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원으로서의 여성

Women Warriors, Part One: Choose Your Weapons Wisely

ARMA

중세~르네상스 정도의 비화기 전투와 여성에 대한 두가지 글의 내용을 간추려서 가상의 무기 교관이 쓴 책에서 발췌한 형식으로 옛날에 썼던 글입니다. 두번째 글은 ARMA 사이트에서 본 기억은 나는데 지금 찾으려니 못찾겠네요..;;

RPG나 판타지에서 전투와 남녀간의 신체적 차이는 일종의 터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규칙 자체적으로 남녀 차이를 강제하는 규칙은 99.9% 실패라고 봐도 됩니다. (펜드래건 정도가 예외일까요) 인물 제작의 다양성을 의도적으로 제한해서 좋을 건 하나도 없으니까요. 게다가 솔직히 기분 나쁘잖습니까..ㅋㅋ 스스로 원해서 힘 수치가 낮은 여자 캐릭터를 만든다면 몰라도 그게 강제된다는 건 재미없는 일이죠. 게다가 어차피 ‘평균’이란 처음부터 평균에서 벗어난 존재를 상정한 모험가에게는 별 적용이 없는 얘기니까요.

하지만 전투에 있어 남녀간의 신체적 차이는 반드시 여자에게 불리할 필요는 없으며, 또 전투 묘사나 무기 선택에 흥미로운 차이점을 더해줄 수 있는 경우도 있겠죠. ‘무지막지한 종단공격으로 상대의 머리통을 박살냅니다!’의 연속 대신 ‘단검으로 푹 찌르고 적이 반응하기 전에 춤추듯 물러납니다’라든지 ‘적의 움직임을 주의깊게 관찰하고 한 순간의 빈틈을 포착해 레이피어로 정확하게 찔러들어갑니다. Fleche!’ 등등 좀더 다양한 전투동작이 떠오를지도요. 그리고 정교한 전투 규칙이라면 어느정도 규칙에 반영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릅니다. 도움이 되는 내용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군사, 호신, 결투, 건강, 취미 등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여성들도 다양한 목적으로 무기를 배워 왔다. 그동안 많은 여성 제자를 양성해온 경험으로 여성에게, 특히 무기를 사용한 전투에 막 입문하는 여성에게 좋다고 생각되는 무기를 몇가지 추천하고자 한다.

우선 어째서 남성이 쓰는 모든 무기를 여성에게 권하지 않느냐를 알기 위해서는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차이를 알아야 한다. 여성이 남성보다 완력이 약하다는 것은 여기서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주지의 사실이나, 전투에 있어서 남녀의 차이는 완력 이상의 구조적인 것이며 개중에는 여성이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점도 많다. 물론 개인차는 언제나 존재한다는 점은 필자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간단히 요약해서 말하자면 남성과 여성은 첫째, 강한 근육이 다르며, 둘째, 무게중심과 균형이 다르며, 셋째, 반응속도와 반사신경의 작용이 다르며, 넷째, 원거리 무기를 사용할 때의 정확도가 다르며, 다섯째, 지구력과 고통을 견디는 능력이 다르다.

첫 번째 차이에 대해 말하자면 남성은 상체근육이 특히 강해서 등 근육의 힘, 팔 힘, 손가락과 손의 힘에서 여성과 비교되지 않는 강함을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검이나 철퇴 등 휘두르는 무기에서 엄청난 파괴력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윗등의 근육과 팔힘이 훨씬 약한 여성은 검으로 베는 위력이 강하지 못하며, 손가락의 쥐는 힘도 강하지 못해 자칫 놓칠 위험마저 있다. 베는 검이나 휘두르는 둔기를 대개의 여성에게 권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런 데에 있다.

반면에 여성은 하체근육에서 상대적 강점을 보이며, 아래에서 얘기할 균형감각과 결합해 이는 여성이 단검이나 레이피어 등 찌르기 무기와 창봉류를 잘 사용하는 요인이 된다. 남성보다 골반의 이동성이 좋다는 것 역시 하체 사용의 장점이다. 빠르고 정확한 발놀림과 골반을 이용한 움직임을 잘 익히는 것은 여성이 무예에서 성공하는 기반을 마련해 줄 것이다.

두 번째로, 여성은 남성보다 신체의 무게중심이 낮기 때문에 그만큼 균형도 잘 잡는다. 즉, 남성의 무게중심이 상체 중상부에 있는데 비해 여성의 무게중심은 상체 하부와 골반에 있어서 남성이 한번 비틀거리고 균형을 회복할 상황에서 여성은 바로 몸을 낮추어 정확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빠른 움직임 직후에도 비틀거리지 않고 바로 설 수 있는 여성의 이러한 신체구조가 단검이나 창봉류의 활용에 알마나 강점으로 작용하는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남성과 여성은 반사신경이 다르다. 남성은 외부의 자극에 대해 빠르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대신, 그 반응은 정확도가 떨어진다. 반면 여성은 반응 자체는 그만큼 빠르지 않지만 그 대신 더 정확하게 반응한다. 이 반사신경의 차이 역시 여성이 적과 거리를 두는 무기를 고를 이유가 된다.

넷째, 여성은 바로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반응의 명중도와 정확도가 좋으며, 손동작 또한 안정되어 있다. 완력과 손가락 힘, 상체힘의 차이 때문에 당기는 힘이 더 약한 활을 써야 하고, 따라서 사정거리는 남성에 비해 떨어지지만 그 대신 명중률은 더 좋을 수 있다.

다섯째, 여성은 남성보다 지구력과 견딜 수 있는 고통의 한도가 높다. 이러한 특성은 장기전에서도 견딜 수 있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이상과 같은 신체적 특징에 맞추어 여성에게 추천할만한 무기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군경력 및 호신의 목적으로 검을 배우는 경우 적어도 초기에는 검술의 기본 동작과 원리를 익히기 좋은 바스타드 소드를 추천하는 바이다. 무게중심이 약간 칼자루에 가깝게 잡혀있어서 날렵한 느낌이 드는 것, 그리고 검끝으로 갈수록 날이 얇아지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바스타드 소드는 찌르기 동작과 휘두르는 동작 양자에 적합하며, 양손검처럼 많은 양의 상체 힘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완력이 요구되는 커다란 동작보다는 날카롭고 재빠른 움직임에 적합한 검으로, 배우는 동작은 다른 검과 같지만 균형 면에서 여성들이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동작(크게 휘두르기보다는 타이밍을 정확히 해서 찌르기)에 맞는 점이 많다. 정확하고 빠른 발놀림과 함께, 골반을 트는 움직임에서 찌르는 힘을 내는데 중점을 두어 배울 것을 권한다.

둘째, 위와 같은 이유로 호신 및 결투의 목적에 레이피어도 추천할만 하다. 힘보다는 정확도와 기술이 요구되는 찌르기 무기라는 점에서 여성에게 적합할 뿐만 아니라 남성보다 여성이 더 쉽게 레이피어를 배우는 경우도 자주 관찰된 바 있다. 처음 배울 때는 특히 신체적 완력보다 기본 동작의 반복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기술 면에서 여성이 같은 수준의 남성보다 앞서나갈 수 있다. 다만 레이피어는 군용검이 아닌, 갑옷을 입지 않은 상황에 적합한 민간용 무기이므로 그 용도는 한정되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셋째, 창과 봉 역시 힘보다는 기술과 정확도를 요하기 때문에 군 입대나 호신이 목적인 여성에게 추천한다. 팔다리 길이와 몸집의 차이로 공격의 범위가 좁다는 신체적 약점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고, 길고 재빠른 무기이기 때문에 배운 기술을 보다 전술적으로 활용하기에 좋다. 또한 중거리에 적을 두고 있을때 여성의 작은 체격은 오히려 장점이 된다. 적에게 더 작은 표적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글레이브와 같이 날있는 창을 권하는데, 이러한 무기의 베는 힘은 상체 전체와 골반의 움직임에서 나오므로 균형과 하체힘이 좋은 여성에게 특히 적합하다. 양손으로 쓰는 무기의 특성상 방패를 사용할 수 없어서 한 번 균형을 잃으면 방어가 불가능하므로, 여성의 강점인 균형을 살리는 훈련을 할 것을 권한다.

찌르는 창은 어깨와 팔의 근육으로 그 움직임을 조절해야 하므로 여성에게 좀더 어려울 수 있다. 힘이 평균 이상이 아니라면 어려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넷째, 호신의 목적에 단검 역시 권하는 바이다. 단검의 기본 동작은 일명 ‘치고 빠지기’로, 적을 찌른 뒤 신속하게 적 무기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속도와 균형, 정확도가 요구되는 무기로, 이 역시 여성에게 권할만 하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단검을 던지기에 활용한다면 주의할 점은 남성과는 조금 다른 스타일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던지기에 최대의 힘을 싣기 위해서는 팔과 어깨근육보다도 복근에서 힘을 끌어와야 하며, 몸을 돌려서 골반의 트는 힘을 던지는 동작에 더해주어야 한다.

다섯째, 원거리 무기도 권할만 하다. 완력의 차이 때문에 당기는 힘이 덜 드는 활을 사용해야 할 것이고, 따라서 사정거리와 위력은 덜하겠지만 겨냥의 정확성은 이 점을 보완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다리에 입은 깊은 상처보다 배에 입은 얕은 상처가 더 위협적이게 마련이니.

남성 무예가에 비해 여성 무예가가 적은 현실에 대해 혹자는 여성의 힘이 약하기 때문에, 혹은 여성은 싸움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같은 이유를 들고는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오히려 그 이유는 여성의 강점을 살리지 못하는 훈련에 있는 것이 아닐까. 단언컨대 보통의 여성을 ‘남자와 똑같이’ 훈련시키려는 시도는 실패하거나 혹은 여성의 전투원으로서의 잠재력을 크게 저해할 것이다.

상체의 힘을 이용해 크게 휘두르는 무기를 여성에게 쥐어주고 똑같은 훈련을 시킨다고 생각해 보자. 남성의 타고난 신체적 강점을 잘 살린 훈련과 무기 때문에 그녀의 남자 동료들이 쑥쑥 성장하는 동안 여성은 자기 신체적 단점만을 강조하는 무기와 훈련에 고생하며 점점 뒤쳐질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휘둘러도 위력은 나오지 않고, 때로는 무기를 놓치기도 하며. 이를 악물고 훈련하면 어느정도는 나아지겠지만, 그녀 자신의 신체구조와 장점에 맞춘 훈련에 비해 그 효율은 얼마나 떨어지겠는가. 결국 그녀는 ‘그래, 여자는 힘이 약하니까.’ 하고 포기해 버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전사로서의 자신의 잠재력은 영영 살리지 못할 것이다. 이 얼마나 큰 손실인가.

남녀의, 그리고 개개인의 신체 특징을 고려한 훈련과 무기선택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최대한의 효율과 잠재력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이 글이 무기를 가르치고 배우는 뭇 사람의 인식 전환에 도움이 된다면 필자는 더 바랄 것이 없다.

마지막으로 무기를 배우고 싶은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당부는 반드시 도전해 볼 것, 그리고 끝없이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평가하며 자기에게 맞는 무기와 훈련을 요구하라는 것이다. 전설의 전사가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최고의 달인이 되지 못한다 해도 무예의 길에는 취미로서나, 직업으로서나, 호신으로서나 무수히 많은 효용이 존재한다. ‘힘이 약하니까’ 하는 암시에 자신을 가두지 말고 한번 도전해 보지 않겠는가. 보다 풍요로운 삶을 위하여.

5 thoughts on “전투원으로서의 여성

  1. Pingback: RNarsis의 다락방

  2. J H Lee

    재미있는 글이군요. 뭐 그런데 레이피어를 여성이 다루는 것은 쉽지 않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실제로 레이피어가 롱소드보다 가볍고 다루기 쉽습니다.

    하지만 레이피어를 정석대로 다루면 얘기가 틀려진다고 합니다. 레이피어의 가벼움은 레이피어의 하드코어한 기술들을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즉 무기 자체는 가볍지만 기술 자체는 결코 가볍지 않은게 레이피어라는군요.

    오히려 레이피어보단 롱소드가 더 적합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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