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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글) 기동형 페이트의 방식 사용하기 : 어떤 방식으로 ‘방식’을 사용할 것인가?

원본 : https://plus.google.com/+DavidGoodwin/posts/Mdw9oLUEhej

Written by David Goodwin

어떤 방식으로방식 사용할 것인가

저는 오늘 기동형 페이트에서 사용하는 ‘방식’에 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얼마 전 다른 글에서 썼던 제 생각을 좀 더 풀어서 설명해보도록 하지요. 기동형 페이트에서 ‘방식’을 사용하는 데 있어 지금까지 보고 겪은 문제 중 하나는 각 방식을 어떻게 하면 융통성을 잃지 않고도 서로 의미 있는 차별성을 줄 수 있는가? 입니다. 다음은 제가 제시하는 방안입니다.

기본적으로 방식은 캐릭터가 판정에 성공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좌우합니다. 방식은 단순한 표현 방식이 아니라, 캐릭터가 어떤 방식을 사용해 문제를 해결할지 결정합니다. 즉 :

똑똑하게 자물쇠를 해결한다면, 자물쇠 따개로 자물쇠를 열어서 어떻게 여는지 알아낸 것입니다.

강하게 자물쇠를 해결한다면, 자물쇠를 부수어 연 것입니다.

여기에서 차이가 발생합니다. 만약 캐릭터가 상대를 강하게 이해시켰다면, 상대는 이해를 하면서 캐릭터를 두려워할 것입니다. 만약 캐릭터가 상대를 화려하게 이해시켰다면, 상대는 이해를 하면서 당신에게 매력을 느낄 것입니다. 비록 결과는 같지만 큰 차이가 발생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만약 캐릭터가 X라는 방식으로 대가를 치르는 성공을 했다면, X라는 결과는 얻어도 Y라는 결과를 얻지는 못합니다. 여기에서 Y는 다른 방식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

캐릭터가 라트베리아의 대사관에 ‘은근하게’ 들어간다면, 한밤중에 벽을 넘어 잠입하게 되겠지요. 만약 대가를 치르는 성공을 얻었다면 은밀하게 숨어들어 갈 수는 있겠지만, ‘세심하지’ 못했기 때문에 누군가가 벽 바깥쪽에서 발자국을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혹은 ‘똑똑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사관 안에서 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캐릭터가 ‘화려하게’ 대사관에 들어간다면, VIP인 척하면서 경비병을 통과할 것입니다. 만약 대가를 치르는 성공을 얻었다면 캐릭터는 화려하게 성공을 했지만 ‘은근하지’ 못했기 때문에, 곧 캐릭터의 관심을 끌려 하는 공무원들에게 둘러싸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캐릭터가 X라는 방식으로 판정해서 실패했다면, 캐릭터는 X라는 방식의 이점을 얻지 못합니다.

이는 무척 중요한 문제입니다. 만약 캐릭터가 은밀하게 대사관에 들어가는 데 실패했다면 캐릭터는 단순히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은밀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각이 될 것입니다. 만약 캐릭터가 화려하게 들어가는 데 실패했다면 캐릭터는 다른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지 못했기 때문에 무시당하고 쫓겨날 것입니다. 완전히 다른 결과이지요.

만약 캐릭터가 자물쇠를 똑똑하게 통과하지 못했다면 캐릭터는 단순히 통과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아예 문제를 이해조차 하지도 못합니다. 아마 엉뚱한 결론을 내리겠지요. 캐릭터가 자물쇠를 통과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똑똑하게 굴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방식은 단순히 판정에 성공했을 때 어떻게 일이 돌아가는지 뿐만 아니라 실패했을 때에도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결정합니다. 캐릭터는 같은 문제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해결 시도를 할 수 있지만, 선택한 방식마다 그 대가가 다르므로 결과를 완전히 예측하지는 못하더라도 비교 검토를 해 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RPG와 최적 경험: 진실성

여러분이 생각하는 삶의 진실은 무엇입니까?
인생관이라고도 하고 신념이라고도 하는 이 진실은 여러분이 실제 경험이나 책이나 생각 등 삶의 과정을 통해서 배워온 법칙 혹은 규칙성, 즉 ‘삶이란 이런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보답을 받는다거나, 선인은 결국 상을 받고 악인은 결국 벌을 받는다는 믿음일 수도 있습니다. 가족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거나,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거나 등등.
아니면 여러분의 세계관은 냉소적이고 어두운 편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라 운 있고 백 있는 사람의 편이라거나, 악인이 더 잘 된다거나, 가족이야말로 가장 못 믿을 사람들이라거나, 어차피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라거나. 자신이 생각하는 선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추구하는 것이 바로 악이거나 하는 식으로 여러분이 생각하는 삶의 진실이란 복잡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때그때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고, 건전발랄한 생각과 짜게 식은 냉소가 공존할 수도 있지요.
여러분이 믿는 생의 진실이 무엇이든 그것을 표현하는 이야기야말로 여러분에게 가장 재미있고 깊이있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흔히 주제라고 하고, 다르게 말하면 책을 덮었을 때, 극장에서 나왔을 때, 텔레비전을 껐을 때 ‘남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진실이 제대로 표현되어 있지 않으면 남는 게 없는 이야기가 되거나 “그래서 어쩌라고?” 소리가 나오기 쉽지요. 주제의식이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것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제는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드러날까요? 여러 가지 설명이 있지만, 가장 단순화하자면 ‘~~를 하면 ~~하는 결과가 나온다’는 인과관계의 반복을 통한 것이라는 설명이 저는 가장 와닿았습니다. 이것은 Robert McKee의 Story: Substance, Structure, Style and the Principles of Screenwriting에 나온 설명을 참조한 것으로서, 이 책은 국내에서는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황금가지에서 2002년 출간하였습니다.
가난한 젊은이가 성공하려고 이를 악물고 사업을 하는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그가 아무것도 없이 발로 뛰어 투자자를 감동시키고, 밤낮으로 공사장에서 지내면서 공장을 짓고, 경쟁사의 치사한 수법에 맞서 품질과 정직성으로 승부하는 끝에 성공하는 이야기라면 그 이야기는 ‘역경 앞에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주제의식을 표현하는 감동 성공신화일 것입니다. ‘노력 -> 성공’이라는 인과관계가 이야기의 각 단계 (투자자 확보, 공장 건설, 경쟁사 음모 분쇄)와 전체 이야기 (사업 성공)에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반면 위의 청년 실업가가 투자자를 모으려고 죽도록 노력했는데 경쟁사의 이간질로 투자를 못 받고, 결국 비싼 이자를 내고 돈을 빌려 공장을 지으려고 했는데 공장은 경쟁사에서 보낸 깡패들이 불태워버리고, 허름한 창고를 빌려 밤을 새어가며 제품을 조립하여 출고하였는데 특허 소송에 휘말려 결국 제품은 사장되고 경쟁사 사장의 매수를 받은 검찰이 사기죄로 이유 없이 기소하여 결국 빚만 떠안고 감옥에 가는 이야기라면 이것은 살기 싫어지는 이야기 ‘돈과 권력 앞에 개인의 노력이나 성실성은 실패와 파멸로 이어질 뿐이다’라는 주제의식을 표현하는 이야기이겠지요. 역시 이야기의 각 단계 (투자자 확보 실패, 공장 화재, 제품 사장, 억울한 옥살이)와 전체 이야기 (돈과 권력에 져서 파멸) 속에서 ‘권력의 방해 -> 실패’라는 인과관계가 지속적으로 나타납니다.
물론 이들 한쪽 극단이 아니라 그 사이를 오가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투자자 유치에는 실패했지만 공장은 성공적으로 지어 제품을 출시했고, 특허 소송에 져서 큰 손실을 입었지만 결국 경쟁사의 비리를 밝혀내고 어렵게라도 회사를 꾸려갈 수 있었다… 하는 식의 달콤씁쓸한, 양쪽 진실이 공존하는 혼합적인 주제의식이 될 수도 있지요. 인생은 다면적인 만큼 보통은 이러한 혼합적인 주제의식이 가장 현실적입니다.
이미 정해진 이야기인 소설이나 영화 등은 위와 같지만,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인 RPG는 이들 매체와는 주제의식 표현이 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소설이나 각본은 주제를 미리 정하고 이에 맞추어 이야기를 구성하고 수정할 수 있는 반면, RPG에서는 시나리오를 정한다 하더라도 실제 진행은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크게 달라지니까요. 이런 RPG의 성격상 주제를 설정한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한다면 어떻게 할까요?
우선 짚고 넘어가자면, RPG든 다른 이야기든 주제를 미리 설정하고 모든 인물과 진행을 주제에 맞추는 방식은 추천하기 어렵습니다. 자칫하면 선전 소설마냥 구호 모음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니까요. 그보다는 좋은 주제의식은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우선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실제 사람, RPG의 경우 참여자들이지요. 두 번째는 이야기 속의 가상적인 사람, 즉 허구 속의 인물들입니다. 여기서 시작하여 RPG에서 주제의식을 살리는 방법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논의는 나중에 이야기의 개별적 요소들 (배경세계, 인물, 구조 등)을 다루면서 더욱 확장해갈 것입니다.
일단 처음 기획하고 설정하는 단계에서부터 왜 이러한 캠페인을 원하는지, 왜 이런 성격의 배경세계를 하고 싶은지 생각해보는 것이 주제의식 형성에 큰 도움이 됩니다. 벌써 주제를 정할 필요는 없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왜 좋아하는지만 생각하면 충분합니다. 예를 들어 이전에 했던 중편 캠페인 도쿄의 달 제작시에는 ‘변혁기 인간의 모습’을 다루자는 합의 하에 이에 맞추어 배경세계를 정했습니다. 변화하는 시대 속에 인간은 어떻게 대응하는가 하는 질문은 주제의식이라기보다는 소재이지만, 나중에 주제의식의 중요한 실마리가 되었지요.
인물을 제작할 때도 마찬가지로 ‘왜’라는 질문이 가장 중요합니다. 적의 희생 때문에 살아남은 후 개과천선한 인물을 하고 싶다면, 왜 그럴까요? 어떤 이야기 혹은 방향성을 바라는 것일까요? (현실 속 참여자의 동기) 그러한 인물의 동기, 그가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허구 속 인물의 동기) 참여자가 원하는 것과 인물이 원하는 것을 파악해야 좋은 이야기와 진실한 주제의식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위에서 설명했듯 주제의식이란 결국 인과관계인데, 이러한 인과관계가 나타나려면 사건이 일어나야 하고 사건이 일어나는 동력원은 욕망이니까요. 위의 청년 실업가의 예에서는 그가 사업을 성공시키려고 하기에 투자자를 모으고 공장을 지으려고 하는 것이고, 그러한 욕망에 다른 인물들이 반응하면서 감동 성공 스토리도, 산업 느와르물도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기회과 인물 제작 단계에서는 크고작은 의견차이가 생기는 것이 보통인데, 이러한 차이는 아주 중요합니다. 의견 차이야말로 진실성과 주제의식을 둘러싼 차이점의 실마리인 까닭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참가자가 하고 싶어하는 인물은 자신이 뭔가 동기가 있어서 움직인다기보다는 주변 인물이 괴롭히고, 좋아하고, 구출하는 사건의 연속인 공주형 내지 소녀형 인물일 수 있습니다. (반드시 참가자나 인물이 여자는 아닙니다.) 즉 행동하기보다는 사랑이나 미움을 받는 대상으로서의 인물을 원할 수 있지요. 이럴 경우 그 플레이어가 생각하는 진실성이란 ‘사랑받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거나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행동하기보다는 착하게 가만히 있는 것이 좋은 일이다’ 같은 것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의견 차이가 드러날 때에는 위 문단에서 다루었듯 어떤 이야기를 원하는가 대화를 충분히 하고 차이점을 조정해 보거나, 정 간극을 좁히기 어려우면 같이 플레이하지 않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진행하기 시작하면 이전 단계에서 암시되었던 주제의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진행자가 제시하는 상황, 참가자가 보이는 반응, 각 참여자가 원하는 이야기와 그 합치 혹은 불합치 속에서 각자의 욕망의 방향을 엿볼 수 있지요. 예를 들어 진행자가 권력의 비리를 반복적으로 등장시킨다면 진행자는 아마도 권력이 인간을 망친다는 주제의식에 관심이 깊을 것입니다. 또 참가자 A는 대개의 상황에 폭력적으로 반응하고 또 이로 인한 승리를 원한다면 그 참가자는 정의는 (혹은 나는) 승리한다는 진실에 끌리는 것이겠지요. 또 다른 참가자 B는 주변 인물들을 끌어들이고 그들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랄 수 있습니다. 이런 참가자는 인생은 혼자 살아갈 수 없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고 믿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한 참여자가 믿는 진실은 여러 가지일 수 있고, 서로 모순적인 진실을 믿을 수도 있으며,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주제의식, 혹은 각자가 생각하는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대화가 아주 중요해집니다. 참여자들이 해당 세션에서 무엇을 원했으며 어떤 점이 충족되었고 어떤 점이 불만족스러웠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얘기하면서 각자가 원하는 이야기와 주제의식을 끌어내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참가자 A는 전투로 상황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는데 진행자가 너무 강한 적을 내보낸 것이 불만일 수 있습니다. 진행자는 이기기 어려운 권력의 불의를 보여주고 싶었기에 강한 적을 내보낸 것일 수 있지요. 이러한 욕망이 드러나면 이들의 각자 다른 진실을 어떻게 조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 경우 폭력과 권력은 결국 같은 현상이니까 참가자 A의 인물이 폭력을 휘두르면서 점점 강력한 권력이 되어가고, 그로 인해 새로운 억압자가 되는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겠지요. 혹은 참가자 A와 참가자 B의 욕구를 조화하여 혼자서는 이기기 어려운 상대이지만 원군을 부르면 이길 수 있는 적을 내보내서 정의의 승리와 사회관계의 중요성을 둘다 강조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RPG에서의 주제의식은 모든 참여자가 생각하는 진실이 서로 대립하고 또 조화를 이루는 긴장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며, 특히 긴 이야기일 수록 각자의 진실을 조화시키는 소통이 중요해집니다.
이상과 같이 주제의식이 무엇이며 RPG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어 보았습니다. 조금 덧붙이자면 주제의식 외에도 이야기의 진실성에는 개연성이나 진정성 같은 요소도 들어갑니다. 이야기의 진행과 인물의 행동과 감정이 얼마나 진실한가 하는 문제이지요. 이들 역시 참여자끼리 의견이 갈릴 수 있는 부분이므로 의견 차이가 생기면 이때 왜 이런 사건이나 반응이 나왔는가, 우리가 원하는 이야기, 우리가 생각하는 진실이란 무엇인가 하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이렇듯 좋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 진실성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음 글에서부터는 RPG 캠페인 기획과 진행의 각 단계를 다루고자 합니다. 먼저 가장 기본인 배경부터 시작하여 좋은 이야기를 만들기 위하여 캠페인 배경세계를 설정하고 선택하는 문제를 다루어 보겠습니다.

<RPG와 최적 경험 시리즈>
1. 최적 경험을 위하여
(1) 최적 경험과 플로우
(2) 플로우의 조건
(3) RPG와 플로우
2. RPG인의 능력 
(1) 게임적 능력
(2) 서사적 능력 
A.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B. 진실성
C. 배경세계
D. 인물성
E. 이야기 구조
F. 갈등과 의미있는 선택
G. RPG 특유의 서사성
(3) 사회적 능력
(4) 팀의 능력
3. 도전을 수준에 맞추어가기
(1) 게임적 도전
(2) 서사적 도전
(3) 사회적 도전
4. RPG의 목적성과 피드백
(1) 팀 단위에서의 목적 설정
(2) 팀원 간 목적의 일치와 긴장
(3) 등장인물 간 목적의 일치와 긴장
(4) 피드백으로 목적 합치성 평가하기
5. 집중과 몰입
(1) 집중을 위한 조건
(2) 집중을 위한 마음가짐
(3) 집중을 위한 환경
(4) 결어

RPG와 최적 경험: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지난번 글에서는 백만 년 전에 RPG의 게임적 측면을 다루었습니다. 그 글에서 다루었듯 RPG에는 게임으로서의 측면이 있으며, 이는 역할극과 구분되는 RPG의 특성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규칙의 지향점을 파악하고, 숙독과 연습을 통하여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어쩌면 당연한 얘기를 했었죠.

게임성 외에 또 다른 특징이라면 RPG라는 놀이는 반드시 서사적인 틀 속에서 진행이 된다는 것입니다. 보드게임이나 퍼즐게임 등은 서사 없는 놀이가 가능하지만, RPG는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만들려는 목적으로 플레이를 하든, 아니면 이야기는 괴물을 잡고 보물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부산물일 뿐이든 뭔가 이야기가 있습니다. 결국 RPG는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놀이인 셈입니다.

서사성이 RPG의 또 다른 특징인 만큼 이야기가 훌륭하면 그만큼 RPG의 만족감도 높아지고, 좋은 이야기를 목표로 노력하면 그만큼 최적 경험에 가까워질 것입니다. 처음에 최적 경험, 혹은 플로우를 다루면서 말했듯 플로우란 정해진 목표를 향해 노력을 하면서 집중감과 몰입감, 그리고 행복감이 드는 경험입니다. 따라서 달성하려는 목표가 무엇인지 모르고서는 플로우가 있을 수 없지요. 그래서 이번 편에서는 먼저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간단하게 살펴보고 다음 글부터 각 요소를 달성하는 방법을 논하겠습니다.

주의할 것은 RPG가 이야기를 만드는 놀이라고 해서 반드시 이야기를 만드는 데 중점을 둘 필요는 없으며, 또 그래야만 좋은 놀이인 것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RPG의 이야기란 그저 신나는 놀이를 하면서 (게임성), 혹은 아는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리면서 (사회성) 부차적으로 생기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를 얼마나 강조할지, 그리고 얼마나 시간과 노력을 쏟을지는 각 팀이 결정할 몫입니다. 다만 이야기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기로 한다면 더욱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은 분명 있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좋은 이야기란 워낙에 다양하므로 외적으로 보이는 특징, 예를 들어 장르나 배경을 가리켜 이것이 있으면 좋은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 좋은 이야기라고 해서 엘프와 마왕이 나오면 좋은 이야기인 것은 아니며, 영화 ‘가타카’가 좋은 이야기라고 해서 미래 디스토피아가 다 훌륭한 작품인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좋은 이야기라면 공유하는 몇 가지 특징이 있기는 합니다. 겉가죽은 연애물이든 추리물이든 동화이든, 모든 좋은 이야기의 속살에는 다음과 같은 본질이 있습니다. 특별히 새로운 내용은 아니지만, 제가 그동안 보고 생각한 것을 나름 소화하고 정리한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진실성. 좋은 이야기란 무엇보다 진실한 허구, 즉 진실한 거짓말입니다. 비록 하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지만 그 속에 있는 인물과 사건 등이 삶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진실을 보여주고 있지요. 이것이 좋은 이야기의 본질 중 으뜸입니다. 인물을 어떻게 하고 사건을 어떻게 할까 하는 고민도 결국에는 ‘진실한가?’ 하는 단일한 질문에 답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자연스럽고 진정성이 있는가, 삶에 대한 어떤 진실을 보여주는가, 이것이 좋은 이야기의 최종적이며 또한 유일한 시금석입니다. 나머지는 좋은 이야기는 진실해야 한다는 이 원칙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뿐입니다.

두 번째, 좋은 이야기에는 풍부한 배경세계가 있습니다. SF나 가상역사, 판타지처럼 우리가 사는 세계와는 전혀 다르거나 역사물처럼 우리 세계의 과거를 다루는 이야기도 배경세계가 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허구도 독자적인 배경과 문화가 있습니다. 21세기 한국의 고등학교나 중산층 가정, 혹은 21세기 한국 사회 전체도 이야기가 벌어지는 세계이며, 각자 법칙과 갈등, 문화가 있는 소우주를 이룹니다.

한편 배경세계가 풍부하다는 것은 설정자료가 많다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에 의미있는 갈등의 실마리가 있으며, 인물 및 인물 사이의 관계를 통해 그 세계 특유의 문화와 규범이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배경 때문에 생기는 차이점과 공통점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이야기를 다양한 각도로 볼 수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역시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됩니다. 삶의 진실이 햇빛이라면 배경과 그 문화는 그 빛을 다양한 색채로 변주하는 프리즘입니다.

세 번째, 좋은 이야기에는 좋은 인물성, 특히 좋은 주인공이 있습니다. 좋은 인물이란 결국 이야기에 드러나는 삶의 진실을 사람을 통해 표현하여 흥미와 공감을 끌어내는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주인공, RPG에서는 PC는 실현할 수 있는 욕구를 위해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변하고 성장해가는 인물이지요. 이러한 인물과 그들 간의 관계는 좋은 이야기의 원동력이 되며, 깊은 감정적 경험을 이끌어냅니다.

네 번째, 좋은 이야기에는 이야기의 경험을 고조시키는 이야기 구조가 있습니다. 모든 의미있는 이야기의 핵심에는 일상 – 일상에서의 일탈 – 새로운 평형 달성이라는 구조가 있습니다. (이 점에서는 조셉 캠벨의 영웅의 여정을 따릅니다.) 그것을 기승전결, 발단-전개-절정-결말 하는 식으로 나누어볼 수도 있지만, 더 본질적인 것은 주인공들이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위험한 미지의 영역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그렇게 성장하고 변함으로써 한층 층위가 높은 새로운 안정성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구하러 모험을 떠나는 얘기이든, 학교를 옮기는 전학생 얘기이든,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고 의심하기 시작하는 이야기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모든 좋은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각자의 삶이라는 전투를 치르며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삶의 지혜, 그 진실의 일면이라는 전리품을 탈취하려고 몸부림칩니다. 진실을 위한 싸움에서 크게 승리할 수록 결말이 행복한 이야기이겠고, 의미 있는 배움을 얻지 못하거나 이를 위한 대가가 너무 크다면 비극적인 이야기일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삶을 더 깊이 깨닫고, 더욱 의미있는 존재를 누리려는 투쟁은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의 구조는 이를 반영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 좋은 이야기에는 의미있는 갈등과 선택이 있습니다. 내적 갈등이든 외적 갈등이든 인물은 의미가 있는 갈등에 마주해 뭔가 선택을 해야 하며, 이 선택에도 크든 작든 의미가 따라야 합니다. 갈등과 선택은 위의 모든 요소를 통합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배경세계와 인물은 다양한 갈등을 만들어내며, 갈등의 발생과 해결은 배경과 인물,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삶의 진실에 비추어 진정성이 있고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또한 갈등상황에서 인물이 하는 선택에 따라 인물성은 더욱 깊이가 생기고 변화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상황과 선택은 미지의 상황에서 새로운 의미를, 새로운 평형을 만들어가려는 인물의 투쟁을 반영하며 이를 통해 삶의 어떤 진실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여섯 번째, RPG의 좋은 이야기는 소설이나 연극과는 다른 RPG만의 특징이 있습니다. 이야기가 어떻게 되는지 정하는 규칙이 있다는 점, 그리고 함께 즉석에서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그렇지요. 따라서 RPG의 다른 두 요소인 게임성과 사회성과의 관계, 그리고 즉흥성과 계획성의 관계 등을 살펴보면서 RPG인의 서사적 능력 논의를 마칠 계획입니다.

이렇게 좋은 이야기의 요소를 논하는 여섯 편의 글을 열어봅니다. 아는 것이 짧아 쓰기까지 많은 고민과 변경을 거친 끝에 결국 생각보다 길어지게 되었군요. 어려운 얘기인 만큼 많이 부족할 텐데 격려와 질책, 지적과 질문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특히 이 서론에서 잡고 있는 구성을 변경하려면 나머지 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하는 것이 좋으니까 의구심이나 반론, 보충할 점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적극적으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RPG와 최적 경험 시리즈>

1. 최적 경험을 위하여

(1) 최적 경험과 플로우

(2) 플로우의 조건

(3) RPG와 플로우

2. RPG인의 능력

(1) 게임적 능력

(2) 서사적 능력

A.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B. 진실성

C. 배경세계

D. 인물성

E. 이야기 구조

F. 갈등과 의미있는 선택<

G. RPG 특유의 서사성

(3) 사회적 능력

(4) 팀의 능력

3. 도전을 수준에 맞추어가기

(1) 게임적 도전

(2) 서사적 도전

(3) 사회적 도전

4. RPG의 목적성과 피드백

(1) 팀 단위에서의 목적 설정

(2) 팀원 간 목적의 일치와 긴장

(3) 등장인물 간 목적의 일치와 긴장

(4) 피드백으로 목적 합치성 평가하기

5. 집중과 몰입

(1) 집중을 위한 조건

(2) 집중을 위한 마음가짐

(3) 집중을 위한 환경

(4) 결어

RPG와 최적 경험 2. (1) RPG인의 게임적 능력

지난번 RPG와 최적 경험 1.
최적 경험을 위하여
글에서는 최적 경험이 무엇인지, 그리고 RPG를 통해 최적 경험을 위해서는 어떤 요소가 일반적으로 필요한지 살펴보았습니다. 완전히 빠져들어 행복하게 몰입하는 플로우 경험을 위해서는 능력과 그에 맞는 도전, 목적성과 그 척도가 되는 피드백, 그리고 집중이 되는 조건이 있으면 유리하다고 하였죠. 이번 글에서는 그 중 첫 번째인 RPG를 하는 능력을 다루어 보겠습니다. (원래는 3가지를 한 글에 다 다룰 생각이었지만, 분량이 많아져서 제노시아님 조언대로 첫 번째인 게임적 능력부터 올립니다.)

RPG를 잘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하는 것은 사실 대답하기 쉬운 질문은 아닙니다. RPG에는 워낙 여러 가지가 들어가니까요. 우선 워게임에서 시작한 놀이인 만큼 전투를 하는 규칙이 RPG 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일이 많고, 실제 플레이에서도 종종 중요한 역할을 차지합니다. 주로 전투를 다루었던 규칙은 AD&D와 같은 시스템을 거치면서 각종 비전투 행동 역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RPG의 게임적 영역, 즉 규칙을 활용해서 노는 것은 RPG 실력과 관련이 깊습니다.

물론 규칙으로 처리하는 영역이 RPG의 전부는 아닙니다. 전투와 기타 판정 이상의 이야기를 원하는 팀도 많지요. 컴퓨터 게임은 퍼즐 게임처럼 전혀 서사가 없는 것도 있지만, RPG는 가장 워게임에 가까운 유혈난무 플레이라도 최소한의 서사적 구조는 있습니다. 이미 이야기가 정해진 소설이나 영화와는 달리 이러한 이야기의 전부 혹은 일부는 플레이 중에 즉흥적으로 만들어가지요. 결국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도 RPG의 중요한 부분인 만큼 서사적 능력, 특히 즉흥적인 서사 능력도 RPG를 잘한다고 할 때 다루어야 할 부분입니다.

이 모든 것을 팀으로서 함께 한다는 것도 RPG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혼자 하려면 할 수도 있겠지만, 혼자 한다면 괜히 주사위 굴리거나 칩 돌리느라 난리칠 것 없이 조용히 소설 쓰는 게 낫겠지요. (혼자 노는 시도도 있었지만, 정규적인 것은 아닌 실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RPG에 규칙이 존재하는 의의 중 하나도 서로 다른 의견을 조화롭게 해소하는 장치인 만큼, RPG는 근본적으로 사회적인 놀이입니다. 어떻게 같이 놀고 의견을 조화하느냐 하는 사회성이 중요해지는 것이 RPG입니다. 그러므로 RPG 능력 이야기를 할 때면 다른 사람과 잘 지내며 의견충돌을 해소하는 사회적인 능력을 빼놓을 수 없지요.

이상과 같은 RPG의 양상을 생각해 보면 RPG에 중요한 능력은 크게 게임적 능력, 서사적 능력, 그리고 사회적 능력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어느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하는 강조점은 놀이의 성격이나 팀의 취향에 따라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전투 중심 플레이라면 게임적 능력이 가장 중요하고, 이야기가 중심이라면 서사적 능력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중점이 어느 쪽에 있든 저 세 가지 능력 모두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므로 이 세 가지는 어떤 RPG를 하든 필요한 공통 분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 능력을 차례대로 다루고, 마지막으로 RPG를 하는 실질적인 주체인 팀의 능력을 논한 후에 시리즈 2편을 마치겠습니다.

(1) 게임적 능력

RPG는 게임입니다. 게임만이 아니고 서사적인 요소도 있지만, 게임의 요소 역시 있지요. 그레그 코스티캔의 정의 (영문 PDF 링크)를 빌리자면,
게임이란 목표를 위해 장애를 극복하도록 요구하는 가상적이고 역동적인 구조입니다.(주:정의는 글 24페이지에 나옵니다만, 전체 다 읽을
만합니다.) RPG에서 장애 제시와 극복의 구조를 제공하는 것은 바로 RPG를 역할극이나 즉흥극과
구분하는 요소, 바로 규칙 내지 룰입니다.

이것은 전형적인 던젼 모험물을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마을에 도착한, 혹은 주점에
죽치고 있는 모험가 일행에게 마을 장로, 혹은 로브를 입은 수상한 사내, 혹은 아름다운 아가씨 등이
의뢰를 제시하는 것은 게임의 큰 목표를 제안하는 서술입니다. 물론 그것이 유일한 목표는 아닐 것입니다. 개별 인물과 그 참가자는 보물을 훔쳐 달아난다, 이번에는 레벨을
올린다, 돈을 벌어 장비를 산다, 아가씨를 꼬신다 등등 다른 목표를 설정하기도 하고, 다른 장단기적 목표도 공존할 수 있습니다.

진행자가 이런 선택지를 제시한다면 어떨까요. “의뢰를 수락할래 거절할래?” 그리고 수락하면 바로 “임무 성공이다! 경험치와 돈을 챙겨요 짠짜라짠~” 뭐, 이렇게 한다면 쉬워서 좋긴 한데 뭔가 허전하지 않을까요. 결국 목표 달성 그 자체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의미가 있는 것은 달성에 장애가 되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지요. 함정을 해체하든, 괴물과 싸우든, 리치퀸을 유혹하든 목표를 위해 도전이 되는 장애물을 극복해야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전적 형태의 RPG에서 진행자는 이러한 장애물을 제시하고, 참가자는 자신이 제어하는 인물을 통해 이들 장애물을 극복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모두 실제가 아닌 가상세계 속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놀이 속의 주인공 일행이 칼을 휘두르고 함정을 해체하는 것이지, 현실 속의 참여자가 하는 것이 아니지요. 또한, 퍼즐과 달리 게임은 플레이어의 행동에 따라 상태가 역동적으로 변하며 달라집니다. 오크의 HP가 닳는다든지, 상처를 입어 성난 트롤이 돌진을 해온다든지 해서 게임의 상태는 정적이지 않고 동적입니다. 진행자이든 참가자이든 RPG를 하는 사람은 이렇게 시시각각 달라지는 상황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게임으로서의 RPG를 잘한다는 것, 즉 RPG의 게임적 요소를 잘 다룬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위에 나온 게임의 정의로 돌아간다면, 게임의 역동적인 구조 내에서 장애를 극복해 목적을 잘 달성한다면 게임으로서의 RPG를 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근본적으로는 이전에 바바 히데카즈가 말했듯 규칙이라는 구조 내에서 좋은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게임적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해한다면 게임적 능력을 키우는 데는 우선 게임을 통해 달성하려는 목표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일 것입니다. 어떤 의사결정이 좋은지 나쁜지는 그 의사결정을 하는 이유와 분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RPG는 특히 보드게임과는 달리 목적을 참여자가 스스로 설정하고, 위의 예에서 보았듯 이 목표는 종종 다층적이고 서로 복잡한 관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적절한 목표를 설정하는 능력이 중요해집니다.

좋은 목표를 설정하였다면 다음은 그 목표 달성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설정하고 극복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게임의 요소들 (능력치, 판정방식 등)에 대한 이해와 게임의 상태가 역동적으로 변해가는 양상 (생명점이 깎였을 때의 효과 등)을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어야겠지요. 차례대로 이들 능력을 다루어보겠습니다.

RPG 속에서 규칙이라는 구조 속에 달성하려는 목표는 무수히 많고, 또 다층적입니다. 놀이 내적으로는 눈앞의 오크와 드래곤을 때려잡는 것이 목적일 수도 있고, 아가씨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일 수도 있지요. 진행자나 참가자와 그들이 제어하는 인물의 목적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드래곤의 목적은 이 건방진 모험자들을 구워먹는 것일지 몰라도, 드래곤을 제어하는 진행자의 목적은 아마도 모험가 일행이 적당히 고전한 후 승리해 경험치와 돈을 획득하는 것이겠지요. 그 외에도 최종 목적과 중간 목표, 원래의 목표와 파생하는 목표, 거시적 목표와 미시적 목표, 장기적 목표와 단기적 목표 등등 온갖 서로 엇갈리는 목표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이렇게도 목표란 많고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과연 좋은 게임적 목표란 무엇일까요? 우선 도전이 될 만큼 어려운 장애물을 끌어들이는 목표여야겠지요. 너무 쉬우면 달성하는 재미가 없을 테니까요. 다른 한편으로는 주인공의 능력으로 달성할 수는 있는 목표여야 할 것입니다. 너무 벅차서 달성할 수조차 없다면 장애물이 없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한 일입니다. 특히 터무니없이 강한 적에게 주인공이 쩔쩔매고 있는데 영웅적인 조연이 나타나 다 해결한 경험이 있는 참가자라면 ‘주인공 자신’의 노력 없는 목표달성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결국 진행자는 참가자에게 적절한 도전을 제시하고, 참가자는 이를 극복하는 것이 게임적 목표의 핵심입니다.

목표를 설정했다면 그 목표를 향하여 진행자는 장애물을 운용하고 참가자는 이를 극복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해당 게임의 요소를 규칙으로 표현해서 영웅이면 영웅, 오크면 오크를 만들 수 있어야 하고, 또 실제로 상황에 부딪히면 시시각각 변해가는 상황 속에서 판정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과정에 필요한 것은 게임적 의사결정이지요. 힘과 지혜 중 무엇을 올리는 것이 좋은가, 적을 밀어붙이는 것이 좋은가 후퇴하는 것이 좋은가 등등, 목표를 향해 계속해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은 진행자와 참가자 모두 마찬가지로 RPG의 재미이자 어려움입니다.

물론 목표 설정과 의사결정에는 게임적 고려사항 말고 다른 측면도 있습니다. 위에도 논했듯 RPG는 서사구조를 이루고 있는 만큼 이야기에 대한 고려도 필요합니다. 또한, 다른 참여자와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인지, 타인의 재미에 누가 되지 않을지 하는 사회적인 면도 고려해야 하지요. 이들 측면은 서사적, 사회적 능력을 다루면서 논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게임에 한정해서 이야기하자면, 목표를 제대로 설정하려면, 그리고 장애를 극복해 달성하려면 플레이하는 RPG 규칙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어느 정도 수준의 목표와 장애물이 도전이 될지, 그리고 어떤 것이 좋은 의사결정인지 알 수 있을 테니까요.

따라서 게임으로서의 RPG를 하는 실력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은 규칙에 대한 지식입니다. 규칙은 의사결정의 배경 내지 구조를 제공하고, 규칙의 방향성에 따라 같은 의사판단도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투에 이기고 오래 살아남는 인물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고, 규칙을 보면 전투 중 치명상을 입기 쉬운 규칙이라면, 인물의 공격력보다는 방어력을 높이는 것이 상대적으로 좋은 선택일 것입니다. 반면 같은 목적인데 인물이 잘 죽지 않고 쉽게 회복하는 규칙이라면 방어력보다는 공격력을 높이는 것이 좋은 의사판단이겠지요.

규칙에 대한 지식이 이와 같이 중요하다면, 이를 신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은 규칙을 읽는 것이 으뜸이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내용 자체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규칙의 지향성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최선의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어떤 선택이 유리한가,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같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읽으면 그만큼 게임적 실력이 늘겠지요. 또한 그러한 지향성을 파악하다 보면 이 규칙책 자체가 어떤 관점 혹은 세계관을 표현하고 있는가에 대한 감도 생겨서 규칙의 지향성과 조화롭게 어울리는 캠페인을 꾸려갈 수 있습니다. 이렇듯 규칙의 특성과 지향을 파악하는 것은 개별적인 게임적 판단에 대한 미시적인 평가에서부터 어떤 플레이를 할 것인가 하는 거시적인 부분까지 안목을 키워줍니다.

게임적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서 규칙을 익혔다면 다음으로 남는 것은 규칙을 적용하는 능력입니다. 물론 규칙의 내용과 방향성을 파악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실제 상황이 닥쳤을 때에는 이미 읽고 익힌 것이 생각이 나지 않거나 생각한 것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게임은 위에서 말했듯 역동적인 구조이므로 게임 속 행동에 따라 변하는 상황 (HP가 깎인다, 적이 작전을 바꾼다 등)에도 대응해야 합니다. 이렇듯 상황에 좋은 게임적 판단으로 대응해 장애를 극복하는 방법으로는 역시 경험이 으뜸이지요. RPG는 3번은 돌려봐야 감이 잡힌다는 얘기도 있듯, 규칙은 결국 실제로 적용해봐야 내용도 제대로 익히고, 적용할 때 생기는 오류도 바로잡고, 지향성과 응용 방법을 파악해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RPG의 게임적 능력과 그 능력을 향상하는 방법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러한 게임적 재미는 RPG의 중요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유일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재미있는 이야기, 함께 즐기는 재미 역시 고려해야 할 테니까요. RPG의 서사성과 사회성은 게임성과 얽혀들어가며 서로 영향을 미칩니다. 다음은 RPG 속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능력, 즉 서사적 능력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RPG와 최적 경험 시리즈>
1. 최적 경험을 위하여
(1) 최적 경험과 플로우
(2) 플로우의 조건
(3) RPG와 플로우
2. RPG인의 능력

(1) 게임적 능력

(2) 서사적 능력
(3) 사회적 능력
(4) 팀의 능력
3. 도전을 수준에 맞추어가기
(1) 게임적 도전
(2) 서사적 도전
(3) 사회적 도전
4. RPG의 목적성과 피드백
(1) 팀 단위에서의 목적 설정
(2) 팀원 간 목적의 일치와 긴장
(3) 등장인물 간 목적의 일치와 긴장
(4) 피드백으로 목적 합치성 평가하기
5. 집중과 몰입
(1) 집중을 위한 조건
(2) 집중을 위한 마음가짐
(3) 집중을 위한 환경
(4) 결어

RPG와 최적 경험 1. 최적 경험을 위하여

산다는 게 쉽지 않지요. 갑작스레 무거운 얘기일 지도 모르습니다만, 살아간다는 것은 문제의 연속입니다. 우연한 재해나 사고로 일시에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고, 살아가는 의미를 찾지 못한 채 무의미한 나날을 보내기도 하고, 가장 가까운 가족부터 시작해 인간관계는 갈등의 연속이며, 먹고사는 일은 언제나 전쟁이지요. 인간의 욕망이나 꿈 같은 것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무심한 우주에 살아간다는 것은 혼란과 고통에 쉴새없이 마주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러한 혼돈 속에서 인간은 자기 나름의 질서와 의미를 만들어가는 존재입니다. 어떤 역경 속에서도 그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이라는 종(種)의 비대한 뇌와 발달한 전두엽의 강점이지요. 똑같이 사고나 병으로 장애가 생긴 상황에서도 ‘난 틀렸어’ 하고 포기해버릴 수도 있고, ‘지금부터 시작이다!’ 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도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장애가 생긴 사실이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에 부여하는 내적 질서와 의미가 다른 것이지요.

사람이 내적 질서를 만들어가는 장치 중 하나가 최적 경험 (peak experience)입니다. 의식을 흐리게 하는 약물이나 단순한 유희와 같은 일회적인 쾌락을 통해 고통과 불안을 피하는 시도도 흔하지만, 이러한 것은 보통 심리적 에너지를 분산시키고, 사람의 정신에 질서를 잡아주거나 의식을 확장시키지 않습니다. 반면 일체감과 조화감, 무아지경의 환희 등의 특징이 있는 최적 경험은 창의성과 공감, 자긍심, 의지력, 그리고 장기적 행복감을 증진하는 등 내적 질서를 정립하는 효과가 보고된 바 있습니다. 최적 경험 개념을 상당 부분 정립한 심리학자 아브라함 마슬로우 (Abraham Maslow, 1908-1970)는 지속적인 최적 경험은 자아실현의 척도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마슬로우에게 최적 경험이 그야말로 최고봉 (peak)에서 겪는 것, 초월과 하나가 되는 대면상황이라면 피터 드러커 경영대학교 교수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Mihaly Csikszentmihalyi)는 최적 경험을 땅으로 끌어내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적 경험의 중요한 특징인 일체감과 행복감, 그리고 그 결과인 성격과 능력의 긍정적 변화를 종교와 신비주의의 영역에 남겨두지 않고 일상생활로 끌어낸 것이지요. 생업과 놀이의 자연스러운 리듬 속에서 행복과 몰입을 느끼고 자아의 질서를 확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주:제가 심리학도가 아니고 이 주제에 대해 철저한 문헌조사를 한 것이 아니므로 마슬로우와 칙센트미하이가 정립한 개념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적 주시거나 이후에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칙센트미하이는 이러한 일상 속의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최적 경험을 플로우 (Flow)라고 부릅니다. 그는 동명의 책을 통해, 도전이 되는 활동에 완전히 몰입해서 자의식과 불안을 잊고 순수한 즐거움에 빠져드는 플로우는 심리적 에너지를 분산하지 않고
집중해 자아를 키우고 내적 질서를 만든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경험은 예능, 학습, 노동, 감상,
가사, 놀이 등 어떤 활동에서든 느낄 수 있으며, 개인의 자긍심과 행복감을 크게 증진시켜 풍요로운 삶에 기여한다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 책에서는 삶의 다양한 양상에서 플로우를 얻을 수 있는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몰입, 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난다’는 제목으로 한울림사에서 출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활동이 플로우를 일으킬까요? 플로우에는 크게 네 가지의 공통 요소가 보입니다.(주:책에서는 여덟 가지를 들었는데, 겹치는 부분이 있어 네 가지로 줄이고 약간 재배열했습니다.)

첫째, 자신의 능력으로 달성할 가능성이 있는 도전 활동일 때 플로우가 가장 많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즉, 행위자의 능력을 너무 초과하는 도전에는 불안감을 느끼거나 포기하기 쉽고, 반면 너무 쉬워서 도전의식을 느낄 수 없으면 자극이 부족해서 완전히 집중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플로우 경험에 중요한 성장이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활동을 발전적으로 지속하다 보면 잘하게 되고, 발전한 상태에서도 몰입을 지속하려면 도전의 수위를 높여가야 하지요. 그 결과 계속 발전해가고 새로운 도전에 마주하는 자신을 느끼게 되고, 자긍심과 자신감이 향상합니다.

둘째, 플로우를 일으키는 활동에는 보통 명확한 목표가 있습니다. 게임이나 스포츠에는 목표가 자명하지만 (공주를 구출해라, 상대의 골에 공을 넣어라), 예술이나 창작활동에는 그 목표의 범위가 일반적으로 개방적입니다. 후자와 같은 상황에는 목표가 무엇인지, 즉 좋은 결과나 나쁜 결과가 어떤 모습인지 안목과 감을 기르는 것 자체가 플로우 달성에 중요합니다. 목표를 스스로 설정할 수 있으며, 어느 한 가지 정답이 없는 이와 같을 활동은 더욱 복합적인 특징을 띱니다.

셋째, 그 목표의 달성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 즉각적인 피드백이 필요합니다. 행동 하나하나가 좋은지 나쁜지 평가할 기준이 있다면 그만큼 몸짓, 붓질, 단어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이며 빠져들게 됩니다. 후회되는 과거와 불안한 미래, 일상의 자잘한 걱정에서 벗어나 현재에 살아갈 수 있는 것이지요. 그만큼 이 활동과 그 결과를 통제할 가능성이 있다는 자신감이 들고, 세계와 타인의 변덕에 흔들리는 불안한 객체가 아닌, 운명을 자기 손에 쥔 주체로서의 자긍심을 느끼게 됩니다.

넷째, 그 활동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상을 의식하지 않고 몰입해 자의식이 사라지는 것이야말로 플로우의 중요한 특징인 일체감과 행복감을 느끼는 중요한 조건입니다. 이러한 집중은 다른 세 가지 요소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 활동 자체에 대한 호오(好惡)나 주변 환경과도 관련이 깊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집중할 수 있고 그러고 싶은 활동을 선택하는 것, 그리고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플로우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지요.

이렇게 최적 경험, 혹은 플로우가 무엇인지 정립하고 나면 RPG에는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RPG 자체가 워낙 복합적인 활동이라 RPG를 하는 능력이란 무엇인지, RPG를 할 때의 도전이란 어떤 성격인지, 또 어쩌면 가장 애매하게도 목표와 피드백이 어떤 것인지 모두 복잡한 문제입니다. 집중하는 것은 사안 자체는 간단하다고 할 수 있지만 실행은 말처럼 쉽지 않고요.

앞으로 올리는 글에서는 따라서 이러한 문제들을 풀어가 보겠습니다. 우선, RPG가 복합적인 활동인 만큼 RPG인의 능력도 복합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RPG가 ‘규칙’을 매개로 ‘서사’를 ‘함께’ 만들어가는 놀이라고 정의한다면, RPG라는 활동을 하는 능력은 크게 게임적, 창의적, 사회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 능력과 향상 방법을 차례대로 살펴보고, RPG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므로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실질적인 주체인 팀의 능력도 다루어 보겠습니다.

다음은 능력에 맞는 도전의 문제입니다. RPG인의 능력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면 도전 역시 그렇게 나누어볼 수 있겠지요. 따라서 게임적이고 서사적인 측면에서 도전의 수위를 측정하고 높여가는 방법, 그리고 사회적인 면에서도 인간관계의 문제를 해결해가고 더욱 깊은 지적, 창의적, 감정적 교류를 나누는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겠습니다.

목표 설정은 RPG에는 간단한 얘기가 아닙니다. 팀 단위, 개인 단위, 그리고 등장인물의 목표가 각자 다를 수 있으니까요. 뿐만 아니라 게임적 목표, 서사적 목표, 그리고 개개인의 사회적 목표가 다르고 서로 긴장 관계에 있을 수 있습니다. 무엇이 좋은 목표인지 일률적으로 말할 수도 없기에 더욱 복잡한 것이 RPG의 목표 설정이지요.

그러나 역으로 말하면 이렇듯 목표가 다양하고 복합적이며, 종종 긴장관계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RPG는 그만큼 복합적이고 재미있는 놀이이기도 합니다. 팀원간의 목표가 다르고, 또 등장인물 간의 목표가 다르다는 것은 그만큼 창의적인 긴장과 극중 재미의 원천인 갈등을 유발하니까요. 다만, 이 긴장이 지지부진한 분열이 되지 않으려면 팀 단위에서는 어느 정도 기본 목표에 대한 의사합치와 공통 가치가 필요하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따라서 팀 단위에서의 목표 설정과 그 범위를 먼저 생각해보고 팀원과 등장인물의 목표, 그리고 그 목표에 부합하는지 여부로 개별 활동을 평가할 수 있는 피드백을 다루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집중과 몰입의 문제를 생각해 보면서 RPG를 하는 시간에 집중을 하는 조건과 마음가짐, 그리고 환경 등을 다루어 보겠습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즐겁게 RPG를 즐기면서 RPG인으로서 우리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며 글을 맺을 계획입니다.

이렇게 RPG와 최적 경험 시리즈 시작합니다. 제게는 RPG뿐 아니라 놀고 창의하고 어우러져 산다는 것, 그리고 삶에 대해서까지 생각해보는 마음속 여행이 될 것 같군요. 이 여행에 많은 질책과 지적, 격려를 주시며 함께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아래는 글에 대한 대략의 계획입니다. 광열군의 ‘RPG에 좋은 캐릭터는 이래야 한다’ 시리즈를 보고 글에는 역시 계획성이 있어야 한다는 걸 느껴서 말이죠. 물론 이미 이 첫 글을 쓰면서도 달라진 만큼, 쓰면서 목차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RPG와 최적 경험 시리즈>
1. 최적 경험을 위하여
(1) 최적 경험과 플로우
(2) 플로우의 조건
(3) RPG와 플로우
2. RPG인의 능력
(1) 게임적 능력
(2) 서사적 능력
(3) 사회적 능력
(4) 팀의 능력
3. 도전을 수준에 맞추어가기
(1) 게임적 도전
(2) 서사적 도전
(3) 사회적 도전
4. RPG의 목적성과 피드백
(1) 팀 단위에서의 목적 설정
(2) 팀원 간 목적의 일치와 긴장
(3) 등장인물 간 목적의 일치와 긴장
(4) 피드백으로 목적 합치성 평가하기
5. 집중과 몰입
(1) 집중을 위한 조건
(2) 집중을 위한 마음가짐
(3) 집중을 위한 환경
(4) 결어

꺄악! 나도 플레이를 한다!

플레이를 하기로 했습니다! 어언 얼마만의 진행 (마스터링) 아닌 참가 (플레이)인지 막 눈물이 앞을 가리는군요(…) 규칙도, 배경세계도 재미있어 보이는 캠페인이어서 많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처럼 주로 진행만 하다가 참가를 하는 사람은 종종 엄청나게 의욕과 기대에 찹니다. 그리고 실제로 참가는 재미있고 부담도 안 되는 활동이고, 본업(?)인 진행에도 새로운 활력을 주지요. 참가자 관점을 잊고 있다가 실제로 참가를 해보면 참가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하면 재밌는지 훨씬 잘 와닿거든요.
그러나 동시에 그 엄청난 의욕과 기대 때문에 실수를 하기도 쉽습니다. 저도 그런 실수를 한 기억이 많이 있지요. 실제로 진행과 참가는 다른 점이 많아서 익숙해지는 과정에서 진행자의 버릇이 나올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점을 기억하면 오랜만에 하는 참가를 더욱 즐거운 경험으로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1. 혼자 너무 나서지 않는다
진행을 해본 참가자는 적극적으로 플레이하는 일이 많습니다. 능동성이 몸에 배어서겠죠. 이건 일반적으로 당연히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특히 오랜만에 플레이할 때는 플레이한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좋고 의욕이 넘쳐서 심하게 설치는 일이 있습니다. 이럴 때에는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플레이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활약할 기회를 주어야 하므로 혼자 다 도맡아하는 건 곤란하지요.
적극성이 지나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면 자신이 너무 설칠 때 신호를 달라고 다른 참여자들에게 미리 부탁해 놓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어떤 일에서든 지나친 것은 좋지 않으니까요. 물론 지나치지 않는 한도에서 참가자의 적극성을 잘 살리면 모두 함께 즐거울 것입니다. 그것은 진행을 해본 참가자의 큰 장점이기도 합니다.
2. 조연과 주연을 번갈아 한다
위 1번 과는 어쩌면 이율배반적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진행자는 종종 주역보다는 보조역을 맡는 데에 익숙합니다. 진행자로서 맡는 조연 (NPC)은 주인공에게 도전을 제시하고, 적대시하고, 협동하는 역할을 맡지 그 자신이 극적 중심이 되지는 않으니까요. 조연도 당연히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무게중심은 주인공 (PC)에게 쏠려 있습니다.
이렇듯 남을 돋보이게 하려고 움직이는 데에 익숙한 진행자가 참가를 할 때에는 역시 제버릇을 남 못 주고 계속 주인공을 조연처럼 돌리는 일이 있습니다. 내가 맡은 인물을 활약시키는 궁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 인물을 돋보이게 하는 방법을 궁리하는 것이지요.
물론 이렇게 적절히 조연을 맡아주는 참가자는 참 환영받는 존재입니다만, 그 정도가 지나친 나머지 주연을 맡을 줄을 모를 정도가 되면 문제입니다. 번갈아 주목을 받으면서 다른 참가자들에게서 부담도 덜어주고 더욱 입체적인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각 참가자의 역할이니까요. 따라서 참가자는 조연 못지않게 주역 또한 맡을 수 있어야 하고, 주목받는 것이 익숙하지 않더라도 이것이 참가자로서의 역할이라는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려움을 느끼면 필요에 따라 대화하고 조절해가며 익숙해져야겠지요.
3. 진행이 아닌 참가를 한다
진행을 많이 맡다가 참가를 할 때 제 경험상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진행자에게 지나치게 훈수를 두는 것입니다. 플레이한다고 좋아하다가도 막상 플레이에 들어가면 진행에 대한 감이 생생하고 재밌게 하고 싶은 의욕은 넘치다 보니 자꾸 진행상의 사항들이 눈에 들어오는 거죠. 그래서 여기서는 이야기를 이렇게 끌어가는 게 어떻겠느냐, 그 규칙은 그게 아닌 것 같다 하는 식으로 진행자에게 자꾸 참견을 하는 일도 있습니다. (제 얘기 절대 아니라능! 흑흑)
물론 진행자에 대한 충고가 나쁘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좋은 진행자라면 참가자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귀기울일 테니까요. 문제는 참가자가 진행을 아예 빼앗으려는 정도로 심하게 참견할 때입니다. 충고인지 참견인지는 때로 구분이 애매합니다만, 몇 가지 고려사항을 지키면 진행자를 곤란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진행 경험을 살린 좋은 제안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3.1. 흐름을 고려해서 얘기한다
참견이 아닌 충고를 하려면 맥락이 매우 중요합니다. 같은 얘기도 얘기하는 시점에 따라 성격이 많이 달라지게 마련이지요. 세션이나 장면 시작 전, 혹은 진행자도 막막해서 흐름이 늘어지는 시점에 하는 조언은 진행자에게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같은 얘기라도 한창 흐름이 급박한 상황에 얘기하면 진행자는 훨씬 힘이 듭니다. 이제 어느 정도 진행 내용에 대해 결정을 내리고 순간순간 진행해가기도 바쁜데 여기에 더해 참가자가 전혀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면 진행자로서는 정신이 하나도 없겠죠.
따라서 시작 전이나 흐름이 저조한 상태일 때 그야말로 돕는 말로서 조언을 하는 것은 좋지만, 진행자가 이미 내린 결정에 대해 중간에 토를 다는 것은 보통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겠습니다. 불만이 있다면 장면이나 세션이 끝난 후에 얘기하는 것이 좋겠지요.
3.2. 진행자가 말할 차례를 가로채지 않는다
제가 가끔 실수한 부분입니다만, 진행자가 질문에 답하거나 서술을 하려는데 끼어들듯 제안을 하는 것은 무례할 뿐만 아니라 진행자가 자기 기능을 다 못하게 하는 행동입니다. 뭔가 할 얘기가 있을 때는 진행자가 질문에 대한 답을 끝낸 후에 보충한다든지, 서술을 한 후에 명확하지 않은 부분을 질문한다든지 하는 것이 좋지, 진행자가 말을 할 때 끼어드는 것은 여러모로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입니다.
3.3. 명령이나 질책보다는 질문과 논의를 한다
마지막으로, 참견이 아닌 충고를 하려면 말하는 의도 자체가 중요합니다. ‘이렇게이렇게 해라’라거나 ‘왜 그렇게 했느냐’ 하는 식의 발언은 진행자를 당황하게 하기 쉽고, 참가자가 진행자 역할에 침범하는 결과가 되기 쉽습니다. 진행상 규칙 적용이나 서술, 조연 RP 등을 어떻게 할지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참가자가 아닌 진행자이므로 진행자에게 명령을 내리거나 진행상 결정에 대해 질책하는 것은 참가자와 진행자의 역할 구분을 불분명하게 합니다.
이것은 진행자가 참가자가 뭔가 우월한 위치에 있거나 상관이라서 참가자가 분수를 지켜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진행자와 참가자 역할을 구분하는 것은 그 구분에 기능적 의미가 있으니까 하는 것인데 (실제로 진행자와 참가자 구분이 없는 규칙도 꽤 있죠), 그 구분을 자의적으로 부정하면 역할구분에 따른 이점을 버리는 결과가 되므로 구분과 그에 따른 이점을 유지하자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찬가지로 진행자도 참가자 영역에 대해 명령을 내리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만, 글의 초점상 여기에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물론 침범이 아닌 제안과 조언은 매우 긍정적이지요.
진행자의 역할을 침범하지 않고 역할 수행을 도와주는 제안을 하려면 먼저 질문하고 다음 논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먼저 질문을 통해서 진행자의 의도나 어려움을 파악한 뒤 진행자와 참가자 자신의 의도를 실현할 수 있도록, 혹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함께 얘기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기 주인공의 배경이 전혀 나오지 않아서 플레이가 심심하다면 한 가지 방법은 ‘내가 열심히 쓴 배경은 왜이렇게 안 나와요? 다음번에는 좀 등장시켜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말은 진행자가 주인공 배경을 쉽게 등장시킬 수 있는데 등장시키지 않고 있다거나, 그러기를 잊었다거나, 적당한 때에 등장시킬 기회를 찾고 있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서 하는 말입니다. 사실 진행자가 어떤 의도가 있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는 물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지요.
그래서 진행자의 사정이나 관점을 알아보려면 먼저 질문을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요즘 들어 제 주인공 뒷배경은 전혀 등장 안한 것 같은데, 혹시 등장시킬 계획이 있으세요? 저 그거 열심히 썼는데…’ 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성실한 진행자라면 현재 진행 부분하고 방향성이 좀 달라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든지, 언제쯤 등장시킬 계획이라든지 하는 대답을 하겠지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문제를 해결하거나 소재를 더 재밌게 활용할 수 있을까 같이 얘기해보면 됩니다. 진행자에게 명령하거나 대립하지 않고, 진행자의 사정을 파악하고 같이 협력해서 좋은 플레이를 만들어가면 인간관계도 플레이도 한결 부드럽지요.
이상과 같이 오랫동안 진행만 했다가 참가를 할 때 고려할 만한 사항을 몇 가지 적어보았습니다. 적극성이 도를 넘지 않도록 하고, 주연도 적당히 맡으면서 진행자에게 지나치게 참견하지 않을 수 있다면 오랜만의 설레는 참가는 후회가 아닌 기쁨으로 남을 것입니다.

PDF를 A5 크기로 제본하는 방법

일반적으로 PDF 책을 사서 제본하면 A4 크기로 합니다. 하지만 A4가 경우에 따라서는 살짝 크기도 하지요. 밀도가 높은 책이라면 좀 큰 게 적당할 수 있지만, 작은 크기에도 잘 보일만한 책인데도 A4에 찍기는 휴대성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간편하게 A5로 하고 싶어도 A5를 찍는 프린터는 그렇게 많지 않지요.

이럴 때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어도비 리더 (Adobe Reader) 8판 이후의 북클릿 인쇄입니다. A4 용지에다 인쇄하되 북클릿 인쇄를 선택해서 페이지마다 책이 2페이지씩 나오게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한 다음에 제본소에서 반으로 잘라서 제본해달라고 하면 아담한 A5 크기의 책이 나옵니다.
단계별로 설명하면…
1. 제본할 PDF를 리더로 엽니다. A5로 찍어도 될 만한 파일이어야겠지요.
에소테러리스트 스크린샷

이런 건 A5로는 좀 비추 (큰 페이지, 복잡한 배치)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 스크린샷

이런 건 A5로도 적당 (작은 페이지, 단순한 배치)

2. 파일 -> 프린트를 선택한 후 페이지 다루기에서 페이지 비율북클릿 인쇄를 선택합니다.
3. 북클릿 설정에서 프린터 기능에 따라 양면을 다하거나 앞면 혹은 뒷면만 인쇄합니다.
– 자동 양면 인쇄가 되는 프린터라면 그림처럼 양면을 선택합니다.
– 자동 양면 인쇄가 되지 않는다면 앞면만 한 후에 인쇄한 용지를 꺼내 거꾸로 집어넣은 후 역순으로 뒷면만 인쇄합니다. 종이가 겹쳐나오지 않게 프린터 옆에서 굿을 합니다(…)
북클릿 설정 스크린샷
3.5. 가로 인쇄를 설정합니다.
자동 양면인쇄로 할 때는 가로 인쇄로 하지 않으면 페이지 앞뒷면이 거꾸로 나옵니다. 파일 -> 프린트 -> 속성으로 들어가 용지를 가로로 설정합니다.
속성 버튼 스크린샷용지 설정 스크린샷
4. 페이지 범위를 설정해서 시험해봅니다.
– 7-10쪽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대표성이 있는 페이지를 4쪽씩 범위 설정해서 (4쪽이 A4 한 장에 나옴) A5로도 볼만한지, 인쇄 방향은 맞는지 봅니다. 특히 자동 양면 인쇄가 아닐 때는 7-14 식으로 8쪽 (A4 두 장) 혹은 그 이상으로 시험해서, 앞뒷면을 따로 인쇄할 때 용지 순서와 방향이 맞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인쇄범위 설정 스크린샷
인쇄한 종이를 겹쳐 접었을 때 책처럼 되면 성공적입니다. 어도비 사이트에서 훔쳐온 다음 그림을 보면 알 수 있지요.
북클릿 프린팅
실제로 제본할 때는 접는 것이 아니라 반으로 절단할 것이므로 두께를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20페이지 내외 정도로 아주 얇다면 그냥 접어서 큰 호치키스 (혹은 회전형 호치키스)로 찍어서 사용할 수도 있겠지요. 어차피 그렇게 얇은 거 제본하려고 하면 돈 아깝기도 하고요.
5. 인쇄!
실험이 제대로 나왔으면 그 설정 그대로 페이지 범위 설정만 원하는 범위로 바꾸어서 (전체, 앞뒤표지 제외 등) 인쇄합니다. 북클릿 인쇄는 그 성격상 일부 범위만 찍은 것은 제대로 나왔다고 해도 사용할 수 없으므로 실험한 종이는 잘 버리면 되겠지요. 페이지가 맞는지 확인합니다.
6. 제본!
위에 말했듯 얇은 책자 수준이면 반으로 접어 호치키스로 찍어서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접지 않고 그대로 복사집 같은 데 가져가서 이걸 반으로 자른 후 양쪽을 포개 제본해달라고 손짓발짓으로(?) 설명하세요. 저는 2000원에 했습니다만, 더 받는 곳도 있는 모양이더군요. 몇 분 기다려서 받으면 왠만한 핸드백에도 잘 들어가는 아담한 A5 책이 나옵니다. 아래는 70페이지를 A5로 제본한 ORE 규칙책 A Dirty World를 A4 용지와 크기 비교한 사진입니다.
A5 제본한 사진

사진 협찬: 금강석탑에 숨어지내는 Wishsong군

무의식적 판정에 대한 생각

사람이 하는 행동 중에는 의도적으로 하는 것도 많지만, 무의식적으로나 습관적으로 하는 것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원하지 않을 때도 말이죠. 때로는 행동이 의도와 전혀 다른 결과를 내기도 합니다. 친구나 선후배로만 생각했던 상대에게 고백을 받는다든지, 인상이 무서워서 상대가 쉽게 겁을 먹는다든지, 좀 심각한 예로는 아무 생각 없이 물건을 훔치는 도벽이 있다든지 하는 것이 그 예이겠지요.

위와 같은 상황을 표현하는 한 방법으로는 무의식 혹은 강제 판정이 있습니다. 위의 예를 순서대로 판정 규칙으로 설명하면 섹스어필 성공, 위협 판정 성공, 절도 성공 등이겠지요. 특히 그 인물의 특징을 표현하는 장단점이나 면모, 예를 들어 아름다운 외모, 도화살, 무서운 인상, 습관적 도벽 등과 연계해서 이들 장단점이나 면모를 발동할 때 판정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겁스에도 해당 규칙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제가 아는 세기의 혼 (Spirit of the Century)을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우선 인물의 면모에 나타난 특징, 배경, 장단점 등을 표현할 만한 상황에 직면합니다. ‘내가 관심 없는 상대에게만 인기가 있다’ 면모가 있는 인물이 동아리방에 선배와 같이 있다든지, ‘험상궂은 인상’ 면모가 있는 인물이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건다거가, ‘자신도 모르게 물건을 슬쩍한다’는 도벽 면모가 있는 인물이 백화점 진열대를 지난다든가 하는 것이 그 예이겠지요.
이런 상황이 되면 참가자나 진행자가 면모 강제 발동을 제안합니다. 강제 발동이란 면모를 인물에게 곤란하거나 불리한 (그리고 보는 사람에게는 재미있는!) 방향으로 발동하는 것으로서, 면모를 강제발동하면 해당 참가자는 극점수를 1점 받습니다. 강제발동을 피하려면 극점수를 진행자에게 1점 내지요. 여기서는 선배가 반해버린다거나, 말을 건 상대가 겁을 먹고 피한다거나, 진열대에서 물건을 슬쩍하는 방향으로 강제 발동을 제안하고 극점수를 참가자가 지급받으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 강제발동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강제 판정을 합니다. 판정의 결과가 생각과 다른다든지 (동아리 활동에 대해 선배를 설득하려고 친화력 판정을 했는데 엉뚱하게 선배를 반하게 하는 친화력 판정으로 둔갑), 사용하려던 것과 다른 기능을 자신도 모르게 사용한다든지 (친화력 판정을 하려고 했는데 위협을 굴렸다!), 전혀 판정을 할 생각이 아니었는데 강제발동의 결과로 하게 된다든지 (진열대를 무심히 지나다가 손놀림 기능으로 목걸이를 슬쩍) 하는 식으로 의도와는 다른 효과가 나겠지요.
그 외에 생각할 수 있는 예로는 습관적 거짓말 (기만 판정), 상습적 폭력 (주먹질 판정), 관심을 끊으려고 해도 참을 수 없는 호기심 (지각력 혹은 수사), 상습적 도박 (도박 판정), 자신도 모르게 남에게 명령하는 습관 (지도력) 등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판정까지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이 버튼을 누르면 어떻게 될까?’) 판정 없이 강제발동만으로 충분하겠지요.
이와 같이 판정 규칙은 의도적으로 하려는 행동뿐만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 혹은 내는 결과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인물의 장단점, 배경과 같은 특징과 연계해서 사용하면 판정과 그 결과가 더욱 풍부하고 재밌어지지 않을까 싶군요.

진행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 (5) – 무의식과 감

진행 (마스터링)을 하다 보면 아귀를 맞추느라 걱정을 하는 일이 많습니다. 모든 사건이 맞아떨어지는지, 인물의 동기에 비추면 이런 행동이 앞뒤가 맞을지 등등. 그래서 진행에는 종종 시나리오를 만들거나 앞으로의 진행에 대해 미리 합의하는 등의 준비가 들어가지요.

제가 한 가지 느낀 점이라면, 때로는 미리 앞뒤 맥락을 다 맞추기보다는 감으로 일단 질러놓고 나중에 맞추는 것이 효과가 좋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냥 이 인물은 왠지 주인공 일행에게 숨기는 게 많은 게 어울리는 것 같다고 생각하고 그런 RP를 한 후 나중에 적 스파이였다고 아귀를 맞춘다든지, 주인공 일행에 대한 습격 장면을 많이 진행하고 나서 주인공 일행의 짐에 누군가 보물을 숨겼었다고 이유를 만들어낸다든지 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위와 같은 ‘사실 그 이유는…’ 하는 부분은 미리 준비해놓는 것이 일반적이고, 실제로 저도 준비해놓는 일이 많습니다. 저는 인물 중심 진행을 위해 인물을 미리 준비해놓을 때 조연 (NPC)의 동기, 이미 해놓은 행동 등을 준비해놓는 방식으로 하지요.
그러나 시간이 없어서 저런 부분을 다 준비하지 못하는 일도 있고, 준비하지 못한 인물이나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부각되는 일도 있습니다. 미리 준비해놓은 사건이 막상 부딪쳐 보니 재미없거나 앞뒤가 안 맞는 일도 있지요.
그렇게 어떤 이유로든 준비가 없는, 혹은 준비한 게 별 소용이 없는 상황에서 감에 의존하는 것은 상당히 도움이 됩니다. 인간의 무의식은 의식보다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하고 더 멀리 내다볼 수 있으니까요. 이 인물은 주인공을 싫어할 것 같다, 혹은 지금은 강에 시체가 떠내려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감에는 보통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나중에 생각해도 되고요.
미리 질러놓은 사건이나 RP를 나중에 끼워맞추는 게 어렵지 않은 이유는 또 있습니다. 인간의 두뇌는 규칙과 이유를 만들어내기를 무척 좋아합니다. 그래서 별 상관 없어보이는 사건마저도 서로 연결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죠. 현실에서는 그게 진짜 인과관계이느냐에 따라 과학부터 미신까지 결과는 가지각색입니다만, 허구인 RPG에서는 편리합니다. 조연이 주인공을 싫어한다면 왜 그런지, 강에 시체가 떠내려왔다면 왜 그런지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일단 감을 믿고 사건을 질러두면 진행자 자신의 두뇌가 그 이유를 찾아내려고 분주히 움직일 뿐만 아니라 참가자도 이유를 발견하려고 애씁니다. 그렇게 생각해본 후 (그리고 참가자에게 귀기울인 후) 그 중 가장 재미있고 앞뒤가 맞는 것을 고르면 됩니다. 조연이 주인공을 싫어하는 것은 주인공이 그의 형을 죽여서이고, 강물에 시체가 떠내려온 건 상류에 있는 도시에서 살인이 일어나고 있어서이고… 등등.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논리와 사전 준비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감이야말로 진행자 최고의 자산이라는 점입니다. 참가자에게도 그 점은 마찬가지이지만, 참가자가 ‘내 주인공은 이렇게 행동할 것 같아’ 하는 감으로 움직이기는 비교적 쉬운 반면 진행자가 그렇게 자기 감을 믿기는 상대적으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진행자 역시 자신의 감을 믿었을 때 꽤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질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저의 지론이지요.

경청하고 대화하는 RPG 3: 우리가 모르는 것들

지난번 글에서는 문제를 해결하는 대화의 초기 목적은 정보 수집이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모르는 것들이 다음과 같이 많이 때문이지요.
1. 타인의 관점과 정보를 모른다
우리가 ‘아는’ 것은 현실 그 자체가 아닙니다. 현실에 대한 개별적인 해석이지요. 누구든지 감각 정보를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비추어 걸러내고 해석해서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상식 수준의 얘기입니다. 그러한 걸러내기와 해석 과정을 거치지 않고 현실을, 즉 감각정보를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인다면 감각정보의 홍수에 묻혀서 살 뿐 사람으로서, 아니 동물로서도 기능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걸러내기와 해석 과정 때문에 입장에 따라 같은 현실에 대한 결론도 크게 다르다는 것도 역시 상식적인 얘기입니다. 같은 경기를 보면서 A팀 팬에게는 심판 오심인 것이 B팀 팬이 보기에는 심판의 명판정이고 B팀의 나이스 플레이입니다. A팀 팬도, B팀 팬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둘다 옳을 수 있습니다. A팀 팬과 B팀 팬은 같은 상황에서도 자신의 관점에 맞는 것을 선택해서 확대하고, 맞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지극히 당연한 걸러내기와 해석 과정을 거쳤을 테니까요. 그들이 각각 선택한 정보 내에서는 아마 그들의 해석은 각자 옳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A팀과 B팀 팬이 서로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른다면 당연히 싸움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A팀 팬이 걸러내서 해석한 정보 (선을 넘지도 않았었는데! 그 심판은 경기 내내 A팀에 불리하게 판정했어!) 내에서 B팀 팬의 결론을 도출한다면 어불성설일 테고, 마찬가지로 B팀 팬이 걸러내서 해석한 정보 (휘두른 순간 공이 확 휘어져서 헛스윙했지! 그날 내내 A팀 경기는 엉망이었어!) 내에서 A팀 팬의 결론을 도출하는 것도 말이 안 되니까요.
스포츠 팬끼리 적당히 싸우는 건 스포츠의 재미 중 하나기도 합니다만, 인간관계를 해칠 수도 있는 문제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이럴 때에는 상대가 왜 나하고는 의견이 다른지, 즉 같은 상황에서 어떤 정보를 받아들이고 어떻게 해석했기에 그런 결론이 나오는지 들어보기 전에는 의견 차이의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상대는 다른 정보를 가지고 다른 해석을 해서 당연히 결론이 다른 것인데, 그 생각을 (원론적으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하지 못한 채 말이죠.
뿐만 아니라 입장에 따라 접근할 수 있는 정보 자체도 다릅니다. 플레이에 매번 늦는 참가자는 저녁 늦게까지 학원을 갔다가 허겁지겁 저녁을 먹고, 동생과 싸워서 컴퓨터를 쟁취해낸 후에야 플레이를 위해 접속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이러한 정보는 공유하기 전에는 그 참가자 외에는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상대방이 같은 현실을 어떻게 걸러내고 해석했는지, 그리고 자신이 모르는 어떤 정보를 아는지는 제대로 대화를 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면 필요한 정보입니다. 이 점을 모르면 자신이 취사선택한 정보를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해석하고, 자신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만 고려하는 반쪽 대화가 될 테니까요. 결국 공감대 없이 서로 목소리만 높일 뿐, 진정 주고받는 소통은 없기 쉽습니다. 그래서 상대의 관점과 정보를 알아내고 자신의 관점과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대화의 중요한 시작점입니다.
2. 타인의 의도를 모른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의도를 타인이 한 행동의 결과에 따라 추정합니다. 예를 들어 참가자가 플레이에 늦어서 플레이에 곤란이 생겼다면 참가자는 플레이를 곤란하게 하려고 했다, 혹은 곤란해져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찬가지로 진행자가 일방통행식 진행을 해서 재미없어졌다면 진행자는 내 재미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는 의도가 나쁜 사람은 곧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저런 상종 못할 게으르고 무배려한 인간, 저런 천하의 독재자 하는 식으로 우리의 삶에는 악역이 꽤 많지요. 타인을 나쁜 사람,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만큼 대화로 문제를 풀어내기는 어려워지고, 감정이 쌓이거나 큰 싸움이 벌어지기도 쉬워집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독심술사가 아닌 이상 타인의 의도를 모릅니다. 행동의 결과에 따라 추정할 뿐이지요. 자꾸 늦는 참가자는 자기 때문에 시간을 바꾸자고 하기가 미안해서 시간을 맞추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데 잘 안 되는 것일 수도 있고, 일방통행식 진행자는 참가자의 적극성이 부족해서 자꾸 진행이 표류하니까 어쩔 수 없이 일방적으로 이끄는 것일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행동의 의도와 결과는 서로 별개의 개념으로 취급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행동의 결과가 의도와 어긋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결과로부터 추정한 의도는 그저 추정일 뿐, 남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추정한 의도로 타인을 마음 속에서 악역으로 만들고 왜 당신은 무배려하고 무책임하느냐, 왜 마음대로 하려고만 하느냐 하고 윽박지르는 것도 비생산적이지요.
따라서 타인의 의도를 지레짐작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추정은 그저 추리, 혹은 가설로 남겨놓고 타인의 진짜 의도를 알아내는 편이 더 정확하고, 감정적 소모가 적습니다. A님이 의도적으로 플레이를 곤란하게 할 것 같지는 않지만 이러이러한 점이 힘든데, 이유를 알 수 있겠는지, 혹은 B님의 진행 속에서 참가자는 할일이 없어 보이는데 어떤 방향을 생각하고 계신지 하는 식의 대화는 한결 얘기할 거리가 있을 것입니다. 결국 이 문제에서도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요.
3. 타인에 대한 내 행동의 결과를 모른다
타인의 행동의 결과에서 타인의 의도를 추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은 자기 행동의 결과를 의도에 맞게 추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는 플레이를 곤란하게 할 의도가 없으니까 실제로 곤란하지 않을 것이며, 나는 독재자가 될 의도가 없으니까 실제로 참가자들은 내 진행을 독재로 받아들일 리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요.
더욱 재미있는 것은, 상대가 자신의 의도와 다른 반응을 보이면 그것은 상대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는 점입니다. 내가 플레이를 곤란하게 하려는 것도 아닌데 왜 화를 내는지, 내가 독재적 진행을 하려는 것도 아닌데 왜 참가자가 할일이 없다고 그러는지 말이죠. 결국 자신의 좋은 의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상대를 원망하며 역시 머릿속의 악역을 늘리게 됩니다.
여기에서도 의도와 행동은 별개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의도가 좋다고 해서 행동의 결과가 반드시 좋지는 않으며,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를 정당화하지는 못합니다. 또한, 의도란 복잡해서 자신의 마음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고 자신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좋은 의도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비생산적인 옳고 그름에 대한 다툼에 빠지기 쉽지요.
결국 중요한 것은 의도보다는 행동의 결과이며, 대화의 목적은 의도가 좋았네 나빴네 다투는 것보다는 행동의 실제적 결과에서 생긴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참가자가 남을 배려하려고 시간을 바꾸자는 얘기를 꺼내지 않고 시간을 맞추려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자꾸 늦는다면 플레이가 곤란해지며, 진행자가 진행이 표류하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참가자가 낄 데가 없다면 재미가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타인의 의도를 혼자 억측하지 않고, 또 자신의 의도에서 결과를 유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의도는 논의할 만하지만, 실질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의도보다는 결과입니다. 감정이 쌓이지 않게 생산적으로 논의한다는 점에서 의도에 대한 토론은 분명 가치가 있지만 (감정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다루겠습니다), 결국 의도와 결과는 별개이니까요.
4. 자신이 한 원인 제공을 모른다
위 1번에서 다루었듯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마다 관점과 결론이 크게 다릅니다. 그리고 사람은 모든 것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기에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타인의 원인 제공을 크게 보고 자신의 원인 제공은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당신이 잘못했다, 내가 잘했다 하는 시비가 흔히 붙는데, 이것이 무익하다는 것은 이미 이전 글에서 다루었습니다.
문제를 정말 해결하려고 한다면 잘잘못을 따지는 것보다 훨씬 유익한 논의는 원인 제공, 혹은 기여도입니다. 이것은 옳고 그름과는 다른 개념으로, 상황에 대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정죄 없이 따져보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매번 늦는 참가자가 현실적인 시간으로 플레이 약속을 잡지 않은 점, 진행자가 참가자 이야기를 듣지 않고 진행하는 점은 그들이 상황에 한 기여이지만, 다른 참여자들도 마찬가지로 상황에 기여했을 수 있습니다. 플레이 시간을 다시 잡자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거나, 진행자에게 충분히 의견을 표현하지 않았다거나 하는 것이 그 예이지요.
원인 제공에 대해 대화하는 것은 둘다 잘못했다는 식의 얘기와는 다릅니다. 잘잘못을 따지는 것과는 별개의 얘기이니까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문제에 기여는 했을 수 있으며, 그것은 잘잘못을 따지는 문제와는 다릅니다. 또한 예를 들어 약속 시간에 늦는 것이 잘못이 없는 행동이라는 것도 아닙니다. 대화의 중점을 잘잘못에 둘 것인가, 문제 해결에 둘 것인가 중에서 후자를 선택한다면 정죄보다는 원인 제공 논의가 낫다는 것이지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목표라면 잘잘못과 별개로 기여도를 따지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거의 어떤 상황에서든 양측 모두, 비록 한쪽이 99%이고 다른쪽이 1%라도 기여도가 있게 마련이기에, 어느 한쪽의 일방적 잘못이라는 결론이 나면 다른 쪽의 원인 제공은 묻히기 쉽습니다. 그래서 진행자가 자신의 일방통행식 진행은 잘못이었다고 인정하고 행동을 고친다 하더라도, 참여를 잘 하지 않는 참가자의 원인 제공에 대응하지 않으면 같은 문제를 얼마든지 반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의 원인 제공, 혹은 기여도를 파악해야 하는데, 타인의 원인 제공은 비교적 알기 쉽지만 자신의 원인 제공은 상대적으로 인지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타인이 문제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모두 알아야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위에서 논한 바와 같죠. 그래서 자신이 문제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알아내고 타인이 어떻게 기여했는지 (정죄 없이) 알리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대화의 초석입니다.
5. 호기심의 관점으로 접근하라
오랜 옛날에 어느 위대한 성현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이미 안다고 생각하면 탐구할 의욕도 생기지 않을 테니까요.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크고작은 문제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안다고 생각하면 대화를 통해서 알아낼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추정과 억측을 기반으로 하여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위 1~4번에서 다루었듯 타인의 개입이 있는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는 정보의 반쪽밖에 모릅니다. 그 정보를 수집하지 않는 한 혼자 추정할 뿐이지요. 모르는 상태에서 내리는 진단과 해결은 불완전하고 상대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 쉽습니다. 결국 혼자 납득할 뿐 상대의 협력을 끌어내기는 어렵지요. 그리고 그 추정이 실제와 맞아떨어졌다 하더라도 먼저 대화로 풀어내고 서로 이해하는 과정이 없이는 옳은 말도 상대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확실성의 관점으로 대화에 접근하면 문제는 해결하기 어려우며, 호기심의 관점으로 접근하면서 모르는 정보를 알아내려고 대화를 하면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 정확한 정보를 알아내고 상대의 공감과 협력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보 수집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첩보전을 벌이거나 독심술을 시도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역시 상대의 관점과 의도, 자기 행동의 결과와 자신의 기여도를 알아내는 방법은 대화이며, 그 중에서도 발언보다는 경청이겠지요. 그래서 다음 글에서는 경청의 문제를 다루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