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생각과 망상

아주 간단하게 만들어본 던젼 지도

요즘 맵툴로 패스파인더를 하고 또 자작 설정도 구상하면서 플레이에 지도를 활용하는 문제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지도를 만들어보자!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를 외치며, 지도 제작 사이트 Cartographer’s Guild에서 만드는 법을 보고 김프로 초간단한 던젼부터 만들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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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꿈은 이보다 훨씬 원대한 듯도 하지만 별로 상관없어!
에, 정말 아무것도 없지만 가구라도 좀 가져다놓으면 낫겠죠 (먼산). 축적이 한 칸에 5피트 (약 1.5m)라고 한다면 통로는 계속 좁군요. 비집고 들어가서 적과 아군의 선두가 1:1로 마주해야 하는 처절한 비비적 던전입니다. 김프는 이전부터 쓰고 있었지만 그리드 활용법, 그리드 렌더링 등 유용한 기능을 배울 수 있어 좋았습니다.
이제 던젼의 달인이 되었으니(??) 김프로 간단한 산지 지형도 만들어보고 싶은데, 가입과정에 삑사리가 나서 예제 그림을 봐가며 할 수가 없군요. 어쨌든 새로운 걸 배우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RPG 갈무리 순위가 수상타…

사용자 삽입 이미지며칠 전에도 보고 ‘으잉?’ 했습니다만, RPG 갈무리의 조회수 순위가 묘하네요. 10위 중 9개가 로키네 위키 글이라니, 한 번도 없던 일입니다. 그것도 기본 탭에 나오지도 않는 위키글 조회수가 80이 넘다니 처음이군요. 한 번 클릭하면 그 IP에서 2시간 동안 쿠키 설정이 되어서 조회수가 안 올라가게 되어 있어도 조작하기도 쉽지 않을 텐데. (갸웃) 상위권은 최신 2주 글만 치니까 휴가기간 동안 조회수가 초토화되어서 그나마 위키가 치고올라간 걸까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많은 것 같고… 궁금해요! (..)

사용자 삽입 이미지한편 최근의 조회수 폭주에 힘입어 로키네 위키가 부동의 1, 2위 다락방금강석탑을 제쳤군요. 본 블로그는 물론 언제나처럼 간당간당한 5위입니다. ㅡㅡv 근데 위키 이거 어떻게 된 걸까요 정말;;

도쿠위키 최신판은… 린스윈드?

뭐 딱히 RPG 얘기는 아닙니다만, 자매 위키가 도쿠위키이고 린스윈드는 양덕의 우상이므로..(퍽)

제가 쓰는 위키에는 도쿠위키 새 버전이 나오면 관리자 모드에서는 페이지 상단에 알림줄이 뜹니다. 최신 버전의 배포후보 이름을 본 순간 뭔가 묘하게 친근한 이 기분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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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스윈드라 하면 디스크월드의 그 살아있는 신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나머지 패버리고 싶으면서 동시에 연민과 공감의 눈물이 폭주하는 바로 그 찌질법사!!!
사용자 삽입 이미지(나의 린스윈드는 TV판의 그 턱수염 할아버지가 아니라능..ㅠㅠ)
하여튼 도쿠위키 개발자들도 양덕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주로 유럽인이니까 유덕일까요.

RPG와 운전: 서술과 협의, 문제 플레이에 대한 생각

1. RPG와 운전

책[footnote]Mindsight: The New Science and Personal Transformation (by Daniel J. Siegel, M.D.)[/footnote]을 보다가 재미있는 비유가 나와서 RPG에도 적용해 보았습니다. 책에서 저자는 정신을 스스로 제어한다는 의미를 논하면서 운전을 하는 비유를 드는데, 운전대를 잡고 눈을 감고 있으면 차를 제어한다고 할 수 없고, 차 뒷좌석에 탄 승객은 운전을 감시는 할 수 있고 운전자에게 제안도 할 수 있지만 운전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RPG에서 서술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눈감은 운전자는 일단 차치하고 (ㄷㄷ) 서술과 협의의 관계는 마치 운전대를 잡은 운전자와 뒷좌석에 앉은 승객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참가자는 자신의 주인공 (PC)의 행동을 서술하는 서술권이 있고, 진행자는 조연 (NPC)과 외부 세계에 대해 서술권이 있습니다. 이때 참가자는 진행자에게 조연이 내 주인공을 죽이려고 했으면 좋겠다, 이쯤에서 비가 왔으면 좋겠다 하고 제안은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행자도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고요. 그런 식으로 활발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사실 바람직한 플레이기도 합니다. 승객이 운전자가 너무 빨리 가는 것 같아 불안하다거나, 지름길로 가자고 운전자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죠.
그러나 뒷좌석의 승객이 운전자일 수 없듯, 서술권자가 아닌 사람은 서술을 할 수 없습니다. 자기 서술 영역이 아닌 영역에 대해서는 제안을 하고 대화를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참가자는 진행자에게 조연이나 외부세계에 대해 제안은 할 수 있지만, 직접 조연이나 외부세계 요소를 빼앗아 서술을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진행자가 조연이나 자연현상 등을 참가자에게 넘기는 경우는 서술권이 넘어가는 것이므로 다른 얘기입니다.)
마찬가지로 진행자나 다른 참가자도 참가자에게 주인공이 이런 말이나 행동을 하면 어떨까 얼마든지 제안은 할 수 있고 또 참가자도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지만, 진행자나 다른 참가자가 주인공에게 어떤 말이나 행동을 시키는 것은 안 될 일입니다. 뒷좌석 승객이 운전대를 빼앗으면 안 되는 것처럼요. 물론 운전을 교대하기로 하고 승객과 자리를 바꿔타는 것과는 다른 얘기이지만요.
2. 운전석과 뒷좌석을 구분하는 세 가지 이유
어째서 로키는 이런 독재적인 발언을 하는 것일까요? 내 서술권은 내꺼고 니 서술권은 니꺼니까 침범하지 말라는 이런 반공동체적, 반민주적 발상이 어딨습니까! 혹시 진행자는 신에게 권한을 받는다는 구닥다리 진행권신수설 신봉자, 혹은 시대에 뒤처진 권위주의자인 것일까요?
뭐 제가 독재파쇼라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서술권 분리를 주장하는 것은 그 외에도 (?) 크게 3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크게 구조적, 사회적, 감정적 이유입니다.
첫 번째, 서술권을 구분하는 구조적 이유는 우선 RPG는 어떤 식으로든 서술권을 구분해야 한다는 데서 시작합니다. 한 사람에게 모든 서술권이 있으면 그건 혼자 쓰는 소설이고, 아무런 서술권 구분이 없으면 서로 눈치만 보다가 놀이가 안 되거나 아니면 놀이 속 사건에 대해 서로 의견이 안 맞아 말다툼을 벌이기 쉽습니다. 그러한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이 너는 저 영역에 대해 결정을 내리고, 나는 이 영역에 대해 결정권이 있다는 서술권 구분이지요.(주:또 다른 수단이라면  서술권 영역 사이를 매개하는 규칙과 협의입니다만, 서술권 글에서 그 역할을 적었던 만큼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서술권을 어떻게 분배하든 그 분배에는 일정한 효과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참가자가 주인공을 맡고 진행자가 그 나머지를 맡는 전통적인 구조는 주인공 일행 대 세계라는 대립적인 구도를 이루기 쉽습니다. 서술권을 전혀 다르게 분배하는 놀이, 예를 들어 얼음깨기 (Breaking the Ice)는 주인공과 외부 세계를 같은 사람이 서술하는 만큼 한결 주인공과 외부 세계가 협력하기가 한결 쉬워집니다. 따라서 어떤 서술권 분배와 그에 따르는 효과를 선택했다면 그 분배를 어기는 것은 그 효과 또한 희석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두 번째, 서술권을 구분하는 사회적 이유는 서술권 구분이 뚜렷하지 않으면 서로 눈치를 보면서 진행이 늘어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진행자의 전통적 영역을 참가자 사이에 공동 분배하면 (‘꼬마 미우 구하기 1부’ 사진에서부터 5번째 문단 참조) 책임이 명확하지 않으므로 논의와 의사소통에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물론 논의가 활발한 것은 더없이 좋지만, 논의 없이는 장면을 시작조차 할 수 없다면 좀 피곤하지요. 마치 운전자 없이 ‘승객이 투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차’를 탄 것처럼 정신없는 경험이 되기 쉽습니다.
세 번째 감정적 이유는 서술권을 구분하고 그 구분을 지키지 않으면 감정이 상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역할극을 다룬 글에서 역할극에 판정이 없어서 생기는 부작용을 적었었는데, 서술권 구분이 없거나 그 구분을 지키지 않는 것도 비슷한 부작용이 있습니다. 서술권 구분이 없다면 이 요소 (인물, 자연물 등)의 움직임을 내가 서술해도 괜찮은지 바로 확신할 수 없고, 그 요소를 움직였다가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남이 내가 마음에 안 드는 서술을 해서 감정이 상할 수도 있지요. 서술권 구분은 이러한 눈치보이는 상황에 대해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해서 인간관계와 놀이 속 서술 사이에 어느 정도 방벽을 만들어줍니다.
서술권을 일단 구분한 상태에서 지키지 않았을 때 생기는 감정적 결과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진행자가 주인공에 대해 조언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심한 간섭을 하거나 아예 행동을 강제한다면 해당 참가자는 자기 서술권뿐 아니라 인격을 부정당한 기분이 들 것이며, 서술권 구분이 그런 식으로 무시당하면 위에 얘기한 구조적, 사회적 문제도 발생할 것입니다.
3. 뒷좌석 운전의 실제 모습
물론 실제 RPG에서는 ‘나는 너의 서술권을 부정하고 이 이야기 요소를 내가 제어하겠어!’ 라고 선언하고 서술권을 잡는 일은 없습니다. (혹시 있으려나요? 있으면 제보좀…) 그보다는 서술권 개념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침해하는 일이 많지요. RPG를 할 때 뒷좌석에서 운전대를 잡으려고 씨름하는 행동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우선, 강제 진행. 거의 진행자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는 서술권 침해입니다. 고전적인 RPG 서술권 분배에서 진행자는 참가자에 비해 서술 범위가 상당히 광범위합니다. 그래서 세계와 조연을 움직여서, 혹은 장면 전환이나 편집을 해서 원하는 진행에 반하는 참가자 서술을 막아버리는 것을 강제 진행, 혹은 칙칙폭폭 진행이나 기찻길 진행 (Railroading)이라고도 합니다. 주인공에 대한 서술권을 무시당했으므로 참가자는 기분이 나쁠 뿐만 아니라 (감정적 부작용), 세계와 주인공에 대한 서술권을 분리하는 이점을 취할 수 없어지는 (구조적 효과) 악효과가 있습니다. 의미있는 모든 서술권이 한 사람에게 모이므로 소설에 가까워지고, RPG를 하는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참가자와 협의를 해서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넘기는 것은 전혀 다른 상황이며, 진정한 협의만 되어 있다면 강제가 아니므로 서술권 침해가 아닙니다. 따라서 진행자가 특별히 바라는 전개가 있다면 참가자와 의논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특정 전개에 애착이 강하다면 그냥 소설을 쓰는 게 낫습니다.
또한, 강제 진행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서술 무시를 통해 상대의 서술권을 없는 것처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진행자와 참가자 모두 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진행자가 하는 편이 효과가 강력합니다. 주인공이나 조연의 행동이나 대사를 무시해서 놀이 속 효과를 부정하는 것인데, 강제 진행만큼 전면적이지는 않지만 부작용은 강제 진행과 비슷합니다. 기분이 나쁠 뿐 아니라 놀이 속 현실이 무엇인지 혼란을 야기하므로 (선전포고를 한 거야, 안한 거야? 비가 왔어 안왔어?) 이런 일이 잦으면 놀이 자체를 망가뜨리기 쉽습니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인물이’ 다른 인물을 무시하는 것과는 다른 얘기입니다. 인물끼리 대립하는 거야 얼마든지 극적으로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 인물끼리 갈등하는 것은 재미있지만, 참여자끼리 갈등하는 것은 지루하고 혼란스럽지요. 마음에 안 드는 건 무시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대화로 푸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서술을 무시하게 되는 일도 있습니다. 한꺼번에 서술이 쏟아진다거나 (특히 주인공이 다수 등장하는 장면이 이러기 쉽습니다), 다른 세션이나 이전 장면 등 전에 나온 정보를 잊어버렸다거나 할 때 벌어지는 일이지요. 의도적 서술 무시보다는 훨씬 낫지만 이것도 잦아지면 헷갈리므로 선언을 차례대로 한다거나 리플레이를 정리한다거나 해서 구조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좋습니다.
은근슬쩍 서술을 해서 서술권을 침해하는 것은 보통 참가자가 합니다. 이건 논의와 구분하기가 조금 애매할 수도 있지만, 선을 확실히 넘었을 때는 보통 알 수 있죠. 예를 들어 조연이 자신의 주인공 미모를 보고 넋을 잃는다는 선언을 참가자가 한다거나, 중요한 조연과 아는 사이라고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기존 협의 없이 느닷없이 새로운 사실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서술이 사소한 것일 때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사소한 사항이라 해도 서술권 범위 외에 있는 것은 먼저 서술을 해버리기보다는 간단하게나마 제안이나 논의를 하는 것이 이러한 기습 서술을 피하는 방법입니다.
얘네들이 주인공을 보고 넋을 잃으면 어떻겠느냐, 이 조연하고 아는 사이이면 어떻겠느냐 하고 의논을 하는 것은 물론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규칙을 통해 이전받은 서술권을 행사하는 상황 역시 문제가 없지요. 서술권이 없는 요소를 갑자기 서술을 해버려서 서술권자를 당황시킬 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전 논의 없이 서술권자 (보통 진행자)가 전혀 준비하지 않은 방향으로 상황을 끌고가려고 한다거나, 판정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판정을 건너뛰는 것은 서술권 구분을 교란하고 서술권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부작용이 따릅니다. 서술권자는 이 서술을 그대로 따를 것인가 다른 참여자에게 싫은 소리를 할 것인가 하는 곤란한 선택에 처하게 되어 더욱 감정이 상하기 쉽지요.
이러한 기습적 서술권 침해는 특히 정당한 논의 과정이나 판정을 우회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합니다. 협의를 했는데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이런 행동을 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참여자의 개인적 문제일 수도 있고 (RPG를 곤란하게 하는 행동유형 중 ‘예의바른 암살자’ 참조) 때로는 팀내 의사소통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서술권자에 대해 감정적으로 벌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서술권을 장악하려는 행동도 있는데, 이것은 정당한 비판을 다소 격하게 하는 행동과 꼭 구분하기 쉽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논의하는 형태를 취한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가장 문제가 덜하고, 서술권 침해라기보다는 대인관계와 의사소통 문제로 구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서술권자를 위축시켜 서술권 행사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면에서 문제 행동이기는 하다고 봅니다.
감정적으로 벌을 주는 행동은 보통 비판에서 시작합니다. 여기까지는 문제될 것이 없지요. 플레이를 향상시키려는 비판은 정당할 뿐만 아니라 필요하니까요. 정당한 비판에서 감정적 괴롭힘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요소는 크게 반복성, 적대적 감정 표출, 플레이 도중에 길어지는 잡담, 인신공격성 발언, 구체적 해결책 부재가 있습니다. 즉, 특정 서술권자에게 집중적으로 부정적인 의견을 표출하며, 그 비판에 사용하는 단어나 말투가 감정적이며, 플레이 중 당장 필요한 것을 교정하는 최소한의 의사표시를 하거나 플레이 이후 지적을 하는 게 아니라 플레이 도중에 길게 말을 해서 흐름을 끊어놓으며, 특정 서술이 아니라 서술권자 자신의 결함에 초점을 맞추며, 무엇보다 상대가 어떤 행동을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지 제시하지 않아서 고치기조차 어려우면 문제가 됩니다.
이러한 감정적 괴롭힘은 처음 시작은 서술권 행사에 관한 의견 차이였을지 몰라도 (왜 저런 대사나 선언, 기타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감정이 쌓이고 바람직한 해소를 하지 못하면서 쌓인 적대감을 부적절하게 표출하는 대인관계상 문제가 되어가기 쉽습니다. 그냥 애당초 성격과 취향이 맞지 않는 것이 원인일 수도 있고요. 이럴 때에는 진짜 맺힌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서 대화로 해결하거나, 정 해결할 수 없고 서로 맞지 않으면 플레이를 같이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4. 운전은 운전자가
운전석과 뒷좌석이 다르듯이 서술권자의 역할과 지켜보고 조언을 하는 역할은 분명 다릅니다. 그 구분을 하는 것은 서술권자가 다른 사람보다 우월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렇게 구분을 하는 편이 다같이 재미있어서 그렇습니다. 그 점을 잊어버리고 뒷좌석에서, 혹은 조수대에서 운전대를 잡으려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대신 서술과 협의의 차이점을 인식하고, 활발하게 대화를 하면서 서술을 분배하는 의미를 되도록 살리는 것이 안전운전, 아니 건전 RPG의 시작이 아닐까요?

남대문 시장의 큰손 박물군자 이야기

요즘은 도서관에서 서울 지리와 민담 자료를 찾아보고 있는데, 손에 잡히는 대로 펼친 민담집에서 전에 본 적 없는 이야기를 발견했습니다. 지금 책이 앞에 없어서 (엄청나게 육중해서 집에까지 가져오기가 좀…) 기억을 더듬어 제 표현대로 적습니다. 원래 민담이란 그런 거기도 하니까요.

남대문 시장 사진

오늘날의 남대문 시장

조선시대에 남대문 시장에는 성은 박, 이름은 물군자라고 하는 (아무래도 뻥카 같지만…) 큰 상인이 있었어. 이 사람은 물건 가격이나 가치라면 모르는 게 없이 훤히 꿰둟고 있어서 있어서 온 시장 장사치가 찾아와서 가격을 묻지 않았겠어. 박물군자가 물건 가격을 정확하게 알려주니까 속임수 당하는 일이 없고, 파는 사람하고 살 사람 중개도 해줘서 박물군자는 돈도 많이 벌었고 신용도 참 좋았지.
박물군자가 얼마나 물건값을 잘 아느냐 하면, 한번은 어떤 사람이 누가 알아볼까 시험해 보려고 짚에다가 댓 냥을 집어넣고 꼬아서 시장 바닥에 버렸어. 시장 바닥에 버린 짚을 아무도 눈여겨볼 리가 없는데, 박물군자는 지나가다가 떠억 멈춰서더니 이야, 저 짚을 줍는 사람은 다섯 냥 벌겠다 했다는 거야.
어쨌든 그런 사람이야. 그러다가 어느날 밤, 박물군자는 큰 거래를 성사시키고 취기도 좀 오른 채로 집에 가고 있었어. 기분도 좋겠다, 평소하고는 다른 길로 집에 들어가기로 했지.
걸어가다가 보니 길가에 다 무너져가는 폐가가 하나 있었어. 그런데 왠걸, 사람도 안 살 거 같은 집인데 안에서 어떤 여자가 너무 구슬프게 우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솔직히 얼마나 소름이 끼쳤겠어. 나같으면 그대로 도망갔을 것 같은데, 박물군자는 좀 귀기울여 봐도 귀신이 아니라 사람 곡성 같아.

이게 무슨 일인가, 이상타 싶어서 가려고 해도 발이 안 떨어지네. 그래서 다 허물어진 대문 앞에 가서 이리 오너라~ 불렀지. 몇 번 부르니까 옷은 남루하지만 기개가 꼿꼿하고 품위있는 노인이 나와.
박물군자 왈, 내가 지나가다 보니까 이 집 안에서 어떤 부인이 우는 소리가 들려서 무슨 일인가 좀 알고 싶어서 들렀다고 했어. 노인은 남이 알아서 좋을 것 없는 집안일이라고 정중히 보내려고 하는데, 우리의 박사장은 그냥 안 간 거지. 사람이 서로 돕고 살아야지, 도움을 주면 나중에 도움도 받고 좋은 거 아니냐고 설득하니까 노인이 그것도 그렇다고 들어오라고 그랬어.
밖에서 봐도 쓰러져가는 집이었지만 안에 보니까 정말 귀신나오게 생겼데. 을씨년스러운 집안에 사람이라고는 노인하고 노부인밖에 없는데, 아까 통곡하고 있던 건 부인이었어.

사정을 들어보니까 노인은, 아 부르기 쉽게 김대감이라고 하자. 김대감은 평생 청렴한 관리였는데, 부부 슬하에 자식이 없었어. 은퇴해서 나라 녹을 그만 먹게 되고 나니, 축재해놓은 것도 없고 돈이 없어진 거지. 그래서 하인들은 다 도망가고, 모아놓은 돈도 다 쓰고 그나마 있는 물건 다 팔아 끼니를 때우다 보니까 이제 정말 아무것도 없는 거야. 부인이 말하길, 자기는 자식도 못 낳아준 칠거지악을 했는데 이제 영감이 굶어 돌아가시게 생겼으니 너무 가슴이 아파 울고 있었대.

박물군자는 이 노후대책 대실패 커플을 어떻게 살려볼 길이 없나 궁리를 하지. 집안에 뭐 하나라도 더 팔아서 돈을 만들 물건이 없나 하고 둘러보는데, 하도 팔아먹었던지라 장대를 휘둘러도 걸릴 게 없어.
그러다가 김대감이 깔고앉은 방석이 눈에 딱 들어오는거야. 삽살이 털로 만든 방석인데, 앉아있으면 엉덩이가 뜨뜻해진다나.

박물군자가 벌떡 일어서면서 그 방석 나 좀 줘보라고, 이걸로 돈 만들어오겠다고 그래. 노부부는 이 낡은 방석이 무슨 돈이 되냐고 그러는데, 이미 봤겠지만 박사장으로 말하면 조르기가 특기인 사람 아니겠어. 내가 알아서 해드리겠다며 박물군자는 그나마 김대감 할아버지 엉덩이 뜨뜻하게라도 해주던 방석을 들고 날르지. 김대감하고 마님은 왠 미친놈인가 했을 거야.

이 낡은 개털 방석을 들고 박물군자는 그대로 남대문 시장으로 돌아가서 잘 아는 도매상네 집으로 가. 그리고 밤이 늦었는데 상인을 막무가내로 깨우네? 부르기 편하게 도매상은 이사장이라고 할게. 이사장이 아니 박사장 이 시간에 왠일인가 하니까 박사장이 이사장님 이 방석 좀 사셔야겠습니다 하는 거야. 아니 그런 다 떨어진 방석을 사다니? 이사장은 황당한 거야. 얼마에?
그러니까 이 천하의 물건값을 모르는 거라고는 없는 박물군자 하는 소리, 백 냥만 주십쇼 그래. 오늘날로 치면 그게 1억원이라나.
오밤중에 일어난 이사장, 그대로 뒷목잡고 쓰러지실 뻔하지. 아니 이 사람아, 누가 그런 방석을 백 냥을 주고 사? 여기서부터 박사장 다시 매달리기 작전 들어간다. 이사장님, 제가 언제 허튼소리 하는 거 보셨습니까? 제가 언제 값을 속이데요? 이거 사면 이사장님 가게 잘 되실 걸 아니까 제가 특별히 팔려고 하는 겁니다.
그 그건 맞지 박사장.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이사장님이 이 방석 안 사시면요, 그대로 가져다가 저 건너편 최사장님께 팔 겁니다. 그럼 최사장님네가 잘 되고 이사장님네는 안 될 텐데, 그래도 정말 괜찮으세요? 그때 가서 후회하시나 안하시나 두고 봅시다.
원래 사람이란 게 말이야, 자기가 잘 된다는 소리에는 주저를 좀 해도 자기보다 남이 잘 된다는 말에는 벌써 아랫배가 슬슬 아파오잖아. 이사장은 결국 항복해버리지. 알았네 알았어, 내 자네를 믿고 그리 하지. 틀림없는 거겠지?
어디 이를 말씀입니까, 싸장님. 저 그러면, 지금 선금으로 석 냥 주시고 나머지는 내일 이러저러한 곳에 있는 집으로 갖다주시는 겁니다. 정말 후회 안하실 겁니다. 방석은 꼭 잘 보관하셔야 합니다.
이사장은 좀 입맛이 썼겠지만 그게 최사장한테 안 간 것만 해도 어디야. 박물군자는 계약금 세 냥을 챙겨다가 당장 굶고 있는 김대감 내외가 먹을 음식부터 사서 그 집으로 돌아가.
음식 싸들고 다시 나타난 박물군자를 보고 노부부는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는데, 박사장은 일단 밥부터 먹고 보자고, 이러고도 돈이 남았다고 거스름돈을 드리지. 그리고 셋이서 야참 먹은 후에 돈 만든 게 이게 다가 아니고 내일 아흔일곱 냥이 들어온다고 하니까 김대감네는 반신반의해. 세상에 어떻게 그 낡은 개털 방석으로 백 냥을 만들어?
그런데 정말로 다음날에 이사장네서 보낸 돈짐을 지고 찾아와서 아흔일곱 냥 계산해서 주고 가네. 노부부는 상상도 못한 돈을 만져보고 서로 눈이 이만해져서 보고 있는데, 박물군자가 그래. (집에서 재워줬거나 아니면 아침 일찍 김대감네로 출근했나봐.) 대감님, 마님, 이 돈 그대로 쓰시면 얼마 안 가서 또 굶습니다. 장사를 해야 합니다. 저도 밀양 박씨로서 양반으로 태어났지만 남대문 장사치로 살아가고 있는데, 제가 점포 하나 얻어드리고 다 가르쳐드릴 테니까 돈을 불려서 노후대책 좀 해보시렵니까?
김대감하고 마님은 막, 우리 은인한테 무슨 토를 달겠냐고. 시키는 대로 다 하겠다고 그러지. 그래서 그날부터 두 노인네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거야. 그 뒤에는 박물군자의 노하우가 있으니 성공은 따논 당상 아니었겠어?
그렇게 몇 년 열심히 장사를 하니까 아흔 일곱 냥 초기투자액을 불리고 불려서 무려 삼만 냥을 번 거부가 되어있던 거야. 두 부부가 당장 일 관두고 평생 쓰기만 해도 다 못쓸 만큼 돈을 번 거지.
그러자 박물군자가 두 사람에게 물어봐. 김대감님, 마님, 두 분께서 이제 삼만 냥이 있으신데, 이 중에서 일만 냥 떠나보내도 생활에 지장은 없으시겠지요?
김대감네가 그래. 이만 냥이면 두 늙은이 은퇴해서 평생 써도 한참 남고, 박사장이 사실 돈 다 벌어준 은인인데 당연히 시키는 대로 해야지 하고 아주 혼쾌하게 대답을 하지.
박물군자가 끄덕끄덕…하더니 하는 말이, 그렇다면 지금부터 제가 시키는 그대로 하십시오. 사람을 보내서 남대문의 이러저러한 도매상을 하는 이사장님네로… 하고 쑥덕쑥덕 지시를 해.
다음날, 남대문 도매상 이사장네에 박물군자가 놀러와 있는데 누가 찾아와서 물건 좀 사자 그래. 뭘 찾으시냐 하니까 여기서 보관하고 있는 개털 방석이 필요하다는 거야.
으잉, 방석? 이사장님은 그런 물건이 있었는지도 잊어버리고 있었던 거지. 그러니까 박사장이 아 왜 그때 그거 있지 않습니까 해서 찾게 시키는데, 아무래도 다 낡은 방석을 백 냥에 사고 입맛이 썼던지 대들보 위에 대충 쑤셔넣고 있었던 모양이야.
직원 시켜서 내리게 해서 보니까 방석은 낡다 못해 곰팡이 슬고 군데군데 썩었어. 그런데 찾아온 손님이 이 물건을 꼭 만 냥에 사야겠다는 거야. 그리고서는 사태 파악이 안 된 이사장이 황당하게 보는 동안 준비해온 만 냥을 내려놓고 그 방석을 들고 가버린 거지.
이사장님 너무 놀라 뒷목 잡고 쓰러지시게 생겼는데, 옆에 박물군자가 태연하게 한 마디 하지. 그러게 내가 뭐랬습니까? 그 방석을 사야 이사장님이 잘 된댔지요? 그래서 남대문 상인들이 역시 박물군자의 말은 틀림이 없다고 다들 감탄을 했대.
여러모로 박물군자 이야기는 우리나라 민담으로서는 특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지식이 일천하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소설이나 설화에 상업이 소재로 등장하는 일은 좀처럼 없고, 허생전에서처럼 등장하는 일이 있을 때에도 투기와 사재기 같은 부정적인 각도인 것 같거든요. 반면 박물군자 이야기는 신용과 정직성, 정당한 대가 등 상업적 가치를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고, 청렴한 공직이라는 유교적 삶을 오히려 굶어죽기 딱 좋다고 꼬집고 있습니다.
박물군자 자신도 양반 태생의 상인이라는 설정으로 보아서는 양반 계층이 몰락하고 상업이 조금씩 발달한 조선 후기에 나타난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또 다른 가능성이라면 일본 이야기가 일제시대 때 건너와서 우리식으로 변형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고요. 혹시 아시는 분 있나요?
박물군자 이야기가 우리나라 설화가 맞다면 알려지지 않은 건 참 아쉬운 일입니다. 너도나도 고시와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거나 돈과 권력에 집착하는 시대에, 박물군자 이야기에 나타난 정직한 상업, 베푸는 상업은 정말 소중한 모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어쨌든 참 기분좋게 읽은 이야기라서 조금이라도 알려볼까 하여 이렇게 올려봅니다.

바보같은 논쟁을 하는 세 가지 방법

어떤 게시판 글들을 좀 보다가 논쟁을 비생산적으로 이끄는 논지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웹상의 처절한 혈투를 꿈꾸는 당신이라면 함께 키보드 워리어의 길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키보드 워리어' 짤방1. 나의 방식은 너의 방식보다 우월하다
이건 취향을 객관화하는 오류이기도 한데, 자신이 느낀 주관적 장점을 일반화해서 타인의 방식을 무시하는 주장입니다. 결국 무엇이 장점이고 무엇이 단점인지는 행위를 하는 목적, 즉 선호도 내지 취향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그 얘기는 쏙 뺀 채 모두 자신과 선호도 내지 취향이 같다고 단정하고 우열을 논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목적이라면 이러한 방식이 그 목적에 합치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내지 ‘이러한 방식을 해봤더니 이러이러한 장점이 있었다’는 것이 의견 개진이라면, ‘나의 방식에는 객관적인 장점이 있다 = 우월하다’는 것은 더 이상 수평적인 토론이 아니라 우월한 입장에서 신탁 내지는 예언을 내리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네가 재밌어하는 건 객관적으로 잘못이고, 따라서 너는 뭘 잘 모르는 불쌍한 바보다! 하는 말로 들리는데 누가 좋아하겠어요. (저도 이전에 그런 언행을 해서 까인 적이 있었고, 그럴 만 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쓸데없는 우열을 매기는 것은 키보드 워리어의 필수 기술이라고 할 수 있죠.
2. 절대적 명제
~~는 필연적으로 ~~로 갈 수밖에 없다, ~~는 무조건 ~~하게 된다는 식의 절대적인 명제는 거의 필연적으로 반격을 불러옵니다. 그 명제가 참이 아닌 일이 많고, 현상의 일부를 전체로 확대해야 그런 절대적인 명제가 나오는 게 보통이니까요. 물론 정말로 반격의 여지가 없는 경우도 있겠습니다만 (아동 성폭행은 잘못이라거나, 나치는 나쁘다거나), 그런 일은 상대적으로 드문 데다가 그런 말에는 별로 논쟁의 여지도 없지요. 결국 막연하게 A는 무조건 B라거나 하는 식의 절대적인 명제는 보통 생각을 게을리했다는 증거이며, 생산적인 논쟁으로 이어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키보드 워리어라면 근거가 있든 없든 자신의 주장을 예외 없는 절대적인 진리처럼 내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3. 적과 위협 만들어내기
근본적으로 싸움이란 위협을 느끼기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공격자라고 인정하는 일은 드물고, 보통은 상대의 어떤 위협에 방어하고 있었다고 생각 (내지는 정당화)하지요. 육탄전도 그렇지만 언쟁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싸움을 지속적으로 이끌어주는 감정적 동기는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진정 훌륭한 키보드 워리어로 거듭나려면 모든 토론은 자신의 신념과 삶의 방식을 위협하며, 상대방은 자신을 공격하고 무너뜨리는 데서 쾌감을 얻는 사악한 적이라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어떤 무기보다 중요한 키보드 워리어의 정신무장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 외에도 기법은 많이 있겠지만 (개인적 모욕, 무례한 말투 등) 근본적으로는 위 세 가지만 갖추어도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의 기반은 충분하다고 보면 됩니다. 특히 적과 타협의 여지는 전혀 없으며, 그를 철저히 말살하지 않으면 내가 파멸한다고 믿는 정신무장은 지극히 중요합니다. 키보드 워리어의 기본기를 갖추었다면 용감히 인터넷 세상으로 나가보는 것은 어떨까요. 시간을 낭비하는 말다툼을 위하여!

서술권 구분과 마스터링

최적 경험 시리즈 쓰다가 옆으로 샌 또 다른 글입니다. (엉엉)

RPG에는 일반적으로 마스터와 플레이어가 있습니다. 흔히들 쓰는 말인데, 마스터 (진행자)라는 의미, 혹은 플레이어 (참가자)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들의 역할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이러한 역할 구분에는 어떤 결과가 따르는지, 그리고 이 역할 구분을 토대로 하여 진행이란 어떤 활동인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진행자와 참가자의 역할 구분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고전적 구분, 두 번째는 협의형, 세 번째는 분산형 구분입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가 가장 흔하고 이해하기 쉬우며, 세 번째는 일반적인 의미의 진행자가 없는 형태까지 포함해 가장 광범위하고 다양합니다만, 고전적인 형태와 대비하는 의미에서 하나의 범주로 다룹니다.

1. 고전적 진행

진행자는 세계이며, 주인공은 세계와 맞서 싸운다

진행자와 참가자의 가장 고전적인 역할 구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참가자는 각자 하나씩의 인물, 흔히 PC (주인공)의 행동과 생각에 대해 최종적인 결정권 혹은 서술권이 있습니다. 진행자는 그 주인공 일행 외의 모든 극적 요소, 즉 PC 외의 모든 인물 (NPC, 혹은 조연)과 주변 환경에 대해 서술권이 있습니다. 이 서술권이 맞닿는 곳에서 중재하는 것이 합의와 판정이지요.

이러한 고전적인 역할 구분은 이전에 서술권 구분의 영향에서 다루었듯 일행 대 외부세계라는 서사구조에 가장 적합합니다. 자신이 서술권이 없는 요소에 대해서는 정보나 영향력, 예측가능성이 제한적이므로 참가자는 일행 외적인 요소와 협동하기보다는 물리적, 사회적으로 대립하는 것이 쉽습니다. 이러한 정보와 영향력 제한은 의외성과 박진감을 증진시키므로 대립은 더욱 흥미로워지지요.

이러한 고전적인 역할 구분 속의 진행자는 시나리오 제작자이며, 참가자의 적수이자 도전자입니다. 서술권 구분이 완전할 수록, 그리고 그 효과인 예측불허성이 강할 수록 진행자는 혼자 시나리오에 대한 사항을 정하며, 참가자가 알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상황과 도전을 제시합니다. 참가자와 그들이 움직이는 주인공은 진행자가 제시하는 외적 도전과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부딪치며 스릴을 느끼고, 주어진 고난을 뛰어넘는 판단력과 규칙 활용력을 최대한 활용하며, 생각도 못한 상황에 맞닥뜨리는 의외성과 극적 재미를 느낍니다. 한 사람 머리에서 나오는 만큼 서술의 일관성이나 체계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고전적 진행의 장점입니다.

유의할 점은 진행자와 참가자가 제어하는 요소들이 서로 대립하는 내용에 적합하다 해도 진행자와 참가자가 곧 적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일정한 게임적, 극적 재미라는 목적을 위해 놀이 속에서는 서로 다른 역할을 맡자고 합의했을 뿐이지요. 물론 놀이 속
요소와 실제 참여하는 사람 사이의 심적 구분을 지키지 못하면 정말 사람끼리 관계가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만, 이건 관계가 나빠질 수
있는 수많은 원인 중 하나일 뿐입니다. 서로 정보와 서술권이 차단되어 적수를 맡는다 해도 그건 더
큰 재미를 위한 역할 구분인 것이지요.

이러한 창조적인 충돌의 장을 혼자 준비하는 고전적 진행자는 외로운 존재입니다. 의외성과 대립의 맛을 최대한 살리려고 한다면 참가자의 선제지식이나 시나리오 협의는 줄이는 것이 좋겠지요. 따라서 서술권과 정보의 구분이 철저할 수록 진행자는 준비할 것이 많아지며, 상대적으로 책임감도 느끼게 됩니다. 오늘은 재미있는 상황들을 제시했는지, 플레이에 문제가 있다면 그건 진행자 잘못은 아닌지 고민이 느는 것이 고전적 진행자입니다. 소스북이나 시나리오집 등이 이렇듯 외로운, 그리고 바쁜 진행자를 도와주는 준비자료이기도 합니다. 덧붙이자면 이들 시나리오에 참가할 사람은 읽지 말라는 경고가 흔히 붙어있는 것도 고전적 서술권 분배에서 의외성의 극대화를 위한 정보 차단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지요.

이렇게 판을 잘 짜야 하는 고전적 진행 형태에서 진행자의 덕목은 책임감, 치밀성, 임기응변, 성실성, 폭넓은 지식, 그리고 허를 찌르는 재치와 꾀일 것입니다. 참가자에게 제대로 된 도전을 제시하려면 규칙도 잘 파악하고 있어야겠고요. (사실 어떤 진행을 하든 미덕입니다만…) 어찌보면 웹툰 환상주사위에 나오는 TRPG부 부장이자 마스터 나현우가 그런 전형을 잘 나타내고 있지요. 고독하되 충분히 자기 책임을 수행할 수 있고, 속으로는 진행이 힘들더라도 겉으로는 내색 안하고 태연할 수 있는, 고전적 진행자는 어찌보면 영웅적 진행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환상주사위 1화 중 나현우

네이놈 고등학생이 머리가 그게 뭐냐!


2. 협의형 진행

대화와 소통으로 서술권의 벽을 넘다

위의 고전적, 혹은 ‘영웅적’ 진행자의 전형을 보고 진행자에 대한 부담이 지나치다고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진행자가 무슨 초인도 아니고,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는 고독한 영웅이라니 이게 무슨 액션 영화란 말입니까. 실제로 환상주사위에 대한 RPG인의 비판 중에는 마스터의 모습이 왜곡된 RPG관을 심어주기 십상이라는 것도 있었다고 기억합니다.

사실 저 역시 진행자가 고독한 영웅이나 신비한 현자가 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위에 얘기한 고전적 진행자의 모습 역시 순수한 형태로 현실에 존재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실존하는 형태라기보다는 일종의 이념형 (ideal type)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영웅적 진행자와 서술권의 철저한 구분이라는 그 이상은 현실 플레이에도 큰 규범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실제로는 완전히 순수한 형태의 고전적 진행자가 아니라 해도 그런 영웅적인, 혼자서 다 짊어질 수 있는 진행자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은 저도 느껴 보았고 주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현실 속의 진행자는 (이상이야 어떻든지 간에) 모든 준비와 책임을 혼자 짊어질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고, 그러한 플레이가 잘 되었을 때의 장점은 위에 고전적 진행 부분에서 이미 다루었습니다. 그러나 부담을 느낀다면, 혹은 참가자가 진행에 의견을 반영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협의해서 진행상의 사항을 정할 수 있지요.

이러한 협의의 내용은 워낙 다양해서, 사실 협의형 진행의 모습은 굉장히 여러 가지일 수 있습니다. 어찌보면 순수한 이념형 고전적 진행 외에는 전부라고 할 정도로 폭넓지요. 간간이 참가자가 이런 조연을 내보내달라거나, 이런 사건이 벌어지면 좋지 않겠느냐 하고 제안하는 정도일 수도 있고, 캠페인 준비 단계에서 시작해서 장면 하나하나까지 모두가 논의해 정하는 것이 보통인 플레이일 수도 있습니다.(주:후자는 X의에 의한 플레이라고도 합니다만, 이걸 글로 정리하신 분이 제가 쓰는 글에 언급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신 적이 있으므로 따로 다루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협의형 진행은 그보다 훨씬 넓은 개념이므로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만 언급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결국 협의형 역할구분, 그리고 그 속에서 하는 협의형 진행이란 논의와 의사소통을 통해 정한다는 대원칙을 둔 온갖 플레이의 총칭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협의는 각 팀이 ‘필요한 만큼‘ 하면 되니까 어디까지 어떻게 협력하는 게 좋다 하고 방법론적으로 정의하기도 좀 어렵겠죠. 협의로 정하는 부분이
적으면 고전적 진행에 더 가깝고, 협의의 형태나 결과가 정형화되면 아래 분산형 진행에 가까워질 수도 있는 등, 협의형 진행은 하나의
독자적인 형태라기보다는 정도 차이를 구획한 분류에 가깝습니다.

이렇듯 다양할 수 있는 협의형 역할구분을 굳이 정의하자면 서술권 구분은 위 고전적 구분과 원칙적으로 같되, 자신에게 서술권이 없는 영역에 대해 제안과 논의라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참가자는 주인공, 진행자는 그 외의 세계’라는 서술권의 차단을 협의라는 장치로 넘나드는 것이지요. 그 결과 진행자도 주인공의 행동에 대해 제안하고 논의할 수 있고, 참가자도 조연이나 주변 세계에 대해 얼마든지 토의할 수 있습니다.

협의형 진행의 장점이라면 고전적 진행에 비해 진행자의 부담을 경감한다는 점이 있겠지요. 고전적 진행자가 마치 안전망 없이 외줄타기를 하는 곡예사와 같은 부담감이 있다면, 협의형 진행 속의 진행자는 협의의 역할이 강할 수록 튼튼한 안전망을 갖추게 됩니다. 공동 창작과 공동 책임, 공동 부담인 만큼 혼자 부담감을 끌어안고 고민할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한편 공동 창작과 공동 부담이라는 것은 혜택도 공동으로 누린다는 뜻입니다. 즉, 진행에 참가자 의사를 반영하는 만큼 마음에 들지 않는 진행에 벙어리 냉가슴 앓을 필요가 없고, 본인의 로망을 좀 더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위에 이미 말했듯 협의형 진행은 고전적 진행과 완전히 별개의 유형이 아닌, 협의의 정도 차이로 구분한 것인 만큼 고전적 진행의 형태를 상당 부분 유지하면서도 협의를 첨가해 이러한 장점을 향유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협의는 역시 필요한 만큼 하는 거니까요.

또 한 가지 장점이라면, 고전형 역할분담에서 흔히 나타나는 개인 대 세계를 넘어 주인공이 외부 세계를 이용하기도 하고, 이끌기도 하는 등 한결 폭넓은 이야기를 하기 쉬워진다는 것입니다. 서술권과 정보의 차단을 넘나드는 협의라는 장치가 있는 만큼 참가자가 놀이 속 세계에 대해 대립 외의 행동을 취할 운신의 폭이 커지는 것이지요. 고전적 진행에서 가장 하기 쉬운 것이 소수의 협력자와 함께 외부의 위협에 맞서는 고독한 영웅 집단이라면, 협의형 진행에서는 세계나 조연에 대한 정보와 영향력이 훨씬 많은 만큼 지도자라든지 중간조정자 등의 역할을 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워집니다.

물론 이러한 장점의 대가로 위에 고전적 진행을 다루며 이야기한 긴장감이나 의외성이 약해지는 점은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협의를 얼마만큼, 어디까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만, 이미 얘기가 된 사건에 대한 반응은 아무래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튀어나오는 충격과는 다를 수밖에 없겠죠. 주인공이야 얼마든지 놀랄 수 있지만, 참가자가 느끼는 의외성은 어느 정도 줄어들 것입니다. 물론 자신의 로망을 반영하였다든가, 플레이의 내용에 대해 불안할 필요가 없다든가 하는 다른 장점은 있으며, 의외성 약화 자체도 서술의 일관성이나 개연성 확보에는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어느 쪽 진행 형태가 우월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목적과 취향에 비추어 어떤 장점과 단점을 고르느냐에 따라 최선의 선택이 달라질 뿐이지요.

플레이에 협의의 역할이 강할 수록 진행자는 고전적 진행자가 맡는 독자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시나리오 제작 위원회의 일원이라든지, 참가자의 의논 상대로서 또 하나의 참가자가 됩니다. 물론 서술권 분배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므로 주인공 외의 세계에 대한 결정권이 있는 것은 변함없지만, 협의의 역할이 크고 협의가 정형화되어 있을 수록 그 결정은 전체의 의사에 제약을 받습니다. 이러한 제약이 강해지면 결국 서술권 분배 변경에 이르고, 그러한 변경은 곧 논할 분산형 역할분배로 이어집니다. 결국 정도의 차이인 것이지요. (최하단 도면 참고)

협의형 진행자는 위와 고전형 진행자의 덕목도 갖추면 좋지만, 그 이상으로 풍부하고 정확한 의사소통 능력과 다양한 의견의 조율 능력이 중요할 것입니다. 참가자와 협의한 것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는 것도 중요하겠고, 감정적 안정성과 인간관계 관리 능력, 의논한 것을 정리해서 자료로 만드는 꼼꼼함과 기록 습관 등도 도움이 되겠지요. 결국은 워낙 다양한 형태의 플레이를 포괄하는 용어이기에 진행자의 능력도 일률적으로 논하기는 어렵지만, 결국 협의형 진행을 할 때 진행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소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3. 분산형 진행

백짓장도, 진행자 권한도 맞들면 낫다?

위에서 다루었듯 고전형 진행에서는 진행자가 주인공 일행 외에 세계의 모든 것에 대한 서술권이 있고, 협의형 진행도 원칙적으로 비슷하지만 협의를 통해 자기 서술권에 속하지 않은 요소에도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결국 참가자는 주인공, 진행자는 그 외의 나머지라는 전통적인 서술권 분배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협의형 진행에서는 비록 협의의 범위에 따라서는 서술권의 정도나 행사 방식을 수정하기는 하지만, 진행자는 세계, 참가자는 주인공이라는 자신의 서술 영역에 대한 재량은 다소간에 있습니다.

세 번째로 다룰 분산형 역할구분은 바로 그 전통적인 서술권 분배를 해체합니다. 참가자도 조연을 맡기도 하고, 진행자도 주인공 제작에 참여하고, 진행자가 여럿인 경우도 있고, 아예 진행자가 없기도 하지요. 일단 진행자는 세계, 참가자는 주인공이라는 전통적 구분을 벗어나면 정말 무수한 조합이 있는지라 일률적으로 얘기하기는 곤란합니다. 그래서 결국 서술권을 전통적인 형태와 다르게 분산했다, 내지는 진행자의 전통적인 역할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가졌다는 의미에서 분산형 역할구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위의 협의형 역할구분에서는 남의 서술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이 비정형적인 의사소통이라면, 분산형 진행은 서술권 분담을 규칙으로 확실히 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규칙이란 RPG 책에 나온 것일 수도 있고, 팀에서 함께 정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전통적인 서술권 분담 구조를 벗어나는 만큼 명시화하고 명문화를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폴라리스 (Polaris)에서는 ‘마음’ 참가자는 주인공, ‘달’ 참가자는 우호적인 조연, ‘후회’ 참가자는 적대적 조연과 배경세계 하는 식으로 나누고 있지요. 달과 후회가 전통적인 진행자 역할을 나눠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예로 달을 쏘다 (Shooting the Moon)에서는 진행자 없이 두 ‘구애자’와 한 명의 ‘님’으로 나누어서 하는 삼각관계 얘기인데, 자신의 주인공인 구애자나 님뿐 아니라 기타 조연에 대한 서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참가자 전원이 진행자의 역할을 나누어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협의로 타인의 서술권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규칙 자체로 서술권을 나누는 차이는 결국 부담과 확실성의 차이입니다. 협의형 역할구분 속의 참가자는 조연의 행동에 대해서 제안은 할 수 있지만, 일단 제안을 하는 것이 부담이 될 수 있고, 또 제안을 실제로 구현하는 것은 서술권자인 진행자이므로 제안을 받아들일지, 그리고 얼마나 받아들일지는 진행자의 몫입니다. 반면 스스로 서술권이 있으면 자신의 의도를 그대로 반영할 수 있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부담과 확실성의 차이 때문에, 서술권 분배를 다르게 하는 것은 협의와는 또 다르게 플레이의 모습을 변화시킵니다.

서술권을 분배하는 규칙은 협의 과정과 그 내용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똑같이 협의를 하더라도 위에 논했듯 일반적으로 자신이 서술권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발언권이 강하기 십상이지요. 또한, 협의를 구조화하는 규칙도 있습니다. ‘달을 쏘다’에서 인물을 공통으로 제작하는 것이나,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에서 참가자가 장면을 신청하는 규칙이 그 예입니다. 이렇게 동등한 발언권을 보장해서 만든 협의의 구조 속에서 그 발언권 행사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네 캐릭터랑 내 캐릭터가 아까 일로 말다툼하는 장면은 어때?” “내가 생각하는 장면은 네가 말한 장면 다음에 나오는 게 좋은 것 같으니까 네가 먼저 신청할래?” 등등)

달을 쏘다나 폴라리스처럼 전면적으로 서술권을 분산하는 규칙도 있지만, 서술권 분산은 고전적 역할분담 속에 부분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극점수 서술이 좋은 예이지요. 세기의 혼 (Spirit of the Century) 계열 규칙의 면모 발동이나 페이트 점수 소모가 좋은 예입니다. ‘항구마다 여자가 있다’ 면모를 발동해서 이 장면에서 옛 여자가 나타나는 서술을 한다거나, 페이트 점수를 1점 써서 옆에 무기가 있다고 서술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물론 협의로도 처리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위에 얘기한 부담과 확실성의 차이로 돌아오지요. 다르게 보면 극점수를 사용하는 것은 극점수를 소모한 사람의 발언력을 크게 강화한다고 보아 협의를 구조화하는 규칙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주:극점수 논의는 위시송군의 제안으로 추가했습니다. 마음에 안 드시면 위씨 탓[?])

분산형 역할분담의 장점은 협의형과 비슷한 데가 많습니다. 고전적 역할분담에서 진행자에게 속했던 서술권을 참가자에게 분배하므로 진행자 부담이 거의 없고, 아예 진행자 자체가 없는 형태도 있습니다. (달을 쏘다, 폴라리스, Grey Ranks 등) 이러한 역할분담 때문에 참가자의 욕구를 플레이에 직접 반영할 수 있으며, 세계와 주인공 서술권의 이분법이 없으므로 주인공 대 세계라는 이야기 원형보다 폭넓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도 비슷합니다. 주인공에 대한 정보와 서술권이 있는 사람이 세계에 대한 정보와 서술권도 있다면, 그 점을 활용해 주인공이 세계를 이용하는 서술도 할 수 있으니까요.

분산형 역할분담의 한 가지 추가적인 특징이라면 일반적으로 의외성을 강화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서술권과 협의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서술권의 영역에 있는 것은 서술권자가 독자적으로 끄집어낼 수 있고, 협의를 통해 정하는 부분은 어느 정도 미리 얘기가 되어 있어야 하지요. 분산형 역할분담 속에서는 진행자뿐 아니라 어느 참가자라도, 주인공뿐 아니라 세계에 대해서도 그런 의외의 서술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협의나 판정을 통해 조절할 수는 있지만,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 여러 방향에서 다양하게 나온다는 차이입니다. 물론 그만큼 서술의 일관성이나 체계성 유지는 어려워질 수도 있으므로 긴밀한 의사소통과 논의가 필요할 것입니다.(주:이 일관성과 체계성 논의는 제노시아님 지적에 추가한 것입니다. 글 봐달라고 완전 온 동네를 불러냈구만[..])

단점이라면 협의보다 규칙에 기댈 수록 특정 방향의 서술을 유도하는 제약성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예를 든 폴라리스는 비극으로 흐르도록 의도적으로 설계한 규칙이므로, 비극적인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싶지 않다면 부적합합니다. 달을 쏘다 역시 인물의 변화와 희생을 유도하는 만큼 극단적으로 흐르기 쉬운 규칙이지요. 따라서 규칙이 지향하는 유형의 이야기를 원한다면 좋지만, 범용성은 떨어집니다. 범용성과 자유도가 강한 분산형 서술분담 규칙은 안방극장 대모험처럼 규칙의 정형성이 덜하고, 대신 협의를 구조화하는 역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분산형 역할분담 속에서 진행자의 역할은 보통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르고, 아예 진행자가 없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전통적인 진행자의 권한을 다들 나눠가지고 있으므로 전원이 진행자라고도 할 수 있지요. 이러한 분산형 ‘진행자’의 미덕은 서술권을 분배하고 행사하는 규칙을 잘 알고, 그것을 기반으로 다른 참가자들과 의사소통을 활발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규칙으로 부여받은 서술권과 참여자끼리의 논의를 둘다 이용해 자신과 상대의 로망과 반응에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것이 재미있게 노는 방법입니다.

이상과 같은 세 가지 역할분담 유형은 이미 말했듯이 절대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정도 차이입니다. 그 관계를 도식으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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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이 RPG 속에서 서술권 분담의 차이와 그에 따른 진행자의 역할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론이라면 서술권 분담 유형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고, 또 RPG의 서사에도 영향을 미치므로 목적과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RPG라는 하나의 취미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그 속에는 진행자의 역할 (혹은 유무)만 해도 차이가 나고 또 같은 유형 속에도 굉장히 다양한 규칙과 플레이가 있습니다. 그런 다양성 때문에 결과적으로 RPG는 더욱 풍요로운 취미가 아닐까요?

묘사적 규칙과 서사적 규칙 도식

RPG와 최적경험 2편 (아직 미완성, 비공개) 쓰다가 갈라져나온 내용입니다. 도식을 만들기는 했는데 그 글에는 딱히 들어갈 곳이 없어서 일단 여기에 올려놓죠. 이전에 썼던 가상현실과 극적 요소 논의를 시각화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도면은 OpenOffice Draw로 제작했습니다.

묘사적 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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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서사 내에 존재합니다. 이야기의 구조나 진행과 같은 서사적 요소를 직접 다루지는 않고, 판정을 통해 전체 서사 내의 일부 사건을 확정합니다. 보통 전투규칙이 제일 정교하고 양도 많지만, 사회적이거나 정신적인 사건 역시 판정으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물리적인 요소를 되도록 정교하게 규정하려고 할 수록 규칙이 복잡해집니다. 겁스, D&D 3.5 등. 7번째 바다 (7th Sea)나 세기의 혼 (Spirit of the Century)처럼 기본적으로 묘사적인 규칙에 서사적 요소를 추가한 절충형도 있습니다.

서사적 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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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가 곧 게임입니다. 가장 순수한 형태에서는 서사가 끝나는 조건이나 결말의 향방도 규칙으로 결정합니다. 규칙으로 다루는 요소도 대개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호감도나 타락 등 극적인 것입니다. 서사를 규칙의 논리로 완전히 규정할 수는 없는 만큼 규칙은 보통 간결하고 해석의 폭이 큽니다. 결국 서사를 만들어가는 작용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활동에 구조를 부여하는 것이 규칙의 역할입니다. 폴라리스 (Polaris), 달을 쏘다 (Shooting the Moon),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 등.

의기소침…

RPG와는 간접적인 관련밖에 없는 그냥 사적인 잡담이지만…

어디 가서 특별히 문제를 일으키거나 성격 나쁘다는 소리를 들은 일은 없는 것 같은데, 특정 몇 분에 대해서는 뭔가 몹쓸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의기소침한 기분이군요.

뭐 사실 저도 좀 꼬인 성격이기도 하고, 말을 확대해석한다는 지적은 바로 얼마 전에도 들었으니 제 잘못이 크겠지요. 특히 한창 난리가 났었던 근 3년 전에는 지금보다도 못난 모난 성격이었던 것 같고요.

그렇다 해도 너하고는 (밑에서 두 번째 댓글) 얘기하기 싫어 (위에서 세 번째 댓글) 소리를 몇 번 듣고 나니 제 뇌구조가 뭔가 비정상이거나 상종하기 어려운 사람인가 하는 회의가 듭니다. 이런 저와 별 문제 없이 지내주는 주변 사람들은 알고보면 성인군자일 수도 있겠어요. 아니면 저와 마찬가지로 비정상이거나! ㅎㅎ

결과적으로 이 피곤한 성격의 저를 누가 상대해줄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피하는 분들이 현명하신 것일 수도 있죠. 알게모르게 주변에도 스트레스를 주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되고, 앞으로는 인성과 의사소통 능력을 더욱 도야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RPG가 사회적인 취미라는 것은 플레이뿐 아니라 커뮤니티 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니까요.

당신의 두뇌를 접수한다: 뉴욕 공공도서관 전자회랑

Story Games에서 옛~날에 보았던 링크인데, 문득 생각이 나서 다시 찾아보았다가 다시 그 마의 수렁에 빠지고야 말았습니다.

NYPL Digital Gallery

자연사, 역사, 지리 등에 관련한 온갖 그림과 사진 자료를 모아놓은 곳입니다. 시각적 자료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에 정신 놓고 시간 보내기 딱 좋지요. 터키 자료만 백 장 넘게 내려받은 것 같습니다. 혼자 폐인 되기는 억울해서 올려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