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과 효용의 RPG

이전에 부담 없는 RPG를 다룬 글의 연장선으로 생각해보고 싶은 문제는 규칙, 배경 등의 결정에 따르는 비용과 효용의 대비입니다. 결국 어떤 결정이든 따르는 비용과 생기는 효용이 있게 마련인데, 어떤 결정을 내리면 효율을 극대화하고 비용을 줄일 수 있을지 생각하면 좀 더 적은 시간과 노력으로 RPG를 즐길 수 있을 테니까요.

물론 이것은 일률적인 결정은 아닙니다. 같은 결정이라도 사람마다 효용과 때에 따라서는 비용도 다르니까요. 예를 들어 저는 정치, 군사, 법조물을 좋아하므로 그런 내용은 저에게 효용이 높은 반면, 정치물, 군사물, 법조물을 싫어하는 사람은 같은 캠페인도 효용이 낮습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D&D를 모르므로 D&D를 사용하는 결정이라면 일단 배우는 노력과 시간이라는 비용이 들어가는 반면, D&D를 이미 잘 아는 사람은 D&D를 사용하는 비용이 훨씬 적습니다.

승한님의 뉴 필라델피아 단기 캠페인 종영 글을 보고 새삼 생각한 것이 같은 결정이라도 사람마다 비용과 효용이 크게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글 끝에서 승한님은 트랜스휴먼 스페이스 (Transhuman Space) 배경만의 특징을 규칙으로 살리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는데, 그걸 보고 저와는 사뭇 다른 비용과 효용 균형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화해서 생각해 보면 승한님에게 THS의 특징적인 세부사항을 자세히 표현하는 효용은 약 40,  드는 시간과 노력 비용은 20이라면 제게는 그런 자세한 표현의 효용은 20, 시간과 노력 비용은 겁스를 잘 모르므로 60쯤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같은 결정이지만 승한님에게는 가치가 있는 반면 제게는 가치가 없는 투자라고 할 수 있죠.

반면, 승한님에게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으로 하는 인물 중심 표현의 효용이 40, 드는 비용이 15라고 한다면 제게는 효용은 70, 비용은 10쯤 되는 결정입니다. 그래서 겁스와 안방극장 대모험 사이의 결정이 승한님에게 좀 더 비등하다면 저에게는 꽤 쉬운 선택이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비용과 효용을 생각하면 서로 다른 것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얼굴 붉히는 일도 줄어들지 않을까 합니다.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무시하거나 내 방법이 상대에게도 좋다고 생각해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내 상황에는 이것이 더 합리적인 결정일 뿐이니까요.

물론 상대에게 특정 결정이 비용이 덜 드는 이유 (‘겁스는 그렇게 어렵지 않아!’), 혹은 상대에게 효용이 있을 만한 이유 (‘안방극장 대모험은 인물에게 확 초점이 잡힌다고!’)를 제시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으며, 그렇게 하면서 비용과 효용의 저울질도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단 그런 판단을 염두에 두고 있으면 취향과 취향의 싸움 대신 자신에게, 그리고 상대에게 가장 효율적인 판단을 내리는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요.

2 thoughts on “비용과 효용의 RPG

  1. Arafa

    저 일차 테스트용 룰을 완성했어요 >_< 테스트 플레이어를 한 번 모아보고 싶은데, 혹시 시간이랑 생각 있으세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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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키

      와~ 그렇잖아도 그쪽에 별 기여를 못하고 있다고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완성하셨군요! 한동안 공부 때문에 활발한 참여는 못할 것 같지만 그래도 해보고 싶네요. 짧은 글로도 참여가 되는지 테스트해볼 기회일지도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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