지하고 지켜가려는, 말하자면 역사 수호대입니다.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의 역사도 원래 그대로 지켜가려는 이 집단은
장차 다가올 대재앙, 적사병 (The Red Death)으로 인류의 90%가 몰살당하는 역사마저 유지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재앙을 막으려는 타임 브레이커즈와 정면으로 대립하게 되고, 그 싸움이 1기의 근간을 이룹니다.

비밀 집단인 타임
키퍼즈는 대외적으로는 적절하게도 (?) 스위스의 유서깊은 시계회사 네프 주식회사입니다. 설립자인 네프의 후손이 네프사의 회장인
동시에 타임 키퍼즈의 최고지도자입니다. 그 밑에는 간부와 요원, 그리고 각종 보조직이 있습니다. 요원은 흔히 키퍼라고 합니다.

타임 브레이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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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사병 발발을 막으려는 집단으로, 타임 키퍼즈의 미래이기도 합니다. 적사병에 인류의 대부분이 목숨을 잃고 문명이 파괴된 이후 원래의
타임키퍼에서 갈라져나왔거나, 조직 자체의 목적이 변해 타임 브레이커가 되었습니다. 이들 요원은 흔히 브레이커라고 합니다.

준 (암호명 Pers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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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키퍼의 젊은 엘리트 요원으로, 키퍼 코드명은 ‘페르소나’입니다. 그리고 우연히도 (??) 페르소나님이 맡으신 인물이기도
합니다. 어려서부터 타임키퍼에서 요원으로 길러진 그는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꿈에도 모른 채 명령을 따릅니다.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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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을 숨기고 과거로 온 타임 브레이커 요원입니다. 다가오는 적사병 발발과 아주 깊은 연관이 있는 준을 납치해오라는 임무를
받았지만, 준과 개인적으로 친해지면서 그 명령을 수행하지 않은 채 프리랜스 작가로서 만족스럽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까까비님이 맡으신 인물이었습니다.


Mr. M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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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키퍼의 주요 간부 중 하나로, 준의 직속 상사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준의 아버지라는 것도, 준의 어머니가 누구인지도 숨긴 채 오직 회장인 제임스 네프의 명령만을 맹종하며 살아왔습니다. 빅베어님의 PC입니다.

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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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박사로서, 여러 해 전에 적사병 바이러스를 개발한 장본인입니다. 준의 생모이기도 하지요. 타임키퍼가 적사병을 악용하지 않을까
두려워진 그녀는 적사병 치료약을 개발하다가 타임키퍼의 추적을 받게 되었고, 미스터 마와의 결혼생활도 파국을 맞았습니다. 결국
아들마저 잃어버리고 그녀는 키퍼 요원을 피해 시간과 공간을 도망다니며 치료약 개발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맛난파이님이 담당하셨습니다.

<타임키퍼즈> 제1기

1화

1952년, 정은경 박사는 타임키퍼의 눈을 피해 6·25 사변 중에 미군 병원에서 일하면서 적사병 치료약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때 정체불명의 남자가 미군으로 변장한 채 그녀에게 총을 겨누는데… 정 박사는 탈출에 실패하지만, 때맞춰 도착한 타임키퍼 준이
남자를 제압합니다. 정 박사를 데려오라는 명령을 받았던 준은 이 암살자가 더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도망치는 정 박사를 무시하고
습격자를 생포해 21세기로 귀환합니다.

심문 결과 습격자는 타임 브레이커 요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타임 브레이커에서도 정은경 박사를 노린다는 것을 알고 미스터 마는
이 사실을 네프 회장에게 보고합니다. 한편, 격무에 시달리던 와중에도 준은 유리에게서 온 문자를 보고 따스한 웃음을 짓습니다.
네프 회장에게 보고하고 돌아온 미스터 마는 숨겨둔 사진 속에 활짝 웃고 있는 자신과 은경, 그리고 어린 아들을 보며 회한에
잠깁니다.

타임 브레이커에서는 이번에는 준을 노립니다. 준은 제때 시간이동을 하지만, 시간이동 손목시계에 총탄이 스쳐 시계가 오작동을 하자
마치 악몽과 같은 시대로 이동합니다. 파괴당한 도시의 잔해 속에서 괴생명체에게 위협당한 그는 총을 든 여인에게 구조를 받고,
그에게 다른 손목시계를 준 여인은 아무것도 묻지 말고 바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타임키퍼와는 다른 문양의 손목시계에 의지해 자기
시대로 돌아온 준은 알 수 없는 불안을 느낍니다.

2화

정 박사는 치료약을 완성하고자 이전에 한 번 성공했었던 항체를 되찾을 계획을 세웁니다. 20년 전, 타임키퍼에 쫓기던 그녀는
항체를 어린 아들에게 주입해 숨긴 후 아들을 상하이에서 인천으로 가는 배에 태우고, 키퍼들의 주의를 끌며 다른 시대로
탈출했었습니다. 박사는 아들을 떠나보낸 그 순간으로 이동해 배에 탄 아들에게 접근하려고 하지만, 그녀의 계획을 눈치챈 미스터 마
역시 선상에 나타납니다. 얌전히 있으라며 잠시 사라졌던 엄마가 갑자기 달라진 모습으로 나타나자 혼란에 빠진 준은 미스터 마에게
매달리고, 은경을 기절시킨 미스터 마는 준을 데리고 사라집니다. 준은 이렇게 해서 타임 키퍼 요원으로 자라나게 된 것이죠.

한편, 현재에서는 유리가 계속해서 준을 데려오라는 명령을 방치하자 브레이커 요원이 찾아와 유리를 강제로 미래로 송환하려고 합니다.
유리의 문자를 받고 집으로 찾아온 현재의 준은 그 모습을 보고 브레이커를 제압하지요. 준이 경찰을 부르러 간 사이 유리는
브레이커 요원의 시계를 작동시켜 미래로 돌려보낸 후, 범인이 도망쳤다고 둘러댑니다. 한편, 그녀의 컴퓨터 모니터에는 거의 완성한
소설이 보입니다. 레드 바이러스와 적사병, 문명의 멸망을 그린 묵시록이…

3화

출판사 사장은 유리의 소설에 크게 흡족해하고 출판을 결정합니다. 그러나 소설의 내용은 타임키퍼의 정보망을 통해 타임키퍼에
알려지고, 작가가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안 지도부는 미스터 마를 통해 준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필명으로 쓴 소설의 작가를
찾아내 죽이라는 것이지요.

조사 결과 소설의 작가가 유리라는 것을 깨달은 준은 갈등하다가 유리에게 같이 여행을 가자고 합니다. 유리는 혼쾌히 그러마고
하지요. 바다를 내려다보는 절벽 위의 펜션에 도착한 그들. 그날 밤, 준은 유리에게 총을 겨누며 그녀의 정체가 무엇인지
추궁합니다. 유리는 명령이 아니라 너 자신의 판단으로 방아쇠를 당기라고 하고, 준은 끝내 쏘지 못합니다. 유리는 자신의 정체를
털어놓고, 레드 바이러스와 적사병, 그녀가 떠나온 지옥 같은 미래를 그에게 알려줍니다. 준은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가 갈등합니다.

한편 은경은 중세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 치유사로 숨어지내다가 타임 브레이커 요원의 방문을 받습니다. 그의 설득 끝에 타임
브레이커즈와 행동을 함께하기로 결정한 박사는 미래의 그들이 보유한 적사병 지식을 이용해 결국 적사병 항체를 완성합니다.

4화

준이 명령을 어긴 것을 안 네프 회장은 미스터 마에게 준을 죽일 것을 명령합니다. 아침에 펜션에서 나온 준과 유리는 기다리던
미스터 마와 대면합니다. 유리는 그를 필사적으로 설득하고, 미스터 마는 결국 아들을 쏘지 못합니다. 네프가 보낸 또 다른 요원이
명령을 대신 수행하려고 하자 미스터 마는 요원에게 총을 겨누고, 준과 유리에게 도망치라고 합니다. 차를 몰고 정신없이 도망치던
준과 유리는 멀리서 울리는 두 발의 총성을 듣습니다.

타임 브레이커즈를 통해 정 박사의 존재를 알게 된 유리는 준을 데리고 은경을 만나러 갑니다. 그곳에서 준은 미스터 마와 은경이
자신의 부모라는 것과, 자신의 몸에 레드 바이러스 항체가 있다는 것을 듣게 되지요. 그는 고뇌에 빠지지만 그것도 잠시, 항체와
치료약이 한곳에 있는 기회를 포착한 네프 회장은 타임키퍼즈를 보내 준과 유리, 정 박사가 있는 건물을 포위합니다.

5화

타임키퍼 요원들에 대항해 준과 유리는 치열한 전투를 벌이지만, 적의 수가 너무 많아 중과부적입니다. 준이 적 사이로 잠시 퇴로를
확보하자 은경은 치료약을 유리에게 쥐어주고, 두 사람의 퇴로를 가로막은 채 레드 바이러스를 자신에게 주입합니다. 순식간에 그녀는
마치 구울(ghoul, 시체먹는 괴물)과 같은 괴생명체로 변해 타임키퍼 요원을 학살합니다.

몇십 년 후, 같은 장소. 건물은 무너지고, 도시는 파괴당해 불타고 있습니다. 그 속에 한 여인이 총을 들고 도시의 폐허를
순찰하고 있습니다. 문득 소리를 들은 그녀는 먼 옛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달려가고, 그 자리에 나타난 준을 지켜줍니다. 그녀는
변이한 은경이 과거의 준을 해칠 수 없도록 막지요. 타임 브레이커 문양이 있는 자신의 시계를 준에게 던져준 중년의 유리는 준에게
아무것도 묻지 말고 떠나라고 합니다. 그 옛날, 미스터 마와 은경의 희생에 힘입어 탈출했던 젊은 자신과 준이 이 미래를 막아주기를
바라며…

감상과 평가

전반적으로 짜임새 있고 감동적인 이야기였다고 생각합니다. 기획부터 탄탄해서 끝까지 진정성 있는 전개가 된 것 같아 개인적으로 꽤
만족스러웠습니다. 장면 신청과 판정, 승자와 서술권자의 분리 등 의외성과 협동성을 함께 살리는 장치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주 역동적이었어요. 어디선가 본 듯한 것도 물론 많았지만, 그렇다고 꼭 감동이라든지 개연성이 떨어지지도 않더라고요. 협력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주 즐거웠고, 결과물도 괜찮았습니다.

아쉬웠던 점이라면 우선 저의 준비성이 있겠지요. 트럼프 카드는 끝내 못 구해서 아이팟 앱으로 대신했는데, 큰 문제는 없었고
공간활용 면에서는 오히려 장점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역시 카드 크기나 가독성은 한계가 있었고, 가뜩이나 행사 준비로 정신이 없는
두하군에게 부담을 준 것이 미안했습니다. 앞으로는 준비를 철저히 해서 민폐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꾸벅)

Card Table 스크린샷

Card Table 앱을 잘 썼습니다


또 하나 개선할 점이라면 판정의 성공과 실패의 결과 설정 부분이었습니다. 판정이 실패해서 이야기가 재미없을 만한 결과는 판정
결과에 걸어서는 안 되는데, 그 점을 제가 잘 설명하거나 지도하지 못해서 가끔 판점 부분이 삐걱였습니다. 예를 들어 준을 데려가는
선상 장면에서는 은경과 미스터 마가 둘다 PD에게 져서 ‘은경도 준의 피를 못 뽑아가고, 미스터 마도 준을 못 데려간다’는
결과가 나와 결국 준이 미스터 마를 자발적으로 따라간다는 식으로 빠져나갔지요.

선상 장면은 그나마 나았습니다만, 더 심각하게도 5화에는 ‘전원이 타임키퍼에 잡힌다’는 판정 결과가 나와서 이야기 진행을 위해
사실상 판정 결과를 무시해야 했습니다. 저럴 때는 탈출하느냐 못 하느냐를 판정 결과에 거는 대신, 성공하든 실패하든 탈출은 하되
희생 없이 탈출할 수 있는가라든지 치료약을 가지고 탈출하느냐라든지 하는 것을 판정에 걸어야 했죠. 이런 점을 당시에 바로잡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소리가 울려서 의사소통 자체에 좀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 했고요.

참가자분들은 RPG를 1~2 세션 해보셨거나 페르소나님처럼 아예 처음인 초보들이셨는데, 이건 뭐 초보 숙련자 나누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수준급으로 잘해주셨습니다. 발랄한 대화와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테이블 분위기를 밝게 해주셨던 까까비님 (유리), 스토리를
안정감 있게 끌어가시면서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RP를 하신 빅베어님 (회상 장면 하나 없이 끝난 눈물의 마씨 아저씨ㅠㅠ),
주인공으로서 극의 호흡을 이어가는 동시에 가히 악마적인 반전을 엮어넣으신 페르소나님 (준), 그리고 평소 조용하시면서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드라마틱한 전개를 주도하신 맛난파이님 (은경) 모두 함께하기 즐거웠던 실력파 참가자들이셨습니다.

하나 재미있는 현상이라면 진행자와 참가자, 혹은 참가자 사이의 서술권 구분이 그닥 뚜렷하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기존 RPG
관념에 익숙하지 않으신 참가자분들이라서 그런 면도 어느 정도 있겠지만, 숙련자분들과 함께한 테스트플레이 때도 나타난 현상인 것을
보면 안방극장 대모험이 그런 점을 유도하는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다 보니 참가자분들이 조연에 대한 서술도 하시고, 다른
참가자의 주인공에 대한 서술도 하시는 게 재밌더라고요. 사실 생각해보면 그런 서술권 구분을 꼭 엄격하게 유지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테스트 플레이나 이전 도쿄의 달 때도 담당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을 때 참가자가 조연을 맡는다든지 해서 원활하게
돌린 것을 생각해보면 기존 RPG의 서술권 구분이 꼭 필요한가 하는 재고도 해볼 만한 것 같습니다.

이상 제7회 일일 플레이 안방극장 대모험 미니캠페인, <타임키퍼즈>를 소개하고 분석해 보았습니다. 좋은 플레이 해주신 참가자분들과 수고해주신 스탭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이렇듯 즐거운 추억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쇼크 단편: 피는 물보다…

토요일 오후에는 승한군관 쇼크: (Shock: Social Science Fiction) 단편 플레이를 했습니다. 저번에 쇼크를 소개한 글에 오류가 좀 있어서 정정하자면, ‘쇼크’란 사회 변혁이라기보다는 우리 세계와 플레이 속의 세계 사이의 분명한 차이입니다. 그게 사회 변혁으로서 나타날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죠. 이 점을 정정하고 하니 공상과학적 요소를 한결 더 살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 세계에는 없는 특징에서 파생하는 극적 요소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었으니까요.

설정

쇼크는 ‘외계인이 있는 사회’로 했습니다. 쇼크의 담당자는 저. 승한군은 첫 접촉 같은 상황을 생각했지만 저는 외계인과 어울려 사는 세상이 더 재밌을 것 같아서 냉큼 쇼크 담당을 자청하고 외계인 관련 세부사항을 설정했지요. 플레이 배경은 바다 행성 아쿠아로, 바다생물인 원주민 델토이드를 인간들이 식민지배하는 곳입니다. 그에 따르는 문제들이 플레이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다룰 사안은 ‘식민지’와 ‘가족’이었고, ‘식민지’ 사안 담당자는 승한군이 맡았습니다. 저와 승한군은 둘다 ‘가족’ 사안에 속하는 인물을 만들었습니다. 승한군의 인물은 아쿠아 점령 작전의 영웅인 타오룽으로, 델토이드와 결혼한 딸과 화해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제 인물은 델토이드 엔지니어인 ‘솜씨좋은 손’으로 (델토이드 이름은 인간이 발음할 수 없으므로 인간 언어로 번역한 공식 이름을 사용한다는 설정), 인간 여자와의 결혼을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두 개의 능력 대립축은 포용과 편견, 감정과 이성으로 했습니다. 타오룽 장군은 편견과 이성이 높았고, 솜씨좋은 손은 감정과 이성이 높았습니다. 참가자가 둘밖에 없었으므로 승한군의 적수는 저, 제 적수는 승한군으로 했습니다. (나중에 얘기하겠지만 둘만 하려니 관객 주사위가 없는 게 좀 뼈아팠죠..;;) 자기 담당에 맞추어, 그러면서도 자유롭게 제안을 던지면서 쇼크와 사안에 세부 설정으로 뼈대를 붙이니 쉽게 하나의 세계를 설정할 수 있었습니다.

요약

딸 샤오링의 결혼 문제로 딸과 사이가 소원해진 타오룽 장군은 어느날 델토이드 엔지니어인 솜씨좋은 손의 접근을 받습니다. 샤오링과 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결혼을 한 솜씨좋은 손은 장군에게 두 사람을 인정하고 딸과 화해하라고 설득하지만, 장군은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타오룽은 변호사인 친구에게 딸을 도로 데려올 방법을 묻고, 친구는 딸의 정신능력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서 금치산 신청을 하고 아버지인 타오룽이 후견인이 되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타오룽은 이에 따라 소송을 걸지요. 샤오링은 찾아와서 소송을 취하하라고 역정을 내지만 역시 타오룽은 무시합니다.

이후 정신과 의사인 샤오링의 사촌오빠가 솜씨좋은 손과 샤오링의 집에 찾아와서 두 사람이 헤어지지 않으면 법정에서 샤오링이 정신이상이라고 증언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샤오링은 격분해서 오빠와 난투를 벌입니다. (무서운 언니다..ㅠㅠ) 솜씨좋은 손은 두 사람을 떼어놓지만, 사촌오빠의 법정 증언에 샤오링의 폭력적인 행동까지 더해서 샤오링은 아버지의 피후견인이 되는 대신 정신병원에 갇히게 됩니다.

타오룽은 정신병원에 가서 다시 딸과 말다툼을 벌인 후에 딸을 집으로 데려오는 데 성공하지만, 샤오링은 얼마 후에 집에서 탈출합니다. 그리고 솜씨좋은 손에게 찾아와 함께 떠나자고 하지만 그는 이곳에 남아서 아버지에게도, 모두에게도 인정받자고 하고, 그녀는 실망한 채 혼자 행성을 떠납니다.

솜씨좋은 손과 타오룽은 함께 샤오링을 찾아나서서 먼 행성에서 마침내 그녀를 찾고, 아버지는 무릎까지 꿇고 딸에게 용서를 구하지만 샤오링은 그와 연을 끊어버립니다. 하지만 솜씨좋은 손의 설득에는 마음이 움직여서 두 사람은 함께 아쿠아로 돌아오지요. 두 사람은 이종족 커플로서 유명인사가 되고, 둘의 유전자를 합성한 아이도 낳아서 잘 삽니다.

감상

예, 이렇게 해서 솜씨좋은 손의 이야기 목표는 성공해서 해피엔딩, 타오룽은 실패로 쓸쓸한 말년을 맞았습니다. 간단한 설정에서 시작해 꽤 극적인 이야기가 나온 점이 재밌었습니다. 단순하면서도 극명한 긴장 상황을 설정해서 자연스럽게 갈등이 나오는 점이 이전에도 느낀 쇼크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처음에 생각했던 다각적이고 심각한 전개보다는 막무가내의 감정싸움 중심이 된 것 같지만, 그건 어찌보면 가족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필연적인 결과일지도 모르죠.

판정은 원래 규칙대로는 어떤 때는 높은 게 성공, 어떤 때는 낮은 게 성공이어서 굉장히 혼란스러웠는데, 승한군이 고안한 대안 규칙을 사용하니까 적어도 둘이서 하는 TRPG로는 무리가 없었습니다. 일률적으로 낮은 게 성공이고 방해하는 1d4는 더하기만 하니까 일관성이 있어서 훨씬 좋더라고요. 그러면서 확률은 동일하고요. 앞으로 쇼크 할 때는 이 대안 규칙을 사용하면 좋겠습니다.

이야기 진행을 판정 결과에 거는 갈등 판정 방식은 판정과 이야기가 맞물리는 점도 재밌습니다. 주인공 참가자와 적수 참가자의 극적 욕구가 서로 긴장관계를 이루고, 규칙과 판정이 이야기 진행을 일정 부분 규율하면서 그만큼 이야기 자체가 예측 불허가 되고 역동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승한군이 사촌 오빠의 성공적인 증언을 걸고 한 굴림이 능력치와 같게 나와 상승 규칙이 발동한 결과 샤오링이 금치산자 판정을 넘어 정신병동에 갖히게 된 것이 좋은 예입니다.

둘만 해서 아쉬운 부분이었다면 역시 관객 주사위가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타오룽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관객이 주사위로 결과를 낮추어 주었다면 타오룽이 성공할 수도 있었는데, 적수인 저의 방해 주사위가 결과를 높이는 상태에서는 거의 실패할 수밖에 없었죠. 주인공 참가자와 적수 참가자뿐 아니라 관객의 극적 욕구도 함께 맞물리면 좀 더 역동적인 결과가 될 수도 있지 않았나 합니다. 다음에는 셋 이상이서 해보면 더 재밌을지도요.

사악한 시대 플레이

지난 일요일에는 참가자 한 명이 사정상 불참해서 어스돈의 혼 정기 플레이 대신 광열군을 끌어들여 사악한 시대에.. (In a Wicked Age…) 즉석 플레이를 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승한군 글에 나와있고, 몇 가지 덧붙일 감상이라면…

우선 무작위로 뽑는 이야기 요소들 (신탁)이 상상력을 자극하는 효과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폭군을 돕는 사악한 악마’라든지 ‘무모한 젊은이를 지키는 수호령’ ‘전쟁용 황소떼 몰이꾼’ 같은 요소들이 순전히 무작위로 모여서 플레이하는 사람들의 상상력 속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는 과정이 쉽고 재밌었던 점이 기억에 남습니다. 기본 배경은 고대 중동풍 판타지이지만, 신탁에 따라 배경이 달라지므로 신탁만 바꾸면 다양한 장르로 플레이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고요.
또 하나, 이야기 요소들에서 뽑은 인물들의 목표를 번갈아 설정하면서 목표에 갈등을 짜넣는 과정이 플레이의 극적 긴장감을 이끄는 원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맡은 황제를 돕는 악령이 황제를 실각시키고 용사를 새 황제로 세우려는 계획은 악령과 황제 사이에 갈등을 설정했고, 남에게 희생이 없게 자신이 모든 희생을 지려는 전사의 목표는 전사를 무조건 지키려는 수호령과 갈등을 유도했습니다. 이렇게 인물의 지향성과 촘촘한 갈등의 망을 설정한 채 시작하기에 즉석에서 극적 배경과 인물을 설정하면서도 플레이가 방향성을 잃지 않고 끝까지 군더더기 없는 긴장감을 유지했다고 봅니다.
이렇듯 상상력을 무작위로 자극하는 신탁과 갈등을 유도하는 목표 설정, 거기다 간단한 인물 제작 규칙 때문에 사악한 시대는 즉석 플레이를 하기에 좋은 규칙입니다. 그러면서도 즉석 플레이를 연속적으로 연계해서 과거나 미래 이야기를 다루는 등 중장기 플레이도 할 수 있고, 신탁과 목표는 다른 규칙과 연계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단순한 규칙이면서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사악한 시대는 최근 RPG 구매 중 가장 괜찮은 축으로 치고 싶군요.

플레이 내 합의의 범위에 대한 생각

오늘 길드타운 플레이를 한 후 플레이 내 전개에 대한 합의는 어느 정도까지 하는 것이 좋은가 하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깡패들과 전투에서 져서 회장님을 만나러 가자는 식으로 의논을 한 후 약간 빡빡한 전투가 있었는데, 전투의 결과까지 정해놓고 하는 건 참가자의 선택을 의미없게 해서 좋지 않은 것 같다는 아사히라군의 이의가 있었죠.

그에 대한 논의 끝에 제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참가자가 주인공(PC)을 통해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범위는 합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위는 RP를 통해 하는 게 괜찮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전에 글을 썼던 서술권 문제와도 일맥상통합니다. 명시적 합의는 서술권이 미치지 않는 범위에 대해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이며, 전통적 RPG 규칙에서 참가자의 서술권 범위는 주인공의 행동에 그치니까요.

예를 들어 불량배들이 골목에서 몰려나와 주인공 일행을 둘러싼다는 것은 겁스에서 참가자가 자기 직접 서술권 범위 내에서 정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주인공이 아닌 조연 (NPC)의 행동이나 위치 등은 진행자의 서술권 내에 있으니까요. 따라서, 불량배가 습격하는 장면 같은 것은 제안, 논의 등 명시적 합의 과정이 없이 참가자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으므로 합의로 정하기에 적합합니다. 참가자의 로망을 살릴 만한 상황을 만들기에도 진행자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 좋고요.

반면, 불량배들과 전투를 시작한 후 그 전투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는 참가자가 규칙에 따라 주인공을 움직여 결정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주인공의 행동, 전술적 선택 등에 따라 전투 결과는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따라서, 참가자가 주인공을 통해 영향을 줄 수 있는 서술권 범위 내에서는 합의의 중요성이 덜하고, 플레이 스타일에 따라서는 오히려 재미를 해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결과를 정하지 않고 RP와 규칙에 따라 진행하는 편이 긴장감과 의외성도 더 있을 테고요.

초기 상황까지만 같이 생각하고 그 이후는 RP로 하는 것은 여러 취향의 RPG인이 함께 어울리는 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이전에 역할극
대한 글에서 다루었듯 전개를 정해놓고 그에 맞춰서 RP하는 것을 선호하는 취향도 있고, 아사히라군처럼 진행자가 무엇을 내놓을지
모르고 시작해서 서로 맞부딪치며 나오는 우연과 의외성을 좋아하는 취향도 있지요. 전자쪽 취향일 수록 합의가 중요해지고,
후자에 가까울 수록 합의 없이 RP로 말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합의를 하면서도 그 범위를 제한하는 것은 서술권 분배 없는 규칙에서 극적 욕구를 조화하면서도 참가자의 선택과 상황의 의외성을 살리는 하나의 타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쿄의 달 최종화 – 어제와 오늘, 그리고…

도쿄의 달 시즌 최종화입니다. 제목을 안 정한 게 뒤늦게 생각나서 저와 승한님이 날치기 통과시켰습니다. (땅땅땅)

요약

다치바나는 신식 문물을 가르쳐도 전통 정신 교육도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하세가와의 말에 마음이 움직여 소학교 사업을 돕기로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계략을 짜주었던 마츠오를 경계하라고 알려줍니다. 실제로 마츠오는 우메하를 이용하고 다치바나 가문에 대해 헛소문을 퍼뜨려가며 집요한 방해공작을 펼칩니다.

마침내 다치바나는 마츠오가 지역 유지들 앞에서 그 간의 비리와 계략을 시인하도록 교묘하게 유인하고, 죽은 상관의 마지막 말을 마침내 기억해 내면서 신선조의 동료와 상관이 죽었는데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도 정리합니다. 예전의 이상을 되찾은 그의 모습을 보며 카나코는 누구보다 기뻐합니다. 그리고 모두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을 비추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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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는 신선조의 동료들이 중과부적의 적에게 장렬히 전사하고 조장이 자기 품안에서 죽어간 밤의 악몽을 꾸다가 일어납니다. 언제나처럼 조장의 마지막 말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침에 그는 숙부에게 게이샤가 되기로 한 카나코의 결정이 숙부가 부추긴 것은 아닌가 추궁하지만, 너에게 소중한 것을 지키는 것은 너 자신의 책임이라는 숙부의 냉담한 대답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하세가와는 마츠오 다이키가 빠져나간 지금 새로운 후원자를 구하려고 다치바나 가에 찾아가고, 능구렁이 다치바나 류지는 신식 학교 얘기는 젊은 사람끼리 얘기하라며 조카에게 일임합니다. 다치바나와 하세가와는 전통에 대한 신념과 신식 문물 도입의 필요성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다가, 일본의 정신으로 무장하고 신식 문물로 강해질 수 있다는 하세가와의 설득에 다치바나는 마음이 움직입니다.

다치바나는 그런 하세가와에게 마츠오가 하세가와와 우메하를 둘러싼 추문을 이용해 후원자들의 등을 돌리게 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게이샤에게 빠진 하세가와가 후원금을 우메하에게 부정하게 빼돌렸다는 소문을 퍼뜨려서 말이죠.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고 묻는 하세가와에게 다치바나는 자조하며 자신이 마츠오에게 짜준 계책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습니다.

한편, 오랜만에 매화정에 찾아온 마츠오는 다시 이전처럼 우메하에게 다정하게 대하며 그녀가 하세가와가 학교 기금을 유용(流用)했다고 거짓말을 할 것을 요구합니다. 우메하는 웃음은 팔아도 정직성은 팔지 않는다며 그의 손을 뿌리치지만, 그의 협박에 결국 굴복(하는 척)합니다.

하세가와가 학교 기금을 부정하게 사용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후원자들은 학교 사업에 등을 돌리려 하고, 그래도 확인은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다치바나의 제안에 그들은 우메하의 가게에 찾아가 소문을 증명하거나 부인할 자료를 요구합니다. 우메하는 소문의 내용을 증명하는 듯한 장부를 내놓지만 다치바나와 하세가와는 한눈에 무수한 오류를 발견하고, 그 오류를 지적하자 장부의 증거로서의 신빙성은 사라집니다.

우메하가 일부러 장부를 서툴게 조작한 것을 깨닫고 하세가와는 우메하를 걱정하지만, 다치바나는 마츠오가 우메하를 이 일로 홀대하면 오히려 그의 짓이었다는 것을 밝히는 격이라며 오히려 느긋합니다. 실제로 마츠오는 자네가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해서 하세가와군에게 큰 누가 갈 뻔하지 않았느냐며 발뺌을 해서 일단 일은 유야무야 넘어갑니다.

그러나 집요함의 화신 마츠오 다이키는 다치바나가 그의 책사였던 당시의 또 다른 계책을 활용해 (..그저 다 다치바나 죄) 소학교 공사를 방해하는 동시에 다치바나 가문에 대해 비열한 소문을 퍼뜨립니다. 부정을 저질렀다느니, 조카는 신선조에 있다가 이제는 신식 소학교를 짓겠다고 날뛰는 기회주의자라거나 하는 식으로. 다치바나는 사촌동생 요코를 전병으로 구워삶아(..) 숙부가 의논하는 내용 엿들은 것을 전해듣고, 숙부가 다치바나 자신을 보호하려고 적당히 타협해서 일을 넘기려는 것을 알고는 대책을 강구합니다.

얼마 후, 다치바나가 사죄할 일이 있다며 매화정으로 청하자 이제야 다시 자기 밑으로 들어오는가 하고 의기양양한 마츠오는 개선장군처럼 입성합니다. 그곳에서 다치바나는 마츠오가 다치바나 가문과 소학교 사업에 훼방놓고 있던 것을 교묘하게 시인시키려고 하나, 마츠오가 다치바나가 신선조 출신으로서 동료와 상관이 죽은 날 혼자 살아남은 것을 끄집어내자 다치바나는 크게 흔들립니다.

그  순간 다치바나는 몇 년이나 자신을 괴롭혀온 망각, 자신 앞에서 죽어갔던 조장 (시리즈 유일의 실존 인물로서, 전사설도 있고 대륙에 건너가 마적이 되었다는 설도 있는 하라다 사노스케)의 마지막 말을 마침내 기억해냅니다. 우리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살아남으라는 상관의 마지막 명령에, 그리고 카나코의 말없는 응원에 그는 힘을 얻습니다.

굴하지 않고 자기 이상을 재확인하는 다치바나 앞에 냉정을 잃은 마츠오는 자신의 계략을 거의 자랑하듯 시인합니다. 어차피 세상은 다 힘으로 돌아가는 거라며… 그 순간 다치바나가 신호를 보내자 우메하가 옆방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문 저편에 나타난 것은 다치바나 류지를 비롯한 지역 유지들과 소학교 후원자들.

완전히 망신살이 뻗친 채 지역 인사들에게 비난받는 마츠오를 뒤로 하고 다치바나 류지는 조카를 불러내 뜰에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보호해야 할 애송이로만 생각했던 조카가 과거의 아픔을 극복하며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을 그는 흡족해하는 한편, 조카의 정보원이 과자에 눈이 먼(..) 딸 요코라는 것을 알고 허탈해합니다. 그런 숙부와 조카를 지켜보며 카나코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다치바나에게 말없이 감사를 표합니다.

마침내 하세가와는 마을에 무사히 소학교를 세우고, 카나코의 말썽꾸러기 동생 마사오도 늦깎이 학생으로 입학합니다. 하세가와는 반대하던 아버지와도 화해하고, 우메하와 카나코는 서로 의지하고 도우면서 함께 매화정을 운영합니다. 후회하지 않느냐는 우메하의 물음에 카나코는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대답합니다.

한편, 다치바나는 조장의 무덤에 술을 올리다가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비에 요코가 선물한 옷이 젖자 요코를 달랠 심산으로 과자를 사갖고 들어가지만, 우산을 들고 대문 앞에 나와 기다리던 요코는 내가 언제까지나 과자에 현혹당할 줄 알았느냐며 잔소리를 합니다. 다치바나는 마냥 애 같던 사촌동생이 어느덧 여자로 성숙한 것을 새삼 깨달으며 당황합니다. (과자봉지는 다치바나 류지씨가 부스럭 부스럭 혼자 해치웠다는 전설이…)

6년 후, 첫 졸업식을 올린 학생들이 빠져나간 후 하세가와와 다치바나는 지난 시간에 대한 감상에 잠시 젖습니다. 하세가와는 다치바나에게 감사하며 악수를 청하고, 부인의 다가오는 출산을 축하합니다. 다치바나는 하세가와가 아직 장가도 가지 않은 점을 은근히 상기시키지요.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며 우메하와 카나코는 다치바나 부인에게 전할 출산 선물 얘기를 하고, 올해에도 아름답게 필 벚꽃을 기대합니다._M#]
감상

예, 이렇게 끝났습니다. 안방극장 대모험 한 기를 다 마쳐본 것은 처음인데, 정말 깔끔하게 잘 끝나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재미가 쏠쏠했고,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 규칙이 그 과정을 잘 받쳐주면서 이야기를 만드는 논의의 틀이 되어서 더욱 원활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참가자 전원이 진행자 경험도 있고 서로 감각이 잘 맞아서 더 결과물이 만족스럽기도 했고요. 수고해주신 광열님, 뱀프님, 승한님께 모두 감사를.

이렇게 해서 끝마치고 나니 상당히 잔잔하고 일상적인 얘기가 되었군요. 겉모습으로 따지면 작은 마을에 소학교 하나 세우느라 투닥투닥하고 두 청년이 도시의 게이샤와 소문이 무성했던 것뿐이니까요. 그 소소한 이야기에 진정 의미를 부여한 건 네 주인공의 내적 갈등과 인간관계였겠죠. 진행 과정에서 점점 부각된 ‘이상과 현실의 갈등’이라는 큰 주제의식 속에서 고민하고, 그 고민을 해소해 가는 인물들의 모습이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상당히 인물 중심의 내밀한 드라마라는 느낌이었어요.

이야기 자체도 구조가 확실하고 개연성이 있어서 그런 인간적 드라마를 더욱 잘 받쳐주었고, 그 자체로도 재밌었던 것도 이번 시리즈의 장점이었습니다. 이 점에서도 역시 규칙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배역 비중 (screen presence)의 흐름과 가장 비중이 높은 인물의 고민이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 좋은 지침을 제공했으니까요.

예를 들어 카나코가 주역인 4화를 할 때는 카나코의 고민이 게이샤가 되려는 생각과 다치바나에 대한 마음 사이의 갈등이니까 그 두 가지를 계속 대치시키는 장면을 하면서 극적 통일성과 짜임새를 유도할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다음 화인 5회는 다치바나가 주역이니까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유도할 만한 복선을 깔면서 전체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것을 계속 염두에 두어서 한 화에서 다음 화로 극적 맥락을 이어갈 수 있었고요.

이러한 논의와 논의의 지침을 제공하는 규칙의 진짜 장점이라면 ‘집단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겠죠. 이 모든 이야기를 누구 한 사람이 생각해내야 했다면 우선 나머지는 그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따라가야 하니까 전혀 재미가 없었을 테고 (영화나 연극이 아닌 만큼), 만드는 사람도 어려워서 뻗어버렸을 공산이 큽니다. 그래서 어느 한 사람에게 부담이 가지 않고 다같이 이야기를 만들어간 논의, 그리고 이를 지원한 규칙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봅니다.

그 속에서 주인공 중 가장 화려한 인물이자 제일 떡밥성인 다치바나가 마지막 화에 제몫을 톡톡히 했더군요. 첫 장면의 악몽, 최종 보스 마츠오 다이키를 물리친 기지와 마지막에 요코에게 쥐여 사는 미래를 그대로 엿볼 수 있는 모습까지 입체적인 모습이 즐거웠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뱀프님 인물이지만, 모두 그의 이야기에 일조했기에 인물 전원에 애정과 관심이 가는 것도 공동 서사의 힘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초기의 술에 쩔은 패견에서 마지막에 어엿한 모습의 다치바나까지 변해온 과정에 저를 포함한 모두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거겠지요.

마지막 몇몇 장면에서 눈길이 간 것 하나는 하세가와가 6년 후에까지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점. 이건 우메하와 하세가와가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팬 게시판에 떡밥 던지기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 (…) 방송국이나 팬카페 게시판에 시청자들이 둘이 아직 뭔가 있다, 아니다 헤어졌다 하는 논쟁이 올라올 것 같다며 우리끼리 웃었었죠. 적당히 여운이 남는 결말 같아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두 사람이 각각 벚꽃 개화를 기대하는 대목에서는 두 사람이 한창 가까워지던 2화, 봄날의 벚꽃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그 외에 진정한 흑막은 마츠오 다이키가 아니라 다치바나 류지라는 얘기도 했었죠. 따지고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이 아저씨 뜻대로 안 된 게 없으니… 싱글싱글 웃으면서도 늘 꿍꿍이속이 있는 류지씨를 맡을 때마다 굉장히 즐거웠던 기억이 납니다. 결코 얕볼 수는 없지만 동시에 미워할 수 없는 인물. 챙길 거 다 챙기는 건 같은데 마츠오는 늘 찬밥, 다치바나 류지는 더운밥(?)인 것도 신기했고… 저런 분을 쏙 빼닮은 요코에게 장가든 시게하루에게 묵념을.

그러고 보니까 제목대로 도쿄를 비추는 달 언급이 가끔 나오긴 했습니다만, 생각해 보니 그거 관련해서 우메하가 카나코에게 할 만한 대사를 생각했었는데 깜박 잊었었군요. 어차피 딱히 들어갈 데가 없기도 했고요.

나를 가르쳐주신 우메코 선생님께서 이전에 내게 그러시더구나, 게이샤는 달과 같다고. 많은 것을 보고 듣되 말하지 않고, 환하고 아름다우나 닿을 수 없는… 그 빛은 누구나 기분에 따라, 소원에 따라 원하는 감정으로 칠할 수 있지. 아, 달이 슬프게 빛나는구나. 아, 달도 기뻐해주는구나 하고.

너도 그리 될 자신이 있느냐, 카나코? 보는 사람에게 그의 설움과 소원을 모두, 그 많은 사연과 마음을 되비추어 주는 빛이 될 수 있겠느냐?

사실 달을 보든 텔레비전을 보든 RPG를 하든 뭘 하든 사람은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엿보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 자기 삶의 파편들을. 그러면서 동시에 새로운 것을 듣고 생각하고, 자신의 모습과 겹친 남의 모습, 익숙한 것과 겹친 낯선 것에 대면하게 되죠. 그렇게 하면서 자아의 모습은 조금씩 변하고 확장해 가고, 자신과 세계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감동’이라는 작용 아닐까요.

그래서 저를 되비추어준 거울이 된 상상의 편린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이야기 속의 작은 세계에, 그리고 그 과정을 모두 함께한 분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덕분에 기억의 보관함에는 ‘도쿄의 달’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추가할 수 있었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어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또 새로운 의미,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요.

도쿄의 달 4화 – 희생

요약

다치바나는 카나코를 위해 마츠오 다이키에게 비겁한 계책을 짜주고, 처음에는 그에게 지켜달라고 했던 카나코는 점점 수렁에 빠지는 다치바나의 모습이 견디기가 어려워집니다. 게다가 다치바나가 사촌 요코와 결혼하지 않으면 후계자로 삼지 않겠다는 다치바나의 숙부 말을 듣고, 그의 아내가 되는 것은 포기하고 게이샤의 길을 가기로 합니다. 처음에는 화를 내던 다치바나는 카나코의 꾸짖음과 이제는 나도 너를 지키겠다는 카나코의 결의에 정신을 차리고, 둘은 서로 깊은 마음을 확인하며 포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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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오와 약속을 지키려고 저녁에 그의 집으로 찾아갔던 카나코는 다치바나가 같이 있는 것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집니다. 놀란 상태에서도 마츠오의 지시대로 카나코는 술시중을 들고, 저녁 내내 마시다 마츠오가 곤드레만드레 취해 나가떨어진 후에 다치바나는 카나코를 바래다 줍니다.

마츠오와 있었던 이유를 카나코가 묻자 너를 구하려고 그랬다는 다치바나에게 카나코는 자신의 마음을 호소하지만, 자신은 가정을 이룰 만한 인간이 아니라는 다치바나의 말, 그리고 이전의 열정과 이상을 잃어버린 그의 지친 모습에 그녀는 상처를 받습니다. 그러나 카나코의 간절한 마음은 그에게도 전해져서 다치바나 역시 마음이 움직입니다.

가게에 돌아온 카나코를 보고 사정을 눈치챈 우메하는 미래에 대해 아무 보장도 없이 감정에 휩쓸리는 것을 경계하며 퇴물 무사의 감언이설을 쉽게 믿지 말라고 (때려가며..) 경고하지만, 카나코는 시게하루만 있으면 된다며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배은망덕한 것!)

한편, 하세가와는 이제 고위층 인사와 함께하는 폐쇄된 요정이 아니라 시장 광장으로 나가 소학교의 수혜자인 일반 사람들에게 직접 지지를 호소합니다. 지켜보던 다치바나는 서양에 대한 복속을 경계하고 일본 전통의 가치를 강조하며 반대하지만, 하세가와는 전통을 버릴 필요 없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강해져야 한다며 주변의 지지를 받습니다. 다치바나 역시 하세가와의 드높은 이상에 깊은 인상을 받습니다.

자금을 끊어도 하세가와가 마츠오 외의 다른 지원자를 끌어들인다는 얘기를 듣고 마츠오는 다치바나에게 더 좋은 방법을 내놓으라고 다그칩니다. 하세가와와 놀아난 우메하의 가게를 카나코에게 넘겨줄까 하는 마츠오의 얘기에 카나코는 소스라치게 놀라지요.

자기 사람에게는 지원을 아끼지 않지만 실망시키면 가차없다는 마츠오의 말에 다치바나는 카나코를 마츠오가 도로 차지할까 불안해 새로운 계획을 제시합니다. 하세가와가 학교 지원금을 우메하와 노느라 함부로 썼다는 소문을 퍼뜨려서 후원자들이 떨어져나가게 하는 것. 마츠오는 하세가와와 우메하를 동시에 몰락시킬 수 있겠다며 좋아합니다.

나중에 나오며 다치바나에게 정말로 자신의 은인인 우메하를 해칠 거냐고 묻는 카나코에게, 가뜩이나 자기 모습에 자괴감을 느끼고 있던 다치바나는 내가 누구 때문에 이러는지 아냐고, 너를 지키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고 패악을 부립 말합니다. 카나코는 자신 때문에 무리하며 원래의 모습을 잃어가는 다치바나의 모습에 괴로워합니다.

며칠 후, 다치바나는 우메하를 찾아가서 마사오를 풀어주려고 숙부에게 받았던 전표를 주며 카나코의 빚을 부분적으로 갚아주고 그의 진심에 대해 우메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마츠오의 음모에 대해 에둘러 경고해주는 다치바나에게 (“그분께서 우메하씨와 하세가와군의 안부를 묻더군요.”) 역시 에둘러 감사를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메하는 괜찮을 것이라고 전해주십시오.”)

한편, 전표의 지급 승인을 하느라 조카가 받아간 돈이 어디로 들어갔는지 알게 된 다치바나 류지는 가게로 카나코를 찾아와 자신의 딸 요코와 결혼하지 않으면 다치바나는 자기 후계자가 되지 못한다며 물러날 것을 은근히 종용합니다.

그 말에 마침내 마음을 정한 카나코는 게이샤가 되기로 결심하고, 다음번에 요정에 마츠오와 다치바나가 찾아왔을 때 우메하의 동생 우메치코라고 소개받습니다. 다치바나가 이성을 잃고 카나코를 데리고 나가 이게 무슨 섣부른 짓이냐며, 내가 지켜준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다그치자 카나코는 한 대 때립니다. (모두들 기대하던 따귀!)

놀란 다치바나에게 카나코는 정신차리라고, 더는 나 때문에 네가 다치는 건 볼 수 없으니 이젠 나도 너를 지키겠다고 합니다. 상대를 위해 뭐든, 자아도 미래도 내줄 수 있는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이 포옹하면서 페이드 아웃._M#]
예고편

운명의 행방은 과연 어디로?

다치바나: (하세가와에게) 그는 당신과 우메하씨에 대해 추문을 퍼뜨릴 생각입니다.

(마츠오의 손을 뿌리치는 우메하)

하세가와: (굳은 얼굴로)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십니까?

다치바나: (쓴웃음) 그건 내가 세운 계획이니까요.

카나코: (다치바나를 돌아보고 미소지으며 생각) 돌아와줘서 고마워, 시게하루.

(하세가와, 다치바나 악수하면서 화면 정지)

도쿄의 달, 그 대망의 최종화를 기대해 주십시오!

감상

승한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이번 화가 지금까지 중 제일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잔잔하게 시작했던 시리즈가 점점 감정도, 사건도 폭이 넓어지고 규모가 커졌고, 드디어 다음 화에 크게 터지며 결론이 나겠죠.

특히 인상깊었던 건 카나코가 달라지는 모습. 이번 화 초에는 사랑에 빠진 젊은 아가씨의 고집, 다치바나가 자신을 지켜주기 바라는 의존성으로 시작해 4화 내내 사랑하는 사람이 점점 수렁에 빠지는 것을 지켜보고 스스로 현실을 보고 판단하며, 끝내는 자신이 다치바나를 지키겠다는 결단을 내리는 성숙의 과정이 참 잘 드러난 것 같아요. 그게 옳은 결정인지는 각자 판단할 문제이지만, 적어도 카나코의 상황과 내면에 비추어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는 것 같아요.

아무도 전담하는 참가자가 없는 인물인 마츠오의 굉장한 존재감도 이야깃거리였습니다. 결국 모든 주인공이 그의 손아귀에서 놀고 있는 시리즈 보스라고 우리끼리 웃었죠. 이 시리즈의 사실상 주제로 떠오르고 있는 이상과 현실의 갈등에서 현실 축을 잘 표현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고요. 악역이면서도 왠지 멋진 우리의 대마왕 마츠오..(…)

그러면서 가상 캐스팅 얘기도 나왔는데, 마츠오 역을 맡은 배우는 어쩌면 연극 배우부터 시작해 텔레비전에서는 조연과 악역을 주로 맡은 원로 배우이고, 워낙 연기력도 정평이 나 있어서 본래의 각본보다 훨씬 비중도 크고 인기도 은근히 끌고 있을 거라는 얘기도 했죠. (40대 이상의 인기몰이!) 세트장에서도 아마 다들 대선배로 대우할 거라고..

카나코와 다치바나 배우는 스타로 떠오른 신인으로서 연기 경험이 쌓이면서 1기 후반에서 주역을 맡은 것 같다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특히 다치바나 역은 초기에는 시범 방송에서 그럴 듯한 모습을 보여주더니 본편에는 술에 쩔은 패배자로 나오고, 예고편에 나온 컷도 최종 편집에서 잘리는 등 떡밥만 던지다 보니 애가 탄 젊은 여성 팬들의 지지가 쌓이면서 비중이 커지고 있는 꽃미남 배우일 거라든지. (이래서 기획사 백이..)

그 외에 우메하는 왕년에 글래머 스타로 유명했고 지금도 원숙한 아름다움과 탄탄한 연기로 인기를 끄는 30대 중후반의 여배우, 하세가와는 나이보다 젊게 분장한, 연기력이 안정적인 중견 배우가 맡았을 거라는 얘기도 했었죠. 그런 식으로 얘기하다 보니 정말로 TV 보며 친구들과 수다떠는 기분이어서 즐거웠습니다. 그게 안방극장 대모험을 하는 즐거움이기도 하고요.

TV를 모티프로 하고 있는 만큼 카메라 기법을 연출에 활용하라는 것은 책에서도 하고 있는 조언이기도 하고, 실제로 그렇게 하면 많이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이번에 장터에서 하세가와와 다치바나의 토론이 있었을 때 단상 위에 선 하세가와하고 밑에 선 다치바나를 비추면서 지난 화에서 하세가와가 절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위에서 그걸 지켜보던 다치바나의 모습과 대비시키며, 이제 이상과 현실과 관련해 두 사람의 입장이 바뀐 것을 시사했죠.

묘사를 촬영처럼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영상 매체와 친한 만큼 친숙하고, 함축적인 의미를 많이 표현할 수 있어서 연출 기법의 하나로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 외에 공간 활용, 색채와 그림자, 조명 등 시각 언어를 활용할 방법은 많죠. 우메하의 가게 같은 공간은 폐쇄적이고 좀 어둡다든지, 몇 발짝만 가도 계속 사람과 부대껴서 서로 조심조심 피해가야 한다든지, 구석에 깔린 그림자, 드리운 휘장, 좁은 공간에서 답답할 정도로 화려하고 감각적인 색채, 사람 모습은 보이지 않고 웃음소리만 아련히 들린다든지 하는 식으로 그 분위기를 표현하면 공간 자체도 독자적인 개성과 의미를 품게 되겠죠.

비슷한 맥락에서 밤의 요정에서 나와 (이제는 돌아갈 일은 없다고 하며) 한낮의 시장 광장으로 나선 하세가와의 모습도 공간적 대비를 통해 인물의 변화를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하세가와는 이번 화 비중은 낮았지만 다음 화를 대비해 좋은 등장 장면과 많은 복선을 깔아놓은 언급이 많았고요. 등장 횟수가 적은 만큼 이번 화에는 승한님이 PD로 많이 수고해 주셔서 순환 PD의 효용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다치바나와 하세가와의 이번 토론이나 예고편에서 나온 두 사람의 악수는 다른 분들도 지적하셨듯 역사적으로도 의미심장한데, 두 사람의 협력이 상징하는 전통적 가치와 서양 문명의 이기의 결합은 20세기 일본의 팽창지향적 군국주의의 기반이 되기도 했으니까요. 승한님도 그런 부분을 하세가와를 통해 표현해보고 싶다고 하셨고, 서구 문물의 유입에 저항감을 보이던 다치바나 같은 전통주의자도 부국강병의 목표에서 동질감을 찾아내면서 조선 식민지화와 태평양 전쟁의 뿌리는 이미 조금씩 내리고 있던 거겠죠. 그런 역사적 흐름에 일조한 많은 사람의 한 표상인 하세가와나 다치바나 같은 인물이 지극히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것도 흥미로운 일입니다. 그것이 ‘단죄’가 아닌 ‘이해’를 하는 허구적 상상력의 힘이기도 할 테고요.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 규칙이 그런 허구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에 일조하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물 비중의 흐름과 내적 갈등이 플레이를 위한 논의에 초점을 제공한다든지요. 이번 화에는 어느 주인공의 비중이 제일 높은지 생각해서 그 인물을 부각시키고, 가장 비중이 높은 인물의 갈등을 강조하면서 다음 화에는 또 누가 비중이 높아지는지 봐서 다음 화를 향한 복선을 준비하는 게 참 유기적이더라고요. 규칙이 플레이 외적 논의에 길잡이가 된다는 면에서 규칙이 이야기를 돕는 게 이 규칙의 강점인 것 같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그런 논의가 없으면 한없이 썰렁한 규칙이기도 한 만큼 전원이 지금 플레이에, 지금 만들어가는 이야기에 발상과 열정이 넘치지 않으면 재미없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획 단계에서부터 전원의 의견을 반영하고 모두 마음에 드는 설정과 인물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그런 과정에서 교섭을 잘 하는 게 중요할 것 같고요.

예고편의 활용도 재미있습니다. 예고편 때 생각했던 맥락과는 사뭇 다르게, 하지만 더 재미있는 의미로 나타나고는 하니 말이죠. 예를 들어 예고편에 나왔던 카나코의 다치바나 따귀(!)는 다치바나가 자신은 가정을 이룰 만한 인간이 아니라는 말에 대한 반응으로 생각했었는데, 정작 플레이를 하다 보니 그렇게 이어지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패악을 부리는(..) 다치바나를 정신차리게 한 것이 처음 생각한 맥락보다 더 의미가 깊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 화 플레이에 느슨한 길잡이가 되면서도 의외성의 요소를 충분히 살린다는 점이 예고편의 의의인 듯하네요.

참 재미있었고요, 다음 주에 시즌 마지막화 촬영도 기대하겠습니다~

도쿄의 달 3화 – 기로 (岐路)

도쿄의 달 3화입니다.

요약

우메하의 영향 하에 현실과 타협하기 시작한 하세가와는 마츠오의 약점을 캐내서 소학교 사업의 주도권을 잡습니다. 한편, 카나코는 말썽꾸러기 남동생을 구하려고 마츠오에게 몸을 맡기기로 하지만, 다치바나는 마츠오를 돕기를 자청하며 그 대가로 카나코를 요구합니다. 절을 떠나기 거부하는 주지를 폭력을 동원해 쫓아내려고 한 하세가와는 다치바나의 꾸짖음으로 이상을 되찾지만, 다치바나는 정작 자신은 마츠오 다이키의 개가 되려는 것을 자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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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을 비워달라는 하세가와를 쿠로다 겐코는 노해서 쫓아버리지만, 하세가와는 더욱 결의를 굳힙니다. 한편, 카나코의 동생 마사오가 사고를 쳤다면서 돈을 달라고 하자 카나코는 정신 좀 차리라고 호소합니다. 그 얘기를 우연히 엿들었던 다치바나는 신경이 쓰여서 마사오를 미행하다가, 마사오가 마츠오 다이키의 집을 털려는 것을 말리려 하나 결국 마사오는 결행하다가 붙잡혀 흠씬 얻어맞고 갇힙니다.

동생의 일을 다치바나에게 전해듣고 어쩔 줄 모르는 카나코에게 우메하는 네가 마츠오 단나께 부탁하면 될지도 모른다며, 다만 그 부탁의 대가는 각오하라고 경고합니다. 다치바나는 카나코와 마사오를 도우려고 숙부 다치바나 류지에게 돈을 변통해줄 것을 부탁하고, 숙부는 이 기회에 시게하루를 후계자로 확정하려고 그의 딸 요코와 혼담 얘기를 꺼냅니다. 다치바나는 자신은 가정을 이룰 능력이 없으며 이미 정혼자가 있다는 말로 (“아, 그랬지. 그 아이 이름이.. 하나코?” “카나코입니다.”) 일단 거절합니다.

하세가와는 권력을 이용하는 법을 가르쳐준 우메하에게 부탁해 마츠오의 약점을 캐내고, 연회 자리에서 그 얘기를 우회적으로 꺼내서 마츠오를 꼼짝 못하게 한 후 학교 사업의 방향 공립 학교 쪽으로 정합니다. 마츠오는 술을 연거푸 마시며 다치바나의 방해 공작에도 카나코에게 꿋꿋이 추근대고, 우메하가 어르신 바람 좀 쐬시라는 핑계로 마츠오와 카나코를 내보내자 카나코는 마사오 얘기를 부탁합니다. 그 대가로 마츠오가 잠자리를 요구하자 나중에 집으로 찾아가기로 그녀는 약속합니다.

다음날, 다치바나는 마츠오를 찾아가 소학교 사업이 어르신 뜻대로 되고 있지 않으니 자금 역시 끊으시라고 충고하는 등, 지략을 내보이며 마츠오에게 자기 가치를 보여줍니다. 그런 그의 도움의 대가는 바로 카나코. 마츠오는 아쉬워하면서도 수락합니다. 마침 카나코가 찾아오기로 한 얘기를 하면서, 그때 다같이 만나도록 하지요.

한편, 하세가와는 이제 풀려난 마사오를 비롯해 어깨를 모아 쿠로다 겐코 등을 억지로 몰아내고 철거하려고 합니다. 한창 난리가 났을 때 다치바나가 들이닥쳐 겐코를 층계로 내던지려는 마사오를 막고, 아이들에게 이런 걸 가르치려고 학교를 세우냐며 하세가와를 꾸짖습니다. 다치바나의 말에서 계속 해오던 고민의 핵을 찾아낸 하세가와는 겐코에게 사과하고 다치바나에게 깊이 인사한 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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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재정적으로는 더 어렵더라도 절터 말고 다른 길을 찾아보려고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는 하세가와에게 우메하는 변화를 느낍니다. 그는 우메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줘서 고맙다고 하고, 우메하는 가르친 것을 잊어줘서 고맙다며 그가 자기 이상을 되찾은 것을 기뻐하면서도 자신은 그럴 수 없는 것을 아쉬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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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편

시대의 격류 속에서 그녀, 카나코의 결정은?

하세가와: (학교의 후원자들과 열띤 의논)

우메하: 결정을 내려야 할 때다. 게이샤의 길은 여자의 길과 달라!

다치바나: 미안하지만 나는 한 가정을 꾸릴 수 있을 만한 인간이 아니야.

카나코: (다치바나의 뺨을 찰싹!)

(카나코의 결의에 찬 표정에 클로즈업, 정지)

도쿄의 달 3화에 많은 성원 바랍니다!

감상

1. 그들의 이야기

이번은 초기에는 약간 집중도가 떨어지고 분위기가 침체한 기분도 들었지만, 중반을 넘어가면서 훨씬 초점이 잡히더군요. 다양한 감정과 권모술수가 이리저리 엮이면서 이야기가 깊이를 더해가는 게 참 흥미진진했습니다. 하세가와와 다치바나의 대립과 대조 구도, 광열님이 오셔서 본편 들어 처음으로 카나코에게 제대로 조명이 가면서 드러나는 그녀의 이야기 등.

우메하는 하세가와의 내적 갈등에 좋은 촉매가 되면서 마지막에 의미심장한 대화를 나누었고, 최종 보스로 급부상하고 있는 마츠오의 음흉한 모습도 재밌었어요. (왜 맨날 제가 치한 역을..;ㅁ;) 다치바나 류지는 오늘 처음 등장했는데, 잡아서 해보니 선량해 보이면서도 꽤나 노련하고 교활한 아저씨더군요. 이제 사촌동생 요코(주:언더월드 3기 쪽에도 제 제안으로 요코라는 인물이 있었죠. 제가 이전에 알던 일본 여자애 이름인데, 여기까지 얼결에 이름 등장..[..])와 결혼 얘기도 나왔으니 앞으로 카나코와 다치바나 얘기가 어떻게 될지 흥미진진합니다. 류지 아저씨 결코 녹록치 않을 것 같은데 말이죠.

이번 화 주인공이었던 하세가와는 결국 현실과 이상의 갈등에서 우메하와는 반대의 선택을 한 것 같네요. (역시 갈등 판정으로 정했지만..) 그 대조 때문에, 또 저하고 승한님이 호흡이 워낙 잘 맞기도 해서 마지막 대화는 더욱 여운이 남았습니다. 일견 가벼운 대화 뒤에 교차하는 수많은 감정이 말이죠. 남은 2화 동안 하세가와가 한 결정의 대가, 소학교 사업의 행방과 우메하와의 관계가 카나코와 다치바나의 이야기에 좋은 배경막이 될 것 같습니다.

우메하와 하세가와가 그랬듯 시즌 초중반에 비중이 높은 인물을 하면 남은 시즌 동안 그 여파를 음미할 여유가 생겨서 좋죠. 반면 시즌 끝에 비중이 높으면 그간 나온 걸 다 종합해서 시즌을 끝내는 화려한 맛이 있을 것 같고요. 그런 의미에서 더 전통적인 히어로와 히로인인 다치바나와 카나코에게 기대가 큽니다. +_+ 잔잔하고 일상적인 인물인 우메하와 하세가와에 비해 규모와 기복이 큰 마무리가 될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는 우메하와 하세가와의 ‘비전통적인’ 소박함도 아주 좋았지만요.)

2. 여기 PD가 누구야!

플레이 끝나고 승한님과 한 얘기인데, 고정 진행자가 없는 점이 플레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이번 플레이의 흥미 요소입니다. RPG의 전통적인 단위는 고정 진행자 하나와 여러 참가자이고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도 원래는 그렇게 되어 있는데, 도쿄의 달은 고정 PD (진행자) 없이 전원이 주인공을 만들고 PD는 그때그때 하고 싶은 사람, 혹은 현재 주인공이 안 나오거나 비중이 적은 참가자가 맡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고정 진행자가 없는 효과는 제가 보기에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주인공 일행 개념이 없다는 점. 전통적으로 참가자는 주인공밖에 참가 수단이 없으므로, 되도록 전원이 참가하려면 일행을 이루는 것이 가장 편리합니다. 반면 진행자를 그때그때 바꾼다든지 하는 식으로 참여 수단을 늘리면 주인공이 안 등장해도 모두 어떤 식으로든 참여할 수 있으므로 일행에서 벗어날 수 있고, 그만큼 다룰 수 있는 이야기의 범위도 일행 모험물보다 한결 넓어진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앞에서 링크한 일행을 다룬 글에서도 밝혔듯 일행 단위의 모험이 재미없다는 건 당연히 아닙니다. 그 속에서도 얼마든지 다양한 얘기를 할 수 있으니까요. 다만, 전원이 참가할 수 있게 물리적인 일행이 되고, 그 물리적 일행을 유지할 수 있게 주인공끼리 갈등보다는 단합을 중시하는 정신적 일행 또한 되어야 합니다. 반면 도쿄의 달은 주인공 넷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일도 좀처럼 없고, 조연과의 갈등 이상으로 주연끼리의 갈등이 많습니다. 즉, 이들은 주인공이되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일행 개념은 아닙니다.

두 번째 효과는 이야기의 초점이 외적 갈등에서 내적 갈등으로 넘어간다는 점. 주인공 외의 세계를 제어하는 진행자와 주인공만 제어하는 참가자라는 전통적인 구도에서는 주인공 일행 대 세계라는 구도가 되기 쉽습니다. 외부 세계는 주인공을 제어하는 참가자의 제어권이 아주 적은 영역이므로 외부 세계 (권력 구도, 인간관계 등)를 이용하기보다는 외부 세계에서 닥쳐오는 시련을 극복하는 문제해결 중심으로 진행하기가 편하지요. (가장 고전적으로는 던젼) 실제로 대개의 규칙이 그런 외부의 시련에 대항하는 모험에 가장 적합하게 되어 있고요. 물론 외부의 시련에 대결하는 플레이가 재미없다는 얘기는 전혀 아닙니다.

반면 위의 가장 전통적인 구도를 벗어나서 서술권을 분배하면 외부세계는 진행자 외의 참가자도 제어할수 있는 영역이 되고, 따라서 세계와 주인공 일행의 대립 구도는 훨씬 약해집니다. 결과적으로 외부 세계에서 닥치는 문제를 해결하고 시련을 극복하는 모험물 구조에서 벗어나 내적 갈등과 인간관계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 것도 고정 진행자가 없는 구조의 한 효과라고 봅니다. 물론 고민이나 비중 등 인물 중심의 극적 구조화에 초점을 맞춘 안방극장 대모험 규칙도 내적 갈등에 대한 초점을 유발하고요.

다만, 고정 진행자가 없어서라기보다는 주인공끼리 판정이 많아서 예산 관리에는 여전히 애를 먹고 있습니다. 예산이 하도 안 나가서 면모 발동할 때마다 예산 소모하도록 했더니 순식간에 예산이 간당간당. 뱀프님의 제안대로 주인공 간 갈등일 때만 면모 발동에 예산이 들도록 하는 방법을 새로 택했는데, 이건 또 어떤 식으로 작동할지 지켜봐야겠지만 지금까지는 적당해 보입니다.

3. 가위질의 즐거움

이번 화는 오다시티 (Audacity)에 좀 익숙해지면서 음성 파일 편집에 재미를 붙였습니다. 녹음을 하면 제 목소리가 제일 튀니까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줄여서 얘기하는 등 (그래도 튄다..;;) 녹음을 의식하기 시작했고요. 아마 플레이하신 분들은 녹음 파일 들어보시면 기억과 다른 부분이 좀 있을 겁니다. 잡담이 길어지는 부분을 자르고, 뒤에 있던 부분을 앞으로 가져오는 등 가공을 꽤 했거든요.

녹음은 글로 기록이 남지 않는 음성 플레이의 기록을 남긴다는 의미는 있지만 앞으로도 플레이 기록 공개는 음성 파일 자체보다는 글 쪽이 주가 될 듯 합니다. 용량 문제도 있고, 시간 문제도 있고 하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RPG 플레이는 궁극적으로 직접 하는 데 의미가 있지 내보이려고 만드는 건 아니니까 연출한 작품 같은 감상의 즐거움은 없기도 하고요.

그렇다 해도 마음에 드는 부분을 발췌해서 올리는 건 앞으로도 하고 싶습니다. 음성 매체에는 문자로 전달할 수 없는 생동감이 있으니까요. 도쿄의 달 플레이에는 장면 설정이나 판정의 좋은 예시가 되는 것도 있어서 어떤 대목이 대표성과 예시로서의 가치가 있는가 생각해서 고르고 있기도 하고요. 다른 규칙도 기회가 되는 대로 판정의 예시를 음성 파일로 올리고 싶군요.

4. 그래서…

생각해보니까 다치바나의 예고편 대목은 번번히 낚시가 되고 있는데 (최종 편집하면서 자꾸 장면이 짤리는 신인의 서러움? (…))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게 해보죠. 적어도 카나코에게 뺨맞는 다치바나만큼은 꼭 보고 싶군요. 즐거운 플레이 함께해주신 세 분께 감사감사. 모두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도쿄의 달 2화 – 봄날의 벚꽃

요약

하세가와에 대한 마음과 마츠오가 제공하는 현실적 안정 사이에 갈등하던 우메하는 마츠오의 부탁대로  소학교 사업을 마츠오가 좌지우지하는 동안 하세가와의 주의를 적당히 돌리지만, 끝내 의심을 떨칠 수 없었던 하세가와에게 마츠오와 자신의 속임수를 결국 고백합니다.

그러면서도 절대적인 힘의 차이 앞에 두 사람은 마츠오와 공개적으로 담판을 짓지는 못하지만 우메하는 겉모습은 유지하면서 술수와 속임수로 마츠오에게 대항할 뜻을 밝히고, 그녀를 통해 하세가와는 자신의 이상을 위해 처음으로 현실과 타협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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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찬바람이 가시지 않은 이른 봄, 우메하는 단나인 마츠오 다이키와 함께 꽃이 채 피지 않은 벚나무 늘어선 길을 걷습니다. 마츠오는 하세가와에게 ‘보모 노릇’을 하라면서 우메하가 하세가와의 주의를 돌려달라고 부탁합니다. 소학교 사업의 방향을 자신이 정하고 공도 자신이 차지할 수 있게 말이죠.

그날 저녁, 요정에서 (이름은 우리말로는 한 ‘매화정’쯤 될 것 같은데) 연회 준비를 바삐 하던 카나코는 우메하의 지시로 다치바나를 포함한 다른 손님을 내보내고, 다치바나는 너도 이 일에 협력하는 거냐면서 냉소하지만 결국 나갑니다.

연회에서 마츠오는 고위층 자제를 위한 학교를 세울 뜻을 다시 밝히고, 이 점이 석연치 않은 하세가와는 학교는 모든 아이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면서 마츠오의 뜻을 따져 묻지만, 우메하가 역시 젊은 분은 이상주의적이고 혈기가 넘친다는 식으로 말을 돌려서 흐지부지됩니다.

연회가 끝난 후 밖에서 인력거를 기다리던 하세가와는 우메하에게 마츠오의 태도와 소학교 사업의 향방에 대해 당혹과 불만을 토로합니다. 역시 마츠오의 계획에 동조하는 것이 마음이 불편한 우메하는 그런 그를 위로하면서도 은근히 유혹하다가 충동적으로 키스해 버리고, 하세가와는 완전히 빠져듭니다. (장면과 판정 7분 4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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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임시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가건물에서 수업을 파한 후 다치바나가 들어와 낮에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저녁에는 높은 분들에게 아첨하고, 밤에는 게이샤랑 놀다니 남은 하나 하기도 어려운 걸 훌륭하게 잘 해낸다고 비아냥거립니다.

우메하를 모욕하지 말라며 멱살을 잡아 벽에 밀어붙이는 하세가와에게 (진짜 TV 프로였으면 이 순간 수많은 야오이 팬픽 출범(…)) 다치바나는 정신 차리라며, 그 마츠오 다이키가 뒤를 봐주는 여자가 뭐하러 너에게 접근하겠느냐고 윽박지릅니다. 이에 하세가와는 그 말을 부정하면서도 우메하에 대해 일말의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장면 설정 논의에서 판정까지 해서 14분 4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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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간, 우메하는 붓글씨를 쓰며 카나코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다치바나에 대한 카나코의 마음도 전에 없이 호의적으로 대하며 그녀는 카나코에게 다치바나가 살아돌아온 지금 게이샤가 되려는 것을 후회하느냐고 묻지만, 카나코는 아무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그 다음날 가게로 찾아온 하세가와를 우메하는 벚꽃이 피었다며 호수로 끌고 나가고, 두 사람은 호숫가를 거닐며 점점 가까워집니다. 요정에서 학교 관련 모임이 있는 것을 아는 우메하는 하세가와가 참석하지 못하게 주의를 돌리려고 하지만, 정신을 다잡은 하세가와는 돌아가자고 합니다.

그러던 중 비가 내리자 우메하는 벚꽃이 비에 일찍 지겠다고 걱정하지만, 하세가와는 기억이 남아있는 한 괜찮다며 우메하가 젖지 않도록 웃옷을 덮어줍니다. 비를 맞으며 달리는 두 사람은 아이처럼 웃으면서 순수한 마음을 주고받습니다.

가게에 들어서자 하세가와를 따돌린 모임에서 마츠오가 완전히 귀족 학교로 사업을 몰아가는 논의가 들려오고, 우메하는 그동안 하세가와는 속고 있었다는 사실을 마침내 알립니다. 하세가와는 연회장에 들어가 마츠오와 결판을 지으려고 하지만 애송이가 날뛰지 말라는 식으로 망신을 당하고 맙니다.

하세가와는 우메하를 도움을 구하듯 보지만, 꼴이 그게 뭐냐며 당장 가서 정돈하고 오라는 마츠오 앞에서 우메하는 현실의 벽을 절감하고 하세가와를 데리고 나옵니다. 완벽한 게이샤의 모습을 갖추고 나온 우메하는 어쩔 줄 모르는 하세가와에게 마츠오는 너무 강하다며, 그가 당신을 이용한다면 당신도 그를 이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순진한 청년 하나 망치는 현장!)

다음날 마츠오와 우메하는 다시 같은 벚나무 늘어선 길을 걷습니다. 비에 져버린 벚꽃이 덧없다는 우메하에게 마츠오는 원래 그렇다며, 애를 맡겼더니 자네도 애가 되는 게 아닌가 걱정했는데 보모 노릇은 즐거웠냐고 떠봅니다. 우메하는 나리도 장난이 심하시다며 웃습니다.

한편, 하세가와는 소학교를 세우려는 터의 절의 주지이자 친구인 쿠로다 겐코를 절로 찾아가서는, 사정이 어려운 와중에도 반겨주는 쿠로다의 환대를 받으면서도 전에 없이 차가워진 표정으로 절을 떠나달라고 부탁합니다._M#]

예고편

그들의 삶에 덮쳐오는 탁류!

하세가와: (연회에 참석한 인사들에게) 이렇게 와주셔서 모두 감사드립니다.

다치바나: (반쯤 냉소, 반쯤 안도하는 표정) 그 멍청이도 머리를 쓸 줄은 아는 건가.

우메하: (하세가와를 보며 속을 내비치지 않는 미묘한 미소)

카나코: (화장한 자기 얼굴을 거울로 보며 작게) 시게하루…

(연회상에 다소곳이 앉은 카나코의 손을 마츠오가 잡으면서 화면 정지)

도쿄의 달 3화에 많은 성원 바랍니다!

감상

의외의 전개였지만 그래서 더 재밌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연회 장면에서 우메하가 마츠오에게 대항할 용기를 내는지는 판정에 맡겼고, 그래서 뱀프님도 정말로 판정에 걸고 싶은지 확인하셨었죠. 제가 스스로 정한다면 우메하가 순수하게 나가는 쪽을 택했겠지만, 어느 쪽이든 재밌겠다는 생각이어서 그냥 판정으로 했습니다. 둘 중 한쪽 결과가 재미없다면 판정에 걸지 않는 게 물론 더 좋은 선택이었을 테지만요.

판정 결과 우메하는 정공법으로 나가는 대신 하세가와까지 흙탕물로 끌고들어가기로 했고, 하세가와도 변하기 시작하는 등 여러모로 재미있는 전개가 되었습니다. 뱀프님 말씀마따나 이제는 “웰컴 투 시궁창!” 하세가와가 변해가는 게 가건물 장면에서도 드러난 그의 이상 때문이라는 점도 재미있고요. 이걸 성장이라고 해야 할까요, 변질이라고 해야 할까요. 둘 사이에 차이가 있기는 한 건지.

어떻게 보면 우메하는 자신이 좋아하는 하세가와에게도, 후원자인 마츠오에게도 솔직하지 못한 게 안습이지만, 그런 불완전하고 인간적인 면모가 또 공감이 가네요. 실제로도 그 자리에서 마츠오에게 곧이곧대로 대항했더라면 지금까지의 안정은 유지하기 어려웠을 테고, 그런 현실과 진심의 갈등 사이에서 자신의 선택을 한 거겠죠.

그래서 저는 우메하가 하세가와의 젖은 웃옷을 팔에 걸치고, 화장은 지워지고 옷은 흐트러진 채 손님들 앞에 나타난 마지막 연회 장면, 게이샤의 완벽한 꾸밈새라는 방벽 없이 많은 사람 앞에서 순간 취약했던 모습이 인상깊었어요. 그 꾸밈없는 모습의 무방비함을 견디지 못하고 익숙한 곳으로 도망쳤다고 탓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건 크건 작건 누구든 매일 하는 선택이기도 하니까요.

1기 후반의 주역이 될 다치바나와 카나코에 대해서도 좀 복선을 넣어둘 수 있었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카나코는 광열님이 안 계셔서 계속 존재감이 미미한 점은 좀 아쉽지만, 반면 광열님, 승한님, 뱀프님의 3인 3색 카나코를 볼 수 있었다는 점도 만만찮은 즐거움.

비교하자면 광열님의 카나코는 굉장히 열정적이고 다정다감한 아가씨, 승한님의 카나코는 약간 푼수끼 있으면서 솔직하고, 뱀프님의 카나코는 절제되고 조용한 외면 아래 폭발적인 감정을 품은 점이  재밌죠. 광열님 카나코는 예술가 기질이 기본적으로 예능인인 게이샤에 어울리고, 승한님의 카나코는 순진한 어린 아가씨답고, 뱀프님의 카나코는 보수적인 시골 처녀다워서 제각기 다른 의미로 어울립니다.

그리고 물론 하세가와와 다치바나의 가건물 장면이 아주 멋졌습니다! 다치바나의 예리한 통찰, 하세가와의 순수한 혈기, 그리고 동종혐오라고밖에 할 수 없는 상호 반감. 어떻게 보면 구제불능의 이상가라는 점에서 둘은 서로 닮았으니까요. 한쪽은 가망이 없어진 이상을 포기하느니 자신의 존재를 부정했고, 또 한쪽은 자신의 순수를 포기해가면서 이상을 이루려 하고.

어쩔 수 없는 사상적, 심정적 앙숙이면서도 상황이 달랐으면 최고의 친구가 될 수 있었을, 그리고 적으로서도 남이 못하는 따끔한 질책과 충고를 할 수 있는 두 사람이 (아.. 자꾸 채찍질이라고 하고 싶다) 극적 긴장을 끌어가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여성으로서, 그리고 사회적 약자로서 더 현실적이고 조심스러운 우메하와 카나코가 둘을 이끌고 조절해주면서 극에 뉘앙스와 깊이를 더하는 것도요.

멋진 플레이를 선사해주신 승한님과 뱀프님 두 분께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