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의 생사에 대한 생각

지난 토요일에는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 플레이를 하면서 참가자로서 맡은 주인공이 죽는다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악마에 씌운 주민이 제 파수견 게이브리얼 허커비에게 총을 쏘는 도전을 하자 주사위 5개로 받았을 때였죠. 그렇게 하면 5d10 피해를 굴리게 되고, 피해 규칙상 가장 높은 두 주사위의 합이 16 이상이면 중태, 20이면 즉사이므로 상당히 위험한 선택이었죠.

마스터: 게이브에게 다시 산탄총을 내쏩니다. “타아아앙!!”
마스터: 6,6 빼기
게이브: 바닥에 구르다가 총이 어깨에 맞자
게이브: 억눌린 비명소리가 들리고, 피가 튑니다
게이브: “이런 망할..!”
게이브: 3, 4, 2, 2, 1 빼기

매튜: “게이브!!”
매튜: (그것도 피하지 못하냐 한심하다!! -> 한심한 동생 주사위 추가)

사실 한심하긴 한 게, 저 상황에서 주사위를 더 끌어오는 서술을 할 수도 있었는데 제가 안 하고 그냥 있는 주사위로 받아서 무지막지한 피해를 굴리게 된 거였거든요. 아직 끌어올 수 있는 주사위가 꽤 있었고 총격으로 상승도 할 수 있었으므로 피해 안 입고 막으려면 못 막을 건 없었는데 굳이, 피해를 입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판정 장면의 긴박감. 바로 코앞에서 총을 쏘는 상황에서 주사위 끌어오는 RP를 하면 그 급박한 혼란이 덜 드러날 것 같았고, 또 총이 나온 김에는 누군가는(!) 좀 다쳐야 총격의 극적 의미가 더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일행 중 가장 어리고 경험이 없는 (아마도 이번이 첫 임무?) 게이브가 가장 적합할 것 같았고요.

둘째, 캐릭터 자체의 극적 의미. 모범생인 형과는 달리 게이브는 위에서 보다시피 불량하고 거친 성격입니다. (태몽에 천사가 나와서 이름이 게이브리얼 마이클인데, 애 꼴을 보니 그 천사는 사실 루시퍼였다는 게 중론(..)) 제일 파수견답지 못한 게이브가 임무 중 다치거나 죽는다면 게이브의 자신의 이야기도 더 극적 의미를 띨 테고, 형 매튜의 감정선도 자극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위와 같은 생각은 어느 정도 들어맞기는 했습니다. 총에 맞은 게이브가 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악마를 몰아내 파수견다운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고, 형인 매튜는 죽어가는 동생을 필사적으로 살려내는 장면을 연출했죠. 두 사람의 감동적인(?) 우애의 현장도 엿볼 수 있었고요.

마스터: 매튜가 포기하지 않고 세차게 뺨을 때리자, 곧 게이브가 부스스 눈을 뜹니다.
매튜: 한방 더 때립니다. “얼간아!”
게이브: “으으..” 피를 흘려 극도로 약해진 채..
게이브: “이 자식.. 때리지..마..”

다만, 참가자로서 플레이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주인공이 저렇게 되자 부작용이 있긴 했습니다. (사실 규칙상 꼭 게이브가 누워있어야 하는 건 아닌데, 부상의 심각성이라든지 하는 앞뒤 서술상 그게 자연스러웠죠.) 서술권이 사라진 이상 남은 것은 잡담권뿐이라 남은 세션 동안은 온갖 실없는 소리 하며 구경하는 걸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물론 그것도 제 선택이었으니까 불만은 없었습니다. 부상 여부와 정도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는 점도 그 선택에 도움이 되었고요. 그래도 제일 극적이라고 생각한 선택이 극에 직접 참여하고 영향을 미치는 수단을 박탈했다는 점에서 극적 요소로서의 등장인물과 참가 수단으로서의 등장인물 사이에 생길 수 있는 긴장관계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또 진행자로서 제가 참가자들에게 종종 느끼는 불만, 즉 주인공들이 ‘몸을 사린다’는 불만을 참가자 입장에서 조명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분명 주인공을 아끼지 않아서 좋은 극적 결과를 낼 때도 있지만, 그 대가는 적어도 한동안은 플레이에서 빠지는 것이니까요. 이것이 조작할 말이 하나밖에 없는 참가자의 어려움이기도 하겠지요.

주인공 몸을 더 사리게 되는 이유는 주인공을 함부로 죽이거나 다치게 하는 것이 이기적인 플레이가 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주인공은 참가자의 자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체 일행, 나아가서느 전체 플레이의 자원이기도 하니까요. 예를 들어 위에 게이브의 부상은 제가 생각하기에 재미있기는 했지만 플레이 시간과 초점을 한동안 제 캐릭터에게 집중시키는 결과가 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행이 하나 줄어드는 것도 남은 일행에게는 큰 애로사항이 될 수도 있죠. 전투력이 감소한다거나, 필요한 기능을 사용할 수 없어진다거나. 포도원의 개들은 덜하지만 예를 들어 D&D나 겁스라면 문제가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즉 이미 혼잣몸이 아니라는 사실도(?!) 주인공 몸을 더욱 사릴 만한 이유가 되겠죠.

이런 점이 문제가 된다면 대체 인물 제공 등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개연성 등을 생각하면 완전하지 못한 해결책인 때가 많고, 무엇보다 제가 느낀 역설은 객관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제 취향 때문이기도 하니까요.

왜  그런가 하면 참가자의 유일한 직접적 참여 수단이 주인공인 건 그만큼 그 주인공에 몰입하고 집중하라는 구조적 배려일 텐데 저는 특정 인물에게 몰입하거나 애착을 갖는 걸 잘 못하거든요. 개별 인물의 행동과 내면은 전체 이야기의 일부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서 참가보다는 진행, 내지는 진행자 없는 규칙의 참가자 역을 선호하는 것 같고요.

결국 취향과 상황에 따라 서술권의 적정 범위도 달라지는 것 같고, 그런 제각각의 욕구를 충족해줄 수 있을 만큼 서술권의 종류와 범위를 여러 가지 조합으로 제공하는 다양성이 이 취미의 매력이기도 하겠죠. 물론 지금 제 상황처럼 직접 서술권이 전혀 없는 관객 입장도 재미있어서 이래저래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꽤 오랜만에 참가를 해보니 이렇게 플레이를 또 다른 각도로 볼 수 있어서 좋군요.

4 thoughts on “캐릭터의 생사에 대한 생각

  1. 이방인

    저와는 반대군요.
    자기가 잡은 캐릭터가 죽는 일이 발생한적은 없지만 만약 당하는걸 상정해서 생각해봤을때, 만약 주인공이 판정 실패로 죽어버릴 경우에 저같으면 미련없이 중간에 기브업하고 켐페인을 빠지겠습니다.
    저는 애초에 ‘배경’이나 ‘룰’을 다함께 즐기기 위해 RPG를 즐긴다기 보다는 초기 인물 구성에서 제가 만들어내고 이리저리 고안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그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 가기 위해 RPG를 즐기는 쪽이니까요.
    보면 애초에 주인공이 죽거나 켐페인에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빠지는걸 상정하고 다음 캐릭터를 초기 캐릭터 생성단계부터 생각해 놓는 분들도 계시던데… 취향이라는건 생각보다 다양하죠(..)
    제가 D&D에 대해서 그저 ‘데이터’만 즐기는게 실제 플레이보다 훨씬 더 재밌는 반쪽 룰이라고 혹평하는것도 그 D&D에서 주인공의 죽음이라는것이 너무 통제가 어렵기 때문이죠.
    공개 다이스를 선택하고 플레이어 마스터 양쪽이 역량을 집중해 싸워 나가기 시작하면 D&D에서의 주인공이라는것들은 참으로 아차하는 순간에 죽어 나갑니다(…)
    플레이어도, 마스터도 주인공이 그런식으로 지나가는 몬스터 A에게 연속 주사위 펌블이 나서 죽어가는건 원하지 않을진데 주인공들이 실제로 조금만 삽을 푸고 주사위 운이 없으면 그런 일들은 비일 비재하죠.
    주인공의 생사에 대한 토론은 솔직히 D&D를 하다보면 굉장히 많이 발생하는 토론으로, 끝없이 가지를 쳐나가는 주제기도 합니다.
    주인공이 죽었을때 부활 마법을 허용하느냐?. 아니면 그냥 죽은걸로 치느냐?.
    이 경우는 부활 마법을 허용했을때 생에 대한 집착이나,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지키는 어떤 비장미 같은것을 느끼기 어렵고, 그렇다고 부활 마법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하면 주인공의 비명횡사가 너무 잦게 일어난다는 이유로 인해 발생되는 논쟁이죠.

    또는, 주인공이 죽었을때 그걸 그냥 가차없이 죽은걸로 카운트 하느냐? 아니면 ‘그런데 겨우겨우 급소는 피해서 살아났다’ 는 식으로 처리를 하느냐 하는 논쟁도 있는데, 가차없이 죽은걸로 카운트 하자는 사람들의 입장은 ‘룰을 존중하고 룰대로 플레이 하지 않으려면 룰이 왜 필요한가?’ 라는 것이고, ‘주인공인데 봐주자’ 는 사람들의 입장은 어차피 룰은 즐기기 위한 도구인데, 굳이 룰을 칼같이 적용해서 ‘주인공’ 을 그런식으로 죽일 필요가 있냐는 거죠.

    저 논쟁들은 누가 맞다. 누가 틀리다라고 말하기 어려운 그야말로 취향문제로 지금도 수많은 켐페인을 박살내고 수많은 플레이어들의 불화를 조장하고 있을껍니다.
    결국 모든 논쟁의 귀결은 ‘그래서 D&D는 그냥 책만 사서 즐기자’ 였던 기억이 나는군요(…)
    모든 논쟁은 결국 ‘D&D에서는 ‘아무도’ 원치 않는 플레이어의 비명횡사가 너무 잦다’ 라는 룰적 결함에서 비롯된거니 말이죠(…)
    얘기를 하다보니 결론은 D&D팬을 소환해서 도발하는글로 마무리가?(…)

    세줄요약:
    난 주인공을 연기하기 위해 RPG를 하는 고로, 주인공이 죽는게 죽도록 싫다.
    그래서 나는 주인공이 어이없이 죽는 룰이 또한 죽도록 싫다.
    그냥 싫다고만 말한거니 취향으로 존중해 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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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키

      꼭 반대는 아니라고 보는 게, 저라도 주사위가 잘못 나와서 캐릭터가 죽는다면 화날 것 같아요. 예를 든 판정에서는 제 판단으로 스스로 인물을 죽을 수 있는 위치에 빠뜨린 것이지, 자꾸 펌블이 떠서 본의아니게 죽여먹는 것과는 전혀 상황이 다르니까요.

      포도원의 개들에서는 주인공이 위험해지는 게 싫으면 판정을 포기하고 판정에 건 것을 양보하면 되니까 캐릭터의 생사에 대한 제어권이 확고하죠. 결국 ‘캐릭터를 위험에 처하게 할 만큼 이 판정이 나에게 중요한가’ 하는 문제. 죽는 걸 절대 원하지 않았는데 죽어버렸다 같은 일은 있기 어렵죠.

      취향은 사람마다 다르니까 결국 그 취향에 맞는 규칙을 사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D&D에서 판정이 잘못돼서 인물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문제가 된다면 어떤 사람의 취향에는 부합하지 못하는 면이 있다는 뜻이니까 다양한 모색이 있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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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orches

    로키님, 그리고 이방인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pc의 생사권에 대한 생각은 플레이어 혹 해당 캠페인 마스터의 취향이나 경험에 따라서 다른 것 같아요. 제 경우는 자애로운 주사위님들께서 ‘살아도 산 게 아니야’ 상태를 만드신 적이 많아서요. 그 영향인지 pc가 (제 스스로 다치거나 죽을 위기로 몰아넣는 것이 좋겠어효~ 하고 말하지 않는 이상) 크게 다치거나 죽는 것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플레이 중간에 몸을 사리게 되는 경우가 많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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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키

      캐릭터의 생사에 대한 제어권을 주는 규칙의 효용이 그런 데에 있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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