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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 월드 : 강한 액션 지침

<레이디 블랙버드> <블레이즈 인 더 다크> 등을 제작한 게임 디자이너 존 하퍼의 블로그인 The Mighty Atom에서 좋은 글이 있어 번역해 봅니다.

원문 : http://mightyatom.blogspot.com/2011/05/apocalypse-world-guide-to-hard-moves.html?m=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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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 월드 : 강한 액션 지침

저는 몇몇 MC들이 강한 액션을 어떻게 다룰지 몰라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봐왔습니다. 그래서 아포칼립스 월드에서 강한 액션을 어떻게 할지 유용한 지침을 소개하겠습니다.

 일반적인 MC 액션을 할 때, 다음 세 가지를 지키세요.

1. 이야기 속에서 필연적으로 나올 액션이어야 합니다.

2. 플레이어에게 반응할 기회를 주세요.

3. 앞으로 있을 강한 액션을 준비해야 합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묘사하되 실제 효과를 일으키기 전에 멈추세요. 그다음 질문하세요. “어떻게 할래요?”

– 괴한이 당신 머리를 노리고 전기톱을 휘두릅니다. 어떻게 할래요?

– 당신은 차고에 몰래 들어갔지만, 거기에는 바로 플로버가 있습니다. 당신을 곧 눈치챌 것 같네요. 어떻게 할래요?

– 여자가 당신을 보면서 차갑게 말합니다. “날 내버려 두세요.” 어떻게 할래요?

강한 MC 액션을 할 때는 다음 두 가지를 지키세요.

1. 이야기 속에서 필연적으로 나올 액션이어야 합니다.

2. 돌이킬 수 없는 일이어야 합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실제 효과까지 포함해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묘사하세요. 그다음 질문하세요. “어떻게 할래요?”

– 전기톱이 당신 얼굴을 찢습니다. 피가 사방으로 튀네요. 3-피해를 받고 피해 액션을 하세요!

– 플로버가 당신 얼굴을 보고 맹렬히 외치네요. “침입자다!”

– “다시는 여기 오지 마세요.” 여자는 당신 눈 앞에서 문을 쾅 닫았습니다. 자물쇠를 거는 소리가 들리네요.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겠나요? 일반 액션은 강한 액션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강한 액션은 일반 액션으로 준비한 위험을 실행합니다.

저는 MC들이 필요한 때에 강한 액션을 어떻게 할지 몰라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봐왔습니다. 마찬가지로 주사위가 6-이 나왔을 때도 이런 식으로 쳐다보더군요. “젠장. 이제 뭔가 아이디어를 짜내야 하잖아! 위험하고 멋진 걸로… 음. 닌자 몇 명이…. 천장에서… 독이 묻은 단검을 들고 내려옵니다. 크아아!”

그러지 마세요. 그 대신 강한 액션을 할 때가 되면, 앞서 준비 과정으로 만든 액션들을 돌아보세요. 무엇을 걸고 위협했나요? PC가 행동하기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요? 준비한 것을 풀어놓으세요. 장면 속에 효과를 일으키세요. PC들에게 결과를 맛보여 주세요.

결과에 대해 말하자면, 강한 액션이 반드시 심각한 결과를 일으키지는 않습니다. 위험이 얼마나 큰지는 아예 다른 문제입니다. 순전히 지금까지 쌓은 이야기에 따라 심각성을 정하세요. 강한 액션은 단지 결과가 크든 작든 실제로 일어난다는 의미입니다.

강한 액션은 PC들에게 못되게 굴라는 것도 아니고, 실패한 판정에 벌을 주거나 새로운 문제를 일으키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이야기가 완전히 실현될 뿐입니다. 준비한 것을 실행해서 터뜨린 다음, 결과를 서술하세요.

고된 탐험(Grind) 규칙을 페이트에 적용하기

고된 탐험(Grind) 규칙은 토르 올라프스루드가 만든 ‘토치베어러(Torchbearer)’에서 도입된 개념으로, 모험가들이 던전을 탐사하면서 점점 지치는 모습을 표현한 규칙입니다.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모험가들은 던전에서 네 번의 행동(판정과 전투)을 할 때마다 지칩니다. 예를 들어 함정을 조사하고(1턴), 찾아낸 함정을 제거하고(2턴), 보물상자에서 찾아낸 고대 문헌을 조사하고(3턴), 문헌을 조사하던 중 갑자기 나타난 괴물들과 싸우면(4턴) 전투가 끝난 후 모험가들은 상태가 한 단계 악화됩니다.

토치베어러에서는 모험가의 상태를 총 여섯 가지로 표현하며, 고된 탐험에 따라 모험가들은 배고픔과 목마름 → 탈진 → 분노 → 병듬 → 부상 → 공포 순서로 상태가 악화됩니다. 이 여섯 가지 상태가 모두 채워진 다음 다시 상태가 악화되면 모험가는 죽습니다. 만약 중간에 전투를 치르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해 중간 상태가 이미 채워져 있다면 다음 상태가 채워집니다.

상태마다 회복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배고픔/목마름은 식량과 물을 먹어야 회복할 수 있고, 나머지 다섯 가지 상태는 캠프를 치거나 마을로 돌아가 판정을 해서 치료해야 합니다.

캠프 중 판정을 하기 위해서는 체크(Check)라는 점수가 필요한데, 이 체크는 모험 중 자신의 특성을 이용해 일부러 판정에 페널티를 받거나 불리한 상황에 빠져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위 내용을 페이트로 적용해 볼까요? 물론 좀 더 정교하게 다듬어야 하지만 일단은 다음과 같이 만들 수 있겠네요.

 

1. 상태 규칙

고된 탐험 규칙에서는 페이트 시스템 툴킷의 상태(p.20) 규칙을 적용합니다. 단, 장기적 상태는 회복 액션 한 번으로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일시적 상태 

없음. 고된 탐험 규칙을 적용할 때 모든 상태는 지속적 상태 또는 장기적 상태입니다. 모험자는 스트레스를 총 16점 흡수할 수 있습니다.

지속적 상태 (각 상태마다 2점씩 스트레스 흡수 가능)

배고픔과 목마름 : 배고프고 목마른 상태입니다. 식량과 물을 먹으면 회복합니다. 캠프 중이 아니더라도 몇 분 정도 짬을 낼 수 있다면 회복 가능합니다.

분노 : 심리적으로 격앙된 상태입니다. 캠프를 친 후 의지력 기능(난이도 +2)으로 성공해야 가라앉힐 수 있습니다. 본인 대신 동료가 사교 기능이나(노래를 부르는 등) 눈치 기능 중 심리학자 특기로(난이도 +2) 달래줄 수도 있습니다.

탈진 : 기진맥진한 상태입니다. 캠프를 친 후 체력 기능(난이도 +3)에 성공해야 회복할 수 있습니다. 만약 무거운 갑옷을 입고 있다면 난이도가 1 올라갑니다.

공포 : 겁에 질린 상태입니다. 캠프를 친 후 의지력 기능(난이도 +3)에 성공해야 회복할 수 있습니다. 본인 대신 동료가 사교 기능이나(노래를 부르는 등) 눈치 기능 중 심리학자 특기로(난이도 +3) 달래줄 수도 있습니다.

장기적 상태 (각 상태마다 4점씩 스트레스 흡수 가능)

병듬 : 병이 든 상태입니다. 캠프를 친 후 의지력 기능(난이도 +3)에 성공해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의학을 배운 동료가 학식 기능(난이도 +3)으로 치료해 줄 수도 있습니다.

부상 : 부상을 입은 상태입니다. 캠프를 친 후 체력 기능(난이도 +4)에 성공해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의학을 배운 동료가 학식 기능(난이도 +4)으로 치료해 줄 수도 있습니다.

 

2. 모험 스트레스 칸

모험 스트레스 칸은 시간 경과와 모험가들의 피로도를 나타낸 수치로, 총 네 칸입니다. 던전 및 야외 탐사를 시작한 모험가들이 기능 판정을 하거나 전투를 겪을 때마다 칸을 하나씩 채웁니다. 단, 모든 모험가들이 같은 목적으로 동시에 기능 판정을 할 때는(예를 들어 발동된 덫을 피할 때, 또는 함정을 뛰어넘어 반대편으로 갈 때) 판정 한 번으로 간주합니다. 네 칸이 모두 채워지면 모험가들의 상태가 악화되고, 모험 스트레스 칸을 비웁니다. 상태는 다음 순서대로 악화됩니다.

배고픔과 목마름 → 탈진 → 분노 → 병듬 → 부상 → 공포

만약 전투나 불의의 사고를 겪어 해당 상태가 이미 채워졌다면, 그 다음 상태를 채웁니다. 모든 상태가 채워진 다음에도 회복하지 않은 채 판정을 네 번 한다면 그 후 모험가는 죽습니다.

모험가들이 캠프를 칠 때에도 모험 스트레스 칸을 비우고 처음부터 다시 채웁니다.

 

3. 광원 관리

야외나 지하에 들어갈 때, 모험가들은 자동으로 “어둠”이라는 상황 면모를 얻습니다(적외선 시각이나 암흑 시각을 가진 모험가는 예외입니다). 이 면모는 횃불이나 랜턴을 켜야 없앨 수 있습니다. 횃불과 랜턴은 모험 스트레스 칸이 비워질 때마다 새로운 횃불이나 기름을 소모해서 켜야 합니다.

 

4. 짐 관리

철판 갑옷 같이 무거운 갑옷을 입은 모험가는 탈진 상태를 회복할 때 난이도가 +1 추가됩니다.

또한 각 모험자는 체력에 따라 들 수 있는 짐의 양이 달라집니다. 모든 캐릭터는 기본적으로 등짐 하나(30kg) 정도를 들 수 있다고 간주하세요. 체력 기능이 있다면 기능 1마다 등짐 하나씩 늘어납니다. 좀 더 빡빡하게 자원 관리를 하고 싶은 마스터는 등짐 하나마다 채울 수 있는 식량/물의 수와 횃불의 수를 정해도 좋습니다(예: 등짐 하나마다 식량/물 5인분, 횃불 5개를 채울 수 있다).

 

5. 캠프 치기

캠프를 치려면 다음 조건이 필요합니다.

– 최소 운명점 1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 눈 앞에 닥친 위험이 없어야 합니다.

– 쉴 장소가 있어야 합니다 .

마스터는 주변 상황에 따라 이곳이 캠프를 치기 안전한 장소가 아니라고 선언할 수 있습니다. 이때 모험가들은 주의력 기능으로 안전한 장소를 찾을 수 있습니다(이 판정 역시 모험 스트레스 칸을 채웁니다). 마스터는 주변 상황에 따라 난이도를 조정하세요(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은 +1~2 정도, 적들이 득시글대는 곳은 +4 정도로). 실패할 경우 그 장소에서는 캠프를 칠 수 없습니다.

캠프에서 시도하는 모든 판정은(회복, 연구, 식량 찾기 등) 운명점을 사용합니다. 식량과 물을 먹는 데에는 판정이 필요 없으므로 운명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마스터는 모험가들이 모험 중 적극적으로 면모를 역발현해서 운명점을 벌도록 권장하세요. 캠프 중에는 면모를 역발현할 수 없습니다.

 

6. 마스터의 할 일

모험가들은 본능적으로 기능 판정 3번~4번을 한 다음 캠프를 엽니다. 눈치 빠른 모험가들은 캠프를 열지 않은 채 식량을 먹어서 좀 더 시간을 벌지요. 그러니, 마스터는 탐험 중 모험가들이 고생하도록 여러 조치를 하세요. 예를 들어…

– 모험가들이 쉴 틈 없이 곧바로 다음 사건과 맞부딪혀서 판정을 더 하도록 만드세요. 특히 모험가들이 판정에 실패하거나 비길 때가 절호의 기회입니다.

– 모험가들이 모험에 필요한 물자(식량과 물, 횃불 등)을 잃어버리게 하세요. 특히 모험가들이 판정에 실패하거나 비길 때가 절호의 기회입니다.

– 항상 전투 중 모험가들에게 최대한 큰 피해를 입히세요.

– 모험가들이 서로 떨어지려고 할 때는 경고하세요. 모험가들이 각각 판정할 때마다 모험 중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상관없이 모험 스트레스 칸이 무조건 채워집니다.

상황 면모 / 캐릭터 면모 활용하기

페이트는 규칙의 많은 부분을 면모 활용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물을 던져 상대방의 움직임을 묶은 다음, 삼지창으로 찌른다. 상대방은 애써서 그물을 잘라 빠져나가려고 한다.” 라는 장면을 전통 RPG로 구현한다면, ‘포박’ 규칙과 ‘물건 파괴’ 규칙을 각각 설명해야 합니다. 물론 그물이 주는 효과와 데이터도 필요하지요. 그러나 페이트에서는 기회 만들기 액션으로 면모를 붙이고, 극복 액션으로 면모를 제거하는 기본 규칙만 알면 됩니다. 마스터는 그물이라는 면모가 붙은 캐릭터의 이동 및 행동에 적당히 제약을 주면 그만이지요. 페이트는 “이야기의 자연스러운 흐름과 테이블 안에서 이루어지는 합의”를 믿고, 상당수의 복잡한 규칙을 면모 관련 규칙 하나로 뭉뚱그렸습니다.

따라서, 이 면모 활용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페이트는 무척 밍밍한 규칙입니다. 면모의 기본적인 활용은 판정에 +2의 보너스를 주거나 주사위를 다시 굴리는 방법이 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지요! 면모는 이야기 속 현실입니다. 한번 등장한 면모는 면모 발현, 면모 역발현에 관계없이 플레이상 현실로 존재하고, 실제 플레이에 도움이나 제약을 줍니다. “날개” 면모가 있으면 하늘을 날 수 있고, “수갑에 묶임” 면모가 있으면 손을 쓸 수 없습니다. 던전월드(링크)를 아시는 분이라면 무기나 물건에 붙은 태그를 생각해 보세요. ‘파괴적’(장비) 태그는 수치상으로는 아무 의미도 없지만, “피해를 주는 방식이 파괴적이어서, 맞은 사람이나 물건은 으깨지거나 찢어집니다.” 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예전 제 캐릭터는 파괴적인 공격을 맞고 팔 하나를 잃고, 신전에서 치료 마법으로 팔을 붙일 때까지 방패를 장비하지 못했습니다! 바로 이런 부분이 이야기 속 현실이 플레이에 영향을 미치는 예시지요.

페이트의 면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마스터와 플레이어는 장면과 캐릭터에 붙은 면모가 실제 플레이에 영향을 미치도록 다양한 방법을 써야 합니다. 페이트 코어 시스템 p.202, “난이도에는 이유가 있어야”와 p.218 “환경적 위험요소”를 참조하세요!

 

면모를 실제 플레이에 활용하는 예시를 몇 가지만 들어보겠습니다. 페이트의 면모 활용은 정해진 세부 사항이 없는 만큼, 이 예시는 다른 마스터의 면모 활용 사례라고 참조만 하세요.

 

“저 흡혈귀의 몸에 기름병을 던질게요. 철수야, 그 다음이 네 차례지? 횃불을 던져!”

→ 기회 만들기로 “기름 뒤집어씌우기” 면모와 “불 붙이기” 면모를 상대에게 붙이는 시도입니다. 흡혈귀는 ‘운동능력’(페이트 코어)이나 ‘날쌔게’(기동형 페이트)로 피하려고 시도하겠지만, 실패해서 불이 붙은 흡혈귀는 어떻게 될까요? 명백하게 규정한 규칙은 없지만, 불이 붙은 흡혈귀는 피해를 당하는 게 자연스럽겠죠. 저라면 불길의 ‘화상’ 실력을 대단함(+4) 으로 잡고 매 차례 흡혈귀를 공격하게 할겁니다. 흡혈귀는 ‘체력’이나 ‘강하게’ 로 방어를 하면서, 자신의 차례 때 극복 액션으로 불을 끄려고 하겠죠. 역시 난이도는 +4 정도로 할겁니다.소화기를 사용한다면 +2 정도로 낮출 수도 있겠지요.

 

“거대한 날개가 있는데, 좁은 통로에서 쉽게 움직일 수 있겠어요?”

→ ‘거대한 날개’라는 캐릭터 면모가 있는 캐릭터는 좁은 통로에서 곤란을 겪습니다(아마 상황 면모로 “좁은 통로”가 있겠지요). 아마 뛰어가서 적을 공격하려고 해도 좁은 통로 속에서 날개가 거치적거리는 바람에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겠죠. 이 경우 마스터는 “거대한 날개를 가진 캐릭터는 좁은 통로에서 공격하려고 할 때, 공격에서 최소 +3 이상은 나와야 한다.” 라고 선언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방어자가 거대한 날개 면모를 발동하면, 공격 난이도가 +5가 되겠지요.

 

“밑에 있는 좀비들이 깔리도록 거대한 샹들리에를 쏴서 떨어뜨리겠어요!”

→ 멋지군요! 샹들리에를 떨어뜨려서 한 구역의 적들 모두를 공격한다면 플레이어가 제안하는 “면모의 역발현”을 응용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느리고 둔해 빠진 좀비라면 캐릭터는 샹들리에를 떨어뜨리는 것만으로도(난이도는 +2 정도로 하고 싶습니다) 좀비들을 모두 공격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좀비들이 잽싸다면 운동능력으로 대항하겠지요. 그래서 캐릭터가 성공한다면? 그 밑에 있던 모든 좀비들은 성공 차이+ 샹들리에의 무게 때문에 얻는 추가 피해를 입습니다.

만약 ‘거대한 덩치’라는 캐릭터 면모가 있는 괴물 좀비라면 이 정도 공격으로는 피해를 입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때는 캐릭터의 선언이 공격이 아닌 기회 만들기 액션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다만 “샹들리에에 깔리다” 라는 상황면모가 붙어 샹들리에를 치우기 전에는 이동을 못 하거나, 공격이나 방어에 페널티를 입을 수는 있습니다.

 

“저 녀석의 등 뒤로 돌아와 손을 꺾은 다음, 수갑을 채우겠습니다.”

→ 기회 만들기로 시도해보겠다고요? 대담한 발상입니다. 화끈한 마스터라면 한 번에 허락할 수도 있겠지만, 저라면 “먼저 붙잡아서 제압한 다음 수갑 채우기를 시도하세요.” 라고 제안할 겁니다. 기회 만들기를 두 번 시도하라는 거지요. 상대는 운동능력으로 저항하겠죠?

하지만 이런 힘든 시도를 뚫고 성공한다면, 당연히 그만한 보상은 있어야겠죠. “등 뒤로 수갑이 묶임” 면모가 붙은 캐릭터는 일단 손으로 하는 모든 행동이 불가능할 겁니다. 대표적으로 무기 사용이나 주먹 휘두르기 등이 있겠죠. 게다가 등 뒤로 손이 묶였으니, 방어 역시 매우 힘들겠죠? “등 뒤로 수갑이 묶임” 면모가 있는 이 캐릭터를 칠 때는 캐릭터의 운동능력 실력이나 난이도 +2 중 낮은 쪽을 넘기면 공격이 명중한다.” 정도의 제한은 어떨까요? 달리기도 힘들 테니 “전력으로 질주할 때는 난이도 +3 이상이 나와야 성공한다.” 정도의 제한을 붙이고요. 또한, 수갑을 푸는 시도는 아주 힘든 일이기 때문에 난이도를 +4 이상으로 줄 겁니다. 물론 묶인 캐릭터가 ‘유연한 관절’ 같은 면모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말입니다…

 

“저 녀석의 손목을 베어버리겠어요! 물론 손에 들고 있는 검은 떨어뜨리겠지요?”

→ 물론 좋은 시도지만, 때로는 면모가 만능이 아니라는 점도 기억하세요. ‘잘린 손’, ‘외눈’ 같은 영구적인 변화는 기회 만들기로 붙일 수 있는 상황 면모로는 너무 큽니다. 영구적인 변화는 극단적 타격이나 갈등 패배의 결과로 남겨두세요. 다만 기회 만들기 시도로 ‘손목 치기’ 같은 상황 면모를 붙인다면 무장 해제 정도는 가능하겠죠. 무장이 해제된 캐릭터가 무기를 주우려면, 극복 액션을 하느라 한 차례를 소모해야 합니다(극복 난이도는 상황에 따라 다를 겁니다. 만약 주위에 아무도 없다면 난이도가 낮거나 자동 성공도 가능할 테고, 적이 눈 앞에 있는 상황에서 무기를 주우려면 겨루기로 굴려야겠죠).

Robin D. Laws의 장애물 만들기 가이드

캐릭터들은 장애물에 부딪혔을 때, 힘과 지혜를 짜내 그 상황을 극복합니다. 캐릭터들은 보통 능력치/기술/기타 등등 판정으로 이 장애물을 극복하며, 판정이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서 그 문제를 해결합니다. RPG의 재미 중 큰 부분은 이 장애물을 겪으면서 극복하는 데에서 나오기 때문에, 게임 마스터, 또는 다른 이들에게 장애물을 던져주는 역할을 맡은 참가자는 재미있는 장애물을 만드는 능력을 갈고 닦아야 합니다.

어떤 장애물이 “재미있는가?” 에 대한 답변은 ‘각 테이블에 따라 다르다’고밖에 말할 수 없지만, 한가지만은 확실합니다. 의미 없는 장애물은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제가 말하는 의미 없는 장애물은 ‘하든 안 하든, 성공하든 실패하든 별 의미 없는 판정이나 선택’입니다. 예를 들어 동굴 통로에서 두 갈래 길이 나왔을 때, 그 중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똑같은 괴물과 보물, 덫이 나온다면 의미가 없겠죠. 이와 마찬가지로 NPC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거짓말 탐지’를 했을 때, 실패하더라도 위험이 없다면 거짓말 탐지를 할 필요가 없겠죠.

그렇다면 의미 있는 장애물이란 어떤 것일까요? RPG 디자이너 Robin D. Laws에 따르면 장애물은 다음 요소로 세분화할 수 있습니다. (Sharper Adventures in HeroQuest Glorantha의 내용 중 일부를 요약했습니다)

1) 딜레마 : 직면한 장애물의 세부사항

2) 관심거리 : PC들이 장애물을 해결하기를 바라는 이유

3) 선택 : PC들이 선택할 수 있는 해결책

4) 결과 : PC들이 선택지에 따라 행동한 결과

 

딜레마는 PC들이 직면한 장애물의 상황입니다.

“술 취한 왕이 적국의 인질들을 죽이려고 한다.”

“우리 부족에 출몰한 언데드들을 무찔러야 한다.”

“폭설이 휘몰아치는 거대한 산을 통과해야 한다.”

 

관심거리는 PC들이 장애물을 해결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장애물을 만들었어도 PC들이 “왜 우리가 이걸 해야 하지?” 라고 말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겠지요.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장애물을 PC들의 모험 동기 및 개인적인 배경과 연결해서 흥미를 느끼게 만들거나, 이번 시나리오를 해결하기 위해서 꼭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주지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적과 전쟁을 하느냐, 평화를 선택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인질들의 처우는 그 향방을 결정할 것이다.”

“언데드들을 격퇴하지 않으면 우리 부족은 멸망한다.”

“저 산을 통과해야 마왕의 성에 갈 수 있다.”

 

선택은 PC들이 장애물을 해결하기 위한 방식입니다. 각 선택에 따라서 결과 역시 달라지기 때문에, GM은 PC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신경을 써야 합니다. 선택지는 뻔히 보이는 몇 가지 방식 중 하나일 수도 있고, 혹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선택지에 따라 다시 또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세요.

“왕이 인질을 죽이도록 놔둘 것인가? / 인질을 살리려고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살릴 것인가? 왕을 설득? 왕을 제압? 마법을 써서 왕을 현혹?”

“언데드를 격퇴하기 위해 혼자 나설 것인가? 이웃 부족의 도움을 얻을 것인가? 용병을 고용할 것인가?”

“저 산을 통과하기 위해 절벽을 곧바로 탈 것인가? 아니면 우선 사람들과 교섭을 해서 이런저런 도구를 살 것인가?”

 

결과는 PC들이 선택한 결과에 따라서 어떤 것이 달라지는가? 입니다. 만약 PC들이 선택한 방법이 ‘판정’이라면, 판정의 성공과 실패에 따라서도 각각 다른 결과가 나와야 합니다. 결과는 다음 중 하나입니다.

① 이야기의 분기 : 성공과 실패에 따라 이야기의 전개가 달라집니다. 다만, 어떤 경우에는 “이 판정은 실패하면 이야기가 아예 진행이 안 돼!” 라는 딜레마에 직면할 수도 있지요. 예를 들면 폭탄 해체 같은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이런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쉬운 방법은 아래 약화 또는 강화 의 결과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성공과 실패에 따라 달라지는 결과’ 자체를 손을 대는 방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폭탄 제거 판정의 성공/실패 같은 경우는 ‘폭탄이 제거되느냐, 터지느냐’ 가 아니라 ‘폭탄은 제거되지만 그 동안에 도망치는 악당을 추격할 수 있느냐 아예 놓치느냐’ 로 바꾸는 방법이 있지요.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이야기와 놀이 블로그의 “실패하면 안 되는 판정의 역설” (http://blog.storygames.kr/entry/making-failure-fun)을 참조해 주세요.

② 약화 또는 강화 : 이야기는 정해진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하지만 성공과 실패에 따라 이후 장면에서 PC들이 맞닥뜨릴 장애물이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PC가 상처를 입는가? 더 좋은 장비를 얻는가? 이후 지원군이 도착하느냐? 등을 예로 들 수 있겠죠.

‘의미 있는 판정’이란, 각각의 선택에 따른 결과가 서로 명백하게 달라야 합니다. 또한, 한번 결과가 나오면 장애물을 마주치기 전 상태로 되돌릴 수 없거나, 대가를 치르고 되돌려야 합니다. 인질을 죽였으면 다시는 적과 화해를 할 수 없겠지요. HP를 잃었다면 회복주문을 쓰거나 병원에 가서 돈을 주고 상처를 치료해야 합니다.

“PC들은 왕을 설득하기로 한다. 만약 판정에 성공한다면 인질은 살 것이다. 판정에 실패하면 인질은 죽고 곧 전쟁이 일어난다.”

“용병을 고용한다면 엄청난 돈을 요구할 것이며, 그 중 질 나쁜 이들은 마을의 보물창고를 눈독 들일 것이다.”

“절벽을 곧바로 탄다면, PC들이 등반 판정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산은 넘는다. 하지만 만약 PC들이 등반 판정에 실패하면 PC들이 산을 넘을 때는 HP가 모두 1/3로 줄며, ‘피로’ 라는 상태를 얻는다.”

이러한 장애물은 미리 준비할 수도 있고, 혹은 즉석에서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준비를 하든, 위의 네 가지 요소를 염두에 둔다면 최소한 ‘없느니만 못한 장애물’이라는 소리는 듣지 않을 것입니다.

 

P.S : 그렇다면 만약 미리 만든 시나리오에서 플레이어들이 의미 없어 보이는 판정이나 선택을 하겠다고 선언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쉬운 방법은 “할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솔직해지세요. 굳이 공허한 주사위 굴림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과와 귤 중 뭘 먹고 뭘 먹지 않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필요할 때만 부딪히세요.

조금 더 악랄해지고 싶다면, 혹은 아포칼립스 월드 엔진(AWE)의 방식대로 각각의 판정마다 의미를 둔다면, 실패할 경우 대가를 치르게 하세요. 글의 앞부분에서 저는 쓸데없는 거짓말 탐지의 예를 들었습니다. 만약 PC가 정직한 NPC에게 거짓말 탐지를 해서 실패했다면 단순히 “알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할 뿐만 아니라, NPC가 PC를 대하는 태도나 생각이 달라지게 하세요. 상대방이 자기를 불신하면서 거짓말쟁이인지 확인하려고 하는데 기분이 좋겠습니까? 텅 빈 방에서 덫 탐지를 시도한다면요? 실패하면 진짜 덫을 발동시키거나, 그 방에서 시간을 허비한 나머지 떠돌아다니는 괴물이 그 방에 들어왔다고 선언하세요. 좀 더 대담하게 나간다면 ‘무의미한 판정에’ 성공할 경우에도 무언가 보상을 줄 수 있지만(사실 이 NPC는 진짜 거짓말쟁이였다든지, 작동 직전의 덫을 발견시킨다든지), 이 부분부터는 ‘미리 만든 시나리오’를 벗어나는 즉흥극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굳이 더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진행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 (5) – 무의식과 감

진행 (마스터링)을 하다 보면 아귀를 맞추느라 걱정을 하는 일이 많습니다. 모든 사건이 맞아떨어지는지, 인물의 동기에 비추면 이런 행동이 앞뒤가 맞을지 등등. 그래서 진행에는 종종 시나리오를 만들거나 앞으로의 진행에 대해 미리 합의하는 등의 준비가 들어가지요.

제가 한 가지 느낀 점이라면, 때로는 미리 앞뒤 맥락을 다 맞추기보다는 감으로 일단 질러놓고 나중에 맞추는 것이 효과가 좋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냥 이 인물은 왠지 주인공 일행에게 숨기는 게 많은 게 어울리는 것 같다고 생각하고 그런 RP를 한 후 나중에 적 스파이였다고 아귀를 맞춘다든지, 주인공 일행에 대한 습격 장면을 많이 진행하고 나서 주인공 일행의 짐에 누군가 보물을 숨겼었다고 이유를 만들어낸다든지 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위와 같은 ‘사실 그 이유는…’ 하는 부분은 미리 준비해놓는 것이 일반적이고, 실제로 저도 준비해놓는 일이 많습니다. 저는 인물 중심 진행을 위해 인물을 미리 준비해놓을 때 조연 (NPC)의 동기, 이미 해놓은 행동 등을 준비해놓는 방식으로 하지요.
그러나 시간이 없어서 저런 부분을 다 준비하지 못하는 일도 있고, 준비하지 못한 인물이나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부각되는 일도 있습니다. 미리 준비해놓은 사건이 막상 부딪쳐 보니 재미없거나 앞뒤가 안 맞는 일도 있지요.
그렇게 어떤 이유로든 준비가 없는, 혹은 준비한 게 별 소용이 없는 상황에서 감에 의존하는 것은 상당히 도움이 됩니다. 인간의 무의식은 의식보다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하고 더 멀리 내다볼 수 있으니까요. 이 인물은 주인공을 싫어할 것 같다, 혹은 지금은 강에 시체가 떠내려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감에는 보통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나중에 생각해도 되고요.
미리 질러놓은 사건이나 RP를 나중에 끼워맞추는 게 어렵지 않은 이유는 또 있습니다. 인간의 두뇌는 규칙과 이유를 만들어내기를 무척 좋아합니다. 그래서 별 상관 없어보이는 사건마저도 서로 연결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죠. 현실에서는 그게 진짜 인과관계이느냐에 따라 과학부터 미신까지 결과는 가지각색입니다만, 허구인 RPG에서는 편리합니다. 조연이 주인공을 싫어한다면 왜 그런지, 강에 시체가 떠내려왔다면 왜 그런지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일단 감을 믿고 사건을 질러두면 진행자 자신의 두뇌가 그 이유를 찾아내려고 분주히 움직일 뿐만 아니라 참가자도 이유를 발견하려고 애씁니다. 그렇게 생각해본 후 (그리고 참가자에게 귀기울인 후) 그 중 가장 재미있고 앞뒤가 맞는 것을 고르면 됩니다. 조연이 주인공을 싫어하는 것은 주인공이 그의 형을 죽여서이고, 강물에 시체가 떠내려온 건 상류에 있는 도시에서 살인이 일어나고 있어서이고… 등등.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논리와 사전 준비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감이야말로 진행자 최고의 자산이라는 점입니다. 참가자에게도 그 점은 마찬가지이지만, 참가자가 ‘내 주인공은 이렇게 행동할 것 같아’ 하는 감으로 움직이기는 비교적 쉬운 반면 진행자가 그렇게 자기 감을 믿기는 상대적으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진행자 역시 자신의 감을 믿었을 때 꽤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질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저의 지론이지요.

플레이하듯 마스터링하기: 인물 주도형 RPG

1. 태초에 인물이 있었으니

다른 놀이와 구분할 수 있는 RPG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여럿이서 하는 놀이, 대화로 하는 놀이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현재의 목적상 제가 주목하고 싶은 특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RP로 하는 놀이라는 점. 즉, 직접 인물의 입장이 되어서 하는 놀이라는 특징입니다. 이 점은 참가자 (플레이어)든 진행자 (마스터)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인물에 대한 몰입도나 주목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RPG는 참여자 전원이 자기 담당 등장인물의 행동과 감정을 직접 결정한다는 의미에서 인물 중심적인 놀이입니다.

두 번째 주목할 만한 RPG의 특징은 직접 인물의 입장이 되는 RP가 실질적으로 이야기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인물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는지 정함으로써 공동 서사의 방향을 결정하고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RPG의 역동성이 나옵니다.

이 두 가지 특징을 종합해보면 RPG의 참여자는 인물에 대한 서술을 통해 놀이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정한다는 명제가 나옵니다. (포괄적인 설명으로는 이전에 쓴 서술권 글 참조.) 마왕이 공주를 납치하는 것은 인질을 확보하려는 작전이고, 공주가 일부러 납치당한 것은 마왕을 암살하기 위해서이고, 용병이 공주를 구하러 가는 것은 돈이 필요해서이고… 하는 식으로 대개의 이야기는 인물의 행동과 결정, 동기가 맞물리는 과정으로 생각할 수 있고, RPG에서는 그 인물을 참여자들이 직접 제어합니다.

참가는 보통 진행보다 쉬운 것으로 생각합니다. 참가자는 자신의 인물을 움직여서 진행자가 제시하는 사건에 반응하면 되니까요. 반면 진행은 상대적으로 어려운 작업으로 생각하는 일이 많습니다. 참가자가 반응할 사건을 제시하고, 이야기가 어떻게 나아갈지 생각해야 한다는 통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RP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하면 실은 진행도 참가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작업입니다. 담당하는 인물의 수가 상대적으로 많고, 직접 등장하지 않고 막후에서 움직이는 인물도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지요. 그 외에 엄밀히는 인물이 아닌 자연현상 등도 움직인다는 차이도 있지만, RPG 속의 서사를,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부분을 끌어가는 것은 역시 등장인물들입니다. 그게 왕이든 괴물이든 말이죠.

그렇다면 진행 역시 참가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참가와 다른 점에 대해 대응하면 참가를 하듯이 편하게 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시나리오를 미리 짜거나 앞으로의 진행방향에 대해 고민할 필요 없이 말이지요. 그에 더해 시나리오를 미리 짰을 때와는 또 다른 예측불허의 재미를 느낄 수 있고, 흡사 참가자가 느끼는 재미처럼 자신의 인물로부터 이야기가 나오는 묘미도 있습니다. 즉흥성이 있는 만큼 참가자의 선택도 더 의미 있게 반영할 수도 있습니다.

2. 준비와 논의: 천을 짜기 시작하다

인물 주도적으로 플레이를 끌어가려면 무엇보다 준비와 논의 과정이 중요합니다. 서로 다른 참여자가 맡은 인물을 이해하고 흥미도 느끼는 것이 중요해지니까요. 인물이 주도적일수록 모든 인물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플레이 자체의 재미에 필수적입니다.

그래서 인물은 같이 앉아서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차선책으로는 충분히 의사소통을 하면서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요. 각자 따로 만들어오면 특히 참가자들은 어떤 인물을 만들어야 할지 막막하기 쉽고, 또 능력이 중복되는 것과 같은 문제도 생기기 쉽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물 간 응집력이 떨어져서 인물 주도적으로 통일성 있는 서사를 꾸리기 어려워집니다. 서로 같은 방향이 아니라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나가기 십상이니까요.

따라서 인물 주도형 캠페인을 준비할 때는 인물을 같이 만드는 것에 더해서 되도록 백지 상태에서 시작해서 인물 배경과 특징도 함께 만들어갈 것을 권합니다. 그러면서 적극적으로 인물을 같이 엮고요. 나는 전사를 하고 싶은데, 그렇다면 나는 워로드가 어떨까, 얘네는 맨날 티격태격 싸울 것 같다, 이런 능력을 넣으면 서로 보완이 되겠구나, 어떤 식으로 만났을까, 하는 논의를 거치면서 각 인물은 따로 노는 대신 유기적인 연관이 생깁니다.

이렇게 인물 사이 연관성을 만드는 과정은 주인공 (PC)뿐만 아니라 조연 (NPC)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 인물 주도적인 캠페인을 하려면 조연도 진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과 유기적으로 얽혀 있어야 합니다. 진행자가 이미 어느 정도 생각해둔 이야기 틀이 있고 등장시키고 싶은 인물이 있다 하더라도 주인공과 연관성을 만드는 편이 참가자 흥미를 확보하기도 좋고, 또 인물이 끌어가는 극을 만들어가기에도 좋습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 하나가 어렸을 때 마을이 몰살당했다면 누가 몰살시켰는지, 왜 그랬는지 생각해 두고, 그 장본인이나 관련 이야기를 나중에 등장시키면 주인공의 이야기에 완결성을 부여하기 좋습니다. 여기에 대해 어디까지 참가자와 논의를 할지는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주인공의 이야기가 어떤 형태인지 참가자에게 명확한 생각이 있다면 자세한 논의와 조정을 거치는 것이 좋습니다. (다만 그 생각이 너무 확고하고 변화를 허용하지 않는다면 RPG보다는 소설을 쓰는 편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반면 참가자가 마을 몰살이라는 실마리를 던졌을 뿐 자세히 생각한 것이 아니라면 진행자가 재량껏 설정해서 참가자를 놀라게 하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추가적으로 최소한의 논의를 통해 참가자가 싫은 내용이 나오지 않게 조정할 수도 있고요. (“친족이 그랬다는 건 너무 흔한 전개이려나?”) 저는 자세한 논의와 혼자 한 설정, 양쪽 접근 모두 상황에 따라 좋은 효과를 보았습니다. 어느 쪽이든 중요한 것은 인물의 이야기와 설정을 캠페인의 중요한 요소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반드시 과거의 인연으로 얽혀있지 않아도 조연은 어떤 식으로든 주인공에게 원하는 것이 있어야 연관성을 만들기 좋습니다. 내 편이 되어달라거나, 뭔가 해달라거나, 사랑을 받아달라거나, 방해하지 말라거나, 인정해달라거나, 죽어달라거나(..) 하는 것이 그 예겠죠. 아주 단순한 것이라도 조연들이 주인공에게 원하는 것이 있어야 연관성이 생기므로 조연이 주인공에게 원하는, 혹은 상황에 따라 원할 만한 것을 생각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것이 없다면 그 조연은 빼는 게 나을지도요.

이렇게 주인공과 조연 설정을 마쳤으면 진행자는 추가로 약간 준비를 합니다. 주요 조연의 동기와 자원, 한계에 대해 생각해본 다음에 그들이 각자의 욕구와 계획에 따라 어떤 행동을 취했을지 적어보는 것입니다. 참가자가 돌리는 주인공과 달리 진행자가 돌리는 조연은 늘 등장하지는 않으므로 그들이 ‘화면 밖’ 혹은 막후에서 취하는 행동들을 생각해보는 과정으로서, 조연 RP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입니다.

마왕

동기: 북방의 영토를 두고 왕국과 하는 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거한다. 어디가나 차별받고 살해당하기도 하는 마물들을 위한 평화로운 왕국을 세우려고 한다.

자원: 수많은 병력, 국민의 충성, 북방의 일부 영주들이 마왕과 내통하고 있다

한계: 자신의 영토 외에서는 자유롭게 운신할 수 없고, 눈에 띄는 수하 대신 동맹이나 고용인을 통해 행동해야 한다.

행동: 북방에 시찰을 나온 공주를 납치해서 인질로 삼았다

주인공 관련성: 주인공인 용사와 아는 사이로, 용사는 마왕과 몇 번이나 싸우고도 마왕의 이상과 사람됨을 봐서 살려준 적이 있다

공주

동기: 전쟁을 빨리 끝내서 왕국을 구하고, 가능하다면 영웅도 된다

자원: 뛰어난 전사이지만 내숭도 뛰어나다. 왕국 내에서 꽤 인기가 좋다

한계: 무모한 성격이며, 왕국을 떠난 이상 혈혈단신이다

행동: 마왕을 암살하려고 일부러 납치당했다

주인공 관련성: 어려서 시골 영지에서 지내던 당시 용사와 함께 검을 배운 동문이다. 주인공이 마왕의 성에 온다면 함께 마왕을 죽이자고 할 것이다



동기: 전쟁을 빨리 끝내고, 경쟁을 물리치고 왕권을 공고히 한다

자원: 자신의 군대, 영주들의 충성, 왕으로서의 통치권

한계: 왕권을 확고하게 세우지는 못하고 있어서 대영주들과 누나 등 경쟁자를 의식해야 한다.

행동: 전쟁에 시달리는 북방 영지들의 불만을 잠재우려고 인망이 높은 누나를 북방에 보냈지만, 동시에 그 지역이 위험한 것도 잘 알고 있었으며 일부러 호위를 부실하게 했다. 인질이 잡힌 이상 공개적으로 움직이기 어려우므로 용사에게 잠입 구출을 의뢰할 것이다. 물론 상당히 많은 보수를 약속하고! 하지만 실제로 공주의 구출이 성공하게 내버려둘 의도는 없어서, 용사가 공주를 구해온다면 배신할 생각. 성공하든 실패하든 어물쩍 누나를 마왕과 결혼시켜 정적 제거 + 종전 효과를 보려고 한다.

주인공 관련성: 용사의 실패를 바라고 있고, 성공한다면 제거하고 공주는 다시 마왕에게 귀환시킬 생각이다.

물론 이건 단순화한 예시이고, 실제로는 주인공이 여러 명인 일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 때에는 둘 이상의 주인공과 관련이 있는 조연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주인공 사이에 연관성이 많을 수록 처음부터 공통적으로 연관이 있는 조연도 많을 테고요.

이렇게 주요 조연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개별적으로 정리가 되었으면 그로부터 생기는 결과를 포함해 상황을 전체적으로 정리해보고, 주인공이 무엇을 알고 있으며 어떤 상황에서 시작할지 생각합니다.

상황: 공주가 마왕에게 납치당해서 민심이 술렁이고 있다. 떠도는 소문에 귀를 기울이면 왕이 누나인 공주를 포함한 정치적 경쟁자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한다. 북방의 전황은 교착 상태. 왕은 어서 평화협정을 맺고 싶어하지만 그러려면 상당한 양의 영토를 내주어야 하며, 때문에 북방 영주들의 반발이 강하다. (등등)

시작: 공주 구출 의뢰를 하려는 왕에게 용사가 불려가는 상황에서 시작한다.


그 외에 플레이하면서 또 새로운 조연이 생길 수 있으므로 조연 이름 목록을 미리 뽑아 준비해놓으면 좋습니다. 그때그때 필요하면 이름을 붙여서 조연 기록에 새로운 항목을 추가하면 되니까요.


3. 진행: 나비 효과

일단 시작 상황을 던져주면 주인공은 뭔가 RP를 하겠지요. 그렇게 되면 조연의 동기와 이미 한 행동, 자원과 한계 등을 고려해서 반응하는 RP를 하면 됩니다. 왕이 용사에게 공주의 구출을 의뢰하는데 용사가 좀 건방지게 굴면 왕은 불쾌한 표시를 미묘하게 드러낼 테고, 이 점은 나중에 용사에 대한 왕의 태도에 영향을 줄 수도 있겠지요. 반면 용사가 아주 정중한 태도를 보였다면 그를 배신하려던 생각이 좀 흔들릴 수도 있고요.

한 세션이 끝나면 조연, 특히 주요 조연의 정보를 수정해서 그 세션의 결과, 그 세션 동안에 무대 위에서 혹은 막후에서 한 행동과 벌어진 사건 등을 정리합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습니다.

(중략)

행동: 전쟁에 시달리는 북방 영지들의 불만을 잠재우려고 인망이 높은 누나를 북방에 보냈지만, 동시에 그 지역이 위험한 것도 잘 알고 있었으며 일부러 호위를 부실하게 했다. (중략)

1 세션: 용사에게 의뢰해 누나를 구출해달라고 보낸 후 북방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영주 크라이스데일 남작에게 전령을 보내 용사의 인상착의를 알리고, 그를 환대하면서도 철저히 감시할 것을 명령했다.

주인공 관련성: 용사의 실패를 바라고 있고, 성공한다면 제거하고 공주는 다시 마왕에게 귀환시킬 생각이다.

1세션: 그러나 알현 이후 용사의 정중함에 깊은 감명을 받아 그 생각이 다소 흔들리고 있다.

1세션에 왕이 막후에서 한 행동의 결과로 크라이스데일 남작이라는 새로운 인물이 생겼으니 이번에는 그 설정을 하면 됩니다.

남작

동기: 입신양명! 영지를 확장하고 이기는 쪽에 줄을 선다. 일단은 좋은 혼처부터.

자원: 충성스러운 부하들과 영지, 뛰어난 검술, 잘생긴 외모

한계: 영지 외에서는 영향력이 별로 없고, 주변에 강한 영주가 많다.

행동: 반란이나 독립을 모의하는 북방 영주들과 왕 중 어느 쪽에 붙을까 고민하고 있다. 양쪽 사이에 위치한 영지 때문에 어느 쪽이든 최전방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 때문에 더더욱. 지금으로서는 양쪽 모두에게 고분고분하게 굴면서 정세를 엿보고 있다.

1세션: 왕에게서 공주 구출 작전에 대한 전령이 오자 역시 양쪽 모두에게 잘 보일 기회를 포착하고 북방의 영주 중 가장 강한 레오딘 공작에게 비밀리에 알렸다.

세션을 거듭하면서 진행자가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RPG에서 어떻게 보면 가장 재미있는 부분, 즉 인물 설정과 인물성 살리기입니다. 이렇듯 인물 단위로 생각하면 그들의 행동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나오게 되어 있고, 이야기를 딱히 미리 정해둘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쌓인 것을 기반으로 해서 주인공들의 행동에 반응하다 보면 이야기가 생길 뿐이죠. 각 주인공과 조연이 상황에 반응해 행동하며 미래를 알지 못하듯, 진행자도 캠페인이 미래에 어떻게 될지는 모릅니다. 따라서 참가자도 진행자의 시나리오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닐까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인물을 얼마나 자세히 설정할지, 혹은 인물 외의 다른 것 (장소 등)을 얼마나 설정할지는 그때그때 판단할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성격이란 인물을 RP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온다고 생각하므로 설정 한두 마디로 제약하기보다는 그냥 그의 동기와 이익에 맞게 RP하는 편을 선호하지만, 다른 분은 성격을 설정해놓으면 한결 RP하기가 편할 수도 있습니다. 조연의 말투와 성격을 한 번에 알 수 있는 대사 예시 같은 것을 적어놓을 수도 있을 테고요. 마찬가지로 캠페인 성격에 따라서는 자원과 한계 같은 항목보다는 인연과 감정 등이 중요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장소 등은 특히 맵을 사용하는 전투가 있는 규칙이라면 자세한 설정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시각적 상상력이 형편없는지라 장소 설정은 잘 못하지만, 그런 부분을 잘 설정하는 분은 장소를 통해 한결 입체적인 표현을 할 수도 있겠죠.

인물과 전혀 상관없는 사건–갑작스러운 폭풍이라든지 지진 등–역시 이야기를 더욱 다채롭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지역과 세계 설정에서 여기는 폭풍이 잦은 지역, 여기는 가끔 가다 지진이 있는 곳 하는 식으로 생각한 다음에 그 지역에 갔을 때 무조건 폭풍이 온다거나, 아니면 확률을 정해 놓고 (1d6에서 2 이하이면 폭풍이 몰아닥친다는 식) 폭풍을 등장시킬 수도 있습니다. 뭐 결국 비는 진행자가 내리고 싶으면 내린다는 게 지론입니다만..(..)

또한, 이런 우연한 사건에도 마찬가지로 주인공의 행동에 반응하면서 조연 설정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용사가 온다는 전갈을 받았던 남작이 수색대를 보낸다든지, 용사는 생존 판정에 성공해서 동굴을 찾았다가 그곳에서 나이든 은둔자와 마주친다든지. 여기서 또 생겨나거나 떠오르는 설정이 있으면 조연 설정에 추가하거나 새로운 조연을 만들면 됩니다.

4. 결론이 있다면…

이상과 같이 인물 중심, 혹은 인물 주도형 진행 방법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것은 제가 1년 반짜리 스타워즈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사용했던 방법이기도 하며, 저에게는 제법 잘 맞았습니다. 그 캠페인을 하면서 저조차도 앞으로 내용이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어서 굉장히 즐거웠던 생각이 납니다. 한편 참가자들도 미래에 대해 정해진 것이 없는 것을 아니까 자유도에 제약이 적었던 것 같고요.

인물 중심 진행을 요약하자면 준비된 임기응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물을 준비한 다음에 준비한 내용을 기반으로 새로운 상황에 반응하는 RP의 연속이지요. 그런 면에서 참가와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인물을 한 사람씩만 다루면 되는 참가에 비해서 인물이 많다는 차이가 있을 뿐.

모든 방법론이 그렇듯 이것도 만인에게 좋은 방법은 아닐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시나리오를 잘 쓰고 필요에 따라 쉽게 변형할 수 있는 분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사용하는 규칙과도 관련이 깊습니다. 나올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해 꽤 복잡한 스탯의 적을 준비해야 한다면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진행 방식보다는 시나리오 진행이 안정적일 것입니다. 또한, 여러 인물을 가지고 한꺼번에 임기응변을 펼치기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인물 중심 진행을 사용하기 좋은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시나리오를 만들고 참가자 선택에 따라 바꾸는 작업이 어렵거나 재미없는 분, 조연을 비교적 간단하게 즉석에서 만들 수 있는 분, 그리고 여러 인물 RP를 한꺼번에 즉석에서 하는 게 괜찮은 분. 이런 분이라면 인물 중심 진행이 꽤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사용하고 있으실 수도 있고요.

결국 진행자의 스타일이나 욕구가 다양한 만큼 진행 방법도 다양하겠지요. 자신에게 맞는 방법이 보이면 기존에 진행을 하지 않던 분도 진행을 잡게 될 수도 있고, 기존에 진행을 하던 분도 더욱 편하고 재미있게 진행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더욱 다양한 진행 방법론이 정리되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진행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 (4) – 외전

긴 캠페인을 하다 보면 참가가 상당히 성실하다 해도 누군가 빠지는 일이 가끔 생깁니다. 이전에 참가자가 빠진 세션이라는 글에서도 다루었지만 이런 때 플레이를 쉬면 캠페인의 추진력에 심각한 제약이 됩니다. 일단 정기 플레이를 많이 쉴 수록 기억은 희미해지면서 내용의 연결성이 끊어지고, 완급은 늘어지므로 캠페인을 지속하기 어렵게 됩니다.

참가자가 빠질 때마다 플레이를 쉬면 파토가 나기 쉬운 것은 개별적으로는 합리적인 판단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플레이를 쉰다고 하면 사실상 성실하게 참가하는 사람이 바보가 되기 쉽습니다. 내가 잘 나와도 다른 사람이 빠져서 아무것도 안한다면 플레이에 나간 사람은 시간과 노력을 허비한 결과가 되니까요. 다른 사람의 참석 여부는 제어하기 어려운 만큼 성실하게 참가하는 것만으로는 참가의 목적 (플레이)을 달성하기 어려워집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하나라도 빠졌다는 이유로 플레이가 없으면 역으로 성실하게 참가한 사람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성적으로는 그런 이유로 쉬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약속대로 참가한 3명보다 오지 않은 한 명이 더 중요해지고, 그 결과 생기는 박탈감은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으로 이어집니다. 일단 캠페인의 분위기가 감정적으로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면 계속할 동기는 약해집니다.

그런 악영향이 있는 만큼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기도 하고, 또 불참이 잦은 참여자가 있다면 빼든지 아니면 매회 나오지 않아도 플레이를 계속할 수 있게 하든지 뭔가 조치를 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캠페인을 계속하기는 어려워질 테니까요.

그러나 때로는 글 첫머리에서 말했듯 참가가 전반적으로 성실한데도 가끔 한 사람씩 빠지는 일도 있습니다. 때로는 미리 연락하고 빠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예기치 못한 사정으로 그렇게 되기도 합니다. 이런 때는 부재가 잦지는 않으므로 문제는 덜하지만, 그렇다고 한 사람이 빠졌다는 이유로 플레이를 아예 쉬면 캠페인에 위와 같은 악영향이 생기는 것은 (정도의 차이일 뿐)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내용 연결상 빼고 진행하기는 어려운 일도 많죠.

이럴 때 제 경험상 큰 도움이 되는 것이 캠페인 외전 세션입니다. 과거 이야기, 캠페인 세계의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일, 일행의 또 다른 모험, 심도 있는 대화 등. 외전은 본편 진행에서 잠시 벗어나는 좋은 기분 전환이 되기도 하는 등 단편 진행에서 다룬 다양한 이점도 있으며, 캠페인 세계와 사건을 다양하게 조명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캠페인에 깊이가 생기고 풍부해지므로 더욱 추천할 만하죠.

한 사람이라도 오면 본편이든 외전이든 뭔가 플레이가 있다는 것은 성실하게 참가할 좋은 동기 부여가 되기도 합니다. 남이 잘 참가하는 건 직접 제어할 수 없지만, 스스로 성실하게 참가하면 (그리고 진행자도 그러리라고 믿을 수 있다면) 참가의 목적인 플레이는 어쨌든 이루니까요. 오히려 자신은 참가했는데 다른 참가자가 안 나온다면 개별 세션으로 자신의 주인공을 더 부각시킬 수도 있고, 플레이도 더 많이 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누군가 빠져도 플레이를 한다는 것은 세션에 나온 사람에 대한 존중의 표시도 됩니다. 안 나온 사람도 있지만 나온 사람이 더 중요하니까 플레이를 하자는 표시라는 의미에서요. 아니면 마침 본편이 슬슬 늘어지는데 다른 걸 할 수 있어서 잘 됐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약속대로 참가한 데에 대한 존중, 그리고 캠페인에 대한 열정을 전달하는 만큼 감정적 결속도 강해집니다.

물론 외전을 참가자가 빠진 상황으로 꼭 제한할 필요도 없겠죠. 캠페인에 대한 다각도의 조명, 기분 전환 등 참가자 부재와 상관없는 이점도 크니까요. 외전을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주인공을 달리 해서 본편 캠페인과 배경만 같은 별도의 캠페인을 진행할 수도 있고, 규칙이나 매체가 다른 캠페인을 동시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본편은 채팅 플레이, 외전은 게시판 플레이라든지.)

요약하자면 외전은 참가자의 부재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고 캠페인에 깊이를 더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장기 캠페인의 흥미와 완급을 유지하는 데 거의 필수적이기도 하죠. 적극 활용하면 장기 캠페인 운영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진행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 (3) – 즉흥

RPG 창시자의 기일이 되어버린 GM의 날을 맞아 (?), 그리고 전에 물고기님과 한 얘기에서 생각난 것을 적어봅니다. 어떻게 보면 전에 썼던 많은 글을 재탕한 거기도 하군요.

진행이 어렵다는 얘기를 꽤 보게 됩니다. 실제로 저도 처음 시작할 때 어렵게 느꼈었고, 지금도 참가에 비하면 부담을 느끼는 것은 사실입니다. 요즘에는 그래서 진행자 없는 규칙에 부쩍 관심이 늘었고요. 그러나 좀 어렵게 느껴져도 또 굉장히 재미있을 수 있는 게 진행이며, 재미있으면서도 비교적 편하게 하는 열쇠를 저는 ‘즉흥’에서 찾습니다.

즉흥이라고 하면 더 어렵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사실 즉흥은 대개의 진행자가 이미 해본 것이며 진행 중에도 계속해서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참가를 할 때면 즉흥은 당연하게 하죠. 캐릭터 시트와 배경 설정이라는 기본 자료만 가지고 그때그때 상황에 반응해 인물의 행동을 선언하니까요.(주:물론 이게 어려운 분도 있습니다. 한 해결책으로 전에 질문을 제시했었고요.) 비슷하게 조연 (NPC)이 주인공을 만날 때도 무슨 말을 할까, 무슨 행동을 할까 하나하나 다 각본을 짜는 진행자는 (아마 거의) 없습니다. 성격과 설정에 따라 그때그때 상황에 반응해 서술할 뿐. 이렇게 보면 즉흥 자체는 진행자와도 먼 얘기는 아닙니다.

물론 진행자가 해야 하는 서술의 범위는 개별 인물 단위의 즉흥보다는 좀 더 넓습니다. 수많은 인물 외에 집단, 지역, 나아가서는 세계 자체가 진행자의 서술 범위에 들어가는 만큼 진행자는 참가자보다 준비를 더 많이 하고, 부담도 큽니다.(주:물론 설정 책임 등을 참가자와 나눌 수도 있습니다만, 그럴 때는 역할을 어떤 식으로 분담할 것이느냐의 문제가 또 남죠. 참가자가 그런 책임을 원하는지도 팀마다 다를 것이니 여기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인물 하나를 할 때와 마찬가지로 즉흥적으로 하라는 것은 무책임한 얘기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즉흥이란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제자리에서 만들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건 다같이 그 자리에서 설정과 상황을 만들어간다면 몰라도 진행자가 어느 정도 책임을 지는 것을 전제한 플레이에서는 직무유기에 가까우니까요. 그래서 여기서 얘기하는 즉흥은 ‘밑도끝도 없이 즉흥’이라기보다는 ‘준비한 즉흥’입니다. 즉, 인물을 일단 만들어놓고 그 설정에 맞추어 서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 전체든, 지역이든, 집단이든 설정을 만들어놓고 사건과 상황–특히 참가자의 선택–에 반응해서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준비한 즉흥’ 방식은 사건의 귀결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하고 선택지를 만든다거나 하는 시나리오 방식에 비해 사전 준비 노력이 덜 들고, 참가자 자유도를 살리기 좋고, 무엇보다 진행자 자신도 전개에 따라 놀라게 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구성, 개연성, 주제의식, 복선 등도 설정을 만들고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내적 일관성, 설정을 통해 표현하는 주제, 현재 전개상 미래에 나왔으면 좋겠을 장면 등을 고려해가면서 할 수 있고요.

진행을 즉흥적으로 하면 참가자의 선택으로 곤란해질 일은 없어집니다. 행동 그대로 결과를 주면 되니까요. 예를 들어 공작이 제3 세력에 암살당하는 것과 주인공 일행이 구해내는 것 사이에 선택지를 만들고 준비했었는데 주인공 일행이 공작을 살해해 버린다면 미리 준비한 전개가 틀어질 수도 있겠지만, 미리 만든 설정을 상황에 반응해 움직인다면 주인공 일행은 쫓기는 몸이 된다든지, 사실은 공작의 후계자가 배후에서 조종한 일이었다든지 하는 식으로 그 상황에 따를 만한 결과를 서술하면 됩니다. (이때 뻔해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런 면에서 준비한 즉흥은 시나리오 진행의 보조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준비한 즉흥 방식을 정형화한 좋은 예로는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에 나오는 마을 제작 길잡이가 있습니다. 어떤 마을에서 무엇이 어디까지 잘못되었는가, 어떤 인물들이 휘말렸는가, 그들이 주인공 일행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주인공 일행이 마을에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를 정해놓고 주인공 일행을 이 마을 한가운데 빠뜨려서 상황을 전개하는 것이죠. 승한님이 이 기법을 M&M 플레이에 활용하기도 하신 등, 규칙과 상관없이 폭넓게 적용할 수 있는 기법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리플레이가 없군요! 찰싹찰싹)

그 외에 제가 즉흥을 하는 방식을 정리한 글로는 준비와 진행, 관리가 있고, 즉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참가자의 흥미를 끄는 방식은 신호 중심 준비 방식이 있습니다. 신호 중심 준비와 진행의 구체적인 예로는 영혼의 우물 단편이 있고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글이면 좋겠고, 많은 질문과 비판, 반론 부탁드립니다~

진행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 (2) – 질문

물고기님과 얘기하면서 떠오른 내용입니다. 물고기님의 질문 내용이자 전에도 몇 분에게 들은 고민은 바로 언제 끼어들고 언제 행동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었죠. 그럴 때 참가자와 진행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바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플레이 중 막힐 때 해결책은 간단합니다. 잘 모르겠는 건 물어보면 됩니다. ‘지금 눈앞에 적이 있나요?’ 라든지, ‘주변에 사람이 많아요?’ 혹은 좀 더 추상적으로 ‘우리가 지금 발언을 할 수 있는 분위기인가요?’ 등등. 궁금한 게 한두 가지 사실이 아니라 그냥 뭘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는 ‘선택지를 제시해 주세요.’ 하는 요구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행동에는 무엇무엇이 있나요?’의 변형일 뿐이기도 하고요.

막혔을 때 진행자에게 질문하는 것은 진행자를 도와주는 일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진행자는 (불행히도) 독심술이 없습니다. 따라서 참가자는 헤매고, 진행은 안 나가고, 다들 막막한 게 역력한 상황에서 어떤 점이 잘 전달이 안 되고 있는지, 어떤 정보가 더 필요한지, 어떤 부분에서 행동 선택지를 더 명확하게 해야 할지 진행자가 스스로 알아내기는 어렵습니다. 진행자의 전달 사항은 진행자 자신이야 완벽하게 이해하죠. 중요한 건 ‘진행자가 말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참가자가 이해한다’는 소통 부분이므로 참가자는 이해가 안 될 때는 적극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질문이 너무 많으면 진행자의 전달 능력이나 참가자의 이해 능력, 혹은 양자의 소통에 뭔가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들 수 있습니다. 그건 맞습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질문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전달이나 이해, 소통에 문제가 있는 부분을 드러낼 수 있고 해결도 할 수 있으니까요. 기침을 참는다고 병이 낫지 않듯, 질문이 생기는 원인은 질문을 안 한다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물론 주의를 기울이고 서로 주의깊게 상대의 대사나 선언, 묘사를 해석하는 집중력은 필요합니다. 전혀 안 듣고 있다가 “마스터, 방금 뭐라고 그랬어요?” 소리를 연발하는 참가자라면 좀 문제가 있겠죠. 하지만 그럴 때라 하더라도 질문은 문제를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마스터, 지금 다들 위치가 어떻게 돼요?” 하는 질문이 자주 나온다면 진행자는 위치 설명을 충분히 하지 않는구나… 하는 자각을 하고 고칠 수도 있겠죠.

질문이 쓸데없는 것인 때도 있습니다. “공주를 죽인 건 누구에요?” 같은 질문에 “그게 지금 여러분이 알아낼 일이에요. ㅡㅡ;;” 라는 대답이 돌아올 수도 있죠. 그렇다면 그것 역시 중요한 질문입니다. 플레이 중 과제를 확실히 알았으니까요. 대답해줄 수 없는 질문조차 그 대답해줄 수 없다는 사실 자체에 충분한 가치가 있죠.

진행자가 참가자에게 던지는 질문도 마찬가지로 도움이 됩니다. 선언이 불명확할 때 (“사천왕 중 어느 쪽을 공격하죠?”), 행동의 결과가 참가자가 바라지 않는 것일 것 같은 때 (“함정 해체 안하고 들어가나요?”), 플레이가 잘 안 풀리고 있을 때 (“지금 지루한 건 저 혼자뿐?”) 등등. 그러나 진행 방식이 참가자와 상당 부분 정하고 들어가는 의논형이 아니라면, 왠만하면 선언에 불명확한 게 없는 이상 바로 그 행동에 효과를 주는 게 더 긴장감 있다고 보기는 합니다.

이상과 같이 플레이 중 질문의 효용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질문이 잘 안 나오는 건 비단 놀이문화뿐 아니라 문화 전반적 현상이기도 한데요, 플레이를 완전히 질문으로 도배할 필요는 없지만 막혔을 때, 막막할 때, 잘 모르겠을 때야말로 질문을 던져야 할 때가 아닐까요. 특히 글 첫머리에 언급한, 플레이 중 막막한 일이 잦은 참가자에게는 큰 도움이 되리라고 봅니다. 질문을 하는 데 어떤 심리적, 사회적 장벽이 있는지, 그걸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하는 논의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마스터링 – 준비와 진행, 관리

제가 처음 진행을 시작하면서 제일 막막했던 것은 어떻게 캠페인을 시작하고 지속하는지 하는 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 시작한 이래 이런저런 글을 읽어보고 나름 시행착오를 거친 결과 형성된 제 스타일이랄까,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준비

(1) 기획과 모집

캠페인을 준비할 때면 우선 어떤 규칙과 배경을 할지 생각해서, 그리고 동시성 플레이라면 시간대를 정해서
모집하는 방법을 선호합니다. 처음부터 ‘이런 플레이를 이때 한다’는 기반을 정해두면 취향과 시간대가 맞는 사람을 구하기가 한결
쉬워지니까요. 물론 언제나 이런 식으로 시작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만, 본격적으로 돌리려면 경험상 제일 좋은 방법이긴 하더군요.
이 시점까지 캠페인 내용이나 배경의 자세한 사항은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분위기나 전형적인 진행 같은 건 막연하게 있을 수
있지만요.

(2) 제작

일단 사람이 모이면 주인공을 만듭니다. 보통 모두 함께 모여서 캐릭터를 만드는 세션을 하나 합니다.
이게 제가 보기에 준비 중 가장 중요한 과정으로, 배경과 성격 등 주인공에 대한 사항, 특히 이 캐릭터를 통해 표현하려는 로망 파악에
중점을 둡니다. 인물의 동기와 성격, 주변 사람과의 관계 등에 대해 해석이 일치하는지, 이 부분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은데
참가자 생각은 어떤지 등등 질문을 통해 인물 해석을 다듬고 조율합니다. 캠페인중 어떤 걸 보고 싶은지 하는 제안도 이때 많이
주고받을 수 있지요.

(3) 구상

다음, 캠페인 주요 조연과 시작 상황을 생각합니다. 주인공과 관련된 인물들을 끌어다가
이들의 목적,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을 생각해 이들이 어떤 상황을 만들지 생각해 봅니다. 주인공 주변 인물을 재해석하고 제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캠페인에 저 자신의 취향을 반영하고, 동시에 참가자들에게는 자신이 만든 설정에 새로운 해석과 의외성을 부여한다는
면에서 아주 즐거운 과정이죠. 또한, 주인공들의 과거와 목적, 극적 지향 등을 생각해 어떤 상황에 빠지면 재밌을까 궁리하면서 그
상황을 창출할 수 있는 인물들도 설정합니다. 그런 극적 상황에 등장할 만한 배경의 세부사항이 필요하면 설정해서 채웁니다. 이
과정에서 참가자들과 폭넓게 의견을 교환하려고 노력합니다.

이상이 준비 과정입니다. 단편이나 단기 플레이에서도
거치는 과정이지만, 캠페인보다는 짧게 지나간다는 차이가 있겠죠. 주인공을 만드는 과정은 좀 몰아붙이면(..) 30분 내에도 할
수 있고, 많이 몰아붙이면 5분 10분도 됩니다. (다만 거의 제가 만드는 것에 가까워져서 선호하지는 않습니다.) 상황과 인물
설정은 빨리 하려고 하면 주인공 제작과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서, 단편이라면 주인공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면서 머릿속에 슥슥
스쳐가는 것들을 가져다 씁니다.

2. 진행

(1) 원칙

플레이 들어가면 일단 시작 상황을 내놓고 참가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나 봅니다.
참가자들이 반응하면 거기에 따라서 다시 변화가 생기고, 저는 그 변화를 심리적 반응이든 물리적 반응이든 표현합니다. 그렇게
연쇄반응이 일어나면서 플레이가 굴러갑니다. 그러다가 참가자가 어떻게 할지 몰라서 플레이가 정체되고 그 반응의 연쇄가 끊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면 다시 참가자 배경에 있는 NPC 중 노는 애들(…)이 있나, 참가자 하나 이상이 좋아할 만한 극적 상황이
있나, 필요한 정보가 있나, 아니면 그냥 반응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있나 (“갑자기 닌자들이 뛰어듭니다!” “문을 열자 백작의 시체가 품 안에
쓰러집니다!”) 생각해서 다시 상황을 내놓고 연쇄반응을 일으킵니다.

(2) 문제 해결

이상적으로는 이렇게 해서 매끄럽게
나갑니다만, 어떤 때는 영 잘 안 풀릴 때가 있습니다. 극적 상황을 생각하고 배경 세계의 공백을 채우는 준비가 부족했는데
즉흥으로 만들어내는 것도 잘 안 되거나, 아니면 연쇄반응이 일어나긴 나는데 영 산만하고 재미가 없다거나. 그럴 때면 참가자들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뭔가 잘 안 되고 있는데 좋은 생각 없느냐고 말이죠. 이런 때 억지로 계속하면 꼭 후회할 일이 나서.. 물론
저는 재미없는데 참가자는 괜찮은 때도 있고, 저는 재미있는데 참가자는 지루한 때도 있으니까 이런 데서 의사소통의 중요성이 나오는
거겠죠.

3. 관리

세션이 끝나면 되도록 플레이에 대해 얘기해보고, 특히 플레이중 문제가 된 것이
있으면 꼭 논의합니다. 다음 세션 시작하기 전에도 첫 세션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지나간 플레이의 사건을 고려한다는 점이
다르겠죠. 앞뒤가 안 맞는 데가 있으면 생각해보거나 의논해보고요. 특히 주인공에 대해서는 가끔 중간점검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극적 진행은 서로 만족스러운지 등등.

이런 식으로 하는 게 제 대체적인 스타일인 것 같습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변형은 있지만, 기본 틀은 이런 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