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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와 대화 1-2: 감정에 대해 대화하기

지난번 ‘놀이와 대화’ 글에서는 대화에 드러나는 관점 차이, 즉 사건의 경위를 보는 시점의 차이, 상대와 자신의 의도와 결과에 대한 생각의 차이, 그리고 잘잘못에 대한 생각 차이를 다루어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그에 이어 모든 어려운 대화에 숨은 두 번째 대화, 감정에 대한 대화를 다루어 보겠습니다.

1. 감정 회피의 문제점

보통 감정은 대화의 주제가 아닌 주변적인 문제, 혹은 방해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아예 못 참고 감정을 막 쏟아내는 게 아닌 이상은 ‘이성적인’ 대화에 감정을 끌어들이고 감정 이야기를 하는 것은 기피 행동이지요.

그러나 감정은 외면한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표현하지 않은 감정은 새어나오거나 분출하게 마련입니다.

감정이 대화에 새어나오는 예로 대표적인 것은 감정의 대리물로 대화 중 옳고 그름을 따지고 외부적 기준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난번 글에서 예를 든 M과 P의 대화가 그렇습니다.

M: P’는 왜 다른 주인공들하고 동떨어지는 거죠? 일행이 안 모이고 있어서…
P: 걔는 원래 그런 성격이라서 할 수 없어요.
M: 하지만 그건 주인공 성격이잖아요. 그걸 핑계로 전체의 재미를 저해하면 안 되죠.
P: ……

여기서 M은 자기 감정 얘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M의 말은 분명히 감정적입니다. 이성적 기준을 빌어서 얘기하고 있어도 사실 중심은 P가 ‘핑계’를 대고 있다거나 ‘재미를 저해’한다는 말을 통해 드러나는 짜증스러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감정은 어떤 식으로든 대화에 드러나게 마련인데도 그 실체를 외면하고 대신 옳고 그름만 따지는 것은 비생산적인 (역설적이게도) 감정 싸움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마찬가지로 감정을 외면한 채 억누르고 또 억누르다 보면 어느 순간 참지 못하고 폭발해버리는 일도 적잖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후회할 말이나 행동을 하고 인간관계가 돌이킬 수 없어져버리기도 하지요. 이렇게 봐도 감정을 부인하는 것은 감정을 다스리기는커녕 오히려 감정에 지배당하는 지름길입니다.

2. 감정을 직시하고 분석하기

물론 감정을 직시하고 대화에 생산적으로 끌어들이기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사람은 자신의 감정보다는 타인에 대한 배려를 우선해야 한다고 배우며, 또 감정, 특히 분노, 질투, 두려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부끄러움과 죄책감이 흔히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감정을 부인하고 왜곡하는 것은 거의 본능적인 반응입니다. 타인에게는 물론이고 자기 자신에게마저.

그래서 감정이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며, 좋은 사람도 얼마든지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분노나 질투를 느낀다고 해서 그 감정이 곧 자기 자신은 아닙니다. 자신이 느낄 수 있는 많은 감정 중 하나일 뿐이죠. 원인을 공략해서 극복하고 해결할 대상이기는 하지만, 그 실체를 외면해서는 극복은 더 어려워집니다.

감정의 실체를 파악하려면 감정을 세분화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M은 P에게 짜증이 난다고만 생각하기 쉽지만, 조금 나누어 보면 사실 그 실체는 훨씬 복잡할 수 있습니다. P에 대한 분노 외에도 캠페인 상태에 대한 실망감,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진행자인 자신의 무능이라는 두려움과 부담감, 협조하지 않고 있는 P에 대한 당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은 알지 못한 채, 아니 자신은 감정 따위 없이 철저히 이성적이라고 믿으면서 이 모든 감정의 무게를 P에게 한꺼번에 풀어버리는 것은 별로 생산적이지 못하겠지요.

또한, 감정을 다른 것으로 둔갑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감정을 직시하고 표현하는 어려움은 감정 대화를 감정 아닌 것으로 해결하려는 데서도 드러납니다. ‘좋은 참가자라면 일행 융합에도 협조할 거야.’라는 심판이나 ‘왜 캠페인을 망치려는 거지?’라는 의도 단정, ‘당신은 배려심이 부족해요.’라는 평가, ‘이제부터는 일행과 함께 다니면 돼요.’라는 문제 해결은 감정이 아닙니다. 감정의 대체물일 따름이죠. 감정은 자신이 느끼는 것이지, 타인에 대한 판단이 아닙니다. 감정을 다른 것으로 둔갑시키려는 시도는 감정을 회피하는 또 다른 수단일 뿐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파악하면 감정과 교섭하기도 한결 수월해집니다. 감정은 절대적인 것이 아닌 만큼 인식에 따라 달라집니다. 따라서 지난 번 글에서 다룬 관점 차이를 하나씩 생각해 보면 감정을 다스리기가 좋아집니다. 사건의 경위, 상대와 자신의 의도와 행동의 결과, 사건의 원인 기여가 정말로 M이 생각한 그대로인가. P의 관점은 M의 관점과는 한결 다르지 않을까. 그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만으로도 감정의 압박을 덜 수 있으며, 그만큼 상대의 관점에 귀기울이고 문제 해결을 향해 나아갈 마음의 준비가 됩니다.

3. 감정에 대해 대화하기

자신의 감정을 파악하면 비로소 감정에 대해 생산적으로 대화할 수 있습니다. 감정을 무시해야 할 부산물로 치부하는 대신 대화 중 직접 다루고, 심판, 단정, 평가, 문제 해결 대신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 정직하게 이야기하면 감정은 대화에서 다룰 수 있는 사안 중 하나가 됩니다. 예를 들어 위의 M과 P의 대화에서 M이 감정이 실린 가치 평가를 하는 대신 감정을 정직하게 얘기한다면 대화는 한결 달라지겠지요.

M: 하지만 그건 주인공 성격이잖아요. 그걸 핑계로 전체의 재미를 저해하면 안 되죠.

대신에

M: 근데 일행이 잘 모이지 않아서 저로서는 진행하기가 조금 어려웠어요. 캠페인이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아서 당황스럽기도 했고요. 계속 일행이 흩어지면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좀 되는데, P님 생각은 어떠세요?

하는 식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인정하지 못하는 감정이 대화에 새어나가서 내가 잘했다 네가 못했다는 싸움이 되는 대신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상대의 감정 역시 들어줄 자세가 되었다는 표시를 할 수 있으니까요. (눈썰미 있는 분은 1-1에서 다룬 관점 대화도 들어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P의 의도가 나쁘다고 단정짓는 대신 자신에게 어떤 영향이 있는지를 다루니까요. 종합적으로 다루는 것은 2부에 할 예정입니다만, 일단 맛배기 (?))

이렇게 감정을 다룰 때면 자기 감정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감정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관심을 품고 경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관점 차이와 마찬가지로 상대와 자신의 감정도 문제를 해결하려면 필요한 정보이니까요.

또한, 위에서 얘기한 감정에 대한 죄책감과 두려움 문제를 피하려면 자신의 것이든 상대의 것이든 감정을 평가하지 않고 일단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 인정이 곧 동의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그 감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왜 너는 그렇게 느끼느냐 혹은 내가 이런 감정이 있다니 참 바보다 하고 심판하지 않는다는 것뿐입니다.

물론 감정 얘기를 나누다 보면 자신의 것이든 타인의 것이든 비합리적이고 말도 안 되는 감정도 종종 있을 것입니다. 그런 감정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고 설득하고 싶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감정은 이성이 아닌 만큼 논리를 따르지 않습니다. 그런 감정은 잘못되었다고 논리적으로 주장하려는 것은 감정에 대한 외면과 부정직함, 그리고 억압을 유발할 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습하는 대화를 통해 인식을 조정해 가면서 감정 역시 변화시키고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려면 먼저 감정을 인정하고 감정에 대해 정직하게 대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대상은 다스릴 수도 없게 마련이지요. 감정의 존재와 그 성격에 대해 자신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정직해야 감정에 지배당하는 대신 감정을 제어하고, 감정을 비롯한 주변 문제를 생산적으로 해결할 기반을 쌓을 수 있습니다.

놀이와 대화 1-1: 관점 차이

RPG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회적인 상황이라 별별 문제가 다 생깁니다.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생각해 보죠.

캠페인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참가자 중 P의 주인공 P’가 나머지 일행을 거들떠도 보지 않아서 일행이 섞이지 않고 자꾸 평행 진행이 됩니다. 따라서 진행자 M과 다른 참가자들은 다소 짜증이 나는 상태입니다.

예, 별로 명랑발랄한 상황은 아닙니다. 이런 식의 사건들 때문에 한이 맺혀서(..?) 곤란한 행동유형이라는 글을 쓰기도 했고요.

이렇게 문제가 생겼을 때 생각할 수 있는 해결책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따르는 대가가 있지요. 아예 팀에서 자를 수도 있지만, 이건 P와의 인간관계에는 거의 치명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게 곤란하면 캠페인 중단한다고 하고 P만 따돌린 후 나머지 사람끼리 모이는 방법도 있지만, 얍씰한 건 차치하고서라도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아무 말 없이 P와 P’는 무시하고 진행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서로 계속 오해와 감정이 쌓이기에 딱 좋은 방법이기도 하죠.

역시 가장 정공법이며 생산적인 해결책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겠지만, 이게 또 쉽지만은 않습니다. 서로 예의 차리느라 어색하고 곤란한 침묵으로 빠져들거나 정말 캠페인 파토날 만한 감정싸움으로 가기 쉬우니까요. 예를 들어 이런 대화가 되기 십상입니다.

M: P’는 왜 다른 주인공들하고 동떨어지는 거죠? 일행이 안 모이고 있어서…
P: 걔는 원래 그런 성격이라서 할 수 없어요.
M: 하지만 그건 주인공 성격이잖아요. 그걸 핑계로 전체의 재미를 저해하면 안 되죠.
P: ……

그러면 이 짤막한 대화를 중심으로 이 대화 속에 숨은 다른 대화들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그것이 이 글과 다음번 글에서 다룰 세 가지 대화 중 첫 번째, 관점에 대한 대화입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하는 대화는 문제가 정확히 무엇인지, 어떤 경위로 문제가 생겼는지 하는 내용이 들어갑니다. 우리는 문제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확신이 있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실 우리는 문제의 경위를 모른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모른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위의 예에서 P가 주인공 P’의 성격을 핑계로 독불장군 노릇을 하는 게 문제인 건 명백한데. 따라서 P의 RP가 문제이고, 허구적 주인공의 성격으로 자기 행동을 변호하는 행동이 잘못이고, 따라서 문제의 원인은 P이며 P가 자기 잘못을 인정해야 하는데.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그건 M의 관점입니다. P의 관점에서 본 이 상황은 전혀 다를 수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P가 정말로 주인공의 성격을 핑계대고 문제를 일으키는지 P의 속마음은 P밖에 모릅니다. 핑계라는 건 P의 행동에 대한 M의 평가일 뿐이죠. 마지막으로, P의 행동이 문제의 원인이라는 것도 M의 생각입니다.

위의 문단에서 빠진 것은 바로 P의 관점입니다. M과 P의 이야기 중 우리는 M의 이야기만을 듣고 있는 셈이죠. M이 옳은데 그게 무슨 상관이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만, M이 하는 말이 구구절절 옳다고 해도 옳다는 것은 해결책이 되지 않습니다. 갈등상황 자체가 관점의 갈등이기에 (P의 RP에 대한 관점의 차이) P의 관점을 들어보지도 않고 설득하려는 것은 아무 설득력이 없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대화는 근본적으로 자기 주장을 투척하는 대화가 아닌 학습하는 대화가 되어야 합니다. 관점 차이 자체가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먼저 무슨 관점 차이가 있는지 알아야 갈등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해결할 수 있는데, 서로 관점을 이해하기 전에는 문제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니까요.

이러한 관점 차이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Difficult Conversations에서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경위, 의도와 결과, 원인에 관한 관점 차이이지요.

1. 경위에 대한 관점 차이

우선, 상황이 여기까지 온 경위에 대한 생각은 다들 다소간에 다릅니다. RPG를 할 때면 놀라운 재미와 놀라운 두통(..)의 근원이 되는 것이 바로 사람은 모두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같은 상황에 있어도 사람마다 기존 경험, 들어오는 정보, 세계관, 성격 등에 따라 상황을 전혀 다르게 보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타인의 관점을 알고 있다고, 혹은 상대가 나의 관점을 안다고 생각하는 확신은 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와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며, 전혀 다른 세상을 보고 있으니까요. 마찬가지로 저쪽의 관점 따위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은 위에 얘기한 대로입니다.

예시로 돌아가자면 같은 상황이라도 문제의 경위에 대한 P의 생각은 아마 M과 전혀 다를 것입니다. P가 보기에는 자신이 맡은 주인공인 P’의 성격을 충실히 살리는 RP를 하면서 일행을 합치는 계기를 진행자 M이 만들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자신의 행동이 문제라고 하니 충분히 당황스러울 수 있겠죠.

또한, P는 주인공의 성격 RP를 훨씬 중시하는 팀 출신일 수도 있고, 일행을 뭉치게 하는 주도적인 역할은 진행자가 맡는 것에 익숙할 수도 있습니다. 이전 팀에서는 주인공 성격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고 주의를 들은 일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랬는데 이번에는 주인공 성격을 살린다고 진행자가 뭐라고 한다면 충분히 당황스러울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서로 얘기하고 파악하지 않으면 이런 차이를 알 수조차 없다는 점입니다. 관점 차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환상적인(..) 생각, 혹은 상대의 관점은 중요하지 않다는 독선적인 생각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겠죠.

2. 의도와 결과의 차이

사람은 보통 어떤 의도를 품고 행동을 합니다. 사회적인 상황에서 그 행동은 상대에게 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일이 많습니다. 위의 예에서 P’의 무덤덤하고 비사교적인 성격에 충실하려고 했던 P의 행동은 M과 다른 참가자들을 짜증나게 하는 결과를 유발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 역시 얘기하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어느 정도 신경 써서 파악은 할 수 있겠습니다만 (속칭 ‘알아서 눈치 깔기’), 결국 M이 확실히 아는 것은 M 자신의 의도, 그리고 P의 행동이 M에게 일으킨 결과뿐입니다. 마찬가지로 P 역시 자신의 의도와 M의 행동이 P에게 미친 영향밖에는 확실히 알지 못하지요.

사람은 다 보는 관점이 다른데도, 그리고 한 사람이 보유한 정보는 이렇듯 제한적인데도 사람은 상대의 의도를 훤히 안다고 확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우리에게 유발한 결과를 기준으로 상대의 의도를 단정짓죠. P의 행동은 나를 불쾌하게 했다는 결과에서 P는 이기적인 의도로 행동했다는 의도를 유추하고, M의 지적은 나를 당황하게 했다는 결과에서 M은 나를 제멋대로 조종하려고 한다는 의도를 유추하는 등.

이게 얼마나 비생산적인지는 길게 얘기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정보가 부정확하니 문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고, 문제를 모르니 해결하기도 어렵죠. 뿐만 아니라 상대에게 최악의 의도를 부여해 버리면 상대는 더 이상 상종할 수조차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결국 생산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이 못된 사람을 찍어누르는 방향으로 가기 쉽습니다. (결국 길게 얘기했다..(…))

여기에서도 역시 확신을 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의도와 상대 행동의 결과. 상대가 알고 있는 것은 상대의 의도와 우리 행동의 결과뿐. 결과에서 의도를 유추하는 것은 섣부릅니다. 대화를 통해 이 정보의 차이를 줄여가야 제대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3. 원인 제공

문제가 내 탓인지 남 탓인지 얘기하라고 하면 후자를 고르는 일이 아마 대개의 사람은 압도적으로 많을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정당화에 강하니까요. 그리고 바로 그래서 잘못을 따지는 것은 비생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네가 잘못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우선 사람은 방어적으로 되고, 변화에 저항하게 됩니다. (이건 나중에 다룰 정체성 대화와도 관련이 깊습니다.)

물론 자기가 잘못했다고 깨끗이 인정하고 고치겠다고 하는, 정말로 객관적이고 공정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조차 완전한 해결책은 되지 못합니다. 상대 역시 문제에 원인을 제공한 일이 많으니까요. 이것이 바로 잘잘못과 별개의 개념으로서의 원인 제공입니다.

위의 예로 돌아가 보면, P의 RP가 문제의 큰 부분을 차지할 수도 있지만 M 역시 원인을 제공했을 수 있습니다. 그건 둘 다 잘못이라거나 서로 사과하라거나 하는 시시비비 얘기가 아니라 앞으로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는 상호 행동 교정의 문제이죠.

예를 들어 주인공 P’가 좀 비사교적인 성격이라도 일행과 융화할 수 있도록 M이 좀 더 적극적으로 계기를 제공할 수도 있었는데 P가 자기 인물의 성격을 희생해 가면서 스스로 융화하기를 기대하는 것 역시 일행이 합치지 못하는 문제에 원인이 될 수 있었겠죠. 물론 P’의 성격이 비사교적이라 일행을 무시할 것이라는 P의 태도 역시 원인 제공을 했겠고요.

둘  다 원인 제공을 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M이 P가 잘못이라고 몰아붙인다고 하는 것은 따라서 크게 두 가지 부작용이 있습니다. 첫 번째, P가 심리적 방어성이 발동해서 행동을 교정하기는 더 어려워집니다. 둘째, P의 탓이 크고 P가 이를 인정해도 M의 원인 제공은 그냥 지나가므로 같은 문제가 재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잘잘못을 떠나 문제의 원인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문제에 기여한 행동을 교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플레이 중, 그리고 어떤 사회적 상황에서든 문제가 발생할 때면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게 마련이고, 그 관점 차이 자체가 갈등을 유발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관점을 알 수 있을 뿐, 상대의 관점은 알기 어렵습니다. 상대의 관점을 모르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고요.

그래서 문제의 경위에 대한 상대방의 관점, 상대의 의도와 자신이 한 행동이 상대에게 유발한 결과, 그리고 문제의 원인에 기여한 점을 서로 이야기해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확신을 상대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상대가 아는 정보를 수집하려는 학습하는 대화가 문제를 해결하는 생산적 대화의 기본이 됩니다.

놀이와 대화: 플레이 중 문제에 대응하기

이전에 RPG를 곤란하게 하는 행동유형 7가지를 나름 적은 일이 있었습니다만, 이전에 성일님 지적도 있었듯 ‘나 저 사람 싫어’로 끝나면 발전이 없죠. 물론 RPG 팀 구성하기와 같은 글을 통해 서로 스타일이 맞고 안 맞는 사람을 가려내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으니 방법론이 아예 없다고 보지는 않습니다만, 문제 행동유형 글 자체는 건설적인 얘기라기보다는 거의 살풀이에 가깝기는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집 방식만으로는 플레이 중 생기는 모든 문제에 대응할 수 없기도 합니다. 모집을 신중하게 한다 해도 모집 단계에는 알 수 없었던 문제가 나중에 드러날 수도 있으니까요. 플레이 중 참여자 사정이 달라졌을 수도 있고, 참여자 사이에 악감정이 생길 수도 있고, 성격이 잘 안 맞을 수도 있고요.

플레이 중 문제가 생길 때는 여러 가지 대안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잘 얘기해서 해결한다든지, 플레이를 끝낸다든지, 문제가 되는 참여자를 축출한다든지. 그러나 종종 얘기를 꺼내기 자체가 어려운 일이 많고, 그래서 문제를 회피한 결과 감정은 상하고 플레이는 재미없어지는 일도 상당히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저도 그런 일이 많았고요.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한 방법론으로 플레이 중 생기는 민감한 문제에 대응하고,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관계를 손상하지 않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대화법을 몇 부로 나누어서 소개해볼까 합니다. 내용은 더글래스 스톤 (Douglas Stone) 외 2인 著 ‘어려운 대화 (Difficult Conversations)’를 기반으로 합니다. RPG에 적용하고 있지만 방법론 자체는 어떤 대화에도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하죠.

글의 구성은 다음과 같이 할 예정입니다. 제가 쓴 이전 요약본을 참조한 것이라 책을 참조하면서 또 달라질 수 있겠지만요.

  1. 세 가지 대화
    1.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1. 서로 다른 관점
      2. 의도와 결과의 차이
      3. 원인 제공
    2. 감정에 대한 대화
    3. 정체성 대화
  2. 대화를 시작하기
    1. 제3의 관점에서 시작하라
    2. 문제 해결을 향한 공동 접근
  3. 대화와 경청
    1. 정보수집을 위한 질문
    2. 바꿔 말해서 명확화하기
    3. 상대의 감정 인정하기
    4. 진의를 이야기하기
    5. 주도적 문제 해결
  4. 결론과 정리

RPG란 결국은 인간관계인 만큼 인간관계와 대화의 기술을 활용하고 발전시키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무슨 만병통치약은 아니고 이런 것을 고려하면 한결 부드러워진다는 얘기 정도지만요. 놀이 중 발생하는 문제가 왜 건드리기 어려운 소재인지, 그리고 어려운 대화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대화로 바꿔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볼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놀이와 교섭: ‘무엇’보다는 ‘왜?’

※ 주: Roger Fisher의 교섭 지침서 Getting to Yes와 수업 중 배우고 교섭 훈련받은 내용 등을 놀이라는 상황에 맞춰 정리한 것입니다.

RPG 등 여럿이서 하며 규칙 외의 영역이 꽤 되는 놀이를 하다 보면 의견 차이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런 때면 상대가 ‘무엇’을 요구하는지만 다루면서 의견 차이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거나 (“아니 외교 중심 캠페인이랬는데 왜 전투귀신이야!”), 충돌하는 요구사항 사이에 타협하기도 합니다(“전투에 투자한 것 중에서 반만 사회 기능으로 돌리자, 응?”). 때로는 상대의 기분이나 팀내 화합을 먼저 고려하는 의미에서 양보하기도 하고 (“알았어, 인정하지.”), 때로는 진행자이니까, 혹은 지난번에는 내가 양보했으니까 등의 이유로 의견을 관철하기도 하지요(“처음부터 그랬지, 외교 중심 캠페인이라고!”).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하고 간단한 사실이라면, 요구사항 자체만을 다뤄서는 교섭 결과에 만족하기 어려우며 가치를 창출할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교섭에서 중점이 되어야 할 것은 ‘무엇을 원하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째서 원하는가‘입니다. 전자가 요구라면 후자는 그 요구의 이유가 되는 관심사이지요. 이 차이를 이해하면 바로 그 요구 말고도 같은 관심사를 충족할 수단을 모색할 수 있고, 그런 수단 중에는 양자 모두의 관심사를 충족할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결관적으로 훨씬 만족스러운 합의사항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뜻이죠.

위의 외교 캠페인의 예로 돌아가보면, 사실 참가자 P가 진행자 G의 공지에도 불구하고 전투 중심 인물을 만든 것은 전에 어려운 전투 때문에 인물이 죽은 일이 있어서 어떤 전투에도 대응하려는 생각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위에서 예를 든 P나 G의 의견 완전 관철은 물론이고 타협책 역시 어느 쪽의 관심사에도 충분히 부응하지 못합니다. 전투능력이 반으로 줄면 P의 위기감은 늘어나기만 할 테고, G도 외교 능력이 부족한 P의 인물 때문에 캠페인에 이런저런 조정을 가해야 할 테니까요. 요구사항의 배후에 있는 관심사를 이해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의견 차이가 있을 때면 상대의 관심사뿐만 아니라 자신의 관심사 역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일이 의외로 많습니다. 예를 들어 위의 P는 전투를 잘하는 인물을 만들고 싶다고만 생각했지 굳이 외교 캠페인에 전투에만 치중한 인물을 만들어온 동기는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G도 외교 중심 캠페인이니까 주인공 일행은 외교관이어야 한다고만 생각하고, 그게 정말로 외교 캠페인을 재미있게 돌리는 방법인지는 생각하고 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교섭은 자신과 상대의 관심사를 이해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어떤 관심사가 있는지 알아야 그 관심사에 만족스럽게 부응하는 해결책을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놀이에 임하는 자신과 상대의 관심사를 알아내고, 맞수가 아닌 협력자 입장에서 해결책을 함께 찾아나갈 수 있다는 면에서 의견 차이는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기회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관심사를 알아내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경청입니다. 그 요구의 이유를 물어보고 귀기울이면서 정리해가는 것이지요. 단순히 자기가 다음에 할 말을 생각하면서 가만히 있는 것이 경청이 아니라, 정말로 상대가 하는 말을 이해하고 소화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말합니다. (짐작할 수 있겠지만 실생활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경청을 침묵으로 끝내지 않고 상대의 관심사를 추출하는 한 가지 중요한 기법으로는 능동적 경청이 있습니다. 먼저 상대가 말을 하면 듣고 인정합니다. (“그렇구나.”) 그 말의 내용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 말의 배후에 있는 관심사를 정리해서 자기 말로 다시 표현합니다. (“즉, 전처럼 전투가 위험해지면 왠만한 실력으로는 견디기 어려우니까 자기 방어 차원이라는 거?”) 그리고 자신이 정리한 관심사가 옳은지 확인합니다. (“맞나?”) 이들 단계는 함께 하거나 짧게 지나갈 수도 있지만 (예를 들어 다시 표현 단계를 질문형으로 하면 확인의 역할도 하죠), 각자 효용이 다르므로 개념적으로는 따로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경청은 이익을 파악하는 중요한 수단인 한편 감정적으로도 서로 가까워지는 중요한 방법이기도 하죠. 누군가 자기에게 귀기울여주고 정말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느낌은 그만큼 사람과 사람을 가깝게 하니까요.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놀이에 임하는 교섭의 특수성이라면 요구의 배후에 있는 관심사는 무의식적이거나 내밀한 것도 많다는 점이기에. 그래서 나오는 것이 관찰의 중요성입니다.

요구의 배후에 있는 상대의 관심사를 파악하는 두 번째 주요한 수단인 관찰은 좀 덜 점잖게 말하면 ‘알아서 눈치깔기’라고도 할 수 있고, 결국 사람에 대한 감인 만큼 설명하기도 좀 어렵습니다. 대화를 나눌 때 계속해서 등장하는 주제나 태도, 잘 만드는 인물 유형, 놀이 중에 열성적으로 반응하는 요소 등을 관심있게 보다 보면 이 사람이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무엇을 좋아할 것 같은지 느낌이 오게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G가 평소 보기에 P는 능력이 튀는 편을 선호하는 것 같다면, 그것 역시 P의 관심사라고 추정할 수 있겠지요.

이렇게 관심사를 파악하면 다양한 해결책을 함께 모색해볼 기반이 생깁니다. P가 원하는 것이 꼭 전투귀신이라기보다는 플레이 중 허무하게 죽지 않는 것이라면 그 욕구를 충족하면서 G의 관심사 역시 충족하는 방법은 많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경호원 조연을 둔다든지, 전투는 어느 정도 난이도가 적합할지 함께 생각해 본다든지, 전투 중 너무 쉽게 죽지 않게 규칙을 고친다든지.

마찬가지로 G가 원하는 것이 반드시 전원 외교 중심 인물로 구성한 일행이라기보다는 즐거운 외교 캠페인이라면 전투 중심 인물이 있는 것이 꼭 외교 캠페인의 재미를 해칠지 생각해보고, P의 인물은 경호원이라든지, 유명한 군인인데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위협용으로 데려온 인물이라든지 하는 다양한 방법을 생각할 수 있겠죠. P와 G가 각각 처음 내놓은 요구사항만을 다루었다면 생각하기 좀 더 어려웠을 해결책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이 글에서 얘기하고 있는 것은 이미 많은 팀에서 하고 있는 새삼스러운 얘기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연한 얘기라 해도 정리해 두면 의사소통이 잘 안 되고 있는 상황에도 적용할 수도 있고 비판을 통해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론이 된다는 점에서 이렇게 글로 적어보았습니다. 더 좋은 놀이와 더 많은 토론의 기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