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 Archives: Seunghan Oh

역사를 만드는 RPG, 마이크로스코프 펀딩 시작!

이야기와 놀이의 신작, 마이크로스코프 펀딩이 시작됐습니다. (링크)

마이크로스코프는 2011년 벤 로빈슨이 만든 RPG로, 플레이어 2~4명이 모여 즉석으로 가상의 역사를 만들어 탐구하는 롤플레이 게임입니다. 플레이어들은 “은하제국의 흥망성쇠”, “아틀란티스가 가라앉은 후의 세계”처럼 하나의 핵심 아이디어를 만든 다음, 이 아이디어를 토대로 장대한 역사를 만듭니다.

이번 펀딩은 10월 24일까지 진행됩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참여해 주세요!

어둠 속에 나 홀로(Alone in the Darkness) 간단 소개

‘어둠 속에 나 홀로(Alone in the Darkness, 이하 AitD)’는 ‘어둠 속의 칼날’을 GM 없이 플레이할 수 있도록 만든 자료집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미씩 RPG와 마찬가지로 GM 역할을 대체하는 ‘GM 에뮬레이터’ 규칙 설명서이지요. 현재 드라이브쓰루 RPG에서 판매 중입니다. (링크)

솔로 플레이를 할 때, 플레이어는 캐릭터가 무슨 행동을 할지, 무슨 말을 할지 상상하면서 플레이를 진행합니다. 그러다가 GM에게 물어볼 일이 생기면 (“혹시 여기 경비병이 있지 않나?” “바즈소 바즈는 벌집한테 무슨 선물을 주었을까?”) GM 에뮬레이터에게 질문을 합니다.

플레이어는 캐릭터한테 유리할 질문을 할 수도 있고, 불리한 질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혼자서 하는 플레이이고, TRPG에서는 승리도 패배도 없으니, 자유롭게 물어보세요.

AitD의 GM 에뮬레이터는 두 가지 방식으로 돌아갑니다.

  1. 예/아니요 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 플레이어는 해당 질문의 가능성을 스스로 판단한 다음, 가능성이 높을수록 주사위를 많이 굴립니다. 그 중 가장 높게 나온 주사위 수를 봅니다. 결과값이 높을수록 YES에 가깝고, 결과값이 낮을수록 NO에 가깝습니다.
  2. 예/아니요 로 대답하기에 너무 복잡한 질문: d666을 두 번 굴린 다음, 주사위 결과에 따라 나온 아이콘(종, 바퀴, 가마솥, 돈, 성 등등…) 두 개를 서로 조합해서 질문과 가장 어울리는 결과를 만듭니다. 예를 들어 “돈”과 “관” 이라면 “돈을 내고 암살 청부를 했다.” 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AitD의 내용 대부분은 위 규칙을 설명하는 데 쓰이며, 나머지는 솔로 플레이를 할 때 NPC의 반응 판정, 건수 등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설명합니다.

 

그래서…

가격도 저렴해서 한 번 호기심으로 사 봤는데 괜찮네요. 특히 아이콘 부분을 해당 작품에 맞게 수정한다면 다른 RPG에서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만나지 못한지 꽤 오래 됐는데, AitD로 솔로 플레이나 할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Electric Bastionland 간략 소개

일렉트릭 배스쳔랜드는 ‘배스쳔’에서 거액의 빚을 갚아야 하는 실패자들의 모험을 다루는 RPG입니다. 배스쳔은 20세기 초 분위기의 거대한 도시로, 수많은 자치구 각종 세력이 얽히고 섥혀서 그 누구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하고 기이한 장소입니다. PC들은 어떠한 이유로든 인생을 망치고, 지금은 다른 PC들과 함께 공동으로 거액의 빚을 진 상태입니다. 이제 PC들은 배스쳔 안에서, 혹은 구석지고 후미진 바깥 마을에서, 혹은 불가사의한 지하세계에서 부와 명성을 찾아 헤메야 합니다.

OSR RPG

일렉트릭 배스쳔랜드는 OSR의 게임 철학을 공유하는 작품입니다.  OSR RPG가 어떤 건지는 이 글과 아래 발췌글을 참조하세요.

OSR RPG의 흐름

프린키피아 아포크리파에서는 OSR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여러분의 캠페인은 다음 요소를 지닐수록 올드 스쿨에 더 가깝습니다. 죽기 쉬움, 오픈 월드,
미리 만든 플롯이 없음, 창의적인 문제 해결 강조, 탐험 중심의 보상 규칙(보통 보물을 획득해서 얻는 경험치), “전투 난이도 조절 무시”, 플레이어와 GM 양쪽 모두가 예측하지 못할 상황을
만드는 무작위 표 사용. 하우스 룰과 직접 만든 아이디어를 권장하는 경향, 여러분이 만든
내용을 기꺼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이 만든 창의적인 내용을
여러분 캠페인에 활용하는 자세.”

일렉트릭 배스쳔랜드의 특징

일렉트릭 배스쳔랜드 역시 위와 같은 올드 스쿨 풍 RPG로서, 위험한 장소에서 탐험을 펼치는 이야기를 만드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 중 가장 돋보이는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간결한 규칙: 일렉트릭 배스쳔랜드의 규칙은 무척 간결합니다. 책 자체는 300페이지가 넘지만 그중 200페이지는 백가지 망한 인생을 소개하고, 나머지 100페이지는 마스터를 위한 조언을 담았습니다. 실제 게임 규칙은 두 페이지 정도입니다.
  2. 백가지 망한 인생: 일렉트릭 배스쳔랜드에서는 캐릭터를 만들 때, 세 가지 능력치(근력, 민첩, 매력)를 각각 3d6으로 굴려서 가장 낮은 결과와 가장 높은 결과를 가지고 100개의 플레이북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예를 들어 가장 낮은 능력치가 8이고, 가장 높은 능력치가 15이면, PC는 “파이 밀수업자”가 됩니다. 그런 다음 HP와 초기 소지금 역시 1d6을 굴리고, 결과에 따라 추가 능력이나 물품, 동료 등을 얻지요.
  3. 치명적인 전투: 일렉트릭 배스쳔랜드의 전투는 무척 짧지만 치명적입니다. 무엇보다도, 아군이든 적이든 공격은 무조건 명중합니다! HP가 깎인 다음부터 PC들은 공격을 맞을 때마다 죽을 위기에 처합니다. PC의 HP는 적으면 1, 많아도 6이기 때문에 정말로 이길 자신이 없으면 정면 대결은 피하는 게 좋을 것입니다(물론 중간에 성장할 수도 있지만, 매우 힘들고 위험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4. 친절한 조언: 일렉트릭 배스쳔랜드는 비록 규칙은 간결하지만, 그 어떠한 OSR RPG보다도 플레이어와 “지휘자”(마스터를 칭하는 말입니다)를 위한 조언이 무척 체계적으로 갖추어져 있습니다. 지휘자는 플레이어들의 선언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전투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플레이어로서 갖춰야 할 자세는? 배스쳔/바깥 마을/지하세계의 모험을 만드는 방법은?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마치 아포칼립스 월드의 강령과 원칙, GM 액션을 OSR에 접목한 느낌입니다.

그래서…

‘울타리 너머’ 이후 많은 OSR 작품을 봐 왔지만, 일렉트릭 배스쳔렌드는 그 중에서도 유난히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현재 킥스타터 펀딩을 끝나고, 막 PDF가 후원자들에게 공개된 상태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꼭 번역해보고 싶네요.

Dark Streets & Darker Secrets 간략 소개.

블랙 핵이 큰 인기를 끌면서, 블랙 핵을 기반으로 한 OSR RPG들이 여러 개 나왔습니다. 그중에서도 “어두운 거리와 어둡디어두운 비밀” (Dark Streets & Darker Secrets, 이하 DS&DS)은 제가 무척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DS&DS는 ‘월드 오브 다크니스’나 ‘슈퍼내추럴’ 같은 어반 판타지 RPG로, 현대 세계의 이면에 도사린 초자연적 존재와 어둠에 맞닥뜨린 인간을 플레이하는 게임입니다. 짤막한 감상을 이야기하자면, 예전에 D&D 3rd 시절 자매작으로 나온 ‘d20 모던’을 블랙핵 기반으로 개조한 다음, 이를 어반 판타지 전용 RPG로 바꾼 느낌입니다. 몇 가지 특징을 소개하자면…

블랙 핵 기반의 간편한 규칙: 블랙 핵 기반 RPG답게 DS&DS는 간편한 규칙을 자랑합니다. 다만 블랙 핵과는 다르게 DS&DS는 4개의 능력치를 기반으로 하며(육체, 민첩성, 지능, 의지력), 여기에 CoC처럼 제정신 정도를 나타내는 ‘이성’과 캐릭터들의 운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행운’ 수치가 추가됩니다. 다만 블랙 핵 자매작들에서 흔히 사용하는 소모품 주사위(Usage Dice) 규칙은 나오지 않으며, 주사위도 20면체와 6면체만 사용합니다.

능력치 기반의 캐릭터 아키타입: DS&DS는 d20 모던과 마찬가지로, 능력치 기반의 캐릭터를 플레이합니다. 힘센 캐릭터, 날랜 캐릭터, 똑똑한 캐릭터, 신비한 캐릭터. 각각 이름만 들어도 어떤 능력에 특화된 캐릭터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신비한 캐릭터는 타고난 혈통으로 마법이나 초능력을 사용합니다.

각종 무작위 표: DS&DS에서는 ‘미로의 쥐’처럼 마스터를 위해 무척 많은 무작위 표를 제공합니다. 캐릭터들의 삶에 무슨 골칫거리가 끼었는지부터 시작해서, 모험 장소와 목적, 등장할 만한 적수와 동료, 거리와 건물의 특징, 도시의 소리와 냄새, 광경, 각종 파벌의 특징과 목적 등등… 무작위 표의 결과를 잘 엮을 수 있는 마스터라면 분명 DS&DS를 무척 좋아할 것입니다.

마법과 초능력: DS&DS의 마법과 초능력은 무척 강력하지만, 그만큼 위험합니다. 판정에 실패한 마법/초능력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부르며, 대실패가 나올 경우에는 몸과 마음이 타락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DS&DS는 간편하고 범용적인 어반 판타지를 플레이하기에 안성맞춤인 작품입니다. 언젠가 한번 돌려보고 싶네요.

다른 이야기지만, 최근에는 ‘늑대 떼와 겨울 눈‘의 작가인 에미 엘런이 ‘Esoteric Enterprises라는 작품을 냈는데, 같은 어반 판타지 OSR RPG지만 이 쪽은 범죄와 암흑가, 지하 탐험 등의 소재를 깊게 파고 있습니다. 액션 활극에 가까운 DS&DS와는 다르게 분위기도 더 어둡고 잔혹하고요. 이 작품도 기회가 되면 한 번 소개하겠습니다.

어떻게 ‘울타리 너머’를 번역하게 되었는가

‘울타리 너머, 또 다른 모험으로’를 번역한 연유를 말하자면, 우선 ‘월드 인 페릴’ 이야기부터 해야겠네요.

월드 인 페릴은 AWE 자매작 중에서도 무척 개성이 넘치는 작품입니다. 월드 인 페릴의 가장 큰 특징은 다른 슈퍼히어로 RPG와는 다르게 캐릭터들의 능력을 수치(비행 3단계, 에너지 방출 10d 등)가 아닌 서술(시속 100km로 날기, 돌로 된 벽 부수기 등)로 표현한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캐릭터들이 받는 피해 역시 단순한 생명 점수가 아닌 상태(분노, 다리가 부러짐, 아찔함 등)로 나타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월드 인 페릴의 편집장(GM)은 그 어떤 RPG보다도 장면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플레이어들이 하는 행동을 잘 파악해서 캐릭터들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룰로 나타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악당이 “눈멂” 상태를 얻었다면, 등 뒤로 몰래 돌아가 기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리를 다친 악당은 빨리 뛰지 못할 것이며, 페인트에 뒤덮인 악당은 투명 능력을 사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월드 인 페릴 p.204

 

다시 말해, 월드 인 페릴은 GM이 “룰링”을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RPG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월드 인 페릴과 룰링’이라는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월드 인 페릴은 특히 룰링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예를 들어 파워 목록의 각 수준(간단함/힘듦/한계선)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명시적으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단지 마스터가 난이도를 보고 해당 능력을 사용하는 게 얼마나 위험하고 힘든지,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결정해야 합니다. 약점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적의 약점을 노리면 어떤 추가 효과가 있나요? 역시 이야기 속 상황에 따라 마스터가 그 효과를 선택합니다.

‘월드 인 페릴과 룰링’ (링크 클릭)

 

룰링이라는 개념은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월드 인 페릴을 접하면서 새삼 중요하게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룰링을 자세히 소개한 “올드 스쿨 게임 속성 입문서” (A Quick Primer for Old School Gaming, 링크 클릭)를 관심 있게 보기 시작한 때도 이런 이유였죠. 이 입문서는 D&D 3rd 이전의 고전 판타지 모험 RPG, 그리고 이후 등장한 복고풍 RPG(이하 OSR)가 현대의 RPG 스타일과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하는 자료입니다. (간략한 소개는 다음 링크를 참조하세요.)

예전에 모 RPG을 마스터링할 때 “탁자 위에 올라가서 후려치겠어요!” “다리 사이로 미끄러지겠어요!” 같은 다채로운 전투 선언을 단순하게 공격 판정으로 처리하다가 따분하다는 쓴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이 자료에서 설명하는 OSR의 전투 예시는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룰링을 강조하는 OSR에 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몇몇 작품은 국내에 꼭 소개하고 싶었죠. 그렇다면 왜 ‘울타리 너머’를 여러 OSR 작품 중에서 맨 처음으로 선택했을까요? ‘관심 있는 OSR 작품’ (링크) 라는 글에서 썼지만, 다시 그 이유를 설명하겠습니다:

OSR 중에서는 분명 재미있는 작품이 많지만, 상당수는 다른 OSR 자매작과 호환해서 사용해야 더 재미있습니다. 대부분의 OSR RPG는 고전 D&D의 용어와 규칙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기 때문에, 조금만 손을 보면 다른 OSR 자매작에도 활용을 할 수 있고, 이렇게 여러 작품을 섞어서 나만의 OSR을 플레이 하는 것이 OSR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호환할 만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OSR RPG가 있더라도 다른 OSR 자매작들이 같이 나와주지 않는 한 진정한 재미를 느낄 수 없습니다. (이야기와 놀이 혼자만으로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울타리 너머는 다른 OSR 자매작 없이도 자기 완결성이 충분하며, 초보자들도 즐기기 쉬운 무척 훌륭한 작품입니다. 이야기와 놀이에서 낸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울타리 너머’는 아주 유명하지는 않지만, 여러분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RPG였습니다.

다행히 여러분의 성원 덕분에 펀딩은 좋은 결과를 냈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욕심을 낸 결과가 ‘미로의 쥐’ 번역이었습니다. 비록 미로의 쥐는 분량은 적지만 정말로 알찬 RPG입니다. OSR 팬들 사이에서는 반드시 즐겨야 하는 작품으로 꼽히고 있죠. 그야말로 OSR의 정수를 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가능하면 울타리 너머와 미로의 쥐 둘 다 즐겨주세요. 미로의 쥐에는 울타리 너머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흥미진진한 무작위 표가 많습니다. 반대로 울타리 너머의 시나리오 묶음, 자료집 ‘머나먼 곳으로’의 장기 캠페인 규칙은 미로의 쥐를 즐길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니컬님이 번역한 ‘블랙 핵’도 한 번 눈여겨보세요(링크, 추가 규칙). 블랙 핵 역시 무척 훌륭한 OSR RPG입니다. 그리고 OSR RPG가 아니더라도 국내에 나온 D&D 기반의 다른 RPG(던전 월드, 13시대, D&D 5판 등등)들에서도 아이디어를 가져오세요. 그렇게 해서, 언젠가는 여러분이 직접 여러분만의 RPG를 만들어보세요. OSR의 가장 큰 열매는 팬들이 만든 새로운 작품입니다!

전통적 RPG에서 사용할 수 있는 플레이어의 선언-마스터의 반응 절차

전통적 RPG에서 판정을 할 때, 플레이어가 어떤 식으로 선언해야 하며, 마스터가 이를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적어보았습니다. AWE나 어둠칼의 경우, 이러한 절차가 이미 규칙 안에 녹아있기 때문에 상당 부분 생략해도 됩니다.


1) 플레이어의 선언 (http://blog.storygames.kr/entry/roleplaying_ability_gap)

행동 묘사로 시작하기: “무엇을(행동의 목적)”, “어떻게(행동의 수단)”. 마스터는 플레이어의 묘사가 이해가지 않는다면 왜 그런 수단을 썼는지 물어본다.

예시- “방패로 손을 쳐서 적이 든 무기를 떨어뜨릴게요!”

예시 2- “바닥에 모래를 던져서 이 바닥이 진짜인지 환상인지 확인해 볼게요.” “그럼 어떻게 진짜 여부를 알 수 있다는 거죠?” “만약 가짜 바닥이면 모래가 환상의 바닥 아래로 떨어지겠죠.”

 

2) 마스터의 해석

2-1. 캐릭터의 행동은 픽션 내에서 가능한가?

예: 2-2로.

아니오: 왜 불가능한지 결정적인 요소를 설명. 만약 플레이어가 계속 그 행동을 하고 싶다면, 결정적인 요소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하도록 시킴. 다시 1)로.

예시- “지금 강한 바람이 불고 있어서, 모래가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방으로 날아갈 거예요. 우선 이 바람이 잦아들어야 모래를 뿌릴 수 있습니다.”

2-2. 캐릭터의 행동은 기존 규칙의 틀 안에 있는가?

예: 기존 규칙으로 처리. 2-3으로

아니오: 마스터의 상식을 활용해 가장 그럴듯한 규칙으로 해석한 다음(“룰링”) 2-3으로.

예시- “무장 해제”, “발을 걸어 넘어뜨리기” 같은 행동이 전투 규칙에 있는가? 캐릭터가 무언가 환상을 깨뜨릴 만한 행동을 한다면, 이걸 해결하는 규칙이 있는가?”

룰링의 원칙 (http://blog.storygames.kr/entry/ruling)

ⓛ 인과 관계를 명확하게

② 자세하게 묘사하기

③ 일관성 있게

④ 해당 장르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⑤ 테이블의 동의를 얻어서.

예시 – “무장 해제 규칙은 없지만, 공격 대신 근력으로 겨루기 판정을 한 걸로 간주하겠습니다.”

2-3. 플레이어의 동의 얻기: 플레이어가 기대한 대로 처리되었나?

예: 2-4로

아니오: 서로 대화하면서 조정하기, 최종 결정은 마스터가 내림.

예시- “마스터, 민첩성 겨루기 판정이 더 어울리지 않나요?” “좋아요. 민첩성 겨루기로 하죠.”

2-4. 난이도/효과/리스크 등을 정하기: 효과나 처지가 예측 가능한 상황이면 플레이어에게 대략적인 정보를 알려 줄 수 있음.

난이도: 해당 판정은 얼마나 어려운가?

효과: 판정이 성공할 경우 기대 가능한 효과

리스크: 판정에 캐릭터가 실패했을 때 (혹은 성공하더라도) 감수해야 할 효과.

예시- “민첩성 판정에 -2 페널티를 받으세요. 성공하면 적의 손에서 무기를 떨어뜨리지만, 성공유무와 관계없이 방패를 공격에 사용한 탓에 다음 라운드까지 방패 보너스를 받지 못합니다.”

 

3) 행동 판정

보통 주사위를 굴리지만, 경우에 따라서 주사위 굴림을 생략할 수도 있음.

예시- “바닥에 모래를 뿌리니까, 모래가 보이지 않네요. 판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4) 마스터의 결과 선언

마스터는 2-4에서 정한 효과와 리스크를 적용한 후, 픽션 속 상황이 어떻게 변했는가 설명. 그 다음은 “어떻게 하나요?”라고 플레이어에 묻기. 효과와 리스크가 적용된 픽션 속 상황은 반드시 판정 전과 달라져야 한다.

예시- “적의 칼이 떨어졌습니다. 적은 무기를 줍는 대신 여러분을 붙잡으려 합니다! 근력으로 겨루기 판정을 하죠. PC는 방패든 손을 이미 다른 데에 썼으니까 페널티를 받을 겁니다.”

 

 

 

블러드 핵 간단한 소개

블러드 핵은 OSR RPG인 “블랙 핵”를 기반으로 하는 현대 뱀파이어 RPG입니다. 당연히 WOD의 영향도 받았습니다. 블랙 핵 감상문은 악마김씨님이 쓴 http://rpg-talk.net/Board/3714 를 참조하세요. 아래는 블랙 핵 규칙입니다.

 

블랙 핵 한국어판: https://the-black-hack.jehaisleprintemps.net/korean/

한국어판 추가 자료: https://the-black-hack.jehaisleprintemps.net/korean/additional-things.html

(번역: 오시욱님)

 

블러드 핵의 특징

블랙 핵의 기본적인 규칙은 위의 감상문과 한국어판에 나와있으니, 여기서는 블러드 핵만의 특징을 설명하겠습니다.

 

  1. 뱀파이어

블러드 핵의 뱀파이어는 인간보다 강한 괴물입니다. 우선 뱀파이어는 초자연적인 불로불사의 언데드이기 때문에 노화, 독, 호흡, 식사(피를 제외한) 등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또한 전자기기에도 감지되지도 않지요. 게다가 뱀파이어는 밤의 사냥꾼이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도 볼 수 있고, 피 냄새를 맡고 사람들을 추적할 수 있습니다.

또한 뱀파이어의 육체는 평범한 사람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피해는 절반만 받으며, HP가 0 이하로 떨어져도 행동불능이 될 뿐 죽지 않습니다. 물론 태양빛과 불, 은 무기에 닿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요…

 

  1. 피와 인간성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의 영향을 받은 뱀파이어 RPG답게 블러드 핵에서는 피와 인간성이라는 수치가 등장합니다. 각 수치는 소모품 주사위(Usage Die)로 되어 있어서, 줄어드는 일이 발생할 때마다 주사위를 굴려서 1-2가 나오면 아래 단계로 떨어집니다. (d20→d12→d10→d8→d4→없음)

피는 뱀파이어가 살아가기 위한 식량으로, 인간이나 동물에게서 얻습니다. 기본적으로 일정 시간이 지날 때마다 줄어들며, 피를 소모해서 HP를 회복하거나 특수 능력을 사용할 때도 역시 줄어듭니다. 피가 완전히 없어지면 피에 굶주린 야수가 되며, 그 상태에서 피를 더 쓰면 죽음과도 같은 잠에 빠집니다. 뱀파이어는 레벨이 높아질수록 피를 더욱 많이 저장할 수 있습니다.

인간성은 다른 소모품 주사위와는 달리 d4부터 d20까지 올라가는데, d4면 성인에 가깝고, d20이면 괴물이나 다름없습니다. 인간성이 d20을 넘으면 완전한 야수가 되어 NPC로 전락합니다. 뱀파이어는 인간성이 높을수록 피를 덜 먹고 각종 뱀파이어의 약점에서 벗어납니다. 반면 인간성이 낮아질수록 힘과 피해가 강해지는 대신 여러 가지 제약을 받습니다.

 

  1. 네 가지 가문

블러드 핵에서는 마법사 가문 아눈나키, 새롭게 떠오르는 전사 가문 드라쿨, 변신술사이자 사냥꾼인 엔키두, 유혹자이자 연인인 릴림 이렇게 네 가지 가문이 있습니다. 각 가문마다 다양한 특징과 장점이 있습니다. (레벨 당 얻는 HP나 사용할 수 있는 무기, 가문 능력 등)

 

  1. 특수 능력과 혈마법

블러드 핵의 뱀파이어들은 하늘을 날거나, 동물을 지배하거나, 인간을 조종하는 등 다양한 특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특수 능력은 하급, 중급, 상급으로 나누어지며, 레벨이 오를 때마다 일정 개수의 특수 능력을 얻습니다. 일부 능력은 피를 소모해야 합니다. 혈마법은 무척 강력하지만, 많은 시간과 피를 소모하는 능력입니다.

 

  1. 각종 적과 NPC

블러드 핵에서는 평범한 인간부터 고대 뱀파이어까지 뱀파이어물에 어울리는 40가지 적과 NPC가 등장합니다. 각각 짧은 소개글과 수치, 특수 능력이 있습니다.

 

결론

앞에서도 말했듯 블러드 핵은 d20 규칙에 ‘뱀파이어:더 마스커레이드’의 분위기를 섞은 RPG입니다. 다른 블랙 핵 자매작과 마찬가지로 블러드 핵 역시 무척 간결한 작품이지만, 60페이지도 안 되는 내용 안에서 깔끔하게 잘 만들었네요. 다만 GM 가이드나 세계 설정이 거의 없다시피 하므로 이미 d20과 WOD의 문법에 익숙할수록 플레이를 쉽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만들어 가는, 우리만의 이야기놀이, TRPG

 

기획회의 486호(2019.04.20)에 기고한 글입니다. (리디북스 링크)

 


 

우리가 만들어 가는, 우리만의 이야기놀이, TRPG

 

어느 놀이 이야기

“여러분 앞에는 3m 정도 높이의 커다란 문이 있습니다. 나무로 만들었고, 튼튼해 보이네요. 덫은 없어 보이지만 문을 열지 못하도록 반대편에서 막은 것 같습니다.”

“문 상태는 어떤가요?”

“적어도 몇백 년은 된 것 같아요. 자세히 보면 여기저기 썩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들이받아서 부수겠습니다.”

“근력 판정을 하세요.”

“주사위를 굴려 보겠습니다… 성공했네요!”

“문은 우지끈! 하는 소리를 내면서 부서집니다. 문 안쪽 방 한가운데는 거대한 악마상이 있고, 석상 앞에는 붉은 피부의 괴물이 이쪽을 바라봅니다. 한눈에 봐도 무척 화난 것 같네요.”

“두말할 것도 없네요. 칼을 뽑습니다.”

“저는 일행들에게 축복의 마법을 걸겠습니다.”

“좋아요, 전투 준비하세요.”

위의 이야기는 즉흥극도 아니고, 소꿉놀이도 아니다. 더더구나 컴퓨터 게임도, 보드게임도 아니다. 바로 TRPG를 하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대화다.

TRPG?

테이블탑 롤플레잉 게임, 즉 TRPG는 플레이어들이 테이블에 모여 상상 속 무대에서 살아가는 캐릭터를 맡아서 캐릭터의 말과 행동을 선언하는 역할연기 놀이이다. 플레이어들은 캐릭터가 가진 능력과 성격 등을 바탕으로 역할을 수행하며, 캐릭터들의 행동이 성공했는지는 정해진 규칙과 지침에 따라 결정한다. 플레이어 중 한 명은 게임마스터 역할을 맡아 캐릭터들이 만날 친구나 적, 그리고 세계 그 자체를 연기하고 전체 플레이를 조율한다.

난독증도 치료하는 TRPG의 매력

2017년, 미국 잡지 《뉴요커》에서는 ‘던전스 & 드래곤스의 기이한 부활’이라는 제목으로 TRPG의 대표주자인 ‘D&D(던전스 & 드래곤스)’가 새롭게 인기를 끌고 있는 현상을 분석했다. 이 기사에서는 자신의 보드게임 카페에서 아이들을 위해 D&D의 게임마스터를 맡고 있는 존 프리먼이 겪은 이야기를 소개했다.

어느 날, 어느 플레이어의 어머니가 길가에서 존을 불러 세우더니, 눈물을 흘리며 말을 걸었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죠?” 그 여성의 아들은 난독증을 앓고 있었고, 몇 주 전부터 D&D를 플레이하기 전에는 단 몇 초도 글쓰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이제 그 아이는 밤을 새워서 자기 캐릭터의 이야기를 쓴다고 한다. “어떻게 했든 간에, 그 비법을 알려주세요.”

난독증을 앓고 있는 아이조차 글을 쓰게 한 TRPG의 매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TRPG는 게임이다

아이가 TRPG에 푹 빠진 이유는, TRPG가 즐거운 놀이이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형식을 갖추고 규칙을 추가한 놀이, 즉 ‘게임’이다.

사람이 즐기면서 무언가를 할 때 발휘되는 잠재력은 무척 크다. 공자는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라고 말했다. 이 아이 역시 자기 캐릭터의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을 놀이로 인식했기에 장애마저 극복하고 자신의 캐릭터를 위한 글을 쓸 정도로 몰두할 수 있었다.

게임이 즐거운 이유는 무엇인가? 《GAME-상호작용 이야기》(이용설 저)에서는 게임을 스토리텔링과 상호작용성을 조합한 매체로 본다. 스토리텔링은 상대에게 알리려는 내용을 재미있고 생생한 이야기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행위이다. 하지만 책이나 TV, 영화처럼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매체와는 달리 게임은 플레이어가 취하는 행동에 반응을 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이 행동과 반응이 연쇄 과정을 일으키면서 상호작용성을 만든다. 즉, 게임은 사용자를 스토리텔링 속에 참여하게 하는 매체이다. 직접 경험해서 받아들이는 내용이 얼마나 강력한지는 순자가 “듣지 않음은 듣는 것만 못하고, 듣는 것은 보는 것만 못하며, 보는 것은 아는 것만 못하고, 아는 것은 실천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강조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TRPG는 즉흥극이나 소꿉놀이와 어떤 점이 다르기에 형식을 갖춘 게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TRPG는 플레이어가 선언한 행동이 성공하는지 실패하는지, 혹은 어떤 식으로 이야기 속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결정하는 분명한 규칙을 가졌다. “내가 너를 칼로 찔렀어.” “아냐! 네가 칼을 휘두르기도 전에 내가 널 총으로 쐈어!”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TRPG에서는 규칙을 사용해 결과를 명확하게 정한다.

이처럼 TRPG가 게임이 된 이유는, TRPG가 게임말을 가지고 테이블 위에서 상대의 말과 싸워 이기는 미니어처 워게임에서 갈라져 나왔기 때문이다.

TRPG의 탄생과 발전

TRPG의 역사는 게리 가이각스가 TRPG 회사인 TSR을 세우고 D&D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게리 가이각스는 플레이어들이 각자 게임말을 하나씩 맡아 플레이하는 미니어처 워게임 ‘체인메일’을 만들었는데, 이후 게리 가이각스는 체인메일을 데이브 아네슨의 아이디어에 따라 가상의 세계에서 캐릭터들이 모험을 하는 형식으로 바꾸어서 1974년 최초의 D&D를 완성했다.

하지만 TRPG는 탄생할 때부터 워게임이나 보드게임과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TRPG의 진짜 목표는 정량적이고 명확한 승리 대신 플레이어들이 그 속에서 발생하는 이야기를 즐기는 데 있기 때문이다.

게리 가이각스와 데이브 아네슨은 D&D 플레이어 핸드북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잠시 생각해보자. 우리는 왜 게임을 하는가? 재미를 위해서다. 각각의 플레이들은 재미를 맛보면서 “승리한다” – 그러므로 당신이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면 당신은 승리한 것이다! 당신의 캐릭터가 죽는다고 해도 재미를 맛볼 수는 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나도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당신은 언제나 새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

롤플레잉 게임에서 이기는 것은 실제의 생활에서 이기는 것과 비슷하다. 당신이 하고자 했던 것을 이어가고, 그것을 통해 살아가는 것이다. 재미는 게임을 즐기는 데 있는 것이지, 끝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게임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이다. 모든 사람이 이기게 되고,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레전드 오브 더 파이브 링스, ‘세븐스 씨’ 등의 TRPG을 만든 게임 제작자 존 윅은 “만약 체스 말에 이름을 붙이고, 각 말이 가진 동기에 따라 말을 움직인다면, 이 게임은 롤플레잉 게임이다.”라고 말했다. 즉, TRPG는 승리를 위해 사용하고 소모하는 게임말을 캐릭터로 삼아 동기를 부여하고 감정을 이입하면서,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종류의 게임이 된 것이다.

이후 TRPG는 ‘크툴루의 부름’, ‘트레블러’,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 등의 작품이 나오면서 호러, SF, 어반 판타지 등 여러 장르로 뻗어 나갔고, 2000년대 이후에는 인디 RPG의 붐과 함께 ‘폴라리스’, ‘평온한 한 해’, ‘퀼’ 등 게임마스터를 두지 않거나, 플레이어들이 게임마스터처럼 세계를 관리하거나, 아예 혼자서 즐기는 규칙을 제공하는 등 실험적인 게임들도 많이 등장했다.

꺼지지 않는 TRPG의 인기

하지만 ‘규칙에 따라 이야기에 참여하는 게임’이라는 TRPG의 형식은 오늘날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CRPG)이 계승했고, 그에 따라 TRPG가 다른 게임에 비해 가지고 있던 장점은 상당 부분 퇴색되었다. 1970년대 중반 D&D에 영감을 받아 그 경험을 모사하기 위해 등장한 CRPG는 이후 컴퓨터와 비디오 게임 콘솔의 발전과 함께 플레이어들에게 화려한 영상과 사운드를 제공하며, 인간 게임마스터가 제공하는 것 이상으로 방대하고 복잡한 이야기를 펼친다. 게다가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RPG)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같은 가상 세계 안에서 동시에 협력해서 플레이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TRPG는 오히려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2018년 D&D 5판의 출판사 위자드 오브 더 코스트는 1997년 TSR을 합병한 이후 가장 많은 D&D 판매 실적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게다가 2016년 한 해 동안 D&D를 즐긴 미국인의 수는 860만 명에 다다른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또한 TRPG를 즐기는 미국 성우들이 진행하는 D&D 플레이 ‘크리티컬 롤’은 2016년 1월 기준으로 트위치에서 누적 시청 시간 3700만분을 기록했고, 유튜브에서는 1700만 명 이상이 시청했다.

한국에서도 현재 TRPG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90년대 중반 D&D(1983년 개정판)가 한국에 소개된 후 잠시 인기를 끌면서 몇몇 작품들이 추가로 소개되었다가, 초여명의 ‘겁스’ 시리즈를 제외하고는 긴 침묵에 빠졌던 한국의 RPG 시장은 크라우드 펀딩 시장의 활성화와 함께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에는 웹툰 작가 및 성우 등이 ‘던전월드’를 플레이한 영상 ‘침X펄X풍 TRPG’가 화제가 되었다.

CRPG의 등장과 발전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여전히 TRPG를 즐길까? CRPG가 대체할 수 없는 TRPG만의 강점은 무엇일까?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한 즉흥성과 커뮤니케이션

CRPG와 TRPG의 가장 큰 차이는 즉흥성과 커뮤니케이션의 유무이다. CRPG는 제작자가 완성한 스토리텔링이다. CRPG의 이야기에는 바꿀 수 없는 끝이 있으며, 플레이어들이 게임 안에서 할 수 있는 행동과 이에 대응하는 게임 세계의 반응 역시 제작자들이 준비한 내용을 벗어나지 못한다. 아무리 방대한 내용과 다양한 공략법이 준비된 대작 RPG라도 몇십 시간 동안 플레이를 즐긴 다음에는 콘텐츠 대부분을 소진한 채 다음 작품이나 업데이트, 또는 DLC가 나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려는 플레이어들은 자신들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 직접 MOD를 만들거나 혹은 인터넷 게시판이나 이메일, SNS를 통해 제작자에게 피드백을 주기도 하지만, 어떠한 방법을 사용하든 간에 즉석에서 해결할 수는 없으며, 의사가 제대로 반영된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TRPG는 즉흥적인 창조력과 플레이어들 사이의 상호소통이 필수적인 게임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이야기를 직접 만들어가는 놀이는 필연적으로 불확실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게임마스터는 아무리 많은 준비를 하더라도 모든 경우의 분기와 대응 방법을 생각할 수 없으며, 플레이어들의 행동을 완벽하게 조종할 수도 없다. 플레이어 역시 다른 사람들이 무슨 행동을 할지 모르고, 심지어는 스스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를 때도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참석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함께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놓아야 한다. 혼자만의 결정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TRPG는 모두 같이 즐기는 게임이며, 다른 플레이어들을 무시하는 순간 플레이는 재미없어 지기 때문이다.

그 결과, 게임마스터는 그 자리에서 새로운 세부사항을 덧붙이고 처음에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결말이나 반전을 만들곤 한다. 심지어 즉석에서 새 규칙을 고안할 때도 있다. 플레이어 역시 다른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선언을 할 뿐만 아니라, 게임마스터에게 제안을 던져 이야기의 방향을 새로 정하기도 한다.

테이블에서 만들어지는 맥락

이렇게 모두가 함께 창조력을 발휘해 만드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테이블에는 플레이에 참여한 사람들만이 공유하는 문화나 배경지식, 즉 그 테이블의 맥락이 생긴다. 같은 맥락을 공유하는 플레이어들은 어떠한 문제가 생겨도 서로를 믿고 플레이하다 보면 결국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다. 그러므로 맥락이 만들어진 테이블에서는 불확실성이 플레이를 위협하는 불안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질리지 않고 언제까지나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 된다. 맥락은 CRPG처럼 복제나 대량생산이 불가능하며, 오직 사람과 사람이 모여서 플레이를 해야 비로소 형성된다.

우리가 만들어 가는, 우리만의 작품

결국, TRPG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는 미리 완성된 기성품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시행착오를 거치고 좌충우돌하며 점점 더 멋지게 만들어 가는, 오직 우리만이 그 내역을 알고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겁스에서는 “RPG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런 설명을 했다.

다른 문화는 최대 다수의 관객을 노리고 만들어지지만, RPG 플레이는 참여한 사람들 모두가 순전히 자기들을 위해 만들어내는 “수제품”입니다.

자기 자신이 빚어낸 작품은 그 어떠한 걸작보다도 사랑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TRPG는 끊임없이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닐까?

 

 

올드 스쿨 RPG 원칙 해설서, 프린키피아 아포크리파

프린키피아 아포크리파

 

올드 스쿨 RPG의 마스터링 및 플레이 원칙을 설명한 자료집, 프린키파 아포크리파입니다.

이 작품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4.0 인터내셔널 라이선스 아래 자유롭게 배포할 수 있습니다.

출시 예정작: 푸른 수염의 신부

이야기와 놀이 출시 예정작, 푸른 수염의 신부를 소개합니다!

푸른 수염의 신부는 부유한 귀족 푸른 수염의 신부가 된 여성의 선택을 다루는 호러 RPG입니다. 물론 옛 동화 ‘푸른 수염’에서 모티브를 따온 작품입니다.

화려하고 거대한 저택에서 결혼식을 마친 다음, 새 신부는 신랑에게서 열쇠꾸러미를 받습니다.

“나는 볼 일이 있어 며칠 동안 나가봐야 하오. 이 열쇠들은 집 안의 모든 방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요. 어디든 열고 들어가 보시오. 하지만 이 작은 열쇠는 회랑 마지막에 있는 방을 여는 열쇠인데, 이 열쇠는 사용하면 안 되오. 이 곳만큼은 절대 들어가지 마시오.”

신랑은 길을 떠나고, 신부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여러분은 신부의 여러 인격인 ‘자매’ 중 하나가 되어 신부를 이끄는 역할을 합니다. 자매들은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반목하면서 신부를 집 안의 다양한 방으로 이끕니다. 신부는 각 방에서 여러가지 끔찍한 공포를 마주하면서 점점 망가지고 다치며 이 저택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파헤쳐갑니다.

그리고 마지막 방에서 지금까지 여러분이 내린 선택에 따라 결말이 정해집니다. 신부는 그 모든 공포와 참상에도 불구하고 신랑을 믿고 따를 것인가요? 아니면 불충하게도 푸른 수염을 피해 멀리 달아날 건가요?

그도 아니면, 호기심을 못 이겨 마지막 방의 문을 열고 진상을, 그리고 운명을 맞이할 것인가요?

푸른 수염의 신부는 내년 중후반 펀딩을 통해 한국어 출간을 할 예정이며, 번역은 로키(이지형)님이 맡습니다. 물론 룰북 뿐만 아니라 신부가 마주칠 여러 방과 물품 등을 소개하는 ‘Book of Rooms’, 여러 가지 대체 배경을 소개하는 ‘Book of Mirror’, 푸른 수염의 신부 플레이 흐름을 이야기로 재편성해서 소개한 ‘Book of Lore’도 같이 낼 예정입니다.

그럼, 내년 출간을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