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과 석양의 도시 – 13화: 증오보다 강한 것

“증오보다 강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
– 술탄 메흐디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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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라이산드로스는 황제를 설득해 스틸리안느의 아들 아리스를 살리고, 황제와 대면시킨 후 집으로 데려와 지내게 합니다. 그는 스틸리안느가 일으킨 반란의 기억 때문에 거리에서 아리스에게 폭언을 하는 신민들을 막아서면서 루키아노플 시민으로서의 긍지를 지킬 것을 촉구합니다.

한편, 플로리앙은 나흐만에 건너가 수상한 외국 무장집단으로서 부하들과 함께 투옥당했다가 성벽에 대포로 구멍을 뚫고(..) 탈출하고, 나흐만 수도 샤이프로 향하다가 계획대로 술탄의 군대에 체포됩니다. 그것이 예니체리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군영에 갇혀있다가 바라던 대로 메흐디와 알현한 플로리앙은 루키아노플의 성벽을 무너뜨리겠다고 거침없이 장담하며 자신을 써달라고 합니다. 사람 목숨을 파리처럼 아는 메흐디 냉혹성도 이제 두려울 것이 아무것도 없는 플로리앙을 주눅들게 하지는 못하고, 메흐디는 그에게 초기형 대포를 만들어 시범을 보일 것을 허락합니다. 메흐디는 굳이 사란티움을 파멸시키려는 플로리앙의 눈빛에서 증오를 읽지만, 플로리앙은 증오라는 말은 오히려 부족하다고 합니다.

플로리앙: 저는 유혈을 원합니다. 사란티움에서 떨어지는 피로 타는 듯한 영혼의 갈증을 풀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는 제 자신의 존재를 포기할 용의도 있습니다.

비슷한 시간, 스틸리안느의 동생 세바스티아노스는 서방 국가들로부터 지원과 동맹 약속을 들고와서 외교 임무의 성공적인 수행을 알리지만, 누나의 반란과 죽음 때문에 비탄에 빠집니다. 며칠 후 그가 라이산드로스의 집에 찾아오자 라이산드로스 내외는 아리스를 데려갈까 불안해하지만, 세바스티아노스는 속세를 떠나 수도승이 되기로 했다며 오히려 아리스를 맡아달라고 부탁합니다. 에이레네는 남편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고, 부부는 죽어간 사람들과 이미 겪은 슬픔만큼 아리스와 태어날 아이와 함께 행복하자고 다짐합니다.

감상

이렇게 1부와 2부 본편 사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2부 서장이죠. 사란티움에 있었을 때는 주인공들 이야기가 진행은 따로 해도 어느 정도는 관련이 있었는데, 다른 나라에 있다 보니 공통 과거에서 기인할 뿐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군요. 그래서 제목도 한 가지로 짓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로그를 보다 보니 메흐디의 대사에서 이 두 가지 다른 이야기를 엮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메흐디의 말대로 증오와 복수심은 예측할 수 있고 믿을 만한 감정입니다. 그러나 13화에서 라이산드로스와 플로리앙은 증오보다 강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다양한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라이산드로스와 에이레네는 스틸리안느의 증오와 복수가 낳은 새로운 증오와 복수심보다 강한 것들을 발견했지요. 죄없는 어린 고아에게 부모에 대한 미움을 풀지 않는 긍지, 그리고 부모의 죄를 잊고 아이를 감싸안을 수 있는 사랑. 반면 플로리앙은 스틸리안느가 시작한 (어쩌면 그 이전 대에 그녀의 아버지와 황제로부터 시작한) 증오와 복수의 순환보다 한층 깊은 허무와 파괴욕을 발견했습니다. 긍지, 사랑, 우정, 허무, 절망, 고통은 모두 증오보다 강할 수 있는 것들이지요.

이번 화에서는 앞으로의 정세를 뒤바꿀 만한 큰 사건이 적어도 두 가지 있었지만 (플로리앙의 나흐만 망명, 서방 국가들의 동맹 결정), 이야기의 무게중심은 인물들의 깊은 감정과 관계에 있었습니다. 한편 그런 큰 사건들 역시 주요 인물들의 감정과 관계에서 나왔지요. 플로리앙의 나흐만 망명은 연인의 죽음에서, 세바스티아노스의 외교 임무 발탁은 동생을 지키려는 스틸리안느의 의지에서 나왔으니까요. 제가 인물이 동력이 되는 인물 중심적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인물의 내적 동기와 외적 사건 사이의 이런 유기적 연계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떠오르는 감동적인 장면들이라면 우선 라이산드로스와 아리스 사이의 대화들입니다. 고통을 넘어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건전발랄한 인물상은 마음의 계절 때도 에이레네를 통해 표현해보려고 했던 것이지만, 라이산드로스라는 인물에게서도 잘 드러나는군요. 저 두 사람이 왜 그렇게 잘 어울리는지 알만합니다. 황제에게도, 루키아노플 시민들에게도 일관적으로 용서와 자비를 주장하는 모습에서 아리스의 아버지를 지키지 못했다는 괴로움까지, 라이산드로스의 깊이와 사람됨 표현이 좋았습니다. 조금 냉소적으로 보면, 과연 니키아스의 친자일 가능성 내지 확신이 없어도 그렇게까지 했을까? 하는 생각도 재미있죠.

가장 강렬한 장면이라면 역시 메흐디와 플로리앙의 격돌이었겠죠. 극단의 정복욕과 파괴욕의 만남이었달까요. 일치하는 이해관계를 발견해가며 첨예하게 대립하는 대목은 정말 불꽃이 팍팍 튀겼습니다. 플로리앙이 최고의 주사위운을 연속적으로 터뜨리며 대활약한 장면이기도 했죠. 루키아노스와 플로리앙의 과거 고용관계를 피묻은 거울로 뒤집어보는 것 같은, 어두우면서도 인상깊은 대화였습니다. 어쩌면 지금 상태의 플로리앙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그리고 복수에 대한 플로리앙의 끝없은 갈증을 거리낌없이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메흐디라는 점에서 나름 궁합 최고의 주종관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외에 개인적으로는 조연들 표현이 재미있었습니다. 아리스 곁에 남은 하인들의 시시각각 변하는 반응들이라든지, 플로리앙 부하들의 좌충우돌하는 모습이라든지요. 브라기가 없으니 롱기누스 용병단 기강이나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 것도, 그 공백을 루카가 내키지 않지만 채우려 애쓰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끝에 세바스티아노스는 마치 그동안 못 나온 거 보상해달라고 떼쓰는 것처럼 대사가 폭주했고요. 아이같지 않은 아리스가 유일하게 평범한 소년일 수 있었던 대상인 세바스티아노스가 곁에 없는 것이 어떤 영향을 줄지도 궁금하네요. 그리고 복잡하게 얽히 비밀과 거짓말, 원한과 피의 악연도…

대체로 재미있게 (그리고 길게!) 한 화였고, 인물 표현이나 주변 묘사도 재미있었지만 좀 시간을 많이 잡아먹은 건 아닌가도 싶습니다. 매화 이렇게 오래 할 수 는 없는 노릇이니 적절히 시간관리를 해야겠지요. 다음 화에는 1~2부 사이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2부를 위한 기반을 다져놓으면 적합할 것 같습니다. 플로리앙의 망명과 서방 국가들의 동맹으로 사태는 더욱 급박하게 치달을 것 같네요.

참가하고 관전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다음주에도 즐거운 플레이를 기약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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