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G 규칙의 강행성

RPG 규칙을 지켜야 하느냐 안 지켜도 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한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민법에 보면 임의규정과 강행규정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임의규정은 당사자끼리 법규정과 다른 합의를 해도 합의의 효력에는 영향이 없는 규정입니다. 반면 강행규정은 그 규정과 다른 합의를 하면 그 합의는 무효인 규정을 가리킵니다.

비유하자면 RPG 규칙은 강행규정보다는 임의규정에 가깝다고 봅니다. 규칙으로 결과가 나와도 모든 참여자가 그 결과에 따르지 않기로 합의하고 그 합의가 진정하다면 굳이 지킬 필요는 없을 테니까요. 다만 문제가 되는 건 겉으로만 합의가 있고 사실은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때겠지요.

또한, 강행성은 없다고 해도 RPG 규칙은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는 수단이므로 규칙으로 낸 결과를 합의로 바꾸는 것은 신중할 문제라고도 생각합니다. 규칙으로 나온 결과를 바꾸는 일이 잦다면 규칙을 수정하거나 다른 규칙을 사용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는 문제고요. 규칙을 사용한 결과가 즐겁지 않은 일이 잦다면 규칙이 놀이와 맞지 않는다는 뜻일 수 있으니까요.

결국 규칙의 강행성에 대한 제 생각은 참여자 사이의 약속인 만큼 왠만하면 지키는 것이 좋지만,또 다른 약속으로 뒤집을 수 있으므로 무조건 지켜야 하는 건 아니라는 정도. 그런 면에서 비유는 어쩌면 강행규정과 임의규정보다는 계약 조건 수정, 혹은 법 개정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합의가 따라야 하고, 전원이 납득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요.

덧: 전에 한 토론 중에 규칙을 ‘룰’ 대신 ‘규칙’이라고 하는 것은 강행성을 증가시키는 함의가 있으므로 룰이라는
용어를 선호한다는 얘기가 나온 일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보드게임의 규칙이나 스포츠의 규칙을 연상시켜서일까요? 하지만 ‘룰’이란
결국 ‘규칙’을 영어로 칭하는 것이라 그 둘 사이에 함의의 차이가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함의 자체가 꽤나 주관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마찬가지로 영어로는 보드게임 룰이나 스포츠 룰이 된다는 점도 그렇고요.

2 thoughts on “RPG 규칙의 강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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