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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돈존 1: 팔레인스에 들어가다

지지난 주에 준비를 마치고 지난주에 한 회 쉰 다음에 이번주에 어스돈존 첫 화를 해보았습니다.
요약
모험을 나간다고 할머니와 실컷 싸우다가 머리나 식히고 있으라고 집안에 갖힌 말썽꾸러기 트’스크랑 키브는 자물쇠를 자르고 탈출합니다. 그리고 어디가 가볼만한지 정보를 얻어낸 후 오크 용병 애꾸눈 그바라그와 함께 유적지에 들어갑니다. 들어간지 얼마 안 되어 그들은 시체인간과 사투를 벌입니다.
감상
클린턴 R. 닉슨의 던전 (Donjon)은 승한군과 저 둘다 흥미가 있던 규칙이었는데, 이번에 해본 감상은.. ‘던전으로는 하지 말자’였습니다.
처음에는 괜찮았습니다. 둘다 낯설어서 책 찾아보면서 하느라 진행이 늦긴 했지만, 판정이 비교적 재미있더군요. 키브가 자물쇠를 자를 장비가 있는지 장비 판정을 하는 대목이라든지, 지각 판정에 성공한 승한군이 문밖에 기다리는 덩치가 이미 같이 가기로 약조한 그바라그라고 서술해서 상황을 유리하게 바꾼 대목이라든지.
문제가 발생한 것은 전투였습니다. 던전의 주요한 재미는 판정에 성공하면 서술을 할  수 있다는 점인데, 전투만은 판정에 성공하면 할 수 있는 서술의 범위를 팍 제한해서 그 재미가 떨어졌죠. 예를 들어 피하기 판정에 성공한 성공수는 서술에 사용하지 않고 그냥 버리게 되어 있었고, 명중 판정 성공수는 사실상 무조건 피해 판정 보너스로 들어가는 점이 그랬습니다.
그리고 행동 순서 판정, 명중 판정, 방어 판정, 피하기 판정, 피해 판정, 피해 저항 판정 해서 주사위는 엄청나게 굴러가는데 일단 유리한 전술이 보이면 (시체인간과 싸울 때는 건강을 계속 깎아서 피해 저항 판정에 불리하게 한 다음에 HP 깎기) 그것만 반복적으로 해서 결국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던젼 탐사물은 전투가 가장 기본인데, 전투가 이렇게 재미없어서야 못해먹겠다는 게 일치된 의견이었습니다. 전투를 더 다채롭게 구성하면 ‘때려요.. 때려요.. 때려요!’의 반복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렇다 해도 전투만 들어가면 행동 하나마다 판정이 너무 많아져서 난잡해진다는 느낌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어스돈은 마음에 드는 배경인데 이걸 극적으로 플레이할 규칙이 뭐가 있을까 얘기하면서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이라든지 쇼크 (Shock:), 폴라리스 (Polaris) 등 얘기가 나왔습니다. 쇼크는 급변하는 사회 속의 개인이라는 면에서는 어울리는 것 같긴 한데, 이전에 두어 번 했을 때 고생한 기억이 생생해서(..) 왠지 하고 싶지 않고, 폴라리스는 한다면 비극이 되겠죠. 대재앙기에 호러들에게 잠식당하는 케어 얘기라든지.
이전에 했었던 트롤베이브도 선이 굵은 판타지에 괜찮았다는 기억입니다. 피해를 입기가 쉬워서 캐릭터가 캐고생(..)하지만, 그것도 나름 거친 모험물 분위기에 어울리고요. 뭐 결국 가장 범용적이고 쉬운 이야기 놀이는 안방극장 대모험인 것 같지만요.
어쨌든 둘다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던전을 이번에 해보면서 익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던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 뭐가 재밌는지는 다양하게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으니까요. 모험물로서도 (적어도 그 시작으로서) 괜찮은 플레이였고요. 다른 규칙으로 이어서 한다 해도 되도록 줄거리는 이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어스돈존 0: 인물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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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한군네 D&D 4 캠페인이 파토나고 뭘 할까 한동안 얘기하다가 일단 1:1로 시작하게 된 어스돈(Earthdawn) + 던전 (Donjon) 캠페인 어스돈존 인물 제작을 했습니다. 진행자는 제 쪽이지만, 1:1인 만큼 주인공급 조연도 하나 만들었고요.
1. 특성치, 종족, 클래스
특성치는 기본 선택지인 3d6 굴려서 가운뎃값을 힘부터 사회성까지 차례대로 넣는 방법으로 했습니다. 이 방식이 비교적 확률이 안정적이어서 합계가 점수 분배제에서 받는 21점 전후로 나오더군요. 승한군 인물은 총합 21점, 저는 23점이 나왔습니다.
민첩도와 사회성이 가장 높게 나오고 끈기는 낮게 나온 승한군은 붙임성 좋은 트’스크랑 도둑 키브를 하기로 했고, 신체적 특성치, 특히 끈기는 다 좋게 나왔는데 지능은 그저 그렇고 사회성은 최악으로 나온 저는 역시 이건 오크다 싶어서 전사 애꾸눈 그바라그를 만들었습니다.
사실 어스돈의 오크는 기마병이 제맛이라고 생각하지만, 일단 던젼 탐사물부터 시작할 테니 전사로 가기로 했습니다. 나중에 캠페인 방향 봐서 말 하나 잡아타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은 점도 클래스는 거의 명목뿐인 던전의 유연성이죠. (아래 ‘능력치’ 참조) 실제 어스돈 규칙을 사용했더라면 클래스에 따라 능력이 다르니까 전사를 기마병으로 키우기는 어려웠겠지만요.
이런 식으로 무작위 특성치에 따라 인물이 나오는 것도 나름 재밌더라고요. 무작위 특성치를 안 좋아하는 이유가 균형이 안 맞는다는 점 때문인데, 던전의 특성치 무작위 제작은 그 변폭이 덜하면서도 어떤 인물이 나올지 모르는 의외성을 살린다는 느낌이었습니다.
2. 능력치 제작
다음은 인물의 핵심인 능력치를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만들었습니다. 어스돈의 클래스를 명목뿐이라고 하는 게, 어차피 판정은 해당 특성치 + 능력치로 하고, 클래스 혹은 종족 명칭은 능력치 뽑는 한 가지 길잡이밖에 되지 않거든요. 클래스나 종족은 던전 규칙상 자유롭게 만들 수 있지만, 어스돈을 배경으로 사용하는 만큼 그쪽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능력치는 인물의 개성과 능력, 중점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같은 도둑이라도 승한군의 키브처럼 말솜씨 내지 영향이 주요 능력치인 도둑과 뒤에서 찌르기가 주요 능력인 도둑 (이쪽은 거의 암살자), 훔치는 능력이 주인 도둑은 각자 분위기가 다를 테니까요.
가장 적용 범위가 넓은 주요 능력은 공격, 방어, 영향 판정 등 한 가지 상황에 모두 적용하면 되어서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인물이 무엇을 잘하는지 정하기만 하면 됐으니까요. 반면 뭔가 한 가지씩 상황 제한이 붙어야 하는 보조 능력들은 어떤 제한이 적합할지 꽤 얘기를 해야 했습니다. 단도라는 장비 제한, 소매치기라는 수단 제한, 모든 피하기 대신 근거리 피하기 등등.
개인적으로 제일 재밌었던 부분은 어스돈 전사의 나무 살갗 [Wood Skin] 재능을 던전식으로 표현하는 대목이었습니다. 규칙이 얼마나 플레이 모습에 영향이 큰지 잘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했죠. 원래 어스돈의 나무 살갗 능력은 회복 판정을 추가로 하는 능력인데, 던전에는 회복 판정이 없거든요. 그래서 논의 끝에 치유 마법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보조 능력으로 넣은 마법은 마법 단어가 두 개라서 ‘치유’ 외에 또 뭘 할까 머리를 싸매다가 나무껍질이라는 이미지에 맞추어 ‘질기다’를 골랐습니다. 그리고 질기다는 마법 단어는 끈기를 높여주는 주문으로 사용할 수 있겠다고 얘기가 돼서 결국 치유/버프를 하는 이상한 오크 전사가 됐죠. 규칙에 따라 추가 회복 판정 능력이 이렇게까지 달라진다는 점이 재밌었습니다.
3. 점수 분배, 마무리
가장 시간이 오래 걸렸던 능력치 제작 후에는 20점을 다섯 능력치와 두 가지 내성 굴림, HP에 분배해서 인물 제작을 마쳤습니다. (재산과 장비 중 하나는 5, 하나는 3으로 하면 되는데 이건 간단하게 할 수 있으니.) 능력치와 마법 규칙도 읽어보고 얘기하느라 시간이 좀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그게 아니면 상당히 빨리 마칠 수 있는 과정이더군요.
이렇게 해서 두 명의 1레벨 모험가로 다음 주부터 첫 모험을 합니다. 도둑과 전사라니 꽤나 모범적인 구성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전사가 엉뚱하게 치유 마법까지 쓰니까 성직자도 있는 셈. 던전의 모티프이기도 한 옛날 D&D 클래식 생각이 나면서도 좀 색다른 맛으로 즐길 수 있을 것 같네요. 어스돈은 둘다 좋아하는 세계인지라 어떤 이야기가 될지 기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