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놀면서 든 생각

캐릭터의 생사에 대한 생각

지난 토요일에는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 플레이를 하면서 참가자로서 맡은 주인공이 죽는다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악마에 씌운 주민이 제 파수견 게이브리얼 허커비에게 총을 쏘는 도전을 하자 주사위 5개로 받았을 때였죠. 그렇게 하면 5d10 피해를 굴리게 되고, 피해 규칙상 가장 높은 두 주사위의 합이 16 이상이면 중태, 20이면 즉사이므로 상당히 위험한 선택이었죠.

마스터: 게이브에게 다시 산탄총을 내쏩니다. “타아아앙!!”
마스터: 6,6 빼기
게이브: 바닥에 구르다가 총이 어깨에 맞자
게이브: 억눌린 비명소리가 들리고, 피가 튑니다
게이브: “이런 망할..!”
게이브: 3, 4, 2, 2, 1 빼기

매튜: “게이브!!”
매튜: (그것도 피하지 못하냐 한심하다!! -> 한심한 동생 주사위 추가)

사실 한심하긴 한 게, 저 상황에서 주사위를 더 끌어오는 서술을 할 수도 있었는데 제가 안 하고 그냥 있는 주사위로 받아서 무지막지한 피해를 굴리게 된 거였거든요. 아직 끌어올 수 있는 주사위가 꽤 있었고 총격으로 상승도 할 수 있었으므로 피해 안 입고 막으려면 못 막을 건 없었는데 굳이, 피해를 입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판정 장면의 긴박감. 바로 코앞에서 총을 쏘는 상황에서 주사위 끌어오는 RP를 하면 그 급박한 혼란이 덜 드러날 것 같았고, 또 총이 나온 김에는 누군가는(!) 좀 다쳐야 총격의 극적 의미가 더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일행 중 가장 어리고 경험이 없는 (아마도 이번이 첫 임무?) 게이브가 가장 적합할 것 같았고요.

둘째, 캐릭터 자체의 극적 의미. 모범생인 형과는 달리 게이브는 위에서 보다시피 불량하고 거친 성격입니다. (태몽에 천사가 나와서 이름이 게이브리얼 마이클인데, 애 꼴을 보니 그 천사는 사실 루시퍼였다는 게 중론(..)) 제일 파수견답지 못한 게이브가 임무 중 다치거나 죽는다면 게이브의 자신의 이야기도 더 극적 의미를 띨 테고, 형 매튜의 감정선도 자극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위와 같은 생각은 어느 정도 들어맞기는 했습니다. 총에 맞은 게이브가 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악마를 몰아내 파수견다운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고, 형인 매튜는 죽어가는 동생을 필사적으로 살려내는 장면을 연출했죠. 두 사람의 감동적인(?) 우애의 현장도 엿볼 수 있었고요.

마스터: 매튜가 포기하지 않고 세차게 뺨을 때리자, 곧 게이브가 부스스 눈을 뜹니다.
매튜: 한방 더 때립니다. “얼간아!”
게이브: “으으..” 피를 흘려 극도로 약해진 채..
게이브: “이 자식.. 때리지..마..”

다만, 참가자로서 플레이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주인공이 저렇게 되자 부작용이 있긴 했습니다. (사실 규칙상 꼭 게이브가 누워있어야 하는 건 아닌데, 부상의 심각성이라든지 하는 앞뒤 서술상 그게 자연스러웠죠.) 서술권이 사라진 이상 남은 것은 잡담권뿐이라 남은 세션 동안은 온갖 실없는 소리 하며 구경하는 걸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물론 그것도 제 선택이었으니까 불만은 없었습니다. 부상 여부와 정도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는 점도 그 선택에 도움이 되었고요. 그래도 제일 극적이라고 생각한 선택이 극에 직접 참여하고 영향을 미치는 수단을 박탈했다는 점에서 극적 요소로서의 등장인물과 참가 수단으로서의 등장인물 사이에 생길 수 있는 긴장관계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또 진행자로서 제가 참가자들에게 종종 느끼는 불만, 즉 주인공들이 ‘몸을 사린다’는 불만을 참가자 입장에서 조명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분명 주인공을 아끼지 않아서 좋은 극적 결과를 낼 때도 있지만, 그 대가는 적어도 한동안은 플레이에서 빠지는 것이니까요. 이것이 조작할 말이 하나밖에 없는 참가자의 어려움이기도 하겠지요.

주인공 몸을 더 사리게 되는 이유는 주인공을 함부로 죽이거나 다치게 하는 것이 이기적인 플레이가 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주인공은 참가자의 자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체 일행, 나아가서느 전체 플레이의 자원이기도 하니까요. 예를 들어 위에 게이브의 부상은 제가 생각하기에 재미있기는 했지만 플레이 시간과 초점을 한동안 제 캐릭터에게 집중시키는 결과가 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행이 하나 줄어드는 것도 남은 일행에게는 큰 애로사항이 될 수도 있죠. 전투력이 감소한다거나, 필요한 기능을 사용할 수 없어진다거나. 포도원의 개들은 덜하지만 예를 들어 D&D나 겁스라면 문제가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즉 이미 혼잣몸이 아니라는 사실도(?!) 주인공 몸을 더욱 사릴 만한 이유가 되겠죠.

이런 점이 문제가 된다면 대체 인물 제공 등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개연성 등을 생각하면 완전하지 못한 해결책인 때가 많고, 무엇보다 제가 느낀 역설은 객관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제 취향 때문이기도 하니까요.

왜  그런가 하면 참가자의 유일한 직접적 참여 수단이 주인공인 건 그만큼 그 주인공에 몰입하고 집중하라는 구조적 배려일 텐데 저는 특정 인물에게 몰입하거나 애착을 갖는 걸 잘 못하거든요. 개별 인물의 행동과 내면은 전체 이야기의 일부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서 참가보다는 진행, 내지는 진행자 없는 규칙의 참가자 역을 선호하는 것 같고요.

결국 취향과 상황에 따라 서술권의 적정 범위도 달라지는 것 같고, 그런 제각각의 욕구를 충족해줄 수 있을 만큼 서술권의 종류와 범위를 여러 가지 조합으로 제공하는 다양성이 이 취미의 매력이기도 하겠죠. 물론 지금 제 상황처럼 직접 서술권이 전혀 없는 관객 입장도 재미있어서 이래저래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꽤 오랜만에 참가를 해보니 이렇게 플레이를 또 다른 각도로 볼 수 있어서 좋군요.

플레이 안하기

금요일 밤은 폴라리스를 플레이할 예정이었고 참가자도 모두 왔습니다만, 플레이는 하지 않았습니다. 다들 집중이 안 되고 참가자 한 분의 인터넷 불안정 등 악재가 겹쳤거든요. 대신 아주 재밌게 놀았습니다. 세상 사는 얘기, 타로점, 고민 상담, 실없는 농담 등등. (실없는 농담은 승한님이 제일 많이 하셨다는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

플레이는 참여자 모두의 집중력과 의욕을 먹고 사는 괴물 활동입니다. 모두 재미있는 플레이를 바라는 점은 같다 해도 집중이 잘 안 되는 날도 어쩔 수 없이 있습니다. 그럴 때 억지로 플레이하면 결과도 좋지 않고, 기분도 안 좋아진다는 게 제 경험입니다. 그래서 저와 승한님이 주도해서 플레이는 쉬자고 했고, 결과적으로 더 재밌는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플레이를 할까 말까 하는 결정은 상황에 크게 의존하고, 쉬는 일이 너무 잦으면 플레이가 흐지부지되기 쉽겠지요. 하지만 정말 오늘은 제대로 플레이할 수 없겠다 하는 판단이 서면 다른 걸 하고 노는 게 더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팀원이 흩어지지 않고 같이 논다면 팀의 결속력을 다지는 효과도 있겠죠.

이번 폴라리스 플레이는 그런 여러 가지 이유로 ‘안하길 제일 잘한 플레이’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즐거운 시간 함께해주신 세 분께 감사드리고, 일요일 밤에 다시 뵙겠습니다. 이번에는 ‘하길 정말 잘한 플레이’로 만들어보도록 하죠!

내가 생각하는 RPG의 재미

오늘 뱀프님과 엔님과 한 얘기입니다만, 제게 RPG의 재미란 근본적으로 ‘나의 로망이 남에게 재해석받고 남을 통해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멋진 것, 혼자 했던 몽상을 나만의 백일몽에 그치지 않고 남에게 보이고, 남이 거기에 새로운 의미와 색채를 부여해 ‘우리의’ 공동 상상 공간을 만드는 과정. 자신의 상상을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표현의 욕구와 타인의 상상을 음미하고 싶은 감상의 욕구가 서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창조적 과정이 되어 순환하는 그 계속적인 의사소통에서 저는 RPG의 재미를 느낍니다.

저에게 RPG 재미는 위와 같이 극적 욕구와 소통이 초점인 만큼 좋아하는 RPG 규칙도 모두의 로망을 끌어내고, 극적 발언권을 보장하고, 이야기의 방향을 함께 끌어가는 구조에 중점을 둔 규칙들입니다. 전투의 전술이나 가상공간의 물리 규칙은 대체로 훨씬 뒷전이지요. 전술이나 물리 규칙의 일관성 쪽은 CRPG에서 훨씬 잘 되어 있는데 RPG에서는 별로 따지고 싶지 않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RPG의 재미는 진행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진행을 할 때 저는 주인공 (PC) 배경과 관련 인물을 분석하고 활용하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배경 설명에 나와 있든, 해석하고 유추한 것이든, 참가자와 토의한 것이든 남의 머릿속에만 있었던 인물과 배경에서 새로운 사연과 이야기를 발견해 제 것으로,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비할 데 없는 재미거든요. (이 할아버지는 너그러우면서도 위엄이 넘칠 것 같아. 저런, 이 녀석은 헤어진 여자에 대해 무서운 고뇌에 시달리는 불쌍한 인생이었군. 이쪽은 꾸밈없이 혈기왕성한 젊음의 표상?)

다른 모든 RPG인에게도 RPG를 하는 동기, 자신이 생각하는 RPG의 재미가 한 가지이든 여러 가지이든 있으리라고 봅니다. 그 재미가 어떤 것인지, 그 재미에 자신의 플레이 방식이나 사용하는 규칙이 어떻게 도움되는지 하는 생각이 자신에게 맞는 방법론의 실마리이겠지요.

플레이와 구매, 식사와 식욕

귀스타브 도레,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1855)[/footnote]”]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구스타브 도레, 1855)Wishsong님의 최근 구매 글을 보니 문득, 요즘에 저는 RPG 구매가 확 줄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때는 갖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지름신과 싸우던 때가 있었는데 (그리고 거의 항상 졌습..), 최근 한 반 년은 갖고 싶은 것도 확 줄고, RPG 관련 구매를 할 때도 예전에는

‘갖고 싶어! (하악하악)’

…이었다면 요즘에는

‘음.. 아무래도 꼭 필요하겠는걸. 돈이 되나?’

…하는 분위기가 되더군요.

이런 변화가 생긴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산 책을 읽을 시간이 별로 없다는 점도 있겠고, 워낙에 규칙을 많이 구입하고 읽어봐서 웬만한 목적에 사용할 규칙은 이미 갖춘 점, 지름신 강림 제1 사유인 RPG 게시판 방문이 줄었다는 점 등이 주요 요인입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구매가 줄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정기적인 플레이를 한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RPG를 할 수 있는 시간 동안 RPG 제품을 읽는 대신 플레이를 해야 하다 보니 책을 별로 안 사게 되었고, 현재 하는 캠페인과 규칙에 집중하다 보니 새로움에 대한 욕구도 줄었죠. RPG 게시판 방문이 감소한 것도 정기 플레이를 해서인 것 같습니다. 플레이가 없을 때는 허전해서 플레이나 규칙책 얘기라도 보려고 게시판을 많이 돌아다니게 되지만, 플레이가 있으면 플레이하고, 플레이 기록 올리고, 플레이 계획 짜는 쪽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게 되거든요. 그리고 가끔 RPG 게시판을 찾아가도 별로 구매 욕구는 생기지 않는다는 게 제 경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에게 RPG 실제 플레이와 구매의 관계는 마치 식사와 식욕의 관계와도 비슷하더군요. 허전하면 뭔가 자꾸 주워먹으면서 배를 채우려고 하지만, 배가 부르면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는 원리죠. 구매를 하더라도 지름신과 씨름하는 욕구형 구매가 아닌, 현재 캠페인에 좋은 발상이나 자료를 제공할 수 있는 제품 중심의 필요형 구매가 되는 것 같습니다. 공화국의 그림자 캠페인 자료용으로 클론 워즈 애니를 구입한다든지, 수정주의 플레인스케이프에 참고하려고 플레인스케이프 자료집을 산다든지 하는 식으로요.

물론 이건 제가 그렇다는 얘기지 모두가 그런 건 아닙니다. 정기적인 캠페인을 하면 오히려 구매 욕구가 늘어난다는 분도 봤고요. 어쨌든 저에게 RPG를 정기적으로 플레이하는 것은 즐거울 뿐만 아니라 돈까지 아끼는 활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동시성 플레이의 가능성과 도전 – 실전편

수정주의 플레인스케이프는 플레인스케이프를 배경으로 수정주의 역사 (Revisionist History) 규칙을 사용해서 플레인스케이프 세계에 있던 사건과 인물을 연구하는 학자들을 다룬 내용입니다. 위키를 통해 각자 글을 올리고, 서로 글을 참조하거나 의견이 대립하기도 하면서 함께 연구 대상, 그리고 그들을 연구하는 연구원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내용이지요.

전에도 플레인스케이프를 배경으로 한 비동시성 플레이 바이 위키 플레이를 시도했지만, 참가 부진과 관심 부족 등의 이유로 오래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비교적 지속적인 플레이 바이 위키를 하면서 혼자 생각하던 때하고는 또 다른 흥미로운
가능성과 도전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우선, 지난번 글에서도 얘기했듯 비동시성 플레이는 시간 활용이 우선 눈에 띄는 장점입니다. 다섯 명이 한꺼번에 시간을 내서 일주일에 몇 시간씩 플레이했다면 절대로 단기간에 저렇게 많은 이야기를 진행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각자 짬짬이 시간을 내서 글을 올리는 비동시성 플레이는 참여자가 동시에 모일 수 있는 짧은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훨씬 많은 시간을 낼 수 있더군요.

물론 그렇다고 동시에 모여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의 가치가 적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규칙  논의라든지 경매 등은 댓글로 처리하는 것보다는 직접 얘기해서 해소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간단하죠. 하지만, 동시성 플레이에서는 모두 모일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시간을 논의로 흘려보내기가 아까운 반면 수정주의 플레인스케이프에서는 플레이 시간에 대한 부담 없이 논의만 할 수 있는 점이 편합니다. 연구원 사이에 생기는 입장 차이라든지, 경매 동맹(..?) 체결이라든지, 앞으로 이야기가 갈 만한 방향 등을 자유롭게 논하는 시간은 플레이의 또 다른 재미이며, 플레이를 원활하게 이끄는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플레이를 원활하게 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바로 비동시성 플레이에 어울리는 규칙입니다. 동시성 플레이용으로 만든 규칙을 게시판과 같은 비동시성 플레이에 사용하면 플레이가 늘어지고 재미없어지기 쉽다는 것이 제 경험입니다. 참여자 간에 서술권 분할이 있으니까요. 참가자는 자기 주인공 행동만 서술하고 나면 외부 세계나 조연에 대한 서술권이 없어서 진행자 글을 기다려야 하고, 진행자도 묘사와 조연 행동을 쓰고 나면 주인공에 대한 서술권이 없으니 참가자 글을 기다려야 합니다. 즉 누구도 완전한 글을 쓸 수가 없으니 감질나고 답답할 수밖에요.

애당초 비동시성 플레이를 염두에 두고 만든 ‘수정주의 역사’는 진행자와 참가자 사이, 그리고 참가자와 참가자 사이의 서술권 분할을 없애서 모든 참여자가 완결된 글을 쓸 수 있게 합니다. 따라서 다른 참여자가 글을 올리기를 애타게 기다릴 것 없이 자기 글만으로도 연구를 진행할 수 있지요.

이런 형태의 놀이가 돌려가며 소설을 쓰는 것과 어떻게 다른지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특히 ‘나의 수끌리어는 이렇지 않아!’라든지 ‘마라켄라반투스는 천생연분이야!’ 같은 의견 충돌을 어떻게 해소하는지 말이죠. 그 해답은 수정주의 역사가 규칙이 있는 놀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이 점이 잘 드러나는 것이 반박 경매 규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의 방향에 대해 의견 충돌이 발생하면 이를 해소할 방법은 규칙에서 명시적으로 정하고 있죠. 연루된 인물에 대한 연구원의 권위도에 연구 자금을 합산한 ‘입찰액’을 서로 겨루고, 다른 연구원들도 연구 자금을 투자해서 어느 한 쪽을 도우면서 연맹과 대립을 거칠 수도 있습니다. (저는 한 경매에서 양쪽을 다 돕기도 했지만..(..)) 진행자의 결정권이나 참여자 간 역할 배분을 경쟁적 규칙으로 대체한 셈이죠.

물론 경매까지 가는 것은 비교적 예외적인 상황입니다. 패배의 위험과 연구 자금 손실 가능성 등의 이유로 다들 경매에는 아무래도 신중해지죠. 반대로 말하면 경매 규칙은 직접 사용하지 않을 때도 놀이 속 의사결정과 의견 충돌 해소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남의 글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아도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면 반박 기사를 쓰지 않겠죠. 반면 중요하게 느끼는 사안이라면 위험을 무릅쓰고 반박을 하는 등 이익과 손실을 합리적으로 저울질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박 경매 규칙은 플레이 내 의사 결정에 중요한 변수입니다. (이러한 속성은 규칙의 영역 중 두 번째 효과와도 관련이 깊습니다.)

규칙을 사용하지 않아도 규칙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예라면 평소에도 강하게 작용하는 경쟁 심리입니다. 글을 쓰는 만큼 권위도와 연구 자금이 올라가고, 권위도와 연구 자금이 높을수록 반박 경매에서 유리하므로 반박 경매 규칙은 경쟁적 글쓰기를 유도하죠. 이러한 경쟁 심리는 지속적인 흥미와 참여를 유발하는 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반면 글의 분량이나 질이 아닌 편수에 따라 권위도와 자금을 올리므로 자칫하면 졸속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은 부작용일 테고, 이 점은 서로 늘 감시하고 지적해야겠죠. 눈치가 보여서 너무 졸속은 하기 어렵다는 점도 있고요.

진행자가 없다는 점은 플레이 내적 서술뿐 아니라 플레이 외적 구조에서도 훨씬 수평적인 의사 결정을 유도합니다. 거의 항상 진행자 역할이다 보니 제가 뭔가 주도해야 하는 상황에 익숙한 편인데, 진행자 역할에서 벗어나고 보니 제가 안 끌고 가도 다들 알아서 잘 하십니..(퍽) 규칙 논의, 위키 페이지 구조 변경, 새 연구 대상 추가 등등, 다 능동적으로 하시니까 참 마음이 편하더군요.

물론 다들 경험이 있는 RPG인이고 성격 자체가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분들이 모여서 그런 면도 있겠죠. 하지만, CBMaster님의 글 게임 밖의 마스터: 팀 리더? 에서도 엿볼 수 있듯 진행자라는 역할 자체에 자잘한 플레이 외적 결정까지 떠맡게 되는 속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참가자가 귀찮아서 그럴 수도 있고, 왠지 참가자에게는 의사 결정을 주도할 권한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도 이유가 되겠죠. 그래서 요즘에는 수정주의 역사처럼 진행자 없는 플레이의 가능성을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수평적 의사 결정 구조는 위키라는 매체의 속성에서도 크게 도움을 받습니다. 편집 권한이 있으면 누구든지 편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리자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고, 연구자금과 권위도 관리나 링크 추가, 페이지 구조 변경 등을 모든 참여자가 자유롭게 할 수 있죠. 모든 변화를 관리자가 직접 반영해야 했다면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결국 그 관리자에게 권력 집중 현상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공동 편집 외에도 위키의 편리한 기능은 플레이 효율에 크게 기여합니다. 예를 들어 이전 버전 추적 기능으로 누가 언제 어떤 편집을 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는 점은 투명성에 필수적이고, 풍부한 편집 구문은 글을 한결 예쁘게 만들어주죠. 댓글 플러그인은 위키에 게시판의 편의를 더했고, RSS 피드를 통해 새로운 편집과 댓글이 올라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태터툴즈나 텍스트큐브 쓰시는 분은 RSS 리더 플러그인으로 블로그와 위키를 연계할 수도 있고요. (이 블로그 왼쪽 사이드바의 Recent RSS 항목에서 PBW를 누르면 수정주의 플레인스케이프 피드가 나옵니다.)

전에 위키를 다룬 글에서 위키를 가리켜 기능성은 최고, 사용성은 꽝이라고 한 적이 있지만, 위키 사용성이 반드시 낮다고만 볼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서너 캠페인에 거쳐 캠페인 위키를 사용해본 결과, 참가자들도 완전 바보는 아니던데요? (퍽퍽) 개인적으로 굉장히 편하게 쓰고 있어서, 관심 있으신 분이 있다면 제가 도쿠위키를 설치하고 저에게 맞게 이것저것 바꾼 과정을 글로 올리겠습니다.

이상과 같이 수정주의 플레인스케이프를 플레이하며 느낀 점을 적어보았습니다. 지금까지 플레이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참여자분들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꾸준히, 재미있게 할 수 있으면 좋겠군요. 게시판 플레이 등 비동시성 플레이를 하고 싶으신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얘기였으면 좋겠습니다.

매력적인 인물이란?

로키: “서로의 방에 몰래 숨어들어서 밤늦게까지 얘기하면서 놀곤 했어요.”
로키: 쟈네이딘은 그립다는듯 미소짓는군요.
로키: “나이트 로어틸리아도 그런 친구가 있으셨나요?”
로어틸리아: “…아뇨.”
– 공화국의 그림자 18화

가공의 인물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는 무엇일까요? 근사한 외모, 뛰어난 능력, 흥미로운 과거… 모두 매력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만, 저는 저런 것만으로는 그 인물에게 확 몰입하기는 좀 부족하더군요. 그냥 뭐, ‘멋지네’ 하고 끝.

제가 정말로 어떤 인물에게 마구 끌리기 시작하는 시점은 그 인물이 ‘인간’으로 와닿는 순간입니다. 불완전하고, 잘못도 하고, 고민하는 인간적 틈새를 엿보는 순간 허구 속의 인물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갖춘 하나의 개체로 다가오죠.

이러한 인간적 허점은 제가 RPG에서 ‘성인형 인물’과 ‘소년형 인물’을 구분하는 기준이기도 합니다. 성인형 인물 (성인용 인물 아님)은 능력은 뛰어나다 해도 실수도 하고 고민도 하는 등 인간적 모습을 보이므로 쉽게 극적 상황의 중심이 되고, 그를 중심으로 한 인간 관계와 서사도 풍부해집니다. 참가자가 이런 인물을 하면 진행자로서는 신명이 나죠.

반면 소년형 인물은 언제나 옳아야 하며, 잘못 생각하거나, 패배하거나, 인간적 허점을 보이는 데 매우 방어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정확히는 그 인물을 다루는 사람이 방어적으로 되지만요.) ‘나의 완벽함에 모두 감탄해줘! (제발!)’이라는 기반에서 그다지 깊이 있는 극적 내용이 나오기는 어려운 일인지라, 소년형 인물을 극적 서사의 중심으로 끌어들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매력도 덜하고요.

성인형 인물과 소년형 인물은 다루는 사람의 연령이라기보다는 태도의 차이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짐작하실 수 있듯 대체적인 연령 분포를 보이기는 합니다. 물론 개인차가 큰 부분이라 섣부른 일반화는 금물이지만요. 또한, 극적인 플레이를 지향하지 않는다면 소년형 인물은 별 문제가 되지 않으며, 성인형 인물이 품은 고뇌와 인간적 허점은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에는 어떤 플레이를 원하느냐 하는 지향에 크게 좌우되겠죠.

또한, 인간적 고뇌가 인물의 매력이기는 하지만 이것도 지나치면 매력은커녕 짜증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소년형 인물과는 또 다른 이유에서 곤란한 ‘소녀형’ 인물이죠.(주:소녀형 인물 논의는 대화 중에 동환님이 얘기하신 부분에 많이 의존합니다.) 이 역시 성별이나 나이와 필연적인 연관성은 없는데, 고민과 감정에 빠져든 나머지 헤어나오지 못하는 인물을 말합니다.

성인형 인물의 매력은 인간적 고민과 허점에 있다고 했습니다만, 그 이상으로 심금을 울리는 점은 성공적이든 그렇지 못하든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든 삶에 문제는 있고, 그러한 잘못된 것을 어떻게든, 설령 방향이 잘못되었다 해도 바로잡으려는 몸부림은 누구든지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이니까요. 그러한 노력을 통해 성인형 인물은 극적인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가며,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반면 소녀형 인물은 그 심적 고통과 복잡한 문제들이 곧 인물의 우주가 되며, 빠져나오기는커녕 그 괴로움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는 순교자 컴플렉스는 이 유형을 매력적이라기보다는 공포스럽게 만듭니다. 인물의 주관적인 감정을 절대시한 나머지 다른 참여자의 재미를 해치는 선택을 하는 것도 소녀형 인물을 잡은 참여자에게 나타날 수 있는 특징입니다.

‘인물’이라고 했지만 사실 성인형, 소년형, 소녀형 인물은 인물 자체의 유형이라기보다는 그 인물을 조종하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성숙한 극적 감각을 갖춘 참여자라면 일견 소년형 혹은 소녀형인 인물을 ‘혼자 잘났다고 떠드는 독불장군’이라든지 ‘자기 감정 속에서만 허우적거리는 어린애’ 하는 멋진 성인형 인물로 얼마든지 탈바꿈시킬 수 있죠. 반면 그런 성숙함이 부족한 참여자는 인물의 그러한 단점을 단점으로 알아보지도 못한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납니다.

매력적인 인물의 구체적인 성격, 특징, 과거 등등은 무한히 다양합니다만, 그 다양성 속에서 제가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은 이들이 이렇듯 인간적 허점과 고민, 그리고 정체되지 않는 역동성을 갖추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특징을 성인형이라고 부르든 뭐라고 부르든, 성숙한 극적 재미에 입체적인 인물은 필수죠. RPG의 인물들은 좀 더 많이 실수하고, 고민하고, 허점을 보여도 좋지 않을까요. 극적 깊이가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님들의 침묵 (?)

진행자의 전형적인 악몽이라면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진행자: 자, 우리 무슨 캠페인 할까?
참가자:
진행자: 뭐 할래? 모험물? 활극? 로맨스? 정치물? 공포물?
참가자:
진행자: 응? 말 좀 해봐.
참가자: 진행자 네 맘대로 해. 우린 아무거나 다 좋아.
진행자: 에, 그래도… 어, 알았어.
(며칠 후)
진행자: 자 얘들아! 정치물 캠페인을 준비했어! 재미있게 해보자.
참가자:
참가자: 그런데 있잖아…
진행자: 응?
참가자: 정치물만 빼고 다 좋아.
진행자: @#$%!

이렇게까지 극단적이진 않더라도 팀 내 의사결정은 종종 한 사람 (보통 진행자)의 부담이 됩니다. 사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아닙니다. 결정에는 책임이 따르고, 이것저것 생각을 해야 하는 등 귀찮으니까요. 나 외에 다른 사람이 결정의 부담과 책임을 전부 짊어진 채, 그 결정이 좋으면 혜택을 누리고, 나쁘면 모든 책임을 부정하고 욕만 하는 건 편한 위치이죠.

하지만, 막상 결정의 부담을 진 사람에게 이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침묵하는 다수’ 대신 결정을 내리고 그 책임을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니까 말이죠. 침묵하는 다수는 좀 더 좋은 결정이 나오도록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데도 그 결정이 잘못된 것은 결정권자의 개인적인 실패가 되고, 결국 결정권자는 지쳐갈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다른 해악도 큽니다. 우선 침묵하는 다수는 플레이에서 뭔가 마음이 안 드는 점이 있어도 침묵하기 쉽습니다. 아무래도 결정 단계에서 참여하지 않았으니 그만큼 발언권이 적은 거죠. 이러한 침묵은 그만큼 재미없는 플레이를 만듭니다. 속으로는 ‘재미없는데…’ 하고 생각하면서도 발언력은 적으니 웬만하면 참는 거죠.

또 하나, 침묵하는 다수는 진행자를 쉽게 독재자로 만듭니다. 혼자 결정의 부담을 짊어진 사람에게는 결정 권한도 그만큼 돌아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고, 참가자의 줄어든 발언권만큼 진행자의 발언권은 커집니다. 그래서 참가자의 침묵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결정권을 짊어진 진행자도 있지만, 오히려 참가자의 언로를 차단하거나 참가자 의견을 묵살하는 진행자도 많습니다. 어느 쪽이든 플레이는 재미없어지는 결과가 됩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넘어가면, 제가 진행을 하면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바로 이 참가자의 침묵입니다. 저는 세상 무엇보다 ‘이도 저도 아닌 것’을 죽도록 싫어하는데, 동의도 거절도 제3의 길도 아닌 저 침묵 속에 숨은 것은 하나의 사회적 폭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참가자가 우물쭈물하며 아무 대답 안 하는 순간이야말로 진행을 때려치우고 싶어지는 순간입니다. 확답을 줄 수 없다면 그 이유를 (정보가 부족하다든지, 말해도 안 들어줄 것 같다든지) 얘기해야지. 마냥
침묵하면서 시간을 끄는 태도는 상대를 무시하거나 결정의 부담을 상대에게 전부 떠넘긴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주 불쾌합니다.

물론 이런 침묵이 아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닙니다. 참가자로서 저는 꽤 지적이 많은 편이었고, 이러한 지적은 종종 진행자와 충돌로 이어지곤 했거든요. 그런 피곤한 일은 피하고 싶은 게 사람 심리이긴 하죠. 하지만, 그렇다 해도 반대를 숨긴 침묵보다는 차라리 정직한 충돌이 건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침묵한다고 해서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요. 있는 갈등을 숨길 뿐이죠.

침묵을 깨는 것이 곧 캠페인을 깨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침묵의 유혹은 더욱 큽니다. 얼마 전 레이디의 그늘 캠페인 분위기가 영 가라앉고 PbW (플레이 바이 위키) 외전도 별로 쇄신에 도움이 안 돼서 참가자들과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본 결과, 생각보다 참가자들이 플레인스케이프 (Planescape) 배경에 지식이나 흥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굳이 플레인스케이프처럼 어려운 배경을 사용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죠.

그렇다고 플레인스케이프 자료를 통째로 번역하기에는 배경에 대한 열의에 비해 제 부담이 너무 컸고, 배경을 바꿔서 다른 형태로라도 캠페인을 유지한다 해도 참가자들에게 그다지 의지나 여유가 있어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망할 수 있는 미래는 삽질, 오로지 삽질뿐이었기에 결국 캠페인을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침묵을 깨서 캠페인이 깨진다면 결국 침묵이 가장 현명하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서로 솔직하게 의논해서 드러난 문제들은 전부터 있었던 것이지 의논에서 말미암아 생긴 것들은 아니었으니까요. 바쁜 시간을 내서 재미없는 캠페인을 계속하느니 캠페인을 과감하게 끝내고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것이 훨씬 즐겁습니다. 어느 쪽이든 열린 논의를 두려워할 이유는 되지 못하죠.

RPG는 사회적인 놀이이며, 사회성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의사소통입니다. 의사소통에 무엇보다 치명적인 독은 침묵입니다. 침묵 속에 숨은 것은 반드시 동의나 만족이 아니며, 불만과 반대도 얼마든지 해소되지 못한 채 침묵 속에 묻혀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인지 저것인지 알 수 없는 ‘침묵’이라는 안개를 헤매면서 서로 눈치 보는 플레이는 문제를 키우게 됩니다.  할 말이 있는데 참는 침묵은 배려와 양보가 아닌 수동적 폭력이며 책임전가, 침묵의 강요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권력을 붙들려는 유치한 공작일 뿐입니다. 침묵의 장막을 걷으면 플레이도, 인간관계도 훨씬 건강해진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정말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반대자가 아니라, 반대하되 말이 없는 겁쟁이들이다.”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추신: 쓰다 보니 가끔 RPG 얘기를 하는 건지 정치 얘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어서 좀 섬뜩… 어쨌든 정치 얘기가 아니라 RPG 얘기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모인 곳에서는 대체로 비슷한 이치가 작용하니까 유사점이 느껴질 수도 있을 뿐이죠.

비동시성 플레이의 가능성과 도전

최근 레이디의 그늘 캠페인이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진행자와 참가자들의 시험기간이 서로 달라서 근 한달간 플레이를 쉬게 된데다가, 진행자 사정으로 방학중 플레이가 불투명해졌기 때문입니다. 한달 쉬는 것도 캠페인 존속이 불확실한데 ORPG에서 네 달을 쉰다는 것은 대개의 경우 캠페인을 그만둔다는 얘기나 다름없으니까요.

이 시점에서 제가 제시한 방향은 플레이의 체제를 아예 바꾸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채팅으로 하는 동시성 플레이가 아닌, 글로 쓰는 비동시성 플레이로 말이죠. 얼마전에 인상깊게 읽었던 안인중님의 PBS(Play by System)와 TRPG (외부 링크, 다이스&챗 로그인 필요) 시리즈, 蘭님과 나누었던 PBEM 얘기, 그리고 게시판 플레이용 규칙인 수정주의 역사 (Revisionist History) 번역과 같은 맥락에서 나온 생각이었습니다.

거기서부터 얘기가 시작돼서 결국 방학이 끝날 때까지는 캠페인을 수정주의 역사 규칙으로 전환해 위키상에서 플레이하기로 했습니다. 규칙 뿐만 아니라 캠페인의 시간축 자체가 달라져서, 본 캠페인의 사건을 미래 (제 생각에는 약 100년 후)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형식의 외전 플레이가 되었습니다. 설정 결과 세 주인공이 서로를 배신하고 후대까지 악명이 자자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게 되었죠. (…) 그리고 이 미래가 바로 외전의 시간대인 것입니다.

이렇게 채팅으로 하는 동시성 플레이에서 위키로 하는 비동시성 플레이로 전환한 것은 여러가지 흥미로운 가능성과 기회를 제공한다고 봅니다.

우선 가장 직접적인 것은 캠페인 자체의 존속. 안인중님의 말씀마따나, RPG를 하기 위해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지만 사실 정말로 어려운 것은 일주일에 3~4시간을 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동시에’ 3~4시간을 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채팅 플레이가 어려운 사정이 있어도 비동시성 플레이 체제로
전환하면 형태는 달라도 캠페인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꾸준하게 유지될 때의 얘기지만요.

여기에 부수되는 것이 시간 부담이 줄어든다는 점입니다. 한번에 뭉텅이 시간을 내야 하는 동시성 플레이와는 달리 비동시성 플레이는 틈이 날 때 짬짬이 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입니다. 또하나, 이건 비동시성 플레이 전반이라기보다는 수정주의 역사의 특징이지만 TRPG 규칙을 사용하는 비동시성 플레이와는 달리 진행자가 계속해서 글을 올려야 한다는 압박도 없습니다. (사실은 진행자도 없긴 합니..퍽)

조금 다른 얘기를 하자면 포도원의 개들을 잠시 게시판 플레이로 했을 때 느낀 점인데, 동시성 플레이에 특화된 규칙을 비동시성 플레이에 그대로 사용하려고 하면 동시성 플레이의 열등한 대체물밖에 될 수가 없더군요. 제아무리 급하게 글을 올려도 채팅 기준으로는 속터지도록 느리니… 반면 수정주의 역사의 경우 일주일에 글이 3~4개만 올라와도 플레이가 충분한 속도로 진행되므로 글로 하는 플레이에 보다 적합하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비동시성 플레이에는 비동시성 플레이에 특화된 체계와 규칙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각설하고, 비동시성 플레이가 제공하는 또다른 가능성이라면 캠페인의 사건을 신선한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역시 수정주의 역사 자체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생각해 보면 동시성 플레이와 비동시성 플레이의 성격과도 연관이 깊은 것입니다. 채팅이나 대면상황은 닥쳐오는 사건을 그때그때 ‘겪는’ 데에 적합하다면, 시간 간격을 두고 생각해 가며 글을 쓰는 것은 어떤 사건의 의미와 진상을 ‘음미하는’ 데에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수정주의 역사라는 규칙 고유의 특성상, 캠페인의 사건을 미래에서 바라본다는 점은 더더욱 캠페인에 새로운 자극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미래의 이야기를 외전으로 먼저 진행했기 때문에 나중에 본 캠페인으로 돌아왔을 때는 일정한 방향성, 혹은 제약이 생겨 있을 테니까요. 어려움도 있겠지만 확실히 생각해볼 거리는 풍부해질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사태(?) 이전부터 다소 침체되어 있었던 캠페인 분위기를 쇄신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이점들을 기대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기대치일 뿐이고, 예상되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그중 첫번째는 꾸준한 흥미유지가 가능할까 하는 점입니다. 동시성 플레이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비동시성 플레이는 많은 경우 정기적으로 모여야 하는 제약이 없기 때문에 흥미를 잃으면 슬그머니 그만두기도 쉽기 때문입니다. 일단은 소재가 세 참가자분이 만든 인물인만큼 어느정도 흥미의 요소는 갖춰졌지만, 흐지부지되지 않고 계속해서 플레이를 이끌어 가는데는 모두의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두번째는 캠페인의 미래가 어느정도 결정된다는 어려움입니다. 이는 위에서 말했듯 새로운 자극이자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제약이 될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채팅 플레이로 돌아왔을 때 정해진 미래에 맞추기 위해 진행자가 치밀한 구성을 짜고 그 속에서 참가자들이 선택을 제약받을 위험도 있죠. 100년 후의 미래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꼭 당대의 진상에 부합하라는 법은 없는만큼 옴쭉달싹도 못할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캠페인의 큰 줄기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의식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정도의 제약은 오히려 창의성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문제라기보다는 흥미로운 도전으로 생각하고 있지만요.

세번째는 선택한 매체 고유의 특징이지만, 위키라는 매체의 생소함이 있습니다. 전에 정보관리에 대한 단상 위키 편에서 다루었듯 위키는 아직 생소하고 사용편의가 떨어지는 매체에 속합니다. 그래서 게시판 플레이가 낫지 않을까 생각도 했지만, 버젼 비교, RSS 내보내기, 백링크 기능, 풍부한 구문 지원 등 위키의 지나치게(..) 뛰어난 기능성 때문에 결국 위키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사용성 부분은 자세한 설명서를 작성해서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앞으로의 플레이에 어떻게 하면 위키라는 매체의 단점을 극복하고 장점을 활용할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이상과 같이 플레이 체제를 동시성 플레이인 ORPG 채팅에서 비동시성 플레이인 위키 플레이로 전환한데 대한 제 생각을 적어 보았습니다. 전반적으로 비동시성 플레이는 동시성 플레이의 대체물을 넘어 전혀 새로운 가능성들을 제공한다고 생각됩니다만, 실제로 어떻게 나타날지는 플레이 경험만이 증명해 주겠죠. 방학이 끝난 다음에 이러한 기대와 문제의식이 얼마나 드러났는지 비교해 보아도 재미있을듯 합니다.

과거의 그늘 – 양심성 지름(…)

과거의 그늘 (The Shadow of Yesterday)은 판매도 하고 무료 다운로드본도 제공하는 (혹은 하던) 인디 RPG로, 생각해 보니 1판으로 라이테이아 전기를 돌렸었고 2판으로는 레이디의 그늘 캠페인을 돌리기 시작했는데 무료 다운로드본만 활용하고 한번도 산 적은 없더라고요.

왠지 찔리고 있던 중, 최근 보니까 다운로드란에 더이상 규칙책 다운로드가 안 보이자 양심이 있다면 지르자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1, 2판 모두 (합법적으로 받은) 파일로 있긴 하지만요. 또 1판은 몰라도 2판은 최근판이므로 규칙 요약도 유료 규칙에 준해 비밀번호를 달기로 했습니다.

물론 유료본에는 무료판에 없는 내용도 있고, 레이아웃과 일러스트가 들어가 있어서 단순 문서 파일보다는 훨씬 읽기가 좋다는 것도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이 규칙책에서 받은 혜택을 생각해 보면 고마워서라도 돈을 쓰는 게 도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그래서 여러모로 양심성 지름이라는 생각이 드는 과거의 그늘이었습니다. 결제하고 한두시간만에 다운로드 권한을 내준 닉슨씨의 신속함도 고맙고 (저거 수동으로 해야 하는 건데… 이 양반도 직장에서 심심한가), PDF도 예뻐서 기분좋네요. ^^

과거의 그늘 표지에 나오는 언니

하지만 이 언니는 왠지 무서운걸..(..)

어째서 RPG를 하는가

예전에 썼던 우리들의 미래에 RPG는 있는가라는 글의 후속편이 되겠군요.

정신없이 바쁜 요즘, 그때 그 글에서 제기한 질문을 다시금 자신에게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제 대답은 ‘이런 때이기 때문에 더욱 나의 미래에 RPG는 있다’입니다.

취미생활이 있는 게 왜 좋은지 하는 일반론을 길게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 한가지만을 자꾸 생각하다 보면 편협하고 단조로워지기 쉽고, 적당한 기분전환은 일상의 지루함에서 벗어나 좀더 넓은 시야를 가지게 해주죠. 저도 지금이야 하루하루가 즐겁지만 나중에는 지치고 지겨워질지도 모르고, 그런 때 공부와 경력 말고도 생각할 게 있다는 점은 생활에 활력소가 되어줄 것입니다. 주중에 힘든 와중에도 주말의 RPG 타임(..)을 생각하면 즐겁고 설레는데 지금 와서 포기할 수 있을리가요.

취미생활의 일반적인 혜택 외에도 RPG라는 놀이 특유의 이점도 꽤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사회적인 취미라는 점. 독서나 가끔은 CRPG 역시 즐기는 여가이지만 (MMORPG는 별로 좋아하지 않고), RPG처럼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취미는 그 자체로 좋은 점이 많다고 봅니다. 실제로 여기 와서 너무 힘들었던 처음 1년간, 온라인상으로라도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위안이 됐는지 모릅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들은 재밌는 이야기가 떠오르는데, 배경을 얘기하자면 미국에서 80년대 정도까지 꽤 세를 모았던 단체 중에 BADD (Bothered About Dungeons & Dragons)라는 데가 있었죠. D&D는 악마숭배와 범죄행위, 청소년 자살을 유발하는 사회악이라는 것이 BADD의 주장이었습니다. 전성기에는 극우 종교인들 뿐만 아니라 경찰과 교육계도 줄줄이 낚여서 RPG 탄압에 한몫했지만, BADD와 그 지지자들이 제시한 ‘증거’라는 것이 모순과 오류, 거짓투성이인 등 전체 주장이 사실무근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흐지부지되었습니다.

이때 당시 BADD에서 자랑스럽게 제시했던 자료 중 하나는 당연히도 D&D가 원인이 됐다고 하는 청소년 자살 통계였죠. 이 자살들이 D&D가 원인이었다는 근거는 전혀 없었다는 점은 둘째치고, 웃겼던 점은 이렇게 뻥튀기시켜도 BADD에서 제시한 소위 D&D 청소년 자살율은 전체 청소년 자살율보다 훨씬 낮았다는 점입니다.

사실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죠. 가장 자살의 위험이 큰 청소년은 친구가 없는 경우인데, 정기적으로 D&D나 다른 RPG를 하는 아이들은 이미 마음이 맞는 친구들을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요. BADD의 주장이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보여주는 한편 사회적 놀이의 효용을 잘 보여주는 예이기도 합니다.

RPG에는 또 사회 훈련의 요소도 많이 들어갑니다. 예전에 다챗에 플레이어의 실력이란?(외부 링크)이라는 글을 썼을 때, 다른 분의 댓글에 ‘RPG를 잘하는 사람은 뭐든지 잘한다’는 식의 답을 단 적이 있죠. 장난스럽게 말하긴 했지만 전 이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RPG를 제대로 하려면 시간약속 지키기, 타인에 대한 배려와 양보, 자기 주장 펼치기, 교섭, 경청, 사회적 뉘앙스 파악 (이른바 ‘눈치 깔기’), 사람보는 눈, 시간 관리, 대인관계의 갈등 해소 능력 등이 필수적으로 들어가니까요.

RPG에서 위와 같은 것들을 잘한다고 실제 사회에서도 잘한다는 보장은 없긴 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상관관계가 꽤 있습니다. 실력있는 RPG인은 진공상태에서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닐테고, 저부터도 RPG를 하면서 위와 같은 기술들, 특히 시간약속 지키는 게 늘었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딴거 다 필요없고, 저는 RPG가 재밌기 때문에 RPG를 하고 있으며, 재미가 있고 시간이 허용하는 한 계속할 것입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할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한 남는 시간에 제가 방에 틀어박혀 변태가학 비디오를 보든(..) RPG를 하든 그건 누구도 뭐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것이 (아마도?) 판단능력 있는 성인으로서 제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하는 스스로의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선순위는 있으니까 상황에 따라 RPG 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RPG는 제게 실생활보다는 우선순위가 낮아도 대개의 다른 여가보다는 우선순위가 높기 때문에, RPG를 하기 위해 텔레비젼 보는 시간이나 웹서핑할 시간은 줄일 수 있습니다. 사실 바쁘다 바쁘다 해도 잘 보면 쓸데없는 데 들어가는 시간이 꽤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결국에는 우선순위 정립의 문제이죠.

‘나의 미래에 RPG는 있는가?’ 현재까지 저의 답은 한마디로 ‘당연하지! (버럭)’입니다. 바쁘면서도 신나는 요즘 생활이 그 때문에 더욱 행복하다는 사실이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