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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in D. Laws의 장애물 만들기 가이드

캐릭터들은 장애물에 부딪혔을 때, 힘과 지혜를 짜내 그 상황을 극복합니다. 캐릭터들은 보통 능력치/기술/기타 등등 판정으로 이 장애물을 극복하며, 판정이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서 그 문제를 해결합니다. RPG의 재미 중 큰 부분은 이 장애물을 겪으면서 극복하는 데에서 나오기 때문에, 게임 마스터, 또는 다른 이들에게 장애물을 던져주는 역할을 맡은 참가자는 재미있는 장애물을 만드는 능력을 갈고 닦아야 합니다.

어떤 장애물이 “재미있는가?” 에 대한 답변은 ‘각 테이블에 따라 다르다’고밖에 말할 수 없지만, 한가지만은 확실합니다. 의미 없는 장애물은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제가 말하는 의미 없는 장애물은 ‘하든 안 하든, 성공하든 실패하든 별 의미 없는 판정이나 선택’입니다. 예를 들어 동굴 통로에서 두 갈래 길이 나왔을 때, 그 중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똑같은 괴물과 보물, 덫이 나온다면 의미가 없겠죠. 이와 마찬가지로 NPC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거짓말 탐지’를 했을 때, 실패하더라도 위험이 없다면 거짓말 탐지를 할 필요가 없겠죠.

그렇다면 의미 있는 장애물이란 어떤 것일까요? RPG 디자이너 Robin D. Laws에 따르면 장애물은 다음 요소로 세분화할 수 있습니다. (Sharper Adventures in HeroQuest Glorantha의 내용 중 일부를 요약했습니다)

1) 딜레마 : 직면한 장애물의 세부사항

2) 관심거리 : PC들이 장애물을 해결하기를 바라는 이유

3) 선택 : PC들이 선택할 수 있는 해결책

4) 결과 : PC들이 선택지에 따라 행동한 결과

 

딜레마는 PC들이 직면한 장애물의 상황입니다.

“술 취한 왕이 적국의 인질들을 죽이려고 한다.”

“우리 부족에 출몰한 언데드들을 무찔러야 한다.”

“폭설이 휘몰아치는 거대한 산을 통과해야 한다.”

 

관심거리는 PC들이 장애물을 해결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장애물을 만들었어도 PC들이 “왜 우리가 이걸 해야 하지?” 라고 말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겠지요.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장애물을 PC들의 모험 동기 및 개인적인 배경과 연결해서 흥미를 느끼게 만들거나, 이번 시나리오를 해결하기 위해서 꼭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주지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적과 전쟁을 하느냐, 평화를 선택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인질들의 처우는 그 향방을 결정할 것이다.”

“언데드들을 격퇴하지 않으면 우리 부족은 멸망한다.”

“저 산을 통과해야 마왕의 성에 갈 수 있다.”

 

선택은 PC들이 장애물을 해결하기 위한 방식입니다. 각 선택에 따라서 결과 역시 달라지기 때문에, GM은 PC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신경을 써야 합니다. 선택지는 뻔히 보이는 몇 가지 방식 중 하나일 수도 있고, 혹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선택지에 따라 다시 또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세요.

“왕이 인질을 죽이도록 놔둘 것인가? / 인질을 살리려고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살릴 것인가? 왕을 설득? 왕을 제압? 마법을 써서 왕을 현혹?”

“언데드를 격퇴하기 위해 혼자 나설 것인가? 이웃 부족의 도움을 얻을 것인가? 용병을 고용할 것인가?”

“저 산을 통과하기 위해 절벽을 곧바로 탈 것인가? 아니면 우선 사람들과 교섭을 해서 이런저런 도구를 살 것인가?”

 

결과는 PC들이 선택한 결과에 따라서 어떤 것이 달라지는가? 입니다. 만약 PC들이 선택한 방법이 ‘판정’이라면, 판정의 성공과 실패에 따라서도 각각 다른 결과가 나와야 합니다. 결과는 다음 중 하나입니다.

① 이야기의 분기 : 성공과 실패에 따라 이야기의 전개가 달라집니다. 다만, 어떤 경우에는 “이 판정은 실패하면 이야기가 아예 진행이 안 돼!” 라는 딜레마에 직면할 수도 있지요. 예를 들면 폭탄 해체 같은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이런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쉬운 방법은 아래 약화 또는 강화 의 결과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성공과 실패에 따라 달라지는 결과’ 자체를 손을 대는 방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폭탄 제거 판정의 성공/실패 같은 경우는 ‘폭탄이 제거되느냐, 터지느냐’ 가 아니라 ‘폭탄은 제거되지만 그 동안에 도망치는 악당을 추격할 수 있느냐 아예 놓치느냐’ 로 바꾸는 방법이 있지요.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이야기와 놀이 블로그의 “실패하면 안 되는 판정의 역설” (http://blog.storygames.kr/entry/making-failure-fun)을 참조해 주세요.

② 약화 또는 강화 : 이야기는 정해진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하지만 성공과 실패에 따라 이후 장면에서 PC들이 맞닥뜨릴 장애물이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PC가 상처를 입는가? 더 좋은 장비를 얻는가? 이후 지원군이 도착하느냐? 등을 예로 들 수 있겠죠.

‘의미 있는 판정’이란, 각각의 선택에 따른 결과가 서로 명백하게 달라야 합니다. 또한, 한번 결과가 나오면 장애물을 마주치기 전 상태로 되돌릴 수 없거나, 대가를 치르고 되돌려야 합니다. 인질을 죽였으면 다시는 적과 화해를 할 수 없겠지요. HP를 잃었다면 회복주문을 쓰거나 병원에 가서 돈을 주고 상처를 치료해야 합니다.

“PC들은 왕을 설득하기로 한다. 만약 판정에 성공한다면 인질은 살 것이다. 판정에 실패하면 인질은 죽고 곧 전쟁이 일어난다.”

“용병을 고용한다면 엄청난 돈을 요구할 것이며, 그 중 질 나쁜 이들은 마을의 보물창고를 눈독 들일 것이다.”

“절벽을 곧바로 탄다면, PC들이 등반 판정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산은 넘는다. 하지만 만약 PC들이 등반 판정에 실패하면 PC들이 산을 넘을 때는 HP가 모두 1/3로 줄며, ‘피로’ 라는 상태를 얻는다.”

이러한 장애물은 미리 준비할 수도 있고, 혹은 즉석에서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준비를 하든, 위의 네 가지 요소를 염두에 둔다면 최소한 ‘없느니만 못한 장애물’이라는 소리는 듣지 않을 것입니다.

 

P.S : 그렇다면 만약 미리 만든 시나리오에서 플레이어들이 의미 없어 보이는 판정이나 선택을 하겠다고 선언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쉬운 방법은 “할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솔직해지세요. 굳이 공허한 주사위 굴림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과와 귤 중 뭘 먹고 뭘 먹지 않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필요할 때만 부딪히세요.

조금 더 악랄해지고 싶다면, 혹은 아포칼립스 월드 엔진(AWE)의 방식대로 각각의 판정마다 의미를 둔다면, 실패할 경우 대가를 치르게 하세요. 글의 앞부분에서 저는 쓸데없는 거짓말 탐지의 예를 들었습니다. 만약 PC가 정직한 NPC에게 거짓말 탐지를 해서 실패했다면 단순히 “알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할 뿐만 아니라, NPC가 PC를 대하는 태도나 생각이 달라지게 하세요. 상대방이 자기를 불신하면서 거짓말쟁이인지 확인하려고 하는데 기분이 좋겠습니까? 텅 빈 방에서 덫 탐지를 시도한다면요? 실패하면 진짜 덫을 발동시키거나, 그 방에서 시간을 허비한 나머지 떠돌아다니는 괴물이 그 방에 들어왔다고 선언하세요. 좀 더 대담하게 나간다면 ‘무의미한 판정에’ 성공할 경우에도 무언가 보상을 줄 수 있지만(사실 이 NPC는 진짜 거짓말쟁이였다든지, 작동 직전의 덫을 발견시킨다든지), 이 부분부터는 ‘미리 만든 시나리오’를 벗어나는 즉흥극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굳이 더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