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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덴 파일 캠페인 설정회의

어제는 드레스덴 파일 RPG (The Dresden Files RPG) 첫 설정 회의를 했습니다. 이런저런 재밌는 발상은 많이 나왔는데, 결정한 것은 의외로 많지 않아서 (그나마도 잠정적) 다음에도 이어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관전한 광열군의 지적처럼 플레이 방향을 논의해야 설정도 방향성이 생길 것 같네요. 전통과 변화 사이에 갈등하는 도시, 서울…이라는 큰 줄기는 나왔는데 이 질료를 플레이에 어떤 모습으로 살릴까 하는 것이 함께 결정할 사항이군요.
한편 저는 캠페인 마스터링은 연애와 비슷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중입니다. 지금은 초기의 몰입 단계에 빠져버려서 규칙 번역하랴, 신화 자료 읽으랴 너무 재미있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화는 참 뭐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찾아보기 시작하니 없는 게 아니라 많아서 탈이군요. 산을 쌓은 마고 할망, 무당의 시조 바리공주, 용의 딸에게 장가든 왕건 할아버지, 일곱 뱀 딸을 낳은 아기씨, 단군의 어머니는 백호였다는 기록, 청룡과 황룡의 싸움에 지원군으로 나선 궁수… 이런저런 재료로 어떤 그림을 만들 수 있을까 궁리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모습으로 도시에 나타난 옛 신이라든지, 악귀나 신수와의 전투라든지. 일단은 그냥 보는 게 즐겁지만요.
다음번에는 진짜로 재미있는 부분인 도시 내 세력이라든지 위치, 얼굴 등을 설정하게 될 것 같네요. 그 시간에 모두 뵙기를 바라겠습니다.
애원하는 강아지

와줄 거지? 플리즈?

드레스덴 파일 참가자를 위한 공지

오는 일요일부터 설정 들어가는 한국 배경 드레스덴 파일 RPG (The Dresden Files RPG) 캠페인에 참가하시는 분들을 위한 공지입니다.

먼저, 규칙의 기본은 세기의 혼 (Spirit of the Century) 기반이므로 위치에 네포스님과 필데레 필리더님이 번역해주신 세기의 혼 SRD를 참조하세요. 룰이 간단해서 좀 하다보면 금방 감이 잡히시겠지만요. 여기에 드레스덴 파일의 추가 규칙만 드레스덴 파일 RPG 페이지에 번역 시작했습니다. 드레스덴 파일 페이지는 다섯 참가자분만 보실 수 있게 설정해 놓았습니다. 지금은 도시 설정 부분까지 (대충이지만) 해놓았으니 오는 일요일 설정 회의 이전에 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배경 설정을 모두 함께 하고 싶으므로 정규 참가자 분들은 꼭 다 와주시고, 설정 부분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건강한 모습으로 일요일날 뵈어요. ^-^/

비앙카 짤방

이래도 룰북 안 볼래?

드레스덴 파일 RPG: 힘과 자유의지의 함수

사용자 삽입 이미지드레스덴 파일 RPG (The Dresden Files RPG)는 미국 작가 짐 부처 (Jim Butcher)가 2007년부터 시작해 출판해온 드레스덴 파일 시리즈 (The Dresden Files)를 RPG로 만든 작품입니다. 드레스덴 파일 원작은 마법사이자 탐정인 해리 드레스덴을 주인공으로 해서 현대 시카고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현대 도시 판타지/호러입니다. (소설은 이곳에서 자세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저쪽은 개인 블로그라 급 반말이므로 양해를(…))

드레스덴 파일 RPG는 (이하 드레스덴 파일) 원작의 이러한 분위기를 살려서 환상적이고 괴기한 도시 모험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시스템의 기본은 세기의 혼과 같아서, 빠른 활극이나 면모를 통한 풍부한 인물 표현이 잘 살아있습니다. 여기에 현대 판타지라는 장르에 맞추어 추가한 드레스덴 파일만의 규칙이 플레이에 또 다른 깊이를 더하고 있지요. 세기의 혼은 이미 소개한 바 있으니 여기서는 드레스덴 파일만의 추가 규칙을 중점적으로 다룹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이라면 도시 제작 규칙이 있습니다. RPG는 원작 드레스덴 파일처럼 현실 도시를 배경으로 한 모험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원하는 도시를 선택해 재미있는 발상이 나올 만한 위치나 역사적 사건, 인물 들을 조사할 것을 권고하고 있지요. 플레이의 원천을 실제 시간과 공간에서 뽑아내는 이러한 방식은 현대 판타지라는 지향을 잘 살리고 있다고 봅니다.

도시 정보가 왠만큼 모인 후에는 모든 참여자의 논의를 통해 도시의 중심적인 테마와 위협을 추출합니다. 테마는 도시에 장기적으로 나타난 도시의 성격 (‘정치하는 놈은 다 썩었다’, ‘예쁜 여자가 밤에 혼자 나가면 무사히 돌아오지 못한다’), 위협은 최근에 나타난 급박한 상황 (‘어린아이가 사라지는 일이 급속히 늘었다’, ‘도시의 이상기후가 위험수위를 넘었다’ 등)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테마와 위협을 기반으로 해서 팀은 함께 도시의 세력과 주요 위치, 얼굴을 설정합니다. 세력은 도시의 평화를 유지하고 싶어하는가 깨고 싶어하는가, 초자연 세계를 아는가 모르는가 구분합니다. 도시 속의 주요 위치는 인물과 사건이 결집하는 곳, 예를 들어 도시의 영능력자가 잘 가는 카페라든지, 무도가들이 모이는 도장 등 도시의 주요 세트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굴은 도시의 테마와 위협, 위치를 대표하는 일련의 인물이지요. 이렇게 설정한 세력과 인물은 각자 원하는 것이 있고, 이들 목표의 일치와 긴장 속에서 일촉즉발의 갈등상황을 만들어냅니다.

이 갈등선을 건드려 폭발을 일으키는 존재가 바로 주인공 (PC)입니다. 이들은 세기의 혼과 비슷하게 폭넓은 분야에서 활약하면서도, 각 인물의 사연과 사람됨을 표현하는 면모나 그만의 재주 (stunt)를 통해 개성을 살릴 수 있습니다. 또한, 판타지라는 장르에 걸맞게 드레스덴 파일에서는 초인적인 속도나 힘, 마력, 예지력 등 초자연적인 이능력을 폭넓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강력한 힘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드레스덴 파일 RPG의 각 인물은 그의 본질을 표현하는 특징이나 속성, 인연, 경험, 능력 등이 있습니다. 이 중 중요한 것을 추린 것을 면모라고 하지요. 이러한 면모는 자발적으로 발동해 판정 가산점이나 다른 이익을 받을 수도 있고 (예를 들어 ‘재원이 엄마’ 면모를 발동해 재원이를 구하는 판정에 보너스, 재원이네 유치원 학부모와 마주쳐 도움을 받음 등등), 강제로 발동당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체를 숨긴 구미호’ 면모 강제발동으로 정체가 탄로날 위기에 처함). 면모를 자발적으로 발동하거나 면모 강제 발동에 저항하려면 운명 점수가 들지요. 각 인물은 모험이 시작할 때마다 일정 수의 운명 점수를 가지고 시작합니다. 이것을 갱신율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재주와 특히 이능력은 이 시작 운명 점수를 깎아야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7점의 갱신율을 가지고 시작하는 인물에게 초인적 속도 이능력을 추가하려면 갱신율이 2점 깎여 5점이 됩니다. 여기에 요정 마법은 갱신율이 4점 더 깎이는 식으로 강력한 힘일 수록 운명 점수 갱신율을 많이 깎습니다. 초자연적이지 않은 재주, 예를 들어 사람의 마음을 잘 끈다거나 뜀박질을 잘한다거나 하는 능력은 갱신율을 1점씩밖에 깎지 않지요. 이능력이 없는 완전 일반인 (Pure Mortal)은 갱신율에 +2 보너스를 받는다는 것만 보아도 초자연 능력이야말로 갱신율을 깎아먹는 주범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갱신율이 0 이하로 떨어진 인물은 주인공일 수 없으며, 진행자가 제어하는 조연이 됩니다.

이것이 드레스덴 파일 RPG의 묘미인 힘과 자유의지의 함수입니다. 마법을 난사하고 눈으로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잽싸게 움직이는 강한 존재가 도시를 활보하더라도, 이들에게는 뭔가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우리 인간에게는 있지만 거룩한 광휘에 휩싸인 천사에게도, 하수구를 기며 시체를 먹는 식인귀에게도 없는 이것은 자신의 본성 (면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강제발동에 저항하는) 능력, 즉 ‘자유의지’입니다. 이처럼 드레스덴 파일 RPG의 도덕적, 극적 핵에는 강력한 초자연의 힘과 연약한 인간의 충돌, 가장 덧없이 약한 동시에 그 어떤 힘보다 강한 ‘자유’에 대한 고찰이 있습니다.

이 함수 때문에 드레스덴 파일은 강한 이능력자와 아무 이능력이 없는 일반인이 비교적 수월하게 공존할 수 있습니다. 재주와 이능력을 쌓아올린 갱신율 1짜리 주인공은 묘사적인 측면, 즉 놀이 속의 가상현실에서는 분명 강하지만, 대신 운명 점수가 부족해서 강제 발동을 많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결과 그 자신의 인간관계나 성격, 능력, 과거 때문에 종종 문제가 생기지요. 그러한 능력이 별로 없는 갱신율 7짜리 주인공은 인물 자신의 힘은 약하지만, 운명 점수가 많아서 서사적인 측면, 즉 서술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힘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판정에 밀리면 면모를 발동하고, 성격이나 인간관계 (‘사랑과 우정의 힘으로!’), 과거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힘이 있다고 무조건 유리하지 않다는 것은 원작 드레스덴 파일의 기본 전제와도 일맥상통합니다. 합리성과 과학, 이성의 세계에 살아가는 우리들은 신이나 뱀파이어, 요정처럼 우리보다 강한 초자연적 존재의 실존 앞에서 무력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현실 속의 우리는, 그리고 드레스덴 파일에 나오는 현대인도 초자연을 쉽게 인정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더군다나 그 초자연적 존재가 직접 인간을 해치고, 세계를 쥐고 흔드는 음모를 꾸민다면 더 말할 것도 없죠.

그러나 만유의 영장으로서의 인간을 이렇듯 위협하는 설정을 한 꺼풀 들추어보면 그 밑에는 인간의 진정한 존엄성에 대한 생각이 숨어있습니다. 인간이 정말로 존귀한 이유는 자연을 정복했으며, 지구 생태계를 모두 파괴할 수도 있는 힘을 쥔 우리의 과학기술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는 그 조그맣고 연약한 자유에 있다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자신마저 바꾸어가며 새로워질 수 있는 그 가능성이야말로 가장 강한 힘이라는 것이 드레스덴 파일에, 그리고 드레스덴 파일 RPG에 맥박치는 주제의식 아닐까요.

이렇듯 드레스덴 파일은 현실의 틈새에 숨은 초현실의 세계, 그 신비와 공포, 그리고 힘과 자유의 역설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무심히 지나치던 일상의 그늘에서 찾아낸 모험 끝에 마침내 마주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의 모습이겠지요. 그 마음속 여정을 따라 드레스덴 파일 RPG의 세계로 떠나보면 어떨까요?

네이버 TRPG 카페 인디 페스티벌 ‘귀신잡는 가족’ 후기

그저께 인디 페스티벌에 한 플레이는 드레스덴 파일 RPG로 한 서울 배경 현대 판타지로,
박수무당 아버지와 세 자녀가 납치당한 손녀/조카딸 지수를 찾는 얘기였죠. 꽤나 오랜만의 마스터링이었는데, 제가 잠이 너무
많아서(..) 결국 준비도 제대로 못하고 세션을 맞이해서 많이 죄송스러웠습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인물과
시나리오를 미리 만들려고 하면 저는 심각하게 막히더라고요. 제 평소 방식은 먼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다같이 논의하고, 같이 모인
자리에서 캐릭터를 제작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해서 참가자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파악한 후 인물 배경과 참가자의 극적 욕구를 반영해
제 취향을 버무리는 것을 좋아하지요. 그런데 인물과 시나리오를 미리 준비해가는 방식은 그런 사전 논의가 없어서 결정을 준비하는 데
개인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준비해가는 진행은 저에게 안 맞는다는 결론에 도달했으며, 앞으로는 되도록이면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캐메 자료와 예시 캐릭터 시트를 충분히 준비해가서 각 참가자가 인물을 새로 만들거나 기존 시트를
수정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그저께도 보니까 불완전한 시트를 보충하거나 있는 시트를 수정하는 등 준비해간 시트도 잘
고쳐서 사용하시더라고요.

이렇듯 저의 준비 부족이 아쉽기는 했지만 참가자분들이 워낙 재밌게 RP를 하셔서 무사히
세션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루영익님이 하신 능청스럽고 돈 밝히면서도 자식들을 끔찍이 아끼는 박수무당 아버지 박상규, 시드님의
신실하면서도 한 성질 하는 조폭출신 열혈목사 큰아들 박문형, 화련님의 활 무지 잘 쏘면서도 왠지 눈에 안 띄는 딸 캐릭터 박보경,
그리고 휴님이 하신 초 유능한 오타쿠 환상술사 박재형 등 인물들이 하나같이 개성이 살아있고 유쾌해서 즐거웠습니다. 마지막에
구미호 잡은 후에 다같이 가죽 벗기고 꼬리 자르고 하는 거 보니 과연 악역은 어느 쪽이었을까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는 했지만요.


적으로는 모두가 개성과 능력을 잘 발휘하셨던 것 같아 좋았습니다. 아버지의 귀신 부르는 능력이나 목사 아들의 기도와 축복 능력,
딸네미의 최강 궁술, 그리고 막내의 넷상 정보수집력과 환상술을 다들 잘 활용하셔서 사건을 해결하셨습니다. 애당초 드레스덴 파일
RPG에 관심이 생겼던 이유가 영능력자와 일반인이 한 일행에 공존할 수 있다는 점이었는데, 일반인(?)인 딸이 최강자였던 것 보면
그 장점은 여기서도 드러났던 것 같습니다. 다만 여기서도 제 준비 부족으로 전투가 좀 시시한 듯하여 아쉬웠습니다. 특히
초자연물에서는 보경의 양궁 스턴트 같은 강한 공격력이 무조건 최강자가 되는 것은 지양할 방법이 있었는데 (무기가 안 통하는
괴물이라거나), 그런 방법을 생각 못했던 게 후회스럽네요.

전반적으로 화기애애한(..) 가족 인물 RP와 참가자들의
문제해결 과정이 돋보이는 플레이였다고 생각하며, 함께 해주신 네 분 참가자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