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망상/이론적 분석'에 해당하는 글 24건

  1. 2010/07/31 로키 서술권 구분과 마스터링 (약 80%...)
  2. 2010/07/15 로키 묘사적 규칙과 서사적 규칙 도식
  3. 2008/08/29 로키 진행자와 참가자 서술권 구분의 영향 (5)
  4. 2008/04/27 로키 판정, 합의와 서사적 규칙 (3)
  5. 2008/04/08 로키 의외성의 4요소 (6)
  6. 2008/04/01 로키 역할극에 대한 생각 (2)
  7. 2008/03/04 로키 자료 중심 배경과 분위기 중심 배경 (4)
  8. 2007/11/24 로키 판정 - 가상현실과 극적 요소 (6)
  9. 2007/11/14 로키 판정 스트레스와 참가자 서술권 (5)
  10. 2007/10/18 로키 바바와 나 - 내가 바바 히데카즈에게 배운 것 (5)
  11. 2007/08/03 로키 규칙은 도구다 (4)
  12. 2007/07/19 로키 규칙 - 취향을 넘어 기능으로 (2)
  13. 2007/07/10 로키 진행자 유형론 (8)
  14. 2007/06/23 로키 RPG의 기능적 구분 - 설정, 진행, 참가 (6)
  15. 2007/06/15 로키 참가자와 진행자의 관계에 대한 의견 (19)
  16. 2007/06/01 로키 RPG에서 규칙의 영역에 대해 (5)
  17. 2007/04/18 로키 RPG, 혹은 역동적 긴장 (2)
  18. 2007/04/10 로키 로빈 로스 - 참가자 유형과 그 활용 (3)
  19. 2006/12/05 로키 분석적 제작과 게슈탈트적 제작 (5)
  20. 2006/11/27 로키 RPG는 게임인가
  21. 2006/11/16 로키 경이감에 대하여 (3)
  22. 2006/09/15 로키 시나리오의 종류 (3)
  23. 2005/12/25 로키 행동판정과 갈등판정
  24. 2004/12/23 로키 RPG 디자인 - 유행의 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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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와 최적경험 2편 (아직 미완성, 비공개) 쓰다가 갈라져나온 내용입니다. 도식을 만들기는 했는데 그 글에는 딱히 들어갈 곳이 없어서 일단 여기에 올려놓죠. 이전에 썼던 가상현실과 극적 요소 논의를 시각화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도면은 OpenOffice Draw로 제작했습니다.

묘사적 규칙: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게임은 서사 내에 존재합니다. 이야기의 구조나 진행과 같은 서사적 요소를 직접 다루지는 않고, 판정을 통해 전체 서사 내의 일부 사건을 확정합니다. 보통 전투규칙이 제일 정교하고 양도 많지만, 사회적이거나 정신적인 사건 역시 판정으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물리적인 요소를 되도록 정교하게 규정하려고 할 수록 규칙이 복잡해집니다. 겁스, D&D 3.5 등. 7번째 바다 (7th Sea)나 세기의 혼 (Spirit of the Century)처럼 기본적으로 묘사적인 규칙에 서사적 요소를 추가한 절충형도 있습니다.

서사적 규칙: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서사가 곧 게임입니다. 가장 순수한 형태에서는 서사가 끝나는 조건이나 결말의 향방도 규칙으로 결정합니다. 규칙으로 다루는 요소도 대개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호감도나 타락 등 극적인 것입니다. 서사를 규칙의 논리로 완전히 규정할 수는 없는 만큼 규칙은 보통 간결하고 해석의 폭이 큽니다. 결국 서사를 만들어가는 작용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활동에 구조를 부여하는 것이 규칙의 역할입니다. 폴라리스 (Polaris), 달을 쏘다 (Shooting the Moon),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 등.
2010/07/15 11:13 2010/07/15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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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RPG는 괴물을 죽이고 보물을 획득하는 던젼 탐사물이었습니다. 지금은 훨씬 다루는 내용이 다양해졌지만, 요즘은 과연 RPG가 던젼에서 벗어난 일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대개의 RPG는 던젼 탐사보다는 복잡한 내용이기는 하지만, 외관이 던젼이 아니라고 해도 가장 기본적이고 손쉬운 구도는 일행이 외부 세계와 맞서 싸우는 것이니까요.

그 원인을 저는 전통적인 진행자/참가자 구분에서 찾습니다. 진행자는 '세계'를, 참가자는 '주인공 일행'을 맡아서 서술 영역을 분배하는 구조에서 참가자는 외부 세계에 대한 직접 서술권이 없습니다. 따라서 제안과 합의와 같은 보완적 수단으로 서술권자에게 의견을 알릴 수는 있지만 그렇다 해도 최종적인 결정권과 구체적인 표현은 서술권자의 권한입니다.

이러한 서술권 구분은 긴장감과 의외성의 원천이기도 하며, 따라서 대립에는 딱 적절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진행자가 제어하는 몬스터와 던젼에 참가자가 제어하는 주인공 일행이 맞서는 내용에 잘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RPG가 던젼에서 나온 지금도 진행자의 서술 영역인 '세계'와 참가자의 서술 영역인 '주인공'의 대립은 계속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진행자와 참가자의 서술권 구분이 외부 세계와의 대립에 얼마나 적합하게 되어 있는지는 참가자가 세계와 대립 외의 상호작용을 하려고 할 때 나타납니다. 외부 세계의 요소를 예를 들어 이용하거나 조종하려고 하면 정보가 일단 부족합니다. 따라서 서술권자인 진행자에게 묻거나 진행자와 협의해서 설정으로 정보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도 진행자는 생각이 다를 수도 있는 등, 참가자가 직접 서술할 수 있는 영역인 주인공의 행동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듭니다.

그 결과 전통적인 진행자와 참가자 구분 속에서는 대립이 가장 편해집니다. 참가자는 자기 서술 영역이 아닌 세계를 움직이려고 하기보다는 자기 서술 영역인 주인공을 독자적으로 움직여 그 의지를 관철하려고 하고, 반대가 있으면 그 반대를 극복하는 형태가 대체로 가장 빠르고 쉽습니다. 그리고 정보와 제어권의 분리 때문에 이러한 대립은 더욱 긴장감이 넘치고 재미있어지지요.

그런 대립적 소재가 오랫동안 이어져온 것은 역으로 그러한 구도의 생명력과 재미를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주인공 일행 대 세계라고 해도 그 속에는 정치, 추리 등 굉장히 다양한 소재를 담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진행자와 참가자 구도, 그리고 거기에서 가장 쉽게 나오는 주인공 일행 대 세계의 대립 구도에는 상당한 생명력과 유연성, 범용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인공 일행 대 세계라는 구도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RPG의 소재가 다양해지면서 그만큼 나올 수 있는 이야기도 폭이 넓어졌는데, 일행의 모험을 벗어나 개별 주인공의 내밀한 이야기를 다룰 때는 종종 다른 참가자들은 구경을 해야 하고 (물론 관객 시점도 재밌을 수 있지만 적어도 직접 참가는 하지 못하죠), 주인공이 세계와 맞서 싸우는 대신 정보와 권력으로 세계를 이용할 때는 종종 위에 말한 정보와 서술권의 문제에 부딪힙니다.

그래서 RPG로 좀 더 다양한 소재와 이야기를 다루려면 서술권 분배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간단한 예로는 이번 공화국의 그림자에서 참가자가 주인공 (PC) 외에 조연 (NPC)도 맡은 것만 하더라도 이야기의 폭을 확 넓히고 일행의 제약을 줄이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세션 쪽 글 중에서도 그런 플레이 기록이 눈에 띄었고, 길드타운도 그런 예죠.) 마찬가지로 장면 연출권이라든지 세계 설정, 인물 등장 등 다양한 영역에 대한 서술권의 분배 형태가 이야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결국 서술권 분배는 플레이를 위한 도구이고, 도구란 원하는 목적에 맞게 고르고 형성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인공 일행 대 세계라는 구도를 벗어나 좀 더 폭넓은 소재의 플레이를 편하게 하려면 서술권의 분배, 명시적·암묵적 규칙 등 놀이에 사용하는 도구도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책에 있는 명시적 규칙으로 분배한다면 어떤 형태가 원하는 놀이의 모습에 어울리는가, 제안과 논의로 서술권 외의 영역에 영향을 미치려고 한다면 합의가 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는가 등등. 그런 사고의 유희와 구조 분석이 제게는 RPG의 재미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2008/08/29 16:55 2008/08/29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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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서술권 분배와 RPG 규칙

    Tracked from The Adamantine Watchtower of... 2008/09/04 13:30  삭제

    로키님의 글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전통적인 진행자 / 참가자 구분에서는 참가자들의 다양한 이야기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각 RPG 시스템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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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Xenosia 2008/08/29 1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틀을 깨보는건 성장의 필수 코스죠! [..]

  2. Wishsong 2008/09/01 17: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누나가 이야기한 기존 진행자와 참가자 서술권 구분을 뛰어넘기 위한 RPG계의 노력은 크게 3가지로 나눌수 있다고 생각해.

    1. 복수의 캐릭터 운용 : Ars Magica나 Wraith : The Oblivion 과 같이 2명 이상의 캐릭터를 역할하는 것.

    2. 서술 개입 규칙 : Donjon이나 Spirit of the Century처럼 플레이 중간중간에 플레이어들이 개입할 수 있는 규칙을 만드는 것. 넓게 보자면 Primetime Adventure도 여기에 포함 가능.

    3. 마스터를 죽이고 물품을 강탈하자! : 마스터를 아예 없애버린 것. Shock라든지 Polaris, Contender, Mythic 등.

    여기에 대해서는 필(?)을 받아서 좀 더 자세하게 글을 쓰고 있는데, 완성되면 링크 걸께~

  3. 불타는도넛 2008/09/01 19: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 복수 캐릭터 운용법은 이야기가 다소 산만해 질 우려가 있고 캐릭터에 몰입도가 떨어질수 있다는 점에서 좀 조심스러워 지네요. 그건 그렇고 레이스 오빌리비언이 복수 캐릭터 운용을 지원하는건 몰랐네요.

    • Wishsong 2008/09/01 2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 명의 플레이어는, 그 PC와 다른 PC의 '쉐도우'를 맡게 되지요. 그 의미에서 복수 캐릭터라고 이야기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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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한 사용이 까다로운 겁스 기능 용례 댓글에서 한 논의에 대한 제 생각입니다. 논의 자체는 서술에 직접 개입하는 규칙에 대한 것이었지만, 제가 제대로 대답하려면 서술권 개념 정립부터 해야 할 것 같아서 엮인글로 뺐습니다.


RPG 등 서사적 요소가 있는 놀이 속에서는 이런저런 사건이 벌어집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A는 죽었습니다." "서울에는 비가 왔습니다.") 말하는 것이 서술이며, 그 서술을 최종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을 서술권이라고 합니다.

전통적으로 RPG에서는 진행자와 참가자의 서술 영역이 다릅니다. 참가자는 보통 자신의 주인공의 행동, 반응 등이 서술 범위이며, 진행자는 주인공 외의 인물과 배경 세계가 서술 범위입니다. 즉, 원칙적으로 참가자는 주인공에 대해 서술권이 있으며, 진행자는 그 외의 모든 것에 대해 서술권이 있습니다.

물론 서술권의 분리가 절대적이라면 놀이는 애당초 있을 수 없습니다. 각자 따로 놀다가 끝날 뿐이죠. 그래서 RPG에는 자신의 원칙적인 서술 영역이 아닌 범위에 영향을 미칠 수단이 있습니다. 그 수단이란 크게 판정과 합의입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 갑이 조연 을을 설득한다고 할 때, 을의 서술권자인 진행자가 보기에 저건 을이 설득당할 만한 말이라고 생각하고 을이 설득당한다고 서술할 수 있습니다. 즉, 갑의 참가자는 자신의 서술 영역이 아닌 을의 행동에 갑의 행동을 통해 영향을 행사하려고 했고, 을의 서술권자인 진행자가 여기에 명시적으로 혹은 묵시적으로 동의해 그 서술을 했습니다. 이것이 자기 서술 영역 외에 영향을 미치는 수단 중 합의입니다.

반면 갑이 을을 설득하려는데 서술권자인 진행자가 생각하기에는 을이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 같다거나 을이 설득당할지 불확실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갑이 설득이나 협박 등 판정을 통해 을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시도할 수 있습니다. 판정을 해서 갑이 성공하면 을은 설득당하고, 갑이 실패하면 을은 설득당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자기 서술 영역 외에 영향을 미치는 수단 중 판정입니다.

그러나 판정으로 해결할 때에도 놀이 분위기가 건강하다면 어떤 종류의 합의는 전제하고 있습니다. 즉, 판정으로 결과가 달라질 수는 있다는 합의이지요. 위의 예에서 참가자와 진행자는 을이 판정을 통해 설득당할 수는 있다는 합의를 하고 있습니다. 진행자가 생각하기에 이 시점에서 갑이 무슨 짓을 해도 을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판정을 애당초 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얘 마음은 안 변해. 끝.'으로 끝내면 갑의 참가자의 극적 욕구 (을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무시당하는 결과가 됩니다. 따라서, 이 점을 상의하고 참가자의 욕구를 충족할 다른 방법이 있을까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당장 자기 집이 날라갈 상황에서 말만으로는 씨도 안 먹힐 것 같은데, 그 부분을 해결해주면 어떨까?" 하는 논의가 된다면 그건 또 다른 모험의 태동이기도 하죠.

이때 판정으로 을이 설득당할 수 있다는 합의가 없는데도, 즉 진행자가 생각하기에는 아예 판정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참가자와 그걸 조정하기 싫어서 을에게 말도 안 되는 높은 의지력을 부여하거나 갑의 판정에 역시 말도 안 되는 페널티를 주는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미 파토에 한 발짝 다가선 증세입니다. 판정의 바탕에 있는 합의를 무시했으니까요.

위의 예로는 설득이라는 묘사적 규칙을 들었지만, 서사적 규칙도 마찬가지입니다. 극적 요소를 직접 다루는 서사적 규칙을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로 제안이 괜찮다 싶으면 합의로 그냥 갈 수 있고, 불확실하거나 서로 의견이 다를 때 판정을 매개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서사적 규칙도 묘사적 규칙과 마찬가지로 판정을 할 때는 판정의 결과를 받아들일 것이며 그럴 수 없다면 서로 상의하고 조정하겠다는 합의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서사적 규칙이라고 해서 플레이의 기본 전제를 바꾸는 것은 아니며, 상호 존중과 예의의 중요성은 서사적 규칙을 사용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2008/04/27 01:17 2008/04/27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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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생수 2008/04/27 03: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뭔가 제가 언급한 그런 룰들을 쓰지 않는 이유와는 미묘하게 다른 긍정적인 면을 추가로 가져오셔서 약간 어긋난 논점에서 변호하시는 느낌도 있고... 그게 아니면 제 댓글과 연관이 있는 글이라기보단 뭔가 촛점이 다른 별도의 글을 쓰신 느낌이 있지만...

    그 미묘하게 어긋난 부분의 인식을 좁히고 일일이 차이가 있는 내용이나 섞인 내용들을 구별해서 별도로 답하고 또 제 이야기를 반복하고 부연하기에는 좀 힘도 딸리고 보람도 적은 힘든 작업이 될 것 같고 해서 저는 논의를 더 잇는 걸 포기하겠습니다. 죄송해요.

    애시당초 그런 룰들의 기본 특성이나 성질에 대한 전제의 일치가 안되면, 그 각각의 전제를 안고 이야기를 각자가 진행해도 접점은 없지요.

    의견이 많은 부분에서 일치하고 개념이 비슷한 분이라면 추상적인 개념 이야기를 해도 소소한 단어의 의미나 인식 차이를 '공통의 전제'가 좁혀줍니다. 그러나 전제가 다른 분과 추상적인 개념이야기를 시작하면 각자의 이야기를 그냥 늘어놓기 쉽습니다. 애써 좁혀도 그건 대개 그렇게 길게 이야기 할 필요가 없었던 의미없는 부분에서만 좁혀지기 쉽더군요.

    뭐 끈질기게 이야기하면 전제 차원에서 좁혀지지 못할 것도 없는데... 당장은 그럴만한 정력이 없네요.

    어떻게든 다른 전제하에서 추상적 개념의 이야기를 하기는 하게 된다면, 주제를 가능한한 더 좁혀서 내용을 간결하게 하고, 그 간결한 내용물을 보고 각자가 길게 생각하고 플레이에 반영해보는게 더 시행착오를 줄일 것 같다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어요.

    • 로키 2008/04/27 05:25  댓글주소  수정/삭제

      특별히 서사적 규칙의 긍정적인 부분이 아니라, 규칙을 사용한 판정을 할 때 기본적으로 전제한 합의는 묘사적 규칙이나 서사적 규칙이나 차이가 없고, 그 전제가 어긋나면 어느 쪽이든 무리가 생긴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글에서 서사적 규칙 얘기를 한 건 마지막 두 문단뿐이고요. 즉, 승민님이 말씀하신 서사적 규칙의 문제는 서사적 규칙 특유의 것은 아니라는 게 제 생각이라는 정도?

      생각해 보면 승민님이 말씀하신 규칙이 정확히 무엇을 하는 것인지, 어떤 부분에서 무리가 생겼는지 모르겠어서 논의가 겉돈 면도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 규칙이 어떤 성격이든 규칙을 사용한 결과는 받아들일 만하다는, 그럴 수 없다면 규칙 외에 다른 수단으로 (예를 들어 상의를 통해) 해소한다는 합의는 변함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서로 머릿속에 들어가볼 수 없는 이상 의사소통은, 특히 대면 상황이 아니면 이런저런 오해가 생기게 마련이고, 이해의 차이를 좁히는 법은 더 많은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얻는 것보다 수고가 더 크다고 느끼신다면 어쩔 수 없지만, 언제든지 마음이 바뀌신다면 저는 말씀하신 그 전제의 차이를 좁혀가고 싶은 생각입니다.

  2. 기생수 2008/04/27 1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아무하고도 사고의 기반이 되는 전제 자체를 줄여나가는 건 힘든 작업이지만, 그것 이외에도 로키님과 저 개인적인 측면에서 토론 방식 자체에서 자신의 논지를 피력하는 방법에 있어서 오해를 수정하는데 보통의 경우보다 더 힘이 든 상성이랄까 습관의 차이랄까 하는게 있어보이기도 해서 포기한 면도 있어요.

    그래서 전제의 차이를 좁히려면 그 이전차원에서 메타토론적인 이야기를 교환해야할지도 모르는데, 그건 원래 이야기에서 너무 멀리 나가는 거고 전제를 수정하는 것보다도 더 힘든 일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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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를 하다 보면 종종 예상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 재미이자 때로는 스트레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외성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전에 역할극에 대한 글에 썼던 것을 따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의외성의 첫 번째 원인으로는 정보 차단이 있습니다. 진행자가 다음에 무슨 적이나 상황을 내보낼지, 참가자가 진행자의 설정에 무슨 반응을 할지 모른다는 것이 가장 고전적이겠지요. 같이 노는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없는 상태에서 서로 서술권의 영역이 다른 점이 여럿이서 하는 놀이에서 의외성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봅니다.

두 번째로는 상이한 극적 욕구가 있습니다. 위의 정보 차단과도 관련이 있는데, 사람이 원하는 것이 다 같지 않은 만큼 각자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는 긴장이 종종 예상치 못한 결과를 냅니다. 폴라리스 (Polaris)의 교섭 규칙처럼 아예 이것을 판정 규칙으로 활용하는 예도 볼 수 있고, 규칙상 위치는 없이 그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밀고 당기는 균형과 긴장이 있을 때 의외성이 가장 커지겠지요.

세 번째는 인물과 상황의 극적 상호작용입니다. 글을 쓸 때도 나타나는 현상인데, 인물과 상황을 움직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올 때가 있습니다. A와 맺어주려고 했는데 자꾸 B하고 가까워진다든지, 치고받고 싸우게 하려고 했는데 친구가 된다든지. 이렇듯 인물이 독자적 생명력을 띠기도 한다는 점이 보드게임과 다른 RPG의 재미이겠지요. 심지어는 사전 논의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극적 욕구를 서로 조화했을 때도 실제 상호작용의 결과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기도 합니다.

네 번째는 판정의 의외성입니다. 주사위나 카드 등 무작위의 요소가 있을 때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데, 계속 펌블이 떠서 형편없는 적에게 주인공 일행이 몰살당한다든지 비교적 강한 적을 한 방의 크리로 단칼척살해버린다든지 하는 때가 가장 의외이겠죠. 무작위수가 아니라 하더라도 판정 과정 자체에서 정보 차단, 상이한 극적 욕구, 극적 상호작용 등 다른 의외성의 요소를 판정 규칙이 종종 끌어냅니다.

이렇게 의외성의 요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언급했듯 의외성은 재미를 증진할 수도 있고, 재미를 저해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의외성을 어떻게 하면 가장 적당한 수위로 조정할 수 있는가, 어느 요소를 살리고 어느 요소를 제한하고 싶은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2008/04/08 02:53 2008/04/08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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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Xenosia 2008/04/08 08: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으음 왠지 언더월드의 국정원 국장님 여성화 사건이 생각나는군요 [..]

    • 로키 2008/04/09 0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건 의외성이라기보다는 오해..(먼산) 하긴 그것도 의외성의 한 요소일 수는 있겠네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니까..

  2. orches 2008/04/08 16: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키님이 포스팅하신 것처럼 플레이를 겪다보면 (의도적이던 의도치않던)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불쑥 나오는 경우가 많은 듯 해요. 뭐니뭐니해도 가장 눈물날 때는, 주사위의 자비로운 의지가 불러오는.. ;ㅅ;

    추신. 언더월드.. 전 국장님이 여성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노시아 님께서 '남자잖아요' 라고 말씀해주실 때 '나 혼자 여성이라고 생각한 거야아!!' 하고 충격받았었습니둥 ;ㅍ;

    • 로키 2008/04/09 03:54  댓글주소  수정/삭제

      의외성은 결국 무조건 다다익선은 아니고, 조정하고 이용하는 게 중요하겠죠. 아저씨 말투를 쓰는 국장이 대체 왜 여성이라고 생각하셨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

  3. lhovamp 2008/04/08 17: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고보니 예전에 승한님과 무한경비대 플레이를 할 때, 4번의 경우가 특히 두드러졌던 기억이 납니다. 제 캐릭터는, 첫 화에선 그야말로 "조무래기" 에게 칼을 맞고 쓰러졌고, 두번째 화에선 해당 화의 보스를 한 턴에 무력화시켰지요. (...)

    이래서 다이스신을 믿어야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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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규칙 없는 RP (소위 역할극, 역극, 혹은 소꿉놀이)를 함께 하는 오체스님과 얼마 전에 한 얘기인데, 오체스님은 개인적으로 규칙 없는 놀이가 가장 좋다고 하시더군요. (주사위만 나오면 불안해하시는 모습에 짐작은 했습니다만..(..)) 반면 저는 규칙이 있는 편을 선호하고요. 제가 생각하기에 역할극이 RPG와 다른 점은 크게 다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역할극은 놀이와 인간관계 사이에 분리가 없습니다. 진행 방향, 예를 들어 주인공이 괴물에게 이기느냐 지느냐 하는 문제는 모두 명시적, 혹은 묵시적 합의로 결정하고, 결정을 내릴 객관적이고 외부적인 기준이 없으므로 결국은 놀이 속 인물의 문제가 아닌 그 놀이를 하는 사람의 의사소통이 됩니다. 객관적 기준이 없는 만큼 이러한 의사결정을 인간관계와 분리하기는 더욱 어려워지고요.

물론 규칙이 있는 RPG에도 규칙 없이 합의로 결정하는 영역은 광범위합니다. 캠페인 설정이라든지, 인물 설정, 때에 따라서는 놀이의 진행 방향 등. 그러나 서로 진행 방향에 대해 의견이 다를 때, 혹은 결과에 대해서는 생각이 같아도 과정의 난이도나 따르는 대가에 대해 이견이 있을 때 이를 해소할 기준은 있습니다. (그 기준이 어떤 성격이기를 원하느냐에 따라 가장 좋은 규칙도 달라지겠지요.)

역할극에 그러한 기준이 없어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은 보통 둘 중 하나입니다. 하나는 진행 방향에 대한 비생산적인 신경전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관계를 생각해 서로 조심하고 눈치보면서 자신의 욕구와 극적 재미를 양보하는 것입니다. 배려가 나쁜 건 아니지만, 인간관계의 논리인 배려가 놀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면 어느쪽도 결과에 만족하지 못할 우려가 있습니다.

물론 역할극도 감이 맞는 사람끼리 하고 의사소통이 원활하면 얼마든지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어렵기는 합니다.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모든 것을 합의해야 하고, 플레이와 좋은 감정을 유지하려면 서로 더 조심해야 하니까요. 적어도 놀이와 인간관계 사이에 규칙이라는 기준의 방벽이 없는 만큼 마음껏 밀고 당길 여유는 훨씬 적어집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의견이 강하고 성격이 괄괄한 편이라 역할극을 할 때는 더 조심하게 됩니다. 특히 상대가 순응적인 성격일 때면 자칫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다 흘러갈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그런 성격인 만큼 상대 역시 강한 의견으로 반대해 오든, 아니면 규칙을 매개로 스스로 원하는 방향을 밀든 활발하게 반대하고 논의하고 부딪치는 편을 선호합니다.

반면 성격과 취향에 따라서는 그런 전투적(..)인 의사결정보다는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는 화합을 더 중시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자기 의견을 존중해주고 감각이 잘 맞는 상대가 있다면 상대에게 떠밀리거나 플레이가 재미없을 우려는 많이 줄겠지요. 따라서, 중요한 것은 각자의 상황, 그리고 놀이와 인간관계를 얼마나 분리하는 것이 본인에게 재밌느냐인 것 같습니다.

두 번째, RPG에 비해 역할극은 긴장감과 의외성이 적습니다. 긴장감과 의외성의 원인은 크게 네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같이 플레이하는 다른 참여자의 생각과 결정을 완전히 예측할 수 없다는 점, 둘째는 참여자가 각자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나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긴장, 셋째는 인물과 상황의 상호 반응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의외성, 넷째는 주사위나 카드 등 규칙에서 나오는 우연의 요소입니다.

역할극에서는 의외성의 네 번째 요소인 규칙은 일단 배제하고 있고, 두 번째인 역동적 균형 역시 위에서 얘기한 조심성과 상호 배려 때문에 약해질 여지가 큽니다. 원하는 방향으로 밀고 나가다 보면 의견 충돌에 휘말릴 가능성은 커지고, 해소할 객관적 기준이 없는 만큼 이러한 충돌은 기피의 대상이 되니까요.

의외성의 첫 번째 요소인 정보 차단은 경과를 미리 얘기하고 정하는 것이 많을 수록 약해질 텐데, 역할극에는 위에 얘기한 이유로 의견 충돌의 완충지대를 둘 동기가 있으므로 제 경험상으로는 미리 정해두는 게 꽤 많아지더라고요. 남는 것은 의외성의 세 번째 요소인 상호 반응 정도인데, 이것도 경과를 이미 정해둔 정도에 비례해 약해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물론 긴장감과 의외성이 적다는 점 역시 취향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장점일 수 있습니다. 긴장감과 의외성이 적다는 얘기는 다시 말하면 안정적이고 안전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니까요. 플레이의 방향에 따라 인물이 죽거나 인간관계가 돌이킬 수 없게 되거나, 원치 않는 극적 방향으로 흐르거나 하는 결과를 미리 차단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특히 놀이 속의 인물과 특정 극적 결과에 애착이 크면 클 수록 이러한 안정성은 큰 매력이기도 합니다.

이상과 같이 역할극과 RPG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제 개인적인 선호도야 있지만, 저에게 좋은 것이 다른 분에게도 좋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각자 원하는 게 다르니까요. 또한, 역할극을 하지 않는다 해도 놀이와 인간관계 분리의 정도라든지 의외성의 정도도 취향에 따라 조정할 수 있을 테고요. (다 규칙대로 하되, 참가자 동의 없이 주인공이 죽는 일은 없다든지.) 그런 점을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역할극은 흥미로운 소재인 것 같습니다.
2008/04/01 14:20 2008/04/0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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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ishsong 2008/04/01 2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키님, 큰일 났습니다.

    자세한 건 제 블로그에.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이전에 Story Games 게시판에서 보았던 개념인데, 이번에 승한님의 트랜스휴먼 스페이스 (Transhuman Space) 번역을 보면서 다시 생각이 나서 제가 이해한 대로 적어봅니다.

자료 중심 배경은 바로 트랜스휴먼 스페이스 같은 것으로, 대개의 전통적 RPG 규칙에 사용하는 설정은 자료 중심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세계의 모습은 다소간에 이미 잡혀 있으며, 구체적인 자료와 지명, 인물 설정 등이 추가 설정과 전개의 실마리가 됩니다. 자료 중심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꽤 많은 설정 자료를 (특히 진행자가) 읽고 익히는 것이 보통입니다.

분위기 중심 배경은 반면 자료가 비교적 적습니다. 책에 나오는 자료만으로는 완전한 캠페인 배경을 채워넣을 수 없을 정도이지요. 대신 창작과 즉흥의 기반이 될 만한 함의와 암시를 통해 설정에 대한 이해와 기대치를 조율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많은 인디 RPG에서 볼 수 있으며, 설정 분량 자체가 적고 구체적인 지명과 집단보다는 광범위의 상황 설정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의 설정란 앞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습니다. (번역은 로키가 대충대충)

다른 RPG를 많이 진행해 봤다면 진행자이든, 제작자이든 한 사람의 상상에 맞추어 일관성 있는 세계를 만들어가는 데 익숙할 것입니다. 개들은 그런 식으로 플레이하게 만든 게임이 아닙니다. 개들을 플레이할 때면 각 참가자의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모아서 공통 현실로 만듦으로써 일관된 세계를 만들어갑니다.

이게 어떻게 보면 분위기 중심 설정의 기본 철학입니다. 이 세계는 대충 이런 곳이니 구체적인 부분은 스스로 채워가라. 거기서부터 생기는 해석 차이는 문제나 병리가 아니며, 오히려 공동 상상 공간을 짓는 재료라고 말이죠. 인디 RPG에 분위기 중심 설정이 많이 보이는 건 한편으로는 예산과 시간이 별로 없는 개인 제작자라는 배경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이들 규칙 자체의 즉흥적이고 협동적인 성격도 작용하지 않을까 합니다.

개인적 취향으로는 자료 분량은 적은 편을 선호하기는 합니다. 구체적인 자료가 많으면 일단 읽고 소화하는 시간이 들고, 저는 기억력이 별로인 데다 준비 많이 하는 걸 싫어하고 스타일에 즉흥성이 강해서 좀 하다 보면 어느새 원래 설정과는 딴세상이 돼버리거든요.

그래서 자료가 많은 설정이라도 즉흥의 발판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필요한데, 저는 또 자료가 많으면 얽매이는지라 대범하게 무시해버리는 걸 또 잘 못하는 것 같아요. ("자..잠깐. 이 집단이 어디로 도망쳤었지? 지금 여기 나타나면 안 되는 거 아냐?!" (뒤적뒤적)) 그런 이유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고 즉흥을 뒷받침하는 게 목적인 분위기 중심 설정이 마음이 편하더군요.

제 취향 얘기에서 벗어나서 남의 취향 얘기도 하자면(?) 이런 쪽의 선호도는 또 놀이를 하는 목적, 즉 놀이를 하면서 재미를 느끼는 부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많은 분량의 구체적인 자료를 제일 선호할 듯한 취향은 아무래도 모사주의 (Simulationism) 쪽? 가상 세계의 탐험에서 재미를 느낀다면 세계의 자세한 내적 논리와 일관성이라는 기반이 필요할 테니까요.

물론 자료 중심 배경과 분위기 중심 배경은 본질적으로 다르거나 서로 배척하는 개념은 아닙니다. 접근 차이는 있지만 자료 중심 배경이 제공하는 자료는 이미지를 형성하고 창작을 자극하는 역할을 하며, 분위기 중심 배경도 창작과 즉흥의 방향을 제공하고 이미지를 만들 정도의 자료는 제공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 설정이 어느 분류에 속하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설정 자료를 제공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 목적을 더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가이겠죠. 목적이 플레이를 손쉽게 시작하게 돕는 것이든, 치밀한 배경을 구성해 그 세계를 탐색하는 것이든, 창작의 기반과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든, 서로 기대치와 이미지를 조율하는 것이든 그 목적에 이 정보가 꼭 필요한지 생각해가면서 하면 더욱 효과적인 설정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2008/03/04 12:51 2008/03/04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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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ishsong 2008/03/04 19: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관대해서 자료 중심도 분위기 중심도 모두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어서 트랜스휴먼 스페이스 마스터링 하세요!

  2. 시수리 2008/03/04 2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가튼렐름이나 스타워즈 같이 자료가 방대한 경우는 오히려
    자료에 끼어서 손대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더군요.

    저도 자료에 묶여 있는 사람중에 하나인지라,
    스타워즈 에피3와 에피4 사이를 제다이로 플레이 하는 사람들 같은 경우 같은걸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느낌 밖에는 안 들던데요 :P

    • 로키 2008/03/05 03:05  댓글주소  수정/삭제

      설정 자료를 완전히 소화하고 준비를 제대로 하는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면 방대한 자료에 얽매이는 대신 자료를 발판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료를 완전히 알고 활용하면 자유도와 치밀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들어가는 노력에 비해 효용이 그렇게 큰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이런저런 RPG 규칙을 접하다 보니 RPG 규칙에는 가상현실을 다루는 것과 극적 요소를 직접 다루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승민님의 글 묘사 중심룰과 서사 중심룰과 같은 맥락이군요, 다 써놓고 나니..(..) 그 논지를 좀 더 상세하게 제 나름 발전시켰다고 생각해 주세요 (?).

가상현실 중심 규칙은 가상공간의 물리법칙과 논리를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예를 들어 힘센 사람이 무거운 바위를 성공적으로 들어올릴 확률은 힘이 약한 사람이 같은 일을 해낼 확률보다 높다든지 하는 식이죠. 가상현실에서 물리적으로 가능한 것과 성공할 만한 것은 참여자의 공감보다는 그 물리법칙을 표현하는 규칙으로 판단합니다. 장기 캠페인을 받쳐줄 만한 규칙의 분량과 범위에 대한 논의라든지, 다양한 상황을 표현하려면 규칙은 많은 게 좋다는 주장의 전제에는 규칙의 가상현실 표현 기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상현실 중심 규칙은 D&D, 겁스 (GURPS), 7번째 바다 (7th Sea), WoD (World of Darkness) 등 제가 아는 모든 상용 규칙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퍼지 (FUDGE), 세기의 혼 (Spirit of the Century), 미딕 (Mythic Roleplaying), 과거의 그늘 (The Shadow of Yesterday) 등 많은 인디 RPG도 마찬가지죠. 판정은 기본적으로 실력과 상황 수정치에 따른 확률을 이용하는 굴림이며, 낙상이나 익사, 폭발 등 다양한 상황을 처리하는 규칙이 있기도 합니다.

반면 위에서 예를 든 규칙책에도 가상현실의 논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규칙도 있습니다. D20 계열이나 변형에서 볼 수 있는 액션 포인트라든지 겁스에서 추가 규칙으로 할 수 있는 CP 소모, 7번째 바다의 극주사위나 배경 규칙, WoD의 의지력 규칙, 미딕의 무작위 사건 생성 규칙, 과거의 그늘에서 특정 조건에 맞는 RP를 하면 성장하는 열쇠 규칙 등이 그 예입니다.

이들 규칙은 가상현실 속에 있는 등장인물의 실력이나 의지보다는 참여자의 극적 욕구를 반영하며, 가상현실 법칙을 표현한다기보다는 가상현실의 법칙에 저항하거나 서술을 조작합니다. 즉, 극적 요소를 직접 다룬다는 면에서 가상현실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둔 규칙과는 기능적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가상현실 법칙이 아닌 플레이의 극적 요소를 직접 다루는 규칙을 판정의 근간으로 삼는 규칙도 더러 있습니다.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의 도전-응대식 판정, 폴라리스 (Polaris)의 서술 교섭, 수정주의 역사 (Revisionist History)의 반박 경매 규칙,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의 장면 판정 등이 그 예이지요. 서술권의 대부분은 전통적으로 진행자의 역할인 만큼 참가자에게 서술권을 많이 주는 규칙일 수록 진행자와 참가자의 역할 분배도 분산적 성격을 보입니다.

이들 규칙책에서는 물리적으로 무엇이 가능한지는 참여자 간 공감으로 해결하며, 정말로 판정이 필요한 때는 극적 방향에 대해 의견이 갈릴 때입니다. (참가자: '경비를 다 죽여요!' 진행자: '경비는 다 죽습니다!' 참가자: '마왕도 죽여요!' 진행자: '음... 그건 판정을 해볼까요?') 포도원의 개들에서는 아무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달을 쏘아서 적의 머리에 떨어뜨려요' 같은 선언도 통과합니다. 수정주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로 아무도 반박하지 않는다면 '장군은 한 달음에 산을 넘어 3만 대군을 맨주먹으로 죽였다' 같은 글도 역사적 진실이 됩니다. (신화적인 분위기라면 오히려 환영할지도 모르죠.)

그래서 규칙의 가상현실 표현 기능을 중시한다면 포도원의 개들이나 안방극장 대모험 같은 규칙은 장기 캠페인을 하기에는 빈약하다거나, 상황 표현력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상현실 속의 법칙을 표현하는 데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있으니까요. 반면 저는 가상현실 표현보다는 극적 욕구 연출이 훨씬 우선이라 가상현실 표현 때문에 극적 욕구가 좌절되는 것은 잘 참지 못해서 극적 요소를 직접 다루는 규칙 쪽을 선호합니다. 결국 어느 쪽이 우선이느냐, 혹은 극적 욕구를 어떤 방식으로 충족하는 것을 선호하느냐 하는 문제겠죠.

참고로 극적 욕구나 연출 얘기는 이야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제 마음대로 가야 성이 찬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시나리오 중심 진행은 거의 가상현실 중심 규칙의 특권에 가깝습니다. 극적 요소를 직접 조작하는 규칙은 시나리오에 나올 만한 요소들을 바로 움직일 수 있으므로 누구 한 사람이 앞으로 이야기를 예상하거나 준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니까요. 따라서 이러한 규칙을 할 때는 다른 참여자와 의견이 충돌하고 그 충돌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극적 의외성과 역동성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준비하는 부담이 적거나 없다는 점도 개인적으로 매력적이고요.

대비해 놓기는 했지만 물론 가상현실 표현과 극적 요소의 조작은 서로 조화할 수 없는 개념은 아닙니다. 오히려 서로 보완하죠. 예를 들어, 제가 얘기한 극적 욕구와 가상현실의 충돌 부분을 많은 가상현실 중심 규칙에서는 극적 요소를 직접 다루는 규칙으로 보완하고 있습니다. 이번 판정은 극적 욕구상 꼭 성공했으면 좋겠는데 가상현실 법칙상 확률이 낮아서 극점수를 소모한다든지요. 그런 규칙은 자원 관리 도전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전술적 재미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구분의 효용은 무엇일까요? 심심해서 제가 보기에는 어떤 규칙의 목적이 무엇이고 그 목적을 얼마나 잘 수행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규칙이 RPG의 재미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기능적으로 분석하는 기준으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가상현실 표현이 자신의 재미에 얼마나 중요한지, 극적 요소를 직접 조작하는 것이 몰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등. 이러한 판단은 전에 적었듯 규칙의 선택, 수정, 제작에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2007/11/24 04:01 2007/11/24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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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생수 2007/11/24 1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그때의 그 이야기군요.

    말씀하신 맥락에서 덧붙이자면... 가상현실표현을 중심으로 한 룰에서 극적 욕구를 다룰 때의 그 '논의 과정을 개념화'하는 것이 전에 한참 이야기하던 '합의에 의한 플레이' 이야기로 연결되는 거겠군요. 상용룰의 대세(?)인 가상현실 중심룰의 바탕에서 참가자 전원의 극적욕구를 다루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인 셈이겠네요.

    보통은 가상현실룰은 극적 역할 룰에 비해서 다루는 양도 많고 복잡한 편이기에 '룰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양적으로 중요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한명한명의 극적 욕구를 섞고 종합하고 이루기 위해서는 다른 참가자들의 동의를 받아야하는데...그 동의를 위한 필요조건이 가상현실 룰의 이해와 준수와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거겠네요. 가상현실은 참가자 전원이 엇비슷하게나마 이해하고 있는 그 시스템이 그리는 세계의 '내적법칙'을 다루고 있으니까요.

    즉 가상현실룰을 중심으로 하는 모델에서는 극적 욕구에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개연성'을 가상현실룰을 통해서 갖추면, 더 그럴듯해보여서 극적욕구를 인정받고 관철되기가 더 용이해지고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쉬워진다는 의미가 됩니다.

    • 로키 2007/11/25 05:50  댓글주소  수정/삭제

      합의에 의한 플레이 말씀은 좋은 정리 같네요. 극을 형성하는 과정을 순수하게 팀내 의사결정 구조에만 (진행자가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구조이든 전원 합의하는 구조이든) 맡겨두지 않고 규칙이 개입하는 데 따른 효과는 이전에도 했던 토의였고 앞으로도 논의할 수 있는 내용이 되겠죠.

      가상현실 중심 규칙에서 극적 욕구의 반영에 규칙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극적 욕구의 반영이 문제가 되는 부분은 가상현실 중심 규칙이 닿지 않는 영역 아닐까요?

      예를 들어 주인공 중 하나가 배경상 왕의 서자여서 왕과 대면하는 장면을 하고 싶다면, 극을 다루는 규칙이 없는 상황에서는 참가자가 진행자에게 제안하거나 진행자가 알아서 긁어주는 (?) 방법을 취할 것입니다. 극을 직접 다루는 규칙이 있다면 참가자가 직접 서술한다거나 장면을 신청하는 방법 등을 택할 수 있겠죠.

      일단 왕을 만난 후에 자신을 인정하라고 설득할 수 있을지 같은 건 판정에 달렸겠지만, 이때 판정에 대한 지식은 왕을 설득하는 확률을 높이는 전술적인 의미 외에는 극적 욕구 충족과 특별히 관련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극적 욕구의 반영에 가상현실 규칙에 대한 지식이 어떤 식으로 중요한지는 약간 이해를 못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생각하시는 예는 제가 생각한 것과 다른 것 같아서, 괜찮으시다면 부연설명 부탁드립니다.

  2. 기생수 2007/11/25 1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으흠... 아마도 제가 생각하기엔, 극적욕구를 지원해주는 룰은 그러한 욕구를 내는 형식의 틀과 결정권, 의사결정과정을 규정해주고 있지만, 가상규칙룰은 그러한 욕구가 '말이 되어' 보이는 걸 돕는 역할을 하기에 분류하신 두가지 범주의 룰이 욕구의 충족과 타인의 동의를 얻어내기 위한 접근 방향이 다른 것 같습니다.


    본문의 예를 빈다면 가상규칙룰은 맨주먹으로 장군이 3만대군을 죽이는 그 '과정과 내적 법칙'을 물리적/장르적 룰의 작동으로서 설명해줘서, 다른 사람이 '그런 억지가 어디있냐'라는 말에 미리 대답을 해주는 셈이겠네요. 그렇게 개연성을 줌으로서 3만 대군을 맨주먹으로 죽이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게 하여 죽이고 싶다는 극적 욕구를 타인이 좀더 쉽게 동의하게 해주고, 또한 그 수준에서 장군의 플레이어가 3만 대군을 죽일수는 있지만 100만 대군은 죽이는 건 말이 안된다는 것도 가르쳐 주는 것이겠죠. (그외에 논의의 맥락과는 좀 다르지만, 3만대군을 죽이는 '그림'을 룰의 반자동적 작동으로서 플레이어가 좀 덜 신경써도 묘사해주는 역할도 하는 것 같네요)


    가상규칙룰이 극적요소를 지원하는 룰에 비추어 상대적으로 이런 역할을 수행하는 거라면, 그 3만 대군을 죽이는 물리적/장르적 법칙뿐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법칙을 알수록 자신의 더 '다양한' 욕구를 타인에게 더욱 설득력있고 개연성있게 보여줘서 동의를 얻기 쉽다는 의미에서 '양적인 지식'을 언급했습니다. (물론 이건 가상규칙 중심의 모델에서의 이야기 입니다. 의사 결정과정을 다루는 극적욕구쪽의 룰과는 다른 위상의 이야기죠.)


    가상규칙룰에서는 참가자 모두가 이미 그 시스템의 규칙을 읽어둠으로서 상대적으로 더 엇비슷하게 그 세계관의 물리법칙이나 장르법칙을 이해하게 됩니다. ("겁스는 리얼해") 때문에 그 시시콜콜한 규칙들 속에서 허용되고 허용되지 않는 범위에 대한 '이해의 교집합'을 조금이라도 "더" 넓힌 상태에서 그 속에서 극적 욕구를 반영한 선언을 하면 합의를 하기 쉬워진다는 의미겠네요.


    이 역시 잡음이 종종 나오는 걸로 봐선 더 쉽게한다는 것뿐이지 완벽한건 아니죠. 그렇기에 룰의 작동 바깥의 이야기를 중요시하는 합의에 의한 플레이가 그걸 보충하는 것이구요. ('니 캐릭터 장군은 3만 대군을 맨주먹으로 죽일 수는 있지만, 그거 별로 전체 스토리에는 좋지 않은 것 같아', '그런가?' 가상규칙을 준수해온 과정이 3만 대군을 죽일 정당성은 어느정도선에서 부여했기에 굳이 원한다면 자신의 의견을 좀더 설득력있게 밀려고 시도할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자신의 욕구만을 경쟁적이고 일방적으로 관철시키는게 플레이의 목적은 아니니까요. 이런 면에서 지원과 견제를 동반하는 ... 본문에서 언급하신 바와 같이 두가지 성질의 룰은 상호보완적 관계겠죠.)

  3. 기생수 2007/11/25 1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시 정리하면, '가상규칙의 양적인 지식 이야기' 는 가상 현실룰들의 작동이 욕구의 동의와 합의의 '설득력'의 역할을 한다는 의미에서 꺼낸 이야기 입니다. 물론 그 설득력을 마치 절대적 권한처럼 오해하는 건 잘못된 플레이겠죠. 상황과 장면의 종류는 많고 그 면면에 사용되는 가상현실룰들은 각자 그상황 그 장면 그캐릭터의 설득력이 되니까 다양한 상황을 위해서는 다양한 룰이 필요해집니다.


    뭐 가상현실룰이 고작 이 용도 밖에 없다면야 너무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룰 자체가 가진 상황 묘사력이라는 또다른 큰 '장기'가 있기에 그 많은 분량을 참아줄만하고... 더 나아가 익히는 것자체를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쪽을 더 선호하겠죠.


    사실은 후자가 이미 예전부터 알려져있던 장기이고... 전자가 참가자 전원(마스터포함)의 욕구반영을 중요시하게 되면서 발견된 용도겠네요.

    • 로키 2007/11/26 01:32  댓글주소  수정/삭제

      호.. 그런 효용도 있군요. 가상현실 역시 극의 요소라는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네요. 확실히 가상현실 표현 규칙이 없는 룰북은 양이 적고 배우기 쉬운 점은 좋지만 가상현실의 법칙이나 논리에 대해 심각한 의견 차이가 생긴다면 해소할 원칙이 '합의'나 '최종결정권자의 결정' 외에는 없긴 해요. 마치 극적 요소를 직접 조작하는 규칙이 없을 때 극적 방향에 대한 의견 차이를 해소하는 방법이 합의나 진행자의 결정인 것과 비슷하게요. 저는 지금까지는 가상현실 법칙에 대해서 심각한 의견 차이를 겪은 적은 없지만, 캠페인이 길고 참여자 사이에 공감이 적을 수록 많이 발생할 수 있는 문제겠죠.

      아주 자세한 가상현실 규칙과 그런 규칙의 부재 사이에 있는 방법으로 '장르적 현실' 규정이라든지 '우리 플레이에 어울리는 현실' 규정 같은 게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활극 플레이에는 온갖 곡예와 공중 돌기와 스턴트가 어울리지만, 역사 배경의 2차대전 플레이에는 어울리지 않는 식으로요. 3만 대군을 맨주먹으로 죽이는 게 어울리는 플레이는 거의 익절티드 정도고.. 그런 식으로 장르 혹은 분위기에 맞게 물리 법칙의 범위를 정하는 규정을 만들어 둔다면 나중에 합의하는 시간을 절약하고 공감대를 확보해 두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4. 기생수 2007/11/26 08: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르적 현실' 규칙은... 사실 이미 있기는 있거나 대부분의 상용룰 규칙은 이미 '장르적 현실' 규칙이라고 생각하긴 합니다. 경향상... 겁스같은 범용성 지향과정에서 사실성을 갖춰버린 케이스가 아닌 다음에야 대부분의 시스템은 이미 각자가 시스템이 지향하는 특정 로망을 지원하고, 특정 현실을 지원한다는 의미에서 이미 장르룰일 겁니다. 때문에... D&D로 드래곤은 때려잡아도 히틀러를 때려잡는건 뭔가 이상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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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승한님과 진행자의 필요성과 서술권 분배에 대해 나눈 대화에서 떠오른 생각인데, 많은 참가자가 주사위 결과에 집착하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원인이 서술권 분배 방식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전통적인 RPG 역할 분배에서 진행자는 주변 세계와 조연에 대한 것을 서술하고, 참가자는 그 참가자가 맡은 주인공이 하는 언행을 서술합니다. 주인공이 하는 판정은 참가자의 서술 영역과 진행자의 서술 영역 사이에서 일어나므로 판정 규칙은 성공 여부에 따라 참가자의 서술권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화살로 오크의 눈을 꿰뚫습니다." 하는 참가자 선언과 그에 따른 판정을 생각해 보죠. 성공했을 때는 참가자의 서술이 진행자의 서술 없이도 진행자의 서술 영역인 주인공 외부에 작용하며, 참가자가 서술하는 목적인 극적, 게임적 목적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실패했을 때는 주인공의 이미지와 같은 극적 목적이나 오크를 쓰러뜨리는 게임적 목적을 달성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 주인공의 행동이라는 제한적인 서술 영역에서마저 참가자의 서술을 관철할 수 없다는 느낌을 받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성공보다 실패가 재미없어지고 주사위 결과에 집착하게 됩니다.

물론 판정 실패가 판정 성공보다 불리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기는 합니다. 또한, 게임적 관점에서 보면 캐릭터 성장이나 전술적 판단을 통해 판정 성공률을 높이려는 노력 자체도 게임의 재미이지요. 그러나 그 점을 보존하면서도 판정 실패에도 극적 재미나 게임적 도전을 부여하면 참가자의 재미가 주사위 굴림에 의존하는 현상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갈등 판정 개념을 도입하는 것입니다. 판정에 무엇을 걸지 결정해서 성공과 실패가 둘 다 재미있도록 조절하는 것이죠. 판정에 성공하면 화살로 오크 눈을 맞추고 실패하면 헛손질로 끝이 아니라, 성공하면 휘황한 궁술을 본 오크들이 겁을 먹고 못 쫓아오고 실패하면 성난 오크들이 일제히 추적해 온다든가.

갈등 판정에서는 무엇을 걸지 않는지 하는 문제가 무엇을 거는지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놀라운 궁술을 선보이는 건 같게 해서 참가자의 극적 욕구를 충족하되, 성공하면 오크 수장을 일격에 쓰러뜨려서 오크가 조직적인 저항을 못하게 하지만 실패하면 졸개를 쓰러뜨려서 괜히 이쪽이 숨은 위치만 들키고 오크들이 조직적으로 반격해 온다든지요.

갈등 판정의 승패에 거는 결과 결정에는 참가자가 참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 참가자의 극적 욕구가 진행에 직접 반영되며, 실패도 참가자에게 재미있을 가능성이 더 커지니까요. 이것은 참가자의 서술권이 전통적인 참가자의 서술 영역보다 넓어지는 결과가 되므로 가상현실의 환상은 깨지기 쉽습니다. 참가자가 마음대로 제어할 수 없는 외부 가상현실이 있다면 활을 쏘는 행동의 극적 결과를 참가자가 정할 수 있을 리 없으니까요. 가상현실을 경험하는 재미가 중요하다면 갈등 판정의 결과는 진행자가 정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진행자의 권한이 강하고 가상현실 경험을 중시하는 RPG에서 참가자의 극적 욕구를 실현하기 어려운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을 통해 뭔가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는 있는데 그 실현이 판정 성공에 달렸다면 재미가 확률에 의존하는 데다, 진행자에게 극적 권한이 대부분 있으니 참가자가 원하는 상황이 나오는 것도 안정적이지 않죠.

그래도 팀내 의사소통이 활발하고 참가자의 욕구를 진행자가 활발하게 반영한다면 많이 보완할 수 있는 점이니까, 게임성과 가상현실 경험을 보존이 중요하다면 진행자 중심 체제를 유지하면서 의사 소통의 활성화로 참가자의 극적 욕구 충족을 최대한 도모하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참가자에게 폭넓은 서술 권한을 주는 편이 참가자의 극적 욕구 실현에 더 직접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가상현실 경험보다는 극적이고 역동적인 공통 서사와 극적 욕구 실현을 중시하는 제 취향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떤 방식이 좋은지는 목적을 전제하지 않고는 논할 수 없는 문제라, 목적과 상관없이 모두에게 객관적으로 좋은 방법이란 없으니까요.

물론 특정 목적을 실현하는 데 어떤 방식이 적합한지는 생산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갈등 판정 개념 도입은 실패가 성공보다 재미없는 현상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목적에는 참가자가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게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가상현실의 환상 유지라는 또 다른 목적이 중요하다면 진행자가 그 결정의 주체가 되는 것이 좋다는 것이 제 결론입니다. 
2007/11/14 11:40 2007/11/14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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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dowan 2007/11/15 0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RPG의 시뮬레이션성 때문에 작은 좌절을 한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어차피 이길 거 플레이 시간만 길어진다면서 맘속으로 투덜거렸었지요. (나중에 마스터에게 물어보니 졌을 때의 분기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규칙과 확률과 도전이 중요하다면 보드게임이나 워게임을 하면 되지 왜 dnd를 할까라는 기분이 들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곧 생각을 바꿔서, 주사위의 스릴에 마음을 맡기니 즐거워지더군요. 이겨야 한다는 압박이나 시나리오를 진행해야 한다는 압박이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던 거 같습니다.
    확실히 실패도 성공만큼 재미있으면 즐거울 거 같습니다.

    • 로키 2007/11/16 1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말씀대로 부담 없이 전술 자체를 즐길 수 있으면 전술적 전투가 많이 즐거워지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RPG에 대한 기대가 무엇이냐, 그리고 현재 플레이 스타일이나 규칙이 그 기대를 얼마나 충족하느냐 하는 부분이겠죠. 저는 극적 선택과 그에서 나오는 상황을 다루는 경량 규칙을 좋아하므로 D&D나 겁스는 잘 안 맞고, 마찬가지로 치밀한 전술적 전투와 미리 준비한 시나리오를 좋아하는 취향에는 포도원의 개들이나 안방극장 대모험은 전혀 안 맞겠죠.

    • ddowan 2007/11/16 2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실패를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상황을 즐기는 룰은 재미있어보여요. 역시 택틱물은 실수나 실패를 즐기기에는 압박이 심해지는 경향이 있는 거 같습니다.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라는 말이 갑자기 와닿는 군요. 간단한 이야기 지어내면서 맞춰가기 보다, 케릭터 스탯을 짜는 일이 더 부담없을 때도 있으니 어렵습니다.

      확실히 자신이 바라는 바와 맞는 룰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네요. 뭐라 해도 룰은 가지고 노는 것이니까요. 스토리텔링 쪽도 굉장히 재미있어 보입니다^^ 여유가 생기면 꼭 겪어보고 싶군요.

  2. 바보왕 2009/10/25 0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늦깎이 오알러입니다.

    로키 님의 블로그를 보고 여러 가지로 배우는 중인데요, 갈등판정 관련 개념을 보고 "이거다" 싶어서 카페에 소개하는 중에 로키 님의 포스팅 주소도 퍼갔습니다.

    자비를 베푸사 늦게나마 허락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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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처음 RPG를 시작했을 때 저는 RPG라는 취미가 어떤 것인지 굉장히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글을 읽는 것부터 시작했지요. 처음 찾은 것이 존 킴 (영문)의 글, 그리고 제가 처음 가입한 RPG 사이트였던 다이스&챗 강좌/토의 란에 있는 바바 히데카즈의 마스터링 강좌였습니다.

바바의 글은 여러모로 논란이 많은 것 같고, 저도 그의 논지에 모두 동조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마스터링 강좌를 비롯한 그의 글은 굉장히 도움이 되는 조언을 많이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의 글은 제가 RPG를 하는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그 영향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그 과정에서 나름 재해석이나 비판도 들어갔지만요.

그래서 다른 분에게도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에, 그리고 같이 토론해볼 수 있게 제가 바바 히데카즈의 글에서 배운 것들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1. RPG는 게임이다 (+ α)

아마도 제일 논란이 큰 대목인 것 같아서 제일 먼저 적습니다. 바바 히데카즈는 상당히 강한 어조로 RPG는 게임이라고 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게임으로 플레이하지 않으면 수준 향상을 할 수가 없으므로 RPG의 진정한 재미를 느낄 수 없고 발전도 없으니까 게임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논의하겠다고 했다는 것이 저의 이해입니다.

즉, 'RPG는 게임으로밖에 할 수 없으므로 게임이다'라기보다는 'RPG는 게임으로 해야 질리지 않고 오래 하므로 게임으로 플레이하고 논해야 한다'는 것이 바바 히데카즈의 주장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주장이 기본적으로 옳다고 봅니다. 규범적인 논의라기보다는 논리적 범주의 논의이기는 했지만 RPG가 코스티캔의 게임론에 나오는 게임의 요소를 모두 갖추었다는 요지로 글을 쓴 적도 있죠. 특히 규칙하고 관련해서 플레이 내용상 중심적인 부분을 규칙의, 즉 게임의 대상으로 만들어서 그에 따르는 효과를 활용하면 더욱 즐거운 플레이가 되니까요.

그러나 RPG가 게임이라는 주장은 옳긴 옳되 불완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RPG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두 게임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이것은 바바가 주장하는 수준 향상을 지향하는 RPG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둘째, 이것이 바바의 맹점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게임이 아니어도 RPG에서 방법론을 고려하면서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영역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묶어주는 하나의 키워드는 바로 서사, 서술, 혹은 극(劇)입니다.

RPG가 게임이라는 주장이 불완전한 첫 번째 이유는 RPG에는 게임적 요소 외에도 극적 요소가 있어서입니다. 이것은 바바가 혐오해 마지않는, 방법론이나 발전이 없는 규칙 무시성 덩실덩실 RPG뿐 아니라 계속 높은 수준을 지향하는 RPG 플레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RPG가 게임이라는 것만으로는 RPG를 논하기에 불완전하다고 봅니다.

바바가 RPG의 극적 요소를 논하지 않은 데에는 나름 배경이 있기는 합니다. 체계도, 방법론도, 규칙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없이 '재밌으면 그만이야' 식의 시장 전략이 일본 RPG에 미친 악영향에 대해 바바가 얼마나 이를 가는지 보면 이해할 수 있죠. (재밌으면 그만이라는 말 자체는 맞지만, 어떻게 하면 재밌는데? 하는 의문에 대한 대답이 되는 방법론이 부재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건 바바가 글을 썼던 특수한 배경일 뿐이지 RPG 에 게임적 요소 외에 극적 요소도 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RPG의 게임성에 충실하다 보면 극적 서술은 저절로 나오니까 굳이 논할 필요가 없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확실히 극을 돕는 도구로써 규칙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고, 저도 규칙이 서사와 따로 놀지 않고 적극적으로 서사를 뒷받침하는 플레이야말로 가장 효율적이고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규칙의 도구성 참조.)

그러나 저처럼 규칙과 서사의 관계를 밀접하게 본다 해도 규칙과 게임성은 서사를 도울 뿐이지 서사 그 자체는 될 수 없습니다. 극적 감각이나 집단적 서술의 흐름에는 게임성과는 다른 방법론과 발전 방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에서 능력치를 서술해서 판정에 추가로 주사위를 얻는 것은 게임적 판단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순간에 어떤 능력치를 어떤 식으로 서술하면 재미있을지는 극적 판단의 영역입니다. 두 가지는 서로 보완하는 관계이기는 하지만 한쪽을 잘하는 것이 반드시 다른쪽도 잘한다는 뜻은 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서술에도 방법론과 발전이 있다는 점은 RPG가 게임이라는 주장이 불완전한 두 번째 이유와 바로 이어집니다.

RPG가 게임이라는 주장이 불완전한 두 번째 이유는 게임적 요소 외에 극적 요소에서도 수준 향상을 할 수 있어서 그렇습니다. RPG가 게임이라는 바바의 주장에는 규범적인 데가 있다는 말은 이미 했습니다. 게임이 아니면 수준 향상을 논할 수 없고, 수준 향상이 없으면 RPG계에 발전이 없으므로 게임 아닌 RPG는 논의가 무의미하다는 의미에서 말이죠.

그러나 게임이 아닌 극적 영역에도 분명 방법론을 세우고 수준 향상을 꾀할 수 있습니다. RPG와 영화나 소설의 기법을 접목한다든지, 즉흥극과 RPG를 연계한다든지 하는 다양한 시도, RPG 특유의 집단적 서술을 다루는 이론과 방법론 등을 볼 수 있습니다. 바바는 RPG가 게임이 아니라면 연기 지도를 받을 수도 없지 않느냐며 발전의 여지를 부인하지만, 실은 게임이 아닌 영역에서도 발전을 위한 방법론은 얼마든지 있으며 계속해 높은 수준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RPG에 게임이 아닌 영역은 실존할 뿐만 아니라, 인정한다 하더라도 RPG계에 해가 될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게임이 아니면 발전도 없다는 전제야말로 바바의 맹점이었다고 보고요.

2. RPG를 정말 즐기려면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

바바가 쓰는 모든 글의 진짜 핵심이며, RPG는 게임이며 게임이어야 한다는 주장의 기반이기도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 사이에 잘못된, 정확히는 불완전한 논리 단계가 들어가서 RPG는 게임이라는 결론에도 불완전한 데가 생겼다는 점은 위에서 논증한 바와 같습니다.

그러나 RPG를 질리지 않고 계속 즐기려면 계속해서 높은 수준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은 흠이 없다고 봅니다. 특히 주목하고 싶은 부분이라면 RPG에서 계속 높은 수준을 추구하지 않으면 결국 다른 놀이를 하게 된다는 주장입니다.

제 생각에 RPG의 고유한 재미는 극과 게임성, 사회성의 결합이라고 봅니다. 이중 어느 한두 가지에서 RPG보다 우월한 오락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수준 높은 극적 재미만 생각한다면 책이나 영화가 나을 수도 있고, 게임성만을 생각한다면 CRPG나 체스가 나을 수도 있겠죠. 함께 모여서 즐겁게 노는 것만을 생각한다면 그냥 술을 마시거나 수다를 떠는 게 낫습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를 결합하면서 높은 자유도를 추구할 때에만 RPG를 하는 진짜 의미가 나오면서 다른 활동에 대한 비교우위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재미의 요소를 의미있게 결합하려고 하면서 발전의 필요성과 즐거움이 나오는 것이고요.

제가 RPG 블로그를 쓰기 시작한 것도 따지고 보면 강박적으로 글을 쓰니까 바바 히데카즈의 영향입니다. 발전을 추구하면서 RPG를 정말 재미있게 즐기려면 글로 생각을 정리하고 기록하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이제 400편을 넘어가는 글들은 어떻게 보면 모두 '어떻게 하면 더 재밌지?'라는 단 하나의 질문에 대해 제시하는 답입니다. 어느 하나도 절대적인 최종 결론은 없지만, 그 모색 자체가 즐거움이기도 하죠.

3. 규칙을 많이 접해라

또 하나 많이 영향을 받은 부분이라면 규칙을 여러 가지 접해보라는 충고였습니다. 당시에는 갓 시작했던 차라 D&D 클래식과 AD&D 정도밖에 몰랐는데, 그 얘기를 보고 호기심이 동해서 다양한 RPG를 읽고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이제는 이상한 규칙만 합니 어떤 규칙이 어떤 용도에 적합한지, 끌어올 수 있는 시도나 발상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제 취향에 맞는 규칙이 어떤 것인지 자연스럽게 익혀갔고 플레이도 그만큼 풍부해졌다고 생각합니다.

4. 규칙은 중요하다

바바 히데카즈의 파워 플레이와 론 에드워즈의 System Does Matter (영문)에 특히 영향을 받아 제 나름 생각해본 것이 규칙의 도구성이니 규칙의 효과 같은 것입니다. 제가 이해한 대로 규칙의 중요성을 정리하자면 규칙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일정한 예측 가능성과 경향성을 형성하기는 하며, 이러한 효과가 원하는 플레이를 지원하는 것이야말로 좋은 규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이 제가 바바 히데카즈에게 배운 것들입니다. 이해한 바에는 변형도 있고 가미도 있지만, 결국 핵심은 계속 새로운 생각과 실험, 시도가 아닌가 합니다. RPG는 그만큼 자유스럽고 다양한 놀이이며, 그런 끝없는 새로움이 제게는 RPG의 진짜 재미이니까요.
2007/10/18 23:08 2007/10/18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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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킹랑 2007/10/19 1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키님의 글에서 'RPG의 고유한 재미' 부분에서 제가 생각하는 RPG라는건 무엇인가의 답에 가까운 생각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
    로키님의 말을 인용한뒤 살짝 바꾸면 제 머리속에선 "극과 게임성 그리고 사회성이 결합하여 높은 자유도를 가지면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유희." 라는 답이 나오니까요.

  2. Rrr... 2007/10/19 1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나 절 '생각하는 RPGer'로 만드는 로키님의 글을 잘 읽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좋은글 감사합니다.

  3. 로키 2007/10/19 23: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킹랑// 그거 괜찮은데요. 이야기를 진행한다는 점에서 대개의 보드게임하고 구분되고, 높은 자유도 면에서 MMORPG하고 구분된다든지 말이죠. 물론 정의 면에서는 불완전한 데가 많지만 (RPG를 어떻게 정의할지는 좀 애매하죠), '좋은' RPG의 속성이 무엇인지 보여주기는 하는 것 같습니다.

    Rrr...//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4. 아사히라 2007/10/20 18: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게임이라는 점에는 극히 동의하는 바입니다.

    • 로키 2007/10/24 1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게임 + α라는 주장에는? 따지고 보면 우리가 펠로스의 동기나 배경에 대해서 집요하게 파고든 그 많은 대화들은 그다지 게임적인 고려는 없었지만, 굉장히 플레이의 재미에 도움이 되긴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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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 게시판을 검색하다가 천승민님의 1년 전 글 룰의 본분을 우연히 보고 쓰는 답글입니다.  원문이 옛날 글이라서 승민님의 현재 의견을 얼마나 반영하는지는 조심스럽지만, 예전에 RPG에서 규칙의 영역이라는 글에서 한 토론과 연관성이 보이고 규칙의 영역을 더 직접적으로 다룰 수 있을 것 같더군요. 승민님의 블로그글 묘사 중심룰과 서사 중심룰에 나름 반론이라면 반론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쪽에 엮습니다. (황무지에 업데이트를 보고 싶어서 그런다는 소문은 사실무근이라고 부정합니다 (?))

규칙의 도구성

기본적으로 저는 규칙, 혹은 룰은 플레이를 돕는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승민님 글에 달린 덧글 중 신승백님이 말씀하시는 지향성의 문제죠. 철저하게 전술적이고 수치화된 워게임식 전투 중심이 원하는 플레이의 형태라면 D&D 3.5는 더없이 좋은 규칙, 즉 도구입니다. 반면 인물의 배경과 인간관계, 감정 등이 원하는 플레이의 중심이라면 승민님과 다른 분들이 말씀하신 이유로 규칙과 서사는 두 마리 토끼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후자와 같은 플레이를 D&D 3.5 규칙을 사용해서 할 수 없다는 얘기는 절대 아닙니다. 당연히 할 수 있고, 그런 훌륭한 서사적 플레이도 실제로 많이 나와있죠. 하지만, 규칙이 이끄는 방향으로 따라가려고 할 때 (피트와 클래스, 수치 등) 플레이의 중요 사항 (망국의 엘프 왕자)에서 주의가 분산된다면 그 분산을 극복하려고 소모하는 시간과 에너지는 효율 면에서는 좀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규칙의 여백

신승백님께서 말씀하신 AD&D에서 나타난 현상도 꽤 일반적입니다. 애매모호한 부분, 즉 규칙이 허술하거나 다루지 않는 부분에서 원하는 플레이를 하는 것 말이죠. 저도 WoD 계열 규칙에 대해 생각이 같은데, 사실상 WoD가 정말로 지향하는 플레이는 바로 이 애매모호한 부분에서 많이 이루어지는 것 같거든요.

제가 그나마 조금 아는 뱀파이어를 예로 들면, 뱀파이어는 정치적 플레이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규칙에서 정치물을 지원하는 지향성은 별로 없는 느낌이었습니다. 일반 기능 판정과 동료, 연줄 등 몇 가지 장점은 있지만 정치적 구조라든지 인간관계 그 자체를 다루는 규칙은 없는 걸로 알거든요. 결국 정말로 정치적인 플레이는 규칙과 별로 상관없이 이루어집니다. 진행자가 재량에 따라 상황을 만들고, 참가자가 그 속에서 필요에 따라 기능 판정을 하기도 하고 제안을 하기도 하지만 규칙은 정치적 상황의 내용은 다루지 않죠.

규칙을 타는 플레이

이처럼 규칙이 비는 부분에서, 말하자면 '규칙을 피하며' 원하는 플레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이긴 하지만, 다른 방법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D&D 3.5가 수치화된 전술적 전투를 재미있게 지원하듯, 극적이고 서사적인 캠페인이라든지 미묘한 연애 심리, 비정한 정치, 가슴 아픈 비극 등을 직접 규칙의 내용으로 다루는 규칙을 사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말하자면 규칙을 피하는 대신 규칙의 흐름을 타고 플레이하는 것이죠. 규칙과 플레이 스타일이 두 마리 토끼가 아닌 한 마리 토끼, 아니면 최소한 한 방향으로 나란히 달려가는 두 마리 토끼가 되는... 이 대목이 위의 '규칙의 영역' 글에서 승민님과 토론했던 부분, 즉 어떤 부분이 규칙의 영역에 적합하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부분과도 닿는 것 같습니다.

규칙과 서사가 두 마리 토끼가 되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묻는다면 뭐, 재미가 있다면 딱히 문제는 없다는 것이 1차적인 대답입니다. 예전에 승한님이 쓰신 RPG의 전제에 대한 답글에서 성일님도 말씀하셨듯, RPG는 자신이 재미있는 것만한 게 없죠. 다만, 플레이의 진짜 지향점을 규칙의 여백에서 다루는 방식은 개별 취향을 벗어나 순수히 효용적인 분석을 할 때 좀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은 위에 링크한 규칙의 영역 글 본문에서 다룬 내용과 직접 연관이 있습니다.

'규칙의 영역'에서도 예를 들었지만 여기서도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위에서 얘기한 뱀파이어 예시를 확장해 보죠. 뱀파이어 규칙에 몽테뉴 궁정음모 규칙처럼 폐쇄된 사회 (예를 들어 한 도시의 혈족 사회) 내에서 복잡하게 얽힌 부탁과 협박, 비밀 관계를 다루는 규칙을 넣는다고 가정해 보지요. 여기서 궁정음모 규칙이 그 목적에 비추어 얼마나 완성도 높은 규칙인지는 일단 논외로 하겠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좀 있지만, 어쨌든 뱀파이어의 지향이라고 하는 정치를 직접 다루는 규칙이라는 점에 의미를 두고 논의를 진행합니다.

규칙의 영역

규칙의 영역을 다룬 이전 글에서는 어떤 내용이 규칙의 영역이 되었을 때 발생하는 효과를 크게 두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첫 번째는 그 영역 내에서 하는 행동에 일정한 경향성을 형성한다는 점, 두 번째는 참가자가 상당 부분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형성력을 갖는 영역이 된다는 점. (첫 번째 효과는 원문에서는 '포상'이라는 말을 썼었고 승민님은 진행자의 일방적인 포상이라는 뜻으로 해석하신 것 같은데, 저는 진행자의 포상을 말한 것이 아니라 규칙 자체의 포상, 즉 규칙상 유리한 방향으로 참가자 행동이 형성되는 경향성이 생긴다는 얘기였습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경향성이라는 말로 대체해서 사용하겠습니다.) 뱀파이어 규칙에 궁정음모 규칙을 사용하면 이 두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차례대로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 행동의 경향성. 어떤 규칙이 있으면 참가자는 그 규칙 속에서 가능하면 유리한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이 1차적 반응이고, 이것이 규칙이 형성하는 경향성입니다. 이 경향성은 물론 극복할 수도 있습니다. 규칙상으로 불리하지만 인물 설정에는 어울리는 선택을 하는 식으로요. 하지만, 그게 반드시 선택 관계여야 할까요? 규칙상 유리한 것이 곧 설정에 어울린다면, 그리고 플레이 스타일에 어울린다면 '이기려는' 본능을 극복하면서 굳이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 없이 이기려는 본능이 곧 캐릭터나 플레이 스타일을 돕도록 할 수 있으니까요.

뱀파이어에 궁정음모 규칙을 사용한다는 예시도 같은 맥락입니다. 궁정음모 규칙을 사용하면서 규칙상 유리하려면, 곧 이기려고 한다면 우선 남의 부탁을 많이 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부탁 점수가 쌓여서 필요할 때 돌려받을 수 있으니까요. 이 부탁을 들어주면 부탁 점수가 얼마나 쌓일지, 이 부탁을 하면 자기 부탁 점수가 얼마나 깎일지 하는 의사판단이 플레이의 중심이 되고, 이것은 실제로 부탁과 의무 관계가 복잡하게 쌓이는 폐쇄적이고 정치적인 사회에서 내리는 의사판단과 방향을 같이합니다. 부탁을 하고 들어주는 것은 단순한 숫자놀음이 아니라 RP와 판정도 들어가므로 그런 의사판단의 과정에서 사건과 서술 또한 쌓여가고요. 이런 식으로 규칙이 원하는 플레이를 지원하는 것이 규칙을 피하는 대신 규칙의 흐름을 타는 플레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부탁을 들어주는 건 가장 정석적이고 안전한 방법일 뿐이고, 좀 더 빠르지만 위험한 방법으로는 남을 협박하는 것도 있습니다. 협박으로 생기는 유용성 점수는 스스로 부탁 점수를 쌓을 필요가 없다는 점, 즉 대가성이 없다는 점에서 부탁보다 훨씬 효용은 높지만 대신 인간관계는 한층 나빠지고, 이 협박을 우려먹을 때마다 상대가 적이 되는 날은 가까워져 옵니다. 그 아슬아슬한 줄다리 타기도 정치 플레이의 또 다른 재미이고, 동시에 중요한 규칙상 (혹은 게임적) 의사판단이기도 하죠.

음모 규칙을 사용하지 않는 일반 플레이에서도 이러한 경향성은 진행자, 때로는 참가자가 생각하는 상식만큼 나타나기는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규칙에 그게 들어갔을 때만큼 직접적인 의사판단의 대상이 되거나 참가자 행동의 경향성을 강하게 형성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관점에 따라서는 그게 오히려 장점일지도요. '규칙의 영역'에서 승민님이 말씀하신 반복성이나 제약성 문제하고도 관련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영역을 다루는 규칙이 없이는 내가 저 인물을 협박하면 그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내가 부탁을 들어주면 그가 내 부탁도 들어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진행자의 재량에 따라 꽤 폭넓게 형성할 수 있는 영역으로 남습니다. 이것은 합의에 따른 플레이라 해도 각자의 영역은 대개 존중되니까 어느 정도는 마찬가지이지요. 이 점은 규칙의 두 번째 효과, 즉 참가자의 독자적 상황 형성권으로 바로 이어집니다.

둘째, 참가자의 독자적 판단과 형성권. 일단 규칙의 영역에 들어온 사안은 진행자의 재량에 강력한 제재를 가하면서 참가자가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되므로 그만큼 참가자의 상황 형성권을 증진시킨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이고 엄격한 규칙일수록 진행자가 그 규칙에 반해서 규칙에 기반을 둔 참가자 판단을 부인하려면 무거운 '입증 책임'을 지게 되니까요.

다시 뱀파이어의 예로 돌아가면, 혈족인 철수는 나중에 영희에게 무슨 부탁을 할 날을 대비해서 열심히 부탁을 들어준다고 하죠. 그러던 어느 날, 철수가 뒤에서 조종하는 기업에 유리하도록 영희가 조종하는 언론사에서 기사를 내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궁정 음모 규칙을 사용하지 않을 때 진행자가 생각하기에 이 부탁은 영희가 안 들어줄 것 같다면 진행자 재량으로 안 들어줄 수도 있고, 합의에 따른 플레이라 하더라도 참가자가 능동적으로 목소리를 내서 '내가 영희에게 이러이러한 부탁을 들어줬으니 영희도 이런 부탁 정도는 들어줄 것 같다'라고 해야 합니다.

반면 궁정음모 규칙 같은 것을 사용해서 영희에게 들어준 부탁 점수가 4점이 있고 철수가 하는 부탁은 2점이라면, 왜 영희가 부탁을 안 들어주는지는 진행자가 설명할 몫이 됩니다. 그리고 그 결정에 참가자가 항변할 수 있는 기반도 한결 강해지지요. 그만큼 뭔가가 규칙의 영역에 들어오면 참가자가 독자적으로 예측하고 판단해서 상황을 형성할 여지는 넓어집니다.

규칙의 본분?

결국 하고 싶은 얘기는 규칙과 서사는 논리필연적으로 선택관계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워게임에서 시작한 역사적인 이유가 작용해서 규칙의 영역은 전투와 다른 판정, 물리규칙 정도로 제한된다고 흔히 생각하기도 하지만, 다른 영역을 다룸으로써 그 영역에서 규칙의 효과 (경향성 형성, 서사에 대한 참가자 재량 확대)를 낼 수도 있으니까요. 이렇듯 규칙에 본분이 있다면 플레이를 편하게 하는 도구로서이며, 원하는 플레이스타일을 구현할 때 규칙에 저항하지도 않고, 피하지도 않고 오히려 도움을 받는다면 그 구현은 한결 편해진다고 생각합니다.
2007/08/03 23:16 2007/08/03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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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방인 2007/08/04 1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다 3.5는 확실히 서사나 RP중심의 플레이 보다는 핵앤 슬래쉬나 전술적인 재미를 느끼는데 더 특화되어 있는 룰이긴 합니다.
    물론 나온대로 그 룰로 멋들어진 RP,드라마 중심의 플레이를 할수 없다라는건 아닙니다.
    하지만 다다 3.5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글들이란건 대부분 제작사에서 출시한 어떤 데이터북에 어떤 기능들에 대한 이야기랄지... 이번에 새로 추가된 어떤 규칙이나 아이템. 또는 기술등을 어떤식으로 적용할지 같은 이야기랄지... 아니면 제작사에서 제공한 어떤 세계관의 엔피씨나 혹은 세계관 자체에 대한 토론이나 이야기 들이죠.
    그게 재미없다는건 아닙니다.
    물론 정교하게 짜여진 룰 속에서 서로 플레이어들과 머리 싸움을 하며 헥스지도에 그 위치를 그려가며 서로 치열하게 전투를 치르는것 또한 분명히 재미중 하나일껍니다.
    다만 그게 호오를 탄다는거죠(...) 제 경우 다다 3.5 룰은 처음 OR에 입문하면서부터 잡은. 가장 오래접해온 룰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머리가 딸려서인지... 룰에 아직 미숙해서인지 아직도 저는 다다 3.5의 전투를 접하면 울렁증(...)이 발동하거든요.
    물론 그건 룰을 잘 알지도 못하는 쌩 초기에 비정상적으로 머리가 비상한 마스터를 만나 죽도록 고생한 탓도 있겠지만서도(...)
    그리고 전투가 중심이 되는 다다 3.5 룰의 특성상. 제 경험으로 전투가 미숙한 PC는 절대로 RP에서도 빛날수가 없었어요.
    전투떄마다 이렇게 죽고 부활하고. 저렇게 죽고 부활하고, 맨날 삽질만 하는 PC가 제 아무리 멋진 대사를 생각해 날리고, 아무리 상황에 맞는 RP를 해봐야 빛이 나질 않았죠.
    그래도 가끔 다다 3.5에 끌리게 되는것은 역시 그쪽에서 계속해서 제공하는 세계관이나 NPC나 그런 '데이터' 적인 콘텐츠들이 끌리기 때문입니다만...
    다다 3.5야말로 '전투 좋아하는' 사람끼리 모여서 치열하게 서로 다투며 플레이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뭔가 드라마를 만들고 이야기를 만들고 하는 스토리 중심 플레이를 하기 위해서는 마스터의 역량이 가장 중요한거 같습니다.
    무턱대고 강한 캐릭터를 만들어 들이대서 PC들을 학살하고 괴롭히고 힘들게 만드는건 룰만 파면 누구라도 할수 있는 거지만, 적당히 강하게 PC들을 돋보이게 하면서 NPC를 '마스터 PC"가 아닌 드라마나 이야기 서술의 도구로 사용해 자기욕심 부리지 않고 플레이를 진행시킬수 있는 마스터는 특히나 다다 3.5를 즐기는 분들중에서는 찾기가 쉽지 않은게 현실이거든요(...)
    다다가 자랑하는 그 정교한 전투룰이나 데이터 같은것도 실은 특정 레벨을 벗어나면 그야말로 밸런스가 엉망진창이 되는감도 있고(...)
    다다 3.5 얘기가 나오길래 글과는 전혀 관계 없는 뻘플(...) 을 남겼군요.
    아무튼 다다 3.5는 저에게 있어서는 그 매력적인 세계관과 방대한 데이터들이 끌리지만, 전투 중심의 룰 탓에 그걸 즐기는 사람중에서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 중심'의 시나리오를 진행하는 마스터를 찾기가 힘들어 늘 포기하게 되는(...) '세계관과 이야기만'즐기고 싶은 애증의 룰인 것입니다(...)

    • 로키 2007/08/04 13:02  댓글주소  수정/삭제

      D&D 3.5는 분명 훌륭한 규칙이죠. 하지만 전에 '취향을 넘어 기능으로'라는 글에서 다루었듯 규칙이 좋고 나쁘다는 건 그 목적성 내지 기능성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문제이긴 합니다. 치밀하고 전술적인 전투를 하기에는 매우 좋은 규칙이지만, 역으로 말하면 그 치밀하고 전술적인 전투라는 목적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별로 흥미가 가지 않는 규칙이라는 얘기도 됩니다. 저나 이방인님처럼 말이죠.

      반면 D&D 3.5를 기능적으로 분석하면 (아니 사실은 슥 보기만 해도(..)) 서사나 인물의 깊이를 받쳐주는 규칙은 별로 없습니다. 즉 서사적인 플레이도 얼마든지 할 수 있긴 하지만, 그렇게 하는 데에 규칙의 도움을 받기는 어렵고 말씀대로 어디까지나 참여자 (특히 진행자)의 능력으로 해야 하죠. 그게 바로 제가 얘기한, 규칙의 여백에서 원하는 플레이 스타일을 구현한다는 거고...

      글에서 한 내용에 부연하고자 조금 사족을 붙이자면, 물론 어떤 플레이를 해도 참여자 능력이 가장 중요하고 규칙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같은 능력과 열정이라도 규칙의 도움까지 받으면 더 편하고 효율적이라는 의미에서 규칙은 도구라는 생각이 나왔습니다. 전투를 재밌게 만드는 도구, 플레이 내 물리 법칙을 모사하는 도구가 될 수 있듯 서사를 구조화하고 원하는 경향성을 형성하는 도구로 사용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다시 이방인님 덧글로 돌아가서, D&D 3.5의 규칙보다는 설정과 이야기 쪽이 끌리신다면 그 자료를 다른 규칙으로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죠. 예를 들어 우리가 지금 하는 공화국의 그림자 캠페인도 따지고 보면 스타워즈 d20로 할 수도 있었겠지만, d20 규칙을 돌린다는 건 생각만 해도 머리가 터질 것 같군요..(..) 하지만, 규칙은 안 써도 스타워즈 d20 설정을 참조한다든지 할 수는 있었겠죠. 수정주의 플레인스케이프라든지 레이디의 그늘 같은 것도 옛 AD&D 플레인스케이프 설정에 다른 규칙 (수정주의 역사, 과거의 그늘)을 접목한 시도고요.

      생각해보면 전 규칙과 설정 섞어찌개(..)를 나름 즐기는 것 같군요. 고대 중동 배경에 트롤베이브 규칙을 사용했던 바빌론 베이브라든지, 강철의 연금술사 배경에 세기의 혼을 접목한 강철의 혼 캠페인 구상, 트랜스휴먼 스페이스와 안방극장 대모험을 결합한 트랜스휴먼 어드벤쳐 구상 등등. 그래서 설정책도 규칙 정보가 적게 들어가거나 책 끝에 몰아넣어서 설정 내용과 분리한 SJ식 구성을 좋아합니다.

  2. 데스티 2007/08/04 14: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로키님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저와 룰에 대해서 거의 같은 의견을 지니고 계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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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다루었듯 RPG계에서 규칙에 대한 논의는 민감한 문제가 되기 쉽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부분적으로는 인터넷 토론의 성격도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규칙에 대한 논의는 흔히 기능이나 효용이 아닌 취향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합니다.

취향은 근거 제시와 반론이 들어가는 생산적인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공감하거나, 존중하거나, 반대하거나, 싸움이 나거나 할 수는 있어도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근거가 있는 게 아니므로 토론의 효과를 볼 수는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규칙에서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어떤 부분일까요? 우리가 어떤 규칙이 좋거나 나쁘다고 할 때, 그것이 개인적 취향을 넘어 객관적인 토론으로서의 의미가 있으려면 무엇을 다루어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 규칙의 목적, 혹은 기능이 아닐까 합니다. 즉 막연히 '좋다' 혹은 '싫다'는, 처음부터 취향 얘기이거나 취향 얘기로 흐르기 쉬운 얘기가 아닌, 'A 규칙책은 이러이러한 이유로 이러한 스타일의 놀이에 적합하다'라거나 'B 규칙은 놀이 속에서 이러이러한 기능을 한다'는 식이죠.

예를 들면, '나는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이 좋아'라든지 '나는 장면 신청 규칙이 싫어'는 공감이나 반감을 넘은 의미있는 찬성이나 반론을 할 수 없는 취향 표현입니다. 하지만, '포도원의 개들은 갈등에 새로운 수단을 도입할 때마다 추가로 주사위를 받으므로 상황이 점점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극적인 플레이를 유도하는 데에 적합하다'라거나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에서 장면 신청 규칙은 참가자가 돌아가며 장면의 초점, 배경, 목적을 정하므로 진행자의 전통적인 장면 설정권을 상당 부분 참가자에게 이양한다'는 식으로 얘기하면 토론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점점 상황이 돌이킬 수 없게 되므로 오히려 새로운 주사위를 끌어들이지 못하게 위축시킨다'거나 '진행자도 토론과 제안을 통해 얼마든지 장면 설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식의 반론도 가능해지죠.

즉, 어떤 규칙이 '좋다' 혹은 '나쁘다'는 가치 판단은 '어떤 목적에 좋은가? 어떤 목적에 어울리지 않는가?' 하는 고려가 먼저 들어가지 않으면 개인 취향의 영역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포도원의 개들은 쓸모없는 규칙이다'라고 하면 포도원의 개들을 좋아하는 사람하고 싸움나기 딱 좋지만, '포도원의 개들은 주사위의 내용이 "절름발이 2d10"이든 "명사수 2d10"이든 서술에 넣는 상황이 달라질 뿐 규칙상 동일한 가치를 가지므로 치밀한 전술적 시뮬레이션에는 쓸모없는 규칙이다'라고 한다면 수긍하든, 반론하든 소모적인 언쟁을 넘어선 토론이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그렇다면 왜 규칙과 그 목적, 혹은 기능에 대해 생산적 토론이 필요한 것일까요? 제가 보기에는 몇 가지 효용이 있습니다.

첫 번째, 자기가 하려는 플레이에 적합한 규칙을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규칙을 사용하는지는 취향이나 친숙도, 시간 사정, 경제성 등 여러 가지 고려가 들어가므로 순수히 기능성만으로 규칙을 고르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자신이 하려는 플레이를 원활하게 하는 규칙을 선택할 사정이 된다면 규칙에 대한 활발한 토론은 규칙을 고르는 데 도움을 주겠지요.

두 번째, 자신이 현재 사용하는 규칙을 고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사용하는 규칙 중 자기가 원하는 플레이에 방해가 되는 것이 있다면, 혹은 더 좋게 고칠 방향이 있다면 기능 중심적 생각과 토론은 플레이에 적합한 경향성을 만들도록 규칙을 수정하는 지침이 될 수 있죠.

세 번째, 규칙을 새로 디자인하는 사람에게 특히 규칙에 대한 토론은 많은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내가 지금 만드는 규칙이 플레이중 어떤 기능을 할 것인지, 다른 규칙과 어떤 식으로 맞물린 것일지 생각하는 것과 안 하는 건 차이가 크죠. 특히 'HP 규칙은 다들 쓰니까' 하는 식의 타성에서 벗어나 HP가 실제로 플레이중 어떤 기능을 하는지, HP가 원하는 플레이 스타일을 지원하는지 하는 고려가 막연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효용이 클 것입니다.

이처럼 개인적 취향을 넘어 (비교적) 객관적인 기능이라는 측면에서 규칙을 토론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방법과 효용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규칙에 대해 보다 평화적인(?) 토론을 하는 데 일조하면 좋겠습니다.
2007/07/19 10:57 2007/07/19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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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sdee 2007/07/21 23: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이 공감이 가네요. 비슷하게 아는 분과 이야기하면서, 각 시스템들이 가진 '색깔'을 규정지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GURPS 같은 범용룰이라도 뭔가 나름의 특색이 있어서요. "어떤 세계"를 구현하는가(혹은 어떤 세계를 구현하는데 적합한가)...의 문제겠지요. 아마.

    룰의 "기능성"은 그러한 지향점을 얼마나 잘 살리며, 또 어떤 한계나 모순을 지니는가이겠죠? 흔한 경우로, 대체로 잘 돌아가지만 몇몇 경우에서 밸런스가 깨진다거나... :D

    • 로키 2007/07/22 14:21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 그런 식으로 기능적으로 분석하면 어떤 규칙의 최적의 활용법이라든지, 하려는 놀이에 최적으로 고칠 방법이라든지 하는 게 많이 나오지 않을까 해요. 밸런스 자체도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어떤 목적의 밸런스인지가 중요하겠죠. 전투력, 서사 형성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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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ios님이 쓴 진행자 유형을 허락을 받고 한글로 번역했습니다. 원문은 독일어였고 원작자가 영어로 옮긴 걸 제가 다시 우리말로 번역했으니 벌써 3개 국어..(..) RPG는 국제적인 취미인 겁...


로빈 로스의 참가자 유형은 RPG 조언의 고전으로 꼽힌다. 개인적으로는 그것만으로는 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 진행자는 참가자에게 재미를 제공하는 것 외에는 아무 흥미도 없다는 가정을 깔고 있어서이다. 물론 책은 참가자가 아닌 진행자가 대상이기는 했지만, 참가자 유형을 알아보는 것은 절반일 뿐이고 정말 재미있는 플레이를 하려면 진행자의 흥미와 욕구도 파악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해 진행자 유형을 정립하는 시도를 했다. 많은 의견과 활용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주의사항: 로스의 참가자 유형과 마찬가지로 진행자 유형도 당연히 배타적이지 않다. 많은, 어쩌면 대부분의 진행자는 둘 이상의 유형에 속한다. 또한, 같은 유형에 속하는 진행자라고 반드시 진행 방식이 비슷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진행자 기대치를 파악하는 시작점으로는 제기능을 하리라 본다.)

세계 창조자는 깊이 있는 배경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다. 그의 세계는 얼굴없는 인물이 단조로운 건물 사이를 배회하는 무미건조한 장소가 아니다. 역사가 있는 세계, 다양하고 흥미로운 풍경, 살아 숨쉬며 무궁무진한 세부사항을 자랑하는 세계와 그 일부로서 살아가는 인물 군상이 있는 곳이다. 세계 창조자는 RPG 자료집, 참고 서적과 다큐멘터리, 장르 문학 등에서 엄청난 양의 자료를 가져다가 배경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배경은 그의 작품이며 참가자는 그의 관객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스타일: 세계 창조자와 플레이한다면 배경에 관심을 두고 그 세밀함을 즐기는 것이 좋다. 특히 진행자가 기존 배경을 사용한다면 많은 참조와 의도적인 모순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결투가는 참가자와 경쟁하는 진행자이다. 그는 주인공 일행의 적수가 되는 것을 즐긴다. 그에게 플레이는 일행이 무엇인가를 걸고 싸울 때에야 비로소 시작한다. 그렇다고 결투가가 전투에만 가치를 두는 것은 아니다. 그가 중시하는 것은 참가자에게 도전을 하는 것이다. 그는 어렵게 얻은 승리, 참가자들이 아슬아슬하게 패배를 피하는 상황을 좋아한다. 하지만, 참가자가 좋은 전술과 전략을 보이면 그들이 쟁취한 승리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규칙 판정을 엄격하게, 하지만 공평하게 하는 것은 그에게 당연한 일이며, 그렇지 않으면 승리는 무의미하다.

스타일: 결투가와 플레이한다면 도전을 회피하거나 전술·전략 외의 이유로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 결투가형 진행자에게서 뭔가 얻어내려면 반드시 노력이 들어가며, 계속해서 실력을 보여야 한다. 결투가의 말은 곧 법이지만, 명예의식 또한 강하므로 누구에게도, 심지어는 자신에게도 편파적인 이득을 주지 않는다.

구성의 대가는 자신을 모든 실을 조작하는 인형술사로 여긴다. 그는 참가자들이 풀어내야 하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구성을 만들어 낸다. 그에게 배경 세계는 장소라기보다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인과의 그물이다. 따라서 때로는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한 발단이 놀라운 반전과 복합적인 줄거리로 이어지기도 한다. 구성의 대가는 참가자들을 계속해서 교란하고 놀라게 하되, 돌아보면 일관적이고 말이 되는 줄거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목적이다.

스타일: 진행자가 구성의 대가 유형이라면 플레이 내 사건에 계속 관심을 기울이고, 아무리 작은 세부 사항이라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는 퍼즐 조각을 모두 참가자에게 쥐여주는 것을 즐기지만, 맞추는 것은 그들의 몫이다. 참가자들은 지속적으로 기록을 남기고 서로 가설을 주고받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가정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플레이 내에서 시험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식전(式典) 책임자는 분위기와 몰입감이 넘치는 플레이를 중시한다. 그는 참가자들이 전혀 새로운 세계로 뛰어들 수 있는 독특한 플레이를 진행하고 싶어한다. 현장감을 생생히 살리는 온갖 장치를 사용하는 것도 이 유형의 특징이다. 조명, 배경 음악, 소품, 전단 등. 각 조연의 대사와 행동에 진정성이 있는 것도 식전 책임자 유형에게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에게 RPG는 무엇보다 하나의 경험이자 현실 도피이다.

스타일: 식전 책임자와 잘 지내려면 최대한 몰입하고 농담은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엉뚱한 순간에 잡담을 하거나 분위기를 깨는 행동을 하는 것은 미움을 사는 지름길. 이 유형은 특히 주인공 입장에서 벗어나 순수히 참가자로서만 하는 플레이를 싫어한다. (순수한 전술적 플레이도 여기 들어갈 수 있다.)

배우 유형 진행자는 모든 노력을 조연에 쏟아붓는다. 그는 참가자에게 개성 넘치고 특이한 조연을 선보이고 싶어한다. 배우 유형에게 배경 세계는 인물들의 호오(好惡)와 장단점이 중심이 된다. 그에게 RPG는 곧 인물간 상호작용이다. 그러려면 물론 각 조연에게 규칙이나 제약에 제한받지 않는 일관된 성격이 있어야 한다. 배우 유형은 각 인물이, 그리고 그들과 참가자의 관계가 기억에 남기를 바란다.

스타일: 배우 유형 진행자와 잘 지내려면 주인공에게도 개성이 있어야 한다. 참가자가 조연과 그들의 행동 동기를 알게 되듯 배우 유형은 참가자 인물에 대해 보다 깊이 알고 싶어한다.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는지. 인물 행동에 모순이 있다면 그 이유는 어떤 내적 갈등이나 충돌이어야 한다. 인물 행동의 일관성에 참가자가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이유여서는 안 된다.

감독 유형은 RPG를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매체로 여긴다. 이야기를 흥미롭게 꾸며가려고 그는 모험 구조, 도전, 극적 갈등 등 RPG 내적 수단뿐 아니라 그가 아는 모든 서사 예술에서 장치를 끌어온다. (3막 구조, 장르 법칙, 영화 언어 등.) 감독형 진행자는 중요한 대목을 플레이하는 데만 관심을 보인다. 줄거리를 진행하거나 인물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지 못하는 장면이라면 피하거나 잘라버리기 십상이다.

스타일: 감독 유형은 참가자들도 창의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기를 기대한다. 즉, 이야기를 만들어갈 기회를 찾아서 활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진행자는 참가자가 상황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이야기를 새로운 방향으로 끌어가서 자신을 놀라게 하는 것을 즐긴다.

제공자는 플레이에 자신만의 욕구가 없는 유형이다. 그의 재미는 곧 참가자가 느끼는 재미이다. 많은 제공자는 모두와 함께한다는 사실을 즐기며, 종종 진행을 하려는 사람이 없어서 진행을 잡곤 한다. 모험은 종종 참가자 선호도를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또한, 참가자 권한이 많은 편이 참가자에게 재미있다면 제공자형 진행자는 언제든지 참가자에게 권한을 넘길 준비가 되어 있다. 그는 늘 참가자와 기대치를 타협할 의무를 느낀다.

스타일: 제공자 유형과 잘 지내기는 어렵지 않다. 많은 참가자가 이 유형을 가장 선호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제공자도 두 가지 경우에는 마음이 멀어질 수 있다. 우선, 참가자는 대충이라도 자신이 RPG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제공자형 진행자에게 무엇보다 참기 어려운 것은 말하는 것과 실제 선호가 다른 참가자이다. 또한, 제공자는 다른 어떤 진행자보다 플레이가 재미있었다는 확인을 바란다. 진행을 잘했으며 플레이가 즐거웠다는 말을 정기적으로 하지 않는 것은 제공자를 소진으로 내모는 것이나 다름없다.

각 유형 설명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혹은 객관적으로 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이 유형에도 부정적인 변형이 많다. 결투가는 참가자들이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지 않으면 킬러 진행자가 될 수 있으며, 구성의 대가 중에는 대가는커녕 준비조차 제대로 안 해서 모험 내용이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진행자도 보인다. 세계 창조자는 자기 창조물에 넋을 잃고 끝없는 장광설이나 쓸데없는 묘사로 참가자들을 지루하게 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부작용은 이들 진행자 유형의 잘못된 모습이며, 이를 이유로 진행자의 다양한 욕구를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상과 같이 진행자 유형론을 번역해보았습니다. 의구심이 든 부분도 없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진행자도 자신만의 욕구와 필요가 있는 참여자라는 생각의 시작점으로 의미가 있는 것 같고, 또 함께 생각하고 토론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옮겼습니다.

보면서 그동안 제가 겪은 진행자 유형을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더군요. 예를 들어 아루스 캠페인 진행자 아사히라군은 결투가 성향이 강한 것 같았고, 7번째 바다 플레이를 함께했던 란님은 구성의 대가, 언더월드 진행자였던 제노시아님은 세계 창조자 유형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어떤 진행자도 유형만으로 파악할 수는 없지만 진행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대응하면 서로 재미있는지, 나에게 맞는 진행자는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보면 더욱 풍요로운 RPG 생활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
2007/07/10 21:56 2007/07/10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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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Xenosia 2007/07/10 2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 월드 메이킹에 이어서 툴 메이킹에 [<-..]

  2. nefos 2007/07/11 08: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흥미로운 글이네요. 나는 '어떤 유형의 진행자며, 무엇이 부족하다'와 '내가 좋아하는 진행자는 이런 유형이다'의 두 가지에 대해서 재미있는 글들이 많이 나올수 있을거 같아요.
    결투가와 감독 유형의 진행자를 좋아합니다. 내가 진행자를 하면 이렇게 하겠다고 생각했던게 결투가와 감독유형 두가지입니다. 어찌보면 게임주의와 서사주의라는 양극단의 유형같으면서도;; 어떻게 절충이 나올거 같은데...

  3. Asdee 2007/07/11 09: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멋진 글이네요. +_+)b

    근데... 제가 어떤 진행자 유형인지는 딱 감이 잘 안 오네요. ^^;; [결투가] 성향이 가장 크지 않은가 싶은데(특히 PC들을 극한까지 몰아붙인다거나 하는 점에서-_-), 요즘에는 좀더 "연출"이나 깊이있는 주제의식을 던지는데 신경쓰게 된 것 같아요.

    특히 플레이를 통해서, 참가자들과 "생각을 맞부딪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RPG를 통해 각자 의견과 철학을 소통했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 있네요. 흠.

  4. 로키 2007/07/12 1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Xenosia// 뭐든지 일단 만들고 보는 겁니..? (..)

    nefos// 예, 그러게요. 참가자와 진행자가 서로 스타일이 맞으면 플레이는 더욱 즐겁겠죠.

    결투가와 감독 욕구를 동시에 충족하는 건 간단하죠. 규칙 자체에 서사적 장치가 있으면 규칙을 매개로 진행자와 참가자가 서사와 갈등의 방향을 두고 겨룰 수 있고, 그러면서 만들어가는 이야기에는 참가자와 진행자의 창의성이 동시에 반영되니까요.

    Asdee// 감사합니다. ^^ Asdee님도 결투가/감독 유형이시려나요? 그렇다면, 역시 안방극장 대모험, 세기의 혼, 트롤베이브 등 서사적 제어가 들어가는 규칙이 잘 맞으실 것도 같은데... 그런 규칙을 사용하면 '서사 자체에 대해' 전술적인 고려를 하고, 규칙이라는 정형을 통해 서로 생각을 가지고 밀고 당길 수 있으니까요. 언제 인디 RPG 진행자 워크숍이라도 할까요? ㅋㅋ

  5. Asdee 2007/07/12 1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와~ 인디 RPG 진행자 워크숍이라니 대환영입니다^^

    안그래도 [포도원의 워게임] 리플레이 보고, 당장 [Dogs in the Vineyard]를 질러서 일독했습니다; 새롭고 유익한 조언들이 많더라구요. 한번 플레이하려고 벼르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우리네 입맛에 맞출까 고민 중이에요. :D

    • 로키 2007/07/12 2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하.. 천천히 계획을 잡아봐야겠는걸요. ^^

      오, 제가 또 한 부 팔다니(?) 역시 베이커씨에게 수수료 청구해야..(퍽) 그렇잖아도 어제 떠오른 포도원의 순사들 글을 작성중이었는데, 우리 입맛에 맞춘다는 대목 보고 느낌 받아서(..) 완성했습니다. 내용이 좀 그래서 권한다고는 못하겠지만요..(...)

  6. Rrr... 2007/08/08 0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감독인가 보네요. RPG에 써먹을 기법을 영화, 소설 이론쪽에서 찾고 있었는데... :P

    • 로키 2007/08/08 1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감독 유형이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 딱히 다른 매체의 기법을 끌어온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요. 그런 거 찾으시면 글로 올리시면 어떨까요? 저도 보게..(퍽)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지난번에 Wishsong님과 성일님의 글에 답변하면서 떠오른 것으로, 간단하게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많은 의견 주시기 바랍니다.

RPG, 혹은 다른 놀이를 할 때 참여자가 맡을 수 있는 기능에는 크게 설정, 진행, 참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정은 놀이의 초기 조건을 거시적 혹은 미시적으로 정하는 것이고, 진행은 설정의 변화를 표현합니다. 참가는 참가 수단 (RPG의 경우는 인물)을 움직여서 설정의 초기 조건을 변화시키는 기능입니다.

수정 (07/06/24 08:19): 성일님의 반론대로 진행과 참가의 구분은 인적 구분이 개입한 면이 큽니다. 참가는 진행 중 서술의 한 형태로 이해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좀 더 정리해보고 싶으니 역시 많은 의견 부탁드립니다.

보통 RPG에서는 설정과 진행은 진행자의 역할, 참가는 참가자의 역할입니다만, 일반적일 뿐 필연적인 것은 아닙니다. 참가자가 설정과 진행 권한을 나누어 가질 수도 있으며, 설정과 진행 일부를 규칙책과 카드에 맡겨놓고 진행자 없이 참가자만으로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진행자와 참가자의 역할을 나누는 것이 인적 구분이라면, 사람이 아닌 기능에 따라 나누어 생각하는 것은 기능적 구분입니다.

설정과 진행, 참가를 좀 더 세분화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세부 구분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는 우리가 평소 놀 때 하는 각 활동이 전체 놀이 속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 생각해보는 효용이 있겠지요.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각 상세 구분마다 제가 아는 규칙의 예를 들겠습니다.

1. 설정

1.1. 배경 설정

놀이의 배경이 되는 시간과 공간을 설정하는 기능입니다. 진행자 권한으로 전부 설정하기도 하고, 참가자들이 참여하기도 하고, 모두 아는 배경을 차용하기도 합니다. 주로 상황 설정의 맥락이 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2. 상황 설정

놀이의 틀이 될 극적 상황을 설정하는 기능입니다. 인물 설정에 제약이자 맥락 역할을 하며, 배경 설정을 의미 있게 활용하는 초점이 되기도 합니다.

1.3. 계획

놀이 속에서 벌어질 사건의 전개나 향방을 정하는 기능입니다. 반드시 소설이나 영화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정하는 것은 아니고, 시나리오의 종류에서 다루었듯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보통은 거의 절대적으로 진행자의 영역이지만, 합의에 따른 플레이를 다룬 성일님의 글들에서 알 수 있듯 참가자가 이 과정에 참여하는 것도 많은 순기능이 있습니다.

1.4. 장면 설정

미시적인 설정 기능으로, 한 장면의 초기 조건을 정하는 것입니다. '어둡고 습한 지하실입니다' 하는 식으로 시작해서 이 장면에서 참가의 바탕이 되는 정보를 제공합니다. 설정의 다른 세부 구분도 마찬가지이지만 장면 설정은 특히 진행에 계속 영향을 받으며, 진행 기능에 속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장면 하나를 두고 보는 미시적인 관점에서는 설정에 들어갑니다. 장면 설정도 보통은 진행자의 권한이지만, 역시 참가자의 의견을 받기도 합니다.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은 장면 설정 처리에서 흥미로운 데가 있는데, 각 참가자가 돌아가면서 원하는 장면을 얘기하는 장면 신청 규칙이 그것입니다. 자기 차례가 되면 참가자는 '김 장군하고 박 장군 중 누가 북방 원정군을 이끌 것인가 조정 앞에서 결판이 나는 장면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하는 식으로 원하는 장면을 PD에게 신청합니다. 장면의 결말은 정하지 않고 (둘 중 누가 북방 원정군을 지휘할지) 어떤 인물이 나올지 (김 장군, 박 장군), 장면의 배경은 무엇인지 (조정), 장면에 나올 사건은 무엇인지 (북방 원정군 지휘관 결정) 얘기하는 형식이지요. 그러면서 서로 제안도 주고받으며 ("조 부인을 사이에 둔 감정 문제도 나오면 재밌겠다"라든지) 더욱 재미있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합의의 과정이 있든 없든 각 참가자에게 규칙으로 이러한 장면 설정권을 보장(강제?)한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장면 신청 규칙의 부수적 결과라면, 장면 설정 권한을 참가자들에게 주기 때문에 진행자 (PD)에게는 장면 설정권이 상대적으로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신청 사항을 집행하는 구체적인 권한은 있고 또 언제든지 제안이나 의견을 낼 수 있지만, 장면의 뼈대를 구성하는 창의적 권한은 기본적으로 참가자에게 돌아가게 되지요. 진행자가 장면을 구성하고 참가자는 제안만 하는 일반적인 형태와는 사뭇 대조적입니다.

2. 진행

2.1. 서술

놀이 속 세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설정의 초기 조건이 변하는 것을 서술하고 묘사하는 기능입니다. 종종 참가에 반응해서 나옵니다. '고요한 연못이 있습니다.'라는 것이 장면 설정, '돌을 던져요'가 참가라면 '크툴루가 튀어나옵니다'는 서술일 것입니다. 역시 보통은 진행자의 권한에 들어갑니다.

폴라리스 (Polaris)는 서술 중 의견 충돌이 생기면 의식(儀式) 언어를 사용한 교섭으로 처리하는 규칙이 있습니다. 서사나 설정의 영역도 넘나들지만... 예를 들어 이런 식이죠. (노란색으로 강조한 글자가 의식 언어입니다.)

마음: 강 도령은 "이 간신 놈!" 하고 외치며 이 대감의 배에 칼을 박아넣었다!
후회: 하지만 그러려면 그 순간 포졸들이 들이닥쳐야 한다.
마음: 그리고 또한 강 도령과 장래를 약속한 선화 낭자가 이 대감의 딸이어야 한다. (강 도령의 운명 중 '선화 낭자'를 발동하겠다고 보름달과 그믐달에게 승인받음.)
후회: 그리고 또한 선화 낭자가 그 모습을 보고 실성해야 한다. (강 도령의 운명 중 '복수가 부르는 비극'을 발동하겠다고 보름달과 그믐달에게 승인받음.)
마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구나. (강 도령의 축복 중 '하인 돌쇠'를 발동해서 울부짖는 선화가 아버지의 죽음을 못 보게 돌쇠가 막았다고 보름달과 그믐달에게 승인받음.)
후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구나'의 효과로 마지막 서술을 대폭 수정) 그리고 또한 선화 낭자가 아버지를 죽인 강 도령과 원수가 되어야 한다.
마음: 일의 전말은 이와 같았더라. (지금까지 나온 모든 서술을 받아들이고 갈등을 끝냄.)
후회: 이 대감이 죽어가는 사이 포졸들은 강 도령을 포위하고...

폴라리스의 교섭 규칙은 이처럼 의논이나 합의가 아니라 규칙으로 서술상 의견 충돌을 해소하는 점이 특이합니다. 게다가 서로 기본적으로 적수인 '마음'과 '후회'는 서로 제안이나 이견 조율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으므로, 양보 없이 각자 의견을 밀고 나가면서도 일관성 있는 결론을 낼 수 있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2.2. 조연 RP

넓은 의미에서는 서술에 들어간다고 생각하지만 좀 더 세분화해서 생각하면 조연을 움직이는 것도 진행의 한 가지 기능일 것입니다. 물론 주인공과 조연을 오가는 인물도 있는 만큼 (여러 인물을 참가자와 진행자가 돌려가며 맡을 수 있는 아르스 마기카가 좋은 예죠) 늘 뚜렷한 구분은 아닙니다.

위에서 얘기한 폴라리스에서는 진행자의 전통적인 역할을 나누어서 맡는데, '후회'가 전통적인 진행자에 가장 가깝지만 주인공과 사회적, 권력적 관계가 있는 조연과 기타 남자 조연은 '보름달'이, 정서적, 감정적 관계가 있는 조연과 기타 여자 조연은 '그믐달'이 맡습니다. 조연의 행동은 '후회' 혹은 '마음'이 특수 교섭 언어로 제동을 걸 수 있습니다.

2.3. 서사

역시 넓은 의미로는 서술에 들어갑니다만, 주인공들이 보고 들을 수 있는 범위에서 생기는 변화를 표현하는 것이 서술이라면 좀 더 거시적으로, 주인공들이 직접 영향을 주지 못하는 범위에서도 배경의 변화를 표현하는 것이 서사라고 조금 욕심을 내어 구분해 보았습니다. 서술과 마찬가지로 참가에 반응해서 일어나는 것일 수도 있고, 참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주인공들이 도적 길드 마스터를 죽여서 세력 다툼이 일어났다는 것이 전자의 예라면 옆 나라에서 홍수가 나서 난민이 몰려드는 것은 후자의 예입니다.

2.4. 규칙 운용과 해석

판정의 과정과 결과를 규칙에 따라 서술하고 해석하는 기능입니다. 규칙을 거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객관성이 있고, 참가자가 개별 판단에 따라 영향을 줄 수 있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단순 서술과 차이가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규칙으로 규정한 영역에 발생하는 두 번째 효과를 참조하시길. 진행자가 최종 결정권이 있는 것이 보통이지만, 참가자가 이의를 제기하기도 합니다. 주로 이러한 마찰의 핵심은 규칙의 올바른 해석 자체보다는 주인공의 주도권 혹은 참가의 의의가 살지 않는다는 불만의 우회적인 표현인 것 같긴 하지만요.

3. 참가

3.1. 인물 설정과 변화

놀이 속 사건의 주체이자  참가의 수단이 될 인물을 설정하고 변화시키는 기능입니다. 참가자 인물 (주인공, PC) 설정을 통해 보통 참가자가 가장 활발하게 참여하는 설정 기능이기도 합니다. 조연 (NPC) 설정은 배경이나 상황 설정에 더 가까울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인물 설정은 참가의 기본 틀이며, 참가자의 욕구를 표시하는 중요한 신호가 되어 설정, 진행 기능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보통 인물 설정은 참가자 한 명의 권한으로 생각하지만, 이 과정에 진행자와 다른 참가자들이 참여하는 일도 많습니다.

3.2. 선언

참가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으로, 판단과 의사결정에서 나온 주인공 행동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기능입니다. 이러한 의사결정에는 상황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이라는 전술적 판단, 이 장면에서는 이런 내용을 보고 싶다는 극적 욕구, 인물의 성격과 배경에는 이런 것이 어울린다는 인물 자체의 성질 등 많은 층이 있습니다. 보통은 개별 참가자의 판단으로 생각하지만 여기에 제안, 의논, 혹은 합의가 들어갈 수 있겠죠.

3.3. 판정

선언의 일종이지만 위의 규칙 운용과 해석에서 말했듯 좀 더 객관적인 기준에 바탕한 전술적 판단을 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즉, 규칙을 매개로 놀이에 참가의 효과를 더욱 확실하게 반영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수치상의 능력만 들어가고 주인공의 배경이나 정서, 인간관계는 무관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 수치상의 능력에 주인공 자체의 특징이 들어간다면 그러한 이분법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이라면 '명사수 1d6'과 마찬가지로 '어려서 당한 사고 때문에 다리를 전다 1d6'도 판정에 도움이 되고, 세기의 혼 (Spirit of the Century)이라면 '친구에게 느끼는 열등감' 면모를 발동해서 판정에 이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용하려면 이러한 능력치나 면모가 판정에 들어가야 하므로 이런 내용은 판정의 결과 못지않게 과정에도 영향을 주고, 이렇게 해서 생기는 '이야기'는 판정의, 그리고 참가의 또 다른 층을 이룹니다.


이처럼 일단 거칠게 설정, 진행, 참가에 대한 생각의 틀을 잡아보았습니다. 말했듯 이 구분을 칼같이 지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흔히 하는 각 활동이 놀이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기능을 하는지 생각해보는 데에 효용이 있는 구분이긴 하지만요. 논의와 사고의 틀이 되는 하나의 도구일 뿐, 이리 비틀고 저리 끼우다 결국 부러지면 버리고 더 좋은 걸 만들면 되겠죠.
2007/06/23 18:15 2007/06/2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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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성일 2007/06/24 05: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아직 면식이 없는 분의 블로그에 인사 외의 글을 쓰는 것은 여간해서는 내키지 않으나, 많은 의견 바라신다는 말씀에 힘입어 몇 가지 질문 드리겠습니다.

    1. 진행과 참가를 기능적으로 구별하는 실익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순이가 돌을 던지자 돌이가 튀어 나왔다"고 했을 때 돌을 던진 것은 참가요 튀어 나온 것은 진행이라고 하면, 그 뒤에 이어질 "돌이가 튀어나오자 순이는 도망을 쳤다"를 순전히 기능적 구분만으로는 설명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구조는 같은데 정반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서술이 참가에 반응해서 나온다" 하셨지만, 실제로 보면 말씀하신 서술과 참가는 서로 얽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알 수 없는 관계입니다. 아무런 자극이나 맥락 없이 새로이 등장하는 서술도 있고 참가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 사이에 차이를 상정하기는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게다가 "조연 RP"가 진행으로 분류된 점을 보면, 순이가 NPC인가 PC인가, 돌이가 NPC인가 PC인가에 따라 진행이냐 참가이냐가 변합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진행과 참가를 구별짓는 것이 인적 분류를 떠나서 가능한지, 또는 실익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2. "설정"을 세분화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계획, 장면 설정, 배경 설정, 상황 설정(모두 제 구분에서는 계획이라고 부릅니다만)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지요?

    예를 들어 PC들이 여행길을 떠난다고 했을 때, 그 도중에 뭔가 고난을 극복한다는 "계획"을 마스터가 설정한다고 하지요. 그 계획에는 그저 고난을 겪고 이겨낸다는 것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카라드라스라는 높은 산에 눈이 쌓여 있고 그 밑에는 모리아라는 드워프 지하도시가 있다는 배경 설정은 물론, 산에서는 눈사태가 일어나기 쉬우며 지하도시에는 괴물 떼가 진을 치고 있다는 상황 설정, 그리고 눈사태를 만나거나 괴물 무리와 맞닥뜨린 PC들이 겪을 장면 설정이 들어 있습니다. 이런 요소들은 실제로 뭉쳐서 나타나고, 같은 목적을 수행하며, 상호간에 구별이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나눌 근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 로키 2007/06/24 08:01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반론 올리셔도 아무 상관없는데... 여기는 RPG 블로그니까 RPG 토론을 하면 저야 오히려 좋죠. ^^

      1번은 저도 쓰고 나서 고민한 부분입니다. 특히 폴라리스 예시를 쓰고 나서 더요. 저 예시에서 보면 서술을 가지고 교섭하는 거지 어디가 진행이고 어디가 참가인지는 뚜렷하게 구분하기 어렵더군요. 이렇게 상세 구분을 하다 보니 어디서 말씀대로 인적 구분의 잔재가 남았는지 보여서 좋네요.

      진행과 참가는 순수 개념적으로 다르다기보다는 인적 구분이 있는 일반적인 상태에서 절대적이 되기 쉬운 진행자의 서술권에 묻힐 수 있는 참가자의 서술권을 강조하는 사상적(?) 의미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구분하는 의미가 있지만, 개념적으로는 (그리고 폴라리스처럼 인적 구분이 없는 RPG로 가면) 사실상 설정과 진행만 남겠네요. 그리고 진행의 향방을 가지고 밀고 당기는 다양한 장치들--규칙, 논의 등--이 중요해지고요.

      같은 맥락에서 지난번에 얘기한 '참가의 의의를 살린다'는 얘기는 '참여자의 서술권은 반드시 그 형태가 같을 필요는 없다' 정도가 되겠군요. 이 부분은 글을 좀 수정해보겠습니다.

      2번에 대한 답은 이 상세 구분을 하는 의의에 있습니다. 말했듯 정확히 구분해서 정리하는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어떤 활동이 놀이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 보려는 거니까요. 그러려면 모두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가능하면 특정 활동에 연계할 수 있는 형태로 나누는 쪽이 개념적으로 효용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하나 상세 구분을 하는 의미라면 설정 (말씀하시는 계획)의 모든 부분을 모든 놀이에서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배경 설정, 상황 설정은 하지만 (제가 얘기한 의미의) 계획은 하지 않거든요. 그런 면에서도 좀더 분리된 형태로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장면 설정은 특히 다른 세 가지와는 달리 놀이를 시작하기 전에는 전혀 할 수 없다는 점이 다릅니다. 이런 세부 구분을 하지 않으면 예를 들어 위 안방극장 대모험 예시에 나오는 장면설정권을 설명하기 어려워집니다. 설정의 모든 것에 대한 권한이 아니라 그 장면의 일정한 변수를 정해주는 권한이니까요.

      물론 실제 놀이를 할 때 동시적으로 일어나고 서로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 상세 구분에 있는 모든 활동이 그렇듯이요. 하지만 위에 얘기한 이유들로 개념적 구분은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어떤 것은 하지만 어떤 것은 하지 않는 등 분리되어 나타나기도 합니다.

  2. 김성일 2007/06/26 09: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간혹 메타블로그에까지 링크시킨 공개 블로그를 자기집 골방처럼 생각하고, 누가 반응하면 금새 방어적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보아온 탓인지... 분명 그렇지 않은 분을 상대로도 공연히 조심스럽게 되는 것 같습니다. 좀 과민해 보였다면 용서 바랍니다.

    플레이 양상에 따라 차이가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만, 저는 "참가" 개념의 선을 그음으로써 말씀하신 "진행" 부분에 대한 마스터의 독점권이 개념 레벨에서 반사적으로 인정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습니다. 특히나 마스터를 "진행자", 플레이어를 "참가자"로 칭하는 로키님의 용법에서는 단어까지 맞아들어가니 더욱 그러합니다.

    아시다시피 제 문제의식은 항상 마스터의 진행 독점과 이에 대한 플레이어의 의존에 있어왔습니다. 따라서, /저라면/ 진행과 참가를 아예 한데 묶고, "설정과 진행"으로 구분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제 표현인 "계획과 구현"과도 의미상 유사하게 될 것 같네요. 혹 그렇게 된다면 개념간의 세부적인 차이나, 설정(계획)과 진행(구현)간의 상호작용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기반이 설 것 같습니다.

    2번에 대해서는, 말씀하시는 의의를 어느 정도 수긍할 만합니다. 특히 플레이 방식에 따라 어떤 종류의 설정은 하고 어떤 종류는 안 한다거나 하는, 설정 자체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의 효용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 깔끔하게 납득이 가지는 않는군요. 예를 들어 장면 설정은 플레이가 시작되기 전에는 전혀 할 수 없다고 하셨지만, 실제로는 하는 경우가 적잖이 있어요. 일반적인 플레이에서 오프닝이 많이 그렇고, 판매되는 시나리오에는 장면 설정은 물론 로키님 분류 하의 "계획"까지 꼼꼼히 다 쓰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니면 그런 것은 디테일과 적용 타이밍에 관계 없이 상황 설정으로 봐야 하려나요?

    • 로키 2007/06/27 13: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녜요~ 배려해주시는 건데 고맙죠. 블로그마다 그런 식으로 주인 생각이 다르다보니 조심스러우실 수 있겠네요. 공지에다가 그 얘기도 추가해야겠습니다.

      참가에 대한 제 생각은 전에 얘기했듯 좀 다릅니다. 그런 식으로 설정과 진행 기능을 진행자만의 것으로 못박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이 기능적 구분을 해본 것이기도 하고요. 용어가 겹치는 것은 저도 유감스럽습니다만, 대체로 설정과 진행 기능은 진행자, 참가 기능은 참가자에게 있는 현실의 반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건 논리필연적인 구분이 아닌 그냥 일반적인 형태일 뿐이라는 상기만 시켜도 기능적 구분은 그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봅니다. 용어가 겹쳐서 이 구분을 통해 피해보려고 했던 바로 그 결과가 나온다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내용 이해 없이 오해해버리는 것을 제가 어떻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참가 개념에 대한 제 생각이 또 다른 점이라면, 전에 말씀드렸듯 모든 참여자가 설정과 진행에 참여해야 진행자 의존성과 진행자의 독단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서입니다. 즉 일반적인 역할구분 (진행자는 설정과 진행, 참가자는 참가)을 하는 팀이라고 해도 참가자의 참가 기능이 충분히 살아난다면 진행자의 독단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비록 성일님 지적대로 순수 개념적으로는 참가는 진행, 특히 서술의 한 형태라 해도 참가를 따로 분리할 의의가 있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현실적으로 진행자와 참가자의 역할을 그렇게 구분하는 팀이 다수이고, 그것도 얼마든지 진행자 독단을 피하는 훌륭한 플레이가 될 수 있으니까요. 진행자가 설정과 진행, 참가자가 참가 기능을 맡더라도요.

      설정과 진행에 대한 참가자 권한을 늘리는 것도 말씀드렸듯 훌륭한 방법입니다. 저도 그런 쪽으로 방향은 살짝 다르지만 모색중이고요. 하지만 참가 기능이 살아나지 않는 이유를 분석해서 참가의 본래 의미를 살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설정이나 진행에 참여할 생각이나 시간이 없더라도 진행자 독단이나 의존에서 벗어난 재미있는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말이죠.

      장면 설정에 대해서는, 장면 설정에 대한 제 생각이 저에게만 적용되는 것이었지 일반적인 게 아니라는 데까지는 생각이 못 미쳤다는 대답밖에는 할 수 없겠네요. ^^ 제가 생각하기에 진정한 장면 설정은 진행하다가 아, 이런 장면이 필요하겠군 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지만, 미리 그렇게 설정하는 분들도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어쩌면 사전 계획에 대한 제 태도하고도 관계가 깊을지도요.

      어쨌든 장면 설정을 사전에 할 수 없다는 위의 제 얘기는 설정 기능을 상세 구분하는 많은 근거 중 하나일 뿐이었고 주요한 근거는 아니었는데, 그 점을 잘못 짚은 것이 설정 기능을 개념적으로 세분할 근거를 많이 약화한다고 생각하신다면 그 이유를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 그 외에 또 근거가 약한 부분도 얼마든지요.

  3. 김성일 2007/06/27 1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반적인 역할구분 (진행자는 설정과 진행, 참가자는 참가)을 하는 팀이라고 해도 참가자의 참가 기능이 충분히 살아난다면 진행자의 독단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제 경험과는 배치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세션에서 2002년부터 이야기가 되어 오기도 했지요. 마스터가 독단을 원하기만 하면, 플레이어에게 자기 캐릭터에 대한 제어권(로키님 구성에서 '참가'의 본질이라고 생각됩니다)만으로는 그것을 저지할 수가 없습니다. 선언과 판정, 캐릭터의 설정이 있어도, 정작 마스터가 플레이를 지배하는 사건을 투하하기만 하면 만사는 마스터의 손에 들어갑니다. 무슨 선언을 해도 마스터는 그것을 자기가 원하는 결과로 바꿀 수 있고, 판정의 결과 또한 멋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한국 RPG 초기의 "마스터링 강좌"들이 대체로 "부자연스럽지 않게 마스터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방법"을 다루고 있기도 하고요.

    이것은 굳이 논증할 필요 없이, 실제로 RPG에서 마스터와 플레이어의 역할이 일반적으로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플레이어의 권력을 "참가"에만 한정한 결과가 작금의 모습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는 합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로키님이 서사를 제어하는 룰을 사용하고 계신 것도 같은 이유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어떠신지는 모르겠습니다.

    장면 설정에 대해 드린 말씀은, 일단 설정의 종류를 분류한 것의 의의를 납득하고 세부 설명에 관하여 드린 질문에 불과합니다. 반박이랄 만한 것은 아니니, 크게 신경쓰지 않으셔도 될 것 같네요.

    • 로키 2007/06/27 2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마스터가 독단을 원하기만 하면, 플레이어에게 자기 캐릭터에 대한 제어권(로키님 구성에서 '참가'의 본질이라고 생각됩니다)만으로는 그것을 저지할 수가 없습니다. 선언과 판정, 캐릭터의 설정이 있어도, 정작 마스터가 플레이를 지배하는 사건을 투하하기만 하면 만사는 마스터의 손에 들어갑니다. 무슨 선언을 해도 마스터는 그것을 자기가 원하는 결과로 바꿀 수 있고, 판정의 결과 또한 멋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하지만 진행자 (마스터)가 독단을 원한다는 전제가 들어가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자기 독단대로 하고 싶은 진행자라면 합의에 따른 플레이를 하지도 않을 것이고, 제가 좋아하는 식의 서술권 분배형 인디 RPG를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즉 '어떤 플레이를 하고 싶느냐' 하는 문제는 플레이 방식이나 규칙 이전의 문제이죠.

      참가의 의의를 살린다는 얘기는 자기 독단을 좋아하는 진행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런 독단으로 인한 폐해를 피하고 싶은, 그러면서도 합의에 따른 플레이나 서술권 분배형 규칙 사용 등 비전통적인 플레이를 하고 싶지도 않은 진행자와 팀을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합의에 따른 플레이나 서술권 분배형 규칙 사용을 하는 팀에도 도움이 될 것 같고요.

      설정과 진행권이 모두 진행자에게 집중된 형태에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진행자의 독단이 나타나기 좀 더 쉬운 것은 사실입니다. 마치 발언권을 보장하는 규칙 없이는 소극적인 사람의 의견이 묻히기 좀 더 쉬운 것처럼요. 하지만 이런 경향성아 있다 해도 이를 극복할 방법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행자의 의지를 관철하는 진행 방법론이 있다면 참가자의 의지를 관철하는 진행 방법론도 있지 않을까요? (물론 원한다는 전제 하에서요. 원하지 않는 것을 원하게 만들 방법은 없으니까요.)

      설정권과 진행권을 대부분 가진 진행자라고 꼭 모든 것을 자기 독단대로 처리하고 싶은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그 대안으로 꼭 설정권과 진행권을 참가자들과 나누고 싶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참가자들이 원하지 않을 수도 있고요. 그러면서도 참가자의 의견을 반영하고 관철하려는 의지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의지를 도울 방법이 있다면 진행자 독단을 피하면서 더욱 재밌게 플레이할 수 있을 테고, 저는 그 실마리가 참가의 의의를 살리는 진행 방법론이나 팀내 사회계약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스티캔의 게임론에서 끌어온 RPG 게임론도 그 일환이고요. 전에 댓글에서 말씀드렸듯 RPG에서 재밌게 노는 방법은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인 것이야말로 RPG라는 놀이의 논리적인 귀결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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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shsong님의 글 플레이어-마스터와의 관계와 이에 대한 성일님의 답변과 반론에 대한 의견입니다. 자칫 복잡해질 수 있으니 Wishsong님의 원문성일님의 원문을 색으로 구분하겠습니다. Wishsong님이 제시하신 전제들은 논의의 핵심이므로 진한 글씨로 나타내겠습니다.


1. RPG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목적(플레이)을 이루기 위해 만드는 쌍방향적인 커뮤니케이션이다.

쌍방향이 진행자 (마스터)와 참가자 (플레이어) 사이 말씀이라면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이것은 Wishsong님의 글에 대한 반론의 중심이기도 하고요. 일단은 쌍방향이라는 표현이 너무 제한적인 이유를 두 가지 들고 넘어가겠습니다.

첫째, 성일님 말씀대로 대립과 긴장, 합의의 양상은 진행자와 참가자 사이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참가자라고 해서 단일한 목적이나 지향이 있지는 않으며, 긴장의 축은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입니다.

둘째, 좀 있다 얘기하겠지만 진행자와 참가자는 진행자라는 사람과 참가자라는 사람으로 제한해서 생각하기에는 설명의 일반성이 떨어집니다. 의사소통 (커뮤니케이션)의 주체는 사람인데 진행자의 역할과 참가자의 역할은 반드시 사람에 따라 구분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전략)

저는 RPG라는 형식이 의사소통의 방법을 규정하고 있다는 뉘앙스가 원문에서 읽힙니다.

(중략)

꼬투리를 잡는 것 같지만, 글 전체로 봤을 때 승한님께서는 RPG를 어떤 정해진 커뮤니케이션의 “양식”으로 파악하고 계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그렇게 짚고 갑니다.

제 생각은 한 편으로는 비슷하고 한 편으로는 다릅니다. RPG에서 일어나는 의사소통의 양식은 반드시 규정되지는 않지만, 경우에 따라서 그 일부는 규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규칙 (룰)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한 예로는 '내 화살이 맞았나' 하는 결과를 정하는 의사소통을 판정 규칙으로 양식화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좀 덜 흔한 예로는 폴라리스 (Polaris) RPG에서 이야기의 진행 자체를 의식 언어로 교섭하는 것도 들 수 있습니다.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서로 생각이 다른 부분에 대해 암시하는 데가 있는 대목이라 일단 얘기해 둡니다.

2. 마스터와 플레이어는 서로 다른 수단으로 플레이에 참여한다. 양측이 가지고 있는 권력의 속성은 다르다.

RPG는 서로 입장이 다른 두 축(플레이어-마스터) 중 한 쪽이라도 존재하지 않으면 성립될 수 없는 유희입니다. '무대'를 만드는 건 마스터이고, 그 무대에서 주역으로 활동하는 것은 플레이어의 캐릭터입니다. 아무리 서로 적극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해도, '이것만큼은' 이라고 서로가 생각하고, 인정하는 암묵적 경계선은 있기 마련입니다.

RPG에 서로 다른 입장이 존재한다는 데에는 찬성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진행자라는 사람'과 '참가자라는 사람'에 따라 구분한다는 점에서 분석에 허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지나치게 제한적인 이해라서 성일님이 말씀하시는 합의에 따른 진행이나 제가 겪은 인디 RPG의 경험을 포괄할 수 없거든요. 가장 고전적인 형식의 RPG 플레이에는 어느 정도 들어맞지만, 그마저도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 많습니다. 자세한 것은 성일님의 글을 인용하면서 논의하겠습니다.

(전략)

무대를 만드는 것이 마스터라는 법이 없고, 주역으로 활동하는 것이 플레이어의 캐릭터라는 법도 없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Wishsong님이 말씀하신 두 개의 축을 인적 구분이 아닌 기능적 구분으로 이해하고자 합니다.

20년 전에 이미 등장한 RPG인 “아르스 마기카”에서는 마스터를 돌아가면서 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세션마다 돌아가면서 한다고 했을 때, 조금 하다 보면 그 “무대”는 어느 한 명이 준비했다고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릅니다. (중략)

아르스 마기카만의 예는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PC와 NPC의 구별이 흐리고 마스터와 플레이어의 역할 분담이 뚜렷하지 않은 시스템이 적잖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시스템을 사용했을 때 RPG가 성립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동의합니다. 아르스 마기카처럼 돌아가면서 진행하는 RPG 뿐만 아니라 아예 진행자가 존재하지 않거나, 진행자 역할을 여럿이서 분담하는 규칙도 있습니다. 샤브 알-히리 바퀴벌레 (The Shab al-Hiri Roach)에는 진행자가 없이 참가자만 있고, 폴라리스는 4인이 플레이를 하면 그 중 3인이 전통적인 진행자의 역할을 분담하고 (갈등 제시, 조연 [NPC] 역할) 1인이 전통적인 참가자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이렇듯 인적 구분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예가 많다고 해도 그것이 기능적 구분을 부정할 근거는 되지 않습니다. 아르스 마기카의 예를 들어서, 진행을 돌아가면서 한다고 하면 그것은 한 편으로는 진행자 역할이 사람에 따르지 않는다는 뜻도 되지만 뒤집어 말하면 진행자라는 기능, 혹은 직능은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 기능을 채우는 사람이 고정되지 않았다는 것은 인적 구분을 부정할 이유가 될 뿐, 기능적 구분은 여전합니다.

폴라리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진행자와 참가자의 역할을 여러 사람이, 심지어는 돌아가면서 맡지만 그 역할 자체는 정해져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이 고정되지 않았을 뿐이지요.

심지어는 진행자가 없는 샤브 알-히리 바퀴벌레에서도 인적 구분은 없어도 기능적 구분은 있습니다. 이 경우는 진행자의 전통적 역할을 일부는 규칙책에 나오는 기본 설정 (펨버튼 대학, 1년에 6가지의 교내 행사, 각종 행동 카드)에 맡기고, 일부는 참가자들이 나누어 맡습니다 (조연 역할). 이 경우는 설정을 정하고 진행하는 기능을 맡는 사람이 유동적인 정도가 아니라 규칙책과 카드 등 '사람이 아닌 것'이 맡지만, 기능 자체는 존재합니다.

일반적인 시스템을 사용한 일반적인 플레이에서도 “암묵적 경계선”의 위치는 팀마다, 캠페인마다 많이 다르게 설정됩니다. (중략)

이런 현실에 비추어 보면, 말씀하신 “경계선”은 취향에 따라, 편의에 따라 설정되는 것이지 RPG에 필수적인 것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후략)

제 생각은 여기서 성일님과 갈라집니다. Wishsong님이 말씀하신 경계선이 팀이나 규칙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경계선이 애당초 사람과 사람을 가르는 것이 아닐 뿐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맡느냐 하는 인적 구분이 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건 당연하죠. 경계선은 진행자라는 사람과 참가자라는 사람이 아닌 진행과 참가 기능을 구분하며, 그 기능은 경우에 따라 누구든 맡을 수 있고, 심지어는 사람이 아닌 규칙이나 카드에 맡길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기능을 누가 맡느냐에 따라, 혹은 무엇에 맡기냐에 따라 RPG라는 놀이가 아니게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샤브 알-히리 바퀴벌레는 보드게임적 성향이 짙고, 진행 기능의 모든 것을 컴퓨터에 맡기면 RPG가 아닌 CRPG가 됩니다. 하지만, RPG라고 부를 수 있는 영역 내에서도 이 기능을 누가, 무엇이 맡느냐는 성일님 말씀대로 상당한 유동성이 있습니다.

RPG에서, 혹은 놀이 전반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기능적 구분은 크게 설정, 진행, 참가라고 생각합니다. 설정은 놀이가 이루어지는 배경, 혹은 상황을 만드는 기능입니다. 진행은 놀이 속 사건의 추이를 움직이고 배경이나 상황의 변화를 표현하는 기능입니다. 참가는 의사 결정을 통해 그 배경이나 상황 속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기능입니다.

고전적인 RPG에서 설정과 진행은 진행자, 참가는 참가자에게 국한되지만 이것은 논리 필연적인 역할 분담은 아니며, 기능적 분담을 인적 분담과 혼동하면 성일님이 말씀하신 병리 현상이생기기도 합니다. 참가자도 얼마든지 설정이나 진행에 참여할 수 있고, 진행자도 참가 기능을 맡을 수 있습니다. 진행자 없이 설정과 진행 기능 일부를 규칙책이나 카드에 맡길 수도 있고, 진행 역할을 셋이서 분담하고 한 명만 참가를 맡을 수도 있습니다. 기능적 구분은 존재하되, 그것을 누가 맡느냐 하는 인적 구분은 유동적입니다.

2-1. 마스터는 RPG가 이루어지는 세계의 근간 설정을 담당하고 책임진다.

(Wishsong님이 드신 예 생략)

이것은 실제로 있을 수 있는 예임에는 확실하나, RPG가 그래야만 한다, 항상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성일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설정과 진행, 참가를 인적 구분이 아닌 기능적 구분으로 이해한다면 이 전제는 '고전 RPG 모델에서 진행자는 일반적으로 설정 역할을 담당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진행자라는 사람, 혹은 위치에 속한 근본적인 속성이 아니라 놀이의 기능을 참여자들에게 분배할 때 나타날 수 있는 한 가지 모습입니다.

팀의 합의가 어떤 것이었느냐에 따라, 마스터가 저렇게 얘기해도 결과가 안 되는 경우 또한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중략) 마스터는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팀에서 결정된 내용을 정리하여 발언할 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동의하지만 좀 더 보충하자면, 합의에 따른 진행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합의 말고도 설정 혹은 진행 기능을 제어하는 장치도 있습니다. 폴라리스의 서술 교섭과 같은 규칙이 한 예이죠.

2-2. 플레이어는 마스터가 만든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명을 불어넣고 변화를 일으키는 존재이다.

그러면 마스터는 생명을 불어넣고 변화를 일으킬 수 없나요? 그렇다면 소설에는 생명이 없고 변화가 없다는 뜻이 됩니다.
물론 RPG에서 마스터가 소설 쓰듯 혼자 노는 것은 용납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소설과 RPG에서 나타나는 생명력과 변화는 분명히 다르고, 이것은 소설과 RPG의 중대하고 근본적인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RPG에서 나타나는 역동성을 소설에서 느끼는 역동성과 동일시하는 것은 개념 혼동의 위험이 큽니다. 소설도 읽으면서 가슴이 두근거릴 수 있고, 이미 내용을 알고 읽어도 끝없이 새로운 의미와 상상의 여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 자체의 내용은 변하지 않습니다. 반면 RPG에서는 주인공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결과가 변할 수 있고, 이것은 참가 기능의 요체이기도 합니다. Wishsong님이 말씀하신 생명력과 변화는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RPG에서 진행자가 소설 쓰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는 말씀이 곧 RPG의 생명력이나 변화와 소설의 생명력과 변화는 다르다는 반증인 것 같습니다만... RPG에서 있어야 하는 생명력과 변화가 소설과 같은 것이라면 참가 기능은 의미가 없고, 진행자가 소설 쓰는 것도 생명력과 변화가 가득한 훌륭한 RPG일 테니까요.

(계속) 플레이에 생명을 부여하고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유일하게 플레이어에게만 허용된 속성이라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후략)

역시 인적 구분이 아닌 기능적 구분을 택한다면 2-2는 참가는 보통 참가자가 맡는다는 일반론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전제입니다. 다른 기능적 구분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인적으로는 유동적인 구분이기 때문에 이 부분은 성일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Wishsong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참가는, 그리고 참가 기능이 있는 참가자는 설정으로 만들어진 판에 들어와서 변화를 일으키는 존재이니까요.

반면 성일님 말씀대로 진행자 역시 플레이에 생명을 부여하고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말했듯 참가가 설정에 변화를 일으키는 기능이라면 진행은 변화 자체의 표현입니다. 진행자, 혹은 진행을 맡은 참여자는 그 변화와 역동성을 표현함으로써 얼마든지 플레이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또 참가자가 생각하지 못한 뜻밖의 파급 효과가 있고, 여기에 반응해서 다시 또 변화를 일으키고... 하는 연쇄 반응이 일어나죠.

딱히 Wishsong님의 전제에 대한 반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이러한 변화와 생명력을 불어넣는 초기 조건이 참가이기 때문입니다. 즉 Wishsong님의 이 전제는 '참가자만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유일성을 강조했다기보다는 '참가는 변화를 일으킨다'는 참가의 능동적, 역동적 성격을 강조한 것으로 저는 이해했습니다.

위에서 얘기한 세 구분을 논리적으로 따라가자면 진행자가 참가 기능을 맡을 수 있다는 얘기이고, 실제로 그럴 수 있습니다.

주인공 일행과 조연이 대화를 나눈다고 하면 주인공의 대사는 기본적으로 참가, 조연의 대사는 기본적으로 진행 기능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이 구분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주인공의 말은 조연의 반응에 영향을 주고, 조연의 반응은 다시 또 주인공의 반응에 영향을 주면서 서로 연쇄 반응을 일으키니까요. 위의 설정, 진행, 참가 기능을 나누면서 참가가 기본적으로 작용이라면 진행 기능은 반작용이라는 식으로 생각했지만, 그 영향의 방향은 일방적이지 않고, 굉장히 복잡하고 정교합니다. 그래서 더욱 진행과 참가는 인적 구분이 아닌 기능적 구분이며, 성일님의 말씀대로 진행자도 배경이나 상황에 생명력과 변화를 불어넣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3. 플레이어는 갈등과 서사를 원한다. 따라서 마스터에게 이 부분을 이양한다.

-> 이전 글에서도 말했듯이, 유토피아에서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플레이어들은 자신들의 캐릭터가 맞부딪힐 갈등, 그리고 만들어갈 이야기를 관리할 존재로 마스터를 선택하고, 이 부분에 대한 '권력'- 갈등의 시작 및 PC를 위한 무대 설정을 위임합니다. 물론 마스터가 '이러이러한 캠페인을 합니다~' 라고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경우가 대부분이나, 근본적으로 RPG의 권력은 '플레이어가 마스터에게 세계를 맡기는' 형태라고 봅니다.

물론 설정과 진행 기능이 일반적으로 진행자에게 돌아가는 것은 사실이고, 여기에 참가자의 이양이 명시적으로나 묵시적으로나 들어가는 것도 사실입니다. 의문이 가는 부분은 '갈등과 서사에 대한 욕구'와 '진행자가 갈등과 서사 설정의 권한을 갖는 것' 사이에 성립하는 관계입니다. 어째서 진행자가 갈등과 서사에 관련한 권한이 있어야 유토피아가 아닌 갈등과 이야기가 성립하는지 하는 논리적, 혹은 현실적 필연성이 들어가야 완전할 것 같습니다.

플레이 내의 가상세계에서 벌어지는 가상의 인물들 사이의 갈등을 플레이어와 마스터 사이의 갈등과 등치시키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플레이 내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플레이 내의 일이고, 마스터와 플레이어 사이의 권력 분배는 플레이 외의 일입니다. 마스터에게 갈등과 서사에 관한 권력을 이양하지 않고도 갈등을 접하고 서사를 일으킬 수 있음은 이미 여러 차례 이야기되었고, 실례도 많이 등장한 바 있으니 그에 대해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아, 성일님이 이미 하신 말씀과 같군요. (퍽)

4. 하지만 마스터도 사람이다.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전략) 마스터는 자신의 생각한 이야기와 인물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고 싶어합니다. 이것은 마스터가 플레이어들이 떠맡긴 잡무(....)를 처리하는 반대급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스터가 잡무를 처리하면서까지 RPG를 하겠다고 플레이어들을 모으는 건 이런 이유겠죠.

저는 이 현상을 현실적으로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잡무”라고 이야기하신 다양하고도 복잡한 의무들이 사실은 그 자체로 핵심적인 권력임을 플레이어들이 깨닫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잘 모르겠으나, 저것을 포기함으로써 플레이는 마스터의 변덕에 그대로 노출되며, 마스터의 수완에 의해 플레이의 질이 결정 나버리는 결과에 달합니다. (후략)

'잡무 대신 권력'이라는 발상이 위험하다는 말씀에는 동의하지만, 설정과 진행 기능이 대부분 진행자에게 있는 것이 곧 참가자가 놀이의 주도권을 상실하고 진행자의 자의에 노출되는 결과가 된다는 데에는 반대합니다. 이것은 참가 기능이 제대로 살지 않았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상적으로는 설정과 진행은 각각 참가의 틀과 참가에 대한 반응을 이루며, 특히 진행이 참가에 반응하지 않고 진행자의 자의에 따를 때 성일님이 말씀하신 병리 현상이 생깁니다. 설정과 진행의 기능을 참가자도 나누어 갖는 것도 이러한 병리를 해결하는 한 가지 방법이지만, 유일한 방법은 아닙니다. 참가의 의의를 살리는 것도 중요한 수단입니다.

따라서 '잡무 대신 권력'이 위험하다는 점에서는 성일님과 생각을 같이하지만, 그 근거는 다릅니다. 진행자가 설정과 진행 기능을 분담하는 것 자체가 반드시 위험 현상이 아니라는 의견은 방금 얘기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위험한 부분은 첫 번째, 설정과 진행 기능을 기능이 아닌 권력으로 이해하게 된다는 점, 두 번째, 반대급부라는 대가성을 넣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진행자가 설정과 진행 기능을 맡기 때문이 아니라 참가의 의의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나에게는 "권력"이 있다. 그리고 그 권력을 과중한 잡무라는 "대가"를 치르고 얻었어! 따라서 나에게 대항하는 것은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얻은 나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라는 전제를 깔고 시작하는 진행자가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 때문에 생기는 플레이 내 병리가 얼마나 많은지는 길게 얘기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위에 말했듯 성일님이 말씀하신 설정과 진행 기능의 분담도 한 가지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선호하는 해결책은 참가의 의의를 살리는 방향이지만요.

5. 플레이어가 생각하는 '멋진 것'과 마스터가 생각하는 '멋진 것'은 다르다.

-> 마스터도 플레이어도 모두 사람입니다.  서로의 생각은 어쩔 수 없이 다릅니다.  이전 글에서도 말했듯, 플레이어의 목적은 자신의 PC를 통해 충분히 롤플레이를 하면서 세션에서 드러난, 혹은 자기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마스터의 가치관이 개입된 세계, 그리고 플롯에 맞부딪히면서 마찰을 일으킬 수 밖에 없습니다.

(전략) 저라면 굳이 “플레이어” “마스터”라는 말을 쓰지 않고 말하겠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원하는 것은 일치하지 않으며, 사전 합의는 이런 괴리를 해소하는 것이 그 목적의 하나입니다. (후략)

인적 구분이 아닌 기능적 구분에 따라 저는 이 전제를 성일님이 지적하셨듯 '참여자들이 생각하는 "멋진 것"은 서로 다르다'라고 고쳐서 이해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는 역동적 긴장의 요체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성일님 의견하고는 조금 다르게, 플레이 외적 긴장은 플레이 내적 갈등과도 연관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역동적 긴장의 첫 번째와 두 번째이겠지요. 서로 생각이 다르니까 플레이 안에서도 이 방향, 저 방향으로 서로 밀고 당기게 되며, 이 과정을 참여자 간의 파괴적인 갈등이 아닌 플레이 속의 생산적인 갈등, 서로 자기 목소리를 마음껏 내면서도 조화로운 하나를 만드는 것이 역동적 긴장을 다루면서 생각한 핵심입니다.

6. 플레이어와 마스터는 사전 합의를 통해 이러한 마찰의 요소를 사전에 최대한 배제시키려고 한다.

-> 이건 말 그대로.  플레이어가 마스터에게 권력을 주는 과정에서 합의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성일님 지적대로 대상이 무엇인지 불분명합니다. 플레이 외적 마찰은 배제해야 할 것입니다. 반면 플레이 내적 갈등은 오히려 권장할 만한 플레이의 재미입니다. 아마도 전자 얘기라고 생각하지만, 드신 예를 봐도 이것이 반드시 배제해야 할 마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역동적 긴장이라는 이름으로 했던 구분에 따라 논의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수단에 대한 긴장. 예를 들어 주인공 일행은 성으로 들어가는 열쇠가 필요합니다. 열쇠는 거인의 수중에 있습니다. 진행자는 거인을 때려잡는 것과 거인의 부탁을 들어주고 열쇠를 얻는 것 사이에 선택시키고 싶습니다. 반면 참가자들은 전혀 다른 방법을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노래를 불러 거인을 잠들게 하고 열쇠를 훔친다거나, 열쇠 없이 성벽을 넘어간다거나, 열쇠를 걸고 수수께끼 겨루기를 제안한다거나.

이러한 것이 배제해야 할 갈등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역동적인 긴장에 대한 글에서 얘기했듯 상당한 지적, 논리적 도전이 아닐까요? 참가의 의의를 살리면서도 진행자가 어느 정도 원래의 선택지를 유도하는 방법은 많습니다. 다만, 그 방법이 정당해야겠지요. 성벽을 넘어갈 수 있나 탐사했더니 성벽에 마법 가시나무가 뒤덮여서 잘라내도 잘라내도 계속 자라나고, 부상을 입지 않고 올라가려면 마법이 걸린 보호구가 필요한데 그걸 구하려면 또 멀리 있는 마법사의 탑으로 모험을 떠나야 한다거나.

이러한 설정들은 특히 규칙을 매개로 하면 참가자에게 의사 결정의 여지를 주며, 결국 참가자가 기발한 해결책을 발견해서 성벽을 넘어간다면 그것도 즐거운 결론입니다. 아예 무너뜨린다거나, 가시나무를 태워버린다거나, 등등. 반면 무턱대고 너무 높다면서 오르기 판정에 수정치 -20을 붙이는 식의 자의는 참가의 의의를 줄이는 것이며, 자칫 플레이 외적인 감정적 마찰로 흐르기 쉽습니다.

이 시점에서 합의를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거인은 나중에 나름 중요한 인물인데 말야, 만나 두는 게 좋지 않을까?' '하지만 난 가시나무를 넘어가는 쪽이 더 재밌는걸.' 이것이 진행의 기능을 참가자와 일부 나누는 방향입니다. 반면 합의 없이 밀고 나가서 규칙을 매개로 참가자가 성공하면 참가자의 해결책대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것은 참가의 의의를 살리는 방향입니다. 어느 쪽이 더 좋고 나쁘다고 얘기할 수는 없는 문제이고, 어느 쪽이든 이것이 미리 배제해야 하는 성격의 충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두 번째, 목적에 대한 긴장. 마왕에게 반한 주인공의 예를 가져오면, 사실 이건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 아닌가 합니다. 진행자가 생각하지 못한 마왕의 면모를 주인공이 발견했다는 뜻이고, 그만큼 극적 재미는 깊어질 테니까요. 다른 주인공에게 마왕은 자기 부모를 죽인 원수라면 주인공 일행 사이에 갈등이 생길 수도 있고, 심지어는 자기 부모를 죽인 원수에게 반하는 일도 있을 수 있죠.

물론 이 경우도 이것이 플레이 내 갈등에 그치지 않고 플레이 외적 마찰이 될 기미가 보인다면 바로 끊고 서로 합의를 보든지, 규칙대로 판정해서 해결하든지 해야겠죠. 플레이 내의 갈등은 플레이의 재미 그 자체이지만, 플레이 외적 마찰은 플레이에 독이 되니까요. 서로 생각이 달라서 플레이 내에서 밀고 당기는 것과 서로 감정이 상할 만한 마찰은 질적으로 전혀 다릅니다.

(전략) 사전 합의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플레이 중에도 예측 못한 문제(갈등이라는 표현은 쉽게 쓰기 어렵습니다. 플레이 내의 갈등과 플레이 외의 갈등은 아예 다른 물건이니까요)가 발생합니다.

길게 얘기했지만 사실 사전 합의를 통해 배제해야 할 문제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 정리가 안 돼서 더 길어진 것 같습니다. 성일님 말씀대로 플레이 내의 갈등과 플레이 외의 갈등은 다르니까요. 플레이 내의 갈등이라면 그건 플레이의 재미이니까 사전 합의를 통해 배제하자는 것은 좀 이상한 것 같습니다. 플레이 외적 갈등이라면 플레이에 들어가기 전에, 그리고 플레이 들어간 후에도 계속해서 넘어서는 안 될 경계나 의사소통의 통로를 정하고 유지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니까 굳이 얘기하자면 이쪽이려나요.

끝에 좀 헷갈려 버렸지만, 어쨌든 저도 정리를 하고 끝내겠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이 있다면 환호성을 지르고 계실 거라고 믿습니..)

저는 플레이어와 마스터가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플레이를 꾸미고 진행하는 방식에 객관적인 장점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RPG라는 놀이의 논리적 귀결이라고 봅니다.

객관적인 장점이 있다는 점에는 찬성하고 흥미로운 방식이라고 생각하지만, 논리적 귀결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위에서 얘기한 설정, 진행, 참가의 기능적 구분을 택한다면 (그리고 여기에도 반론할 여지가 많겠죠) 성일님이 말씀하시는 합의에 따른 진행은 설정과 진행의 권한을 진행자와 참가자가 나누어 가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RPG의 병리 현상을 해결하고 모두가 더 재밌게 노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유일하고 논리필연적인 방법은 아닙니다. 설정과 진행의 권한이 진행자에게 있어도 참가의 의의 또한 확보하고 살리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합의와 상관없이 서로 목소리를 내면서 밀고 당기며, 규칙과 논리에 따라 결론을 내서 각자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더 재미있는 결과를 내는 플레이가 제가 역동적 긴장이나 코스티캔의 게임론을 끌어들여서 구현하고자 하는 플레이입니다. RPG는 설정과 진행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며, 참가의 기능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일님이 그 가능성을 배제하신 것은 결코 아니니까 반론이라기에도 뭣합니다만..^^ '논리적 귀결'이라는 말씀에 좀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그 점은 반박할 수 있는 근거 없이 성일님의 생각이라고 밝히셨으니까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는 취향이나 신념의 영역으로 이해하겠습니다.


어디에도 논의는 넘쳐나는 곳이 인터넷이지만, Wishsong님이 RPG에 대한 전제를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밝히신 의미는 대단히 큰 것 같습니다. 종종 전제 자체가 다른 건 생각 못한 채 꼬리를 물고 도는 논의가 되기 쉬우니까요. 그리고 그 전제를 가지고 토론하는 건 크나큰 생각의 자극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의견을 정리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고요.
2007/06/15 15:23 2007/06/15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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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년H 2007/06/15 2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야기들 다 반론할 만한 구석이 없는 편(이라기보단 귀찮은 편)이지만 (...)

    굳이 질문하자면, 진행 기능과 참가 기능은 일단 진행 기능이 뒤쪽에 설정이 있다는 게 차이점인 거 같은데 (그 외에 참가가 보다 능동적인 면이 있다거나) 뒤로 갈 수록 어쩐지 둘이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논리가 되는군요. 물론, 능동성이나 이런 면에서야 어쩔 수 없다지만 이 경우 차라리 마스터도 참가 기능이 있다 하고 진행 기능에 있어서 또 다른 면이 있다고 보는 게 논리 전개가 그럴 듯 할 거 같은데요.

    그리고 그런 덧글 하나로 성일님이나 승한님이 볼 수 있을까 궁금 (...)

    • 로키 2007/06/15 2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잖아도 진행 기능은 설정과 참가 사이에 있는 인터페이스 같은 걸로 생각하는지라 좀 애매해요. 하지만 말씀대로 참가 기능하고 두리뭉실하게 섞는 건 의의를 흐리는 면이 있네요. 진행자가 플레이에 생명력과 변화를 넣는다는 말을 하려고 굳이 참가 기능 얘기를 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죠. 진행은 변화 그 자체니까. 그 부분은 논의를 좀 고치겠습니다.

      뭐 승한님 블로그에는 트랙백 날렸으니 보시겠죠. 세션 쪽은.. 눈에 띄게 하려면 글자색과 링크가 난무하는 이 난리굿을 제로보드 글로 올리는 자학을 하거나 아니면 링크 달랑 하나 있는 썰렁한 글을 독립적인 글로 작성하거나 둘 중 하나라서..(..)

  2. 김성일 2007/06/15 2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어 보았습니다. 원문의 포맷이 포맷이고 주제의 무게가 무게인지라 이 자리에 곧바로 덧글을 붙이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그렇다고 원문이 없는 세션에 쓰기도 뭐하고요... 하지만 대충 어디서 의견에 차이가 발생하는지 이제 좀 이해가 갈 것 같으니, 정리가 되는 대로 별문을 만들어 올리겠습니다.

    • 로키 2007/06/17 2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언제나처럼 정확한 지적과 비판을 주셔서 저도 생각을 더욱 다듬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

  3. ddowan 2007/06/16 2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밀고당기기가 재미있을 때도 있고, 그냥 주사위만 굴리는 게 재미있을 때도 있습니다.
    (사실 아직은 주사위 쪽이 더 재미있습니다.)
    밀고당기기에 기력을 쓰려면 주사위 굴림에서 생기는 불협화음이 적어야겠지요.
    로키 님의 소갯글들을 보다 보면 요즘은 밀고당기기에도 신경 쓴 룰이 많은 것 같습니다.

    왠지 다른 소리를 한 거 같지만 뭐라도 쓰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 로키 2007/06/17 2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주사위를 굴리는 걸 포함한 규칙은 어떻게 보면 그 밀고 당기기를 양식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 이 상황이 어떻게 될지 진행자와 참가자 사이에 의견이 일치한다면 굴릴 필요도 없을 테니까요. 포도원의 개들 규칙책에서 진행자에게 하는 조언이 그 얘기죠. '예스 아니면 다이스.' 참가자가 뭘 원하면 진행자는 된다고 하거나, 안 된다고 생각하면 판정하게 하라는...

      다른 소리긴요. 답글 감사드립니다. ^^

    • ddowan 2007/06/18 1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주사위에 관한 생각이라면 역시 시뮬레이션이라는 생각만 들었었습니다. 드라마틱한 장면은 말 그대로 1/20확률로만 터지더군요. ^^
      그것때문에 '주사위 굴리기가 과연 재미있나~' 라면서 하던 고민을 했었습니다. '그 상황을 즐겨라~' 라는 결론으로 해소가 되었지요.

    • ddowan 2007/06/18 1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Yes or Dice는 여전히 멋지군요~!
      저는 그보다는 댓가라는 측면이 더 맘에 들었었습니다.(포도원이었지요?)

    • 로키 2007/06/19 07:58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런.. 주사위 굴리는 것에도 극적인 재미가 있으면 더욱 좋지 않을까요? 아마 그렇지 않다는 건 판정 결과에 극적인 결과를 걸지 않았기 때문일 거에요. 성공하든 실패하든 판정 결과는 뭔가 재밌어야 좋겠죠.

      Yes or dice 멋지죠..ㅋㅋ 포도원의 개들에 좋은 진행자 조언이 많이 나와요. 판정의 대가성도 마음에 드는 특징이고요.

  4. Asdee 2007/06/17 0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굉장히 인상깊게 읽었는데, 다시금 읽고 생각을 정리해봅니다. ^^;

    * 진행자/참가자가 인적 구분이 아니라, "기능적 구분"이라는 지적에 대해선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 부분은, 꼭 누가 100% 전담해야 할 일로 고정된 것은 아니죠.

    * 설정/진행/참가 세 가지로 기능을 분류하신 것이 인상 깊습니다. 이 각각에 대해서 생각해볼 여지가 많을 것 같네요.

    * 특히 [참가] 기능은, 소설 등과 달리 RPG가 갖는 "능동성"을 잘 드러내는 표현이 아닐까 싶어요. 대부분 참가자는 1명의 인물을 통해 플레이에 참여하니까, 간접체험보다 '직접체험'에 가까운 느낌을 받지 않나 싶어요. 캐릭터를 통해 새로운 삶을 체험하고,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참여한달까... 그런 인상입니다. 제가 갖고 있는 "플레이어링"의 묘미도 그렇구요. :D
    (자기 캐릭터에만 몰입하다보면, 다른 팀원들을 배려하지 못해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만;)

    * 플레이 내적 갈등과 플레이 외적 갈등... 이란 표현도 반복해서 나오는 듯 합니다.

    - 플레이 내적 갈등 : (가상세계 내의) 캐릭터들 혹은 캐릭터 vs. 상황/환경 간 갈등.
    - 플레이 외적 갈등 : (현실세계에서) 팀원들(참가자+진행자) 간의 갈등, 의견 충돌.

    로 이해하면 되려나요?

    • 로키 2007/06/17 2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 예, 기능적 구분 얘기는 (제가 써놓고도) 나름 흡족해하는 중입니다. 기능적 구분을 생각하면 RPG 외에 보드게임이나 CRPG 등 다양한 놀이를 같은 이론적 틀 안에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RPG의 경계에 있는 놀이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고.. 당장의 효용은 말씀대로 기능적 구분을 인적 구분과 혼동해서 생기는 혼란과 병폐를 피할 수 있다는 점이겠죠.

      * 설정/진행/참가는.. 일단 거칠게 나누긴 했지만 말씀대로 아직 발전의 여지가 많네요. 역시 한 번쯤 적어보면서 지적을 받고 다듬는 과정이 필요할 듯합니다.

      * 참가는 놀이와 정적 허구를 구분하는 경계이면서 동시에 가장 외면받기 쉬운 기능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말씀대로 참가의 수단이 하나로 고정되면 그만큼 몰입도도 커지고요. 그 몰입이 비사회적인 도취로 흐르지 않고 모두의 재미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건 많은 사람이 고민해왔고 앞으로도 고민할 문제겠지요. 성일님도 훌륭한 대안을 여러 글을 통해 제시하셨고요.

      * 예, 플레이 내/외적 갈등은 용어 정립이 불분명했는데 깔끔하게 정리해주셨습니다. ^^ 굳이 구분하자면 전자는 갈등, 후자는 마찰이 적합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건 말을 다르게 해서 좀 더 확실하게 구분하려는 욕심 정도죠.

  5. Wishsong 2007/06/20 00: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열심히 글을 읽고 있는 중입니다.

    무심코 생각했던, 그리고 어느정도는 '이정도는 동의하겠지' 라고 써내려갔던 전제 자체도 수많은 모순과 논리적인 반박에 직면하는 것을 보니 역시 아직 멀었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로키님이나 성일님처럼 논리 정연하게 글을 쓸 수 있는 실력은 되지 못하지만; RPG에 대해 느끼고 생각한 바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이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하는 노력은 계속 해야 할 것 같네요. 그래야 피드백을 받을 수 있을 테니.

    • 로키 2007/06/20 14:45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반적인 플레이만 생각한다면 비교적 폭넓게 공감할 수 있는 전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기능적 구분 면에서 봐도 일반론이자 시작점으로서는 좋죠. 그런 의미에서 틀린 말씀 하신 건 없는데, 또 당연하게 생각되는 전제를 해부하는 게 생각을 다듬는 데는 기가 막히게 좋잖습니까..ㅋㅋ 앞으로도 생각하는 바를 정리하는 작업을 하시면 역시 생각과 토론에 귀중한 자료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6. 삭풍 2007/06/20 13: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생일이신걸 깜빡했군요.생일 축하드립니다.가난해서 선물드릴건 없지만[퍽]

  7. Wishsong 2007/06/20 1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일이셨나요? 늦었지만 생일 축하드립니다!

    역시 선물은 마음의 선물(...)

  8. Xenosia 2007/06/20 2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헛 그러고보니..
    꽤나 뒤늦었지만 생일 축하드립..[<-..]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천승민님의 을 보고 꼬리글로 작성하다가 분량을 넘겨버려서 엮인글로 씁니다. 이후 이 글은 확장하고 수정해서 규칙의 도구성을 다룬 글에 넣었습니다.)

제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물리적 내지는 활극적인 부분은 규칙으로, 서사적 내지는 탈활극적인 부분은 합의로 처리하는 것이 적합하다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잘못된 이해라면 지적 바랍니다. 일단은 이 전제로 댓글을 작성합니다.) 왜 그런 구분이 필요한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플레이중 벌어지는 모든 일은 서사의 요소이며, 어차피 RPG는 사회적인 놀이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모든 것을 합의로 정해도 문제는 없다고 봅니다. '이 상황에서 내 화살이 맞았을까'에서부터 시작해서 '이 대목에서는 성질을 못 이겨서 문제를 일으키는 게 재밌겠다'까지 말이죠. 하지만, 합의에는 시간이 들고, 매우 부정형적인 과정이며 때로는 발언력의 불균형 등 부작용도 있습니다. 그래서 규칙으로 이 과정에 기준을 만들고 시간상으로 압축한 것이 RPG와 규칙 없는 RP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규칙의 영역에서는 어느 정도 객관성이 생기기 때문에 어떤 영역을 규칙에 넣으면 크게 두 가지 효과가 생긴다고 봅니다.

첫째, 플레이중 장려하고 싶은 행동의 포상, 뒤집어 보면 플레이중 원치 않는 행동을 억제. 예를 들어 활극이라면 규칙은 말도 안 되는 화려한 액션을 장려할 것이고, 역사에 충실한 전쟁물이라면 무모한 행동은 바로 규칙상 불이익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둘째, 게임적 강조의 효과. 일단 어떤 영역이 규칙의 대상이 되면 이것은 팀 전체의 합의가 아닌 개인이 제어할 수 있는 영역이 되고, 따라서 개인 의사판단 혹은 자원 활용의 대상이 됩니다. 즉 게임적 의사판단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함정을 해제하는 규칙은 있지만 참가자에게 배경 세계에 대한 서술권을 주는 규칙은 없는 RPG라면, 참가자는 자기 인물에게 함정을 해제하는 능력을 줄 수도 있고 실제로 함정을 발견하면 해제하는 시도도 할 수 있습니다. 진행자가 다른 이유로 저지할 수는 있지만 왜 그런지 설명을 해야겠죠.

반면 '내 인물이 비밀 결사에 있는데, 이 도시에 그 결사의 지부가 있으면 좋겠어요' 같은 요청은 순수하게 진행자의 판단 영역, 혹은 모두의 교섭과 합의의 영역이 됩니다. 따라서 필요할 때마다 자기 결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인물의 능력을 키울 수도, 그게 가능하도록 게임 내 자원을 모을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어떤 영역이 규칙의 대상으로 적합한가, 부적합한가 논의할 때는 위에 말한 규칙의 두 효과가 그 영역에 적용되는 것이 플레이를 더 재미있게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활극적인가, 서사적인가 하는 구분 자체가 주요 요소는 아니라고 봅니다. (사실은 그런 구분의 근거 자체도 잘 모르겠고..) 규칙이 서사적 요소를 반복적으로 만들고 상상의 여지를 제약한다면 활극적 요소에는 어째서 그렇지 않은지, 혹은 활극적 요소는 반복적이 되어도 상관없는 성질이 있는지 같은 논의가 먼저 필요한 것 같습니다.
2007/06/01 11:46 2007/06/01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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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묘사 중심룰과 서사 중심룰

    Tracked from 황무지 2007/06/01 20:48  삭제

    <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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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천승민 2007/06/01 2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일단 룰의 성질을 활극(물리?)/서사로 나누려는 의도의 글이었다기 보단, 플레이의 묘사적인 부분에 더 비중이 많이 가 있는 룰 (그러나 서사의 성질도 전무하지 않은)과 비중이 그 반대인 룰이 공존, 각각 존재한다는 전제하에서... 즉 묘사/서사의 성질은 모두 지니지만 비중이 다른 룰들이 존재한다는 전제하에서... (이런 공존이 현실이 된 이유는 아마 D&D부터 오늘날까지 면면이 이어져온 RPG시스템의 발전과정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건 별론)


    제가 만든 "진행툴"... 연애툴나 저격툴처럼 묘사의 성질이 일부 있지만 어떤 서사과정을 좀더 비중있게 다루는 "진행툴"을 애써 더 묘사 중심 룰처럼 정밀하게 만듦으로서, 서사과정에서 일정한 강제성 (플레이어에게는 심리적 벽) 을 형성할 필요 없다는 논지의 이야기 였습니다. 즉 "진행툴"은 만들되... 그 "진행툴"이 룰중에서도 묘사중심 룰 특유의 정밀성을 끝까지 지향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 교통정리 : RPG에는 묘사 중심룰, 서사중심 룰 공존 -> 제가 만들었던 "진행툴"은 서사 중심룰에 일정한 흐름을 만들어 약간더 묘사 중심룰의 속성을 가미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그 "진행툴"의 목적이 서사적 흐름의 기준 형성임에도 불구하고 과도하게 묘사적 성질을 띄게 되면, 경험적으로 참가자의 합의에 심리적 벽으로 작용하게 되므로, 여기에 관해서는 룰보다는 참가자 전체와의 플레이 외적 서사 중심적 합의에 있어서의 소스가 될만한 가이드라인의 성질로서 의도적으로 덜 정밀하게 만드는게 맞다는 이야기 입니다.


    룰은 관점에 따라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참가자들의 욕구에 형태를 만들어주는 "기준"이 될수도 있고 욕구를 규격화, 표준화 시키는 "심리적 벽"이 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욕구의"기준"과 "심리적 벽"은 룰의 양면성이기도 하고 성질상/목적상의 왜곡에서 오는 부작용이기도 한 듯 합니다. 따라서 제 진행툴은 서사 중심의 룰에 묘사 중심의 룰의 속성을 옮겨옴으로서, 기준이 과해지면 심리적 벽이 되는 듯 합니다.


    (반면, 전투룰 같은 묘사적 목적에 거의 기울어져 있는 룰이 상당히 정밀해져도 좀처럼 "심리적 벽"으로 여기지 않는가...의 문제로 들어가면 또 엄청 길어질듯 해서;;; 본글의 취지를 설명하는 선에서 여기까지. RPG의 역사에 비추어, RPG 시스템이 최신 패러다임을 반영한 것이 될수록 이런 식의 정밀한 묘사룰은 줄어드는 경향도 어쩌면 있는 것 같습니다. 반면 D&D 서드는 좀 복고랄까 복벽주의랄까 한 면이 컸죠. )

    • 로키 2007/06/02 08:27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서사적 규칙'이라기보다는 '진행툴'을 말씀하시는 것이었군요. 읽어 봤는데, 판정 중심으로 만든 하나의 미니 시나리오 같은 느낌입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반복성을 느끼신 건 아닐까요? 제 생각에는 내용 자체도 합리적이고, 비전투 활동에 대해서도 굴림 하나로 끝내는 '한탕주의' 대신 어느정도 전술적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이지만요.

      다만, 특히 해킹 같은 경우 필요한 판정이 다소 많고, 페널티는 크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다양한 기능의 판정이 들어가는 건 협력 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요. 그런 면에서는 규칙의 첫번째 효과, 포상에 해당할지도요.) 그래서 판정 실패에 대한 부담 역시 심리적 벽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런 추측을 해봅니다만, 그 자리에 없었으니 확언할 순 없죠. 중간 단계에서 뭔가 실패하더라도 '이걸로 끝!'은 아니었을 테고 시간과 노력이 좀더 들어가는 의미였겠지만, 그래도 연애에서 호감을 쌓거나 도박에서 상대의 페널티를 쌓듯 해킹에서도 성패에 따라 전체 목표의 성공 점수를 더하거나 깎는 식으로 한다면 개별 판정의 실패에 대한 부담은 줄어들지도요.

      제가 얘기한 규칙의 두 가지 효과로 넘어간다면, 첫 번째 효과 (포상) 면에서는 '가능한 다양하게 생각해서 최대의 효과를 내기'보다는 '정해진 판정의 성공'을 포상한다는 인상이고, 그런 면에서 위에서 얘기한 실패에 대한 심리적 부담과도 이어지지 않나 싶습니다. 두 번째 효과 (게임적 판단) 쪽은 훨씬 강하게 나타나지만, 역시 단일 판정에 실패하면 전체 과정에 대한 제어력을 잃는다는 점에서 그 효과가 희석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어디까지나 실제 플레이 없이 진행툴만 읽어보고 내리는 추측이긴 하지만요.

      정리하자면 진행툴은 좋은 시도이지만, 거기서 느끼신 한계는 어쩌면 서사를 규칙으로 규격화하는 어려움이라기보다는 미니 시나리오 성격의 반복성, 그리고 규칙의 효용을 살리기 어려운 디자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규칙의 효용에 대해서는 저하고 전제 자체가 다르시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해서는 말씀대로 새로운 논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묘사성과 서사성, 규칙의 효용에 대해... D&D에 대한 제 생각은 좀 다르지만, 그 얘기를 하려면 먼저 필요한 논의가 있으니 천천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2. 천승민 2007/06/01 2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룰로서 거둘수 있는 효과... 포상이라던가 게임적 강조...의 문제는, 일단 제 다른 글의 전제에 비추어서는 전제 자체가 다릅니다. 저는 일방적 포상도, 게임적 틀도 그게 마스터 중심의 권력 불균형에서 이어지는 여러가지 문제 때문에 원론적으로는 포기한 이론이니까요.

    이건 별도의 이야기가 될만한 주제겠네요.

  3. 천승민 2007/06/02 09: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에... 그러니까 "이미 만들어진" 진행툴의 완성도에 입각해서, 이런 생각을 했다기 보단, 진행툴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최초의 전제 자체가 변해서, 놀이의 형태에게 대한 전제 그리고 그에 따라 규칙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한 생각도 변하고,

    .... 결국 진행툴과 같은 방향성의 시도가 필요 없어졌다는 의미라는게 좀더 정확합니다. 만들어진 진행툴의 완성도와는 약간 초점이 다른 이야기이긴 합니다. 즉 진행툴의 시도가 좋은 시도라고 말씀하신 그부분이 저에게는 바뀐 것입니다. ("나쁜"시도라기 보단, 저런 방향성의 아주 잘 만든 규칙을 제대로 매너리즘이나 관습성의 덫에 빠지지 않고 창의성을 섞어가며 쓸 수 있는 팀이라면 저런게 필요없다는 셈인데... 이건 전제에 대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으면 다시 부연되어 거론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 로키 2007/06/03 2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그런 뜻이셨군요. 어쨌든 서사 규칙하고는 좀 방향이 다른 시도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천천히 정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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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shsong님의 글과 그에 대한 성일님의 댓글을 보고 떠오른 생각들입니다. 트랙백 주거니 받거니, 그 두번째! (..)

RPG의 게임성을 다룰 때도 비슷한 생각이었지만, 규칙을 매개로 해서 밀고 당기는 활동에서 나오는 역동적 긴장은 RPG의 재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역동적 긴장의 내용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크게 다음 세가지입니다.

1. 진행 방식에 대한 긴장

링크한 Wishsong님의 글에서 볼 수 있는 예입니다. 목적의 실행에 어떤 수단을 취할 것인가, 어떤 수단이 합리적인가를 가지고 밀고 당기는 것이지요. 진행자는 빨간 휴지와 파란 휴지 사이에 선택시키고 싶은데 참가자가 그 선택 상황을 벗어난다면? 참가자와 진행자 사이의 두뇌싸움이 되기 쉬우며, 가장 지적, 논리적 도전이 되는 내용의 긴장인 것 같습니다. 세션 글에서 성일님이 지적하셨듯 플레이의 병리현상이 나타나기 쉬운 부분이기도 하죠.

2. 극적 방향에 대한 긴장

1번이 수단에 대한 긴장이라면 이것은 목표에 대한 긴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Asdee님의 댓글에 대한 답변에서 제시한 것으로, 선택의 방향에 대해 참여자간에 밀고 당기는 것을 극적 방향에 관련한 역동적 긴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라에 반하는 활동을 하는 기업을 고발해야 하는가? 도시의 경제가 무너져도? 이것은 극적이고 도덕적인 도전이며, 역동적인 긴장 중 제게는 가장 흥미로운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자칫하면 비생산적인 의견대립으로 흐를 수도 있고 참여자의 심리나 신념의 영역을 건드릴 위험도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3. 대립과 상생 사이의 긴장

마지막으로 대립과 상생 자체 사이에도 긴장이 존재다고 생각합니다. 언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언제 양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죠. 핏대올리고 싸우느라고 플레이가 깨져버리는 것, 서로 눈치보고 사양하느라고 아무도 즐겁지 못한 것, 이 양 극단을 피하면서 여럿이서 함께 즐거운 것 자체가 하나의 역동적 긴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사회적, 때로는 권력적인 성격의 긴장이며, 1번과 2번과도 깊이 관련되어 있지만 개념적으로 구분된다고 생각합니다.


역동적 긴장을 이렇게 분류해 본다면 모든 것이 합의로 정해지는, 명문규칙 없는 RP (소위 '소꿉놀이')와 명문규칙이 있는 RPG의 차이는 종류의 차이라기보다는 정도의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평가절하의 의미 없이 편의상 소꿉놀이라는 용어를 쓴다면 (저도 소꿉놀이 좋아라 하니까요), 소꿉놀이에서는 명문으로 정해진 규칙의 매개가 없이 상생과 합의에 좀더 중점을 두고 RPG에서는 명문규칙이라는 객관적 기준에 의지해 밀고 당기는 데에 좀더 중점을 둘 뿐일지도요.

중요한 건 소꿉놀이든 RPG이든 위 세가지 역동적 긴장의 모습은 모두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적어도 제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그렇습니다. 비록 모든 것을 합의로 정한다 해도 바로 그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역동적 긴장은 계속해서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풀어나갈 것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 귀기울이고 언제 의견을 내세우며, 언제 누가 진행을 주도해나갈 것인가. 명문화된 기준이 없기 때문에 더 조심스러웠을 뿐이죠.

결국 역동적 긴장은 다층적으로 작용하며, RPG 뿐만 아니라 여러사람이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 전반에 작용하는 원리가 아닌가 합니다. 그렇게 대립과 협력을 반복하며 이어지는 과정에서 혼자서는 절대 생각해지 못했을 방향과 생각들이 나오고, 그러면서 놀이는 더욱 풍부하고 재밌어진다는 것이 제 경험이죠. 그 포기할 수 없는 매력이 RPG를 그렇게도 재미있는 놀이로 만드는 게 아닐까요.
2007/04/18 10:18 2007/04/18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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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플레이어-마스터와의 관계(미완성)

    Tracked from The Adamantine Watchtower of... 2007/06/10 00:37  삭제

    &nbsp;다시한번, 덧붙여서.&nbsp;(이전에 세션에서 제 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신 성일님의 말씀에 대한 답변이 될 수도 있겠군요.)&nbsp;사실 로키님이 '역동적 긴장'이라는 용어로 제가 생각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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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ishsong 2007/06/10 2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고보니, 허락도 안 받고 무단 인용해서 죄송합니다;

    • 로키 2007/06/11 06:42  댓글주소  수정/삭제

      인용은 출처만 밝히시면 자유죠~ 일반적으로 그렇고, 이 블로그 저작권 자체가 CC(크리에이티브 커먼즈)이기도 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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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로빈의 마스터링 법칙 (Robin's Laws of Good Game Mastering)을 굉장히 재밌게 보았는데, 특히 참가자를 유형별로 구분해서 보다 재미있는 모험을 제공하는 내용이 아주 유용하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유형에 경직되어 얽매이기 시작하면 오히려 역효과일 테고, '이 참가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하고 생각하는 하나의 시작점으로서 유용한 도구인 것 같습니다.

책에서 구분하는 참가자 유형, 그리고 그 활용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참가자 유형

파워 플레이어 - 경험치, 부, 마법물품, 능력 등의 보상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유형입니다. 주인공을 더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전투중시형 - 신나는 전투를 통해 스트레스를 푸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유형. 파워 플레이어와 겹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지만, 전투 자체를 좋아하는 것과 인물을 강하게 만드는 것은 서로 다른 동기라는 점에서 구분하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두가지 유형에 다 속할 수 있는 건 당연하니까요)

전술가 - 합리적 수단과 계획을 통한 문제해결을 가장 좋아하는 유형.

전문가 - 특정 인물 유형을 아주 좋아해서 캠페인이나 배경에 무관하게 그 범주에 속하는 인물만 하려고 하는 유형. (예를 들어 닌자) 누구든지 좋아하는 인물 유형은 있지만, 전문가 성격이 강할수록 자기 선호 인물을 하는 것이 역할놀이를 하는 목적이라, 선호 인물을 할 수 없다면 캠페인을 하지 않거나 최대한 자기 선호 유형에 가까운 인물을 만들려고 합니다.

배우 - 인물 연기에서 재미를 느끼는 유형. 자기 주인공답게 행동하는 것, 주인공의 내적 갈등을 연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야기꾼 - 극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데서 가장 재미를 느끼는 유형. 극적 재미를 위해 놀이의 다른 많은 요소를 희생할 수 있습니다. 제가 확연히 속하는 유형.

무심한 참가자 - RPG에 큰 관심없이 친구따라 강남온 유형. 자신이 중심에 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모두와 함께 뭔가를 하고 있다는데 중점을 둡니다. 소극적인 참가자를 모두 이 유형에 넣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소극적 참가자의 동기가 무엇인가에 따라 다를듯. 어쨌든 책의 조언은 이런 유형에게는 연기나 주인공 자리를 강요해서 괴롭히지 말고 내버려 두라는 것인데, 그점이 꽤 신선하다고 느꼈습니다. 한국 RPG의 현실상 보기 어려운 유형이기는 합니다.

물론 이들 유형은 고정된 목록이 아니라 생각의 시작점일 뿐이고, 많은 참가자들은 두가지 이상의 유형에 속하거나 여기 나열되지 않는 유형에 속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탐험가 등) 어느 쪽이든 중요한 것은 유형 구분이 아니라 각 참가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참가자 유형의 활용

참가자 유형을 활용하는 방법은 '이 모험에서 참가자의 동기를 충족시켜주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참가자 유형보다는 오히려 참가자 동기라든지 참가자 욕구라는 말이 어울릴지도요.

예를 들어 파워 플레이어는 경험치나 보물, 새로운 힘 등을 얻을 수 있는 모험이 재밌을 것이며, 전투중시형은 흥분되는 전투 기회가 없으면 지루할지도 모릅니다. 전술가는 제 아무리 극적인 얘기라도 합리적 문제해결과 계획수립 기회가 없었다면 허무할 것이며, 전문가는 자기 선호유형의 특징이 살아날 기회가 없었다면 별 재미가 없겠죠. 배우는 자기 인물의 갈등과 성격이 충분히 드러났는지, 이야기꾼은 전체 서술의 흐름이 얼마나 극적이었는지를 볼 것입니다.

그래서 책에서는 모험을 만든 후에는 항상 각 참가자별로 그 참가자의 동기가 충족될 요소가 있었는지 확인해볼 것을 조언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주를 구출하는 모험이라면 팀의 파워 플레이어를 위한 마법물품은 충분히 있는지, 전술가를 위한 문제해결의 기회는 있는지 등등. 이렇게 하면 기존 시나리오를 사용해도 참가자들에 맞게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가자 욕구에 맞는 모험을 만들어라...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당연한 얘기이면서도 상당히 좋은 조언입니다. 특히 참가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해 보는 시작점으로서의 유형은 꽤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07/04/10 21:56 2007/04/10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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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이것까지 고려해야 하는구나.

    Tracked from 모튼군의 망상공간 2007/03/24 09:52  삭제

    <P>마스터링은 하면 할수록 는다고는 하는데,</P> <P>역시 이런 이론도 챙겨야 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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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aleaf 2006/04/26 08: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이쿠.. 제가 한번 올리려고 했는데 로키님이 먼저 보셨군요.
    '무심한 참가자'의 경우도 본적이 있는데,
    정말 스포트라이트 받는 것을 거부하더군요..;
    뭘 원하는지 몰라서 결국 버려뒀던 기억이 납니다;

  2. 엘에스디 2006/04/26 15: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크 타워에도 이 내용이 나왔던 듯 'ㅁ' 재밌었죠 (...)
    그 외에 동인계, 연애 매니아, 용자, 오타쿠 등의 유형도 (...)

  3. 로키 2006/04/28 07: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Tealeaf// 뭐 아마 그게 그 참가자가 원하는 게 아니었을까 싶어요. 역시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뭐하고 싶냐고 물어보는 거겠지만, 그럴 때 대답이 잘 없는 분들은 정말 미치는 게지요. 엘에스디// 호, 도크타워에도 나왔었나요. 혹시 몇일분인지 기억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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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처음으로 겁스 (GURPS) 인물 제작을 스스로 해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거의 진행자 제작 인물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조금 가공해서 했던지라 이것저것 낯설군요. 재미있기도 하지만 어려운 점이라면 제가 익숙한 방식과는 반대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인물이나 장비 제작에서 두 가지 다른 접근을 분석적 제작과 게슈탈트 제작이라고 이름붙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겁스는 어떤 효과를 내려면 그 구체적인 효과를 모두 분해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상처를 입혔을 경우 상대를 일시적으로 눈멀게 하는 검이라면 해악, 단점부과 (실명) 특수향상, 후속효과 향상, 근접공격 제한, 물품용 제한 등 그 구성요소를 일일히 생각해야 하는 식입니다. 이러한 제작방식을 편의상 '분석적 제작'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분석적 제작을 사용하는 예로 또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히어로 (HERO) 나 트라이스탯 (Tri-Stat) 등이 있습니다.

반면 제가 익숙한 접근은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분석적이 아닌 게슈탈트적 제작입니다. 효과를 개별 요소로 분해하는 대신 키워드로 표현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페이트 (FATE) 1.0으로 같은 검을 구현한다면 검을 부속으로 만들고 '상처를 입으면 시력을 일시적으로 상실한다' 면모를 붙일 수 있을 것입니다. 자세한 효과 (시간적 범위, 필요한 성공차이, 판정에 수정치 등)가 필요하면 종종 규칙의 범위 내에서 합의해서 정합니다. 페이트 외에 히어로퀘스트 (HeroQuest)나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 라이서스 (Risus) 등 다수의 규칙이 게슈탈트적 제작 방식을 사용합니다.

이 두 가지는 일장일단이 있는 접근들이라고 봅니다. 분석적 제작은 정확하고 객관적이며, 게슈탈트적 제작은 제작이 쉽고 유연합니다. 단점은 그 반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분석적 제작은 복잡해질 수 있고, 기본적으로 목록에서 고르는 형태이므로 반드시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반면 게슈탈트적 제작은 대가성 확보가 불확실할 수 있고, 구체적인 효과는 애매할 때가 있습니다.

이 두 접근은 서로 취할 점이 많아 보입니다. 우선 분석적 제작에서 효과를 요소별로 분해해 생각하는 방식은 게슈탈트식 제작에서도 형평을 맞추거나 구체적인 효과를 정할 때 좋은 시작점이 됩니다.예를 들어 '감각 기반' 향상을 보면, 검이 섬광을 발산해 그걸 보기만 해도 잠시 눈이 안보이는 것은 검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입혀야 하는 것보다 강하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감각 기반의 능력은 명중 판정을 요구하는 능력보다 면모 칸이 더 많아야 한다든지, 페이트 점수를 써야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대가성을 더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위와 같은 것은 감각 기반 향상을 몰라도 원론적으로도 알 수 있는 부분이지만, 때로는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보다는 정형화된 규칙을 보는 것이 더 구체적인 발상을 유도하게 마련입니다. 물론 너무 얽매여서 게슈탈트식 제작의 장점인 평이함과 유연성을 잃는 것은 금물. 그저 생각의 방향을 어느 정도 잡아주는 정도로 사용해야지 목록이 발상의 자유로음을 제한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분석적 제작도 게슈탈트식 제작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상상력을 펼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할 개별 요소의 목록이 상상력의 발판이 아닌 천장이 될 위험을 피한다는 면에서이죠. 즉, 목록에 얽매이지 않고, 목록에 없는 것도 구현하려는 생각의 방향을 잡아주는 정도일까요.

이와 같이 분석적 접근과 게슈탈트적 접근은 서로 반대이긴 하지만, 발상을 얻거나 생각의 방향을 잡는데 서로 취할 장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다른만큼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줄 수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예시에 쓴 검을 겁스와 페이트로 제작해서 비교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명혼도 (冥昏刀) - 겁스판

해악 (2단계): 15CP

실명: +50%
근거리 (공격범위 1, 2): -25%
도난 가능 (ST 겨루기): -30%
소비시간 연장 (1초): -10%
일시적 단점 (죽음의 기운): -10%

비고: 일시적 단점에 대한 부분은 잘 모르겠습니다. 불길한 검이라 들고 있으면 반응판정에 벌점이 붙는 걸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끄고 켤 수 있으며 그렇게 하는데 1초 이상이 걸리는 능력에만 붙일 수 있다고 해서 1초 소비시간을 넣긴 했지만 어차피 전투중에 반응판정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고, 전투 외의 상황에서 능력을 끄는 건 쉬우니까요.

차라리 검을 해악 장점을 가진 동료로 제작해서 죽음의 기운을 넣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해악만이 목적인데 완전히 새로운 인물로 제작하기는 좀 그런 면도 있지만요. 아니면 참가자와 진행자가 합의해서 다른 효과를 부여할 수도 있겠죠.

명혼도 (冥昏刀) - 페이트판

명혼도 (□)
실명을 유발한다 □□
불길한 기운 □

발동조건: 다친 결과 (성공차이 3) 이상으로 공격에 성공했을 때 실명 면모 발동할 수 있음. 조건 충족시 피해자는 기본적으로 전투가 끝날 때까지 실명 상태, 발동에 페이트 점수를 들여 시간단위 올릴 수 있음.

비고: 위에서 말한 '불길한 검이라 사회생활에 지장' 부분은 어렵지 않게 표현됩니다. 불길한 기운 면모를 강제 발동하면 사회적으로 손해볼 때마다 페이트 점수를 받을 테니 대가성도 확보하고요. 반면 위협 판정을 할 때는 자발적으로 발동해 가산점을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역시 위의 겁스판과는 달리 공격의 구체적인 효과는 따로 정해야 합니다. 구체적인 경우에 형평성을 맞추는데 좀더 신경을 써야 하고, 이점에 대해서는  페이트 규칙 자체 외에도 겁스 같은 다른 규칙을 참고하는 것이 발상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06/12/05 12:34 2006/12/05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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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삭풍 2006/12/05 17: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차피 검을 꺼내들고 집어넣는데에 1초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소비시간 연장은 필요없다고 생각했습니다만...역시 말씀드린 저로서도 애매모호하네요.겁스는 목록에 얽매이는 경향이 큰것같습니다

    • 로키 2006/12/06 06:57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긴, 뽑는 시간이 있긴 하군요. 그래도 빨리 뽑기를 높이면 그나마도 없는데다가, 기본적으로 후속 효과로 보이는 해악에서 사실 켜고 끄는 게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도 좀 헷갈리는 면이.. 또 검을 뽑으면 교습과 같은 제한된 상황 외에는 거의 적대적인 상황이라고 봐도 될 것도 같으니 반응판정이 큰 의미는 없다고도 보이고요. 새로운 장점이나 단점을 만드는데 준해서 변형을 만드는 식으로 목록을 보완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아사히라 2006/12/06 1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생각엔 죽음의 기운을 고유공격에 달 게 아니라요

    단점에 달되 거기다 제한을 붙이면 되겠네요.
    사용 조건(명혼도를 들었을 때만)

    이런식으로 단점에 제한을 붙이면 되지 않을까요?

    단점 cp값이 줄겠지만 좀 더 잘표현되는것 같은데요..

    • 로키 2006/12/07 0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게 제일 좋은 방법 같네. 검의 특성이라는 생각에 너무 얽매여서 사용자에게 단점을 붙이는 건 생각 못한... 그러면 검을 훔친 사람도 마찬가지로 단점과 제한을 붙여야 하려나?

  3. 아사히라 2006/12/07 10: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검을 가지게 됐을때 일시적으로 붙는게 되겠죠, 검 자체에서 발현되는 능력이라면요.

    그게 아니고 검과 사용자의 무언가가 시너지를 일으켜서 일어나는 능력이라면
    (즉, 훔친 사람이 검의 능력을 사용할 수 없다면)

    붙지 않아도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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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션 등지에서 RPG가 게임인가 하는 의문을 접해서 제 나름대로 의견을 적어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RPG가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임성과 서사성 사이에는 아무 논리필연적 충돌이 없다고 생각하며, 그 게임성 없이 RPG의 재미는 반감될 것이라고 말이죠.

제가 RPG의 게임성을 판단하기 위해 참고한 글은 그레그 코스티캔의 게임론 (I Have No Words and I Must Design)입니다. 이 글에서 코스티캔은 게임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 의사결정을 요구한다
- 목적이 있다
- 장애를 제시한다
- 자원관리를 요구한다
- 게임말이 있다
- 정보가 주어진다

제가 아는 한 코스티캔의 게임론은 게임이 무엇인지 가장 포괄적으로 정의한 글이기 때문에 코스티캔이 정의한 바를 항목별로 따라가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의사결정을 요구한다

RPG는 의사결정을 하는 놀이입니다. 그리고 그 의사결정에 따라서 게임의 상황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퍼즐과 구분되고, 의사결정의 자유가 있다는 점에서 직선적인 이야기와도 구분됩니다. 이러한 의사결정이야말로 RPG를 재미있게 하는 최대의 요소라고 저는 생각하며, RPG를 게임으로 규정하게 하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물론 RPG는 퍼즐처럼 돌릴 수도 있고, 직선적인 이야기로 돌릴 수도 있습니다. 100% 순수한 퍼즐로 돌린다면 실마리를 주어서 하나하나 짜맞추며 전체적인 실상에 다가갈 수 있게 하되, 참가자의 결정은 퍼즐 자체의 상태에 아무 영향도 줄 수 없을 것입니다. 오직 발견할 수만 있을 뿐이지요. 하지만 실제로는 진행자의 선택 뿐만 아니라 참가자의 선택도 (예를 들어 용의자 추적, 증거 은닉 등) '퍼즐' 전체를 변하게 하며, 따라서 RPG를 순수한 퍼즐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물론 퍼즐의 요소는 장애물로서든 시나리오의 구성으로든 RPG에 흔히 들어가며 (시나리오의 종류 참조), 진행 스타일에 따라서는 게임 다음으로 RPG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직 퍼즐이라고 하면 의사결정의 요소를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에 퍼즐 외에 어떤 특징이 있는지 계속 생각해 보겠습니다.

RPG를 직선적인 이야기로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참가자의 의사결정이 이야기의 결말이나 전개에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하며, 오직 정해진 이야기만을 따라갈 수 있게 말이죠. 이러한 RPG를 하고 싶은 분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로서는 진행하기도, 참가하고도 싶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저렇게까지 극단적인 직선 진행은 흔하지 않다 하더라도 (금방 파토나는 게 보통이죠), 이야기와의 일종의 타협점은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즉 참가자의 선택에 따라 그때그때 전개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전체 결말은 정해져 있거나, 아니면 두세가지 중 하나로 압축되는 것이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모든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정해져 있는 이야기와는 구분되기 때문에, RPG를 100% 이야기라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2. 목적이 있다

위에서 말한 의사결정은 어떤 식으로든 목적이 있어야 의미를 갖습니다. 주인공이 오크 세마리를 보고 도망쳐야 할까요, 싸워야 할까요? 아무 목적이 없다면 어떻게 판단하든 상관도 없습니다. 보물을 찾아 미궁을 털러 온 것이든, 포로로 잡혀와서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는 것이든, 생존 자체이든 뭔가 목적이 없이 의사결정은 무의미합니다.

그렇다면 RPG에는 목적성이 있을까요? 단언하건대 제가 진행하거나 참가한 RPG 세션 중에서 크든 작든 목적이 없는 것은 없었습니다. '바빌론을 탈출해라' '마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내라'부터 '세상을 구해라'까지, RPG 플레이에서는 진행자 설정이든 참가자 설정이든 수많은 목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게 아무것도 없어도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주인공의 생존이라는 훌륭한 목적이 있습니다.

목표는 또한 다층적이기도 해서, 참가자의 목표는 주인공의 목표와는 흔히 ·차이가 납니다. 주인공은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목적이라도 참가자의 목적은 위험하고 신나는 모험을 시키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이렇게 다양하고 다층적인 목적들이 서로 얽히면서 플레이 내용에는 깊이가 더해지며, 의사결정은 복합적이고 흥미로워집니다.


3. 장애를 제시한다

한번의 의사결정만으로 목적을 이룬다면 별다른 재미는 느끼기 힘들 것입니다. "세계를 정복할래 집에 편하게 있을래? 세계를 정복한다고? 축하해! 넌 이제 세계의 정복자가 되었어!" 하는 진행은 짧고 간단한 점은 좋지만(..) 재미는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목적으로 가는 길에는 크고 작은 장애가 제시됩니다.

이 장애는 여러가지 형태를 띨 수 있습니다. 보드게임에서처럼 다른 참가자의 방해일 수도 있지요. 하지만 장애의 요체는 목적으로 다가가는 길에 적절한 의사결정을 통해 넘어가야 할 어려움이지, 논리필연적으로 경쟁을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혼자 하는 컴퓨터 게임에서는 경쟁 없이 프로그램이 장애물을 내보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장애물이 아니라고 하면서 컴퓨터 게임의 게임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좀처럼 없습니다.

의사결정을 통해 장애를 극복하는데 기준을 두기 위해 RPG에는 흔히 규칙책과 판정이 있습니다. 하지만 RPG의 규칙은 책에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참여자들의 명시적·암묵적 합의 역시 규칙으로 작용합니다. 심지어는 규칙책도 판정도 없는 플레이 역시 장애물 극복 등 게임성의 요소를 갖춘 게임일 수 있습니다.


4. 자원관리를 요구한다

게임 내에서는 의사결정을 하고 장애물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원을 관리합니다. 이 자원은 인물 제작 점수, HP, 마법 주문, 극점수, 경험치, 식량, 재산, 정보, 명성, 한 라운드 내의 시간 등 무엇이든 될 수 있으며, 관리해야 할 자원이 다양할수록 의사결정은 더욱 복합적이고 흥미로워집니다.

주사위 없이 자원관리만으로 성패를 결정하는 다이스리스 RPG도 있습니다. 미라클 점수를 사용하는 노빌리스 (Nobilis)라든지 노력 점수를 사용하는 Active Exploits 등이 그 예이지요. 게임성을 확보하는 방법은 반드시 무작위수가 아니더라도 여러가지가 있는 것입니다.


5. 게임말이 있다

게임에서는 또한 자원관리를 하고 의사결정을 반영함으로써 목적을 이루는 수단인 말이 있습니다. 게임말은 참여자가 게임에 영향을 미치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RPG에서 참가자가 다루는 주인공(PC)도 하나의 게임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게임말보다는 훨씬 복잡하고 깊이있는 존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게임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주인공은 복잡하고 자세한 게임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능력치와 행동범위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와 배경, 사회적 지위 등을 가진 게임말이라고 해서 게임말이 아니라는 필연성은 보이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한 참여자가 사용하는 게임말의 수가 많을수록 각 말이 가진 특성은 단순해지고, 수가 적을수록 복잡다단해집니다. 한사람 앞에 16개가 있는 체스말은 종류와 움직임 규칙, 위치라는 특징만을 갖지만,  한사람 앞에 RPG의 주인공은 감정,  배경, 인간관계, 개인적 욕구, 능력치, 고민, 허점, 주제의식 등 훨씬 다양한 면모가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게임성 측면에서 보면 주인공이 게임말이라고 해서 허구적 인물로서의 깊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게임말이라고 해서 깊이가 떨어진다는 생각은 게임성과 서사성이 서로 모순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 다룰 성격은 아니지만 저는 게임성과 서사성 사이에는 아무 충돌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주인공이라는 게임말 역시 얼마든지 서사적 깊이를 갖출 수 있습니다.

진행자의 역할은 참가자와는 달라서, 게임말을 다룬다기보다는 게임판을 짜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참가자와의 의논과 합의는 있어야겠지만, 최종적으로는 자신의 권한으로 말이죠.

전통적인 진행자/참가자 역할구분에서 진행자는 게임판에만, 참가자는 게임말에만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그 구분을 어느정도 흐리게 하는 규칙책도 보입니다. 페이트 (FATE) RPG에서 페이트 점수를 들여서 다양한 서술적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든지 ("회중전등이 필요한데.." 1 페이트 점수 사용 "..마침 주머니에 회중전등이 있군!"), 트롤베이브 (Trollbabe)나 던전 (Donjon),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에서 참가자 역시 서술권을 가질 수 있다든지 하는 것이 그 예일 것입니다. True20의 신념 (Conviction) 점수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알고 있고요.

마찬가지로 참가자의 게임말에 대한 진행자의 권한을 일부 인정하는 규칙도 있습니다. 겁스 (GURPS)에서 정신적 단점의 자제판정을 시킨다든지, 페이트에서 면모를 강제발동한다든지 하는 경우가 그 예이지요.

하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RPG에서 모든 참여자가 플레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참가자든 진행자든 자신의 게임말 (진행자는 게임판)을 통해 의사결정과 자원관리를 하고, 목적을 달성하려고 애쓰지요.


6. 정보가 주어진다

게임의 다른 모든 요소는 정보가 없이는 무의미합니다. 의미있는 의사결정과 자원관리, 장애물 극복을 위해서는 그러한 결정들을 합리적으로 내릴 수 있게 해주는 정보가 주어져야 합니다. 오크가 몇마리인지, 적대적인지 우호적인지 중립적인지, 어디 있는지 몰라서야 싸워야 할지, 싸운다면 어떤 전술을 써야 할지, 교섭해야 할지,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술집으로 향해야 할지 알 방법이 없죠.

필요한 정보가 없는 것도 곤란하지만 필요없는 정보를 너무 많이 주는 것도 곤란합니다. 오크와 치고받고 싸우고 있는데 오크의 계보와 역사를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겠죠. 반면 오크 부족을 서로 이간질시키려고 한다면 오크 부족간의 역사와 정치적 관계는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정보는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필요와 관련성을 판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진행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참가자 또한 주인공의 행동과 대사를 통해 진행자와 서로에게 정보를 제공합니다. 각 참여자의 선택과 행동은 새로운 정보를 창출하며, 그래서 RPG 플레이는 참여자의 행동에 따라 변해가는 '게임'이 되는 것입니다.


7. 결론

이상과 같이 RPG가 게임인지 코스티캔의 게임론에 나온 게임의 요소에 비추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퍼즐이나 이야기 같은 다른 유희에서 빌려온 요소 역시 있다  해도 RPG는 기본적으로 게임이라는 결론에 나름대로 도달했습니다. RPG는 게임말을 이용하여 자원관리를 하고 장애물을 극복하면서, 주어진 정보를 이용해 목적을 가지고 유의미한 의사결정을 하는 놀이이기 때문입니다.

RPG 최대의 재미는 바로 이 게임성에서 나옵니다. 감동적인 이야기도 즐겁고 하나하나 맞춰가는 퍼즐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RPG의 질리지 않는 재미는 의사결정의 요소, 즉 자신이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끝없이 변화하고 그 변화는 또다른 대응을 요구하는 게임적인 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와도 다르고 퍼즐과도 다른 이 역동성이야말로 RPG가 제공하는 즐거움의 요체라고 생각합니다.
2006/11/27 08:11 2006/11/27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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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와 경이감에 대한 Wishsong님의 글에 댓글로 쓰다가 길어져서 엮인글로 올립니다.


경이감은 의식적으로 '느끼자!' 하고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닌만큼 경이감을 느끼자는 합의의 내용은 애매한 면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합의의 일환으로 진행자가 묘사하는 것들이 반드시 위협이나 단서일 필요는 없다는 암묵적 혹은 명시적 공감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경이감을 느낄 정신적, 시간적 여유를 캠페인 내에 확보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들이 탄 우주선이 어떤 행성을 향해 가고 있는데 우주공간을 떠도는 '우주 반딧불'이 색색의 빛을 은은하게 발하면서 우주선 주변을 춤추듯 유영하고, 그들의 텔레파시로 주인공들의 머릿속에 아름다운 노래가 울린다고 하죠. 소리가 전달되지 않는 진공 속에서 듣는 노래... 그러나 이런 특이한 현상은 불행히도 90% 이상의 경우 위협으로 간주됩니다. 주인공이 함포로 달려가 우주반딧불을 몰살시켜 버린다면 경이감은 저 너머에. (먼산)

이 경우 상인들의 여행담이라든지 해서 'XX 행성 주변의 우주를 떠도는 우주 반딧불은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미리 주지시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얘기로만 듣던 우주 반딧불이다!' 하고 PC들이 느긋하게 즐거워할 바탕도 될 수 있겠죠. ('속으면 안돼! 마스터의 속임수야!'로 가지 않는다면 말이죠) 참가자 입장에서는 배경세계의 일관성이 더욱 탄탄하게 느껴져서 몰입감은 한층 증가할 테고, 이것은 경이감에 더욱 도움이 되죠.

이 예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진행자와 참가자간의 합의는 'PC들을 계속적인 위협 상태에 두지 않는다'는 내용일 것입니다. 캠페인 자체의 분위기는 끝없는 위협과 음모에 아무도 믿을 수 없는 비정물인데 갑자기 우주반딧불을 감상하며 즐거워하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결국 경이감을 살리려면 캠페인 분위기에 탐험과 발견이라는 느긋한 여유가 어느정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하나 생각할 점이라면 참가자는 (대개의 경우) 어린애가 아니며, 따라서 진행자가 보여주는 묘사에 앉아서 감탄하라는 것은 다소 무리한 요구일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참가자가 어떤 것에 실제로 감탄할지 스스로 얘기하는 것일텐데, 예를 들어 '거대한 지하도시가 나오면 좋겠어요'라든지 '하늘까지 닿을 정도로 높은 구조물이 있으면 좋겠어요'라든지 '초월적 지성체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등입니다. 이런 것들을 얘기하면 경험치나 극점수로 포상하는 것도 좋은 동기부여겠죠.

참가자 제안 외에도, 경이를 느끼는 것 자체에 포상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우주의 경이를 깊이 느끼며 감탄하는 것은 그 자체 즐거운 경험이며, 힘든 탐험생활에 새로운 동기부여를 하고, 정신의 지평을 넓히며, 지친 혼을 편안하게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경이의 순간을 충분히 음미하는 연기를 함으로써 경험치나 부상 회복을 받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죠. 경험치 획득의 조건을 참가자가 스스로 정하는 '과거의 그늘'이라면 다음과 같은 열쇠도 가능합니다.

경이의 열쇠
- 아무개에게는 우주의 신비를 느끼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보람입니다. 경이를 불러일으킬만한 광경에 하던 일을 멈추고 깊은 감동을 느끼면 1XP, 가던 경로를 바꾸거나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경이로운 광경을 일부러 찾아나서면 2XP, 목숨을 걸고 우주의 경이를 찾아나서면 5XP를 받습니다. (삭제조건: 신비롭고 경이로운 경험을 피합니다.)


물론 이 방법은 지나치면 억지 춘향이 돼서 진짜 경이감은 증발해버릴 위험도 있습니다. 억지로 꾸민 감동은 없느니만 못하니까요.

마지막으로 어떤 요소가 경이를 불러일으키는지 분석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질성과 규모, 공포, 희소성, 주제의식 관련성, 몰입감 등이 있습니다. 이질성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일인데 이게 어떤 식으로든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진공 속에 생물이 살아간다거나, 마치 레이스처럼 가늘고 연약해 보이는 다리가 수천톤의 무게를 문제없이 견딘다거나.

규모는 말 그대로 규모. 물리적 규모이든 다른 의미의 규모이든 거대한 규모는 경이감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두개의 대륙을 잇는 거대한 다리, 날개를 펼치면 하늘이 어두워지는 괴조, 인류의 전 역사에 걸쳐 진행돼 왔고 인류 전체의 운명을 포괄하는 비밀스런 계획 등이 그 예입니다.

공포의 요소가 있으면 인간은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연약하고 덧없는 것인지 느끼게 마련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신이 보고 있는 광경의 의미는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까마득히 높은 절벽에서 바다를 내다보며 느끼는 감정은 규모와도 관련이 있지만 공포와도 관계가 있죠. 마찬가지로 위의 괴조의 예도 위협을 느끼기 때문에 경이감이 증폭됩니다. 그럼에도 이 공포가 너무 큰 나머지 감동을 느낄 여지가 없을 정도가 되면 곤란하다는 점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포를 경이감의 요소로 활용하려면 두가지 방법 중 하나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첫번째는 그 위협이 느낌으로만 존재할 뿐 실제가 아닌 방법이 있습니다. 괴조가 엄청나게 크긴 하지만 사실은 아주 온순한 지성체이기 때문에 예의를 지키면서 도움을 청해야 한다든지 (총을 쏜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간다 = 무례), 반딧불이 머리속에 텔레파시로 얘기하는 게 불안하긴 하지만 절대적으로 안전한 생물이라는 것이 정설이고, 함부로 죽였다가는 빈축을 살 것이라든지 말이죠.

두번째는 위협이 실체이기는 하지만 PC가 어떻게 해도 그 위험에 대응할 수가 없게 처리하는 것입니다. 우주선이 웜홀로 끌려들어가는데 모든 기기가 반응을 안해서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든지. 이런 경우 참가자들은 위협에 대응하기보다는 웜홀의 신비에 관객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물론 RPG에서는 극히 제한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기법이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 왠만하면 좋을 테고요.

희소성도 경이감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경이를 느낄만한 장면이 너무 잦아서야 크게 가치절하가 되어버릴 테니까요. 경이로운 경험을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어려움을 요구하는 것도 희소성을 확보하는 한 방법입니다. 고대 도시를 발굴하기 위한 모험이라든지 말이죠. 이럴 경우는 진행자의 묘사는 노력에 대한 대가같은 느낌도 들어서 더욱 인상깊지 않을까요.

경이로운 경험이 주제의식을 표현하는 성격이라면 감동은 더욱 증폭되지 않을까 합니다. 예를 들어 캠페인의 주제가 '자유 의지'인 캠페인을 생각해 보죠. 이 경우 인간이 자멸해 버리지 않도록 인간의 역사와 선택을 교묘하게 조종해온, 자비롭지만 압제적인 초월적 지성체와의 만남은 훨씬 깊은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위에 얘기했듯 배경 세계에 대한 몰입감도 경이감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거대한 지하도시가 있다는 얘기를 여행중에 듣기만 하다가 직접 자기 눈으로 보게 된다든지 하는 경우겠죠. 여행자들은 신기한 것을 봤으면 대체로 소문을 내게 마련이며, 이 과정에서 이야기는 과장되거나 왜곡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장치에서 느껴지는 진정성은 세계의 일관성과 몰입감을 형성하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경이감의 일반적인 요소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특정 참가자들에게' 무엇이 감탄스러운지 분석해 보는 노력일 것입니다. RPG는 의사소통이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는 굳이 반복하기도 쑥스럽고 (그러면서 왜 반복하냐), 이것은 경이감을 유발하는 노력에도 예외가 아니니까요.

뭔가 얘기가 길어졌습니다만 정리해 보자면...

1. 경이를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캠페인
2. 참가자의 제안을 활발하게 받기
3. 경이를 느끼는데 대한 포상
4. 경이의 요소를 분석해서 활용

이상과 같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2006/11/16 04:28 2006/11/16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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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진야의 방문자 2006/11/16 1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질감을 위해서는 익숙함이 필요합니다. 상식에 벗어남을 위해서는 상식이 필요하지요. 애당초 우리와는 다른 상식을 가지는 판타지(혹은 SF)이기에 PC가 느낄 경이감과 케릭터가 느낄 경이감이 다르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겁스에 나오는 [바이킹에겐 증기기관차가 괴물]이던가 하는 구문을 인용하여 이야기를 진행했던것 같습니다.

    결론이 잘 생각이 안나는군요.
    [경이감을 느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플레이어에게 경이감은 마스터의 농간이 될 뿐이다!] 라는 말로 가기 쉽지만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던것 같습니다. [PC와 플레이어의 상식을 맞추자]라는 얼토당토 하지않지만 긍정적인 결론으로 갔던거 같기도 합니다. 지금이라면 [애당초 둘의 상식은 다르니까 그냥 경이감을 느낀다고 하고 말아라]로 갈 것 같습니다.

  2. nefos 2006/11/17 04: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고보니까 경이를 느끼는 대상이 (캐릭터가 아니라) 참가자에게 너무 포커스가 맞춰진 느낌입니다. 물론 참가자와 합의가 되어야 한다는 게 기본 베이스라 그렇겠지만요.
    경이감을 주기위한 요소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역동성은 RPG에서 표현하기가 조금 어렵다고 생각되는군요. 덧붙여, 무언가 긴박한 느낌을 주었다가 갑자기 평온한 상태로 바뀌며 펼쳐지는 장면 역시 경이감을 표현하는 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3. 로키 2006/11/18 0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야의 방문자// 예, 확실히 그렇네요. 우리네야 달나라에 로켓 뜨는 것만 보고도 감동하지만 많은 SF 세계에서는 항성간 여행도 당연한 걸로 여겨지는 등...

    하지만 그건 배경 세계의 정상 기준이 확실하면 어느정도 해결되는 부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항성간 여행은 일상이지만 완전히 사막만 펼쳐진 행성은 발견된 적 없다든지 말이죠. 결국 일관성과 기대치의 문제.

    또 우리에게 일상인 것이 주인공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신기한 것도 생각할 수 있겠죠. 인류가 모두 한 행성에서 발원했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거나요.

    nefos// 뭐랄까.. 등장인물들의 경이감도 좋지만 역시 참가자가 즐거운 것이 목적이니까요. 물론 경이감을 느끼는 반응을 연기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는 함께 느끼는 게 좋겠죠.

    완급 조절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군요. 확실히 좋은 표현 방식이고, RPG라고 특별히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차원의 게이트를 탈취하기 위한 격렬한 전투,그리고 상대방 함대를 보내버리자마자 모든 것이 조용해지면서 게이트의 신비를 보게 된다든지... 완급 조절은 진행의 주요 도구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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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로스의 마스터링 법칙 (Robin's Laws of Good Game Mastering)에 나온 시나리오 편을 요약해 보았습니다.

0. 던젼 등 비구조적 모험

일정한 공간을 준비한 후 그 공간을 탐사하는 모험입니다. 탐험과 전투, 물품 획득이 중심입니다.

1. 에피소드식 구조

서로 큰 상관관계가 없는 장면의 연속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이동하면서 온갖 사건을 겪는 것이죠. 특히 배경세계 제작에 관심이 많고 주인공들에게 자신이 만든 세계를 관광시켜주고 싶은 진행자에게 적합합니다. 또 유머나 모험 중심의 가벼운 분위기가 되기 쉽기 때문에 무거운 이야기 사이사이에 좋은 기분전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에피소드식 모험 구조의 예라면 다음과 같은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보틀턴 외곽: 춤추는 요정 ⇒ 큄시 근처: 물에 빠진 할머니 ⇒ 다크우드: 거미를 숭배하는 사교 ⇒ 버려진 방앗간: 서큐버스 출몰 ⇒ 채석장: 노예 반란 ⇒ 브라젠의 성문: 골렘 봉쇄

에피소드식 구성은 배우 유형 참가자에게 특히 적합합니다. 인물 표현을 마음껏 해도 지속적 결과가 없기 때문입니다. 파워 플레이어, 전투중시형, 무심한 참가자 유형도 이 모험 구조의 단순성을 좋아할 것입니다. 반면 이야기꾼 유형은 장면 사이의 연관이 없다는 점과 장기적 결과의 부재에 실망하기 쉽습니다.

2. 세트 중심

세트 중심 모험은 서너개의 줄거리상으로 연결된 대규모의 장면으로 이루어집니다. 주인공들이 대규모 장면을 순서대로 모두 마주치도록 적당히 구성을 조절하긴 하지만, 한 장면에서 다음 장면으로 가는데는 몇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장면전환 방법을 적어도 두가지씩은 생각해 두는 것이 좋으며, 참가자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을 생각해 낼지도 모릅니다.

1920년 이집트에서의 모험을 다루는 모험을 예로 들면, 우선 배경에 어울리는 멋진 장면을 4가지 설정합니다. 사막에서 차를 달리며 도굴꾼들과 벌이는 총격전, 치명적인 함정이 숨어있는 무덤 탐사. 미이라를 예상하고 있을 참가자들을 놀래켜 주기 위해 강력한 스핑스와의 전투, 그리고 복엽 비행기가 비행선을 공격하는 공중 전투.

다음은 순서를 정리합니다. 펄프 모험에서는 항상 큰 괴물은 마지막에 나오기 때문에 스핑크스가 제일 끝입니다. 무덤 도굴꾼은 무덤 탐사 다음에 나오는 것이 논리적입니다. 고공 전투가 무덤 탐사나 도굴꾼들과의 싸움보다 멋지므로 도굴꾼과의 전투와 스핑크스 사이에 세번째로 넣습니다. 그렇게 하면 모험 구조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무덤과 함정 ⇒ 도굴꾼 ⇒ 비행선 전투 ⇒ 스핑크스

이들 장면 사이를 전환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한가지는 성공했을 경우, 또 한가지는 실패했을 경우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위의 예에서 도굴꾼 전투와 비행선 전투 사이의 전환을 생각해 보면, 도굴꾼들에게 이겨서 그들의 옷이나 차를 수색할 경우 프랜시스 스마이스라는 유물 수집가 소유의 비행선을 습격할 계획서가 나옵니다. 도굴꾼들에게 졌을 경우 (혹은 수색할 기회가 없을 경우) 모험자들은 카이로에서 도굴꾼들의 정체를 알아보다가 스마이스라는 부유한 문화재 수집가도 강도 습격을 받은 적이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고, 스마이스의 비행선상 연회에 초대받습니다. 성공에 의한 장면 전환은 실패의 결과보다 빠르고 위험이 적은 것이 보통입니다.

장면 전환의 법칙

(1) 실패와 성공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지의 여부를 결정해서는 안된다

굴림에 실패해서 오도가도 못하게 되는 것은 최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패와 성공에 따라 각각 다른 경로를 따르게 된다면 몰라도 실패를 이유로 모험이 막다른 골목에 부딪혀서는 안됩니다.

(2)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을 주인공 일행이 막지는 못해도 그 정도에는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줄거리상 악당이 꼭 주인공 일행을 피해 결정적인 장면에서 마계의 관문을 열거나 할 필요가 있다면 최소한 부분적인 성공이라도 허용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죽이는 것은 막았더라도 부상을 입혀서 나중에 다시 마주쳤을 때 더 유리하다든지, 마계의 문을 여는 장치의 마법을 소모시켜서 관문을 여는데 시간이나 노력이 더 들게 된다든지.

3. 순서도 형식

모든 가능성을 미리 준비한 형식으로, A 장면에서 성공하면 B 장면, 실패하면 C 장면... 하는 식으로 가지를 치는 것입니다. 완벽하게 준비하기가 극도로 어렵습니다. 순서도를 완전히 논리적으로 전개할 경우 완전한 패배로 이어지는 선택지의 연속도 있을 것인데, 이것은 전술가 유형의 참가자의 마음에 들 것입니다. 패배의 가능성이 있어야 판단과 계획의 재미가 있으니까요. 반면 이야기꾼 유형은 완전한 실패까지는 가지 않도록 진행자가 적당히 조절해 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4. 퍼즐 형식

완전한 순서도 형식 모험과 완전히 즉석에서 만든 모험의 중간 형태로, 여기서 퍼즐 조각이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사건과 정보입니다. 퍼즐 형식 모험을 만들려면 주변 인물의 성격과 목적의 목록을 작성합니다. 다음, 중요한 정보의 단편들을 나열하고 어느 인물이 어느 정보를 아는지 적습니다. 마지막으로 주인공들이 갈만한 장소라든지 가능한 행동 순서 등을 생각해 봅니다.

모험을 진행할 때는 이러한 정보들 사이로 이어지는 길을 보여주고, 주인공들은 어떤 실마리를 쫓을지 선택하면서 선을 이어갑니다. 모험이 진행되면서 등장 인물들을 만나고 줄거리를 짜맞춰 가는 것입니다. 재미 혹은 논리상 필요할 경우 줄거리를 더욱 진전시키는 사건을 삽입합니다. 정보와 사건을 목록에서 지워가면서 진척 상황을 추적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퍼즐식 모험은 순서도 형식의 모험보다 정보를 더 간략하게 전달할 수 있으며, 준비하기도 훨씬 쉽습니다. 또한 진행도 보다 유연해지지만, 그 유연성의 활용은 실력 나름이랄까요.

5. 적 중심

또한 적의 계획과 행동에 중점을 두고 모험을 준비할 수도 있습니다. 장점은 퍼즐식 모험과 비슷하지만, 사용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주인공들이 적의 계획을 방해할수록 준비한 내용은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주인공들이 적을 뒤쫓는 추적 형식의 캠페인이라는 제한된 상황에 적합합니다.
2006/09/15 23:28 2006/09/15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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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큼이 2006/09/17 1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스터 역량만 된다면 퍼즐 형식이 최고군요 ^^;

  2. nefos 2006/09/17 1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초보마스터에게는 역시 던전타입이 제일 무난할거 같군요. 시나리오를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에피소스식진행+세트식진행이 무난한거 같네요.

  3. 로키 2006/09/19 0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퍼즐 형식이 가장 다루기 쉬워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규모가 크고 인상적인 '고예산' 장면을 만드려면 세트 중심으로 가는 것이 좋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던젼형 모험이 확실히 초보 마스터에게 다루기 쉽겠죠. 가장 고전적이고 가능성이 많은 형태의 모험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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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eptemberquestion.org/lumpley/hardcore.html#4
http://www.septemberquestion.org/lumpley/hardcore.html#7

판정이란 캐릭터의 목표와 그 목표를 가로막는 장애가 있을 때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그 목표, 혹은 판정에 걸려있는 것(stakes)에 따라 행동판정과 갈등판정이 나눠집니다. 행동판정에 걸려 있는 것은 특정한 행동의 성공, 갈등판정에 걸려있는 것은 어떤 극적 결과입니다.

행동판정과 갈등판정의 예를 들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김 장군은 점점 소모전의 양상을 띄고 있는 전쟁을 그만두도록 국왕에게 간언합니다.

-판정에 걸려있는 것(행동판정의 경우): 설득 판정에 성공하느냐의 여부
-판정에 걸려있는 것(갈등판정의 경우): 왕이 종전을 결심하는지의 여부

엎어치나 메치나 그게 그거라고 할 수도 있고, 실제로도 두가지는 겹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개념적 구분을 할 이유가 있는 게, 실제 판정의 결과가 달려있거든요. 순수 행동판정의 경우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김 장군: "폐하, 적국과 평화조약을 맺으셔야 하옵니다.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있고 승전은 기약할 수가 없나이다!"
(주사위 또르르. 설득판정 성공.)
국왕: "김 장군의 백번 맞소. 얻을 것이 없고 잃을 것만 많은 전쟁이오.
김 장군: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국왕: "하지만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총지휘관인 김 장군의 무능 때문이오! 김 장군을 당장 해임하고 박 장군에게 지휘를 맡겨야겠소. 이봐라, 이자를 끌어내라!"
김 장군: (OTL)

플레이어는 PC가 어떤 선택을 할지(침묵할 것인가, 국왕에게 간언할 것인가, 아예 적국에 붙어서 쿠데타를 일으킬 것인가 등등), 또 그에 따라 어떤 기능을 굴릴지 선택할 수 있겠지만 갈등판정의 요소가 조금도 들어가 있지 않은 순수한 행동판정의 경우 결과는 GM의 마음입니다. 플레이어가 원하는 극적 결과를 못박지 않았으니까요.

갈등판정이라는 개념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시스템과 상관없이 대개의 경우 이미 갈등판정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도 쉽게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적어도 암묵적으로라도요. 그렇기 때문에 위의 예처럼 플레이어가 성공했는데도 전혀 원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면 GM이 욕을 먹는 것입니다. 즉, 룰은 행동판정을 지원하고 있더라도 실제 플레이의 과정에서는 플레이어가 의도하는 극적 결과가 있고, GM은 그 방향에 대충이라도 맞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약속의 이행, 즉 암묵적인 갈등판정이 이뤄지고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보통 말없이 이뤄지고 있는 갈등판정을 명시적으로 플레이 전면에 끌어내면 플레이어의 적극성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이 판정에 무엇이 걸려있는지 처음엔 GM이 말해주더라도 차차 플레이어가 말하도록 유도하는 거죠. 예를 들어 전투를 할 때도 단순히 '때립니다'가 아니라 '동료의 목에 칼을 대고 있는 적 NPC의 손을 맞춰서 칼을 떨어뜨리게 합니다' 하는 식으로요. 그리고 성공하면 원하는 극적 결과를 성취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때 GM이 '적 NPC는 손을 맞고도 칼을 떨어뜨리지 않고 동료의 목을 찌릅니다!'라고 하면 반칙. 갈등판정의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죠. 플레이어가 선언한 의도 그대로의 결과가 나와야 합니다.

그렇다면 실패의 경우는? 실패는 또다른 갈등, 그리고 또다른 가능성의 시작이죠. '적 NPC는 동료의 목을 푹! 찌르고서는 도망칩니다. 동료는 빈사상태로 땅에 쓰러집니다.'라는 결과라면 플레이어는 원하는 극적 결과를 다시 설정하면 됩니다. 어떻게든 응급처치를 한다. 동료의 생명은 포기하고 적 NPC를 쫓는다. 동료 옆에 주저앉아 통곡한다. (...이 경우는 판정은 필요없겠군요.) 들쳐업고 의사를 찾아서 달린다, 등등.

즉 (의도 선언) -> (판정) -> (성공) -> (의도 성취)

혹은 (의도 선언) -> (판정) -> (실패) -> (새로운 의도 선언)

식의 갈등판정의 진행이 플레이어의 적극성을 유도하고 보다 재밌는 플레이를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2005/12/25 22:27 2005/12/25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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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관찰자 시점 서술 vs. 전지적 시점 서술.

    Tracked from should-man의 사유공간 2007/05/08 02:09  삭제

    종종 온라인 채팅으로 RPG를 플레이 하다보면, 서로 오해가 빚어질 때가 많습니다. 같은 말을 두고도 서로 '동상이몽'을 꾸는 탓인데, 예전에 나온 "의도 선언 vs. 행동 선언"도 연결될 수 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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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킴의 사이트에 있는 글을(글쓴이 존 킴) 요약해서 올립니다. RPG에 대한 흥미로운 이론적 분석이 다수 있으나, 불행히도 영어...;; 그래도 혹시 관심있으신 분을 위해 링크 올립니다.

http://www.darkshire.net/~jhkim/rpg/theory/

소개하는 글의 원문 링크는

http://www.darkshire.net/~jhkim/rpg/theory/fashions.html


글쓴이의 분석에 따르면 RPG 유행의 흐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1. 1975~1980: 탐험성 전투게임 (D&D 등)

2. 1978~1988: 문학적 단순성 (크툴루의 부름 등)

3. 1980~1988: 복잡한 룰을 통한 세계구현 (로울마스터 등)

4. 1984-1993: 만화 모티프와 단순한 룰 (마블 수퍼히어로 등)

5. 1986~현재: 보편성의 추구 (GURPS 등)

6. 1987~현재: 빠른 영화적 액션 (스타워즈 등)

7. 1991-현재: 어두운 분위기, 스토리중심 (WoD 등)

8. 1991~현재: 주사위 없는 환상세계 (Diceless Amber 등)

9. 2000~현재: 룰 중심성과 전술성의 부활 (D&D3, D20 등)


연표를 대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존 킴은 RPG 디자인 스타일의 유행에 대해 진화적 관점을 취하지 않습니다. 기술적으로는 물론 진화가 있었지만, 스타일의 면에서 보면 옛 유행이 부활하기도 하는 등 결코 직선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러한 스타일의 유행은 모험의 형태와 직결되기 때문에 플레이어의 게임 경험에 훨씬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스타일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단순하게 뽑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1975~1980: 탐험성 전투게임 (D&D 등)

- 모의전투

- 지도중심의 탐험

- 후기의 스토리중심 모험에 비해 훨씬 플레이어중심적

- 특히 출판 모듈을 사용할 경우 DM의 역할은 거의 주변적 (묘사와 몬스터 굴림으로 한정)


2. 1978~1988: 문학적 단순성 (크툴루의 부름 등)

- D&D에 대한 반발로 보다 문학적 접근

- 문학작품을 각색한 게임 다수

- 단순한 게임룰

- 장르에 맞춘 캐릭터 수치 (크툴루의 정신건강, 펜드래건의 미덕 등)

- 폭력보다는 배경과 역사에 중점

- 미스터리·수사 모험의 성격 다수


3. 1980~1988: 복잡한 룰을 통한 세계구현 (로울마스터 등)

- 완전성을 갖춘 룰

- 사실적, 자연주의적 경향

- 고립된 던전이 아닌 세계와 지역의 탐험


4. 1984-1993: 만화 모티프와 단순한 룰 (마블 수퍼히어로 등)

- 복잡한 룰에 대한 반발도 일부 작용

- 초보자에 대한 배려 (짧은 설명서, 컴포넌트 일체 제곰)

- 단순명쾌한 시스템

- 만화책 모티프의 활용

- 짧은 시간 동안 강세를 보였으나, 90년대에 들어 급격히 위축

=> 90년대는 보다 어둡고 복잡한 세계관이 대세가 됨


5. 1986~현재: 보편성의 추구 (GURPS 등)

'복잡한 룰을 통한 세계구현' 트렌드의 파생물
(룰이 많을수록 각 세계관마다 룰을 개발하려면 시간과 비용 소모)

-> 세계관과 룰을 따로 개발하는 경향

=> 많은 개발사가 룰만 따로 떼어서 보편적 룰로 출간


그중 GURPS의 특징이라면...

- 세계관에는 중점을 두지만, '문학적 단순성' 트렌드와 같은 장르구분은 별로 없음

- 실제 역사에 대한 조사에 초점 (GURPS: Japan이라든가...)

- 장르나 문학성보다 문제해결에 중점

- 포인트에 기반한 캐릭터 창조


6. 1987~현재: 빠른 영화적 액션 (스타워즈 등)

- 룰중심 시스템과 룰 단순화 시스템 사이의 일종의 과도기

- 게임의 룰과 체계를 혁신·심화시키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장르와 무드를 소개

- 화려하고 액션중심

- 영화적 모델: 장면단위의 극적 구성

- 전투는 밸런스나 전술보다 빠르고 극적인 전투가 목적

- 특정 액션 영화 장르를 따른 디자인


7. 1991-현재: 어두운 분위기, 스토리중심 (WoD 등)

- 다이스 풀(dice pool)을 확고하게 확립 -> 90년대의 지배적 형태 (대체 다이스 풀이 뭘까..)

- 주사위 자체를 무드적 장치로 활용 (뭔소리야...)

- 캐릭터 창조 과정의 일부로 흡혈귀 클랜 등 소속그룹을 정함.
-> 캐릭터 정체성을 확립, 룰체계상 의미를 가지는 경우도.

- 챕터나 장면별 분할. 그러나 중점은 액션이 아닌 무드.


8. 1991~현재: 주사위 없는 환상세계 (Diceless Amber 등)

- 무작위성의 배제

- 보다 단순한 룰, GM의 통제적 역할 확대

- 능력치의 수를 줄임

-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환상


9. 2000~현재: 룰 중심성과 전술성의 부활 (D&D3, D20 등)

- 80년대에 거의 명맥이 끊어진 전술적, 사실적 접근의 부활

- D&D 클래식에서처럼 밸런스, 전술적 깊이, 탐험

- 영화적 RPG, 스토리중심 RPG의 직선성과 밸런스 무시에 대한 반발


결론적으로...

좀더 단순화하면, 초기 D&D의 탐험적 모의전투 경향이 80년대엔 룰중심과 룰 단순성, 두 가지로 갈라지고, 90년대부터는 두가지가 융합되어 완전성을 갖춘 룰이 극적 구성을 통해 성공하는 경향입니다. 하지만 D&D 이후로 대세가 된 장면별, 혹은 챕터별 모험은 자유도에 대한 위축이 높고, D&D3의 성공과 함께 다시 예전처럼 지도 중심 모험이 부활하고 있습니다.

결국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자유도와 효과적인 모험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인데, 이 점에 대해선 앞으로도 많은 시도와 시행착오가 있을 듯 합니다.
2004/12/23 19:10 2004/12/23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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