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적 제작과 게슈탈트적 제작

요즘 처음으로 겁스 (GURPS) 인물 제작을 스스로 해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거의 진행자 제작 인물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조금 가공해서 했던지라 이것저것 낯설군요. 재미있기도 하지만 어려운 점이라면 제가 익숙한 방식과는 반대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인물이나 장비 제작에서 두 가지 다른 접근을 분석적 제작과 게슈탈트 제작이라고 이름붙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겁스는 어떤 효과를 내려면 그 구체적인 효과를 모두 분해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상처를 입혔을 경우 상대를 일시적으로 눈멀게 하는 검이라면 해악, 단점부과 (실명) 특수향상, 후속효과 향상, 근접공격 제한, 물품용 제한 등 그 구성요소를 일일히 생각해야 하는 식입니다. 이러한 제작방식을 편의상 ‘분석적 제작’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분석적 제작을 사용하는 예로 또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히어로 (HERO) 나 트라이스탯 (Tri-Stat) 등이 있습니다.

반면 제가 익숙한 접근은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분석적이 아닌 게슈탈트적 제작입니다. 효과를 개별 요소로 분해하는 대신 키워드로 표현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페이트 (FATE) 1.0으로 같은 검을 구현한다면 검을 부속으로 만들고 ‘상처를 입으면 시력을 일시적으로 상실한다’ 면모를 붙일 수 있을 것입니다. 자세한 효과 (시간적 범위, 필요한 성공차이, 판정에 수정치 등)가 필요하면 종종 규칙의 범위 내에서 합의해서 정합니다. 페이트 외에 히어로퀘스트 (HeroQuest)나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 라이서스 (Risus) 등 다수의 규칙이 게슈탈트적 제작 방식을 사용합니다.

이 두 가지는 일장일단이 있는 접근들이라고 봅니다. 분석적 제작은 정확하고 객관적이며, 게슈탈트적 제작은 제작이 쉽고 유연합니다. 단점은 그 반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분석적 제작은 복잡해질 수 있고, 기본적으로 목록에서 고르는 형태이므로 반드시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반면 게슈탈트적 제작은 대가성 확보가 불확실할 수 있고, 구체적인 효과는 애매할 때가 있습니다.

이 두 접근은 서로 취할 점이 많아 보입니다. 우선 분석적 제작에서 효과를 요소별로 분해해 생각하는 방식은 게슈탈트식 제작에서도 형평을 맞추거나 구체적인 효과를 정할 때 좋은 시작점이 됩니다.예를 들어 ‘감각 기반’ 향상을 보면, 검이 섬광을 발산해 그걸 보기만 해도 잠시 눈이 안보이는 것은 검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입혀야 하는 것보다 강하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감각 기반의 능력은 명중 판정을 요구하는 능력보다 면모 칸이 더 많아야 한다든지, 페이트 점수를 써야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대가성을 더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위와 같은 것은 감각 기반 향상을 몰라도 원론적으로도 알 수 있는 부분이지만, 때로는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보다는 정형화된 규칙을 보는 것이 더 구체적인 발상을 유도하게 마련입니다. 물론 너무 얽매여서 게슈탈트식 제작의 장점인 평이함과 유연성을 잃는 것은 금물. 그저 생각의 방향을 어느 정도 잡아주는 정도로 사용해야지 목록이 발상의 자유로음을 제한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분석적 제작도 게슈탈트식 제작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상상력을 펼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할 개별 요소의 목록이 상상력의 발판이 아닌 천장이 될 위험을 피한다는 면에서이죠. 즉, 목록에 얽매이지 않고, 목록에 없는 것도 구현하려는 생각의 방향을 잡아주는 정도일까요.

이와 같이 분석적 접근과 게슈탈트적 접근은 서로 반대이긴 하지만, 발상을 얻거나 생각의 방향을 잡는데 서로 취할 장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다른만큼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줄 수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예시에 쓴 검을 겁스와 페이트로 제작해서 비교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명혼도 (冥昏刀) – 겁스판

해악 (2단계): 15CP

실명: +50%
근거리 (공격범위 1, 2): -25%
도난 가능 (ST 겨루기): -30%
소비시간 연장 (1초): -10%
일시적 단점 (죽음의 기운): -10%

비고: 일시적 단점에 대한 부분은 잘 모르겠습니다. 불길한 검이라 들고 있으면 반응판정에 벌점이 붙는 걸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끄고 켤 수 있으며 그렇게 하는데 1초 이상이 걸리는 능력에만 붙일 수 있다고 해서 1초 소비시간을 넣긴 했지만 어차피 전투중에 반응판정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고, 전투 외의 상황에서 능력을 끄는 건 쉬우니까요.

차라리 검을 해악 장점을 가진 동료로 제작해서 죽음의 기운을 넣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해악만이 목적인데 완전히 새로운 인물로 제작하기는 좀 그런 면도 있지만요. 아니면 참가자와 진행자가 합의해서 다른 효과를 부여할 수도 있겠죠.

명혼도 (冥昏刀) – 페이트판

명혼도 (□)
실명을 유발한다 □□
불길한 기운 □

발동조건: 다친 결과 (성공차이 3) 이상으로 공격에 성공했을 때 실명 면모 발동할 수 있음. 조건 충족시 피해자는 기본적으로 전투가 끝날 때까지 실명 상태, 발동에 페이트 점수를 들여 시간단위 올릴 수 있음.

비고: 위에서 말한 ‘불길한 검이라 사회생활에 지장’ 부분은 어렵지 않게 표현됩니다. 불길한 기운 면모를 강제 발동하면 사회적으로 손해볼 때마다 페이트 점수를 받을 테니 대가성도 확보하고요. 반면 위협 판정을 할 때는 자발적으로 발동해 가산점을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역시 위의 겁스판과는 달리 공격의 구체적인 효과는 따로 정해야 합니다. 구체적인 경우에 형평성을 맞추는데 좀더 신경을 써야 하고, 이점에 대해서는  페이트 규칙 자체 외에도 겁스 같은 다른 규칙을 참고하는 것이 발상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5 thoughts on “분석적 제작과 게슈탈트적 제작

  1. 삭풍

    어차피 검을 꺼내들고 집어넣는데에 1초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소비시간 연장은 필요없다고 생각했습니다만…역시 말씀드린 저로서도 애매모호하네요.겁스는 목록에 얽매이는 경향이 큰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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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키

      하긴, 뽑는 시간이 있긴 하군요. 그래도 빨리 뽑기를 높이면 그나마도 없는데다가, 기본적으로 후속 효과로 보이는 해악에서 사실 켜고 끄는 게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도 좀 헷갈리는 면이.. 또 검을 뽑으면 교습과 같은 제한된 상황 외에는 거의 적대적인 상황이라고 봐도 될 것도 같으니 반응판정이 큰 의미는 없다고도 보이고요. 새로운 장점이나 단점을 만드는데 준해서 변형을 만드는 식으로 목록을 보완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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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사히라

    제생각엔 죽음의 기운을 고유공격에 달 게 아니라요

    단점에 달되 거기다 제한을 붙이면 되겠네요.
    사용 조건(명혼도를 들었을 때만)

    이런식으로 단점에 제한을 붙이면 되지 않을까요?

    단점 cp값이 줄겠지만 좀 더 잘표현되는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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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키

      그게 제일 좋은 방법 같네. 검의 특성이라는 생각에 너무 얽매여서 사용자에게 단점을 붙이는 건 생각 못한… 그러면 검을 훔친 사람도 마찬가지로 단점과 제한을 붙여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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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아사히라

    검을 가지게 됐을때 일시적으로 붙는게 되겠죠, 검 자체에서 발현되는 능력이라면요.

    그게 아니고 검과 사용자의 무언가가 시너지를 일으켜서 일어나는 능력이라면
    (즉, 훔친 사람이 검의 능력을 사용할 수 없다면)

    붙지 않아도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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