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의 그림자] 시스 로드의 굴욕

본편 41화에서 이어집니다.

“선미에 화재 발생! 방어막 강도 60%!”

“진압반을 파견하라! 에너지를 방어막으로 돌린다!”

다시 포격에 뱃전이 크게 흔들리자 다쓰 쟈르넥은 함장석 의자 등받이를 잡고 균형을 유지했다. 이것들이 어디에서 쏘아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쏘는 위치를 계산해서 응사하라고 그렇게 지시를 해대도 영 못하고 있자 열불이 터져서 오퍼레이터 하나를 죽여버린 후로 그래도 조금은 정신을 차리는 모양이었지만.

계속 응사한 끝에 보이지 않는 공격자 하나도 피해를 입은 듯 빗발치는 빔도 조금은 적어졌지만, ‘맨티스’는 쉬운 희생양이 될 것 같으니 정비와 보고를 위해 귀환했을 뿐이리라. 쟈르넥은 이를 악물었다. 지금이라도 탈출정으로 달려갈 수도 있었지만, 맨티스를 두고 떠나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미 호위선을 잃은 후 기함까지 잃는 실책을 저지르고 그가 얼마나 더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뭐, 같은 굴욕을 다른 놈에게도 안겨주기는 했지만. 그 생각이 나자 이 상황에서도 입가에는 악의어린 웃음이 번졌다. 불행히도 지금 상황을 타개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는 않기는 해도… 그를 이곳으로 보낸 다쓰 세리트에게 속으로 온갖 저주를 퍼부으며 그는 정면에 다가오는 소행성대에 숨을 것을 지시했다. 최소한 이것들의 위치를 제대로 계산할 여유는 벌기를 빌며.

소행성 사이로 지나가면서 다쓰 쟈르넥은 계속 뭔가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중과부적으로 쫓기는 상황 때문인가? 엄청난 위험이 거대한 그림자처럼 덮쳐오는 이 기분은…

그 순간 다시 굉음과 함께 맨티스가 크게 흔들리면서 여기저기 경보가 울렸다.

“우현 제 2 추진기가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방어막 방사기 기능 78%!”

“당장 수리반을 파견해!”

악을 쓰듯 지시를 내린 다쓰 쟈르넥은 함교의 조명이 깜박거리고 뱃전이 기우뚱하는 동안 감각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포스… 설마 포스 감각인가? 기기에조차 잡히지 않는 이 괴함선들을 느낄 수 있다면…

“다쓰 쟈르넥! 202, 205에서 어뢰 2정입니다!”

비명에 가까운 오퍼레이터의 목소리에 그는 퍼뜩 집중에서 깨어났다.

“유도 장치 마주 발사하고 회피 이동이다, 제기랄! 여분 에너지를 전부 추진기에 돌려! 이번에 격추당한다면 네놈부터 뒈질 줄 알아!!”

최소한 어뢰는 보이고 기기에 잡히기는 했다. 추격해오는 어뢰를 피해 맨티스는 절름거리면서도 필사적으로 소행성 사이로 움직였다. 어뢰 하나는 유도 장치를 따라갔고 다른 하나는 소행성에 맞았지만, 소행성의 파편을 미처 피하지 못하면서 다시 맨티스는 격동했다. 전원이 나갔다가 비상 전원이 들어오면서 함교는 잠시 어두워졌다가 어렴풋이 밝아졌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이제 지긋지긋한 이상 보고를 반쯤 흘려들으며, 선체의 격한 움직임에 순간 무릎을 꿇었던 다쓰 쟈르넥은 천천히 일어섰다. 아무리 입맛이 써도 맨티스는 버려야 했다. 여기서 이 버러지 같은 것들과 같이 죽을 수는 없었다. 입을 열어 명령을 내리려는 순간…

“307.195 방향! 순양함입니다!”

“무슨? 선체 식별은?”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공, 공화국 우주군입니다!”

순간 다쓰 쟈르넥은 오퍼레이터를 하나 더 보내버려야 하나 생각했다. 공화국 영역을 벗어난 이곳에 왜 공화국 군대가 나타난다는 말인가. 그가 미처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비명과 같은 보고가 들려왔다.

“빔 무기를 충전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진이 이런지 속으로 쉴새없이 욕을 하며 쟈르넥은 명령을 내렸다. 더 맞았다가는 맨티스는 견뎌낼 수 없었다. 이 이상 타격이 있으면 탈출정까지 갈 시간조차 벌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무조건 회피한다! 우현의 소행성 뒤로!”

작동하지 않는 추진기를 보정하면서–이것들이 아직도 수리를 못하고 있다니, 손이 라이트세이버를 잡고 싶어서 근질거렸다–선회하는 동안 오퍼레이터는 공화국군 순양함의 주포 발사를 알려왔다. 이제 거의 절망하며 다쓰 쟈르넥은 충격에 대비할 것을 명령했다.

충격은 끝내 오지 않았다.

“다쓰 쟈르넥!”

오퍼레이터의 다급한 부름에 쟈르넥은 뷰포트를 살폈다. 분명 순양함은 포를 발사하고 있었지만, 빔은 맨티스를 지나 허공을 향하고 있었다. 아니, 적어도 그러는 것 같았지만 빔은 허공을 가로질러가지 않고 분명 뭔가를 맞추며 사라져갔다. 가끔 빔이 사라지는 곳에서는 빈 우주공간에서 우주선 부품과 금속 조각이 떨어져 나와 흩어졌다.

소행성 뒤에 일단 몸을 숨기고 급한 수리부터 명령한 뒤 다쓰 쟈르넥은 순양함과 보이지 않는 함선의 전투를 지켜보았다. 아까 전에 어렴풋이 느꼈던 것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었다. 분명 보이지 않는 함선은 포스 기척을 발산하고 있었고, 방향을 바꾸어가며 포를 발사하고 있었지만 두 대라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을 정확하게 감지하고 응사할 수 있는 저 순양함에 탄 것은 그렇다면 포스 능력자이거나 감지 기술이 있는 자들이 틀림없었다.

‘저 함선을 얻을 수 있다면.’

생각만 해도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일이었다. 보이지 않는 함선이 있다면 왠만한 상대에 대해서는 무적이나 다름없었다. 그 자신 포스 능력자인 그조차 처음에는 이렇게 애먹일 수 있다면, 빠르고 치명적인 기습에 저 함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리라.

“우리도 여기서 응사한다. 내 지시에 따르도록.”

그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눈에도, 기계에도 보이지 않는 함선을 상대하려면 차라리 이쪽이 나았다. 아까 전에는 신경을 성가시게 건드리기만 하던 감각이 이제는 뚜렷하게 잡혀왔다. 그는 조용히 함선의 존재를 느껴보며 각도를 추정해서 사격 방향을 알렸다.

아주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명중률은 반 이상이었고, 두 함선은 곧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눈을 뜨고 보자 공화국 순양함은 맹공격을 펼치며 그 중 하나에 접근하고 있었고, 또 하나의 투명 함선은 맨티스가 엄호물로 삼은 소행성을 돌아 사격선을 확보하려고 움직이고 있었다.

“추진기 수리 상황은?”

“45% 출력을 확보했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적이지는 않았지만 충분했다.

“우현으로 소행성을 돌아가면서 내가 지정하는 방향으로 사격한다.”

그의 생각이 옳다면 저 공화국 순양함 쪽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각개격파. 저쪽 함선을 순양함이 처리한 후에 순양함이 이쪽으로 돌아온다면 이쪽의 보이지 않는 함선 하나를 포획할 수 있었다. 맨티스의 앞발이라면… 그는 언제든지 펼칠 수 있도록 앞발 상태를 점검할 것을 명령하며 아직 이쪽의 상대 위치 파악이 정확하지 않다는 인상을 심어주려고 종종 틀린 방향으로 응사를 명령했다. 몇 번이나 상대의 빔이 바로 근처를 스쳐갔지만, 주의깊게 거리와 각도를 유지해서 더 이상 심한 피해는 없었다.

순양함 쪽이 상대하고 있던 함선의 포스 기척이 사라진 것을 느낀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리고 공화국 순양함은 이제 조종하는 사람이 포스 능력자라는 사실에 대해 일말의 의심도 남기지 않는 빠른 속도로 소행성 사이를 질주해 투명 함선을 맨티스 쪽으로 몰아넣기 시작했다. 짜릿한 흥분을 느끼며 쟈르넥은 지시를 내렸다.

“맨티스의 앞발을 펼친다! 177.15 방향으로 전속력 전진, 내가 지시하면 멈추면서 앞발을 닫는다.”

마치 그림자 춤을 추는 것 같은 전투 상황에 부하들은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그의 지시를 듣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정도는 알고 있는 그들은 서둘러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 공화국 순양함과 맨티스는 마치 충돌하기라도 하려는 듯 서로 상대를 향해 돌진했고, 순양함–‘스텔러’라는 선명이 얼핏 보였다–이 뷰포트에 빠르게 다가오자 함교 여기저기서는 놀란 고함 소리가 터져나왔다.

“멈춰! 앞발을 움킨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묵직한 충격이 오고, 맨티스의 앞발이 드드득 하는 진동과 함께 정말로 뭔가 움켜잡자 함교에는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포획했군. 짜증나는 그림자 놈.”

그의 말에 부하들은 순간 어쩔 줄 모르고 서로 마주보다가 처음에는 한두 명, 그리고는 모두 환호성을 터뜨렸다.

‘독을 품은 먹이입니다, 다쓰 쟈르넥.’

갑자기 머릿속을 울려오는 목소리에 그는 순간 흠칫했다. 벨벳처럼 흐르면서도 뭔가 꺼림칙한 것을 품은 그 어둠에. 분명히 다급한 말을 전하고 있으면서도 포스 텔레파시의 목소리는 느긋했다.

‘지금 놓으십시오.’

함교 배치 인원이 웃고 환성을 지르며 농담을 주고받는 와중에 다쓰 쟈르넥은 한 손을 들었다.

“그리고… 놓는다. 지금 당장.”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살아남았다는 기쁨으로 분출하던 부하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순간의 정적을 삑삑거리는 계기가, 그리고 한 오퍼레이터의 비명과 같은 보고가 갈랐다.

“다쓰 쟈르넥! 일리리움 에너지 신호를 감지했습니다!”

“그럼 그렇지. 역시 자폭할 생각인가. 서둘러라.”

다급한 상황인 줄 알면서도 그는 씩 웃음이 나왔다. 지독한 것들. 적어도 이 기술을 개발하고 책임진 것은 시스 로드나 여느 군벌은 아니었다.

‘공화국 아니면 제다이… 혹은 둘 다인가.’

어쨌든 목적은 달성했다. 굳이 저렇게 알려준다면 맨티스의 가치는 충분히 보여주었다는 뜻이겠지. 숨막히는 긴장 속에서 함교 인원이 작업하는 시간은 2초를 넘지 않았다.

“맨티스, 먹이를 놓았습니다!”

앞다리의 연결 부위가 몇 군데 나가는 것을 그에게 굳이 승인 받는는 시간 낭비를 하지 않은 점도 그렇고, 오퍼레이터 감독관을 승진시킬 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는 이 상황에서는 불필요한 명령을 내렸다.

“전속력으로 이탈한다. 탈출정이나 메시지 실린더를 배출한다면 바로 포획한다.”

어차피 잡자마자 놓을 생각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늦을 뻔 했다. 벗어나면서도 폭발의 위력에 맨티스는 잠시 흔들렸다. 어차피 제때 벗어나지 못할 것은 알았으면서도 맨티스를 같이 데려가려고 기다렸으리라. 지휘관이 누구인지 한 번 얘기라도 해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감상적인 생각을 억누르고 그는 통신병의 보고에 주의를 돌렸다.

“다쓰 쟈르넥, ‘스텔러’에서 연락입니다.”

“화면에 보이게.”

화면에 나타난 인물의 목소리를 듣기 전에도 그는 조금 전 텔레파시의 주인공을 알아볼 수 있었다. 파충류에서 진화한 지성 있는 종족을 본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 여자는 그로서는 처음 보는 종족이었다. 보았더라면 잊을 수 있을 리 없었으니까. 온 우주를 내려보는 듯 우월감 어린 표정, 느긋하고 치명적인 우아함. 매끈한 녹색 비늘에는 선내의 밋밋한 조명마저 따스한 빛이 되어 은은하게 흘렀다.

“처음 뵙겠습니다, 다쓰 쟈르넥. 다쓰 루-한이라고 합니다.”

살짝 고개를 숙이는 동작은 정중하기는 했지만 공손하지는 않았다. 근거를 확인할 필요조차 없는 그 오만한 자신감은 이제 조금씩 주황빛이 돌고 있는 비늘 이상으로 그녀의 일부일 테니까. 그 작은 동작에 자신도, 그리고 함교 인원도 남녀 할 것 없이 눈이 쏠리는 것을 깨닫고 그는 애써 정신을 차렸다.

“제때 잘 와주어서 고맙소. 도대체 어떻게…?”

“자세한 얘기는 대면해서 하기로 할까요.”

푸른 입술이 작게 미소짓는 동안에도 마치 부정한 비밀을 품은 검은 웅덩이 같은 눈은 웃지 않았다. 그 눈에 비친 빛은 모두 원래와는 전혀 다른 색이 되어 물 위에 뿌린 기름처럼 어둑한 붉은빛과 녹색, 보라색으로 번들거렸다.

“저와 동료가 잠시 건너가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지요. 도킹이 되시면 포트를 열겠습니다.”

긴 생각이 필요한 얘기는 아니었다. 어차피 맨티스의 지금 상태로는 스텔러에게서 벗어나거나 이길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저 요청은 형식일 뿐이었다. 죽일 생각이라면 이미 죽였을 테고, 그는 이미 포로나 마찬가지였으니 그들이 건너온다고 변할 것은 없었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그에게 허락을 구하고 그의 손님으로서 맨티스에 찾아온다는 것 자체가 동맹 제안이나 다름없었다.

도킹 허가 명령을 내리고 손님들을 맞으러 도킹 포트로 부함장을 내려보냈던 다쓰 쟈르넥은 도킹 포트를 연 순간에야 느꼈다. 몸과 마음을 엄습해오는 한기, 바닥이 없는 어둠과 광기의 존재를. 자신의 고함소리조차 방망이질치는 심장에 묻혀버린 채 그는 비명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함교 문을 봉쇄하고 방벽을 내려! 선내 전원 전투 태세를 갖춘다! 지금 당장!”

“예?”

오퍼레이터가 채 반응하기도 전에 그는 이미 라이트세이버를 뽑아들고 있었다. 포트로 내려보낸 부하들은 이미 죽었으리라는 짐작은 포트에서 다급한 연락이 왔을 때 확신이 되었다. 아마 부하를 모두 죽이려는 생각은 아니리라. 함교로 오는 길에 방해가 되면 벨 뿐. 이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한 자신을, 그리고 미주알 고주알 일러바쳤을 그 계집애, 다쓰 세리트를 저주할 수밖에.

봉쇄한 함교 문이 덜컹거렸다. 문 밖에 그 차갑고 어두운 기운이 도사리고 있었다.

“열리려고 합니다! 봉쇄가 듣지 않습니다!”

부하들이 블래스터를 꺼내며 문에 겨누는 동안 라이트세이버를 무력하게 들고 선 다쓰 쟈르넥이 느낀 감정은 절망이었다.

“다쓰 쟈르넥! 명령을…”

“블래스터 내려.”

반쯤은 신경질적으로, 반쯤은 자포자기한 그의 명령에 부하들은 놀라서 쳐다보았다.

“미친 짐승을 더 성나게 할 셈이냐? 개죽음당하기 싫다면 블래스터 내려라.”

그가 바로 죽을 것이 아니라면, 아직 그의 짐작대로 맨티스 함장으로서 수명이 남았다면 훈련받고 경험도 있는 인원을 이렇게 죽이는 것은 낭비였다. 라이트세이버를 들고 그는 억지로 열리는 함교 문에 다가섰다. 그리고 마침내 포기한 한숨과 같은 치익- 소리와 함께 열린 문으로 들어서는 남자에게 애써 태연하게 말을 걸었다.

“오랜만이군요. 마중하러 제가 보낸 부하를 혹시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쓰 세데스.”

아무 대답이 없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시스 로드의 모습은 변해 있었다. 넬반에서 ‘그림자 나이트’를 죽였다더니, 코티에르가 곱게 가지는 않은 듯 얼굴에는 커다란 흉터가 닫히고 일그러진 눈꺼풀에서 시작해 얼굴 오른쪽을 따라 내려갔고, 한쪽 다리를 저는 걸음걸이는 이전처럼 매끄럽지 못했다. 그러나 치명상이 아닌  이상 상처 입은 맹수는 여전히 위험한 법. 다쓰 쟈르넥은 자세를 낮추고 세이버를 들었다.

변함없이 빠르고 위협적인 공격을 한 합, 두 합, 세 합까지는 막아냈다. 시야가 제한받는 오른편을 노려서 반응이 반 박자 늦었을 때는 어쩌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시 오른편을 향해 페인트 공격을 하자 다쓰 세데스가 시선도 돌리지 않은 채 정확한 시점에 쳐낸 순간까지는. 라이트세이버가 손에서 날아가는 짧은 시간 동안 다쓰 쟈르넥은 미친 짐승이 교활하기까지 한 우주는 불공평한 곳이 아닐까 잠시 고민했다.

뒤로 피하면서 포스를 발동하려고 했지만, 그 순간 눈앞에 붉은 빛이 번쩍하면서 얼굴에 뜨거운 고통이 지나갔다. 비틀 한 발짝 물러나며 그는 얼굴을 세이버로 베인 것을 깨달았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고통스럽고, 지워지지 않을 흉터를 남길. 라이트세이버가 희미하게 웅웅거리며 목에 닿아왔을 때 그는 순간 차라리 죽여주기를 바랐다.

“그쯤 하는 게 좋겠어요.”

공기 중에 흐르는 검은 벨벳. 다쓰 루-한이 어느새 들어와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어 서있었다. 어둡고 감각적인 존재감은 같은 방안에 있으니 한층 강렬했다.

“그가 필요하다는 걸 잊지는 않았겠죠?”

남은 왼쪽 눈을 살짝 그쪽으로 돌렸다가 다쓰 세데스는 다시 그를 마주보았다.

“다쓰 루-한은 이미 만났겠지.”

흉터 때문에 비틀린 웃음은 이전보다도 더 위협적이었다.

“이 함선과 헬스카에 남은 네 함대는 확실히 쓸모가 있다. 그림자 함선을 얻기에 지금보다 좋은 기회는 반드시 찾아오지. 힘을 다해주도록… 동지.”

그가 세이버 끝으로 볼을 툭툭 치자 화끈거리는 아픔에 다쓰 쟈르넥은 이를 악물었다. 욱신거리기 시작하는 얼굴의 상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고, 그 고통도 굴욕감에 비하면 약하기만 했지만.

“맨티스도 수리해야 할 테니, 코리반으로 항로를 잡도록. 네놈 함대도 불러라.”

다쓰 세데스는 라이트세이버를 끄고는 보라는 듯 등을 돌렸다. 분노와 모멸감으로 떨며 그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다쓰 쟈르넥은 다쓰 세데스의 등에 대고 말을 내뱉었다. 어쩌면 죽고 싶은 것일까.

“그 잘난 ‘검은 재앙’은 어디다 처박아 두고 공화국군 순양함인가? 좀 궁했나보지?”

다쓰 세데스는 걸음을 멈추었다. 얼어붙은 정적 속에 그는 어깨 너머로 씩 웃음을 지어보였다.

“되찾는다. 오랜만의 사냥이니까.”

공격하기도 가소롭다는 듯 시스 로드가 다시 걸음을 옮겨 함교에서 나가는 모습을 보며 다쓰 쟈르넥은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저자가 시키는 대로 일단 따라가 주리라. 그리고 기회가 보이면 반드시, 반드시 이 모욕을 갚아주리라고.

“다쓰 쟈르넥, 치료를…”

얼어붙었던 함교는 다쓰 세데스가 나가자 다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포스 능력이 없다 해도 숨쉬기가 한결 편해진 것은 느꼈으리라.

“필요 없다.”

상처에 살짝 손을 대자 진물과 약간의 피가 묻어나왔다. 부하들 앞에서 이렇게 완벽한 굴욕을 당하고 나서 함장이 골골거리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이것도 다쓰 세데스에게 갚아주어야 할 빚.

벽에 기대어 조용히 지켜보던 다쓰 루-한은 그에게 빙긋 웃어주고 조용히 나갔다. 얼굴의 고통을 애써 무시하며 다쓰 쟈르넥은 명령을 내렸다.

“도킹이 풀리면 코리반으로 간다. 헬스카에도 합류를 명령하도록.”

“예!”

‘그림자 함선이라… 보이지 않는 배.’

함교를 부함장에게 넘기고 그는 함장실로 향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먹어주도록 하지. 그리고 그 후에는…’

영혼을 좀먹는 분노를, 검게 타는 증오를 그는 소중하게 끌어안았다. 그것은 그를 강하게 해줄 감정, 앞으로의 굴욕의 시간을 견디게 해줄 불길이었으니까.

예, 언제나 안습의 다쓰 쟈르넥입니다. 한 줄 요약: 다쓰 세데스가 다쓰 쟈르넥을 능욕하다. (??) 사실 50화 전까지 쓰고 싶었던 외전은 따로 있었는데 이쪽이 길어져서 그만.

확실히 내면을 보면 인물이 의외의 모습을 보이곤 하는데, 이번에 다쓰 쟈르넥 시점으로 쓰면서 함선을 자폭한 적장과 얘기해보고 싶었다는 생각이나 부하들에게 개죽음하지 말라는 대사 같은 건 예상하지 못했어요. (부하를 ‘낭비’하기 싫다는 정당화는 들어갔지만 과연 그게 다였을까..) 역시 다쓰 세데스처럼 갈 데까지 간 인물이 아니면 시스 로드라 해도 인간이긴 하네요. 결코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이긴 한..

다쓰 루-한은 이전에 아카스트님과 한 비스트 헌터 외전에 나온 센을 뭉갠 인물이고, 그 외전 때 안 죽어서 왜 안 죽었냐고 원망하며(..) 생각해둔 종족은 팔린 (Falleen)입니다. 확장우주에만 나오는 종족으로, 대충 스타워즈식 다크엘프가 아닐까 해요. 장수하고, 아름답고, 우아하고, 페로몬 날리고, 문화적 우월감 가득한.. 묘사값만큼 역할을 해낼지는 모르겠지만, 묘사하기는 재밌네요.

7 thoughts on “[공화국의 그림자] 시스 로드의 굴욕

  1. orches

    오, 펠로스 출동입니까. 많이 부드러워진 그이지만.. 왠지 엑사르 쿤이 전쟁을 일으킨 시기를 살았던 시스들에게 있어서 세데스님 못지 않은 느낌을 주는 존재가 아닐까 해요. 그나저나 펠로스 시스박멸주식회사를 향해 전화가 쉴새 없이 오고 있는데, 전화 상담원 미셀은 대체 어딜 갔단 말입니까 ㅇ<-<

    Reply
    1. 로키

      곧 대규모 우주전 들어갈 것 같으니 플레이 시간에 놀러오면 관전도 하고, 전개 논의도 하고, 나올 만한 때는 미셸과 펠로스도 잡을 수 있을 듯? 본편 주인공들보다 역사가 긴 인물들인 만큼 마무리에 나오는 것도 멋질 것 같고 말야.

      Reply
  2. 아사히라

    그거 좋군요! 이번주에는 공연 관계로 플레이 시간에 못 갈듯 한데
    이번주가 마지막이 아니라면 좋겠네요.

    Reply
    1. 로키

      대규모 우주전은 오래 걸리니까 (센타레스는 10시간!) 나와 아카스트님이 밤을 새지 않으면 1화 내에는 안 끝날 듯. 함대 제작만 해도 시간이 좀 걸리니까 다음 주에 와도 아마 충분할 거야.

      Reply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