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성의 4요소

RPG를 하다 보면 종종 예상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 재미이자 때로는 스트레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외성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전에 역할극에 대한 글에 썼던 것을 따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의외성의 첫 번째 원인으로는 정보 차단이 있습니다. 진행자가 다음에 무슨 적이나 상황을 내보낼지, 참가자가 진행자의 설정에 무슨 반응을 할지 모른다는 것이 가장 고전적이겠지요. 같이 노는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없는 상태에서 서로 서술권의 영역이 다른 점이 여럿이서 하는 놀이에서 의외성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봅니다.

두 번째로는 상이한 극적 욕구가 있습니다. 위의 정보 차단과도 관련이 있는데, 사람이 원하는 것이 다 같지 않은 만큼 각자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는 긴장이 종종 예상치 못한 결과를 냅니다. 폴라리스 (Polaris)의 교섭 규칙처럼 아예 이것을 판정 규칙으로 활용하는 예도 볼 수 있고, 규칙상 위치는 없이 그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밀고 당기는 균형과 긴장이 있을 때 의외성이 가장 커지겠지요.

세 번째는 인물과 상황의 극적 상호작용입니다. 글을 쓸 때도 나타나는 현상인데, 인물과 상황을 움직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올 때가 있습니다. A와 맺어주려고 했는데 자꾸 B하고 가까워진다든지, 치고받고 싸우게 하려고 했는데 친구가 된다든지. 이렇듯 인물이 독자적 생명력을 띠기도 한다는 점이 보드게임과 다른 RPG의 재미이겠지요. 심지어는 사전 논의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극적 욕구를 서로 조화했을 때도 실제 상호작용의 결과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기도 합니다.

네 번째는 판정의 의외성입니다. 주사위나 카드 등 무작위의 요소가 있을 때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데, 계속 펌블이 떠서 형편없는 적에게 주인공 일행이 몰살당한다든지 비교적 강한 적을 한 방의 크리로 단칼척살해버린다든지 하는 때가 가장 의외이겠죠. 무작위수가 아니라 하더라도 판정 과정 자체에서 정보 차단, 상이한 극적 욕구, 극적 상호작용 등 다른 의외성의 요소를 판정 규칙이 종종 끌어냅니다.

이렇게 의외성의 요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언급했듯 의외성은 재미를 증진할 수도 있고, 재미를 저해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의외성을 어떻게 하면 가장 적당한 수위로 조정할 수 있는가, 어느 요소를 살리고 어느 요소를 제한하고 싶은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6 thoughts on “의외성의 4요소

    1. 로키

      그건 의외성이라기보다는 오해..(먼산) 하긴 그것도 의외성의 한 요소일 수는 있겠네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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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orches

    로키님이 포스팅하신 것처럼 플레이를 겪다보면 (의도적이던 의도치않던)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불쑥 나오는 경우가 많은 듯 해요. 뭐니뭐니해도 가장 눈물날 때는, 주사위의 자비로운 의지가 불러오는.. ;ㅅ;

    추신. 언더월드.. 전 국장님이 여성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노시아 님께서 ‘남자잖아요’ 라고 말씀해주실 때 ‘나 혼자 여성이라고 생각한 거야아!!’ 하고 충격받았었습니둥 ;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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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키

      의외성은 결국 무조건 다다익선은 아니고, 조정하고 이용하는 게 중요하겠죠. 아저씨 말투를 쓰는 국장이 대체 왜 여성이라고 생각하셨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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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lhovamp

    그러고보니 예전에 승한님과 무한경비대 플레이를 할 때, 4번의 경우가 특히 두드러졌던 기억이 납니다. 제 캐릭터는, 첫 화에선 그야말로 “조무래기” 에게 칼을 맞고 쓰러졌고, 두번째 화에선 해당 화의 보스를 한 턴에 무력화시켰지요. (…)

    이래서 다이스신을 믿어야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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