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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바운드, 반신반인 영웅을 플레이하는 RPG

한때 강대한 제국이 있었습니다.

제국은 강대한 힘과 마법으로 주변 나라를 복속시켜 마침내 세상을 통일했고, 더 나아가 자신들의 정의를 증명받기 위해, 그리고 인류가 나아갈 길을 찾기 위해 천상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제국의 마법사와 군인들은 천사의 군세를 무찌르고 천상을 정복하여 마침내 조물주의 옥좌에 도착했지만, 옥좌는 비어 있었습니다.

인간들은 신이 자신들을 버렸다고, 혹은 신 같은 것은 애초부터 없었다고 슬퍼하고 분노했지만 이내 서로 옥좌를 차지하기 위해 자신들의 이념을 형상화한 인공 신을 만들어 내전을 벌였고, 세상은 산산조각이 나 기나긴 암흑의 시대에 들어갔습니다.

천 년 동안 계속된 전쟁 속에서 인공 신들이 하나둘씩 파괴되며 이들이 지녔던 천상의 에너지는 세계 곳곳으로 흘러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 사이에서 신의 힘을 얻은 반신(半神)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바로 갓바운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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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바운드?

<갓바운드(Godbound)>는 폐허가 된 세계에서 신의 힘에 눈뜬 영웅, 즉 갓바운드가 되어 세상을 구하는(혹은 파괴하는) RPG입니다. 갓바운드는 보통 인간으로는 상상도 못할 권능을 행사하면서 이 세상을 활보하는 괴물들을 무찌르고, 폭군의 압정에 신음하는 나라를 구하며, 더 나아가 복수심에 불타는 천사들과 여전히 서로 전쟁을 벌이는 인공 신들, 존재 너머의 무리들과 맞서 싸우면서 세상을 구합니다.

OSR(“올드 스쿨 르네상스”), 고전 D&D의 새로운 부활.

최근 서양 RPG계는 실험적인 규칙을 내세운 ‘스토리 게임’ 못지 않게 1970~80년대 RPG 규칙의 영향을 받은 신복고풍 RPG, 즉 OSR(“Old School Renaissance”)풍 RPG들의 비중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OSR 디자이너들은 과거 RPG의 특징인 간결한 규칙과 상상력을 중시하는 플레이를 강조하면서, 특히 고전 D&D의 분위기를 되살리려는 노력을 많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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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책들은 한국의 옛 RPG 팬이라면 한 번 정도는 보았을 “고전 D&D”, 즉 D&D BECMI입니다. BECMI는 Basic, Expert, Companion, Master, Immortals의 약자입니다. 우리 나라에는 Master까지 나왔지요.)

<갓바운드> 역시 OSR풍 RPG 중 하나입니다. 제작자 케빈 크라우포드는 OSR 디자이너 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으며, <갓바운드> 외에도 <사일런트 레기온>(러브크래프트풍 호러), <스타즈 윗아웃 넘버>(SF) 등 다방면의 RPG를 OSR풍 규칙으로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갓바운드는 고전 D&D 팬들에게 익숙한 요소(여섯 가지 능력치, 레벨, 낮을수록 좋은 방어도, 극복 판정, 사기 판정 등)를 많이 갖추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개성적인 면모를 많이 갖추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적인 캐릭터를 플레이하기 위해서

설정부터 거창한 만큼, 갓바운드들은 강력한 신적 존재입니다. 갓 힘에 눈뜬 초보 갓바운드라 할지라도 평범한 인간 십여 명 정도는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으며, 갓바운드들이 힘을 합치면 강력한 왕국도 쉽게 무너뜨립니다. 오직 갓바운드와 동급인 천상의 존재들과 괴수들, 그리고 인간 중 정말로 뛰어난 일부 영웅만이(수많은 부하들을 이끌고 치밀한 준비를 해서) 갓바운드를 상대할 수 있습니다. <갓바운드>는 이러한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몇 가지 특수한 규칙을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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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피해 규칙의 변화입니다. 갓바운드와 다른 적들은 피해를 받을 때 적용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갓바운드는 피해를 받을 때 생명점이 깎이지만, 다른 적들은 피해 주사위의 결과에 따라 HD(히트 다이스, 적들의 레벨)가 깎입니다. 갓바운드의 피해 계산법은 보통 피해 주사위의 결과에 따라 일정량의 피해를 받는 방식인데, 예를 들어 갓바운드가 인간에게 대형 검(1d10)을 휘둘렀을 때 피해 주사위의 결과가 1 이하면 HD에 0점, 2~5면 1점, 6~9면 2점, 10+이면 4점 피해를 줍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HD가 1~2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보통 일격에 죽지요. 또한 남은 피해는 주변 적에게 들어가기 때문에 한 방에 두세 명씩 쓰러지는 경우도 흔합니다. 게다가 갓바운드는 주변에 신성력을 자동으로 행사하므로, 갓바운드의 레벨보다 기존 HD가 같거나 낮은 적들은 라운드마다 일정량의 피해를 입습니다. 그래서 여러 졸개들이 달려들어도 몇 라운드 후면 모두 쓰러질 수 밖에 없지요.

두 번째는 ‘창조의 언어’입니다. 모든 갓바운드는 천상의 힘인 창조의 언어를 지닙니다. 창조의 언어는 활, 명령, 죽음, 속임수, 불, 생명, 지식, 바다, 하늘, 검, 마법 등 다양한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갓바운드는 자신의 영역을 이용해 기적을 일으키고 전투 중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순간 이동, 초인적인 속도, 물리 공격에 무적, 부활시키기 등등…).

세 번째는 영향력과 지배력 점수입니다. 갓바운드는 레벨이 오르면서 영향력과 지배력 점수를 얻으며, 이 점수들을 이용해 세상에 축복이나 저주를 내리고, 신들의 무기를 만드는 등 막강한 권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샌드박스 플레이를 권장하는 RPG

<갓바운드>의 또 다른 특징은 높은 자유도를 보장하는 샌드박스 플레이의 권장입니다. <갓바운드>는 특정한 이야기의 줄거리를 만들지 않은채, PC들이 주도해서 사건을 이끌도록 권장합니다. 이를 위해 <갓바운드>에는 GM이 PC들의 행동에 재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몇 가지 기법을 소개하고 있으며, 여러가지 세력과 이들의 특징, 지도자, 문제점 등을 만드는 표를 준비했습니다. 특히 추가 자료집인 <식스틴 소로우즈>는 PC들이 마주칠 각종 문제를 즉석에서 만드는 내용을 다루고 있어서, 갓바운드 뿐만 아니라 다른 RPG에서도 무척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갓바운드>는 올해 접한 RPG 중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만큼 무척 뛰어난 게임입니다. 가능하다면 판권을 얻어 한국에도 소개하고 싶네요. 그렇지 못하더라도 꼭 플레이해보고 싶은 RPG입니다.

p.s : 

갓바운드는 무료판이 공개되어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한 번 보세요. 각종 추가규칙이 빠진 것을 제외하면 유료판과 완전히 똑같습니다!

http://www.drivethrurpg.com/product/185959/Godbound-A-Game-of-Divine-Heroes-Free-Ed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