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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플레잉 실력 격차 줄이기

트위터에서 말한 내용을 정리해서 올립니다.

RPG에서 사용하는 기능/능력/전투/기타 등등 판정은 대부분 ‘어떻게 하는가?’ 대신 ‘무슨 목적인가?’를 아는 게 중요합니다. 기술자 캐릭터를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는 폭주하는 기계를 멈춰서 도시를 구하는 데 목적이 있지, 기계를 어떤 원리로 멈출지는 (아마도) 모를 것입니다. 플레이어들은 보통 캐릭터만큼 전문가가 아니니까요. 게다가, 많은 경우 판정에 사용하는 특성의 이름(교섭, 민첩성, 공학, 근접전)만으로 캐릭터가 사용하는 수단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냥 “공학 기능을 사용해 기계를 멈춰요.”로 선언을 끝내는 플레이어가 있는 한편, 상상력을 동원해 “기계를 멈추기 위해 동력부의 에테르 엔진을 냉각기로 얼려서 날개로 가는 동력을 끊어요.”라고 선언하는 플레이어도 있을 것입니다. 마스터는 물론 좋은 롤플레잉에 보너스를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실제로 좋은 롤플레잉에 보상을 주는 RPG도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롤플레잉에 계속 보너스를 준다면, 캐릭터의 공학 실력 대신 플레이어의 화술 실력이라는 OOC(Out of Character) 요소 때문에 이익/불이익이 발생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말을 잘 하는 플레이어는 서툰 플레이어보다 판정에 분명한 이익을 받아야 할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롤플레잉 실력의 격차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저는 두 가지를 들겠습니다:

하나, 규칙을 세밀하게 만든다.

첫번째는 문제 해결에 필요한 수단과 방법을 규칙으로 만드는 방식입니다. ‘어떻게 하는가?’를 규칙으로 해결하려면 캐릭터가 사용하는 방법, 드는 노력과 자원, 투입한 역량과 수단으로 기대하는 효과, 치러야 하는 대가 등을 고려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자세한 규칙이 필요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전투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세한 규칙이 플레이어의 롤플레잉을 저해하고 그저 주사위 굴림의 횟수를 늘릴 뿐이라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자세한 규칙은 플레이어가 롤플레잉 실력의 차이를 극복하고 캐릭터를 좀 더 그럴듯하게 플레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적을 공격하는 방법이 단순히 “공격!” 이 아니라 “5피트 이동해서 파워 어택으로 피해 3점 늘려 대검으로 공격!”이라면, 플레이어가 검도 고수는 아니더라도 검도의 고수처럼 행동하고 기분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규칙이 자세해지면, Role플레이보다 Roll플레이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지나치게 자세한 규칙에서 어떤 폐해가 생기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결국, 규칙을 좀 더 자세히 사용하려면 이 RPG가 중요하게 초점을 맞추는 부분에 규칙을 집중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던전 판타지풍 RPG에서 교섭 규칙보다는 던전 탐사와 전투 규칙 비중이 높은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둘, 플레이어의 의도와 수단, 그리고 수단을 사용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파악한다.

앞에서 말했듯 마스터는 판정할 때 플레이어가 무슨 의도로 행동하려고 하는지 명확히 의도를 파악해야 합니다. 왜 이 플레이어는 교섭 판정을 하나요? 교섭 판정으로 상대를 자수시키려는 건가요? 아니면 물건값을 깎으려는 건가요? 우선 플레이어의 의도를 먼저 파악하세요.

의도를 파악한 다음, 마스터는 캐릭터가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 사용한 수단, 즉 “어떻게?”를 물어볼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보통 어느정도 캐릭터의 행동을 묘사하기 마련이므로, 캐릭터가 사용한 수단은 굳이 질문하지 않아도 될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마스터는 명확하게 이해를 하기 위해 언제든지 플레이어에게 캐릭터가 어떤 식으로 행동했는지 물어볼 수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 플레이어는 캐릭터만큼 전문가가 아니므로, 구체적인 세부사항 대신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마스터가 이해할 수 있는) 묘사면 충분합니다.

여기서 제가 즐겨 쓰는 마스터링 기법을 소개하겠습니다. 판정 의도와 캐릭터가 사용하는 수단을 파악한 다음에는 “지금 묘사한 방법이 어떤 식으로 의도를 이루는 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세요?”라고 한번 더 물어보세요(즉, 그 수단을 사용한 이유를 물어보세요). 이 질문은 마스터와 플레이어가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마스터는 이 질문을 해서 플레이어가 이야기 속 상황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혹은 자신이 플레이어가 선언한 의도를 제대로 파악한 건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캐릭터가 사용한 수단에 따라 이유를 물어보지 않아도 명확할 때가 있습니다.

세가지 예시를 들겠습니다.

첫번째 예시:

마스터: “지금 적군의 장군은 침대에서 쿨쿨 자요. 어떻게 할래요?”

플레이어: “살금살금 기어가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 입을 막고 단검으로 목을 따서 일격에 죽입니다!”

마스터: “알겠습니다. 민첩성 판정하세요.” (마스터는 추가 질문을 생략합니다. 이미 ‘적을 죽인다(행동 의도)’ ‘단검으로 목을 벤다(수단)’ ‘입을 막고 단검으로 목을 따면 소리없이 곧바로 죽을 테니까(수단을 선언한 이유).’ 라는 세 가지 요인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예시:

마스터: “사무실은 온통 불바다입니다. 어떻게 할래요?”

플레이어: “불을 끕니다.”

마스터: “어떻게요?” (불을 끈다는 의도는 파악했으니 수단을 묻습니다)

플레이어: “사무실에는 정수기통이 있겠죠? 안에 있는 물로 불을 끕니다.”

마스터: “척 봐도 정수기통 물로는 불을 끄기 턱없이 부족해요.“ (수단을 사용한 이유는 굳이 묻지 않아도 됩니다. 물로 불을 끄려는 거니까요. 하지만 마스터는 플레이어가 이야기 속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을 알고 지적합니다)

플레이어: “그렇군요. 그럼 사무실에 쓰러진 사람이 있는지 둘러봅니다.“

마스터: “알겠습니다. 지각력 판정하세요.” (새로 바뀐 선언은 행동의 의도인 ‘쓰러진 사람을 찾는다’와 수단인 ‘눈’, 수단을 사용한 이유인 ‘눈으로 찾는 게 당연하니까’가 명확하므로 마스터는 곧바로 판정을 시킵니다).

세번째 예시:

마스터: “도둑질한 아이가 잡혀 왔습니다. 어떻게 할래요?”

플레이어: “설득합니다.”

마스터: “무슨 내용으로 설득하고 싶나요?” (의도를 묻습니다)

플레이어: “도둑질을 하지 말라고요.”

마스터: “어떻게 설득할래요?” (의도를 실현할 수단을 묻습니다)

플레이어: “손을 꼭 붙듭니다.”

마스터: “왜 그런 수단을 썼나요?” (플레이어가 왜 손을 잡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수단을 동원한 이유를 묻습니다)

플레이어: “이 아이는 태어나서 따뜻한 말이나 행동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니까요. 아, 손을 잡고 따뜻한 목소리로 도둑질을 하지 말라고 하죠.” (플레이어는 마스터에게 답변하면서 롤플레잉을 보강합니다)

마스터: “알겠습니다. 교섭 판정하세요.”

좋은 롤플레잉은 마스터에게 이야기 흐름을 이어나갈 소재를 제공하는 롤플레잉입니다. 플레이어가 “기계를 멈추기 위해 동력부의 에테르 엔진을 냉각기로 얼려서 날개로 가는 동력을 멈춰요.”라고 선언하면, 마스터는 판정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플레이어가 언급한 의도인 ‘기계를 멈춘다’, 수단인 ‘동력부’ ‘에테르 엔진’ ‘냉각기’, 그리고 수단을 동원한 이유인 ‘날개로 가는 동력을 끊는다’를 이야기 진행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게다가 플레이어 입장에서도 마스터가 자기 의도를 명확하게 이해하는 편이 플레이를 하기 훨씬 편합니다. RPG에서 상대방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 대화가 어딘가에서 어긋나 버리고, 불만족스러운 플레이로 끝날 확률이 높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좋은 롤플레잉은 화려한 묘사가 아니라 마스터에게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명료한 의사 표시이며, 단순히 권장 수준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모든 플레이어가 필수로 갖춰야 할 기본 태세입니다. 판정에 보너스를 받을 만한 훌륭한 롤플레잉은 위에서 말한 세 가지(의도, 수단, 수단을 동원한 이유) 요소를 갖출 뿐만 아니라 테이블에 참석한 전원이 탄성을 지를 정도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롤플레잉은 그리 쉽게 나오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보너스를 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정리글

롤플레잉 실력의 격차를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실력 격차에 상관없이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이야기 진행에 필요한 세부적인 정보를 마스터와 플레이어에게 제공하는 자세한 규칙입니다. 하지만 규칙이 지나치게 자세하면 플레이 자체가 힘들고 느려지는 역설이 발생합니다. 게다가 모든 부분을 자세한 규칙으로 만들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규칙은 해당 RPG로 구현하려는 플레이 방향에 집중해야 하며, 그 외 부분은 다른 요소로 롤플레잉 실력의 격차를 메워야 합니다. 저는 이 요소가 ‘캐릭터 행동의 의도’, ‘행동 수단’, ‘행동 수단을 선택한 이유’을 정확하게 전달하는(혹은 끌어내는)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페이트 코어/기동형 페이트에서 시도해보고 싶은 일 : ‘기회 만들기’ 액션을 다른 액션에 결합시키기.

페이트에서는 무언가 행동을 할 때는 극복/기회 만들기/공격/방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극복은 무언가 행동을 방해하는 요인을 처리하는 액션이고, 공격은 상대를 다치게 하거나 제거하는 액션이며, 방어는 상대의 행동을 저지하고, 기회 만들기는 유리한 상황 면모를 만들거나 쓸 수 있는 면모를 유리하게 이용하는 액션이지요.

그런데, 페이트 코어 이후 면모는 “이야기 속 현실”의 역할을 한다고 특히 강조되었습니다. 이전에 쓴 글에서(http://blog.storygames.kr/?p=1339) 말했듯이 ‘수갑에 묶임’ 면모를 얻은 캐릭터는 손을 쓸 수 없고, “날개” 면모가 있으면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터널을 파서 성 안으로 들어간다면 극복으로 들어간 걸까요, 기회 만들기로 “터널”이라는 면모를 만든 걸까요? 상대방의 무기를 뺏는 건 무기를 뺏는 극복 행동일까요, “무기 뺏음”이라는 면모를 붙인 걸까요? 숨겨진 고대의 비밀을 발견한다면 이건 그 정보를 “극복” 행동으로 알아낸 걸까요, 숨겨진 “면모”를 파악한 걸까요?

미국 쪽 RPG 커뮤니티에서도 위 문제로 몇 번 논의가 있었고, 게임 디자이너 중 한 명인 Ryan Macklin은 “정보를 밝혀내는 행동은 별도로 “Discovery Action”을 만들자!( http://ryanmacklin.com/2014/10/fate-the-discover-action/) 라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페이트 원작자인 Fred Hicks는 도표까지 만들면서 (https://plus.google.com/+FredHicks/posts/FT6DyiLdD3u) 기존 규칙으로 충분히 이런 애매한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지요.

페이트 팬들의 의견은 대체로 “기회 만들기는 보조 수단이며, 장면을 확실하게 끝내는 정보나 행동은 공격이나 극복이어야 한다.” 라는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이 부분이 좀 불만입니다. 왜 굳이 두 액션을 인위적으로 분리한 걸까요?

면모가 이야기 속 현실이라면, 무언가 행동을 할 때마다 실제 플레이에서 보이든 보이지 않든 면모가 붙는 건 자연스럽습니다. 페이트 코어에서도 “딱히 공짜 발현을 얻으려는 건 아니고, 그저 지금 이런 상황 면모가 있는 게 개연성이 있겠다고 생각하여 제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주사위를 굴리거나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이러이러한 면모를 만들고 싶다고 제안하고, 다른 사람들이 수긍하면 바로 써 넣으십시오.” 라고 설명을 하고 있지요(p.84 면모의 창조와 발견). 게다가 누누이 강조했듯, 페이트에서는 굳이 기회 만들기를 활용하지 않더라도 상황 면모에 따라 특정 행동의 난이도가 높아지거나 낮아질 수 있고, 심지어는 특정 행동을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인위적으로 기회 만들기라는 행동을 따로 분류해서 면모를 활용할 필요가 있을까요? 사실 이미 기회 만들기는 다른 액션에 어느 정도 결합이 되어 있습니다. 기회 만들기를 굳이 하지 않더라도 극복이나 공격, 방어에서 대성공이 나오면 목적을 달성할 뿐만 아니라 증강도 얻고, 공격을 맞아 입은 피해를 흡수하면 타격이라는 면모를 얻으니까요. 저는 이런 부분에서 페이트의 면모보다는 AWE의 ‘태그’ 쪽이 좀 더 이야기와 규칙을 부드럽게 결합했다고 생각합니다. AWE에서는 굳이 별도의 액션을 분리해 면모를 만들거나 활용할 필요 없이 태그라는 요소를 플레이에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극복과 방어, 공격은 캐릭터의 입장에서 행동하는 반면, 기회 만들기는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행동하기 때문에 뭔가 붕 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네요.

그래서 언젠가는 한번 이 기회 만들기를 극복과 공격, 방어 속에 자연스럽게 녹이는 규칙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아직은 그냥 막연한 생각일 뿐이지만…

p.s : 애스디님이 이 글에 답변으로 쓴 좋은 글이 있습니다 : (클릭)

RPG와 운전: 서술과 협의, 문제 플레이에 대한 생각

1. RPG와 운전

책[footnote]Mindsight: The New Science and Personal Transformation (by Daniel J. Siegel, M.D.)[/footnote]을 보다가 재미있는 비유가 나와서 RPG에도 적용해 보았습니다. 책에서 저자는 정신을 스스로 제어한다는 의미를 논하면서 운전을 하는 비유를 드는데, 운전대를 잡고 눈을 감고 있으면 차를 제어한다고 할 수 없고, 차 뒷좌석에 탄 승객은 운전을 감시는 할 수 있고 운전자에게 제안도 할 수 있지만 운전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RPG에서 서술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눈감은 운전자는 일단 차치하고 (ㄷㄷ) 서술과 협의의 관계는 마치 운전대를 잡은 운전자와 뒷좌석에 앉은 승객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참가자는 자신의 주인공 (PC)의 행동을 서술하는 서술권이 있고, 진행자는 조연 (NPC)과 외부 세계에 대해 서술권이 있습니다. 이때 참가자는 진행자에게 조연이 내 주인공을 죽이려고 했으면 좋겠다, 이쯤에서 비가 왔으면 좋겠다 하고 제안은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행자도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고요. 그런 식으로 활발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사실 바람직한 플레이기도 합니다. 승객이 운전자가 너무 빨리 가는 것 같아 불안하다거나, 지름길로 가자고 운전자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죠.
그러나 뒷좌석의 승객이 운전자일 수 없듯, 서술권자가 아닌 사람은 서술을 할 수 없습니다. 자기 서술 영역이 아닌 영역에 대해서는 제안을 하고 대화를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참가자는 진행자에게 조연이나 외부세계에 대해 제안은 할 수 있지만, 직접 조연이나 외부세계 요소를 빼앗아 서술을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진행자가 조연이나 자연현상 등을 참가자에게 넘기는 경우는 서술권이 넘어가는 것이므로 다른 얘기입니다.)
마찬가지로 진행자나 다른 참가자도 참가자에게 주인공이 이런 말이나 행동을 하면 어떨까 얼마든지 제안은 할 수 있고 또 참가자도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지만, 진행자나 다른 참가자가 주인공에게 어떤 말이나 행동을 시키는 것은 안 될 일입니다. 뒷좌석 승객이 운전대를 빼앗으면 안 되는 것처럼요. 물론 운전을 교대하기로 하고 승객과 자리를 바꿔타는 것과는 다른 얘기이지만요.
2. 운전석과 뒷좌석을 구분하는 세 가지 이유
어째서 로키는 이런 독재적인 발언을 하는 것일까요? 내 서술권은 내꺼고 니 서술권은 니꺼니까 침범하지 말라는 이런 반공동체적, 반민주적 발상이 어딨습니까! 혹시 진행자는 신에게 권한을 받는다는 구닥다리 진행권신수설 신봉자, 혹은 시대에 뒤처진 권위주의자인 것일까요?
뭐 제가 독재파쇼라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서술권 분리를 주장하는 것은 그 외에도 (?) 크게 3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크게 구조적, 사회적, 감정적 이유입니다.
첫 번째, 서술권을 구분하는 구조적 이유는 우선 RPG는 어떤 식으로든 서술권을 구분해야 한다는 데서 시작합니다. 한 사람에게 모든 서술권이 있으면 그건 혼자 쓰는 소설이고, 아무런 서술권 구분이 없으면 서로 눈치만 보다가 놀이가 안 되거나 아니면 놀이 속 사건에 대해 서로 의견이 안 맞아 말다툼을 벌이기 쉽습니다. 그러한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이 너는 저 영역에 대해 결정을 내리고, 나는 이 영역에 대해 결정권이 있다는 서술권 구분이지요.(주:또 다른 수단이라면  서술권 영역 사이를 매개하는 규칙과 협의입니다만, 서술권 글에서 그 역할을 적었던 만큼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서술권을 어떻게 분배하든 그 분배에는 일정한 효과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참가자가 주인공을 맡고 진행자가 그 나머지를 맡는 전통적인 구조는 주인공 일행 대 세계라는 대립적인 구도를 이루기 쉽습니다. 서술권을 전혀 다르게 분배하는 놀이, 예를 들어 얼음깨기 (Breaking the Ice)는 주인공과 외부 세계를 같은 사람이 서술하는 만큼 한결 주인공과 외부 세계가 협력하기가 한결 쉬워집니다. 따라서 어떤 서술권 분배와 그에 따르는 효과를 선택했다면 그 분배를 어기는 것은 그 효과 또한 희석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두 번째, 서술권을 구분하는 사회적 이유는 서술권 구분이 뚜렷하지 않으면 서로 눈치를 보면서 진행이 늘어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진행자의 전통적 영역을 참가자 사이에 공동 분배하면 (‘꼬마 미우 구하기 1부’ 사진에서부터 5번째 문단 참조) 책임이 명확하지 않으므로 논의와 의사소통에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물론 논의가 활발한 것은 더없이 좋지만, 논의 없이는 장면을 시작조차 할 수 없다면 좀 피곤하지요. 마치 운전자 없이 ‘승객이 투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차’를 탄 것처럼 정신없는 경험이 되기 쉽습니다.
세 번째 감정적 이유는 서술권을 구분하고 그 구분을 지키지 않으면 감정이 상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역할극을 다룬 글에서 역할극에 판정이 없어서 생기는 부작용을 적었었는데, 서술권 구분이 없거나 그 구분을 지키지 않는 것도 비슷한 부작용이 있습니다. 서술권 구분이 없다면 이 요소 (인물, 자연물 등)의 움직임을 내가 서술해도 괜찮은지 바로 확신할 수 없고, 그 요소를 움직였다가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남이 내가 마음에 안 드는 서술을 해서 감정이 상할 수도 있지요. 서술권 구분은 이러한 눈치보이는 상황에 대해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해서 인간관계와 놀이 속 서술 사이에 어느 정도 방벽을 만들어줍니다.
서술권을 일단 구분한 상태에서 지키지 않았을 때 생기는 감정적 결과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진행자가 주인공에 대해 조언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심한 간섭을 하거나 아예 행동을 강제한다면 해당 참가자는 자기 서술권뿐 아니라 인격을 부정당한 기분이 들 것이며, 서술권 구분이 그런 식으로 무시당하면 위에 얘기한 구조적, 사회적 문제도 발생할 것입니다.
3. 뒷좌석 운전의 실제 모습
물론 실제 RPG에서는 ‘나는 너의 서술권을 부정하고 이 이야기 요소를 내가 제어하겠어!’ 라고 선언하고 서술권을 잡는 일은 없습니다. (혹시 있으려나요? 있으면 제보좀…) 그보다는 서술권 개념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침해하는 일이 많지요. RPG를 할 때 뒷좌석에서 운전대를 잡으려고 씨름하는 행동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우선, 강제 진행. 거의 진행자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는 서술권 침해입니다. 고전적인 RPG 서술권 분배에서 진행자는 참가자에 비해 서술 범위가 상당히 광범위합니다. 그래서 세계와 조연을 움직여서, 혹은 장면 전환이나 편집을 해서 원하는 진행에 반하는 참가자 서술을 막아버리는 것을 강제 진행, 혹은 칙칙폭폭 진행이나 기찻길 진행 (Railroading)이라고도 합니다. 주인공에 대한 서술권을 무시당했으므로 참가자는 기분이 나쁠 뿐만 아니라 (감정적 부작용), 세계와 주인공에 대한 서술권을 분리하는 이점을 취할 수 없어지는 (구조적 효과) 악효과가 있습니다. 의미있는 모든 서술권이 한 사람에게 모이므로 소설에 가까워지고, RPG를 하는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참가자와 협의를 해서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넘기는 것은 전혀 다른 상황이며, 진정한 협의만 되어 있다면 강제가 아니므로 서술권 침해가 아닙니다. 따라서 진행자가 특별히 바라는 전개가 있다면 참가자와 의논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특정 전개에 애착이 강하다면 그냥 소설을 쓰는 게 낫습니다.
또한, 강제 진행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서술 무시를 통해 상대의 서술권을 없는 것처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진행자와 참가자 모두 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진행자가 하는 편이 효과가 강력합니다. 주인공이나 조연의 행동이나 대사를 무시해서 놀이 속 효과를 부정하는 것인데, 강제 진행만큼 전면적이지는 않지만 부작용은 강제 진행과 비슷합니다. 기분이 나쁠 뿐 아니라 놀이 속 현실이 무엇인지 혼란을 야기하므로 (선전포고를 한 거야, 안한 거야? 비가 왔어 안왔어?) 이런 일이 잦으면 놀이 자체를 망가뜨리기 쉽습니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인물이’ 다른 인물을 무시하는 것과는 다른 얘기입니다. 인물끼리 대립하는 거야 얼마든지 극적으로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 인물끼리 갈등하는 것은 재미있지만, 참여자끼리 갈등하는 것은 지루하고 혼란스럽지요. 마음에 안 드는 건 무시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대화로 푸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서술을 무시하게 되는 일도 있습니다. 한꺼번에 서술이 쏟아진다거나 (특히 주인공이 다수 등장하는 장면이 이러기 쉽습니다), 다른 세션이나 이전 장면 등 전에 나온 정보를 잊어버렸다거나 할 때 벌어지는 일이지요. 의도적 서술 무시보다는 훨씬 낫지만 이것도 잦아지면 헷갈리므로 선언을 차례대로 한다거나 리플레이를 정리한다거나 해서 구조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좋습니다.
은근슬쩍 서술을 해서 서술권을 침해하는 것은 보통 참가자가 합니다. 이건 논의와 구분하기가 조금 애매할 수도 있지만, 선을 확실히 넘었을 때는 보통 알 수 있죠. 예를 들어 조연이 자신의 주인공 미모를 보고 넋을 잃는다는 선언을 참가자가 한다거나, 중요한 조연과 아는 사이라고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기존 협의 없이 느닷없이 새로운 사실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서술이 사소한 것일 때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사소한 사항이라 해도 서술권 범위 외에 있는 것은 먼저 서술을 해버리기보다는 간단하게나마 제안이나 논의를 하는 것이 이러한 기습 서술을 피하는 방법입니다.
얘네들이 주인공을 보고 넋을 잃으면 어떻겠느냐, 이 조연하고 아는 사이이면 어떻겠느냐 하고 의논을 하는 것은 물론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규칙을 통해 이전받은 서술권을 행사하는 상황 역시 문제가 없지요. 서술권이 없는 요소를 갑자기 서술을 해버려서 서술권자를 당황시킬 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전 논의 없이 서술권자 (보통 진행자)가 전혀 준비하지 않은 방향으로 상황을 끌고가려고 한다거나, 판정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판정을 건너뛰는 것은 서술권 구분을 교란하고 서술권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부작용이 따릅니다. 서술권자는 이 서술을 그대로 따를 것인가 다른 참여자에게 싫은 소리를 할 것인가 하는 곤란한 선택에 처하게 되어 더욱 감정이 상하기 쉽지요.
이러한 기습적 서술권 침해는 특히 정당한 논의 과정이나 판정을 우회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합니다. 협의를 했는데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이런 행동을 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참여자의 개인적 문제일 수도 있고 (RPG를 곤란하게 하는 행동유형 중 ‘예의바른 암살자’ 참조) 때로는 팀내 의사소통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서술권자에 대해 감정적으로 벌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서술권을 장악하려는 행동도 있는데, 이것은 정당한 비판을 다소 격하게 하는 행동과 꼭 구분하기 쉽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논의하는 형태를 취한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가장 문제가 덜하고, 서술권 침해라기보다는 대인관계와 의사소통 문제로 구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서술권자를 위축시켜 서술권 행사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면에서 문제 행동이기는 하다고 봅니다.
감정적으로 벌을 주는 행동은 보통 비판에서 시작합니다. 여기까지는 문제될 것이 없지요. 플레이를 향상시키려는 비판은 정당할 뿐만 아니라 필요하니까요. 정당한 비판에서 감정적 괴롭힘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요소는 크게 반복성, 적대적 감정 표출, 플레이 도중에 길어지는 잡담, 인신공격성 발언, 구체적 해결책 부재가 있습니다. 즉, 특정 서술권자에게 집중적으로 부정적인 의견을 표출하며, 그 비판에 사용하는 단어나 말투가 감정적이며, 플레이 중 당장 필요한 것을 교정하는 최소한의 의사표시를 하거나 플레이 이후 지적을 하는 게 아니라 플레이 도중에 길게 말을 해서 흐름을 끊어놓으며, 특정 서술이 아니라 서술권자 자신의 결함에 초점을 맞추며, 무엇보다 상대가 어떤 행동을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지 제시하지 않아서 고치기조차 어려우면 문제가 됩니다.
이러한 감정적 괴롭힘은 처음 시작은 서술권 행사에 관한 의견 차이였을지 몰라도 (왜 저런 대사나 선언, 기타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감정이 쌓이고 바람직한 해소를 하지 못하면서 쌓인 적대감을 부적절하게 표출하는 대인관계상 문제가 되어가기 쉽습니다. 그냥 애당초 성격과 취향이 맞지 않는 것이 원인일 수도 있고요. 이럴 때에는 진짜 맺힌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서 대화로 해결하거나, 정 해결할 수 없고 서로 맞지 않으면 플레이를 같이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4. 운전은 운전자가
운전석과 뒷좌석이 다르듯이 서술권자의 역할과 지켜보고 조언을 하는 역할은 분명 다릅니다. 그 구분을 하는 것은 서술권자가 다른 사람보다 우월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렇게 구분을 하는 편이 다같이 재미있어서 그렇습니다. 그 점을 잊어버리고 뒷좌석에서, 혹은 조수대에서 운전대를 잡으려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대신 서술과 협의의 차이점을 인식하고, 활발하게 대화를 하면서 서술을 분배하는 의미를 되도록 살리는 것이 안전운전, 아니 건전 RPG의 시작이 아닐까요?

서술권 구분과 마스터링

최적 경험 시리즈 쓰다가 옆으로 샌 또 다른 글입니다. (엉엉)

RPG에는 일반적으로 마스터와 플레이어가 있습니다. 흔히들 쓰는 말인데, 마스터 (진행자)라는 의미, 혹은 플레이어 (참가자)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들의 역할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이러한 역할 구분에는 어떤 결과가 따르는지, 그리고 이 역할 구분을 토대로 하여 진행이란 어떤 활동인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진행자와 참가자의 역할 구분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고전적 구분, 두 번째는 협의형, 세 번째는 분산형 구분입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가 가장 흔하고 이해하기 쉬우며, 세 번째는 일반적인 의미의 진행자가 없는 형태까지 포함해 가장 광범위하고 다양합니다만, 고전적인 형태와 대비하는 의미에서 하나의 범주로 다룹니다.

1. 고전적 진행

진행자는 세계이며, 주인공은 세계와 맞서 싸운다

진행자와 참가자의 가장 고전적인 역할 구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참가자는 각자 하나씩의 인물, 흔히 PC (주인공)의 행동과 생각에 대해 최종적인 결정권 혹은 서술권이 있습니다. 진행자는 그 주인공 일행 외의 모든 극적 요소, 즉 PC 외의 모든 인물 (NPC, 혹은 조연)과 주변 환경에 대해 서술권이 있습니다. 이 서술권이 맞닿는 곳에서 중재하는 것이 합의와 판정이지요.

이러한 고전적인 역할 구분은 이전에 서술권 구분의 영향에서 다루었듯 일행 대 외부세계라는 서사구조에 가장 적합합니다. 자신이 서술권이 없는 요소에 대해서는 정보나 영향력, 예측가능성이 제한적이므로 참가자는 일행 외적인 요소와 협동하기보다는 물리적, 사회적으로 대립하는 것이 쉽습니다. 이러한 정보와 영향력 제한은 의외성과 박진감을 증진시키므로 대립은 더욱 흥미로워지지요.

이러한 고전적인 역할 구분 속의 진행자는 시나리오 제작자이며, 참가자의 적수이자 도전자입니다. 서술권 구분이 완전할 수록, 그리고 그 효과인 예측불허성이 강할 수록 진행자는 혼자 시나리오에 대한 사항을 정하며, 참가자가 알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상황과 도전을 제시합니다. 참가자와 그들이 움직이는 주인공은 진행자가 제시하는 외적 도전과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부딪치며 스릴을 느끼고, 주어진 고난을 뛰어넘는 판단력과 규칙 활용력을 최대한 활용하며, 생각도 못한 상황에 맞닥뜨리는 의외성과 극적 재미를 느낍니다. 한 사람 머리에서 나오는 만큼 서술의 일관성이나 체계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고전적 진행의 장점입니다.

유의할 점은 진행자와 참가자가 제어하는 요소들이 서로 대립하는 내용에 적합하다 해도 진행자와 참가자가 곧 적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일정한 게임적, 극적 재미라는 목적을 위해 놀이 속에서는 서로 다른 역할을 맡자고 합의했을 뿐이지요. 물론 놀이 속
요소와 실제 참여하는 사람 사이의 심적 구분을 지키지 못하면 정말 사람끼리 관계가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만, 이건 관계가 나빠질 수
있는 수많은 원인 중 하나일 뿐입니다. 서로 정보와 서술권이 차단되어 적수를 맡는다 해도 그건 더
큰 재미를 위한 역할 구분인 것이지요.

이러한 창조적인 충돌의 장을 혼자 준비하는 고전적 진행자는 외로운 존재입니다. 의외성과 대립의 맛을 최대한 살리려고 한다면 참가자의 선제지식이나 시나리오 협의는 줄이는 것이 좋겠지요. 따라서 서술권과 정보의 구분이 철저할 수록 진행자는 준비할 것이 많아지며, 상대적으로 책임감도 느끼게 됩니다. 오늘은 재미있는 상황들을 제시했는지, 플레이에 문제가 있다면 그건 진행자 잘못은 아닌지 고민이 느는 것이 고전적 진행자입니다. 소스북이나 시나리오집 등이 이렇듯 외로운, 그리고 바쁜 진행자를 도와주는 준비자료이기도 합니다. 덧붙이자면 이들 시나리오에 참가할 사람은 읽지 말라는 경고가 흔히 붙어있는 것도 고전적 서술권 분배에서 의외성의 극대화를 위한 정보 차단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지요.

이렇게 판을 잘 짜야 하는 고전적 진행 형태에서 진행자의 덕목은 책임감, 치밀성, 임기응변, 성실성, 폭넓은 지식, 그리고 허를 찌르는 재치와 꾀일 것입니다. 참가자에게 제대로 된 도전을 제시하려면 규칙도 잘 파악하고 있어야겠고요. (사실 어떤 진행을 하든 미덕입니다만…) 어찌보면 웹툰 환상주사위에 나오는 TRPG부 부장이자 마스터 나현우가 그런 전형을 잘 나타내고 있지요. 고독하되 충분히 자기 책임을 수행할 수 있고, 속으로는 진행이 힘들더라도 겉으로는 내색 안하고 태연할 수 있는, 고전적 진행자는 어찌보면 영웅적 진행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환상주사위 1화 중 나현우

네이놈 고등학생이 머리가 그게 뭐냐!


2. 협의형 진행

대화와 소통으로 서술권의 벽을 넘다

위의 고전적, 혹은 ‘영웅적’ 진행자의 전형을 보고 진행자에 대한 부담이 지나치다고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진행자가 무슨 초인도 아니고,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는 고독한 영웅이라니 이게 무슨 액션 영화란 말입니까. 실제로 환상주사위에 대한 RPG인의 비판 중에는 마스터의 모습이 왜곡된 RPG관을 심어주기 십상이라는 것도 있었다고 기억합니다.

사실 저 역시 진행자가 고독한 영웅이나 신비한 현자가 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위에 얘기한 고전적 진행자의 모습 역시 순수한 형태로 현실에 존재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실존하는 형태라기보다는 일종의 이념형 (ideal type)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영웅적 진행자와 서술권의 철저한 구분이라는 그 이상은 현실 플레이에도 큰 규범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실제로는 완전히 순수한 형태의 고전적 진행자가 아니라 해도 그런 영웅적인, 혼자서 다 짊어질 수 있는 진행자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은 저도 느껴 보았고 주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현실 속의 진행자는 (이상이야 어떻든지 간에) 모든 준비와 책임을 혼자 짊어질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고, 그러한 플레이가 잘 되었을 때의 장점은 위에 고전적 진행 부분에서 이미 다루었습니다. 그러나 부담을 느낀다면, 혹은 참가자가 진행에 의견을 반영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협의해서 진행상의 사항을 정할 수 있지요.

이러한 협의의 내용은 워낙 다양해서, 사실 협의형 진행의 모습은 굉장히 여러 가지일 수 있습니다. 어찌보면 순수한 이념형 고전적 진행 외에는 전부라고 할 정도로 폭넓지요. 간간이 참가자가 이런 조연을 내보내달라거나, 이런 사건이 벌어지면 좋지 않겠느냐 하고 제안하는 정도일 수도 있고, 캠페인 준비 단계에서 시작해서 장면 하나하나까지 모두가 논의해 정하는 것이 보통인 플레이일 수도 있습니다.(주:후자는 X의에 의한 플레이라고도 합니다만, 이걸 글로 정리하신 분이 제가 쓰는 글에 언급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신 적이 있으므로 따로 다루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협의형 진행은 그보다 훨씬 넓은 개념이므로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만 언급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결국 협의형 역할구분, 그리고 그 속에서 하는 협의형 진행이란 논의와 의사소통을 통해 정한다는 대원칙을 둔 온갖 플레이의 총칭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협의는 각 팀이 ‘필요한 만큼‘ 하면 되니까 어디까지 어떻게 협력하는 게 좋다 하고 방법론적으로 정의하기도 좀 어렵겠죠. 협의로 정하는 부분이
적으면 고전적 진행에 더 가깝고, 협의의 형태나 결과가 정형화되면 아래 분산형 진행에 가까워질 수도 있는 등, 협의형 진행은 하나의
독자적인 형태라기보다는 정도 차이를 구획한 분류에 가깝습니다.

이렇듯 다양할 수 있는 협의형 역할구분을 굳이 정의하자면 서술권 구분은 위 고전적 구분과 원칙적으로 같되, 자신에게 서술권이 없는 영역에 대해 제안과 논의라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참가자는 주인공, 진행자는 그 외의 세계’라는 서술권의 차단을 협의라는 장치로 넘나드는 것이지요. 그 결과 진행자도 주인공의 행동에 대해 제안하고 논의할 수 있고, 참가자도 조연이나 주변 세계에 대해 얼마든지 토의할 수 있습니다.

협의형 진행의 장점이라면 고전적 진행에 비해 진행자의 부담을 경감한다는 점이 있겠지요. 고전적 진행자가 마치 안전망 없이 외줄타기를 하는 곡예사와 같은 부담감이 있다면, 협의형 진행 속의 진행자는 협의의 역할이 강할 수록 튼튼한 안전망을 갖추게 됩니다. 공동 창작과 공동 책임, 공동 부담인 만큼 혼자 부담감을 끌어안고 고민할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한편 공동 창작과 공동 부담이라는 것은 혜택도 공동으로 누린다는 뜻입니다. 즉, 진행에 참가자 의사를 반영하는 만큼 마음에 들지 않는 진행에 벙어리 냉가슴 앓을 필요가 없고, 본인의 로망을 좀 더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위에 이미 말했듯 협의형 진행은 고전적 진행과 완전히 별개의 유형이 아닌, 협의의 정도 차이로 구분한 것인 만큼 고전적 진행의 형태를 상당 부분 유지하면서도 협의를 첨가해 이러한 장점을 향유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협의는 역시 필요한 만큼 하는 거니까요.

또 한 가지 장점이라면, 고전형 역할분담에서 흔히 나타나는 개인 대 세계를 넘어 주인공이 외부 세계를 이용하기도 하고, 이끌기도 하는 등 한결 폭넓은 이야기를 하기 쉬워진다는 것입니다. 서술권과 정보의 차단을 넘나드는 협의라는 장치가 있는 만큼 참가자가 놀이 속 세계에 대해 대립 외의 행동을 취할 운신의 폭이 커지는 것이지요. 고전적 진행에서 가장 하기 쉬운 것이 소수의 협력자와 함께 외부의 위협에 맞서는 고독한 영웅 집단이라면, 협의형 진행에서는 세계나 조연에 대한 정보와 영향력이 훨씬 많은 만큼 지도자라든지 중간조정자 등의 역할을 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워집니다.

물론 이러한 장점의 대가로 위에 고전적 진행을 다루며 이야기한 긴장감이나 의외성이 약해지는 점은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협의를 얼마만큼, 어디까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만, 이미 얘기가 된 사건에 대한 반응은 아무래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튀어나오는 충격과는 다를 수밖에 없겠죠. 주인공이야 얼마든지 놀랄 수 있지만, 참가자가 느끼는 의외성은 어느 정도 줄어들 것입니다. 물론 자신의 로망을 반영하였다든가, 플레이의 내용에 대해 불안할 필요가 없다든가 하는 다른 장점은 있으며, 의외성 약화 자체도 서술의 일관성이나 개연성 확보에는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어느 쪽 진행 형태가 우월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목적과 취향에 비추어 어떤 장점과 단점을 고르느냐에 따라 최선의 선택이 달라질 뿐이지요.

플레이에 협의의 역할이 강할 수록 진행자는 고전적 진행자가 맡는 독자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시나리오 제작 위원회의 일원이라든지, 참가자의 의논 상대로서 또 하나의 참가자가 됩니다. 물론 서술권 분배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므로 주인공 외의 세계에 대한 결정권이 있는 것은 변함없지만, 협의의 역할이 크고 협의가 정형화되어 있을 수록 그 결정은 전체의 의사에 제약을 받습니다. 이러한 제약이 강해지면 결국 서술권 분배 변경에 이르고, 그러한 변경은 곧 논할 분산형 역할분배로 이어집니다. 결국 정도의 차이인 것이지요. (최하단 도면 참고)

협의형 진행자는 위와 고전형 진행자의 덕목도 갖추면 좋지만, 그 이상으로 풍부하고 정확한 의사소통 능력과 다양한 의견의 조율 능력이 중요할 것입니다. 참가자와 협의한 것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는 것도 중요하겠고, 감정적 안정성과 인간관계 관리 능력, 의논한 것을 정리해서 자료로 만드는 꼼꼼함과 기록 습관 등도 도움이 되겠지요. 결국은 워낙 다양한 형태의 플레이를 포괄하는 용어이기에 진행자의 능력도 일률적으로 논하기는 어렵지만, 결국 협의형 진행을 할 때 진행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소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3. 분산형 진행

백짓장도, 진행자 권한도 맞들면 낫다?

위에서 다루었듯 고전형 진행에서는 진행자가 주인공 일행 외에 세계의 모든 것에 대한 서술권이 있고, 협의형 진행도 원칙적으로 비슷하지만 협의를 통해 자기 서술권에 속하지 않은 요소에도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결국 참가자는 주인공, 진행자는 그 외의 나머지라는 전통적인 서술권 분배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협의형 진행에서는 비록 협의의 범위에 따라서는 서술권의 정도나 행사 방식을 수정하기는 하지만, 진행자는 세계, 참가자는 주인공이라는 자신의 서술 영역에 대한 재량은 다소간에 있습니다.

세 번째로 다룰 분산형 역할구분은 바로 그 전통적인 서술권 분배를 해체합니다. 참가자도 조연을 맡기도 하고, 진행자도 주인공 제작에 참여하고, 진행자가 여럿인 경우도 있고, 아예 진행자가 없기도 하지요. 일단 진행자는 세계, 참가자는 주인공이라는 전통적 구분을 벗어나면 정말 무수한 조합이 있는지라 일률적으로 얘기하기는 곤란합니다. 그래서 결국 서술권을 전통적인 형태와 다르게 분산했다, 내지는 진행자의 전통적인 역할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가졌다는 의미에서 분산형 역할구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위의 협의형 역할구분에서는 남의 서술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이 비정형적인 의사소통이라면, 분산형 진행은 서술권 분담을 규칙으로 확실히 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규칙이란 RPG 책에 나온 것일 수도 있고, 팀에서 함께 정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전통적인 서술권 분담 구조를 벗어나는 만큼 명시화하고 명문화를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폴라리스 (Polaris)에서는 ‘마음’ 참가자는 주인공, ‘달’ 참가자는 우호적인 조연, ‘후회’ 참가자는 적대적 조연과 배경세계 하는 식으로 나누고 있지요. 달과 후회가 전통적인 진행자 역할을 나눠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예로 달을 쏘다 (Shooting the Moon)에서는 진행자 없이 두 ‘구애자’와 한 명의 ‘님’으로 나누어서 하는 삼각관계 얘기인데, 자신의 주인공인 구애자나 님뿐 아니라 기타 조연에 대한 서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참가자 전원이 진행자의 역할을 나누어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협의로 타인의 서술권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규칙 자체로 서술권을 나누는 차이는 결국 부담과 확실성의 차이입니다. 협의형 역할구분 속의 참가자는 조연의 행동에 대해서 제안은 할 수 있지만, 일단 제안을 하는 것이 부담이 될 수 있고, 또 제안을 실제로 구현하는 것은 서술권자인 진행자이므로 제안을 받아들일지, 그리고 얼마나 받아들일지는 진행자의 몫입니다. 반면 스스로 서술권이 있으면 자신의 의도를 그대로 반영할 수 있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부담과 확실성의 차이 때문에, 서술권 분배를 다르게 하는 것은 협의와는 또 다르게 플레이의 모습을 변화시킵니다.

서술권을 분배하는 규칙은 협의 과정과 그 내용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똑같이 협의를 하더라도 위에 논했듯 일반적으로 자신이 서술권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발언권이 강하기 십상이지요. 또한, 협의를 구조화하는 규칙도 있습니다. ‘달을 쏘다’에서 인물을 공통으로 제작하는 것이나,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에서 참가자가 장면을 신청하는 규칙이 그 예입니다. 이렇게 동등한 발언권을 보장해서 만든 협의의 구조 속에서 그 발언권 행사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네 캐릭터랑 내 캐릭터가 아까 일로 말다툼하는 장면은 어때?” “내가 생각하는 장면은 네가 말한 장면 다음에 나오는 게 좋은 것 같으니까 네가 먼저 신청할래?” 등등)

달을 쏘다나 폴라리스처럼 전면적으로 서술권을 분산하는 규칙도 있지만, 서술권 분산은 고전적 역할분담 속에 부분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극점수 서술이 좋은 예이지요. 세기의 혼 (Spirit of the Century) 계열 규칙의 면모 발동이나 페이트 점수 소모가 좋은 예입니다. ‘항구마다 여자가 있다’ 면모를 발동해서 이 장면에서 옛 여자가 나타나는 서술을 한다거나, 페이트 점수를 1점 써서 옆에 무기가 있다고 서술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물론 협의로도 처리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위에 얘기한 부담과 확실성의 차이로 돌아오지요. 다르게 보면 극점수를 사용하는 것은 극점수를 소모한 사람의 발언력을 크게 강화한다고 보아 협의를 구조화하는 규칙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주:극점수 논의는 위시송군의 제안으로 추가했습니다. 마음에 안 드시면 위씨 탓[?])

분산형 역할분담의 장점은 협의형과 비슷한 데가 많습니다. 고전적 역할분담에서 진행자에게 속했던 서술권을 참가자에게 분배하므로 진행자 부담이 거의 없고, 아예 진행자 자체가 없는 형태도 있습니다. (달을 쏘다, 폴라리스, Grey Ranks 등) 이러한 역할분담 때문에 참가자의 욕구를 플레이에 직접 반영할 수 있으며, 세계와 주인공 서술권의 이분법이 없으므로 주인공 대 세계라는 이야기 원형보다 폭넓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도 비슷합니다. 주인공에 대한 정보와 서술권이 있는 사람이 세계에 대한 정보와 서술권도 있다면, 그 점을 활용해 주인공이 세계를 이용하는 서술도 할 수 있으니까요.

분산형 역할분담의 한 가지 추가적인 특징이라면 일반적으로 의외성을 강화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서술권과 협의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서술권의 영역에 있는 것은 서술권자가 독자적으로 끄집어낼 수 있고, 협의를 통해 정하는 부분은 어느 정도 미리 얘기가 되어 있어야 하지요. 분산형 역할분담 속에서는 진행자뿐 아니라 어느 참가자라도, 주인공뿐 아니라 세계에 대해서도 그런 의외의 서술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협의나 판정을 통해 조절할 수는 있지만,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 여러 방향에서 다양하게 나온다는 차이입니다. 물론 그만큼 서술의 일관성이나 체계성 유지는 어려워질 수도 있으므로 긴밀한 의사소통과 논의가 필요할 것입니다.(주:이 일관성과 체계성 논의는 제노시아님 지적에 추가한 것입니다. 글 봐달라고 완전 온 동네를 불러냈구만[..])

단점이라면 협의보다 규칙에 기댈 수록 특정 방향의 서술을 유도하는 제약성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예를 든 폴라리스는 비극으로 흐르도록 의도적으로 설계한 규칙이므로, 비극적인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싶지 않다면 부적합합니다. 달을 쏘다 역시 인물의 변화와 희생을 유도하는 만큼 극단적으로 흐르기 쉬운 규칙이지요. 따라서 규칙이 지향하는 유형의 이야기를 원한다면 좋지만, 범용성은 떨어집니다. 범용성과 자유도가 강한 분산형 서술분담 규칙은 안방극장 대모험처럼 규칙의 정형성이 덜하고, 대신 협의를 구조화하는 역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분산형 역할분담 속에서 진행자의 역할은 보통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르고, 아예 진행자가 없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전통적인 진행자의 권한을 다들 나눠가지고 있으므로 전원이 진행자라고도 할 수 있지요. 이러한 분산형 ‘진행자’의 미덕은 서술권을 분배하고 행사하는 규칙을 잘 알고, 그것을 기반으로 다른 참가자들과 의사소통을 활발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규칙으로 부여받은 서술권과 참여자끼리의 논의를 둘다 이용해 자신과 상대의 로망과 반응에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것이 재미있게 노는 방법입니다.

이상과 같은 세 가지 역할분담 유형은 이미 말했듯이 절대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정도 차이입니다. 그 관계를 도식으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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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이 RPG 속에서 서술권 분담의 차이와 그에 따른 진행자의 역할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론이라면 서술권 분담 유형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고, 또 RPG의 서사에도 영향을 미치므로 목적과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RPG라는 하나의 취미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그 속에는 진행자의 역할 (혹은 유무)만 해도 차이가 나고 또 같은 유형 속에도 굉장히 다양한 규칙과 플레이가 있습니다. 그런 다양성 때문에 결과적으로 RPG는 더욱 풍요로운 취미가 아닐까요?

묘사적 규칙과 서사적 규칙 도식

RPG와 최적경험 2편 (아직 미완성, 비공개) 쓰다가 갈라져나온 내용입니다. 도식을 만들기는 했는데 그 글에는 딱히 들어갈 곳이 없어서 일단 여기에 올려놓죠. 이전에 썼던 가상현실과 극적 요소 논의를 시각화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도면은 OpenOffice Draw로 제작했습니다.

묘사적 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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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서사 내에 존재합니다. 이야기의 구조나 진행과 같은 서사적 요소를 직접 다루지는 않고, 판정을 통해 전체 서사 내의 일부 사건을 확정합니다. 보통 전투규칙이 제일 정교하고 양도 많지만, 사회적이거나 정신적인 사건 역시 판정으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물리적인 요소를 되도록 정교하게 규정하려고 할 수록 규칙이 복잡해집니다. 겁스, D&D 3.5 등. 7번째 바다 (7th Sea)나 세기의 혼 (Spirit of the Century)처럼 기본적으로 묘사적인 규칙에 서사적 요소를 추가한 절충형도 있습니다.

서사적 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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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가 곧 게임입니다. 가장 순수한 형태에서는 서사가 끝나는 조건이나 결말의 향방도 규칙으로 결정합니다. 규칙으로 다루는 요소도 대개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호감도나 타락 등 극적인 것입니다. 서사를 규칙의 논리로 완전히 규정할 수는 없는 만큼 규칙은 보통 간결하고 해석의 폭이 큽니다. 결국 서사를 만들어가는 작용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활동에 구조를 부여하는 것이 규칙의 역할입니다. 폴라리스 (Polaris), 달을 쏘다 (Shooting the Moon),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 등.

진행자와 참가자 서술권 구분의 영향

최초의 RPG는 괴물을 죽이고 보물을 획득하는 던젼 탐사물이었습니다. 지금은 훨씬 다루는 내용이 다양해졌지만, 요즘은 과연 RPG가
던젼에서 벗어난 일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대개의 RPG는 던젼 탐사보다는 복잡한 내용이기는 하지만, 외관이 던젼이 아니라고 해도 가장 기본적이고 손쉬운 구도는 일행이 외부
세계와 맞서 싸우는 것이니까요.

그 원인을 저는 전통적인 진행자/참가자 구분에서 찾습니다. 진행자는 ‘세계’를, 참가자는 ‘주인공 일행’을 맡아서 서술
영역을 분배하는 구조에서 참가자는 외부 세계에 대한 직접 서술권이 없습니다. 따라서 제안과 합의와 같은 보완적 수단으로 서술권자에게 의견을 알릴 수는 있지만 그렇다 해도 최종적인 결정권과 구체적인 표현은 서술권자의 권한입니다.

이러한 서술권 구분은 긴장감과 의외성의 원천이기도 하며, 따라서 대립에는 딱 적절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진행자가 제어하는 몬스터와 던젼에 참가자가 제어하는 주인공 일행이 맞서는 내용에 잘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RPG가 던젼에서 나온 지금도 진행자의 서술 영역인 ‘세계’와 참가자의 서술 영역인 ‘주인공’의 대립은 계속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진행자와 참가자의 서술권 구분이 외부 세계와의 대립에 얼마나 적합하게 되어 있는지는 참가자가 세계와 대립 외의 상호작용을 하려고 할 때 나타납니다. 외부 세계의 요소를 예를 들어 이용하거나 조종하려고 하면 정보가 일단 부족합니다. 따라서 서술권자인 진행자에게 묻거나 진행자와 협의해서 설정으로 정보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도 진행자는 생각이 다를 수도 있는 등, 참가자가 직접 서술할 수 있는 영역인 주인공의 행동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듭니다.

그 결과 전통적인 진행자와 참가자 구분 속에서는 대립이 가장 편해집니다. 참가자는 자기 서술 영역이 아닌 세계를 움직이려고 하기보다는 자기 서술 영역인 주인공을 독자적으로 움직여 그 의지를 관철하려고 하고, 반대가 있으면 그 반대를 극복하는 형태가 대체로 가장 빠르고 쉽습니다. 그리고 정보와 제어권의 분리 때문에 이러한 대립은 더욱 긴장감이 넘치고 재미있어지지요.

그런 대립적 소재가 오랫동안 이어져온 것은 역으로 그러한 구도의 생명력과 재미를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주인공 일행 대 세계라고 해도 그
속에는 정치, 추리 등 굉장히 다양한 소재를 담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진행자와 참가자 구도, 그리고 거기에서 가장 쉽게 나오는 주인공
일행 대 세계의 대립 구도에는 상당한 생명력과 유연성, 범용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인공 일행 대 세계라는 구도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RPG의 소재가 다양해지면서 그만큼 나올 수 있는 이야기도 폭이 넓어졌는데, 일행의 모험을 벗어나 개별 주인공의 내밀한 이야기를 다룰 때는 종종 다른 참가자들은 구경을 해야 하고 (물론 관객 시점도 재밌을
수 있지만 적어도 직접 참가는 하지 못하죠), 주인공이 세계와 맞서 싸우는 대신 정보와 권력으로 세계를 이용할 때는 종종
위에 말한 정보와 서술권의 문제에 부딪힙니다.

그래서 RPG로 좀 더 다양한 소재와 이야기를 다루려면 서술권 분배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간단한 예로는 이번 공화국의 그림자에서 참가자가 주인공 (PC) 외에 조연 (NPC)도 맡은 것만 하더라도 이야기의 폭을 확 넓히고 일행의 제약을 줄이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세션 쪽 글 중에서도 그런 플레이 기록이 눈에 띄었고, 길드타운도 그런 예죠.) 마찬가지로 장면 연출권이라든지 세계 설정, 인물 등장 등 다양한 영역에 대한 서술권의 분배 형태가 이야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결국 서술권 분배는 플레이를 위한 도구이고, 도구란 원하는 목적에 맞게 고르고 형성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인공 일행 대 세계라는 구도를 벗어나 좀 더 폭넓은 소재의 플레이를 편하게 하려면 서술권의 분배, 명시적·암묵적 규칙 등 놀이에 사용하는 도구도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책에 있는 명시적 규칙으로 분배한다면 어떤 형태가 원하는 놀이의 모습에 어울리는가, 제안과 논의로 서술권 외의 영역에 영향을 미치려고 한다면 합의가 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는가 등등. 그런 사고의 유희와 구조 분석이 제게는 RPG의 재미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판정, 합의와 서사적 규칙

유용한 사용이 까다로운 겁스 기능 용례 댓글에서 한 논의에 대한 제 생각입니다. 논의 자체는 서술에 직접 개입하는 규칙에 대한 것이었지만, 제가 제대로 대답하려면 서술권 개념 정립부터 해야 할 것 같아서 엮인글로 뺐습니다.

RPG 등 서사적 요소가 있는 놀이 속에서는 이런저런 사건이 벌어집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A는 죽었습니다.” “서울에는 비가 왔습니다.”) 말하는 것이 서술이며, 그 서술을 최종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을 서술권이라고 합니다.

전통적으로 RPG에서는 진행자와 참가자의 서술 영역이 다릅니다. 참가자는 보통 자신의 주인공의 행동, 반응 등이 서술 범위이며, 진행자는 주인공 외의 인물과 배경 세계가 서술 범위입니다. 즉, 원칙적으로 참가자는 주인공에 대해 서술권이 있으며, 진행자는
그 외의 모든 것에 대해 서술권이 있습니다.

물론 서술권의 분리가 절대적이라면 놀이는 애당초 있을 수 없습니다. 각자 따로 놀다가 끝날 뿐이죠. 그래서 RPG에는 자신의 원칙적인 서술 영역이 아닌 범위에 영향을 미칠 수단이 있습니다. 그 수단이란 크게 판정과 합의입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 갑이 조연 을을 설득한다고 할 때, 을의 서술권자인 진행자가 보기에 저건 을이 설득당할 만한 말이라고 생각하고
을이 설득당한다고 서술할 수 있습니다. 즉, 갑의 참가자는 자신의 서술 영역이 아닌 을의 행동에 갑의 행동을 통해 영향을
행사하려고 했고, 을의 서술권자인 진행자가 여기에 명시적으로 혹은 묵시적으로 동의해 그 서술을 했습니다. 이것이 자기 서술 영역
외에 영향을 미치는 수단 중 합의입니다.

반면 갑이 을을 설득하려는데 서술권자인 진행자가 생각하기에는 을이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 같다거나 을이 설득당할지 불확실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갑이 설득이나 협박 등 판정을 통해 을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시도할 수 있습니다. 판정을 해서
갑이 성공하면 을은 설득당하고, 갑이 실패하면 을은 설득당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자기 서술 영역 외에 영향을 미치는 수단 중
판정
입니다.

그러나 판정으로 해결할 때에도 놀이 분위기가 건강하다면 어떤 종류의 합의는 전제하고 있습니다. 즉, 판정으로 결과가 달라질 수는 있다는 합의이지요. 위의 예에서 참가자와 진행자는 을이 판정을 통해 설득당할 수는 있다는 합의를 하고 있습니다. 진행자가 생각하기에 이 시점에서 갑이 무슨 짓을 해도 을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판정을 애당초 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얘 마음은 안 변해. 끝.’으로 끝내면 갑의 참가자의 극적 욕구 (을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무시당하는 결과가 됩니다. 따라서, 이 점을 상의하고 참가자의 욕구를 충족할 다른 방법이 있을까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당장 자기 집이 날라갈 상황에서 말만으로는 씨도 안 먹힐 것 같은데, 그 부분을 해결해주면 어떨까?” 하는 논의가 된다면 그건 또 다른 모험의 태동이기도 하죠.

이때 판정으로 을이 설득당할 수 있다는 합의가 없는데도, 즉 진행자가 생각하기에는 아예 판정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참가자와 그걸 조정하기 싫어서 을에게 말도 안 되는 높은 의지력을 부여하거나 갑의 판정에 역시 말도 안 되는 페널티를 주는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미 파토에 한 발짝 다가선 증세입니다. 판정의 바탕에 있는 합의를 무시했으니까요.

위의 예로는 설득이라는 묘사적 규칙을 들었지만, 서사적 규칙도 마찬가지입니다. 극적 요소를 직접 다루는 서사적 규칙을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로 제안이 괜찮다 싶으면 합의로 그냥 갈 수 있고, 불확실하거나 서로 의견이 다를 때 판정을 매개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서사적 규칙도 묘사적 규칙과 마찬가지로 판정을 할 때는 판정의 결과를 받아들일 것이며 그럴 수 없다면 서로 상의하고 조정하겠다는 합의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서사적 규칙이라고 해서 플레이의 기본 전제를 바꾸는 것은 아니며, 상호 존중과 예의의 중요성은 서사적 규칙을 사용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의외성의 4요소

RPG를 하다 보면 종종 예상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 재미이자 때로는 스트레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외성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전에 역할극에 대한 글에 썼던 것을 따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의외성의 첫 번째 원인으로는 정보 차단이 있습니다. 진행자가 다음에 무슨 적이나 상황을 내보낼지, 참가자가 진행자의 설정에 무슨 반응을 할지 모른다는 것이 가장 고전적이겠지요. 같이 노는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없는 상태에서 서로 서술권의 영역이 다른 점이 여럿이서 하는 놀이에서 의외성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봅니다.

두 번째로는 상이한 극적 욕구가 있습니다. 위의 정보 차단과도 관련이 있는데, 사람이 원하는 것이 다 같지 않은 만큼 각자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는 긴장이 종종 예상치 못한 결과를 냅니다. 폴라리스 (Polaris)의 교섭 규칙처럼 아예 이것을 판정 규칙으로 활용하는 예도 볼 수 있고, 규칙상 위치는 없이 그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밀고 당기는 균형과 긴장이 있을 때 의외성이 가장 커지겠지요.

세 번째는 인물과 상황의 극적 상호작용입니다. 글을 쓸 때도 나타나는 현상인데, 인물과 상황을 움직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올 때가 있습니다. A와 맺어주려고 했는데 자꾸 B하고 가까워진다든지, 치고받고 싸우게 하려고 했는데 친구가 된다든지. 이렇듯 인물이 독자적 생명력을 띠기도 한다는 점이 보드게임과 다른 RPG의 재미이겠지요. 심지어는 사전 논의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극적 욕구를 서로 조화했을 때도 실제 상호작용의 결과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기도 합니다.

네 번째는 판정의 의외성입니다. 주사위나 카드 등 무작위의 요소가 있을 때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데, 계속 펌블이 떠서 형편없는 적에게 주인공 일행이 몰살당한다든지 비교적 강한 적을 한 방의 크리로 단칼척살해버린다든지 하는 때가 가장 의외이겠죠. 무작위수가 아니라 하더라도 판정 과정 자체에서 정보 차단, 상이한 극적 욕구, 극적 상호작용 등 다른 의외성의 요소를 판정 규칙이 종종 끌어냅니다.

이렇게 의외성의 요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언급했듯 의외성은 재미를 증진할 수도 있고, 재미를 저해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의외성을 어떻게 하면 가장 적당한 수위로 조정할 수 있는가, 어느 요소를 살리고 어느 요소를 제한하고 싶은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역할극에 대한 생각

종종 규칙 없는 RP (소위 역할극, 역극, 혹은 소꿉놀이)를 함께 하는 오체스님과 얼마 전에 한 얘기인데, 오체스님은 개인적으로 규칙 없는 놀이가 가장 좋다고 하시더군요. (주사위만 나오면 불안해하시는 모습에 짐작은 했습니다만..(..)) 반면 저는 규칙이 있는 편을 선호하고요. 제가 생각하기에 역할극이 RPG와 다른 점은 크게 다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역할극은 놀이와 인간관계 사이에 분리가 없습니다. 진행 방향, 예를 들어 주인공이 괴물에게 이기느냐 지느냐 하는 문제는 모두 명시적, 혹은 묵시적 합의로 결정하고, 결정을 내릴 객관적이고 외부적인 기준이 없으므로 결국은 놀이 속 인물의 문제가 아닌 그 놀이를 하는 사람의 의사소통이 됩니다. 객관적 기준이 없는 만큼 이러한 의사결정을 인간관계와 분리하기는 더욱 어려워지고요.

물론 규칙이 있는 RPG에도 규칙 없이 합의로 결정하는 영역은 광범위합니다. 캠페인 설정이라든지, 인물 설정, 때에 따라서는 놀이의 진행 방향 등. 그러나 서로 진행 방향에 대해 의견이 다를 때, 혹은 결과에 대해서는 생각이 같아도 과정의 난이도나 따르는 대가에 대해 이견이 있을 때 이를 해소할 기준은 있습니다. (그 기준이 어떤 성격이기를 원하느냐에 따라 가장 좋은 규칙도 달라지겠지요.)

역할극에 그러한 기준이 없어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은 보통 둘 중 하나입니다. 하나는 진행 방향에 대한 비생산적인 신경전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관계를 생각해 서로 조심하고 눈치보면서 자신의 욕구와 극적 재미를 양보하는 것입니다. 배려가 나쁜 건 아니지만, 인간관계의 논리인 배려가 놀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면 어느쪽도 결과에 만족하지 못할 우려가 있습니다.

물론 역할극도 감이 맞는 사람끼리 하고 의사소통이 원활하면 얼마든지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어렵기는 합니다.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모든 것을 합의해야 하고, 플레이와 좋은 감정을 유지하려면 서로 더 조심해야 하니까요. 적어도 놀이와 인간관계 사이에 규칙이라는 기준의 방벽이 없는 만큼 마음껏 밀고 당길 여유는 훨씬 적어집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의견이 강하고 성격이 괄괄한 편이라 역할극을 할 때는 더 조심하게 됩니다. 특히 상대가 순응적인 성격일 때면 자칫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다 흘러갈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그런 성격인 만큼 상대 역시 강한 의견으로 반대해 오든, 아니면 규칙을 매개로 스스로 원하는 방향을 밀든 활발하게 반대하고 논의하고 부딪치는 편을 선호합니다.

반면 성격과 취향에 따라서는 그런 전투적(..)인 의사결정보다는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는 화합을 더 중시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자기 의견을 존중해주고 감각이 잘 맞는 상대가 있다면 상대에게 떠밀리거나 플레이가 재미없을 우려는 많이 줄겠지요. 따라서, 중요한 것은 각자의 상황, 그리고 놀이와 인간관계를 얼마나 분리하는 것이 본인에게 재밌느냐인 것 같습니다.

두 번째, RPG에 비해 역할극은 긴장감과 의외성이 적습니다. 긴장감과 의외성의 원인은 크게 네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같이 플레이하는 다른 참여자의 생각과 결정을 완전히 예측할 수 없다는 점, 둘째는 참여자가 각자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나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긴장, 셋째는 인물과 상황의 상호 반응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의외성, 넷째는 주사위나 카드 등 규칙에서 나오는 우연의 요소입니다.

역할극에서는 의외성의 네 번째 요소인 규칙은 일단 배제하고 있고, 두 번째인 역동적 균형 역시 위에서 얘기한 조심성과 상호 배려 때문에 약해질 여지가 큽니다. 원하는 방향으로 밀고 나가다 보면 의견 충돌에 휘말릴 가능성은 커지고, 해소할 객관적 기준이 없는 만큼 이러한 충돌은 기피의 대상이 되니까요.

의외성의 첫 번째 요소인 정보 차단은 경과를 미리 얘기하고 정하는 것이 많을 수록 약해질 텐데, 역할극에는 위에 얘기한 이유로 의견 충돌의 완충지대를 둘 동기가 있으므로 제 경험상으로는 미리 정해두는 게 꽤 많아지더라고요. 남는 것은 의외성의 세 번째 요소인 상호 반응 정도인데, 이것도 경과를 이미 정해둔 정도에 비례해 약해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물론 긴장감과 의외성이 적다는 점 역시 취향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장점일 수 있습니다. 긴장감과 의외성이 적다는 얘기는 다시 말하면 안정적이고 안전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니까요. 플레이의 방향에 따라 인물이 죽거나 인간관계가 돌이킬 수 없게 되거나, 원치 않는 극적 방향으로 흐르거나 하는 결과를 미리 차단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특히 놀이 속의 인물과 특정 극적 결과에 애착이 크면 클 수록 이러한 안정성은 큰 매력이기도 합니다.

이상과 같이 역할극과 RPG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제 개인적인 선호도야 있지만, 저에게 좋은 것이 다른 분에게도 좋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각자 원하는 게 다르니까요. 또한, 역할극을 하지 않는다 해도 놀이와 인간관계 분리의 정도라든지 의외성의 정도도 취향에 따라 조정할 수 있을 테고요. (다 규칙대로 하되, 참가자 동의 없이 주인공이 죽는 일은 없다든지.) 그런 점을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역할극은 흥미로운 소재인 것 같습니다.

자료 중심 배경과 분위기 중심 배경

이전에 Story Games 게시판에서 보았던 개념인데, 이번에 승한님의 트랜스휴먼 스페이스 (Transhuman Space) 번역을 보면서 다시 생각이 나서 제가 이해한 대로 적어봅니다.

자료 중심 배경은 바로 트랜스휴먼 스페이스 같은 것으로, 대개의 전통적 RPG 규칙에 사용하는 설정은 자료 중심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세계의 모습은 다소간에 이미 잡혀 있으며, 구체적인 자료와 지명, 인물 설정 등이 추가 설정과 전개의 실마리가 됩니다. 자료 중심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꽤 많은 설정 자료를 (특히 진행자가) 읽고 익히는 것이 보통입니다.

분위기 중심 배경은 반면 자료가 비교적 적습니다. 책에 나오는 자료만으로는 완전한 캠페인 배경을 채워넣을 수 없을 정도이지요. 대신 창작과 즉흥의 기반이 될 만한 함의와 암시를 통해 설정에 대한 이해와 기대치를 조율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많은 인디 RPG에서 볼 수 있으며, 설정 분량 자체가 적고 구체적인 지명과 집단보다는 광범위의 상황 설정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의 설정란 앞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습니다. (번역은 로키가 대충대충)

다른 RPG를 많이 진행해 봤다면 진행자이든, 제작자이든 한 사람의 상상에 맞추어 일관성 있는 세계를 만들어가는 데 익숙할 것입니다. 개들은 그런 식으로 플레이하게 만든 게임이 아닙니다. 개들을 플레이할 때면 각 참가자의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모아서 공통 현실로 만듦으로써 일관된 세계를 만들어갑니다.

이게 어떻게 보면 분위기 중심 설정의 기본 철학입니다. 이 세계는 대충 이런 곳이니 구체적인 부분은 스스로 채워가라. 거기서부터 생기는 해석 차이는 문제나 병리가 아니며, 오히려 공동 상상 공간을 짓는 재료라고 말이죠. 인디 RPG에 분위기 중심 설정이 많이 보이는 건 한편으로는 예산과 시간이 별로 없는 개인 제작자라는 배경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이들 규칙 자체의 즉흥적이고 협동적인 성격도 작용하지 않을까 합니다.

개인적 취향으로는 자료 분량은 적은 편을 선호하기는 합니다. 구체적인 자료가 많으면 일단 읽고 소화하는 시간이 들고, 저는 기억력이 별로인 데다 준비 많이 하는 걸 싫어하고 스타일에 즉흥성이 강해서 좀 하다 보면 어느새 원래 설정과는 딴세상이 돼버리거든요.

그래서 자료가 많은 설정이라도 즉흥의 발판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필요한데, 저는 또 자료가 많으면 얽매이는지라 대범하게
무시해버리는 걸 또 잘 못하는 것 같아요. (“자..잠깐. 이 집단이 어디로 도망쳤었지? 지금 여기 나타나면 안 되는 거
아냐?!” (뒤적뒤적)) 그런 이유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고 즉흥을 뒷받침하는 게 목적인 분위기 중심 설정이 마음이
편하더군요.

제 취향 얘기에서 벗어나서 남의 취향 얘기도 하자면(?) 이런 쪽의 선호도는 또 놀이를 하는 목적, 즉 놀이를 하면서 재미를 느끼는 부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많은 분량의 구체적인 자료를 제일 선호할 듯한 취향은 아무래도 모사주의
(Simulationism) 쪽? 가상 세계의 탐험에서 재미를 느낀다면 세계의 자세한 내적 논리와 일관성이라는 기반이 필요할
테니까요.

물론 자료 중심 배경과 분위기 중심 배경은 본질적으로 다르거나 서로 배척하는 개념은 아닙니다. 접근 차이는 있지만 자료 중심 배경이 제공하는 자료는 이미지를 형성하고 창작을 자극하는 역할을 하며, 분위기 중심 배경도 창작과 즉흥의 방향을 제공하고 이미지를 만들 정도의 자료는 제공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 설정이 어느 분류에 속하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설정 자료를 제공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 목적을 더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가이겠죠. 목적이 플레이를 손쉽게 시작하게 돕는 것이든, 치밀한 배경을 구성해
그 세계를 탐색하는 것이든, 창작의 기반과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든, 서로 기대치와 이미지를 조율하는 것이든 그 목적에 이
정보가 꼭 필요한지 생각해가면서 하면 더욱 효과적인 설정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