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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연애 시뮬레이션 ‘얼음깨기’

얼음깨기 (Breaking the Ice)는 에밀리 케어 보스 (Emily Care Boss)의 2인용 RPG로, 두 주인공이 세 번 데이트하는 내용을 플레이한 후 그들이 이루어지는지 정하는 내용입니다. 이 설명에서 알 수 있듯 연애물이죠. Breaking the ice라는 원제 자체도 모르는 사람끼리 어색하던 분위기가 부드러워지는 것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그 외에도 여기에서는 맥락상 몇 가지 함축적 의미가 있겠지만요.

규칙이 다루는 것은 곧 그 놀이의 대상입니다. 연애 시뮬레이션인 얼음깨기에는 연애 외적 요소인 HP나 힘, 심지어는 기능 규칙도 없습니다. 대신 매혹과 공감, 갈등이 있지요. 그 외에 ‘직업: 웹 디자이너’라든지 ‘애완견 뽀삐’ 등 주인공의 특징을 표현하는 키워드도 있지만, 그러한 키워드를 포함해 규칙은 연애라는 주제 하나에 몰려 있습니다.

이렇듯 규칙이 제약적인 점은 취향이나 용도에 따라 장점일 수도 있고, 단점일 수도 있습니다. 바바 히데카즈의 강좌에 나왔듯 배경 세계가 무한한 선택에 의미있는 제약을 가하는 효과가 있다면, 규칙은 그 선택에 객관적 기준을 만들어주면서 선택을 추가적으로 제약하는 효과를 냅니다. 그 제약의 정도가 규칙을 만들 때 내리는 결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얼음깨기는 그 제약이 심한 편이어서 딱 두 사람이 세 번의 데이트를 하는 얘기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바로 그런 내용의 플레이를 하고 싶다면 규칙의 제약성은 장점일 테고, 그렇지 않다면 얼음깨기는 의도하는 용도에 별로 어울리지 않는 규칙이겠죠.

이러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얼음깨기로 할 수 있는 이야기의 범위는 상당히 넓습니다. 기본적으로 두 사람이 세 번의 만남 동안 겪는 감정의 변화를 다루고 있는 형태인 것은 맞지만, 그 틀 내에서 세 ‘데이트’는 철수와 영희가 같이 공부하고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 가는 내용일 수도 있고, 두 적대국의 스파이가 임무를 수행하며 총탄과 유혹을 주고받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전에 시하야님과는 마법사와 전사가 같이 던젼을 탐사하며 연인이 되는 BL물 플레이를 하기도 했죠. 두 주인공의 연애감정을 중심에 놓기만 한다면 거의 어떤 배경의 어떤 이야기든 할 수 있다는 점이 ‘제약 내의 범용’이라는 역설입니다.

이렇게 연애감정에만 초점을 맞춘 규칙으로 개별 행동의 성공은 어떻게 정할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규칙으로는 행동 판정은 하지 않습니다. 즉, 성공하기 원한다면 성공한다고 서술하면 되고 (‘추근대는 깡패들을 단번에 다 때려눕혀요!’), 실패를 원한다면 실패한다고 서술하면 됩니다 (‘깡패들한테 덤비다가 늘씬하게 얻어맞습니다’). 개별 행동의 성공과 실패는 규칙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규칙상 성패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성패를 가리는 대상이 다를 뿐이죠. 규칙은 행동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를 가리지 않고, 위에서 설명했듯 이 규칙의 진짜 대상인 연애감정, 즉 매혹과 공감이 증가하고 유지되느냐를 판정합니다. 깡패들을 다 때려눕힐 수도 있고 괜히 덤볐다가 실컷 맞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 매혹이나 공감을 얻고 데이트 사이에 매혹을 유지하는지는 자유 서술이 아니라 판정으로 정합니다.

참가자가 원하면 무조건 행동에 성공한다는 것은 묘한 일 같지만, 그렇다고 모든 행동이 성공으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원하면 성공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실패를 ‘원하면’ 되니까요. 실패를 원할 만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상대방 참가자가 실패를 제안할 때, 두 번째는 이미 실패한 주사위를 다시 굴리기 위해서입니다. 이게 말이 되게 얼음깨기 규칙을 조금 더 설명하겠습니다.

얼음깨기는 진행자가 따로 없는 대신 두 참가자가 돌아가면서 능동 참가자 (Active player)와 길잡이 (Guide) 역할을 맡습니다. 능동 참가자는 장면 묘사, 조연 담당 등 주변 환경 서술을 맡는 동시에 자기 주인공을 움직여서 상대방 주인공에게 점수를 따려고 애씁니다. 요리를 해준다든지, 깡패를 때려눕힌다든지, 아름다운 호숫가로 데이트 장소를 잡는다든지 등등.

상대방인 길잡이는 능동 참가자의 서술이 마음에 들면, 혹은 주사위 종류에 따라 조건을 충족했다고 판단하면 주사위를 줍니다. 즉, 능동 참가자가 따려는 ‘점수’를 주사위 형태로 건네주는 것이 길잡이의 역할입니다. 능동 참가자는 길잡이에게 이들 6면체 주사위를 받아서 굴리고, 5 또는 6이 나온 주사위마다 성공입니다. 성공 3개로는 매혹, 4개로는 공감을 하나 올릴 수 있죠.

이와 같이 길잡이가 주사위를 지급하므로 능동 참가자는 길잡이의 마음에 들게 노력해야 하고, 자연히 길잡이의 제안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그러니 어떤 행동에 대해 길잡이의 제안이 있으면 (‘여기서는 깡패들한테 얻어맞는 게 더 재밌을 것 같은데?’) 그 결과가 행동 실패라 하더라도 제안을 받을 가능성이 꽤 큽니다. 이것은 전에 얘기했던 가상현실과 극적 요소 중심 판정 (승민님의 더 쉬운 표현을 빌리자면 묘사 중심과 서사 중심) 중, 후자에서 게임 내 현실을 규칙이 아닌 공감으로 정하는 예인 것 같습니다. 실패가 ‘원하지 않는 결과’가 아닌 ‘원해서 하는 실패’라는 점도 재미있고요.

행동이 실패한다고 서술할 만한 두 번째 중요한 이유는 재굴림 규칙입니다. 주사위 종류에 따라서는 실패를 다시 굴릴 수 있는데, 그 조건은 망신을 당한다든지, 위험에 처한다든지, 사이가 나빠진다든지 해서 뭔가 데이트가 잘 안 풀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재굴림 규칙을 활용하려고 하면 주인공은 완벽한 존재일 수 없습니다. 그 외에 주인공이 상대와 맺어지기 어려운 사유인 갈등을 서술에 등장시키면 주사위를 더 받는 규칙 역시 주인공의 불완전하고 인간적인 모습 표현을 포상합니다.

이런 식으로 각 참가자가 2~3번씩 차례를 돌려가며 하고 나면 한 번의 데이트가 끝나고, 세 번의 데이트를 마치고 나면 그 동안 유지한 매혹 점수를 모두 굴려서 성공만큼 최종 매혹 점수를 냅니다. 그리고 매혹과 공감 수치를 참조해서 두 주인공이 맺어지는지 보고, 그에 맞게 두 사람이 이후 어떻게 되는지 후일담을 서술합니다.

규칙이 자체 완결적인 이야기에 추진력을 더해주고 진행자가 없다는 점 등 얼음깨기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규칙이지만, 제가 보기에는 문제도 있습니다. 그 중 첫째로 꼽고 싶은 것은 게임적 긴장감이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두 참가자 사이에는 ‘얘네를 맺어주자’ 하는 공통된 목적이 있어서, 제 경험상 게임 플레이는 ‘둘이 협력해서 최대한 성공 짜내기’의 연속이 되기 쉽습니다.

물론 주사위 종류마다 한도와 조건이 다르므로 (데이트가 잘 풀릴 때, 잘 안 풀릴 때, 갈등이 나올 때, 공감이 나올 때 등등) 두 참가자가 규칙에 따라 협력하면서 나오는 이야기 자체는 다양하고 재미있습니다. 어쩌면 그게 얼음깨기 규칙의 진짜 의의일지도 모르고요.

그래도 때로는 성공을 얻어내는 것이 너무 중요해진 나머지 더 굴릴 주사위가 없을 때까지 데이트를 질질 끌기도 하는 점은 오히려 이야기의 재미를 해친다고 봅니다. 두 참가자의 이익이 일치하다 보니 (성공을 짜내자!) 데이트를 적당한 데서 끊을 만한 반작용이 얼음깨기에서 시스템상 부족한 점이었다고 봅니다.

두 번째 문제라면 규칙이 좀 복잡하다는 점입니다. 인물 만드는 데까지는 쉬운데, 플레이 절차를 설명하기는 좀 어렵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매혹 주사위, 보너스 주사위, 재굴림 주사위, 갈등 주사위, 공감 주사위 등등 주사위 종류도 꽤 많고, 보너스와 매혹 중 실패가 재굴림의 한도이며 갈등 주사위는 재굴림에 해당 없고… 어렵다기보다는 전반적으로 좀 지저분한 느낌이었달까요.

그와 관련해, 규칙에 따르다 보면 데이트의 각 턴이 너무 도식적이기 쉽다는 점도 단점이라고 봅니다. 처음에는 잘 보이면서 점수를 따다가 (보너스 주사위) 뭔가 계속 잘못되고 (재굴림 주사위 하나씩), 좀 길어지다 보면 (성공이 3개 안 나와! ;ㅁ;) 이 관계에 대한 고민거리가 등장하거나 (갈등 주사위) 두 사람의 공통점이 드러나거나 (공감 주사위) 하는 식으로요. 물론 이 간단한 도식 내에서도 굉장히 다양한 얘기가 나올 수 있습니다만, 몇 번 하다 보니 좀 뻔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와 같은 디자인상 허점이 있기는 하지만 얼음깨기를 하면서 재미없었다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던젼을 헤매는 모험가에서 현대 한국의 남녀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다뤄본 플레이는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고, 여전히 둘이 모여서 가볍게 하기에 괜찮은 규칙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적당히 밀고 당기는 맛을 좋아하는 제 취향에 비해서 너무 다정다감했을지도요. (웃음)

결론적으로 얼음깨기는 중심 소재인 연애에 초점을 맞춘 ‘연애 시뮬레이션’을 통해 게임성과 극적 재미를 연계시키는 흥미로운 규칙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공적인 부분도 있고 실패한 부분도 있지만, 놀이를 통해 만들어가는 이야기의 가능성과 재미를 잘 보여주는 규칙이라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군요.

언더월드 외전 2 – 생일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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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상으로 언더월드 13화 다음날입니다.)

희연의 생일날 저녁 6시, 준영은 꽃다발을 들고 희연네 집에 나타납니다. 괜찮은 레스토랑에 예약을 해두었다는 준영은 희연의 차멀미를 감안해 차를 놓고 걸어오는 배려를 하고, 두 사람은 걸어서 시내로 향합니다.

가는 길에 시준이 친구 소개시켜주는 자리에 왜 안나오냐고 독촉 전화를 해오지만, 희연은 준영오빠와 데이트중이라며 단호하게 끊어버립니다. 그리고 얼마 안되어 도로변에서 놀고 있던 불량배들과 마주쳐 시비가 붙지요. 안형사는 희연의 안전만 염려하는 사이 속절없이 얻어맞고, 대신 희연이 갈고닦은 검도실력과 뾰족한 하이힐로 불량배 우두머리를 때려눕혀 버립니다.

천신만고 끝에 레스토랑에 도착한 두 사람이 즐겁게 밥을 먹고 있는데, 희연이 친구 소개하는 자리에 안나오자 화가 머리끝까지 난 시준이 아예 그 친구를 데리고 레스토랑으로 와서 합석을 해버립니다. 이현욱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시준의 친구는 잘생기고 돈 많은 명문대 학생이지만, 희연은 오히려 그의 거만한 태도에 불쾌감을 느끼지요. 반면 현욱은 대학 선배이기도 한 희연을 혼자 ‘찜’합니다.

결국 먼저 일어난 준영과 희연. 준영은 희연을 집 앞까지 바래다주고 대망의 첫키스를 추진하려 하지만, 스토커(..) 시준이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 자기 병원에 안 데려다 주느냐며 (시준은 다리를 다쳐서 입원중인데 낮에 잠깐 나온 것이었지요) 안형사와 희연을 현욱의 차에 끌어넣습니다. 병원 가는 길에 희연은 안 좋은 속 때문에, 준영은 계속된 격무와 수면부족 때문에 그만 잠이 들고 그들의 화려했던 생일 데이트는 끝을 맺습니다.

역시 포지 게시판에도 올렸습니다. 여기에…

진행 상황

매혹 – 3
공감 – 4 (유원지 데이트의 추억, 조폭의 추억(?), 시준에 대항한 공동전선, 이루지 못한 첫키스의 아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