꺄악! 나도 플레이를 한다!

플레이를 하기로 했습니다! 어언 얼마만의 진행 (마스터링) 아닌 참가 (플레이)인지 막 눈물이 앞을 가리는군요(…) 규칙도, 배경세계도 재미있어 보이는 캠페인이어서 많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처럼 주로 진행만 하다가 참가를 하는 사람은 종종 엄청나게 의욕과 기대에 찹니다. 그리고 실제로 참가는 재미있고 부담도 안 되는 활동이고, 본업(?)인 진행에도 새로운 활력을 주지요. 참가자 관점을 잊고 있다가 실제로 참가를 해보면 참가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하면 재밌는지 훨씬 잘 와닿거든요.
그러나 동시에 그 엄청난 의욕과 기대 때문에 실수를 하기도 쉽습니다. 저도 그런 실수를 한 기억이 많이 있지요. 실제로 진행과 참가는 다른 점이 많아서 익숙해지는 과정에서 진행자의 버릇이 나올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점을 기억하면 오랜만에 하는 참가를 더욱 즐거운 경험으로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1. 혼자 너무 나서지 않는다
진행을 해본 참가자는 적극적으로 플레이하는 일이 많습니다. 능동성이 몸에 배어서겠죠. 이건 일반적으로 당연히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특히 오랜만에 플레이할 때는 플레이한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좋고 의욕이 넘쳐서 심하게 설치는 일이 있습니다. 이럴 때에는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플레이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활약할 기회를 주어야 하므로 혼자 다 도맡아하는 건 곤란하지요.
적극성이 지나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면 자신이 너무 설칠 때 신호를 달라고 다른 참여자들에게 미리 부탁해 놓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어떤 일에서든 지나친 것은 좋지 않으니까요. 물론 지나치지 않는 한도에서 참가자의 적극성을 잘 살리면 모두 함께 즐거울 것입니다. 그것은 진행을 해본 참가자의 큰 장점이기도 합니다.
2. 조연과 주연을 번갈아 한다
위 1번 과는 어쩌면 이율배반적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진행자는 종종 주역보다는 보조역을 맡는 데에 익숙합니다. 진행자로서 맡는 조연 (NPC)은 주인공에게 도전을 제시하고, 적대시하고, 협동하는 역할을 맡지 그 자신이 극적 중심이 되지는 않으니까요. 조연도 당연히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무게중심은 주인공 (PC)에게 쏠려 있습니다.
이렇듯 남을 돋보이게 하려고 움직이는 데에 익숙한 진행자가 참가를 할 때에는 역시 제버릇을 남 못 주고 계속 주인공을 조연처럼 돌리는 일이 있습니다. 내가 맡은 인물을 활약시키는 궁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 인물을 돋보이게 하는 방법을 궁리하는 것이지요.
물론 이렇게 적절히 조연을 맡아주는 참가자는 참 환영받는 존재입니다만, 그 정도가 지나친 나머지 주연을 맡을 줄을 모를 정도가 되면 문제입니다. 번갈아 주목을 받으면서 다른 참가자들에게서 부담도 덜어주고 더욱 입체적인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각 참가자의 역할이니까요. 따라서 참가자는 조연 못지않게 주역 또한 맡을 수 있어야 하고, 주목받는 것이 익숙하지 않더라도 이것이 참가자로서의 역할이라는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려움을 느끼면 필요에 따라 대화하고 조절해가며 익숙해져야겠지요.
3. 진행이 아닌 참가를 한다
진행을 많이 맡다가 참가를 할 때 제 경험상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진행자에게 지나치게 훈수를 두는 것입니다. 플레이한다고 좋아하다가도 막상 플레이에 들어가면 진행에 대한 감이 생생하고 재밌게 하고 싶은 의욕은 넘치다 보니 자꾸 진행상의 사항들이 눈에 들어오는 거죠. 그래서 여기서는 이야기를 이렇게 끌어가는 게 어떻겠느냐, 그 규칙은 그게 아닌 것 같다 하는 식으로 진행자에게 자꾸 참견을 하는 일도 있습니다. (제 얘기 절대 아니라능! 흑흑)
물론 진행자에 대한 충고가 나쁘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좋은 진행자라면 참가자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귀기울일 테니까요. 문제는 참가자가 진행을 아예 빼앗으려는 정도로 심하게 참견할 때입니다. 충고인지 참견인지는 때로 구분이 애매합니다만, 몇 가지 고려사항을 지키면 진행자를 곤란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진행 경험을 살린 좋은 제안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3.1. 흐름을 고려해서 얘기한다
참견이 아닌 충고를 하려면 맥락이 매우 중요합니다. 같은 얘기도 얘기하는 시점에 따라 성격이 많이 달라지게 마련이지요. 세션이나 장면 시작 전, 혹은 진행자도 막막해서 흐름이 늘어지는 시점에 하는 조언은 진행자에게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같은 얘기라도 한창 흐름이 급박한 상황에 얘기하면 진행자는 훨씬 힘이 듭니다. 이제 어느 정도 진행 내용에 대해 결정을 내리고 순간순간 진행해가기도 바쁜데 여기에 더해 참가자가 전혀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면 진행자로서는 정신이 하나도 없겠죠.
따라서 시작 전이나 흐름이 저조한 상태일 때 그야말로 돕는 말로서 조언을 하는 것은 좋지만, 진행자가 이미 내린 결정에 대해 중간에 토를 다는 것은 보통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겠습니다. 불만이 있다면 장면이나 세션이 끝난 후에 얘기하는 것이 좋겠지요.
3.2. 진행자가 말할 차례를 가로채지 않는다
제가 가끔 실수한 부분입니다만, 진행자가 질문에 답하거나 서술을 하려는데 끼어들듯 제안을 하는 것은 무례할 뿐만 아니라 진행자가 자기 기능을 다 못하게 하는 행동입니다. 뭔가 할 얘기가 있을 때는 진행자가 질문에 대한 답을 끝낸 후에 보충한다든지, 서술을 한 후에 명확하지 않은 부분을 질문한다든지 하는 것이 좋지, 진행자가 말을 할 때 끼어드는 것은 여러모로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입니다.
3.3. 명령이나 질책보다는 질문과 논의를 한다
마지막으로, 참견이 아닌 충고를 하려면 말하는 의도 자체가 중요합니다. ‘이렇게이렇게 해라’라거나 ‘왜 그렇게 했느냐’ 하는 식의 발언은 진행자를 당황하게 하기 쉽고, 참가자가 진행자 역할에 침범하는 결과가 되기 쉽습니다. 진행상 규칙 적용이나 서술, 조연 RP 등을 어떻게 할지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참가자가 아닌 진행자이므로 진행자에게 명령을 내리거나 진행상 결정에 대해 질책하는 것은 참가자와 진행자의 역할 구분을 불분명하게 합니다.
이것은 진행자가 참가자가 뭔가 우월한 위치에 있거나 상관이라서 참가자가 분수를 지켜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진행자와 참가자 역할을 구분하는 것은 그 구분에 기능적 의미가 있으니까 하는 것인데 (실제로 진행자와 참가자 구분이 없는 규칙도 꽤 있죠), 그 구분을 자의적으로 부정하면 역할구분에 따른 이점을 버리는 결과가 되므로 구분과 그에 따른 이점을 유지하자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찬가지로 진행자도 참가자 영역에 대해 명령을 내리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만, 글의 초점상 여기에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물론 침범이 아닌 제안과 조언은 매우 긍정적이지요.
진행자의 역할을 침범하지 않고 역할 수행을 도와주는 제안을 하려면 먼저 질문하고 다음 논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먼저 질문을 통해서 진행자의 의도나 어려움을 파악한 뒤 진행자와 참가자 자신의 의도를 실현할 수 있도록, 혹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함께 얘기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기 주인공의 배경이 전혀 나오지 않아서 플레이가 심심하다면 한 가지 방법은 ‘내가 열심히 쓴 배경은 왜이렇게 안 나와요? 다음번에는 좀 등장시켜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말은 진행자가 주인공 배경을 쉽게 등장시킬 수 있는데 등장시키지 않고 있다거나, 그러기를 잊었다거나, 적당한 때에 등장시킬 기회를 찾고 있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서 하는 말입니다. 사실 진행자가 어떤 의도가 있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는 물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지요.
그래서 진행자의 사정이나 관점을 알아보려면 먼저 질문을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요즘 들어 제 주인공 뒷배경은 전혀 등장 안한 것 같은데, 혹시 등장시킬 계획이 있으세요? 저 그거 열심히 썼는데…’ 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성실한 진행자라면 현재 진행 부분하고 방향성이 좀 달라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든지, 언제쯤 등장시킬 계획이라든지 하는 대답을 하겠지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문제를 해결하거나 소재를 더 재밌게 활용할 수 있을까 같이 얘기해보면 됩니다. 진행자에게 명령하거나 대립하지 않고, 진행자의 사정을 파악하고 같이 협력해서 좋은 플레이를 만들어가면 인간관계도 플레이도 한결 부드럽지요.
이상과 같이 오랫동안 진행만 했다가 참가를 할 때 고려할 만한 사항을 몇 가지 적어보았습니다. 적극성이 도를 넘지 않도록 하고, 주연도 적당히 맡으면서 진행자에게 지나치게 참견하지 않을 수 있다면 오랜만의 설레는 참가는 후회가 아닌 기쁨으로 남을 것입니다.

4 thoughts on “꺄악! 나도 플레이를 한다!

  1. Thrusday

    오 플레이하시는군요. 축하드려요. 저도 마스터가 주고, 현재 플레이 중인데, 위에서 언급하신 실수를 몇 개 어제 플레이에서 범한 것 같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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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키

      예, 이번 금요일부터 할 것 같아요. 저도 가끔 플레이할 때 실수를 많이 해서 이런 글까지 썼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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