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포도원의 제다이

포도원의 워게임 (?)

1283729399.html

공화국 함대시스 함대 시트

어제 포도원의 제다이 세션은 소년H님이 못 오셔서 전에 구상했던 외전 플레이를 했습니다. 단순한 외전이 아니라 플레이 형태 자체가 달랐지만요. 각 참가자가 함대 하나의 역할을 맡아서 함대를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 규칙으로 제작한 후, 갈등 판정으로 대규모 전투를 처리하는 형식이었습니다. 도전이 예를 들어 ‘제다이 돌격대를 내보낸다’라면 응대는 ‘아군 함선을 조우 경로로 보낸다’ 하는 식이었죠.

물론 이것만으로는 밋밋하니까, 그 도전과 응대의 인간적·극적 결과를 표현하려고 ‘줌인’ 기법을 함께 사용했습니다. 위의 예에서 사령관이 제다이를 출격시키는 결정을 내렸으면 거기서 장면 전환을 해서 출격을 기다리는 제다이들의 모습을 연기한다든가. 이러한 줌인 장면에서는 각자 인물을 즉석에서 만들거나 골라잡아서 자유롭게 RP했습니다. 줌인 장면의 향방은 도전과 응대 결과를 참조해서 같이 결정했고요.

전투는 엑자르 쿤의 전쟁 중 센타레스 주변에서 벌어진 센타레스 전투였습니다. 캠페인 설정에 있는 과거의 사건이어서 이미 있는 설정과 어긋나는 것을 피해야 하는 것이 어려움이라면 어려움이었죠. 일단 센타레스 전투는 공화국이 승리했다는 설정이었는데, 주사위를 굴려서 규칙대로 판정하다 보면 시스측이 이길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해결책은 간단했습니다. 갈등 판정 개념을 살려서 ‘승리’가 무엇인지 규정하면 끝. 의논 끝에 공화국이 센타레스 성역을 차지하는 것은 어느 쪽이 이기든 마찬가지이되, 판정의 결과에는 다른 것을 걸기로 했습니다. 시스가 판정에 이긴다면 소모전으로 공화국군에게 큰 피해를 주고, 공화국군이 판정에 이긴다면 적은 피해만으로 센타레스를 통과해서 기다리는 다른 함대와 합류한다고 말이죠. 즉, 센타레스를 공화국이 차지한다는 결과는 아예 판정에 걸지도 않았습니다. 이로써 억지로 규칙을 비틀어서 ‘바람직한’ 결과를 낼 필요 없이 마음껏 판정할 조건은 갖춰졌죠.

혼자 구상할 때는 나름 재밌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플레이 방식이었는데, 실제 해보니 그 효과는 정말…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규모감과 박진감에 셋 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꼬박 10시간을 앉아, 결국 우주전 하나를 시작부터 끝까지 해버리는 만행을 저질러버렸어요. ;ㅁ; 끝나고 나서 다들 괴성을 지르며(?) 쓰러져서는 감동에 겨워 어쩔 줄을 몰랐죠. 사실 이게 RPG인지 뭔지도 모르겠고 하여튼 뭔가 ‘엄청나게’ 놀았다는 기분이었습니다.

보통 플레이 기록 정리할 때 잡담은 빼는데, 센타레스 전투는 아무 준비 없이 플레이의 모든 것이 저 ‘잡담’에서 나왔기 때문에 도저히 뺄 수가 없더라고요. 플레이 외 대화는 잿빛 배경으로 처리했고 안 보이게 끄는 컨트롤도 달아놓았습니다. 버튼 자체도 보이고 안 보이게 조절할 수 있고요. (ActiveX니 어쩌니 하는 익스플로러의 사기를 믿지 마십… 약간의 DHTML밖에 없는데. 위험하고 불편한 ActiveX는 MS 지들이 하지 내가 하나..ㅡㅡ++)

워낙 기니까 크게 3부로 나누어서 대체로 주요 대목별로 구분했습니다. 앞으로 각 부별로 천천히 요약을 올리도록 하지요.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서주 (序奏)

1부: 개전의 포화
(1) 폰을 움직이다
(2) 젊은 파일럿에게 축배를
(3) ‘어쩔 수 없는 것’의 의미

2부: Kings and Queens
(1) 킹을 노리다
(2) 포스가 함께하기를
(3) 퀸을 움직이려면
(4) 목표 수정
(5) 체크메이트를 향하여
(6) 죽은 영웅, 산 청소부
(7) 폭풍이 다가오다
(8) 넷 러닝
(9) 사냥을 시작하다
(10) 사냥감 사냥꾼

3부: 난류 (亂流)
(1) 반격
(2) 반전
(3) 신뢰
(4) My Pace
(5) 결투
(6) 누구의 체크메이트?
(7) 나이트를 위한 만가

에필로그

뭐 이게 왜 이렇게 재밌었는지 분석하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일단 셋이서 상당히 손발이 척척 맞았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서로 떠오르는 발상을 활발하게 교환하면서 연출도 구성도 정교하게 만들 수 있었고, 그러면서 나오는 상승 작용도 상당했습니다. 사실 많은 인디 RPG가 그렇듯 포도원의 개들 규칙책도 이런 식으로 플레이할 것을 권장하는데, 보통은 제가 의견을 구해도 별로 의견이 나오지 않는 느낌이었거든요. 근데 이번은 진짜 백지상태로 들어가는 걸 알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플레이 내용이 상상력을 자극했는지, 굉장히 좋은 발상들이 끝도 없이 나와서 플레이를 풍부하게 만들었죠.

본 캠페인의 사건이나 인물과 이런저런 연관이 들어간 것도 굉장히 다층적인 극적, 감정적 의미를 더했습니다. 몇 년 후면 카론에서 죽을 다쓰 프리아트가 살아서 펄펄 날뛰는(…) 모습이라든지 (1부 (1) ‘폰을 움직이다’ 이하 다수), 캠페인 최초로 등장한 다쓰 세데스의 무시무시한 존재감 (3부 (5) ‘결투’ 등), 센타레스 전투가 설정에 나온 이유였던 칼레나 할라크의 죽음 (3부 (7) ‘나이트를 위한 만가’), 전장에서 아주 짧게 스쳐간 베오나드 코티에르와 자락스 토레이 사이에 싹틀 반목에 대한 암시 (2부 (10) ‘사냥감 사냥꾼’), 소년 시절에도 이미 극도의 기술적 재능과 신비한 인도자의 존재라는 두 세계를 오가는 센의 모습 (3부 (4) ‘My Pace’) 등.

캠페인 주요 인물들 외에도 이번 플레이에서 처음 등장한 인물들도 인상깊었습니다. 젊은 공화국 파일럿들의 즐거운 모습과 가슴 아픈 죽음 (1부 (2) ‘젊은 파일럿에게 축배를’), 점령지에서 징발당해 소모품 취급받으며 죽어가는 시스 군인들 (1부 (3) ‘”어쩔 수 없는 것”의 의미’), 니모 선장 주제곡이 너무 잘 어울렸던 공화국 측 사령관 르베리에 제독 (2부 (1) ‘킹을 노리다’, 3부 (3) ‘신뢰’ 등), 시스 군 휘하 별동대원들의 왁자지껄한 동료애… (2부 (6) ‘죽은 영웅, 산 청소부’) 줌인 장면 동안 셋이서 어림잡아 스무 명 안팎의 인물을 잡으면서 우주전이라는 거대한 상황을 상당히 폭넓게 조명한 점이 규모감 표현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문제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인간을 만들려고 있는 규칙을 즉석에서 집단에 적용하다 보니 특히 인간관계 부분이 애매했는데, 이것을 ‘외부 상황’ 정도로 얼버무린 결과 시스 군대를 ‘복잡한 공동체’ 배경으로 만든 의미가 좀 희석된 느낌도 들더군요. 복잡한 공동체 배경에 압도적으로 많은 인간관계 주사위는 군대에 얽힌 복잡한 인간관계와 알력들이 나올 때 사용해야지, 주변 지형물이나 숨겨둔 별동대까지 들어간 것은 지금 생각하면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반면 두 지휘관 사이의 알력이나 시스에 대한 공포 등은 잘 어울렸고요. 생각해 보니 자기폭풍 같은 주변 상황 이용은 즉석 장비 규칙으로 처리하면 되는 거였는데 하고 뒤늦게 후회중..(…) 그렇게 하면 자꾸 주변 환경을 끌어들이는 도전과 응대를 유도하기 때문에 서술도 더욱 입체적이고 창의적이었을 테고요.

그 외에 처음 시작한 1부는 아무래도 모두 생소한지라 다소 무리가 보이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특히 1부 (2) ‘젊은 파일럿..’에서는 젊고 유쾌한 파일럿들의 희생을 유도하느라 논리적으로는 제가 약간 억지를 썼죠. 그냥 정석적으로 적 파일럿과 도그파이트하다 사망..도 괜찮았을 텐데 말이죠. 그 외에 자꾸만 인물이 바뀌다 보니 나중에는 누가 얘기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던 점은 좀 혼란스러웠습니다. 그 부분은 말머리를 붙이거나 누가 얘기한다고 서술해서 간단하게 해결했지만요.

기록을 읽으면서야 알았는데, 자꾸만 아카스트님의 의견을 묵살하는 식으로 간 점이 개인적으로 가장 큰 실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본의는 아니었는데, 플레이 시간이 길어져서 그랬나 못 보거나 의도를 잘못 이해하고 그냥 제 생각대로 밀어붙인 데가 꽤 되더라고요. 좋은 의견이 많았는데… 그 점은 정말 죄송합니다. (흑흑)

문제도 있었지만 어쨌든 대단히 즐거운 플레이였습니다. 이방인님은 서로 죽도록 미워하는 두 시스 로드를 플레이하며 정신 건강에 대한 우려를 유발하시는 등(…) 아마 우리 중 제일 다양한 인물을 넘나드는 카멜레온적 괴력을 과시했고, 전투의 구성을 더욱 조이면서도 설정에 어긋나지 않도록 이끈 1등 공신이시기도 했습니다. 아카스트님이 맡으신 르베리에의 대담한 전술은 결국 전투의 중심 갈등을 끌어냈고, 서버가 나갈 때까지 나온 음악 방송은 영화적인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습니다. 스타워즈 서주 들으면서 상황 설명하는데 좋아서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로크락 역을 맡아 어린 나이에도 능청스러운 센하고 농담 따먹는 재미도 쏠쏠했고요.

무엇보다 아카스트님의 르베리에와 이방인님의 다쓰 프리아트, 두 사령관의 180도 다른 철학과 목적이 전투 전체의 극적 맥락을 끌어가면서 플레이의 주제의식을 형성하는 과정이 흥미진진했습니다. 야비한 적 앞에서 임무에 대한 책임감과 부하에 대한 애정 사이에 고뇌하는 르베리에의 인간적인 모습, 전쟁을 체스 게임처럼 생각하며 아무 거리낌 없이 적과 아군 모두를 파괴하는 다쓰 프리아트의 냉혹함… 그것은 어떻게 보면 공화국의 이상과 시스의 철학 사이에 필연적으로 생기는 갈등이기도 하고 (뭐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는 단서는 늘 붙습니다만), 그런 면에서 본 캠페인의 주제와도 닿아 있지요.

어쨌든 여러모로 제가 참가자 복 하나는 진짜 많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드는 플레이였습니다. (사실 제가 이 플레이의 진행자였는지도 애매한 문제… 일단 이걸 RPG라고 할 수 있는지부터가 의문이니까요.) 좋은 플레이 함께해주신 두 분께 감사드리며, 길면서도 박진감 넘쳤던 이 장대한 플레이에 대한 감상을 일단 접습니다. 정말 캠페인 하나쯤 마친 느낌이라니까요.

포도원의 제다이 17화 – 코루선트 (5부)

1325273392.html

아침에 세 제다이는 아를란에게 넬반의 사정에 대해 전해듣습니다. 출입이 통제되고 특히 센과 같은 넬바니안은 출입이 힘든 등, 아마도 숨어드는 방법을 이용해야 할 듯 합니다.

이번 세션은 여기서부터 참가자들하고 기대치가 어긋났던 것 같습니다. 전 넬반 사정 얘기를 좀 듣고 시작하고 싶어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근거 없는 예측은 반드시 벗어난다는 걸 깜박했군요..(..) 거기다가 지난번 갈등 판정 이후 개과천선중인 아를란은 굴리기가 심각하게 까다로워서 이래저래 보조가 흩어졌습니다. 주도적인 위치가 되어서도 안되고 될 능력도 없는 인물이라, 이래저래 이 장면은 너무 어색하더군요.

진행상 ‘뭔가를 해야겠다’라고 미리 생각하는 건 역시 통하지도 않고, 시간만 낭비하는 결과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냥 상황을 던져주고 거기 반응하는 참가자들에게 반응하는 게 원래 제 방식인데, 요즘 들어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요. 장기 캠페인은 뭔가 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일까요.

이후 쟈네이딘이 사무실로 불러서 간 그들은 쟈네이딘이 오르가나와의 혼담을 피하기 위해 자신들을 이용했다는 것을 시덥잖은 홀로비드 보도에서 짐작하게 됩니다. 쟈네이딘과 만난 제다이들은 아우터 림에서의 일정에 대해 간략하게 얘기하고, 막 나오려는 참에 사무실로 쳐들어온 의원들과 마주치지요.

정보 전달은 정말 힘들더군요..(..) 또 막상 터뜨리고 나니 별것도 아닌 것 같고, 너무 전달 방식이 일방적이어서 진행자 혼자 중얼중얼 혼잣말하는 진행이.. 게다가 조연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습..(..)

오르가나를 포함한 의원들은 쟈네이딘에게 안전을 이유로 코루선트 입법철이 끝나면 일단 알데란으로 돌아올 것을 종용하지만, 사실 그 기저에는 오르가나와의 혼담이 깔려 있습니다. 제다이들은 안전에 대한 의원들의 염려를 간단하게 물리치지만, 정작 중요한 얘기는 나오지 못한 상태에서 긴장감은 깊어갑니다.

..라지만 이거 빨리 끝내고 코루선트를 뜨고 싶다는 생각만 무럭무럭. 사실 당사자인 쟈네이딘의 개입 없이 이건 지지부진한 갈등이 될 수밖에 없는 면도… 아아 조연 난무는 싫어..(…)

어쨌든 이 짧고 산만한 화에서는 ‘무언가를 해야겠다’ 아니면 ‘뭔가를 보여줘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진행한 게 패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 몇 세션에서 느낀 모순도 이와 무관하지 않고요. 앞으로는 그냥 조연들의 입장에서 반응하는 식으로 해야지, 계획을 개입시키는 건 저한테는 잘 맞지 않더군요. 그간의 고민에 대해 어느 정도는 해답이 보이는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인 것 같습니다.

포도원의 제다이 16화 – 코루선트 (4부)

1079750346.html

아침에 마스터 아카마르를 찾아간 세 사람은 다룬 오르가나도, 공의회도 그들에게 정치적으로 손을 씻기로 작정했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넬반 건은 셋의 독단으로 처리되어 자칫하면 제다이 신분마저 몰수당할 수 있는 심각한 상황에서 뜻밖의 원군이 나타납니다. 또 다른 알데란 의원 쟈네이딘 루카로가 아우터 림을 순회하는 여행을 떠나면서 셋을 조력자로 파견해 달라고 신청을 넣은 것이죠. 이로써 셋은 정식 파견 형태로 아우터 림으로 나가서 넬반으로 빠지는 길이 열립니다. 이 결정 때문에 쟈네이딘은 다룬 오르가나와 말다툼을 하고, 왜 뜨거운 감자를 집어서 정치적 위험을 무릅쓰는지 하는 물음에 그녀는 대답을 회피합니다.

마스터 모트를 찾아간 결과 쟈네이딘의 신청에 대한 공의회의 반응은… 한마디로 쌍수 들어 환영. 어째서 세 제다이가 모든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지 공의회 내에서도 논란이 많았기 때문에 그 부담을 일부 짊어지겠다는 의원이 나타난 것은 그들에게도 좋은 소식이었죠. 마스터 아카마르를 비롯한 공의회에서도 총력 지원하는 덕분에 이틀 내로 출발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건 지난 세션의 반이 들어간 힘든 결정을 조연 (따라서 진행자) 독단으로 무의미하게 만든 ‘배신’이기 때문에 좋은 진행은 아니었다고 반성 중입니다. 등장한 지 얼마 안 된 쟈네이딘이 그냥 사라지는 건 피하고 싶었고, 또 세 제다이와 공의회의 끈도 아직은 유지하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피나틸리아와 로크락의 탈주가 아직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피나틸리아의 동생인 로어틸리아와 로크락의 제자인 센이 같은 일을 반복하는 상황도 피하려던 면이 있죠. 세 제다이 다 서로 다른 의미에서 막장 인생이기 때문에 (언니가 시스, 본인이 시스 출신, 문제의 그 넬반 출신) 이 시점에서 공의회와 연을 끊는 것보다는 좀 더 의외성을 넣고 싶기도 했습니다.

반면 참가자들이 한 선택의 요체는 제다이 신분 몰수도 불사하겠다는 것이었는데 백기사 백공주(?) 쟈네이딘이 혜성처럼 등장하면서 김이 빠졌죠. 게다가 시간마저 큰 손해가 아니라는 점에서 선택의 여지조차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기 때문에 진행자 강제의 성격이 강합니다. 그래서 15화에서 내린 결정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참가자분이 가장 강한 불만을 표시하셨고, 소극적이었던 두 분이 불만이 덜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많은 극적 요구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한 것이 참가자분들의 결정보다 우위를 차지했고, 이 점에서는 실패한 진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정보를 충분히 드렸으면 ‘코루선트에서 닥치고 탈주’보다는 좀 덜 극단적인 계획도 참가자들끼리 세울 수 있는데, 제 사정으로 그런 준비를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더욱…

굳이 변명하자면 쟈네이딘의 결정은 의외이기는 하지만 세 제다이가 내린 결정의 직접적인 결과이기는 하고, 이번 화에서 드러났듯 세 제다이를 돕는 것 말고도 그녀만의 이유가 있습니다. (불행히도 ‘자락스를 사모해서’는 아닙..) 그렇기 때문에 쟈네이딘의 개입을 썩 달가워하지 않은 로어틸리아의 직감은 옳습니다.

어쨌든 ‘진행자가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와 ‘참가자들의 결정’ 사이에 괴리가 생겼다는 점에서 고민도 되고, 앞으로 이런 모순을 어떻게 피할까 생각하게 되는군요. 지난 화에 했던 고민, 즉 포도원의 제다이 진행이 큰 틀로 들어서면서 소설적으로 되려고 한다는 문제의식이 이런 식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네요.

숙소로 돌아오자 아침에 마스터들에게 잡혀갔던 아를란은 말쑥한 파다완의 모습으로 변신해서는… 맥주병 옆에 놓고 책상에 엎어져 졸고 있습니다. (…) 자락스는 아직도 스승에게 반말 찍찍 해대는 이 싹수 노란 제자를 어떻게든 사람 만드는 고행을 시작합니다.

밤에 인도자 때문에 문득 잠이 깬 센은 그의 인도를 받아 혼자 있는 코티에르를 찾아냅니다. 코티에르는 자신을 두 번째 스승으로 생각하는 센에게 자신은 센을 가르치려 한 적이 없으며 언제나 코티에르의 판단이 아닌 센 자신의 판단을 내리고 행동하라고 당부합니다.

아침에 로어틸리아는 숨어서 혼자 우는 멜리나를 발견합니다. 아빠가 시스라고 다른 수련생들이 놀린다는 멜리나의 말에 로어틸리아는 언니를 생각하며 순간적으로 흔들리지만, 이내 자신을 다잡고 멜리나에게 시스가 되는 건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면서 놀리는 아이들보다 훌륭한 제다이가 되라고 말해줍니다.

한편, 자락스는 아직도 마음을 못 잡는 아를란에게 내 속죄에 널 이용할 생각은 없다며, 가족의 죽음에 대한 자책을 넘어 제다이로서 정진하도록 설득합니다.

자락스 토레이: “아를란. 라이트 세이버를 받아. 그리고 정진해라. 그래서… 네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을 노리고 날아드는 칼날을 그것으로 막아내라.”
로키: 자락스를 보다가 손에 든 라이트세이버를 쳐다보던 아를란은
로키: 마침내 고개를 혼자 끄덕이는군요. 마치 뭔가 다짐하듯..
로키: 그는 라이트세이버를 모아쥐고 깊이 허리숙여 인사합니다.
로키: “예, 스승님.”


뭐, 개별적으로는 좋은 장면들이었지만 (특히 로어틸리아나 자락스 부분은 아주 훌륭한 갈등 판정이었죠), 주인공들의 극적 맥락이 대부분 조연에게 향했기 때문에 깊은 극적 장면을 하려면 이렇듯 개별 장면이 된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이건 캠페인 설정 단계부터 있는 문제였기 때문에 지금 와서 완전히 바꿀 수는 없지만, 주인공 사이에 극적 연결이 더 많이 생겼으면 하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전 1:1 전용 진행자가 되고 싶지 않아요! ;ㅁ;

전반적으로 저는 재미있게 한 세션이었지만, 이런저런 문제가 불거지는 것도 보이는지라 고민도 되네요. 준비가 부족해서 캠페인 본편 진행이 별로 없었던 걸 이해해주신 참가자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늘 관전 오시던 오체스님이 안 오셔서 좀 허전하긴 했습..(퍽)

주인공과 조연

참가자가 제어하는 인물은 PC (Player Character), 진행자가 제어하는 인물은 NPC (Non-Player Character)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용법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주인공’과 ‘조연’이라는 용어를 선호합니다. 영어로는 PC는 Protagonist Character, NPC는 Non-Protagonist Character라고 치환해서 생각하고요. 뭐 의미는 좀 중첩됩니다만…

어쨌든 용어를 한글화하는 의미도 있지만, 제가 PC와 NPC를 주인공과 조연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제로 PC는 주인공, NPC는 조연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적 의미가 큽니다. 진행자야 배경 세계 자체를 운용하고 인물도 많이 있지만, 참가자는 보통 하나씩의 인물밖에 없고 그들이 플레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길은 그 인물을 통하는 방법뿐입니다. 따라서 참가자 인물이 플레이의 초점이 아니라면 참가자가 참여할 수 있는 여지는 심각하게 줄어듭니다. 심하면 참가의 의미가 없을 정도로요.

그래서 진행자의 실책 중에서도 가장 악명높은 것이 바로 ‘GMPC’인 것 같습니다. GMPC란 진행자 인물인데 주인공인 경우를 가리키는 것으로, 진행자는 이 인물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어떻게든 이 인물을 돋보이게 하려고 참가자 인물을 들러리로 전락시키죠. 종종 플레이를 정해진 길로 이끌려는 용도도 있으며, 이때는 또 다른 악명높은 진행자 실책인 ‘일방통행식 진행’까지 겹칩니다. 오직 진행자의 자기만족만을 위하기 때문에 이런 인물을 사용하는 것은 RPG의 사회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며, 실책일 뿐 아니라 굉장한 실례라는 것은 길게 얘기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물론 GMPC는 극단적인 예일 뿐, 참가자 인물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진정한 주인공으로 유지하려면 ‘GMPC를 만들지 않는다’ 같은 당연한 지침 외에도 주의할 것이 많습니다. 어쨌든 진행자 인물은 꼭 필요하고, 개중에는 주인공보다 능력이 뛰어나거나 권력이 강한 인물도 있는 것은 당연하니까요. 또 조연의 도움이 필요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일행에 따라붙기도 합니다. 진행자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인물도 있을 수 있고요. 이러한 요소에 저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대응합니다.

1. 주인공보다 뛰어난 조연

능력이나 권력, 정보력 등이 주인공보다 뛰어난 조연은 일단 주인공 일행하고는 좀 거리를 두려고 합니다. 이런 인물은 자기 일로 바쁘니 주인공 일행 일에 시시콜콜 참견할 시간이 있을 리 없죠. 따라서 주인공 일행과 만나는 것은 그쪽에서 불렀을 때, 혹은 주인공 일행이 찾아갔을 때뿐이고, 이렇게 하면 일단 등장 빈도 면에서 그들이 주도권을 잡을 가능성은 줄어듭니다.

심리적 거리를 두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눈에 띄게 뛰어난 조연은 주인공의 적, 혹은 완전히 믿을 수는 없는 협력자 정도가 적합한 것 같습니다. 완전히 믿을 수 있다면 주인공이 그들에게 의지하거나 아니면 모든 문제 해결을 위해 진행자가 그들을 동원할 유혹이 커지니까요.

적이라면 이길 방법이 없는 적이어서는 안 되고, 그 과정이 어렵더라도 방법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니면 최소한 무시해도 상관없는 적이어야겠죠. 신뢰가 안 가는 협력자는 제가 특히 좋아하는 유형인데, 어디까지 믿고 어디까지 이용할 수 있을지 판단의 근거가 있되 그 판단이 쉽지 않다면 그 자체가 상당한 게임적 재미일 수 있죠. 우리 편이긴 우리 편이되 감정적으로 사이가 나빠서 완전히 믿을 수 없는 변형도 극적 재미를 더해줍니다.

이렇듯 자신보다 뛰어난 존재이되, 의존하는 대신 주시하면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조연은 극적, 게임적 긴장감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주인공은 뛰어난 조연의 그림자에 묻히는 대신 그 조연들과 극적으로 대등한 위치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는 위치가 되지요.

때로는 주인공보다 뛰어나고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조연도 있습니다. 후원자가 그 대표적인 예이겠지요. 이럴 경우는 그가 주인공에게 줄 수 있는 도움에 뭔가 제한을 걸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위에서 얘기했듯 바쁜 사람이라든가 (못 만나게 막는 비서를 막무가내로 돌파해서 들어가자 그 어른이 오히려 반가워하면서 비서를 질책하더라… 같은 고전적인 진행도 한 번쯤 해볼 만 하죠), 도움에 뭔가 대가가 따른다든가, 후원자도 사람인 만큼 속수무책인 영역이 있다든가, 오히려 이 일에서는 후원자가 주인공의 도움이 필요해서 의뢰를 했다든가, 등등.

즉 믿을 수 있는 뛰어난 조연은 의존도가 너무 커지지 않도록 그 능력과 영향력에 제한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뭐 사람인 이상, 심지어는 신이라 해도 뭔가 제한이 있는 건 너무 당연하니까 (신의 속성이나 영역, 그리고 무엇보다 바쁜 일정!) 전혀 어려운 일은 아니지요.

2. 조연의 도움이 필요할 때

주인공에게 조연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확고한 원칙이 있습니다. 아쉬운 놈이 우물 판다. 아쉬운 사람이 주인공이라면 조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주인공이어야 합니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괜히 나타나서 ‘너네 내가 필요하지? 음하하하 여기 왔도다!’ 할 필요가 없습니다. 조연의 조력을 조연 자신이 주도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건 차치하고라도, 주인공에게 그만큼 주도권을 빼앗는 행위입니다. 주인공이 주도해서 조연을 불러들인다면 조연은 참가자가 판단해서 활용하는 게임적 자원일 뿐이지만, 조연이 스스로 나선다면 문제 해결의 능동성이 조연에게 넘어가니까요.

자기 판단 하에 주인공이 조연에게 도움을 청하려면 물론 주인공이 필요할 때 주인공이 조연에게 연락할 방법이 있어야 하고, 이것은 플레이 내에서 참가자에게 어느 정도 판단과 운신의 여지가 있어야 한다는 일반 원칙으로 돌아갑니다. 또 연락 가능 여부가 진행자 멋대로 달라지지 않고, 이런 때는 연락이 되고 이런 때는 안 되겠다고 참가자가 판단하거나 최소한 이해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건 또 RPG의 게임성과도 연관이 깊겠죠.

어떻게 보면 위에서 얘기한 뛰어난 조연도 같은 맥락입니다. 바쁘다거나, 완전히 믿을 수 없다거나 하는 이유로 조연의 능력에 대한 활용에 뭔가 제한이 붙으면 참가자는 이러한 장애를 극복하고자 의사 결정을 해야 하고, 그만큼 주도권은 참가자와 주인공에게 넘어갑니다. 참가자의 판단, 주인공의 행동이 필요 없이 도움이 무조건적이라면 주도권은 반대로 진행자와 조연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물론 부르지도 않았는데 조연이 멋대로 따라와서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소설이나 만화에서 흔히 보는 일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럴 때도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일반 원칙은 변하지 않습니다. 목마른 쪽이 주인공보다는 조연일 뿐이죠. 즉, 부르지도 않았는데 와서 도움을 준다면 그건 조연 자신의 목적이나 주인공에게 받을 수 있는 대가를 위한 것이지 순수하게 주인공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행동은 아닐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도움을 주겠다는 조연으로는 주인공 일행을 따라가서 모험을 해보려는 열혈 소년이라든지, 주인공 중 하나에게 접근해 보려고 수작을 거는 아저씨라든지, 정보를 캐내려는 첩자, 보물을 가로채려는 도둑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조연의 목적은 참가자가 의사 판단을 해서 이용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또 다른 자원, 혹은 장애가 되고, 그만큼 플레이의 내용은 풍부해집니다. (‘좋아, 넌 오늘부터 짐꾼이다!’ ‘저 귀찮은 인간을 어떻게 떼어놓지?’ ‘그때 마주친 게 정말 우연이었을까?’ ‘도와주겠다는 말을 믿어도 될까?’) 그러려면 그러한 의도나 목적을 알려주거나 알아낼 여지를 줘야 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인공은 이유도 없이 불쑥불쑥 나타나서 좋건 싫건 도와주는 조연에게 치여서 플레이의 주도권을 잃을 테니까요.

마지막으로, 조연이 도움을 준다 하더라도 그건 도움일 뿐 조연이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조연이 처음부터 끝까지 해결해도 좋은 문제라면 주인공이 다른 활약을 하는 동안 무대 뒤에서 처리하고 (“의뢰하신 총은 다 만들었으니까 와서 찾아가세요.”), 플레이상 직접 드러나는 활약은 주인공이 하면서 조연이 보조하는 정도여야 하죠.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든가, 혹은 주인공이 개입을 해야 한다든가 하는 게 좋습니다.

주인공이 조연의 도움을 받은 최근 예로는 포도원의 제다이 플레이 중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었습니다. 주인공 제다이 일행이 도시에서 잠적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들은 젊은 시스 하나를 어찌어찌 주워서 데리고 있었는데, 도시의 뒷골목에 익숙한 이 청년에게 주인공 하나가 주도적으로 얘기해서 숨을 곳을 마련하게 했죠.

자락스 토레이: “아를란. 이 주위에 이만한 인원이 조용하게 숨을곳 없나?”
로키: “이..이 주위에? 없진 않지만 좀 동네가..”
로키: 아를란은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는군요.
자락스 토레이: “이 주위에서 활동했으면 당연히 숨을곳 정도야 여기저기 스승 모르게 마련해뒀을 거 아냐. 내놔봐. 지금 난리가 났다고.”
로키: “알았어.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그는 주소를 하나 말합니다.

캔티나 지하실인 은신처를 이용하려면 캔티나 주인과 교섭해야 했고, 이 사람은 아를란이 아는 사람이었죠. 하지만, 아를란의 주도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마음에 내키지 않았습니다. 아를란의 역할은 캔티나를 찾아내고 주인과 연결하는 정도로 끝내고 싶어서 교섭 장면은 다음과 같이 진행했습니다.

로키: 아를란은 이곳에 있는 은닉처에서 지내고 싶다는 눈치를 주지만
로키: 신문을 봤는지 로디안은 꺼리는 낌새군요.
로키: 아를란은 설득하다가 슬슬 참을성이 떨어져 가고..
로키: 자칫하다 싸움이라도 벌이면 큰 소동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센 테즈나: @아를란의 어깨를 잡고 진정시킨 다음 입을 엽니다.
센 테즈나: “충분히 사례는 하겠습니다. 반대로 그쪽이 비밀을 지켜 주신다면 그게 더 좋은 일일 거라 봅니다만.”
센 테즈나: “이미 이곳으로 저희가 들어오는 걸 본 사람이 있을 테니 그게 알려지면 이쪽의 행적을 알기 위해 누군가 추적을 해올지 모르는 일이죠.”
로키: “그건 협박이오?” 로디안은 툭 튀어나온 검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묻는군요.
센 테즈나: “아니요, 조언입니다.”

주목도도 낮추고 시간도 절약할 겸 조연끼리의 대화는 요약하고, 아를란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해서 센의 개입이 필요하게 했습니다. 물론 개입하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랬더라면 실제로 싸움이 나서 문제는 더 커졌겠죠. 센의 개입 시점부터는 다시 직접 화법으로 전환해서 주목도를 높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조연의 도움은 주인공이 스스로 활용하는 자원이 되고, 조연의 활약이 있어도 주도권은 주인공에게 두는 것이 제 방침이라면 방침입니다.

3. 일행에 따라붙는 조연

가장 위험한 경우 중 하나로, 위에서도 얘기한 아를란과 관련해 고민과 토론이 들어간 부분이기도 합니다. 진행자도 사람인지라 때로는 자기가 관심 있는 인물을 돋보이게 하고 싶고, 그건 자칫하면 참가자와 이해 충돌 상황이 되기 쉬우니까요. 이 인물이 플레이의 중심인 일행에 상주하면 이해 충돌은 한결 심해집니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가 위에 말한 GMPC겠죠.

하지만, 이럴 때도 주도권은 참가자와 주인공에게 있어야 한다는 일반 원칙만 기억한다면 의외로 해결은 간단한 것 같습니다. 우선 일행에 합류 여부를 진행자가 아닌 참가자가 결정하게만 두어도 문제는 대부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참가자끼리 의견이 갈릴 때일 테니, 참가자가 몇 명이나 찬성해야 하는지, 미온적인 사람은 어느 정도 찬성해야 할지 등 의사결정 과정상의 문제도 있지만요.

일단 일행에 합류하면 역시 조연에게 도움을 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조연의 활약은 원칙적으로 주인공 주도로, 활약 정도는 무대 위에서 주인공을 보조하거나 무대 뒤에서 귀찮은 일을 처리하는 정도, 조연 자신이 능동적으로 활약할 때는 조연 자신의 이유로… 같은 사항을 기억하면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일행과 행동을 같이하는 특수 상황 때문에 조연이 행동하는 이유가 일행의 목적과 부합하는 경우도 많아질 것이고, 그런 식으로 쌓이는 신뢰와 감정적 유대는 플레이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할 수 있죠.

결국, 중요한 건 주인공을 더욱 주인공답게 하는 조연인가, 아니면 주인공에게서 주도권을 빼앗는 조연인가 하는 문제일 뿐, 일행 상주 조연도 전자라면 잘 운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행자로서는 진행자의 재미뿐 아니라 참가자의 재미까지 일부 누린다는 점에서 색다른 즐거움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또 일행 상주 조연은 분위기를 띄우는 용도라든가 자잘하게 써먹을 데도 있고요.

로키: 숙소로 돌아와 문을 열자..
로키: 순간적으로 쿵쾅거리는 음악과 함께 마치 물흐르듯 움직이는 색색의 트윌렉 댄서들의 홀로 이미지가 방안에 가득하군요.
로키: 세 사람이 돌아온 것을 보고 아를란은 황급히 동영상을 끕니..

4. 진행자의 마음에 드는 조연

다른 항목과 겹치는 때도 많지만 개념적으로는 별개로 진행자 자신이 어떤 조연에게 굉장히 흥미가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플레이에 자꾸만 끌어넣고 싶고, 이 인물의 갈등이나 고뇌를 보여주고 싶고 말이죠. 이러한 사항을 참가자가 대응 가능하고 플레이 맥락에 어울리는 형태로 잘 엮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참가자들이 별 관심도 없고 플레이 내용을 깎아먹는데도 자꾸 이 인물에게 주목하고 싶어진다면 문제가 큽니다. 관심도 없는 사람에게 대화 맥락과 상관없이 자기 옛날 캠페인이나 인물 얘기를 늘어놓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행동이지요.

참가자 개입이나 플레이의 요구와는 상관없이 그 인물 자체에 가는 관심이라는 면에서 이런 식의 흥미는 진행자로서 게임 요소에 갖는 흥미라기보다는 소설가가 소설 속의 인물에게 갖는 흥미에 더 가깝습니다. 따라서 제 개인적인 해결책은 비교적 간단합니다. 그냥 소설 씁니다. (…) 얼마 전에 썼던 포도원의 제다이 캠페인 배경 소설들이 그 예입니다.

이렇게 하면 진행자의 순전히 개인적 흥미에 귀중한 플레이 시간을 소모하지도 않고, 공개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미리 공개해서 플레이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주인공이 알 수 없는 내용일 때는 참가자와 주인공 지식 분리가 필요할 것입니다만, 그건 제 경험상으로는 대체로들 잘 하니까요.

진행은 세계 만들기, 문학 등 다른 창의적인 활동과도 관계가 깊으니, 플레이 진행을 벗어나 창의성을 다른 방향으로 배출하는 것도 문제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세션 진행을 하는 시간에는 진행자로서 행동해야겠죠. 진행자의 역할이란 자신의 개인적 창의성을 일방적으로 발산하는 것이 아닌, 그 창의성을 기반으로 참가자들이 함께할 수 있는 사회적인 놀이의 판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가자가 참여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방법은 주인공을 통하는 것이므로 그 주인공의 주도성을 보존하는 것이 참가자의 참여를 확보하는 것이며, 이것은 참가자의 당연한 요구인 동시에 진행자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들이 사랑하는…’ 초고

디스크 정리하다 보니 캠페인 설정 소설이었던 ‘신들이 사랑하는…’에서 버린 부분이 있더군요. 원래는 두 형제의 어린 시절에서 시작해 전쟁기, 루바트의 죽음, 그리고 그 정치적 파장으로 이어지는 얘기였는데 좀 지지부진해서 첫 부분은 자르고 루바트의 죽음을 가족이 전해듣는 시점부터만 남겼습니다. 그래도 나름 10대의 루바트와 다룬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조연 설정 자료처럼 올려둡니다. 스타워즈 세계 사람들의 여가에 대해 상상해본 것도 있고요. 알-하와트는 아랍어로 ‘바람’이라는 뜻의 알-하와에서 따온 것으로, 게임의 내용은 스타 트렉의 벨로시티를 약간 참고했습니다.

1. 연회

저택의 큰 연회장에는 빛이 환했고, 비쓰 밴드가 연주하는 은은한 곡이 복도에까지 흘러나오며 공기를 부드럽게 감쌌다. 두 소년은 연회복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가문의 전용 출입구에 대기한 채 회장 안쪽을 기웃거렸다.

“탈브렌 가문 사람들도 왔어? 이번에도 안 왔으면 노르도스 건은 아주 결판을 내겠다는 소린가.”

“아냐, 온 것 같은데. 밀치지 좀 마.”

“나도 좀 보자! 머리만 커가지고, 좀 치워 봐봐.”

“야, 그게 형한테 할 소리냐? 잠깐… 셀레스 베링도 왔다. 지난번 사냥 때 네가 왜 쳐다보다가 다리 사이로 사냥감이 도망가는 줄도 모르고-”

“조용히 안 해? 그땐 그러니까 햇빛 때문에…”

“목소리가 크다.”

등 뒤에서 아버지의 주의가 들려오자 두 형제는 순식간에 조용해지며 돌아보았다. 알렉산드로스 오르가나는 두 아들을 꼼꼼하게 뜯어보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5분 후면 나가야 할 것 같구나. 루바트, 동생 크러뱃좀 다시 매주거라.”

형이 목수건을 풀어서 다시 둘러주는 동안 다룬은 꼼지락거리면서 밖을 내다보려고 애썼다. 셀레스 베링이 오다니… 이번에는 말을 걸어볼 수 있을까? 무슨 얘기를 하면 좋을까?

“가만히 좀 있어.”

미끌미끌한 실크를 솜씨 좋게 매듭짓고 남는 부분을 넘기면서 루바트가 조용히 말했다.

“셀레스한테 잘 보여야지.”

“시끄러. 형이야말로 아버지가 시키면 미미 므랄레스하고라도 약혼해야 할걸.”

신경질적으로 웃음을 터뜨리는 버릇이 있는 여드름투성이 여자애를 떠올리며 두 형제는 동시에 몸을 과장되게 떨었다. 크러뱃의 매듭을 마무리 지은 루바트는 짐짓 젠체하며 검은 머리를 쓸어넘겼다.

“뭐, 상관없어. 아무리 므랄레스 영애라도 나하고 결혼하면 2세는 내 미모를 닮지 않겠냐.”

“어우, 정말.”

다룬은 루바트의 팔을 주먹으로 한 대 쳤다.

“내 형이지만 진짜 패버리고 싶다. 형 좋아하는 여자들이 형의 실체를 알았으면-”

“준비해라.”

아버지의 낮은 한마디에 오르가나 형제는 순식간에 낄낄거리는 소년에서 대가문의 엄숙하고 예의바른 도련님으로 변신했다. 다룬은 곁눈으로 형을 흘끔거리며 조금씩 자세를 바로잡았다. 턱을 조금 더 들어야 할까? 어깨를 약간 뒤로 젖히면?

“좀 웃어라.”

그를 쳐다보지 않은 채 형이 한마디 했다.

“그렇게 잔뜩 찌푸려서야 잘 보일 수나 있겠어?”

“참견하지 마.”

루바트가 입가에 살짝 띤 차분한 미소를 보고 다룬은 얼굴을 찡그렸다가 서둘러 폈다. 역시 미소를 지어보았지만 뻣뻣하고 부자연스럽게만 느껴졌고, 그래서 더 짜증이 났다. 오스길로스와 테레아, 샴렌의 수호자이며 왕가의 방패인 오르가나 일가의 입장을 알리는 포고관의 선언에 맞추어 그는 연회장의 환한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형의 그림자를 따라.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형이 하는 일은 언제나 그랬다. 만찬상에 모두가 정해진 자리로 안내받는 와중에 루바트가 그의 어깨에 손을 댄 채 아주 약간 방향을 바꾸면서 시종에게 한마디 속삭이고, 다른 손님에게 웃음 한번 지어준다 싶더니 모두가 착석했을 때 다룬은 셀레스 베링의 옆자리에 앉아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자리 배정이 이렇게 된 것처럼, 지극히 자연스럽게.

하지만 모처럼의 기회에도 바보같이 그는 셀레스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 접시만 내려다보았다. 가슴이 너무 쿵쾅거려서 주변에까지 들리는 게 아닐까 겁이 났다. 뭐든지 좀 말을 걸어봐야 할 텐데… 무엇보다 집주인의 아들로서 손님을 완전히 무시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건너편 자리에서 형이 호를로 상원의원과 스키기안 앞바다의 어획량에 대해 얘기 나누는 것을 한쪽 귀로 흘려들으며 다룬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쥐어짰지만, 그럴수록 머리는 더 백지가 되어버리는 기분이었다.

“오르가나 도련님?”

옆쪽에서 부드럽고 예의바른 목소리가 들려오자 다룬은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주춤주춤 돌아보자 셀레스가 푸른 눈을 은은히 반짝이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입안이 타들어갔다.

“죄송하지만 정어구이 접시 좀 집어주시겠어요?”

“아…예예.”

거의 셀레스에게 눈을 떼지 못한 채 그는 정어구이를 보았던 쪽으로 손을 뻗었다가 와인잔을 쳐서 넘어뜨렸다. 순간 주변이 고요해지자 다룬은 탁자 밑으로 숨어버리면 예의에 어긋날까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바보! 모처럼 셀레스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이게 무슨…

“상원의원님. 저번에는 코루선트에 다녀오셨다고 들었습니다.”

루바트가 입을 열자 주변의 주의는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쏠렸고, 그동안 서빙 드로이드가 눈에 띄지 않게 다가와서 쏟아진 와인과 와인잔을 치웠다. 정어구이 접시를 셀레스 앞에 놓아주고 다룬은 땀이 난 손을 연회복 무르팍에 슬쩍 문질러 닦았다. 연회는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기만 했고, 금방이라도 자리를 모면하고 싶었다.

“저… 사과드려요. 저 때문에…”

“아, 아녜요. 제가 부주의했던 탓입니다.”

조심스러운 희망으로 다시 가슴이 방망이질쳤다. 바보 같은 어린애라고 치부해버리지 않는 걸까? 계기야 어찌 됐든 셀레스와 얘기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은 날아갈 것만 같았다.

“아, 젊은 오르가나 도령을 보니까 생각나는구려.”

호를로 상원의원의 말이 들려왔다.

“내가 제다이 회합에 들르면서 마스터 프루에브를 만나지 않았겠소. 그때 도령 얘기를 하더구먼. 아직도 그때 데려오지 못했던 걸 못내 아쉬워했소이다.”

굴을 입에 가져가며 다룬은 상원의원의 말에 귀기울였다. 형을 데려가다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리둥절한 루바트의 물음에 아버지는 짧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생각나는구나. 당시에는 나이트 프루에브였지. 너에게 포스 재능이 있으니 제다이 훈련을 받게 데려갈 수 없겠냐고 물었었다.”

“저를…?”

“그랬다마다. 이번에 만났을 때 오르가나 도령 안부를 묻더이다. 그때 데려왔으면 대단한 재목이 됐을 거라고…이제 10년이 넘어가는 일인데 말이지.”

“제가 더 반대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우리 첫아들이자 후계자를 데려가느냐고… 그리고 무엇보다 루바트하고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말이죠.”

어머니가 기품있는 미소를 지으며 형에게 애정어린 눈빛을 보냈다.

“그랬었지.”

아버지도 웃음 지으며 어머니의 손을 잡아 손등에 입맞추고, 역시 첫아들에게 자부심 가득한 시선을 던졌다.

루바트는 아무 말이 없었다. 평소처럼 뭔가 농담을 하며 넘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라고 생각하던 중, 다시 셀레스가 조용히 말을 걸어왔다.

“저… 오르가나 도련님, 물어볼 게 있는데요.”

“예, 얼마든지.”

제다이와 형에 대한 것은 순식간에 머리에서 날아가면서 다룬은 셀레스에게 주의를 기울였다.

“형님이 공중 폴로 좋아하는지 아세요? 이번에 표가 두 장 들어왔는데… 혹시 제가 직접 물어보면 너무 뻔뻔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을지…”

셀레스가 얼굴을 붉히는 모습을 지켜보며 다룬은 가슴이 내려앉았다. 테이블 밑에서 자기도 모르게 주먹이 꽉 쥐어지면서 그는 차갑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형님의 사생활을 관리할 책임은 없는지라.”

셀레스의 더듬거리는 사과를 무시한 채 그는 묵묵히 자기 접시만 내려다보았다. 귓가에 크게 울리는 심장 소리에 묻혀 주변의 대화가 간간이 들려왔다. 형이 탈브렌 공과 음식을 가져오는 하인, 심지어는 미미 므랄레스하고도 소탈하면서 더없이 정중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루바트 오르가나가 옆에 있는데 다룬 오르가나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었고, 지금만은 그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분노인지 수치감인지 얼굴에 불이 붙은 기분이었고, 누구든지 눈여겨보았다가는 뭔가 잘못된 것을 알아챌 테니.

자신에게는 과정 하나하나가 어려운 삶의 흐름을 형은 마치 유영하는 물고기처럼 쉽게 헤쳐갈 수 있는 것은 포스 잠재력이란 것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형이라는 사람이 그렇기 때문일까. 식욕이 사라진 채 음식을 쿡쿡 찌르기만 하며 다룬은 연회가 끝나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어땠냐?”

될 수 있으면 피해보려고 했지만, 연회 후 결국 복도에서 형에게 따라잡힌 다룬은 루바트를 노려보았다.

“뭐가?”

“셀레스 베링 말야. 잘 됐어?”

“…형이 공중 폴로 좋아하느냐고 묻던데.”

잠시 혼란스럽던 루바트의 얼굴에 천천히 깨달음의 표정이 떠올랐다.

“이런, 다룬. 정말…”

“미안하다고 하지 마. 무슨 내 애인도 아니었고, 형이 멋대로 옆에 앉힌 것뿐이잖아.”

형이 정말로 자신을 도와주려고 그랬다는 것, 미안하고 곤란해한다는 걸 알아도 별로 위안이 되지 않았다. 사실 셀레스 베링 자체는 이제는 안중에도 없었다.

“어쩌겠냐, 걔가 좀 눈이 높아서 그런걸. 다음에 적당히 눈 낮은 여자가 나타나면-”

“나타나면. 형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잖아!”

주먹이 쥐어졌다. 어떻게도 할 수가 없어서 실없는 농담으로라도 위로하려는 형을 한대 패주고라도 싶었지만, 주먹질로도 상대가 안 된다는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하룻저녁에 당할 망신은 이미 다 당하고도 남았으니 참을 수밖에. 정말로 때리고 싶은 게 형인지 자기 자신인지도 알 수 없었다.

“내 일에 더이상 참견하지 마. 형처럼 완벽하지 않다고 나도 생각이 없는 거 아니니까!”

“다룬!”

다룬은 등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방으로 향했다. 등 뒤로 방문이 스르르 닫히자 도어록을 걸고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다. 피곤해서 그냥 눈이 감기려고 했다. 일어나서 옷 갈아입고 씻어야지, 조금만 쉬다가… 그렇게 연회복 차림으로 잠들면서 엉망인 기분과 뒤죽박죽이 된 머리도 얼마간은 잊을 수 있었다.

2. 게임

다음날 알-하와트 게임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정면의 조명 하나가 켜지면서 누군가의 출입을 알렸다. 게임용 블래스터를 내리고 고글을 올리면서 돌아보자 형이 막 들어오고 있었다.

“나도 껴도 되냐?”

“맘대로.”

다룬이 고글을 도로 내리고 바닥 위에 떠있는 디스크를 향해 블래스터를 조준하는 동안 형은 선반에서 블래스터를 하나 꺼내더니 균형을 시험해 보고 어슬렁어슬렁 걸어와서 나란히 섰다. 다룬은 형이 설 자리가 있게 조금 비켜주었다.

“고글 써.”

“상관없어.”

다른 생각을 하는 표정으로 루바트는 바로 방아쇠를 당겼고, 작은 금속 디스크가 최고 점수인 2000점 영역을 치고 다시 튕겨 나와 추가점을 내는데도 큰 감흥이 없어 보였다. 다룬은 빠르게 움직이는 디스크에 조준했다. 이동 중에 쳐서 리바운드 더블을 낼 수 있다면 점수를 만회할 수도-

“느려.”

형은 다시 조준도 없이 이동 중인 디스크를 쳐서 점수를 내고, 따라갈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르게 튀는 디스크의 방향을 몇 번이나 블래스터를 발사해 바꾸면서 그때마다 점수를 올렸다. 디스크에 반사되는 조명과 블래스터 빔의 현란한 번쩍임 속으로 다룬이 쏘는 블래스터 빔은 번번이 허공만을 갈랐다.

‘조금만 더…!’

소용없다는 것은 이미 느끼고 있었다. 블래스터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이미 디스크의 위치는 넘어간지 오래였다. 이것이 포스 능력이라는 것일까? 나이뿐만이 아니라 뭘 하든지 항상 한발짝씩 앞서있는 존재, 따라잡으려고 아무리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려가도 잡을 수 없는 목표.

디스크가 벽에 한번 크게 튕겨 나왔다가 바닥에 천천히 가라앉았고, 게임 영역의 조명이 꺼지면서 방의 반은 어둠에 잠겼다. 다룬은 작게 한숨을 쉬며 고글을 벗었다. 상대가 되지 않았다… 언제나 상대가 되지 않았듯이. 화내고 짜증 내는 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자신만 우스워질뿐.

언제 그렇게 땀을 흘렸는지 목과 등이 흥건했다. 시원한 실내 냉방이 목에 선뜻했다. 돌아보자 형은 벽에 기댄 채 게임용 블래스터를 한 손으로 돌리고 있었고, 동생을 마주 보는 얼굴은 묘하게 무표정했다.

“…뭘 증명하고 싶었던 거야?”

다룬의 질문에 루바트는 손에 든 블래스터가 굉장히 흥미롭기라도 한 듯 들여보았다.

“어제 조사했어… 포스 능력이란 것에 대해서.”

다룬은 뻣뻣한 동작으로 어깨를 으쓱했고, 루바트는 말을 이었다.

“약한 예지 능력 같은 거라더군. 강하게 나타나는 때도 있지만. 주로 어떤 일이 벌어지기 조금 전에 느끼고 행동하기 때문에 반응이 빠른 것처럼 보이지. 때로는 남들보다 더 멀리 앞을 내다보고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다룬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형의 평소 행동에 대해 설명되는 게 많았다. 어제 자신을 셀레스 베링 옆에 앉힌 일이라든가, 지금도 그렇고 평소에도 보여준 엄청난 운동신경이라든가. 왜 굳이 이런 얘기를 자신에게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잘된 일 아냐? 하나라도 더 도움되는 능력이 있다는 건 우리한테 좋은 거니까.”

둘은 잠시 침묵했다. 알데란의 왕위를 차지하려는 오르가나 가문의 야심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오르가나가 이대로 패권을 쥐는 것을 쇠퇴해가는 왕가에서 두고 볼지, 아니면 위협을 없애려고 최후의 발악을 할지가 남았을 뿐. 어쩌면 그들의 세대에 벌어지지 않을지는 몰라도 언젠가는 일어날 대결.

다룬으로서는 자신이 직접 가문의 명운을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 다행일 따름이었다. 때로는 뭐든지 잘하는 형이 부러운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건 어떻게 보면 이 시대에 태어난 오르가나 가문의 후계자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일지도 모른다. 오르가나를 알데란의 새로운 왕가로 만들려는 오랜 야심을 실현하고자 한다면… 형을 보는 아버지의 눈에는 분명히 그런 뿌듯함이 있었다.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희망, 혹은 확신.

“그래…그렇겠지.”

루바트는 왠지 먼 곳을 보는 표정이었다. 다룬은 드로이드가 건네주는 수건으로 땀을 닦아내며 형을 궁금하게 보았다. 오늘따라 형은 뭔가 묘한 기분인 것 같았다. 어제 제다이 얘기 때문에 그러나?

“다룬…제다이라는 건 어떤 기분일까?”

다룬은 웃음을 터뜨렸다.

“되게 재미없겠지! 맨날 시키는 대로 하고, 여자 하나 못 사귀고 말야.”

다른 아이들처럼 루바트와 다룬도 어렸을 때 막대기 들고 제다이 놀이깨나 했었다. 제다이의 모험담에 가슴 설레기도 하고… 하지만 열넷이면 제다이에 대한 환상은 버릴 때도 되었다. 어쩌면 다른 아이들보다는 이를지도 모르지만 평생 공화국 권력의 중추에 가깝게 지내고 제다이도 수없이 만나본 다룬으로서는 제다이가 어떤 것인지 남들보다는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형도 마찬가지겠지.

오르가나 가문 사람들은 다스리려고 태어난 사람들이었고, 제다이는 개인적 능력만 뛰어날 뿐 결국은 공화국의 하인이었다. 부모님의 선택은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형만큼 지배하기에 적합한 사람이 또 있을까.

“그래도 미미 므랄레스보다는 낫지 않을까?”

루바트는 짐짓 심각하게 물었고, 두 형제는 함께 웃으며 게임실 문으로 향했다.

형이 먼저 나간 동안 불을 끄려고 돌아서다가 다룬은 문득 점수판에 시선이 갔다.

‘이런 바보 같은…’

형이 얻은 점수가 고스란히 다룬의 점수로 쌓여 있었다. 6만 점이 넘다니, 혹시 기록 같은 게 아닐까. 형이 끼어들면서 따로 블래스터 스캔 등록을 안 했기 때문에 그게 다룬의 점수로 전부 들어온 것이다.

불을 끄고 점수를 초기화하고 나오면서 다룬은 그 바보 같은 실수가 왜 그렇게 신경이 쓰이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재미로 한 시합이라 굳이 스캔을 하지 않았을 뿐인데. 그럼에도 머리에서 쉽게 떠나지 않았다. 냉방과 흘린 땀 때문인지 잠시 소름이 돋았다.

오스길로스 영지에 며칠 방문 일정이 있던 루바트가 가는 길에 사라진 것은 그로부터 이틀 뒤의 일이었다.

포도원의 제다이 15화 – 코루선트 (3부)

1141575327.html

다음날 세 제다이는 다룬 오르가나의 사무실로 찾아갑니다. 자락스가 만났던 쟈네이딘 (알데란 왕녀이며 다룬의 동료 의원)이 다룬의 사무실에서 뭔가 의논이 길어졌다가 제다이들과 마주칩니다.

로키: 뭐 그런 식으로 인사하고.. (끝이 없다!) 쟈네이딘은 얘기 나누시라고 하고 정중하게 나가는군요.
자락스 토레이: -나갈때도 조용히 목례하고
센 테즈나: (…)
자락스 토레이: (왜요 왜요 내 애인한테 인사도 못합니(…))
로키: (누가 애인입..)
센 테즈나: (누가 애인입..)


전쟁과 열악한 통신 상황이 겹쳐 흉흉한 소문만 들려올 뿐 확실한 것이 없는 넬반은 광산 개발권을 요구하는 대기업 신토넥스와 이를 거부하는 토착 부족 사이의 갈등이 확대된 듯합니다. 제다이를 바로 보내려고 해도 걸리는 것은 바로 정치였지요. 넬반은 행정적으로는 트리노 의원의 관할이었기 때문에 확증 없이 제다이를 바로 파견하면 트리노는 이의를 제기할 것이 뻔했습니다. 게다가 트리노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한 것은 넬반 원주민에게 끔찍하게 죽은 외지 인부의 홀로이미지.
이는 센이 늑대의 춤이라는 무아지경에 빠져서 죽인 시스의 모습과 동일했습니다.

오르가나는 이 문제를 피할 방안으로 트리노의 호위로서 세 제다이가 트리노의 사무실에 잠입해 정보를 빼내는 것을 제안합니다. 그렇게 해서 얻어낸 정보로 트리노를 얽어맨 후 정식으로 파견받도록 말이지요. 하지만, 이미 트리노가 요청했고 공의회가 거절한 안을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 것이 로어틸리아는 걸리고, 다룬의 수법을 기엔나에서 겪어본 자락스는 그의 의도를 의심합니다.

숙소로 돌아온 세 사람은 맥주 마시며 트윌렉 댄서 동영상 감상중이던(..) 아를란에게 넬반에서 사실상 늑대 부족에 대한 말살이 진행중이라는 얘기를 듣게 됩니다. 한시도 지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르가나의 의도대로 움직이거나 코루선트에서 귀중한 시간을 보내지 않을 방법을 모색하며 세 제다이는 마스터 아카마르를 찾아갑니다. 아카마르의 집무실 앞에서 셋은 코티에르와 마주칩니다. 자락스와 로어틸리아는 그에게 심상찮은 느낌을 받고, 코티에르는 인사를 주고받으며 센의 드로이드에 자료를 입력합니다.

마스터 아카마르는 다룬을 의심하는 자락스에게 자락스 자신은 루바트의 죽음에 대한 후회에서 자유로운지 날카롭게 추궁하고, 자락스는 바로 그 미련이 자신에게 힘이 된다고 대답합니다. 아카마르는 세 사람에게 오르가나의 제안은 어쩌면 트리노의 입지를 실추시키기는커녕 강화시킬지도 모른다고 알려줍니다. 뜻밖에도 로어틸리아는 정식 파견 없이 아예 넬반에 잠입하는, 세 사람에게는 어떤 신분적 보장도 없이 지극히 위험한 방안을 제시합니다. 아카마르는 발각당한다면 공의회는 모든 것을 부인할 것이라며, 셋의 장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결정이니 하룻밤 더 생각하고 돌아오라고 명령합니다.

이 대목은 제 예상하고 100% 어긋나서 너무 기분이 좋았죠. 로어틸리아가 얼마나 예뻐 보였는지 모릅..(퍽) 사실 여기서 나온 정치적 이유 때문에 신분보장 없는 잠입은 처음에 생각했던 방식이기는 했는데, 진행자가 강요하기에는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 때문에 정식 파견의 길을 열어둔 거였거든요. 물론 그것도 그 나름 대가가 없다면 로키가 아니겠죠? (흐흐)

그런 상황이었는데 참가자가 스스로 이 방법을 선택하다니 저야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죠. 예정보다 시간도 대폭 절약하는 방법이고요. 이렇게 참가자가 절 놀라게 하는 순간이 제일 기뻐요!

방에 돌아와 트리노와 오르가나 두 의원을 조사한 바로는 두 의원은 경쟁자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오르가나가 트리노를 노리는 게 너무 당연해 보여서 오히려 꺼려지고, 그의 의중은 여전히 읽기 어렵습니다. 한편, 베오나드가 BR-100에게 입력해준 자료에 따르면 로크락이 책임자로 있던 프로젝트의 주요 인물들은 사망하거나 아우터 림에서 실종된 것으로 밝혀집니다. 세 제다이는 앞으로의 행보를 논의합니다.

이쯤에서 꽤 침묵이 길어지더군요. 자꾸 참가자 입장에서 얘기가 돼서 제가 주인공 입장에서 얘기하라고 잔소리도 했고… 너무 막막하게 한 게 아닌가 불안해서 제가 선택 항목을 다 정리하기까지 했습니다. 많은 자료를 전달하고 참가자들이 중대한 판단을 내리게 하는 건 확실히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긁적) 너무 변수가 많으니까…

로어틸리아가 가장 의견이 확실했고, 센이 가장 주저했죠. 이것은 제가 전에 비판한 바 있는 센의 양비론적 성향이기도 했고요. 플레이 후 토론에서 아마도 센은 ‘잃을 것이 없는 길’을 찾고 있으며, 그런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만한 경험이 없는 인물이라는 쪽으로 의견이 잡혔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는 것이 센에게는 중요한 내적 성장이 되겠죠.

결정을 내린 세 사람은 한밤중인데도 공의회의 부름을 받고, 공의회 마스터들은 아무 예고도 없이 자락스의 나이트 서품식을 엄숙하게 거행합니다.

로키: “그리고 포스의 의지로.”
로키: 마지막으로 마스터 아카마르는 손목을 아주 작게 움직이고, 자락스의 귀 밑에 그 열기가 짧게 스치는군요.
로키: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자락스 토레이: (………이 영감이(…))
로키: 무엇인가가 바닥으로 툭 떨어집니다.
로키: “그대를 제다이 나이트로 임명하노라.”
로어틸리아: (자락스의 머리?)
자락스 토레이: (자락스의 귀(…))
센 테즈나: (자락스의 코…(…))

땋아 내린 파다완 머리를 잘라내고 나이트로 일어선 자락스는 로어틸리아와 센의 축하를 받습니다. 자신이 언제, 무슨 시험을 통과했느냐며 그저 어리둥절하긴 하지만요.

자락스… 어리숙한 아를란군에게 의외로 딱 어울리는 어리숙한 스승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어쨌든 클론 워즈에서 아나킨의 서품식 장면을 본 후로 너무너무 해보고 싶었어요! >_< 자락스가 ‘거울의 시험’을 통과한 게 어느 시점인지 아는 분은 아시겠죠?

이번 화에서, 그리고 요즘 들어 제일 불편한 부분은 계획과 음모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본의 아니게 소설 쓰는 느낌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분명히 귀결에 대해서는 정한 게 없지만 이미 쌓인 과거의 무게를 풀어가야 하는 부담 때문에 복선이라든지 정보 접근성에 대해 상당히 많은 생각을 해야 했거든요.

특히 정보에 대한 접근 문제로 참가자 중 두 분과 계속 밀고 당기는 기분이었는데, 참가자분들은 정보를 더 원하는 눈치였지만 저로서는 주인공들이 알아내야 할 정보를 진행자가 그냥 줄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냥 다 얘기하고 참가자들에게 선택시킨 다음에 조기 종영한다면 몰라도..(..)

그렇다 해도 진행자로서의 제 고민이 소설적인 데에 너무 가깝다는 생각 때문에 회의가 좀 들긴 했습니다. ‘귀결은 안 정했으니까 괜찮아’ 하고서는 돌아서서는 과거와 현재 상황에 대한 정보를 조절함으로써 참가자를 얽어매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아~ 역시 장기 캠페인은 번뇌의 연속입니..(?)

포도원의 제다이 14화 – 코루선트 (2부)

1371724276.html

숙소로 돌아온 우리의 제다이들은 약 피우며 행패 부리는 아를란군의 생떼를 감상합니다(?). 죄책감에 몸부림치는 그를 제다이들은 단호하게 꾸짖어 자신을 추스르게 합니다. 현재 마스터와 나이트 중 아를란의 스승이 될 사람이 없다는 공의회 마스터들의 전언에 자락스는 자신이 할 일을 확실히 깨닫습니다.

Asdee님의 플레이 정리 보고 삘받아서 저도 진행자의 감회랄까, 문제의식이랄까 하는 부분을 넣어 보겠습니다. (따라쟁이!)

이 장면의 주요 목적은 사실 아를란이 제정신이 아니라서 넬반과 피나틸리아에 대해 평소 못할 얘기를 한다는 정보 전달이었는데, 제다이들이 오히려 아를란에게 신경을 써줘서 의외였달까요, 감동이었달까요. 이 쓸모없는 녀석이 뭐가 예쁘다고… (발로 꾹꾹 밟습..) 앞으로도 일행과 함께할 것 같은 아를란은 거의 제 PC에 근접한 존재이기 때문에 너무 중요해지지 않도록 신경 써야겠습니다. 좀 드러날 일이 있다면 주인공 제다이를 부각시키는 방향이어야 하겠죠.

자락스는 스승인 마스터 모트를 찾아가 아를란을 제자로 받을 수 있게 반드시 나이트 서품을 받겠다는 결의를 전합니다. 모트는 자락스가 좀 더 편한 길을 가기를 바랐지만 포스의 뜻이라면 어쩔 수 없다며, 스스로를 용서하라고 제자를 타이릅니다. 낮에 만났던 쟈네이딘을 자기도 모르게 떠올리며 자락스는 조금은 평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대답합니다.

한편, 로어틸리아는 마스터 아카마르의 소환을 받아… 선문답을 나눕니다? (퍽) 아카마르는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는 중이라는 경고를 우회적으로 전하면서 사물의 본질을 지키는 것과 그 존속을 지키는 것 중 어느 것이 진정한 수호인지 묻습니다. 로어틸리아에게도 선택의 때가 올 것이라면서. 그 외에도 센과 자락스에 대한 평가, 마스터 티로칸의 소식 등이 오갑니다.

센은 스승 로크락의 행방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로크락의 작업장에 들르고, 미완성 드로이드의 메모리 칩에서 자신이 반쯤 잠든 상태에서 로크락의 발상에 뭔가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것, 그리고 그 발상은 ‘그림자’라는 코드명이 붙은 프로젝트의 기반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뜻밖에도 마지막 자료는 자신을 찾지 말라는 로크락의 홀로 메시지였고, 모든 재생을 마친 칩은 자가 삭제를 시작하지만 센은 타이머를 해제시켜 자료 보존에 성공합니다. 그는 로크락의 말을 씹고(..) 스승을 찾기로 결심하지요.

로어틸리아와 센 부분은 너무 저만 떠든 것 같아서 불만입니다. 그렇다고 미리 글로 써서 시간을 절약하기에는 참가자 입력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했고 말이죠. 실시간으로 하지 않았으면 아카마르의 물음에 대한 로어틸리아의 대답이라든가, 스승의 홀로 이미지에 대고 꼭 찾겠다고 말하는 센의 대사 같은 RP는 나오지 않았겠죠. 앞으로 정보 전달은 왠만하면 조연이 일방 통보하는 식이 아니라 주인공이 직접 대응할 수 있는 형태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자락스와 센은 마스터 아카마르에게 불려가서 넬반 사태와 관련해 다룬 오르가나 의원을 조력하라는 임무를 받습니다.

당장 임무가 없으니 진행 속도도 늘어지고 일행도 유지하기
힘든 관계로 15화부터는 겨우 하루 쉴둥말둥한 제다이들을 다시 일터로 내몰기로 했습니다. (캬하하하) 그간 쌓은 복선을
앞으로 제대로 풀어갈 수 있을지 불안하면서도 기대되네요. 14화면 이미 지금까지 제가 진행한 캠페인 중에서는 사상 최장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저에게는 새로운 도전입니다.



여러모로 13화와 함께 속도는 좀 늘어지는 화였습니다만, 대신 복선을 깔고 인물의 성격이나 관계를 확립한다는 의미에서는 나름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센의 장면에는 요약에는 안 나왔지만 아카스트님의 창작 조연인 전(前) 나이트 코티에르도 등장했는데, 그 코티에르가 ‘음산하기 짝이 없다’는 아카스트님의 말씀에 뛸 듯 기뻤습니다. (…변태냐) 이제 좀 인물 성격이 잡히는 것 같아서 말이죠. 대마왕 마스터 아카마르라든가 로크락이 어떤 사람들인지 감을 잡는 과정도 재밌었고요.

참, 진행이 느릿한 게 제 특징 같다는 말을 들어서 충격먹었어요. (훌쩍) 속도에는 늘 조바심치는데 사실 묘사랑 대사가 되게 많기도 하고, 그 많은 걸 치는 사이 참가자분들은 지루한 게 아닐까 모르겠네요. 좀 생략하거나,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속도감을 향상시키는 게 나으려나요?

참가자가 빠진 세션

RPG는 여럿이서 하는 놀이이기 때문에 참가자가 한 사람이라도 빠지는 것은 큰 차질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유로 예고 후, 혹은 예고 없이 참가자가 결석하는 일이 생기게 마련이지요. 이럴 때 크게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대응책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빠진 이유를 갖다 붙이고 속행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방법입니다. 제가 각 세션을 될 수 있으면 하나의 단위 (예를 들어 캠페인 시간상 하루)로 진행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게 잘 안 되면 최소한 세션을 맺을 때 하나의 장면을 완전히 끝낸다거나요. 이렇게 하면 다음 세션에 참가자가 하나 빠져도 그 주인공이 없는 이유를 급조한 후 세션에 나온 참가자들과 계속 진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포도원의 제다이 8화, 그리고 9화부터 12화였는데, 3인 참가자 중에서 8화에는 이방인님, 9화에는 소년H님이 빠진 연속타를 먹었었죠. (흑흑.. 아카스트님을 붙잡고 웁니(?)) 그래서 8화에서는 ‘일행이 흩어져서 정보를 찾고 있다’라는 식으로 둘러대고 아카스트님과 소년H님 쪽을 진행했습니다. 그다음 9화 첫머리에서 이방인님의 주인공이 별 성과 없이 숙소로 돌아오는 연결부를 짧게 했죠.

9화에서는 소년H님의 주인공인 로어틸리아가 없으니까 ‘정보를 알아보고 돌아오는 길에 바람쐬러(..) 나갔다’라고 한 후 아카스트님과 이방인님과 함께 진행했습니다. 8화 말에 이미 9화의 시간적 배경이 되는 밤은 폭풍이 있을 것 같다고 묘사한 후였으니까, 바람 쐬겠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고 사실은 뭔가 일이 있다는 암시를 연결하기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참가자 결석이 몇 회에 걸쳐 계속되면 주인공이 빠진 이유도 좀 더 길어질 수 있습니다. 소년H님이 나중에야 알게 된 사정으로 9, 10, 11, 12화를 빠지면서 로어틸리아가 일행에서 일탈한 시간도 24시간이 넘었고, 그래서 귀환 후 상의해서 ‘바람 쐬러’ 나간 로어틸리아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지 (바람 쐬러 나갔다가 바람났다…?) 정했습니다. 여기서 나온 로어틸리아 24라는 글은 저와 소년H님만 볼 수 있게 권한 설정을 해서 위키의 장점 또한 십분 활용할 수 있었죠.

이 방법의 또 다른 장점은 참가자의 결석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활용해 캠페인의 내용에 깊이를 더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로어틸리아의 일탈은 졸지에 어미 닭 없는 병아리 나이트 없는 파다완 일행이 된 자락스와 센이 공의회로 귀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코루선트의 상황으로 내용이 이어질 이유를 제공했습니다. 또한, 소년H님의 귀환 후 재회 장면을 연출하는 재미도 있었죠.

로키: 넓은 문이 양옆으로 열리고, 시야가 순간 환해지는군요.
로키: 눈이 적응되자 둥근 방안에 둘러앉은 열두 제다이 마스터의 모습이 보이고
로키: 그 가운데에 있는 것은 로어틸리아,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작은 아이가 있습니다.
자락스 토레이: “……!….” -나이트 로어틸리아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가는 이내 다시 표정을 되돌립니다.
로어틸리아: @미묘한 미소를 띄고 인사합니다.
센 테즈나: @로어틸리아를 잠깐 놀란 듯 바라보다 다가가 서서 목례를 합니다.

자락스 토레이: ‘….무사했구나……’ -보일듯 말듯 살짝 미소

이렇듯 어느 정도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참가자가 빠진 것은 캠페인의 위기에서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절한 제약이 창의성을 자극한다는 원칙은 참가자의 부재도 예외가 아니니까요.

2. 외전을 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참가자가 한 명이라도 빠지면 본 캠페인 진행이 힘들 수도 있습니다. 지난번 세션에 악당이 ‘훗훗훗 드디어들 나타나셨나’ 하면서 등장하는 걸로 끝났다든지 해서, 갑자기 땅이 갈라져서 주인공 하나를 삼켰다는 식이 아니면 부재를 설명하기 어려울 때도 있죠.

이럴 때 제가 선호하는 방법은 캠페인 본편을 벗어나 외전을 하는 것입니다. 옛날 알데마르 캠페인 때 주인공 셋 중 하나가 빠져서 나머지 둘의 과거에 있었던 일을 진행한 것이 그 예입니다. 아예 두 명이 없었을 때는 남은 한 명의 과거 설정을 RP로 재현한 일도 있습니다.

외전 역시 캠페인에 깊이를 더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이야기, 인물 간의 관계 등을 통해 본편 캠페인과는 다른 각도에서 인물과 사건을 조명한다는 점이 재미있죠.

외전의 또 다른 효용은 참가자의 결석보다 한결 난감한 경우, 즉 진행자가 빠졌을 때 대응책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경우 참가자 중 하나가 부진행자 역할을 맡아서 진행자가 나올 수 없을 때 외전을 진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언더월드 3기의 경우 진행자 제노시아님이 사정이 있을 때 제가 외전인 브루하 폭주전대를 진행한 경우가 그 예입니다. 그 외에도 참가자가 빠져서 본편 진행이 어려울 때 본편의 진행자인 제노시아님이 제가 진행하는 외전에서 참가자가 되기도 했었죠.

브루하 폭주전대의 경우 비슷한 시간대일 뿐 전혀 다른 캠페인에 가깝기는 했지만, 그 배경이 된 가상의 도시 뉴 세인트 헬렌이 나중에 본편에 합류한 유르겐의 배경에 나오는 등 연계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 본편의 주인공 하나와 조연 하나가 데이트하는 내용을 연애물 규칙인 얼음깨기 (Breaking the Ice)로 오체스님과 함께 진행하기도 했고요. 이렇듯 똑같이 외전이라고 해도 본편과 연계 정도, 규칙 등에서 여러 가지 변형이 있기 때문에 더욱 다채로운 캠페인이 될 수 있습니다.

3. 주인공을 다른 참여자가 제어한다

세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대응으로는 다른 참여자, 보통은 진행자가 해당 주인공을 제어하는 방법입니다. 저는 별로 선호하지는 않지만, 주인공의 부재를 설명할 필요 없이 본편을 진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본편을 속행하거나 외전을 하는 방법에서도 부분적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로어틸리아의 예에서 로어틸리아가 바람 쐰다며 나갔다고 진행자인 제가 서술한 대목이라든지, 로어틸리아가 다른 일행에게 보낸 홀로크론 메시지를 제가 간접 인용으로 전한 부분 등이 그 예입니다.

주인공을 타인이 제어하는 방법에는 소극적인 방법도 있고, 적극적인 방법도 있습니다. 소극적인 방법은 주인공이 그 자리에 있다는 정도만 알리고, 필요한 최소한의 행동만을 하는 것입니다. 반면 가장 적극적으로는 진행자 혹은 다른 참가자가 그 주인공의 모든 연기를 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겠죠. 전투 정도가 아니면 드문 경우겠지만요.

4. 세션을 쉰다

개인적으로는 참가자 한 명이 예고 없이 빠져서 세션을 쉰 적은 없으며, 이는 가장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위에 말했듯 참가자가 빠지면 차질이 생기지만, 플레이를 자꾸 쉬면 캠페인의 맥이 끊어지는데다, 성실하게 참여한 다른 참가자들에게 불공평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결석한 사람이 있는 김에 팀원들끼리 다른 활동을 하는 것도 가끔은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놀이를 한다든가, 캠페인의 제반 사항을 재점검하는 시간을 갖는다든가. 진행자나 참가자가 빠져서 본편을 진행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해 전혀 다른 캠페인을 준비해서 진행하는 것도 가능하겠죠. 이런 방법은 위에서 얘기한 외전의 변형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캠페인의 세션은 쉬지만 플레이는 하니까요.

어쨌든 다른 준비를 한 게 아니면 참가자가 빠져서 세션을 쉬는 것은 원칙이라기보다는 예외인 것이 바람직한 듯합니다. 참가자가 빠지는 것 자체가 예외인 게 바람직하듯 말이죠.

이상과 같이 참가자 (혹은 진행자)가 빠졌을 때 생각할 수 있는 대응책들을 나열해 보았습니다. 제가 생각하지 못한 방법도 있을 것이고, 각 팀과 캠페인 사정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죠. 약속은 소중하지만 때로 깨지기도 합니다. (저도 최근에 그런 경우가 있었죠..ㅠㅠ) 이에 대한 대응에 따라 캠페인에 대한 의욕, 나아가서는 캠페인의 존속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참가자 부재에 대한 대응은 진행자에게, 그리고 팀에게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부재가 잦다면 참가자가 계속해서 참가할 수 있는지, 시간대가 적당한지 하는 의논이 필요하겠지요. RPG에 만병통치약이 있다면 그건 팀원 간의 활발한 의사소통뿐이니까요.

포도원의 제다이 13화 – 코루선트 (1부)

1393938370.html

자락스와 센은 아를란과 함께 코루선트로 귀환해 제다이 공의회 앞에서 보고합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어린 멜리나를 제다이 후보생으로 데려온 로어틸리아와 뜻밖의 재회를 하지요. 놀람과 기쁨도 잠시, 곧 셋은 불편한 기류에 휘말립니다. 제다이 후보생으로 아를란의 적격성을 논하면서 자락스와 센 역시 시험하는 분위기에, 로크락이 제다이에 등을 돌리고 탈주했다는 소식, 이에 대한 아카마르와 모트 두 마스터의 의견대립…

한마디로 콩가루 어쨌든 공의회는 멜리나를 후보생으로 받아들이고, 아를란이 시험을 위해 공의회와 마주하는 동안 제다이들은 휴식과 재정비를 위해 각자 룰루랄라 흩어집니다.

로어틸리아는 보육원에 있는 멜리나를 보러 가고, 엄마가 보고 싶다며 매달리는 아이를 잘 타이릅니다. 보육 담당이자 피나틸리아의 친구였던 나이트 다야 아운은 그런 로어틸리아의 모습이 의외라고 털어놓고, 두 사람은 피나틸리아의 변절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토로합니다.

로키: “알고 있어요. 포기하지 않으실 것.. 그래서 위안이 된답니다.”
로키: 목례하고 다야는 총총걸음으로 멀어집니다.
로어틸리아: @다야가 떠나는 걸 보고..”하지 않는 걸까 못 하는 걸까” 조용히 중얼거리다 떠납니다.

한편 센은 로크락의 친구인 전(前) 나이트 베오나드 코티에르와 마주쳐서 로크락의 탈주에 대해 좀더 자세한 정황을 전해듣습니다. 로크락이 탈주 당시 작업하고 있었던 프로젝트에 대해 희미한 기억이 날 듯도 하지만 불행히도 당시에는 잠결이었기 때문에 기억은 흐릿..(..) 센은 스승 실종의 진상을 파헤치기로 결심합니다.

비슷한 시간, 자락스는 루바트 오르가나의 묘를 찾아갔다가 이미 와있는 사람과 마주칩니다. 루바트와 닮은 모습의, 귀한 집 아가씨인 듯한 여자는 루바트의 죽음에 대해 괴로워하는 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지요. 그리고 자신을 쟈네이딘 루카로라고 소개한 뒤 떠나갑니다.

포도원의 주사위 결투!

일행으로서 진행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은 플레이의 성격상, 13화는 참가자들과 상의해서 개인 플레이의 연속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순서를 정하기 위해 주사위를 굴려 높은 순서대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형언하기 어려운 반전이..(..)

<자락스_토레이> 1d10
<주사위군> 자락스_토레이의 굴림: 1d10 (5)
<로어틸리아> 1d10
<주사위군> 로어틸리아의 굴림: 1d10 (7)
<센-테즈나> 1d10
<주사위군> 센-테즈나의 굴림: 1d10 (7)

이렇게 해서 연장전..

<로어틸리아> 1d10
<주사위군> 로어틸리아의 굴림: 1d10 (2)

이걸로 대충 결과는 정해졌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오산입 (?)

<센-테즈나> 1d10
<주사위군> 센-테즈나의 굴림: 1d10 (1)

(…할말상실)

그렇게 해서 위의 순서가 나온 것이죠. 주사위군 연출의 대반전이었달까요. (…)

포도원의 제다이 12화 – 카론 (7부)

1091781404.html

아를란을 치료하려는 센에게 인도자는 침탈당하는 넬반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센은 비록 상대가 시스이기는 해도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할 수는 없다며 포스로 아를란을 치료합니다. 그리고 다쓰 프리아트와 대치중인 자락스와 합류합니다.

자네들의 싸움이 아니라며 물러서라는 다쓰 프리아트를 두 젊은 제다이는 공화국과 포스에 대한 신념과 라이트세이버로 묵사발을 만들어 버립니다. 하지만 중상을 입은 다쓰 프리아트를 구석으로 몰아넣은 순간 다쓰 세리트가 시스 부하들을 데리고 도착하고, 뜻밖에도 다쓰 프리아트를 살해한 후 도망칩니다.

시스 엑스트라들과 대치상황으로 들어가려는데 데란 펠과 시 경비병력이 들이닥치고, 센의 권유에 시스들은 항복합니다. 센과 자락스는 다쓰 세리트를 쫓아가지만 시스 로드는 체포를 빙자해 빠져나간 것이 밝혀지고, 그때 우주선 하나가 허락 없이 이륙합니다. 그 순간 로어틸리아가 나타나지만, 그녀는 먼발치에서 말없는 작별인사와 함께 다쓰 세리트를 쫓아 사라집니다.

신토넥스와 시스의 관계를 밝힐 물증도 확보하고, 시청의 조치로 시민들의 반발도 생각만큼 심하지 않은 등 카론에서의 상황은 (드디어!) 일단락됩니다. 자락스는 아를란에게 제다이가 되기 위해 코루선트로 따라오라고 설득하고, 일행은 코루선트로 출발합니다.

자락스 토레이: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기사 서품을 받을 생각입니다.”

센 테즈나: “스승님은 잘 계실까 모르겠군요, 나이트 코티에르는 넬반에서 돌아오셨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