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소개와 감상

갓바운드, 반신반인 영웅을 플레이하는 RPG

한때 강대한 제국이 있었습니다.

제국은 강대한 힘과 마법으로 주변 나라를 복속시켜 마침내 세상을 통일했고, 더 나아가 자신들의 정의를 증명받기 위해, 그리고 인류가 나아갈 길을 찾기 위해 천상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제국의 마법사와 군인들은 천사의 군세를 무찌르고 천상을 정복하여 마침내 조물주의 옥좌에 도착했지만, 옥좌는 비어 있었습니다.

인간들은 신이 자신들을 버렸다고, 혹은 신 같은 것은 애초부터 없었다고 슬퍼하고 분노했지만 이내 서로 옥좌를 차지하기 위해 자신들의 이념을 형상화한 인공 신을 만들어 내전을 벌였고, 세상은 산산조각이 나 기나긴 암흑의 시대에 들어갔습니다.

천 년 동안 계속된 전쟁 속에서 인공 신들이 하나둘씩 파괴되며 이들이 지녔던 천상의 에너지는 세계 곳곳으로 흘러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 사이에서 신의 힘을 얻은 반신(半神)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바로 갓바운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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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바운드?

<갓바운드(Godbound)>는 폐허가 된 세계에서 신의 힘에 눈뜬 영웅, 즉 갓바운드가 되어 세상을 구하는(혹은 파괴하는) RPG입니다. 갓바운드는 보통 인간으로는 상상도 못할 권능을 행사하면서 이 세상을 활보하는 괴물들을 무찌르고, 폭군의 압정에 신음하는 나라를 구하며, 더 나아가 복수심에 불타는 천사들과 여전히 서로 전쟁을 벌이는 인공 신들, 존재 너머의 무리들과 맞서 싸우면서 세상을 구합니다.

OSR(“올드 스쿨 르네상스”), 고전 D&D의 새로운 부활.

최근 서양 RPG계는 실험적인 규칙을 내세운 ‘스토리 게임’ 못지 않게 1970~80년대 RPG 규칙의 영향을 받은 신복고풍 RPG, 즉 OSR(“Old School Renaissance”)풍 RPG들의 비중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OSR 디자이너들은 과거 RPG의 특징인 간결한 규칙과 상상력을 중시하는 플레이를 강조하면서, 특히 고전 D&D의 분위기를 되살리려는 노력을 많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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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책들은 한국의 옛 RPG 팬이라면 한 번 정도는 보았을 “고전 D&D”, 즉 D&D BECMI입니다. BECMI는 Basic, Expert, Companion, Master, Immortals의 약자입니다. 우리 나라에는 Master까지 나왔지요.)

<갓바운드> 역시 OSR풍 RPG 중 하나입니다. 제작자 케빈 크라우포드는 OSR 디자이너 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으며, <갓바운드> 외에도 <사일런트 레기온>(러브크래프트풍 호러), <스타즈 윗아웃 넘버>(SF) 등 다방면의 RPG를 OSR풍 규칙으로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갓바운드는 고전 D&D 팬들에게 익숙한 요소(여섯 가지 능력치, 레벨, 낮을수록 좋은 방어도, 극복 판정, 사기 판정 등)를 많이 갖추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개성적인 면모를 많이 갖추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적인 캐릭터를 플레이하기 위해서

설정부터 거창한 만큼, 갓바운드들은 강력한 신적 존재입니다. 갓 힘에 눈뜬 초보 갓바운드라 할지라도 평범한 인간 십여 명 정도는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으며, 갓바운드들이 힘을 합치면 강력한 왕국도 쉽게 무너뜨립니다. 오직 갓바운드와 동급인 천상의 존재들과 괴수들, 그리고 인간 중 정말로 뛰어난 일부 영웅만이(수많은 부하들을 이끌고 치밀한 준비를 해서) 갓바운드를 상대할 수 있습니다. <갓바운드>는 이러한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몇 가지 특수한 규칙을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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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피해 규칙의 변화입니다. 갓바운드와 다른 적들은 피해를 받을 때 적용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갓바운드는 피해를 받을 때 생명점이 깎이지만, 다른 적들은 피해 주사위의 결과에 따라 HD(히트 다이스, 적들의 레벨)가 깎입니다. 갓바운드의 피해 계산법은 보통 피해 주사위의 결과에 따라 일정량의 피해를 받는 방식인데, 예를 들어 갓바운드가 인간에게 대형 검(1d10)을 휘둘렀을 때 피해 주사위의 결과가 1 이하면 HD에 0점, 2~5면 1점, 6~9면 2점, 10+이면 4점 피해를 줍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HD가 1~2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보통 일격에 죽지요. 또한 남은 피해는 주변 적에게 들어가기 때문에 한 방에 두세 명씩 쓰러지는 경우도 흔합니다. 게다가 갓바운드는 주변에 신성력을 자동으로 행사하므로, 갓바운드의 레벨보다 기존 HD가 같거나 낮은 적들은 라운드마다 일정량의 피해를 입습니다. 그래서 여러 졸개들이 달려들어도 몇 라운드 후면 모두 쓰러질 수 밖에 없지요.

두 번째는 ‘창조의 언어’입니다. 모든 갓바운드는 천상의 힘인 창조의 언어를 지닙니다. 창조의 언어는 활, 명령, 죽음, 속임수, 불, 생명, 지식, 바다, 하늘, 검, 마법 등 다양한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갓바운드는 자신의 영역을 이용해 기적을 일으키고 전투 중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순간 이동, 초인적인 속도, 물리 공격에 무적, 부활시키기 등등…).

세 번째는 영향력과 지배력 점수입니다. 갓바운드는 레벨이 오르면서 영향력과 지배력 점수를 얻으며, 이 점수들을 이용해 세상에 축복이나 저주를 내리고, 신들의 무기를 만드는 등 막강한 권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샌드박스 플레이를 권장하는 RPG

<갓바운드>의 또 다른 특징은 높은 자유도를 보장하는 샌드박스 플레이의 권장입니다. <갓바운드>는 특정한 이야기의 줄거리를 만들지 않은채, PC들이 주도해서 사건을 이끌도록 권장합니다. 이를 위해 <갓바운드>에는 GM이 PC들의 행동에 재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몇 가지 기법을 소개하고 있으며, 여러가지 세력과 이들의 특징, 지도자, 문제점 등을 만드는 표를 준비했습니다. 특히 추가 자료집인 <식스틴 소로우즈>는 PC들이 마주칠 각종 문제를 즉석에서 만드는 내용을 다루고 있어서, 갓바운드 뿐만 아니라 다른 RPG에서도 무척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갓바운드>는 올해 접한 RPG 중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만큼 무척 뛰어난 게임입니다. 가능하다면 판권을 얻어 한국에도 소개하고 싶네요. 그렇지 못하더라도 꼭 플레이해보고 싶은 RPG입니다.

p.s : 

갓바운드는 무료판이 공개되어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한 번 보세요. 각종 추가규칙이 빠진 것을 제외하면 유료판과 완전히 똑같습니다!

http://www.drivethrurpg.com/product/185959/Godbound-A-Game-of-Divine-Heroes-Free-Edition

스프롤(Sprawl) : 섀도우런(-마법)의 AWE 버전 사이버펑크 R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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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PDF로 출시된 사이버펑크 RPG인 스프롤(링크)을 죽 훑어봤습니다. 

스프롤은 사이버펑크물, 그 중에서도 불법적인 의뢰를 수행하면서 거대 기업과 대립하는 이야기를 만드는데 집중한 RPG입니다. 제목에서 말했듯 아포칼립스 월드 엔진(AWE)를 사용하고요. 모든 규칙이 이런 이야기를 만드는데 집중되어 있네요.

1. 플레이북

스프롤에서는 사이버펑크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캐릭터 유형들이 등장합니다.

  • Driver : 각종 차량과 드론을 조종합니다.
  • Fixer : 각종 연줄과 친구들, 부하들을 동원해 임무에 필요한 정보와 자원을 얻습니다.
  • Hacker : 컴퓨터 네트워크의 전문가입니다. 당연히 해킹 규칙도 별도로 있습니다(그렇다고 아주 복잡하지는 않습니다).
  • Hunter : 거리를 떠돌면서 각종 정보를 모으고, 원하는 것을 찾습니다.
  • Infiltrator : 변장과 침투의 전문가입니다.
  • Killer : 전투와 암살의 전문가입니다.
  • Pusher : 자신의 신념과 이상을 위해 사람들을 동원하고 독려합니다. 록커나 사이비교주, 활동가 등등을 생각하면 됩니다.
  • Reporter : 언론의 힘으로 정보를 파헤치는 기자와 저널리스트입니다.
  • Soldier : 현장에서 팀을 이끌고 작전을 수립하는 행동대장입니다.
  • Tech : 각종 장비를 마개조하고 물자를 지원하는 기술자입니다.

당연히 플레이어들이 어떤 종류의 캐릭터를 선택하는지에 따라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도 달라집니다. 드라이버가 있다면 빠른 차량 추격전과 드론 전투가 등장할 것이고, 해커가 있다면 반드시 매트릭스에서 벌이는 전투가 등장할 것입니다.

 

2. 기업 만들기

스프롤은 AWE RPG답게, 배경 세계가 어떤 모습인지, 어떤 기업들이 등장하는지 다같이 정합니다. 이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기업도 이 단계에서 정하는데, 각 기업마다 ‘카운트다운 시계’가 있어 PC들이 해당 기업에 맞서 적대적인 행동을 할 때 이 시계가 조금씩 진행됩니다. 시계가 00:00까지 진행되면 해당 기업과 목숨을 걸고 맞서 싸우든가, 돈과 명성의 손실을 감수하고 당분간 잠수해야 합니다. 그리고 PC들이 하는 임무는 언제나 기업의 분노를 사는 일입니다.

 

3. 정형화된 임무 구성

스프롤의 임무는 아래와 같이 여섯 단계로 구성됩니다.

  1. 의뢰 받기 :  계약 조건이나 난이도가 정해집니다.
  2. 정보 수집 : 본격적인 작전에 들어가기 전에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장비를 획득하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서 얻은 정보와 장비는 작전 실행 단계에서 유용하게 쓰이지만, 이 단계에서 실패를 많이 할수록(카운트다운 시계가 많이 진행될수록) 작전 실행 단계가 어려워지고, PC들의 정체가 기업에 노출됩니다.
  3. 작전 실행 : 작전을 수행하는 단계입니다. 임무의 성공과 실패가 정해집니다. 이 역시 카운트다운 시계 규칙을 사용해서 시계가 00:00까지 가면 임무가 실패합니다.
  4. 보수 지급 : 보수가 얼마나 두둑한지, 함정은 없는지 등등이 정해집니다.
  5. 기업의 앙갚음 : 앞서 진행한 단계에서 PC들의 정체가 지나치게 밝혀지면 기업의 보복이 들어옵니다.
  6. 싸울 것인가 숨을 것인가? : 기업이 숨통을 죄여올 때, 맞서 싸울지 숨을지 정해야 합니다.

 

4. 장비

스프롤은 사이버펑크 RPG답게 장비 규칙이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물론 섀도우런처럼 엄청나게 빽빽한 수치가 있지는 않지만, 이야기 속에서 캐릭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얼마나 피해를 입힐 수 있는지, 어던 보너스를 받을 수 있는지 등을 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5. 매트릭스

사이버펑크이니만큼 매트릭스, 즉 사이버스페이스를 이용한 해킹과 액션 규칙도 당연히 있습니다. 이 부분은 해커가 본격적으로 활동한다면 유용하게 쓸 수 있겠네요. 물론 그냥 돈 주고 해커를 고용하는 걸로 끝낼 수도 있습니다.

 

6. 그래서…

앞서 말했듯, 스프롤은 “프리랜서들이 익명의 의뢰인에게 임무를 받아 불법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플레이”에 특화된 RPG입니다. 물론 다른 종류의 이야기로 개조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려면 상당히 많은 부분을 뜯어고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보는 사람에 따라 장점일 수도, 단점일 수도 있습니다(저는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던전월드가 D&D를 AWE로 재해석했다면 스프롤은 섀도우런을 판타지 부분만 빼고 AWE로 재해석한 느낌인데, 이후 나올 추가 서플리먼트인 “Touched”는 이 세계에 마법적인 현상이 강림해서 각종 이종족이 탄생하고 마법이 등장하는 미래 세계를 플레이할 수 있는 규칙을 소개한다고 합니다(…). 섀도우런을 해보고 싶었지만 너무 빡빡한 규칙에 절망했던 분들은 스프롤로 즐겨도 좋을 것 같네요.

안전한 플레이를 위해. X-카드를 사용해 보세요!

RPG 플레이를 하는 중 심기가 불편해지는 경험은 누구든지 한 두 번씩 느껴봤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 자신이 믿는 신념이나 신앙을 크게 조롱하는 내용이 나왔을 때.
  • 불편할 정도의 과도한 성적, 폭력 묘사가 나왔을 때
  • 이전에 겪은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소재가 나왔을 때
  • 전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거나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내용이 나왔을 때.

당연히 저도 겪어봤고, 이 때문에 플레이를 망친 적도 있습니다.

존 스타브로폴로스는 이런 사고를 막기 위해 “X-카드”라는 규칙을 제안했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플레이 중 심기가 불편한 내용이 나오면 누구든지 인덱스 카드에 X자를 그은 다음 들어 올리거나, 테이블 중앙의 X자 카드를 툭 칩니다. 그럼 마스터든 플레이어든 다 같이 의논해서 해당 내용을 수정합니다.” 라는 내용입니다. 내용이 무척 재미있어서 간단하게 개념을 소개해봅니다.

 

어떻게 쓰는가? (조금 자세하게 풀자면)

우선 플레이를 진행하는 사람은 플레이를 시작하기 전에 아래처럼 이야기합니다.

“도움이 좀 필요해요. 다같이 재미있게 즐기는 플레이를 하려면 여러분 도움이 필요합니다. 플레이 중 어떤 이유로든지 마음이 불편해지면 (인덱스 카드에 X자를 긋습니다) 이렇게 들어 올려주세요. (X자 카드를 테이블 한 가운데에 놓고) 이렇게 카드를 가볍게 툭 쳐도 됩니다. 왜 카드를 사용했는지는 설명할 필요 없어요. 이유는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카드를 들어올리거나 치면, 해당 내용을 수정하기만 하면 됩니다. 문제가 있다면 누구든지 잠시 플레이 중지를 요청한 다음에 개인적으로 이야기해주세요. 좀 우습게 들리겠지만 X-카드 규칙을 사용하면 다 같이 재미있는 게임을 할 수 있어요. 게다가 보통 저도 이 카드를 많이 써요. 여러분 전부한테서 저를 지키려고요! 모두 재미있게 플레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감사합니다!”

그 다음에는 평상시처럼 플레이하다가, 불편한 내용이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X-카드를 사용하세요. 어떤 내용이 X-카드를 받았는지 모르겠다면 카드를 사용한 사람에게 몰래 물어보세요. 그리고 X-카드는 개인적으로 불편한 내용에만 사용해야 하며, 다른 이유로(다른 사람을 놀리기 위해, 게임의 내용을 되돌리기 위해 등등) 사용하지는 마세요. 그리고 X-카드를 쓰면 된다는 이유로 쓸데없이 내용을 막장으로 만들지 마세요.

시간이 나면 전문을 번역해보고 싶네요. 무척 괜찮아 보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서 찾아보세요 : http://tinyurl.com/x-card-rpg

퀼 – 편지 쓰는 R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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퀼( Quill : A Letter-Writing Roleplaying Game for a Single Player)은 스콧 멀트하우스가 만든 1인용 RPG입니다. 제목 그대로 플레이어는 깃털펜으로 유명인사에게 편지를 쓰는 인물이 됩니다.

어떻게 플레이하느냐고요? 편지를 쓰면 됩니다. 물론 게임 규칙에 따라서 말입니다.

퀼에서는 세 가지 능력을 판정에 사용합니다.

필체(Penmanship) : 글씨를 얼마나 아름답게 쓰는가?

문장력(Language) : 단어를 얼마나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가?

감정(Heart) : 문장에 얼마나 마음을 잘 담는가?

판정 방식은 6면체 주사위를 굴려 주사위 중 하나라도 5~6이 나오면 성공인데, 능력치가 Poor면 주사위 하나, Average면 두 개, Good이면 세 개를 굴립니다.

플레이어가 선택하는 캐릭터는 각각 Good, Average, Poor 능력치를 하나씩 가집니다. 수도승은 필체는 좋지만 감정을 전달하는 데 약하고, 기사는 감정 전달을 잘하지만 문장력이 떨어지는 식이지요.

또한 플레이어는 영감, 화려함, 감정 증폭 등 기술 중 하나를 선택해서 플레이 중 한 번 선택한 판정에 주사위 하나를 추가할 수 있습니다.

퀼에는 몇 가지 시나리오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각 시나리오는 편지를 왜 쓰는지 상황을 소개하고, 해당 시나리오에서의 특수 규칙, 그리고 해당 시나리오에서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단어로 나누어 집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상황 : 좌의정의 셋째 자제가 장원 급제를 해서, 여러분은 좌의정에게 축하 편지를 씁니다.

특수 규칙 : 신중하게 써야 합니다. 문장력 판정은 항 상 두 번 굴려서 무조건 나중 결과를 써야 합니다.

필수 단어 : (천박한 단어 / 고상한 단어)

개똥이 / 어르신의 자제분

발정 난 녀석 / 영웅호색

몽둥이가 약이군요 / 사랑의 매로 품행을 바로잡으셨군요.

열공해서 / 학문에 정진하여

출셋길 / 등용문

기타 등등.

 

게임 기본 규칙

1. 다섯 문단으로 씁니다.

2. 문단을 끝낼 때마다 필체 판정해서 성공하면 1점을 받습니다.

3. 각 문단에는 필수 단어가 하나씩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필수 단어를 사용할 때마다 문장력 판정. 성공하면 고상한 단어를 사용해서 1점. 실패하면 천박한 단어 사용해서 0점을 받습니다.

4. 필수 단어에 미사여구를 덧붙이려면(똑똑한, 아름다운, 붉게 물든, 열심히….) 문장력 판정을 하기 전에 감정 판정을 먼저 합니다. 감정 판정에 성공하면 미사여구를 덧붙일 수 있습니다. 만약 문장력 판정에도 성공해서 고상한 단어에 미사여구를 사용하면 2점을 받지만(영민하신 어르신의 자제분), 문장력 판정에 실패해서 천박한 단어에 미사여구가 붙으면(영민한 개똥이) 불쾌감을 주어서 오히려 -1점을 받습니다.

5. 플레이어는 편지를 다 쓴 후 종합 점수를 계산합니다.

5점 이하 : 상대는 편지를 읽고 심한 모욕을 느낍니다. 아마 플레이어에게 해를 입힐 것입니다.

5~7점 : 상대는 미지근한 반응을 보입니다.

8~10점 : 상대는 호의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11점 이상 : 상대는 편지에 감명을 받고, 여러분에게 큰 호의를 베풉니다.

위 시나리오에서는 5점 이하라면 아마 좌의정이 무척 화를 내면서 여러분에게 해코지를 할 테고, 11점 이상이면 여러분에게 무언가 큰 선물을 하겠지요.

이런 게임입니다. 사실 위 규칙만 안다면 직접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좀 더 상세한 규칙과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편하게 한국어로 보고 싶다면, 인디 RPG 번들을 지원해 주세요! ㅎㅎ (링크)

dirover님이 쓰신 안방극장 대모험 체험기.

이번 1월 31일에 실시한 인디RPG번들 체험 이벤트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아 안방극장 대모험을 플레이해 주신 dirover님의 리뷰입니다.

그냥 댓글로 남겨두기에는 아까워서 허락을 받고 여기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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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에 쓸만한 곳이 없어서 여기에 후기를 씁니다.

저는 사전플레이 이벤트에서 위시송 님이 마스터링하시는 안방극장 대모험을 했습니다. 플레이어는 저 포함 세 분이었고, 처음에 소재나 장르, 등장인물, 방송시간대, 심의기준, 주연의 시즌 내 비중 등과 함께 플레이어가 맡을 주연 배우를 정합니다. 이러한 부분은 굉장히 TV드라마를 만드는 극작가와 PD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 다음 파일럿 플레이를 합니다. 이 플레이는 단순히 1화를 플레이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작성한 설정들과 캐릭터 및 이야기가 부합하는지, 그리고 참가자들이 원하는 것(장르적 재미나 연출 등)은 어떤 것인지를 맞추기 위한 플레이입니다.

플레이 자체는 이렇게 진행됩니다. 1에서 4막까지 한 막에 각 플레이어가 장면을 하나씩 연출하는 식으로 돌아갑니다. 각 장면은 플레이어가 주연배우가 되어 캐릭터의 목적 달성을 위한 플롯 장면을 할 것인지, 캐릭터의 갈등에 초점을 두는 캐릭터 장면을 할 것인지를 선택하고 장면을 연출합니다. 이 룰의 마스터는 PD로서, PD는 이러한 장면의 배경 및 등장인물들을 연출하고 롤플레잉합니다. 플레이어들은 여기서 의견을 낼 수는 있으나 최종적인 결정은 PD가 합니다. 이 또한 드라마를 제작하는 룰다운 면이 있습니다.

각 장면을 진행하면서 PD는 최대한 갈등이나 대립 상황을 유도하고 판정을 하게끔 합니다. 판정은 트럼프와 유사한 카드를 PD와 장면 플레이어가 갖고 서로 숫자나 색을 비교하여 합니다. 이 때 PD는 예산을 써서 카드를 더 받을 수 있고(판정을 어렵게 하여 더 극적으로), 플레이어는 캐릭터의 능력이나 연줄, 팬레터 등을 사용하여 카드를 더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때 다른 플레이어도 팬레터 등을 지원해줄 수 있습니다. 카드가 많은 쪽이 판정에 이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파일럿 플레이는 일정의 합의만을 전제로 진행되기 때문에 서로의 기대가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이번 플레이에서는 인물 간 갈등에 초점을 두느냐, 사건의 해결에 초점을 두느냐 하는 부분, 장르적인 면 전부 기대가 달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밌는 플레이를 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기대를 막 중간 중간에 조율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것을 원하는지, 이러한 소재는 괜찮은지 등. 결국엔 플레이를 해나가다보면 많은 점을 합의하고 일치시킬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파일럿 플레이는 그야말로 시즌제 드라마의 파일럿 에피소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 피아스코의 배경세트를 직접 만든 것과 같이 앞으로의 중장편 시즌의 밑거름이 됩니다. 참가자들은 이 파일럿 세션을 1화로 정할 수도 있고,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더욱 조율하여 다시 1화를 플레이하기로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쪽이든 이후 중장편 플레이는 더욱 재밌어질 것입니다.

최신의 서사 위주 룰들은 안방극장 대모험처럼 파일럿 플레이 같이 세션 하나를 통해 합의를 보진 않고, 게임 외적으로 해결한 후 플레이에 돌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룰들은 그런 장치를 아예 깔고 들어가서 단편에서도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피아스코가 있습니다.

그러나 파일럿 세션은 플레이이기 때문에 이것에 들인 시간만큼 더욱 많은 점들을 깊이 있게 합의하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미 충분히 조율된 참가자들끼리 중장편의 재미를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반면, 단순히 단편으로서는 파일럿 플레이 자체가 본격적인 플레이를 들어가기 위한 사전 합의 단계이다보니 만족스럽게 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는 룰에서 의도하는 바이고 불만족스럽게 되어도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 자체를 단편 플레이로 삼는다 하면 극적인 재미와 완결성을 동시에 챙기기 어려울 수가 있습니다. 실제로 저는 다른 참가자와 기대가 다르다보니 계속 작가적 시점으로 이야기를 고민해야해서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물론 이는 파일럿 플레이 이후에는 해결이 됩니다만, 이 룰을 통해 파일럿을 단편으로서 재밌게 즐기기 위해서는 PD의 지침이나 조율이 상당히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결론적으로, 미국식 시즌제 드라마를 거의 완벽하게 구현하는 정말 멋진 룰입니다. 중장편 플레이에 최적화되어 있고, 참가자들의 기대가 일치하면 멋진 드라마 한 편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에 대한 재미도 충분히 보장하는 룰입니다. 시즌을 설정하고 진행하는 방법이나 예산, 팬레터 등의 요소들은 참가자들이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극작가이자 배우임라는 느낌을 확실히 줍니다.

다른 분들도 즐겨보셨으면 좋겠네요. 실물과 카드가 기대됩니다.

 

 

누메네라 감상

최근 시간이 되어 누메네라를 여러 번 플레이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중편을 플레이 중이고 어제는 단편 플레이를 해 봤는데, 그동안 느낀 감상 몇 가지입니다.

1. 기이함을 즐겨라
<누메네라>의 핵심 재미는 경이로운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신기한 일을 즐기고 경험하는데 있습니다(경험치 주는 방식에서 그 사상이 잘 나타나 있지요). 누메네라를 짧게 표현하자면 “발굴 탐사 RPG”라고 생각합니다.
아홉 세계의 역사나 사회체계 등은 책의 분량에 비해 느슨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게 의도적인 디자인이라고 봅니다. 자세하게 설명할수록 신비감이 사라지면서 플레이어들이 파고들 영역이 줄어드니까요.
제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누메네라의 캠페인 주제는 “세월 속에 잊힌 과거의 신비를 발견해, 그 일부라도 현시대에 맞게 해석하고 적용하여 현재를 바꿔나가는 이야기”입니다. 누메네라에서도 참고 자료로 소개되어 있지만, 그래서 저는 특히 <리보위츠를 위한 찬송>이 누메네라와 무척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2. 묘사해라, 설명하지 말고(“Show, don’t tell.”)
책에서도 강조되었지만, 누메네라에서는 특히 “Show, don’t tell” 기법이 중요합니다. 어차피 이 세계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상상할 수 있도록 묘사를 풍부하게 해 주세요. 누메네라는 AWE 기반의 RPG만큼이나 묘사가 중요합니다. AWE처럼 묘사 자체가 규칙과 연관이 되어있을 뿐 아니라, “경이로움”을 나타내려면 생생한 묘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3. 고정 관념 버리기, 특히 사이퍼를 사용할 때는!
누메네라는 플레이어들도 마스터만큼이나 상상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특히 플레이어가 상상력을 가장 크게 발휘해야 할 부분은 사이퍼 사용법입니다. 누메네라의 규칙은 비교적 단순하기 때문에(특히 전투 부분은) 사이퍼 활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플레이 재미가 크게 달라집니다. 사이퍼가 과거 어떻게 사용되었든 지금은 플레이어들의 손에 달렸습니다.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해서 여러 용도를 개발해 보세요! PC들 손에서 사이퍼가 부족하다면 그건 마스터 책임입니다. 사이퍼는 펑펑 쓰면서 이야기를 만들라고 있는 거니까요.

4. 관련 작품은 꼭 감상하기
제 편견일 수도 있지만, 누메네라는 어느 정도 마스터와 플레이어들이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즐길 “문화적 토양”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누메네라는 그냥 단순한 던전 판타지가 아닙니다. “10억 년 후의 우리 세계”를 그린 SF에 더 가깝지요. 물론 그냥 단순하게 즐길 수도 있지만, 참고자료 항목에 있는 것처럼 “최신 기술은 물론, 머나먼 미래에 과학기술이 어떻게 변할지에 관해 전망한 작품”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어울리는 작품입니다. 그러므로 누메네라를 재미있게 플레이하려면 참고 자료에 있는 자료들을 우선 즐기는 게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어로 소개된 작품들만 즐길 수 있더라도 충분합니다. 누메네라를 샀으면, 무조건 플레이를 하는 것도 좋지만 먼저 소개된 작품 중 몇 가지 정도는 꼭 보세요!

p.s : https://kr.pinterest.com/shaun0737/numenera-places-of-wonder/ 도 무척 참고할 만한 이미지 모음입니다.

출시 예정작 : Worlds in Per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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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와 놀이의 출시 예정작, <Worlds in Peril>을 소개합니다!

Worlds in Peril(이하 WiP)는 아포칼립스 월드 엔진을 사용하는 슈퍼히어로 RPG입니다. PC들은 슈퍼히어로가 되어 악당과 싸우고, 주변 사람들과 인연을 쌓으면서 위기에 빠진 세상을 구합니다.

WiP는 다른 AWE 자매작들처럼 이야기와 규칙을 잘 결합하여 물 흐르듯 이야기를 만들지만, 다른 AWE 자매작들과는 다르게 “플레이북” 중 하나를 선택해 캐릭터를 만드는 대신, 히어로의 “탄생”(어떻게 탄생했는가?)과 “동기”(어떤 가치를 추구하는가?)를 조합하여 캐릭터를 만듭니다.

WiP가 다른 슈퍼히어로 RPG와 차별화되는 점은 다음 세 가지입니다.

1.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파워 : 수많은 리스트 중 몇 가지를 골라 만드는 다른 슈퍼히어로 RPG와는 다르게, WiP는 몇 가지 주요 능력을 만든 다음, 플레이 중 점점 능력의 폭을 넓혀나갑니다.

2. 특히 중요한 인연 : WiP에서는 도시와 경찰, 그리고 히어로 주변의 사람들과의 인연이 무척 중요합니다. WiP에서 캐릭터는 인연 점수를 소비해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바꾸고, 실패를 성공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물론 인연을 불사른 만큼 그 사람과의 관계는 멀어지지만요.

3. 무척 뛰어난 일러스트 : 수많은 슈퍼히어로 RPG 중에서도 WiP의 그림 수준은 손꼽을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합니다. 절대로, 절대로 실망하지 않을 겁니다!

원작자 카일 시몬즈(Kyle Simons) 씨는 한국어를 배우는 RPG인 <마법사들>을 만든 게임 디자이너입니다. 던전월드를 한 후 AWE로 슈퍼히어로물을 꼭 해보고 싶어서 WiP를 만드셨다고 하네요. 카일 씨는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는데, 다음 달 초 고향인 캐나다로 돌아가기 전 다행히 카일 씨를 만나 계약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WiP는 앞서 발표한 출시 예정작들을 몇 가지 낸 후 출시할 예정이기 때문에 내년 말이나 내후년 초에나 출판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만약 다른 책들을 순조롭게 잘 낼 수 있다면 더 빨라질 수도 있겠지요.

기대해 주세요!

비커밍 : 영웅의 여정, 그리고 치러야 할 희생.

오랫동안 묵혀 놓았던 RPG 중 하나를 읽었습니다.

오늘 읽은 RPG는 영웅이 길을 떠나 위대한 업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희생을 치르는 이야기를 소재로 한 비커밍(Becoming : A Game of Heroism and Sacrifice)입니다. 비커밍은 기본적으로 플레이어 네 명이 즐기는 RPG이며(물론 옵션 규칙을 적용해 수를 조정할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 중 한 명은 영웅이 되고, 다른 세 명은 운명이 되어 영웅의 여정을 가로막습니다. 이 부분은 어느 정도 폴라리스와도 비슷한 면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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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요약 : 세 명의 운명이 가련한 영웅을 서로 한 대라도 더 때리려고 아우성치는 게임)

기본적인 게임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게임은 기본적으로 장면별로 나뉩니다. 장면마다 운명들은 돌아가면서 한 명씩 ‘위험의 화신’이 되어 영웅과 직접 겨루고, 나머지 두 명은 ‘유혹자’가 되어 영웅을 돕는 대신 대가를 제안합니다. 위험의 화신은 각 장면의 주요 마스터 역할을 하며, 유혹자는 NPC 중 한 명이 되어 영웅을 유혹합니다.

2. 위험의 화신이 장면을 열고 영웅에게 시련을 던지면, 영웅은 자신이 가진 이점(미덕, 힘, 동료)를 동원해 이에 대항합니다. 위험의 화신은 이미 타락시킨 이점에서 보너스를 받습니다. 유혹자는 기본적으로 위험의 화신을 돕지만, 영웅이 자원 중 하나를 자신에게 바치는 대가로 영웅을 돕겠다고 제안할 수 있습니다.

3. 판정은 다이스 풀 방식으로, 판정에 동원한 이점에 따라 주사위를 모아 6 또는 5가 많이 나온 쪽이 이깁니다(먼저 6의 개수를 비교한 다음, 동수일 때 5의 개수를 비교합니다). 판정에서 승리한 측이 나머지 장면을 서술합니다. 영웅이 이기면 자신이 건 이점을 좀 더 강화할 수 있으며, 위험의 화신이 이기면 영웅이 판정에서 건 이점들을 점점 타락시키거나 걸지 않은 이점을 빼앗을 수 있습니다. 유혹자들은 영웅과의 거래에 따른 결과를 받습니다.

4. 게임은 기본적으로 총 아홉 장면으로 구성됩니다. 플레이어들은 마지막 장면이 끝난 다음 점수계산을 합니다. 영웅은 자신이 지킨 이점과 강화한 이점마다 일정 점수를 받고, 각 운명은 자신이 빼앗거나 타락시킨 이점마다 점수를 받습니다. 이 중 점수가 가장 높은 사람이 승리하여 이야기의 결말을 서술합니다.

비커밍에서는 몇 가지 여정을 일종의 플레이 무대처럼 소개하고(물론 만드는 방법도 소개했습니다), 여정 중 하나를 골라 플레이를 하는 방식입니다. 이야기가 끝나면 한 편의 영웅담이 만들어지겠지요. 영웅이 여정 동안 얼마나 노력을 했으며 무엇을 희생했는지, 결국에는 여정을 완수했는지 혹은 실패했는지(물론 중간에 모든 이점을 빼앗기면 그 시점에서 여정이 끝납니다).

비커밍은 체계적인 방식으로 영웅의 이야기를 구현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무척 관심이 가는 RPG입니다. 언제 한번 사람들을 모아 플레이해보고 싶네요.

테크누아르(Technoir) – 관계와 관계가 얽히면서 만들어지는 한 편의 진한 누와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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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누아르?

테크누아르는 수십 년 후 환경오염과 자원고갈, 기업 간의 그림자 속 전투로 찌들어가는 세계를 그린 사이버펑크 누아르 RPG입니다. PC들은 범죄자, 프리랜서, 용병이 되어 의뢰를 받거나 주변 사람들의 부탁을 들어주면서 사건을 해결합니다.

테크누아르의 특징은 관계와 관계를 연결해가면서 즉석에서 이야기를 만드는 이야기 전파(Transmission) 규칙과, 자신이나 상대방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상태(Adjective, 페이트의 상황 면모, 아포칼립스 월드의 태그 같은)를 붙이면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판정 방식입니다.

이번 테스트 플레이에서는 이 두 가지가 실제로 잘 작동하는지 알아보는 데 중점을 두었고, 결과는 비교적 만족스러웠습니다. 오늘 플레이에 참석해주신 진유랑 님, 조일식 님, 아이고망했어요 님께 감사드립니다.

 

플레이 내용

오늘 플레이는 궤도 엘리베이터, 일종 “콩나무”를 건설 중인 킬리만자로 산 주위의 도시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롱 웨이셴(진유랑)과 알 그렌(조일식), 디오네 듀클레어(아이고망했어요)는 궤도 엘리베이터 노동자 조합에서 의문의 세력에게 납치된 노조위원장 파이자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파이자는 PC들과도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PC들은 이 일을 맡기로 하고 증거들을 모아나갑니다.

연줄에 캐묻고, 경찰과 기업 전산망에 침투하는 등 정보를 수집하면서 PC들은 기업의 사설 부대가 파이자를 납치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문제는…

1. 파이자는 반-궤도 엘리베이터 테러 조직과 손을 잡고 기업 및 도시 곳곳에 폭탄을 숨겨두었습니다. 기업에서는 노조 내 내부고발자의 밀고로 첩보를 입수해 문제를 조용하게 해결할 목적으로 파이자를 납치했습니다.

2. 더 큰 문제는 이 일을 들쑤시면서 PC들의 신분이 노출되었기 때문에, 기업에서는 PC들을 테러리스트 집단이나 반기업 단체의 일원으로 오해할 여지가 무척 컸습니다.

그래서 PC들이 선택한 결과는… 해당 기업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던 경찰 쪽에 지금까지 파헤친 정보를 넘기고 파이자를 기업의 손에서 빼내 경찰에게 넘기는 대신, 약간의 사례금과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었습니다. 노조 쪽에는 이 일에 관해 입 다무는 대신 파이자의 처리를 마음대로 하겠다는 묵인을 받아냅니다.

PC들은 기업 사설 부대와 짧지만 격렬한 전투를 벌인 끝에 파이자의 신병을 확보해 경찰에 넘겼습니다. 며칠 후 언론에서는 경찰의 신속하고 빠른 대처로 폭탄 테러를 사전에 차단했다는 기사가 나왔고, 테러집단과 협력했던 용의자가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는 막을 내립니다.

 

감상

우선 이야기 전파 규칙은 무척 만족스러웠습니다. 위의 이야기는 거의 실시간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오히려 평소처럼 시나리오를 만들었으면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지기는 무척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무작위 표를 굴려 각종 인물이나 세력, 사건을 나타내는 새로운 관계점을 만들고 이 점을 다른 관계점과 잇는 과정에서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이야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상태 규칙 역시 재미있었습니다. 마치 페이트에서 상황 면모만으로 사건을 해결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다만 처음 돌려보는 규칙이라서 그런지 지금 생각해보면 아쉬운 부분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경찰들의 눈을 피해 사건 현장으로 침투하는 장면에서, 상대방에게 “이쪽을 못 봄”이라는 상태 대신에 PC 자신에게 “은신”이라는 상태를 걸도록 조언했으면 훨씬 부드럽게 진행되었을 거 같았습니다. 또한, 판정마다 좀 더 맛깔 나는 묘사를 해야 했는데, 이쪽 역시 제가 좀 서투르게 표현을 해서 아쉬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실, 테크누아르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진행한 RPG 중 “좋지 않은 사례”입니다. 원래 펀딩 중 약속했던 추가 자료집 중 하나는 결국 나오지 않은 채 중단되었고, 원작자는 더는 지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테크누아르는 이 코어 룰북 하나만으로도 무척 훌륭한 사이버펑크 RPG입니다. 가능하다면 언젠가 한국에도 정식으로 소개하고 싶네요.

 

피아스코: 욕망의 비극, 또는 희극

흔히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타인이란 곧 지옥이라고도 하지요. 인간 없이는 살아갈 수 없으면서도 우리는 인간관계 속에서 지옥 같은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그 관계 속에서 기대하고 좌절을 맛보고, 가질 수 없는데 소유하고자 하고, 허전한 마음 한구석을 남이 채워주기를 바라면서도 사람에게 받은 상처 하나씩은 안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분노하고 미워하고, 그런 고통을 달래줄 도피처를 찾아 헤맵니다. 돈을 벌면, 성공하면, 날씬해지면, 예뻐지면, 술을 마시면, 네가 나를 사랑하면, 부모에게 인정받으면 행복할 거라고, 아니면 잠시 잊을 수는 있을 거라고 되뇌며 비틀거리는 나약한 우리. 그런 인간에게 인간관계란 고문관 없는 고문실이나 다름없습니다.

피아스코 표지fiasco
낭패
a fiasco failure
대실패.
피아스코 (Fiasco: A Game of Powerful Ambition and Poor Impulse Control, 2009 Bully Pulpit Games)는 바로 그런 관계와 욕망이 얽히고 섥히는 놀이입니다. RPG에서 일반적으로 놀이의 시작이자 기본단위는 인물입니다. RPG라는 말 자체가 인물의 역할 (Role)을 맡는 (Playing) 유희 (Game)를 가리키고 있지요. 반면 피아스코의 플레이 준비는 인물이 아닌 관계에서 시작합니다.

플레이어 A는 설정표를 잠시 보다가, 굴려놓은 주사위 중 3을 골라서 관계 분류 3인 ‘과거’를 자신과 플레이어 B 사이에 설정합니다. 다음 B는 6으로 나온 주사위를 골라서 과거 분류 중 6번인 ‘안 좋은 가족사’를 고릅니다. A와 B는 아직 인물 설정을 하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의 인물은 불미스러운 가족사라는 관계에 얽혀있게 됩니다.

피아스코 설정 단계에서 참가자들은 미리 굴려둔 주사위를 골라서 설정표에 나오는 인간관계를 선택하고, 그 인간관계에 붙는 욕구, 장소와 물건도 마찬가지로 고릅니다. 그 인간관계의 당사자인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는 관계의 망을 짜면서 차차 생각이 떠오를 것입니다. 피아스코의 인물은 관계의 망 속에서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요,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이니까요.
관계에는 욕구, 장소, 물건 중 한 가지가 붙습니다. 플레이어 C는 4가 나온 주사위를 골라서 욕구 분류의 4번인 ‘기 좀 펴고 살아야겠다’를 고릅니다. 다시 차례가 돌아온 플레이어 A는 역시 4가 나온 주사위를 집어들어 ‘기 좀 펴고 살아야겠다’ 욕구의 4번인 ‘경찰에게 망신을 줘서 친구들에게’를 고릅니다.
불미스러운 가족사하고 경찰을 망신주는 일이 어떻게 연관이 될까 서로 얘기해보다가, A는 B가 경찰이고 A는 그의 숨은 아들이면 어떻겠느냐고 합니다. 다른 플레이어도 괜찮은 생각이라고 동의하지만, 일단 다른 관계와 욕구·장소·물건도 설정해보고 다시 얘기하자고 합니다.
관계와 그에 붙는 부속을 다 설정했으면 그에 맞추어 인물이 어떤 사람들인지 정하고 플레이에 들어갑니다.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자신의 인물이 나오는 장면을 합니다. 이때 참가자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장면을 시작하고 다른 참가자들이 성패를 정하거나, 다른 참가자들이 장면을 시작하고 자신이 스스로 성패를 정하는 것 두 가지입니다. 성공에는 흰 주사위, 실패에는 검은 주사위를 스스로 고르거나 참가자들에게 받으면 됩니다.
플레이어들은 관계를 설정한 후에 A는 불량 고등학생 애니, B는 애니의 어머니를 오래전에 버린 경찰관 빌, C는 빌에게 쫓기는 마약 딜러이며 애니의 남자친구인 찰리라고 정합니다.
차례가 돌아온 A는 스스로 장면을 설정하기로 합니다. 새로 산 차에 친구들을 태우고 과속을 하다 걸린 애니는 단속 경찰관 빌을 알아보고는 친구들 앞에서 빌에게 망신을 주기로 마음먹습니다. 애니는 빌에게 그 나이가 되도록 교통단속이나 한다고 살살 약올리기 시작합니다.
B와 C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는 성공이라는 표시로 둘이서 하얀 주사위를 골라 A 앞에 놓습니다. B가 맡은 빌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며 대답을 못하다가 애니를 홧김에 체포해버립니다. 애니는 수갑을 차고 끌려가면서도 등뒤에 손으로 승리의 V를 그리지요. 애니는 단번에 친구들 사이에 영웅이 됩니다.
장면을 설정하고 성패를 결정하는 것이 참가자의 의지이기에, 놀이 속 인물뿐만이 아니라 그들을 맡은 참가자 역시 계산을 하고 눈치보고 견제하는 구도를 이루게 됩니다. 장면과 성패 규칙은 참가자끼리 이야기에 대한 기대심리와 욕구가 다른 그 미묘한 긴장을 이용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점점 치닫는 이야기를 이끌어내지요. 욕구가 서로 엇갈리고, 그 욕구를 위해 서로 이용하는 동안 서술의 양상은 계속해서 어긋나며, 균열은 점점 커집니다. 놀이 속에서나, 그리고 밖에서도.

자기 차례가 돌아온 C는 A와 B에게 장면을 설정해달라고 합니다. 빌이 마약거래 현장에서 찰리를 쫓는 장면은 어떻겠느냐고 A가 제안하고, B도 동의합니다. 마약 거래 현장을 포착한 빌은 찰리를 쫓아 달리고, 찰리는 정신없이 달아납니다. 뒷골목을 따라 쫓기던 찰리는 리볼버 권총 (둘의 관계에 붙은 부속물)을 들어 빌에게 겨누는데…! 성공하고 달아나되 경찰을 쏜 중죄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지금 붙잡힐 것인가? C는 고민하다가 결국 검은 주사위를 들어보이고, 찰리는 총을 겨누다가 무서워서 쏘지 못한다고 서술합니다. B가 맡은 빌은 달려와서 찰리를 한 방 먹이고는 수갑을 채웁니다.

피아스코에서 주사위는 정말로 용도가 다양한 도구입니다. 위에서 다루었듯 설정과 성패 결정에도 사용하지만, 이야기 완급을 조절하고 결말을 정하는 수단이기도 하니까요. 주사위를 반 소모하면 1막이 끝나고, 남은 주사위를 굴려서 반전 (The Tilt)을 설정표에서 고릅니다. 그리고 2막을 하면서 나머지 주사위를 소모하고, 마침내 결말에 도달합니다.

1막을 끝내고 세 참가자는 반전을 정합니다. A는 2가 나온 주사위를 골라서 반전표에서 ‘비극’을 고르고, B는 1이나온 주사위를 골라서 비극 중 1번인 ‘느닷없는 죽음’을 선택합니다. 세 사람은 이야기 끝에 찰리가 총기 오발로 경찰을 죽여서 경찰에 대대적으로 쫓기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합니다. 이렇게 그들은 반전을 몇 개 정하고 잠시 쉬었다가 돌아와 2막을 시작합니다.

2막에 나머지 주사위도 전부 소모했으면 각 참가자 앞에는 흰색과 검은색 주사위가 쌓여 있게 됩니다. 여기서 인물을 해피엔딩으로 이끌고 싶다면 하얀 주사위 혹은 검은 주사위만 있는 것이 최상이며, 두 가지 색이 비등하게 있으면 최악입니다. 결말을 이끌어내려면 하얀 주사위를 굴려 합산하고 검은 주사위를 굴려 합산한 다음에 높은 쪽에서 낮은 쪽을 뺍니다. 그 최종 결과가 높을 수록 해피엔딩이고, 0이나 음수이면 배드엔딩입니다. 어차피 8~9쯤은 되어야 그나마 현상유지를 하므로 해피엔딩이 나오기는 확률상 쉽지 않습니다.
2막까지 끝나고 이제 모든 주사위를 소모했습니다. 빌 앞에는 하얀 주사위 3개에 검은 주사위 하나가 있습니다. 하얀 주사위를 굴리자 4 + 2 + 2 = 8이 나오고, 검은 주사위는 1이 나옵니다. 8 – 1 = 7 이고 하얀색이 높으므로 결과는 백7입니다. 애니는 흑14, 찰리는 백3이 나옵니다.
결말표에서 찾아본 결과 흑13이 넘은 애니는 더 좋을 수가 없는 결말이 나오고, 백7인 빌은 실패하고 감옥에 가며, 백3인 찰리는 파멸합니다. 애니는 감옥에서 억만장자의 아들을 만나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결혼하고, 빌은 찰리의 총기오발을 가장해 동료 경관을 죽인 죄로 교도소에 가며, 찰리는 빌의 죄가 드러나기 전에 유치장에서 당한 폭행 때문에 거의 폐인이 됩니다.
플레이 중 참가자는 되도록 검은색 혹은 흰색 주사위만 많이 얻으려고 노력하겠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2막에는 자기 장면의 성패 주사위를 스스로 가지지만, 1막 중에는 남에게 주게 되어 있거든요. 즉, 1막에는 한쪽 주사위만 많아지지 않도록 견제당하기가 쉽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참가자 사이에 치밀한 거래와 배신이 판을 치기 십상이지요. 2막 들어서는 자기 주사위를 자기가 가지므로 다른 참가자들에게 장면 설정을 부탁하고 한쪽 주사위만 늘릴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추가할 수 있는 주사위는 2개입니다. 게다가 다른 참가자들이 장면을 설정하므로 사건은 점점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닫겠지요. 결국 피아스코의 타인은 지옥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피아스코를 한 판 마치고 나면 망가진 인생과 부서진 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건과 이상할 정도로 행운이나 불운의 지배를 받는 인생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될지도 모릅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허무맹랑한 막장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헤어날 수 없는 인연의 끈과 채울 수 없는 욕망의 공허 속에 허우적거리다 파국을 맞은 인간 군상의 모습은 결국 우리 자신의 모습을 되비쳐주는 거울 아닐까요? 이지러진 것이 거울인지 아니면 자신의 얼굴인지는 모를 일입니다.
주사위

주사위에 운명을 걸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