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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데마르 캠페인 이야기 (6) — 기사회생

4화에서 배운 것을 기반으로 하여 5화부터는 플레이가 기적적(?)으로 피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마스터링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거라면 스토리, 혹은 시나리오를 포기했다는 점입니다. 4화 플레이 외에 이 결정에 영향을 준 출처가 있다면 빈센트 베이커의 ‘포도원의 개들’과 론 에드워즈의’소서러’였죠. 둘다 굉장히 훌륭한 룰로, 차후에 소개하겠습니다. (그래…리뷰를 핑계로 소서러를 지르리라! +_+)

많은 룰북에 GM 조언란이 있지만 ‘포도원의 개들’에 나오는 GM 조언은 특히 눈이 확 뜨이는 느낌이었습니다. 한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스 아니면 다이스, 둘중 하나만 하라.’

즉, 플레이어가 어떤 행동을 희망하면 그대로 진행하거나 성공 여부를 보기 위해 다이스를 굴리게 하거나 둘중 하나만 하라는 뜻이죠. 예를 들어 플레이어가 구덩이를 뛰어넘겠다고 하면 ‘뛰어넘었군.’이라고 선언하던가 ‘운동신경 굴려.’라고 하면 되지, ‘저걸 뛰어넘긴 힘들지 않을까?’라든지 ‘지금은 이쪽에서 보물을 찾고 있잖아.’ 등 군소리를 달 필요가 없다는 뜻이죠. 플레이어의 선택을 무조건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RPG의 근본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원칙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제가 플레이어 행동에 제약을 걸거나 플레이어 선택을 가지고 다투는 일이 많았는데, 그게 얼마나 바보같은 일인지 뒤늦게 깨닫게 되었죠.

플레이어 선택을 완전히 존중하기 위해서 빈센트 베이커는 한걸음 더 나아가 시나리오라든지 스토리 같은 것은 절대 정하지 말라고 권합니다. GM이 정한 시나리오가 있으면 그 시나리오에 부합하기 위해 플레이어를 구속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포도원의 개들’을 진행하기 위한 일련의 기법들을 제시하지만, 이것은 오만과 불의, 죄를 구조화해서 진행표로 만든 것으로 모든 게임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닙니다. 하지만 플레이어 선택의 존중과 무(無)시나리오 진행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시나리오 짜기가 귀찮아서라도…;;;)

그러면 시나리오 없이 어떻게 세션을 진행할 것인가? 그 해답은 또하나의 걸작 인디게임인 ‘소서러’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소서러에는 ‘키커’와 ‘뱅’이라는 시스템이 있는데, 우리말로 옮기자면 ‘발단’과 ‘극적 상황’ 정도일까요. 별로 정확한 번역은 아니지만… 발단은 말 그대로 사건의 시작을 말하는데, 각 플레이어가 자신의 PC가 어떻게 모험을 시작하는지 정하는 것입니다. 극적 상황은 세션 중간중간에 나오는 상황이 극적 긴장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 상황이 어떻게 해결되거나 마무리될지는 전혀 정하지 않은 상태로요. 한마디로 PC들에게 곤란한 상황을 툭툭 던져주고 ‘자, 재주껏 빠져나와’ 하는 격이랄까요(…) 예를 들어 ‘벽장 문이 스르르 열리면서 차갑게 굳은 시체가 굴러나옵니다! 그 순간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리는군요. 자, RP하세요.’ 식이죠.

시나리오 없는 진행에서 이 극적 상황 기법이야말로 제 마스터링의 중심이 될만한 시스템이라고 생각되더군요. 그래서 제 5화 세션을 준비하면서 아무런 시나리오도 생각해 두지 않고 몇가지 극적 상황만을 정해두었습니다. 이 상황에 플레이어가 반응하면 나는 거기서부터 반응한다, 하는 생각으로요.

그리고 결과는 대성공이었죠. 완전히 자유를 주자 플레이어들은 제가 놀랄만큼의 창의력을 보이기 시작했고, 저는 그런 그들에게 반응하면서 슬쩍슬쩍 극적 긴장을 높이면 그만이었습니다. 마스터링이 많이 편해지고, 플레이가 부드럽게 흘러가서 정말 종더군요. 실제로 이 세션은 (당시에는) 그동안 한 것 중 최고의 세션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문제가 있었다면 PC들의 결속력이 떨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PC 둘은 아주 호흡이 잘 맞고 스토리도 완벽하게 엮이는데 비해 제 3의 PC가 계속 겉돈다는 점이었죠. 이 PC는 설정상으로도 나머지 팀원과 접점이 적을 뿐 아니라 플레이어 자신이 캐릭터를 나머지 둘에게 접근시키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이 녀석은 원래 비사회적이다’라는 이유를 들어서요. 아니 그럼 어쩌라고..ㅡㅡ;; 솔직히 별로 좋아보이는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나야 PC에 충실할 뿐이니 GM 네가 어떻게 해보라는 걸까요. PC 성격이 그렇다면 다른 이유로라도 파티 결속력을 유지할 노력 정도는 해야지(상호 이익이라든가), 아무 노력도 없이 자꾸 따로 놀기만 하는 건 좀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한테도 잘못이 있었고요. 비사회적인 PC는 어떻게 하는가 하는 RPG의 고전적인 문제를 잘 보여준 경우였다고 생각됩니다. 가장 중요한 건 RPG가 사회적인 놀이라는 것 아닐까요. 혼자 돋보이고 싶으면 소설을 쓰든지 혼자 플레이하는 것이 낫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여러모로 5화 플레이는 캠페인의 전환점이 되는 플레이였다고 생각합니다. 제 마스터링에도 그렇고요.
이글루스 가든 – 한국 RPG 대중화의 그 날을 위해

알데마르 캠페인 이야기 (5) — 최악의 세션

알데마르 캠페인 4화는 몇가지 오산이 원인이 되어 첫부분이 상당히 엉망이었습니다. 레갈리에를 떠난 일행이 바텔에 도착하는 장면부터 시작할 생각이었는데, 갓 만난 PC들에게 여행길에서의 동료의식이랄까, 그런 걸 심어주자는 괜한 생각으로 여행길에서부터 제 4화 세션을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서로 이해관계가 일치해서 만난 캐릭터들이었으니 그런 짓은 할 필요도 없었는데 말이죠..ㅡㅡ;; 게다가 플레이어는 절대로 GM의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제 1 원칙을 깜박했다죠..;; 서로 대화를 트고 가까워지기를 기대했건만, 결과는 점점 늘어지는 진행이었습니다.

점점 진행이 지루해지고 산만해지자 그럼 액션 장면을 넣어서 좀 긴박하게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으로 전투를 넣은 것이 오히려 플레이를 더 지루하게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PC가 무슨 짓을 해도 피할 수 없는 전투라는 건 중요하지 않은 NPC에게 지나치게 비중을 주고, 사회기능을 넣은 것 자체를 무색하게 하는 결과가 되었죠.

뭐 그런저런 이유로 서둘러 PC들을 바텔에 도착시키자 상황은 훨씬 호전되었습니다. 페드로는 바텔에 버리고 갔던(?) 부하들과 재회했고, 레인은 리야를 데리고 길드의 바텔 지부장을 만났죠. 처음부터 여기서 시작할걸~ 하고 굉장히 후회막심이었습니다.

4화 세션의 경험을 바탕으로 배운 것이 있다면

1. 플레이어는 절대로 GM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특정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로 이벤트를 넣지 말도록.

2. 필요없는 부분은 과감히 뛰어넘는다.

…정도랄까요. 또하나의 수확이라면 플레이어가 GM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미리 시나리오를 짜는 것을 그만두었고, 그 덕분에 결과적으로 훨씬 재미있는 플레이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 점에 대해선 5화 이야기에서~

알데마르 캠페인 이야기 (4) — 수도탈출

3화 플레이에서는 처음으로 플레이어 전원이 참석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따라서 플레이의 주 내용도 파티 형성이었지요.

초반부터 룰적 문제에 부딪힌 게 있다면 ‘극단적으로 많은 인원의 적을 상대할 때는 어떻게 하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페이트 룰북에서는 원래는 적 1인마다 -1 페널티를 받는다고 되어 있지만, ‘최악’부터 ‘신적’까지 10단계의 형용사로 된 페이트 시스템에서 경비병이 30명이라고 -30을 했다간 더이상 표현할 형용사가 없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최악 중의 극최악? 말이 필요없는 초허접?) 게임이 애당초 성립하지 않는 건 물론이고요.

그때는 뭐 그냥 어떻게든 대충대충 넘어갔는데, 당연한 해결책이 떠오른 건 그 세션이 끝나고 나서였습니다. 그냥 GM이 난이도를 설정하면 될 것을 이렇게 바보같을 데가…ㅡㅡ;; 병사 1명의 실력이 ‘보통’이라면 병사 30명 역시 하나의 NPC로 쳐서 실력을 ‘엄청나다’ 아니면 ‘서사시적’ 정도로 설정하면 되겠더군요. 물론 각 NPC가 개성이 있다면 개별적으로 따져야겠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은 NPC가 3~4명 수위를 넘어서 ‘경비병 30명’ ‘깡패 17명’ ‘적국 병사 500명(?!)’ 등등이 되면 하나의 NPC로 처리해도 아무 무리가 없을 것 같거든요. 사실적이라기보다는 극적인 알데마르 캠페인의 분위기에도 어울리기 때문에 마음에 쏙 드는 해결책입니다. 다음에 시험해 봐야지..+_+ (퍽퍽)

어째 이번 세션의 NPC들은 다 시커먼 남자놈(…)들이었는데, 그럭저럭 할만했습니다. 적이 되어버린 친구와 마주한 NPC가 격하게 투구를 벗어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대목이라든가, 능청스런 성격의 NPC가 정령이 뭔지 아느냐는 질문에 ‘뭔가 홀딱 벗은 아가씨들 아냐?’ 하고 대답하는 부분 등이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후자 쪽은 플레이어가 만든 NPC였는데, 연기가 아주 맘에 들었다는 칭찬에 어깨가 으쓱했죠..ㅋㅋ 싫증을 잘 내는 제 성격상 한 캐릭터만 파야 하는 플레이어보다는 여러 캐릭터를 바꿔가며 장착(뭐냐)할 수 있는 GM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파티 형성 부분은 좀 걱정했는데 플레이어들이 잘 협조해 주어서 부드럽게 흘러갔습니다. 그다지 억지스럽지 않게, 각자의 이익에 맞으니까 말이죠. 하지만 이때부터 한 점 그늘이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PC 두명은 처음부터 호흡도 잘 맞고 의기투합했던 데 비해 나머지 하나는 좀 겉도는 느낌이었거든요. 불행히도 이 패턴은 PC가 캠페인을 떠나는 순간까지 계속됩니다. 이 PC의 (잠정적인) 결말이 별로 행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조금 가슴이 아픈 부분이기도 하죠. 자세한 건 알데마르 캠페인 6화 이야기에서.

그 외에도 진행 자체에서도 억지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았습니다. 가족을 보고 싶어서 조금 돌아갔는데 하필이면 바로 그 거리에서 제 3의 PC와 떡하니 마주친다거나. 뭐 그런 우연이 있을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진행의 편의가 우선된 면이 있었달까요.

다음번 4화가 드디어 정말 쓰기 싫은 세션이로군요. 알데마르 캠페인 지금까지 최악의 세션…ㅡㅡ;; 하지만 그만큼 배운 것도 많았으니까 꾹 참고 쓰렵니다.
이글루스 가든 – 한국 RPG 대중화의 그 날을 위해

알데마르 캠페인 이야기 (3) — 옛날 옛적에

여전히 시험기간인지라 두번째 캠페인 때는 레인의 플레이어가 빠지게 되었습니다. 두 PC가 (레인과 리야) 바로 지난 세션에 맞닥뜨린 상황에서 다시 갈라놓기도 우습고, 생각다 못해 참여할 수 있는 PC(리야와 페드로) 두 사람을 데리고 외전 플레이를 하기로 했습니다. 본편 캠페인보다 몇년 전의 과거 이야기를 말이죠.

시작하면서부터 의견일치를 보기 어려운 것이 있었는데, 리야와 페드로가 본편에서 서로를 알아볼 수 있게 할까 못알아보게 할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PC가 둘다 귀족가 출신인만큼 서로 아는 사이가 되어도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 저와 리야의 플레이어 생각이었지만, 페드로의 플레이어가 원하지 않더군요. 결국 외전 중에는 먼발치에서 보고 서로 이름을 아는 정도로 하기로 결론을 냈습니다. 기법은 역시나 장면전환식 진행(…)

외전은 본편보다 7년 전, 왕자의 출생을 기념해 수도에서 열린 토너먼트전에서 시작합니다. 이때 페드로 빙크리스틴은 19세의 갓 서품받은 기사로 첫 토너먼트 출전을 했고, 아버지를 따라 수도로 온 12세의 리야는 관중석에 있었습니다. 리야의 약혼자이자 사촌 오라버니인 크리스티안 렌하임이 페드로의 상대였죠. 하지만 당당하게 출전한 크리스티안이 페드로의 창에 죽으면서 토너먼트장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집니다. 사건의 진상과 상관없이 빙크리스틴과 렌하임이라는 두 강력한 가문은 대결 국면으로 접어들고, 약혼자를 잃은 리야와 첫 출전에 사람을 죽인 페드로는 그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휘말려 들게 됩니다.

뭐 결국엔 당연히(?) 리야가 페드로의 무죄를 밝혀내죠.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보다 가문의 실추된 명예를 더 중시하는 대영주의 암투, 냉혹한 음모와 교묘한 정보조작 등 권력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NPC들에 맞서서… 이 과정에서 좀더 플레이어에게 능동적으로 선택할 기회를 주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역시 과거 이야기인지라 혹시라도 돌발상황이 발생할까봐 꽤 직선적인 이야기 진행이 되었습니다.

본편과 나중에 연관된 부분이라면 우선 이 토너먼트의 개최 원인이었던 왕자가 7년 후에 레우코스가에 볼모로 잡히는 메티리온 왕자라는 것. 그런데 시간 관계를 깜박 잊고서 본편 시작부분에 이녀석을 11살로 설정해 버렸다죠..ㅡㅡ;; 다행히도 플레이중에는 ‘어린아이’로만 묘사했기 때문에 들키지는 않았지만, 왜 마스터링 강좌나 팁마다 자료를 남길 것을 그렇게 강조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메모 좀 하고 살자고 다짐한 계기가 된…

또하나, 처음 예정과는 다르게 본편의 악역인 레우코스 가문의 두 형제 미켄과 라르켄이 꽤 중요하게 부각되었습니다. 진범의 조작에 의해 리야가 레우코스 가문을 범인으로 지목하자 자신들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미켄과 라르켄이 페드로를 찾아가거든요. 그리고 역시 처음 예정과는 달리 페드로는 이 두사람과 친구 사이가 됩니다. 덕분에 페드로의 본편 도입부에서 ‘친구의 배신’이라는 사악한 장치를 연출할 수 있었죠…캬캬.

단선적인 진행이 아쉽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캐릭터에 살을 붙일 수 있었던 플레이였습니다. 두 플레이어의 롤플레잉 역시 훌륭했습니다. 두 PC의 이야기가 서로 긴밀히 얽히면서도 두사람 사이의 접촉은 쪽지 한 장으로 그쳤다는 점도 기억에 남았고요. 여러모로 즐거운 플레이였습니다.

이글루스 가든 – 한국 RPG 대중화의 그 날을 위해

알데마르 캠페인 이야기 (2) — 준비, 땅!

4. 첫 세션

준비 작업을 마친 후 (정확히 말하면 졸속으로 날림한 후…;;) 첫 세션으로 들어갈 대망의 일요일이 밝아왔습니다. 이전에 같은 팀과 단기 캠페인을 했었기 때문에 첫 마스터링은 아니었지만, 스토리가 제한되어 있지 않고 가능성이 무한한 플레이는 이번이 처음이었죠. (첫 캠페인이었던 주인님과 함께 같은 경우 PC 행동이나 시나리오 결말이 제한되어 있어서…) 뭔가 스토리를 준비해 보려고 생각은 했지만, 잘 떠오르지도 않고 또 생각대로 될 것 같지도 않아서 대충 나올만한 묘사나 좀 써놓고 첫 세션을 맞이했습니다.

PC 파티가 모험가 일행이 아니라,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 길을 떠난 경우이기 때문에 ‘주점에서 만나 의기투합’ 하는 식의 오프닝은 통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PC들의 만남을 강제하기 위한 장치로 좀 상투적이긴 하지만 쫓기는 길에 서로 마주쳐서 행동을 함께하게 되었다는 걸로 정했죠.

플레이어 세분 중 한분은 시험 관계로 참석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머지 두 플레이어와 함께 첫 세션을 진행했습니다. PC는 도둑길드의 젊은 길드원 레인과 집나온 귀한 댁 아가씨 리야였죠. 만나서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라 만나는 것 자체가 세션의 줄거리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개별적인 장면진행으로 플레이했습니다. 즉, 레인 한장면 진행 -> 리야 한장면 -> 레인 -> 리야 식으로… 참고로 첫 캠페인인 ‘주인님과 함께’ 캠페인의 진행 방식이 이랬기 때문에 익숙한 방식이기도 했고요.

일단 플레이어의 관심을 끌어야 하는 첫 세션에서 장면전환식 진행은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각 장면의 긴장되는 순간(평화로운 도시의 정경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하는 시점, 어둠 속에서 암살자가 튀어나오는 순간 등)에서 재빨리 다른 캐릭터르 시점을 옮기는 플레이는 플레이어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사실 전에도 장면전환 플레이를 했다곤 하지만 그런 식으로 극적 긴장을 높이는 법에 대해선 전~혀 문외한이었거든요. 그 점을 지적받아서 혼자 고민하고 연구해 보기도 했고요. 확실히 경험만큼 좋은 스승은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첫번째 세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라면 바로 PC들이 세션 내내 숨차게 도망다녔다는 점일 것입니다.(…) 국왕폐하가 갑자기 서거하고 왕가의 충복이었던 레우코스 가문이 어린 왕자를 인질로 잡고 정권을 장악하면서 도시 전체에 레우코스 가의 사병이 우글거렸고, 혼란시에 흔히 그렇듯이 조금이라도 수상하면 사람이 보이는대로 잡아넣었거든요. 불쌍한 레인과 리야는 덕분에 레갈리에 시의 뒷골목을 숨가쁘게 뛰어다녀야 했습니다. 감옥에 잡혀들어가서 제 3의 PC와 조우시켜주려는 마스터의 눈물겨운 노력도 모르고..(…) PC 행동은 정말 뜻대로 안되더군요. ㅠㅠ 로그류답게 운동신경이 뛰어난 레인, 그리고 운동신경은 별로지만 바람의 정령을 데리고 다니는 리야는 좀처럼 잡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

레인은 길드 본부가 레우코스 사병들에게 습격당해 초토화된 상태에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마스터의 징표인 보검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리야는 리야대로 아버지가 보낸 추적대를 피해 군중 속에 몸을 숨기려 했는데 때맞춰 난이 일어나 오도가도 못하게 돼 있었고요. 이 두사람은 결국 운명처럼 농간처럼 레갈리에 뒷골목에서 떡하니 마주치게 됩니다. 그리고 레인의 플레이어가 친척집을 방문해야 했던 관계로 이 시점에서 정플은 끝나고, 나머지 시간은 리야의 과거를 다룬 외전 플레이를 진행했습니다.

첫 정플 플레이에서 아쉬웠던 점이라면, 역시 모든 게 낯설어서 많이 덤벙댔다는 것이 대표적이겠죠. 묘사는 미리 적은 문구의 복사신공으로 때웠지만, NPC 대사가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으니까 진땀이 다 나데요. 하지만 긴박감 있는 첫 플레이였다는 평가를 들었으니 그다지 나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또하나 아쉬운 점이라면, 기왕 추격 장면이 많은 김에는 뭔가 굉장히 극적이고 멋진 추격전이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질 못하고 다소 천편일률적이었다는 점입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제가 초긴장으로 굳어있는 상태인 것도 한 원인이었겠죠. 병사들이 ‘서라!’를 외치며 쫓아오는 동안 레갈리에 뒷골목의 거미줄 같은 거리를 열심히 달립… 하는 묘사도 한두번이어야죠..;; 만약 지금 한다면 좀더 다양한 묘사와 이벤트를 준비했을 것 같습니다. 쫓아오는 병사들에게 양면포위를 당한다든지, 말탄 기수에게 쫓긴다든지, 도망치면서 수레나 쓰레기더미 같은 장애물에 걸린다든지…등등. 앞으로의 플레이에 참고할만한 경험이었죠.

5. 외전 플레이

리야의 과거를 다룬 외전 플레이는 별다른 건 없었습니다. 리야의 플레이어분이 이미 올리신 NPC 설정을 그대로 플레이한 게 전부였으니까요. 내용이 과거이니만큼 돌발사태는 절대 안되는..;;. 판정이 거의 없이 스토리 중심으로, 어린 리야가 빈 존스라는 소년과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되고, 결국에는 억지로 헤어지게 된 이야기가 중심이었습니다. 소설적 연출에 중심을 둔 무난한 플레이로, 플레이어분의 발랄하고 생동감 넘치는 롤플레이가 특히 인상에 남았죠. 마지막 장면에서는 빈 존스가 나중에 리야의 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플레이어가 짠 설정에 맞게 함축적으로 연출해 봤는데, 멋진 장면이라고 플레이어에게 칭찬을 들어서 으쓱했던 기억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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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데마르 캠페인 이야기 (1) — 사전작업

지금 매주 진행하고 있는 캠페인인 알데마르 캠페인에 대해 적어볼까 합니다. 제 경험을 얘기하고 다른 분들과 비교해볼 수 있으면 좋고, 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얘기라면 더욱 좋겠죠. 아직 5화 남짓 진행한 지금 여전히 걸음마 단계에 있는 캠페인입니다만…

1. 시스템

알데마르 캠페인의 룰은 페이트 (FATE)로 정했습니다. 무료 공개 룰이기 때문에 플레이어에게 배포하는데 장애가 없고, 제가 원하는 극적인 스타일의 플레이를 유도하기에 좋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페이트는 기본적으로 기능만 있고 특성치가 없이, 플레이어가 스스로 자기 캐릭터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키워드(지금 PC들의 경우 영주의 딸, 도둑길드, 기사 등)를 정해서 드라마 포인트와 함께 사용하는 경량 룰입니다.

2. 컨셉

알데마르는 유럽 중세를 모티프로 한 판타지 세계인데, 지성을 가진 비인간 종족이나 몬스터가 없으며 마법도 비교적 약하다는 설정입니다. 마법은 불, 물, 공기, 흙의 4원소에 기초하고 있으며 치유마법이나 독심술처럼 강력한 마법은 없습니다.

캠페인 컨셉은 기본적으로 PC들의 동기와 목표가 중심이 되는 정치물로 잡았습니다. 즉, 각자 여행을 떠나는 목표를 정하고 서로 함께 여행할 수 있는 접점을 만들기로 했지요. 즉, PC들은 전문 모험가나 해결사가 아닌,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여행하고 목적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는 사람과 함께 여행하는 것입니다.

3. 캐릭터 메이킹

위와 같은 캠페인 방향을 잡고 캐릭터 메이킹은 한 세션을 할애해 모두가 참석한 자리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결국 만들어진 캐릭터는 다음과 같았죠.

페드로: 이름있는 창과 명마를 가진, 명망있는 가문의 서자인 젊은 기사

레인: 도둑길드 길드마스터에게 차기 길드마스터 자리를 넘겨받은 도둑길드의 일원–길드마스터의 징표인 보검 레이지(Rage)를 가지고 있음

리야: 부패한 아버지를 밀어내고 자신이 영주가 되려는 목표를 가진 귀족 아가씨–가문의 가보인 공기의 정령이 깃든 바이올린까지 갖고 나옴

이렇게 캐릭터를 다같이 모여서 만든 건 상당히 긍정적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각자의 취향을 살리면서도 어떤 식으로 캐릭터의 이야기를 서로 엮을지 미리 생각할 수 있었으니까요. 캠페인의 근간이 될 PC 목표가 정해지자 이제 캠페인이 시작될 준비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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