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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쯤 해보고 싶은 게임, 니코틴 걸즈 (2)

http://www.halfmeme.com/nicotinegirls.html

저소득층 10대 소녀들이 꿈을 찾으려 노력하는 니코틴 걸즈(Nicotine Girls)의 룰은 다음과 같다.

* 캐릭터 메이킹 – PC는 16세에서 19세 사이의 소녀들이다.

– 동기
PC의 동기로는 희망과 두려움 두가지가 있다. 6점을 희망과 두려움 사이에 분배하라. 6점 모두를 희망이나 두려움 한가지에 넣을 수는 없다.

– 수단
PC가 동원가능한 4가지 수단은 섹스, 돈, 눈물, 담배이다. 이중 두가지는 2, 두가지는 1에서 시작한다.

– 꿈
PC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한문장으로 적도록.

* 판정

– 판정에는 d10을 사용한다.

– 어떤 행동에 성공하고 싶을 때 플레이어는 동기(희망 혹은 두려움), 그리고 수단(섹스, 돈, 눈물 중에서만)을 고른다.

– 선택한 동기만큼의 d10을 굴린다. 이중 선택한 수단과 같거나 더 적게 나온 주사위는 하나의 성공으로 친다.

– 대개의 행동에서는 성공이 하나라도 있으면 PC는 뜻을 이룬 것이다.

– 담배
다가올 갈등에서 성공률을 높이고 싶다면 플레이어는 언제든지 다른 PC나 NPC와 같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요청할 수 있다. 담배를 피우면서 충고를 받는데, 이 충고를 받아들이는 경우 그 판정에서 담배 점수만큼의 다이스를 다이스풀에 더할 수 있다.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 반대로 다이스풀에서 담배 점수만큼을 뺀다. 만약 담배 점수를 뺀 결과 다이스풀이 0이나 음수가 된다면 자동적으로 실패한다.

– 희망
판정의 동기로 희망을 사용할 경우, 만약 실패하면 그 세션 내에는 다시는 희망을 사용할 수 없다. 희망을 동기로 사용해서 성공했을 경우 두려움이 1 내려간다. 희망으로 판정해서 한번도 실패하지 않은 경우 PC의 희망은 1 올라간다.

– 싸움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할 목적으로 치고받고 싸우는 행동은 무조건 두려움으로 굴리고, 1로 나온 주사위만 성공으로 친다. 같은 여자와 싸울 경우 한 개의 성공, 남자와 싸울 경우 두 개의 성공이 요구된다.

– 두려움
PC는 언제든지 자신의 삶 속에 다음 상황 중 하나가 벌어지게 해서 표시된 만큼 두려움 점수를 늘릴 수 있다.

남자친구나 남편의 죽음 10
이혼이나 별거 7
형을 살다 나옴 6
가족의 죽음 6
심각한 질병이나 부상 5
결혼 5
해고 5
남자친구나 남편과 화해 5
가족 중 하나의 건강의 변화 4
임신 4
성적 어려움 4
가족이 늘다 4
재산관계의 변화 4
가까운 친구의 죽음 4
직장이 바뀜 4
1000만원 이상의 돈을 꿈 3
직장내 위치가 바뀜 3
시댁과의 갈등 3
놀라운 성취를 이루어냄 3
남자친구나 남편이 직장을 시작하거나 관둠 3
학교 입학이나 졸업 3
주거 변화 3
직장 상사와의 갈등 2
직장 환경의 변화(시간 등) 2
이사 2
전학 2
유흥활동의 변화 2
교회 활동의 변화 2
사교활동의 변화 2
1000만원 미만의 돈을 꿈 2
가족 모임 1
식사생활의 변화 1
휴가 1
경미한 범법행위 1

* 결말

캠페인의 끝에서 플레이어는 희망 점수만큼 d10을 굴려서 1로 나온 다이스만을 성공으로 친다. 성공이 두개 이상 있으면 캐릭터는 꿈을 이룬 것이다. 결말은 플레이어가 직접 서술한다.

이와 같이 니코틴 걸즈는 매우 간단한 룰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룰 자체가 하나의 코멘터리로 느껴지는 특징이 있다. 대표적으로 두려움은 희망보다 훨씬 쉽게 늘지만 최종으로 꿈을 이루는 것은 희망에 달렸다는 역설이 그렇다. 그만큼 사람이 살아가면서 희망은 쉽게 부서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은 늘고, 점점 처음에 생각했던 꿈은 현실에서 멀어져 후회로 남는다고 해석하면 지나친 생각일까.

또하나, 이 게임의 PC들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저소득층 가정의 10대 소녀라면 벌써 돈도 없고, 나이도 어리고, 게다가 여자라는 점에서 남성중심적인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미 불리할대로 불리한 출발점인 것이다. 따라서 게임에서 동원할 수 있는 수단–성적 매력, 눈물–은 모두 약자의 무기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돈도 없고 연줄도 없는 어린 여자아이들이지만 남자들의 성욕이나 타인의 동정심에 기댈 수 있을지는 모르니까. (‘돈’ 수단은 돈이 많다는 뜻이 아니라 돈을 삥땅치거나, 훔치거나, 아니면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팔거나 해서 없는 돈을 만드는 능력을 말한다.)

새삼 말할 것도 없지만 니코틴 걸즈는 유쾌하지도 희망적이지도 않다. 이리 부대끼고 저리 부대끼는 삶 속에서 꿈을 이루기는 쉽지 않으며,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는 더욱 어렵다는 현실의 한 일면을 게임으로 표현한 RPG기 때문이다. 물론 그만큼 불리한 조건에서 자기 꿈을 성취한 소녀는 얼마든지 있으며, 앞으로 더욱 많아져야 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소녀들, 그들 니코틴 걸을 위해, 크게든 작게든 현실에 져버린 우리 모두 안에 있는 니코틴 걸에 대한 진혼처럼 나는 ‘니코틴 걸즈’를 플레이해보고 싶다.

한번쯤 해보고 싶은 게임, 니코틴 걸즈

http://www.halfmeme.com/nicotinegirls.html

니코틴 걸즈(Nicotine Girls, 2002 © Paul Czege)는 걸작 인디게임 ‘주인님과 함께(My Life with Master)’의 디자이너가 만든 무료 공개룰인데, 여러모로 ‘주인님과 함께’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게임이다. 몇가지 공통점을 들자면

1. 다이스풀의 사용

메카닉 면에서는 다이스풀의 사용을 들 수 있다. 다만 다이스풀은 수많은 RPG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고, ‘주인님’과 ‘니코틴’은 사뭇 다이스 사용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그다지 의미있는 비교는 아니다.

2. 극도로 협소한 장르룰

둘다 매우 좁은 배경과 아주 적은 수의 행동만이 가능한 협소 장르 룰이다. ‘주인님과 함께’는 고딕 호러를 모티프로 하고 있으며, 사악한 주인에게 매인 하인들이 인간성을 되찾고 주인님을 살해하는 내용만을 지원하고 있다. ‘니코틴 걸스’ 같은 경우 도심에 사는 저소득층 소녀들이 자신의 꿈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조금 있다 설명하겠지만 대개 실패한다.)

또한 ‘주인님과 함께’에서 가능한 행동이 주인님의 명령에 저항하거나, 수행하거나, 마을 사람에게 인간적으로 접근하거나, 아니면 주인님을 죽이는 4가지에 한정되어 있듯이 ‘니코틴 걸즈’에서는 섹스, 돈, 눈물, 담배 피우기 4가지만이 가능하다.

이렇게 극도로 협소한 장르 를은 실제로 GM과 플레이어 모두에게 제한적이다. 하지만 이렇게 제한된 범위의 행동과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드라마는 생각 이상으로 강렬하며, 무한한 자유가 제한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선택은 쉬워진다. ‘주인님’이나 ‘니코틴 걸즈’를 플레이하면서 막막한 느낌이 든다면 그건 PC를 통해 인간의 무력함을 깨달았기 때문이지, 다음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또 하나, 이러한 장르 룰은 그 장르의 분위기를 모르면 플레이가 어려워진다. 실제로 ‘주인님’ 캠페인을 돌리면서 깨달은 점이었는데, 고딕 호러 장르가 국내에 친숙하기 않기 때문에 생긴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니코틴 걸즈’도 마찬가지여서, 이 게임에서 저소득층 소녀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하면 플레이가 완전히 엇나갈 가능성이 높다.

3. 정신적 스탯의 사용

‘주인님’과 ‘니코틴’은 둘다 일반 RPG에서 쓰는 힘, 지능, 지혜, 민첩성, 건강 등등의 특성치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그 대신 ‘주인님’의 PC들에게는 자기혐오와 무력감, 그리고 사랑이 있고, ‘니코틴 걸즈’의 소녀들에게는 희망과 두려움 두가지 스탯이 있다.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극도로 제한된 장르에만 유용한 스탯이다. 또 한편으로 이런 정신적 스탯은 시스템과 플레이의 관계를 매우 긴밀하게 해준다. ‘이번에 강아지에게 먹이를 줘서 사랑을 올리면 주인님을 죽일 수 있어!’라든가 ‘이번 판정에 희망을 쓰는 건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일단 두려움으로 하고 희망은 다음 기회에 늘리자.’와 같은 판단은 시스템에 대한 판단이면서 동시에 극적인 결정이기도 하다.

4. 장면전환식 플레이

둘다 전통적인 파티플레이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각 플레이어가 돌아가면서 한 장면씩을 플레이하는 형태이다. ‘주인님’의 경우 다이스 더해주기, ‘니코틴’의 경우 담배를 통해서 각 플레이어가 서로의 판정에 영향을 줄 방법을 마련하고 있기는 하다. 이러한 형태의 플레이는 플레이어가 많을수록 자칫하면 플레이어의 몰입도 저해와 지루함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5. 시작과 끝이 있는 캠페인

마지막으로 한가지 공통점이라면 둘다 시스템 자체적으로 캠페인의 결말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캠페인은 끝이 나고 결말을 서술하도록 되어 있다. 이 또한 다른 RPG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