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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 가문 흥망사

르네상스 이탈리아를 소재로 역사 캠페인을 해볼까 하여 메디치 관련서적을 잔뜩 샀었습니다. 그중 처음 잡은 메디치 가문 흥망사를 방금 덮었는데… 뭔가 애매하게 남는 이미지만 있고 캠페인에는 뭘 써먹어야 할지..(…) 일단 떠오르는 것이라면

1. 메디치는 예술가를 무진장 많이 후원했다. 17세기 들어서는 많은 과학자도. (예술과 건축 관련 주석만 수십 페이지..)

2. 인생무상이다 (코시모와 로렌초로부터 시작한 전유럽적 정치·자본 권력이 말기에 와서 형편없이 몰락하는 그 모습이란)

3. 부자는 망해도 몇대는 간다 (사실상 로렌초에서부터 자본력이 기울기 시작했는데, 말기에는 재정 상태가 형편없이 나쁘던 와중에도 온갖 연회와 예술작품 의뢰, 게다가 유럽의 온갖 왕가와 맺은 정략혼인…)

4. 정말 많이 치고받고 싸웠다 (툭하면 전쟁한다. 툭하면 외세가 치고 들어온다. 이탈리아 이놈의 동네 정말 콩가루구나.)

5. 정말 국제적으로 놀았다 (대표적으로 스페인과 프랑스하고 비잔티움하고 나폴리하고 베네치아하고 피렌체하고 이 온갖 어지러운 동맹의 이합집산은 뭐냐…마지막 메디치 공작이 죽고 나서는 오스트리아가 피렌체 접수.)

6. 근친혼은 나쁘다 (친척들하고 결혼하기 시작하면서 메디치에 온갖 괴벽이 나타났다는 건 나의 편견일지도..)

7. 메디치 나쁜놈. (쫓겨나면 외세 끌어들여서 권력 되찾는 저 지겨운 습성이란.)

8. 크악! 난 바보다! (왜 책 첫머리에 있는 지도를 못보고 책에 나오는 온갖 지명에 헷갈려 했던가)

뭐, 역사 캠페인을 한다면…기본적으로 강변에 죽 늘어선 휘황한 건물들의 행진, 그 뒤의 좁고 지저분하고 위험한 뒷골목, 몇날 며칠을 계속되는 현란한 연회, 전쟁중의 가혹한 세금과 쪼달리는 재정, 공회당(팔라초 델라 시뇨리아) 앞에서의 시위, 잔혹한 심문과 처형, 무조건 승자에게 환호하면 되는 개선 행진, 기아에 허덕이는 공성전 중의 도시, 권력자의 빌라에 진열된 아름다운 조각상과 그림들, 실각한 권력자의 저택에 대한 약탈, 장엄한 함대의 출항, 굶주림과 채찍질에 시달리는 선원들, 역사의 격변 속에서 집단 히스테리에 가까운 최고의 환희와 폭력과 공포와 절망의 구덩이를 오가는 도시의 분위기…

한마디로 삶 자체만큼이나 혼란스럽고 복잡다단한 모습이 될 것 같군요. 화려하고 잔인한, 아름답고 추악한 인간의 모습이.

몇가지 발상이라면…

1. 주인공들은 외교사절. 프랑스라든지 나폴리, (합병 전의) 아라곤 등으로 가서 메디치가의 동맹을 만들자! 그 와중에 온갖 외국문물도 보고, 이성도 꼬시고… 내지는 메디치가 도령이나 아가씨를 위한 결혼상대 찾기라든가.

2. 주인공들은 최고의 환영축제를 기획하기 위해 메디치의 의뢰를 받은 조각가, 건축가, 화가, 배우, 음악가 등등. 과연  이들은 함께 길이길이 기억될 축제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3. 메디치가를 실각시켜라! 실제 역사에서는 실패했던 알비치, 아니면 후대의 파치 음모를 성공시키자! 혹은 메디치가가 권력 회복을 노리며 끌어들인 스페인 군대에 대항해 피렌체를 지키자!

…뭐 이런 것들이 가능하겠군요. 당연히 평행세계의 피렌체로서 주인공들의 행동에 따라 역사는 변하고, 진행자의 취향에 따라 이런저런 세부사항이 달라질지도요.. (퍽)

한다면 규칙으로는 페이트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겁스보다 간단하고 극적 갈등을 쉽게 만들 수 있으니… 시대의 성격과 진행자의 타락(?) 때문에 아마도 성인전용. 어쨌든 많은 준비와 생각이 필요하겠지만, 일단 메디치가 흥망사는 훌륭한 시작 자료가 되어주겠군요. 지도와 잘 만들어진 색인 때문에…

베로니카 프랑코 관련자료

베로니카 프랑코 관련 페이지(영문) – 16세기의 유명한 베네치아 기녀 베로니카 프랑코에 대한 자료가 있는 곳입니다. 베로니카는 제 7번째 바다 히어로, 보다체 기녀인 나탈리아의 일부 원형이기도 합니다. 특히 나탈리아가 시인이라는 설정은 프랑코에게서 따온 것이죠. 프랑코의 시문이 영문으로 꽤 번역되어 있어서, 기회가 되면 나탈리아의 연기에 써먹어야겠군요.

당신은 먼 나라로 떠나가고
나는 남았죠, 당신 없는 하루하루를
어둡게 만든 불길의 희생양 되어…

구멍에 숨은 귀뚜라미가
늘 그렇듯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내 흉을 본들, 내가 어찌하리?

사람이 마음껏 사랑할 수 있어
충돌하는 욕망에 괴롭지만 않을 수 있다면
사랑의 기쁨에 비할 것이 어디 있을까…

멋진 여성 – 라 모팽

라 모팽의 생애(영문 페이지)

쥘리 모팽(1670~1707)은 뒤마의 소설에 나올 법한 인물로, 파리에서 큰 인기를 끈 콘트랄토 가수였지만 그 이상으로 현란한 칼솜씨와 수많은 남녀 연인으로 유명합니다.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에 대한 기록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버지 가스통 도비니는 다르마냑 백작의 비서관이었고 사생활에 있어서는 대단한 난봉꾼이자 결투가였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 지위 때문에 딸 쥘리(일설로는 에밀리)에게 좋은 교육을 시켜줄 수 있었고, 칼은 직접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녀는 곧 왠만한 결투가는 이길만한 실력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뛰어난 미녀로 자라난 쥘리는 16세때 아버지의 상관인 다르마냑 백작의 눈에 들어 그의 정부가 되었고, 다르마냑은 이 관계가 소문나는 걸 막기 위해 그녀를 상-제르맹-앙-레이 출신의 건실한 청년 모팽에게 결혼시켰지요. 그리고 1년쯤 후 어린 정부에게 싫증이 난 다르마냑은 모팽에게 지방의 작은 관직을 주어 파리에서 떠나보내지만, 계획과는 달리 마담 모팽은 남편을 따라가지 않고 파리에서 혼자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다니는 펜싱 연습소에서 세란느라는 젊은이와 연인이 됩니다. 세란느는 당시 경찰에게 쫓기고 있던 관계로 모팽에게 마르세유로 가면 둘이서 살만큼 수입이 되니 같이 가자고 꼬시고, 그녀는 그를 따라 나서지요.

막상 마르세이유에 와 보니 세란느의 수입이란 보잘것 없었고, 두 연인은 먹고 살기 위해 주점을 돌아다니며 노래 공연과 펜싱 시범을 시작합니다. 그때 당시의 일화가, 검술 시범을 보이고 있는데 관객 한명이 남자옷을 즐겨입은 모팽의 뛰어난 실력을 보고 여자일 리가 없다며, 관객 끌려고 소년을 여자라고 속이는 거 아니냐고 야유합니다. 이 말에 모팽은 레이피어를 내던지더니 웃옷을 확 잡아뜯어서 가슴을 드러내지요. 그날 저녁 수익은 최고였다고 합니다. (…)

마르세이유는 라 모팽이 오페라 가수로서 데뷔한 곳이기도 합니다. 음악적 교습은 받지 못했지만 아름답고 풍부한 콘트랄토 (가장 낮은 여성 음역) 목소리를 가진 모팽은 피에르 골티에의 눈에 들어 그의 아카데미에서 교육받고, 처녀적 성을 예명으로 사용해 ‘마드므와젤 도비니’로서 무대에 섰죠. 한동안 세란느와 모팽은 극장에서 노래부르며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던 중 세란느에게 슬슬 싫증이 난 라 모팽은 자신의 열렬한 팬인 마르세이유 미인 아가씨와 사랑에 빠지지요. 아가씨의 부모는 두 사람을 떼어놓기 위해 딸을 아비뇽에 있는 수녀원으로 보내지만 정열 빼면 시체인 라 모팽, 이번에는 여성이라는 점을 이용해서 연인을 따라 수녀원에 들어갑니다. 얼마 안있어 수녀 하나가 죽어서 수녀원 경내에 묻히는데, 모팽은 이 시체를 몰래 파내어서 아가씨의 침대에 눕혀놓고 불을 지르죠. 그리고 혼란을 틈타 아가씨를 데리고 도망칩니다.

약 3개월 후, 모팽은 이 연인에게도 싫증을 내고, 아가씨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궐석재판에서 모팽은 수녀원에 불을 지른 죄, 아가씨를 납치한 죄 등으로 화형을 언도받습니다. 재미있게도 피고인은 남성으로 불리고 있죠. 아마도 당시로서는 이 사건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점, 즉 동성애가 관련되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였던듯 합니다.

모팽은 마르세이유를 떠나 노래로 먹고 살며 떠돕니다. 그러던 중 비록 주정뱅이지만 재능있는 음악가이자 배우였던 마레칼이 모팽의 재능을 알아보고 노래를 가르치지요. 결국 알콜중독이 심해져 그녀를 가르칠 수 없게 되자 마레칼은 제자에게 파리로 가서 그 재능을 살릴 것을 권합니다.

파리로 향하던 중 모팽은 많은 연인 중에서도 가장 특별하게 사랑할 사람, 루이-죠셉 달베르 드 루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의 만남에 대해선 두가지 서로 다른 이야기가 있지만 공통되는 점이라면 이 귀족 청년이 모팽의 성질을 건드려서 둘은 결투를 하게 되었고, 그러다가 달베르가 모팽의 매서운 칼솜씨에 심한 부상을 입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모팽이 간호해 주는 과정에서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달베르는 군으로 복귀하고 모팽은 파리로 향하면서 아쉽게 헤어진 두 사람은 이후 다른 많은 연인을 만들었지만 언제나 서로에게 특별한 사람이자 믿을 수 있는 친구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파리로 계속 여행하다가 이번에 모팽은 가브리엘-뱅상 테브나르를 만납니다. 그 역시 재능있는 베이스 가수이고 파리로 향하고 있던 테브나르는 모팽의 연인이 되고(잘 알려진 연인만 해도 이게 다섯번째쯤 되는듯..ㅡ.ㅡ), 둘은 함께 파리로 향합니다. 하지만 사형선고 때문에 파리에서 바로 공공의 눈앞에 나타날 수 없던 모팽은 마레에 먼저 들려서 옛 연인인 다르마냑 백작을 만납니다. 전과 다름없이 그녀의 매력에 맥을 못추는 백작은 왕에게 직접 판결 취소를 부탁하고, 모팽의 화려한 전적을 내심 재밌어 하던 왕은 사면을 내렸죠.

이제 장애물이 없어진 모팽은 20세의 나이에 파리 입성, 테브나르가 먼저 단원이 된 파리 오페라단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카드뮈와 에르미온느’에서 아테나 역으로 데뷔하지요. 이번에는 마드므와젤 도비니 대신 마드므와젤 모팽의 이름으로. 그녀는 파리의 무대에 선 첫 콘트랄토였다고 하며, 아름다운 목소리와 빼어난 외모, 그리고 넘치는 존재감으로 순식간에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역시나 파리 오페라에서도 라 모팽은 끊임없는 스캔들을 일으켰습니다. 데뷔하고서 곧 테브나르를 헌신짝처럼 버린 그녀는 마드므와젤 로슈아와 사랑에 빠지더니만 다음에는 팡숑 모로를 짝사랑하다가 라 모로가 마음을 받아주지 않자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다른 유명한 사건이라면 뒤메닐이라는 테너를 혼내준 일화입니다. 뒤메닐은 부엌에서 일하다가 훌륭한 목소리 때문에 가수로 발탁되었는데, 여가수들에게 천박하게 굴다가 결국에는 라 모팽까지 화나게 했죠. 이걸로 끝난 게 아니라고 경고한 모팽은 밤에 으슥한 골목에서 남장을 한채 뒤메닐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내고 지팡이로 때리면서 결투를 요구했죠. 뒤메닐은 벌벌 떨면서 살려달라고 빌었고, 모팽은 그대신 지팡이로 볼기짝을 50대 때려준 뒤 담배통과 시계를 빼앗아 사라졌습니다.

남장한 모팽을 못알아본 뒤메닐은 다음날 오페라 하우스 분장실에서 세명의 강도에게 습격당해 격투 끝에 담배통과 시계를 강탈당했다고 떠들어 댔고, 모팽은 열심히 듣는척 하다가 뒤메닐에게 거짓말쟁 하지 말라고, 당신을 습격한 것은 나 혼자였다며 그 증거로 바로 그 담배통과 시계를 내놓지요. 다른 가수들의 박수소리로 분장실이 떠나갈 정도였다고 합니다.

오페라 가수로서의 활동과 동시에 모팽은 유명한 결투가로서도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당시에는 왕명으로 결투가 금지된 때였지만 (세란느가 파리를 떠나야 했던 것도 그때문)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국왕의 무도회에서마저 결투를 벌였죠. 게다가 초대받지 않은 무도회였는데 바깥 경비를 눈빛으로 제압하고 그 안쪽 경비를 길을 잃어서 일행과 헤어졌다고 속인 후 경비실을 통해 태연히 무도회장에 들어선 무단침입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후작영애와 몇 곡이나 함께 춤추다가 무도회장 한가운데서 뜨거운 입맞춤을 선사합니다.

이에 아가씨의 구혼자 셋이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결투를 신청했고, 모팽은 그들과 밖에서 만나 셋 모두를 쓰러뜨렸습니다. 그리고 무도회장으로 돌아가 그들의 부상을 국왕에게 알렸죠. 그들을 돕기 위해 사람을 보낸 왕은 자네가 그 유명한 탕녀 라 모팽이냐고 묻고, 결투는 불법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모팽은 자신은 폐하의 신민을 죽이는 일이 없으며 남자와는 검을 들지 않은 만남을 더 좋아한다고 대답하고, 왕은 서둘러 그녀의 말을 막습니다. 모팽은 정중히 인사하고 집으로 돌아가 체포를 기다리지만, 국왕은 결투를 금지하는 법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를 대상으로 한다고 말하며 용서해 주지요. 어쨌든 무도회 사건이 소문이 크게 나버렸기 때문에 모팽은 당분간 몸을 피하기로 하고 브뤼셀로 갑니다.

벨기에는 당시 신성 로마제국 선거후(侯) 막시밀리앙 엠마뉘엘의 통치하에 있었는데, 대단한 바람둥이였던 그는 아무리 잠시 사랑한 여자라도 많은 돈을 주곤 했고, 오랫동안 정부로 있었던 경우 자신의 휘하에 있는 귀족에게 시집보냈다고 합니다. 라 모팽은 한동안 그의 정부로 지냈는데 결국 막시밀리앙은 그녀에게 싫증을 내고 공작부인을 새 정부로 맞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공작부인의 남편 편으로 많은 돈을 보냈지만 모팽은 공작의 얼굴에 돈을 내던져 버리지요. 그리고 이번에는 스페인으로 떠납니다.

오페라가 없던 미드리드에서 돈벌이가 막막했던 모팽은 이탈리아 출신의 미녀인 마리노 공작부인의 하녀로 들어가게 됩니다. (또 뜨거운 사랑에 빠졌다는 얘기를 기대했죠? 하지만…) 이 공작부인과 몹시 사이가 좋지 않았던 그녀는 파리로 돌아갈 여비를 모으자마자 벼르고 벼르던 복수를 실행에 옮기지요. 무도회에 나가는 공작부인의 머리 스타일을 아주 멋지게 꾸며놓고서는 뒷편에 무 여섯 개를 매단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머리 스타일을 칭찬한 공작 부인은 무도회에 참석했고, 순식간에 사람들이 등뒤로 구름처럼 따라다니며 구경하기 시작했죠. 결국 보다 못한 노귀족이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알려주었고, 공작 부인은 즉시 집으로 돌아오지만 하녀는 이미 파리를 향해 바람처럼 도망친지 오래였습니다.

파리 오페라계에서 약 3년을 떠나 있었지만 모팽의 명성과 실력은 건재했고, 마드므와젤 로슈와가 은퇴한 후 공석이었던 프리마 돈나 자리를 제의받습니다. 미네르바로서 무대에 선 28세의 그녀의 귀환을 파리는 열화와 같이 환영했고, 성공적인 경력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때 당시 모팽은 남편을 파리로 돌아오게 해서 그가 죽을 때까지 금슬좋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회가 될 때마다 유명한 군인이자 수많은 여성의 연인인 달베르 공작과 밀회를 즐기곤 했죠. 그러다가 달베르는 결투에서 사람을 죽인 죄로 영창 신세를 졌고, 자유의 몸이 되자 곧 파리를 떠나 콩피에뉴에서 마드므와젤 몽티니와 결혼해 모팽을 포함한 뭇 여성의 가슴을 아프게 했죠. 기묘한 인연이지만 한때 모팽이 사랑했던 막시밀리앙 엠마뉘엘의 정부이기도 했던 마드므와젤 몽티니를 위해 막시밀리앙은 큰 액수의 지참금을 내주었습니다.

달베르의 결혼 후 2년간 모팽이 가장 열렬히 사랑한 연인은 아름답고 기지가 넘치는 프로랑삭 후작부인이었는데, 모팽이 서른다섯 되던 해에 열병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실의에 빠진 모팽은 파리의 오페라 무대에서 은퇴하고 2년 후에 서른일곱의 나이로 파란만장한 생을 마칩니다. 일설에 따르면 수녀원에서 병들어 죽었다고 하는군요. (개인적으로는 그 화려한 사생활을 봐서 성병이 아니었을까 싶지만..;;)

성공한 오페라 가수, 유명한 검객, 전문 말썽꾼..(…) 사회의 눈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마음껏 표현하고, 또 수많은 남녀를 원없이 사랑한 라 모팽. 무절제하고 경박한 인간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솔직한 열정과 대담한 삶의 태도에는 어쩔 수 없는 매력이 있습니다. 그런 라 모팽을 저는 감히 최고의 스워시버클링 히어로의 반열에 올려놓고 싶군요. 혼란하고 부도덕하며 폭력적인 그 시대를 그대로 반영하듯 살아갔지만, 그 속에서도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당당한 멋이란 걸 보여준 그녀에게 경이를 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