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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들을 얼마나 믿을 것인가?

어제 ‘플레이어간의 믿음’에 관해 트위터의 타임라인이 잠시 시끌시끌했고, 저도 어느 정도 논쟁에 참여를 했습니다(사실 불을 지른 당사자 중 하나죠). 어제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RPG에서 믿음은 ‘상식’에 관한 믿음과 ‘역량/지식’에 관한 믿음으로 나눌 수 있다고 봅니다.

상식 : (GM을 포함한) 플레이어들이 서로가 호의와 선의를 가지고 재미있게 플레이할 것으로 생각하는 신뢰지요. 이건 당연히 가져야 하는 믿음이고, 이걸 전제로 하지 않으면 RPG 자체가 재미가 없습니다. 이건 논의의 대상조차 아닙니다.

역량/지식 : 하지만 플레이어들이 서로 호의와 선의를 가지고 머리를 맞대면 원하는 만큼 이야기를 재미있게 이끌어갈 수 있다? 여기서부터는 의심의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RPG 룰북의 의의도 여기에 있고요.

저는 RPG 규칙이 “이 부분은 플레이어들이 모르거나, 혹은 알더라도 세부적인 사항으로 들어갈 때 논쟁이 발생할 부분”을 명확하게 정의하기 위해 다루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누메네라의 ‘마스터 개입’은 RPG 초기부터 여러 훌륭한 마스터들이 플레이를 진행한 방식이라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부분을 왜 굳이 ‘마스터 개입을 할 때 PC들에게 경험치를 준다’라는 규칙으로 명문화시킨 걸까요?

저는 몬티 쿡 씨가 ‘누메네라를 재미있게 즐기려면 때때로 예측 불허의 위험을 일으켜야 한다. 하지만 수많은 플레이어는 이 방식을 모르거나, 알더라도 서로 만족스럽게 이야기를 만들 때까지 시간이 걸릴 거다’ 라는 판단을 내려서 이 규칙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플레이어들의 역량/지식을 가장 낮은 수준으로 가정했기 때문이지요.

물론 누메네라의 경험치 규칙 같은 경우는 “이 정도는 팀 내에서 알아서 처리할 수 있는 문제다.” 라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일 테고, 저도 이 부분에는 동의합니다. 저도 별다른 문제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아냐! 플레이어들은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그런 부분도 어쩔 줄 모르는 바보라고!” 라고 한 번쯤 의심하는 건 충분히 생각해 볼 만한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몬티 쿡 씨 역시 이 부분을 “경험치 옵션 룰”에서 짚고 넘어갔고요.

저는 현대적인 RPG, 또는 인디 RPG의 의의 중 하나가 기존 “전통적 RPG”에서 그저 “팀 내에서 논의만 잘 되면 해결될 문제”라고 여기고 넘어간 사항들을 파헤치고 규칙으로 만든 데에 있다고 봅니다. 낯설게 생각하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건 혁신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방법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