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닉스 7화 (1): 편지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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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힐라스 1기

7화: 8일의 여정

(1) 편지 I

사랑하는 셀라나에ㄱ

글씨를 차마 다 쓰지도 못하고 아스타틴은 종이를 구겨 구석에 내던져버린다. 혼자 쓰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울렁거리는데, 몇 번이나 보았다고 연인처럼 편지를 쓴다는 말인가. 셀라나 혼자 보는 편지도 아닌데 절대 그럴 수는 없다. 깃털펜을
씹다가 그는 다시 종이를 앞에 끌어놓는다.

존경하는 셀ㄹ

쓰다 말고 그는 종이를 북 찢어버린다. 지휘부에 쓰는 편지도 아니고 존경하는은 무슨. 물론 존경하기는 하지만 (여윈 얼굴에
수줍고 부드럽던 미소, 바닷바람에 날리던 머리칼 사이로 그를 올려다보던 녹색 눈빛) 이건 너무 형식적이다. 그렇게 편지를 쓰다가는
정말 평생 점잔빼는 사이로 남을지도 모른다. 그는 다시 종이를 꺼내고 생각에 잠겼다가, 살짝 떨리는 펜끝을 백지에 가져간다.

셀라나에게,

잘 지내고 있나요? 소식 듣고 무척 기뻤습니다. 대필과 대서해주시는 에나릴 선생님께도 이 지면을 빌어 깊이 감사드립니다. 서툰
글이지만 셀라나의 글공부에도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헤루모르 일에 대해 걱정해 주어서 고마워요, 셀라나. 그 소식이 빨리 퍼지기는 퍼졌군요. 저는 괜찮습니다. 다른 임무가 있어 그
일의 시작부터 지켜보지는 못했고, 끝마무리를 할 때 잠깐 있었던 정도입니다. 많이 궁금해하는 것 같으니 제가 보고 겪은 것과
전해들은 것을 보안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전해드릴게요.

약 열흘 전, 우리 알다론은 분산해서 임무를 떠나게 되었죠. 크세노바씨와 저는 자세히는 얘기할 수 없지만 다른 분 몇몇과 별개의
임무를 맡았고, 나머지 분들은 정찰 임무를 받아 떠났습니다. 그게 남부 난 엘모스 산맥, 헤루모르가 있는 곳이었어요. (에나릴
선생님, 이 대목은 셀라나에게 지도를 보여주며 설명해 주시는 것은 어떨까요?)

“그럼 무사히 또 뵙지요.”

크세노바는 손을 흔들어 보였다. 옆에서 아스타틴은 가볍게 목례를 했다.

“몸조심하게.”

지카리는 비늘이 반짝이는 손을 들었다. 까마득히 위로는 로스로리엘을 굽어보는 알데아란 나무들의 가지 사이로 햇살이 쏟아졌다.
크세노바와 아스타틴은 기다리던 마법사와 전사들과 합류했다. 그들이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아라가 말했다.

“쿠라 그 계집을 놓치다니, 노스탤지아도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사령 (死靈) 군대가 습격을 했다니, 중과부적이었겠지.”

지카리는 크세노바와 아스타틴이 나무 사이의 길을 꺾어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랜돌프는 코웃음을 쳤다.

“뭐, 해독제가 늦을 때부터 그놈들 일처리 수준은 알았다.”

그는 양옆으로 목을 우둑우둑 꺾었다.

“멜코르 그놈을 상대로 그 정도도 버텨내지 못한다면 애당초 도제를 붙잡아놓을 힘도 없었던 거지.”

“쿠라를 굳이 되찾은 것은…”

아라는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무릎을 꿇고 아사나스의 안장끈을 점검했다.

“노스탤지아의 작전 때문에 도제가 부족해졌던 것일까요.”

“난 오히려 그 계집이 불쌍한데.”

랜돌프는 허리띠의 단검을 확인하며 히죽 웃었다.

“좋은 꼴은 못 볼 거다, 쫄딱 털리고서 그런 스승에게 돌아가면.”

“다시 사로잡아야겠지. 크세노바의 마법과 아스타틴의 안내 능력을 믿네.”

지카리는 돌아서서 크세노바와 아스타틴이 간 반대방향, 알데아란 나무 사이 동쪽으로 굽어지는 길에 발을 딛었다.

“그러면 우리도 우리 일을 하러 가보세.”

걸음을 옮기며 그는 자신의 덩치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방해나 안 되었으면 좋겠군.”

“당신은 일이 있을 때를 위해 대기해주면 돼.”

랜돌프는 지카리와 나란히 걸어가며 손마디를 꺾었다.

“일은 반드시 날 테니 말이다.”

“정찰 임무 아니었던가.”

툭 던지듯 말하며 아라는 아사나스를 타고 앞서서 지나갔다. 그런 그녀를 시선으로 따르다가 랜돌프는 걸음을 옮겼다.

“요새까지 4일… 독이 발작을 일으키기까지 지금부터 4일. 죽기까지 다시 12일.”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살아돌아올 수 있으면 살아돌아와보라는 거냐.”

씩 웃고 그는 걸음을 재촉했다.

“나는 노스탤지아 놈들이 정말 마음에 들어.”

소감

분명 원래 RPG 블로그였는데, 요즘은 소설 블로그가 된 듯한 기분이(..) 뭐 RPG 소설이니까요 (변명) 처음에는 리플레이를 다른 방식으로 써보자고 시작한 것이 어찌어찌하다보니 블로그와 생활을 점령해가는군요(..) 보시는 분이 얼마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블로그 트래픽의 대다수는 A5 제본이나 도쿠위키 얘기인 듯하더군요), 최소한 팀원끼리라도 보니까 하나 완결낸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써보렵니다. 괜찮은지 봐달라, 이 부분 설정이 어떻게 되느냐 부탁+질문공세에 시달리면서도 늘 칭찬과 격려, 충고 주시는 팀원분들께는 그저 죄송감사하지요.

얼마전에 다른 참가자분 하나가 플레이와 소설을 합치면 완전한 리플레이가 되는 것 같다고 하셨는데, 뒤집어 생각하면 플레이 쪽과 연관이 없는 분들에게 이게 얼마나 의미가 있고 알아먹을 만한 얘기인지도 요즘은 의문입니다. 글쓰는 책도 읽어보고 하니 생각없이 쓴 부분이 많은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요..ㅎㅎ

소설이 점점 세션에서 벗어나는 게 보이는 것이, 아스타틴의 편지 같은 건 당연히 RPG 세션에는 성립할 수도 없는 부분이고 또 세션에 없는 대사나 장면이 많아졌습니다. 편지를 이야기 액자로 선택한 건 프리포트편에 이어서 아스타틴/셀라나 맥을 이어가고 싶어서기도 했고, 또 로그를 생략하고 압축하면서 상황설명을 추가하고 싶었거든요. 아라와 지카리, 랜돌프의 대사도 로그에는 없는 것으로, 상황을 짧게 설명하고 정리하기 위해 쓴 것입니다. 이쯤 되면 이거 리플레이 소설 맞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결국 RPG와 소설은 다른 매체이고 또 로그가 소설의 기본 재료가 되는 것은 변하지 않으니 맞다고 우기렵니다. (음?)

편지 대목은 안힐라스의 체신 체계라든지 서신 보안규정 등에 대해 삭풍님과 얘기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스토리 진행상 주로 임무 중인 상황을 보게 되지만, 일상생활이 어떨지 생각하는 것도 재밌더군요. 좋아하는 여자한테 편지를 쓸 때라든지, 그럴 때도 어떤 말은 써도 되고 어떤 말은 안 되는지, 편지는 누가 어떻게 배달하는지 등등. 평범한 젊은 남자다운 아스타틴의 모습을 적어보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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