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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변호사 사건 파일: 악마 소동

2010년 크리스마스날에 위시송군과 한 1:1 드레스덴 파일 RPG (The Dresden Files RPG) 단편입니다. 특히 마법 전투를 테스트해보려고 마련한 자리였는데, 드레스덴 파일 마법 활용을 공부하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요약

캘리포니아 변호사이며 마법사인 리까르도 마르띠네스의 사무실에 금발 미녀 의뢰인이 찾아옵니다. 그녀는 훌리아 피닉스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동생 후안 피닉스의 형사 사건을 맡아달라고 합니다. 죄목은 살인!
위자료에 양육비를 내느라 언제나 돈이 궁한 리까르도는 의뢰를 받아들이고, 구치소에 있는 후안을 만나러 갑니다. 이상한 사건을 많이 맡는 분이라고 들었다는 후안은 사건 당일 일을 진술합니다. 마법 재능이 조금 있는 후안은 오컬트쪽 사람들과 악마를 소환하려고 했는데, 의식을 진행하다가 그만 정신을 잃었습니다. 깨어나보니 친구 하나가 옆에 몸이 갈갈이 찢겨 죽어있었고, 들이닥친 경찰에게 체포당했다는 것입니다.
리까르도는 후안과 함께 의식을 진행한 사람들의 이름과 주소를 적습니다. 하나는 새미 킴, 다른 하나는 토니 존스였죠. 리까르도는 새미 킴을 먼저 찾아가서 말하기 싫다는 새미에게 악마를 소환한 것이 알려져도 좋느냐고 을러댑니다. 결국 새미는 자기가 그 자리에 있기는 했지만 무서워서 먼저 나왔으며, 아무것도 못 봤다고 딱 잡아뗍니다. 하지만 새미의 눈을 들여다보았을 때 영안으로 악마의 존재를 엿본 리까르도는 새미를 몰아붙이고, 결국 새미는 악마 소환이 성공했다고 털어놓습니다.
이어서 리까르도는 토니 존스가 일하는 공사 현장으로 갔다가 칼을 든 두 괴한의 습격을 받습니다. 칼에 가슴을 찔린 리까르도는 중상을 입은 채 (으어허헣허허) 한 명은 염동력으로 공중에 띄우고 다른 한 명은 염동력으로 퍽 쳐버립니다. 비몽사몽하는 그를 마법사 공의회의 군사조직인 파수대 캘리포니아 지부장인 까를로스 라미레스가 병원으로 옮깁니다. 마법사이면서 공의회원이 아닌 리까르도에게는 다소 껄끄러운 존재이지만, 그래도 결정적인 순간에 다행히 도움을 받지요.
수술 수 진통제 맞고 해롱거리고 있던 리까르도에게 까를로스고 문병와서 토니 존스와 전투한 이야기를 하며, 진범은 역시 토니 존스였다고 알립니다. 악마 소환으로 인한 힘은 자신이 얻고 부작용은 새미에게 떠넘기려고 현재 새미에게 악마를 맡겨두고 있지만, 언제라도 새미를 죽이고 악마를 되찾을지 모른다고 말이지요. 게다가 라미레스 자신은 시카고에서 사령술사 일당 사건이 터져서 모든 파수대와 함께 당장 가보아야 한다고 합니다.(주:Dresden Files 시리즈 7권 Dead Beat 참고) 결국 악마 사건을 처리할 마법사는 라미레스밖에 안 남았다는 얘기.
사람을 맨날 범죄자 취급하면서 정작 필요할 때는 없는 백의 공의회를 욕하며 리까르도는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새미 킴의 집으로 달려갑니다. 불행히도 새미와 그 부모는 모두 살해당했고, 리까르도는 토니 존스와 악마와 결전을 벌여 다 죽어가면서 이깁니다. 경찰 조서에는 살인범 토니 존스의 습격을 당해 정당방위로 죽인 것으로 기록되지요.새미 킴을 구하지 못한 회한은 남지만, 그래도 의뢰인 후안의 무죄는 밝혀낸 리까르도는 또 다른 사건 파일을 정리합니다.
감상
판정은 드레스덴 파일 RPG로, 즉석 진행은 미딕 (Mythic)으로 했는데 무난하게 잘 나온 것 같습니다. 승한군이 워낙 잘 하기도 했고요. 마법사가 혼자 다니려면 방어 마법과 운동신경은 어느 정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정말 죽다 살아났군요(..) 새미가 죽은 건 좀 아쉽지만 뭐 인생 (?). 라미레스는 원작에서도 아주 좋아하는 인물인데 이렇게 만나봐서 아주 좋았어요. +_+ 원작과 이어진 점도 재미있었고… 마법 규칙도 테스트해봤고, 다른 재미도 봤으니 여러모로 성공적이었던 세션이라고 하겠습니다. 수고했어 승한~

[일일 플레이 후기] 역사를 지키는 자와 바꾸는 자! <타임키퍼즈>

네이버 TRPG 카페 제7회 일일플레이가 8월
7일에 있었습니다. 성황리에 치러진 행사였고, 아주 재밌었지요. 저는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으로 한 테이블을 맡았는데, 이때 플레이한 가상의 TV 드라마는 <타임키퍼즈>라는 시간여행/느와르 첩보물이었습니다.

안방극장 대모험

사용자 삽입 이미지안방극장 대모험은 간략한 인물 능력치와 판정을 통해 인물의 관계와 내적 갈등, 그리고
협력적인 이야기 만들기를 강조한 규칙입니다. 그 창의적인 디자인 때문에 2004년 인디 RPG 상의 ‘올해의 인디게임’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2004년 ‘올해의 인디게임’이었던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에 이어 2위였으니, 포도원의 개들과 같은 해에 심사받은 불운(?)만 아니었다면 수상했을 작품이지요.

안방극장 대모험을 플레이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마치 텔레비전을 보면서 와 멋있다, 으 쟤
뭐야 수다떨면서 앞으로 어떻게 될까 가슴 두근거리는 재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재미를 느끼려면 무엇보다 참여자 전원이 가슴이 뛰고
흥분될 만한 배경과 인물이 필요합니다. 즉, 배경과 인물을 설정하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모두의 흥미도를 확실하게 확보해야 전체
시즌을 무리 없이 끌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안방극장 대모험은 도저히 제가 시나리오나 인물을
만들어갈 수가 없는 규칙이었습니다. PD (진행자)가 일방적으로 만든 설정으로는 플레이의 재미를 살리는 데 필수적인 감정적 몰입을
도저히 이끌어갈 수 없었거든요. 그리고 사실 저 자신이 시나리오 쓰는 걸 무지 싫어하기도 합니다. 즉흥성이 강한 저는 참가자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파악해서 서로 즐거운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것을 좋아하며, 참가자의 취향이나 욕구를 모른 상태로는 머릿속이
백지장이 되어버리거든요. 그런 면에서 안방극장은 저에게 잘 맞는 규칙이기도 합니다. (2008년 초에도 도쿄의 달이라는 메이지 유신 시대물 시즌을 즐겁게 완결한 적이 있었죠.)

그래서 저는 이번 일일 플레이를 준비하며 기획에 아예 플레이 시간을 할애하기로 했습니다. 즉, 어떤 시리즈를 만들 것인가 일체
정하지 않은 채 참가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결정하고 인물을 만들어 플레이하기로 한 것이었죠. 시간은 좀 들어도 그렇게 해야만
안방극장 대모험의 맛을 제대로 살릴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테스트 플레이를 한 결과는 꽤 재미있고 유쾌하기는
했지만, 몇 가지 개선점은 있었습니다. 우선 기획 단계를 완전히 자유롭게 진행하다 보니 다소 무질서했고, 그 혼란 속에서 모두의
선호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인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더욱 심각하게도 인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인물의 내면이나 관계에 대한
논의가 충분하지 못했고, 그 결과 인물의 깊이가 부족해서 극단적인 전개와 과장에 의존하는, 소위 ‘막장’ 플레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정신없이 웃으며 하긴 했지만 극적 완성도는 아무래도 부족했죠.

테스트 플레이의 경험과 피드백을 바탕으로
저는 기획 절차를 체계적으로 하고자 간단한 설문지를 만들었습니다. (첨부 파일 참조) 그리고 인물에 대한 논의를 기획의 한 단계로
추가했습니다. 또한, 원래 플레이 계획은 1화짜리 파일럿을 하자는 것이었지만, 실제 돌려본 결과 그렇게 하면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파일럿은 생략하고 5 세션을 몰아서 1 시즌을 완성하기로 했습니다. 여러모로 테스트 플레이는 플레이상의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너무나도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때 함께 재밌게 플레이해주시고 좋은 조언 주신 테스트 플레이어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일플날 아침, 이제 준비는 되었습니다. 앗, 그런데 가장 중요한, 판정에 사용할 트럼프 카드가 없었습니다! 테플 때는 승한에게
빌렸었는데, 승한이 하는 새비지 월드에도 카드가 필요하다는 것을 깜박 잊은 것이지요. 왠만한 편의점에는 있겠거니 생각하고 일단
집을 나섰습니다. 이번 플레이는 어떤 모습이 될까 기대 반, 긴장 반으로 가슴을 두근거리며…

‘타임키퍼즈’가 탄생하기까지

먼저 도착해 있던 저는 참가자 중 처음 도착하신 까까비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알고보니 방송 전공이시라는 말씀에 급 쫄아들었죠.
이후 빅베어님과 페르소나님, 그리고 맛난파이님이 도착하셨습니다. 한 분 오실 때마다 설문지를 한 장씩 드렸는데, 그렇게
개별적으로 할 수 있는 활동이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전체 다 모이기 전에는 규칙 설명이나 기획을 하기가 어려운데, 그렇다고
잡담만 하면서 주의가 흩어지는 것보다는 플레이와 관련이 있는 활동을 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각자 작성할 수
있는 설문지가 제몫을 한 것 같습니다.

설문지를 모아 내용을 정리해본 결과 장르 선호도는 판타지, 역사물, 군사물
순이었고, 인물끼리의 복잡한 관계와 이야기의 치밀한 구성에 대한 욕구가 높았습니다. 인물 유형은 개성과 엉뚱한 매력, 동시에
냉철한 전문성에 대한 욕구도 있었고요. 그 결과에 토대를 두고 어떤 시리즈를 할까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습니다. 완전히 자유롭게
논의하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논의의 틀이 생기니 기획 과정에 한결 틀이 잡힌 것 같았습니다. 까까비님이 (전공자답게!) 의견을 잘
정리해주시고, 파이님이 취향을 구체적으로 어필하시고, 빅베어님과 페르소나님이 세세한 의견을 내주셔서 차차 시리즈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빅베어님의 제안은 거의 그대로 최종안이 되기도 했지요.

그렇게 해서 나온 설정은 역사를 그대로
지키려는 집단과 역사의 비극을 지워버리려는 적대 집단 간의 갈등,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네 명의 인물 이야기였습니다. 꼭 마법이
아니라도 환상과 도피의 요소가 있고, 그러면서도 시대물이나 위기 극복에 대한 욕구도 충족할 수 있는 시간여행물/첩보물이 괜찮다는
총의를 형성해갔지요. 자유롭게 다양한 의견을 내본 결과 나온 설정과 인물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타임 키퍼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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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그대로 유지하고 지켜가려는, 말하자면 역사 수호대입니다.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의 역사도 원래 그대로 지켜가려는 이 집단은
장차 다가올 대재앙, 적사병 (The Red Death)으로 인류의 90%가 몰살당하는 역사마저 유지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재앙을 막으려는 타임 브레이커즈와 정면으로 대립하게 되고, 그 싸움이 1기의 근간을 이룹니다.

비밀 집단인 타임
키퍼즈는 대외적으로는 적절하게도 (?) 스위스의 유서깊은 시계회사 네프 주식회사입니다. 설립자인 네프의 후손이 네프사의 회장인
동시에 타임 키퍼즈의 최고지도자입니다. 그 밑에는 간부와 요원, 그리고 각종 보조직이 있습니다. 요원은 흔히 키퍼라고 합니다.

타임 브레이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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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사병 발발을 막으려는 집단으로, 타임 키퍼즈의 미래이기도 합니다. 적사병에 인류의 대부분이 목숨을 잃고 문명이 파괴된 이후 원래의
타임키퍼에서 갈라져나왔거나, 조직 자체의 목적이 변해 타임 브레이커가 되었습니다. 이들 요원은 흔히 브레이커라고 합니다.

준 (암호명 Pers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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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키퍼의 젊은 엘리트 요원으로, 키퍼 코드명은 ‘페르소나’입니다. 그리고 우연히도 (??) 페르소나님이 맡으신 인물이기도
합니다. 어려서부터 타임키퍼에서 요원으로 길러진 그는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꿈에도 모른 채 명령을 따릅니다.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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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을 숨기고 과거로 온 타임 브레이커 요원입니다. 다가오는 적사병 발발과 아주 깊은 연관이 있는 준을 납치해오라는 임무를
받았지만, 준과 개인적으로 친해지면서 그 명령을 수행하지 않은 채 프리랜스 작가로서 만족스럽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까까비님이 맡으신 인물이었습니다.


Mr. M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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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키퍼의 주요 간부 중 하나로, 준의 직속 상사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준의 아버지라는 것도, 준의 어머니가 누구인지도 숨긴 채 오직 회장인 제임스 네프의 명령만을 맹종하며 살아왔습니다. 빅베어님의 PC입니다.

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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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박사로서, 여러 해 전에 적사병 바이러스를 개발한 장본인입니다. 준의 생모이기도 하지요. 타임키퍼가 적사병을 악용하지 않을까
두려워진 그녀는 적사병 치료약을 개발하다가 타임키퍼의 추적을 받게 되었고, 미스터 마와의 결혼생활도 파국을 맞았습니다. 결국
아들마저 잃어버리고 그녀는 키퍼 요원을 피해 시간과 공간을 도망다니며 치료약 개발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맛난파이님이 담당하셨습니다.

<타임키퍼즈> 제1기

1화

1952년, 정은경 박사는 타임키퍼의 눈을 피해 6·25 사변 중에 미군 병원에서 일하면서 적사병 치료약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때 정체불명의 남자가 미군으로 변장한 채 그녀에게 총을 겨누는데… 정 박사는 탈출에 실패하지만, 때맞춰 도착한 타임키퍼 준이
남자를 제압합니다. 정 박사를 데려오라는 명령을 받았던 준은 이 암살자가 더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도망치는 정 박사를 무시하고
습격자를 생포해 21세기로 귀환합니다.

심문 결과 습격자는 타임 브레이커 요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타임 브레이커에서도 정은경 박사를 노린다는 것을 알고 미스터 마는
이 사실을 네프 회장에게 보고합니다. 한편, 격무에 시달리던 와중에도 준은 유리에게서 온 문자를 보고 따스한 웃음을 짓습니다.
네프 회장에게 보고하고 돌아온 미스터 마는 숨겨둔 사진 속에 활짝 웃고 있는 자신과 은경, 그리고 어린 아들을 보며 회한에
잠깁니다.

타임 브레이커에서는 이번에는 준을 노립니다. 준은 제때 시간이동을 하지만, 시간이동 손목시계에 총탄이 스쳐 시계가 오작동을 하자
마치 악몽과 같은 시대로 이동합니다. 파괴당한 도시의 잔해 속에서 괴생명체에게 위협당한 그는 총을 든 여인에게 구조를 받고,
그에게 다른 손목시계를 준 여인은 아무것도 묻지 말고 바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타임키퍼와는 다른 문양의 손목시계에 의지해 자기
시대로 돌아온 준은 알 수 없는 불안을 느낍니다.

2화

정 박사는 치료약을 완성하고자 이전에 한 번 성공했었던 항체를 되찾을 계획을 세웁니다. 20년 전, 타임키퍼에 쫓기던 그녀는
항체를 어린 아들에게 주입해 숨긴 후 아들을 상하이에서 인천으로 가는 배에 태우고, 키퍼들의 주의를 끌며 다른 시대로
탈출했었습니다. 박사는 아들을 떠나보낸 그 순간으로 이동해 배에 탄 아들에게 접근하려고 하지만, 그녀의 계획을 눈치챈 미스터 마
역시 선상에 나타납니다. 얌전히 있으라며 잠시 사라졌던 엄마가 갑자기 달라진 모습으로 나타나자 혼란에 빠진 준은 미스터 마에게
매달리고, 은경을 기절시킨 미스터 마는 준을 데리고 사라집니다. 준은 이렇게 해서 타임 키퍼 요원으로 자라나게 된 것이죠.

한편, 현재에서는 유리가 계속해서 준을 데려오라는 명령을 방치하자 브레이커 요원이 찾아와 유리를 강제로 미래로 송환하려고 합니다.
유리의 문자를 받고 집으로 찾아온 현재의 준은 그 모습을 보고 브레이커를 제압하지요. 준이 경찰을 부르러 간 사이 유리는
브레이커 요원의 시계를 작동시켜 미래로 돌려보낸 후, 범인이 도망쳤다고 둘러댑니다. 한편, 그녀의 컴퓨터 모니터에는 거의 완성한
소설이 보입니다. 레드 바이러스와 적사병, 문명의 멸망을 그린 묵시록이…

3화

출판사 사장은 유리의 소설에 크게 흡족해하고 출판을 결정합니다. 그러나 소설의 내용은 타임키퍼의 정보망을 통해 타임키퍼에
알려지고, 작가가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안 지도부는 미스터 마를 통해 준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필명으로 쓴 소설의 작가를
찾아내 죽이라는 것이지요.

조사 결과 소설의 작가가 유리라는 것을 깨달은 준은 갈등하다가 유리에게 같이 여행을 가자고 합니다. 유리는 혼쾌히 그러마고
하지요. 바다를 내려다보는 절벽 위의 펜션에 도착한 그들. 그날 밤, 준은 유리에게 총을 겨누며 그녀의 정체가 무엇인지
추궁합니다. 유리는 명령이 아니라 너 자신의 판단으로 방아쇠를 당기라고 하고, 준은 끝내 쏘지 못합니다. 유리는 자신의 정체를
털어놓고, 레드 바이러스와 적사병, 그녀가 떠나온 지옥 같은 미래를 그에게 알려줍니다. 준은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가 갈등합니다.

한편 은경은 중세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 치유사로 숨어지내다가 타임 브레이커 요원의 방문을 받습니다. 그의 설득 끝에 타임
브레이커즈와 행동을 함께하기로 결정한 박사는 미래의 그들이 보유한 적사병 지식을 이용해 결국 적사병 항체를 완성합니다.

4화

준이 명령을 어긴 것을 안 네프 회장은 미스터 마에게 준을 죽일 것을 명령합니다. 아침에 펜션에서 나온 준과 유리는 기다리던
미스터 마와 대면합니다. 유리는 그를 필사적으로 설득하고, 미스터 마는 결국 아들을 쏘지 못합니다. 네프가 보낸 또 다른 요원이
명령을 대신 수행하려고 하자 미스터 마는 요원에게 총을 겨누고, 준과 유리에게 도망치라고 합니다. 차를 몰고 정신없이 도망치던
준과 유리는 멀리서 울리는 두 발의 총성을 듣습니다.

타임 브레이커즈를 통해 정 박사의 존재를 알게 된 유리는 준을 데리고 은경을 만나러 갑니다. 그곳에서 준은 미스터 마와 은경이
자신의 부모라는 것과, 자신의 몸에 레드 바이러스 항체가 있다는 것을 듣게 되지요. 그는 고뇌에 빠지지만 그것도 잠시, 항체와
치료약이 한곳에 있는 기회를 포착한 네프 회장은 타임키퍼즈를 보내 준과 유리, 정 박사가 있는 건물을 포위합니다.

5화

타임키퍼 요원들에 대항해 준과 유리는 치열한 전투를 벌이지만, 적의 수가 너무 많아 중과부적입니다. 준이 적 사이로 잠시 퇴로를
확보하자 은경은 치료약을 유리에게 쥐어주고, 두 사람의 퇴로를 가로막은 채 레드 바이러스를 자신에게 주입합니다. 순식간에 그녀는
마치 구울(ghoul, 시체먹는 괴물)과 같은 괴생명체로 변해 타임키퍼 요원을 학살합니다.

몇십 년 후, 같은 장소. 건물은 무너지고, 도시는 파괴당해 불타고 있습니다. 그 속에 한 여인이 총을 들고 도시의 폐허를
순찰하고 있습니다. 문득 소리를 들은 그녀는 먼 옛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달려가고, 그 자리에 나타난 준을 지켜줍니다. 그녀는
변이한 은경이 과거의 준을 해칠 수 없도록 막지요. 타임 브레이커 문양이 있는 자신의 시계를 준에게 던져준 중년의 유리는 준에게
아무것도 묻지 말고 떠나라고 합니다. 그 옛날, 미스터 마와 은경의 희생에 힘입어 탈출했던 젊은 자신과 준이 이 미래를 막아주기를
바라며…

감상과 평가

전반적으로 짜임새 있고 감동적인 이야기였다고 생각합니다. 기획부터 탄탄해서 끝까지 진정성 있는 전개가 된 것 같아 개인적으로 꽤
만족스러웠습니다. 장면 신청과 판정, 승자와 서술권자의 분리 등 의외성과 협동성을 함께 살리는 장치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주 역동적이었어요. 어디선가 본 듯한 것도 물론 많았지만, 그렇다고 꼭 감동이라든지 개연성이 떨어지지도 않더라고요. 협력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주 즐거웠고, 결과물도 괜찮았습니다.

아쉬웠던 점이라면 우선 저의 준비성이 있겠지요. 트럼프 카드는 끝내 못 구해서 아이팟 앱으로 대신했는데, 큰 문제는 없었고
공간활용 면에서는 오히려 장점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역시 카드 크기나 가독성은 한계가 있었고, 가뜩이나 행사 준비로 정신이 없는
두하군에게 부담을 준 것이 미안했습니다. 앞으로는 준비를 철저히 해서 민폐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꾸벅)

Card Table 스크린샷

Card Table 앱을 잘 썼습니다


또 하나 개선할 점이라면 판정의 성공과 실패의 결과 설정 부분이었습니다. 판정이 실패해서 이야기가 재미없을 만한 결과는 판정
결과에 걸어서는 안 되는데, 그 점을 제가 잘 설명하거나 지도하지 못해서 가끔 판점 부분이 삐걱였습니다. 예를 들어 준을 데려가는
선상 장면에서는 은경과 미스터 마가 둘다 PD에게 져서 ‘은경도 준의 피를 못 뽑아가고, 미스터 마도 준을 못 데려간다’는
결과가 나와 결국 준이 미스터 마를 자발적으로 따라간다는 식으로 빠져나갔지요.

선상 장면은 그나마 나았습니다만, 더 심각하게도 5화에는 ‘전원이 타임키퍼에 잡힌다’는 판정 결과가 나와서 이야기 진행을 위해
사실상 판정 결과를 무시해야 했습니다. 저럴 때는 탈출하느냐 못 하느냐를 판정 결과에 거는 대신, 성공하든 실패하든 탈출은 하되
희생 없이 탈출할 수 있는가라든지 치료약을 가지고 탈출하느냐라든지 하는 것을 판정에 걸어야 했죠. 이런 점을 당시에 바로잡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소리가 울려서 의사소통 자체에 좀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 했고요.

참가자분들은 RPG를 1~2 세션 해보셨거나 페르소나님처럼 아예 처음인 초보들이셨는데, 이건 뭐 초보 숙련자 나누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수준급으로 잘해주셨습니다. 발랄한 대화와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테이블 분위기를 밝게 해주셨던 까까비님 (유리), 스토리를
안정감 있게 끌어가시면서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RP를 하신 빅베어님 (회상 장면 하나 없이 끝난 눈물의 마씨 아저씨ㅠㅠ),
주인공으로서 극의 호흡을 이어가는 동시에 가히 악마적인 반전을 엮어넣으신 페르소나님 (준), 그리고 평소 조용하시면서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드라마틱한 전개를 주도하신 맛난파이님 (은경) 모두 함께하기 즐거웠던 실력파 참가자들이셨습니다.

하나 재미있는 현상이라면 진행자와 참가자, 혹은 참가자 사이의 서술권 구분이 그닥 뚜렷하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기존 RPG
관념에 익숙하지 않으신 참가자분들이라서 그런 면도 어느 정도 있겠지만, 숙련자분들과 함께한 테스트플레이 때도 나타난 현상인 것을
보면 안방극장 대모험이 그런 점을 유도하는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다 보니 참가자분들이 조연에 대한 서술도 하시고, 다른
참가자의 주인공에 대한 서술도 하시는 게 재밌더라고요. 사실 생각해보면 그런 서술권 구분을 꼭 엄격하게 유지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테스트 플레이나 이전 도쿄의 달 때도 담당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을 때 참가자가 조연을 맡는다든지 해서 원활하게
돌린 것을 생각해보면 기존 RPG의 서술권 구분이 꼭 필요한가 하는 재고도 해볼 만한 것 같습니다.

이상 제7회 일일 플레이 안방극장 대모험 미니캠페인, <타임키퍼즈>를 소개하고 분석해 보았습니다. 좋은 플레이 해주신 참가자분들과 수고해주신 스탭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이렇듯 즐거운 추억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네이버 TRPG 카페 인디 페스티벌 ‘귀신잡는 가족’ 후기

그저께 인디 페스티벌에 한 플레이는 드레스덴 파일 RPG로 한 서울 배경 현대 판타지로,
박수무당 아버지와 세 자녀가 납치당한 손녀/조카딸 지수를 찾는 얘기였죠. 꽤나 오랜만의 마스터링이었는데, 제가 잠이 너무
많아서(..) 결국 준비도 제대로 못하고 세션을 맞이해서 많이 죄송스러웠습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인물과
시나리오를 미리 만들려고 하면 저는 심각하게 막히더라고요. 제 평소 방식은 먼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다같이 논의하고, 같이 모인
자리에서 캐릭터를 제작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해서 참가자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파악한 후 인물 배경과 참가자의 극적 욕구를 반영해
제 취향을 버무리는 것을 좋아하지요. 그런데 인물과 시나리오를 미리 준비해가는 방식은 그런 사전 논의가 없어서 결정을 준비하는 데
개인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준비해가는 진행은 저에게 안 맞는다는 결론에 도달했으며, 앞으로는 되도록이면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캐메 자료와 예시 캐릭터 시트를 충분히 준비해가서 각 참가자가 인물을 새로 만들거나 기존 시트를
수정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그저께도 보니까 불완전한 시트를 보충하거나 있는 시트를 수정하는 등 준비해간 시트도 잘
고쳐서 사용하시더라고요.

이렇듯 저의 준비 부족이 아쉽기는 했지만 참가자분들이 워낙 재밌게 RP를 하셔서 무사히
세션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루영익님이 하신 능청스럽고 돈 밝히면서도 자식들을 끔찍이 아끼는 박수무당 아버지 박상규, 시드님의
신실하면서도 한 성질 하는 조폭출신 열혈목사 큰아들 박문형, 화련님의 활 무지 잘 쏘면서도 왠지 눈에 안 띄는 딸 캐릭터 박보경,
그리고 휴님이 하신 초 유능한 오타쿠 환상술사 박재형 등 인물들이 하나같이 개성이 살아있고 유쾌해서 즐거웠습니다. 마지막에
구미호 잡은 후에 다같이 가죽 벗기고 꼬리 자르고 하는 거 보니 과연 악역은 어느 쪽이었을까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는 했지만요.


적으로는 모두가 개성과 능력을 잘 발휘하셨던 것 같아 좋았습니다. 아버지의 귀신 부르는 능력이나 목사 아들의 기도와 축복 능력,
딸네미의 최강 궁술, 그리고 막내의 넷상 정보수집력과 환상술을 다들 잘 활용하셔서 사건을 해결하셨습니다. 애당초 드레스덴 파일
RPG에 관심이 생겼던 이유가 영능력자와 일반인이 한 일행에 공존할 수 있다는 점이었는데, 일반인(?)인 딸이 최강자였던 것 보면
그 장점은 여기서도 드러났던 것 같습니다. 다만 여기서도 제 준비 부족으로 전투가 좀 시시한 듯하여 아쉬웠습니다. 특히
초자연물에서는 보경의 양궁 스턴트 같은 강한 공격력이 무조건 최강자가 되는 것은 지양할 방법이 있었는데 (무기가 안 통하는
괴물이라거나), 그런 방법을 생각 못했던 게 후회스럽네요.

전반적으로 화기애애한(..) 가족 인물 RP와 참가자들의
문제해결 과정이 돋보이는 플레이였다고 생각하며, 함께 해주신 네 분 참가자께 감사드립니다.

마우스 가드: 1152년 가을

어제 TRPG로 한 마우스 가드 (Mouse Guard) 플레이테스트입니다.

색슨, 켄지, 라이엄

왼쪽부터 색슨, 켄지, 라이엄

요약
생쥐 사회를 지키는 용감한 수호자 마우스 가드인 켄지, 세이디, 색슨, 라이엄은 실종된 곡물 장수를 찾아 마을 사이를 수색하다가 그를 발견해 바크스톤 마을로 동행합니다. 마우스 가드의 수장 그웬돌린의 귀띔대로 곡물상이 배신자인지 알아내고자 켄지는 그를 미행하고, 색슨, 세이디, 라이엄은 곡물상이 가장 오래 들른 지도장이 가게로 가서 지도장이를 심문합니다. 지도장이는 입을 열지 않지만, 그들은 마우스 가드의 본거지 로크헤이븐의 불법 지도를 가게에서 발견하지요.
곡물상이 마우스 가드에 대한 음모를 꾸미고 있을지 모른다는 증거를 잡은 이들 마우스 가드는 마을을 서둘러 떠난 곡물상을 체포하고, 추궁하자 곡물상은 이미 로크헤이븐에 대한 공격 작전이 진행중이라고 실토합니다. 일행은 로크헤이븐을 습격하러 가는 군대를 피하고 뱀과 싸워가며 로크헤이븐에 먼저 도착해 위험을 경고하고, 몰려오는 반군에 대항해 로크헤이븐 방어전을 준비합니다.
감상
마우스 가드 만화 원작을 보신 분은 알겠지만 이 시나리오는 원작 첫편에서 따온 것입니다. 또한 원작 보신 분은 알겠지만 같은 시작, 같은 등장인물인데도 (혹은 비슷한–원작에서 세이디는 나중에 등장하죠) 어느 시점에서 결정적으로 갈라지면서 원작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됩니다. 그것이 RPG의 묘미인 의외성이겠지요.
세이디

세이디

마우스 가드는 한동안 관심은 있었지만 처음 해보았는데, 일단 판정이 재미있었습니다. 협동을 통해서 주사위를 더 받는다든가, 운명과 성격 점수 같은 자원을 관리한다든지, 본성을 기능 대신 굴릴까 판단하는 등의 게임적 재미가 쏠쏠했지요. 특히 중요한 심문과 전투에 사용한 갈등 판정 규칙은 상당한 극적, 전술적 재미가 있었습니다. 행동을 3개씩 미리 정하고 하나씩 드러내므로 상대의 선택을 미리 예상하고 유리한 선택을 하려고 머리를 쥐어짜는 과정이 흥미진진했습니다.
대신 행동 조합마다 효과가 다르고 (예를 들어 공격 대 공격은 각각 단독 판정, 공격 대 방어는 대항 판정 등) 행동 유형마다 붙는 가산점이 다른 갈등 판정은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꽤 복잡하고 어려운 규칙이기는 했습니다. 특히 일대 다수 판정에 대해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고요.
또 마우스 가드 규칙의 좋은 점이라면 신념, 목표, 습성을 통해 인물과 세션에 방향성이 생긴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색슨은 자기 칼이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라는 신념이 있고, 습성은 위험하다 싶으면 무조건 칼을 뽑는 것입니다. (위에 그림에서도 칼을(…)) 그의 친구이자 순찰대장인 켄지의 목적은 곡물장수가 배신자인지 알아내는 것이었고, 순찰대의 막내 라이엄의 습성은 도움이 필요한 일에는 언제나 나서고 목적은 켄지와 색슨에게 인정받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각 인물의 개성이 표현이 잘 되었고, 인물 주도적인 세션이 되었다고 봅니다. 세션이 끝난 후에 서로 얘기해 신념을 지켰는지, 목표를 이루었는지 등을 판단해 포상을 하는 것도 참가자끼리 세션을 곰씹는 사회성을 촉진했고, 인물의 방향성을 살리기에도 좋은 방법이었다고 봅니다.
전반적으로 재미있는 플레이였고, 쥐들은 귀여운데 내용은 심각한 묘한 부조화(?)도 좋았습니다. 웃고 떠들면서 즐겁게 한 게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마우스 가드는 앞으로 또 활용해보고 싶은 규칙이기도 하네요. 좋은 플레이 해주신 마나밍님, 승한군, 어린왕자님, 펠군님께 감사드립니다.
마우스 가드 1152년 가을 표지

일일 플레이 후기

네이버 TRPG 카페에서 한 2월 15일 일일 플레이 후기입니다.
1부: 테스트와 준비

이번 네이버 TRPG 카페 일일 플레이에는 처음에는 전혀 다른 것을 하려고 했습니다. 원래는 펄프용 규칙인 세기의 혼 (Spirit of the Century)로 17세기 유럽 배경의 스워시버클링물을 하려고 했는데, 첫 플레이테스트일 전날(..)에 예정을 급 변경했습니다. 우선 캐릭터를 미리 만들어가는 등 준비할 게 많았는데, 인물과 시나리오 등을 미리 준비해가는 것은 참가자가 준비 단계부터 함께 참여해서 참가자 몰입을 이끌어내는 제 진행 스타일에는 잘 맞지 않았거든요. 물론 미리 준비한 인물 중에 참가자가 선택하게 하는 것은 좋은 차선책이기는 했습니다만 역시 제게는 이상적이지는 않았고, 차선책을 위해서 그 많은 준비를 해가기에는 좀 효율이 떨어진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삼총사, 17세기 유럽 역사, 겁스 스워시버클링 등 온갖 자료를 읽은 사전 준비는 과감히 뒤엎고 (덕분에 이 시기와 스워시버클링 장르에 대해 많이 배우기는 했습니다) 중동풍 환상/공포물인 사악한 시대에… (In a Wicked Age…)로 급선회했습니다. 당일 아침 돼서 주사위도 없이 승한군에게 주사위 갖고 나오라고 문자친 후에 트럼프 덱도 없이 타로덱 들고 영문 시트를 프린트해서 나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어찌어찌 한 플레이테스트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ORPG로 할 때는 나름 진지했는데 TRPG로는 완전 만담물이 되더군요. 신탁은 ‘잠들지 않는 과거’로 정해서 카드를 네 장 뽑고, 의도적으로 애매한 신탁의 구체적인 사항을 플레이로 채워나가며 유쾌하게 즐겼습니다. 유리한 환생을 구하던 마법사의 영혼이 결국 원숭이 시체에 들어가서 원숭이로 다시 태어난 결말에서는 전원 폭소. 이 테스트 플레이를 하면서 좋은 조언이 많이 나와서 한글 시트를 만들고, 신탁 카드도 한글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트럼프 카드를 뽑고 표에서 찾는 형식인데, 하는 김에 아예 카드를 만들자고 생각해서 PDF 파일로 만든 후에 카드용지에 프린트해서 잘라 덱을 만들었습니다. 그거 자르는 데 시간이 많이 들어서 애물단지가 되긴 했지만요.
두 번째 테스트 플레이는 일일 플레이 전날에 했습니다. 한글화한 시트와 신탁 카드를 선보여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 이번에도 역시 좋은 플레이가 나왔습니다. 교인 집단자살을 꿈꾸는 광신 교주를 맡으신 두하님 RP가 너무 실감났죠. 위시송군의 적당히 비겁한 마법사 조수와 필리더님의 나쁜 남자! 였던 사제 역시 인상깊었습니다.
부족했던 점이라면 먼저번 플레이테스트에 참여하셨던 두하님과 위시송군이 계셔서 처음 해보신 필리더님에게는 충분히 설명을 하지 않고 판정을 휙휙 지나간 면이 있었습니다. 전원 사악한 시대에…초심자들이 하실 본 플레이에서는 준비시간 30분을 들여 좀 더 판정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예시도 풍부하게 들라는 지적이 아주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놈의 애물단지 신탁 카드는 두 번째 플레이테스트 날에도 저를 애먹였지요. 그 많은 시간을 들여서 프린트하고 잘라놓은 신탁 덱 중 ‘잠들지 않는 과거’와 ‘독사의 소굴’을 잃어먹은 것이었습니다. (…) 결국 다음날 아침 허겁지겁 카드를 다시 프린트해서 자르느라 아침도 못 먹고, 일일 플레이 장소로 달려가면서 레이저 토너가 잔뜩 묻은 손으로 샌드위치를 우걱우걱 먹었더랬습니다. 주사위는 여전히 없어서 필리더님께 협찬받았습니다. (사악한 시대라는 테마에 맞춰서 Wicked라는 문구가 있는 옷을 입고 나갔는데 아무도 별 얘기가 없어서 서운했어요..ㅠㅠ)
일일 플레이 장소에 도착해서 위시송군의 처절한 안마 고문을 받으며 규칙책을 다시 훑어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요약본에 틀린 부분 발견해서 사인펜으로 급 수정. 옆에서는 마나밍님과 다른 회원분께서 대형 맵 여섯 장을 45분 내에 그려내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위업을 이루고 계셨죠. 그리고 12시 30분경에 참가자분들이 도착하기 시작했습니다.
2부: 이 사악한 시대에
일일 플레이 참가자분 중 제가 면식이 있었던 분은 정숙조신님뿐이었고, 나머지는 처음 뵙는 분이었습니다. 갸리님과 아무개님, 머리띠님, 정숙조신님이 모두 도착하셔서 플레이를 준비하고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전 테스트 플레이를 거치면서 받은 조언들이 플레이할 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글화한 시트와 신탁에 더해 판정을 처음부터 설명하고, 특수능력 등에 대해 폭넓은 예시를 들면서 설명한 것이 플레이가 부드럽게 흘러가는 데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처음 해보는데도 전원이 빨리 적응하시기도 했고요. 준비와 설명을 하는 30분은 그 이상의 시간을 절약하고 플레이 자체의 질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 첫 번째 이야기: 광기의 영지 –
첫 신탁은 ‘잠들지 않는 과거’였습니다. 잠들지 않는 과거 프린트하다가 카드용지가 떨어져서 빈 카드에 손으로 직접 쓴 카드가 그만 발각당해서(..) 이거 안 쓰면 너무 아깝다는 게 참가자들의 의견이었죠. 수상한 인상의 약제사, 젊고 잔인한 영주, 뱀을 부리는 여마법사, 인간을 미치게 하는 지성이라는 요소를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머리띠님의 제안으로 인간을 미치게 하는 지성은 여마법사에게서 가출한 뱀이 되었고, 뱀에는 사람을 물어서 미치게 하는 특수능력을 추가했습니다. 여마법사는 뱀에게 물려서 미쳐버린 영주의 이복형을 이용해 영주를 죽이려고 하고 있었고, 영주는 그 이복형을 완전히 제거하려고 하고 있었고, 약제사는 돈을 벌어 영주 자리를 사려고 하고 있었죠.
이 물고 물리는 먹이사슬 속에서 영주의 이복형 아다르 말고는 전원 어느 정도 (사악한) 해피엔딩을 맞았습니다. 영주의 이복형은 영주를 죽이려다가 뱀으로 맞아서(..) 구제불능으로 미쳐버렸고, 영주 자신도 자다가 뱀에게 물려서 그 치유약을 평생 먹는 신세가 되어 약제사에게 꼼짝도 못하게 되었고, 뱀 쟈키티는 여주인에게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 두 번째 이야기: 죽은 자와 산 자의 도시 –
두 번째 신탁은 ‘독사의 소굴’이었습니다. 이건 좀 음모물이나 정치물 성격이 있다는 제 설명이 무색하게 실제로 뽑은 카드는 연적에게 마법으로 아내를 잃은 젊은이, 늙은 수도승의 집 뒤에 봉인되었다가 풀려나는 악마, 귀신이 회합하는 폐가, 그리고 작은 마법 유파에서 세운 학교였지요. 이 네 가지를 어떻게 연관시킬 것인가 머리를 싸맸는데 서로 얘기하다 보니 어찌어찌 되데요. 마법 학교 부분은 거의 비중이 없기는 했지만, 그런 취사 선택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결국 신탁은 재료를 제시할 뿐이고 어떻게 요리할지는 참여자들이 결정할 사항이니까요.
처음에 신탁에 나온 인물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완전 스타가 된 것은 아내를 잃은 젊은이 아람의 어린 아들 자히르. 영을 보고 만지는 능력이 있는 이 ‘식스 센스’ 꼬맹이는 아빠도 이기고 귀신 대장 자인도 이기는 도시 최강자로 군림했습니다. 봉인을 풀고 자유의 몸이 된 악마가 도시를 타락시키기 시작하자 일거에 악마를 쫓아버리고 도시를 구한 수도승 나탄은 그래서 자히르를 후계자로 두려고 하지만, 아버지 아람의 단호한 반대로 무산. 결국 죽은 자와 산 자를 분리시키겠다는 나탄의 꿈은 후계자 부재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도시에는 언제나 그랬듯이 두 세계가 공존하게 됩니다. 그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울지도 모르지요. 생과 사는, 그리고 죽은 자와 산 자의 세계는 보기보다 훨씬 가까우니까요.
– 평가 –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미리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결국 이야기는 참가자들에게서 나왔고, 제가 하는 일은 처음에 공을 굴리고 약간씩 조절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최초 상황에 따른 참가자의 반응과 선택으로부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굴러가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참가자들은 자기 인물의 목적과 욕망에 충실하게 움직이며, 그리고 이야기의 흐름에 대한 제안을 던지며 스스로 이야기를 움직여 주셨습니다. 좋은 이야기에 대한 창작 욕구가 있는 참가자들에게 이야기에 대한 권한이 주어지면 정말 폭발적인 집단 창의력이 나온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참가자가 주로 이끄는 이야기인 만큼 참가자의 스타일은, 그리고 참여자 사이의 상호작용은 플레이의 중요한 동력원이었지요. 그 점에서 우리끼리는 서로 잘 맞았던 것 같아서 더더욱 좋은 플레이가 되었습니다. 갸리님은 팀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하셨고, 첫 번째 이야기의 마녀 시파에 이어 두 번째 이야기의 악마 시8은 완전 센스 폭발이었습니다. (‘시8! 저놈 잡아라!!’) 수도승이 악마를 보내버린 후에는 NPC였던 자히르를 맡으셔서 폴터가이스트 납치범을 발길질로 굴복시키는 꼬마 파워를 유감없이 발휘해주셨습니다.
아무개님은 말씀을 너무 재밌게 하셔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말 한마디에 전원이 굴러다녔었죠. 광기의 영지에서 좀 짱이셨던 영주 발라시부터, 죽은 자와 산 자의 도시에서 엄마를 쫓아가려는 고집쟁이 아들한테 걷어차이는 불쌍한 젊은 아버지까지 정말 재미있게 해주셨습니다. 발라시는 마녀도 잡아들이고, 광전사 이복형도 이기고, 약제사한테도 안 속고 정말 무적 같았는데 도사리고 있던 뱀에게 마지막에 콱 물려버릴 줄이야.
머리띠님은 한 발짝 물러나서 조용히 계시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움직이시는 센스가 돋보였습니다. 이분은 정치물을 정말 잘 하실 것 같은데, 첫 이야기 때 완전 무적이시던 영주님을 끝에 스윽 나타나 단호히 잡아버리는 쟈키티의 끈기는 대단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때 도시 귀신의 짱 자인으로서 조용히 계산적인 모습도 보스의 면모를 보여주셨고요. (그러나 자인이 수도승을 이기고 수도승이 악마를 이겼는데 악마는 자인을 이기고 봉인에서 탈출하는 건 무슨 조화인지요. 그리고 꼬마의 발길질에는 당해낼 용자가 없었다능.)
정숙조신님의 약제사는 꼭 사기꾼 약장수 같았는데 자신은 미치는 약은 처음 만들어본다고 투자자 영주 앞에서 솔직히 말해버리는, 당대의 과학적 양심에는 모두 감탄. 두 번째 이야기에서 수도승 나탄은 악마를 일격에 보내버리는 노익장을 과시했습니다. 그러나 그 위력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잘 키우려는 젊은 애아빠의 부정(父情)에는 이기지 못하고 쓸쓸하게 돌아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실험체에게 ‘약이 잘 안 나오니 미친 척을 해라’ 같은 제안을 하셔서 이야기를 멋지게 끌어가시는 기지를 발휘하시기도 했죠.
이렇게 좋은 참가자분들 덕분에 이야기 자체의 개연성과 재미, 창작의 만족감, 모두 함께 웃고 떠드는 사회적인 즐거움이 잘 맞아떨어진 좋은 플레이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좋은 시간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웠고, 깊이 감사드립니다.
3부: 전체 후담과 뒤풀이
플레이를 모두 마친 후에는 모든 팀이 평가와 소감을 공개한 뒤 경품을 추천하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경품 추천 중에는 왜 우리 팀원은 안 나오나 막 안타까워하다가, 희귀 아이템인 D&D 클래식 추첨에 머리띠님이 나오셔서 좋아라 했었죠. 그러다가 이미 귀가하셨다는 얘기에 ‘이럴 순 없어!’ 울부짖다가 역시 우리 팀원이신 갸리님이 당당히 당첨되셔서 회생 (?). 갸리님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뒤풀이에서는 많은 분들을 뵙고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웠습니다. 정숙조신님과도 이야기 나누었고, 에어님, 버닝도넛님과도 안면을 익혔죠. 이전에 MSN에서만 잠깐 뵈었던 멜키아님, 또 이번에 처음 뵌 줄라이님하고 타나토스님하고 나눈 얘기도 재미있었습니다. 다크선님과 멜키아님과 한 SF 이야기도 참 즐거웠고요. 왁자지껄한 자리여서 깊은 얘기를 나누지 못한 점은 아쉬웠지만, 온라인으로만 뵌, 혹은 처음 뵙는 분들과 안면을 익힌 것도 아주 의미가 깊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신 두하님과 모든 스탭분들, 플레이테스트 도와주신 분들, 그리고 나와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즐거운 시간 되었습니다. RPG는 결국 함께해서 재미있는 놀이이고, 마찬가지로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모임의 기쁨인데 어제는 그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할 수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군요.

폴라리스 단편: 잔인한 봄

정기 플레이 대신 승한군과 제노님과 한 폴라리스 (Polaris) 단편입니다. 뭔가 폴라리스 할 때마다 도시가 하나씩 무너진다는 느낌이..(…)

요약

두 별빛의 기사 안타레스와 뮬리파인. 안타레스는 악마가 씌운 여동생을 살해하고 이후 악마와 싸우다가 씌워서 의원을 죽인 후 도망자가 되고, 뮬리파인은 연적의 음모에 휘말려서 살인자이자 악마 내통자의 누명을 쓴 채 탈옥합니다.

전설의 타락 기사 알골의 현신인 안타레스는 솔라리스 경에게 솔라리스의 인을 받고 악마를 조종할 힘을 얻고, 이 힘을 이용해 스스로 악역이 되어 뮬리파인을 기사단에 복귀시킵니다. 그러나 안타레스는 솔라리스의 속임수에 걸려 새로운 솔라리스 경이 되고, 뮬리파인은 다시 기사가 되어 둘은 적이 됩니다.

플레이 내용

별빛의 기사인 뮬리파인은 대모이자 사우스마치 의원인 나오스가 별빛 기사단의 해체를 주장하자 곤란한 위치에 놓입니다. 거기다가 약혼녀 데비까지 동조하자 더더욱. 그러나 데비는 사실 기사단의 해체보다는 뮬리파인의 안전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을 그는 알게 되고, 그가 기사단에서 나오기로 약속하면서 두 사람은 다시 마음을 확인합니다.

한편, 악마에게서 창 사르가스를 빼앗은 별빛의 기사 안타레스는 여동생 메로페가 악마에게 씌운 것을 알게 되고, 메로페에게 씌운 악마가 안타레스의 부하이자 메로페를 사랑하는 기사인 타비트를 죽이려고 하자 어쩔 수 없이 타비트의 눈앞에서 메로페를 살해합니다. 그러나 전설의 타락 기사 알골의 현신인 안타레스의 힘으로 메로페의 영혼은 오빠 곁에 남게 됩니다.

별빛 기사단의 해체를 역설하는 나오스에게 안타레스는 악마들이 활동하는 봄에 시찰하시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제안하고, 그때까지 결정을 늦추기로 나오스는 동의합니다. 봄이 오자 정찰을 나간 안타레스는 사르가스의 원 주인이었던 악마와 마주치고, 악마와 싸우다가 한쪽 눈을 빼앗기지만 악마를 마침내 소멸시키는 데는 성공합니다. 그러나 순간 악마에게 혼을 빼앗긴 그는 시찰을 나온 나오스를 살해하고 얼음의 황야로 도망칩니다.

도망자가 된 안타레스 대신 뮬리파인은 최전선으로 나서고, 그 와중에 부하 둘이 뮬리파인의 약혼녀 데비를 탐내는 알비레오의 사주를 받아 뮬리파인을 살해하려 합니다. 뮬리파인은 암살자를 살해하지만, 그 모습을 본 기사들에게 붙잡혀 옥에 갇힙니다. 한편 알비레오는 뮬리파인에게 있던 아버지의 유품인 ‘크럭스’라는 보석이 악마들과 내통한 증거라고 누명을 씌우지요. 그러나 뮬리파인은 데비의 도움으로 탈옥해 안타레스와 합류합니다.

뮬리파인과 함께 행동하게 된 밤, 안타레스는 솔라리스 경에 나오는 꿈을 꿉니다. 안타레스와 타락 기사 알골과 똑같은 얼굴을 한 솔라리스 경은 안타레스에게 악마들을 제어할 수 있는 솔라리스의 인을 건네고, 아침에 깨어난 안타레스의 손가락에는 그 반지가 끼워져 있습니다. (제노님: “마이 푸레셔스~!”) 뮬리파인은 반지의 힘으로 알비레오를 실각시킨 후 악마들을 돌려보내자고 하지만 안타레스는 거부합니다.

그때 도시에서 기사들이 두 사람을 잡으러 나타나고, 기사들 중에 있던 타비트는 더 이상 알비레오의 전횡을 두고볼 수 없다고 판단해서 옛 상관 안타레스 편에 섭니다. 이에 기사들은 타비트를 죽이려고 하지만 안타레스가 악마의 창으로 막아서고, 그 모습에 악마들이 달려들어 기사들을 살해합니다. 반지로 이들을 물린 안타레스는 스스로 남은 기사들을 몰살시키지요.

뮬리파인과 타비트라도 도시에 돌아갈 수 있게 하려고 안타레스는 악역을 자처합니다. 그는 두 사람을 도시로 돌려보내고, 이틀 후 새벽에 악마들의 기습에 대비하라고 하지요. 알비레오 앞으로 끌려간 뮬리파인은 악마들의 기습을 경고하지만 알비레오는 듣지 않고, 데비는 알비레오가 뮬리파인에게 빼앗은 보석의 힘으로 알비레오에게 홀려 있습니다. 그때 뮬리파인은 알비레오의 눈빛에서 그에게 깃든 악마를 알아보고 그를 살해합니다. 그러나 데비는 정신을 홀리고 있던 크럭스의 힘이 갑자기 사라지자 실성하고 맙니다.

다음날, 안타레스는 악마들을 이끌고 사우스마치 주변에 잠복하고 있다가 도시에 잠입해 옛 저택으로 돌아갑니다. 그곳에서 그는 가보인 한 쌍의 반지를 메로페와 타비트를 위해 꺼내오지요. 하지만 도시에서 나온 척후를 붙잡았는지 아직 때가 되지 않았는데도 공격이 시작하고, 솔라리스의 인이 성내로 들어왔기에 솔라리스 경 성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됩니다. 솔라리스 경은 괴물들을 소환해 내부에서 도시를 공격합니다.

이때 타비트를 비롯한 기사들이 도착하고, 타비트는 솔라리스를 공격했다가 단칼에 죽습니다. 솔라리스를 베어버린 안타레스는 어느새 스스로 솔라리스 경으로 변하고 (맞나요? 기억이 약간..), 타비트 역시 그의 악마 부하로서 되살아납니다. 뮬리파인을 비롯한 기사단의 생존자들은 저항을 계속하려고 사우스마치에서 도피하고, 새로운 솔라리스 경이 된 안타레스는 동생 메로페의 영혼과 되살아난 타비트에게 반지를 건네며 축복합니다.

감상

예, 막장이 아니면 폴라리스가 아니겠죠. 승한군 말마따나 끝까지 솔라리스 경의 힘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던 안타레스는 결국 비극적으로 타락했고, 그 힘의 유혹을 느꼈던 뮬리파인은 저항군을 이끌게 된 역설로 끝났습니다. 그래도 메로페와 타비트의 비극적인 사랑은 나름(?) 해피엔딩이라고 해야 하려요.

폴라리스 판정은 처음에 좀 정리가 필요하기는 했지만 마음과 후회가 밀고 당기며 극단적인 이야기 진행을 이끄는 강점은 여전했습니다. 예를 들어 위에서 기사들이 뮬리파인과 안타레스를 쫓아온 부분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판정의 결과였습니다.

후회 (승한군): 타비트가 옛 상관 안타레스에게 돌아선 것을 보고 분노한 기사들은 습격을 하고, 그 와중에 타비트가 살해당한다!
마음 (제노시아님):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구나. ‘악마의 창 사르가스’ 면모로 안타레스의 ‘축복’ 주제를 소모해서 창으로 기사들을 막아선다.
달 (로키): 주제 소진 인정하죠.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구나가 나왔고 안타레스의 주제도 소진했으므로 이제 후회는 방금 전 서술과는 전혀 다른 서술을 제시해야 합니다.)

후회: 기사들을 안타레스가 사르가스로 막아내는 모습을 보고, 곁에서 도사리고 있던 악마들이 일제히 돌진해 기사들을 죽인다.
마음: 그리고 또한 다 죽이기 전에 안타레스가 악마들을 물리고 남은 기사들을 스스로 몰살시켜야 한다. ‘알골의 현신’ 면모로 안타레스의 ‘운명’ 주제 소진합니다.
달: 예, 주제 적합하네요.

(여기서 그리고 또한 대신에 주제를 소진하지 않는 그러나 그러려면을 사용해도 상대의 마지막 서술을 인정하고 자신의 서술을 덧붙인다는 점은 같습니다. 하지만 후자 쪽은 주제를 소진하지 않는 만큼 효과가 좀 더 약합니다.)

후회: 그리 되었더라.

이렇게 마음은 주인공 기사를 위해, 후회는 기사의 이익에 반해 철저하게 자기 입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려는 밀고 당김 속에서 굉장히 파국이 많고 극단적인 방향으로 이야기가 쉽게 흘러갔습니다. 그래서 이 판정 방식은 비극을 지향하는 폴라리스의 방향성에 적합한 것 같습니다.

제노시아님과 승한군이 둘다 좋은 이야기 방향을 많이 생각해 내셔서 줄거리도 전반적으로 좋았습니다. 스스로 악당이 되면서 부하와 동료를 복귀시키려는 안타레스의 비극적인 모습이 잘 살았던 것 같아요. 안타레스를 정말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서 비참의 극으로 몰고간 승한군의 악마성에도 경의를 표합니다.(…) 그에 비해 뮬리파인의 이야기는 초점이 덜 확실했던 것 같아서 좀 아쉽습니다. 그래도 알비레오라는 좋은 악역이 생긴 후에는 만족스럽게 막장으로 흘러간 걸로 봐서 역시 좋은 적수가 긴장감 있는 진행에는 필수인 것 같습니다.

아쉬웠던 점이라면 기사의 열정과 피로 수치와 실제 이야기 진행이 반드시 맞아떨어지지는 않아서 때로 규칙이 이야기를 오히려 제약하기도 했다는 점입니다. 이야기는 막장에 막장으로 흘러가는데 아직 피로는 없고 열정은 2 남아있어서 규칙상으로는 아직 죽거나 타락할 수 없던 것은 좀 답답했죠. 그래서 결국 시간관계와 이야기 흐름상 안타레스는 아직 열정이 남은 상태에서 타락시켰습니다.

플레이 후의 승한군 제안대로 경험이 나올 때마다 (기사가 잔인하거나 냉소적인 언행을 했을 때 경험을 굴림) 경험을 굴리는 대신 열정을 무조건 깎거나 피로를 올리고 소진한 주제도 초기화하면 좀 더 진행 속도와 열정-피로 진행을 맞출 수 있을지도요. 폴라리스 부록에 나온 변형 규칙으로는 경험을 굴릴 때 3 이하면 무조건 성장, 4 이상이면 무조건 주제 초기화 하는 것도 있는데, 그것도 여전히 확률을 타니까 승한군 제안 쪽이 속도감 면에서 더 나은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아주 재밌게 한 비극 플레이였습니다. 폴라리스는 비극적인 서사시에 딱 좋은, 다른 배경으로도 해보고 싶은 규칙입니다. 좋은 플레이 보여주신 제노님과 승한군에게 감사합니다.

쇼크 단편: 피는 물보다…

토요일 오후에는 승한군관 쇼크: (Shock: Social Science Fiction) 단편 플레이를 했습니다. 저번에 쇼크를 소개한 글에 오류가 좀 있어서 정정하자면, ‘쇼크’란 사회 변혁이라기보다는 우리 세계와 플레이 속의 세계 사이의 분명한 차이입니다. 그게 사회 변혁으로서 나타날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죠. 이 점을 정정하고 하니 공상과학적 요소를 한결 더 살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 세계에는 없는 특징에서 파생하는 극적 요소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었으니까요.

설정

쇼크는 ‘외계인이 있는 사회’로 했습니다. 쇼크의 담당자는 저. 승한군은 첫 접촉 같은 상황을 생각했지만 저는 외계인과 어울려 사는 세상이 더 재밌을 것 같아서 냉큼 쇼크 담당을 자청하고 외계인 관련 세부사항을 설정했지요. 플레이 배경은 바다 행성 아쿠아로, 바다생물인 원주민 델토이드를 인간들이 식민지배하는 곳입니다. 그에 따르는 문제들이 플레이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다룰 사안은 ‘식민지’와 ‘가족’이었고, ‘식민지’ 사안 담당자는 승한군이 맡았습니다. 저와 승한군은 둘다 ‘가족’ 사안에 속하는 인물을 만들었습니다. 승한군의 인물은 아쿠아 점령 작전의 영웅인 타오룽으로, 델토이드와 결혼한 딸과 화해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제 인물은 델토이드 엔지니어인 ‘솜씨좋은 손’으로 (델토이드 이름은 인간이 발음할 수 없으므로 인간 언어로 번역한 공식 이름을 사용한다는 설정), 인간 여자와의 결혼을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두 개의 능력 대립축은 포용과 편견, 감정과 이성으로 했습니다. 타오룽 장군은 편견과 이성이 높았고, 솜씨좋은 손은 감정과 이성이 높았습니다. 참가자가 둘밖에 없었으므로 승한군의 적수는 저, 제 적수는 승한군으로 했습니다. (나중에 얘기하겠지만 둘만 하려니 관객 주사위가 없는 게 좀 뼈아팠죠..;;) 자기 담당에 맞추어, 그러면서도 자유롭게 제안을 던지면서 쇼크와 사안에 세부 설정으로 뼈대를 붙이니 쉽게 하나의 세계를 설정할 수 있었습니다.

요약

딸 샤오링의 결혼 문제로 딸과 사이가 소원해진 타오룽 장군은 어느날 델토이드 엔지니어인 솜씨좋은 손의 접근을 받습니다. 샤오링과 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결혼을 한 솜씨좋은 손은 장군에게 두 사람을 인정하고 딸과 화해하라고 설득하지만, 장군은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타오룽은 변호사인 친구에게 딸을 도로 데려올 방법을 묻고, 친구는 딸의 정신능력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서 금치산 신청을 하고 아버지인 타오룽이 후견인이 되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타오룽은 이에 따라 소송을 걸지요. 샤오링은 찾아와서 소송을 취하하라고 역정을 내지만 역시 타오룽은 무시합니다.

이후 정신과 의사인 샤오링의 사촌오빠가 솜씨좋은 손과 샤오링의 집에 찾아와서 두 사람이 헤어지지 않으면 법정에서 샤오링이 정신이상이라고 증언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샤오링은 격분해서 오빠와 난투를 벌입니다. (무서운 언니다..ㅠㅠ) 솜씨좋은 손은 두 사람을 떼어놓지만, 사촌오빠의 법정 증언에 샤오링의 폭력적인 행동까지 더해서 샤오링은 아버지의 피후견인이 되는 대신 정신병원에 갇히게 됩니다.

타오룽은 정신병원에 가서 다시 딸과 말다툼을 벌인 후에 딸을 집으로 데려오는 데 성공하지만, 샤오링은 얼마 후에 집에서 탈출합니다. 그리고 솜씨좋은 손에게 찾아와 함께 떠나자고 하지만 그는 이곳에 남아서 아버지에게도, 모두에게도 인정받자고 하고, 그녀는 실망한 채 혼자 행성을 떠납니다.

솜씨좋은 손과 타오룽은 함께 샤오링을 찾아나서서 먼 행성에서 마침내 그녀를 찾고, 아버지는 무릎까지 꿇고 딸에게 용서를 구하지만 샤오링은 그와 연을 끊어버립니다. 하지만 솜씨좋은 손의 설득에는 마음이 움직여서 두 사람은 함께 아쿠아로 돌아오지요. 두 사람은 이종족 커플로서 유명인사가 되고, 둘의 유전자를 합성한 아이도 낳아서 잘 삽니다.

감상

예, 이렇게 해서 솜씨좋은 손의 이야기 목표는 성공해서 해피엔딩, 타오룽은 실패로 쓸쓸한 말년을 맞았습니다. 간단한 설정에서 시작해 꽤 극적인 이야기가 나온 점이 재밌었습니다. 단순하면서도 극명한 긴장 상황을 설정해서 자연스럽게 갈등이 나오는 점이 이전에도 느낀 쇼크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처음에 생각했던 다각적이고 심각한 전개보다는 막무가내의 감정싸움 중심이 된 것 같지만, 그건 어찌보면 가족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필연적인 결과일지도 모르죠.

판정은 원래 규칙대로는 어떤 때는 높은 게 성공, 어떤 때는 낮은 게 성공이어서 굉장히 혼란스러웠는데, 승한군이 고안한 대안 규칙을 사용하니까 적어도 둘이서 하는 TRPG로는 무리가 없었습니다. 일률적으로 낮은 게 성공이고 방해하는 1d4는 더하기만 하니까 일관성이 있어서 훨씬 좋더라고요. 그러면서 확률은 동일하고요. 앞으로 쇼크 할 때는 이 대안 규칙을 사용하면 좋겠습니다.

이야기 진행을 판정 결과에 거는 갈등 판정 방식은 판정과 이야기가 맞물리는 점도 재밌습니다. 주인공 참가자와 적수 참가자의 극적 욕구가 서로 긴장관계를 이루고, 규칙과 판정이 이야기 진행을 일정 부분 규율하면서 그만큼 이야기 자체가 예측 불허가 되고 역동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승한군이 사촌 오빠의 성공적인 증언을 걸고 한 굴림이 능력치와 같게 나와 상승 규칙이 발동한 결과 샤오링이 금치산자 판정을 넘어 정신병동에 갖히게 된 것이 좋은 예입니다.

둘만 해서 아쉬운 부분이었다면 역시 관객 주사위가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타오룽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관객이 주사위로 결과를 낮추어 주었다면 타오룽이 성공할 수도 있었는데, 적수인 저의 방해 주사위가 결과를 높이는 상태에서는 거의 실패할 수밖에 없었죠. 주인공 참가자와 적수 참가자뿐 아니라 관객의 극적 욕구도 함께 맞물리면 좀 더 역동적인 결과가 될 수도 있지 않았나 합니다. 다음에는 셋 이상이서 해보면 더 재밌을지도요.

사악한 시대 플레이

지난 일요일에는 참가자 한 명이 사정상 불참해서 어스돈의 혼 정기 플레이 대신 광열군을 끌어들여 사악한 시대에.. (In a Wicked Age…) 즉석 플레이를 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승한군 글에 나와있고, 몇 가지 덧붙일 감상이라면…

우선 무작위로 뽑는 이야기 요소들 (신탁)이 상상력을 자극하는 효과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폭군을 돕는 사악한 악마’라든지 ‘무모한 젊은이를 지키는 수호령’ ‘전쟁용 황소떼 몰이꾼’ 같은 요소들이 순전히 무작위로 모여서 플레이하는 사람들의 상상력 속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는 과정이 쉽고 재밌었던 점이 기억에 남습니다. 기본 배경은 고대 중동풍 판타지이지만, 신탁에 따라 배경이 달라지므로 신탁만 바꾸면 다양한 장르로 플레이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고요.
또 하나, 이야기 요소들에서 뽑은 인물들의 목표를 번갈아 설정하면서 목표에 갈등을 짜넣는 과정이 플레이의 극적 긴장감을 이끄는 원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맡은 황제를 돕는 악령이 황제를 실각시키고 용사를 새 황제로 세우려는 계획은 악령과 황제 사이에 갈등을 설정했고, 남에게 희생이 없게 자신이 모든 희생을 지려는 전사의 목표는 전사를 무조건 지키려는 수호령과 갈등을 유도했습니다. 이렇게 인물의 지향성과 촘촘한 갈등의 망을 설정한 채 시작하기에 즉석에서 극적 배경과 인물을 설정하면서도 플레이가 방향성을 잃지 않고 끝까지 군더더기 없는 긴장감을 유지했다고 봅니다.
이렇듯 상상력을 무작위로 자극하는 신탁과 갈등을 유도하는 목표 설정, 거기다 간단한 인물 제작 규칙 때문에 사악한 시대는 즉석 플레이를 하기에 좋은 규칙입니다. 그러면서도 즉석 플레이를 연속적으로 연계해서 과거나 미래 이야기를 다루는 등 중장기 플레이도 할 수 있고, 신탁과 목표는 다른 규칙과 연계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단순한 규칙이면서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사악한 시대는 최근 RPG 구매 중 가장 괜찮은 축으로 치고 싶군요.

포케틀루 – 호조 2화

글룸님과 한 포케틀루 (Pokethulhu) 2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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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_새로 등장한 인물과 포케틀루 시트|시트 닫기|
바이올렛 (나이: 13, 마을: 웨이츠 포인트, 면모: 냉기)

학년: 9
체육: 3
도둑질: 5
포케틀루 지식: 6
정신건강: 4
기죽이기: 3

엘드립
약점: 에너지

힘: 8
속도: 7
건강: 5

부상: 2 (생선꼬리 일격, 어류)
회피: 3 (미끌미끌 생선 춤, 어류)
봉쇄: 1 (미끼와 낚시바늘, 어류)
공포: 3 (생선 썩은내, 부패)_M#]

요약

피카틀루에게 니알라토피가 움직임을 봉쇄당하고 자신은 나무에 매달려서 위기에 빠진 호조! 그 순간 수수께끼의 귀여운 여자아이가 나타나 포케틀루 엘드립의 생선꼬리 일격으로 피카틀루를 기절시킵니다. 소녀는 웨이츠 포인트에 전학왔다면서 호조와 마담 L의 거래도 알고 있다고 내비치지요.

호조에게 상당히 되바라지게 대하면서도 소녀는 그의 피카틀루 지식에는 흥미를 보이지만, 호조보다는 더러워진 신발을 걱정하며 나무에서 내려달라는 그를 깨끗이 무시하고 가버립니다. 복수를 다짐하면서 혼자 힘으로 내려온 호조는 피카틀루를 빛나는 12면체에 포획하고 자아도취에 빠집니다.

막간

“그래, 결국 성공했단 말이지?”

방안의 어둑한 조명은 다리를 꼬고 앉은 여인의 늘씬하게 긴 각선미를 비춘다. 풍부하고 성숙한 울림이 있는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희미하게 묻어난다.

“그렇습니다, 마담 L.”

조명 밑에 선 소녀는 마주 미소지으며 대답한다. 아이에서 처녀로 갓 성숙을 시작한 얼굴은 천진난만하고 목소리는 맑지만, 자세히 본다면 푸른 눈빛과 고른 이가 반짝이는 웃음에서 사춘기와 유년기의 경계에 선 소녀에게 어울리지 않을 정도의 지식과 악의를 엿볼 수 있다.

“잘해주었다, 바이올렛.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주렴.”

마담 L의 기품있는 목소리에는 처음으로 진정한 애정을 내비치는 부드러움이 깃든다.

“네!”

정중하게 인사하고 소녀가 돌아서자 치맛자락의 파스텔톤 프릴이 무수한 나비처럼 나풀거린다. 복도의 환한 빛 속으로 나서는 소녀는 햇살처럼 환하고 막 피는 꽃송이처럼 싱그럽다. 모든 어둠은 방금 떠나온 방에 남겨둔 것처럼.

감상

결국 또 다른 포케틀루를 동원해 피카틀루는 KO. 역시 전투가 짧을 때는 되게 짧게 끝나는군요. 이게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마음을 못 정했지만, 확실한 특징이기는 합니다. 판정 규칙은 단순하면서도 다양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어서 좋네요. 호조가 포케틀루 지식 판정에 성공해서 엘드립의 약점을 지적하는 대목도 인물성이 잘 살아나서 좋았고요.

바이올렛은 지난 화부터 구상했던 인물인데, 건방지고 깜찍한 여자아이란 RP하는 재미가 상당하군요. 마담 L만큼이나 재밌어요. 다음화는 완전히 학원물 분위기일 것 같으니 (‘희귀본 독서클럽’의 정체는 포케노미콘 연구회였다(..)) 바이올렛, 데이빗 등을 함께 볼 수 있겠군요. 물론 컬티스트들은 싸움이 나면 포케틀루로 말한다!

함께해주신 글룸님께 감사하고요, 다음에 기회가 나면 또 플레이하도록 하죠.

포케틀루 – 호조 1화

포케틀루 로고

피카 피카!

포케틀루 (Pokethulhu)는 제목대로 ‘포켓몬 + 크틀루’로서, 5~16세의 컬티스트(..)들이 괴물 틀루를 수집하고 훈련시켜 대전하는 내용입니다. 단순하면서도 쓸만한 규칙과 블랙유머가 재미있더군요.

1065970276.html

[#M_컬티스트와 포케틀루 시트 보기|컬티스트와 포케틀루 시트 닫기|
호조
(나이: 16, 마을: 웨이츠 포인트, 면모: 끈끈함)
학년 12
체육 1
도둑질 6
포케틀루 지식 9 *
정신건강 1
기죽이기 1

데이빗 (나이: 15, 마을: 웨이츠 포인트, 면모: 비늘)
학년 11
체육 7 *
도둑질 3
포케틀루 지식 4
정신건강 2
기죽이기 3

니알라토피
약점: 에너지

힘: 5
속도: 8
건강: 7

부상: 2 (미지의 핥기, 끈끈함)
회피: 3 (니알라토피의 변신, 변형)
봉쇄: 1 (끈적한 점막, 끈끈함)
공포: 3 (달에 울부짖다, 변형)

스커틀
약점: 에너지

힘: 7
속도: 8
건강: 5

부상: 2 (산 뿌리기, 끈끈함)
회피: 2 (기어가기, 비늘)
봉쇄: 3 (점액 분출, 끈끈함)
공포: 2 (절규, 비늘)

피카틀루
약점: 끈끈함

힘: 8
속도: 6
건강: 6

부상: 3 (생체 방전, 에너지)
회피: 3 (장난스럽게 뛰어다니기, 물컹거림)
봉쇄: 1 (귀여운 포즈, 물컹거림)
공포: 2 (깜찍한 모델 포즈, 물컹거림)_M#]
요약

웨이츠 포인트 고등학교의 왕따 학생이며 컬티스트인 호조는 교장 마담 L의 명령으로 전설의 야생 포케틀루 피카틀루를 잡아오려고 떠납니다. 장비를 준비하려고 부모님 카드를 무단으로 쓰던 그는 몰래 사모하는 대상인 1년 아래 후배 데이빗과 마주치고, 마지막 남은 빛나는 12면체 (포케틀루 소환 아이템)를 두고 다투다 호조의 촉수 괴물 니알라토피와 데이빗의 거대 전갈 스커틀이 대전을 벌입니다. 여기서 니알라토피가 이겨서 데이빗은 굴욕감에 무릎을 꿇지만, 호조의 위로에 감동하며 그를 깍듯이 선배로 모시게 됩니다. 그러나 늪지대에서 피카틀루를 찾은 호조는 피카틀루의 강력한 생체방전과 귀여운 포즈 공격에 니알라토피가 고전하면서 위기에 빠지는데…

감상

웃으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한 플레이였습니다. 포켓몬스터를 그다지 자세히 본 일은 없고 그냥 오다가다 채널 넘어갈 때 본 정도였지만, 워낙에 유명한지라 아는 게 없는 저도 대충 흉내는 낼 수 있더군요. 진 녀석이 굴욕감에 빠져 땅에 무릎을 꿇고 손을 짚는 포즈라든지, 승자가 손을 잡아주자  오만하던 녀석이 왠지 개과천선하는 전개라든지. 절대 히어로답지 않은 호조의 비굴 + 비겁 + 느끼함도 재밌었고요.

판정 규칙도 간단하면서도 다양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고 (좋아하는 아이의 눈을 피해 숨는다든지, 피카틀루가 어디 있을지 추측한다든지), 가장 자세한 대목인 포케틀루 대전 규칙도 이것저것 선택할 사항이 많아서 다채롭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전투가 짧게 끝나는 경향은 보이는데, 그건 긴 전투에서 나오는 선택의 다양성과 박진감 면에서는 단점일 수도 있지만 속도감 있는 진행을 생각하면 오히려 장점일 수도요.

결론적으로 참 재밌는 패러디물이며 괜찮은 규칙이라는 생각입니다. 특별히 복잡한 내용이 아닌 만큼 여러 사람이 캐릭터 만들고 심심하면 모인 사람끼리 대전을 벌이고 이야기가 얽혀가는 식으로 해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