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놀면서 든 생각

캐릭터의 이야기는 플레이로 생명력을 얻습니다.

며칠 전 주말의 괴물(Monster of the Week) 단편 OR을 했는데, 캐릭터의 배경은 실제로 플레이에 등장해야 생동감을 얻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마스터링을 해 주신 머스터드젤리님과 같이 플레이해 주신 호경님, 퐁당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단편은 타천사들과 싸우는 플레이였는데, 제 캐릭터는 우연히 사건의 중요한 단서를 얻어서 목숨의 위협을 받는 음모론 덕후였습니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타천사들에게 성물을 탈취당하고 동료들을 잃어서 복수를 꿈꾸는 수녀와, 세상에 닥칠 위험을 예견한 마녀였죠.

셋 중에서 제 캐릭터가 가장 초자연적 요소와는 거리가 먼 일반인에 가까웠지만, 실제 플레이 동안에는 캐릭터의 이야기를 무척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첫 장면에서 제 캐릭터의 배경 이야기가 플레이로 생명을 얻은 덕분입니다.

다른 캐릭터의 배경 이야기는 ‘그런 일이 있었다’ 정도로 언급이 되는 수준이었고, 플레이어가 직접 언급을 해야 플레이에 드러났지만,  제 캐릭터는 첫 장면에서 그 단서 때문에 친구들을 잃고, 목숨의 위험을 받았습니다. 또한 플레이의 상당 시간을 잃어버린 단서를 되찾기 위한 모험에 할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욱 생생하게 친구들을 잃은 슬픔이나 복수심, 천사들에 대한 두려움 같은 롤플레이가 더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WOD에는 처음 플레이를 시작하는 캐릭터가 어떤 인물인지 이해하기 위해 플레이어와 스토리텔러가 일대일로 서막(Prelude) 장면을 가집니다. 사실 WOD를 제대로 해보지 못해서 그 중요성을 지금까지는 잘 몰랐는데, 이번에 왜 서막 장면을 플레이해야 하는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플레이에 직접 등장하지 않는 캐릭터의 배경이나 과거는 자세하게 만들 필요도, 지나치게 많이 만들 필요도 없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습니다. RPG에서 각종 배경과 설정은 식재료입니다. 플레이는 요리하고 먹는 과정입니다. 맛있는 음식은 식재료를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만들어집니다. 또한 식재료의 양이 많으면 쉽게 요리를 만들 수 있지만, 음식은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합니다. 그 이상 준비는 낭비일 뿐입니다.

불량 마스터의 벼락치기 세션 준비 1: 계획

준비할 시간은 1개월이 넘게 있었는데 내가 그렇지 뭘 어느덧 제12회 일일플레이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읭? 난 준비가 안 됐는데?
제 사정 같은 건 생각도 없이 시간은 무자비하게 가버렸군요ㅠㅠ 테플도 못했는데 난 안 될 거야 아마
그래도 일주일이면 길다면 긴 시간이겠죠. 원래 마스터링 준비는 제 약점인 만큼 이번에는 체계적으로, 그리고 더는 미룰 수 없도록 공개적으로! 준비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하려는 시스템은 RPG 디자이너이자 이론가인 Robin D. Laws 씨가 준비중인 신작 Hillfolk입니다. 킥스타터 후원을 한 위시송씨를 통해 미리보기 PDF판이 있어서 한 번 해보고 싶어졌지요. 인물 간의 인간관계와 감정적 욕구를 중심으로 진행하는 점, 감정적 균형을 나타내는 극적 판정은 참가자 간의 흥정과 자원관리로 하고 그 외의 절차적 판정은 위험과 이득 사이를 저울질하는 방식으로 한 점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힐포크 이미지
준비는 다음과 같은 단계로 하기로 하였습니다.
1. 룰 읽어보기
2. 배경 설정
기본 설정: 한국의 철기를 대략의 모티프로 한 설정
– 주변지역 지도 그리기
– 풍속과 문화 설정: 힐포크 방식대로 참가자에게 던질 질문 목록 작성
3. 룰 요약본 완성
4. 인물 설정
– 인물 관계도
– 시트: 인물 능력치, 양극 설정
5. 보조도구 준비
– 플레이어 자리에 놓는 받침 준비 (PC 능력치, 칩 놓을 자리 등)
– 이름표
– 마스터 노트
– 관계도 표시용 인물카드와 화살표, 압정
6. 플레이테스트
– 시간 없으면 집에서 몇 가지 장면을 해보는 간이 플레이테스트로 대체
으으 귀찮아 엉엉엉 살려줘

여자니까 마스터다?

이전 캠페인의 플레이어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는데, 나름 재미있어서 적어봅니다.

이방인님과 저는 둘다 생명력을 띈 인물의 내면과 의지에 따라 흘러가는 인물 중심적 플레이를 즐기는 편입니다. 이방인님은 인물에 많이 몰입하시고, 심지어 나중에 끝나면 자신이 그런 RP를 했다는 기억도 나지 않으신다고 하더군요.
저도 인물 중심 마스터링에 정리했듯 조연 (NPC) 초기 설정에서 시작해 인물 간의 상호작용에 진행의 상당 부분을 맡깁니다. 조연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가는 일은 물론 많고, 그냥 ‘얘는 이렇게 할 것 같아서’ RP를 했다가 나중에서야 그 이유가 떠오르는 일도 있습니다.
이방인님과 저의 차이라면 이방인님은 하나의 인물을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참가 (플레이)를 선호하시고, 저는 여러 인물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진행 (마스터링)을 선호합니다. 그 차이가 성별 차이에서 기인하는 면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일반화이지만, 도식화하자면 남성인 이방인님은 개체 중심적 사고가 발달한 예가 아닌가 합니다. 남자들의 로망은 일반적으로 개인의 활약과 승리, 고뇌가 중심이고, 물론 사회와 주변 인물과 관계도 맺지만 그런 사회성은 주인공 개인의 존재에 비해서는 덜 중요합니다. 초보자님과 제가 이방인님 인물들을 가리켜 ‘마초’라고 하는 것은 그런 특징도 포함하고 있겠죠.
반면 저는 관계 중심적 사고가 더 발달한 것 같습니다. 여자들의 로망에는 물론 개인도 존재하지만, 개인 간의 관계와 감정이 그 개인의 활약만큼이나 중요합니다. 특히 감정이 가장 얽히고 섥히는 가족과 연애관계 (까놓고 말하면 피와 섹스)는 지대한 관심사이지요. 제 경험으로는 일반적으로 여성 참가자가 주인공의 가족이나 연애 설정에 적극적인 편입니다. 그리고 종종 진행자가 그런 설정을 어떻게 다룰지 몰라서 설정이 묻혀지곤 하죠. (안습)
이러한 대조의 예를 들자면, 이방인님이 맡으셨던 주인공 자락스 토레이는 루바트 오르가나라는 조연이 대신 죽어줘서 목숨을 부지하고는 시스에서 제다이로 전향한 인물입니다. (죽은 이의 뒷모습) 흔한 듯하면서도 보편적인 당위성이 있는 설정이고, 강한 떡밥이기도 했죠. 다만, 죽은 루바트와의 ‘관계’라는 요소는 별로 없었습니다. 자락스라는 인물의 영웅 서사시의 중요한 부분이기는 했지만 결국 자락스에게 루바트는 모르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인간관계의 불편함이 없는 편리한 추상이었죠. 희생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상징하는.
참가자 설정에 나온 이 떡밥을 활용하는 것은 진행자인 저였는데, 제가 루바트 오르가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그 가족은 심정이 어땠을까’였습니다. 아들이자 형제가 죽어서 돌아오면 억장이 무너지는 건 너무 당연한데 루바트의 선택에 대한, 그리고 (가족 관점으로는) 루바트를 죽게 한 시스에 대한 마음은 어떨까 궁금했습니다. 자락스에게는 관계가 부재한 상징이었던 루바트의 이야기가 저에게는 관계의 그물에 남은 커다란 구멍으로 다가왔습니다. 게다가 마침 오르가나는 (이방인님이 무작위 제조기에서 뽑으신 이름이었지만) 스타워즈 영화 시대의 알데란 왕가기도 하겠다, 아주 정치물로 갈 수도 있겠더군요.
그래서 생긴 설정이 루바트의 동생 다룬이었습니다. 죽음으로 가는 선택을 한 형도, 그 죽음의 계기가 된 자락스도 용서할 수 없으며, 아끼고 존경한 형에 대한 열등감의 반작용으로 무서운 야심가가 된 모순투성이 어린아이. 자락스의 적수에서 시작해서 공의회의 적수로서 캠페인 갈등의 한 축을 담당한 다룬은 철저히 관계 중심적 사고의 산물이었습니다. 제게 루바트는, 그리고 나아가서 자락스도 그 개체만으로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던 거죠. 혈육의 죽음으로 인한 고통, 그리고 가족 간에 얽히게 마련인 감정과 그에 따르는 무수한 왜곡과 오해를 생각하고 나서야 비로소 제게는 루바트도 자락스도 제대로 와닿았습니다.
그래서 관계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진행자란 꽤나 편리한 위치입니다. 인물을 관계 중심으로 생각하다 보면 인물의 단위 자체가 ‘다수’가 되는 거나 다름없는데, 진행자는 여러 인물을 설정할 수 있으니까요. (참가자의 의견이나 설정을 받을 수는 있지만 조연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일반적으로 진행자에게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플레이 중 사건의 결과도 여러 인물에게 한꺼번에 적용할 수 있고요. 같은 원리로 개체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인물만 맡으면 되는 참가자가 일반적으로 더 편할 것입니다.
위와 같이 생각해 보면 진행자는 여성에게 꽤 적합한 역할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정확히는 관계 중심적으로 인물과 설정을 생각하는 사람에게요. 마찬가지로 참가자는 남성, 정확히는 개체 중심성에서 재미를 느끼는 사람에게 적합할 수 있겠지요.
당연하지만 이것은 좀 지나칠 정도의 단순화이고, 남녀로 구분하는 것은 주변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경향에 대한 일반화한 표현일 뿐입니다. 실제로 개체 중심적 사고와 관계 중심적 사고는 서로 완전히 다른 부류라기보다는 중점의 차이 정도입니다. 마찬가지로 남자라고 다 개체 중심적인 것도 아니고, 여자라고 다 관계 중심적인 것도 아니죠. (즉 제목은 떡밥입니다 (?)) 그저 여성적이라고 할 수 있는 한 가지 특징이 RPG 진행을 맡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사람은 성별이 아니라 개체이며, RPG인의 개인적 특징 중에는 얼마든지 좋은 마스터링이나 플레이로 이어질 만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관심사가 한 영웅의 심리와 모험을 탐험하는 것이든, 얽히고 섥힌 인간관계의 탐구이든, 무술이든, 정치물이든, SF이든 궁극적으로는 우리들의 취향과 관심사, 그리고 개인적 스타일이야말로 RPG 생활을 풍요롭게 할 테니까요.

당신의 가상세계: 쇼크는 무엇인가

쇼크: (Shock: Social Science Fiction) 규칙책 뒤편에 보면 다양한 공상과학 작품의 쇼크 (현실세계와의 차이)와 사안을 추출해 놓은 부록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각기동대의 쇼크가 정신과 육체의 분리라면 그에 따르는 사안은 정체성이나 인간성의 문제 하는 식이지요.

생각해 보면 반드시 공상과학이 아니어도, 그리고 꼭 쇼크가 아니어도 RPG에는 종종 가상세계를 배경으로 사용합니다. 항성 사이를 항해하며 교역하는 가상의 미래, 마법이 난무하는 환상적인 이세계, 고려가 멸망하지 않은 대체역사 등.

이런 가상세계의 효용은 무엇일까요? 뜻대로 만들어갈 수 있는 창의적 자유, 많은 조사가 필요없는 노력 절약 등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 우리 세계에는 없는 것을 겪고 싶다는 욕망을 충족해준다는 점이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가상세계는 필요하지 않을 테니까요.

이렇듯 우리 세계에는 없고 가상세계에는 있는 것, 현실과 환상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쇼크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삶의 조건, 가상세계를 사용할 근본적 이유. 그 차이점에 어떤 극적 의미가 있는지, 플레이 내에서 그 차이점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생각하면 그 가상세계를 사용할 (혹은 사용하지 않을) 이유도 뚜렷해집니다.

쇼크의 극적 의미와 역할을 뚜렷하게 해주는 것은 그 쇼크를 통해 드러나는 사안입니다. 성별이 없는 외계인 사회를 통해 (쇼크) 전쟁과 정치, 성역할을 탐구한다거나 (사안), 마법이 있는 사회를 탐색하며 (쇼크) 힘의 대가와 이성의 한계를 생각해 보는 것이 (사안) 그 예입니다.

이렇게 1) 가상세계의 쇼크가 무엇인지 규정하고 2) 쇼크를 통해 드러낼 수 있는 사안을 생각하면 플레이의 극적 구심점인 주제의식이 확실해지고, 가상세계는 그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매개가 됩니다. 가상세계의 쇼크가 사안과 맞물린 주제는 바로 그 가상세계를 통해서가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모습이겠지요.

가상세계의 쇼크, 이 세계와 다르기에 이 세계에 대한 중요한 진실을 보여주는 차이점이야말로 가상세계를 사용하는 극적 의미이며, 다른 어떤 장르와도 다른 공상과학의–혹은 판타지의, 호러의, 대체역사의–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가상세계의 쇼크는 어디에 있는가, 이 세계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 차이점을 통해 우리 세계와 인간에 대해 어떤 진실을 드러내어주는가. 이것이야말로 가상세계를 만들 때도, 활용할 때도 그 극적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의문이 아닐까요.

플레이 내 합의의 범위에 대한 생각

오늘 길드타운 플레이를 한 후 플레이 내 전개에 대한 합의는 어느 정도까지 하는 것이 좋은가 하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깡패들과 전투에서 져서 회장님을 만나러 가자는 식으로 의논을 한 후 약간 빡빡한 전투가 있었는데, 전투의 결과까지 정해놓고 하는 건 참가자의 선택을 의미없게 해서 좋지 않은 것 같다는 아사히라군의 이의가 있었죠.

그에 대한 논의 끝에 제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참가자가 주인공(PC)을 통해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범위는 합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위는 RP를 통해 하는 게 괜찮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전에 글을 썼던 서술권 문제와도 일맥상통합니다. 명시적 합의는 서술권이 미치지 않는 범위에 대해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이며, 전통적 RPG 규칙에서 참가자의 서술권 범위는 주인공의 행동에 그치니까요.

예를 들어 불량배들이 골목에서 몰려나와 주인공 일행을 둘러싼다는 것은 겁스에서 참가자가 자기 직접 서술권 범위 내에서 정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주인공이 아닌 조연 (NPC)의 행동이나 위치 등은 진행자의 서술권 내에 있으니까요. 따라서, 불량배가 습격하는 장면 같은 것은 제안, 논의 등 명시적 합의 과정이 없이 참가자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으므로 합의로 정하기에 적합합니다. 참가자의 로망을 살릴 만한 상황을 만들기에도 진행자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 좋고요.

반면, 불량배들과 전투를 시작한 후 그 전투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는 참가자가 규칙에 따라 주인공을 움직여 결정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주인공의 행동, 전술적 선택 등에 따라 전투 결과는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따라서, 참가자가 주인공을 통해 영향을 줄 수 있는 서술권 범위 내에서는 합의의 중요성이 덜하고, 플레이 스타일에 따라서는 오히려 재미를 해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결과를 정하지 않고 RP와 규칙에 따라 진행하는 편이 긴장감과 의외성도 더 있을 테고요.

초기 상황까지만 같이 생각하고 그 이후는 RP로 하는 것은 여러 취향의 RPG인이 함께 어울리는 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이전에 역할극
대한 글에서 다루었듯 전개를 정해놓고 그에 맞춰서 RP하는 것을 선호하는 취향도 있고, 아사히라군처럼 진행자가 무엇을 내놓을지
모르고 시작해서 서로 맞부딪치며 나오는 우연과 의외성을 좋아하는 취향도 있지요. 전자쪽 취향일 수록 합의가 중요해지고,
후자에 가까울 수록 합의 없이 RP로 말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합의를 하면서도 그 범위를 제한하는 것은 서술권 분배 없는 규칙에서 극적 욕구를 조화하면서도 참가자의 선택과 상황의 의외성을 살리는 하나의 타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RPG와 소설

저는 RPG, 특히 ORPG를 하다 보면 소설 쓸 때와 비슷하게 머리를 굴리게 되곤 합니다. 묘사, 상황 연출, 인물 표현 같은 면에서 말이죠. 처음부터 끝까지 글 하나를 다 쓰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상황에 반응해서 약간씩, 그리고 자신이 서술권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만 쓴다는 점이 다르지만요. (그래서 진행에 비해 서술권 범위가 좁은 참가를 답답해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RPG를 할 때면 실시간 협동 소설 쓰기 같다는 느낌도 꽤 받습니다.

RPG를 소설처럼 생각해서인지 실제 소설도 RPG, 특히 캠페인에 많이 사용하는 편입니다. 특히 스타워즈: 공화국의 그림자 캠페인을 하면서는 세션 중에 시간 잡아먹지 않게 조연들만의 사정이나 행동은 소설로 많이 빼냈죠. 그렇게 하면 세션이 조연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으면서도 참가자가 원하면 조연에 대해 더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전체 이야기도 더 풍부해지는 느낌이고요.

비동시성 플레이에 관심이 가는 것도 어쩌면 제 진정한 취미는 RPG라기보다는 소설이라는 점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RPG 역시 알게모르게 소설로 인식하고 있으니) 동시성 플레이를 할 때 나오는 ‘퇴고 안 된 실시간 소설’보다는 좀 더 잘 다듬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고, 한편으로는 규칙 없이 쓰는 공동 창작 소설보다는 서술권 규율이 잘 되어 있어서 따로 놀지 않고 공동 참작물답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보입니다. 반면 동시성 플레이의 생동감과 사회성은 덜해서 쉽게 질리고, 따로 규칙을 관리하는 수단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 단점이겠지요.

소설이 나름 취미이기는 하지만 사실 혼자 생각해서 쓰는 소설보다는 RPG, 팬픽 하는 식으로 타인과 공유하는 로망에 대해 상상을 펼치는 편을 좋아합니다. 스스로 생각해낸 인물들과 상황을 쓴 결과물은 너무 자기도취적으로 흘러서 썩 좋아하지 않죠. 그보다는 타인의 로망에 다시 제 로망을 반영하는 편이 저 자신만의 좁은 로망을 벗어나는 의외성이 있어서 재밌어하는 편입니다.

요즘엔 RPG도 한동안 안해서 좀 시들하기는 하지만, 타인의 극적 욕구에 제가 바라는 것을 투영시킨,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접점에서 나오는 창의성은 어떤 형태로든 쭉 제 취미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RPG이든, 게시판이나 위키 플레이이든, 팬픽이든. 그래서 제게 언제나 창작이란 개인적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일지도요.

비용과 효용의 RPG

이전에 부담 없는 RPG를 다룬 글의 연장선으로 생각해보고 싶은 문제는 규칙, 배경 등의 결정에 따르는 비용과 효용의 대비입니다. 결국 어떤 결정이든 따르는 비용과 생기는 효용이 있게 마련인데, 어떤 결정을 내리면 효율을 극대화하고 비용을 줄일 수 있을지 생각하면 좀 더 적은 시간과 노력으로 RPG를 즐길 수 있을 테니까요.

물론 이것은 일률적인 결정은 아닙니다. 같은 결정이라도 사람마다 효용과 때에 따라서는 비용도 다르니까요. 예를 들어 저는 정치, 군사, 법조물을 좋아하므로 그런 내용은 저에게 효용이 높은 반면, 정치물, 군사물, 법조물을 싫어하는 사람은 같은 캠페인도 효용이 낮습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D&D를 모르므로 D&D를 사용하는 결정이라면 일단 배우는 노력과 시간이라는 비용이 들어가는 반면, D&D를 이미 잘 아는 사람은 D&D를 사용하는 비용이 훨씬 적습니다.

승한님의 뉴 필라델피아 단기 캠페인 종영 글을 보고 새삼 생각한 것이 같은 결정이라도 사람마다 비용과 효용이 크게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글 끝에서 승한님은 트랜스휴먼 스페이스 (Transhuman Space) 배경만의 특징을 규칙으로 살리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는데, 그걸 보고 저와는 사뭇 다른 비용과 효용 균형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화해서 생각해 보면 승한님에게 THS의 특징적인 세부사항을 자세히 표현하는 효용은 약 40,  드는 시간과 노력 비용은 20이라면 제게는 그런 자세한 표현의 효용은 20, 시간과 노력 비용은 겁스를 잘 모르므로 60쯤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같은 결정이지만 승한님에게는 가치가 있는 반면 제게는 가치가 없는 투자라고 할 수 있죠.

반면, 승한님에게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으로 하는 인물 중심 표현의 효용이 40, 드는 비용이 15라고 한다면 제게는 효용은 70, 비용은 10쯤 되는 결정입니다. 그래서 겁스와 안방극장 대모험 사이의 결정이 승한님에게 좀 더 비등하다면 저에게는 꽤 쉬운 선택이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비용과 효용을 생각하면 서로 다른 것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얼굴 붉히는 일도 줄어들지 않을까 합니다.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무시하거나 내 방법이 상대에게도 좋다고 생각해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내 상황에는 이것이 더 합리적인 결정일 뿐이니까요.

물론 상대에게 특정 결정이 비용이 덜 드는 이유 (‘겁스는 그렇게 어렵지 않아!’), 혹은 상대에게 효용이 있을 만한 이유 (‘안방극장 대모험은 인물에게 확 초점이 잡힌다고!’)를 제시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으며, 그렇게 하면서 비용과 효용의 저울질도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단 그런 판단을 염두에 두고 있으면 취향과 취향의 싸움 대신 자신에게, 그리고 상대에게 가장 효율적인 판단을 내리는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요.

RPG 규칙의 강행성

RPG 규칙을 지켜야 하느냐 안 지켜도 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한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민법에 보면 임의규정과 강행규정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임의규정은 당사자끼리 법규정과 다른 합의를 해도 합의의 효력에는 영향이 없는 규정입니다. 반면 강행규정은 그 규정과 다른 합의를 하면 그 합의는 무효인 규정을 가리킵니다.

비유하자면 RPG 규칙은 강행규정보다는 임의규정에 가깝다고 봅니다. 규칙으로 결과가 나와도 모든 참여자가 그 결과에 따르지 않기로 합의하고 그 합의가 진정하다면 굳이 지킬 필요는 없을 테니까요. 다만 문제가 되는 건 겉으로만 합의가 있고 사실은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때겠지요.

또한, 강행성은 없다고 해도 RPG 규칙은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는 수단이므로 규칙으로 낸 결과를 합의로 바꾸는 것은 신중할 문제라고도 생각합니다. 규칙으로 나온 결과를 바꾸는 일이 잦다면 규칙을 수정하거나 다른 규칙을 사용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는 문제고요. 규칙을 사용한 결과가 즐겁지 않은 일이 잦다면 규칙이 놀이와 맞지 않는다는 뜻일 수 있으니까요.

결국 규칙의 강행성에 대한 제 생각은 참여자 사이의 약속인 만큼 왠만하면 지키는 것이 좋지만,또 다른 약속으로 뒤집을 수 있으므로 무조건 지켜야 하는 건 아니라는 정도. 그런 면에서 비유는 어쩌면 강행규정과 임의규정보다는 계약 조건 수정, 혹은 법 개정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합의가 따라야 하고, 전원이 납득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요.

덧: 전에 한 토론 중에 규칙을 ‘룰’ 대신 ‘규칙’이라고 하는 것은 강행성을 증가시키는 함의가 있으므로 룰이라는
용어를 선호한다는 얘기가 나온 일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보드게임의 규칙이나 스포츠의 규칙을 연상시켜서일까요? 하지만 ‘룰’이란
결국 ‘규칙’을 영어로 칭하는 것이라 그 둘 사이에 함의의 차이가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함의 자체가 꽤나 주관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마찬가지로 영어로는 보드게임 룰이나 스포츠 룰이 된다는 점도 그렇고요.

우리들의 로망

글 쓰는 건 딱히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지만,
혼자 있을 때 하고 끝나면 손을 씻도록.
– 로버트 하인라인 (Robert Heinlein)

RPG를 하면서 느끼는 재미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큰 것은 개별적 로망이랄까, 환상이랄까, 마음을 끌어당기는 어떤 원형이나 유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특히 참가 (플레이)를 할 때 만드는 주인공 (PC)은 이 로망의 지배를 많이 받습니다. 전담해서 계속 맡는 이상 그 로망에서 벗어나면 제대로 표현하기도 어렵고요.

그런 의미에서 위 하인라인의 인용구는 RPG에도 적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집필과 달리 독자적인 활동도 아니고 사회적인 놀이인 만큼 타인에게 자신의 꿈과 백일몽을 맡겨야 한다는 점에서 더 용기와 신뢰가 필요하지 않나 해요. RPG 팀이 종종 폐쇄적인 성격을 띠는 것도, 또 플레이가 잘 안 되면 그걸로 끝나지 않고 감정이 상하기 쉬운 것도 그만큼 깊은 신뢰를 전제하고 자신의 많은 것을 드러내서일지 모릅니다.

내 꿈을 그대 발 밑에 펼치었으니
내 꿈을 딛은 그대, 조심해서 딛어주오.
– W.B. 예이츠 (William Butler Yeats)

로망이 재미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RPG를 더 재밌게 하려면 자신의, 그리고 타인의 로망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같이 플레이하고 얘기 나누다 보면 감이 올 수 있고, 또 플레이에 대해 자유롭게 논의하면서 무엇을 원하는지, 또 어떤 것은 싫은지 파악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규칙 역시 자유로운 개별적 표현과 전체적 조화를 지원한다면 더욱 도움이 되겠지요.

개개인의 극적 욕구와 전체적인 조화와 맥락은 어느 하나도 버릴 수 없습니다. 플레이의 전체적인 모습이 놀이의 결과물이라면 개별 참여자의 극적 욕구는 그 동력이니까요. 그리고 그 두 가지를 이어주는 것이 참여자 사이의 의사소통, 서로 상대의 꿈을 딛고 함께 걸어가는 과정이겠지요. 각자의 로망, 그리고 모두의 놀이를 위해.

보라, 우리는 꿈의 재료일지니
작은 삶은 잠과 함께 끝나는도다.
– 셰익스피어의 ‘폭풍’ 4막 1장 中

캐릭터의 생사에 대한 생각

지난 토요일에는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 플레이를 하면서 참가자로서 맡은 주인공이 죽는다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악마에 씌운 주민이 제 파수견 게이브리얼 허커비에게 총을 쏘는 도전을 하자 주사위 5개로 받았을 때였죠. 그렇게 하면 5d10 피해를 굴리게 되고, 피해 규칙상 가장 높은 두 주사위의 합이 16 이상이면 중태, 20이면 즉사이므로 상당히 위험한 선택이었죠.

마스터: 게이브에게 다시 산탄총을 내쏩니다. “타아아앙!!”
마스터: 6,6 빼기
게이브: 바닥에 구르다가 총이 어깨에 맞자
게이브: 억눌린 비명소리가 들리고, 피가 튑니다
게이브: “이런 망할..!”
게이브: 3, 4, 2, 2, 1 빼기

매튜: “게이브!!”
매튜: (그것도 피하지 못하냐 한심하다!! -> 한심한 동생 주사위 추가)

사실 한심하긴 한 게, 저 상황에서 주사위를 더 끌어오는 서술을 할 수도 있었는데 제가 안 하고 그냥 있는 주사위로 받아서 무지막지한 피해를 굴리게 된 거였거든요. 아직 끌어올 수 있는 주사위가 꽤 있었고 총격으로 상승도 할 수 있었으므로 피해 안 입고 막으려면 못 막을 건 없었는데 굳이, 피해를 입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판정 장면의 긴박감. 바로 코앞에서 총을 쏘는 상황에서 주사위 끌어오는 RP를 하면 그 급박한 혼란이 덜 드러날 것 같았고, 또 총이 나온 김에는 누군가는(!) 좀 다쳐야 총격의 극적 의미가 더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일행 중 가장 어리고 경험이 없는 (아마도 이번이 첫 임무?) 게이브가 가장 적합할 것 같았고요.

둘째, 캐릭터 자체의 극적 의미. 모범생인 형과는 달리 게이브는 위에서 보다시피 불량하고 거친 성격입니다. (태몽에 천사가 나와서 이름이 게이브리얼 마이클인데, 애 꼴을 보니 그 천사는 사실 루시퍼였다는 게 중론(..)) 제일 파수견답지 못한 게이브가 임무 중 다치거나 죽는다면 게이브의 자신의 이야기도 더 극적 의미를 띨 테고, 형 매튜의 감정선도 자극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위와 같은 생각은 어느 정도 들어맞기는 했습니다. 총에 맞은 게이브가 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악마를 몰아내 파수견다운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고, 형인 매튜는 죽어가는 동생을 필사적으로 살려내는 장면을 연출했죠. 두 사람의 감동적인(?) 우애의 현장도 엿볼 수 있었고요.

마스터: 매튜가 포기하지 않고 세차게 뺨을 때리자, 곧 게이브가 부스스 눈을 뜹니다.
매튜: 한방 더 때립니다. “얼간아!”
게이브: “으으..” 피를 흘려 극도로 약해진 채..
게이브: “이 자식.. 때리지..마..”

다만, 참가자로서 플레이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주인공이 저렇게 되자 부작용이 있긴 했습니다. (사실 규칙상 꼭 게이브가 누워있어야 하는 건 아닌데, 부상의 심각성이라든지 하는 앞뒤 서술상 그게 자연스러웠죠.) 서술권이 사라진 이상 남은 것은 잡담권뿐이라 남은 세션 동안은 온갖 실없는 소리 하며 구경하는 걸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물론 그것도 제 선택이었으니까 불만은 없었습니다. 부상 여부와 정도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는 점도 그 선택에 도움이 되었고요. 그래도 제일 극적이라고 생각한 선택이 극에 직접 참여하고 영향을 미치는 수단을 박탈했다는 점에서 극적 요소로서의 등장인물과 참가 수단으로서의 등장인물 사이에 생길 수 있는 긴장관계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또 진행자로서 제가 참가자들에게 종종 느끼는 불만, 즉 주인공들이 ‘몸을 사린다’는 불만을 참가자 입장에서 조명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분명 주인공을 아끼지 않아서 좋은 극적 결과를 낼 때도 있지만, 그 대가는 적어도 한동안은 플레이에서 빠지는 것이니까요. 이것이 조작할 말이 하나밖에 없는 참가자의 어려움이기도 하겠지요.

주인공 몸을 더 사리게 되는 이유는 주인공을 함부로 죽이거나 다치게 하는 것이 이기적인 플레이가 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주인공은 참가자의 자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체 일행, 나아가서느 전체 플레이의 자원이기도 하니까요. 예를 들어 위에 게이브의 부상은 제가 생각하기에 재미있기는 했지만 플레이 시간과 초점을 한동안 제 캐릭터에게 집중시키는 결과가 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행이 하나 줄어드는 것도 남은 일행에게는 큰 애로사항이 될 수도 있죠. 전투력이 감소한다거나, 필요한 기능을 사용할 수 없어진다거나. 포도원의 개들은 덜하지만 예를 들어 D&D나 겁스라면 문제가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즉 이미 혼잣몸이 아니라는 사실도(?!) 주인공 몸을 더욱 사릴 만한 이유가 되겠죠.

이런 점이 문제가 된다면 대체 인물 제공 등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개연성 등을 생각하면 완전하지 못한 해결책인 때가 많고, 무엇보다 제가 느낀 역설은 객관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제 취향 때문이기도 하니까요.

왜  그런가 하면 참가자의 유일한 직접적 참여 수단이 주인공인 건 그만큼 그 주인공에 몰입하고 집중하라는 구조적 배려일 텐데 저는 특정 인물에게 몰입하거나 애착을 갖는 걸 잘 못하거든요. 개별 인물의 행동과 내면은 전체 이야기의 일부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서 참가보다는 진행, 내지는 진행자 없는 규칙의 참가자 역을 선호하는 것 같고요.

결국 취향과 상황에 따라 서술권의 적정 범위도 달라지는 것 같고, 그런 제각각의 욕구를 충족해줄 수 있을 만큼 서술권의 종류와 범위를 여러 가지 조합으로 제공하는 다양성이 이 취미의 매력이기도 하겠죠. 물론 지금 제 상황처럼 직접 서술권이 전혀 없는 관객 입장도 재미있어서 이래저래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꽤 오랜만에 참가를 해보니 이렇게 플레이를 또 다른 각도로 볼 수 있어서 좋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