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술권 구분과 마스터링

최적 경험 시리즈 쓰다가 옆으로 샌 또 다른 글입니다. (엉엉)

RPG에는 일반적으로 마스터와 플레이어가 있습니다. 흔히들 쓰는 말인데, 마스터 (진행자)라는 의미, 혹은 플레이어 (참가자)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들의 역할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이러한 역할 구분에는 어떤 결과가 따르는지, 그리고 이 역할 구분을 토대로 하여 진행이란 어떤 활동인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진행자와 참가자의 역할 구분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고전적 구분, 두 번째는 협의형, 세 번째는 분산형 구분입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가 가장 흔하고 이해하기 쉬우며, 세 번째는 일반적인 의미의 진행자가 없는 형태까지 포함해 가장 광범위하고 다양합니다만, 고전적인 형태와 대비하는 의미에서 하나의 범주로 다룹니다.

1. 고전적 진행

진행자는 세계이며, 주인공은 세계와 맞서 싸운다

진행자와 참가자의 가장 고전적인 역할 구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참가자는 각자 하나씩의 인물, 흔히 PC (주인공)의 행동과 생각에 대해 최종적인 결정권 혹은 서술권이 있습니다. 진행자는 그 주인공 일행 외의 모든 극적 요소, 즉 PC 외의 모든 인물 (NPC, 혹은 조연)과 주변 환경에 대해 서술권이 있습니다. 이 서술권이 맞닿는 곳에서 중재하는 것이 합의와 판정이지요.

이러한 고전적인 역할 구분은 이전에 서술권 구분의 영향에서 다루었듯 일행 대 외부세계라는 서사구조에 가장 적합합니다. 자신이 서술권이 없는 요소에 대해서는 정보나 영향력, 예측가능성이 제한적이므로 참가자는 일행 외적인 요소와 협동하기보다는 물리적, 사회적으로 대립하는 것이 쉽습니다. 이러한 정보와 영향력 제한은 의외성과 박진감을 증진시키므로 대립은 더욱 흥미로워지지요.

이러한 고전적인 역할 구분 속의 진행자는 시나리오 제작자이며, 참가자의 적수이자 도전자입니다. 서술권 구분이 완전할 수록, 그리고 그 효과인 예측불허성이 강할 수록 진행자는 혼자 시나리오에 대한 사항을 정하며, 참가자가 알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상황과 도전을 제시합니다. 참가자와 그들이 움직이는 주인공은 진행자가 제시하는 외적 도전과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부딪치며 스릴을 느끼고, 주어진 고난을 뛰어넘는 판단력과 규칙 활용력을 최대한 활용하며, 생각도 못한 상황에 맞닥뜨리는 의외성과 극적 재미를 느낍니다. 한 사람 머리에서 나오는 만큼 서술의 일관성이나 체계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고전적 진행의 장점입니다.

유의할 점은 진행자와 참가자가 제어하는 요소들이 서로 대립하는 내용에 적합하다 해도 진행자와 참가자가 곧 적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일정한 게임적, 극적 재미라는 목적을 위해 놀이 속에서는 서로 다른 역할을 맡자고 합의했을 뿐이지요. 물론 놀이 속
요소와 실제 참여하는 사람 사이의 심적 구분을 지키지 못하면 정말 사람끼리 관계가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만, 이건 관계가 나빠질 수
있는 수많은 원인 중 하나일 뿐입니다. 서로 정보와 서술권이 차단되어 적수를 맡는다 해도 그건 더
큰 재미를 위한 역할 구분인 것이지요.

이러한 창조적인 충돌의 장을 혼자 준비하는 고전적 진행자는 외로운 존재입니다. 의외성과 대립의 맛을 최대한 살리려고 한다면 참가자의 선제지식이나 시나리오 협의는 줄이는 것이 좋겠지요. 따라서 서술권과 정보의 구분이 철저할 수록 진행자는 준비할 것이 많아지며, 상대적으로 책임감도 느끼게 됩니다. 오늘은 재미있는 상황들을 제시했는지, 플레이에 문제가 있다면 그건 진행자 잘못은 아닌지 고민이 느는 것이 고전적 진행자입니다. 소스북이나 시나리오집 등이 이렇듯 외로운, 그리고 바쁜 진행자를 도와주는 준비자료이기도 합니다. 덧붙이자면 이들 시나리오에 참가할 사람은 읽지 말라는 경고가 흔히 붙어있는 것도 고전적 서술권 분배에서 의외성의 극대화를 위한 정보 차단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지요.

이렇게 판을 잘 짜야 하는 고전적 진행 형태에서 진행자의 덕목은 책임감, 치밀성, 임기응변, 성실성, 폭넓은 지식, 그리고 허를 찌르는 재치와 꾀일 것입니다. 참가자에게 제대로 된 도전을 제시하려면 규칙도 잘 파악하고 있어야겠고요. (사실 어떤 진행을 하든 미덕입니다만…) 어찌보면 웹툰 환상주사위에 나오는 TRPG부 부장이자 마스터 나현우가 그런 전형을 잘 나타내고 있지요. 고독하되 충분히 자기 책임을 수행할 수 있고, 속으로는 진행이 힘들더라도 겉으로는 내색 안하고 태연할 수 있는, 고전적 진행자는 어찌보면 영웅적 진행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환상주사위 1화 중 나현우

네이놈 고등학생이 머리가 그게 뭐냐!


2. 협의형 진행

대화와 소통으로 서술권의 벽을 넘다

위의 고전적, 혹은 ‘영웅적’ 진행자의 전형을 보고 진행자에 대한 부담이 지나치다고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진행자가 무슨 초인도 아니고,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는 고독한 영웅이라니 이게 무슨 액션 영화란 말입니까. 실제로 환상주사위에 대한 RPG인의 비판 중에는 마스터의 모습이 왜곡된 RPG관을 심어주기 십상이라는 것도 있었다고 기억합니다.

사실 저 역시 진행자가 고독한 영웅이나 신비한 현자가 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위에 얘기한 고전적 진행자의 모습 역시 순수한 형태로 현실에 존재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실존하는 형태라기보다는 일종의 이념형 (ideal type)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영웅적 진행자와 서술권의 철저한 구분이라는 그 이상은 현실 플레이에도 큰 규범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실제로는 완전히 순수한 형태의 고전적 진행자가 아니라 해도 그런 영웅적인, 혼자서 다 짊어질 수 있는 진행자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은 저도 느껴 보았고 주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현실 속의 진행자는 (이상이야 어떻든지 간에) 모든 준비와 책임을 혼자 짊어질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고, 그러한 플레이가 잘 되었을 때의 장점은 위에 고전적 진행 부분에서 이미 다루었습니다. 그러나 부담을 느낀다면, 혹은 참가자가 진행에 의견을 반영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협의해서 진행상의 사항을 정할 수 있지요.

이러한 협의의 내용은 워낙 다양해서, 사실 협의형 진행의 모습은 굉장히 여러 가지일 수 있습니다. 어찌보면 순수한 이념형 고전적 진행 외에는 전부라고 할 정도로 폭넓지요. 간간이 참가자가 이런 조연을 내보내달라거나, 이런 사건이 벌어지면 좋지 않겠느냐 하고 제안하는 정도일 수도 있고, 캠페인 준비 단계에서 시작해서 장면 하나하나까지 모두가 논의해 정하는 것이 보통인 플레이일 수도 있습니다.(주:후자는 X의에 의한 플레이라고도 합니다만, 이걸 글로 정리하신 분이 제가 쓰는 글에 언급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신 적이 있으므로 따로 다루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협의형 진행은 그보다 훨씬 넓은 개념이므로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만 언급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결국 협의형 역할구분, 그리고 그 속에서 하는 협의형 진행이란 논의와 의사소통을 통해 정한다는 대원칙을 둔 온갖 플레이의 총칭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협의는 각 팀이 ‘필요한 만큼‘ 하면 되니까 어디까지 어떻게 협력하는 게 좋다 하고 방법론적으로 정의하기도 좀 어렵겠죠. 협의로 정하는 부분이
적으면 고전적 진행에 더 가깝고, 협의의 형태나 결과가 정형화되면 아래 분산형 진행에 가까워질 수도 있는 등, 협의형 진행은 하나의
독자적인 형태라기보다는 정도 차이를 구획한 분류에 가깝습니다.

이렇듯 다양할 수 있는 협의형 역할구분을 굳이 정의하자면 서술권 구분은 위 고전적 구분과 원칙적으로 같되, 자신에게 서술권이 없는 영역에 대해 제안과 논의라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참가자는 주인공, 진행자는 그 외의 세계’라는 서술권의 차단을 협의라는 장치로 넘나드는 것이지요. 그 결과 진행자도 주인공의 행동에 대해 제안하고 논의할 수 있고, 참가자도 조연이나 주변 세계에 대해 얼마든지 토의할 수 있습니다.

협의형 진행의 장점이라면 고전적 진행에 비해 진행자의 부담을 경감한다는 점이 있겠지요. 고전적 진행자가 마치 안전망 없이 외줄타기를 하는 곡예사와 같은 부담감이 있다면, 협의형 진행 속의 진행자는 협의의 역할이 강할 수록 튼튼한 안전망을 갖추게 됩니다. 공동 창작과 공동 책임, 공동 부담인 만큼 혼자 부담감을 끌어안고 고민할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한편 공동 창작과 공동 부담이라는 것은 혜택도 공동으로 누린다는 뜻입니다. 즉, 진행에 참가자 의사를 반영하는 만큼 마음에 들지 않는 진행에 벙어리 냉가슴 앓을 필요가 없고, 본인의 로망을 좀 더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위에 이미 말했듯 협의형 진행은 고전적 진행과 완전히 별개의 유형이 아닌, 협의의 정도 차이로 구분한 것인 만큼 고전적 진행의 형태를 상당 부분 유지하면서도 협의를 첨가해 이러한 장점을 향유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협의는 역시 필요한 만큼 하는 거니까요.

또 한 가지 장점이라면, 고전형 역할분담에서 흔히 나타나는 개인 대 세계를 넘어 주인공이 외부 세계를 이용하기도 하고, 이끌기도 하는 등 한결 폭넓은 이야기를 하기 쉬워진다는 것입니다. 서술권과 정보의 차단을 넘나드는 협의라는 장치가 있는 만큼 참가자가 놀이 속 세계에 대해 대립 외의 행동을 취할 운신의 폭이 커지는 것이지요. 고전적 진행에서 가장 하기 쉬운 것이 소수의 협력자와 함께 외부의 위협에 맞서는 고독한 영웅 집단이라면, 협의형 진행에서는 세계나 조연에 대한 정보와 영향력이 훨씬 많은 만큼 지도자라든지 중간조정자 등의 역할을 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워집니다.

물론 이러한 장점의 대가로 위에 고전적 진행을 다루며 이야기한 긴장감이나 의외성이 약해지는 점은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협의를 얼마만큼, 어디까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만, 이미 얘기가 된 사건에 대한 반응은 아무래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튀어나오는 충격과는 다를 수밖에 없겠죠. 주인공이야 얼마든지 놀랄 수 있지만, 참가자가 느끼는 의외성은 어느 정도 줄어들 것입니다. 물론 자신의 로망을 반영하였다든가, 플레이의 내용에 대해 불안할 필요가 없다든가 하는 다른 장점은 있으며, 의외성 약화 자체도 서술의 일관성이나 개연성 확보에는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어느 쪽 진행 형태가 우월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목적과 취향에 비추어 어떤 장점과 단점을 고르느냐에 따라 최선의 선택이 달라질 뿐이지요.

플레이에 협의의 역할이 강할 수록 진행자는 고전적 진행자가 맡는 독자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시나리오 제작 위원회의 일원이라든지, 참가자의 의논 상대로서 또 하나의 참가자가 됩니다. 물론 서술권 분배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므로 주인공 외의 세계에 대한 결정권이 있는 것은 변함없지만, 협의의 역할이 크고 협의가 정형화되어 있을 수록 그 결정은 전체의 의사에 제약을 받습니다. 이러한 제약이 강해지면 결국 서술권 분배 변경에 이르고, 그러한 변경은 곧 논할 분산형 역할분배로 이어집니다. 결국 정도의 차이인 것이지요. (최하단 도면 참고)

협의형 진행자는 위와 고전형 진행자의 덕목도 갖추면 좋지만, 그 이상으로 풍부하고 정확한 의사소통 능력과 다양한 의견의 조율 능력이 중요할 것입니다. 참가자와 협의한 것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는 것도 중요하겠고, 감정적 안정성과 인간관계 관리 능력, 의논한 것을 정리해서 자료로 만드는 꼼꼼함과 기록 습관 등도 도움이 되겠지요. 결국은 워낙 다양한 형태의 플레이를 포괄하는 용어이기에 진행자의 능력도 일률적으로 논하기는 어렵지만, 결국 협의형 진행을 할 때 진행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소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3. 분산형 진행

백짓장도, 진행자 권한도 맞들면 낫다?

위에서 다루었듯 고전형 진행에서는 진행자가 주인공 일행 외에 세계의 모든 것에 대한 서술권이 있고, 협의형 진행도 원칙적으로 비슷하지만 협의를 통해 자기 서술권에 속하지 않은 요소에도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결국 참가자는 주인공, 진행자는 그 외의 나머지라는 전통적인 서술권 분배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협의형 진행에서는 비록 협의의 범위에 따라서는 서술권의 정도나 행사 방식을 수정하기는 하지만, 진행자는 세계, 참가자는 주인공이라는 자신의 서술 영역에 대한 재량은 다소간에 있습니다.

세 번째로 다룰 분산형 역할구분은 바로 그 전통적인 서술권 분배를 해체합니다. 참가자도 조연을 맡기도 하고, 진행자도 주인공 제작에 참여하고, 진행자가 여럿인 경우도 있고, 아예 진행자가 없기도 하지요. 일단 진행자는 세계, 참가자는 주인공이라는 전통적 구분을 벗어나면 정말 무수한 조합이 있는지라 일률적으로 얘기하기는 곤란합니다. 그래서 결국 서술권을 전통적인 형태와 다르게 분산했다, 내지는 진행자의 전통적인 역할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가졌다는 의미에서 분산형 역할구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위의 협의형 역할구분에서는 남의 서술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이 비정형적인 의사소통이라면, 분산형 진행은 서술권 분담을 규칙으로 확실히 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규칙이란 RPG 책에 나온 것일 수도 있고, 팀에서 함께 정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전통적인 서술권 분담 구조를 벗어나는 만큼 명시화하고 명문화를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폴라리스 (Polaris)에서는 ‘마음’ 참가자는 주인공, ‘달’ 참가자는 우호적인 조연, ‘후회’ 참가자는 적대적 조연과 배경세계 하는 식으로 나누고 있지요. 달과 후회가 전통적인 진행자 역할을 나눠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예로 달을 쏘다 (Shooting the Moon)에서는 진행자 없이 두 ‘구애자’와 한 명의 ‘님’으로 나누어서 하는 삼각관계 얘기인데, 자신의 주인공인 구애자나 님뿐 아니라 기타 조연에 대한 서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참가자 전원이 진행자의 역할을 나누어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협의로 타인의 서술권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규칙 자체로 서술권을 나누는 차이는 결국 부담과 확실성의 차이입니다. 협의형 역할구분 속의 참가자는 조연의 행동에 대해서 제안은 할 수 있지만, 일단 제안을 하는 것이 부담이 될 수 있고, 또 제안을 실제로 구현하는 것은 서술권자인 진행자이므로 제안을 받아들일지, 그리고 얼마나 받아들일지는 진행자의 몫입니다. 반면 스스로 서술권이 있으면 자신의 의도를 그대로 반영할 수 있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부담과 확실성의 차이 때문에, 서술권 분배를 다르게 하는 것은 협의와는 또 다르게 플레이의 모습을 변화시킵니다.

서술권을 분배하는 규칙은 협의 과정과 그 내용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똑같이 협의를 하더라도 위에 논했듯 일반적으로 자신이 서술권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발언권이 강하기 십상이지요. 또한, 협의를 구조화하는 규칙도 있습니다. ‘달을 쏘다’에서 인물을 공통으로 제작하는 것이나,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에서 참가자가 장면을 신청하는 규칙이 그 예입니다. 이렇게 동등한 발언권을 보장해서 만든 협의의 구조 속에서 그 발언권 행사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네 캐릭터랑 내 캐릭터가 아까 일로 말다툼하는 장면은 어때?” “내가 생각하는 장면은 네가 말한 장면 다음에 나오는 게 좋은 것 같으니까 네가 먼저 신청할래?” 등등)

달을 쏘다나 폴라리스처럼 전면적으로 서술권을 분산하는 규칙도 있지만, 서술권 분산은 고전적 역할분담 속에 부분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극점수 서술이 좋은 예이지요. 세기의 혼 (Spirit of the Century) 계열 규칙의 면모 발동이나 페이트 점수 소모가 좋은 예입니다. ‘항구마다 여자가 있다’ 면모를 발동해서 이 장면에서 옛 여자가 나타나는 서술을 한다거나, 페이트 점수를 1점 써서 옆에 무기가 있다고 서술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물론 협의로도 처리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위에 얘기한 부담과 확실성의 차이로 돌아오지요. 다르게 보면 극점수를 사용하는 것은 극점수를 소모한 사람의 발언력을 크게 강화한다고 보아 협의를 구조화하는 규칙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주:극점수 논의는 위시송군의 제안으로 추가했습니다. 마음에 안 드시면 위씨 탓[?])

분산형 역할분담의 장점은 협의형과 비슷한 데가 많습니다. 고전적 역할분담에서 진행자에게 속했던 서술권을 참가자에게 분배하므로 진행자 부담이 거의 없고, 아예 진행자 자체가 없는 형태도 있습니다. (달을 쏘다, 폴라리스, Grey Ranks 등) 이러한 역할분담 때문에 참가자의 욕구를 플레이에 직접 반영할 수 있으며, 세계와 주인공 서술권의 이분법이 없으므로 주인공 대 세계라는 이야기 원형보다 폭넓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도 비슷합니다. 주인공에 대한 정보와 서술권이 있는 사람이 세계에 대한 정보와 서술권도 있다면, 그 점을 활용해 주인공이 세계를 이용하는 서술도 할 수 있으니까요.

분산형 역할분담의 한 가지 추가적인 특징이라면 일반적으로 의외성을 강화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서술권과 협의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서술권의 영역에 있는 것은 서술권자가 독자적으로 끄집어낼 수 있고, 협의를 통해 정하는 부분은 어느 정도 미리 얘기가 되어 있어야 하지요. 분산형 역할분담 속에서는 진행자뿐 아니라 어느 참가자라도, 주인공뿐 아니라 세계에 대해서도 그런 의외의 서술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협의나 판정을 통해 조절할 수는 있지만,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 여러 방향에서 다양하게 나온다는 차이입니다. 물론 그만큼 서술의 일관성이나 체계성 유지는 어려워질 수도 있으므로 긴밀한 의사소통과 논의가 필요할 것입니다.(주:이 일관성과 체계성 논의는 제노시아님 지적에 추가한 것입니다. 글 봐달라고 완전 온 동네를 불러냈구만[..])

단점이라면 협의보다 규칙에 기댈 수록 특정 방향의 서술을 유도하는 제약성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예를 든 폴라리스는 비극으로 흐르도록 의도적으로 설계한 규칙이므로, 비극적인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싶지 않다면 부적합합니다. 달을 쏘다 역시 인물의 변화와 희생을 유도하는 만큼 극단적으로 흐르기 쉬운 규칙이지요. 따라서 규칙이 지향하는 유형의 이야기를 원한다면 좋지만, 범용성은 떨어집니다. 범용성과 자유도가 강한 분산형 서술분담 규칙은 안방극장 대모험처럼 규칙의 정형성이 덜하고, 대신 협의를 구조화하는 역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분산형 역할분담 속에서 진행자의 역할은 보통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르고, 아예 진행자가 없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전통적인 진행자의 권한을 다들 나눠가지고 있으므로 전원이 진행자라고도 할 수 있지요. 이러한 분산형 ‘진행자’의 미덕은 서술권을 분배하고 행사하는 규칙을 잘 알고, 그것을 기반으로 다른 참가자들과 의사소통을 활발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규칙으로 부여받은 서술권과 참여자끼리의 논의를 둘다 이용해 자신과 상대의 로망과 반응에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것이 재미있게 노는 방법입니다.

이상과 같은 세 가지 역할분담 유형은 이미 말했듯이 절대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정도 차이입니다. 그 관계를 도식으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상과 같이 RPG 속에서 서술권 분담의 차이와 그에 따른 진행자의 역할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론이라면 서술권 분담 유형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고, 또 RPG의 서사에도 영향을 미치므로 목적과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RPG라는 하나의 취미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그 속에는 진행자의 역할 (혹은 유무)만 해도 차이가 나고 또 같은 유형 속에도 굉장히 다양한 규칙과 플레이가 있습니다. 그런 다양성 때문에 결과적으로 RPG는 더욱 풍요로운 취미가 아닐까요?

9 thoughts on “서술권 구분과 마스터링

    1. 로키

      별로 안 좋아하실 텐데(..) 그쪽 분들에게는 이미 너무 폐를 많이 끼친 것 같아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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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케찰코아틀

    저는 확실히 고전적인 마스터에 속하는군요. 경험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협의에 의한 게임의 진행은 뭔가 소꿉장난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긴장감이 없더라구요. 이야기를 꾸며나가는 것보다는 제시된 장애물을 극복해서 목표를 달성하는 마초스러운 방식을 더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모든 플레이어가 과연 참여를 원하는가?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게임의 재미를 위해서는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좋지만, 제가 경험했던 플레이어의 상당수는 이야기에 참여한다는 면에서는 좀 소극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룰의 선택에 따른 부분이나 플레이어 자신의 숙련도에 의한 문제도 있겠지만 대체로 DM이 규칙이나 하우스 룰을 통해서 개입의 여지를 만들어도 활용하는데 그다지 의욕이 없는 경우가 많았지요. 자료가 부족한 편견에 가깝겠지만 남자 분들의 경우 이야기의 꾸밈이나 캐릭터의 갈등 관계 등에는 큰 관심이 없는 인원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분산형의 경우에는 제가 이런 쪽으로는 게임을 전혀 해본적이 없는 것 같군요. 떠오르는 건 원스 어폰 어 타임 정도의 보드게임 뿐이네요. 그렇지만 참여자의 역량에 따라 게임의 질이 크게 달라질 것 같군요. 단지 룰에 대한 숙련 뿐 아니라, 플레이어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의 정도에 따라서도 크게 영향을 받을 것 같아요. 로키님의 리플레이들을 재미있게 읽었지만 실제로 내가 저렇게 게임을 진행할 수 있을까하고 생각해보면 그렇게는 못할 거 같다고 생각되었던 것처럼, 누구나 좋은 게임을 할 있는 놀이방식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아직 낯선 방식에 대한 단순한 두려움일수도 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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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키

      제시한 장애물을 극복해서 목표를 달성하는 것도 얼마든지 재미있는 플레이 방식이지요. 이런 취향에는 이런 방식이 잘 어울린다는 명제는 (말씀하신 예로, 제시된 장애물을 극복해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좋아하는 취향에는 고전형 플레이가 어울린다) 이론 정립이나 토론의 대상이 되지만, 어떤 방식이 객관적으로 낫다 (예를 들어, 분산형 플레이는 고전형보다 우월하다)는 건 이론도 토론도 뭐도 아닌 억지일 뿐이지요. 말씀대로 모든 사람이 폭넓은 참여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한 사람에게도 여러 가지 취향이 있죠. 그런 수많은 취향과 욕구를 채워줄 다양한 규칙과 플레이 방식이 있어서 RPG는 더욱 멋진 취미인 것 같습니다.^^

      참가자 실력 하시니까 마침 생각나는 게, 제가 어저께 바로 그런 분산형 규칙인 안방극장 대모험 플레이를 했는데 참가자 분들은 RPG 초보셨어요. 그런데 후기에도 썼듯 굉장히 재미있는 플레이가 나와서 케찰님이 하신 말씀과 겹치네요. RPG처럼 사람이 중심이 되는 놀이에는 실력과 상관없이 누구나 재밌는 룰이란 없다고 생각해요. 모든 참여자가 성장해가고 실력을 키워가야 재밌는 것이 RPG의 어려움이자 묘미이죠. 어제 플레이도 참가자분들이 방송의 구성이라든지 장르 문학에 조예가 깊으셨고, 극적 전개와 완급 감각이 뛰어나셨던 그 실력 때문에 어제 플레이는 재밌었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분산형 플레이는 실력이 필요하다는 케찰님 말씀에는 공감합니다. 어떤 플레이든 마찬가지이지만, 참가자 각각이 기존 고전형보다 권한이 큰 분산형 플레이는 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동시에, 좋은 규칙과 좋은 놀이 방식은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던 창의성을 끌어내며, 참여자 사이에 상승작용을 일으켜 강점을 빛내주고 결점을 보완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즉, 혼자 하는 것이 아니므로 부담을 덜 느껴도 되지 않을까요? 나한테 생각이 안 떠오르면 옆사람에게 아이디어가 있을 지도 모르고, 막히면 누군가가 돌아갈 기발한 방법을 제시하기도 하니까요. 길게 썼지만 결국 결론이라면 “실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에게는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이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능력을 끌어내는 규칙과 방법론에 관심이 큰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어쩌면 이 블로그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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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실버

    단어 선택이 그럴 수 밖엔 없는걸 알고 있지만, 요즘 종종 고전적<->협의형의 구도를 자주 보게 되는것 같아서 ‘협의형’플레이라는 단어 자체가 달갑지 않을 정도입니다. 고전적 플레이는 협의를 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주고,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도 종종 보이더군요. 애초에 협의가 없는 플레이가 가능이나 한지 잘 모르겠지만요.
    딴말이 좀 길었습니다. 위 구도 대로라면 분산형인 플레이에 관심이 많았고, 그런 쪽으로 유도를 해보려고 한적이 있었는데 잘 안되더라구요. 시건방진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제가 느낀건, 마스터의 능력 보다는 플레이어 개개인의 능력과 참여 유무가 플레이 방식에 영향을 많이 미친다는거였습니다. 진행자를 하기 싫은 사람도 진행자를 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많았으니까요.
    이것 저것 시도나 고민을 해봤는데, 결국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마스터링 방식은 요즘 비디오 게임계에 큰 획을 긋고 있는 오픈월드형 RPG식의 진행이 되더군요. 고전적 마스터링을 하는 사람들은 RPG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해서 현대에 거의 완성을 보고 있는 오픈월드 게임들을 한번쯤 즐겨 보는것도 많은 도움이 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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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키

      저도 사실 비슷한 생각입니다. 그래서 고전적 진행을 현실적인 형태라기보다는 이념형이라고 한 것이기도 하고요. 다만 현실적이지는 않다고 해도 ‘협의 없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내놓는 마스터가 되어야 한다’는 규범성 내지 강박은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또 한편으로는 이 글의 분류 기준은 서술권 집중과 분산이니 협의형이 현실적으로 집중형과 분산형 사이의 중간 형태라는 생각입니다.

      분산형 플레이는 확실히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죠. 전통적으로 진행자의 것이었던 권한을 참가자가 나누어 가질 용의가 있는지, 참가자가 자신의 결정권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는지, 그리고 물론 참가자에게 참여 의욕과 실력이 있는지 등을 고려해야 하죠.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분산형 플레이를 할 때면 진행자와 참가자의 권한을 명문화한 규칙, 소위 인디 RPG를 선호합니다. 누구에게 이만큼의 권한이 있다고 못박아놓지 않은 상태에서는 제가 참가자인 입장에서도 마음놓고 ‘진행자 영역’을 ‘침범’하기는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책에 있는 규칙이든 참여자끼리의 합의이든, 권한은 명문으로 분배해야 하는 것 같아요. 자신이 할 일이라고 생각해야 참여 욕구뿐만 아니라 주인 의식과 책임 의식도 생기거든요. 내가 안하면 마스터가 하겠지, 내지는 내가 하면 마스터 마음에 안 들 거야 하고 생각하는 환경에서는 분산형 플레이를 하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해요. 내가 안하면 아무도 안한다, 그리고 내가 해도 된다고 생각해야 움직이게 되죠.

      오픈월드도 꽤 재밌는 생각이네요. 이번에 시작하려는 캠페인에도 오픈월드 개념을 일부 도입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RPG와 CRPG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건 참 재밌는 현상인 것 같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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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Xenosia

    실버/ 그렇죠. 합의 없는 플레이가 어딨겠습니까[..]
    케찰코아틀/ 저도 긴박감이 없는 합의형 플레이는 영 취향에 안맞더군요.
    다 짜고 하면 의외성이 떨어지는데 무슨 재미로 하냐는 플레이어도 있었고 말이죠.

    그 플레이는 분명 플레이 전에 당일에 신청하고 싶은 장면을,
    또는 플레이 후에 다음 플레이 때 신청하고 싶은 장면을
    팀원들의 합의에 의해서 선택한 플레이였습니다.
    요즘 세션에서 자주 이야기 되는 그런 형식의 초기단계였죠.

    합의 자체는 필수불가결입니만,
    언제 합의할 것인가, 어떻게 합의할 것인가와 같은 요소를
    획일화된 방법론을 대세로 밀면서 제한하는 것처럼
    보이는게 좀 씁쓸하더군요.
    적어도 세션에서는 아무도 그에 대한 지적을 안하는 것 같았거든요.

    외부인[이라 쓰고 로키님이라 읽음]의 지적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가지는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만
    뭐 이건 제 기분탓일 수도 있겠죠.

    덧. RPG 동네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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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Xenosia

    조금만 더 이야기해보자면,
    플레이하기 전에 장면을 합의하고
    캐릭터의 배경을 설정하면서 세계관과 융화시키고
    플레이 끝나면 ‘다음에 뭘 할까?’ 이야기하고…

    이게 정말로 고전형/분산형/협의형과 같은 진행방식의 구분과
    반드시 묶어서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인지를 먼저 고려해봤으면 합니다.

    객체지향적으로 한 번 생각해봅시다. (…?)

    사과라는 객체는 과일이라는 좀더 넓고 추상적인 개념의 객체에 포함됩니다.
    좀 간단하게 줄이자면 부모자식관계죠.
    먹을 것이라는 관점에서 사과와 귤이라는 두 객체를 놓고 봅시다.
    둘은 과일이라는 같은 부모객체를 가졌지만 서로 다른 형태입니다.
    둘은 부모객체를 통해서 공통점을 가지지만, 그 외에는 별다른 연관성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운송이라는 주제에서, 기차라는 객체와 레일이라는 객체의 관계는 어떨까요?
    기차는 운송수단이라는 부모 객체에 포함되지만, 레일은 아닙니다.
    레일은 기차가 움직이기 위해서 필요한,
    기차와 레일을 합칠 수 있는 객체 ‘철도’의 부분 요소입니다.
    레일은 철도를 연상시키지만, 그렇다고 그 자신이 기차와 같은 운송수단은 아닙니다.
    하지만 레일은 철도에 포함된 부분요소로서 기차가 움직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전기기로서 TV와 리모컨의 관계를 봅시다.
    TV는 방송을 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TV를 보는데 리모컨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TV도 리모컨도 가전기기라는 부모객체를 가질 수 있지만 리모컨은 TV의 필수적인 요소는 아닙니다.
    TV를 좀 더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한, TV의 내부구조와는 별도로
    외부로 노출된 인터페이스일 뿐이고 TV 또한 리모컨으로부터 독립적입니다.

    ..여기까지 지루한 이야기 보신다고 수고하셨습니다[..]
    겁스, D20, 페이트와 같은 룰은 사과나 귤과 같은 것입니다.
    무슨 규칙을 사용하든지 그건 팀의 기호에 관련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합의라는 것은 RPG를 구성하는 추상적인 객체중에 하나입니다.
    큰 의미에서의 합의는 레일처럼 뺄래야 뺄 수 없는 RPG의 구성요소입니다.

    하지만 도식화되고 ‘합의에 의한 플레이’를 규정하는 것은
    리모컨과 같은 인터페이스를 만드는 것입니다.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편의성을 위해서 만드는것이죠.

    합의에 의한 플레이와 같은 방법론 없이도, 오래된 팀이 아니더라도,
    각자의 팀들은 이미 그것과 유사한 다른 방법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전에 실버님이 모유저분의 댓글에 화를 내셨던 것 처럼,
    모두가 합의에 의한 플레이가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런 의도도 없다고 생각하고요.

    전 현재도 진행중인 합의에 의한 플레이의 정리가 여러 유저들을 위해서
    방법론을 정립해 널리 알리자는 좋은 취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처럼 오로지 합의에 의한 플레이가 대세인 것마냥 이야기 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는데는 리모컨과 TV의 관계를 기차와 레일의 관계인듯 이야기하는
    풍조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비판을 암묵적으로 터부시하는 듯해 보이는 분위기는
    그 주제가 뭐가 되든 바람직하지는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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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키

      생각해볼 만한 점이긴 한데, 서술권의 집중과 분산을 다룬 글이니만큼 고전형과 분산형 사이에 현실적인 중간 형태로 협의형을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협의와 서술권은 다른 범주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놀이 속의 요소 (인물, 배경 등)에 영향을 미친다는 측면에서는 유사한 기능을 한다고 보거든요. 합의에 의한 플레이는 물론 많은 방법론 중 하나이죠. 전혀 절대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데는 저도 동의하고, 그걸 정립한 분조차도 남들에게 강요할 생각은 아니실 거에요. 특정 방법론을 사용하든 하지 않든, 플레이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발전해가는 데 의의가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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