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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와 최적 경험: 진실성

여러분이 생각하는 삶의 진실은 무엇입니까?
인생관이라고도 하고 신념이라고도 하는 이 진실은 여러분이 실제 경험이나 책이나 생각 등 삶의 과정을 통해서 배워온 법칙 혹은 규칙성, 즉 ‘삶이란 이런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보답을 받는다거나, 선인은 결국 상을 받고 악인은 결국 벌을 받는다는 믿음일 수도 있습니다. 가족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거나,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거나 등등.
아니면 여러분의 세계관은 냉소적이고 어두운 편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라 운 있고 백 있는 사람의 편이라거나, 악인이 더 잘 된다거나, 가족이야말로 가장 못 믿을 사람들이라거나, 어차피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라거나. 자신이 생각하는 선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추구하는 것이 바로 악이거나 하는 식으로 여러분이 생각하는 삶의 진실이란 복잡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때그때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고, 건전발랄한 생각과 짜게 식은 냉소가 공존할 수도 있지요.
여러분이 믿는 생의 진실이 무엇이든 그것을 표현하는 이야기야말로 여러분에게 가장 재미있고 깊이있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흔히 주제라고 하고, 다르게 말하면 책을 덮었을 때, 극장에서 나왔을 때, 텔레비전을 껐을 때 ‘남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진실이 제대로 표현되어 있지 않으면 남는 게 없는 이야기가 되거나 “그래서 어쩌라고?” 소리가 나오기 쉽지요. 주제의식이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것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제는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드러날까요? 여러 가지 설명이 있지만, 가장 단순화하자면 ‘~~를 하면 ~~하는 결과가 나온다’는 인과관계의 반복을 통한 것이라는 설명이 저는 가장 와닿았습니다. 이것은 Robert McKee의 Story: Substance, Structure, Style and the Principles of Screenwriting에 나온 설명을 참조한 것으로서, 이 책은 국내에서는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황금가지에서 2002년 출간하였습니다.
가난한 젊은이가 성공하려고 이를 악물고 사업을 하는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그가 아무것도 없이 발로 뛰어 투자자를 감동시키고, 밤낮으로 공사장에서 지내면서 공장을 짓고, 경쟁사의 치사한 수법에 맞서 품질과 정직성으로 승부하는 끝에 성공하는 이야기라면 그 이야기는 ‘역경 앞에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주제의식을 표현하는 감동 성공신화일 것입니다. ‘노력 -> 성공’이라는 인과관계가 이야기의 각 단계 (투자자 확보, 공장 건설, 경쟁사 음모 분쇄)와 전체 이야기 (사업 성공)에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반면 위의 청년 실업가가 투자자를 모으려고 죽도록 노력했는데 경쟁사의 이간질로 투자를 못 받고, 결국 비싼 이자를 내고 돈을 빌려 공장을 지으려고 했는데 공장은 경쟁사에서 보낸 깡패들이 불태워버리고, 허름한 창고를 빌려 밤을 새어가며 제품을 조립하여 출고하였는데 특허 소송에 휘말려 결국 제품은 사장되고 경쟁사 사장의 매수를 받은 검찰이 사기죄로 이유 없이 기소하여 결국 빚만 떠안고 감옥에 가는 이야기라면 이것은 살기 싫어지는 이야기 ‘돈과 권력 앞에 개인의 노력이나 성실성은 실패와 파멸로 이어질 뿐이다’라는 주제의식을 표현하는 이야기이겠지요. 역시 이야기의 각 단계 (투자자 확보 실패, 공장 화재, 제품 사장, 억울한 옥살이)와 전체 이야기 (돈과 권력에 져서 파멸) 속에서 ‘권력의 방해 -> 실패’라는 인과관계가 지속적으로 나타납니다.
물론 이들 한쪽 극단이 아니라 그 사이를 오가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투자자 유치에는 실패했지만 공장은 성공적으로 지어 제품을 출시했고, 특허 소송에 져서 큰 손실을 입었지만 결국 경쟁사의 비리를 밝혀내고 어렵게라도 회사를 꾸려갈 수 있었다… 하는 식의 달콤씁쓸한, 양쪽 진실이 공존하는 혼합적인 주제의식이 될 수도 있지요. 인생은 다면적인 만큼 보통은 이러한 혼합적인 주제의식이 가장 현실적입니다.
이미 정해진 이야기인 소설이나 영화 등은 위와 같지만,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인 RPG는 이들 매체와는 주제의식 표현이 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소설이나 각본은 주제를 미리 정하고 이에 맞추어 이야기를 구성하고 수정할 수 있는 반면, RPG에서는 시나리오를 정한다 하더라도 실제 진행은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크게 달라지니까요. 이런 RPG의 성격상 주제를 설정한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한다면 어떻게 할까요?
우선 짚고 넘어가자면, RPG든 다른 이야기든 주제를 미리 설정하고 모든 인물과 진행을 주제에 맞추는 방식은 추천하기 어렵습니다. 자칫하면 선전 소설마냥 구호 모음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니까요. 그보다는 좋은 주제의식은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우선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실제 사람, RPG의 경우 참여자들이지요. 두 번째는 이야기 속의 가상적인 사람, 즉 허구 속의 인물들입니다. 여기서 시작하여 RPG에서 주제의식을 살리는 방법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논의는 나중에 이야기의 개별적 요소들 (배경세계, 인물, 구조 등)을 다루면서 더욱 확장해갈 것입니다.
일단 처음 기획하고 설정하는 단계에서부터 왜 이러한 캠페인을 원하는지, 왜 이런 성격의 배경세계를 하고 싶은지 생각해보는 것이 주제의식 형성에 큰 도움이 됩니다. 벌써 주제를 정할 필요는 없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왜 좋아하는지만 생각하면 충분합니다. 예를 들어 이전에 했던 중편 캠페인 도쿄의 달 제작시에는 ‘변혁기 인간의 모습’을 다루자는 합의 하에 이에 맞추어 배경세계를 정했습니다. 변화하는 시대 속에 인간은 어떻게 대응하는가 하는 질문은 주제의식이라기보다는 소재이지만, 나중에 주제의식의 중요한 실마리가 되었지요.
인물을 제작할 때도 마찬가지로 ‘왜’라는 질문이 가장 중요합니다. 적의 희생 때문에 살아남은 후 개과천선한 인물을 하고 싶다면, 왜 그럴까요? 어떤 이야기 혹은 방향성을 바라는 것일까요? (현실 속 참여자의 동기) 그러한 인물의 동기, 그가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허구 속 인물의 동기) 참여자가 원하는 것과 인물이 원하는 것을 파악해야 좋은 이야기와 진실한 주제의식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위에서 설명했듯 주제의식이란 결국 인과관계인데, 이러한 인과관계가 나타나려면 사건이 일어나야 하고 사건이 일어나는 동력원은 욕망이니까요. 위의 청년 실업가의 예에서는 그가 사업을 성공시키려고 하기에 투자자를 모으고 공장을 지으려고 하는 것이고, 그러한 욕망에 다른 인물들이 반응하면서 감동 성공 스토리도, 산업 느와르물도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기회과 인물 제작 단계에서는 크고작은 의견차이가 생기는 것이 보통인데, 이러한 차이는 아주 중요합니다. 의견 차이야말로 진실성과 주제의식을 둘러싼 차이점의 실마리인 까닭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참가자가 하고 싶어하는 인물은 자신이 뭔가 동기가 있어서 움직인다기보다는 주변 인물이 괴롭히고, 좋아하고, 구출하는 사건의 연속인 공주형 내지 소녀형 인물일 수 있습니다. (반드시 참가자나 인물이 여자는 아닙니다.) 즉 행동하기보다는 사랑이나 미움을 받는 대상으로서의 인물을 원할 수 있지요. 이럴 경우 그 플레이어가 생각하는 진실성이란 ‘사랑받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거나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행동하기보다는 착하게 가만히 있는 것이 좋은 일이다’ 같은 것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의견 차이가 드러날 때에는 위 문단에서 다루었듯 어떤 이야기를 원하는가 대화를 충분히 하고 차이점을 조정해 보거나, 정 간극을 좁히기 어려우면 같이 플레이하지 않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진행하기 시작하면 이전 단계에서 암시되었던 주제의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진행자가 제시하는 상황, 참가자가 보이는 반응, 각 참여자가 원하는 이야기와 그 합치 혹은 불합치 속에서 각자의 욕망의 방향을 엿볼 수 있지요. 예를 들어 진행자가 권력의 비리를 반복적으로 등장시킨다면 진행자는 아마도 권력이 인간을 망친다는 주제의식에 관심이 깊을 것입니다. 또 참가자 A는 대개의 상황에 폭력적으로 반응하고 또 이로 인한 승리를 원한다면 그 참가자는 정의는 (혹은 나는) 승리한다는 진실에 끌리는 것이겠지요. 또 다른 참가자 B는 주변 인물들을 끌어들이고 그들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랄 수 있습니다. 이런 참가자는 인생은 혼자 살아갈 수 없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고 믿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한 참여자가 믿는 진실은 여러 가지일 수 있고, 서로 모순적인 진실을 믿을 수도 있으며,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주제의식, 혹은 각자가 생각하는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대화가 아주 중요해집니다. 참여자들이 해당 세션에서 무엇을 원했으며 어떤 점이 충족되었고 어떤 점이 불만족스러웠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얘기하면서 각자가 원하는 이야기와 주제의식을 끌어내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참가자 A는 전투로 상황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는데 진행자가 너무 강한 적을 내보낸 것이 불만일 수 있습니다. 진행자는 이기기 어려운 권력의 불의를 보여주고 싶었기에 강한 적을 내보낸 것일 수 있지요. 이러한 욕망이 드러나면 이들의 각자 다른 진실을 어떻게 조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 경우 폭력과 권력은 결국 같은 현상이니까 참가자 A의 인물이 폭력을 휘두르면서 점점 강력한 권력이 되어가고, 그로 인해 새로운 억압자가 되는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겠지요. 혹은 참가자 A와 참가자 B의 욕구를 조화하여 혼자서는 이기기 어려운 상대이지만 원군을 부르면 이길 수 있는 적을 내보내서 정의의 승리와 사회관계의 중요성을 둘다 강조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RPG에서의 주제의식은 모든 참여자가 생각하는 진실이 서로 대립하고 또 조화를 이루는 긴장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며, 특히 긴 이야기일 수록 각자의 진실을 조화시키는 소통이 중요해집니다.
이상과 같이 주제의식이 무엇이며 RPG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어 보았습니다. 조금 덧붙이자면 주제의식 외에도 이야기의 진실성에는 개연성이나 진정성 같은 요소도 들어갑니다. 이야기의 진행과 인물의 행동과 감정이 얼마나 진실한가 하는 문제이지요. 이들 역시 참여자끼리 의견이 갈릴 수 있는 부분이므로 의견 차이가 생기면 이때 왜 이런 사건이나 반응이 나왔는가, 우리가 원하는 이야기, 우리가 생각하는 진실이란 무엇인가 하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이렇듯 좋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 진실성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음 글에서부터는 RPG 캠페인 기획과 진행의 각 단계를 다루고자 합니다. 먼저 가장 기본인 배경부터 시작하여 좋은 이야기를 만들기 위하여 캠페인 배경세계를 설정하고 선택하는 문제를 다루어 보겠습니다.

<RPG와 최적 경험 시리즈>
1. 최적 경험을 위하여
(1) 최적 경험과 플로우
(2) 플로우의 조건
(3) RPG와 플로우
2. RPG인의 능력 
(1) 게임적 능력
(2) 서사적 능력 
A.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B. 진실성
C. 배경세계
D. 인물성
E. 이야기 구조
F. 갈등과 의미있는 선택
G. RPG 특유의 서사성
(3) 사회적 능력
(4) 팀의 능력
3. 도전을 수준에 맞추어가기
(1) 게임적 도전
(2) 서사적 도전
(3) 사회적 도전
4. RPG의 목적성과 피드백
(1) 팀 단위에서의 목적 설정
(2) 팀원 간 목적의 일치와 긴장
(3) 등장인물 간 목적의 일치와 긴장
(4) 피드백으로 목적 합치성 평가하기
5. 집중과 몰입
(1) 집중을 위한 조건
(2) 집중을 위한 마음가짐
(3) 집중을 위한 환경
(4) 결어

RPG와 최적 경험: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지난번 글에서는 백만 년 전에 RPG의 게임적 측면을 다루었습니다. 그 글에서 다루었듯 RPG에는 게임으로서의 측면이 있으며, 이는 역할극과 구분되는 RPG의 특성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규칙의 지향점을 파악하고, 숙독과 연습을 통하여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어쩌면 당연한 얘기를 했었죠.

게임성 외에 또 다른 특징이라면 RPG라는 놀이는 반드시 서사적인 틀 속에서 진행이 된다는 것입니다. 보드게임이나 퍼즐게임 등은 서사 없는 놀이가 가능하지만, RPG는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만들려는 목적으로 플레이를 하든, 아니면 이야기는 괴물을 잡고 보물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부산물일 뿐이든 뭔가 이야기가 있습니다. 결국 RPG는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놀이인 셈입니다.

서사성이 RPG의 또 다른 특징인 만큼 이야기가 훌륭하면 그만큼 RPG의 만족감도 높아지고, 좋은 이야기를 목표로 노력하면 그만큼 최적 경험에 가까워질 것입니다. 처음에 최적 경험, 혹은 플로우를 다루면서 말했듯 플로우란 정해진 목표를 향해 노력을 하면서 집중감과 몰입감, 그리고 행복감이 드는 경험입니다. 따라서 달성하려는 목표가 무엇인지 모르고서는 플로우가 있을 수 없지요. 그래서 이번 편에서는 먼저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간단하게 살펴보고 다음 글부터 각 요소를 달성하는 방법을 논하겠습니다.

주의할 것은 RPG가 이야기를 만드는 놀이라고 해서 반드시 이야기를 만드는 데 중점을 둘 필요는 없으며, 또 그래야만 좋은 놀이인 것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RPG의 이야기란 그저 신나는 놀이를 하면서 (게임성), 혹은 아는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리면서 (사회성) 부차적으로 생기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를 얼마나 강조할지, 그리고 얼마나 시간과 노력을 쏟을지는 각 팀이 결정할 몫입니다. 다만 이야기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기로 한다면 더욱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은 분명 있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좋은 이야기란 워낙에 다양하므로 외적으로 보이는 특징, 예를 들어 장르나 배경을 가리켜 이것이 있으면 좋은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 좋은 이야기라고 해서 엘프와 마왕이 나오면 좋은 이야기인 것은 아니며, 영화 ‘가타카’가 좋은 이야기라고 해서 미래 디스토피아가 다 훌륭한 작품인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좋은 이야기라면 공유하는 몇 가지 특징이 있기는 합니다. 겉가죽은 연애물이든 추리물이든 동화이든, 모든 좋은 이야기의 속살에는 다음과 같은 본질이 있습니다. 특별히 새로운 내용은 아니지만, 제가 그동안 보고 생각한 것을 나름 소화하고 정리한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진실성. 좋은 이야기란 무엇보다 진실한 허구, 즉 진실한 거짓말입니다. 비록 하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지만 그 속에 있는 인물과 사건 등이 삶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진실을 보여주고 있지요. 이것이 좋은 이야기의 본질 중 으뜸입니다. 인물을 어떻게 하고 사건을 어떻게 할까 하는 고민도 결국에는 ‘진실한가?’ 하는 단일한 질문에 답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자연스럽고 진정성이 있는가, 삶에 대한 어떤 진실을 보여주는가, 이것이 좋은 이야기의 최종적이며 또한 유일한 시금석입니다. 나머지는 좋은 이야기는 진실해야 한다는 이 원칙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뿐입니다.

두 번째, 좋은 이야기에는 풍부한 배경세계가 있습니다. SF나 가상역사, 판타지처럼 우리가 사는 세계와는 전혀 다르거나 역사물처럼 우리 세계의 과거를 다루는 이야기도 배경세계가 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허구도 독자적인 배경과 문화가 있습니다. 21세기 한국의 고등학교나 중산층 가정, 혹은 21세기 한국 사회 전체도 이야기가 벌어지는 세계이며, 각자 법칙과 갈등, 문화가 있는 소우주를 이룹니다.

한편 배경세계가 풍부하다는 것은 설정자료가 많다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에 의미있는 갈등의 실마리가 있으며, 인물 및 인물 사이의 관계를 통해 그 세계 특유의 문화와 규범이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배경 때문에 생기는 차이점과 공통점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이야기를 다양한 각도로 볼 수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역시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됩니다. 삶의 진실이 햇빛이라면 배경과 그 문화는 그 빛을 다양한 색채로 변주하는 프리즘입니다.

세 번째, 좋은 이야기에는 좋은 인물성, 특히 좋은 주인공이 있습니다. 좋은 인물이란 결국 이야기에 드러나는 삶의 진실을 사람을 통해 표현하여 흥미와 공감을 끌어내는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주인공, RPG에서는 PC는 실현할 수 있는 욕구를 위해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변하고 성장해가는 인물이지요. 이러한 인물과 그들 간의 관계는 좋은 이야기의 원동력이 되며, 깊은 감정적 경험을 이끌어냅니다.

네 번째, 좋은 이야기에는 이야기의 경험을 고조시키는 이야기 구조가 있습니다. 모든 의미있는 이야기의 핵심에는 일상 – 일상에서의 일탈 – 새로운 평형 달성이라는 구조가 있습니다. (이 점에서는 조셉 캠벨의 영웅의 여정을 따릅니다.) 그것을 기승전결, 발단-전개-절정-결말 하는 식으로 나누어볼 수도 있지만, 더 본질적인 것은 주인공들이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위험한 미지의 영역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그렇게 성장하고 변함으로써 한층 층위가 높은 새로운 안정성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구하러 모험을 떠나는 얘기이든, 학교를 옮기는 전학생 얘기이든,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고 의심하기 시작하는 이야기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모든 좋은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각자의 삶이라는 전투를 치르며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삶의 지혜, 그 진실의 일면이라는 전리품을 탈취하려고 몸부림칩니다. 진실을 위한 싸움에서 크게 승리할 수록 결말이 행복한 이야기이겠고, 의미 있는 배움을 얻지 못하거나 이를 위한 대가가 너무 크다면 비극적인 이야기일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삶을 더 깊이 깨닫고, 더욱 의미있는 존재를 누리려는 투쟁은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의 구조는 이를 반영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 좋은 이야기에는 의미있는 갈등과 선택이 있습니다. 내적 갈등이든 외적 갈등이든 인물은 의미가 있는 갈등에 마주해 뭔가 선택을 해야 하며, 이 선택에도 크든 작든 의미가 따라야 합니다. 갈등과 선택은 위의 모든 요소를 통합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배경세계와 인물은 다양한 갈등을 만들어내며, 갈등의 발생과 해결은 배경과 인물,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삶의 진실에 비추어 진정성이 있고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또한 갈등상황에서 인물이 하는 선택에 따라 인물성은 더욱 깊이가 생기고 변화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상황과 선택은 미지의 상황에서 새로운 의미를, 새로운 평형을 만들어가려는 인물의 투쟁을 반영하며 이를 통해 삶의 어떤 진실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여섯 번째, RPG의 좋은 이야기는 소설이나 연극과는 다른 RPG만의 특징이 있습니다. 이야기가 어떻게 되는지 정하는 규칙이 있다는 점, 그리고 함께 즉석에서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그렇지요. 따라서 RPG의 다른 두 요소인 게임성과 사회성과의 관계, 그리고 즉흥성과 계획성의 관계 등을 살펴보면서 RPG인의 서사적 능력 논의를 마칠 계획입니다.

이렇게 좋은 이야기의 요소를 논하는 여섯 편의 글을 열어봅니다. 아는 것이 짧아 쓰기까지 많은 고민과 변경을 거친 끝에 결국 생각보다 길어지게 되었군요. 어려운 얘기인 만큼 많이 부족할 텐데 격려와 질책, 지적과 질문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특히 이 서론에서 잡고 있는 구성을 변경하려면 나머지 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하는 것이 좋으니까 의구심이나 반론, 보충할 점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적극적으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RPG와 최적 경험 시리즈>

1. 최적 경험을 위하여

(1) 최적 경험과 플로우

(2) 플로우의 조건

(3) RPG와 플로우

2. RPG인의 능력

(1) 게임적 능력

(2) 서사적 능력

A.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B. 진실성

C. 배경세계

D. 인물성

E. 이야기 구조

F. 갈등과 의미있는 선택<

G. RPG 특유의 서사성

(3) 사회적 능력

(4) 팀의 능력

3. 도전을 수준에 맞추어가기

(1) 게임적 도전

(2) 서사적 도전

(3) 사회적 도전

4. RPG의 목적성과 피드백

(1) 팀 단위에서의 목적 설정

(2) 팀원 간 목적의 일치와 긴장

(3) 등장인물 간 목적의 일치와 긴장

(4) 피드백으로 목적 합치성 평가하기

5. 집중과 몰입

(1) 집중을 위한 조건

(2) 집중을 위한 마음가짐

(3) 집중을 위한 환경

(4) 결어

RPG와 운전: 서술과 협의, 문제 플레이에 대한 생각

1. RPG와 운전

책[footnote]Mindsight: The New Science and Personal Transformation (by Daniel J. Siegel, M.D.)[/footnote]을 보다가 재미있는 비유가 나와서 RPG에도 적용해 보았습니다. 책에서 저자는 정신을 스스로 제어한다는 의미를 논하면서 운전을 하는 비유를 드는데, 운전대를 잡고 눈을 감고 있으면 차를 제어한다고 할 수 없고, 차 뒷좌석에 탄 승객은 운전을 감시는 할 수 있고 운전자에게 제안도 할 수 있지만 운전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RPG에서 서술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눈감은 운전자는 일단 차치하고 (ㄷㄷ) 서술과 협의의 관계는 마치 운전대를 잡은 운전자와 뒷좌석에 앉은 승객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참가자는 자신의 주인공 (PC)의 행동을 서술하는 서술권이 있고, 진행자는 조연 (NPC)과 외부 세계에 대해 서술권이 있습니다. 이때 참가자는 진행자에게 조연이 내 주인공을 죽이려고 했으면 좋겠다, 이쯤에서 비가 왔으면 좋겠다 하고 제안은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행자도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고요. 그런 식으로 활발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사실 바람직한 플레이기도 합니다. 승객이 운전자가 너무 빨리 가는 것 같아 불안하다거나, 지름길로 가자고 운전자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죠.
그러나 뒷좌석의 승객이 운전자일 수 없듯, 서술권자가 아닌 사람은 서술을 할 수 없습니다. 자기 서술 영역이 아닌 영역에 대해서는 제안을 하고 대화를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참가자는 진행자에게 조연이나 외부세계에 대해 제안은 할 수 있지만, 직접 조연이나 외부세계 요소를 빼앗아 서술을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진행자가 조연이나 자연현상 등을 참가자에게 넘기는 경우는 서술권이 넘어가는 것이므로 다른 얘기입니다.)
마찬가지로 진행자나 다른 참가자도 참가자에게 주인공이 이런 말이나 행동을 하면 어떨까 얼마든지 제안은 할 수 있고 또 참가자도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지만, 진행자나 다른 참가자가 주인공에게 어떤 말이나 행동을 시키는 것은 안 될 일입니다. 뒷좌석 승객이 운전대를 빼앗으면 안 되는 것처럼요. 물론 운전을 교대하기로 하고 승객과 자리를 바꿔타는 것과는 다른 얘기이지만요.
2. 운전석과 뒷좌석을 구분하는 세 가지 이유
어째서 로키는 이런 독재적인 발언을 하는 것일까요? 내 서술권은 내꺼고 니 서술권은 니꺼니까 침범하지 말라는 이런 반공동체적, 반민주적 발상이 어딨습니까! 혹시 진행자는 신에게 권한을 받는다는 구닥다리 진행권신수설 신봉자, 혹은 시대에 뒤처진 권위주의자인 것일까요?
뭐 제가 독재파쇼라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서술권 분리를 주장하는 것은 그 외에도 (?) 크게 3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크게 구조적, 사회적, 감정적 이유입니다.
첫 번째, 서술권을 구분하는 구조적 이유는 우선 RPG는 어떤 식으로든 서술권을 구분해야 한다는 데서 시작합니다. 한 사람에게 모든 서술권이 있으면 그건 혼자 쓰는 소설이고, 아무런 서술권 구분이 없으면 서로 눈치만 보다가 놀이가 안 되거나 아니면 놀이 속 사건에 대해 서로 의견이 안 맞아 말다툼을 벌이기 쉽습니다. 그러한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이 너는 저 영역에 대해 결정을 내리고, 나는 이 영역에 대해 결정권이 있다는 서술권 구분이지요.(주:또 다른 수단이라면  서술권 영역 사이를 매개하는 규칙과 협의입니다만, 서술권 글에서 그 역할을 적었던 만큼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서술권을 어떻게 분배하든 그 분배에는 일정한 효과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참가자가 주인공을 맡고 진행자가 그 나머지를 맡는 전통적인 구조는 주인공 일행 대 세계라는 대립적인 구도를 이루기 쉽습니다. 서술권을 전혀 다르게 분배하는 놀이, 예를 들어 얼음깨기 (Breaking the Ice)는 주인공과 외부 세계를 같은 사람이 서술하는 만큼 한결 주인공과 외부 세계가 협력하기가 한결 쉬워집니다. 따라서 어떤 서술권 분배와 그에 따르는 효과를 선택했다면 그 분배를 어기는 것은 그 효과 또한 희석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두 번째, 서술권을 구분하는 사회적 이유는 서술권 구분이 뚜렷하지 않으면 서로 눈치를 보면서 진행이 늘어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진행자의 전통적 영역을 참가자 사이에 공동 분배하면 (‘꼬마 미우 구하기 1부’ 사진에서부터 5번째 문단 참조) 책임이 명확하지 않으므로 논의와 의사소통에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물론 논의가 활발한 것은 더없이 좋지만, 논의 없이는 장면을 시작조차 할 수 없다면 좀 피곤하지요. 마치 운전자 없이 ‘승객이 투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차’를 탄 것처럼 정신없는 경험이 되기 쉽습니다.
세 번째 감정적 이유는 서술권을 구분하고 그 구분을 지키지 않으면 감정이 상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역할극을 다룬 글에서 역할극에 판정이 없어서 생기는 부작용을 적었었는데, 서술권 구분이 없거나 그 구분을 지키지 않는 것도 비슷한 부작용이 있습니다. 서술권 구분이 없다면 이 요소 (인물, 자연물 등)의 움직임을 내가 서술해도 괜찮은지 바로 확신할 수 없고, 그 요소를 움직였다가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남이 내가 마음에 안 드는 서술을 해서 감정이 상할 수도 있지요. 서술권 구분은 이러한 눈치보이는 상황에 대해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해서 인간관계와 놀이 속 서술 사이에 어느 정도 방벽을 만들어줍니다.
서술권을 일단 구분한 상태에서 지키지 않았을 때 생기는 감정적 결과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진행자가 주인공에 대해 조언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심한 간섭을 하거나 아예 행동을 강제한다면 해당 참가자는 자기 서술권뿐 아니라 인격을 부정당한 기분이 들 것이며, 서술권 구분이 그런 식으로 무시당하면 위에 얘기한 구조적, 사회적 문제도 발생할 것입니다.
3. 뒷좌석 운전의 실제 모습
물론 실제 RPG에서는 ‘나는 너의 서술권을 부정하고 이 이야기 요소를 내가 제어하겠어!’ 라고 선언하고 서술권을 잡는 일은 없습니다. (혹시 있으려나요? 있으면 제보좀…) 그보다는 서술권 개념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침해하는 일이 많지요. RPG를 할 때 뒷좌석에서 운전대를 잡으려고 씨름하는 행동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우선, 강제 진행. 거의 진행자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는 서술권 침해입니다. 고전적인 RPG 서술권 분배에서 진행자는 참가자에 비해 서술 범위가 상당히 광범위합니다. 그래서 세계와 조연을 움직여서, 혹은 장면 전환이나 편집을 해서 원하는 진행에 반하는 참가자 서술을 막아버리는 것을 강제 진행, 혹은 칙칙폭폭 진행이나 기찻길 진행 (Railroading)이라고도 합니다. 주인공에 대한 서술권을 무시당했으므로 참가자는 기분이 나쁠 뿐만 아니라 (감정적 부작용), 세계와 주인공에 대한 서술권을 분리하는 이점을 취할 수 없어지는 (구조적 효과) 악효과가 있습니다. 의미있는 모든 서술권이 한 사람에게 모이므로 소설에 가까워지고, RPG를 하는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참가자와 협의를 해서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넘기는 것은 전혀 다른 상황이며, 진정한 협의만 되어 있다면 강제가 아니므로 서술권 침해가 아닙니다. 따라서 진행자가 특별히 바라는 전개가 있다면 참가자와 의논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특정 전개에 애착이 강하다면 그냥 소설을 쓰는 게 낫습니다.
또한, 강제 진행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서술 무시를 통해 상대의 서술권을 없는 것처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진행자와 참가자 모두 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진행자가 하는 편이 효과가 강력합니다. 주인공이나 조연의 행동이나 대사를 무시해서 놀이 속 효과를 부정하는 것인데, 강제 진행만큼 전면적이지는 않지만 부작용은 강제 진행과 비슷합니다. 기분이 나쁠 뿐 아니라 놀이 속 현실이 무엇인지 혼란을 야기하므로 (선전포고를 한 거야, 안한 거야? 비가 왔어 안왔어?) 이런 일이 잦으면 놀이 자체를 망가뜨리기 쉽습니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인물이’ 다른 인물을 무시하는 것과는 다른 얘기입니다. 인물끼리 대립하는 거야 얼마든지 극적으로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 인물끼리 갈등하는 것은 재미있지만, 참여자끼리 갈등하는 것은 지루하고 혼란스럽지요. 마음에 안 드는 건 무시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대화로 푸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서술을 무시하게 되는 일도 있습니다. 한꺼번에 서술이 쏟아진다거나 (특히 주인공이 다수 등장하는 장면이 이러기 쉽습니다), 다른 세션이나 이전 장면 등 전에 나온 정보를 잊어버렸다거나 할 때 벌어지는 일이지요. 의도적 서술 무시보다는 훨씬 낫지만 이것도 잦아지면 헷갈리므로 선언을 차례대로 한다거나 리플레이를 정리한다거나 해서 구조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좋습니다.
은근슬쩍 서술을 해서 서술권을 침해하는 것은 보통 참가자가 합니다. 이건 논의와 구분하기가 조금 애매할 수도 있지만, 선을 확실히 넘었을 때는 보통 알 수 있죠. 예를 들어 조연이 자신의 주인공 미모를 보고 넋을 잃는다는 선언을 참가자가 한다거나, 중요한 조연과 아는 사이라고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기존 협의 없이 느닷없이 새로운 사실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서술이 사소한 것일 때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사소한 사항이라 해도 서술권 범위 외에 있는 것은 먼저 서술을 해버리기보다는 간단하게나마 제안이나 논의를 하는 것이 이러한 기습 서술을 피하는 방법입니다.
얘네들이 주인공을 보고 넋을 잃으면 어떻겠느냐, 이 조연하고 아는 사이이면 어떻겠느냐 하고 의논을 하는 것은 물론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규칙을 통해 이전받은 서술권을 행사하는 상황 역시 문제가 없지요. 서술권이 없는 요소를 갑자기 서술을 해버려서 서술권자를 당황시킬 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전 논의 없이 서술권자 (보통 진행자)가 전혀 준비하지 않은 방향으로 상황을 끌고가려고 한다거나, 판정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판정을 건너뛰는 것은 서술권 구분을 교란하고 서술권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부작용이 따릅니다. 서술권자는 이 서술을 그대로 따를 것인가 다른 참여자에게 싫은 소리를 할 것인가 하는 곤란한 선택에 처하게 되어 더욱 감정이 상하기 쉽지요.
이러한 기습적 서술권 침해는 특히 정당한 논의 과정이나 판정을 우회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합니다. 협의를 했는데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이런 행동을 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참여자의 개인적 문제일 수도 있고 (RPG를 곤란하게 하는 행동유형 중 ‘예의바른 암살자’ 참조) 때로는 팀내 의사소통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서술권자에 대해 감정적으로 벌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서술권을 장악하려는 행동도 있는데, 이것은 정당한 비판을 다소 격하게 하는 행동과 꼭 구분하기 쉽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논의하는 형태를 취한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가장 문제가 덜하고, 서술권 침해라기보다는 대인관계와 의사소통 문제로 구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서술권자를 위축시켜 서술권 행사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면에서 문제 행동이기는 하다고 봅니다.
감정적으로 벌을 주는 행동은 보통 비판에서 시작합니다. 여기까지는 문제될 것이 없지요. 플레이를 향상시키려는 비판은 정당할 뿐만 아니라 필요하니까요. 정당한 비판에서 감정적 괴롭힘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요소는 크게 반복성, 적대적 감정 표출, 플레이 도중에 길어지는 잡담, 인신공격성 발언, 구체적 해결책 부재가 있습니다. 즉, 특정 서술권자에게 집중적으로 부정적인 의견을 표출하며, 그 비판에 사용하는 단어나 말투가 감정적이며, 플레이 중 당장 필요한 것을 교정하는 최소한의 의사표시를 하거나 플레이 이후 지적을 하는 게 아니라 플레이 도중에 길게 말을 해서 흐름을 끊어놓으며, 특정 서술이 아니라 서술권자 자신의 결함에 초점을 맞추며, 무엇보다 상대가 어떤 행동을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지 제시하지 않아서 고치기조차 어려우면 문제가 됩니다.
이러한 감정적 괴롭힘은 처음 시작은 서술권 행사에 관한 의견 차이였을지 몰라도 (왜 저런 대사나 선언, 기타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감정이 쌓이고 바람직한 해소를 하지 못하면서 쌓인 적대감을 부적절하게 표출하는 대인관계상 문제가 되어가기 쉽습니다. 그냥 애당초 성격과 취향이 맞지 않는 것이 원인일 수도 있고요. 이럴 때에는 진짜 맺힌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서 대화로 해결하거나, 정 해결할 수 없고 서로 맞지 않으면 플레이를 같이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4. 운전은 운전자가
운전석과 뒷좌석이 다르듯이 서술권자의 역할과 지켜보고 조언을 하는 역할은 분명 다릅니다. 그 구분을 하는 것은 서술권자가 다른 사람보다 우월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렇게 구분을 하는 편이 다같이 재미있어서 그렇습니다. 그 점을 잊어버리고 뒷좌석에서, 혹은 조수대에서 운전대를 잡으려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대신 서술과 협의의 차이점을 인식하고, 활발하게 대화를 하면서 서술을 분배하는 의미를 되도록 살리는 것이 안전운전, 아니 건전 RPG의 시작이 아닐까요?

꺄악! 나도 플레이를 한다!

플레이를 하기로 했습니다! 어언 얼마만의 진행 (마스터링) 아닌 참가 (플레이)인지 막 눈물이 앞을 가리는군요(…) 규칙도, 배경세계도 재미있어 보이는 캠페인이어서 많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처럼 주로 진행만 하다가 참가를 하는 사람은 종종 엄청나게 의욕과 기대에 찹니다. 그리고 실제로 참가는 재미있고 부담도 안 되는 활동이고, 본업(?)인 진행에도 새로운 활력을 주지요. 참가자 관점을 잊고 있다가 실제로 참가를 해보면 참가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하면 재밌는지 훨씬 잘 와닿거든요.
그러나 동시에 그 엄청난 의욕과 기대 때문에 실수를 하기도 쉽습니다. 저도 그런 실수를 한 기억이 많이 있지요. 실제로 진행과 참가는 다른 점이 많아서 익숙해지는 과정에서 진행자의 버릇이 나올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점을 기억하면 오랜만에 하는 참가를 더욱 즐거운 경험으로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1. 혼자 너무 나서지 않는다
진행을 해본 참가자는 적극적으로 플레이하는 일이 많습니다. 능동성이 몸에 배어서겠죠. 이건 일반적으로 당연히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특히 오랜만에 플레이할 때는 플레이한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좋고 의욕이 넘쳐서 심하게 설치는 일이 있습니다. 이럴 때에는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플레이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활약할 기회를 주어야 하므로 혼자 다 도맡아하는 건 곤란하지요.
적극성이 지나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면 자신이 너무 설칠 때 신호를 달라고 다른 참여자들에게 미리 부탁해 놓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어떤 일에서든 지나친 것은 좋지 않으니까요. 물론 지나치지 않는 한도에서 참가자의 적극성을 잘 살리면 모두 함께 즐거울 것입니다. 그것은 진행을 해본 참가자의 큰 장점이기도 합니다.
2. 조연과 주연을 번갈아 한다
위 1번 과는 어쩌면 이율배반적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진행자는 종종 주역보다는 보조역을 맡는 데에 익숙합니다. 진행자로서 맡는 조연 (NPC)은 주인공에게 도전을 제시하고, 적대시하고, 협동하는 역할을 맡지 그 자신이 극적 중심이 되지는 않으니까요. 조연도 당연히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무게중심은 주인공 (PC)에게 쏠려 있습니다.
이렇듯 남을 돋보이게 하려고 움직이는 데에 익숙한 진행자가 참가를 할 때에는 역시 제버릇을 남 못 주고 계속 주인공을 조연처럼 돌리는 일이 있습니다. 내가 맡은 인물을 활약시키는 궁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 인물을 돋보이게 하는 방법을 궁리하는 것이지요.
물론 이렇게 적절히 조연을 맡아주는 참가자는 참 환영받는 존재입니다만, 그 정도가 지나친 나머지 주연을 맡을 줄을 모를 정도가 되면 문제입니다. 번갈아 주목을 받으면서 다른 참가자들에게서 부담도 덜어주고 더욱 입체적인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각 참가자의 역할이니까요. 따라서 참가자는 조연 못지않게 주역 또한 맡을 수 있어야 하고, 주목받는 것이 익숙하지 않더라도 이것이 참가자로서의 역할이라는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려움을 느끼면 필요에 따라 대화하고 조절해가며 익숙해져야겠지요.
3. 진행이 아닌 참가를 한다
진행을 많이 맡다가 참가를 할 때 제 경험상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진행자에게 지나치게 훈수를 두는 것입니다. 플레이한다고 좋아하다가도 막상 플레이에 들어가면 진행에 대한 감이 생생하고 재밌게 하고 싶은 의욕은 넘치다 보니 자꾸 진행상의 사항들이 눈에 들어오는 거죠. 그래서 여기서는 이야기를 이렇게 끌어가는 게 어떻겠느냐, 그 규칙은 그게 아닌 것 같다 하는 식으로 진행자에게 자꾸 참견을 하는 일도 있습니다. (제 얘기 절대 아니라능! 흑흑)
물론 진행자에 대한 충고가 나쁘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좋은 진행자라면 참가자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귀기울일 테니까요. 문제는 참가자가 진행을 아예 빼앗으려는 정도로 심하게 참견할 때입니다. 충고인지 참견인지는 때로 구분이 애매합니다만, 몇 가지 고려사항을 지키면 진행자를 곤란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진행 경험을 살린 좋은 제안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3.1. 흐름을 고려해서 얘기한다
참견이 아닌 충고를 하려면 맥락이 매우 중요합니다. 같은 얘기도 얘기하는 시점에 따라 성격이 많이 달라지게 마련이지요. 세션이나 장면 시작 전, 혹은 진행자도 막막해서 흐름이 늘어지는 시점에 하는 조언은 진행자에게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같은 얘기라도 한창 흐름이 급박한 상황에 얘기하면 진행자는 훨씬 힘이 듭니다. 이제 어느 정도 진행 내용에 대해 결정을 내리고 순간순간 진행해가기도 바쁜데 여기에 더해 참가자가 전혀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면 진행자로서는 정신이 하나도 없겠죠.
따라서 시작 전이나 흐름이 저조한 상태일 때 그야말로 돕는 말로서 조언을 하는 것은 좋지만, 진행자가 이미 내린 결정에 대해 중간에 토를 다는 것은 보통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겠습니다. 불만이 있다면 장면이나 세션이 끝난 후에 얘기하는 것이 좋겠지요.
3.2. 진행자가 말할 차례를 가로채지 않는다
제가 가끔 실수한 부분입니다만, 진행자가 질문에 답하거나 서술을 하려는데 끼어들듯 제안을 하는 것은 무례할 뿐만 아니라 진행자가 자기 기능을 다 못하게 하는 행동입니다. 뭔가 할 얘기가 있을 때는 진행자가 질문에 대한 답을 끝낸 후에 보충한다든지, 서술을 한 후에 명확하지 않은 부분을 질문한다든지 하는 것이 좋지, 진행자가 말을 할 때 끼어드는 것은 여러모로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입니다.
3.3. 명령이나 질책보다는 질문과 논의를 한다
마지막으로, 참견이 아닌 충고를 하려면 말하는 의도 자체가 중요합니다. ‘이렇게이렇게 해라’라거나 ‘왜 그렇게 했느냐’ 하는 식의 발언은 진행자를 당황하게 하기 쉽고, 참가자가 진행자 역할에 침범하는 결과가 되기 쉽습니다. 진행상 규칙 적용이나 서술, 조연 RP 등을 어떻게 할지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참가자가 아닌 진행자이므로 진행자에게 명령을 내리거나 진행상 결정에 대해 질책하는 것은 참가자와 진행자의 역할 구분을 불분명하게 합니다.
이것은 진행자가 참가자가 뭔가 우월한 위치에 있거나 상관이라서 참가자가 분수를 지켜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진행자와 참가자 역할을 구분하는 것은 그 구분에 기능적 의미가 있으니까 하는 것인데 (실제로 진행자와 참가자 구분이 없는 규칙도 꽤 있죠), 그 구분을 자의적으로 부정하면 역할구분에 따른 이점을 버리는 결과가 되므로 구분과 그에 따른 이점을 유지하자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찬가지로 진행자도 참가자 영역에 대해 명령을 내리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만, 글의 초점상 여기에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물론 침범이 아닌 제안과 조언은 매우 긍정적이지요.
진행자의 역할을 침범하지 않고 역할 수행을 도와주는 제안을 하려면 먼저 질문하고 다음 논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먼저 질문을 통해서 진행자의 의도나 어려움을 파악한 뒤 진행자와 참가자 자신의 의도를 실현할 수 있도록, 혹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함께 얘기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기 주인공의 배경이 전혀 나오지 않아서 플레이가 심심하다면 한 가지 방법은 ‘내가 열심히 쓴 배경은 왜이렇게 안 나와요? 다음번에는 좀 등장시켜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말은 진행자가 주인공 배경을 쉽게 등장시킬 수 있는데 등장시키지 않고 있다거나, 그러기를 잊었다거나, 적당한 때에 등장시킬 기회를 찾고 있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서 하는 말입니다. 사실 진행자가 어떤 의도가 있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는 물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지요.
그래서 진행자의 사정이나 관점을 알아보려면 먼저 질문을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요즘 들어 제 주인공 뒷배경은 전혀 등장 안한 것 같은데, 혹시 등장시킬 계획이 있으세요? 저 그거 열심히 썼는데…’ 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성실한 진행자라면 현재 진행 부분하고 방향성이 좀 달라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든지, 언제쯤 등장시킬 계획이라든지 하는 대답을 하겠지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문제를 해결하거나 소재를 더 재밌게 활용할 수 있을까 같이 얘기해보면 됩니다. 진행자에게 명령하거나 대립하지 않고, 진행자의 사정을 파악하고 같이 협력해서 좋은 플레이를 만들어가면 인간관계도 플레이도 한결 부드럽지요.
이상과 같이 오랫동안 진행만 했다가 참가를 할 때 고려할 만한 사항을 몇 가지 적어보았습니다. 적극성이 도를 넘지 않도록 하고, 주연도 적당히 맡으면서 진행자에게 지나치게 참견하지 않을 수 있다면 오랜만의 설레는 참가는 후회가 아닌 기쁨으로 남을 것입니다.

캐릭터의 생사에 대한 생각

지난 토요일에는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 플레이를 하면서 참가자로서 맡은 주인공이 죽는다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악마에 씌운 주민이 제 파수견 게이브리얼 허커비에게 총을 쏘는 도전을 하자 주사위 5개로 받았을 때였죠. 그렇게 하면 5d10 피해를 굴리게 되고, 피해 규칙상 가장 높은 두 주사위의 합이 16 이상이면 중태, 20이면 즉사이므로 상당히 위험한 선택이었죠.

마스터: 게이브에게 다시 산탄총을 내쏩니다. “타아아앙!!”
마스터: 6,6 빼기
게이브: 바닥에 구르다가 총이 어깨에 맞자
게이브: 억눌린 비명소리가 들리고, 피가 튑니다
게이브: “이런 망할..!”
게이브: 3, 4, 2, 2, 1 빼기

매튜: “게이브!!”
매튜: (그것도 피하지 못하냐 한심하다!! -> 한심한 동생 주사위 추가)

사실 한심하긴 한 게, 저 상황에서 주사위를 더 끌어오는 서술을 할 수도 있었는데 제가 안 하고 그냥 있는 주사위로 받아서 무지막지한 피해를 굴리게 된 거였거든요. 아직 끌어올 수 있는 주사위가 꽤 있었고 총격으로 상승도 할 수 있었으므로 피해 안 입고 막으려면 못 막을 건 없었는데 굳이, 피해를 입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판정 장면의 긴박감. 바로 코앞에서 총을 쏘는 상황에서 주사위 끌어오는 RP를 하면 그 급박한 혼란이 덜 드러날 것 같았고, 또 총이 나온 김에는 누군가는(!) 좀 다쳐야 총격의 극적 의미가 더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일행 중 가장 어리고 경험이 없는 (아마도 이번이 첫 임무?) 게이브가 가장 적합할 것 같았고요.

둘째, 캐릭터 자체의 극적 의미. 모범생인 형과는 달리 게이브는 위에서 보다시피 불량하고 거친 성격입니다. (태몽에 천사가 나와서 이름이 게이브리얼 마이클인데, 애 꼴을 보니 그 천사는 사실 루시퍼였다는 게 중론(..)) 제일 파수견답지 못한 게이브가 임무 중 다치거나 죽는다면 게이브의 자신의 이야기도 더 극적 의미를 띨 테고, 형 매튜의 감정선도 자극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위와 같은 생각은 어느 정도 들어맞기는 했습니다. 총에 맞은 게이브가 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악마를 몰아내 파수견다운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고, 형인 매튜는 죽어가는 동생을 필사적으로 살려내는 장면을 연출했죠. 두 사람의 감동적인(?) 우애의 현장도 엿볼 수 있었고요.

마스터: 매튜가 포기하지 않고 세차게 뺨을 때리자, 곧 게이브가 부스스 눈을 뜹니다.
매튜: 한방 더 때립니다. “얼간아!”
게이브: “으으..” 피를 흘려 극도로 약해진 채..
게이브: “이 자식.. 때리지..마..”

다만, 참가자로서 플레이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주인공이 저렇게 되자 부작용이 있긴 했습니다. (사실 규칙상 꼭 게이브가 누워있어야 하는 건 아닌데, 부상의 심각성이라든지 하는 앞뒤 서술상 그게 자연스러웠죠.) 서술권이 사라진 이상 남은 것은 잡담권뿐이라 남은 세션 동안은 온갖 실없는 소리 하며 구경하는 걸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물론 그것도 제 선택이었으니까 불만은 없었습니다. 부상 여부와 정도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는 점도 그 선택에 도움이 되었고요. 그래도 제일 극적이라고 생각한 선택이 극에 직접 참여하고 영향을 미치는 수단을 박탈했다는 점에서 극적 요소로서의 등장인물과 참가 수단으로서의 등장인물 사이에 생길 수 있는 긴장관계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또 진행자로서 제가 참가자들에게 종종 느끼는 불만, 즉 주인공들이 ‘몸을 사린다’는 불만을 참가자 입장에서 조명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분명 주인공을 아끼지 않아서 좋은 극적 결과를 낼 때도 있지만, 그 대가는 적어도 한동안은 플레이에서 빠지는 것이니까요. 이것이 조작할 말이 하나밖에 없는 참가자의 어려움이기도 하겠지요.

주인공 몸을 더 사리게 되는 이유는 주인공을 함부로 죽이거나 다치게 하는 것이 이기적인 플레이가 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주인공은 참가자의 자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체 일행, 나아가서느 전체 플레이의 자원이기도 하니까요. 예를 들어 위에 게이브의 부상은 제가 생각하기에 재미있기는 했지만 플레이 시간과 초점을 한동안 제 캐릭터에게 집중시키는 결과가 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행이 하나 줄어드는 것도 남은 일행에게는 큰 애로사항이 될 수도 있죠. 전투력이 감소한다거나, 필요한 기능을 사용할 수 없어진다거나. 포도원의 개들은 덜하지만 예를 들어 D&D나 겁스라면 문제가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즉 이미 혼잣몸이 아니라는 사실도(?!) 주인공 몸을 더욱 사릴 만한 이유가 되겠죠.

이런 점이 문제가 된다면 대체 인물 제공 등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개연성 등을 생각하면 완전하지 못한 해결책인 때가 많고, 무엇보다 제가 느낀 역설은 객관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제 취향 때문이기도 하니까요.

왜  그런가 하면 참가자의 유일한 직접적 참여 수단이 주인공인 건 그만큼 그 주인공에 몰입하고 집중하라는 구조적 배려일 텐데 저는 특정 인물에게 몰입하거나 애착을 갖는 걸 잘 못하거든요. 개별 인물의 행동과 내면은 전체 이야기의 일부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서 참가보다는 진행, 내지는 진행자 없는 규칙의 참가자 역을 선호하는 것 같고요.

결국 취향과 상황에 따라 서술권의 적정 범위도 달라지는 것 같고, 그런 제각각의 욕구를 충족해줄 수 있을 만큼 서술권의 종류와 범위를 여러 가지 조합으로 제공하는 다양성이 이 취미의 매력이기도 하겠죠. 물론 지금 제 상황처럼 직접 서술권이 전혀 없는 관객 입장도 재미있어서 이래저래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꽤 오랜만에 참가를 해보니 이렇게 플레이를 또 다른 각도로 볼 수 있어서 좋군요.

진행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 (2) – 질문

물고기님과 얘기하면서 떠오른 내용입니다. 물고기님의 질문 내용이자 전에도 몇 분에게 들은 고민은 바로 언제 끼어들고 언제 행동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었죠. 그럴 때 참가자와 진행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바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플레이 중 막힐 때 해결책은 간단합니다. 잘 모르겠는 건 물어보면 됩니다. ‘지금 눈앞에 적이 있나요?’ 라든지, ‘주변에 사람이 많아요?’ 혹은 좀 더 추상적으로 ‘우리가 지금 발언을 할 수 있는 분위기인가요?’ 등등. 궁금한 게 한두 가지 사실이 아니라 그냥 뭘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는 ‘선택지를 제시해 주세요.’ 하는 요구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행동에는 무엇무엇이 있나요?’의 변형일 뿐이기도 하고요.

막혔을 때 진행자에게 질문하는 것은 진행자를 도와주는 일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진행자는 (불행히도) 독심술이 없습니다. 따라서 참가자는 헤매고, 진행은 안 나가고, 다들 막막한 게 역력한 상황에서 어떤 점이 잘 전달이 안 되고 있는지, 어떤 정보가 더 필요한지, 어떤 부분에서 행동 선택지를 더 명확하게 해야 할지 진행자가 스스로 알아내기는 어렵습니다. 진행자의 전달 사항은 진행자 자신이야 완벽하게 이해하죠. 중요한 건 ‘진행자가 말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참가자가 이해한다’는 소통 부분이므로 참가자는 이해가 안 될 때는 적극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질문이 너무 많으면 진행자의 전달 능력이나 참가자의 이해 능력, 혹은 양자의 소통에 뭔가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들 수 있습니다. 그건 맞습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질문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전달이나 이해, 소통에 문제가 있는 부분을 드러낼 수 있고 해결도 할 수 있으니까요. 기침을 참는다고 병이 낫지 않듯, 질문이 생기는 원인은 질문을 안 한다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물론 주의를 기울이고 서로 주의깊게 상대의 대사나 선언, 묘사를 해석하는 집중력은 필요합니다. 전혀 안 듣고 있다가 “마스터, 방금 뭐라고 그랬어요?” 소리를 연발하는 참가자라면 좀 문제가 있겠죠. 하지만 그럴 때라 하더라도 질문은 문제를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마스터, 지금 다들 위치가 어떻게 돼요?” 하는 질문이 자주 나온다면 진행자는 위치 설명을 충분히 하지 않는구나… 하는 자각을 하고 고칠 수도 있겠죠.

질문이 쓸데없는 것인 때도 있습니다. “공주를 죽인 건 누구에요?” 같은 질문에 “그게 지금 여러분이 알아낼 일이에요. ㅡㅡ;;” 라는 대답이 돌아올 수도 있죠. 그렇다면 그것 역시 중요한 질문입니다. 플레이 중 과제를 확실히 알았으니까요. 대답해줄 수 없는 질문조차 그 대답해줄 수 없다는 사실 자체에 충분한 가치가 있죠.

진행자가 참가자에게 던지는 질문도 마찬가지로 도움이 됩니다. 선언이 불명확할 때 (“사천왕 중 어느 쪽을 공격하죠?”), 행동의 결과가 참가자가 바라지 않는 것일 것 같은 때 (“함정 해체 안하고 들어가나요?”), 플레이가 잘 안 풀리고 있을 때 (“지금 지루한 건 저 혼자뿐?”) 등등. 그러나 진행 방식이 참가자와 상당 부분 정하고 들어가는 의논형이 아니라면, 왠만하면 선언에 불명확한 게 없는 이상 바로 그 행동에 효과를 주는 게 더 긴장감 있다고 보기는 합니다.

이상과 같이 플레이 중 질문의 효용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질문이 잘 안 나오는 건 비단 놀이문화뿐 아니라 문화 전반적 현상이기도 한데요, 플레이를 완전히 질문으로 도배할 필요는 없지만 막혔을 때, 막막할 때, 잘 모르겠을 때야말로 질문을 던져야 할 때가 아닐까요. 특히 글 첫머리에 언급한, 플레이 중 막막한 일이 잦은 참가자에게는 큰 도움이 되리라고 봅니다. 질문을 하는 데 어떤 심리적, 사회적 장벽이 있는지, 그걸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하는 논의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주인공(PC) 만들기

옛날 글이지만 Asdee님의 글 RPG의 캐릭터: 시트, 캐릭터, 플레이어와 함께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 엮습니다. 그 글에서 나온 논의의 세 가지 층에 맞추어 생각해 보면 이 글은 참가자 욕구에서 시작해 (플레이어) 인물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인물의 독자적인 생명력이 나오고 (캐릭터), 여기에 규칙상의 수치를 형성해 가는 과정이 얽힌 (시트) 구성이 되겠군요. 덧붙여서 인물의 방향성이 산만하거나, 앞뒤가 안 맞거나, 심심해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질적 고려도 들어가고요.

인물은 RPG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대개의 이야기는 인물 군상과 그들간의 갈등에서 나오지요. 그중에서 특히 주인공(PC)은 이야기의 주체이자 참가자가 RPG에 참여할 게임적, 감정적 수단으로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어떤 규칙책이든 주인공의 제작법을 설명하고 있지만, 규칙 외에 극적으로도 효과적인 인물을 만드는 것은 규칙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어떤 인물이 참가자와 진행자 모두 다루고 쉽고, 앞뒤가 맞으며, 능력도 짜임새 있게 넣고 성장시킬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각자 자신의 경험이나 취향에 기반한 해답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대충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인물 설정의 중심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인물이든 캠페인이든 아니면 다른 발상이든 한두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지나치게 복잡한 것이 보통입니다. 아니면 스스로 그 중심 내용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므로 개념을 좀 더 명확화해야 할 것입니다.

이 한 문장 요약의 출처는 여러 가지일 수 있습니다. 구현해보고 싶은 어떤 이미지에서 추출한 것이라든지, 좋아하는 게임이나 소설 속 인물에게 따온다든지. 어쨌든 한 문장으로 요약한 설정은 예를 들면 ‘목장에서 자라난 순수한 소녀’라든지 ‘아무도 믿지 못하는 고아 출신의 비정한 도둑’ 하는 식으로 표현할 수 있겠죠.

이렇게 요약한 내용이 마음에 드는지 충분히 생각해 보고, 다른 참여자들과 함께 제작하는 중이라면 어떤 식으로 주인공들이 아귀가 맞거나 갈등할지 토의합니다. 예를 들어 목장에서 자란 순수한 소녀와 고아 출신 도둑은 서로 가치관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사뭇 달라 보이므로 충돌의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한편으로는 서로 배경이 판이하게 다르므로 서로 능력과 약점을 보완할 여지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소녀가 아무나 덥썩 믿으려고 한다면 도둑 쪽이 ‘야 이 촌X아!’ 하면서 경고해줄 수도 있고, 반면 도둑이 믿어야 할 사람도 못 믿어서 문제가 생긴다면 소녀 쪽이 잔소리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문장 요약에 충분히 만족하면 여기에 살을 붙이는 작업에 들어갑니다. 우선 필요한 것은 설정의 확장. 목장에서 자라났다면, 어디에 있는 목장? 기후는 어떤 곳? 인심은 어떤 곳? 목장의 경제사정은 어땠으며, 그것이 소녀의 가족과 소녀 자신에게 미친 영향은? 등등. 또 도둑 쪽은 어떻게 고아가 되었는지? 고아가 되고서는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 어떤 분위기의 도시에서 자라났는가? 하는 식으로 질문을 통해 설정을 더욱 구체화하고 다듬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개별 설정을 규칙으로 어떻게 구현할지 메모하면 더욱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겠죠.

이 확장 단계에서는 자칫 설정이 중구난방이 되기 쉬운 만큼 위의 한문장 요약이 초점 역할을 합니다. 즉, 원래의 중심 설정에 비추어 이것이 과연 필요한 설정인지 판단해 보며 가지치기를 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뒷골목에서 자라던 도둑이 대마법사의 눈에 띄어서 제자가 된다는 설정도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면 원래의 설정과는 꽤 달라지게 됩니다. 그게 이 인물을 통해서 표현하려는 바와 일치하는지, 너무 지저분하게 설정이 늘어나서 설정의 색채를 흐리지는 않을지 고려할 때 사용하는 도구가 위의 한 문장 요약입니다. 처음에 도둑으로 생각했는데, 마법사로 바꿀 것인가? 아니면 마법사이면서 도둑? 둘 다일 필요가 있을까? 아예 설정을 고칠까? 등등.

마찬가지로 한 문장 요약은 몇 가지 가능한 설정 중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는데도 유용합니다.목장에서 자란 소녀가 어느날 떠돌이 검술사범이 집에 묵어가는 동안 그에게 검술을 배웠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양떼를 위협하는 짐승들을 쫓아내려고 돌팔매질을 잘하게 되었다는 게 원래의 한 문장 요약에 좀더 어울릴 테니까요.

이렇게 확장을 하고, 그 확장한 설정에서 유추해서 또 내용을 만들고, 이 모든 설정의 필요성을 한 문장 요약에 비추어 판단하고 나면 왠만큼 자세하면서도 방향성이 있는 설정이 생겼을 것입니다. 여기쯤에서는 다시 판단을 해야 합니다. 이 정도면 충분한가, 아니면 아직 좀 심심한가?

이 판단을 할 필요가 있는 이유는 방향성이 확실한 설정은 일관성과 개성은 있지만 평면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사람이란 굉장히 복잡다단하기 마련이라 한 가지 면모만 존재하는 일은 거의 없거든요. 아무리 아무도 믿지 못하는 도둑도 정말로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만 똘똘 뭉쳐있다면 숨막힐 수 있고, 아무리 순진한 시골 처녀도 이슬만 먹고 산다는 듯 청정하기만 하면 인물이라기보다는 캐리커쳐가 됩니다.

그래서 위의 설정 확장 과정을 통해 좀더 다양한 질감을 끌어내는 것이지만, 때로는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불충분하다고 느낄 때 생각해볼 수 있는 방법이 한 문장 요약과 오히려 반대인 설정을 추가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우리의 도둑은 사람을 잘 믿지 못하지만 자기 구역에서 구걸하는 눈먼 노파는 믿는다든지, 우리의 목장 아가씨는 마냥 순진해 보이지만 사실은 도시로 도망갈 자금을 모으려고 장에서 가축 판 돈을 아버지 몰래 떼어먹고 있다든지. 이와 같이 한문장 요약에 반대되는 설정을 추가하면 인물에게 의외성과 다면성, 그리고 흥미로운 갈등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이것으로도 아직 인물이 완전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면 인물의 방향성과 일치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반대되지도 않는 설정을 추가할 수도 있습니다. 자칫 인물의 방향성이 산만해지기 쉬우니 많이 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추가하면 설정을 더욱 풍부하고 입체적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죠. 왠만해서는 위의 설정 확장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설정을 만들고 나면 최종 점검을 합니다. 우선 앞뒤가 안 맞는 데는 없는지 봅니다. 위의 설정 확장 과정을 논리적으로 했다면 크게 어긋나는 부분은 없겠지만, 부분을 볼 때와 전체를 볼 때의 관점은 또 다르니까요. 목장에서 억척스럽게 일하며 자라난 아가씨가 집안일은 전혀 할줄 모르고 피아노와 하프는 기가 막히게 연주한다면 뭔가 수정이나 설명이 필요할 것입니다.

또한, 이 인물이 규칙과 캠페인의 성격에 비추어 효과적인지도 중요한 점검 내용입니다. 사실 이 부분은 이미 설정의 한 문장 요약에서 대부분 파악할 수 있지만, 점검 단계에서 또 한번 살펴볼 필요도 있습니다. 캠페인에 꼭 필요한 능력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거나, 전혀 필요없는 능력만 많이 배운 설정이라거나 하면 수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인물에게 목적 내지는 바람이 있는지도 검사합니다. 보통 목적은 설정 내용에서 자연스럽게 나오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설정과 캠페인을 감안해 단기 목표 한 가지와 장기 목표 한 가지 정도를 넣는 것이 무난하다고 봅니다. 주인공들의 목적은 진행자가 캠페인을 전개하는데 중요한 참고사항 중 하나이며, 참가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도구이기도 하니까요.

이 목적이 캠페인에 어울리며 다른 주인공들의 목적과 어느정도 조화하는지도 확인합니다. ‘평생 아무 위험도 없이 평온하게 늙어가고 싶다’는 것이 유일한 목표이자 열망인 주인공은 대개의 캠페인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물론 이는 인류 공통의 소망이기도 하지만, 위험과 죽음을 피하고 싶은 마음을 극복할 만큼 큰 바람이 없는 인물은 보통 모험을 하지 않으니까요. ‘반지의 제왕’의 예를 들자면 빌보와 프로도는 둘다 소박하고 먹기 좋아하는 호빗이었지만 빌보는 그동안 억누르고 있던 모험욕에 이끌려 위험한 여행을 떠났고, 프로도는 자기 신변과 중간계에 대한 위협 때문에 여행을 떠났듯이요.

주인공의 목적은 서로 어느 정도 공존 가능한 것이 좋지만, 충돌 역시 극적 갈등을 유발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주인공들이 서로 적일 수밖에 없는 목적을 설정하는 것은 꽤나 특이한 캠페인이 아닌 이상 바람직하지 못할 것입니다. 충돌하는 목적을 처리하는 한 가지 방법은 ‘어느 시점까지는’ 협력해야 하거나 협력할 수 있는 목적을 설정한 뒤, 그 목적들이 더이상 상호 공존할 수 없는 시점을 캠페인의 종결 내지 절정부로 만드는 정도겠죠. 예를 들어 A와 B는 모국을 외적에게서 되찾고자 협력하지만, 일단 이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왕당파인 A는 왕실을 부흥시키려 하고 공화파인 B는 선거를 통해 민주정을 확립하려고 하고 있다든지 하는 식.

모든 설정을 마치면 이 설정을 규칙으로 구현해서 시트로 옮기면 됩니다. 게슈탈트적 제작이라면 설정을 구획화만 해서 거의 그대로 시트로 옮길 테고, 분석적 제작이라면 조금 더 해석이 필요할 것입니다.(주:게슈탈트적 제작과 분석적 제작 참조) 시트 기입 단계에서도 한 문장 요약을 참조해서 방향성에 맞는지 확인하고, 또 설정과도 어울리는지 확인하면서 하면 더욱 좋겠지요. 전술적 효율성을 확보하면서 설정이 달라질 수도 있는 등 (‘돌팔매질은 너무 피해가 안나오는걸. 아버지가 퇴역 군인이라 딸한테 검술도 좀 가르쳤다는 건 어떨까?’), 설정과 시트 기입은 서로 다양하게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물론 이상 적은 것은 주인공을 제작할 때 대체로 제가 거치는 과정을 풀어서 쓴 것일 뿐, 실제로 이 일련의 과정들은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고 생략되거나 순서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개인의 취향이나 캠페인의 필요에 따라 주인공 제작법은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먼저 시트부터 시작한 후 그에 맞는 설정을 만들기도 할 테고, 캠페인의 내용을 먼저 정한 뒤 이에 맞는 설정을 짤 수도 있는 등 방법은 다양합니다. 여기 나온 것은 수많은 접근 중 하나일 뿐이지요. 어쨌든 흥미로운 주인공을 만드는 한 가지 방법일 수는 있습니다.

또한 여기서 다룬 방법은 주인공(PC)에 대한 것이지 조연(NPC)에 대한 것은 아닙니다. 조연과 주인공을 만드는 방법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조연 제작에 대해서는 기회가 난다면 차후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플레이어의 실력이란?

GM의 실력은 자주 논의되는 문제이지만 플레이어의 실력도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재미있는 세션을 진행하는 GM과 그렇지 않은 GM이 있듯이, 분명히 GM과 다른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봐도 반겨지는 플레이어가 있고 꺼려지는 플레이어가 있습니다. 그 차이를 생각해 보죠.

게임 외적인 문제에서 보자면, 모든 참가자에게 공통되는 것이지만 실력있는 플레이어는 시간을 잘 지킵니다. 가장 기본적인 문제이죠. 아무리 플레이에 들어가면 날고 긴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시간을 맞추지 않으면 플레이를 시작할 수조차 없습니다. 또한 실력있는 플레이어는 늦거나 결석할 때 반드시 미리 통보를 합니다. 안 그러면 GM도 다른 플레이어들도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리며 시간을 낭비할 테니까요. 아니면 그 플레이어는 아예 포기하고 진행할 테고, 그러다 보면 점점 겉돌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건 전혀 못해도 시간만 지키면 일단 반은 된 겁니다. 플레이에 문제가 있으면 차차 교정해 가면 되지만, 지속적으로 안 나타나는 분은 도저히 어떻게 할 방법이 없거든요.

또한 플레이어의 실력에는 팀원과의 의사소통도 포함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과 모든 팀원이 즐겁기 위해서 끊임없이 의사소통을 시도하고 유도하는 것은 좋은 플레이어의 덕목 중 하나입니다. 이건 플레이 내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캐릭터 메이킹에서도 적용됩니다. 자신의 PC가 다른 PC와 함께 움직일만한 이유를 전혀 부여하지 않는 건 캐메에서 의사소통이 없었다는 뜻이죠. 특히 비사회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놓고서는 ‘이놈은 원래 이런 놈이예요.’ 하면서 다른 PC와의 상호작용을 거부하는 경우도 봤는데, 매우 좋지 않은 모습입니다. (그게 멋인가요? ;; 제가 보기엔 전혀 아닌데…) 그렇다면 비사회적이라도 억지로라도 다른 PC와 상호작용을 할 이유를 만들든지 해야죠. 물론 GM의 책임이 큰 부분이기도 합니다.

또한 분위기 파악도 의사소통의 중요한 일부입니다. 세계관의 분위기, 파티의 분위기, 플레이의 분위기… 다른 팀원들과 똑같이 맞추라는 게 아니라, 개성있는 부분은 있어도 지나치게 이질적이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와 연관해서 실력있는 플레이어는 자신과 타인의 재미를 조화시킵니다. 다른 플레이어가 재밌으라고 계속 자신의 재미를 계속 양보한다면 좋은 플레이어라고 할 수 없죠. 자신이 재밌지 않으면 플레이는 시간낭비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자신이 재미있자고 다른 플레이어의 재미를 희생하는 것도 좋은 플레이어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보통 문제되는 건 후자 쪽이지만…) 플레이는 자신이 즐거운 동시에 모두가 재미있기 위한 것이고, 다른 참가자들의 즐거움에 의해 자신의 즐거움이 배가되는 것이니까요. 플레이 중에 말도 안되는 해코지를 해놓고 혼자 재밌어한다거나, 혼자 튀려고 계속 파티에서 떨어져서는 GM이 자신 쪽만 진행하라고 강요한다거나 하는 행동은 절대 다른 참가자들에게 환영받지 못합니다.

역시 이와 연관된 문제로 좋은 플레이어는 주연과 조연의 역할을 둘다 잘합니다. 자신이 현재 가장 튀는 위치에 있든, 아니면 잠시 다른 PC를 보조하는 역할을 맡았든지 간에 주연과 조연으로서 가장 알맞은 플레이를 하는 플레이어는 어디가서나 환영을 받지요. 끊임없이 자신이 주인공이려고 하거나, 아니면 자신에게 주의가 쏠리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것은 둘다 좋은 모습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PC 1이 어려서 헤어진 자신의 형과 적으로 맞서게 되었다고 합시다. (촌스런 설정..이지만..ㅡㅡ;;) 적어도 한 장면, 길게는 여러 세션간 PC 1은 주인공일 수밖에 없습니다. 동료와 혈육 사이에서 고민하는 그의 내적 갈등과 힘든 선택에 마주한 극적 상황에 무대조명을 비춰주는 것이죠. 이런 때 PC가 아무런 반응도 없다면 GM으로선 정말이지 김새는 일일 것입니다. 물론 자신은 괜찮다고 하거나 의도적으로 자신에게서 주의를 돌리려는 행동은 감정적으로 곤란할 때 흔히 나타나는 반응이고, 이런 것은 좋은 연기에 해당되죠.

이렇게 PC 1이 잠시 주인공이 되면 나머지 PC들은 자연스럽게 조연이 되어 PC를 위로하고, 정신 차리라고 꾸짖고, 때로는 가만히 지켜보는 등 당분간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PC 1에게 돋보일 기회를 주고 캐릭터 연기의 폭을 넓히는 방법이겠죠. (게다가 저는 조연이 재밌던데..ㅋㅋ) 문제가 되는 건 다른 PC에게 관심이 가는 걸 절대 참을 수 없는 플레이어입니다. PC 1이 괴로워하는 걸 PC 2가 열심히 위로하는데 갑자기 PC 3이 주의를 끌려고 돌출행동을 한다면 좋게 보일 리가 없죠. 위에서 말했듯이 플레이어의 실력은 자신의 재미와 타인의 재미를 조화시키는 것입니다.

또한 좋은 플레이어는 적극적인 플레이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한 돌출행동을 하는 적극성이 아니라, 플레이에 있어서 능동적이고 (반드시 캐릭터가 능동적인 건 아니지만) 선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적극성이야말로 RPG라는 매체에 맞는 태도 아닐까요.

이 외에도 추가적인 요소라면 자신의 선택을 능동적으로 하면서도 GM의 의도를 어느정도 파악해 준다든가, 다른 플레이어의 적극성을 유도한다든가 하는 것이 있겠지만, 위의 요소들만 갖추어도 이미 차고 넘칠 정도이기 때문에..^^

잠시 푸념을 해보자면, 즉플이나 미니캠페인을 하고 싶어도 이미 검증된 실력의 팀원들이 아니면 함께하기가 꺼려지는 게 요즘 심정입니다. 미니캠페인과 즉플 경험을 말하자면, 첫 세션만 하고 아무 연락도 없이 다시는 안 나타나는 분, 전혀 플레이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막무가내로 가는 분, 지나치게 잦은 잡담으로 흐름을 깨는 분… 요즘 즉플이 많이 줄었다고 느껴진다면 이런 것도 한 요인 아닐까요. (저만 그럴지도..ㅡㅡ;;) 많은 RPG인이 더더욱 실력이 늘어서 즉플을 열기가 두렵지 않은 다챗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