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크 단편: 피는 물보다…

토요일 오후에는 승한군관 쇼크: (Shock: Social Science Fiction) 단편 플레이를 했습니다. 저번에 쇼크를 소개한 글에 오류가 좀 있어서 정정하자면, ‘쇼크’란 사회 변혁이라기보다는 우리 세계와 플레이 속의 세계 사이의 분명한 차이입니다. 그게 사회 변혁으로서 나타날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죠. 이 점을 정정하고 하니 공상과학적 요소를 한결 더 살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 세계에는 없는 특징에서 파생하는 극적 요소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었으니까요.

설정

쇼크는 ‘외계인이 있는 사회’로 했습니다. 쇼크의 담당자는 저. 승한군은 첫 접촉 같은 상황을 생각했지만 저는 외계인과 어울려 사는 세상이 더 재밌을 것 같아서 냉큼 쇼크 담당을 자청하고 외계인 관련 세부사항을 설정했지요. 플레이 배경은 바다 행성 아쿠아로, 바다생물인 원주민 델토이드를 인간들이 식민지배하는 곳입니다. 그에 따르는 문제들이 플레이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다룰 사안은 ‘식민지’와 ‘가족’이었고, ‘식민지’ 사안 담당자는 승한군이 맡았습니다. 저와 승한군은 둘다 ‘가족’ 사안에 속하는 인물을 만들었습니다. 승한군의 인물은 아쿠아 점령 작전의 영웅인 타오룽으로, 델토이드와 결혼한 딸과 화해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제 인물은 델토이드 엔지니어인 ‘솜씨좋은 손’으로 (델토이드 이름은 인간이 발음할 수 없으므로 인간 언어로 번역한 공식 이름을 사용한다는 설정), 인간 여자와의 결혼을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두 개의 능력 대립축은 포용과 편견, 감정과 이성으로 했습니다. 타오룽 장군은 편견과 이성이 높았고, 솜씨좋은 손은 감정과 이성이 높았습니다. 참가자가 둘밖에 없었으므로 승한군의 적수는 저, 제 적수는 승한군으로 했습니다. (나중에 얘기하겠지만 둘만 하려니 관객 주사위가 없는 게 좀 뼈아팠죠..;;) 자기 담당에 맞추어, 그러면서도 자유롭게 제안을 던지면서 쇼크와 사안에 세부 설정으로 뼈대를 붙이니 쉽게 하나의 세계를 설정할 수 있었습니다.

요약

딸 샤오링의 결혼 문제로 딸과 사이가 소원해진 타오룽 장군은 어느날 델토이드 엔지니어인 솜씨좋은 손의 접근을 받습니다. 샤오링과 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결혼을 한 솜씨좋은 손은 장군에게 두 사람을 인정하고 딸과 화해하라고 설득하지만, 장군은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타오룽은 변호사인 친구에게 딸을 도로 데려올 방법을 묻고, 친구는 딸의 정신능력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서 금치산 신청을 하고 아버지인 타오룽이 후견인이 되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타오룽은 이에 따라 소송을 걸지요. 샤오링은 찾아와서 소송을 취하하라고 역정을 내지만 역시 타오룽은 무시합니다.

이후 정신과 의사인 샤오링의 사촌오빠가 솜씨좋은 손과 샤오링의 집에 찾아와서 두 사람이 헤어지지 않으면 법정에서 샤오링이 정신이상이라고 증언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샤오링은 격분해서 오빠와 난투를 벌입니다. (무서운 언니다..ㅠㅠ) 솜씨좋은 손은 두 사람을 떼어놓지만, 사촌오빠의 법정 증언에 샤오링의 폭력적인 행동까지 더해서 샤오링은 아버지의 피후견인이 되는 대신 정신병원에 갇히게 됩니다.

타오룽은 정신병원에 가서 다시 딸과 말다툼을 벌인 후에 딸을 집으로 데려오는 데 성공하지만, 샤오링은 얼마 후에 집에서 탈출합니다. 그리고 솜씨좋은 손에게 찾아와 함께 떠나자고 하지만 그는 이곳에 남아서 아버지에게도, 모두에게도 인정받자고 하고, 그녀는 실망한 채 혼자 행성을 떠납니다.

솜씨좋은 손과 타오룽은 함께 샤오링을 찾아나서서 먼 행성에서 마침내 그녀를 찾고, 아버지는 무릎까지 꿇고 딸에게 용서를 구하지만 샤오링은 그와 연을 끊어버립니다. 하지만 솜씨좋은 손의 설득에는 마음이 움직여서 두 사람은 함께 아쿠아로 돌아오지요. 두 사람은 이종족 커플로서 유명인사가 되고, 둘의 유전자를 합성한 아이도 낳아서 잘 삽니다.

감상

예, 이렇게 해서 솜씨좋은 손의 이야기 목표는 성공해서 해피엔딩, 타오룽은 실패로 쓸쓸한 말년을 맞았습니다. 간단한 설정에서 시작해 꽤 극적인 이야기가 나온 점이 재밌었습니다. 단순하면서도 극명한 긴장 상황을 설정해서 자연스럽게 갈등이 나오는 점이 이전에도 느낀 쇼크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처음에 생각했던 다각적이고 심각한 전개보다는 막무가내의 감정싸움 중심이 된 것 같지만, 그건 어찌보면 가족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필연적인 결과일지도 모르죠.

판정은 원래 규칙대로는 어떤 때는 높은 게 성공, 어떤 때는 낮은 게 성공이어서 굉장히 혼란스러웠는데, 승한군이 고안한 대안 규칙을 사용하니까 적어도 둘이서 하는 TRPG로는 무리가 없었습니다. 일률적으로 낮은 게 성공이고 방해하는 1d4는 더하기만 하니까 일관성이 있어서 훨씬 좋더라고요. 그러면서 확률은 동일하고요. 앞으로 쇼크 할 때는 이 대안 규칙을 사용하면 좋겠습니다.

이야기 진행을 판정 결과에 거는 갈등 판정 방식은 판정과 이야기가 맞물리는 점도 재밌습니다. 주인공 참가자와 적수 참가자의 극적 욕구가 서로 긴장관계를 이루고, 규칙과 판정이 이야기 진행을 일정 부분 규율하면서 그만큼 이야기 자체가 예측 불허가 되고 역동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승한군이 사촌 오빠의 성공적인 증언을 걸고 한 굴림이 능력치와 같게 나와 상승 규칙이 발동한 결과 샤오링이 금치산자 판정을 넘어 정신병동에 갖히게 된 것이 좋은 예입니다.

둘만 해서 아쉬운 부분이었다면 역시 관객 주사위가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타오룽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관객이 주사위로 결과를 낮추어 주었다면 타오룽이 성공할 수도 있었는데, 적수인 저의 방해 주사위가 결과를 높이는 상태에서는 거의 실패할 수밖에 없었죠. 주인공 참가자와 적수 참가자뿐 아니라 관객의 극적 욕구도 함께 맞물리면 좀 더 역동적인 결과가 될 수도 있지 않았나 합니다. 다음에는 셋 이상이서 해보면 더 재밌을지도요.

2 thoughts on “쇼크 단편: 피는 물보다…

  1. Asdee

    샤오링… 온갖 시련도 마침내 이겨냈네요. 대단; (판정의 힘인가요;;)

    한편, Shock:SSF로 좀더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뤄보는 것도 어떨까 싶긴 해요. 급격한 남북통일이 일어나 북한 사람과 남한 사람 사이의 사회적 격차 문제가 크게 불거진다든지, 아예 제2차 한국전쟁이 일어난다든지…(중국과 미국 사이의 대리전?) 좀더 스케일을 작게 가자면, 대규모 탈북난민 발생이라든지 다문화 가정의 급격한 증가라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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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키

      현실물도 얼마든지 가능하겠네. 무엇을 다루든 현재 세상에 없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한 사안을 다루면 SF의 본래 의미인 사유 실험의 묘미는 충분히 살릴 수 있을 것 같아. 근미래나 대체역사를 다룬다면 현실 세계의 지식까지 활용할 수 있으니 더 밀도가 있는 얘기가 될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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