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0 나이로비 인물 제작, 시범 방영 1부

4월 5일, 일요일과 겹쳐서 슬픈 식목일에는 2100 나이로비 시리즈의 인물 시트를 만들고 시범 방영을 시작했습니다. 미리 만들어두었던 티엔 외에는 인물 고민 설정에 좀 시간이 걸렸고, 대신 논의 과정 중에 인물 배경이 확실히 잡힌 만큼 능력과 인맥은 거의 순식간에 나왔습니다. 셋의 화면 비중 배정을 조율하는 작업은 쉽지는 않았지만 결과는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인물을 만들 때도 그랬고, 이후 진행 과정에서도 그랬지만 제가 좀 너무 나섰던 것 같아서 죄송스럽습니다. 제 입장에서야 제안이었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특히 이 규칙이 익숙하지 못하는 분들에게는 압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얘기하면서도 이래도 괜찮은가 했는데, ‘참여’와 ‘참견’의 경계는 늘 명확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PD (진행자)에게 한 질문에 제가 대답하는 일도 많았던 등 진행자 자리를 넘보는(?) 언행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뭐랄까, 진행자와 참가자가 수직적인 관계는 아니지만 애당초 진행자와 참가자를 나누는 데에는 기능적 이유가 있는 만큼 역할 혼동이 일어나는 것은 조심해야겠지요.
또한, 저로서는 참가할 때마다 진행자하고 다투는 모습을 반복하게 되지 않을까 경계하고 있기도 합니다. 진행을 주로 해봐서 참가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참가를 하면 진행자가 되고 싶은 것처럼 행동하는 것도 참 이율배반적인 심리입니다. (단순히 ‘그쪽이 익숙해서’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시트를 다 만든 다음에는 시범 방영 (파일럿)을 시작했습니다. 우주 엘리베이터 건설 현장에서 일하려고  중장비 기사 프로비던스와 생물학자 틸리가 나이로비 역에 도착하면서 시작했지요. 역 앞은 우주 엘리베이터를 반대하는 시위대가 메우고 있고, 아이 하나가 프로비던스와 틸리에게 엘리베이터 반대 성명 서명을 부탁합니다. 프로비던스는 서명하지 않고 틸리는 서명을 하면서 두 사람의 입장 차이가 드러납니다.
한편 올림푸스 프로젝트 보안 AI인 티엔은 시위 현장에 내보낸 사이버쉘 등을 움직여 시위대를 해산하라는 경찰청장의 압력을 받습니다. 티엔은 역에 도착한 직원들이라도 데리러 평화적으로 길을 뚫으려고 하다가 시위대 일부가 돌을 던지면서 혼란에 직면합니다. 결국 경찰이 보안 장비를 투입하면서 사태는 폭력으로 치닫고, 프로비던스와 틸리 등은 역사 안쪽으로 몸을 피합니다.
시위대가 흩어지고 경찰이 강제 해산시키면서 역사 주변은 진정이 되고, 공사 현장으로 가는 모노레일이 직원들을 싣고 출발하려고 하지만 프로비던스는 아까 서명을 부탁했던 아이가 혼자 우는 모습을 보고 두고 갈 수 없다고 합니다. 주변에 경찰이 없어서 (정확히는 바빠서) 결국 티엔과 합의 하에 아이는 일단 현장으로 데려가기로 합니다.
현장에 도착하자 아이는 경비소에 데려가야 한다는 지시에 프로비던스는 애를 로봇과 둘 수 없다고 하고, 그와 틸리가 말다툼을 벌이던 중 틸리와 사이가 안 좋은 현장 소장인 아버지가 나타나 틸리의 편을 듭니다. 결국 프로비던스는 아이와 함께 경비소로 가고, 틸리와 아버지는 가시돋힌 말을 주고받습니다.
대체로 재미있게 했는데, 판정 서술권 문제에 대해서 좀 논의가 있었습니다.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에서는 판정 결과와 별개로 서술권이 넘어가므로 판정의 승자와 서술권자가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번 플레이에서 한 두 판정 다 승자와 서술권자가 달랐지요.
첫 장면 판정에서는 티엔이 이기면 시위대를 평화적으로 해산하고, 티엔이 지면 폭력 사태가 벌어진다고 정했는데, 티엔이 지기는 했지만 서술권은 저에게 돌아왔습니다. 두 번째 장면에서는 프로비던스가 성공하면 아이가 경비소로 가지 않아도 되고, 틸리가 성공하면 아이를 경비소로 보내는 것이었는데 프로비던스가 졌지만 서술권은 프로비던스를 맡으신 세인님께 돌아갔습니다.
이 점과 관련해 특히 두 번째 판정에서 서술권 행사에 맞추어 반응하기 어려웠다는, 즉 낄 데가 안 보였다는 벨제르가님의 지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토의해본 결과 판정의 결과나 서술이 주인공 (PC)들과 관여되어 있으면 PD가 원래대로 진행을 맡되 서술권자는 원하는 사건 진행을 요약해서 전달하고 (‘틸리 아버지가 나타나서 틸리 역성을 들어주었으면 좋겠어요’), 판정에 관한 서술 중에도 마음에 안 드는 부분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게 하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반면 첫 판정처럼 서술하는 참가자 외 참가자의 주인공이 직접 관여되어 있지 않은 판정에는 서술권자가 사실상 PD 역할을 맡아 판정 결과에 관한 서술을 해도 될 것 같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위의 예에서 시위는 어차피 PC들이 직접 관여하는 문제는 아니었고, 참가자가 서술하든 PD가 서술하든 외부적인 상황에 대해 반응한다는 점 (‘역사로 대피합니다’)은 같으니까요.
두 가지를 늘 칼같이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제 생각에는 서술권 행사는 위와 같은 기준을 두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재미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지 상황마다 똑같게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니까요. 반면 PD님은 일관성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이 부분은 다음번에 좀 더 얘기해볼 수 있겠지요.
익숙하지 못한 규칙, 아직 확립되지 않은 인물 성격 등 때문에 고생하시면서도 잘 플레이해주신 벨제님과 세인님께 감사드립니다. 인터넷이 끊어질 지경까지(?) 투혼을 발휘해 주신 PD에게도 그렇고요. 시범 방영은 말 그대로 시범이니까 설정이나 시트에 고칠 점이 보이면 시범 방영이 끝난 후 고칠 수도 있겠지요. 다음에도 재미있게 플레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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