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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마스터의 벼락치기 세션 준비 1: 계획

준비할 시간은 1개월이 넘게 있었는데 내가 그렇지 뭘 어느덧 제12회 일일플레이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읭? 난 준비가 안 됐는데?
제 사정 같은 건 생각도 없이 시간은 무자비하게 가버렸군요ㅠㅠ 테플도 못했는데 난 안 될 거야 아마
그래도 일주일이면 길다면 긴 시간이겠죠. 원래 마스터링 준비는 제 약점인 만큼 이번에는 체계적으로, 그리고 더는 미룰 수 없도록 공개적으로! 준비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하려는 시스템은 RPG 디자이너이자 이론가인 Robin D. Laws 씨가 준비중인 신작 Hillfolk입니다. 킥스타터 후원을 한 위시송씨를 통해 미리보기 PDF판이 있어서 한 번 해보고 싶어졌지요. 인물 간의 인간관계와 감정적 욕구를 중심으로 진행하는 점, 감정적 균형을 나타내는 극적 판정은 참가자 간의 흥정과 자원관리로 하고 그 외의 절차적 판정은 위험과 이득 사이를 저울질하는 방식으로 한 점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힐포크 이미지
준비는 다음과 같은 단계로 하기로 하였습니다.
1. 룰 읽어보기
2. 배경 설정
기본 설정: 한국의 철기를 대략의 모티프로 한 설정
– 주변지역 지도 그리기
– 풍속과 문화 설정: 힐포크 방식대로 참가자에게 던질 질문 목록 작성
3. 룰 요약본 완성
4. 인물 설정
– 인물 관계도
– 시트: 인물 능력치, 양극 설정
5. 보조도구 준비
– 플레이어 자리에 놓는 받침 준비 (PC 능력치, 칩 놓을 자리 등)
– 이름표
– 마스터 노트
– 관계도 표시용 인물카드와 화살표, 압정
6. 플레이테스트
– 시간 없으면 집에서 몇 가지 장면을 해보는 간이 플레이테스트로 대체
으으 귀찮아 엉엉엉 살려줘

RPG와 최적 경험: 진실성

여러분이 생각하는 삶의 진실은 무엇입니까?
인생관이라고도 하고 신념이라고도 하는 이 진실은 여러분이 실제 경험이나 책이나 생각 등 삶의 과정을 통해서 배워온 법칙 혹은 규칙성, 즉 ‘삶이란 이런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보답을 받는다거나, 선인은 결국 상을 받고 악인은 결국 벌을 받는다는 믿음일 수도 있습니다. 가족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거나,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거나 등등.
아니면 여러분의 세계관은 냉소적이고 어두운 편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라 운 있고 백 있는 사람의 편이라거나, 악인이 더 잘 된다거나, 가족이야말로 가장 못 믿을 사람들이라거나, 어차피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라거나. 자신이 생각하는 선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추구하는 것이 바로 악이거나 하는 식으로 여러분이 생각하는 삶의 진실이란 복잡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때그때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고, 건전발랄한 생각과 짜게 식은 냉소가 공존할 수도 있지요.
여러분이 믿는 생의 진실이 무엇이든 그것을 표현하는 이야기야말로 여러분에게 가장 재미있고 깊이있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흔히 주제라고 하고, 다르게 말하면 책을 덮었을 때, 극장에서 나왔을 때, 텔레비전을 껐을 때 ‘남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진실이 제대로 표현되어 있지 않으면 남는 게 없는 이야기가 되거나 “그래서 어쩌라고?” 소리가 나오기 쉽지요. 주제의식이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것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제는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드러날까요? 여러 가지 설명이 있지만, 가장 단순화하자면 ‘~~를 하면 ~~하는 결과가 나온다’는 인과관계의 반복을 통한 것이라는 설명이 저는 가장 와닿았습니다. 이것은 Robert McKee의 Story: Substance, Structure, Style and the Principles of Screenwriting에 나온 설명을 참조한 것으로서, 이 책은 국내에서는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황금가지에서 2002년 출간하였습니다.
가난한 젊은이가 성공하려고 이를 악물고 사업을 하는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그가 아무것도 없이 발로 뛰어 투자자를 감동시키고, 밤낮으로 공사장에서 지내면서 공장을 짓고, 경쟁사의 치사한 수법에 맞서 품질과 정직성으로 승부하는 끝에 성공하는 이야기라면 그 이야기는 ‘역경 앞에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주제의식을 표현하는 감동 성공신화일 것입니다. ‘노력 -> 성공’이라는 인과관계가 이야기의 각 단계 (투자자 확보, 공장 건설, 경쟁사 음모 분쇄)와 전체 이야기 (사업 성공)에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반면 위의 청년 실업가가 투자자를 모으려고 죽도록 노력했는데 경쟁사의 이간질로 투자를 못 받고, 결국 비싼 이자를 내고 돈을 빌려 공장을 지으려고 했는데 공장은 경쟁사에서 보낸 깡패들이 불태워버리고, 허름한 창고를 빌려 밤을 새어가며 제품을 조립하여 출고하였는데 특허 소송에 휘말려 결국 제품은 사장되고 경쟁사 사장의 매수를 받은 검찰이 사기죄로 이유 없이 기소하여 결국 빚만 떠안고 감옥에 가는 이야기라면 이것은 살기 싫어지는 이야기 ‘돈과 권력 앞에 개인의 노력이나 성실성은 실패와 파멸로 이어질 뿐이다’라는 주제의식을 표현하는 이야기이겠지요. 역시 이야기의 각 단계 (투자자 확보 실패, 공장 화재, 제품 사장, 억울한 옥살이)와 전체 이야기 (돈과 권력에 져서 파멸) 속에서 ‘권력의 방해 -> 실패’라는 인과관계가 지속적으로 나타납니다.
물론 이들 한쪽 극단이 아니라 그 사이를 오가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투자자 유치에는 실패했지만 공장은 성공적으로 지어 제품을 출시했고, 특허 소송에 져서 큰 손실을 입었지만 결국 경쟁사의 비리를 밝혀내고 어렵게라도 회사를 꾸려갈 수 있었다… 하는 식의 달콤씁쓸한, 양쪽 진실이 공존하는 혼합적인 주제의식이 될 수도 있지요. 인생은 다면적인 만큼 보통은 이러한 혼합적인 주제의식이 가장 현실적입니다.
이미 정해진 이야기인 소설이나 영화 등은 위와 같지만,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인 RPG는 이들 매체와는 주제의식 표현이 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소설이나 각본은 주제를 미리 정하고 이에 맞추어 이야기를 구성하고 수정할 수 있는 반면, RPG에서는 시나리오를 정한다 하더라도 실제 진행은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크게 달라지니까요. 이런 RPG의 성격상 주제를 설정한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한다면 어떻게 할까요?
우선 짚고 넘어가자면, RPG든 다른 이야기든 주제를 미리 설정하고 모든 인물과 진행을 주제에 맞추는 방식은 추천하기 어렵습니다. 자칫하면 선전 소설마냥 구호 모음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니까요. 그보다는 좋은 주제의식은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우선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실제 사람, RPG의 경우 참여자들이지요. 두 번째는 이야기 속의 가상적인 사람, 즉 허구 속의 인물들입니다. 여기서 시작하여 RPG에서 주제의식을 살리는 방법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논의는 나중에 이야기의 개별적 요소들 (배경세계, 인물, 구조 등)을 다루면서 더욱 확장해갈 것입니다.
일단 처음 기획하고 설정하는 단계에서부터 왜 이러한 캠페인을 원하는지, 왜 이런 성격의 배경세계를 하고 싶은지 생각해보는 것이 주제의식 형성에 큰 도움이 됩니다. 벌써 주제를 정할 필요는 없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왜 좋아하는지만 생각하면 충분합니다. 예를 들어 이전에 했던 중편 캠페인 도쿄의 달 제작시에는 ‘변혁기 인간의 모습’을 다루자는 합의 하에 이에 맞추어 배경세계를 정했습니다. 변화하는 시대 속에 인간은 어떻게 대응하는가 하는 질문은 주제의식이라기보다는 소재이지만, 나중에 주제의식의 중요한 실마리가 되었지요.
인물을 제작할 때도 마찬가지로 ‘왜’라는 질문이 가장 중요합니다. 적의 희생 때문에 살아남은 후 개과천선한 인물을 하고 싶다면, 왜 그럴까요? 어떤 이야기 혹은 방향성을 바라는 것일까요? (현실 속 참여자의 동기) 그러한 인물의 동기, 그가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허구 속 인물의 동기) 참여자가 원하는 것과 인물이 원하는 것을 파악해야 좋은 이야기와 진실한 주제의식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위에서 설명했듯 주제의식이란 결국 인과관계인데, 이러한 인과관계가 나타나려면 사건이 일어나야 하고 사건이 일어나는 동력원은 욕망이니까요. 위의 청년 실업가의 예에서는 그가 사업을 성공시키려고 하기에 투자자를 모으고 공장을 지으려고 하는 것이고, 그러한 욕망에 다른 인물들이 반응하면서 감동 성공 스토리도, 산업 느와르물도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기회과 인물 제작 단계에서는 크고작은 의견차이가 생기는 것이 보통인데, 이러한 차이는 아주 중요합니다. 의견 차이야말로 진실성과 주제의식을 둘러싼 차이점의 실마리인 까닭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참가자가 하고 싶어하는 인물은 자신이 뭔가 동기가 있어서 움직인다기보다는 주변 인물이 괴롭히고, 좋아하고, 구출하는 사건의 연속인 공주형 내지 소녀형 인물일 수 있습니다. (반드시 참가자나 인물이 여자는 아닙니다.) 즉 행동하기보다는 사랑이나 미움을 받는 대상으로서의 인물을 원할 수 있지요. 이럴 경우 그 플레이어가 생각하는 진실성이란 ‘사랑받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거나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행동하기보다는 착하게 가만히 있는 것이 좋은 일이다’ 같은 것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의견 차이가 드러날 때에는 위 문단에서 다루었듯 어떤 이야기를 원하는가 대화를 충분히 하고 차이점을 조정해 보거나, 정 간극을 좁히기 어려우면 같이 플레이하지 않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진행하기 시작하면 이전 단계에서 암시되었던 주제의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진행자가 제시하는 상황, 참가자가 보이는 반응, 각 참여자가 원하는 이야기와 그 합치 혹은 불합치 속에서 각자의 욕망의 방향을 엿볼 수 있지요. 예를 들어 진행자가 권력의 비리를 반복적으로 등장시킨다면 진행자는 아마도 권력이 인간을 망친다는 주제의식에 관심이 깊을 것입니다. 또 참가자 A는 대개의 상황에 폭력적으로 반응하고 또 이로 인한 승리를 원한다면 그 참가자는 정의는 (혹은 나는) 승리한다는 진실에 끌리는 것이겠지요. 또 다른 참가자 B는 주변 인물들을 끌어들이고 그들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랄 수 있습니다. 이런 참가자는 인생은 혼자 살아갈 수 없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고 믿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한 참여자가 믿는 진실은 여러 가지일 수 있고, 서로 모순적인 진실을 믿을 수도 있으며,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주제의식, 혹은 각자가 생각하는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대화가 아주 중요해집니다. 참여자들이 해당 세션에서 무엇을 원했으며 어떤 점이 충족되었고 어떤 점이 불만족스러웠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얘기하면서 각자가 원하는 이야기와 주제의식을 끌어내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참가자 A는 전투로 상황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는데 진행자가 너무 강한 적을 내보낸 것이 불만일 수 있습니다. 진행자는 이기기 어려운 권력의 불의를 보여주고 싶었기에 강한 적을 내보낸 것일 수 있지요. 이러한 욕망이 드러나면 이들의 각자 다른 진실을 어떻게 조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 경우 폭력과 권력은 결국 같은 현상이니까 참가자 A의 인물이 폭력을 휘두르면서 점점 강력한 권력이 되어가고, 그로 인해 새로운 억압자가 되는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겠지요. 혹은 참가자 A와 참가자 B의 욕구를 조화하여 혼자서는 이기기 어려운 상대이지만 원군을 부르면 이길 수 있는 적을 내보내서 정의의 승리와 사회관계의 중요성을 둘다 강조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RPG에서의 주제의식은 모든 참여자가 생각하는 진실이 서로 대립하고 또 조화를 이루는 긴장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며, 특히 긴 이야기일 수록 각자의 진실을 조화시키는 소통이 중요해집니다.
이상과 같이 주제의식이 무엇이며 RPG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어 보았습니다. 조금 덧붙이자면 주제의식 외에도 이야기의 진실성에는 개연성이나 진정성 같은 요소도 들어갑니다. 이야기의 진행과 인물의 행동과 감정이 얼마나 진실한가 하는 문제이지요. 이들 역시 참여자끼리 의견이 갈릴 수 있는 부분이므로 의견 차이가 생기면 이때 왜 이런 사건이나 반응이 나왔는가, 우리가 원하는 이야기, 우리가 생각하는 진실이란 무엇인가 하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이렇듯 좋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 진실성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음 글에서부터는 RPG 캠페인 기획과 진행의 각 단계를 다루고자 합니다. 먼저 가장 기본인 배경부터 시작하여 좋은 이야기를 만들기 위하여 캠페인 배경세계를 설정하고 선택하는 문제를 다루어 보겠습니다.

<RPG와 최적 경험 시리즈>
1. 최적 경험을 위하여
(1) 최적 경험과 플로우
(2) 플로우의 조건
(3) RPG와 플로우
2. RPG인의 능력 
(1) 게임적 능력
(2) 서사적 능력 
A.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B. 진실성
C. 배경세계
D. 인물성
E. 이야기 구조
F. 갈등과 의미있는 선택
G. RPG 특유의 서사성
(3) 사회적 능력
(4) 팀의 능력
3. 도전을 수준에 맞추어가기
(1) 게임적 도전
(2) 서사적 도전
(3) 사회적 도전
4. RPG의 목적성과 피드백
(1) 팀 단위에서의 목적 설정
(2) 팀원 간 목적의 일치와 긴장
(3) 등장인물 간 목적의 일치와 긴장
(4) 피드백으로 목적 합치성 평가하기
5. 집중과 몰입
(1) 집중을 위한 조건
(2) 집중을 위한 마음가짐
(3) 집중을 위한 환경
(4) 결어

RPG와 최적 경험: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지난번 글에서는 백만 년 전에 RPG의 게임적 측면을 다루었습니다. 그 글에서 다루었듯 RPG에는 게임으로서의 측면이 있으며, 이는 역할극과 구분되는 RPG의 특성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규칙의 지향점을 파악하고, 숙독과 연습을 통하여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어쩌면 당연한 얘기를 했었죠.

게임성 외에 또 다른 특징이라면 RPG라는 놀이는 반드시 서사적인 틀 속에서 진행이 된다는 것입니다. 보드게임이나 퍼즐게임 등은 서사 없는 놀이가 가능하지만, RPG는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만들려는 목적으로 플레이를 하든, 아니면 이야기는 괴물을 잡고 보물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부산물일 뿐이든 뭔가 이야기가 있습니다. 결국 RPG는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놀이인 셈입니다.

서사성이 RPG의 또 다른 특징인 만큼 이야기가 훌륭하면 그만큼 RPG의 만족감도 높아지고, 좋은 이야기를 목표로 노력하면 그만큼 최적 경험에 가까워질 것입니다. 처음에 최적 경험, 혹은 플로우를 다루면서 말했듯 플로우란 정해진 목표를 향해 노력을 하면서 집중감과 몰입감, 그리고 행복감이 드는 경험입니다. 따라서 달성하려는 목표가 무엇인지 모르고서는 플로우가 있을 수 없지요. 그래서 이번 편에서는 먼저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간단하게 살펴보고 다음 글부터 각 요소를 달성하는 방법을 논하겠습니다.

주의할 것은 RPG가 이야기를 만드는 놀이라고 해서 반드시 이야기를 만드는 데 중점을 둘 필요는 없으며, 또 그래야만 좋은 놀이인 것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RPG의 이야기란 그저 신나는 놀이를 하면서 (게임성), 혹은 아는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리면서 (사회성) 부차적으로 생기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를 얼마나 강조할지, 그리고 얼마나 시간과 노력을 쏟을지는 각 팀이 결정할 몫입니다. 다만 이야기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기로 한다면 더욱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은 분명 있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좋은 이야기란 워낙에 다양하므로 외적으로 보이는 특징, 예를 들어 장르나 배경을 가리켜 이것이 있으면 좋은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 좋은 이야기라고 해서 엘프와 마왕이 나오면 좋은 이야기인 것은 아니며, 영화 ‘가타카’가 좋은 이야기라고 해서 미래 디스토피아가 다 훌륭한 작품인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좋은 이야기라면 공유하는 몇 가지 특징이 있기는 합니다. 겉가죽은 연애물이든 추리물이든 동화이든, 모든 좋은 이야기의 속살에는 다음과 같은 본질이 있습니다. 특별히 새로운 내용은 아니지만, 제가 그동안 보고 생각한 것을 나름 소화하고 정리한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진실성. 좋은 이야기란 무엇보다 진실한 허구, 즉 진실한 거짓말입니다. 비록 하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지만 그 속에 있는 인물과 사건 등이 삶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진실을 보여주고 있지요. 이것이 좋은 이야기의 본질 중 으뜸입니다. 인물을 어떻게 하고 사건을 어떻게 할까 하는 고민도 결국에는 ‘진실한가?’ 하는 단일한 질문에 답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자연스럽고 진정성이 있는가, 삶에 대한 어떤 진실을 보여주는가, 이것이 좋은 이야기의 최종적이며 또한 유일한 시금석입니다. 나머지는 좋은 이야기는 진실해야 한다는 이 원칙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뿐입니다.

두 번째, 좋은 이야기에는 풍부한 배경세계가 있습니다. SF나 가상역사, 판타지처럼 우리가 사는 세계와는 전혀 다르거나 역사물처럼 우리 세계의 과거를 다루는 이야기도 배경세계가 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허구도 독자적인 배경과 문화가 있습니다. 21세기 한국의 고등학교나 중산층 가정, 혹은 21세기 한국 사회 전체도 이야기가 벌어지는 세계이며, 각자 법칙과 갈등, 문화가 있는 소우주를 이룹니다.

한편 배경세계가 풍부하다는 것은 설정자료가 많다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에 의미있는 갈등의 실마리가 있으며, 인물 및 인물 사이의 관계를 통해 그 세계 특유의 문화와 규범이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배경 때문에 생기는 차이점과 공통점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이야기를 다양한 각도로 볼 수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역시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됩니다. 삶의 진실이 햇빛이라면 배경과 그 문화는 그 빛을 다양한 색채로 변주하는 프리즘입니다.

세 번째, 좋은 이야기에는 좋은 인물성, 특히 좋은 주인공이 있습니다. 좋은 인물이란 결국 이야기에 드러나는 삶의 진실을 사람을 통해 표현하여 흥미와 공감을 끌어내는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주인공, RPG에서는 PC는 실현할 수 있는 욕구를 위해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변하고 성장해가는 인물이지요. 이러한 인물과 그들 간의 관계는 좋은 이야기의 원동력이 되며, 깊은 감정적 경험을 이끌어냅니다.

네 번째, 좋은 이야기에는 이야기의 경험을 고조시키는 이야기 구조가 있습니다. 모든 의미있는 이야기의 핵심에는 일상 – 일상에서의 일탈 – 새로운 평형 달성이라는 구조가 있습니다. (이 점에서는 조셉 캠벨의 영웅의 여정을 따릅니다.) 그것을 기승전결, 발단-전개-절정-결말 하는 식으로 나누어볼 수도 있지만, 더 본질적인 것은 주인공들이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위험한 미지의 영역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그렇게 성장하고 변함으로써 한층 층위가 높은 새로운 안정성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구하러 모험을 떠나는 얘기이든, 학교를 옮기는 전학생 얘기이든,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고 의심하기 시작하는 이야기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모든 좋은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각자의 삶이라는 전투를 치르며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삶의 지혜, 그 진실의 일면이라는 전리품을 탈취하려고 몸부림칩니다. 진실을 위한 싸움에서 크게 승리할 수록 결말이 행복한 이야기이겠고, 의미 있는 배움을 얻지 못하거나 이를 위한 대가가 너무 크다면 비극적인 이야기일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삶을 더 깊이 깨닫고, 더욱 의미있는 존재를 누리려는 투쟁은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의 구조는 이를 반영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 좋은 이야기에는 의미있는 갈등과 선택이 있습니다. 내적 갈등이든 외적 갈등이든 인물은 의미가 있는 갈등에 마주해 뭔가 선택을 해야 하며, 이 선택에도 크든 작든 의미가 따라야 합니다. 갈등과 선택은 위의 모든 요소를 통합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배경세계와 인물은 다양한 갈등을 만들어내며, 갈등의 발생과 해결은 배경과 인물,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삶의 진실에 비추어 진정성이 있고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또한 갈등상황에서 인물이 하는 선택에 따라 인물성은 더욱 깊이가 생기고 변화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상황과 선택은 미지의 상황에서 새로운 의미를, 새로운 평형을 만들어가려는 인물의 투쟁을 반영하며 이를 통해 삶의 어떤 진실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여섯 번째, RPG의 좋은 이야기는 소설이나 연극과는 다른 RPG만의 특징이 있습니다. 이야기가 어떻게 되는지 정하는 규칙이 있다는 점, 그리고 함께 즉석에서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그렇지요. 따라서 RPG의 다른 두 요소인 게임성과 사회성과의 관계, 그리고 즉흥성과 계획성의 관계 등을 살펴보면서 RPG인의 서사적 능력 논의를 마칠 계획입니다.

이렇게 좋은 이야기의 요소를 논하는 여섯 편의 글을 열어봅니다. 아는 것이 짧아 쓰기까지 많은 고민과 변경을 거친 끝에 결국 생각보다 길어지게 되었군요. 어려운 얘기인 만큼 많이 부족할 텐데 격려와 질책, 지적과 질문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특히 이 서론에서 잡고 있는 구성을 변경하려면 나머지 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하는 것이 좋으니까 의구심이나 반론, 보충할 점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적극적으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RPG와 최적 경험 시리즈>

1. 최적 경험을 위하여

(1) 최적 경험과 플로우

(2) 플로우의 조건

(3) RPG와 플로우

2. RPG인의 능력

(1) 게임적 능력

(2) 서사적 능력

A.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B. 진실성

C. 배경세계

D. 인물성

E. 이야기 구조

F. 갈등과 의미있는 선택<

G. RPG 특유의 서사성

(3) 사회적 능력

(4) 팀의 능력

3. 도전을 수준에 맞추어가기

(1) 게임적 도전

(2) 서사적 도전

(3) 사회적 도전

4. RPG의 목적성과 피드백

(1) 팀 단위에서의 목적 설정

(2) 팀원 간 목적의 일치와 긴장

(3) 등장인물 간 목적의 일치와 긴장

(4) 피드백으로 목적 합치성 평가하기

5. 집중과 몰입

(1) 집중을 위한 조건

(2) 집중을 위한 마음가짐

(3) 집중을 위한 환경

(4) 결어

RPG와 운전: 서술과 협의, 문제 플레이에 대한 생각

1. RPG와 운전

책[footnote]Mindsight: The New Science and Personal Transformation (by Daniel J. Siegel, M.D.)[/footnote]을 보다가 재미있는 비유가 나와서 RPG에도 적용해 보았습니다. 책에서 저자는 정신을 스스로 제어한다는 의미를 논하면서 운전을 하는 비유를 드는데, 운전대를 잡고 눈을 감고 있으면 차를 제어한다고 할 수 없고, 차 뒷좌석에 탄 승객은 운전을 감시는 할 수 있고 운전자에게 제안도 할 수 있지만 운전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RPG에서 서술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눈감은 운전자는 일단 차치하고 (ㄷㄷ) 서술과 협의의 관계는 마치 운전대를 잡은 운전자와 뒷좌석에 앉은 승객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참가자는 자신의 주인공 (PC)의 행동을 서술하는 서술권이 있고, 진행자는 조연 (NPC)과 외부 세계에 대해 서술권이 있습니다. 이때 참가자는 진행자에게 조연이 내 주인공을 죽이려고 했으면 좋겠다, 이쯤에서 비가 왔으면 좋겠다 하고 제안은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행자도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고요. 그런 식으로 활발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사실 바람직한 플레이기도 합니다. 승객이 운전자가 너무 빨리 가는 것 같아 불안하다거나, 지름길로 가자고 운전자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죠.
그러나 뒷좌석의 승객이 운전자일 수 없듯, 서술권자가 아닌 사람은 서술을 할 수 없습니다. 자기 서술 영역이 아닌 영역에 대해서는 제안을 하고 대화를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참가자는 진행자에게 조연이나 외부세계에 대해 제안은 할 수 있지만, 직접 조연이나 외부세계 요소를 빼앗아 서술을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진행자가 조연이나 자연현상 등을 참가자에게 넘기는 경우는 서술권이 넘어가는 것이므로 다른 얘기입니다.)
마찬가지로 진행자나 다른 참가자도 참가자에게 주인공이 이런 말이나 행동을 하면 어떨까 얼마든지 제안은 할 수 있고 또 참가자도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지만, 진행자나 다른 참가자가 주인공에게 어떤 말이나 행동을 시키는 것은 안 될 일입니다. 뒷좌석 승객이 운전대를 빼앗으면 안 되는 것처럼요. 물론 운전을 교대하기로 하고 승객과 자리를 바꿔타는 것과는 다른 얘기이지만요.
2. 운전석과 뒷좌석을 구분하는 세 가지 이유
어째서 로키는 이런 독재적인 발언을 하는 것일까요? 내 서술권은 내꺼고 니 서술권은 니꺼니까 침범하지 말라는 이런 반공동체적, 반민주적 발상이 어딨습니까! 혹시 진행자는 신에게 권한을 받는다는 구닥다리 진행권신수설 신봉자, 혹은 시대에 뒤처진 권위주의자인 것일까요?
뭐 제가 독재파쇼라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서술권 분리를 주장하는 것은 그 외에도 (?) 크게 3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크게 구조적, 사회적, 감정적 이유입니다.
첫 번째, 서술권을 구분하는 구조적 이유는 우선 RPG는 어떤 식으로든 서술권을 구분해야 한다는 데서 시작합니다. 한 사람에게 모든 서술권이 있으면 그건 혼자 쓰는 소설이고, 아무런 서술권 구분이 없으면 서로 눈치만 보다가 놀이가 안 되거나 아니면 놀이 속 사건에 대해 서로 의견이 안 맞아 말다툼을 벌이기 쉽습니다. 그러한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이 너는 저 영역에 대해 결정을 내리고, 나는 이 영역에 대해 결정권이 있다는 서술권 구분이지요.(주:또 다른 수단이라면  서술권 영역 사이를 매개하는 규칙과 협의입니다만, 서술권 글에서 그 역할을 적었던 만큼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서술권을 어떻게 분배하든 그 분배에는 일정한 효과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참가자가 주인공을 맡고 진행자가 그 나머지를 맡는 전통적인 구조는 주인공 일행 대 세계라는 대립적인 구도를 이루기 쉽습니다. 서술권을 전혀 다르게 분배하는 놀이, 예를 들어 얼음깨기 (Breaking the Ice)는 주인공과 외부 세계를 같은 사람이 서술하는 만큼 한결 주인공과 외부 세계가 협력하기가 한결 쉬워집니다. 따라서 어떤 서술권 분배와 그에 따르는 효과를 선택했다면 그 분배를 어기는 것은 그 효과 또한 희석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두 번째, 서술권을 구분하는 사회적 이유는 서술권 구분이 뚜렷하지 않으면 서로 눈치를 보면서 진행이 늘어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진행자의 전통적 영역을 참가자 사이에 공동 분배하면 (‘꼬마 미우 구하기 1부’ 사진에서부터 5번째 문단 참조) 책임이 명확하지 않으므로 논의와 의사소통에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물론 논의가 활발한 것은 더없이 좋지만, 논의 없이는 장면을 시작조차 할 수 없다면 좀 피곤하지요. 마치 운전자 없이 ‘승객이 투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차’를 탄 것처럼 정신없는 경험이 되기 쉽습니다.
세 번째 감정적 이유는 서술권을 구분하고 그 구분을 지키지 않으면 감정이 상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역할극을 다룬 글에서 역할극에 판정이 없어서 생기는 부작용을 적었었는데, 서술권 구분이 없거나 그 구분을 지키지 않는 것도 비슷한 부작용이 있습니다. 서술권 구분이 없다면 이 요소 (인물, 자연물 등)의 움직임을 내가 서술해도 괜찮은지 바로 확신할 수 없고, 그 요소를 움직였다가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남이 내가 마음에 안 드는 서술을 해서 감정이 상할 수도 있지요. 서술권 구분은 이러한 눈치보이는 상황에 대해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해서 인간관계와 놀이 속 서술 사이에 어느 정도 방벽을 만들어줍니다.
서술권을 일단 구분한 상태에서 지키지 않았을 때 생기는 감정적 결과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진행자가 주인공에 대해 조언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심한 간섭을 하거나 아예 행동을 강제한다면 해당 참가자는 자기 서술권뿐 아니라 인격을 부정당한 기분이 들 것이며, 서술권 구분이 그런 식으로 무시당하면 위에 얘기한 구조적, 사회적 문제도 발생할 것입니다.
3. 뒷좌석 운전의 실제 모습
물론 실제 RPG에서는 ‘나는 너의 서술권을 부정하고 이 이야기 요소를 내가 제어하겠어!’ 라고 선언하고 서술권을 잡는 일은 없습니다. (혹시 있으려나요? 있으면 제보좀…) 그보다는 서술권 개념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침해하는 일이 많지요. RPG를 할 때 뒷좌석에서 운전대를 잡으려고 씨름하는 행동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우선, 강제 진행. 거의 진행자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는 서술권 침해입니다. 고전적인 RPG 서술권 분배에서 진행자는 참가자에 비해 서술 범위가 상당히 광범위합니다. 그래서 세계와 조연을 움직여서, 혹은 장면 전환이나 편집을 해서 원하는 진행에 반하는 참가자 서술을 막아버리는 것을 강제 진행, 혹은 칙칙폭폭 진행이나 기찻길 진행 (Railroading)이라고도 합니다. 주인공에 대한 서술권을 무시당했으므로 참가자는 기분이 나쁠 뿐만 아니라 (감정적 부작용), 세계와 주인공에 대한 서술권을 분리하는 이점을 취할 수 없어지는 (구조적 효과) 악효과가 있습니다. 의미있는 모든 서술권이 한 사람에게 모이므로 소설에 가까워지고, RPG를 하는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참가자와 협의를 해서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넘기는 것은 전혀 다른 상황이며, 진정한 협의만 되어 있다면 강제가 아니므로 서술권 침해가 아닙니다. 따라서 진행자가 특별히 바라는 전개가 있다면 참가자와 의논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특정 전개에 애착이 강하다면 그냥 소설을 쓰는 게 낫습니다.
또한, 강제 진행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서술 무시를 통해 상대의 서술권을 없는 것처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진행자와 참가자 모두 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진행자가 하는 편이 효과가 강력합니다. 주인공이나 조연의 행동이나 대사를 무시해서 놀이 속 효과를 부정하는 것인데, 강제 진행만큼 전면적이지는 않지만 부작용은 강제 진행과 비슷합니다. 기분이 나쁠 뿐 아니라 놀이 속 현실이 무엇인지 혼란을 야기하므로 (선전포고를 한 거야, 안한 거야? 비가 왔어 안왔어?) 이런 일이 잦으면 놀이 자체를 망가뜨리기 쉽습니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인물이’ 다른 인물을 무시하는 것과는 다른 얘기입니다. 인물끼리 대립하는 거야 얼마든지 극적으로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 인물끼리 갈등하는 것은 재미있지만, 참여자끼리 갈등하는 것은 지루하고 혼란스럽지요. 마음에 안 드는 건 무시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대화로 푸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서술을 무시하게 되는 일도 있습니다. 한꺼번에 서술이 쏟아진다거나 (특히 주인공이 다수 등장하는 장면이 이러기 쉽습니다), 다른 세션이나 이전 장면 등 전에 나온 정보를 잊어버렸다거나 할 때 벌어지는 일이지요. 의도적 서술 무시보다는 훨씬 낫지만 이것도 잦아지면 헷갈리므로 선언을 차례대로 한다거나 리플레이를 정리한다거나 해서 구조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좋습니다.
은근슬쩍 서술을 해서 서술권을 침해하는 것은 보통 참가자가 합니다. 이건 논의와 구분하기가 조금 애매할 수도 있지만, 선을 확실히 넘었을 때는 보통 알 수 있죠. 예를 들어 조연이 자신의 주인공 미모를 보고 넋을 잃는다는 선언을 참가자가 한다거나, 중요한 조연과 아는 사이라고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기존 협의 없이 느닷없이 새로운 사실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서술이 사소한 것일 때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사소한 사항이라 해도 서술권 범위 외에 있는 것은 먼저 서술을 해버리기보다는 간단하게나마 제안이나 논의를 하는 것이 이러한 기습 서술을 피하는 방법입니다.
얘네들이 주인공을 보고 넋을 잃으면 어떻겠느냐, 이 조연하고 아는 사이이면 어떻겠느냐 하고 의논을 하는 것은 물론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규칙을 통해 이전받은 서술권을 행사하는 상황 역시 문제가 없지요. 서술권이 없는 요소를 갑자기 서술을 해버려서 서술권자를 당황시킬 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전 논의 없이 서술권자 (보통 진행자)가 전혀 준비하지 않은 방향으로 상황을 끌고가려고 한다거나, 판정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판정을 건너뛰는 것은 서술권 구분을 교란하고 서술권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부작용이 따릅니다. 서술권자는 이 서술을 그대로 따를 것인가 다른 참여자에게 싫은 소리를 할 것인가 하는 곤란한 선택에 처하게 되어 더욱 감정이 상하기 쉽지요.
이러한 기습적 서술권 침해는 특히 정당한 논의 과정이나 판정을 우회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합니다. 협의를 했는데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이런 행동을 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참여자의 개인적 문제일 수도 있고 (RPG를 곤란하게 하는 행동유형 중 ‘예의바른 암살자’ 참조) 때로는 팀내 의사소통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서술권자에 대해 감정적으로 벌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서술권을 장악하려는 행동도 있는데, 이것은 정당한 비판을 다소 격하게 하는 행동과 꼭 구분하기 쉽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논의하는 형태를 취한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가장 문제가 덜하고, 서술권 침해라기보다는 대인관계와 의사소통 문제로 구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서술권자를 위축시켜 서술권 행사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면에서 문제 행동이기는 하다고 봅니다.
감정적으로 벌을 주는 행동은 보통 비판에서 시작합니다. 여기까지는 문제될 것이 없지요. 플레이를 향상시키려는 비판은 정당할 뿐만 아니라 필요하니까요. 정당한 비판에서 감정적 괴롭힘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요소는 크게 반복성, 적대적 감정 표출, 플레이 도중에 길어지는 잡담, 인신공격성 발언, 구체적 해결책 부재가 있습니다. 즉, 특정 서술권자에게 집중적으로 부정적인 의견을 표출하며, 그 비판에 사용하는 단어나 말투가 감정적이며, 플레이 중 당장 필요한 것을 교정하는 최소한의 의사표시를 하거나 플레이 이후 지적을 하는 게 아니라 플레이 도중에 길게 말을 해서 흐름을 끊어놓으며, 특정 서술이 아니라 서술권자 자신의 결함에 초점을 맞추며, 무엇보다 상대가 어떤 행동을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지 제시하지 않아서 고치기조차 어려우면 문제가 됩니다.
이러한 감정적 괴롭힘은 처음 시작은 서술권 행사에 관한 의견 차이였을지 몰라도 (왜 저런 대사나 선언, 기타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감정이 쌓이고 바람직한 해소를 하지 못하면서 쌓인 적대감을 부적절하게 표출하는 대인관계상 문제가 되어가기 쉽습니다. 그냥 애당초 성격과 취향이 맞지 않는 것이 원인일 수도 있고요. 이럴 때에는 진짜 맺힌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서 대화로 해결하거나, 정 해결할 수 없고 서로 맞지 않으면 플레이를 같이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4. 운전은 운전자가
운전석과 뒷좌석이 다르듯이 서술권자의 역할과 지켜보고 조언을 하는 역할은 분명 다릅니다. 그 구분을 하는 것은 서술권자가 다른 사람보다 우월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렇게 구분을 하는 편이 다같이 재미있어서 그렇습니다. 그 점을 잊어버리고 뒷좌석에서, 혹은 조수대에서 운전대를 잡으려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대신 서술과 협의의 차이점을 인식하고, 활발하게 대화를 하면서 서술을 분배하는 의미를 되도록 살리는 것이 안전운전, 아니 건전 RPG의 시작이 아닐까요?

서울 캠페인 2화: 실종

10월 3일 플레이입니다. 밀린 로그 따라잡는 중!

요약
화재가 난 삼정동 정림 본사 앞으로 나온 일행은  방송국에서 나온 서현 일행과 마주칩니다. 서지영 기자가 연락이 되지 않아 곤란해하는 그들을 보고, 서현과 인연이 있었던 태영은 도와주겠다고 제안합니다. 정림에서는 본부 앞 도로까지 소유권을 내세워 촬영을 금지하고, 희숙은 정림이 주변 상인들에게도 입막음을 한 것을 확인합니다. 호연은 휴대폰 추적 자료를 이용해 서기자가 정림 본부 뒤편으로 접근한 것을 확인하고, 호연과 희숙이 모니터링하는 동안 서현과 태영은 서기자가 갔던 길을 쫓아 정림 본부 뒤편에 접근합니다. 그곳에서 서현이 떨어진 핸드폰을 발견한 순간 두 사람은 습격을 당합니다. 길 건너에서 이 모습을 CCTV 모니터로 지켜보던 희숙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는데…
영동대로 모습

대충 이런 동네

감상
가끔 보면 마치 생니 빼듯 괴로운 세션이 있지요. 저에게는 이 세션이 그랬습니다. 다른 분들도 지적했듯, 일행이라지만 일행으로서 행동할 만한 극적 동력원이 부족해서 영~ 맥이 빠지고 억지로 끌고가게 되더라고요. 일행으로 행동하기 어려운 것이 현대 도시물의 특징이기도 하고, 역시 뭔가 개연성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엮어보자 하고 적극적인 제안을 하시는 분도 두어 분 정도이고 말이죠. 고정 일행식 진행을 탈피해서 필요에 따라 인물을 바꿔가면서 하는 캐릭터 풀 방식으로 바꾸지 않으면 계속 하기가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아니면 억지로라도 팀을 짜는 건데, 그건 좀 인위적인 것 같고요. 진행의 무리에 가려서 그냥 상대적으로 문제가 안 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룰적인 부분은 무난했던 것 같습니다.

서울 캠페인 1화: 소집

요약
오관대왕과 계약한 암살자 유태영, 가족을 죽인 괴물을 찾아헤매는 진수환, 기억을 잃어버린 해커 연호연 3명은 변호사 윤상진의 호출을 받아 그의 사무실로 갑니다. 남편의 죽음의 진실을 쫓고 있는 법의관 곽희숙은 부검하는 변사체에해 미심쩍은 것이 생겨 윤변호사에게 전화했다가 스피커폰으로 모두와 이야기하게 되지요.
윤변호사는 요즘 서울에 큰 불이 잦은 가운데 초자연의 거물급 집단인 정림 인터내셔널 본부에마저 큰 불이 났었다는 것을 알립니다. 그런데 정림에서는 그 사실을 숨기고 있으므로 뭔가 정림에 큰 타격을 입힐 만한 정보가 숨어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4명은 각자의 이유로 조사를 위해 일단 화재현장으로 나갑니다. 한편 정림 이사장의 딸인 중학생 아미오빠에게 화재 소식을 듣고 불안을 느낍니다.
스크린샷

법무법인 초원 주변은 대충 이런 느낌의 동네 (협찬: 네이버 지도)

감상
이전에도 제 마스터링에서 나타난 문제였지만, 1:1에 시간이 너무 흘러서 나머지 참가자가 재미가 없는 점이 이번에도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오랜만의 장편 진행이라 잘해보고 싶었는데 슬펐습니다ㅠㅠ 처음에는 ‘어,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 싶더니 나중에는 저도 당황스러워서 그냥 개별진행 부분을 빨리 끝내자는 생각으로 막 밀어붙였어요. 그런 진행 미스가 속상해서 리플레이도 사실 올리기 싫었지만, 반성한다는 의미에서라도 꾹 참고 올려봅니다.
그래도 굳이 변명을 해보자면, 시간을 오래 끌기는 했지만 각 인물의 인물성을 단독으로 조금은 잡아보고 나서 단체로서 진행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판정 역시 처음이신 분도 있어서 혼자 하는 단순한 형태로 먼저 해보고 싶었고요. 진행이 늘어진 점은 아쉽지만, 제 판단에 따른 대가려니 해야죠.
어쩌면 가장 문제가 되었던 점은 이런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하거나 더 좋은 방법이 있나 의논 한 마디 없이 바로 시작해버린 점이 아니었나 합니다. 진행자가 판단을 잘못하는 것이야 이해할 수 있어도, 참가자한테 상의 한 마디 없이 남의 개별 플레이를 구경하라고 강요하는 건 참가자를 무시하는 처사로 보일 수 있으니까요. 어쩌면 5화에 걸친 긴 설정과 인물제작 과정 끝에 또 뭔가 의견을 구하면 참가자에게 지나친 부담을 지우고 또 시간낭비한다는 소리를 들을 것 같아 마음이 급했던 것도 같네요. 앞으로는 시작 전에, 아니면 뭔가 잘 안 돌아간다 싶을 때 참가자 의견을 구해야겠습니다. 진행자가 그거 하나 알아서 못하고 참가자를 귀찮게 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저는 역시 제 스타일대로 의논을 해가면서 진행해야 잘 될 것 같아요.
또 아쉬운 점이었다면 기껏 과거 모험과 찬조출연까지 다 해놓아서 서로 인연을 만들어 놓았다가 정작 시작할 때는 윤변 전화로 만사형통하는 소집이었습니다. 여기도 뭐 나름 이유는 있는 게, 거기서부터 얘기를 이어보려고 하면 만나기까지 시간이 더 흐를 거라고 판단했거든요. 그리고 그때의 과거 모험은 현재와 미래에도 영향을 미칠 거니까~ 하고 스스로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의 모험은 태영의 3기 모험에서 실마리를 얻은 것이기도 하고요.
이번에는 일단 급한 대로 일행을 만들어 활동하게 했지만, 앞으로는 일행 개념에도 변화를 주어보고 싶습니다. 이번에 불량법의관 희숙이 직장에서 스피커폰으로 회의에 참여한다든지 하는 게 그 방향으로 약간 나아간 거지만, 앞으로는 일행이 서로 다른 장소에 있어도 빠른 장면 전환과 서로 결과가 얽히는 판정을 통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머리를 쥐어짜는 짓입니다만(..)
어쨌든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긴 설정 끝에 드디어 캠페인 시작입니다! 다음주에도 또 뵈어요^^
덧: 서울시 강남구에는, 그리고 제가 알기로는 서울시 어디에도 삼정동이라는 동은 없습니다. 정화여고라는 곳도 서울에는 없고요. 대구에는 있지만,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다른 곳입니다. 법무법인 초원이라는 곳도 실존하지 않는 등 (있다 해도 우연이에요!), 서울역이나 올림픽 경기장 같은 엄청 유명한 곳이 아닌 이상 앞으로도 지명과 명칭은 실제가 아닌 허구입니다.

안방극장 대모험 자료

자료 스크린샷이전에 네이버 TRPG 카페 일일 플레이 행사 당시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으로 타임키퍼즈를 했을 때 사용한 자료입니다. 각각 PDF 파일로 되어 있고, ZIP 파일에는 PDF와 함께 원본 ODT 파일도 들어있습니다. 별로 꾸민 것 없이 엄청나게 수수하지만, 저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시면 안 되는 겁니다. (…)

설문 파일은 처음 기획을 할 때 사용했던 설문지입니다. 참가자들에게 하나씩 써서 내시라고 한 후, 그 작품이나 인물, 장르를 왜 좋아하는지 토의한 다음 모두 좋아할 만한 요소를 끌어내는 시작점으로 활용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어떤 작품이나 인물, 장르를 싫어하는지 하는 설문지도 도움이 될 것 같군요.) 취향과 로망을 서로 파악하고, 모두의 욕구를 충족시킬 만한 설정과 이야기를 생각해가는 것이 안방극장 대모험을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에는 어떤 플레이든) 재밌게 하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시트 파일은 캐릭터 시트를 번역한 것입니다. TRPG였던 관계로 인쇄해서 반으로 잘라 사용했습니다. 적수 (Nemesis) 란은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예시 파일은 고민, 개인 무대와 능력·인맥의 예시를 제시했습니다.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일 수도 있어서 제작을 돕는 방편으로 만든 것입니다.
요약 파일은 규칙을 2페이지로 요약한 참고자료입니다. 그 자체만으로는 물론 플레이하기가 좀 어렵고, 규칙을 아는 사람이 설명할 때 이해를 돕는 자료, 그리고 플레이 중 기억을 자극하는 도구입니다.

혼자 갖고 있는 것보다는 공유하는 것이 가치가 클 것 같아 올려봅니다. 도움이 되는 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서술권 구분과 마스터링

최적 경험 시리즈 쓰다가 옆으로 샌 또 다른 글입니다. (엉엉)

RPG에는 일반적으로 마스터와 플레이어가 있습니다. 흔히들 쓰는 말인데, 마스터 (진행자)라는 의미, 혹은 플레이어 (참가자)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들의 역할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이러한 역할 구분에는 어떤 결과가 따르는지, 그리고 이 역할 구분을 토대로 하여 진행이란 어떤 활동인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진행자와 참가자의 역할 구분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고전적 구분, 두 번째는 협의형, 세 번째는 분산형 구분입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가 가장 흔하고 이해하기 쉬우며, 세 번째는 일반적인 의미의 진행자가 없는 형태까지 포함해 가장 광범위하고 다양합니다만, 고전적인 형태와 대비하는 의미에서 하나의 범주로 다룹니다.

1. 고전적 진행

진행자는 세계이며, 주인공은 세계와 맞서 싸운다

진행자와 참가자의 가장 고전적인 역할 구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참가자는 각자 하나씩의 인물, 흔히 PC (주인공)의 행동과 생각에 대해 최종적인 결정권 혹은 서술권이 있습니다. 진행자는 그 주인공 일행 외의 모든 극적 요소, 즉 PC 외의 모든 인물 (NPC, 혹은 조연)과 주변 환경에 대해 서술권이 있습니다. 이 서술권이 맞닿는 곳에서 중재하는 것이 합의와 판정이지요.

이러한 고전적인 역할 구분은 이전에 서술권 구분의 영향에서 다루었듯 일행 대 외부세계라는 서사구조에 가장 적합합니다. 자신이 서술권이 없는 요소에 대해서는 정보나 영향력, 예측가능성이 제한적이므로 참가자는 일행 외적인 요소와 협동하기보다는 물리적, 사회적으로 대립하는 것이 쉽습니다. 이러한 정보와 영향력 제한은 의외성과 박진감을 증진시키므로 대립은 더욱 흥미로워지지요.

이러한 고전적인 역할 구분 속의 진행자는 시나리오 제작자이며, 참가자의 적수이자 도전자입니다. 서술권 구분이 완전할 수록, 그리고 그 효과인 예측불허성이 강할 수록 진행자는 혼자 시나리오에 대한 사항을 정하며, 참가자가 알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상황과 도전을 제시합니다. 참가자와 그들이 움직이는 주인공은 진행자가 제시하는 외적 도전과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부딪치며 스릴을 느끼고, 주어진 고난을 뛰어넘는 판단력과 규칙 활용력을 최대한 활용하며, 생각도 못한 상황에 맞닥뜨리는 의외성과 극적 재미를 느낍니다. 한 사람 머리에서 나오는 만큼 서술의 일관성이나 체계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고전적 진행의 장점입니다.

유의할 점은 진행자와 참가자가 제어하는 요소들이 서로 대립하는 내용에 적합하다 해도 진행자와 참가자가 곧 적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일정한 게임적, 극적 재미라는 목적을 위해 놀이 속에서는 서로 다른 역할을 맡자고 합의했을 뿐이지요. 물론 놀이 속
요소와 실제 참여하는 사람 사이의 심적 구분을 지키지 못하면 정말 사람끼리 관계가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만, 이건 관계가 나빠질 수
있는 수많은 원인 중 하나일 뿐입니다. 서로 정보와 서술권이 차단되어 적수를 맡는다 해도 그건 더
큰 재미를 위한 역할 구분인 것이지요.

이러한 창조적인 충돌의 장을 혼자 준비하는 고전적 진행자는 외로운 존재입니다. 의외성과 대립의 맛을 최대한 살리려고 한다면 참가자의 선제지식이나 시나리오 협의는 줄이는 것이 좋겠지요. 따라서 서술권과 정보의 구분이 철저할 수록 진행자는 준비할 것이 많아지며, 상대적으로 책임감도 느끼게 됩니다. 오늘은 재미있는 상황들을 제시했는지, 플레이에 문제가 있다면 그건 진행자 잘못은 아닌지 고민이 느는 것이 고전적 진행자입니다. 소스북이나 시나리오집 등이 이렇듯 외로운, 그리고 바쁜 진행자를 도와주는 준비자료이기도 합니다. 덧붙이자면 이들 시나리오에 참가할 사람은 읽지 말라는 경고가 흔히 붙어있는 것도 고전적 서술권 분배에서 의외성의 극대화를 위한 정보 차단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지요.

이렇게 판을 잘 짜야 하는 고전적 진행 형태에서 진행자의 덕목은 책임감, 치밀성, 임기응변, 성실성, 폭넓은 지식, 그리고 허를 찌르는 재치와 꾀일 것입니다. 참가자에게 제대로 된 도전을 제시하려면 규칙도 잘 파악하고 있어야겠고요. (사실 어떤 진행을 하든 미덕입니다만…) 어찌보면 웹툰 환상주사위에 나오는 TRPG부 부장이자 마스터 나현우가 그런 전형을 잘 나타내고 있지요. 고독하되 충분히 자기 책임을 수행할 수 있고, 속으로는 진행이 힘들더라도 겉으로는 내색 안하고 태연할 수 있는, 고전적 진행자는 어찌보면 영웅적 진행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환상주사위 1화 중 나현우

네이놈 고등학생이 머리가 그게 뭐냐!


2. 협의형 진행

대화와 소통으로 서술권의 벽을 넘다

위의 고전적, 혹은 ‘영웅적’ 진행자의 전형을 보고 진행자에 대한 부담이 지나치다고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진행자가 무슨 초인도 아니고,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는 고독한 영웅이라니 이게 무슨 액션 영화란 말입니까. 실제로 환상주사위에 대한 RPG인의 비판 중에는 마스터의 모습이 왜곡된 RPG관을 심어주기 십상이라는 것도 있었다고 기억합니다.

사실 저 역시 진행자가 고독한 영웅이나 신비한 현자가 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위에 얘기한 고전적 진행자의 모습 역시 순수한 형태로 현실에 존재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실존하는 형태라기보다는 일종의 이념형 (ideal type)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영웅적 진행자와 서술권의 철저한 구분이라는 그 이상은 현실 플레이에도 큰 규범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실제로는 완전히 순수한 형태의 고전적 진행자가 아니라 해도 그런 영웅적인, 혼자서 다 짊어질 수 있는 진행자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은 저도 느껴 보았고 주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현실 속의 진행자는 (이상이야 어떻든지 간에) 모든 준비와 책임을 혼자 짊어질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고, 그러한 플레이가 잘 되었을 때의 장점은 위에 고전적 진행 부분에서 이미 다루었습니다. 그러나 부담을 느낀다면, 혹은 참가자가 진행에 의견을 반영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협의해서 진행상의 사항을 정할 수 있지요.

이러한 협의의 내용은 워낙 다양해서, 사실 협의형 진행의 모습은 굉장히 여러 가지일 수 있습니다. 어찌보면 순수한 이념형 고전적 진행 외에는 전부라고 할 정도로 폭넓지요. 간간이 참가자가 이런 조연을 내보내달라거나, 이런 사건이 벌어지면 좋지 않겠느냐 하고 제안하는 정도일 수도 있고, 캠페인 준비 단계에서 시작해서 장면 하나하나까지 모두가 논의해 정하는 것이 보통인 플레이일 수도 있습니다.(주:후자는 X의에 의한 플레이라고도 합니다만, 이걸 글로 정리하신 분이 제가 쓰는 글에 언급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신 적이 있으므로 따로 다루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협의형 진행은 그보다 훨씬 넓은 개념이므로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만 언급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결국 협의형 역할구분, 그리고 그 속에서 하는 협의형 진행이란 논의와 의사소통을 통해 정한다는 대원칙을 둔 온갖 플레이의 총칭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협의는 각 팀이 ‘필요한 만큼‘ 하면 되니까 어디까지 어떻게 협력하는 게 좋다 하고 방법론적으로 정의하기도 좀 어렵겠죠. 협의로 정하는 부분이
적으면 고전적 진행에 더 가깝고, 협의의 형태나 결과가 정형화되면 아래 분산형 진행에 가까워질 수도 있는 등, 협의형 진행은 하나의
독자적인 형태라기보다는 정도 차이를 구획한 분류에 가깝습니다.

이렇듯 다양할 수 있는 협의형 역할구분을 굳이 정의하자면 서술권 구분은 위 고전적 구분과 원칙적으로 같되, 자신에게 서술권이 없는 영역에 대해 제안과 논의라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참가자는 주인공, 진행자는 그 외의 세계’라는 서술권의 차단을 협의라는 장치로 넘나드는 것이지요. 그 결과 진행자도 주인공의 행동에 대해 제안하고 논의할 수 있고, 참가자도 조연이나 주변 세계에 대해 얼마든지 토의할 수 있습니다.

협의형 진행의 장점이라면 고전적 진행에 비해 진행자의 부담을 경감한다는 점이 있겠지요. 고전적 진행자가 마치 안전망 없이 외줄타기를 하는 곡예사와 같은 부담감이 있다면, 협의형 진행 속의 진행자는 협의의 역할이 강할 수록 튼튼한 안전망을 갖추게 됩니다. 공동 창작과 공동 책임, 공동 부담인 만큼 혼자 부담감을 끌어안고 고민할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한편 공동 창작과 공동 부담이라는 것은 혜택도 공동으로 누린다는 뜻입니다. 즉, 진행에 참가자 의사를 반영하는 만큼 마음에 들지 않는 진행에 벙어리 냉가슴 앓을 필요가 없고, 본인의 로망을 좀 더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위에 이미 말했듯 협의형 진행은 고전적 진행과 완전히 별개의 유형이 아닌, 협의의 정도 차이로 구분한 것인 만큼 고전적 진행의 형태를 상당 부분 유지하면서도 협의를 첨가해 이러한 장점을 향유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협의는 역시 필요한 만큼 하는 거니까요.

또 한 가지 장점이라면, 고전형 역할분담에서 흔히 나타나는 개인 대 세계를 넘어 주인공이 외부 세계를 이용하기도 하고, 이끌기도 하는 등 한결 폭넓은 이야기를 하기 쉬워진다는 것입니다. 서술권과 정보의 차단을 넘나드는 협의라는 장치가 있는 만큼 참가자가 놀이 속 세계에 대해 대립 외의 행동을 취할 운신의 폭이 커지는 것이지요. 고전적 진행에서 가장 하기 쉬운 것이 소수의 협력자와 함께 외부의 위협에 맞서는 고독한 영웅 집단이라면, 협의형 진행에서는 세계나 조연에 대한 정보와 영향력이 훨씬 많은 만큼 지도자라든지 중간조정자 등의 역할을 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워집니다.

물론 이러한 장점의 대가로 위에 고전적 진행을 다루며 이야기한 긴장감이나 의외성이 약해지는 점은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협의를 얼마만큼, 어디까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만, 이미 얘기가 된 사건에 대한 반응은 아무래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튀어나오는 충격과는 다를 수밖에 없겠죠. 주인공이야 얼마든지 놀랄 수 있지만, 참가자가 느끼는 의외성은 어느 정도 줄어들 것입니다. 물론 자신의 로망을 반영하였다든가, 플레이의 내용에 대해 불안할 필요가 없다든가 하는 다른 장점은 있으며, 의외성 약화 자체도 서술의 일관성이나 개연성 확보에는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어느 쪽 진행 형태가 우월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목적과 취향에 비추어 어떤 장점과 단점을 고르느냐에 따라 최선의 선택이 달라질 뿐이지요.

플레이에 협의의 역할이 강할 수록 진행자는 고전적 진행자가 맡는 독자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시나리오 제작 위원회의 일원이라든지, 참가자의 의논 상대로서 또 하나의 참가자가 됩니다. 물론 서술권 분배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므로 주인공 외의 세계에 대한 결정권이 있는 것은 변함없지만, 협의의 역할이 크고 협의가 정형화되어 있을 수록 그 결정은 전체의 의사에 제약을 받습니다. 이러한 제약이 강해지면 결국 서술권 분배 변경에 이르고, 그러한 변경은 곧 논할 분산형 역할분배로 이어집니다. 결국 정도의 차이인 것이지요. (최하단 도면 참고)

협의형 진행자는 위와 고전형 진행자의 덕목도 갖추면 좋지만, 그 이상으로 풍부하고 정확한 의사소통 능력과 다양한 의견의 조율 능력이 중요할 것입니다. 참가자와 협의한 것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는 것도 중요하겠고, 감정적 안정성과 인간관계 관리 능력, 의논한 것을 정리해서 자료로 만드는 꼼꼼함과 기록 습관 등도 도움이 되겠지요. 결국은 워낙 다양한 형태의 플레이를 포괄하는 용어이기에 진행자의 능력도 일률적으로 논하기는 어렵지만, 결국 협의형 진행을 할 때 진행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소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3. 분산형 진행

백짓장도, 진행자 권한도 맞들면 낫다?

위에서 다루었듯 고전형 진행에서는 진행자가 주인공 일행 외에 세계의 모든 것에 대한 서술권이 있고, 협의형 진행도 원칙적으로 비슷하지만 협의를 통해 자기 서술권에 속하지 않은 요소에도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결국 참가자는 주인공, 진행자는 그 외의 나머지라는 전통적인 서술권 분배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협의형 진행에서는 비록 협의의 범위에 따라서는 서술권의 정도나 행사 방식을 수정하기는 하지만, 진행자는 세계, 참가자는 주인공이라는 자신의 서술 영역에 대한 재량은 다소간에 있습니다.

세 번째로 다룰 분산형 역할구분은 바로 그 전통적인 서술권 분배를 해체합니다. 참가자도 조연을 맡기도 하고, 진행자도 주인공 제작에 참여하고, 진행자가 여럿인 경우도 있고, 아예 진행자가 없기도 하지요. 일단 진행자는 세계, 참가자는 주인공이라는 전통적 구분을 벗어나면 정말 무수한 조합이 있는지라 일률적으로 얘기하기는 곤란합니다. 그래서 결국 서술권을 전통적인 형태와 다르게 분산했다, 내지는 진행자의 전통적인 역할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가졌다는 의미에서 분산형 역할구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위의 협의형 역할구분에서는 남의 서술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이 비정형적인 의사소통이라면, 분산형 진행은 서술권 분담을 규칙으로 확실히 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규칙이란 RPG 책에 나온 것일 수도 있고, 팀에서 함께 정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전통적인 서술권 분담 구조를 벗어나는 만큼 명시화하고 명문화를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폴라리스 (Polaris)에서는 ‘마음’ 참가자는 주인공, ‘달’ 참가자는 우호적인 조연, ‘후회’ 참가자는 적대적 조연과 배경세계 하는 식으로 나누고 있지요. 달과 후회가 전통적인 진행자 역할을 나눠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예로 달을 쏘다 (Shooting the Moon)에서는 진행자 없이 두 ‘구애자’와 한 명의 ‘님’으로 나누어서 하는 삼각관계 얘기인데, 자신의 주인공인 구애자나 님뿐 아니라 기타 조연에 대한 서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참가자 전원이 진행자의 역할을 나누어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협의로 타인의 서술권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규칙 자체로 서술권을 나누는 차이는 결국 부담과 확실성의 차이입니다. 협의형 역할구분 속의 참가자는 조연의 행동에 대해서 제안은 할 수 있지만, 일단 제안을 하는 것이 부담이 될 수 있고, 또 제안을 실제로 구현하는 것은 서술권자인 진행자이므로 제안을 받아들일지, 그리고 얼마나 받아들일지는 진행자의 몫입니다. 반면 스스로 서술권이 있으면 자신의 의도를 그대로 반영할 수 있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부담과 확실성의 차이 때문에, 서술권 분배를 다르게 하는 것은 협의와는 또 다르게 플레이의 모습을 변화시킵니다.

서술권을 분배하는 규칙은 협의 과정과 그 내용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똑같이 협의를 하더라도 위에 논했듯 일반적으로 자신이 서술권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발언권이 강하기 십상이지요. 또한, 협의를 구조화하는 규칙도 있습니다. ‘달을 쏘다’에서 인물을 공통으로 제작하는 것이나,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에서 참가자가 장면을 신청하는 규칙이 그 예입니다. 이렇게 동등한 발언권을 보장해서 만든 협의의 구조 속에서 그 발언권 행사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네 캐릭터랑 내 캐릭터가 아까 일로 말다툼하는 장면은 어때?” “내가 생각하는 장면은 네가 말한 장면 다음에 나오는 게 좋은 것 같으니까 네가 먼저 신청할래?” 등등)

달을 쏘다나 폴라리스처럼 전면적으로 서술권을 분산하는 규칙도 있지만, 서술권 분산은 고전적 역할분담 속에 부분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극점수 서술이 좋은 예이지요. 세기의 혼 (Spirit of the Century) 계열 규칙의 면모 발동이나 페이트 점수 소모가 좋은 예입니다. ‘항구마다 여자가 있다’ 면모를 발동해서 이 장면에서 옛 여자가 나타나는 서술을 한다거나, 페이트 점수를 1점 써서 옆에 무기가 있다고 서술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물론 협의로도 처리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위에 얘기한 부담과 확실성의 차이로 돌아오지요. 다르게 보면 극점수를 사용하는 것은 극점수를 소모한 사람의 발언력을 크게 강화한다고 보아 협의를 구조화하는 규칙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주:극점수 논의는 위시송군의 제안으로 추가했습니다. 마음에 안 드시면 위씨 탓[?])

분산형 역할분담의 장점은 협의형과 비슷한 데가 많습니다. 고전적 역할분담에서 진행자에게 속했던 서술권을 참가자에게 분배하므로 진행자 부담이 거의 없고, 아예 진행자 자체가 없는 형태도 있습니다. (달을 쏘다, 폴라리스, Grey Ranks 등) 이러한 역할분담 때문에 참가자의 욕구를 플레이에 직접 반영할 수 있으며, 세계와 주인공 서술권의 이분법이 없으므로 주인공 대 세계라는 이야기 원형보다 폭넓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도 비슷합니다. 주인공에 대한 정보와 서술권이 있는 사람이 세계에 대한 정보와 서술권도 있다면, 그 점을 활용해 주인공이 세계를 이용하는 서술도 할 수 있으니까요.

분산형 역할분담의 한 가지 추가적인 특징이라면 일반적으로 의외성을 강화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서술권과 협의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서술권의 영역에 있는 것은 서술권자가 독자적으로 끄집어낼 수 있고, 협의를 통해 정하는 부분은 어느 정도 미리 얘기가 되어 있어야 하지요. 분산형 역할분담 속에서는 진행자뿐 아니라 어느 참가자라도, 주인공뿐 아니라 세계에 대해서도 그런 의외의 서술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협의나 판정을 통해 조절할 수는 있지만,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 여러 방향에서 다양하게 나온다는 차이입니다. 물론 그만큼 서술의 일관성이나 체계성 유지는 어려워질 수도 있으므로 긴밀한 의사소통과 논의가 필요할 것입니다.(주:이 일관성과 체계성 논의는 제노시아님 지적에 추가한 것입니다. 글 봐달라고 완전 온 동네를 불러냈구만[..])

단점이라면 협의보다 규칙에 기댈 수록 특정 방향의 서술을 유도하는 제약성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예를 든 폴라리스는 비극으로 흐르도록 의도적으로 설계한 규칙이므로, 비극적인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싶지 않다면 부적합합니다. 달을 쏘다 역시 인물의 변화와 희생을 유도하는 만큼 극단적으로 흐르기 쉬운 규칙이지요. 따라서 규칙이 지향하는 유형의 이야기를 원한다면 좋지만, 범용성은 떨어집니다. 범용성과 자유도가 강한 분산형 서술분담 규칙은 안방극장 대모험처럼 규칙의 정형성이 덜하고, 대신 협의를 구조화하는 역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분산형 역할분담 속에서 진행자의 역할은 보통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르고, 아예 진행자가 없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전통적인 진행자의 권한을 다들 나눠가지고 있으므로 전원이 진행자라고도 할 수 있지요. 이러한 분산형 ‘진행자’의 미덕은 서술권을 분배하고 행사하는 규칙을 잘 알고, 그것을 기반으로 다른 참가자들과 의사소통을 활발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규칙으로 부여받은 서술권과 참여자끼리의 논의를 둘다 이용해 자신과 상대의 로망과 반응에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것이 재미있게 노는 방법입니다.

이상과 같은 세 가지 역할분담 유형은 이미 말했듯이 절대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정도 차이입니다. 그 관계를 도식으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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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이 RPG 속에서 서술권 분담의 차이와 그에 따른 진행자의 역할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론이라면 서술권 분담 유형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고, 또 RPG의 서사에도 영향을 미치므로 목적과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RPG라는 하나의 취미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그 속에는 진행자의 역할 (혹은 유무)만 해도 차이가 나고 또 같은 유형 속에도 굉장히 다양한 규칙과 플레이가 있습니다. 그런 다양성 때문에 결과적으로 RPG는 더욱 풍요로운 취미가 아닐까요?

꺄악! 나도 플레이를 한다!

플레이를 하기로 했습니다! 어언 얼마만의 진행 (마스터링) 아닌 참가 (플레이)인지 막 눈물이 앞을 가리는군요(…) 규칙도, 배경세계도 재미있어 보이는 캠페인이어서 많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처럼 주로 진행만 하다가 참가를 하는 사람은 종종 엄청나게 의욕과 기대에 찹니다. 그리고 실제로 참가는 재미있고 부담도 안 되는 활동이고, 본업(?)인 진행에도 새로운 활력을 주지요. 참가자 관점을 잊고 있다가 실제로 참가를 해보면 참가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하면 재밌는지 훨씬 잘 와닿거든요.
그러나 동시에 그 엄청난 의욕과 기대 때문에 실수를 하기도 쉽습니다. 저도 그런 실수를 한 기억이 많이 있지요. 실제로 진행과 참가는 다른 점이 많아서 익숙해지는 과정에서 진행자의 버릇이 나올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점을 기억하면 오랜만에 하는 참가를 더욱 즐거운 경험으로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1. 혼자 너무 나서지 않는다
진행을 해본 참가자는 적극적으로 플레이하는 일이 많습니다. 능동성이 몸에 배어서겠죠. 이건 일반적으로 당연히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특히 오랜만에 플레이할 때는 플레이한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좋고 의욕이 넘쳐서 심하게 설치는 일이 있습니다. 이럴 때에는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플레이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활약할 기회를 주어야 하므로 혼자 다 도맡아하는 건 곤란하지요.
적극성이 지나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면 자신이 너무 설칠 때 신호를 달라고 다른 참여자들에게 미리 부탁해 놓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어떤 일에서든 지나친 것은 좋지 않으니까요. 물론 지나치지 않는 한도에서 참가자의 적극성을 잘 살리면 모두 함께 즐거울 것입니다. 그것은 진행을 해본 참가자의 큰 장점이기도 합니다.
2. 조연과 주연을 번갈아 한다
위 1번 과는 어쩌면 이율배반적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진행자는 종종 주역보다는 보조역을 맡는 데에 익숙합니다. 진행자로서 맡는 조연 (NPC)은 주인공에게 도전을 제시하고, 적대시하고, 협동하는 역할을 맡지 그 자신이 극적 중심이 되지는 않으니까요. 조연도 당연히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무게중심은 주인공 (PC)에게 쏠려 있습니다.
이렇듯 남을 돋보이게 하려고 움직이는 데에 익숙한 진행자가 참가를 할 때에는 역시 제버릇을 남 못 주고 계속 주인공을 조연처럼 돌리는 일이 있습니다. 내가 맡은 인물을 활약시키는 궁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 인물을 돋보이게 하는 방법을 궁리하는 것이지요.
물론 이렇게 적절히 조연을 맡아주는 참가자는 참 환영받는 존재입니다만, 그 정도가 지나친 나머지 주연을 맡을 줄을 모를 정도가 되면 문제입니다. 번갈아 주목을 받으면서 다른 참가자들에게서 부담도 덜어주고 더욱 입체적인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각 참가자의 역할이니까요. 따라서 참가자는 조연 못지않게 주역 또한 맡을 수 있어야 하고, 주목받는 것이 익숙하지 않더라도 이것이 참가자로서의 역할이라는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려움을 느끼면 필요에 따라 대화하고 조절해가며 익숙해져야겠지요.
3. 진행이 아닌 참가를 한다
진행을 많이 맡다가 참가를 할 때 제 경험상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진행자에게 지나치게 훈수를 두는 것입니다. 플레이한다고 좋아하다가도 막상 플레이에 들어가면 진행에 대한 감이 생생하고 재밌게 하고 싶은 의욕은 넘치다 보니 자꾸 진행상의 사항들이 눈에 들어오는 거죠. 그래서 여기서는 이야기를 이렇게 끌어가는 게 어떻겠느냐, 그 규칙은 그게 아닌 것 같다 하는 식으로 진행자에게 자꾸 참견을 하는 일도 있습니다. (제 얘기 절대 아니라능! 흑흑)
물론 진행자에 대한 충고가 나쁘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좋은 진행자라면 참가자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귀기울일 테니까요. 문제는 참가자가 진행을 아예 빼앗으려는 정도로 심하게 참견할 때입니다. 충고인지 참견인지는 때로 구분이 애매합니다만, 몇 가지 고려사항을 지키면 진행자를 곤란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진행 경험을 살린 좋은 제안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3.1. 흐름을 고려해서 얘기한다
참견이 아닌 충고를 하려면 맥락이 매우 중요합니다. 같은 얘기도 얘기하는 시점에 따라 성격이 많이 달라지게 마련이지요. 세션이나 장면 시작 전, 혹은 진행자도 막막해서 흐름이 늘어지는 시점에 하는 조언은 진행자에게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같은 얘기라도 한창 흐름이 급박한 상황에 얘기하면 진행자는 훨씬 힘이 듭니다. 이제 어느 정도 진행 내용에 대해 결정을 내리고 순간순간 진행해가기도 바쁜데 여기에 더해 참가자가 전혀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면 진행자로서는 정신이 하나도 없겠죠.
따라서 시작 전이나 흐름이 저조한 상태일 때 그야말로 돕는 말로서 조언을 하는 것은 좋지만, 진행자가 이미 내린 결정에 대해 중간에 토를 다는 것은 보통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겠습니다. 불만이 있다면 장면이나 세션이 끝난 후에 얘기하는 것이 좋겠지요.
3.2. 진행자가 말할 차례를 가로채지 않는다
제가 가끔 실수한 부분입니다만, 진행자가 질문에 답하거나 서술을 하려는데 끼어들듯 제안을 하는 것은 무례할 뿐만 아니라 진행자가 자기 기능을 다 못하게 하는 행동입니다. 뭔가 할 얘기가 있을 때는 진행자가 질문에 대한 답을 끝낸 후에 보충한다든지, 서술을 한 후에 명확하지 않은 부분을 질문한다든지 하는 것이 좋지, 진행자가 말을 할 때 끼어드는 것은 여러모로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입니다.
3.3. 명령이나 질책보다는 질문과 논의를 한다
마지막으로, 참견이 아닌 충고를 하려면 말하는 의도 자체가 중요합니다. ‘이렇게이렇게 해라’라거나 ‘왜 그렇게 했느냐’ 하는 식의 발언은 진행자를 당황하게 하기 쉽고, 참가자가 진행자 역할에 침범하는 결과가 되기 쉽습니다. 진행상 규칙 적용이나 서술, 조연 RP 등을 어떻게 할지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참가자가 아닌 진행자이므로 진행자에게 명령을 내리거나 진행상 결정에 대해 질책하는 것은 참가자와 진행자의 역할 구분을 불분명하게 합니다.
이것은 진행자가 참가자가 뭔가 우월한 위치에 있거나 상관이라서 참가자가 분수를 지켜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진행자와 참가자 역할을 구분하는 것은 그 구분에 기능적 의미가 있으니까 하는 것인데 (실제로 진행자와 참가자 구분이 없는 규칙도 꽤 있죠), 그 구분을 자의적으로 부정하면 역할구분에 따른 이점을 버리는 결과가 되므로 구분과 그에 따른 이점을 유지하자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찬가지로 진행자도 참가자 영역에 대해 명령을 내리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만, 글의 초점상 여기에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물론 침범이 아닌 제안과 조언은 매우 긍정적이지요.
진행자의 역할을 침범하지 않고 역할 수행을 도와주는 제안을 하려면 먼저 질문하고 다음 논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먼저 질문을 통해서 진행자의 의도나 어려움을 파악한 뒤 진행자와 참가자 자신의 의도를 실현할 수 있도록, 혹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함께 얘기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기 주인공의 배경이 전혀 나오지 않아서 플레이가 심심하다면 한 가지 방법은 ‘내가 열심히 쓴 배경은 왜이렇게 안 나와요? 다음번에는 좀 등장시켜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말은 진행자가 주인공 배경을 쉽게 등장시킬 수 있는데 등장시키지 않고 있다거나, 그러기를 잊었다거나, 적당한 때에 등장시킬 기회를 찾고 있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서 하는 말입니다. 사실 진행자가 어떤 의도가 있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는 물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지요.
그래서 진행자의 사정이나 관점을 알아보려면 먼저 질문을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요즘 들어 제 주인공 뒷배경은 전혀 등장 안한 것 같은데, 혹시 등장시킬 계획이 있으세요? 저 그거 열심히 썼는데…’ 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성실한 진행자라면 현재 진행 부분하고 방향성이 좀 달라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든지, 언제쯤 등장시킬 계획이라든지 하는 대답을 하겠지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문제를 해결하거나 소재를 더 재밌게 활용할 수 있을까 같이 얘기해보면 됩니다. 진행자에게 명령하거나 대립하지 않고, 진행자의 사정을 파악하고 같이 협력해서 좋은 플레이를 만들어가면 인간관계도 플레이도 한결 부드럽지요.
이상과 같이 오랫동안 진행만 했다가 참가를 할 때 고려할 만한 사항을 몇 가지 적어보았습니다. 적극성이 도를 넘지 않도록 하고, 주연도 적당히 맡으면서 진행자에게 지나치게 참견하지 않을 수 있다면 오랜만의 설레는 참가는 후회가 아닌 기쁨으로 남을 것입니다.

여명과 석양의 도시 – 6화: 수사와 의혹

본편 6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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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플로리앙 피습 사건 이후 하쉬르는 직접 발로 뛰며 배후를 찾습니다. 수소문한 끝에 그는 팔레오로고스 혹은 노타라스 가문의 개입이 있다는 단서를 잡고 플로리앙과 라이산드로스에게 알리지요. 라이산드로스는 스틸리안느 팔레오로가 혹은 플로리앙에게 개인적 원한이 있는 이올라스 노타라스를 의심합니다. 주인공들은 에이레네의 건강 회복에 대한 기쁨과 그림자 속에 숨은 적에 대한 불안이 교차하는 저녁을 함께 보냅니다.

감상

1. 하쉬르 수사반장의 활약이 돋보였습니다.

2. 스틸리안느 뒷배경을 언급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악녀 만세.

3. 전체 맥락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작은 묘사들이 개인적으로 재밌었습니다. (잠꼬대하며 뒤척이는 아리칸, 라이네 연회장 등.)

4. 여전히 개별적으로 노는 감이 있지만 당분간은 이 진행으로도 괜찮을 것 같군요. 이렇게 하다 2부로 가면 보조 주인공을 만들면 되겠지요. 3부 가면 완전 군상극이고…

5. 캠페인에 대한 열정이 좀 돌아왔습니다. 상담해준 아군에게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