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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들어 가는, 우리만의 이야기놀이, TRPG

 

기획회의 486호(2019.04.20)에 기고한 글입니다. (리디북스 링크)

 


 

우리가 만들어 가는, 우리만의 이야기놀이, TRPG

 

어느 놀이 이야기

“여러분 앞에는 3m 정도 높이의 커다란 문이 있습니다. 나무로 만들었고, 튼튼해 보이네요. 덫은 없어 보이지만 문을 열지 못하도록 반대편에서 막은 것 같습니다.”

“문 상태는 어떤가요?”

“적어도 몇백 년은 된 것 같아요. 자세히 보면 여기저기 썩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들이받아서 부수겠습니다.”

“근력 판정을 하세요.”

“주사위를 굴려 보겠습니다… 성공했네요!”

“문은 우지끈! 하는 소리를 내면서 부서집니다. 문 안쪽 방 한가운데는 거대한 악마상이 있고, 석상 앞에는 붉은 피부의 괴물이 이쪽을 바라봅니다. 한눈에 봐도 무척 화난 것 같네요.”

“두말할 것도 없네요. 칼을 뽑습니다.”

“저는 일행들에게 축복의 마법을 걸겠습니다.”

“좋아요, 전투 준비하세요.”

위의 이야기는 즉흥극도 아니고, 소꿉놀이도 아니다. 더더구나 컴퓨터 게임도, 보드게임도 아니다. 바로 TRPG를 하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대화다.

TRPG?

테이블탑 롤플레잉 게임, 즉 TRPG는 플레이어들이 테이블에 모여 상상 속 무대에서 살아가는 캐릭터를 맡아서 캐릭터의 말과 행동을 선언하는 역할연기 놀이이다. 플레이어들은 캐릭터가 가진 능력과 성격 등을 바탕으로 역할을 수행하며, 캐릭터들의 행동이 성공했는지는 정해진 규칙과 지침에 따라 결정한다. 플레이어 중 한 명은 게임마스터 역할을 맡아 캐릭터들이 만날 친구나 적, 그리고 세계 그 자체를 연기하고 전체 플레이를 조율한다.

난독증도 치료하는 TRPG의 매력

2017년, 미국 잡지 《뉴요커》에서는 ‘던전스 & 드래곤스의 기이한 부활’이라는 제목으로 TRPG의 대표주자인 ‘D&D(던전스 & 드래곤스)’가 새롭게 인기를 끌고 있는 현상을 분석했다. 이 기사에서는 자신의 보드게임 카페에서 아이들을 위해 D&D의 게임마스터를 맡고 있는 존 프리먼이 겪은 이야기를 소개했다.

어느 날, 어느 플레이어의 어머니가 길가에서 존을 불러 세우더니, 눈물을 흘리며 말을 걸었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죠?” 그 여성의 아들은 난독증을 앓고 있었고, 몇 주 전부터 D&D를 플레이하기 전에는 단 몇 초도 글쓰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이제 그 아이는 밤을 새워서 자기 캐릭터의 이야기를 쓴다고 한다. “어떻게 했든 간에, 그 비법을 알려주세요.”

난독증을 앓고 있는 아이조차 글을 쓰게 한 TRPG의 매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TRPG는 게임이다

아이가 TRPG에 푹 빠진 이유는, TRPG가 즐거운 놀이이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형식을 갖추고 규칙을 추가한 놀이, 즉 ‘게임’이다.

사람이 즐기면서 무언가를 할 때 발휘되는 잠재력은 무척 크다. 공자는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라고 말했다. 이 아이 역시 자기 캐릭터의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을 놀이로 인식했기에 장애마저 극복하고 자신의 캐릭터를 위한 글을 쓸 정도로 몰두할 수 있었다.

게임이 즐거운 이유는 무엇인가? 《GAME-상호작용 이야기》(이용설 저)에서는 게임을 스토리텔링과 상호작용성을 조합한 매체로 본다. 스토리텔링은 상대에게 알리려는 내용을 재미있고 생생한 이야기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행위이다. 하지만 책이나 TV, 영화처럼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매체와는 달리 게임은 플레이어가 취하는 행동에 반응을 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이 행동과 반응이 연쇄 과정을 일으키면서 상호작용성을 만든다. 즉, 게임은 사용자를 스토리텔링 속에 참여하게 하는 매체이다. 직접 경험해서 받아들이는 내용이 얼마나 강력한지는 순자가 “듣지 않음은 듣는 것만 못하고, 듣는 것은 보는 것만 못하며, 보는 것은 아는 것만 못하고, 아는 것은 실천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강조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TRPG는 즉흥극이나 소꿉놀이와 어떤 점이 다르기에 형식을 갖춘 게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TRPG는 플레이어가 선언한 행동이 성공하는지 실패하는지, 혹은 어떤 식으로 이야기 속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결정하는 분명한 규칙을 가졌다. “내가 너를 칼로 찔렀어.” “아냐! 네가 칼을 휘두르기도 전에 내가 널 총으로 쐈어!”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TRPG에서는 규칙을 사용해 결과를 명확하게 정한다.

이처럼 TRPG가 게임이 된 이유는, TRPG가 게임말을 가지고 테이블 위에서 상대의 말과 싸워 이기는 미니어처 워게임에서 갈라져 나왔기 때문이다.

TRPG의 탄생과 발전

TRPG의 역사는 게리 가이각스가 TRPG 회사인 TSR을 세우고 D&D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게리 가이각스는 플레이어들이 각자 게임말을 하나씩 맡아 플레이하는 미니어처 워게임 ‘체인메일’을 만들었는데, 이후 게리 가이각스는 체인메일을 데이브 아네슨의 아이디어에 따라 가상의 세계에서 캐릭터들이 모험을 하는 형식으로 바꾸어서 1974년 최초의 D&D를 완성했다.

하지만 TRPG는 탄생할 때부터 워게임이나 보드게임과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TRPG의 진짜 목표는 정량적이고 명확한 승리 대신 플레이어들이 그 속에서 발생하는 이야기를 즐기는 데 있기 때문이다.

게리 가이각스와 데이브 아네슨은 D&D 플레이어 핸드북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잠시 생각해보자. 우리는 왜 게임을 하는가? 재미를 위해서다. 각각의 플레이들은 재미를 맛보면서 “승리한다” – 그러므로 당신이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면 당신은 승리한 것이다! 당신의 캐릭터가 죽는다고 해도 재미를 맛볼 수는 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나도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당신은 언제나 새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

롤플레잉 게임에서 이기는 것은 실제의 생활에서 이기는 것과 비슷하다. 당신이 하고자 했던 것을 이어가고, 그것을 통해 살아가는 것이다. 재미는 게임을 즐기는 데 있는 것이지, 끝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게임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이다. 모든 사람이 이기게 되고,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레전드 오브 더 파이브 링스, ‘세븐스 씨’ 등의 TRPG을 만든 게임 제작자 존 윅은 “만약 체스 말에 이름을 붙이고, 각 말이 가진 동기에 따라 말을 움직인다면, 이 게임은 롤플레잉 게임이다.”라고 말했다. 즉, TRPG는 승리를 위해 사용하고 소모하는 게임말을 캐릭터로 삼아 동기를 부여하고 감정을 이입하면서,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종류의 게임이 된 것이다.

이후 TRPG는 ‘크툴루의 부름’, ‘트레블러’,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 등의 작품이 나오면서 호러, SF, 어반 판타지 등 여러 장르로 뻗어 나갔고, 2000년대 이후에는 인디 RPG의 붐과 함께 ‘폴라리스’, ‘평온한 한 해’, ‘퀼’ 등 게임마스터를 두지 않거나, 플레이어들이 게임마스터처럼 세계를 관리하거나, 아예 혼자서 즐기는 규칙을 제공하는 등 실험적인 게임들도 많이 등장했다.

꺼지지 않는 TRPG의 인기

하지만 ‘규칙에 따라 이야기에 참여하는 게임’이라는 TRPG의 형식은 오늘날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CRPG)이 계승했고, 그에 따라 TRPG가 다른 게임에 비해 가지고 있던 장점은 상당 부분 퇴색되었다. 1970년대 중반 D&D에 영감을 받아 그 경험을 모사하기 위해 등장한 CRPG는 이후 컴퓨터와 비디오 게임 콘솔의 발전과 함께 플레이어들에게 화려한 영상과 사운드를 제공하며, 인간 게임마스터가 제공하는 것 이상으로 방대하고 복잡한 이야기를 펼친다. 게다가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RPG)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같은 가상 세계 안에서 동시에 협력해서 플레이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TRPG는 오히려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2018년 D&D 5판의 출판사 위자드 오브 더 코스트는 1997년 TSR을 합병한 이후 가장 많은 D&D 판매 실적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게다가 2016년 한 해 동안 D&D를 즐긴 미국인의 수는 860만 명에 다다른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또한 TRPG를 즐기는 미국 성우들이 진행하는 D&D 플레이 ‘크리티컬 롤’은 2016년 1월 기준으로 트위치에서 누적 시청 시간 3700만분을 기록했고, 유튜브에서는 1700만 명 이상이 시청했다.

한국에서도 현재 TRPG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90년대 중반 D&D(1983년 개정판)가 한국에 소개된 후 잠시 인기를 끌면서 몇몇 작품들이 추가로 소개되었다가, 초여명의 ‘겁스’ 시리즈를 제외하고는 긴 침묵에 빠졌던 한국의 RPG 시장은 크라우드 펀딩 시장의 활성화와 함께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에는 웹툰 작가 및 성우 등이 ‘던전월드’를 플레이한 영상 ‘침X펄X풍 TRPG’가 화제가 되었다.

CRPG의 등장과 발전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여전히 TRPG를 즐길까? CRPG가 대체할 수 없는 TRPG만의 강점은 무엇일까?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한 즉흥성과 커뮤니케이션

CRPG와 TRPG의 가장 큰 차이는 즉흥성과 커뮤니케이션의 유무이다. CRPG는 제작자가 완성한 스토리텔링이다. CRPG의 이야기에는 바꿀 수 없는 끝이 있으며, 플레이어들이 게임 안에서 할 수 있는 행동과 이에 대응하는 게임 세계의 반응 역시 제작자들이 준비한 내용을 벗어나지 못한다. 아무리 방대한 내용과 다양한 공략법이 준비된 대작 RPG라도 몇십 시간 동안 플레이를 즐긴 다음에는 콘텐츠 대부분을 소진한 채 다음 작품이나 업데이트, 또는 DLC가 나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려는 플레이어들은 자신들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 직접 MOD를 만들거나 혹은 인터넷 게시판이나 이메일, SNS를 통해 제작자에게 피드백을 주기도 하지만, 어떠한 방법을 사용하든 간에 즉석에서 해결할 수는 없으며, 의사가 제대로 반영된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TRPG는 즉흥적인 창조력과 플레이어들 사이의 상호소통이 필수적인 게임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이야기를 직접 만들어가는 놀이는 필연적으로 불확실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게임마스터는 아무리 많은 준비를 하더라도 모든 경우의 분기와 대응 방법을 생각할 수 없으며, 플레이어들의 행동을 완벽하게 조종할 수도 없다. 플레이어 역시 다른 사람들이 무슨 행동을 할지 모르고, 심지어는 스스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를 때도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참석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함께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놓아야 한다. 혼자만의 결정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TRPG는 모두 같이 즐기는 게임이며, 다른 플레이어들을 무시하는 순간 플레이는 재미없어 지기 때문이다.

그 결과, 게임마스터는 그 자리에서 새로운 세부사항을 덧붙이고 처음에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결말이나 반전을 만들곤 한다. 심지어 즉석에서 새 규칙을 고안할 때도 있다. 플레이어 역시 다른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선언을 할 뿐만 아니라, 게임마스터에게 제안을 던져 이야기의 방향을 새로 정하기도 한다.

테이블에서 만들어지는 맥락

이렇게 모두가 함께 창조력을 발휘해 만드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테이블에는 플레이에 참여한 사람들만이 공유하는 문화나 배경지식, 즉 그 테이블의 맥락이 생긴다. 같은 맥락을 공유하는 플레이어들은 어떠한 문제가 생겨도 서로를 믿고 플레이하다 보면 결국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다. 그러므로 맥락이 만들어진 테이블에서는 불확실성이 플레이를 위협하는 불안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질리지 않고 언제까지나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 된다. 맥락은 CRPG처럼 복제나 대량생산이 불가능하며, 오직 사람과 사람이 모여서 플레이를 해야 비로소 형성된다.

우리가 만들어 가는, 우리만의 작품

결국, TRPG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는 미리 완성된 기성품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시행착오를 거치고 좌충우돌하며 점점 더 멋지게 만들어 가는, 오직 우리만이 그 내역을 알고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겁스에서는 “RPG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런 설명을 했다.

다른 문화는 최대 다수의 관객을 노리고 만들어지지만, RPG 플레이는 참여한 사람들 모두가 순전히 자기들을 위해 만들어내는 “수제품”입니다.

자기 자신이 빚어낸 작품은 그 어떠한 걸작보다도 사랑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TRPG는 끊임없이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닐까?

 

 

올드 스쿨 RPG 원칙 해설서, 프린키피아 아포크리파

프린키피아 아포크리파 번역 (텍스트 버전)

 

올드 스쿨 RPG의 마스터링 및 플레이 원칙을 설명한 자료집, 프린키파 아포크리파의 텍스트 버전입니다.

이 작품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4.0 인터내셔널 라이선스 아래 자유롭게 배포할 수 있습니다.

출시 예정작: 푸른 수염의 신부

이야기와 놀이 출시 예정작, 푸른 수염의 신부를 소개합니다!

푸른 수염의 신부는 부유한 귀족 푸른 수염의 신부가 된 여성의 선택을 다루는 호러 RPG입니다. 물론 옛 동화 ‘푸른 수염’에서 모티브를 따온 작품입니다.

화려하고 거대한 저택에서 결혼식을 마친 다음, 새 신부는 신랑에게서 열쇠꾸러미를 받습니다.

“나는 볼 일이 있어 며칠 동안 나가봐야 하오. 이 열쇠들은 집 안의 모든 방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요. 어디든 열고 들어가 보시오. 하지만 이 작은 열쇠는 회랑 마지막에 있는 방을 여는 열쇠인데, 이 열쇠는 사용하면 안 되오. 이 곳만큼은 절대 들어가지 마시오.”

신랑은 길을 떠나고, 신부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여러분은 신부의 여러 인격인 ‘자매’ 중 하나가 되어 신부를 이끄는 역할을 합니다. 자매들은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반목하면서 신부를 집 안의 다양한 방으로 이끕니다. 신부는 각 방에서 여러가지 끔찍한 공포를 마주하면서 점점 망가지고 다치며 이 저택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파헤쳐갑니다.

그리고 마지막 방에서 지금까지 여러분이 내린 선택에 따라 결말이 정해집니다. 신부는 그 모든 공포와 참상에도 불구하고 신랑을 믿고 따를 것인가요? 아니면 불충하게도 푸른 수염을 피해 멀리 달아날 건가요?

그도 아니면, 호기심을 못 이겨 마지막 방의 문을 열고 진상을, 그리고 운명을 맞이할 것인가요?

푸른 수염의 신부는 내년 중후반 펀딩을 통해 한국어 출간을 할 예정이며, 번역은 로키(이지형)님이 맡습니다. 물론 룰북 뿐만 아니라 신부가 마주칠 여러 방과 물품 등을 소개하는 ‘Book of Rooms’, 여러 가지 대체 배경을 소개하는 ‘Book of Mirror’, 푸른 수염의 신부 플레이 흐름을 이야기로 재편성해서 소개한 ‘Book of Lore’도 같이 낼 예정입니다.

그럼, 내년 출간을 기대해주세요!

이야기와 놀이 2019년 계획

안녕하세요, 이야기와 놀이입니다.

이야기와 놀이 2019년 계획을 간략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1. 울타리 너머, 또 다른 모험으로

이야기와 놀이의 다음 작품인 <울타리 너머>는 2월 말, 또는 3월 초에 텀블벅을 통해 출간할 예정입니다. 이번에는 책이 세 권이나 되는 만큼 준비에 시간이 많이 걸렸네요.

 

2. 노벰버 매트릭스

<스프롤>의 첫 번째 자료집인 <노벰버 매트릭스>는 <울타리 너머> 프로젝트가 완료된 후 올해 하반기 출시 예정입니다. 간단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서 최대한 빠르게 출간하려고 합니다. 물론 스프롤 후원자분들께는 크라우드 펀딩의 결과 여부와는 관계없이 PDF를 드리겠습니다.

 

3. 새 작품

현재 몇몇 작품의 국내 출판을 타진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확정된 후 알려드리겠습니다.

 

 

이야기와 놀이를 사랑해주신 모든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관심있는 OSR 작품들.

트위터에서 쓴 이야기이긴 한데, 몇 가지 글을 덧붙여서 다시 써봅니다.

예전에 이야기했지만, OSR은 고전 D&D를 개량해서 새로운 RPG를 만드는 RPG의 한 흐름입니다.

관련 글 (클릭하면 이동합니다):

OSR RPG의 흐름

RPG펀딧이 분류하는 OSR 운동의 세 가지(+하나 더) 흐름

DC인사이드 TRPG 마이너 갤러리 니컬님 소개글1소개글2

OSR은 오픈 게임 라이센스를 바탕으로 작품과 작품끼리 서로 교류를 하면서 영향을 주고, 이에 영감을 받아 다시 새로운 게임이 만들어지면서 점점 재미있는 작품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나라에서는 이런 이점을 누리기 어렵습니다.

가장 큰 이유로, OSR이 흥한 가장 큰 장점인 “옛 D&D를 뿌리로 하기 때문에 작품과 작품 사이 호환이 쉽다.” 라는 특징이 우리 나라에서는 발휘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OSR의 원래 목적 중 하나인 “고전 명작 시나리오를 현대풍으로 다시 즐기기”는 언어의 장벽에 가로막히고, 요즘 나온 OSR 작품 사이의 호환이라는 특징도 한꺼번에 OSR 작품들이 번역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OSR 중에서도 규모가 큰 Labyrinth Lord나 Swords & Wizardry, Lamentations of the Flame Princess 같은 건 다른 거 다 포기하고 그 라인만 들여오겠다는 결심 없이는(최소한 저한테는) 번역판이 나올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외 가볍고 괜찮은 D&D 개량형 판타지 OSR들은 보통 다른 OSR과 겸용해서 사용하거나 기존에 나온 어드벤쳐를 그걸로 즐기라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OSR 작품들이 많아도 선뜻 번역하기는 어렵네요. 다행히 울타리 너머는 이 작품만으로도 내적인 완결성을 충분히 갖췄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소개할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육아 때문에 일이 많이 늦어지고 있지만, 가능하다면 다른 OSR과 연관성은 적지만 그 작품 자체로 충분히 완결성을 갖추고 재미도 있는 OSR 작품 몇 가지를 한국에 더 들여오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그런 조건에 해당하는 작품 중 제가 재미있게 본 거를 몇 개 소개하겠습니다(꼭 번역하겠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ㅎ):

1. Godbound: 이건 몇번이고 말했지만, 제가 OSR의 혁신으로 드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소개글 링크)

 

2. Wolf-Packs & Winter Snow: 빙하시대 말기 원시인들을 다룬 선사시대 RPG입니다. Lamentations of the Flame Prince에서 파생됐습니다. PC들은 전문가, 사냥꾼, 마법사, 네안데르탈인 등이 되어서 부족의 생존을 책임지고, 맹수와 혹독한 날씨에 맞서 싸우고, 동굴을 탐험합니다.

 

3. The Nightmares Underneath: 전성기 이슬람 문명풍의 왕국을 배경으로 한 RPG입니다. PC들은 현실로 침입해 오는 악몽의 세력에 맞서 싸우는 모험가들입니다. PC들이 탐험하는 던전은 악몽이 실체화된 공간입니다.

 

4. Silent Legions: 샌드박스 호러 RPG입니다. 이 RPG는 직접 러브크래프트풍 신화와 컬트, 괴물을 만드는 각종 틀을 제공합니다. 게다가 D100을 사용하는 호러 RPG의 자료를 차용하는 방법도 제공합니다. 여기에서 제공하는 샌드박스 자료가 워낙 훌륭한지라 반대로 호러 RPG를 사용할 때 자료집으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p.s 그렇다면 “그럼 왜 우리가 굳이 OSR RPG를 할 필요가 있는가?” 라는 질문이 나올 수도 있는데, 저는 “쉽고 편하다는 장점이 있을 뿐더러, 위에서 소개한 작품들은 OSR이 아닌 다른 작품과 비교해도 충분히 훌륭한 작품이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RPG펀딧이 분류하는 OSR 운동의 세 가지(+ 하나 더) 흐름.

OSR 운동의 대표적인 주자(그리고 키워, 스토리게임 까인) RPG펀딧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OSR 운동의 흐름을 세 단계로 정의했습니다. (링크)

첫 번째 흐름: 복고풍 클론 RPG. 이미 대부분의 복고풍 D&D들은 복제가 완료되었기 때문에 끝난 물결.

두 번째 흐름: 복고풍 D&D를 기반으로 룰적인 혁신을 만들어가는 단계. 현재 OSR 운동의 주류이며 여전히 활발히 일어나는 단계.

세 번째 흐름: 룰적인 혁신 뿐만 아니라 ‘중세 유럽 판타지’ 배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배경세계를 추구하는 단계. (자신의 작품도 홍보하는 겸)

+네 번째 흐름: 여기에 Venger Satanis라는 게임 디자이너이자 블로거가 “고전 RPG의 분위기를 추구하는 RPG가 OSR의 네 번째 흐름이다. 내가 만든 게임들은 이를 추구한다.” 라고 주장하고(링크), RPG 펀딧은 “막연하게 느낌을 살렸다고 하면 (자신이 정말로 싫어하는) 던전월드 같은 것도 OSR이 된다.” 라고 반박하면서 논쟁을 벌이다가(링크)… 이후 “D&D 외의 다른 고전 RPG들의 규칙을 개량하고 새로운 배경세계를 만드는 게 네 번째 흐름일 수도 있다.” 라고 입장 수정을 했습니다(링크). 단, 그저 느낌을 살린 건 OSR이라고 할 수 없다고 여전히 Venger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았지만요.

 

OSR RPG의 흐름

Old School Revival/Renaissance, 일명 “OSR”은 1970년대~80년대 초 D&D와 AD&D의 느낌을 되살리려는 제작자/팬들의 복고풍 활동입니다. 이번에 <울타리 너머…> 계약을 하면서 OSR 작품들을 몇 가지 봤는데, 개인적으로 서사주의 중심의 인디 RPG만큼이나 흥미로운 부분이라 그 흐름을 아는 대로 정리해 봅니다.


한국에서 “D&D 클래식”으로 알려진 1983년 판 베이직 D&D, 또는 D&D BECMI입니다.

(한국에서는 이모탈 세트를 빼고 출시되었습니다)

왜 이 시점에서 복고풍 RPG를 찾는 사람이 생겼는가? 가장 큰 이유는 옛 게임이 갖춘 “간편함”과 “익숙함”을 다시 되살리려는 목적이겠지만, 최근의 D&D(특히 3rd)를 향한 불만, 기존 RPG와 여러모로 다른 “스토리 게임”에 반발하는 마음도 포함되었다고 생각합니다. (OSR 팬들과 포지 계열 스토리 게임 팬들 사이에서는 오래 전부터 갈등이 벌어졌습니다. 특히 OSR 제작자 “RPGPundit”은 스토리게임을 노골적으로 증오하기로 유명합니다. 던전월드의 제작자 세이지는 D&D 5th 제작에 RPGPundit이 관여한 것을 보고 D&D 5th 구입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OSR의 시작, C&C와 OSRIC

OSR의 시작은 보통 2004년 발간된 C&C(Castles & Crusades)를 듭니다. C&C는 D&D 3rd의 복잡한 규칙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전 AD&D의 느낌을 D20 규칙으로 재현한 판타지RPG입니다. 현재 플레이어 핸드북이 6쇄까지 나왔고, 한창 7쇄를 제작 중입니다.


C&C팬들 사이에서는 OSR의 “로제타석”으로도 불립니다.

C&C에서 사용한 d20 규칙은 “시즈 엔진”이라고 부르는데, 시즈 엔진에서는 D&D 3rd의 스킬과 피트, 극복 판정용 수치(F/R/W)를 삭제하고 모두 능력치 판정으로 대체했습니다. 각 캐릭터는 종족과 직업에 따라 주 능력치와 부 능력치를 가져서 주 능력치로 판정할 때는 D20을 굴려 DC 12 이상, 부 능력치로 판정할 때는 DC 18 이상이 나와야 성공합니다.

C&C는 D&D 3rd의 복잡함에 질린 복고풍 팬들을 끌어모았고, 곧 OSRIC (Old School Reference and Index Compilation)가 등장했습니다. C&C에 끌렸던 팬들 사이에서 무언가 마찰이 일어나 OSRIC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네요.

OSRIC는 C&C처럼 오픈 게임 라이선스를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이전 AD&D 1st 자료와도 상호 호환하도록 만든 복고풍 클론 작품입니다. OSRIC 이후 본격적으로 OSR 운동이 일어났고, 그 후 옛 D&D를 기반으로 만든 여러 클론/재창작 RPG들이 등장했습니다.

상세한 목록: http://taxidermicowlbear.weebly.com/dd-retroclones.html

그중에서도 제가 접한 OSR을 한 줄씩 소개하겠습니다. (자세히 보지를 않아서 사실 한 줄씩 밖에 소개를 못합니다). 이중 상당수는 무료판이 있습니다.

  • OSRIC: AD&D 1st 클론입니다. (무료판 有)
  • Labyrinth Lord: 베이직 D&D 클론입니다. 각종 추가 규칙이 든 Advanced edition Companion을 합치면 AD&D 1st 클론이 됩니다. (무료판 有)
  • Basic Fantasy RPG: 베이직 D&D에 상향식 AC, 종족/직업 분리를 얹은 RPG입니다. (무료판 有)
  • Dark Dungeon: D&D 인사이클로피디아(D&D 1991년판 종합세트)의 클론입니다. (무료판 有)
  • Sine Nomine Publishing: 책이 아니라 Kevin Crawford의 1인 출판사입니다. 이 곳은 고전풍 D&D의 느낌이 나는 샌드박스형 RPG 및 레비린스 로드 서플리먼트를 만드는데, 이 곳의 작품은 하나하나가 무척 뛰어납니다. 특히 이전에 소개한 Godbound는 언젠가 출시하고 싶습니다. (Godbound와 Stars without Numbers는 무료판 有)
  • Lamentations of the Flame Princess: 베이직 D&D를 변형하고, 하중 규칙을 새롭게 만들고, 17세기 풍 배경으로 바꾸고, 고어한 일러스트를 집어넣었습니다. (무료판 有)
  • The Nightmares Underneath: 베이직 D&D를 변형하고, 중동풍 배경으로 바꾸고, “꿈에 세계에서 쳐들어오는 악몽의 세력을 무찌르는” 배경을 추가했습니다. 캐릭터들은 페르소나 4처럼 사람의 악몽이 만들어낸 던전에서 싸웁니다. (무료판 有)
  • The Black Hack: 1970년대 D&D의 초경량 버전입니다. DC RPG 갤러리에서 한국어판을 번역했습니다. (무료판 有)

 

수많은 OSR 중에서도 <울타리 너머, 또 다른 모험으로>를 번역하기로 결정한 이유

저는 비록 복고풍 RPG를 향한 향수는 없지만, 울타리 너머… 만큼은 무척 좋아합니다. 저는 울타리 너머…가 기존 OSR과 새로운 RPG의 흐름, 특히 AWE의 장점을 잘 혼합한 작품이라고 평가합니다. 울타리 너머…의 플레이북과 시나리오 팩, 그리고 공유형 샌드박스 규칙은 지금까지 본 RPG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쉽고 재미있습니다. 아직은 출시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이후 많은 분들이 재미있게 즐기면 좋겠습니다.

AWE 프로젝트 펀딩 일정 소개.

우선 AWE 번들 소식을 기다리셨던 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일정 조절과 비용의 문제로 월즈 인 페릴, 스프롤, 몬스터하츠 2는 각각 별도로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를 실시할 예정입니다.

1. 월즈 인 페릴: 6월 20일 펀딩 시작 예정입니다. 현재 인디자인 작업이 거의 완료되었으며, 프로젝트 기간이 지난 후 최대한 빨리 출시할 예정입니다.

2. 스프롤: 10월 펀딩 시작 예정입니다. 현재 번역이 완료된 상태입니다.

3. 몬스터하츠 2: 내년 상반기 펀딩 시작 예정입니다. 현재 번역 진행 중입니다.

계약 작품 발표: 울타리 너머, 또 다른 모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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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는 영웅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이 작은 고향을 안식처처럼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이곳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마을 바깥 숲에는 위험한 요정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사악한 악당들과 사나운 괴물은 끊임없이 마을을 위협합니다. 때로는 어둠의 세력이 이웃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여러분과 친구들은 젊고 미숙하지만,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준비가 되었습니다.

함께, 울타리 너머로 갑시다.

지금까지 늘 RPG를 플레이하고 싶었지만,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나요? 더는 걱정마세요. <울타리 너머, 또 다른 모험으로>는 여러분이 읽어왔던 소설처럼 마을의 오랜 친구들이 모여 처음으로 커다란 모험을 시작하는 이야기를 만드는 RPG입니다. 이 책에는 야단법석을 떨면서 준비할 필요도 없이, 숙제처럼 부담 가질 필요도 없이 곧장 모여 즉석에서 흥미진진한 모험을 즐길 수 있는 모든 규칙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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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와 놀이에서 계약한 새 작품은 플랫랜드 게임즈 Flatland Games의 <울타리 너머, 또 다른 모험으로>(2013년 작) Beyond the Wall and Other Adventures입니다.

<울타리 너머, 또 다른 모험으로>는 어슐러 K. 르 귄이나 로이드 알렉산더 등의 청소년 판타지 작가들의 작품에 영향을 받아 만든 판타지 RPG입니다. 캐릭터들은 모두 같은 마을에서 함께 자란 소년 소녀들로, 마을을 위협하는 사악한 무리에 맞서 모험을 나섭니다.

 복고풍 RPG

<울타리 너머, 또 다른 모험으로>는 OSR(Old School Renaissance) RPG, 즉 옛 D&D를 개량해 만든 쉽고 간단한 복고풍 RPG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혁신적인 요소도 함께 결합했지요.

플레이북과 시나리오 꾸러미

<울타리 너머, 또 다른 모험으로>은 GM과 플레이어들이 즉석에서 플레이할 수 있도록 “플레이북”과 “시나리오 꾸러미”를 제공합니다.

플레이어는 책에서 소개한 플레이북 중 하나를 선택해 캐릭터를 만듭니다(링크 참조). 플레이북은 단순히 캐릭터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과 장소, 마을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까지 담습니다. 플레이어들이 모두 캐릭터를 만들면, 캐릭터들이 지금까지 살아왔으며 이제 직접 지켜야 할 마을도 함께 등장합니다.

GM 역시 책에서 소개한 시나리오 묶음 중 하나를 선택해 즉석에서 플레이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시나리오 꾸러미는 단순히 미리 정해진 이야기가 아니라 무작위 표를 이용해 플레이마다 적의 정체와 목적, 시나리오 중간에 일어나는 사건 등이 달라집니다. 즉, 몇 번을 플레이하더라도 그때마다 새로운 이야기와 새로운 사건이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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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자료집: <머나먼 들판>과 <또 다른 영웅들>

<머나먼 들판> Further Afield과 <또 다른 영웅들> Heroes Young and Old은 <울타리 너머, 또 다른 모험으로>와 함께 낼 추가 자료집입니다. <머나먼 들판>은 단편 플레이 중심의 <울타리 너머, 또 다른 모험으로>을 장편으로 즐기기 위한 추가 규칙과 조언을 담은 자료집으로, 이 책에서 소개하는 “공동 샌드박스” 제작법은 이 작품뿐만 아니라 다른 RPG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무척 유용한 개념입니다. <또 다른 영웅들>은 이십여 가지의 추가 플레이북과 플레이북 제작법, 새 마법과 생물들을 포함한 확장 자료집입니다.

그래서 언제?

<울타리 너머, 또 다른 모험으로>는 AWE 번들 프로젝트가 끝난 후 곧바로 번역작업에 착수할 예정입니다. 예정대로라면 2018년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를 통해 소개할 것 같습니다.

역사 RPG에서 여성의 비중과 역할

트위터로 간략하게 소개했던 글인 “역사 RPG에서 등장하는 여성” 이(링크) 예상치 못하게 큰 관심을 끌어서, 많은 분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글 전체를 번역해봤습니다.

원문은 https://chariotrpg.blogspot.com/2016/11/dymphna.html 입니다.

 

 

역사 RPG에서 등장하는 여성

우선, 제 킥스타터 프로젝트인 <에이지 오브 미라클즈>가 여전히 펀딩 중이고, 아직 목표를 향해 엉금엉금 기어가는 중임을 알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신(新)신비주의 비의(秘儀) 신학자를 좀 도와주실래요?

펀딩 작업을 하는 동안, 저는 몇 주 후에 보여줄 외부 기고문을 몇 개 의뢰했습니다. 제가 처음 의뢰를 부탁한 사람은 딤프나입니다. 저는 딤프나와 지난 몇 달 동안 서로 즐겁게 생각을 주고받았고, 딤프나는 제 <이너 월즈> 시리즈에서 저보다 더 글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이 필요했던 주제에 글 몇 가지를 보태어 주기로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딤프나는 “어디 출신이냐?” 라는 질문을 받을 때 좀 불편하다고 말합니다. 딤프나는 지금까지 화이트 울프/오닉스 패스에서 많은 글을 썼고, 최근에는 <체인질링 : 더 로스트>, <뱀파이어 : 더 다크 에이지스>, <뱀파이어 : 더 마스커레이드> 등을 포함한 여러 RPG 시리즈에서 작업을 맡았습니다. 그녀는 블로그 <여성으로서 게임하기>를 운영중이며, 트위터에서는 @dymphna_saith, 구글 플러스에서는 +Dymphna C로 활동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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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딤프나

하워드는 제게 역사 RPG에서 여성을 “어떻게” 나타내야 할지 지침이 될 만한 글을 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는 두 가지 사항을 전제로 두고 글을 쓰겠습니다. 1) 여성혐오는 나쁘며, 가능한 한 피해야 합니다. 2) 역사물 게임에서는 역사적인 정확성, 혹은 그 비슷한 것을 추구합니다.

여성을 다루는 내용이 역사물 RPG에 포함되어야 할까요? (각주 1)

역사물 RPG에서 여성을 집어넣기는 그 자체로 어느 정도 불안한 면이 있습니다. 그 이유 중 일부는, 역사 속 무대에서 여성의 존재를 상상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지요. 역사물 게임에서 여성을 포함하기 원하는 사람들은 해당 시대에서 여성들이 무엇을 했는지 자료를 거의 찾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유명한 역사책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인류의 약 50%는 태곳적부터 그저 바느질하거나, 천을 짜거나, 때때로 아이를 낳는 도중 죽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오류가 아닙니다. 의도된 것이지요. 여성의 역사는 수천년 동안 여성을 혐오하는 문화적 세력에 의해 적극적으로 지워졌으며, 살아남은 기록은 그 당시 문화의 한계 때문에 온전하지 못합니다. 존재하는 기록조차 사회에서 정한 역할에 맞는 행동을 한 여성을 다룬 내용만이 남았을 뿐입니다. 가부장제에 저항한 여성의 기록은 말살되거나 좀 더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바뀌었습니다. 강력한 여성을 키운 문화의 기록은 파괴되어 정복자의 이야기로 대체되었습니다. 인기를 잃은 남성들의 이야기는 사후 여성적인 모습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는 우연이 아닙니다.

앞서 말한 내용은 곧 나올 2차 세계대전 속 여성을 다룬 게임 모음집인 <워버즈>의 제작자이자 편집자인 모이라 털킹튼과 이야기한 주제입니다. 저는 모이라에게 왜 2차 세계대전을 다룬 게임을 만들었는지 물어보았고, 모이라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전쟁 중 여성의 역할을 보여준 가장 흔한 스테레오타입은 ‘리벳공 로지’에요. 백인이고, 중산층 주부이며, 빅토리 가든(전쟁 중 널리 퍼진, 채소 등을 직접 키우는 텃밭을 일컫는 말)을 일구죠. 대부분은 헛소리에요. 선전일 뿐이지요. 여성은 수많은 방법으로 전쟁에 기여했어요. 직접 전쟁에 참여도 하고, 지극히 위험하고 힘든 공장 일도 떠맡았죠. 그리고 우리 사회는 이를 잊었어요. 이제 2차 세계 대전은 우리 생생한 기억 속에서 가장자리로 밀려나고 있어요. 만약 우리가 이 기억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어떻게 과거를 제대로 떠올릴 수 있겠어요? (각주 2) 우리 자신, 즉 현대의 여성을 어떻게 제대로 그릴 수 있겠어요?

하지만 여성혐오는 어떻게 하죠?

물론 여성을 다룬 역사적인 기록이 전부 여성혐오로 가득 찬 거짓말이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과거에 여성혐오는 존재했습니다. 오늘날처럼 말이지요. 여러 문화와 시대 속에서 여성의 역할은 여성혐오 때문에 꾸준히 억제되었습니다. 여성들은 지속해서 억압을 겪었고, 문화 속의 여성혐오 때문에 삶을 제한당했습니다.

따라서, 역사물 게임에서 여성들을 등장시키려는 사람들은 진퇴양난에 빠집니다. 동시대 기록에 맞춰 여성들을 묘사해서, 곧이곧대로 역사 자료를 사실로 인정할 건가요? 아니면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릴 각오를 하고 아예 새롭게 이야기를 만들어 낼 건가요?

“역사적 정확성? 바보 같은 소리.”

역사적 배경에서 여성을 집어넣을 때는 보통 어느 정도 플레이어의 환상이 개입됩니다. 그러니 자신을 속이지 마세요. 여러분의 게임에 참여한 플레이어들은 있지도 않은 과거를 상상하고 재현하는 척할 뿐입니다. 좀 더 넓혀서 이야기하자면, 모든 역사가는 과거를 떠올릴 때 공상 속을 헤엄칠 뿐입니다. (각주 3) 어쨌든, 제 말의 핵심은 여러분의 상상이 역사적인 기록에 기반을 두었는지, 아니면 그저 우리 자신의 문제투성이 문화적 가정을 바탕으로 과거가 어땠는지 함께 이야기를 끼워 맞춰 나온 생각인지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실을 완벽하게 구현하려는 게임이 없는 것처럼, 역사적 정확성을 완벽하게 살리려는 게임 역시 실제로는 없다는 사실도 언급할 가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지요. 비록 RPG 시장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유사 중세풍 게임이 나왔지만, 그중에서 흔한 창자 속 기생충 때문에 PC가 죽음을 무릅써야 하는 작품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역사적인 정확성”에 신경을 쓰나요?

짧게 대답하자면, 신경 쓰지 않습니다 – 최소한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정도로는 말이지요. 여러분이 리인액터(역사적 순간을 재현하는 취미를 가진 사람)라면 또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그리고 저는 분명히) 리인액터가 아닙니다. 이야기꾼이지요. 우리가 역사적 정확성에 신경 쓰는 이유는 그래야 게임 속에서 파고들려는 분위기나 주제를 표현할 수 있고, 우리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언제 게임 속에 여성혐오를 포함해야 할까요? 쉬운 대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만들 때 명심할 사항을 아래에 불완전하게나마 소개했습니다.

여성혐오가 가진 무게를 인정하세요. 쉽게 꺼내지 마세요. 누가 악당인지 보여주기 위한 싸구려 수단으로 사용하지 마세요. 여성 플레이어에게 여성혐오는 그저 게임 속 이야기가 아닙니다. 일상에서 부딪혀야 할 문제이지요. 여성들은 오고 가는 차에서, 상사의 웃음 속에서, 빈약한 월급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여성혐오를 절감합니다. 만약 운이 좋다면 일생 동안 가정 폭력이나 성폭력을 경험할 전 세계 35%의 여성 중 하나가 되지 않을 수 있겠지요.

여성혐오는 여성들을 상처입히고, 때로는 죽이기도 합니다. 벗어날 방법은 사실상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여성이며 특별히 여성혐오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다른 여성들이 겪는 고통을 무심하게 지나치지 마세요. 만약 게임 속에 여성혐오를 등장시키기로 했다면, 반드시 이 점을 최대한 이해하세요. 여성혐오를 역사적 배경에 “기본 사항”으로 집어넣지 마세요. “역사적”이라는 뜻이 “21세기 우리 문화에서 흔히 생각하는 여성혐오”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다른 문화와 맥락에서 표현되는 여성혐오는 오늘날 여성혐오와 다릅니다. 21세기에서 흔히 이해하는 성 이분법이 모든 역사적인 배경에서 기본으로 통용될 거로 생각하지 마세요.

에도 시대를 보겠습니다. 이 시대의 법 체계와 사상은 노골적으로 여성혐오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당시 성 역학 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성차별주의”와는 달랐습니다. 에도 시대는 남자, 승려, 와카슈(여성 복장을 하고 남성이나 여성과 성관계를 맺는 젊은 남성) (각주 4), 결혼한 여성, 결혼했지만 아이가 없는 여성, 성노동자(경제적 지위에 따라 더욱 세분화합니다), 과부 등 이 모두를 서로 다른 성적 범주로 나누었습니다. 즉, 이 시대는 <비버는 해결사>(Leave It to Beaver, 1950년대 미국 인기 코미디 드라마)에 등장하는 성적 역할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배경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누구든 에도 시대의 여성혐오를 묘사하려면, 최소한 이때 성적 구분이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기초적인 이해는 지녀야 할 것입니다.

정말로 게임에 중요한 역할을 할 때만 여성혐오를 등장시키세요. 스스로 타당한지 검증해보세요. 왜 게임에 여성혐오를 등장시켜야 하나요? 게임의 주제를 결정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여성혐오가 꼭 필요한가요? 플레이어들에게도 납득시킬 준비를 하세요.

여러분의 게임보다 플레이어들을 더 존중하세요. 만약 여성 플레이어가 “난 이 게임에서 여성 캐릭터를 하고 싶고, 여성혐오 같은 건 보고 싶지도 않아.” 라고 말한다면 귀 기울여 들으세요. 이렇게 대답해 줄 수는 있을 것입니다. “네가 할 만한 게임은 아닌 거 같아.” 무엇을 말하든 여러분의 자유이니까요. 하지만 플레이어의 말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마세요.

플레이어들에게 미리 말하세요. 여러분의 게임에 여성혐오가 포함되었다면, 미리 플레이어들에게 말하세요.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튀어나오는 갑작스러운 여성혐오는 가장 즐겁지 못한 종류입니다.

여성들이 직접 상상을 펼치게 하세요. 여성혐오와 가부장제는 여성들이 이 구조에서 벗어나 직접 자유롭게 상상할 때까지 끝낼 수 없습니다. 제가 RPG를 무척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RPG를 통해 가부장제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상상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여성 영웅을 만듭니다.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과거 여성들이 어떻게 살았을까 상상하지 못하도록 전력을 다해 기억들을 파괴했습니다. 무척 훌륭하게, 비극적으로 성공을 거두었지요.

우리는 자유로운 세상이 어떨지 상상할 수 있을 때까지 실제 세상에서 자유를 얻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과 플레이어들이 함께 만든 상상 속에 추가로 여성혐오를 드리울 때는 무척 주의를 기울이세요.

 

(각주)

1)     서양 RPG 플레이어들의 생각 속에서, “역사적 RPG” 란 보통 1980년 이전 유럽, 혹은 지중해 연안에 한정된 무대를 일컫습니다. 가끔은 일본이나 이들 지역에 환상적 분위기가 가미된 대체 배경을 일컫기도 하지요.

2)     솔직히 말하자면, 문자 그대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다음 우리는 X되는 거고.”

3)     좋아요. 저는 실제로 모든 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고민하지 않거나 아무런 엄격한 지적 활동에 뛰어들지 않고 그저 모든 것을 해체해야 한다고 허무주의적으로 결정하는 말재주 늘어놓는 포스트-포스트 모더니스트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무슨 이야기하는지는 알겠지요?
“공상”이라는 말에 경멸적인 뜻을 담은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밝힐 필요도 있겠네요. 제가 좋아하는 교수와 이론가 중에서는 비의 신학자들도 있습니다. (비의 마법사도 나오면 좋겠네요)

4)     좋아요. 와카슈는 엄밀히 말하자면 남성이 아니지만 표현하기 무척 어렵군요. 와카슈는 태어날 때 남성이고, 대부분은 어린 시절 동안만 와카슈로 있다가 보통 성인이 되면서 남성의 위치로 가지요. 하지만 어떤 와카슈들은 평생 와카슈로 남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