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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마스터의 벼락치기 세션 준비 1: 계획

준비할 시간은 1개월이 넘게 있었는데 내가 그렇지 뭘 어느덧 제12회 일일플레이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읭? 난 준비가 안 됐는데?
제 사정 같은 건 생각도 없이 시간은 무자비하게 가버렸군요ㅠㅠ 테플도 못했는데 난 안 될 거야 아마
그래도 일주일이면 길다면 긴 시간이겠죠. 원래 마스터링 준비는 제 약점인 만큼 이번에는 체계적으로, 그리고 더는 미룰 수 없도록 공개적으로! 준비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하려는 시스템은 RPG 디자이너이자 이론가인 Robin D. Laws 씨가 준비중인 신작 Hillfolk입니다. 킥스타터 후원을 한 위시송씨를 통해 미리보기 PDF판이 있어서 한 번 해보고 싶어졌지요. 인물 간의 인간관계와 감정적 욕구를 중심으로 진행하는 점, 감정적 균형을 나타내는 극적 판정은 참가자 간의 흥정과 자원관리로 하고 그 외의 절차적 판정은 위험과 이득 사이를 저울질하는 방식으로 한 점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힐포크 이미지
준비는 다음과 같은 단계로 하기로 하였습니다.
1. 룰 읽어보기
2. 배경 설정
기본 설정: 한국의 철기를 대략의 모티프로 한 설정
– 주변지역 지도 그리기
– 풍속과 문화 설정: 힐포크 방식대로 참가자에게 던질 질문 목록 작성
3. 룰 요약본 완성
4. 인물 설정
– 인물 관계도
– 시트: 인물 능력치, 양극 설정
5. 보조도구 준비
– 플레이어 자리에 놓는 받침 준비 (PC 능력치, 칩 놓을 자리 등)
– 이름표
– 마스터 노트
– 관계도 표시용 인물카드와 화살표, 압정
6. 플레이테스트
– 시간 없으면 집에서 몇 가지 장면을 해보는 간이 플레이테스트로 대체
으으 귀찮아 엉엉엉 살려줘

[일일 플레이 후기] 역사를 지키는 자와 바꾸는 자! <타임키퍼즈>

네이버 TRPG 카페 제7회 일일플레이가 8월
7일에 있었습니다. 성황리에 치러진 행사였고, 아주 재밌었지요. 저는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으로 한 테이블을 맡았는데, 이때 플레이한 가상의 TV 드라마는 <타임키퍼즈>라는 시간여행/느와르 첩보물이었습니다.

안방극장 대모험

사용자 삽입 이미지안방극장 대모험은 간략한 인물 능력치와 판정을 통해 인물의 관계와 내적 갈등, 그리고
협력적인 이야기 만들기를 강조한 규칙입니다. 그 창의적인 디자인 때문에 2004년 인디 RPG 상의 ‘올해의 인디게임’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2004년 ‘올해의 인디게임’이었던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에 이어 2위였으니, 포도원의 개들과 같은 해에 심사받은 불운(?)만 아니었다면 수상했을 작품이지요.

안방극장 대모험을 플레이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마치 텔레비전을 보면서 와 멋있다, 으 쟤
뭐야 수다떨면서 앞으로 어떻게 될까 가슴 두근거리는 재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재미를 느끼려면 무엇보다 참여자 전원이 가슴이 뛰고
흥분될 만한 배경과 인물이 필요합니다. 즉, 배경과 인물을 설정하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모두의 흥미도를 확실하게 확보해야 전체
시즌을 무리 없이 끌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안방극장 대모험은 도저히 제가 시나리오나 인물을
만들어갈 수가 없는 규칙이었습니다. PD (진행자)가 일방적으로 만든 설정으로는 플레이의 재미를 살리는 데 필수적인 감정적 몰입을
도저히 이끌어갈 수 없었거든요. 그리고 사실 저 자신이 시나리오 쓰는 걸 무지 싫어하기도 합니다. 즉흥성이 강한 저는 참가자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파악해서 서로 즐거운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것을 좋아하며, 참가자의 취향이나 욕구를 모른 상태로는 머릿속이
백지장이 되어버리거든요. 그런 면에서 안방극장은 저에게 잘 맞는 규칙이기도 합니다. (2008년 초에도 도쿄의 달이라는 메이지 유신 시대물 시즌을 즐겁게 완결한 적이 있었죠.)

그래서 저는 이번 일일 플레이를 준비하며 기획에 아예 플레이 시간을 할애하기로 했습니다. 즉, 어떤 시리즈를 만들 것인가 일체
정하지 않은 채 참가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결정하고 인물을 만들어 플레이하기로 한 것이었죠. 시간은 좀 들어도 그렇게 해야만
안방극장 대모험의 맛을 제대로 살릴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테스트 플레이를 한 결과는 꽤 재미있고 유쾌하기는
했지만, 몇 가지 개선점은 있었습니다. 우선 기획 단계를 완전히 자유롭게 진행하다 보니 다소 무질서했고, 그 혼란 속에서 모두의
선호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인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더욱 심각하게도 인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인물의 내면이나 관계에 대한
논의가 충분하지 못했고, 그 결과 인물의 깊이가 부족해서 극단적인 전개와 과장에 의존하는, 소위 ‘막장’ 플레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정신없이 웃으며 하긴 했지만 극적 완성도는 아무래도 부족했죠.

테스트 플레이의 경험과 피드백을 바탕으로
저는 기획 절차를 체계적으로 하고자 간단한 설문지를 만들었습니다. (첨부 파일 참조) 그리고 인물에 대한 논의를 기획의 한 단계로
추가했습니다. 또한, 원래 플레이 계획은 1화짜리 파일럿을 하자는 것이었지만, 실제 돌려본 결과 그렇게 하면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파일럿은 생략하고 5 세션을 몰아서 1 시즌을 완성하기로 했습니다. 여러모로 테스트 플레이는 플레이상의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너무나도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때 함께 재밌게 플레이해주시고 좋은 조언 주신 테스트 플레이어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일플날 아침, 이제 준비는 되었습니다. 앗, 그런데 가장 중요한, 판정에 사용할 트럼프 카드가 없었습니다! 테플 때는 승한에게
빌렸었는데, 승한이 하는 새비지 월드에도 카드가 필요하다는 것을 깜박 잊은 것이지요. 왠만한 편의점에는 있겠거니 생각하고 일단
집을 나섰습니다. 이번 플레이는 어떤 모습이 될까 기대 반, 긴장 반으로 가슴을 두근거리며…

‘타임키퍼즈’가 탄생하기까지

먼저 도착해 있던 저는 참가자 중 처음 도착하신 까까비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알고보니 방송 전공이시라는 말씀에 급 쫄아들었죠.
이후 빅베어님과 페르소나님, 그리고 맛난파이님이 도착하셨습니다. 한 분 오실 때마다 설문지를 한 장씩 드렸는데, 그렇게
개별적으로 할 수 있는 활동이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전체 다 모이기 전에는 규칙 설명이나 기획을 하기가 어려운데, 그렇다고
잡담만 하면서 주의가 흩어지는 것보다는 플레이와 관련이 있는 활동을 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각자 작성할 수
있는 설문지가 제몫을 한 것 같습니다.

설문지를 모아 내용을 정리해본 결과 장르 선호도는 판타지, 역사물, 군사물
순이었고, 인물끼리의 복잡한 관계와 이야기의 치밀한 구성에 대한 욕구가 높았습니다. 인물 유형은 개성과 엉뚱한 매력, 동시에
냉철한 전문성에 대한 욕구도 있었고요. 그 결과에 토대를 두고 어떤 시리즈를 할까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습니다. 완전히 자유롭게
논의하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논의의 틀이 생기니 기획 과정에 한결 틀이 잡힌 것 같았습니다. 까까비님이 (전공자답게!) 의견을 잘
정리해주시고, 파이님이 취향을 구체적으로 어필하시고, 빅베어님과 페르소나님이 세세한 의견을 내주셔서 차차 시리즈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빅베어님의 제안은 거의 그대로 최종안이 되기도 했지요.

그렇게 해서 나온 설정은 역사를 그대로
지키려는 집단과 역사의 비극을 지워버리려는 적대 집단 간의 갈등,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네 명의 인물 이야기였습니다. 꼭 마법이
아니라도 환상과 도피의 요소가 있고, 그러면서도 시대물이나 위기 극복에 대한 욕구도 충족할 수 있는 시간여행물/첩보물이 괜찮다는
총의를 형성해갔지요. 자유롭게 다양한 의견을 내본 결과 나온 설정과 인물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타임 키퍼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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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그대로 유지하고 지켜가려는, 말하자면 역사 수호대입니다.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의 역사도 원래 그대로 지켜가려는 이 집단은
장차 다가올 대재앙, 적사병 (The Red Death)으로 인류의 90%가 몰살당하는 역사마저 유지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재앙을 막으려는 타임 브레이커즈와 정면으로 대립하게 되고, 그 싸움이 1기의 근간을 이룹니다.

비밀 집단인 타임
키퍼즈는 대외적으로는 적절하게도 (?) 스위스의 유서깊은 시계회사 네프 주식회사입니다. 설립자인 네프의 후손이 네프사의 회장인
동시에 타임 키퍼즈의 최고지도자입니다. 그 밑에는 간부와 요원, 그리고 각종 보조직이 있습니다. 요원은 흔히 키퍼라고 합니다.

타임 브레이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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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사병 발발을 막으려는 집단으로, 타임 키퍼즈의 미래이기도 합니다. 적사병에 인류의 대부분이 목숨을 잃고 문명이 파괴된 이후 원래의
타임키퍼에서 갈라져나왔거나, 조직 자체의 목적이 변해 타임 브레이커가 되었습니다. 이들 요원은 흔히 브레이커라고 합니다.

준 (암호명 Pers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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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키퍼의 젊은 엘리트 요원으로, 키퍼 코드명은 ‘페르소나’입니다. 그리고 우연히도 (??) 페르소나님이 맡으신 인물이기도
합니다. 어려서부터 타임키퍼에서 요원으로 길러진 그는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꿈에도 모른 채 명령을 따릅니다.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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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을 숨기고 과거로 온 타임 브레이커 요원입니다. 다가오는 적사병 발발과 아주 깊은 연관이 있는 준을 납치해오라는 임무를
받았지만, 준과 개인적으로 친해지면서 그 명령을 수행하지 않은 채 프리랜스 작가로서 만족스럽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까까비님이 맡으신 인물이었습니다.


Mr. M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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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키퍼의 주요 간부 중 하나로, 준의 직속 상사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준의 아버지라는 것도, 준의 어머니가 누구인지도 숨긴 채 오직 회장인 제임스 네프의 명령만을 맹종하며 살아왔습니다. 빅베어님의 PC입니다.

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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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박사로서, 여러 해 전에 적사병 바이러스를 개발한 장본인입니다. 준의 생모이기도 하지요. 타임키퍼가 적사병을 악용하지 않을까
두려워진 그녀는 적사병 치료약을 개발하다가 타임키퍼의 추적을 받게 되었고, 미스터 마와의 결혼생활도 파국을 맞았습니다. 결국
아들마저 잃어버리고 그녀는 키퍼 요원을 피해 시간과 공간을 도망다니며 치료약 개발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맛난파이님이 담당하셨습니다.

<타임키퍼즈> 제1기

1화

1952년, 정은경 박사는 타임키퍼의 눈을 피해 6·25 사변 중에 미군 병원에서 일하면서 적사병 치료약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때 정체불명의 남자가 미군으로 변장한 채 그녀에게 총을 겨누는데… 정 박사는 탈출에 실패하지만, 때맞춰 도착한 타임키퍼 준이
남자를 제압합니다. 정 박사를 데려오라는 명령을 받았던 준은 이 암살자가 더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도망치는 정 박사를 무시하고
습격자를 생포해 21세기로 귀환합니다.

심문 결과 습격자는 타임 브레이커 요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타임 브레이커에서도 정은경 박사를 노린다는 것을 알고 미스터 마는
이 사실을 네프 회장에게 보고합니다. 한편, 격무에 시달리던 와중에도 준은 유리에게서 온 문자를 보고 따스한 웃음을 짓습니다.
네프 회장에게 보고하고 돌아온 미스터 마는 숨겨둔 사진 속에 활짝 웃고 있는 자신과 은경, 그리고 어린 아들을 보며 회한에
잠깁니다.

타임 브레이커에서는 이번에는 준을 노립니다. 준은 제때 시간이동을 하지만, 시간이동 손목시계에 총탄이 스쳐 시계가 오작동을 하자
마치 악몽과 같은 시대로 이동합니다. 파괴당한 도시의 잔해 속에서 괴생명체에게 위협당한 그는 총을 든 여인에게 구조를 받고,
그에게 다른 손목시계를 준 여인은 아무것도 묻지 말고 바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타임키퍼와는 다른 문양의 손목시계에 의지해 자기
시대로 돌아온 준은 알 수 없는 불안을 느낍니다.

2화

정 박사는 치료약을 완성하고자 이전에 한 번 성공했었던 항체를 되찾을 계획을 세웁니다. 20년 전, 타임키퍼에 쫓기던 그녀는
항체를 어린 아들에게 주입해 숨긴 후 아들을 상하이에서 인천으로 가는 배에 태우고, 키퍼들의 주의를 끌며 다른 시대로
탈출했었습니다. 박사는 아들을 떠나보낸 그 순간으로 이동해 배에 탄 아들에게 접근하려고 하지만, 그녀의 계획을 눈치챈 미스터 마
역시 선상에 나타납니다. 얌전히 있으라며 잠시 사라졌던 엄마가 갑자기 달라진 모습으로 나타나자 혼란에 빠진 준은 미스터 마에게
매달리고, 은경을 기절시킨 미스터 마는 준을 데리고 사라집니다. 준은 이렇게 해서 타임 키퍼 요원으로 자라나게 된 것이죠.

한편, 현재에서는 유리가 계속해서 준을 데려오라는 명령을 방치하자 브레이커 요원이 찾아와 유리를 강제로 미래로 송환하려고 합니다.
유리의 문자를 받고 집으로 찾아온 현재의 준은 그 모습을 보고 브레이커를 제압하지요. 준이 경찰을 부르러 간 사이 유리는
브레이커 요원의 시계를 작동시켜 미래로 돌려보낸 후, 범인이 도망쳤다고 둘러댑니다. 한편, 그녀의 컴퓨터 모니터에는 거의 완성한
소설이 보입니다. 레드 바이러스와 적사병, 문명의 멸망을 그린 묵시록이…

3화

출판사 사장은 유리의 소설에 크게 흡족해하고 출판을 결정합니다. 그러나 소설의 내용은 타임키퍼의 정보망을 통해 타임키퍼에
알려지고, 작가가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안 지도부는 미스터 마를 통해 준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필명으로 쓴 소설의 작가를
찾아내 죽이라는 것이지요.

조사 결과 소설의 작가가 유리라는 것을 깨달은 준은 갈등하다가 유리에게 같이 여행을 가자고 합니다. 유리는 혼쾌히 그러마고
하지요. 바다를 내려다보는 절벽 위의 펜션에 도착한 그들. 그날 밤, 준은 유리에게 총을 겨누며 그녀의 정체가 무엇인지
추궁합니다. 유리는 명령이 아니라 너 자신의 판단으로 방아쇠를 당기라고 하고, 준은 끝내 쏘지 못합니다. 유리는 자신의 정체를
털어놓고, 레드 바이러스와 적사병, 그녀가 떠나온 지옥 같은 미래를 그에게 알려줍니다. 준은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가 갈등합니다.

한편 은경은 중세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 치유사로 숨어지내다가 타임 브레이커 요원의 방문을 받습니다. 그의 설득 끝에 타임
브레이커즈와 행동을 함께하기로 결정한 박사는 미래의 그들이 보유한 적사병 지식을 이용해 결국 적사병 항체를 완성합니다.

4화

준이 명령을 어긴 것을 안 네프 회장은 미스터 마에게 준을 죽일 것을 명령합니다. 아침에 펜션에서 나온 준과 유리는 기다리던
미스터 마와 대면합니다. 유리는 그를 필사적으로 설득하고, 미스터 마는 결국 아들을 쏘지 못합니다. 네프가 보낸 또 다른 요원이
명령을 대신 수행하려고 하자 미스터 마는 요원에게 총을 겨누고, 준과 유리에게 도망치라고 합니다. 차를 몰고 정신없이 도망치던
준과 유리는 멀리서 울리는 두 발의 총성을 듣습니다.

타임 브레이커즈를 통해 정 박사의 존재를 알게 된 유리는 준을 데리고 은경을 만나러 갑니다. 그곳에서 준은 미스터 마와 은경이
자신의 부모라는 것과, 자신의 몸에 레드 바이러스 항체가 있다는 것을 듣게 되지요. 그는 고뇌에 빠지지만 그것도 잠시, 항체와
치료약이 한곳에 있는 기회를 포착한 네프 회장은 타임키퍼즈를 보내 준과 유리, 정 박사가 있는 건물을 포위합니다.

5화

타임키퍼 요원들에 대항해 준과 유리는 치열한 전투를 벌이지만, 적의 수가 너무 많아 중과부적입니다. 준이 적 사이로 잠시 퇴로를
확보하자 은경은 치료약을 유리에게 쥐어주고, 두 사람의 퇴로를 가로막은 채 레드 바이러스를 자신에게 주입합니다. 순식간에 그녀는
마치 구울(ghoul, 시체먹는 괴물)과 같은 괴생명체로 변해 타임키퍼 요원을 학살합니다.

몇십 년 후, 같은 장소. 건물은 무너지고, 도시는 파괴당해 불타고 있습니다. 그 속에 한 여인이 총을 들고 도시의 폐허를
순찰하고 있습니다. 문득 소리를 들은 그녀는 먼 옛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달려가고, 그 자리에 나타난 준을 지켜줍니다. 그녀는
변이한 은경이 과거의 준을 해칠 수 없도록 막지요. 타임 브레이커 문양이 있는 자신의 시계를 준에게 던져준 중년의 유리는 준에게
아무것도 묻지 말고 떠나라고 합니다. 그 옛날, 미스터 마와 은경의 희생에 힘입어 탈출했던 젊은 자신과 준이 이 미래를 막아주기를
바라며…

감상과 평가

전반적으로 짜임새 있고 감동적인 이야기였다고 생각합니다. 기획부터 탄탄해서 끝까지 진정성 있는 전개가 된 것 같아 개인적으로 꽤
만족스러웠습니다. 장면 신청과 판정, 승자와 서술권자의 분리 등 의외성과 협동성을 함께 살리는 장치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주 역동적이었어요. 어디선가 본 듯한 것도 물론 많았지만, 그렇다고 꼭 감동이라든지 개연성이 떨어지지도 않더라고요. 협력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주 즐거웠고, 결과물도 괜찮았습니다.

아쉬웠던 점이라면 우선 저의 준비성이 있겠지요. 트럼프 카드는 끝내 못 구해서 아이팟 앱으로 대신했는데, 큰 문제는 없었고
공간활용 면에서는 오히려 장점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역시 카드 크기나 가독성은 한계가 있었고, 가뜩이나 행사 준비로 정신이 없는
두하군에게 부담을 준 것이 미안했습니다. 앞으로는 준비를 철저히 해서 민폐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꾸벅)

Card Table 스크린샷

Card Table 앱을 잘 썼습니다


또 하나 개선할 점이라면 판정의 성공과 실패의 결과 설정 부분이었습니다. 판정이 실패해서 이야기가 재미없을 만한 결과는 판정
결과에 걸어서는 안 되는데, 그 점을 제가 잘 설명하거나 지도하지 못해서 가끔 판점 부분이 삐걱였습니다. 예를 들어 준을 데려가는
선상 장면에서는 은경과 미스터 마가 둘다 PD에게 져서 ‘은경도 준의 피를 못 뽑아가고, 미스터 마도 준을 못 데려간다’는
결과가 나와 결국 준이 미스터 마를 자발적으로 따라간다는 식으로 빠져나갔지요.

선상 장면은 그나마 나았습니다만, 더 심각하게도 5화에는 ‘전원이 타임키퍼에 잡힌다’는 판정 결과가 나와서 이야기 진행을 위해
사실상 판정 결과를 무시해야 했습니다. 저럴 때는 탈출하느냐 못 하느냐를 판정 결과에 거는 대신, 성공하든 실패하든 탈출은 하되
희생 없이 탈출할 수 있는가라든지 치료약을 가지고 탈출하느냐라든지 하는 것을 판정에 걸어야 했죠. 이런 점을 당시에 바로잡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소리가 울려서 의사소통 자체에 좀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 했고요.

참가자분들은 RPG를 1~2 세션 해보셨거나 페르소나님처럼 아예 처음인 초보들이셨는데, 이건 뭐 초보 숙련자 나누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수준급으로 잘해주셨습니다. 발랄한 대화와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테이블 분위기를 밝게 해주셨던 까까비님 (유리), 스토리를
안정감 있게 끌어가시면서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RP를 하신 빅베어님 (회상 장면 하나 없이 끝난 눈물의 마씨 아저씨ㅠㅠ),
주인공으로서 극의 호흡을 이어가는 동시에 가히 악마적인 반전을 엮어넣으신 페르소나님 (준), 그리고 평소 조용하시면서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드라마틱한 전개를 주도하신 맛난파이님 (은경) 모두 함께하기 즐거웠던 실력파 참가자들이셨습니다.

하나 재미있는 현상이라면 진행자와 참가자, 혹은 참가자 사이의 서술권 구분이 그닥 뚜렷하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기존 RPG
관념에 익숙하지 않으신 참가자분들이라서 그런 면도 어느 정도 있겠지만, 숙련자분들과 함께한 테스트플레이 때도 나타난 현상인 것을
보면 안방극장 대모험이 그런 점을 유도하는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다 보니 참가자분들이 조연에 대한 서술도 하시고, 다른
참가자의 주인공에 대한 서술도 하시는 게 재밌더라고요. 사실 생각해보면 그런 서술권 구분을 꼭 엄격하게 유지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테스트 플레이나 이전 도쿄의 달 때도 담당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을 때 참가자가 조연을 맡는다든지 해서 원활하게
돌린 것을 생각해보면 기존 RPG의 서술권 구분이 꼭 필요한가 하는 재고도 해볼 만한 것 같습니다.

이상 제7회 일일 플레이 안방극장 대모험 미니캠페인, <타임키퍼즈>를 소개하고 분석해 보았습니다. 좋은 플레이 해주신 참가자분들과 수고해주신 스탭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이렇듯 즐거운 추억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네이버 TRPG 카페 인디 페스티벌 ‘귀신잡는 가족’ 후기

그저께 인디 페스티벌에 한 플레이는 드레스덴 파일 RPG로 한 서울 배경 현대 판타지로,
박수무당 아버지와 세 자녀가 납치당한 손녀/조카딸 지수를 찾는 얘기였죠. 꽤나 오랜만의 마스터링이었는데, 제가 잠이 너무
많아서(..) 결국 준비도 제대로 못하고 세션을 맞이해서 많이 죄송스러웠습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인물과
시나리오를 미리 만들려고 하면 저는 심각하게 막히더라고요. 제 평소 방식은 먼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다같이 논의하고, 같이 모인
자리에서 캐릭터를 제작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해서 참가자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파악한 후 인물 배경과 참가자의 극적 욕구를 반영해
제 취향을 버무리는 것을 좋아하지요. 그런데 인물과 시나리오를 미리 준비해가는 방식은 그런 사전 논의가 없어서 결정을 준비하는 데
개인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준비해가는 진행은 저에게 안 맞는다는 결론에 도달했으며, 앞으로는 되도록이면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캐메 자료와 예시 캐릭터 시트를 충분히 준비해가서 각 참가자가 인물을 새로 만들거나 기존 시트를
수정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그저께도 보니까 불완전한 시트를 보충하거나 있는 시트를 수정하는 등 준비해간 시트도 잘
고쳐서 사용하시더라고요.

이렇듯 저의 준비 부족이 아쉽기는 했지만 참가자분들이 워낙 재밌게 RP를 하셔서 무사히
세션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루영익님이 하신 능청스럽고 돈 밝히면서도 자식들을 끔찍이 아끼는 박수무당 아버지 박상규, 시드님의
신실하면서도 한 성질 하는 조폭출신 열혈목사 큰아들 박문형, 화련님의 활 무지 잘 쏘면서도 왠지 눈에 안 띄는 딸 캐릭터 박보경,
그리고 휴님이 하신 초 유능한 오타쿠 환상술사 박재형 등 인물들이 하나같이 개성이 살아있고 유쾌해서 즐거웠습니다. 마지막에
구미호 잡은 후에 다같이 가죽 벗기고 꼬리 자르고 하는 거 보니 과연 악역은 어느 쪽이었을까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는 했지만요.


적으로는 모두가 개성과 능력을 잘 발휘하셨던 것 같아 좋았습니다. 아버지의 귀신 부르는 능력이나 목사 아들의 기도와 축복 능력,
딸네미의 최강 궁술, 그리고 막내의 넷상 정보수집력과 환상술을 다들 잘 활용하셔서 사건을 해결하셨습니다. 애당초 드레스덴 파일
RPG에 관심이 생겼던 이유가 영능력자와 일반인이 한 일행에 공존할 수 있다는 점이었는데, 일반인(?)인 딸이 최강자였던 것 보면
그 장점은 여기서도 드러났던 것 같습니다. 다만 여기서도 제 준비 부족으로 전투가 좀 시시한 듯하여 아쉬웠습니다. 특히
초자연물에서는 보경의 양궁 스턴트 같은 강한 공격력이 무조건 최강자가 되는 것은 지양할 방법이 있었는데 (무기가 안 통하는
괴물이라거나), 그런 방법을 생각 못했던 게 후회스럽네요.

전반적으로 화기애애한(..) 가족 인물 RP와 참가자들의
문제해결 과정이 돋보이는 플레이였다고 생각하며, 함께 해주신 네 분 참가자께 감사드립니다.

한국사에 대한 재밌는 글들

이번 달 말 일일플레이 준비하면서 자유시 참변 자료를 찾다가 한국사에 관한 재밌는 글들이 있는 블로그를 발견하여 올려둡니다.

신들의 황혼 (한국사 분류)
덕분에 자유시 참변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고, 다른 글들도 시간을 두고 읽어보고 싶네요.
아울러 일제시대 및 항일운동에 대한 좋은 자료 (책, 영화, 웹사이트 등) 아시는 것 있으면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