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원의 제다이] 신들이 사랑하는… (2/5)

2.

데이터패드의 끝까지 넘겨본 다룬은 책상에 패드를 가볍게 팽개치며 뒤로 등을 기댔다.

‘이것이 그 법안이라는 건가.’

창가로 걸어가서 그는 저택 주변지를 내려다 보았다. 잘 조경된 정원과 살짝 얼어붙은 연못, 지평선까지 넓게 펼쳐진 숲 위로는 차가운 잿빛 하늘. 그는 시원한 창에 이마를 대고 눈을 감았다.

아예 예상할 수 없던 일은 아니었다. 3개월 전, 형의 죽음 이후로 아버지는 점점 제다이에 대한 불평이 늘었고, 언제나처럼 다룬에게는 아무 설명이 없었지만 아버지가 제다이 템플에 보내는 요구사항들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눈치 정도는 챌 수 있었다. 매우 정중하고 예의바른 무시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무시인 것은 틀림없었다. 그럴수록 공화국의 수호자인 제다이가 공화국의 제어가 불가능한 자체 세력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아버지의 불평은 높아만 갔다.

눈을 뜨고 다룬은 입김이 서린 유리를 쳐다보았다. 육아실의 유리창에 형과 둘이서 입김을 불어가며 낙서하던 생각이 나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허리를 펴면서 그는 창에 손끝으로 무심코 몇 글자를 쓰다가 머쓱하게 돌아섰다.

책상으로 돌아온 그는 비스듬히 기대앉으며 데이터패드를 손바닥에 탁탁 쳤다.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자금이 있는 곳에 힘이 있다. 그것이 아버지의 지론이었고,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이기도 했다. 800년 전의 오스테렉 서약을 통해 제다이 공의회에 영구 임대로 주어진, 공화국 의회조차 관여할 수 없는 행성들과 그 전 수입… 그 제어권을 다시 의회가 되찾는다면 제다이 공의회는 싫어도 다시금 의회의 뜻에 기대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제다이 공의회의 버팀목을 자른다.’

통과된다면 제다이는 다시 한번 의회 다수파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적 도구가 되겠지. 의회내의 권력 장악에 성공하면 제다이를 손에 넣는다… 일단 제다이라는 칩이 들어가면 의회의 모든 권력다툼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위의 판돈이 걸리게 될 것이다. 위험한만큼 매혹적인 생각! 의회의 내분에 의해 제다이가 제다이에게 칼을 든 코르디스의 난이 재현될 날도 올까?

다룬은 탄식하듯 웃음을 터뜨리며 데이터패드를 이마에 대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아버지… 당신이란 분은.’

아마도 가장 무섭고 흥분되는 것은 통과될 수도 있다는 사실. 하지만 그 대가는? 다룬은 아버지의 비서관에게서 데이터패드를 받으면서 알아낸 이름들을 다시 떠올렸다. 그래, 그들과 연합한다면 확실히 필요한 표를 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피로를 느끼며 다룬은 책상에 팔꿈치를 짚고 얼굴을 문질렀다. 트리노 의원. 자기 지배하에 있는 행성의 자원개발을 위해 원주민을 강제이주시키려다 제다이의 저지를 받은 인물. 공화국 영역 밖의 노예무역에 관여했다는 증거를 어떻게든 무마시켰지만 여전히 제다이 공의회의 주목 대상인 구델. 의원이라기보다는 군벌에 가까운 스쿠식 의원도 이웃 행성을 집어삼키지 못하게 막고 있는 제다이가 눈엣가시일 것이다.

하나같이 강력하고, 하나같이 부패했고, 하나같이 제다이의 독립성이 마음에 들지 않을 자들. 하지만 오르가나와 같은 정통성을 갖춘 이름이 구심점이 되지 않고는 자기들끼리 다투다가 끝날 뿐이지, 절대 제대로 된 정치세력으로 뭉쳐서 이런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을리 없었다.

‘강한 적을 참 많이도 만들었군, 그대들도. 이제는 우리 아버지까지…’

다시 한번 데이터패드를 훑어본 다룬은 망설임없이 자료를 삭제했다. 아들이 아버지 주변에 첩자를 두는 일도 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적어도 형이라면 그럴 필요가 없었겠지… 형은 소년일 때도 이미 아버지가 믿고 상담하는 후계자였으니. 성인이 되어서도 아버지의 의논 상대가 될 수 없는 자신은 아버지의 의중과 계획을 알려면 좀더 우회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수밖에.

“형이라면 어쩌겠어?”

그는 빈 방에 대고 나지막히 물었다. 뭐, 뻔했다. 형이라면… 형이 살아있었다면 당장 아버지에게 이 말도 안되는 짓을 그만두라고 설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형이 죽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 가슴이 쓰려왔다.

여전히 제다이 공의회에 대한 배신감은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아있었다. 형을 빼앗아가고, 결국 형을 죽게 하고, 형을 죽게 한 자를 군소리 없이 용서하려는 조직. 바로 옆에 있었으면서도 형을 살리지 못하고, 형의 시체가 채 식기도 전에 시스를 새 제자로 들인 제다이 마스터. 과거는 마치 없었던 일인양 의기양양하게 제다이 로브를 입고 형의 자리를 차지한 시스놈.

빈 데이터패드를 사무용품 소각구에 던져넣고 다룬은 주먹을 꽉 쥐었다. 어쩌면 아버지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제다이 공의회가 오르가나 가문의 우정과 호의를 얻을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처음부터 아버지의 요구대로 집나간 형을 돌려보냈더라면, 전쟁중에 루바트를 최전선에 배치하지 말라는 요청을 받아들였더라면, 전후에 위험한 변방 임무 대신 코루선트에 배치하라는 부탁을 들었더라면, 마스터 모트의 노망난 고집을 단호히 꺾기라도 했다면…

‘번번이 우리에게 침을 뱉은 것은 그들이다! 오르가나 가문이 언제까지 업신여김을 참을 것 같은가.’

슬픔이란 묘한 것이었다. 구멍이 난채로도 그저 멀쩡한 얼굴로 살아가는 삶의 틈새에서 때로 아무 경고도 없이 갑자기 덮쳐오는… 혼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다룬은 몸을 앞으로 숙이고 입을 막았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어떤 결과든 이제는 공의회의 책임인 거야!’

그는 눈을 꼭 감았다. 분노는 넘치도록 충분했지만 왠지 공허하기만 했다.

형이 더이상 없었다.

가장 친한 친구, 그의 우상, 그의 경쟁자, 그의 적, 그의 목표가 이 세상에 없었다.

이제 그는 누구와 웃고, 누구와 추억을 나누어야 하는가. 누구를 미워하고, 누구를 뛰어넘을 수 있는가.

형제가 없는 세상에서…

그 근본적인 어긋남에 고민하며 그는 흐릿해진 눈을 뜨고 창밖으로 하나둘 내리는 눈송이를 지켜보았다. 텅빈 공간을 가로질러 끝없이 떨어져가는 영원의 작은 조각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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