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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 배경세계에 대한 생각

RPG에 드는 시간과 노력 비용 관련 글에 대한 세션 토론에서 나온 MMORPG 얘기를 보고 떠올랐는데, 팀 내에서 혹은 여러 팀이 하나의 배경세계를 공유해서 함께 변화시키고 살을 붙여가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사람이 같은 시간에 시간을 내기보다는 1:1이라든지 그때그때 모인 사람끼리 의기투합해서 노는 것이 편한 법이고, 플레이마다 변화시키고 심화한 설정을 다음 플레이에서 또 사용할 수 있다면 역동적인 느낌의 세계와 사건을 겪으면서도 시간대는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예를 들어 A, B, C, D, E라는 5명의 참여자가 같은 도시를 배경으로 캠페인을 하고 싶은데 전원이 맞는 시간이 없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A-B가 모였을 때든 A-B-C가 모였을 때든 시간 되는 사람끼리 플레이하고 플레이한 내용을 도시 설정에 반영한다면 이후에 D와 E라든지, B와 D라든지 누구든 같은 배경을 플레이할 때 지난번 플레이와는 또 달라진 도시를 배경으로 플레이하겠죠. 마찬가지로 거기서부터 또 플레이는 도시를 변화시킬 테고요.

물론 이건 그다지 새로운 생각은 아닙니다. 특히 공통 배경으로 소설을 쓰는 플레이는 온라인상에 상당히 흔하고, 저도 그런 소설 사이트에서 아사히라군의 소개로 RPG로 옮겨오기도 했었죠. 역시 다수의 사용자가 같은 배경에서 노는 MMORPG도 있고, RPG계에서도 이전에 동환님의 Timeline of Fairytales도 있었고, 당장 저만 해도 정기 캠페인 스타워즈: 공화국의 그림자와 외전격 비정기 플레이인 스타워즈: 콘체르토가 같은 배경을 공유했었고요.

다만, 온라인 소설이든 MMORPG든 RPG계의 예이든 한계는 있었다고 봅니다. 소설 쪽은 제가 참여해본 곳에서는 정말로 역동적인 세계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어요. 어느 한 사람이 배경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데는 아무래도 위험부담이 따르고 그런 것을 규율할 규칙도 없다 보니 각 소설은 세계 자체를 변화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각자의 로망 속에 따로 논다는 인상이었습니다.  MMORPG 역시 공존하며 놀 수 있었지만 역시 사용자가 하는 행동이 세계에 의미있는 결과로 나타나지는 않았고, 그 속에 정말 의미있는 영향을 미치려면 왠만한 시간이나 노력으로는 어렵겠더군요.

RPG계 쪽에서 제가 본 공유 세계관의 어려움이라면 역시 진행자에게 부담이 크다는 점입니다. 전통적으로 진행자의 서술 범위가 배경 세계이다 보니 그런 세계의 변화를 결정하고 표현하는 것은 진행자의 몫이 되었고, ToF도 두 스타워즈 캠페인도 진행자가 붙어있어야 하니 시간대의 유연성이라는 장점에도 한계가 있었죠. 한편으로는 진행자가 궁극적으로 세계의 관리자이며 통제자라는 점은 진행자에게 창의적 권한이면서 동시에 부담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공유 배경세계는 훨씬 권한이 분산된 형태로서, 위에서 예를 들었듯 한 사람의 진행자가 플레이에 늘 참여할 것을 요구하지 않고 참여자 중 누구나 플레이 내용에 따라 배경을 변화시킬 권한이 있는 체계입니다. 플레이 때마다 진행자가 같을 필요도 없고, 심지어는 플레이마다 규칙이 같은 필요도 없습니다. 또 플레이 때마다 같은 인물을 잡을 필요도 없고, 심지어는 좀 고난이도로 간다면 같은 시간대일 필요도 없겠죠.

물론 중앙 통제를 포기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움도 따릅니다. 참여자가 모두 함께 모이는 것이 아니니 뭔가 새로운 변화를 추가하기 전에 합의를 한다는 안전망도 없어지고요. 저는 성질이 나빠서 제가 납득할 수 없는 변화가 세계에 일어나면 그걸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좀 자신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도 같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요.

그런 면에서는 거부권이라든지 하는 간단한 규칙이 있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 세계에서의 개연성의 범위 같은 것을 원칙으로 만들어 놓고 그때그때 의논해서 추가할 수도 있을 테고요. 결국 무엇이든 감각이 맞고 협조가 잘 되는 사람끼리 하는 것이 가장 즐겁다는 기본 원칙은 변함없을 테지만요.

어쨌든 이런 식으로 참여자 구성에 상관없이 플레이가 세계를 변화시키고, 또 그 변화한 세계는 새로운 플레이의 틀이 되면 세계의 역동성과 플레이의 유연성을 함께 느끼는 놀이를 하면 RPG의 비용을 줄이고 효용을 늘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배경의 변화를 규율하는 규칙이나 원칙, 그리고 변화를 기록하는 체계를 잘 잡으면 보이지 않는 동안에도 변해가는 세계, 언제든 사람이 둘 이상만 모이면 할 수 있는 플레이를 즐길 수 있겠지요.

RPG의 비효율성?

요즘에는 RPG는 꽤나 노력이 드는 취미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시작만 하려고 해도 최소한 규칙을 익히고 인물을 만들어야 하고, 일단 시작하면 실제로 플레이에 나가고 참가 혹은 진행 (특히 진행)을 하는 일련의 과정이 말이지요. 물론 잘 되면 그만큼 돌아오는 것도 많지만, 좋은 결과를 내려면 추가로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조율하고 인간관계를 관리하는 노력도 듭니다.

RPG가 소수 취미인 것도 이전에 종종 지적이 있었듯 이러한 비용 투자가 작용하겠지요. 그런 시간과 노력 비용을 정당화할 만큼 결과물의 효용을 높게 느끼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소수이니까요.

느끼는 결과물의 효용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RPG와 다른 놀이의 상대적 효율성도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전투의 게임적 재미가 가장 크다면 그쪽은 대개 컴퓨터 (콘솔 포함) 게임이 더 효율적입니다. 이것저것 계산할 것 없이 컴퓨터가 모든 것을 자동으로 처리해 주고, 점점 휘황해지는 그래픽과 음악도 있으니까요.

단순히 친구끼리 같이 웃고 떠드는 재미가 가장 크다면 이 목적에도 훨씬 효율적인 활동은 많이 있습니다. 수다를 떨고 논다든지, 보드게임이나 카드게임을 한다든지. 역시 노력은 덜 들면서 사교적 즐거움이라는 효용은 제공하지요. 보드게임과 카드게임은 사교의 즐거움과 함께 머리를 쓰는 재미도 제공하고요.

잘 만든 이야기를 즐기는 것이 RPG에서 느끼는 최대의 재미라고 한다면 이 분야에서도 RPG는 반드시 가장 효율적인 활동은 아닙니다. 일단 비용 면에서는 위에 얘기한 다양한 노력이 들어가고, 또 효용 면에서도 RPG인은 대개 전문 작가가 아닌 만큼 책, 컴퓨터 게임, 영화만큼 개연성이 있고 이야기가 재미있지는 않은 일이 많습니다.

개인적 창의성을 발산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RPG에서 느끼는 최고의 재미라고 한다면 소설을 쓰는 것이 RPG보다 효율적이겠지요. 규칙을 익히고 다른 사람과 의견을 조율하고, 정기적으로 같은 시간에 플레이를 하는 노력이 들지 않으니까요.

결국 위의 재미 중 어느 한 가지, 혹은 한두 가지만에 효용을 느끼는 사람은 RPG라는 활동이 비효율적이라고 느끼고 RPG에서 빠져나가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RPG의 비용이 효용에 비해 너무 크다고 느끼지 않고 RPG를 하는 인구는 어떤 효용을 찾는 것일까요? 즉, RPG라는 활동이 다른 활동에 비해 우위가 있는 것은 어떤 면에서일까요?

그것은 아무래도 위에서 열거한 재미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가 아닐까 합니다.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인물을 통해 함께 만들어가면서 게임적 재미도 느낄 수 있다는 점이겠지요. 노력이나 역량에 따라서는 상당히 수준이 있는 결과물도 낼 수 있을 테고요.

이 모든 것을 함께 할 수 있는 놀이가 따로 없기에 RPG는 그 외견적 비효율성에도 불구하고 존속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효용을 모두 즐기려면 다른 놀이에 비해 노력이 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제작자가 이미 만들어놓은 시나리오나 그래픽은 컴퓨터 게임을 편하게 하지만 그만큼 제약 또한 되니까요.

한편으로는 이러한 재미를 한꺼번에 즐길 필요를 느끼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기에 RPG는 소수 취미라는 생각도 듭니다. RPG가 제공할 수 있는 재미 중 어느 한두 가지만 즐기려면 다른 활동을 즐기는 게 더 효율적인 만큼, 굳이 이런 ‘비효율적인’ 활동을 계속하는 것은 여러 가지 재미를 한꺼번에 즐기려는 소수뿐이겠지요.

그래서 RPG는 그 속성상 노력이 안 들기도, 그리고 그다지 대중적인 취미가 되기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가장 종합적인 놀이라는 바로 그 강점 때문에.

RPG와 소설

저는 RPG, 특히 ORPG를 하다 보면 소설 쓸 때와 비슷하게 머리를 굴리게 되곤 합니다. 묘사, 상황 연출, 인물 표현 같은 면에서 말이죠. 처음부터 끝까지 글 하나를 다 쓰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상황에 반응해서 약간씩, 그리고 자신이 서술권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만 쓴다는 점이 다르지만요. (그래서 진행에 비해 서술권 범위가 좁은 참가를 답답해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RPG를 할 때면 실시간 협동 소설 쓰기 같다는 느낌도 꽤 받습니다.

RPG를 소설처럼 생각해서인지 실제 소설도 RPG, 특히 캠페인에 많이 사용하는 편입니다. 특히 스타워즈: 공화국의 그림자 캠페인을 하면서는 세션 중에 시간 잡아먹지 않게 조연들만의 사정이나 행동은 소설로 많이 빼냈죠. 그렇게 하면 세션이 조연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으면서도 참가자가 원하면 조연에 대해 더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전체 이야기도 더 풍부해지는 느낌이고요.

비동시성 플레이에 관심이 가는 것도 어쩌면 제 진정한 취미는 RPG라기보다는 소설이라는 점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RPG 역시 알게모르게 소설로 인식하고 있으니) 동시성 플레이를 할 때 나오는 ‘퇴고 안 된 실시간 소설’보다는 좀 더 잘 다듬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고, 한편으로는 규칙 없이 쓰는 공동 창작 소설보다는 서술권 규율이 잘 되어 있어서 따로 놀지 않고 공동 참작물답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보입니다. 반면 동시성 플레이의 생동감과 사회성은 덜해서 쉽게 질리고, 따로 규칙을 관리하는 수단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 단점이겠지요.

소설이 나름 취미이기는 하지만 사실 혼자 생각해서 쓰는 소설보다는 RPG, 팬픽 하는 식으로 타인과 공유하는 로망에 대해 상상을 펼치는 편을 좋아합니다. 스스로 생각해낸 인물들과 상황을 쓴 결과물은 너무 자기도취적으로 흘러서 썩 좋아하지 않죠. 그보다는 타인의 로망에 다시 제 로망을 반영하는 편이 저 자신만의 좁은 로망을 벗어나는 의외성이 있어서 재밌어하는 편입니다.

요즘엔 RPG도 한동안 안해서 좀 시들하기는 하지만, 타인의 극적 욕구에 제가 바라는 것을 투영시킨,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접점에서 나오는 창의성은 어떤 형태로든 쭉 제 취미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RPG이든, 게시판이나 위키 플레이이든, 팬픽이든. 그래서 제게 언제나 창작이란 개인적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일지도요.

비용과 효용의 RPG

이전에 부담 없는 RPG를 다룬 글의 연장선으로 생각해보고 싶은 문제는 규칙, 배경 등의 결정에 따르는 비용과 효용의 대비입니다. 결국 어떤 결정이든 따르는 비용과 생기는 효용이 있게 마련인데, 어떤 결정을 내리면 효율을 극대화하고 비용을 줄일 수 있을지 생각하면 좀 더 적은 시간과 노력으로 RPG를 즐길 수 있을 테니까요.

물론 이것은 일률적인 결정은 아닙니다. 같은 결정이라도 사람마다 효용과 때에 따라서는 비용도 다르니까요. 예를 들어 저는 정치, 군사, 법조물을 좋아하므로 그런 내용은 저에게 효용이 높은 반면, 정치물, 군사물, 법조물을 싫어하는 사람은 같은 캠페인도 효용이 낮습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D&D를 모르므로 D&D를 사용하는 결정이라면 일단 배우는 노력과 시간이라는 비용이 들어가는 반면, D&D를 이미 잘 아는 사람은 D&D를 사용하는 비용이 훨씬 적습니다.

승한님의 뉴 필라델피아 단기 캠페인 종영 글을 보고 새삼 생각한 것이 같은 결정이라도 사람마다 비용과 효용이 크게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글 끝에서 승한님은 트랜스휴먼 스페이스 (Transhuman Space) 배경만의 특징을 규칙으로 살리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는데, 그걸 보고 저와는 사뭇 다른 비용과 효용 균형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화해서 생각해 보면 승한님에게 THS의 특징적인 세부사항을 자세히 표현하는 효용은 약 40,  드는 시간과 노력 비용은 20이라면 제게는 그런 자세한 표현의 효용은 20, 시간과 노력 비용은 겁스를 잘 모르므로 60쯤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같은 결정이지만 승한님에게는 가치가 있는 반면 제게는 가치가 없는 투자라고 할 수 있죠.

반면, 승한님에게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으로 하는 인물 중심 표현의 효용이 40, 드는 비용이 15라고 한다면 제게는 효용은 70, 비용은 10쯤 되는 결정입니다. 그래서 겁스와 안방극장 대모험 사이의 결정이 승한님에게 좀 더 비등하다면 저에게는 꽤 쉬운 선택이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비용과 효용을 생각하면 서로 다른 것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얼굴 붉히는 일도 줄어들지 않을까 합니다.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무시하거나 내 방법이 상대에게도 좋다고 생각해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내 상황에는 이것이 더 합리적인 결정일 뿐이니까요.

물론 상대에게 특정 결정이 비용이 덜 드는 이유 (‘겁스는 그렇게 어렵지 않아!’), 혹은 상대에게 효용이 있을 만한 이유 (‘안방극장 대모험은 인물에게 확 초점이 잡힌다고!’)를 제시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으며, 그렇게 하면서 비용과 효용의 저울질도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단 그런 판단을 염두에 두고 있으면 취향과 취향의 싸움 대신 자신에게, 그리고 상대에게 가장 효율적인 판단을 내리는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요.

놀이문화와 남녀, 불편한 소재에 대한 생각

주의: 말 그대로 ‘불편한 소재’를 다루는 글이므로 폭력, 외설, 성적 폭력 등을 언급합니다. 그런 내용이 많이 불편하신 분들은 읽지 말아주시길.

미국 쪽 RPG 게시판 돌아다니다 보면 홍일점 여자 참가자에게는 상담 한 마디 없이 그 참가자의 여자 PC가 강간을 당했다… 같은 호러스러운 이야기를 심심찮게 보게 됩니다. 심지어는 일행의 다른 PC들에게 윤간을 당했다는 얘기도 있지요. 플레이 내에 있는 일은 물론 진짜가 아니지만, 누군가의 비유마따나 자기 PC를 죽인다고 선언하는 참가자가 총을 차고 있다고 상상하면 대충 그런 상황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다행히도 그렇게 심한 상황은 없었습니다만 (약간 비슷한 일은 한두 번 있었지만), 플레이 내에, 그리고 플레이 주변부에서의 불편한 소재는 ‘저런 갈아마실 놈들!’ 소리가 절로 나오는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어도 생각해볼 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건 반드시 남녀만의 문제도 아니고 결국은 개개인의 감수성 문제이기도 합니다. 다만, 남자가 다수인 취미에 있다 보니까 남녀차 쪽으로 좀 더 생각할 기회가 있었던 것이겠죠.

플레이 중, 혹은 플레이 후 잡담을 하다 보면 제게는 불편한 얘기가 꽤 자연스럽게 나오고는 합니다. 저도 음담패설에는 일가견이 있는지라 왠만한 얘기에는 기죽는 일이 없는데, 강간이나 유아애 쪽으로 농담이 나오기 시작하면 곤혹스럽더군요. 재밌게 하고 있는 얘기를 저 하나 때문에 끊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계속 듣고 있기는 좀 그렇고. 보통 생각하는 동안에 말이 지나가니까 큰 문제는 되지 않았지만, 찝찝한 기분은 종종 남았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RPG가 남자 다수 취미인 건 그런 문화적 차이도 한 원인이 아닌가 합니다. 여자들이 강공이니 수니 하고 야오이 얘기를 하면 남자들이 거리감을 느낄 수 있듯, 남자들이 세 살짜리 여자애를 어떻게 하네 조교가 어떻네 사육이 어떻네 같은 이야기를 하면 여자들도 여긴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구나 하고 느낄 수 있겠죠.

결국 뭐, 남자는 짐승이다 같은 식상한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남자가 짐승이라면 여자도 짐승이겠죠. (암수가 다를 뿐 (?)) 성적 대상화야 어느 한쪽 성만의 이야기도 아니고요. 다만, 이곳에서 내가 ‘주체’인가 ‘객체’인가에 따라 여기가 자신에게 어울리는 자리인가 하는 느낌이 달라진다는 것, 즉 남자 혹은 여자가 환영받는 분위기인지 하는 차이일 뿐입니다. 별로 환영받는 기분이 아니라면 좀 더 자신이 환영받을 자리로 옮기고 싶은 마음이야 이심전심이죠.

물론 위에도 얘기했지만 이것은 비단 남녀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어떤 여자 혹은 남자에게는 아주 재밌는 얘기도 다른 여자 혹은 남자에게는 찝찝한 소재일 수 있습니다. 성별과 무관한 경험이나 개인적 사정으로 객관적으로는 별로 불편하지 않은 소재가 불편해질 수도 있고요.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얼마 안 된 사람이 뱀파이어 LARP에서 자기 사이어가 죽는 내용에 충격먹은 일화가 그런 예겠죠.

그래서 자신에게 불편한 내용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불편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타인에게 지나친 노력이나 희생을 요구한다면 (야오이 없이는 플레이 내용이 확 달라진다든지) 스스로 떠나는 것이 낫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신도 있기 편한 자리가 되도록, 그리고 남들도 어떤 이야기는 피하는 게 좋고 어떤 이야기는 자유롭게 해도 다들 편한지 알 수 있게 개인적 경계와 감수성의 한계를 공지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물론 그렇게 알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보통 남에게 싫은 이야기를 하는 건 거부감이 들게 마련이니까요. 그리고 잠시 남녀차로 돌아가자면, 여자들은 자기 의견이나 호오를 확실하게 밝히는 것이 문화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대가 세느니, 잘난 척 하느니 하는 소리를 들으니까요. (제 생각에는 여자들이 확실한 의사표시를 못하는 게 남녀 간 오해에 약 50%의 원인 제공을 합니다.) 게다가 남자란 존재는 종종 작살나게 눈치가 없어서(..) 아주 대놓고 얘기하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하는 일도 잦습니다. (이것이 나머지 50%!)


자신에게 무엇이 불편한지 얘기하기 어려운 만큼 그냥 말 안하고 참거나 슬그머니 떠나버리는 식의 회피 행동이 더 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것은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감정이란 참으면 되는 것이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사실 감정이란 증기와 같아서 덮어놓는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라 은근히 새어나오거나, 아니면 참고 참았던 것이 한꺼번에 폭발하게 마련이지요. 그런 일이 없으려면 자신을 불편하거나 소외감을 느끼게 만든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이런 소재는 피해달라고 공지를 확실하게 하는 것은 역으로 타인의 마음도 더 편하게 해줄 수 있습니다. 무엇을 피해야 하고 무엇은 표현해도 좋을지 혼자 짐작하는 대신 정확하게 알 수 있고, 그런 만큼 피하지 않아도 되는 소재에 대해서는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러다가 혹시 지나쳐서 남의 심적 경계를 침범하는 게 아닐까 노심초사하는 대신 저쪽에서 그럴 때는 확실히 알려줄 것이라고 신뢰할 수 있다면 더욱 마음은 편해집니다. 비유하자면 어떤 행동이 범죄인지 명문의 법으로 정하는 것이 자유로운 사회의 필수조건인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또한, 자기 마음이 불편하다고 알리는 것이 꼭 싫은 소리일 필요도 없습니다. 예의바르게 자기 입장을 알리고, 타인에게 악의가 있었다고 확신하고 정죄하는 태도를 취하는 대신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태도로 접근할 수 있지요. (이건 사실 모든 어려운 대화에 적용할 수 있는 얘기기도 합니다.) 악의가 없는 건 알지만 그 얘기 때문에 내 기분은 이러한데, 그런 소재는 좀 피해줬으면 좋겠다든지 하는 식으로 예의바르게 얘기해도 기분나빠한다면 역시 그 자리는 미련없이 떠나는 게 낫겠죠.

정리하자면 RPG처럼 사람이 같이 모인 자리에서는 사람이 다 다른 만큼 본의아니게 남의 감수성을 침해할 수 있습니다. 남자가 다수인 취미인지라 그게 남녀차로 가면 더욱 심해지기도 하고요. 그래서 누구든지 자기 마음이 불편한 얘기가 플레이 중이든 플레이 전후이든 나오면 그 사실을 정중하게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과 주변 사람이 모두 마음이 편해지도록. RPG는 다같이 하는 놀이이니까요.

게리 가이각스의 세계

스티브 잭슨씨가 게리 가이각스에 대한 최고의 추모문이라고 했다는 글을 승한님의 제보로 번역해 봅니다. 원문은 Geek Love (영문, 회원 등록 요구). 글에서 하는 주장이 확인할 수 있는 성격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흥미롭기는 하더군요.

기크 (geek)란 대체로 과학과 컴퓨터에 관심이 많고 SF와 판타지, 만화책 등에 열성적인, 내성적이고 별로 인기 없는 (보통은) 남자… 정도의 의미죠.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는 오타쿠 정도? 오타쿠에 똑똑하다는 뜻은 보통 안 들어가는 것 같지만요.

어쨌든 높은 학업 성취도와 장르 문학, 컴퓨터 게임과 애니 등 흔히 기크의 특징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문화적 태도가 우리는 미국과 좀 달라서 원문에 비해 기크란 말의 사용은 줄였습니다.

게리 가이각스가 지난 주에 사망했는데도 우주는 무너지지 않았다. 창조주인 그가 갔는데도 멀쩡하다니 조금은 놀라운 일이다.

빅 뱅으로 생긴 우주 얘기를 하는 건 아니다. 그거야 비행 스파게티 괴물의 소행인 건 누구나 아니까. 하지만 가이각스씨는 던젼스 & 드래곤스 게임을 공동 제작한 장본인이며, 역할놀이와 정다면체 주사위의 기반 위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사회적, 지적 구조를 만들어냈다.

D&D는 워게임과 하워드의 코난, 판타지 작가 잭 밴스의 마법 주문 한둘, 불핀치의 신화론 살짝, 성경 약간과 톨킨을 잔뜩 섞은 놀라운 합성물이었다.

가이각스씨의 진정한 천재성은 보드게임과는 달리 플레이어가 게임 내의 인물과 동화할 수 있게 했다는 점이다. 주사위를 굴리면 사용자는 힘이나 지능 같은 개인적 능력을 갖춘 인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또한 ‘질서 선’이나 ‘혼돈 악’ 등 도덕적 성향도 고를 수 있었고, 칼도 살 수 있었고, 용과 싸울 수도 있었다.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필자도 D&D를 좀 했었다. 중학교 때, 그리고 나중에도. 질서 선 성향의 팔라딘이었고, 불타는 검을 들고 다녔다. 그걸 한다고 여자에게, 아니 누구에게도 인기인이 되지는 않았다. 기하학을 좋아하는 점이나 스타워즈 대사를 다 외우고 다닌 것도 인기에는 도움이 안 됐고.

그러나 그러한 류의 능력 때문에 필자는 결국 성공할 수 있었다. 재산이나 권력, 특별한 인기가 있는 건 아니지만, 세상의 주류에 있다는 뜻이다. 필자가 아는 허구와 기술에 대한 지식은 이제 누구든 알아야 할 것이 되었으니까.

우리는 게리 가이각스의 세계 속에 살아가고 있다. 지상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들은 마법사와 마법 검을 다룬 판타지 책이다. 가장 많이 보는 영화는 수퍼히어로 만화책이 나오는 것. 가장 인기있는 TV 프로는 정교한 RPG처럼 복잡하고 복선이 가득한 SF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걸친 수학적 게임과 연관이 깊다. 그리고 여러분 시청자도 여기 끼려면 아이폰에 오디오 파일을 내려받고 고래의 음성 주파를 이용해 거꾸로 처리한 후 그 결과를 야후 그룹에 방송할 수 있을 만한 기술적 지식이 필요하다.

책이 수백만 부씩 팔리고 학부모는 D&D와 사탄 숭배의 연관성을 걱정하던 전성기에도 가이각스씨의 창조물은 주류는 아니었다. 애들이 또래와 어울리는 대신 지하실에 틀어박혀서 하는 놀이라는 인상이 강했으니까. (물론 하려면 적어도 세 사람은 있어야 했으니까–모험가 둘과 던젼 마스터 하나–사회적인 놀이이긴 했다. 한심할지는 몰라도 사회적이었다.) 그러나 D&D는 머리 좋고 내성적인 많은 아이들에게 소중한 가르침을 주었다.

기크 (geek)는 규칙성을 좋아한다.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법칙을 찾아내는 것을 즐긴다. 그러나 정상인은 그런 규칙에서 늘 벗어나서 행동한다. 사람이란 혼란스럽고 예측하기 어렵다. D&D 캐릭터 시트 같은 것을 만들어보기 전까지는. 가상의 인물을 주사위, 연필과 종이로 제조한 수로 분석해내면 이것을 실생활에도 적용할 수 있다.

우리에게 캐릭터 시트와 가상 세계에서 하는 모험을 위한 규칙은 사람에 대한 안내서와 같았다. 삶은 거대하고 끝나지 않는 RPG 캠페인처럼 생각할 수 있었다.

이상하게 보지 말아주길. 필자가 팰러딘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매트릭스 속에 사는 게 아닌 것도 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언제나 역할놀이를 하고 있다는 깨달음은 세계에 규칙과 질서를 부여했다.

우리들은 얼굴 표정이나 무심한 한 마디의 숨은 의미를 직관으로 알아내는 건 잘 못하지만, 행동의 규칙성을 알아내면 인간관계란 분석할 수 있는 정보가 된다. 주변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처리해낼 수 있다. 신체 언어와 어색한 침묵을 관찰해서 우리는 터미네이터 TV 프로에 나오는 시간 여행을 원형 양자 중력(주:Loop quantum gravity의 번역. 우리말로 loop을 이때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제 맘대로..)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분석에 주변 사람이 지루해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낼 수 있다. 어디서 들은 얘기지 경험담은 아니다. 정말로.

가이각스씨의 게임은 기크들이 햇빛에 눈을 깜박이며 던젼에서 나와 전자기기 혁명을 만들어낼 수 있게 해주었다.

D&D는 초창기의 컴퓨터 게임, 마법과 검을 사용하는 던젼 탐험물인 ‘어드벤쳐’의 모태가 되었다. 1970년대 후반에 D&D와 어드벤쳐를 기반으로 첫 다중 사용자 온라인 판타지 세계가 탄생했다. 당시에는 MUD (multi-user dungeon)이라고 한 이 구조물은 주로 MIT 학생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가이각스씨가 소개한 가상 정체성의 제작을 요구한 점은 마찬가지였다.

오늘날에는 수백만이 게리 가이각스의 노예가 되었다. 에버퀘스트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세컨드 라이프 등을 통해. (이들 서버의 대규모 다중 접속은 오늘날 구글 등의 원동력인 거대한 서버 군집의 개발을 촉진하기도 했다.)

물론 그건 게임 문화 얘기다. 1974년 D&D가 생겼을 때보다는 더 폭이 넓어졌고 산업으로서는 훨씬 더 수익성이 있지만–1년에 약 4백억 달러–여전히 좀 샌님 같긴 하지. 하지만 드래곤 잡는 부분을 빼면 훨씬 주류 문화에 가까운 것이 보인다. 가상 아바타의 거대한 우주, 페이스북 (Facebook)이.

페이스북과 다른 사회적 네트워크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 것을 요구한다. 실제 사용자가 기반이기는 하지만 별개의 개체인 건 변함없다. 사용자의 인물은 다른 인물과 관계를 쌓아간다. D&D와 마찬가지로 경쟁적인 게임은 아니다. 이길 방법은 없다. 그저 플레이할 뿐.

가이각스씨의 1970년대 던젼에서 시작한 진화는 이보다도 훨씬 폭이 넓다. 모든 이메일 로그인, 모든 채팅 아이디, 플리커 (Flickr)의 모든 공개 사진집, 모든 블로그 댓글 가명은 새롭게 만든 정체성, 실생활 속에 노는 가상의 인물이다.

게리 가이각스에게 우리는 작별을 고하지 않아도 된다. 그는 우리의 오늘을 만들었기에. 내가 전술적 선택을 할 때마다 (아내에게 이번 여름에는 ‘다크 나이트’ 대신 ‘아이언 맨’을 보자고 제안할 때처럼) 난 경험치를 세고, 민첩성이 충분하기를 바라며 주사위를 굴린다. 그때마다 가이각스씨는 내 곁에 있다. 지금보다 문명화된 시대의 세련된 무기였던 단순한 게임을 든 채, 푸르게 빛나는 신비한 환영이 되어.

참고로 방금 그건 스타워즈 얘기였다. 멋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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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그런 의미에서 음성 편집 프로그램으로 자르고 페이드 아웃 효과를 적용한 스타워즈 엔딩곡으로 끝내도록 하죠(…))

이 결투를 RPG로 한다면?

경고: 다음에 나오는 동영상은 리암 니슨이 주연한 1995년 영화 롭 로이 (Rob Roy)의 절정 장면입니다. 영화가 어떻게 끝나는지 알고 싶지 않은 분은 글을 펼치지 말아주세요.

[#M_미리니름! 스포일러! 네타바레!|미리니름! 스포일러! 네타바레! 닫기!|
다음은 영화 롭 로이의 결정적인 결투 장면입니다. 로버트 로이 멕그레거의 친구 알랜 맥도널드를 살해하고 아내 메리 멕그레거를 겁탈한 아치볼드 커닝햄에게 멕그레거가 결투를 신청한 상황이죠. 본격적인 결투는 약 2분 50초 지점부터 볼 수 있고, 마지막 반전은 7분 지점 정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

나오는 대사 중 중요한 것을 간단하게 번역하면…

2분 10초 지점

심판: 여러분은 명예의 문제로 이 자리에 섰소이다. 명예롭게 해결해야 하오. 등뒤에서 찌르기, 칼 던지기, 지정한 무기 외의 무기 사용은 금지하오. 상대가 항복한다면…
멕그레거: 항복은 없소.
커닝햄: 받지도 않을 것이며.
심판: 이것들이 내 말을 씹어!! …무기를 들고 내 신호에 따라 시작하시오.

7분 지점

커닝햄: (멕그레거의 목에 칼을 대고) 항복은 하지도 받지도 않는댔지.

이런 식으로 한쪽이 일방적으로 깨지다가 회심의 일격으로 상황을 뒤집는 싸움을 의도적이든,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든 RPG 규칙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식이 될까요? 제가 익숙한 것들로 예를 들어보자면…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 판정에 걸린 것은 ‘커닝햄이 죽느냐, 멕그레거가 죽느냐.’ 참가자가 주인공 죽여먹을 각오 하고 되도록 작은 주사위만 쓰면서 부상이란 부상은 다 받고 엉망으로 깨지다가, 마지막에 남겨둔 큰 주사위로 받아치고 회심의 일격!

다만, 남은 주사위는 다 아니까 진행자랑 어느 정도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어야겠죠. 진행자 역시 큰 주사위를 아낀다면 멕그레거가 나중에 갑자기 큰 주사위가 연이어 터지지 않는 한 연출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멕그레거 쪽에서 굴릴 수 있는 능력치에는 ‘커닝햄에 대한 증오 2d10’이라든지 ‘실전에서 단련한 클레이모어 실력 1d8’ 등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외에 인간관계도 굴릴 게 많겠죠. 커닝햄이 적이니까 ‘커닝햄 3d4’라든지, 여기서 죽으면 아내를 못 볼 테니까 ‘사랑하는 아내 3d8’ 같은 것도 굴릴 수 있을 테고요.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 이쪽은 포도원의 개들보다 훨씬 우연의 역할이 크니까 주인공의 생명은 아마 걸기 어려울 테고, 그 대신 ‘멕그레거가 몬트로즈에게 검술로 이기느냐’ 같은 것을 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면 검술로는 진다고 해도 결정적인 순간에 저렇게 기사회생하는 서술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폴라리스 (Polaris): 롭 로이는 해피엔딩이라 살짝 안 어울리긴 하지만 서술 교섭으로 하기 괜찮은 판정이긴 하죠. 마음이 ‘그리고 멕그레거는 커닝햄을 죽이고야 말았다!’ 하고 서술한다면 후회가 ‘그러나 그러려면 커닝햄에게 일방적으로 져야 한다.’ 하면 마음이 ‘그러나 그러려면 아르가일 공작과 몬트로즈의 내기로 빚을 탕감받아야 한다.’ 그리고 후회는 ‘일은 그리 되었더라.’ 하고 끝내는 식.

또 어떤 규칙상 표현이 될까요? 멕그레거의 진을 완전히 빼놓고도 숨소리조차 흐트러지지 않은 커닝햄의 절제된 검술이라든지 두 사람의 힘과 체격 차이 등 이것저것 재밌는 요소가 많이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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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 안하기

금요일 밤은 폴라리스를 플레이할 예정이었고 참가자도 모두 왔습니다만, 플레이는 하지 않았습니다. 다들 집중이 안 되고 참가자 한 분의 인터넷 불안정 등 악재가 겹쳤거든요. 대신 아주 재밌게 놀았습니다. 세상 사는 얘기, 타로점, 고민 상담, 실없는 농담 등등. (실없는 농담은 승한님이 제일 많이 하셨다는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

플레이는 참여자 모두의 집중력과 의욕을 먹고 사는 괴물 활동입니다. 모두 재미있는 플레이를 바라는 점은 같다 해도 집중이 잘 안 되는 날도 어쩔 수 없이 있습니다. 그럴 때 억지로 플레이하면 결과도 좋지 않고, 기분도 안 좋아진다는 게 제 경험입니다. 그래서 저와 승한님이 주도해서 플레이는 쉬자고 했고, 결과적으로 더 재밌는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플레이를 할까 말까 하는 결정은 상황에 크게 의존하고, 쉬는 일이 너무 잦으면 플레이가 흐지부지되기 쉽겠지요. 하지만 정말 오늘은 제대로 플레이할 수 없겠다 하는 판단이 서면 다른 걸 하고 노는 게 더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팀원이 흩어지지 않고 같이 논다면 팀의 결속력을 다지는 효과도 있겠죠.

이번 폴라리스 플레이는 그런 여러 가지 이유로 ‘안하길 제일 잘한 플레이’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즐거운 시간 함께해주신 세 분께 감사드리고, 일요일 밤에 다시 뵙겠습니다. 이번에는 ‘하길 정말 잘한 플레이’로 만들어보도록 하죠!

부담 없는 RPG를 위하여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 마태복음 6:28~9

이전에 우리의 미래에 RPG는 있는지 하는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 이후 취직이나 진학 등의 이유로 RPG를 중지하거나 줄이는 분을 주변에서 심심찮게 봤습니다. 업무와 가족에 대한 책임 등이 무거워지면서 앞으로 그런 시간적 부담은 심해지기만 하겠죠. 그래서 RPG를 부담 없이, 그러면서도 알차게 즐기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1. 진행자의 부담을 줄인다

RPG에서 가장 부담이 되는 부분은 아마도 진행일 것입니다. 특히 진행자가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는 진행자 중심성이 클수록 말이죠. 이러한 부담은 진행자 수와 플레이 기회가 적은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난 진행할 실력이 안 돼’라는 생각으로 진행을 시작하지 않는 RPG인이 많고, 또 진행을 해봤더라도 충분히 준비하고 신경쓸 여유가 없을 때는 기피하게 됩니다.

1.1. 준비 작업

진행자의 부담을 더는 첫 번째 방법은 세계 설정, 시나리오와 인물 제작 등 준비의 부담을 줄이는 것입니다. 이는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할 수 있는데, 하나는 작업을 참가자들이 분담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준비량을 축소하는 것이겠죠. 전자는 설정이나 시나리오 작업을 공동으로 하는 방법이고, 후자는 다양한 방법으로 세션에 필요한 준비량 자체를 줄이는 것입니다.

참가자들이 준비 작업을 분담하는 것은 이해하기 쉬운 개념이고 방법론을 일반화하기 어려우므로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이것이 시간적 부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인지는 의문입니다. 진행자의 부담이 줄기는 하지만 참가자의 부담은 상대적으로 늘고, 또 방법에 따라서는 의논과 조율에 많은 노력이 들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두 번째 방법, 즉 준비량 자체를 줄이는 방향이 근원적으로 준비의 부담을 줄이는 길이라고 봅니다. 이것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시간을 잡아먹는 작업별로 몇 가지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시나리오 부분에서는 시나리오가 필요없는 진행을 지원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 규칙에서 진행자는 첫 장면의 시작 부분만 준비하면 되고 그다음부터는 참가자의 장면 신청을 통해 서로 의논하고 발상을 주고받는 과정을 거쳐 장면을 구성합니다. 이건 규칙이라기보다는 어느 규칙에든 사용할 수 있는 기법에 가깝긴 하지만요.

역시 시나리오가 필요없는 진행을 지원하는 규칙으로는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의 ‘죄의 진행’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오만, 불의, 죄 하는 식으로 한 마을이 잘못된 경위와 정도를 정한 후, 각 주요 조연이 주인공인 신의 파수견들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그리고 파수견이 마을에 오지 않는다면 벌어질 귀결 등을 정해놓고 주인공을 그 마을에 진입시키는 것입니다.

이 죄의 진행은 극적 긴장이 팽팽한 상황에 주인공을 떨구어서 온갖 사건을 유도하면서도 사건의 경과를 미리 정할 필요는 없다는 점에서 적은 준비로 극적 재미와 시나리오 중심 진행보다 높은 자유도 등 고효율을 내는 방법이라고 봅니다. 역시 규칙과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는 기법이어서, 승한님의 M&M 캠페인에서도 이 방법을 이용하는 걸로 압니다.[footnote]로키는 지금 포도원의 개들 캠페인 돌리긴 하지만 게을러서 죄의 진행표마저 안 하고 있긴 합니..(자랑이다)[/footnote]

기법보다는 규칙으로 시나리오 없는 진행을 지원하는 예로는 폴라리스 (Polaris)가 있습니다. 폴라리스는 진행자 없이 주인공을 조종하고 편드는 ‘마음’과 주인공의 시련과 적수를 맡은 ‘후회’의 대립과 교섭을 통해 극을 끌어나갑니다. 따라서 시나리오가 필요없을 뿐만 아니라 시나리오를 만들 수도 없습니다. 폴라리스는 좀 있다 얘기할 진행자 없는 RPG의 예이기도 합니다.

인물 제작 부분에서도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을 이것저것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선 조연은 주인공처럼 완전히 만들지 않고 필요한 기능이나 눈에 띄는 부분만 대충 넣는 방법을 많은 진행자가 사용하지요. 포도원의 개들은 시트를 미리 무작위로 만들어 두었다가 조연이 판정에 참여하면 시트를 배정하는 방식으로 조연을 제작하는 수고를 덜고 있습니다.[footnote]이 방법은 조연이 주연에 비해 지나치게 강해지는 것도 방지하지요. 그래도 부상을 입힐 만한 수치는 또 나온다는 게 묘미. (흐흐)[/footnote]

또 떼로 덤비는 건달이라든지 하는 덜 중요한 조연은 간단한 제작 규칙을 사용하는 7번째 바다 (7th Sea) 같은 예도 있습니다. 아예 조연은 규칙상 수치 자체가 없어서 이름과 설정만 있으면 사용할 수 있는 규칙도 있지요. 안방극장 대모험, 폴라리스, 트롤베이브 (Trollbabe) 등이 그 예이지요. 이렇게 하면 준비 시간을 덜 뿐만 아니라 규칙 처리도 간략하게 할 수 있습니다.

세계 설정 부담을 더는 방법으로는 역시 대강의 설정만 만들어 놓거나 차용하고, 플레이해가면서 채워가는 것이 가장 좋지 않나 합니다. 저는 대강의 분위기만 있는 상태에서 세부적인 것은 그때그때 채워가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그 외에 화륜전설 (The Burning Wheel)의 인맥 규칙 하는 식으로 규칙을 통해 참가자가 직접 배경에 영향을 주는 것도 참가자에게 주도권을 주는 동시에 진행자의 설정 부담을 덜어주겠죠.

1.2. 세션 진행

준비 다음으로 진행자에게 부담이 되는 것이라면 세션 진행 그 자체겠죠. 세션 진행 부담을 더는 방법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는 크게 준비 작업과 진행 권한 분담이 있습니다. 준비에 대한 것은 위에서 다루었으니 여기서는 권한 분담 쪽을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권한 분담을 정형화하지 않아도 참가자의 제안과 의견을 활발하게 받는 의사소통을 통해 진행 권한을 분담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는 진행과 플레이 전반에 언제나 필요한 과정이기도 하지만, 잘 활용하면 권한 분담에도 도움이 됩니다. 진행자 혼자 진행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참가자도 진행에 대한 권리와 부담을 나눌 수 있으니까요.

다만, 의사소통만으로는 진행에 대한 부담을 완전히 덜기는 부족합니다. 무엇이든 의사소통으로 조정할
수는 있지만, 진행 중 의사소통의 필요성이란 해당 권한이 누구에게 있느냐 하는 일차적인 문제 이후의 얘기니까요. 어떤 극적 요소에 대한 최종 결정권이 있는 한 그 요소에 대한 부담 내지는 책임 역시 진행자의 몫입니다.

따라서, 보다 근본적으로 권한을 분담하는 방법은 권한을 규칙으로써 나누는 것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안방극장 대모험에서는 위에서 설명한 장면 신청 규칙 때문에 진행자가 다음 장면에 무엇을 할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제안을 던지거나 발상을 교환하는 의사소통은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또 규칙에서도 권장합니다만, 다음에 어떤 장면을 할까 생각해내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참가자의 권한이며 따라서 부담입니다.

진행 권한 분담의 다른 예로 폴라리스는 주인공, 주인공의 시련과 적, 정서적 관계에 있는 인물, 권위적 관계가 있는 인물 등으로 서술 권한을 분배하므로 진행자 없는 규칙으로 구분합니다. 진행자란 결국 특정 요소 (배경, 조연 등)에 대한 서술권을 분배받은 역할을 가리키는 말일 뿐이니까요. 따라서 진행 권한을 분배하기에 따라서는 진행자가 아예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진행자 없는 RPG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약간 더 다루겠습니다.

1.3. 팀 조직

진행자의 기본적 역할은 팀의 리더 역할까지 포함하지는 않습니다만, 진행자가 캠페인 기획자이자 리더가 되는 현상은 흔합니다. 이유야 여러 가지 생각할 수 있겠죠. 진행자가 보통 플레이에 가장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이니까 결정권도 크다든가, 일반적으로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유형이 진행자를 많이 하므로 자연스럽게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든가.

이런 부분에서 진행자가 부담을 느끼고 있다면 팀원들이 서로 의논해서 팀의 행정적 역할을 분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음주에 모두 모일 수 있나 전화로 확인하는 연락책이라든가, 캠페인 사이트 유지 담당이라든가, 각종 공고 담당이라든가. 어쨌든 진행자가 플레이 외에서까지 모든 것을 주도하는 것은 흔하긴 하되 필연은 아니고, 다같이 하는 놀이니까요.

1.4. 진행자 없는 RPG

지금까지 길게 다루었듯 전통적 진행자 역할에는 준비, 진행, 팀 관리 등 플레이 내외적으로 따라붙는 부담이 많습니다. 그러나 모든 RPG에 필연적으로 진행자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샤브 알-히리 바퀴벌레 (The Shab al-Hiri Roach), 폴라리스, 수정주의 역사 (Revisionist History) 등 진행자 없는 RPG도 꽤 있지요. 이러한 놀이에서는 플레이 내적으로는 권한과 부담이 비등비등하며, 플레이 외적으로도 ‘진행자니까’ 어느 한 사람에게 책임이 몰리는 대신 좀 더 다양한 주변 상황을 고려해서 책임을 분담할 수 있습니다.

2. 규칙에 대한 부담 줄이기

RPG에서 또 부담이 될 수 있는 부분이라면 규칙에 대한 부분입니다. 규칙을 배우고, 적용하고, 해석하는 작업 역시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 수 있으니까요. 이는 위에서 얘기한 준비나 진행의 어려움과도 무관하지 않지만, 규칙에 대한 특유한 내용도 있으므로 따로 떼어서 얘기하겠습니다.

2.1. 규칙 학습

규칙을 읽고 익히는 수고를 줄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단순한 경량 규칙을 익히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적은 수의 규칙을 익혀 폭넓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두 접근은 다 장단점이 있다고 봅니다.

경량 규칙은 일단 단일 규칙을 익히는 데 노력이 덜 든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필요한 만큼 규칙이 없다면 일단 효율이 떨어집니다. 이건 다른 것보다 규칙 선택의 문제이긴 하지만요. 예를 들어 고도의 전술적 전투나 낙상을 다루는 규칙이 필요한데 폴라리스나 안방극장 대모험을 선택하는 건 아무리 배울 때는 쉽다 해도 결국 비효율적이겠죠.

또한, 경량 규칙에 따라서는 다루는 극적 상황이 아주 좁은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폴라리스는 필연적으로 죽음이나 파멸로 끝나는 비극을 다루며, 샤브 알-히리 바퀴벌레는 허영과 권력의 부조리, 포도원의 개들은 심판과 그 심판에 대한 대가를 다룹니다. 따라서 다양한 플레이를 하고 싶으면 더 많은 수의 규칙을 익혀야 할 수도 있으므로 복잡한 규칙책 하나를 익히는 것보다 시간과 노력이 더 들 수도 있습니다.

적은 수의, 예를 들어 하나의 규칙을 익혀 폭넓게 사용하는 것은 겁스 (GURPS)와 같은 범용 규칙이나 d20 혹은 유니시스템 (Unisystem)처럼 다양한 장르 규칙의 기틀이 되는 규칙을 익히는 것을 가리킵니다.(주:반대로는 플레이하는 장르와 배경을 제약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건 RPG에 질리는 지름길이라는 전제 하에 일단 배제합니다. 물론 반론은 환영입니다.) 이러한 범용 혹은 준범용 규칙은 하나를 익혀서 그대로, 혹은 약간씩 변형을 가해서 다양한 장르와 배경에 적용한다는 점에서 효율적입니다.

반면 범용성이란 종종 불완전한 약속이라는 것도 염두에 둘 필요는 있습니다. 비록 모든 장르와 배경에 적용할 수 있다는 의미의 범용성을 갖추었다 해도 플레이 스타일까지 범용적이기는 어렵습니다. 겁스와 새비지 월드 (Savage Worlds), 트라이스탯 (Tri-Stat)이 모두 범용성을 표방하지만 기본 플레이 스타일은 사뭇 다르듯이요. 플레이 분위기는 규칙에 큰 영향을 받으므로 결국 규칙을 취사선택하거나 고치게 되고, 그렇게 걸러내고 고치는 부분이 많을 수록 시간과 노력도 더 들겠지요.

2.2. 규칙 적용과 해석

규칙의 적용과 해석에 대한 부담은 크게 주인공 제작과 플레이중 규칙 해석과 판정 문제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전자는 크게 단순한 규칙 사용, 예시와 템플릿 제공, 그리고 낮은 파워 레벨 제작 등이 부담을 더는 방법이 되리라고 봅니다.(주:낮은 파워 레벨에 대한 것은 아사히라군에게 힌트를 얻었습니다.) 해석과 판정 부담을 더는 방법으로는 단순한 규칙 사용, 규칙의 선택적 사용, 규칙 적용상 역할 분배 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역할 분배의 예라면 우선권을 한 사람이 맡아서 관리한다든지, 계산을 보조한다든지 하는 예가 있겠죠. 이것은 진행자의 진행상 부담을 덜어주는 것과도 관련이 깊습니다.

3. 단편과 단기 플레이

마지막으로, 장기 캠페인의 기본 가정을 (내지는 신화를) 버리고 단편과 단기 플레이 중심적으로 생각을 바꾸는 것도 바쁘고 변화가 잦은 생활에 적응하고 플레이 부담을 더는 한 방법입니다. 피치못할 사정으로 자꾸 끊어지는 장기 캠페인보다는 깔끔하게 끝낼 수 있는 단편이나 단기 플레이가 더 만족도가 높다고 생각하고, 또 캠페인을 계속할 사정은 돼도 캠페인이 길어질 수록 특히 진행자의 부담은 무거워지게 마련이니까요.

이상과 같이 부담을 덜면서 재미있게 RPG를 할 수 있는 방법과 고려사항을 적어보았습니다. 어쩌면 후자보다는 전자에 더 중점을 둔 것 같습니다만… 어쨌든 ‘당장 이 모든 방법을 실천하지 않으면 당신은 더 이상 RPG를 계속할 수 없다!!!’ 같은 얼빠진 소리는 아니고, 자신에게 효용이 있어 보이는 방법을 골라서 실천해보면 한결 편한 플레이가 되지 않을까, 혹은 생활과 RPG를 조화시키는 방법에 대한 생각의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 해서 써본 글입니다. 폭넓게 도움이 되는 글이자 논의의 시작이 되었으면 더 바랄 바가 없겠지요.

Something Positive – 하드웨어 사망사건 4~7부 (完)

4, 5, 6, 7부입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마지막 7부가 가장 와닿더군요. (..)

Something Positive 2005-05-25

Something Positive 2005년 5월 25일자

Something Positive 2005-05-26

Something Positive 2005년 5월 26일자

Something Positive 2005-05-27

Something Positive 2005년 5월 27일자

Something Positive 2005-05-28

Something Positive 2005년 5월 28일자

바로 그거다 피쥐양! 감정은 다치게 해봤자 자랑할 수도 없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