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D 플레인스케이프 캠페인 배경

플레인스케이프는 전부터 흥미가 있는 세계관이긴 했지만 이번에 CRPG 플레인스케이프:토먼트 (Planescape:Torment)를 하면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고, 때맞춰 플레인스케이프 캠페인 (레이디의 그늘)까지 시작하게 되면서 드디어 플레인스케이프 캠페인 배경 (Planescape Campaign Setting) 박스세트를 읽었습니다.

박스세트 구성은 진행자를 위한 설정 개설서인 ‘DM을 위한 플레인 길잡이’ (A DM’s Guide to the Planes), 참가자를 위한 개설서인 ‘참가자를 위한 플레인 길잡이’ (A Player’s Guide to the Planes), 진행자를 위한 시길과 경계지대 설명인 ‘시길과 그 너머’ (Sigil and Beyond),  플레인스케이프에 새로 나오는 생물들을 다루고 있는 Monstrous Supplement, 그리고 각종 지도로 되어 있습니다. 이중 ‘참가자를 위한 플레인 길잡이’는 요즘 요약해서 블로그에 올리고 있기도 하지요.

전부터 부분부분 얘기는 듣고 있는 배경세계였지만 막상 체계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니 이게 얼마나 규모가 크고 매혹적인 세계인지 알겠더군요. 형이상학과 현실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형이상학이 곧 매일매일 대응해야 하는 현실이 되는 곳.. 신념과 철학의 갈등에 목숨을 걸 수 있는 세계.. 멀티버스로 가는 관문, 지저분하고 비참하고 잔혹하고 위험하고 놀라운 도시 시길.. 그리고 그 멀티버스를 집어삼킬듯 위협적이면서도 역으로 악이 멀티버스를 집어삼키는 것을 막고 있는 블러드워. 야심찬 설정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시위하는 기분마저 든달까요. (웃음)

‘DM을 위한 플레인 길잡이’에서는 플레인스케이프 설정에 대한 소개, 플레인이 마법에 미치는 영향, 플레인의 구조, 플레인간의 이동수단, 내차원계와 각 내차원에 대한 개괄, 외차원계와 각 외차원에 대한 개괄 등 기본적인 얼개를 다루고 있습니다. 외차원계 부분에서는 레이디 오브 페인과 블러드워 등 설정의 중요 요소들 역시 소개 차원으로 다루고 있지요. 시길과 경계지대에 대한 세부 내용은 이 책이 아닌 ‘시길과 그 너머’에 있고, 이런 식으로 정보가 갈라져 있다는 점은 이 박스세트에 대한 불만 중 하나입니다. 그 얘기는 조금 있다가…

‘참가자를 위한 플레인 길잡이’에서는 플레인의 기본구조, 플레인의 구성원, 그리고 시길의 당파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진행자만 볼 수 있는 ‘DM을 위한 플레인 길잡이’와 ‘시길과 그 너머’와는 달리 참가자를 위한 개설서이기 때문에 다소 중복되는 내용도 있지요. 다만 당파에 대한 소개가 나오기 때문에 진행자도 보긴 봐야 하고, 여기서 위에서 지적한 정보의 구조화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또 나오게 됩니다.

‘시길과 그 너머’는 위에서 얘기한대로 시길과 경계지대의 설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네권의 책 중 진행자에게 현실적으로 가장 도움이 되는 책으로, ‘진행자를 위한 플레인 길잡이’와 ‘참가자를 위한 플레인 길잡이’를 먼저 읽어야 합니다. 플레인스케이프 캠페인을 하는 진행자를 위한 조언, 경계지대의 개괄과 경계지대 각 지역에 대한 소개, 그리고 대망의 시길 세부설정이 나옵니다. 차원문, 시길의 구조와 지역, 보안, 각 당파의 역할, 경제생활 등이 소개되어 있어서 특히 유용합니다.

마지막 괴물책(..?)은 다부스, 크래니움 랫 등 12 종류의 생물이 나오는 짤막한 책으로, 캠페인에 AD&D를 쓸 생각이 없기 때문에 그냥 한번 훑어보았습니다. 필요할 때 참고할만한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플레인스케이프라는 방대한 설정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박스세트는 전반적으로 플레인스케이프의 개괄을 잡아주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고 봅니다. ‘참가자를 위한 플레인 길잡이’는 참가자, 특히 플레이너 주인공을 하는 참가자가 꼭 알아야 할 내용을 잘 추려놓았으며, ‘시길과 그 너머’는 플레인스케이프 캠페인에 꼭 필요한 조언과 정보가 가득 들어있으니까요. ‘진행자를 위한 플레인 길잡이’도 몰라선 안될 내용이고…

다만 비슷비슷한 정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는 아쉬움은 좀 듭니다. 진행자를 위한 정보와 참가자를 위한 정보를 서로 다른 책으로 분리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쳐도, ‘진행자를 위한 플레인 길잡이’와 ‘시길과 그 너머’는 한권의 책으로 묶었으면 더 짜임새 있었을 것 같습니다. 결국 매우 비슷한 내용들 (플레인스케이프 캠페인의 분위기와 캠페인을 위한 조언, 플레인이 마법에 미치는 영향과 경계지대가 마법에 미치는 영향, 내차원계·외차원계 소개와 시길·경계지대 소개)이 두 권의 책으로 갈라지는 결과가 되어서 개인적으로 혼란스러웠습니다.

어쨌든 RPG 책 자체의 속성이기도 하지만, 플레인스케이프 기본 세트는 더더욱 ‘몰라선 안되지만 이것만 알아서는
부족하다’라는 한계랄까, 미진함이랄까 하는 특징이 있지요. 따라서 필요에
따라 서플먼트를 더 찾아보면서 보충해가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책에 돈쓰게 하는 묘미..(..) 플레인스케이프에 대한 탐구는 박스세트를 읽은 것만으로는 끝이 아닌 시작일 뿐인 것 같습니다.

진행 자체에 대해서는… 뭐 이만큼 방대하고 야심찬 설정에 마주했을 때 언제나 막막한 점은 ‘어디서부터 시작하느냐’ 하는 것인데, ‘시길과 그 너머’에 나오는 조언을 통해 어느정도 이 막막함을 극복할 수는 있긴 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플레인스케이프는 마치 수영장 (내지는 물 원소의 내차원?)과 같아서, 눈 딱 감고 미친척하고 뛰어드는 것밖에는 헤엄치는 방법을 배울 길이 없을듯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두려운만큼이나 즐거운 과정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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